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1228-1212
法文을 읽고
人之將來之數 不吉判斷莫言
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음을 찾아가는
수양전문지 통권 제220호 / 聖紀 66年 2017년 11월 1일 발행
사람이란 일생의 일을 미리 다 알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 람의 일생에는 불행이란 것도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불안과 기 우에서 장래를 미리 알고자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의 운명을 남에게 묻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남의 운명을 판단해서 말해 주기도 한다. 그리 하여 만일 불길한 판단이 내려진다면, 미리 대비책을 강구하려는 맘에서일 게다. 그러나, 자기의 운명을 남에게 묻는다는 것부터가 어리석은 일이요, 남의 운명을 판단해 준다는 것도 무모한 일이며, 불행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더욱 무모 하고 불가한 일인 것이다. 사람의 행・불행이란 그의 선・불선(善不善)에 좌우되는 것이지, 날 때부터 숙명적으 로 고정되어져 버린 것은 아닌 것이다. 오늘 행복하던 사람도 내일의 죄악으로 불 행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고, 오늘 불행하던 사람도 내일의 선행으로 그 불행에서 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남의 운명을 어떻게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설령 남의 불행을 예측했다 할지라도, 무엇으로써 그 불행을 면하도록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착해지도록 그리고 나쁜 일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해주는 것 밖에 더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중략〉 불행이란 인간이 선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절대선(絶對善)’ 에 대해서 짊어지게 되는 부채의 징표인 동시에, 그 부채를 청산하기까지의 고통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절대선’ 에 대한 부채를 무엇으로 청산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자 아의 선(善)’ 이 아니고서는 청산할 길이 없는 것이다. 미신적인 기도나 의타적인 우상 숭배로는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구제 창생 하시는 성인도 사람의 살아갈 선의 길을 가르쳐 주셨을 뿐이지, 개별적 으로 어떤 불행을 예언해서 그에 대한 비방책 같은 것을 말씀해 주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인도 이러하셨거늘 하물며 아직 선(善)에 이르지도 못한 사람으로서야 남의 운명을 판단해 주느니, 불행을 해결할 비방(?)을 알려 주느니 할 수가 있겠는 가? 그것은 이미 인생의 정도(正道)가 아닌 것이다. 그의 선・불선에 의해서 언제나 바꿔질 수 있는 사람의 일생에서 장래의 불행을 단 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 무모하게 불행을 예언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나 미신에 사로잡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행・불행을 미리 알려고 할 것도 없이 오직 선(善)을 기르고 덕(德)을 쌓을 뿐인 것 이다. —대구원 D도생〈성덕도보〉제33호(1967. 2.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