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심장이식 수술 후 건강을 되찾아 생후 27개월 만에
처음으로 돌 기념사진을 촬영한 심장이식인 김주아 양
본부는 장기기증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ʻ사랑의 장기기증 운동’을 시작해 33년 동안 119만여 명의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를 모집한 장기이식 등록기관입니다. 발행인의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로 21,
7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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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용기를 가진 어른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어딜 가나 가장 큰 어른일 때가 많습니다. ‘이사장님’, ‘목사님’, ‘선생님’, ‘어르신’ 등 불리는 호칭도 각양각색입니다.
한때는 저도 ‘학생’, ‘청년’으로 불렸는데 세월이 켜켜이 쌓여 어느새 미수(米壽)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른은 ‘다 자라 자신의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저도 어른이 되고 난 후 ‘책임’
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헌혈 운동부터 장기기증 운동에 이르기까지 첫 길을 개척하는 사람으로서 바닥을 잘 다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이후 저를 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은 생명나눔 운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힘입니다. 매혈이 만연하던 시절 팔을 걷어붙이고 헌혈에 나선 여고생들의 용기, 장기기증이라는 단어도 낯설던 때에 신장 하나를 기증한 이들의 선의,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생명을 나눈 사람들의 사랑까지…. 그들은 모두 제 인생의 멋진 ‘어른’이었습니다. 그들이 열어준 생명나눔의 길에서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는 숭 고한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이 아름다운 가치를 깨닫는 사람들이 더해지기를 소망하며, 따뜻한 용기를 지닌 진정한 어른 들을 통해 장기기증 운동에도 찬란한 봄날이 곧 오기를 기대합니다.
천사의 심장
저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천사의 마음을 가슴에
품은 3살 환아의 아빠입니다. 오늘도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평범한 하루하루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제 딸 주아는 생후 7개월 때 확장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았습니다. 이후 에크모 시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고, 그 작은 몸으로 연이어 인공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주아의 첫돌을 보내고
두 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아내와 저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병원 창밖의 세상이 전부인
주아에게 진짜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죄책감에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기간 인공심장을 단 채 이식을
기다리던 어느 날, 주아의 심장이식 수술이
결정되었습니다. 주위에서 축하한다는 인사가
이어졌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잠시 후면
누군가 주아에게 귀한 생명을 나누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아가 새 생명을
선물 받는 그 시간, 저와 아내는 기증인과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아는 올해 2월 퇴원을 해 560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인공심장 때문에 샤워 한 번
해보지 못한 아이가 안쓰러웠는데, 집으로 오자마자
목욕을 시켜주고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한 방에 모여 잠을
청했습니다. 천사의 심장은 주아와 잘 맞아 숨도 잘
쉬고 밥도 잘 먹습니다. 동생이 아픈 이후로 줄곧 웃지
않았던 아들 주호도 드디어 어린이집에서 환하게
웃는다고 하네요.
저와 아내는 유가족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동참했습니다. 앞으로 주아와
천사의 심장이 함께 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두 생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지켜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심장이식인 김주아 양의 아버지 김재겸 드림
백발의 어머니와 남편의 다정했던 한때를 바라보는 김경옥 씨.
사진 속 두 사람은 이제 김 씨의 곁에 없다. 어머니처럼 장모를 섬겼던 남편 故 조인출 씨가 2010년 1월 뇌사로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김 씨의 어머니 故 원보배 여사가 그 뒤를 따라갔다.
故 조인출 씨의 아내 김경옥 씨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나의 남편
이별한 김경옥 씨는 거동이 불편했던 어머니를 업고 계단을 성 큼성큼 오르던 남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주저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남편은 특히 어르신
들에게 잘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어르신을 보면 달려가 그 짐을 대신 지고, 형편이 여의찮은 노인들을 보면 집으로 모 셔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마음 씀씀이가 다정했다.
“남편은 일평생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살았어요. 그 때문인지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들을 참 살뜰하게 챙겼어요.” 6살 무렵 유 괴를 당했다 가까스로 벗어난 조인출 씨는 이후 부모를 찾지 못 하고 보육원에서 지냈다. 19세가 되던 해 우연히 찾아간 옛 동 네에서 그를 알아본 동네 주민 덕분에 조부모와 재회했지만, 이 미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순간 사라진 아들을 그리워하다 세상 을 떠난 뒤였다. 따스한 부모의 품을 늘 갈망하던 조 씨는 자신 을 포근하게 품어주던 김 씨와 만나 결혼하며 장모인 원 씨를 친어머니처럼 섬겼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 2
“어른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착했던 사람이에요. 결혼 초에는
집안 살림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걸 좋아했어요.” 건설업에 종사하던 조 씨의 착한 심성을 눈여겨봤던 김 씨는 남편에게 신학 공부를 권유했다. 그렇게 조 씨는 늦은 나이에 신학과에 입학하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서로에 대한 단단한 믿음 을 쌓아가던 두 사람은 ʻ노인 복지’라는 꿈을 함께 꾸며 아름다
운 미래를 그려갔다.
“언젠가 양평에 양로원을 짓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죠. 형편 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돕자고요.” 조 씨는 신학 공부를 마친 후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김 씨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꿈을 위 한 재정적인 준비를 열심히 해나가던 무렵, 갑자기 조 씨가 쓰 러졌다. 2009년의 끝자락,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쓰러진 조 씨는 뇌수술을 받은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수술이 잘 끝 났으니 곧 깨어날 거라는 의료진의 말을 믿고 12일을 기다렸지 만, 김 씨는 미동조차 없었다. 피가 마르는 듯 고통스러운 시간 끝에 결국 전원을 선택한 김 씨는 세브란스병원으로 남편을 옮
1 뇌사 장기기증인 故 조인출 씨의 아내 김경옥 씨
2 생전 친어머니처럼 모신 장모 원보배 여사와 함께 촬영한 사진
겼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조 씨의 상태를 확인한 의료진은 뇌가 이미 많이 손상되어 깨어날 가망 성이 없다는 소견을 전했다.
5명의 생명을 살린 마지막
약속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붙 잡고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거든요. 제발 깨어나게 해달라고. 결국 남편 은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남편의 일부가 이 세상에 남아 여러 사 람을 살아가게 했으니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이제 그 만 조 씨를 보내주자는 의료진의 이야기에 아내 김 씨와 두 아들 은 오래전 참여했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떠올렸다. 출석하던 교회에서 생명나눔예배를 드린 김 씨 가족은 장기기증의 가치에 공감해 함께 서약을 해둔 터였다. 2010년 1월 12일, 사랑하는 가 족들의 숭고한 결정으로 故 조인출 씨는 생명을 나누겠다는 마 지막 약속을 지키며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렸다. “
장기기증을 마친 후에 마지막으로 남편 얼굴을 마주했는데, 너무 환하고 밝은 거예요. 평소에 정말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 었는데, 남편의 생명을 이어받은 분들도 꼭 하나님을 만나 선한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하늘나라에서 두 사람이 만나 지 금도 모자처럼 오붓하게 지내고 있 겠죠.” 사랑했던 두 사람과 연이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거뜬히 산행을 즐기며 생존 시 장기기증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편견을 몸소 불식시키는 이가 있다. 2015년 생면부지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한 생존 시 신장기증인 이영천 씨다.
생명나눔은 거짓 없는 명제 생존 시
이영천 씨
치열한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춘 의 꿈을 불태운 이영천 씨는 27년 간 건설업에 종사하며 새벽에 출
근해 늦은 저녁 퇴근하는 일상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던 그 가 얼마 전 시골로 낙향하여 이제야 자연을 벗 삼으며 꿈에 그리던 황혼기를 누리고 있다.
10여 년 전 인생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이 씨는 환갑을 앞두고 생존 시 신장기 증을 결심했다. 그는 신장기증의 계기에 대해 지난한 인생 을 사는 동안 다양한 인간상을 경험하며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만큼 깊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생각 하는 건 하나였어요. ʻ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 내 이웃의 피폐해진 삶을 공감해 주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는 건 인지상정이다.’라고요.” 신장기증 가능 연령 의 마지노선인 예순의 끝자락이었던 이 씨는 2015년 7월 23일 당시 신장 기능이 5%밖에 남지 않았던 40대 남성에 게 자신의 신장을 나눴다.
신장기증, 아름다운 동행의 시작 2
수술 후 회복을 위해 병실 복도 를 걷던 이 씨는 우연히 자신의 신장을 이식받은 김동조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씨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김 목사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ʻ서로 반씩만 아파도 안 죽고 살아 있으 면 그게 행복한 일’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고, 김 목사에
게 두 번째 인생을 더 열심히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때 맺 은 둘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새생명나눔회1)에서 함께 활동 중이다. 두 사람은 재작년 생존 시 신장기증인과 이식
인이 함께 걷는 ʻ신기한 동행’에 참여해 해파랑길 99.9km 릴레이 걷기를 완주했고, 올해 초에는 LG헬로비전 프로그 램 <엄홍길의 산악버스>에 출연해 강원도 양구 봉화산을 나란히 오르기도 했다. 이 씨는 당시에도 미처 등산 스틱을 챙겨오지 못한 김 목사에게 자신의 스틱 한쪽을 나누어 느 린 발걸음이지만 함께 설산을 등반했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신장기증을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기증인이라는 허명보다는 장기부전 환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
1 생존 시 신장기증인 이영천 씨
2 2022년 ‘신기한 동행’에 참여한 신장이식인 김동조 목사(왼쪽)와 이영천 씨(오른쪽)
고 싶어요.” 이 씨는 자신의 선행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 지만, 생명나눔 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 음으로 전면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만성 신부전 환자 수가 30만 명에 이르고, 연간 진료비는 2조 원 이 넘어요. 국가 재정적으로만 보더라도 큰 문제인 만큼, 우 리 사회가 장기기증 문화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적극 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삶에 대한 깊은 내면의 성찰과 장기부전 환자들을 향한 사 회적 응시로 신장을 기증할 수 있었던 이 씨는 신장이식 결 연사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장기부전 환자들의 고된 투병 생활이 하루속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 라고 있다.
“단 한 번의 생명나눔이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투석 치료를 받으며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는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새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꼭 기억해 주시면 좋 겠습니다.”
1) 새생명나눔회: 본부를 통해 생존 시에 신장을 기증한 이들과 이식받은 이 들의 모임
봄 학기 개강 시즌을 맞이해 전국 14개 대학에서 총 1,963명의
학생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동참하며, 젊은층의 장기기증
인식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분도 안 되는 미약한 참여로 장기부전 환자들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
니 뿌듯해요. 이번 캠페인이 그동안 장기기
증을 무겁게 느끼던 학우들이 마음을 환기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요.
등록자 이효민 씨
이제는 장기기증이 부모가 주신 신체
를 훼손한다는 유교적 관념에서 벗어나야 해요. 나에게 허락된 삶이 어차피 끝난다면, 공리적인 측면에서도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
는 선택이 훨씬 가치 있지 않을까요?
등록자 김소현 씨
사진 촬영_ 따뜻한사진가 협동조합 권태훈 작가
1 장기기증 인식개선을 위해 캠퍼스로 나선 대학생들
2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서약하는 학생의 모습
3 장기기증 캠페인에 참여한 경희대학교 PTPI 봉사자들
“장기기증 인식개선 위해 전국 대학생들이 나섰다”
봄기운이 완연한 대학 캠퍼스에 생명나눔 운동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며 모처럼 대학가의 낭만이 짙어졌다.
지난 3월 12일 부산시 동명대학교를 시작으로 2024년 대학
교 장기기증 캠페인의 막이 올랐다. 2001년부터 매년 전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장기기증 캠페인은 학생들의 자 발적인 자원봉사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에도 각 대학
의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본부와 함께 장기기증 홍보부스를 운영하며 장기기증 인식개선을 위해 힘을 모았다.
3월 13일부터 이틀간 캠페인을 진행한 경희대학교의 PTPI(People To People International) 동아리 회장 신수 민 씨(화학과, 3학년)는 1학년 때부터 봉사자로 참여하며 교 내 장기기증 인식 확산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 신 씨는 “학우 들이 생명나눔의 가치에 점차 눈을 뜨는 것 같아 기쁘다.”라 며, “상호 작용을 통해 고착된 장기기증의 부정적인 관념을 해소하고, 장기기증 희망등록이라는 실천과 인식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3월 20일과 21일 캠페인을 실시한 동덕여자대학교 의 RCY(청소년적십자) 동아리 회장 정예인 씨(글로벌 MICE, 2학년)는 신장이식을 기다리다 유명을 달리한 할머니의 사연 을 전하며, “
장기이식은 남의 일이 아닌 나에게, 또는 우리 가 족에게 절실히 필요한 나눔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3월 19일부터 이틀간 캠페인을 진행한 부산외국어대학교 는 총 382명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하며 지난해에 이 어 단일 대학으로는 최다 인원이 생명나눔 운동에 참여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밖에도 경남대학교, 대동대학교, 명지대학 교,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 수성대학교, 신라 대학교, 아주대학교, 창원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등에서 연 이어 장기기증 캠페인이 전개되며 1,963명의 청년들이 생명 을 살리는 약속에 동참했다.
지난해 장기이식 대기 환자가 5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20대 들의 적극적인 장기기증 희망등록 참여가 침체한 생명나눔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Re-born
리본 팔찌 캠페인
본부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ʻ생명과 생명을 잇는 약속’을
의미하는 “리본 팔찌”를 출시하고, 11월 말까지 후원 캠페인을 진행한다.
리본 팔찌는 장기부전 환자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긴 팔찌로,
생명나눔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리본 팔찌를 보며 장기부전 환자들을 항상
기억할게요. 많은 분이 리본 팔찌를 통해 장기
기증에 대해 관심을 갖고, 후원에 참여해 주시
면 좋겠어요. 적은 금액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돌아오는 행복은 몇 배 더 크실 거예요.
본부 홍보대사 에바 포피엘 씨
리본 팔찌의 의미 ʻ생명과 생명을 끊임없이 잇다’ 팔찌에 새겨진 ʻRe-born’은 리본(ribbon)의 동음이의어로, 직 역하면 ʻ다시 태어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장기기증을 통 해 이식인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가 담겼다. 무한대 모 양(∞)의 펜던트는 생명나눔을 통해 기증인의 숭고한 사랑이 영원히 기억되고,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았으 며, 전 세계적으로 장기기증을 상징하는 초록리본의 초록색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했다.
팔찌의 무게는 6g으로 무척 가볍지만, 장기기증을 통해 고귀 한 생명을 구하자는 묵직한 함의가 담겨있다. 펜던트를 중심 으로 뻗은 두 가지 모양의 체인은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 들과 장기기증인 및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를 상징하며, 생명나 눔을 뜻하는 펜던트가 이들을 단단하게 잇고 있다. 또한, 각 체 인의 동일한 모양은 장기이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 해 장기기증 문화의 활성화를 바라는 모든 참여자의 하나같은 염원을 나타낸다.
팔찌는 물에 의한 부식이나 변색이 거의 없고, 알레르기 반응 위험이 적은 써지컬 스틸 소재로 제작되어 착용감이 우수하 며, 남녀노소가 모두 착용할 수 있도록 길이 조정이 가능한 디 자인이다.
리본 팔찌 캠페인 참여 방법 ʻ생명나눔의 감동을 전하다’
생명과 생명을 잇는 리본 팔찌는 월 1만 원 이상의 정기후원을 신청한 후원회원들에게 제공되며, 1인당 1개로 제한된다. 기존 후원회원은 전화나 카카오톡을 통해 추가 후원 참여로 팔찌를 받을 수 있으며, 특별히 캠페인 기간인 11월 30일까지 SNS 인 증 숏 이벤트에 참여하면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받을 수 있다.
캠페인 수익금은 장기부전 환자 지원금 이외에도 뇌사 장기기 증인 유가족 예우사업과 장기기증 인식개선 캠페인, 생명나눔 및 존중 교육 등 생명나눔의 아름다운 가치와 감동을 전하는 일 에 소중하게 사용될 예정이다.
문의 회원관리팀 02-363-2094| 사랑의 장기기증
하늘나라에 있을 엄마에게
안기현 군의 어머니 故 이현정 씨는 2019년 4월 17일 뇌사로 세상을 떠나며 9개의 장기를 기증했다.
엄마, 나 기현이야. 너무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높임말을 써볼까
고민했는데, 그건 나답지 못한 것 같아서 그냥 평소처럼 할래.
5년 전 그날의 기억이 참 생생하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에게 세
상에서 가장 강해 보이던 엄마가 갑자기, 그것도 생일날에 쓰러져
서 몇 날 며칠을 병원에서 의식도 없이 누워만 있었어. 결국 외할아
버지, 외할머니,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심지어 외증조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네 . 그래도 난 여전히 엄마와의 추억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마음에 남아있어.
예전에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 만약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면 꼭 장기기증을 해달라는 말. 솔직히 그때는 진짜 싫었거든. 그런
데 이제는 엄마가 9명의 생명을 살리는 멋진 일을 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 지난 2월에는 엄마 덕분에 D.F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서 장학금 수여식에도 참석했는데, 나와 같은 유자녀들이 한자리
에 모여서 여러 사람의 격려를 받으니까 되레 더 감사하더라.
엄마는 언제나 우리 가족을 지켜보고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착 하고 예쁜 이 아들만 편애하면서 바라볼까 봐 말해주자면, 동생은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엄마 반쪽은 아직 회사에 다니면 서 그 깐깐한 성격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어. 그리고 나는 이제 예전 의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제법 차분하게 학업에 열중할 줄 아는 멋 쟁이가 되었으니 하늘나라에서는 너무 염려하지 말고 내가 다시
만나러 가는 그날까지 잘 쉬고 있어.
갑작스러운 편지에 두서없이 별소리를 다 했네. 계속 쓰다 보면 끝
도 없을 것 같아 이만 줄일게. 나머지는 내가 엄마가 있는 그곳에 가게 됐을 때 다 말해줄게. 하늘나라에도 전화기가 있다면, 전화 한 통 하고 싶다.
엄마! 사랑해!
딸보다 예쁘고 남편보다 듬직한 아들 기현이가
생명나눔 마스코트를
소개합니다
리보니
# 2018년생
# 생명나눔 패셔니스타
365일 장기기증을 상징하는 ʻ초록리본’ 모자를 쓰고 다니는 리보니는 생명나눔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는 곳이면 ʻ틀림없이, 나타나는’ 생명나눔 운 동의 홍반장이다. 푸근해 보이지만, 유행에 민감 해 생명나눔 마스코트 중 가장 많은 OOTD를 보 유했다.
OOTD: Outfit Of The Day(오늘의 옷차림)
씨앗이
# 2018년생
# 좌우명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그린도넛
# 2024년생
# 퍼스널 컬러 ‘그린’
# 파워 F
우리 몸의 등 양쪽에 위치한 주먹만 한 크기의 장 기인 콩팥(신장) 모양을 한 씨앗이. 건강하게 빛 나는 빨간 얼굴로 ʻ신장이식 결연사업’의 중요성 을 알리고 있는 씨앗이의 소원은 장기부전 환자 들의 마음에 ʻ희망의 씨앗’이 피어나는 것이다.
장기기증인과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후원회원을 통칭하는 도너(Donor)에서 파생된 귀여운 그린 도넛. 초록빛 크림을 두르고 달콤한 나눔의 향기 를 풍기는 그린도넛은 생명나눔 미담을 접할 때 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인해 다른 도넛들을 눅눅하게 만들어 버리는 공감요정이다.
살리는 찬란한 기술
이후 스스로 걸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한 소년은 올해 3월 기나긴 투병 생활을 끝내고 퇴원했다.
가족들의 지극한 사랑과 눈부신 의학기술의 만남이 일궈낸 쾌거였다.
세계 최초의 장기이식 수술 나날이 발전하는 의학기술 덕분에 환자들이 새로운 삶의 기회
를 만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장기이식 수 술은 언제 이루어졌을까? 7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1954년 미국의 조셉 머레이
(Joseph Edward Murray) 박사가 일란성 쌍둥이 간의 신장 이식 수술에 성공한 것이 장기이식의 첫 기록이다. 사실 인체 조직 중 하나인 각막은 그보다 앞선 1905년 이식에 성공하였 으나 거부 반응 등의 문제로 신장, 간 등 장기이식은 실패를 거 듭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954년 머레이 박사의 신장이식 수술 성공은 일 란성 쌍둥이 사이에는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후 프랑스의 장 도세(Jean Dausset) 박사
가 백혈구 항원이 거부 반응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장
기이식 수술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거부 반응의 원인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면역 억제제가 사 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1962년 마침내 머레이 박사가 타인 간 신장이식 수술에도 성공하며 의학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한다.
국내 첫 장기이식 수술은 생존 시 신장이식
국내에서는 이로부터 7년이 흐른 1969년 첫 이식 수술이 진행 됐다. 환자는 미국 교포인 30대 남성으로 어머니가 기증자로 나섰지만, 미국 내 이식대기 환자가 많아 기약 없이 수술 시기 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아픈 동생을 보다 못한 환자의 형이 국내 병원을 수소문했고, 당시 성모병원 이용각 교수팀이 해당 수술을 맡으며 국내 첫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당시 이식 팀의 의료진만 내과, 외과, 비뇨기과, 마취과, 정신과, 병리과, 미생물면역과, 소아과 의사 등 30여 명에 이르렀다. 이는 한국 의학계 최초의 이식 수술이자 팀 치료로 기록됐다.
법을 바꾼 장기이식의 힘
이후 1979년 뇌사자로부터 기증받은 신장을 만성신부전 환 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했고, 1988년에는 간이식 수
술이, 1992년에는 심장이식 수술이, 1996년에는 폐이식 수 술이 순차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던 2011년 10월, 국내 최초의 다장기이식 수술이 진행 됐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외과 김대연 교수팀이 만성 장 가성 폐색 증후군으로 6년간 투병해 온 조은서 양(당시 7세)에게 비슷한 또래의 뇌사자로부터 기증받은 간, 췌장, 소장, 위, 십 이지장, 대장, 비장 등 7개의 장기를 동시 이식하는 데에 성 공한 것이다. 이 수술의 성공으로 「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 률」
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그동안 장기이식의 대상에서 제 외됐던 위, 십이지장, 대장, 비장 등이 소장과 동시이식을 할 경우 이식이 가능하도록 허용됐다.
이처럼 법을 바꾼 최초의 장기이식 수술은 2017년 한 해에 두 건이나 이루어졌다. 2017년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최초 생존 시 폐이식 수술이 이루어졌다. 말기 폐부전 환자인 딸에
게 부모의 폐 일부를 이식하는 수술이었는데, 당시만 하더라 도 폐는 생존 시에 기증 가능한 장기가 아니었다. 해당 수술이 성공리에 끝난 후 생존 시 폐이식이 법제화됐다. 같은 해 영남 대병원에서는 뇌사자로부터 기증받은 팔을 산재 사고로 팔을 잃은 30대 남성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 행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수술 성공 이후 수부이식이 법적으
로 허용되며 장기이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장기기증 문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기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을 거듭해 최근에는 이종장기 이식에 대한 기사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나 참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몇 년
째 장기기증 희망등록률과 실제 뇌사 장기기증율이 별다른 성장 없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식대 기 환자는 매해 2~3천 명씩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의학기 술의 발전과 함께 장기기증 인식 확산과 성숙한 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 개선이 동반되어야만 진정한 장기기증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첫 장기이식 수술 현장
다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조은서 양과 담당의 김대연 교수
국내 최초 생존 시 폐이식의 주인공과 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교수
팔이식 후 시구에 나선 이식인
서울 양천구 목동 양천경찰서 뒤편에 있는 30년 역사의 ʻ히노야마
수타
간판에 적힌 ʻsince 1992’라는 문구가 인상적인데요.
히노야마의 전신인 ʻ아소산’의 역사가 1992년부터 시작됐거 든요.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제가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아 소산의 우동 맛에 반해 2000년에 인수 창업한 후로, 남편이 자 제면 담당인 지충구 셰프까지 합류하게 되었어요. 히노야마는 11시간 숙성한 반죽으로 항상 당일에 뽑은 면만 사용하는데, 반죽에는 처음 배운 방식 그대로 밀가루와 천연 소금물, 식초 외에는 다른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아요. 또 직 접 달여서 360시간 숙성한 간장으로 매일 아침 우동 육수를 뽑아내죠. ʻ활화산’이라는 뜻을 가진 ʻ히노야마’라는 상호에
서부터 우동에 대한 우리 부부의 열정을 느끼셨을 거예요.
히노야마는 특히 ʻ납작 우동’ 맛집으로 정평이 났어요.
10년 전쯤 일본에서 넓적한 우동 면을 맛보고 구현해 내고 싶 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2년간 반죽의 소금물 농도와 면의 두 께 등을 달리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최상의 식감을 찾아냈고, ʻ납작 우동’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갓 삶아낸 납작 우동 면을 수제 쯔유에 찍어 먹으면 쫄깃한 수타 우동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데, 입소문을 탄 덕분인지 최근 5년간 국 내 맛집 가이드인 ʻ블루리본’에도 선정되었어요.
전통 방식을 유지하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음식은 진정성을 담는 거예요. 돈과 편리함만 좇았다면 상대
1 10주년 후원증서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박선희 씨
2 히노야마의 인기 메뉴 ‘납작 우동 한상’
3 히노야마 공동 대표 아들 지민근 씨(맨 왼쪽)와 남편 지충구 셰프(오른쪽)
적으로 운영이 쉬운 프랜차이즈를 선택했겠지만, 그렇게 되 면 조리 방식을 획일화시킬 수밖에 없어서 깊은맛을 내기가 어려워요. 일일이 정성으로 만드느라 힘에 부칠 때도 많지 만, 손님들과 쌓아온 신뢰를 저버릴 수는 없어요. 깨끗하게 비워진 빈 그릇을 보며 힘을 내고, 손님들의 ʻ맛있게 먹었습 니다.’라는 인사말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엔도르핀으로 삼 아 명맥을 지켜나가는 거죠.
식당 운영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2011년에 장기기증 희망
등록 및 후원에 참여해 주셨어요.
지금도 섬기고 있는 늘사랑교회에서 생명나눔예배를 드렸 어요. 사랑하는 조카가 어려서 뇌수막염을 앓고 장애를 갖게
되면서 제 마음 한편에 늘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공감 대가 있었거든요. 그러한 관심이 장기부전 환자들에게로 이 어져 생명나눔 운동에도 동참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지 난해 오랜만에 기부금영수증을 확인했는데, 후원 금액이 너 무 약소한 거예요. 그래서 바로 본부로 전화를 걸어 주저 없 이 후원금을 증액하겠다고 말했어요.
가게 입구에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등록된 ʻ착한 가게’ 현 판을 봤어요.
음식은 제가 당장 나눌 수 있는 거니까요. 양천구에 거주하 시는 저소득층이나 장애인분들이 히노야마에 오셔서 편안 하게 우동 한 그릇 배불리 드시고 가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
으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착한 가게로 활동하면서
되레 얻는 게 더 많아요. 음식을 나누는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더라고요.
여러 후원을 이어가는 동안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
아소산 시절 부동산 소유주의 가족 간 지분 다툼 때문에 불 가피하게 지금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어 요.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후원을 멈추고 싶지는 않더라고 요. 그러다 재작년에 본부의 송년 행사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분들을 만나 뵙고 대단한 존경심을 느꼈어요. 그때 후 원을 이어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심전심으로 동행 했던 지인도 장기기증 희망등록과 후원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그때의 무모한 나눔이 헛된 게 아니었구나, 뿌듯하 더라고요.
중소벤처기업부가 30년 이상 운영한 가게를 인증하는 ʻ백 년가게’로도 선정되셨어요. 히노야마의 100년이 궁금해 지 는데요.
제 꿈은 히노야마가 이름만 백년가게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00년, 200년 된 우동 노포가 되는 거예요. 어려 서부터 미식 훈련이 잘되어 있는 큰아들 지민근 대표가 2대 전수를 위해 주방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조리 전 과정을 마스 터했고, 곧 일본으로 건너가 우동 학교를 수료할 예정이에 요.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면 정말 좋은 가게를 만들 수 있을 까, 오로지 그 목표 하나로 계속해서 정진할 거예요. 앞으로 히노야마의 100년 후를 기대해 주세요.
2018년 7월 15일, 서울 강서구 화성교회에서 진행된 생명나눔예배에서 같은 이름과 같은 마음으로 장기기증
한날한시에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분께서 장기기증 희망등록
에 함께해 주셨어요.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어떤 감 정이 드시나요?
이경희 씨(60세) 정말 반갑고 좋아요. 이경희 씨와 저는 5년
전에 화성교회의 주일학교 초등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 교사였는데, 같은 날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을 줄은 꿈 에도 몰랐어요. 3년 전 남편이 투병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인 사도 제대로 못 하고 초등부 교사를 그만두면서 아쉬운 마음
이 컸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같은 뜻을 가진 동역자를 만난 것 같아 기뻐요.
이경희 씨(50세) 저와 이름이 같은 이경희 선생님과 한날 한시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 게 됐어요. 저희 모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같은 시 기에 초등부 교사로 활동했다는 것도 놀랍고요. 이경희 선생 님과 제가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정말 인연이 깊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이름, 같은
어떤 마음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과 후원에 참여하게 되셨 나요?
이경희 씨(60세) 이모부께서 시신기증의 뜻이 있으셨는데,
가족의 반대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어 요. 당시에 제가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모부가 존경 스럽다는 생각과 동시에 생명나눔에 대한 인식개선과 사회
적 공감이 하루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고요. 그 후 시간이 한참 흘러 저도 교회에서 진행된 생명나 눔예배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장기기증 희망등록과 후원에 함께하게 되었죠.
이경희 씨(50세) 큰고모가 시신기증을 하고 떠나시는 모습 을 보면서 생명나눔에 대한 뜻이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
요.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장기기증을 꼭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마침 출석하는 교회에서 생명 나눔예배를 드리게 되니 이게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더라고요. 그렇게 장기기증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 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과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생명나눔 운동 이외에도 함께하고 계신 나눔이 있으신가요?
이경희 씨(60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 이 더 안타깝게 다가와서 아동을 위한 후원을 이어오고 있어 요. 비록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선한 일에 마음을 더하
고자 아동 보호 단체와 글로벌 NGO 단체 등을 꾸준히 후원 하고 있어요.
이경희 씨(50세) 방송에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나 아이들 의 사연을 볼 때마다 후원에 참여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미 얀마 아이들도 후원하고 있고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섬기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야겠다는 마음 이 자연스럽게 커지는 것 같아요.
장기기증 활성화와 장기부전 환자들을 위한 응원 부탁드려요. 이경희 씨(60세) 장기부전 환자분들은 저의 응원이 너무나 작게 느껴지실 정도로 매우 힘드실 거예요. 제 남편도 암으 로 투병하고 있어 환자분들의 심정이 더욱 가슴에 와닿네요. 하루빨리 장기기증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더 많은 환자가 삶의 희망을 선물 받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희망은 항상 친 구처럼 옆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경희 씨(50세) 나의 생명나눔으로 누군가가 다시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까요. 얼마 전에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계신 분들이 점점 늘 어난다는 통계를 봤는데, 앞으로 장기기증의 고귀한 가치가 더 널리 알려져서 많은 환자가 새 생명의 기적을 꼭 선물 받 으셨으면 좋겠어요.
금시골여행 김춘화 대표 생명나눔 운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