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6월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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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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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아낙네들은 이곳 빨래터에서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누구네 집 바람난 남편 이야기를 하며 서로 입 모아 욕하고, 성질 고약한 시어머니가 봉변당한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었을 것이다. 높으신 어른들에 대한 소문을 나눌 때면 짐짓 뒤돌아보곤 들릴 듯 말 듯 목소리를 낮췄을 것이 분명하다. 야무지고 단단하게 정을 보듬어주는 마을 성안에 빼곡히 들어선 초가는 하늘을 찌를 듯 처마가 치켜 올라간 기세등등한 기와지붕과 달리 고개 숙인 난초처럼 한없이 원만하고 부드럽다. 또 ‘감히 어딜!’ 하고 외치듯 쌓아 올린 양반가의 흙담과 달리 이곳의 돌담은 폴짝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낮고 겸손하다. 낙안읍성을 만든 시기는 조선 태조 6년. 물론 그 이전부터 마을은 있었지만 왜구의 침입이 잦아 이때 마을 주변으로 토성을 쌓았으며, 이로써 읍성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이후 조선 중기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이 석성으로 개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을 감싼 석성은 1.4km에 이르는데,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어디 하나 허술한 구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짱짱하다. 과거가 주는 재미난 선물 성안의 90여 가구에 이르는 민가는 보통 한 가구당 2~3채의 초가와 마당, 텃밭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초가는 대개 3칸 정도의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농기구를 보관하고 외양간을 겸하는 헛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정을 베푼 임경업 군수의 선정비와 마을을 지킨다고 알려진 600년 넘은 은행나무를 통해 장구한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이곳이 더욱 정겨운 이유는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어 민속촌처럼 삶의 자취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만날’ 수 있기 때문. 이방인이 되어 과거의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으로 돌아가 직접 느끼고 젖어드는 것이 낙안읍성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번거로울 텐데도 나그네를 위해 모두 전통 옷을 입고 생활하는 마을 주민의 ‘관람’하기 위해 성읍마을을 찾는다면 얻는 것이 적다. 마을 곳곳을 거닐면서 느끼고, 체험하며 젖어들 수 있어야 이곳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넉넉함 또한 다정하다. 천연 염색, 길쌈, 국악, 한지 공예, 짚물 공예, 대장간 등 옛 멋을 즐길 수 있는 기회 또한 이곳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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