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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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den 월든


숲의 경제

나는 농장, 주택, 창고, 가축 및 농기구들을 유산으로 물려 받은 것이 불행인 이 고장의 젊은이들을 본다. 이것들은 일 단 얻으면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널찍한 초 원에서 태어나 늑대의 젖을 빠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힘 들여 돌보아야 할 땅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누가 이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약간의 먼지만 먹으면 되는 것을 왜 이들은 60에이커나 되 는 땅덩어리를 먹어야 하는 것인가? 왜 이들은 나자마자 무 덤을 파기 시작해야 하는가?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힘들게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짊어진 짐에 눌려 거의 숨이 막힌 채 길이 75피트, 폭 40피트의 곡물 창 고와, 청소하지 않아 지저분한 마구간과 100에이커나 되는 토지와 경작지, 목장과 숲을 앞으로 밀면서 삶의 길을 기어 가는, 불멸의 영혼을 소유한 가련한 인간들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유산이 없는 사람들은, 그와 같이 불필요하게 물 려받은 짐과 싸우지 않아도 되지만, 초라한 육신 하나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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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고 가꾸는 일도 힘겨워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 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지나친 노동에 집착한 나머지 삶의 보다 아름다운 열매들을 딸 수 없는 처지에 이른다. 과도한 노동으로 손가 락은 투박해지고 너무 떨려 그 열매들을 따지 못한다. 사실 노동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진실성을 유지할 여유가 없다. 정당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여유도 없다. 그랬다가는 그의 노동력이 시장가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치품들과 이른바 편의품들 가운데 많은 것 들은, 필수 불가결하지 않을뿐더러, 인류의 발전에도 실제 로 방해가 된다. 사치품이나 편의품과 관련해서, 가장 현명 한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항상 보다 간소하고 부족한 생활을 해왔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및 그리스의 옛 철학 자들은 외관상 그 누구보다도 가난했지만, 내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풍족한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지금만큼이 라도 아는 것이 놀라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는 그들보다 뒤 에 나타난 개혁가들과 은인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발적 빈곤(voluntary poverty)이라 부를 수 있는 유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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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인간의 삶에 대한 공 정하거나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농업, 상업, 문학이 나 예술을 막론하고 사치스러운 삶의 열매는 사치인 것이다. 나는 우리의 공장 제도가 옷을 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 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공장 근로자들의 형편은 날이 갈수 록 영국 근로자들의 형편을 닮아간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 닐지도 모르는데, 내가 듣고 본 바로는 공장의 주목적이 사 람이 옷을 잘 입고 제대로 입을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는 것 이 아니라 회사가 돈을 버는 데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 다. 인간은 결국 목표한 바를 달성하고 만다. 그러니 비록 당장은 실패하더라도 높은 목표를 겨냥하는 편이 나을 것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 무엇인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들이 소유한 정도 의 집을 나도 가져야겠다는 일념으로, 사실상 평생 그럴 필 요가 없는데도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간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재단사가 만들어준 옷이면 아무 옷이라도 걸치고는, 종려나무 잎사귀로 된 모자나 두더지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점차 벗어던지고, 자신이 왕관을 살 형편이 못 돼서 생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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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리라.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사 치스러운 집을 고안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비록 그런 집 을 살 만한 형편이 아님을 누구나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우 리는 언제나 더 많은 것들을 얻으려 궁리만 할 뿐, 때로 적 은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존경할 만한 시 민들이 젊은이에게 신발, 우산, 오지도 않을 손님을 위한 빈 방 따위의 불필요한 것들을 죽기 전에 많이 장만해야 한다 고, 선례와 모범을 통해 엄숙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어 째서 우리의 가구는 아랍인이나 인디언의 가구처럼 소박해 서는 안 되는 것일까? 원시시대 인간 생활의 소박함과 적나라함은 인간을 자 연 속에 머무르게 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과 잠으 로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 인간은 자신의 새로운 여정을 생 각했다. 그는 말 그대로 이 세상을 천막 삼아 거주했으며, 골짜기를 누비고 평원을 가로지르거나 산꼭대기에 오르기 도 했다. 하지만 보라! 인간은 이제 자신이 쓰던 도구의 도 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배가 고프면 마음대로 열매를 따먹 던 인간은 농부가 되었고, 나무 밑에 서서 몸을 가리던 사람 은 주택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야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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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밤을 보내지 않으며, 땅 위에 정착하면서 하늘을 잊어 버렸다. 우리는 기독교를 단지 진보된 농업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현세를 위해서 가족의 저택을 지었고, 내세를 위해서는 가족 묘지를 마련했다. 1845년 3월 말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 속으로 들어가, 호수 가장 가까운 곳에 집 한 채를 지을 요량으로 크고 곧게 자란 어린 백송들을 재목감 으로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도낏자루가 빠져 쐐 기로 박을 푸른 히커리를 잘라 돌로 때려 박았다. 다시 빠지 지 않도록 자루를 물에 불리려고 도끼를 호수의 얼음 구멍 속에 담갔을 때, 나는 줄무늬 뱀 한 마리가 물속으로 기어들 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뱀은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15분 이상을 불편한 기색 없이 호수 바닥에 가만히 있었다. 아마 도 그 뱀이 아직 동면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사람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현재의 낮고 원 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만일 자신을 일깨우는 참다운 봄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면, 그들 도 반드시 높은 천상의 삶으로 일어날 것이다. 일전에 나는 서리가 내린 아침 산책길에서, 몸의 일부가 여전히 굳어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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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이지 못하는 뱀들이 자신들을 녹여줄 햇볕을 기다리는 모 습을 본 적이 있다. 4월 초하룻날에는 비가 내리면서 호수 의 얼음이 녹았다. 그날 아침 매우 짙은 안개가 끼었는데, 외톨이가 된 기러기 한 마리가 더듬듯이 호수 위를 날면서 길을 잃은 듯이, 아니면 안개의 정령이 된 것처럼 우는 소리 를 들을 수 있었다. 집을 완성하기 전에, 무언가 정직하고 기분 좋은 방법으 로 10달러나 12달러가량의 돈을 벌어 임시 비용을 충당해 볼 목적으로 나는 집 근처의 2에이커 반쯤 되는 가벼운 모래 땅에 주로 콩과 약간의 감자, 옥수수. 완두콩, 무를 심었 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다시 말해 한 인간의 영혼과 오늘이라는 시점의 중요성을 감안해 볼 때, 이 실험에 들인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한편으로는 그 일시적 성격 때문에, 그해 콩코드의 어느 농부가 한 것보다도 농사 를 잘 지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다음 해 농사는 더 잘되었다. 그 이유는 내가 필요한 만큼의 땅, 즉 3분의 1에이커를 내 스스로 갈아엎을 수 있었 기 때문이었고, 아서 영(Arthur Young)의 저서1)를 포함해

1) 영국의 저술가 아서 영(1741∼1820)은 농업에 관해 25권에 달하는 책을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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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 관한 저명한 책들에 좌우되지 않고, 두 해 동안의 경 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즉 사람이 소박하게 살며 자신이 직접 가꾼 농작물만을 먹되 필요한 만큼만 가꾸며, 또한 거두어들인 농작물을 넉넉하 지도 않은 양의 사치스럽고 값비싼 기호식품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단지 몇 평방 야드의 땅만 일구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땅을 일구는 데 소를 사용하는 것보다 직접 삽으로 갈아엎는 것이, 그리고 묵은 땅에 비료를 주기보다 는 그때그때 새 땅을 택하는 것이 돈이 적게 든다는 것이다. 또한 필요한 모든 농사일을 여름내 틈틈이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어 지금처럼 소나 말, 돼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현재의 경제나 사회제도의 성패에 이해관 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공명정대하게 이 점에 관해 말하고 싶다. 나는 콩코드의 어느 농부보다도 자주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집이나 농장에 묶여 있지 않았고, 수시로 나의 꽤 별 난 성벽을 따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다른 농부 들보다 잘 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설사 내 집이 타버리거나 수확을 망쳤더라도 전과 거의 다름없이 잘살았을 것이다.

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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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년 넘게 이처럼 오로지 육신의 노동으로만 생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 1년에 6주가량만 일하고도 모든 생활 비 용을 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여름의 대부분 과 겨울 내내 마음껏 공부에 전념했다. 한때 전적으로 학교 경영에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비용이 수입에 맞먹거 나 초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교육자에게 걸 맞은 사고와 신념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어울리는 복장 을 하고 가르쳐야 하며, 게다가 내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 다. 또한 나와 같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 니라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 가르쳤기 때문에 이것부터가 실패였던 것이다. 나는 장사도 해보았지만 장사가 궤도에 오르려면 10년이 걸리며, 그때쯤이면 내가 악마로 변신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소위 사업 이 잘될까 봐 걱정스럽기조차 했다…. 나는 그 후로 장사가 모든 것을 망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국의 말씀을 전하 는 사업을 한다 하더라도 온통 장사의 저주가 따라붙는 것 이다. 내가 선호하는 것들이 있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며, 여유롭지는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으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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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비싼 양탄자나 다른 멋진 가구, 맛있는 요리, 그리스나 고딕 양식의 고급 주택 등을 마련할 돈을 버는 데 시간을 허 비하고 싶지 않았다. 만일 이런 것들을 얻는 일에 거리낌이 없고, 일단 얻은 뒤에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들에게 그런 것들을 추구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어떤 사 람들은 부지런하고 일 자체를 좋아하거나, 일하지 않으면 나쁜 길에 빠질까 봐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그 런 이들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다. 현재 누리는 것보다 더 많은 여가가 생기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지금보다 두 배 열심히 일해서 빚을 다 갚고 자유의 증서를 얻으라고 충고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용근로자가 가장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1년에 30에서 40일만 일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일과는 해가 지는 것과 함께 끝나며, 나머지 시간에는 노동 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궁리를 해야 하는 그의 고용주는 1년 내내 숨 돌릴 여 유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신념과 경험에 의해,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 하게 산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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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마치 단순한 민족이 생계를 위해 추구하는 것들이 보다 인위적인 민족에게는 오락인 것처럼 말이다. 나보다 땀을 쉽게 흘리 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밥벌이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청년은 몇 에이커의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 았는데, 여력이 있으면 나처럼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러 나 나는 다른 사람이 나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 라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내 생활양식을 제대로 배우기 도 전에 내 스스로 또 다른 생활양식을 찾아낼지도 모를 뿐 아니라, 이 세상에 가능한 한 많은, 각기 다른 인간들이 존 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각자가 결코 자기 아버지 나 어머니 혹은 이웃의 길이 아닌, 나름의 고유한 길을 찾아 내서 이를 추구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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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매일 아침은 나의 생활을 자연과 똑같이 단순하고 순수하게 만들라는, 즐거운 초대장 같았다. 나는 고대 그리스인들처 럼 새벽의 여신을 정성껏 숭배해 왔다. 일찍 일어나 호수에 서 멱을 감았다. 이것은 내게 하나의 종교 행사였으며 내가 한 일 가운데 최상의 일이었다. 중국 탕왕의 욕조에는 “날마 다 그대를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아침은 영웅의 시대를 다시 불러 모은 다…. 하루 중 가장 기억할 만한 시간인 아침은 잠이 깨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각에 졸음이 가장 적다. 적어도 이 한 시간 동안, 밤낮 없이 잠을 자는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이 깨어 있는 것이다. 어느 하인이 기계적으로 옆구리를 찔러 대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에 의해 깨어나고, 공장의 종소 리 대신에 진동하는 천상의 음악을 들으면서 향기 가득한 대기 가운데 새롭게 얻은 힘과 내부로부터의 열망에 의해 깨어날 때만, 전날보다 더 고상한 삶이 시작될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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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열매를 맺게 하고 빛에 못지않게 좋은 것임을 입증 하게 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을 하루라고 부를 수 있을 지언정,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날이 되는 것이다. 매일이 그가 이제껏 더럽힌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성스러운 새벽 을 담고 있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인생에 절망하고, 어 둠이 짙어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인간이 감 각적인 생활을 부분적으로 중단하면 그의 영혼이나 기관들 이 매일매일 새로 활력을 찾으며, 그의 정신은 그것이 만들 어낼 수 있는 고상한 삶을 다시 한 번 시도하게 된다. 모든 기념할 만한 사건들은 아침 시간과 아침의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다. 베다의 경전들은 “모든 지성은 아침과 함께 깨어 난다”고 말한다. 시와 예술,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기억할 만한 인간의 행동은 그렇게 아침 시간으로부터 유래한다.

우리는 기계적인 도움이 아니라, 가장 깊이 잠들었을 때 에도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 새벽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으로 다시 깨어나야 하며 그 깨어난 상태에 계속 머무르는 방법 을 배워야 한다. 나는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삶을 고양시키 는, 인간의 의심할 수 없는 능력보다도 더 고무적인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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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한다. 특정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해 대상을 아 름답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물 을 바라보는 바로 그 분위기나 매체를 조각하고 그릴 수 있 다면 더욱 멋진 일이 될 것이며, 실제로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루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야 말로 최 고의 예술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삶을 아주 사소 한 부분까지도 가장 고상하고 중요한 시간에 사색할 가치가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 만일 우리가 지닌 얼마 되지 않는 지식을 거부하거나 다 써버린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지를 분명 신탁이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인생을 의도한 대로 살기 위해, 오직 삶의 필수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며, 삶이 가르치는 바를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제 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인생은 귀중 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을 실천하 지 않고 싶었다. 나는 인생을 깊이 있게 살고,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 인처럼 살아, 삶이 아 닌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싶었다. 수풀을 폭넓게 자르고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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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들을 짧게 베어내 인생을 구석으로 몰고 간 다음,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축소시켜서, 그 결과 삶이 비천한 것 이라 입증된다면, 그 모든 진정한 비천함을 받아들여 그것 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고, 만일 인생이 숭고한 것이라 면 그 숭고함을 경험으로 터득해 다음번 여행길에서 그것을 진실하게 보고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이 악마의 것인지 혹은 신의 것인지 이상하게 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인간의 주된 목적이 “하느님 을 영광스럽게 하고 하느님으로부터 기쁨을 누리는 것”이 라고 다소 성급하게 결론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우화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인간으로 바뀌었 는데도, 여전히 개미처럼 비천하게 살아간다. 피그미족처 럼 학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2) 그것은 실수에 실수를 또 얹고, 누더기에 누더기를 겹치는 일이다. 우리들의 최고의 덕은 불필요하고 피할 수 있는 불행의 경우에나 발휘된다. 우리의 인생은 사소한 일들로 허비되고 있다. 정직한 사람

2) 신화에 따르면 키가 작은 피그미족은 해마다 날아와 자신들의 영토를 차지 하려는 덩치 큰 학들과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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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열 손가락 이상을 써서 셈을 할 필요가 거의 없으며, 극 단의 경우 발가락 열 개를 더 쓰면 되고, 그 나머지는 하나 로 뭉뚱그리면 된다. 간소함, 간소함, 간소함! 말하건대 여 러분들의 일을 100가지, 1000가지로 만들지 말고 두세 가지 로 줄여라. 100만 대신에 여섯 정도만 셈하고 계산은 여러 분의 엄지손톱에 하라. 문명 생활의 험난한 바다 한가운데 서 구름과 폭풍과 유사(流砂)와 무수한 사항들이 고려되어 야 하므로, 난파해서 바닥에 가라앉아 항구에 닿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면, 정확한 계산으로 살아가야 하며, 성 공을 거두려면 정말이지 뛰어난 계산가가 되어야 한다. 간 소하게 하고 간소하게 하라! 하루에 세 끼 대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으라. 100가지의 음식 대신 다섯 가지로 줄여라. 그리고는 다른 것들도 같은 비율로 줄여라.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군소 국가들로 이루어지고 그 국경선이 늘 변하고 있어 독일인조차 국경선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독일 연방과도 같다. 국가 자체는, 소위 수많은 내부 적−사실은 모두 외부적이고 피상적인−개선에도 불구하 고, 이 나라의 수많은 가정들처럼, 가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자신이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려버린 채, 계산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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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있는 목표가 결여되어 사치와 무모한 낭비로 파산해 버 린,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진 조직체에 불과하다. 이에 유일 한 치유책은 엄격한 절약과, 스파르타 인들보다 더욱 간소 한 생활과 고양된 목표 의식에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우주의 가장자리 어딘가에, 가장 먼 별 너머에, 아담 이전에, 최후의 인간 이후에 있는 것으 로 여긴다. 물론 영원 속에는 진실하고 숭고한 무언가가 존 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들은 지금 여기 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도 현재의 시간 속에서 지존의 상태로 존재하며, 지금이 아닌 어느 시대에도 지금보다 더 욱 성스럽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에워싼 실재를 끊임없이 흡입해 흠뻑 젖을 때에만 우리는 무엇이 숭고하고 고상한지 를 이해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우주는 끊임없이, 그리고 순 순히 우리의 생각들에 답해준다. 우리가 빠르게 가든 느리 게 가든 길은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하 면서 우리의 인생을 보내도록 하자. 시인이나 예술가가 아무 리 아름답고 고상한 계획을 가졌더라도 후세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것을 완성시키지 못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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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자. 그리하여 호두껍 데기나 모기의 날개가 선로 위에 떨어질 때마다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거르든 먹든 차 분히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자. 손님이 오든 아니면 가든, 종 이 울리든 아이들이 울든 단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 자…. 긴장을 풀지 말고 아침의 활력을 지니고서 율리시스 처럼 돛대에 몸을 묶은 채 고개를 딴 데로 돌리고 그 소용돌 이 옆을 지나가자…. 이제 침착하게 자리를 잡고 발을 아래 로 단단히 박아 넣어 의견, 선입관, 전통, 망상과 외양이라 는 이름의 진흙 구덩이를 뚫고, 지구를 덮은 충적층을 지나 서, 파리와 런던, 뉴욕과 보스턴과 콩코드를 지나고 교회와 국가, 시와 철학과 종교를 통과해 마침내 실재라는 이름의 단단한 바위에 도달해서 “바로 이거야! 여기가 틀림없어!” 라고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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