Skip to main content

042226

Page 1

Wednesday, April 22, 2026

<제6276호> www.newyorkilbo.com

THE KOREAN NEW YORK DAILY

제보·문의 대표전화 (718) 939-0900

2026년 4월 22일 수요일

4·19는 제2의 독립선언… 빛을 따라가야 하는 책임 후손에게 있다 뉴욕일보 시론(時論) 기미년 독립선언서와 뒤따른 독립 만세 운동은 한민족의 정체 성을 천명한 쾌거였다. 1919년 한 민족은 독립, 자주, 부활과 평화의 역사 공동체임을 외쳤다. 기미년 독립선언서는 먼저 한 민족이 독립된 존재임을 밝혔다. 독립은 다른 존재가 필요 없는 고 립된 민족이란 뜻이 아니다. 자신 의 정체성을 지키며 인류 공동체 의 일원으로서“새로운 기술과 독 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하는 민족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가 요 구된다. 강요된 기여는 압제이며 착취이다. ◆ 피로써 외친“민주주의” 독립과 자주의 목적은 식민 통 치자 일본에 대한 배타 또는 투쟁 의식이 아니다. 기미년 독립선언 은 민족의“흔쾌한 부활” 을 꿈꾸 고 있다. 한민족의“넘쳐나는 독창 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 상에 민족적 우수성을 맺어나갈지 로다” 라고 했다. 이 목표를 이루기

4월 19일 경무대로 향하는 학생 시위대. 이날 경무대 앞에서는 경찰의 발포로 약 20명 이 사망하고 1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길주 박사 <역사학자,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위해“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 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로 하 여금 어디까지든지 떳떳하고 정당 하게 하라” 는“공약(公約)” 도맺 었다. 4·19혁명 정신에는 기미년 독 립선언이 녹아있다. 그래서“제2 의 독립선언” 이라 해야 한다. 4·

19 혁명은 한국이 독립국임을 천 명했다. 한국은 전형적인 미국의 의존 국가였다. 1945년 일본의 패 망으로 한민족에게 해방이 찾아왔 다. 이때 미국은 점령군으로 한국 에 왔다. 1948년 미국의 주도로 남 한에 이승만 대통령의(이하 존칭 생략)의 친미 정권이 들어섰다. 2년 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 쟁이 발발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3 년 전쟁 끝에 38선이 휴전선으로 대치되고, 한반도는 분단이 지속 되어 오늘에 이른다. 미국은 전후

한국을 재건에 나섰다. 대륙 공산 세력을 향한 칼끝과 같은 남한의 4월 23일(목) 4월 24일(금) 4월 22일(수) 구름 흐림 오전비 무장과 재건은 미국에는 필수적 최고 55도 최저 47도 최고 61도 최저 49도 최고 73도 최저 53도 냉전 조치였다. 대규모 경제, 군사 4월 22일 오후 12시 기준(한국시각) 원조를 제공했다. 원조에 중독되 다시피 한 나라 한국. 나중에 한미 관계를 묘사하는 표현에는‘구걸 1,502.84 1,451.16 1,491.40 1,462.60 N/A N/A 하는 나라(Mendicant Nation)’ 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이 독재 체 ‘발췌개헌’ 을 밀어붙였다. 2년 뒤 뚜렷한 인물이었지만 미국은 눈감 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인 1954년에는 소위‘사사오입(四 았다. 미국이 방관한 이승만 독재 이승만은 1952년 전쟁 중에 자 捨五入) 개헌으로 헌법의 3선 제 는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신의 재선을 위해 계엄을 선포하 한을 철폐했다. 치달았고, 민중은 4·19 민주 혁명 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직선제 이승만은 독재 근성과 의도가 을 성취했다. <3면에 계속>

“유권자들 힘 합치면 퀸즈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연방하원의원 도전 척 박 후보, 유권자들과 일문일답 “유권자들이 힘을 합치면 우리 후보는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퀸즈를 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 받으며 연단에 올라“저는 패들러 수 있다. 6월 23일 모두 투표에 나 출신의 이민자 아들이다. 이제까 서 변화의 거대한 물길을 만들 지 유권자들을 만나본 결과 최대 자!” 쟁점이‘전쟁’ 과‘생활비’이다. 6월 23일 실시되는 민주당 예비 정부의 과다한 전쟁비용 지출과 선거 연방하원의원 뉴욕 제6선거 감당할 수 없는 생활비를 줄일 수 구에 출마하여 유권자들의 큰 기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대를 모으고 있는 젊은 새 정치인 유권자들의 공동희망인“새로 CHUCK PARK(척 박, 한국명 운 퀸즈, 새로운 이민자사회를 만 박영철, 40세) 후보가 18일(토) 오 들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겠다” 라 후 2시부터 4시까지 플러싱에 있 고 외쳤다. 는 글로우 문화센터(Glow 이어 사회자와 1대1 질의응답 Cultural Center, 133-29 41Ave)에 에서 척 박 후보는“트럼프 2기 행 서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묻고 대 정부의 반이민 정책으로부터 우리 답하는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주민들을 지켜낼 강력한 대표자가 이 자리에는 220~230여 명의 각 필요하다. 연방하원에 진출하여 국의 이민자들, 각계각층, 남녀노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에 대 소들이 몰려와“퀸즈는 변해야 한 해 강력히 투쟁하겠다”이민단속 다!” 며 치안, 서민 대책, 전쟁, 물 국(ICE)의 개편을 주장했다. 또 가고, 카지노 건설 등 각종 현안 “AI시대를 맞아 미국 등 전세계는 문제를 척 박 후보에게 질문하자, 새로운 변회를 요구하고 있다. 선 척 박 후보는 망설임 없이 명쾌하 거운동을 통해 다른 후보들과 제 게 자신의 정견을 드러내며 대답 가 어떻게 다르고, 선거구민을 위 하여 큰 환호와 박수를 받났다. 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증명해 보 이날 흰 와이셔츠 차람의 척 박 이겠다” 고 말하고,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 도입 △유니버셜 차일드 케어 개선 △보편적 보육 강화 △ 거리 안전 개선, △대중교통 현대 화 및 서비스 개선 등을 공약했다. 이어 청중들과의 1대 1 질의 응 답이 시간을 가졌는데 15명의 각 국 퀸즈 주민들과 이민자들이 길 게 줄을 서 질문하고 대답했다. 질의자들은 척 박 후보의 대답을 듣고는“YES!”환호성을 지르며 주먹을 치켜올리며 만족의 웃음을 보냈다. 이 자리에는 척박 한인후원회 공동회장단인 김영환, 박호성, 이 시준 씨와 이석찬 씨 부부 등 한인 들이 참석해 열렬히 응원했다. 6선거구는 플러싱, 베이사이 드, 엘머스트, 큐가든, 포레스트힐, 우드사이드 등을 포함하는 한인 밀집지역 이다. 현재의 6선거구 출 신 연방하원의원은 중국계인 그레 이스 맹 의원 이다. 척 박 후보는 뉴욕주 하원 25선 거구 지구당 대표인 박윤용 한인 권익위원회 회장과 퀸즈한인성당 사도회 전 부회장 박명선씨의 4남

CHUCK PARK(척 박, 한국명 박영철, 40세) 후보가 18일 플러싱에 있는 글로우 문화센터에서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묻고 대답하는 타 운홀 미팅을 가졌다. 청중들이 길게 줄을 서 척 박 후보에게 1대 1 질의 응답을 벌였다.

1녀 중 셋째 아들이다. 그는 척 박 후보는 1985년 생으로 2007년 명문 펜실베이니아대(UPenn) 경제학 과를 졸업하고 경제·재무·공공 정책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다 미국 판 외무고시 합격 157기로 외교관 에 임용돼 2010년부터 미 국무부 에서 근무하다 2019년 트럼드 대 통령 1기 때 그의 가족분리 이민정 책에 항의하며 워싱턴포스트 (WP)에 트람프의 반이민정책에 반대하는 기고문을 실은 뒤 사표

를 던져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 으킨 젊은 정의파 정치지망생이 다. 척박 후보의 무서운 상긍세에 한인 사회는“뉴욕 첫 한인 연방하 원의원 배출” 을 기대하며 크도 작 은 후뤙금들을 보내고 있다. 후원 금을 낸 사람들은 거의가 소액 기 부자들이다. 20달러, 50달러, 100달 러를 낸 서민층이다. 척 박 후보는 억만장자나 대기업의 정치활동위 원회(PAC) 등 이권단체의 후원은

일체 거부하고 있다. 한인들은 소 액이라도 개인 체크나 크레딧 카 드로 기부할 수 있다. 후원금은 100 달러, 200 달러, 500달러, 1,000 달러, 2,000달러, 3,500달러(최대 한 도)를 낼 수 있다. △후원 문의: 914-447-5185, 347-495-4004 △후원 방법: 개인 체크 또는 크레딧 카드 (개인 후원 한도 200~3,500달 러)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042226 by nyilbo - Iss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