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촌아트팩토리 VRR_ 경계, 일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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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촌아트팩토리 프로젝트VRR 사진/영상 장르_더나비프로젝트

경계,

일렁이다.

_더나비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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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는, 어쩌면 제국은 머릿속의 환영들로 이뤄 진 황도십이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칸은 마르코에게 물었다. “내가 상징을 모두 알게 되는 날, 그날엔 마침내 내가 내 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자 베네치아인이 대답했다. “폐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 게 되는 날에는 폐하 본인이 상징들 속의 상징이 되실 겁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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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_경계 일렁이다 ......................6 Part 1.소촌의 과거와 현재 _소촌, 시간의 경계에 서다....16 -소촌공단 관리사무소...........18 -호남제빙...............................26 -용아생가...............................34 -송호영당...............................46 Part 2. VRR 융복합 작가팀..54 _미디어X 관계와 욕망의 경계...............56 _샐러드 예술과 노동의 경계...............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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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Part 1. 소촌의 과거와 현재 -소촌, 시간의 경계에 서다. -소촌공단 관리사무소 -호남제빙 -용아 생가 -송호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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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일렁이다. 모든 것은 경계다. 경계에 관해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단어를 써나갔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중앙선, 유리문, 향수, 앨범, 외국어, 신분증, 학교, 텔 레비전, 십자가. 거기에 나와 당신의 이름을 덧붙였다. 이로써 경계가 생 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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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이름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에, 상상이 가능한 것과 존재가 불분명한 것에, 인식하는 모든 것을 둘러 싸고, 있다. 그것은 존재 사이에 있는 최소한의 거리, 넘어설 수 있으나 정복이 불가능한 선, 상대와 일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지점이다. 그러므 로 경계는 상상을 자극하는 욕망의 공간인 동시에 좌절을 경험하는 실험 실이다. 경계는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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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도 넘어설 수 없는 그곳에 서서, 한동안 너머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가 상대를 바라보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토록 열망했던 너머의 공간에서 어지럽게 흐트러진 자아의 공간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공간 한가운데에 서 서 주변을 돌아본다. 그것으로 나와 공간은 경계를 인식한다. 창문을 열어 너머를 바라본다. 다시 경계다. 거기에 당신이 서 있다. 당신은 서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경계’를 넘어서자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바라 보며, 끄덕인다. 바로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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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촌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두 달간 가상공간레지던스(Virtual Reality Residence_이하 VRR이라고 지칭)를 운영했다. 소촌아트팩토리 프로젝트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돼 광 주문화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유휴시설이 된 소촌공단의 관리사무소 를 문화공간으로 가꾸고, 소촌 농공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 및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미디어, 예술치유, 레지던스 사업 등을 운영한다. 그중 가상공간레지던 스(VRR)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는 가상공간에 과학과 예술의 융합 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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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하여 ‘꿈을 만드는 예술 공장’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시범적으로 운 영한 프로그램이다. 2015년 4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융복합 장르의 작가 두 팀_<미디어X>, <샐러드>가 가상공간에서 융복합 미디어 작업을 진행했고, 사진 영상장르 작가팀으로 선정된 <더나비프로젝트>가 이 두 팀의 작업을 기록하며, 앞으로 변화할 소촌의 과거와 현재를 담는 작업을 했다. 가상공간 그래픽 디자 이너 팀으로 선정된 <그라운드 제로>는 융복합장르 작가팀의 작품에 다양한 기 술과 상상력을 접목시켜 시각적 이해를 높이고 쌍방향 소통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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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R은 신뢰와 상상으로 만들어지는 공 간이었다. 마우스 클릭으로 열면 나타나 고, 닫으면 사라지는 유동적 공간이자 시차와 국경을 넘나는 초월적 공간이었 다. 가상공간에 초대된 사람들은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PC 혹은 휴대폰의 창 을 통해 만남을 이어 갔다. 현재의 공간 을 열어보이고, 각자의 속도로 말을 하 고, 익숙한 방식으로 표정을 지어 보였 다. 그것은 경계를 만들어내는 본능적 행위였으며, 관계의 시작이었다. 화면은 매순간 바뀌었고, 팽창과 축소를 반복했 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서, 경 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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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것은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일렁이는 경계’는 경계가 지닌 운동성, 경계의 관계를 상징한다. 더나비프로 젝트는 소촌이라는 실재의 공간과 VRR이라는 허구의 공 간에서 벌어지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과거의 번 영을 간직한 채 변화하는 소촌의 흔적을 따라 시간의 경계 에 서 보았다. <미디어X>의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설치를 통해 관계와 욕망의 경계에 접근을 시도했다. <샐러드>의 ‘빈 공간에서’ 시리즈에서는 작품에 드러난 예술과 노동의 경계를 바라보았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모험이다. 높이 떠 있는 좁은 다리 위 를 걷는 것과 같다. 위태롭지만, 그 위를 걷는 사람은 자신 과 타인의 일렁이는 경계를 볼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 는 모두 처음과 끝이 모호한 긴 서사시에 등장하는 파편임 을 깨닫게 된다. VRR 참여를 통해, 나는 경계를 보았다. 경 계의 이동과 확장, 재설치의 가능성을 보았으며, 동시에 한 계로써의 경계를 경험했다. 이야기는 그 한계에서 시작되 었다. VRR프로그램 기간 동안 도움을 주신 소촌아트팩토 리 프로젝트팀, 취재에 참여해 주신 <미디어 X>, <샐러드>, <그라운드 제로>, 자문해주신 (전)광주광산문화원장 류복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일렁이던 경계의 잔상에 손을 얹으며 -더나비프로젝트 편집자 / 타라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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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촌, 시간의 경계에 서다. 시간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바랜 흔적을 남길 뿐이다. 우리는 이 흔적을 통해 시간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시간의 경계를 찾아 길을 가다보 면, 별을 보러 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별은 '광년 (

)' 이라는 단위로

지구와 거리를 잰다. 광년이란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이동한 거리를 뜻 한다. 어젯밤 하늘에 빛났던 북극성(작은 곰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은 800 년 전의 빛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6


바랜 빛으로 남은 시간의 흔적은 별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자리에 있 다. 땅에서 태어난 별과 같다. 더나비프로젝트는 소촌의 과거와 현재의 흔적 을 찾아 시간의 경계에 서보았다. 소촌아트팩토리가 지어질 소촌공단 관리 사무소 건물을 중심으로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얼음공장_호남제빙, 애국 시인 용아 박용철 생가, 눌재 박상 선생과 사암 박순 선생을 모시고 있는 송 호영당에 다녀왔다. 변화를 앞둔 공간에서부터 점차 밀도가 높은 차원의 공 간_과거로 들어가는 여행이었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300년 전의 흔적을 찾아 보면서 '지금, 여기'는 허투로 만들어진 우연의 결과물이 아님을 깨닫 는다. 시간의 흐름, 자연의 조화, 인간의 삶이 만들어낸 '현장'이다. 층위의 시간을 경험하며, 과거를 간직한 채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를 고민해 본다. 그것으로 현재의 경계를 가늠해 본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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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촌공단 관리사무소 소촌공단에는 113개 업체가 입주해 2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입주 업체의 50% 이상이 영세업체이다. 공단이 조성된지 30년이 넘어 대부분의 건물과 시설은 낡고 허름해졌다. 여기에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문화공간이 들 어선다. 광주문화재단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소촌아트팩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 휴시설이 된 소촌공단 관리사무소와 컨테이너 27개를 묶어 문화공간을 조성 하는 사업이다. 컨테이너는 아시아문화전당 앞 광장에 있던 아시아문화마루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미디어, 예술치유, 레지던스 사업에 적극 활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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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촌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노후공간을 탈바꿈시켜 소촌농공단지의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거점공간을 조성한다. 소촌공단이 가진 장소적 가치와 컨 테이너의 독특한 공간적 특성을 살릴 예정다. 이를 위해 옛 전남도청 앞 아시아 문화마루로 사용되었던 컨테이너(2.9m×12.2m×2.4m) 27개와 현재는 유휴시 설이 된 3층 관리사무소(1438.41㎡)를 리모델링 한다. 관리사무소의 지하에서 는 참여자들이 연극이나 음악 밴드 활동을 할 수 있는 연습장으로 활용된다. 쌓 여있는 컨테이너와 지하의 어두운 공간은 정적이 감돌았다. 시간이 멈춘 채, 과 거의 기억과 공기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몇 개월 후면, 여기 에 사람들의 숨소리와 악기 소리, 웃음 소리와 땀 자국이 남을 것이다. 시간의 흔 적이 남을 것이다. 그 흔적이 우리 마음 속에 말할 수 없는 흔적, 상처, 기억을 치 유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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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비프로젝트는 ‘소촌아트팩토리’ 프로젝트 VRR에 참여하면서 리모델링 이전의 소촌공단 관리사무소 건물을 기록했다. 지은지 오래된 건물이라 내 부는 어두웠고, 인적이 뜸해서 그런지 공기마저 무거웠다.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회의실의 손잡이는 짝이 맞지 않고 닳 아 있었다. 무심코 바라본 창문 밖에는 나무와 공장, 저멀리 아파트가 보였 다. 공교롭게도 가로로 길쭉한 창문 왼쪽에는 푸른 나무가, 오른 쪽에는 사 각의 건물들이 층층히 보였다. 그때 바람이 불면서 나무가 흔들렸다. 푸른 잎사귀는 빛을 반사하며 창의 프레임을 넘나들었다. 해가 내려오며 길게 뻗 어 빛이 창을 투과했다. 관리사무소 건물을 빠져나와 공단을 걸었다. 휴일인 데도 먼 곳에서 기계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에서는 새가 지져귀고 있었다.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가까이에 자연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었다. 자연은 가장 처음의 것,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쁜 것보다는, 자연스럽 기를 소망해 본다. 앞으로 변화할 여기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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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백년 얼음을 만들어 온, 시간의 소리를 듣다. _호남제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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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의하면 1979년도에는 인구가 1260명이었다. 그때 충주 박씨가 35 호, 함양 박씨가 10호, 기타 192호에서 237호가 살았다고 한다. 소촌농공단 지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송정동, 도산동 일원의 공장들로 발생하는 공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공간이었다. 농경지와 야산 일대였던 농촌지역에 공업 및 서비스 산업을 유치하여 시가지 부적격 업체를 수용하고 도시환경을 증진하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단지를 설립, 운영하기는 쉽지 않았다. 중소 공장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영업 손실을 우려했던 것이다. 이후, 꾸준히 시설 을 확충하고, 정부지원을 통해 소촌농공단지로 변모했고, 연탄공장, 솥공장, 도정 공장, 제빙공장 등이 이전해와 번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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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간 호남제빙은 송정역에 있던 얼음공장이다. 66년에 설립되어 85년에 이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설립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 아이스크림을 저장해 서 대리점에 직접 납품하는 등 얼음창고를 운영했지만, 그 역할이 마트로 넘 어가면서 얼음창고를 운영하지 않고 얼음만 생산 납품하고 있다. 이야기를 들 려준 문재선 상무는 설립자의 손자이면서, 현재 호남재빙의 운영을 맡고 있 다. 호남 재빙의 역사를 묻자, 그의 아버지가 보관해 두었다는 빛바랜 액자를 옥상에서 찾아 보여준다. 그 액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창설자 문상 순 님 부부_1966년 5월 창설 당시 공장30평, 1966년 조선 냉동 제작 15대 냉동기, 1968년 사무실(26세), 1968년 공장전경, 1972년 안집 신축 입주 직 후, 1975년 냉방 24평 탁구장, 1974년 냉방 15평 증설, 1978년 냉방 10평 증설 1985년 소촌공단 신축 200평, 1991년 증설 직후. 다른 말이 필요 없었 다. 사진은 50년 간의 공장의 기계소리, 청년에서 아버지로의 삶, 퇴근 시간의 농담, 왁자한 회식분위기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사무실 밖에는 계속해 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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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곳에서, 떠나가는 배를 생각하다. _용아 박용철 생가 시인 용아 박용철(1904∼1938)은 일제 강점기에 잡지<시문학>을 발간하고 시 문학동인 6인과 함께 서정시 운동을 했던 애국 시인이다. 그가 나고 자랐던 생 가가 소촌로 46번길 24에 있다. 박용철은 충주 박씨 16대손이다. 아버지는 일 대의 지주였으며, 호남은행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박하준이다. 박용철에 게는 두 형과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가 어렸을 때 형이 모두 세상을 떠난다. 장 손이 된 그는 열여섯의 나이에 부모님이 정해준 여자 울산 김씨와 서둘러 결 혼을 한다. 그 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지하신문 ‘목탁’을 만들어 돌 리다가 경찰에 붙잡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부모님은 박용철을 일본으로 유학 보내고, 도쿄의 청산학원에서 수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후 편입하여 도쿄 외국어대학에 입학하며, 독일어를 공부하고 괴테, 하이네, 셸리 등의 작품을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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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김윤식과의 인연은 도쿄 청산대학에서 시 작된다. 영랑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당시 박용 철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영랑 이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데, 일본 학생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들은 이번에 전교 수석 을 한 어느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박용철이었다. 다음날, 윤식은 용철을 찾아가게 되고 이 둘은 금세 교감을 한다. 조국 의 슬픈 현실을 탄식하며 하이네와 괴테의 시를 읊고, 조국으로 돌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 색한다. 본래 수학을 전공했던 용철은 영랑의 권 유로 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동경 대지진 때문에 귀국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용아에게는, 한 번도 손을 잡아 본 적 없는 아내 울산 김씨가 있었다. 대를 이으 라는 부모님의 강력한 권고에도 이를 외면한다. 서울과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다른 세계를 보고 돌아온 그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지닌 울산 김씨 를 아내로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용아는 안 방에 드는 대신 대문간에 있는 사랑채에 머문다. 그리고 27세에 합의 이혼을 할 때까지 한 번도 아내의 손을 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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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여동생을 서울로 유학 보낸다. 여동생 박봉자는 광주에서 초 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서울로 가게 된다. 당시로 따지면, 여성에게는 매우 파격 적인 결정이었다. 남매는 서울에서 함께 하 숙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이 열병을 앓 게 되고 병원에 입원을 한다. 당시 이화여전 을 다니고 있던 박봉자의 한 학년 선배가 병 문안을 오는데, 용아는 그 처녀에게 푹 빠지 고 만다. 그녀의 이름은 임정희였다. 춘천이 고향으로, 서울로 유학을 와 있었다. 방학이 되자 임정희는 춘천으로 내려가면서, 배웅 을 나온 봉자와 용철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 를 한다. 용철은 그 초대에 응해 춘천에 가 게 되는데, 임정희가 방학이면 야학당을 차 려 농민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더욱 사랑 하게 된다. 그녀는 용철이 바라던 여성으로 새로운 세계를 알고, 자신의 지식을 나눌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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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용아는 당대의 시인들과 교류하며 임정희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시문학파를 결성하여 <시문학>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인지를 창간한다. 시 문학파는 용아를 포함해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이하윤, 변영로 6인으로 구성 되었으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반발하여 문학에서 정치색이 나 사상을 배제한 순수서정시 운동을 했다. 용아는 임정희와 결혼 후 투병 전 까지 한국 문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70여편의 시를 남겼고, 문학평론, 번 역, 희곡, 연출 등 다방면 활동을 이어간다. 그는 35세에 후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는데 막둥이의 돌도 보지 못한 채 요절한다. 이 듬해, 김영랑, 정지용, 이헌구, 함대훈, 김광섭 등이 편집한 박용철 전집 제1권 시집을 미망인 임정희가 발행한다. 이후 임정희는 용아 생가에서 20여년간 살 았으며 원불교에 귀의 했다고 한다. 소촌동에 위치한 용아 생가는 어두운 시대 에 뜨거운 삶을 살았던 시인 박용철의 삶과, 평생 사랑받지 못한 울산 김씨의 삶, 짧지만 영원한 사랑을 했던 임정희의 삶이 울림으로 남아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 서서, 떠나가는 배와 같은 자신의 처지를 노래했던 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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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 /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이 시는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되었다. 작자가 김영랑에게 보 낸 서신에 의하면 1929년 9월에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시 낭독은 소촌 취재 에 자문을 해주신 류복현 선생님과의 인터뷰 중에 이루어졌다. 그는 2003 년 ‘용아 박용철의 삶과 예술 평전’을 썼으며, 광남일보 편집국장, 광주광산 문화원장, 광주광산향토문화연구소장, 용아문학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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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랜 빛을 보며, 비를 맞다. -지명의 유래와 송호영당 광산 마을사에 의하면 소촌은 광산군 소지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 역 통폐합때 송정면 소촌리가 되었다가 지금의 소촌동이 되었다. 조선조 말 에 ‘솥머리’ 라고 불렀는데, 지형이 가마솥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그렇게 불 렀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솔머리라고도 불렀는데, 이 지역에 소나무가 워낙 많아서 소나무의 머리라는 뜻의 솔머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웃이 역촌이고 어등산 근방에 사찰이 많아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대장간의 일꾼들이 대거 살았는데, 사대부 집안인 충주 박씨가 여기에 정착하면서 장인촌의 뜻을 가 진 ' 다.

(바 소)'자가 발음이 같은 '

(소)'로 바뀌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

일 천년 전에는 청주 한씨가 터를 잡고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이 후에는 충주 박씨가 뿌리를 내려 집성촌을 이루었다. 충주 박씨의 선대는 개 성에 살았다고 한다. 조선 왕조 개국 후에는 서울에서 살았으나 난리를 피해 충청도의 공주와 회덕에 은거했다. 그 뒤, 충주 박씨10대손 박지흥이 처가인 광주의 서씨마을에 정착하면서 광주 사람이 된다. 그의 아들이 바로 눌재 박 상(1474-1530)이다. 눌재는 호남절의 인물로 연산군 7년(1501)에서 중종 24년(1529)까지 약 29년간 조정에 몸 담았다. 1948년 무오사화, 1504년 갑 자사화를 겪었으며 중종반정 이후 신씨복위 상소를 올려 좌천되었던 인물이 다. 조광조와 함께 을묘사화에 연루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중으로 화를 면하고, 충주목사, 나주목사 등을 거쳐 56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눌재의 차자 박 민중이 서창면 절골에서 소촌으로 분가 입주하면서 충주 박씨는 480년간 소 촌에서 번성하였다. 그의 아들이 사암 박순(1523~1589)인데 명종 8년에 과 거에 급제하여 선조 12년에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후손으로 여식을 하 나 두었는데, 벼슬 하직 후에는 포천에서 말년을 보냈다. 그는 시, 문장, 서예 에 뛰어났으며 사암문집을 남긴다. 그의 후손은 이 사암문집을 목판각으로 편찬했고, 1990년에 광주유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되어있다. 47


소촌동 송정공원로 74번지에는 눌재 박상과 사암 박순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송호영당이 있다. 1728년에 설립된 이 사당은 본래 눌재 박상의 출 생지인 절골마을에 있었으나 후에 소촌으로 옮겨왔다. 여기에는 눌재 박상 의 저서 눌재집과 사암 박순의 사암목판각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후손들이 광주시립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지금은 영정만 모셔져 있다. 취재를 간 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는 사선을 그으며 기와에 닿았다가 처마 끝으 로 수직낙하했다. 빗줄기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선을 보면서, 비가 쓸어내 는 흔적을 생각했다. 그 흔적은 바랜 빛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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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시는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창옥병 벼랑바위에 새겨진 사암의 시<제이양정벽>이다. 제이양정벽-정자의 벽에 쓰다 골짜기에는 새소리마저 때때로 들리고 침상은 적막하고 책들은 흩어져 있네. 가엾서라 백학대 앞을 흐르는 물이여. 이 산문을 나서면 바로 흙땅물이 되는 것을. -사암 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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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촌을 담다 동영상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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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융복합 장르 작가팀 미디어X-관계와 욕망의 경계 샐러드_예술과 노동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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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욕망의 경계 융복합 장르_미디어X (신도원, 펑크파마, 나사박, 문유미) 관계는 욕망을 수반한다. 반대로, 욕망은 관계를 통해 실현된다. 관계와 욕망 사이 에는 밀고 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에너지가 이동하면서 파동을 만들고, 이로써 경계에 틈이 생긴다. 그 틈 안에서, 힘의 세기와 움직임에 따라 한 쪽은 주도권을 갖게 된다. 정치다. 그러나 그 힘은 오래가지 않는다. 누구나 상대 보다 유리한 지점을 선점할 수는 있지만, 머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상에 불과 하다.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면의 욕망과 사회적 가면,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 집단과 집단은 관계와 욕망 사이에서 쉴 새 없이 힘겨루기를 한다. 움직임 은 틀 안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틀을 깨뜨리고, 그 곳을 벗어난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균형잡기’이다. 관계와 욕망은 아주 밑바닥에 ‘균형’에 대한 이상을 품는다. 균형의 모습과 방향은 모두 다르다. 각자가 정한 도형과 각도에 따라, 나아간다. 그것은 모두 같지도, 모두 다르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으로든 관계와 욕망 은 우리를 이끌고 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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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장르 작가팀<미디어X>는 가상공간레지던스(Virtual Reality Residence_이하 VRR이라고 지칭)에서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관계와 욕망이라는 공통 키워드로 해 석될 수 있으며, 각 장르는 독립적이면서도 구성원 간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다. 동시에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커뮤니티와 소통의 중요성, 인터렉티브를 강 조한다. 신도원, 펑크파마, 나사박, 문유미 4명으로 구성된 <미디어X>는 2011 년 ‘미디어X갤러리’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미디어X갤러리’는 신도원 작 가가 주축이 되어 대인시장에 문을 연 미디어 실험 갤러리로 전위적이고 개방 적인 미디어 아트를 전시, 기획, 개최, 후원했다. 바가지 바이펙스 13 뮤직비디 오 제작, 니나노난다 뮤직비디오 시사회, 소이치로의 사운드 아트세미나,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광주 국제퍼포먼스 세프시발 등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존재 를 드러냈다. 이후, 미디어X갤러리의 주축 멤버가 모여 <미디어X>팀을 결성한 다. <미디어X>는 ‘이동하는 갤러리’의 개념을 가지고 한정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 현장으로 들어간다. 설치와 퍼포먼스, 미디어를 결합한 융복합 예술을 선 보이고 아방가르드를 실천한다. 담론과 유희를 즐기되 이를 삶의 부유물로 두 지 않고, 예술의 깊이로 체현해 나가는 것이 <미디어X>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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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R에서 <미디어X>는 홍콩느와르를 재현한 뮤직비디오 ‘시간의 은유’, 액자를 사이에 두고 남녀가 펼치는 퍼포먼스 ‘타타타’, 탄성으로 연결된 큐브 안에 또 다른 큐브를 움직이며 완성하는 ‘큐브’를 선보인다. 이 작업들은 경계 안과 너머 를 현상적으로 보여주거나 상징으로 감추어 경계의 존재를 더욱 극화시킨다. 작 품의 오브제는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의 논리를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 부다. 시대, 커뮤니티, 개인의 관계와 욕망 속에서의 자아와 현실에 대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 작품이 그려내는 일렁이는 경계, 관계와 욕망 안으로 들 어가 본다.

미디어X 동영상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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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은유 -느와르 회귀의 시대, 사랑에 은닉하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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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Noir)는 ‘검은’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다. 1940~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이었으며, 1980년대 후반 범죄와 폭력세계를 다루며 국내에 큰 인기 를 모았던 홍콩 영화를 가리켜 ‘홍콩 느와르’라고 한다. <미디어X>가 선보인 ‘시간 의 은유’는 홍콩 느와르 형식을 차용한 뮤직 비디오다. 작품을 감독한 신도원 작 가는 현시대를 ‘느와르 회귀 시대’라고 말한다. 느와르는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탈 출구’를 의미한다. 서양에서 느와르 장르가 유행했던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였다. 나치, 파시스트, 군국주의 등 전체주의가 세계평화를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이 목숨을 앗아갔던 시대다. 느와르는 암울한 시대에 비인간적 억압 으로부터 해방을 뜻하며,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돌파구로 였다. 1980년대 ‘홍콩 느와르’가 한국에서 유행했던 이유도 당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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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은유’는 현재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느와르라는 형식을 차용하여 상징적 으로 보여준다. 뮤직 비디오 ‘시간의 은유’는 ‘사랑’을 테마로 한다. 이루어질 수 없 는 삼각관계 연인들을 빛과 연기가 만드는 몽환적인 화면에 담는다. 시대에 대한 반항으로 느와르라는 장르를 택하지만, 그 안에 대중적 코드를 넣어 은밀히 위장 한 것이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품은 감독이 의도하여 설정한 것이다. 시계, 어항, 총, 담배가 주요 소품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억압과 폭력의 시대를 상징한다. 베타(열대어)라는 물고기는 너무 화려하고 영역의식이 강해 다른 물고기와 함께 살 수 없는데, 고독한 현대인을 뜻한다. 신도원 작가는 ‘더나비프로젝트’에서 글과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타라재이)의 짧은 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필자가 일기처럼 남긴 페이스북의 글이었다. 시간과 삶,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글이었다. 그는 정식으로 대본을 요청해 왔다. 그 러나 필자가 디테일을 설정하는 것보다 감독에게 장면에 대한 상상과 느낌을 전달 하는 글이면 좋겠다고 판단하여 짧은 시를 완성했고, ‘시간의 은유’라는 제목을 붙 였다. 이후, 뮤직 비디오에 출연 제의를 받아 연기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미디어 X>의 멤버인 펑크파마, 문유미 작가가 출연하여 함께 삼각관계를 연기했다. 65


시간의 은유 동영상 보기 클릭

극 중에 여주인공은 남자를 죽이려고 한다. 사랑은 여자의 욕망이다. 여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 대상인 남자 때문에 존재가 흩어진 다고 믿는다. 여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부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끝내, 사랑 때문에 스스로 파멸하고 만다. 감독은 남녀가 서로의 시간 을 이동하는 장면을 통해 사랑을 묘사한다. 그는 사랑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 노트에서 그가 말하는 사랑과 시간에 대한 생각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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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은유는 송재영 작가의 글 “당신의 시간이 내게로 온다”라는 에서 시작되었다. 인생의 이야기들은 시간이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엄청난 파 장과 감동을 준다. 어떤 것은 추억으로 어떤 것은 후회로 또 어떤 것은 슬 픔으로 우리의 기억속에 남는다. 송재영 작가는 그녀의 글에서 시간이라 는 것을 개념으로 보고 접근한다. 삶이 초현실적이고 초월적인 공간임 을 인식한다. 시간을 할애하여 그를 혹은 그녀를 생각한다는 것은 사랑이 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본다. 생각이 곧 영혼이고 영혼 이 곧 그 사람이며 전생과 후생을 넘나드는 초현실적 개념을 글속에 내포 한다. 비디오에서는 그러한 인간적이지만 초현실적인 사랑의 경험을 극적 인 표현방식인 홍콩 느와르로 표현하려 하였다. 영혼과 허무 그리고 전생 과 후생의 개념을 포그를 활용하여 신비감있게 나타내었다. 만남과 인연이 라는 생명력있고 우연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영상제작에 힘썼다. 순 간적인 영상, 프레임과 프레임의 만남처럼 우리의 삶도 우연적인 것 같지 만 인연이란 시간의 긴 연속성 속에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그없 는 허무한 디지털이라는 기계로 우리의 인생과 시간을 비디오아트로 담아 본다

시간의 은유 /신도원 작가 노트 중에서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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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타 -경계에서 관계로, 너머를 욕망하다. .

타타타((Tathata)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다. 원시불 교에 의하면 무념, 무상을 뜻하고 대승불교에서는 현상의 차별상을 초월한 절 대의 세계를 말한다. 절대의 세계란, 언제나 변함 없는 진실한 세계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왜 ‘변함 없는 세계’와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였을까? 그들이 이 해한 ‘타타타’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본성, 태초의 세계라고 보았던 것일까? 나는 그것을 자연이라고 이해한다. 문유미, 펑크파마 작가는 ‘타타타’라는 제목처럼 있는 그대로, 날것의 느낌을 몸으로 전달한다. 정해진 시나리오나 계획 없이 오로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퍼포먼스를 펼친다. 앤티크 스타일의 고풍스런 액자를 이용한 퍼포먼스로, 오 브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기호로 해석될 수 있다. 필자는 액자를 경계 라고 인식하고 퍼포먼스를 두 파트로 나누어 보았다. 문유미 작가가 혼자 등장 해 경계를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파트와 그녀가 펑크파마 작가가 함께 관 계와 소통을 보여주는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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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파트에서, 그녀는 자욱이 퍼지는 연기 속 허공에 매달린 사각의 프레임을 탐구 한다. 양 팔을 대각선으로 뻗어 크기를 가늠하거나 몸의 일부를 프레임과 겹쳐 놓 는다. 허공을 유영하듯 유리면에 손을 뻗는다. 두 팔로 안과 밖을 동시에 점거한 다. 그녀는 입고 있던 검정 가죽 자켓을 벗어 액자의 왼쪽 모서리에 툭 걸친다. 액 자는 천천히 돌아간다.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을 바라본다. 다시 다가와 빨간 입 술을 유리면에 찍는다. 다섯 번의 키스를 마치고, 그녀는 립스틱 흔적을 이용해 무언가를 그리는가 싶더니, 이내 지워버린다. 문유미 작가는 이 퍼포먼스에서 액 자를 사물이 아닌 입체 공간 또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입체 공간으로써 액자는 안 과 밖이 존재하고, 팽창과 축소가 가능한 곳이다. 대상으로써 액자는 타인이다. 타인은 사랑하는 연인이거나, 프레임 안의 자신을 보는 관객 혹은 그녀가 바라보 는 프레임 속의 관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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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파트는 경계에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 유미, 펑크파마 작가는 액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다. 두 사람은 검무를 하는 무사처럼 보였다가, 사랑을 나누는 연인처럼 보였다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온 도시인으로도 보인다. 서로의 눈빛과 에너지를 읽으며 트렌스(무아의 경지) 상태에 빠져든다. 유리면을 사이에 두고 타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이로써 넘을 수 없는 경계를 인식한다. 두 사람은 경계를 밀어내며 팽팽하게 맞 선다. 360도로 회전하며 서로의 자리에 서본다. 유리 위에 상대의 모습을 붓으 로 그린다. 그 그림은 타인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관계와 거리가 만들어내는 현상을 그림 안에 투영한다. 두 사람의 선이 유리면 위에 겹쳐진다. 경계 너머 상대를 받아들인다. 액자는 다시 회전한다. 희미하게 퍼져있던 연기 가 바람을 타고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관계 안’에서 ‘경계 너머’로 욕망의 잔상 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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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의 투명한 막 사이로 얼굴을 마주한 그와 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나는 그가 아니고 그가 될 수도 없으며 그 또한 마찬가지. 그 막은 좁혀질 수 없는 나와 타인의 간극의 상징이다. 내 손 끝이 그려내는 막 뒤의 그의 얼굴은 내 마음의 풍경일 뿐. 그가 그려내는 나의 얼굴 또한 그의 마음의 풍경일 뿐. 그 풍경들은 대립하며 어울리며 우리들의 생에 이런 저런 무늬를 남긴다. 타타타/ 문유미 작가 노트

타타타 동영상 보기 클릭 72


이야기 한다 이야기 한다 작품/ 작업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말들이 사물화 되어 작품/작업에 이야기 한다 ...<중략> 사유의 방식을, 관점의 방식을 바꾸어 보면, 세계관도 새로이 달라지고, 새로운 작업/작품 세계가 열린다 그대가 그토록 원하던 언어의 방식을 바꾸어 본다 작업/작품이 말을 하게 한다 말/언어가 작품/작업을 보게 한다는 것 펑크파마 작가 노트 중에서 73


큐브 -개인과 커뮤니티의 경계에서 주체적 균형잡기

정육면체, 정육면체의 물건, 각설탕, 직사각형의 값싼 스테이크, 세제곱, 주사위, 섬광 전구 4개가 든 연속 촬영장치, 루빅 큐브, 정육면체로 만들 다, 네모로 자르다, 부피를 구하다, 세제곱하다, 스테이크용 고기 등을 바 둑판 무늬로 칼집을 내다. 큐브(Cube)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와 같다. 간단히 말해, 큐브는 동일한 사각형의 입체적 만남을 뜻한다. 큐브의 모서 리는 다른 면의 모서리와 닿아있거나, 면을 평행하게 마주보고 있다. 즉, 모두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커뮤니티와 닮아있다. 커뮤니티 는 개인의 삶이 모여 관계를 이루고, 공동의 삶 지향한다. 그런 면에서 큐 브는 관계이며, 하나의 세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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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X>에서 설치 디렉터를 맡고 있는 나사박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큐브를 다뤄왔다. 그가 VRR에서 선보인 설치작업은 스타킹을 이어 만든 복잡 다단한 큐브 속의 큐브다. 하나의 큐브에 여덟개의 모서리 끝을 각각 연결하고, 그 끈을 주변에 있는 벽과 천장, 바닥에 고정시킨다. 모서리 끝을 잡아당기면 스타킹의 탄성 때문에 큐브는 정육면체가 아닌 다양한 육면체로 변신한다. 나사박 작가는 큐브가 변화하는 과정에 관객을 끌어들인다. 4명 이상의 참여자가 있어야 큐브 가 움직인다. 이 큐브는 참여자 간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움직임의 빠르기와 방 향, 힘의 속도를 서로 조절해야 더욱 다양한 모양의 큐브가 탄생한다. 즉, 한쪽 이 당기면 다른 쪽은 풀어주어야 한다. 다른 쪽이 세면 반대 쪽은 쉬어주어야 한 다. 관계 안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유희를 생산한다. 필자는 이 작품 에 참여해 두 모서리를 당겨 보았다. 처음에는 너무 빨리 당겨서 상대가 당황했 고, 또 박자를 조절하지 못해 발이 어긋나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 참여한 퍼포머 나사박 작가, 문유미 작가, 강슬기 코디네이터의 조언에 따라 서로의 움직임을 느끼며 당기고 놓아주는데 익숙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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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박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고, 공공미술의 현장에서 거리예술가, 무대설치 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주어진 소재와 환경을 이용 해 드로잉과 조각, 설치를 하기 때문에 단편적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를 커뮤니티 작가라고 소개하며, 공동체 안에 공존하는 삶과 개인의 주 체성을 강조한다. 누군가의 부품이 되지 말고, 직접 태엽을 감는 사람이 되라 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큐브 작업은 상대를 배려하며 주체적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는 커뮤니티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설치 작품 ‘큐브’는 관객이 직접 체험 하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를 상상하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체 험과 상상을 통해 자신이 행위의 주체자임을 확인하고, 행동과 변화로 나아가 라는 의미다. 그는 혼자 있을 때 큐브를 상상하며 큐브를 그려 나간다. 지금까 지 그린 큐브만 해도 2000여장이 넘는다고 한다. 모두 다른 각도와 모양으로 매번 새로운 큐브를 상상하고 그린다. 그가 상상하는 커뮤니티는 어떤 모습일 까? 그것은 큐브와 어떻게 닮아 있을까. 그의 작가노트를 통해 세계관을 들여 다 본다. 78


작품을 감상하면 작가의 시대적 상황과 작가의 사회적 고뇌, 사랑 인생들이 작가 의 몸짓을 통해 작품으로 나오고 있고 지금도 그러 하다. 그러나 작업은 시대적 상황 사회현상을 표현 하는데 작가적 고뇌등보다 더 중요한, 현상에 대한 문제 들이 나타나고 있다. 너무 빠른 정보, 사회 변화 IMF 등을 경험하면서, 자기위주 의 사고와 사회현상을 지켜 보는 것마저 게임처럼 흥미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고뇌적 작업이라기 보다는 작품을 접하는 당사자의 마음을 열 고 자신만의 사각형의 조형의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이것은 엄청 난 게임처럼 변화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조금씩 자신의 형태로 변화되어지는 모 습속에서의 관찰과 사색이다. 큐브 / 나사박 작가 노트

큐브 동영상 보기 클릭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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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노동의 경계 융복합 장르 / 샐러드 (사회적 기업_대표 박경주) 샐러드는 2005년 5월 인터넷 다국어 대안 언론인 이주노동자방송 국 (www.migrantsinkorea.net)으로 시작된 단체로 2009년 1월에는 문 화다양성에 더욱 주목하기 위해 다문화방송국 샐러드TV (www.saladtv. kr)와 샐러드 극단으로 사업의 방향을 전환했다. 특히 국내 최초 다문화 극 단 샐러드(www.salad.or.kr)를 설립함으로써 이주민과 정주민의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는 소통을 통해 문화 다양성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본 격적인 사업이 전개되었다. 2014년 5월 16일 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득함으로써 단체 설립10년 만에 비로소 문화다양성 전문 사회적 기업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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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회서비스로는 국제이해교육과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공연과 문화예 술교육 사업, 국내 최초 다문화극장 샐러드붐 운영, 이주민 공연예술아카데미 사 업, 이주민예술가 지원사업인 ‘샐러드아티스트’가 있다. 이 밖에도 다국어 문화예 술 커뮤니티 페이퍼인 월간 ‘샐러드붐’을 발행하여 다문화 커뮤니티와 문화예술 기관에 무료 배포하는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샐러드 극단은 현재까지 총 202회의 워크숍 및 150여회의 공연을 진행하여 2만 여명의 관객을 만났으며 이주민이 직접 창작에 참여하는 유일한 예술단체로서 대 외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사회서비스 사업 외 에도 유료 초청공연 사업도 꾸준하게 증가하여 극단의 주요 수익사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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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샐러드는 VRR에 융복합 장르 작가팀으로 선정되면서 유유유 프로젝 트의 ‘빈 공간에서’시리즈를 선보인다. 유유유 프로젝트는 새로운 실험예술 프로 젝트로 이다. ‘빈 공간에서’ 시리즈는 총 4부작이다. 도시의 빈 공간에서 예술노동을 하는 컨셉 으로 4월 한달 동안 네 번의 퍼포먼스가 서울 문래역, 진도 팽목항, 광주 구 전남 도청 앞, 제주 국제공항에서 있었다. 다음은 박경주 대표가 유유유 프로젝트를 시 작하며 홈페이지에 소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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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노동에 관한 사회적 퍼포먼스] 정부 주도의 사회적 기업에겐 미래가 없다. 지속 가능한 미래... 취약계층의 일자 리 창출... 이러한 공허한 메아리만 있을 뿐. 정작 한국 경제의 절대적 부를 축적 한 대기업의 선도적인 변혁이 없는 한. 문화예술 기업은 죄송하지만 기업이 아니 다. 한 두 명의 예술가가 주도하여 창작물을 생산하는 자영업이다. 그러므로 문화 예술가는 자영업자다. 예술은 물품을 제조하는 업종이 아니다. 예술은 가치를 생 산하는 특별한 직업이다.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전환이 없는 한 대부분의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가는 자영업자에서 파산자로, 노숙자로 도태될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일까? 우린 팩트 Fact와 마주했을 뿐이다. 어떤 사실? “예 술가는 자영업자” 라는 팩트. 예술이 사업이 되려 한다. 그래서 공간이 필요하다. 84


사업을 하려니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근로자를 고용한다. 공간과 사람을 모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제품은 생산되지 않는다. 예술은 제 조업이 아니므로. 그냥 인정하자! 예술가는 예술가일 뿐이며 높은 비용을 들여 예술 공장을 짓고 그 안에 예술노동자를 고용한다고 해서 수익이 창출되지는 않는다는 진실을! 애써 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또 노동자들에게 약속된 급여 를 주기 위해 예술이 아닌 다른 상품을 만들 수도 있고 국가기금을 따내기 위 해 행정가로 변신하며 잠시 사장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임시방편 적이며 모순적인 연극적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2015년 샐러드는 당당하게 우리가 자영업자임을 예술가그룹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하루 8시간 오전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도시의 빈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 유하며 연습과 업무를 진행한다. 매일 매일의 업무는 사회적 퍼포먼스가 될 것 이다. 우리의 예술작품에 대한 주문이 없더라도 우린 당황하지 않고 창작을 할 것이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우리의 무대이며 도시를 부유하는 모든 시민들이 우리의 배우이고 관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술가는 더 이상 파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자영업자임을 인정했으며 예술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므 로. 새로운 실험예술 프로젝트<트랜스 오피스 시어터 유 you 당신은! 유 遊 노 는! 유類 무리! > 를 통해 예술가로서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것. 또한 우 리 시대의 예술가가 생계를 위해 행정가가 되어가는 것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 내는 것. 이것이 본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간도 돈 도 아니다. 도시 속을 무리지어 다니며 나와 당신에게 말을 거는 순수한 예술 놀이다. 방법: 매일 영상업무일지가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된다. 기간: 2015년 4월 9일 ~ 컨셉 & 연출: 박경주 프로젝트 참여자: 샐러드 직원 외 비정기적으로 실시간 생방송 공연이 있을 것이다. 계간으로 뉴스레터가 발송될 것이다. 출처:sala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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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에서 #1. 문래역 청소 퍼포먼스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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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역 청소 퍼포먼스 동영상 보기 클릭

예술 노동ㅣ노동 예술 2015년 4월 9일 오후 두시 샐러드 직원들은 서울 문래역에서 예술 노동을 했다. 사장은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술가의 노동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근한다면, 예술가들은 어떤 노동을 할 것 인가? 예술가는 이 시간 안에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예술가에게 노동은 무엇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 또는 근로는 경 제활동에서 재화를 창출하기 위해 투입되는 인적자원 및 그에 따른 인간 의 활동을 뜻한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금요일 댓가로 오늘은 문래역 안을 청소하도록 지시 했다. 업무의 내용은 문래역 청소 퍼포먼스 사장은 작업 중 만나는 시민에게는 “아이러브 코리아” 라는 대사를 던지 도록 지시했다. 작업명 : 문래역의 청소 퍼포먼스 작업일시 :2015년 4월 9일 오후2시 작업지시자: 박경주 작업자 : 로나, 오로나 사업자명 : 주식회사 샐러드 www.sala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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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에서 #2. 팽목항 세월호 1주기 추모 퍼포먼스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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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2일 오후 5시경 샐러드 직원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예술 노동을 했다. 사장의 작업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1. 참사 1주기를 앞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예술적인 노동을 팽목항에서 할 것. 2.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말것. 3.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에서 자유로운 예술 노동을 할 것. 4. 진심을 담을 것 예술 노동자들은 청소를 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거나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노란 리본을 만지거나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거나 했다. 이날의 예술 노동에는 관객이 없었고 입장료도 없었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이러한 예술 노동에 어떻게 댓가를 지불할 수 있는가? 재화로 환원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를 예술 노동으로 부를 수 없는가? 작업명: 세월호 제 1주기 퍼포먼스 작업일시 : 2015년 4월 12일 오후 5시 작업지시자 : 박경주 작업반장 : 유지혜 작업자 : 오로나, 어니마 사업자명 : 주식회사 샐러드 www.salad.or.kr

세월호 제 1주기 퍼포먼스 동영상 보기 클릭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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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에서 #3. 종이배 접기 퍼포먼스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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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7일 오후 3시경 사장은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노동자 3명을 시간제 근무자로 고용했다. 예술 노동자 3명은 청소도구를 들고, 썬그라스를 착용한 채 (구)전남 도청 앞 분 수대에 모였다. 사장의 작업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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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주에서 발행되고 있는 무가지로 종이배를 접을 것 2. 종이배를 접고난 후에는 분수대를 둘러싼 빗물 저장소 위에 띄 워야 하며, 모자란 물을 보충해서 종이배가 물에 떠서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함 3. 한시간 동안 이 작업을 완수하여야 하며, 작업이 끝나고 나면 분 수대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여야 함 4. 이 모든 일을 하는 조건으로 시급 3만원이 지급됨. 시급 3만원 의 전문직 인건비를 받는 근로자들은 주어진 예술노동 업계에 충 실할 것. 5. 무엇보다, 종이배를 접을 때,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 할 것. 6. 한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여 진심으로 노동할 것. 이날 작업에 참여한 예술 노동자 중에는 종이배를 처음 접어보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배모양은 예술적이지 못했다. 다른 예술 노 동자는 주어진 시간 안에 빨리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완성도가 떨 어지는 종이배를 접었다. 완성된 종이배를 빗물 위에 띄울 때는 종이배를 잘 펴지 않아, 눕 혀진채 빗물에 침몰한 종이배들이 분수대 주변을 채웠다. 때로는 댓가를 충분히 지급한 예술노동이 진정한 의미의 예술노동이 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작업명: 종이배 접기 퍼포먼스 작업일시 : 2015년 4월 17일 오후3시 작업지시자: 박경주 작업반장: 유지혜 작업자 : 김순녀, 판티끼우디엠, 뚜우웨이 사업자명 : 주식회사 샐러드 www.sala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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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 접기 퍼포먼스 영상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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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에서 # 4. 제주공항 청소 퍼포먼스에 대한 보고서 104


2015년 4월 19일 오전 11시경 사장은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 노동자 5명을 시간제 근로자로 고용했다. 예술노동자 다섯명은 청소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제주 국제 공항으 로 모였다. 사장의 작업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1. 공항 이용자들이 앉아있는 대기석을 깨끗하게 청소할 것 2. 앉아있는 이용객들이 청소 퍼포먼스를 눈치채고 일어서서 자리를 비켜줄 때까지 근로자들은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앞에서 기다려 줄 것 3. 한시간동안 이 작업을 완수하여야 함 4. 이 모든 일을 하는 조건으로 시급 3만원이 지급됨. 시급 3만원 전문직 인 건비를 받는 근로자들은 주어진 예술노동 업계에 충실할 것. 5. 청소를 할 때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할 것. 6. 한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노동할 것 이날 작업에 참여한 예술 노동자들은 작업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작업장을 이탈하려해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작업시간을 완수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의 예술 노동 또한 이용객들과 예술적인 소통이 일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재빠르게 이용객들의 의자를 청소하긴 했지만, 청소로 느껴지지 않는 단순한 육체의 움직임이었다. 이들의 움직임을 퍼포먼스로 보기에는 이 움직임을 통 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그 메시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근로자들은 주어진 한 시간을 채워 육체적 노동을 하였고 시급 3만원을 받아갔지만, 이는 예술행위도 노동도 아닌 다른 어떤 것이었다. 작업명 : 제주공항 청소 퍼포먼스 작업일시 :2015년 4월 19일 오전 11시 작업지시자 : 박경주 작업반장: 유지혜 작업자 : 이현주, 크리스틴, 수부하드라, 이경월, 류리옥 사업자명 : 주식회사 샐러드 www.sala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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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일렁이다. 발 행 일 2015. 5. 29 제

작 더나비프로젝트

페이스북 facebook.com/thenabiproject 블로그 blog.naver.com/the_navi 편집 / 글 타라재이 (jaygreenwild0602@gmail.com) 사진/영상 임보현 (min197132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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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소촌아트팩토리 / 광주문화재단

최 문화체육관광부 / 광주광역시 / 광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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