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음을 찾아가는 _ 수양 전문지
법문을 읽고
道者道亦樂得之 德者德亦樂得之 만상만물의 생성 변화(生成變化)가 도(道) 아님이 없으니, 무엇에서나‘도’를 깨달을 수도 있
ISSN 1228-1212
을 것이며, 하늘과 땅 사이 어느 곳에서나 덕(德)을 쌓을 계제가 있을 줄로 안다. 돋아나는 이름 모를 풀잎에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능히‘도’를 깨달을 수가 있고, 하찮은 미물을 대하는 가운데 서도‘덕’을 쌓으려면 쌓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오직‘도’를 깨닫고자 하고‘덕’을 쌓고자 하는 ‘나’의 마음 자세만 완비되어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도’를 찾는 곳도 ‘덕’을 쌓을 수 있는 곳도, 그 모두가‘나’의 마음 가운데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니,‘도’를 깨닫고자 하는 자 그 정성이 지극한 곳에 다다르면 ‘도’를 깨달을 것이요,‘덕’을 쌓고자 하는 자 또한 그 정성이 지극한 곳에 다다르면‘덕’이 쌓여 있게 될 것이다 . 쓰라린 고통 속에서나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나 할 것 없이, 그 정성이 온전하질 못하고 그만 환경에 빼앗겨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정성이 외부의 힘에 당겨지 지도 말아야 되는 것이고, 밀려 넘어지지도 말아야 되는 것이다. 그 정성이 넘치어 경동해도 안 되 는 것이요, 모자라 시들지도 말아야 되는 것이다. 정성이 그 참다운 자세로 자리를 바로 지키면서 “시종여일(始終如一) 신심정행(信心正궋)”하여야만, 비로소‘도’를 깨달을 것이요‘덕’을 쌓을 것이다. 따라서‘도’를 깨달은 사람이나‘덕’을 쌓은 사람이나 모두‘즐거움’을 함께 얻게 되는 것이 니, 이는 햇빛이 비치는 곳에 따뜻한 기운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즐거움’은‘도’ 와‘덕’의 분신(分身)인 것이다. 그‘즐거움’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춰서 얻어지는 것과 같은 그러한 즐거움이 아닌 것이다. 법열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 춤을 추게 하는, 근본적인‘즐거움’ 인 것이다. 화(和)’의 즐거움이며, 상(常)의‘즐거움’이요, 명(明)의‘즐거움’인 것이다. 물맛을 알아보게 하는‘즐거움’이요, 대기(大氣)의 냄새를 맡을 줄 알게 하는‘즐거움’인 것이다. 생명의 본연의‘즐거움’인 것이다. ‘도’를 깨달으려는 자,‘덕’을 쌓으려는 자, 그리하여‘즐거움’을 얻으려는 자, 그‘도’와‘덕’ 과‘즐거움’을‘내’임의로‘이용’해 보겠다는 생각은 가지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내’임의로 ‘이용’하려는 자라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오직, 깨달은‘도’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고, 쌓은 ‘덕’이 주는 복대로 살아가려 하며, 얻은‘즐거움’에 감사 드리려는 자, 그런 사람만이 깨달으며, 쌓으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도’를 깨달았고‘덕’을 쌓았고‘즐거움’을 얻은 사람이라면,‘내 것’이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오직 대자연 법도의 천명(天命)에‘순(順)’하는 것만이 있을 따름 인 것이다. — 대구원
D도생〈성덕도보〉제22호(1966. 3. 1)에서
격월간 성덕의 빛 / 聖紀62年 2013년 3월 1일 발행
Vol.192 / 2013
03+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