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내한하는 관록의 살아 있는 역사인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릅니다.
6월 14일은 클라우스 메켈레와 함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공연으로 채워집니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과 <어미 거위 모음곡>, 그리고 특별히 롯데콘서트홀의
웅장한 리거 오르간의 풍성한 음색과 함께하는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으로
잊지 못할 황홀한 순간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6월 15일에는 프랑스 음악의 정수를 담은 레퍼토리인 불레즈의 <7대의 금관 악기를
위한 ‘이니셜’>과 찬란한 관현악 색채의 진수를 들려줄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연주됩니다. 또한 이 시대가 낳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4번>으로 관객 여러분들과 만납니다. 경이로운 두 아티스트,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피아니스트 임윤찬 그리고 이들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 아름다운 낭만주의 음악의 극치를 관객 여러분들께 선물하고자 합니다.
1부
2부
PROGRAM
6. 14 (SAT) 5PM
지휘ᅵ클라우스 메켈레 Klaus Mäkelä, Conductor 오케스트라ᅵ파리 오케스트라 - 필하모니 Orchestre de Paris - Philharmonie
라벨 쿠프랭의 무덤, M. 68
M. RAVEL Le Tombeau de Couperin, M. 68 Ⅰ. 전주곡. 활기차고 생기있게ᅵPrelude. Vif Ⅱ. 포를란. 조금 빠르게ᅵForlane. Allegretto Ⅲ. 미뉴에트. 적당한 속도로 빠르게ᅵMenuet. Allegro moderato Ⅳ. 리고동. 충분히 생동감 넘치게ᅵRigaudon. Assez vif
라벨 어미 거위 모음곡, M. 60 16’00”
M. RAVEL Ma Mère l‘Oye, M. 60
Ⅰ. 숲속 공주의 파반. 느리게ᅵPavane de la Belle au bois dormant. Lent Ⅱ. 작은 엄지. 매우 보통 빠르기로ᅵPetit Poucet. Très modéré Ⅲ. 파고다의 여제 레데로네트. 행진곡 리듬으로ᅵLaideronnette, Impératrice des pagodes. Mouvement de marche Ⅳ. 미녀와 야수의 만남. 매우 보통 빠르기의 왈츠 리듬으로ᅵLes entretiens de la Belle et de la Bête. Mouvement de valse modéré Ⅴ. 요정의 정원. 느리고 장엄하게ᅵLe jardin féerique. Lent et grave
INTERMISSION
생상스 교향곡 제3번 c단조, Op. 78 ‘오르간’ 33’00”
C. SAINT-SAËNS Symphony No. 3 in c minor, Op. 78 ‘Organ’
지휘ᅵ클라우스 메켈레 Klaus Mäkelä, Conductor 피아노ᅵ임윤찬 Yunchan Lim, Piano
오케스트라ᅵ파리 오케스트라 - 필하모니 Orchestre de Paris - Philharmonie
P. BOULEZ ‘Initiale’ pour septuor de cuivres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단조, Op. 40 (피아노ㅣ임윤찬) 24’00”
S. RACHMANINOV Concerto for Piano No. 4 in g minor, Op. 40
Ⅰ. 빠르고 생기있게ᅵAllegro vivace(alla breve) Ⅱ. 아주 느리게ᅵLargo
Ⅲ. 빠르고 생기있게ᅵAllegro vivace
INTERMISSION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Op. 14 55’00”
H.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p. 14
Ⅰ. 꿈 - 열정.ᅵRêveries – Passions. Largo – Allegro agitato e appassionato assai – Religiosamente Ⅱ. 무도회.ᅵUn bal. Valse. Allegro non troppo Ⅲ. 전원의 풍경.ᅵScène aux champs. Adagio Ⅳ. 단두대로의 행진.ᅵMarche au supplice. Allegretto non troppo Ⅴ. 악마들의 밤과 꿈.ᅵSonge d’une nuit de sabbat. Larghetto – Allegro
6. 14 (SAT) 5PM
라벨ㅣ쿠프랭의 무덤, M. 68
M. RAVELㅣLe Tombeau de Couperin, M. 68
19세기 프랑스 음악에는 거센 변화의 바람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혁명으로 밀려난 프랑스 궁정 음악의 빈자리는 독일-오스트리 아의 고전으로 빠르게 채워져 갔다. 그러다 동구권 출신인 쇼팽과 리스트가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이
프랑스 음악으로 인식되었고,
대해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시민혁명 이전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추구했던 정신과 음악적 지향점에
라벨(1875-1937)은 이러한
바로크 음악의 모델은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68-1733)이었다. 쿠프랭은 당대
음악사에 중요한 건반 작품집을 다수 남긴 작 곡가로, 피아노를 연주했던 라벨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이었다. 라벨은 쿠프랭이 살던 시대의 전형적 춤 모음곡 양식을 모방 하여 여섯 악장의 모음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1914년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이듬해에 제1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어 작곡을 중단해야 했고, 1917년에 제대하고 나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곡에 <쿠프랭의 무덤>이라 는 제목을 붙였다.
음악 작품의 제목으로서 ‘무덤’은 세상을 떠난 작곡가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추모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보면 쿠프랭에 대한 헌사지만, 라벨에게 ‘무덤’이라는 제목은 쿠프랭에 한정되지 않았다. 라벨은 각 악장에 전사한 친구들의 이 름을 적어놓아 그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겹쳐놓았다. 그리고 이면에는 그 와중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있 었을 것이다.
본래 <쿠프랭의 무덤>은 여섯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1919년에 네 악장을 골라 순서를 재구성하여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관현악 편곡에서는 유독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의 활약이 두드러져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1악장 ‘전주곡’은 음들이 매우 빠 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진행하며, 새로운 생명이 움트듯 생동감이 가득하다. 2악장 ‘포를란’은 이탈리아 북부의 춤곡으로, 6박자 에 붓점 리듬이 특징이다. 귀여우면서도 독특한 화음이 요염하기까지 하다. 3악장 ‘미뉴에트’는 3박자에 맞춰 단아하게 진행하 며, 비교적 조용한 중간 부분은 잠시 환상의 세계를 방문한다. 4악장 ‘리고동’은 프랑스 남부의 춤곡으로, 빠른 속도감과 함께 톡 톡 튀는 스타카토에서 남다른 생기가 느껴지며, 중간 부분에서 잠시 긴장을 놓았다가 다시 돌아온다.
라벨ㅣ어미 거위 모음곡, M. 60
M. RAVELㅣMa Mère l‘Oye, M. 60
많은 예술 분야가 그렇듯, 클래식 음악도 주로 성인을 위한 예술이었다. 음악을 만들고 향유했던 작곡가, 연주자, 기획자, 후원자, 관객은 거의 모두 성인이었고, 그들에 의해 음악 시장이 지탱되어왔다. 그렇기에 어린이를 위한 음악은 연주회보다는 주로 교육 용이나 혹은 개인적 이유로 작곡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낭만의 시대에 들어서 어린이를 위한 음악이 공개적인 연주회 용 작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슈만은 피아노곡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 68>(1848) 중 1부를 자신의 어린 세 딸이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했고, 차이콥스키는 어린 조카를 위해 슈만과 같은 제목의 피아노곡 <Op.39>(1878)을 만들었다. 훔퍼딩크는 오 페라 <헨젤과 그레텔>(1893)을 작곡하면서 어린이 관객을 염두에 두었으며, 드뷔시는 피아노곡 <어린이 차지>(1906-08)를 1906년에 태어난 자신의 어린 딸에게 헌정했다. 이후에도 여러 작곡가들이 오페라, 발레, 음악극 등
모리스 라벨도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그는 피아노 연탄곡 <어미 거위>(1910)와 오페라 <어린이와 주문(呪文)>(1925) 두 곡의 어린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이중 오늘 연주되는 <어미 거위>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작은 엄지’, ‘초록뱀’, ‘미녀와 야수’, ‘요정의 정원’ 등 동화를 모티브로 구성된 다섯 악장의 모음곡이다. 이 곡은 폴란드의 조각가 시프리앙 고데프스키의 여섯 살과 일곱 살의 두 자녀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10대 초반의 두 어린이 잔 를뢰와 주느비에브 뒤로니가 초연했다. 그런 만큼 어린 이의 순수한 감성에 초점을 맞췄으며, ‘아동의 시적 세계’의 표현을 목표로 했다.
이 곡은 1910년에 자크 샤를로에 의해 독주곡으로 편곡되었고(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그의 이름을 <쿠프랭의 무덤 > 1악장의 헌정자로 올렸다.), 라벨은 1911년에 연주회용과 발레용 두 버전의 관현악 버전을 만들었다. 연주회 버전은 원곡의 순 서에 따른 모음곡이지만, 발레 버전은 악장의 순서를 바꾸고 전주곡과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물레 장면, 그리고 네 곡의 간주곡 을 추가하고 연결하여 더욱 확장되었다. 오늘은 연주회용 모음곡이 연주된다.
각 악장은 동화 전체를 서술하기보다는 한 장면들을 특징적으로 표현한다. 1악장 ‘숲속 공주의 파반’은 공주가 살았던 오래전을 회상하듯 향수 어린 분위기로 시작하고, 2악장 ‘작은 엄지’에서는 신비로운 현악기의 흐름 위에서 목관악기의 선율이 고음역대에 서 연주된다. 구불구불한 두 선율의 중첩은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3악장 ‘파고다의 여제 레데로네트’에서는 부드러운 화음 위에 서 목관악기가 중국풍 선율을 연주하고, 4악장 ‘미녀와 야수의 만남’에서는 가벼운 왈츠가 우아하게 펼쳐진다. 마지막 5악장 ‘요 정의 정원’은 아름답고 감상적인 화음으로 마무리한다.
6. 14 (SAT) 5PM
생상스ㅣ교향곡 제3번 c단조, Op. 78
‘오르간’
C. SAINT-SAËNSㅣSymphony No. 3 in c minor, Op. 78 ‘Organ’
라벨보다 40세 연상인 카미유 생상스(1835-1921)는 앞서 언급한 19세기 음악계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며 프랑스 음악계를 이
끌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목록에는 이러한 변화와 고민이 아로새겨져
초기에 작곡한 네 곡의 교향곡은 고전에 대한 열망 을 향해 있으며, 이후에 작곡된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2~4번)은
후예임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전작 이후 27 년 만에 작곡한 교향곡인 <교향곡 3번 ‘오르간’>(1886)에서는 특별한 메시지가 읽힌다. 독일-오스트리아의 음악과 거리를 두고 낭만주의에 몰두하던 그는, 이즈음 이 둘의 화해를 통해 프랑스
길을 탐색하고 있었다. 직전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1 번>(1885)에서 네 악장의
순환구조를 구현함으로써 탐색의 범위를 더욱 넓혔다. 이외 에도 3관의 대규모 편성과 상당한 타악기, 두 명의 피아니스트, 압도적 오르간 등 리스트의 영향이 보이는 과장된 규모로 낭만성 을 극대화했으며, 피아노의 기교와 대편성 관현악의 화려한 음색, 오르간의 종교적 압도감으로 생상스 자신의 존재를 한껏 드러 낸다. 생상스가 이 곡에서 이렇게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종합한 것은 그만큼 이 곡을 중요하게 여겨 혼신의 힘을 쏟았기 때문이 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곡에서 했다. 이 곡에서 얻어진 성취는 또다시 해낼 수 없을 것이다.”
1악장은 조용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짧은 서주로 시작하며, 곧 바이올린이 ‘진노의 날’ 주제를 작게 연주한다. 이 주제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느린 후반부에서 오르간은 조용히 화음을 연주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현악을 중심으로 이른 밤의 녹턴 분위기를 만들며 차분하게 진행한다.
2악장의 첫 부분은 스케르초로, 한밤의 축제가 벌어지듯 어둡고 격렬한 주제로 시작한다. 스케르초의 중간 부분은 밝은 분위기 로 대조되며, 목관 앙상블의 유희와 피아노의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이다.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 축제가 절정에 이르고, 곧 고요한 새벽과 같은 연결구로 이어진다. 그러다 존재를 감추고 있던 오르간이 강렬한 햇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폭발적인 화음으 로 피날레의 시작을 알리고, 현악이 힘차고 중후한 성가풍의 주제를 푸가로 제시한다. 대조적인 극적 진행 후, 승리에 도취된 화 려한 코다로 마친다.
PROGRAM NOTE
6. 15 (SUN) 5PM
불레즈ㅣ7대의 금관악기를
위한 ‘이니셜’
P. BOULEZㅣ‘Initiale’ pour septuor de cuivres
총렬음악, 알레아 음악, 라이브 전자음악... 피에르 불레즈(1925-2016)의 음악은 20세기 현대음악의 흐름과 맞닿아있기에 그
의 이름 없이 음악사를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오선보에 깔끔하게 기록된 적지 않은 작품들이 역사적 작품
들의 그늘에 가려있지 않나 싶다. 오늘 음악회의 문을 여는 금관 칠중주곡
rev. 2010)은 그중 하나로,
반 복과 변형, 대위적 진행, 리듬의 교차 등 전통적인 방법으로 작곡되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조성에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함에 기대는
성가와 같은 느린
등 여러 주제들이 연이어 빠르게 제시된다. 그리고 각 악기는 서로 엇갈리게 연주하며 빠르게 진동하는 음의 소용돌이를 만 든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짧은 주제들이 마지막에 다시 나타나는 첫 주제를 제외하고 또다시 재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써 객석에 있는 감상자를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거대한 원을 그리는 시간성에 가두고, 음악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초월적 영원성 의 최면을 건다.
이 곡에 편성된 일곱 개의 금관악기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그룹은 트럼펫, 호른, 트롬본으로 구성되고, 두 번째 그룹 에는 튜바가 추가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악기 배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극하며, 이에 따라 음향적 대비와 공간감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5분 정도의 짧은 작품이니, 부담 없이 음향의 질감과 공간감, 그리고 소리의 윤곽에 집중해서 들어보자. 빛나는 금 관의 아우라에 매료될 것이다.
6. 15 (SUN) 5PM
ㅣ피아노 협주곡 제4번 g단조, Op. 40
S. RACHMANINOVㅣConcerto for Piano No. 4 in g minor, Op. 40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협주곡에 속할 것 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 사랑은 오롯이 2번과 3번에 한정되어 있다. ‘Op. 1’인 1번은 젊은 시절의 당찬 도전이라고 하더라도, 완숙한 노작인 <피아노 협주곡 4번>(1926)이 외면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서 이 곡의 현대적 지향점과 감상자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낭만성이 서로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 곳곳에서 벌어지던 새로운 작곡 방식의
된 라흐마니노프는
연주에 매 진해야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유럽과 미국의 새로운 음악은 자주 접했다. 그렇게 접한 음악 중에는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재즈 도 있었다. ‘재즈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20년대 미국에서 거슈윈의 연주회에 참석했으며, 재즈 악단인 ‘폴 화이트먼 밴드’에 열 광했다. 이렇게 새로운 음악에 대한 현대음악의 수용과 재즈에 대한 전폭적인 관심은 네 번째 협주곡을 이전 작품들과 구분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현대적인 반음계와 재즈의 자유로움(특히 2악장!)이 깃든 네 번째 협주곡은 큰 비판을 받았다. 단조롭다, 효과적이지 않 다, 장황하고 지루하다, 짜임새가 느슨하다 등 <교향곡 제1번>(1895) 이후 가장 잔혹한 비평이었다. 다행히 젊은 시절에 겪었 던 트라우마가 재현되지는 않았다. 대신 1928년에 많은 부분을 삭제했고, 런던에서 먼저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성공하 지 못했고, 확신을 가지고 파리에서 출판한 악보도 철회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더 이상 이 곡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의 음악은 더욱 고전적이고 러시아적으로 역행했다. 그러다 <교향적 무곡>(1940)을 완성한 후 1941년에 세 번째 개정에 착수했 다. 초판에 비해 80%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 우리가 듣는 형태가 되었 고, 그의 생전에 마무리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오늘날 몇몇 연주자들이 1926년 초판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초판이 당시의 혹 평과 달리 형식적으로 탄탄하고 자연스럽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이 곡이 보다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다면, 이후의 작품 들이 더욱 현대적이고 재즈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그런만큼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으로서 매우 독보 적이며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베를리오즈ㅣ환상교향곡, Op. 14
H. BERLIOZㅣSymphonie Fantastique, Op. 14
‘낭만’이란 무엇일까? 20세기 초 저명한 음악학자인 파울 베커는 “환상의 세계, 즉 어떤 환영, 초자연적인 힘, 마법의 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코 프라이는 이야기의 중심이 ‘우리’에서 ‘나’로 옮겨진 것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모두 엑토르 베를리오즈(1803-69)의 <환상교향곡>(1830)이 진정한 낭만주의적 작품임을 말하고 있다. 작곡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 탕으로 환상의 세계를 그린 이 곡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진행하며, 그렇기에 시나리오에 따르는 ‘프로그램 음악’(혹은 ‘표제음 악’)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는 고전 양식을 바탕으로 한
되었다.
후 펼쳐지는 환상을 그린다. 작곡자는 서문에 각 악장에 대한 설명이 연주 전에 관객들에게 반드시 전달되어야 한다고 적었다.
이 곡에서 특별히 주목할 양식은 ‘고정관념’(idée fixe)이다. ‘고정관념’은 어떤 대상에 대입된 특정한 선율로, 그 대상이 시나리
오에 등장할 때마다 연주됨으로써 관객에게 말한다. <환상교향곡>에는 ‘예술가’가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고정관념을 적용했다. 신비롭고 우아한 선율이지만, 상태나 상황에 따라 분열되고 일그러지는 등 변형됨으로써 관객에게 말한다.
1악장 ‘꿈-열정’. 젊은 예술가는 자신이 꿈꾸던 모든 매력을 갖춘 이상적 여인을 보게 되고, 곧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서주가 끝나 면 앞서 단편으로 조금씩 제시되었던 여인의 고정관념이 바이올린으로 온전히 연주된다. 우울함이 기쁨으로, 이후에는 광란과 분 노, 질투, 그리고 따뜻함과 눈물, 위안 등 다양한 표정으로 변한다. 2악장 ‘무도회’. 예술가는 왈츠가 연주되는 떠들썩한 무도회에 와있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나 평화롭게 명상한다. 그때 짝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 그의 영혼을 혼란에 빠뜨린다. 3악장 ‘전원의 풍경’. 먼 곳에 있는 두 목동이 피리를 불며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예술가는 나무가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외로움에서 벗어나리라 꿈꾼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배신한다면? 하는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이고, 마음은 불길한 예감으로 물든 다. 다시 목동의 피리가 들리지만, 멀리서 천둥소리가 답한다. 그리고 고독과 정적만이 남는다.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예술가 는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편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죽지 않고 깊은 잠에 빠진다. 그는 꿈에서 여인을 죽인 대가 로 단두대로 끌려가는 자신의 처형을 목격한다. 단두대로의 행진 마지막에 고정관념이 등장하며 잠시 여인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5악장 ‘악마들의 밤과 꿈’. 예술가는 마녀의 축제이자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신음소리, 웃음소리, 외치는 소리 등 온갖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어렴풋이 고정관념의 선율이 들려온다. 여인이 추하게 변하여 마녀의 축제에 온 것이다. 어느덧 장례식 종 과 함께 ‘진노의 날’(Dies irae)이 들리고, 축제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두드리는 ‘콜 레뇨’(col legno) 연 주법으로 묘사하는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특히 눈길을 끈다. 그리고 ‘진노의 날’과 마녀들의
CONDUCTOR
Klaus Mäkelä
지휘ᅵ클라우스 메켈레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2020년부터 오슬로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2021년 9월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2027년 9월부터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그리고 같은 시즌에 시카고 심 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데카 클래식의 전속 아티스트로,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스트라 빈스키와 드뷔시의 발레작품인 <뤼스>를 녹음했으며, 오슬로 필하모닉과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 그리고 재닌 얀센과 함께 시벨리우스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발매했다.
메켈레는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네 번째 시즌에서 프랑스 작곡가들과 현대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라벨과 불레즈의 기념 일을 기리는 공연을 준비했다. 이 시즌에는 베를리오즈, 포레, 드뷔시, 풀랑, 메시앙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며, 티에리 에스카 이쉬의 ‘영원한 빛’과 샬럿 브레이의 ‘A Sky Too Small’ 등 새로운 작품들을 초연했다. 2015년에 개관한 필하모니 드 파리의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과 함께 BBC 프롬스, 루체른 페스티벌 등에서의 여름 공연, 유럽 전역의 초청 공연을 포함해 다양한 투 어를 성황리에 마쳤으며, 2025년 6월 아시아 투어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예술 파트너로서 메켈레는 이번 시즌에서 슈만 교향곡을 중심으로, 퓰리처상 수상 작곡가 엘렌 리드의 신작을 세계 초연하며, 이 작품을 미국 투어에서도 선보였다. 그는 전통있는 콘세르트헤바우의 크리스마스 마티네 를 세번이나 지휘했으며, 올해 5월에 열린 콘세르트헤바우 말러 페스티벌에서 말러 교향곡 1번과 8번을 지휘했다. 시카고 심 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내정자로서, 2025년 봄 심포니 홀에서 메켈레는 2주동안 말러 교향곡 3번과 다닐 트리포노프 협 연으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불레즈 ‘이니셜’, 드보르작 교향곡 7번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2024/25 시즌의 객원 지휘 일정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공연이 포함되었고, 또한 빈 필하 모닉과의 첫 공연 및 투어도 진행했다. 같은 시즌 그는 빈 무지크페라인의 포커스 아티스트이자, 에센 필하모니와 브뤼셀 보자 르의 초청 아티스트로도 활동했다.
첼리스트로서 메켈레는 오슬로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단원들과 함께 실내악 연주를 진행 하며, 매년 여름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다.
피아니스트ᅵ임윤찬 피아니스트 임윤찬(2004년생)은 2024년 10월,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인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Gramophone Music Awards 2024)’에서 [쇼팽: 에튀드] 음반(24년 4월 데카 레이블로 발매)으로 피아노 부문과 특별상인 ‘올해의 젊은 음악가’ 부문
“그의연주는마치꿈꾸는것같다.” - 뉴욕타임스“경이로운비르투오소이면서심오한해석을함께들려주는임윤찬은우리시대에 단한번나올수있는피아니스트가될잠재력을가지고있다.” - 더 뉴요커“전세계가그의손안에있다.” - 인터내셔널 피아노“백만분의일의재능” - 댈러스 모닝 뉴스 -
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두 부문 모두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최초 수상이다. 특히 피아노 부분 최종후보 세 음반 중에 두 음반 이 이례적으로 임윤찬의 음반이 선정되어 이 역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연이어 2024년 11월, 같은 [쇼팽: 에튀드] 음반으로 최고 권위의 프랑스 클래식 음반지 디아파종(Diapason)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디아파종 황금상’(Diapason d’Or de l’Annee) 어 워즈에서 ‘젊은 음악가’(Jeune Talent) 부문을 수상했다. 이듬해 2025년 4월,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BBC Music Magazine Awards 2025)’에서 임윤찬은 동일 음반 [쇼팽: 에튀드]로 ‘올해의 음반(Recording of the Year)’, ‘올해의 신인(Newcomer of the Year)’, ‘기악 부문상(Instrumental Award)’ 등 주요 3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단일 앨범이 이 세 부문을 모두 수상한
것은 2006년 시상식 창설 이래 처음이다. ‘올해의 신인’ 수상자가 동시에 ‘올해의 음반’까지 수상한 것 역시 사상 최초다. 이로써 임윤 찬은 첫 스튜디오 데뷔 앨범으로 유럽 클래식 음악계의 주요 음반 상 세 개를 석권하며 국제 무대에서 놀라운 예술적 성과를 이뤄냈다.
임윤찬은 2022년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만 18세), 신작 최고연주상, 그리고 청중상을 수 상하며 세계 무대에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그의 결선무대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22년 ‘올해의 공연’ 10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는 일찍이 2019년 당시 만 15세의 나이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 및 관객이 뽑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특별 상(청중상), 박성용영재특별상을 수상하며 대회 3관왕에 오른 바 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현재 세계 저명공연장과 최정상 오케스트라들의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 2022년 도쿄 산토리홀, 2023년 런던 위그모어홀 데뷔 리사이틀, 미하일 플레트네프 지휘로 도쿄필하모닉과 협연하였다. 이어 뉴욕 링컨센터에서 뉴욕 필 하모닉(제임스 개피건 지휘)과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해당공연의 리뷰가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되기도 하였다. 이후 루 체른 심포니(미하엘 잔데를링 지휘), Bravo! Vail 페스티벌에서 뉴욕 필하모닉(마린 알솝 지휘), LA 필하모닉(성시연 지휘)과 협연, 시카고 심포니(마린 알솝 지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정명훈 지휘), 뮌헨 필하모닉(정명훈 지휘), 보스턴 심포니(투간 소키예프 지휘), 파리 오케스트라(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BBC 프롬스에서 BBC심포 니(파보 예르비 지휘), LA 필하모닉(구스타보 두다멜 지휘), 내셔널 심포니(자나드레아 노세다 지휘), 로열 필하모닉(바실리 페트렌 코 지휘),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블라디미르 유롭스키 지휘)과 협연하였고, 베르비에 페스티벌, 라 로크 당테롱 피아노 페스티벌과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바우, 뉴욕 카네기홀, 파리 필하모니,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리 사이틀 등,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 서고 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2015년 만 11세의 나이로 금호문화재단의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2021년 리스트 <초절기교> 프로그 램으로 첫 전국투어
국가브랜드진행원에서 주최하는 2022국가브랜드컨퍼런스에서는 국제 사회에서 국가브랜드와 국가이미지를 빛낸 공로를 인정
받아 국가브랜드대상 예술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제25회 유네스코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어 수상하였다. 영국의 Classic FM이 2022년 3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30세 이하 라이징 스타 30인, 2023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 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Forbes 30 under 30 Asia 2023)’에 선정되었으며, 2023 문화예술발전유공 시상식에서 장관 표창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다.
2020년 KBS가 주관하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녹음에 참여하여 음반이 발매되었다. 2022년 11월,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발매된 광주시립교향악단(지휘 홍석원)과의 베토벤 ‘황제’ 공연 실황 앨범 [베토벤, 윤이상, 바버]는 발매되자마자 1만장 이상의 판 매고를 올리며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2023년 6월에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실황 연주를 담은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앨범이 발매되었고, 해당 음반은 뉴욕타임스의 2023년 최고의 클래식 음반(Best Classical Music Albums of 2023)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2024년 4월, 데카 레이블로 첫 스튜디오 앨범인 [쇼팽: 에튀드]가 발매되었으며, ‘트리플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되 었다. 이 음반으로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 2024’에서 피아노 부문과 올해의 젊은 음악가 부문을 수상, ‘올해의 디아파종 황금상’ 어 워즈에서 젊은 음악가 부문을 수상,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 2025’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신인, 기악 부문상(3개 부문)을 수 상했다. 오는 5월 16일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실황 앨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데카 클래 식 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이다.
임윤찬은 2020년 2월
ORCHESTRE DE PARIS –Philharmonie
파리 오케스트라 - 필하모니
1828년에 설립된 콘서바토리 콘서트 오케스트라를 연원으로 이를 계승해오고 있는 파리 오케스트라는, 1967년 11월 14일 샤
를 뮌슈의 지휘로 첫 연주회를 가졌다. 이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경, 다니엘 바렌보임, 세묜 비치코프, 크리스 토프 폰 도흐나니,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파보 예르비, 그리고 다니엘 하딩이 아홉 번째 음악 감독을 역임했다. 2021년 1월부터
클라우스 메켈레가 파리 오케스트라의 제10대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어, 6년동안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반세기 동안 거처를 옮겨 다니다가, 2015년 1월 필하모니 드 파리가 개관하면서 이곳의 수석 상주 단체로 임명됐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이 공간은 오케스트라의 프랑스 전통과 음색을 계승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로 평가받고 있 다. 2019년 1월, 파리 오케스트라는 이 문화 허브의 중심인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음으로써 새롭게 발돋움 하며 풍부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인 파리 오케스트라는 119명의 단원들과 함께 매 시즌 파리 필하모니에서의 정기 공연과 투어를 포함해 약 100회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프랑스 음악 전통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19세기와 20
세기 레퍼토리는 물론 현대 창작 음악을 알리는 면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주 작곡가 제도를 운영하여
다수의 작품 초연과 메시앙, 뒤티외, 불레즈와 같은 20세기 음악의 거장들을 조명하는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파리 오케스트라 - 필하모니 Orchestre de ParisPhilharmonie는 명실상부 프랑스를 대표하는 관현악
단이다. 1967년에 창설되었으니 파리에 근거를 둔 다른
악단,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L’Orchestre National de France(1934년 창단)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L’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1937년 창단)에 비해서 역사가 짧다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악단의 기
원은 19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탄생
1828년 3월 9일, 파리 음악원의 콘서트홀에서 프랑수아 앙투 안 아브네크 François Antoine Habeneck의 지휘로 신생 오 케스트라가 베토벤 ‘에로이카’ 교향곡과 로드의 바이올린 협주 곡 등을 연주했다.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 Orchestre de la Société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의 탄생이었다. 정 확한 명칭으로는 ‘파리 음악원 콘서트 협회 오케스트라’로, 파리 음악원을 모체로 음악원 원장이 단장을 겸하지만 음악원과는 다른 별개의 조직이었다. 오케스트라는 파리 음악원 교수진과
60명의 졸업생을 주축으로 필요한 경우 재학생도 일부 참여하 는 형태였으며, 협회에는 합창단도 있었다.
19세기 초는 교향곡과 오페라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현대적 인 의미의 오케스트라가 완성된 시기였다. 또 궁정악단이 아니 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오케스트라와 최초의 전 문 지휘자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 유럽 문화의 수도였던 파리에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오케스 트라가 탄생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파리 음악원 바이올 린 교수였던 아브네크는 최초의 직업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악단 의 조직을 갖추고 연주 관행을 확립했다. 멘델스존도 1835년 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취임하면 서 아브네크와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모범으로 삼았다. 피 에르 바이요 Pierre Baillot, 오귀스트 프랑숌 Auguste Franchomme, 장-루이 튈루 Jean-Louis Tulou 등 당대 최고의 프 랑스 연주자들이 모인 단원 구성도 화려했다.
근대 오케스트라의 선구
아브네크가 오케스트라를 창설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아 브네크는 1826년에 연주자를 모아서 만든 임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서 ‘에로이카’ 교향곡을 연주했는데, 작품에 감동한 연주 자들의 열의가 오케스트라 창설로 이어진 셈이다. 당시 프랑스 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생활 수준을 개선해서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생시모니즘이 큰 호응을 받았는데, 파리 음악원 오
케스트라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단원들이 운영과 프로그램 선
정에 직접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민주적인 체제를 갖추었
다. 1858년에는 60세가 되면 은퇴해서 연금을 받는 규정도 도
입했다. 이런 선구적인 구조와 운영 방식은 1967년에 오케스트
라가 해산될 때까지 근본적으로 유지되었다.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는 곧 프랑스 음악계의 중심으로 떠올
랐고, 명성이 전 유럽으로 퍼졌다. 특히 베토벤을 적극적으로 연
주하면서 그때까지 작곡가에 시큰둥했던 프랑스 청중으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바그너는 1839년에 이들이 연
주하는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듣고 작품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고 극찬했다. 아브네크와 후임자들은 베토벤 외에도 하이든, 모
차르트, 베버, 멘델스존도 적극적으로 연주했다. 보불전쟁 이후
프로그램이 프랑스 음악으로 기울었지만, 프랑스 못지않게 독
일 음악도 중시하는 경향은 지금까지 오케스트라의 정체성으 로 남았다. 협연자로는 멘델스존, 리스트, 쇼팽, 클라라 슈만 등
저명한 비르투오소가 무대에 올랐으며, 19세기 후반에 파들루
Pasdeloup 오케스트라, 라무뢰 Lamoureux 오케스트라, 콜론
Colonne 오케스트라 등 민간 오케스트라가 잇달아 등장해서 경
쟁을 펼쳤지만 프랑스 최고의 악단이라는 명성을 잃지 않았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오케스트라와 그 모체였던 파리 음악원 의 연계가 차츰 느슨해지고 악단의 독립적인 위상이 강해졌다.
1908년에는 음악원 출신이 아닌 앙드레 메사제 André Messager가 수석 지휘자에 취임했고, 역시 음악원 출신이 아니었
던 샤를 뮌슈 Charles Munch는 수석 지휘자(1938-46)와 협
회 감독을 겸임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나치스 독일
에 점령당하며 오케스트라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비밀
리에 레지스탕스를 지원했던 뮌슈는 강요받은 프로그램을 거절
하고 유대인 단원을 돕는 등 악단을 보호했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탄생
이렇게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는 1세기에 걸쳐 프랑스 음악계
를 이끌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60년대에 이르면 점 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음악원 출신의 프
랑스 국적자만 받아들이는 폐쇄적인 정체성, 시즌의 모든 연주
를 음악감독이 맡는 관행, 늘어나는 연주 여행이나 음반 녹음
을 감당하지 못하는 운영 방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재정 상
황도 나빠졌고, 앙드레 클뤼탕스 André Cluytens가 1960년
에 사임한 이후 수석 지휘자도 뽑지 못했다. 악단의 개혁을 요
구하는 의견이 높아지는 가운데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
레 말로 André Malraux가 프랑스 음악계의 현황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립했고, 실무를 주도했던 작곡가 마르셀 란도프스
키 Marcel Landowski는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립 오케스트라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결국 1967년 6
월에 오케스트라는 공식적으로 해산했고, 곧이어 ‘파리 오케스 트라’가 창단되었다. 파리 오케스트라 설립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기 존 음악원 오케스트라 단원 중 약 50명이 지명이나 오디션을 거쳐 신생 악단에 들어왔고 파리에 있는 다른 오케스트라 등 외 부 연주자들도 공개 오디션을 거쳐 합류했다. 특히 악장이 된 루 벤 요르다노프 Luben Yordanoff를 비롯한 외국인 연주자들 이 가세하면서 이제 악단은 국제적인 단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단원은 피고용인으로서 과거 음악원 오케스트라처럼 운영에 참 여하는 조합원 자격을 잃은 대신, 정부와 파리시의 감독과 지원 을 받으며 재정과 고용의 안정을 확보했다. 그러면서도 초대 대 표에 취임한 란도프스키의 도움으로 예술적 자율성을 유지하 며 현대음악을 강조하는 과감한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 있게 되 었다. 더 적극적으로 해외 연주 여행과 녹음 작업도 가능해졌다.
오케스트라를 이끈 첫 지휘자들
신생 파리 오케스트라의 첫 지휘자는 역시 샤를 뮌슈 외에는 생 각하기 힘들었다. 1946년에 객원 연주에 관한 이견으로 불편 한 상황에서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떠났던 뮌슈는 란도프스키 의 설득으로 취임을 승낙했고, 모든 단원 오디션을 주관하고 한 달 동안 매일 세 시간에 걸친 리허설을 지휘하는 등 짧은 시간 에 앙상블을 빚어냈다. 1967년 11월에 있었던 창단 연주회 전 후에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1번과 <환상 교향곡>을 들어보면 앙상블이 다소 거칠지만 신생 악단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다채
로운 음색과 강한 집중력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뮌
슈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서른두 번의 연주회를 가진 후 1968년
11월, 미국 연주 여행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뮌슈의 후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먼저 헤르베르트 폰 카
라얀이 ‘음악 고문’으로(1969-71), 이어서 게오르그 솔티가 음
악감독(1972-75)으로 재임했다.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두 사람
은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등장하는
등 신생 악단이 국제적 명성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 이상
의 흔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각각 베를린 필하모닉과 시카고 심
포니가 더 중요했고, 재임 기간도 짧았기 때문이다.
바렌보임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
파리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도약은 1975년에 서른세 살의 다니
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을 음악감독으로 맞으면서 시
작되었다. 바렌보임은 1989년까지 재임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연주력을 안정시켰다. 브루크너와 바그너 등 독일 음악
을 폭넓게 다루었으며, 불레즈, 베리오, 루토스와프스키, 헨체,
시니케 등 현대 작곡가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1976년에는
파리 오케스트라 합창단을 창단하고 피아니스트로서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 시리즈를 조직하는가 하면, 1982년에
샹젤리제 극장에서 장-피에르 포넬의 연출로 모차르트의 다폰
테 3부작을 무대에 올리는 등 오페라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세묜 비쉬코프 Semyon Bychkov는 재임 기간(1989-98)
중 러시아 음악에 큰 비중을 두면서 에릭 탕기와 필립 마누리
등 현대 작곡가의 신작도 여럿 초연했다. 샤틀레 극장에서 학
생을 위한 콘서트 시리즈를 개최하는 등 변화하는 사회에 적
응하려고 노력했으며, 더불어 오케스트라의 조직 구성이 개편
되면서 더 정교하고 전문적인 운영이 실현되었다.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Christoph Von Dohnányi가 잠시(1998-2000)
음악 고문을 맡은 뒤 부임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Christoph Eschenbach는 열 시즌(2000-2010) 동안 재임하며 악단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현대음악을 적극 연주했으며, 젊은 음악가
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데도 힘썼다. 한편 오케스트라는 베를리
오즈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00년부터 2003년에 걸쳐 작곡 가의 모든 작품을 연주하는 ‘베를리오즈 2003’ 프로젝트를 진 행해서 화제를 모았다. 1990년대부터는 뛰어난 객원 지휘자들 이 악단에 크게 기여했다. 피에르 불레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꾸준히 악단을 지휘했으며, 프란스 브뤼헨은 1995년에 처음 객 원 지휘한 이래 여러 번에 걸쳐 하이든과 모차르트 교향곡을 중 심으로 역사주의 해석을 소개했다.
필하모니 드 파리, 그리고 메켈레
파보 예르비 Paavo Järvi는 여섯 시즌(2010-2016) 동안 음 악감독으로 활동하며 프랑스 음악에 주력했는데, 오랫동안 완 공이 미루어졌던 필하모니 드 파리 Philharmonie de Paris가 2015년에 문을 열면서 드디어 오케스트라의 숙원이었던 연주 회장 문제가 해결되었다. 예르비와 오케스트라는 1월 14일 개 막 연주에서 얼마 전 있었던 샤를리 엡도 테러의 피해자를 추모 하며 포레 레퀴엠을 연주했다. 반면 다니엘 하딩 Daniel Harding(2016-2019)은 프로그램에 영국 레퍼토리를 더했고 슈만 과 말러 시리즈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세 시즌 만에 물러났다.
2020년 6월, 파리 오케스트라는 지휘계의 ‘앙팡테리블’인 클 라우스 메켈레 Klaus Mäkelä가 2021년에 10대 음악감독에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2019년에 파리 오케스트라와 필하모니 드 파리의 운영이 통합된 데 이어 젊은 음악감독을 영입하면서 악단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할 만하다. 첫 시즌에 살짝 유 보적이었던 프랑스 언론과 평론도 두 번째 시즌부터는 열광적 인 반응을 보냈으며, 루체른 페스티벌과 BBC 프롬스 연주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아시아 투어는 메켈레와 파리 오케스 트라의 네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는 피날레다. 드뷔시, 라벨, 포 레, 풀랑크, 메시앙, 불레즈 등 프랑스 음악과 현대음악에 집중 한 야심적인 프로그램과 다채로운 해석을 들려주며 이제 이들 의 결합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직접 확인할 수 있 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