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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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NEW YORK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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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8일 토요일
안중근 의사 순국 116 주년 기념
안중근 의사 인품 닮아가는 민족을 꿈꾼다… 그의 지도자상이 절실한 오늘
뉴욕일보 시론 ◆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인품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지도자 적 자질은 지금 우리 민족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 자양분이라 믿는 다. 2024년 12월 3일 내란 이후 당 시 최고 권력자와 그의 부인이 정 신 파탄 수준의 인물이었음이 재 판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정신과 성품, 그 열매인 지 도력을 새기고 따르는 풍토가 만 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민족 공 동체에 희망이 있다. 안중근 의사의 성품을 다섯 개 이길주 박사 의 H 단어로 요약한다. Honor(자 <역사학자,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긍심), Humanism(인간 사랑), Honesty(솔직, 진솔), Harmony(조화), 그리고 Hope(희망)이다. ◆ HONOR(자긍심) 왜 Honor(자긍심)이 먼저인가? 일반적으로‘Honor’하면‘영 광’ ‘존경’ 으로 번역하지만, 라틴 어 어원에는‘Dignity’즉 자긍, 자부심이 포함되어 있다. 당당함 이라 해도 된다. 자긍심, 당당함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귀 하게 느껴지는 다른 사람에게 의 존하고 복종한다. 굴종과 노예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를 저격해 살해한 자기 행동에 대 해 당당했다. 체포되면서“코레아 우레(대한 만세)” 를 외쳤다. 한민 족이 얼마나 당당한가 보였다. 너 희들도 그렇게 되라는 후대들을 위한 메시지로도 들린다. 일본을 침략군으로, 자신은 이 침략군에 대해 저항하는 독립군 사령관으로 파악했으니, 적의 수장을 처단한 것은 당당하고 당연한 군사 행동 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체포, 투옥된 후 일본 헌병대의 조사 과정에서 이 토가 저지른 죄악 열다섯 개를 명 시했다. 목숨을 구걸할 요량이면 그렇게 당당할 수는 없다. 안중근 의사가 당당하게 죽음 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 안중근 의사의 당당함을 대변하는 유묵. 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가 영향 ‘爲國獻身 軍人本分 (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 을 주었다는 평가가 있다. 상당한 의 본분이란 뜻이다) 논란이 있는 이슈다. 다음이 조마 리아 (조성녀) 여사가 죽음을 앞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 둔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의 저 죽는 걸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내용으로 전해진다.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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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오후 12시 기준(한국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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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수의, 흰 우리 옷을 입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안중근 의사의 모 습
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 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다. 네가 항소를 한다 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 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이 편지의 사실 여부는 논쟁 중이 다. 실제로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 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로서 살인 죄를 지었으니, 현세의 죄를 죽음 으로 받아들이라고 아들에게 말했 다는 주장도 있다. 어머니가 신앙 적 차원에서 아들에게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죽으라 명령했다는 해 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나라와 민 족을 위해서든, 아니면 죄를 씻기 위함이던 어머니가 아들에게 당당 하게 죽으라 한 것은 맞다. 결과적 으로 안중근 의사는 생을 구걸하 지 않았다.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 다. ◆ HUMANISM(인간사랑) 안중근 의사의 지나친 생명 존 중 사상이 독립 투쟁에 타격을 입 혔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잘 알 려진 대로‘신아산 전투’ 에서 승 리한 뒤 안중근 의사는 일본군 포
로들을 죽이지 않았다. 안중근 의 사의 사람을 귀중히 여겨 함부로 다루지 않는 그의 휴머니즘을 말 해준다. 1908년 6월‘대한의군(大韓義 軍) 참모중장(사령관)’안중근 의 사가 이끄는 의병부대가 함경북도 경흥과 신아산 부근에 주둔 중인 일본군을 공격했다. 다수의 일본 군을 사살하고 10명 가까운 일본 군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안중근 의사는 포로들을 처형 하지 않았다. 국제법상 스파이가 아니면 포로, 더욱이 부상당한 포 로는 죽이지 않는다. 이 결정으로 안중근 의사는 혹독한 대가를 치 러야 했다. 의병 간의 갈등이 커졌 고, 일부는 결국 부대를 이탈했다. 더욱이 석방 포로들을 통해 의병 부대의 위치가 노출됐고, 일본군 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곧 안중근 부대는 해체됐다. 결과만 보면 판단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 의 사고 체계를 짚어봐야 한다. 그 는 일본과 전쟁을 벌인다고 믿었 다. 전쟁에 나선 군대는 국제적 합 의를 준수해야 그 군대의 행위가 합법성을 갖는다. 안중근 의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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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이 일본 정규군과 다르지 않 다고 믿었다. 독립군을 불량한 비 적, 마적, 폭도로 간주한 일제에 대항하는 뜻이 있었다. ◆ HONESTY(진솔) 감옥에서 헌병 간수가 안중근 의사의 인품에 매료되어 그를 숭 상하는 삶을 살았다. 일본인에게 이런 수준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 던 근거는 안중근 의사의 진솔하 고 겸손한 인품이라는 평가가 있 다. 안중근 의사는 거사 후 체포되 어 약 5개월 영어의 생활을 했다. 거의 매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 으니 큰 고통이었고, 신체적 폭력 이 가해졌을 것은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의 옥중 생 활에는 고매한 이미지가 있다. 안 중근 의사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마저 든다. 안중근 의사가 체포되고 일본 헌병대에 넘겨진 후 러시아계 언 론은 안 의사가 일본 총영사관 심 문관에게 한 선언을 비중 있게 다 루었다.“죽음이 두렵지 않다. 당 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는 죽으면서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 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 다” 라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유추해 보면 일본 헌병들은 안 중근 의사의 솔직담백한 모습에서 동양의 인문적 소양의 진수를 발 견했다고 할 수 있다. 황제에게 조 언하는 일본 정부의 최고 지도자 를 암살해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 근 의사의 옥중 자서전 또 동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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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론을 쓰도록 배려한 사실은 안 중근 의사가 그를 감시하는 이들 마저 감동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爲國獻 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이 있다.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 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라는 뜻 이다. 이는 한때 안중근 의사를 저 주해 그를 죽이려 했던 일본 헌병 치바 도시치(千葉十四)에게 써준 마지막 유묵이다. 의병으로 할 일 을 했을 뿐이란 간단명료하고 담 백한 안중근 의사의 진면목이 이 여덟 자에 담겨있다. 치바 도시치 는 일본으로 돌아가 이 글을 새겨 안중근 숭모를 위해 기념비를 세 웠다. ◆ HARMONY(조화) 성서에 이런 표현이 있다.“스 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 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 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태복 음 12장 25절)” 남북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1858년 나중에 미국 제16대 대통 령이 되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 주 인용한 예시적 표현이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첨예한 남북 간의 대결 구도를 정리한 미국은 그 후 세계적 지도자 국가로 부상한다. 안중근 의사의 민족 화해 호소 는“동양 평화론 제2장 전감” 에잘 나타난다. 안중근 의사는 청일전 쟁(1894년 7월에서 1895년 4월까 지)에서 일본이 승리한 원인을 하 나 된 일본의 민족성에서 찾았다. ▶2면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