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3, 2014
<제2723호> www.newyorkilbo.com
THE KOREAN NEW YORK DAILY
19세기 조선주재 美관리,“독도 한국령”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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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과 별도 서명식 갖는 방안 조율
19세기 중엽 조선에서 제작한 작자 미상의 해좌전도(海左全圖). 사진은 우산국을 표기한 부분.
위스콘신대학-밀워키캠퍼스 내 미국지리학회 도서관(AGSL)이 소장하고 있는 해좌전도. 1880 년대 중반 조선주재 미국공사관 대리공사를 지 낸 조지 C.포크가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시해 미 국지리학회(AGS)에 보고했다.
속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유씨는“포크 는 조선에 파견되기 전 6년 동안 미 해군 통신장교로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아시 아 분함대가 타국 영해를 항해할 때 해 당국 국기를 군함에 게양하는 일을 감독 하는 직무도 맡았다” 며“어느 섬이 한국 영토이고 어디부터가 한국 영해였는지 를 잘 알고 있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 는“일본 정부는 17세기 에도막부(江戶 幕府)가 강치 포획권을 인정하면서 독
재정적 문제로 후속병력 증파 어려움”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사진)은 2일 미국의 국방예산 삼각으로 인해 한반도 유사시 후속병력을 증파하 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이날 미국 하 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만일
비
VA주지사‘동해병기法’서명 3월28일 원안 서명… 7월 발효
“美국방비 깍이면 한반도 유사시 곤경 주한미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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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오후 2시 기준(한국시각)
현재 위스콘신대학 미국지리학회 도서관에 보관 1880년대 중반 미 국무부가 조선에 파견한 해군 무관이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료가 나 왔다. 2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 면 1884년 5월 해군 무관으로 한국에 부 임, 1885년 1월부터 조선주재 미국공사 관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 (1856~1893)는 19세기 중엽 출간된 목판 지도‘해좌전도’(海左全圖)에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시해 미국지리학회 (AGS)에 보고했다. 현재 위스콘신대학-밀워키캠퍼스 내 미국지리학회 도서관(AGSL)이 소 장 중인 이 지도에는 원본에 해안선과 뱃길을 따라 푸른색 선이 덧칠해져 있으 며 독도(우산)와 울릉도가 2개의 연결된 원으로 묶여 있다. 포크는 이 아래 울릉 도의 영어 표기(Ul-lung to)를 적고 그 위에 일본에서는 마쓰시마(Matsu Shima, Jap)로 부른다고 설명을 붙여놓 았다. 포크가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대마도에 가필한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대마 도에 쓰시마(Tsushima)라고 적고 그 밑 에 한국에서는 대마도로 부른다 (Kor.Tamato)고 써놓았다. 이 지도의 존재 사실을 알려온 시카 고 거주 재야 사학자 유광언(72) 씨는 “포크가 독도에 대한 별도 설명을 달지 않은 이유는 독도를 울릉도에 부속된 섬 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 이라 고 추정했다. 해좌전도에는 신라 이사부 장군이 512년(지증왕 13년) 독도(우산국)를 복
2014년 4월 3일 목요일
제보·문의 대표전화 (718) 939-0900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있거나 위기 가 고조될 때 병력을 신속 배치하고 대 비태세를 갖춰야 하지만 재정적 문제로 인해 후속부대가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 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한반도는 아 프가니스탄에 이어 미군이 최우선 순위 를 두고 있는 전장이고 주한미군은 한반 도와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대비
조지 포크 중위 해군사관학교 재학시절.
도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주장하고 있 다” 며“이를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자료” 라고 강조했다. 포크는 1876년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나의 우려는 (유사시 증파될) 후속부대에 있다” 고지 적했다. 그는“현재의 재정적 한계와 그 에 따른 영향으로 인해 후속부대의 대비 태세가 제한적이며 일정표에 따라 병력 을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며 “예산감축이 계속된다면 우려가 더 커 질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김정 은 정권은 위험스러우며 한국을 사전경 고없이 타격할 수 있다” 며“북한은 세계 4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무 장지대(DMZ) 인근에 지상군 병력의 70%를 배치하고 있다” 고 말했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특히“북한의
하고 1877년 일본에 파견됐다. 그는 한 미우호통상조약 발효 한달만인 1882년 6 월 동료 장교 두 명과 함께 러시아와 유 럽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산 과 원산 들렀으며 스스로를‘한국 최초 의 미국인 관광객’ 으로 자부했다. 이들 의 여행기는 1883년 미국정부 간행물로 출간, 미국에 한국을 소개한 최초의 출 판물이 됐다. 포크는 1883년 9월 조선의 첫 방미 사 절단인 보빙사(報聘使) 일행의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1884년 조선주재 해군 무관에 임명됐고 초대 주한 미국공사 루 시어스 푸트가 1885년 1월 돌연 사임한 뒤 대리공사에 올랐다. 포크가 약 3년간 조선에 주재하는 동안 주요 지방을 시찰 하면서 수집한 다양한 자료와 사진들이 현재 미국에 남아있다. 특히 당시 그가 입수, AGSL가 보관 중인 1861년판 희 귀 대동여지도 전도는 지난 2009년 연합 뉴스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가 주의회 관문을 통과한‘동해병기법안’ 에 이미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2일 워싱턴DC 외교 소식통과 동해 병기 운동을 주도해온‘미주 한인의 목 소리’(VoKA) 등에 따르면 매콜리프 주지사는 지난달 28일 해당 법안에 원 안 그대로 서명했다. 버지니아 주내 모 든 공립학교 교과서에‘동해’(East Sea)와‘일본해’ (Sea of Japan)를 함 께 적도록 하는 내용의 이 법안(SB 2)은 우여곡절 끝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 다. 법안은 오는 7월 1일부터 발효해 미 국의 새 학기가 시작되는 2015학년도부 터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 와 일본해가 함께 적히고 학생들도 동 해라는 명칭을 배우게 된다. 주의회도 지난달 30일자로 법안이 “주지사에 의해 승인됐다(approved)” 고 공시했다. 이 법안이 의회에서 심의될 때부터 방해 공작을 펴왔다는 의혹을 받았던 매콜리프 주지사는 발의자인 같은 당 소속 데이브 마스덴 상원의원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다른 여러 법안과 함께 서 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그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
나마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수 정안을 내지 않은 것은 다행” 이라고 말 했다. 매콜리프 주지사 측은 서명 이후 한인단체 등과 별도 서명 행사 일정 등 을 조율하고 있다. 피터 김 회장은“주지사 측이 버지니 아주 애넌데일의 한인 타운에 직접 방 문해 이 법안에 서명하는 행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와 날짜와 시간,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TX 軍기지 또 무차별총격… 4명 사망·14명 부상
장사정포는 2천300만명의 한국인과 약 5 만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는 서울 등 도 심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고 강조 했다.
지난 2009년 미군 기지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13명이 숨진 텍사스 주의 포트 후드 기지에서 2일 또다시 무 차별 총격 사건이 발생해 4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했다. CBS방송 등에 따르면 사건 용의자 는 34세 장병 이반 로페즈이며 총기 난 사 후 자살했다. 총격은 동료 병사와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육군 제1기병사단과 보병 4사단 본부인 포트 후드 기지는 4만5천여명의 장병이 배속된 대형 기지다. 기지에서 일하는 민간인도 8천900명에 달한다.
포트 후드에서는 2009년 11월 무슬림 인 정신과 군의관 니달 하산 소령이 총 기를 난사해 미군 장병 12명과 민간인 1 명 등 13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쳤다. 포 트 후드 총기난사 사건 이후 내부자 공 격에 대비한 훈련이 추가되는 등 미국 전역의 기지 내 보안 규정이 강화됐으 나 4년 5개월만에 같은 기지에서 또다시 무차별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9월에는 워싱턴DC의 해군복 합단지 내 사령부 건물에서 총기난사가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해 13명이 사망하 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