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이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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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비 메이커즈는 ‘젊은 작가’와 ‘무형문화재 기능 명인(장인)’을 연결하여 장인으로부터 전통 기술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창작 아이디어를 제시해 보는 매칭 프로젝트이다. 현대 예술과 전통 예술은 협업의 기회가 드물고 서로의 생각과 기술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흔치 않다. 그러나 장인이 보유하고 지켜 온 정신과 기술은 현대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중심축으로 삼아야 하는 태도와 정수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만남의 자리가 필요하다. 비 메이커즈는 이처럼 현대 예술과 전통 예술이라는 두 분야의 소통을 제안하고자 ‘만듦’이라는 기술로 교류하는 워크숍을 마련하였다. 만들기는 ‘손(몸)’으로부터 출발하며 기술을 숙련시켜 사물을 이루어 내는 창작의 본질이다. 이러한 본질과 더불어 기술에 관한 탐구, 재료를 향한 집착 등은 창작자라면 시대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주제이자 고민일 것이다. 비 메이커즈는 전통을 지켜온 세대와 현대 예술을 이끌어가는 세대가 만나 서로의 예술을 논하고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신 ― 구 창작자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부산 예술 판의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직조해 나가고자 한다. 비 메이커즈 프로그램은 크게 워크숍과 발표로 구성하였다. 워크숍은 기술을 주제로 한 외부 초청 강연과 장인이 주최자가 되는 기술 워크숍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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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뉜다. 장인으로는 권영관(불화장 ), 김창명(조선장 ), 배무삼(지연장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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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순(침선장 ) 네 분이, 작가로는 강은경(식경험 디자인 ), 김보민(영상), 박민경(회화와 설치), 이재은(무용)이 참여하였다. 총 14회의 워크숍을 마친 후에는 작가들의 창작 계획을 발표하고 프로젝트의 전체 과정에 대한 공개 토크로 비 메이커즈의 매칭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였다.

1.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예배용·교화용 탱화를 주로 제작하는 장인을 말한다.

2. 우리 전통 배인 한선(韓船)을 만드는 장인(匠人)을 말한다. 3. 연을 만드는 장인 (匠人)을 말한다. 4. 침선이란 바늘에 실을 꿰어 꿰맴을 말하는 것으로 복식의 전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침선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침선장이라 한다.

5. 식경험 디자인은 음식(food)을 포함한 식사, 즉 먹는(eating) 경험을 전제로 한다. 식사의 경험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디자인 하는 것이다.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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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

1회차 2017년 7월 18일 화요일

아까 (작가의 포트폴리오 발표 자리에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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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업 (화가, 부산민학회 회장)

여러분들의 이야기에 간섭을 한 것은 여러분들의 생각이 아주 참신한 아이디어도 많고 발달할 수 있는 가치가

나는 화가입니다. 그림을 제대로 그려야겠다 싶어서

상당히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갖고

학교 선생을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그림을 그리기

있는지 콕콕 찔러봤습니다.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내가 모자란 것을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조지 워싱턴

스스로 깨달았어요. 그리고 있는 것이 모두가 아니라는

여러분 잘 알고 있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죠. 조지

것이야. 내가 너무 텅텅 비어 있었어. 쉽게 말하면 가치가

워싱턴이 남북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뒤에 장군복을

부재하고, 내가 그린 그림은 내뿐만이 아니고 미국사람도

벗고 농촌으로 들어갔습니다. 농부가 된 겁니다. 그

그릴 수 있고 일본사람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당시에 미국이 안정되고 민주사회에 제일 기여를 많이

생각했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불교 공부입니다. 불교를

한 사람을 대리석상을 만듭니다. 그 대상으로 누구로

사상과 철학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러면 우선, 절이란 곳을

할 것이냐 논의할 때 모두 다 조지 워싱턴을 만들어야

가봐야지 않겠는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이 절이었다고.

한다 주장합니다. 그 상을 만들려고 프랑스의 유명한

향냄새를 못 맡았고 목탁 소리 더럽게 탁탁하고. 나는

조각가가 미국으로 건너옵니다. 근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양 음악공부를 했어요. 중학교

대리석상을 만들면 로마식의 옷을 얇게 입고 망토를

3학년에는 오르간으로 아무 악보나 가져와도 다 켤 수

걸치고 서 있습니다만 조지 워싱턴 상은 남북전쟁 때에

있었어. 그러니까 불교 소리가 참 듣기 싫었다고. 그런데

장교복과 외투를 걸치고 있습니다. 그 프랑스 조각가는

어느 날 절이 참 좋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향냄새가 어떻게

2주일간 조시 워싱톤과 함께 생활하면서 탐구하고 상을

맡기 좋은지. 그리고 법당에 앉아서 듣는 목탁 소리가 날

만듭니다. 그 조각은 등신상으로 새겨져 있는 모습을

그렇게 청려하게 만들 수 없었다고. 지금도 나는 불교를

보면 미국의 13개 주를 상징하는 둥그런 통과 칼이

철학으로써 떠들고 가치관을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널브러진 모습으로 왼손을 받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하고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조지 워싱턴의 외투에 위에서 세 번째 단추가

전국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굿하는 사람,

떨어져 버린 모습 그대로 만든 겁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춤추는 사람, 장인들. 이 시대에 (참)빗을 만들고 계신

것은 그겁니다. 작가는 단추를 새로 만들어서 붙일 수

어른을 만났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리 말을 해도

있었죠. 워싱턴은 단추를 달아서 옷을 입을 수도 있었죠.

말을 안 하고 계속 빗만 만드시는데 나중에 밤을 배워서

구태여 단추가 떨어진 상태로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어른이 평생을

것은 떨어진 단추 외투를 그대로 남겨주기를 바랐다는

팔리지 않은 빗을 만들고 있는 이유가 뭐냐 이 말이야. 그런

겁니다. 작가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만나면서 그 어른이 살아온 환경, 환경의 역사적

작가들이 치열해야 하는데 사실 그러기에는 앞서서

배경, 그 지방의 역사적 배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업한 우리가 그런 치열함을 보이지 못한 것도 큽니다.

어디 소리판, 춤판, 굿판 판이라고 어디라도 헤매고

그래서 젊은 작가들을 보고 잘하시라고 더욱 담금질하는

다녔습니다. 민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30년입니다.

겁니다. 저는 제일 걱정하는 것은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해 주면 공간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것은 분명한데 항상 새로운 세계만 탄생하길 바라고 있는

6. 화가, 부산민학회 회장. 경남 진해 웅천에서 태어나 국립부산사범대학 미술과 졸업(1961). 1983년 22년간의 중등학교 미술 교사 등의 교직 생활 결별하고 전업

다른 작업을 만드는 겁니다. 이것이 연관이 있는 것도

화가 선언. 그림 주제를 전통문화에서 발견하기 위해

아닙니다. 대가의 작품 세계가 차차 발전되는 단계가

전국의 춤판, 소리판, 굿판, 놀이판 등 민속현장을 찾아

있듯이 작가의 작업 세계도 연상이 된다면 참 좋을 것

그림으로 재현하며 예 기능을 가진 어른들을 만나 그들의 전통예술세계와 삶을 기록해 왔다. 그간 아홉

같습니다. 치열한 것이 안 보이면 안 됩니다. 저는 꾼하고

번의 펜화 개인전과 세 번의 유화 개인전을 가졌으며

쟁이를 상당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전국의 어른들을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 비 메이커즈

찾아다니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맨 먼저 부산일보에

자문위원으로 부산시 무형문화재 기능 명인 추천.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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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오늘 작업 다르고 내일 다르고 그 다음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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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밍업 토크


발표했는데 그것이 ‘내가 만난 문화 지킴이들’입니다.

걸쳐 연구하고 공부한 분들과 대를 거쳐서 하는 분들이

때 만들어 길이 반듯합니다. 우리가 아는 지금의 북성로

워밍업 토크 2 7

2007년경 부터는 부산에 계시는 어른들, 특히 전통을

계십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굼뜬 느림’이라고 합니다.

― 매뉴퓨쳐 북성로 _ 안진나 (북성로 공구 박물관 연구원)

모습까지 북성로의 시간의 발자국을 계속 추적해왔어요.

지키고 계시는 큰 어른들입니다. 우리 문화의 바닥이 되는

우리 문화를 이야기할 때 제일 기가 막힌 말이 있습니다.

기저는 전통문화입니다. 전통문화를 도외시한 문화는

‘곰삭다’. 춤도 곰삭아야 하고 소리도 곰삭아야 합니다. 폭

대구 북성로라는 공구 거리에 공구박물관을 만들고 그

조성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다 빠져나가고 미군의

가치를 잃었다 할 수 있습니다. 부산시 문화예술과에 이

고아서 삭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작업이 어른들의 그

지역의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PX와 헌병대들이 들어오니 자연히 암시장이 형성되면서

어르신들을 기록하면 좋겠다고 진정을 냈습니다. 어른들은

경지를 따라갈 수 있는 작업까지 돼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북성로라 하면 대구에서도 아주 낯선 곳이었어요. 시내랑

성장하게 되었죠. 그 뒤로부터 지도 위에 계속 자료를 얹는

시간이 지나면 돌아가시니 그 전에 예술세계를 기록해야

여러분들이 당장 그리 될 리 만무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가깝지만 사람들이 잘 가지 않았던 곳이죠. 2011년 초

것은 레이어(층)가 계속 쌓여 장소성을 나타냅니다. 대구의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해야 한다는 겁니다. 수세대에 걸쳐 내려오는 꼴, 무형과

카메라 삼각대가 고장이 나서 고치려 했습니다. A/S

땅의 모양은 70% 이상 10년 전과 일치하기 때문에, 지도를

그래서 차라리 내가 나서야겠다 싶어서 찾아 나서기

유형의 꼴을 보고 만나 깊은 속과 내제로 들어가야 한다는

센터를 갔는데 고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듣고

기반으로 지금 남아있는 건물과 빅데이터를 조성하면

시작했습니다. 부산에 민속하면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과분한 청과

나왔습니다. 우연히 북성로의 한 볼트 집에 가서 설마 하는

아카이빙이 조성됩니다. 그 예로, 삼덕상회를 들 수

있습니다. 동래 민속, 수영 민속, 서구 구덕 민속보존회로

기대를 한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을 해도 좋다

마음에 부속품을 물어보았는데 사장님께서 한번 삼각대를

있습니다. 근대 건축물을 원형을 살려 카페로 문을 열었고

나눕니다. 각 부산 지역의 민속을 지켜오신 소중함을

싶습니다. 이 프로젝트만은 작가들의 세계가 투철하고

만지시더니 바로 부품을 가져오셔서 고치시더라고요.

그 옆 건물은 건축사무소로 문을 열었는데, 삼덕상회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우리 부산의 문화와 예술에

신중하고 심오한 세계로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이것이 처음 낯선 곳(북성로)과 나를 연결하는 중요한

근간이 됩니다. 이 근간을 모르고는 문화와 예술을 안다고

이야기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기억이 되었습니다. 북성로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보통

북성로는 한국 전쟁 때 우리가 아는 공구 거리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제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혹시

가장 많이는 포장마차가 나옵니다. 북성로에서 무엇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여러분께 던집니다. 저는

해볼까 고민하며 이 곳에서 관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에 관한 책과 이분들에

되었습니다. 북성로 안에서 사람들과 섞이면서 느끼고

대한 기록들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당대에 수십 년을

관찰하니 그 시간들이 내 몸에 배여 이로 인해 몰랐던 것들을 자연히 발견하게 되는 작업이었죠. 첫 번째, 걷는 것 북성로는 대구역과 빌딩 사이 도심과 아주 가까이 있는 거리입니다. 공구상뿐만 아니라 골목골목 폐지 줍는 분들이 사시는 곳과 성매매가 이뤄졌던 곳, 도자기를 팔던 곳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건물 앞쪽에는 시멘트가 발려져 있어 잘 알아보기 힘들었고 옆면을 봐야 그집의 장식을 비로소 알 수 있었어요. 그것들을 보며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들을 북성로에 관련된 각종 이미지나 정보들을 지도 그리기로 이어왔습니다. 북성로는 대구의 읍성을 가장 먼저 허물었던 공간이라 읍성 모양 그대로 성곽을 따라 길을 내었고, 일제 강점기

7. 북성로공구박물관은 도심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으며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공사를 매개로 설립된 특수한 미션과 목적을 수행할 프로젝트형 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의 시대성을 반영하는 일제건축물(적산가옥)을 원형에 가까이 보전하고, 한국 최대의 산업공구거리인 북성로를 상징할 수 있는 거점장소를 만들고, 쇠퇴하고 있는 북성로 공구거리에 새로운 활력과 새로운 세대들이 깃들 수 있는 도시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세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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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아카이브 북성로의 기술자분들께서는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일했고, 그대로 살아오며 흉터가 많았어요. 이것을 보고 이분들의 생애사를 기술에 방점을 두고 최대한 압축해 비주얼이미지로 잡지에 담았어요. 또 이분들이 쓰시는 용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는데, 이것은 일본말도 아니고 네덜란드말도 아니고 러시아어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술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나타내는 거였고 단순히 일제의 잔재라고 볼 수 없는 말들도 많았었죠. 어쩌면 이것이 기술의 원시성, 물건을 만드는 조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분들을 8

브리꼴레르 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쉽게 기계로 대체되지 않는 손기술들을 많이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기존의 독점화되어있는 원리가 아닌 기술을 공유하는 과정이 기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곳의 기술자분들은 그 물건이 진짜 잘 쓰일 수 있는지, 정말 잘 작동하는지 더 좋게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하시고 이분들 같은 경우는 그 경지에 오르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자기가 만든 기계에 자부심이 있으십니다. 카페로 만들기 위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모습은 공구들이

연결고리를 시사점으로 던져주는 곳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제조업의 쇠퇴로 사라져가는 북성로를 관찰할수록

그대로 고물상처럼 남아있었어요. 이 안에는 1950년대

그리고 공구박물관 북성로를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고 손기술을

한국전쟁 이후부터 어떤 물건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만들었죠. 플랫폼을 만들기 전엔 어떻게 해석을 해야

보며 다음 미래 세대들을 연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정도로 다 남아있었죠. 그래서 여기 있는 것들을 버리지

할까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생각합니다. 지금도 오픈팩토리라는 이름으로 투어를

않고 기증을 받아 공구박물관을 시작하게 됩니다.

원형을 살려 작업을 진행했고, 북성로 공구박물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문법과는 또 다른 문법으로

오픈하기 전 메인 전시를 준비하게 되는데 북성로가

우리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이 자원성과 관련이

잘나갈 때는 탱크도 만들었다는 소리를 주민들께 많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죠. 저는 공부를 하는 사람,

근대 건축물 자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처음엔

들었었죠.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기획하는 사람, 이런 것에 경계를 둘 필요 없이 살면서

적산(가옥)으로 불렀습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와

조사해 보니 한국 전쟁 때 미군의 탱크가 여기 내려

재미를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에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써

한 공간 속에 있다는 하이브리드 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어

관련 부품이 계속 들어와 정말 역사적으로 가능한

지역이 존재하고 그 안에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자산조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기록물들이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탱크를 제작해 첫 메인

같이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공데이터가 되었고, 건축계에서 주민들을 설득해 도면을

전시를 했어요. 지금은 다른 전시를 준비 중이라 탱크를 볼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대구 중구를 연구해 근대건축물

수는 없네요. 이다음 북성로라는 거점 공간이 생기다 보니

궤적의 스토리텔링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판매뿐만 아닌

여러 가지 협업을 진행하기 수월 했습니다. 학생들과도

기술이 뒷받침되어 기술적 문제가 생기면 북성로 안에서

작업했는데 책자 작업과 전시를 통해 지역사회의

다 해결될 만큼 원스톱 기술들이 담겨있었죠. 처음 그렸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죠. 시각디자인 친구들과도

지도에서 더 발전시켜 북성로부터 달성공원까지 1KM까지

작업했는데 공구상 사장님의 집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조사를 해 주민들의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전시했습니다. 집안 자체에 공구상 사장님의 이야기를

북성로의 모습을 개척했다고 생각되는 주민들을 만나고,

담아 냈었죠. 이후 기술생태계에 더 집중하면서 여러

경북대학교와 협업을 통해 목록화 작업을 진행하고,

기술자분들과 만남을 통해 신체, 일과, 애착품 등 물리적인

북성로가 가지고 있는 기술생태계를 완결하고 생태계,

것과 비물리적인 것 모두 접근해보았습니다.

두 번째,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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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원래 뜻은 프랑스어 ‘bricoleur’ 수공일[목공일]하는 사람이나, 현재는 주어진 상황에서 활용가능한 도구 및 지식과 노하우를 갖고 임기응변력을 발휘하는 사람, 미래의 인재상의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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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밍업 토크


워밍업 토크 3

혁신기술이 합쳐져 있고 시대가 중첩되어 있고 체화된 9

― 기술 사회 탐구 _ 언메이크랩 (최빛나, 송수연)

기술과 혁신기술이 같이 있는 거죠. 이런 기술의 중첩에 관심이 많이 있어요.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말을 많이

저희는 활동하면서 ‘커뮤니티를 만들지 않는다.’가 큰

하지만, 우리가 익숙한 사용기술은 천천히 변하죠. 이런

목적 중에 하나거든요. 언메이크(unmake)라는 표현을

부분이 저희 활동에서 늘 생각하려는 부분이고요. 저희는

쓰는데, 만들기는 구체적인 행위잖아요. 그런데 만들지

2007년이라는 걸 굉장히 주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다들

않는 것도 중요한 행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언메이크라는

2007년에는 뭐하셨나요? 이때 뭐가 있었을까요?

표현을 쓰기 시작했어요. 물질적으로 만드는 것 외에도

김혜정: 스마트폰 출시했어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들, 비물질적인 것들로

네, 아이폰이 2007년에 나왔거든요. 아이폰이 판도를

프로그램, 공간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바꿨잖아요. 저희는 이걸 주요한 기술적 사건이라고

정보산업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서 만들기라는

생각하는 게, 정보기술사회를 이루는 여러 가지 것들이

것을 통해 ‘이 시대의 변화를 해석해 보자.’라는 것이 저희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서 개인이 엄청난 데이터를

활동에서 중요한 화두이죠. 제작에서 결과보다는 촉지,

가지고 내보내면서 생겨난 거잖아요. 저희는 2007년이라는

만드는 것이 갖는 매개적인 것과 메커니즘을 해석하는

것, 산업사회에서 석유를 원료로 제조해 구축되는

것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회시스템, 그리고 시스템에 맞춰서 교육을 받고 예술을

사진을 보시면, 계산기랑 주판이랑 같이 있죠. 저는 우리

하고 문화를 만들고 있었던 일을 하고 이후에 큰 변화를

활동을 사물로 비교한다면 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겪어가는 이행 중인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가졌어요. 처음에 이게 나온 이유는 계산기를 계산하고

단순하게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큰 굴뚝 산업이라고

주판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어요. 주판을 가지고 몸이

하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히죠. 그런데 이제 이런 이미지이지

익숙하게 연습 된 메커니즘이 있지만, 계산기가 나오니까

않을까 해요. 여기는 구글 데이터센터예요. 구글

사용하는 거죠. 체화되어있고 사용했던 사용기술이라고

데이터센터가 스마트폰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데이터들이

표현하는데, 당시의 혁신기술인 계산기가 있지만,

클라우드에 날아가서 저장 되잖아요. 이런 데이터센터들이

혁신기술을 못 믿고 사용기술(체화된 주판)을 못 버리는

굉장히 많이 생기고 있죠. 연기는 컴퓨터 서버들을 열을

거죠. 그 과정에서 나온 사물인 거죠. 사용기술과

식히기 위해 물을 흘려 보내고 증기라고 하더라고요.

자기정량화 운동: 감정편

과학은 아직 시각이나 청각, 촉각에 비교하면 발전이 안 되어있죠. 지금은 터치(촉각), 인공지능 비서가 많이 나오잖아요. 아마존에서 나오는 〈알렉사〉. 원통형에 조그만 스피커처럼 생겼는데 정보네트워킹이 되어있어서 물어보면 다 대답해주죠. 이제는 청각이 인터페이스로 10

바뀌고 있죠. 이 인터페이스 가 바뀌고 있는 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수연 씨랑 저랑 감각이 섞이는 부분에 대해 말을 많이 해요. “감각이 아나키다.” 모든 감각이 막 뒤섞이는 거죠. 메이킹의 문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인터페이스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사람 얼굴 감정을 계산해서 데이터화 하죠. 행복, 슬픔 지수 등 8개의 감정 지수가 있고 이를

굉장히 상징적이죠. 두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수치로 해서 보여주는 기술이 나오고 있더라고요. 앞에서

산업사회와 정보기술사회를 설명해요. 저는 가끔 그런

이야기했지만, 인간의 발생하는 모든 것들이 데이터화

생각도 들어요. 도시재생 문화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이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터페이스가

시대의 인프라로 있었던 곳들이 예술가들이 들어가서

나오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우리 얼굴의 감정 데이터를

재생하는 활동들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그런 곳들이

만들어봐야겠다. 타인을 찍을 수 없으니까 제 얼굴을

대부분 산업사회 공장들을 문화시설로 만들잖아요. 그래서

찍었어요. 서울 시내 5일을 다니면서 쇼핑몰에도 가고

저는 ‘다음 세대들은 데이터 센터에서 그런 활동을 하지

시위하는 광화문에도 갔어요. 타임을 10초에 1번 찍히게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해서 많은 제 얼굴을 만들었었죠. 데이터를 보내면 수치로

바뀌겠죠. 기술적인 판타지들이 기계와 같은 연장선에

나와요. 숫자를 가지고 다시 만들어봤어요.

정보를 받으려면 센서가 있어야 하잖아요. 인간에게는 어떤 센스가 있나요. 오감이라고 하면 시각, 후각, 청각, 9. 언메이크랩은 기술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확장하고 축소시키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작기술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 연구, 전시 활동 등을 통해 묻고 있다. 특히 기술 해독력의 교환이 일어나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미각, 촉각.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게 시각이죠. 제가 찾아보니까 85%더라고요. 시각을 많이 사용하지만 과학적 증명이 시각이 많아서 그렇다고

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매핑 랩:

하더라고요. 그 다음이 촉각.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이중도시를 위한 공작》, 《기술놀이 연구실》, 《눈먼

하겠죠. 물리적 감각과 화학적 감각으로 나뉘잖아요.

기술철학 세미나》, 《데이터 공작》등의 자리를 열고 사람들과 관련된 생각을 나누고 있다.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화학적 감각은 재현하기가 힘들어서 후각, 미각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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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물과 사물 사이 또는 사물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상호 간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물리적 매개체를 말한다.

구글 데이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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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밍업 토크


창파: 이전까지 기술을 기반을 둔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

필요한데, 사가는 게 아니라 준비해가는 과정이었고요.

관심 있어요. 사실 저희가 리서치하면서 발견한 것은

어쨌든 기존의 기술에서 지금의 기술사회로 가고 있는

전 안 먹었거든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거 같아요. 이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중간 지점에 두 분이 위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자리가 데이터를 이야기하는 자리여서 물성이 없는

현장에서 적용이 되는가? 즉, 사회적 조건이 큰 부분을

작품도 보여주시면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두

것을 이야기하는 거보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보면

차지하는데 고려되지 않고 심어지는 걸 발견했어요.

분의 관심사가 어떻게 작업에 반영하는지도 궁금해요.

재미있겠다 싶어서 했어요. 팬케이크에 대한 반응은

신촌처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곳에서 스마트하면

아까 식(食)에 대해서 말씀하셔서 이야기하는데요. 얼굴

맛 없어하는 게 당연했고 잘 안 드시더라고요. 이걸로

뭐하나요. 식당이 많아서 대형쓰레기가 많이 나오죠.

감정 데이터를 가지고 작품을 했어요. 데이터 시각화 같은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데이터를 가지고 보수를 받는

청소부 아저씨를 따라다니면서 관찰을 했는데, 아저씨가

거잖아요. 미각화도 해봤어요. 어떤 글을 주고 드는 감정을

시대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를 이야기했죠.

뭐라고 하셨냐면 앱 안 보신다고 그냥 치운다고.

표정으로 지어달라고 하고 그 표정을 사진으로 받아서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이야기

쓰레기통이 어떻게 되어 있냐면 큰 대로를 쭉 배치되어

표정에서 감정을 계산해서 행복, 슬픔 등 데이터가 나오면

했었어요.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있어요. 앱을 볼 이유가 없는 거죠. 아저씨들도 체화된

팬케이크 토핑으로 표현했어요. 너무 괴식(怪食)을 만들

김보민: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청소방식이 있기 때문에 앱을 보지 않는 거죠. 사회적으로

수 없으니까. 올라가는 토핑을 정해서 행복은 견과류,

철학을 들었으니까 이해가 되긴 하는데, 일반 대중이나

배치되는 게 잘못된 거죠. 기술적인 사물들이 공공공간에

슬픔은 젤리 등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미각화 했어요. 아까

이 분야와 떨어져 있는 분들이 워크숍에서 이야기를 듣고

들어갈 때,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의 문제가 사회적 맥락,

데이터가 디지털 사회에서 변환이 자유롭다고 이야기를

‘도대체 왜 할까’같은 반응이 나올까 생각이 들어서. 잘

관계를 놓쳐요. 그래서 이런 쓰레기통이 만들어지는 거죠.

드렸는데, 디지털 상이 아니어도 은유적으로, 일상적인

이해가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센서가 있어서 뭔가를 넣으면 센싱해서 장보기 앱에다가

거로 바꿔보는 동작이 흥미로운 거 같아요. 오히려 거기서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저희가 일반적인 대중보다는 관심

바로 리스트를 올려주는 거죠. 사과처럼 센싱하기 어려운

더 흥미로운 게 생기는 거 같아요.

있는 분, 활동하시는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기본적인

사물은 목소리로 리스트 업을 할 수 있어요. 기술적

강은경: 그럼, 참여하신 분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해는 있으신 것 같고요. ‘왜 하냐.’라는 말보다

문제들이 사람이 관리하는 거보다 보수유지비가 더 많이

팬케이크를 맛없어하셨고요. 모임 자리에서 다과가

‘어렵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고민이 되는데, 항상 쉬운

들 수 있다는 거죠. 2013년 수영만에서 말하는 쓰레기통을

것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질문하거나, 만들 때 난이도 있게 던지고 싶거든요? 오히려 어렵게 질문 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빛나씨 생각은 다를 수 있는데, 매뉴얼처럼 돼 있는 것으로 만드는 건 비슷한 질문, 결과가 나오지만, 어렵게 만들면 자기 생각이나 견해를 더 많이 드러내고 질문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바라본다면, 복잡하게 던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일 난감할 때는 궁금한 게 아니라 쓸데없는 일로 보시는 분이 가끔 있어요. 악의는 없지만, 만들기를 통해 자기 은유를 만드는 게 저희는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분들을 마주치죠. 창파: 그건 아마 모든 예술 분야의 고민이지 않을까요. 기술사회라는 걸 생각해볼 수 있는 제작 작품을 더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가 작년에 똑똑한 쓰레기통과 도시 그리고 모두를 위한 밝은 미래라는 주제로 리서치 같은 연구를 했어요. 저희는 도시라는 것이 중요하고 만들기, 기술, 시민적 합의가 궁금한 부분이거든요. 기술은 우리 삶의 형태를 바꿀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데, 그에 비해서 합의가 없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런 생각이 담긴 작업이었어요.

IOT쓰레기통 아시나요? 서울대, 신촌 이런 식으로 데이터 팬케익: 자기정량화 운동을 위한 밋업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IOT사물인터넷 마을이 지정되면 생겼어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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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했다가 폐기가 되었어요. 다른 경우도 있지만,

잘 몰라요. 기존의 쓰레기통이랑 똑같이 생겨서 그래요.

기술회사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스마트휴지통입니다.’라고 쓰여 있죠. 이런 쓰레기통을

저희도 쓰레기통을 만들어봤어요. 네트워킹기술이

리서치 했는데요. 저희가 하게 된 이유는 스마트시티에

없어서 스마트 쓰레기통이라고 할 수 없지만, 관람객이

관심이 있어요. 인천공항 근처에 송도 같은 도시죠.

지나가면 말을 해요. “스마트하게 해결합시다.” 거리센서,

스마트도시는 인간의 역사가 없는 정보기술네트워크를

적외선센서로 감지하면 말하게 하는 시스템이죠. 서치와

도시 인프라로 깔고 세워지는 거라 서울이나 부산 같은

만들기 워크샵을 통한 공유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죠.

곳에 생기기는 어렵죠. 기본적으로 다른 거는 교통, 에너지, 안전 등이 도시 인프라라 중앙제어가 되어있어요. 송도 스마트시티의 관제센터거든요. 도시의 효율성을 최대한 올릴 수 있는 네트워크 사물들이 촘촘히 들어가는 도시가 스마트도시거든요. 스마트도시에 관한 관심이

10분 중에서 4분만 작동했어요. 늘 그래요. 하하. IOT 사물이 내구성이 약해서 실패하더라도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게 많이 생기거든요. 제작을 통해서 기술적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기술 자체를 공유하면서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쓰레기통으로 간 이유는 시스템이 굉장히 비슷해요. 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은 쓰레기가 차면 감지하는 것이죠. 쓰레기양을 점검해서 미화원분들이 앱을 통해 확인하고 비우는 거죠. 그 이상으로 압축해주는 것, 태양열로 광고도 나오는 것도 있어요. 이런 것들을 센싱해서 컨트롤할 수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연구해보는 것 이런 방식을 통해서 활동을 하고 있고요. 강은경: 어떻게 보면 인간의 경험이랄까?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 중에 한 프로세스의 어떤 부분에서 대칭 하는 구조를 만드시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있는 데이터가 흘러가고 확인할 수 제어하고 관리한다.

기계나 데이터들이 들어간 프로젝트 하실 때 어떤 특성이

스마트도시를 운영하는 기본적인 프레임이거든요.

생기는지 궁금해요. 왜 그것이 흥미를 끄는 것인지

스마트쓰레기통과 원리가 비슷하죠. 스마트쓰레기통이

궁금해요. 예를 들면, 표정, 감정을 반영하는 팬케이크를

스마트도시를 콤팩트하게 보여주는 사물이라고

만드는 활동이 기계나 데이터가 없이도 직관적으로 사람이

생각했어요. 메이킹문화에서 스마트쓰레기통에 많은

느껴서 만들 수 있는 것인데 굳이 데이터나 데이터를

15

워밍업 토크


변화시키는 과정들을 포함함으로써 달라지는 것이

맥락을 전혀 모르는 거죠. 노동자들이 울고 있는 사진을

무엇인가요?

올리면, 남녀가 고개 숙이고 기대어 있는 모습이 나오는

개인적인 호기심과 즐거움이 크고요. 팬케이크 같은

거죠. 패턴만 확인하는 거죠. 형태, 색깔 등 패턴만

경우도 모임의 주제가 데이터 관련 된 거라서 이번에는

확인하고 맥락을 읽지 못한다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먹는 것도 데이터 같은 요소와 음식을 어떻게 연결할 수

하거든요. 기술이 미숙해서라고만 생각할 수 없거든요.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사실 그거는 준비를 많이

이미 기술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못 한 거였어요. 저는 그런 것들을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이

창파 – 저희도 그럴걸요. 도시 재건축하는 사람들이 “왜

있거든요. 음식을 한다면 얼굴의 감정으로 했지만, 음식의

깨끗해지고 도시환경을 좋게 만드는데” 아마 언메이크랩도

재료만으로 훌륭한 데이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고 장인분들과 이야기하는 것들이 환기하게 하는거죠.

이 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어느 농부의 손에서 길러졌고

이야기의 자리를 만들고 생략된 부분들을 찾아서 이어

어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을 데이터로 표현할

가보는 부분이 되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수 있고 그랬을 적에, 먹는 행위나 미각이 달라진다고

아이디어를 개념으로 만드는 건 시간이 정말 오래

하거든요. 그 단계까지 갈 수 없겠지만. 기본적인 탐구의

걸리거든요? 제가 봤을 때, 빛나 씨가 공부를 많이 하세요.

즐거움이 있고 또 굳이 접근을 해봄으로써 발견하는

그래서 맥락들을 연결해내는 걸 참 잘한다고 생각해요.

것이죠. 저희가 한 배우분을 초청해서 8가지 감정을

저는 그게 부족하니까 다른 부분, 기술적인 것으로 해볼까

표현해달라고 해서 그 감정들을 이마, 눈, 코, 입으로

해요. 처음부터 기술적인걸 알진 못했고 기술사회를

나눠서 섞었어요. 8개의 얼굴에서 섞은 거죠. 합성 얼굴인

이해하기 위해서 코딩 공부도 계속해요. 공부하지 않았던

거 아시겠죠? 이 사진을 다시 감정인식을 하는 클라우드에

걸 공부하면서 주변의 환경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보내니까 계산을 해줘요. 해주는데 어떤 감정일까요? 이런

것 같아요. 감각적으로 잘 관찰하고 캐치해내는 사람들이

것을 해보았을 때, 기술이 계량화하면서 맥락이 지워진

있잖아요. 저는 그런 성향이 아니어서 찾아보고 맥락들을

이상한 것을 알 수 있죠. 이런 활동들이 기술이라는 것이

연결해보는 작업을 해요. 이런 레퍼런스가 많아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있나.’ 라는 과정을 개인적으로

하나하나 리서치 하는 과정 말고는 특별히 없는 거 같아요.

점검해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발견한 게

창파: 언메이크랩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분이 열심히

또 있어요. 이런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내는 기술들이 감정,

무언가 탐구하고 활동하시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스추어, 시선으로 개별화 되어있는 거죠. 근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저변에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들을 알고

통합적이잖아요. 기술이 독립적으로 발달하고 있거든요.

나니까 깊이가 느껴져서 다시 한번 더 놀라는 경험이었던

기술들이 분리되어 발달하고 있다는 발견, 우리가

것 같아요. 오늘 언메이크랩 초청 토크가 워밍업

맥락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맥락이 삭제된다는 것. 그걸

마무리거든요.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들과 다른 부분에

발견하는 거죠.

대해 들었지만, 그 안에서 ‘만듦’이라는 것으로 같은

창파: 도시가 나아가는 방향이 대부분 생략, 개인들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저희의 저변을 넓혀주신 것

지워버리고 평균치를 쫓아가잖아요. 그 안에서 역사적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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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이 삭제되고 개인사들이 사라지고 그러다 보니 도시의 정체성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기술이나 도시생태나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 비슷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패턴화하고 정량화하는 ‘바보스러움’이 있는데, ‘왜 이렇게 되고 있지’를 생각 해보질 못하게 되거든요. 저희가 최근에 했던 작업에서 비슷한 게 있어요. 예전에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집을 재현해 둔 순이의 집이라는 재현체험관이 있어요. 거기에 허름한 방에 옷장 하나 있고. 구글이미지검색을 하면 유사한 이미지라고

11.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다른 말. C언어, 자바, 파이선 등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찾아주는 것들은 이상한 호텔방사진이 나와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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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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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기술워크숍1: 불화, 탱화

1회차 2017년 8월 1일 화요일

필이라 하는데 지금은 완벽한 면상 필이 드뭅니다. 붓이

그래서 안 해 또 종이에 기름을 먹여서 오래 보관해요.

잘 만들어지면 3000자를 써도 붓이 그대론데 지금 나오는

지금보다 좀 원시적이지만 그래도 더 친환경적이고 더

붓은 100자만 써도 붓끝이 흐트러져요. 노루라는 짐승

오래갑니다.

알지요? 건망증 심한 사람을 노루고기 먹었다 하죠. 노루가 사냥꾼을 만나면 막 도망가다가 왜 도망가지? 하고 풀 뜯어 먹고 사냥꾼 보면 또 도망가고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건데 그 노루 중에 노루 배꼽에서 벌레들이 들어가서 박제된 걸 사향이라 하는데 아무 노루나 되는 게 아니라서 옛날에 사냥하다가 이런 노루를 잡으면 횡재했다 했어요. 석채에도 보면 발상의 전환만 하면 색을 사용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식물성도 있고 광물성도 있고 동물성도 있고. 벌레가 연지벌레라고 붉은색 벌레 연지곤지 할 때 그 색입니다. 그리고 검은색 같은 경우에는 상아 흙이라고 코끼리 상아를 불에 태워서 가루로 쓰기도 하고 이게 인간의 두발하고 색이 가장 비슷해요. 시골에 그을음을 곱게 갈아서 쓰기도 하고 흰색은 오징어 뼈 그걸로 하기도 하고, 여자들 화장할 때 반짝이는 거 그건 펄 진주 갈아서 쓰기도 하고. 이재은: 얼마나 먹을 갈아야 하나요? 이 붓을 가지고 종이에 그어보면 안 퍼질 정도로 너무 진해도 선이 잘 안 나갑니다. . 저를 소개하자면 제 할아버지부터 불교미술을 해왔었는데

불화를 뭐라고 생각합니까? 불화는 장엄한 불화, 장식용

강은경: 종이를 사러 갔더니 순지랑 화선지가 있다고

할아버지가 스님이셨습니다. 경주 기림사에 주지를

불화, 기록용 불화, 설명용 불화,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불화

말씀하셨는데…

하셨을 때 아침에 보니까 부친이 없어지는데 저녁이면

종류가 많아요. 옛날엔 불화가 아니라 탱화라 했습니다.

순지는 그림 그리는 거고 화선지는 동양화나 서예 할 때.

들어오고 그래서 이상해서 할아버지가 뒤를 밟아보니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불교인데 최초로

이게 채색 종류도 보면 한약재도 많이 들어가고 금박

부친이 저쪽 구석 정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된 사람이 석가모니입니다. 부인이 야수타라고 아들이

순금도 들어가고 다양해요. 검은색 위에 채색을 하게 되면

그림에 호기심이 있었던 거죠. 그 뒤로 부친도 불교미술을

자우라. 자우라가 산스크리트어로 근심·걱정 장애란

색이 안 올라와 또 이런 건 덧칠을 하게 되면 종이가 떨어져

했었는데 내 눈엔 이상하게 보였어요. 맨날 똑같은 그림만

말인데, 하여튼 그런 부처란 뜻을 가지고 있고, 사찰로 가면

나가서 그런 것도 잘 생각해서 그려야합니다.

그리니까 판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한번

불이문 이 있고 그 뒤에 천왕문 이라고 있어요. 동서남북

이재은: 그림을 그리는 순서가 따로 있나요?

그려 보려니까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데 안되더라고.

그분은 뭐 하는 분들이냐 하면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처음이니까 일단 보이는 것부터 그려봐 눈에 띄는 것부터

어렸을 때 만화를 좋아했는데 그땐 그림책이야 숙향전,

1

2

3

지키는 사람들을 사천왕 , 천황 하늘의 왕 종교적 표현으로 4

그래야 그림이 인지됩니다.

칠보전, 엄마 찾아 삼만리 이런 게 눈에 들어 오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있고, 대웅전 에 후불 탱화는 부처님이

박민경: 절에 있는 그림이 벽에 바로 붙이는 건가요?

이거 보니까 그렇게 좋아서 부친의 못 쓰는 붓을 가지고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제자들이 묘사해 그린 것도

틀에다가 그림을 붙여서 벽에 거는 거예요.

1. 사찰에서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공모전도 하다

있고, 불교가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나라에

이재은: 절에 가면 조명도 따로 없는데 느낌이

보니까 미술을 하게 되었지요. 지금 보면 옛날보다 구할

있던 토속신앙이 산신령이 있던 거야. 이걸 불교가

다르더라고요.

2.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불국 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인 사천왕(四天王)이 안치된 전각.

수 없는 재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95년부터 대학에

수용해서 지금 같은 불교가 만들어진 겁니다.

조그마한 빛에도 은은하게 반응하니까 법당에 들어가면

출강했는데 불화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그때 하고 지금과

문방사우란 말 들어보셨죠? 선비들 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림이 더욱 신비롭죠 무엇으로 칠 했느냐에 따라 달라요.

너무 차이가 나고요. 다른 학과도 학생이 없고 폐과가

모여서 하는걸 문방, 먹 종이 붓 화선지 이런 걸 사우라

이재은: 밑그림은 안 그리나요?

늘어가는 거 보니 미래에는 진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세필 면상 필은 족제비 아시죠? 족제비 꼬리

초를 3장을 그리는 게 원칙입니다. 한 장은 그림에

문화재를 잘못 파헤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중에서도 선별을 해서 기름을 빼서 밀랍 해서 만든걸 면상

들어가고 한 장은 사찰에 보관하고 한 장은 내가 갖죠.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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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신(主神)인 네 명의 외호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毘沙門天王)을 말한다.

4. 불교의 선종 계통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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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기술워크숍2: 불화, 탱화, 한지

2회차 2017년 8월 2일 수요일

처음에는 어떤 탱화를 모시는지 탱화의 종류를

안내한다는 의미도 있고…

알아야겠죠?

저쪽에 아귀라 해서 배는 태산만 하고 목구멍은

원칙적으로는 스님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선생님 우리

바늘구멍과 같아서 아무리 진수성찬이 있어도 먹지를

사찰은 이런 탱화를 모시고 싶습니다.” 말합니다. 그림

못하는 귀신, 그걸 아귀 지옥이라 하는데 너무 극단적으로

의뢰가 들어와서 절에 가면 상호랑 크기를 다 정합니다.

표현하면 보기에 좀 그러니까 사실적으로 말고 조금

사찰의 규모, 예배를 드릴 때 어떤 크기가 가장 상호가 잘

순화해서 그린 거예요.

드러나는지를 생각해야 돼요. 그럼 한 분씩 한 분씩 주불

강은경: 음식들이 무슨 음식들이에요?

부처님부터 그립니다. 그걸 딱 반을 접으면 좌우대칭이

사찰에 가면 올라가는 전통적인 음식들이예요. 그림을

돼야 하니까 보는 사람이 편안하고 안정감 있겠죠. 그

보면 이 시대의 생활상이라던지 그런 부분들이 많이

크기대로 종이에 한 분씩 등 긋기를 해서 초가 완성이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됩니다. 완성이 되는데 완성이 된 초가 일반동양화로

창파: 작품의 전체 길이가 얼마나 되나요?

따지면 흰 바탕에 먹을 이렇게 하는 걸 백묘화. 이걸 우리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큰 작품은 홀에 차니까 큰 작품들은

초라고 하고.

일본에 다 가있어요. 일본에서 의뢰가 들어오니까 나도

이재은: 모든 게 창작 그림인가요?

아까워 죽겠어요.

창작인 부분도 있고 창작이 돼서는 안되는 부분도 있고.

이재은: 그럼 거기에 선생님 작품이라는 기록이 있나요?

창파: 초에는 눈동자를 안 그리나 봐요.

화기라 해서 쓰는데 옛날에는 다 쓰게 되어있었습니다.

대충 형태랑 구도를 잡아서 그리는 거죠.

창파: 그림에 다 위치가 있나 봐요.

강은경: 무슨 내용인가요?

좌우 부처라 해서 짝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좌우에

당구 탱화라 해서 예를 들어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주불 부처님이 어떤 부처님이느냐에

5

작가들이 그린 시왕 초

왼쪽부터 강은경 작가, 김보민작가, 이재은작가, 박민경 작가

5. 《시왕경(十王經)》에 나오는 명계(冥界)에서 사자(死者)에 대한 죄의 경중(輕重)을 다루는 10명의 왕.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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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따라서 좌우 부처가 달라지죠. 똑같은 관세음보살 같은

한지

경우에도 정면을 보느냐 옆면을 보느냐 이건 회화적으로

옛날 사람들은 탱화 조성한다 부처님 조성한다 그랬지

변형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내각을 보면 왕 밑에 영의정

만든다, 그린다, 라고 안 했어요. 그만큼 과정부터 중요하게

좌의정 우의정 이런 게 있었는데 불화를 봐도 이런 게

생각했었죠. 세상이 어렵고 그럴 때는 마지막이 종굔데

나오죠. 위치에 따라 중요한 정도가 다릅니다. 큰걸 그리다

요즘 종교가 정치의 하수가 되어 버렸어요. 불화를 안

보면 부분적으로 그려서 끼워 맞추듯이 그려. 마음에 들지

하더라도 꼭 알아줘야 할게 한지가 있죠. 한지. 딱지라고도

않는 부분도 도려내서 끼우고 그래요

하는데 닥나무로 만들었다고 딱지. 한지라는 것은

김보민: 왜 선을 검은 선으로 그리나요?

한국전통종이라 해서 한지. 쓰임새에 따라 이야기를 해서

원본에 잘못된 거 수정하는 의미도 있고 왜 검은 선을

이름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다 맞는 말이예요. 중국에서

긋느냐 하면 채색을 넣을 때 너무 두껍게 넣으면 선이 안

만든 건 당지, 한나라 때 만든 종이를 한지라고 하기도

보이겠지 채색의 두께를 맞추는 용도이기도 하고 예를

하는데 우리 한지와 다릅니다. 동양 3국이 한지를 다

들어 이걸 붉은색으로 칠하면 먹이 빛이 올라오겠죠. 이걸

쓰는 데 제일 우수한 나라가 우리나라 한지예요. 닥나무

보면서 두께를 맞춘다는 거야. 이게 등 긋기 하는 이유고

성분이 전통적으로 세 군데. 경상도의 경주지, 의령도 있고,

제일 많이 들어가는 색부터 채색을 해 보통 붉은색부터

전라북도 한지도 유명합니다. 한지를 만들 때도 닥껍질을

넣고 양록이라고 영어로 하면 에메랄드그린 이걸로

다 벗겨내고 양잿물 볏짚을 불에 태워서 그걸 물속에 담가

채색하고 마지막에 수염하고 모발이 끝나면 이 탱화를

놓으면 물이 우러나와요. 잿물에다가 닥나무껍질을 넣어서

뒤집어서 창호지를 붙이고 그래서 마지막에 화기, 주소를

삶아요. 이걸 고해라고 해요. 한지를 죽을 만드는 거죠.

적고 무슨 산, 무슨 사, 무슨 탱화, 쭉 적고 절에 제일

이걸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니까 요즘 믹서기에 넣어서

큰스님부터 이름이 들어가고 화공, 화사, 양공 이렇게 적지.

갈아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가루가 되어버리거든

배접을 하고 틀을 짜고 색채를 하고 이름을 적고 절에

그럼 강도가 약해져요. ‘지천년 견오백년’ 이게 무슨 말이냐

모신다 생각하면 됩니다.

하면 한지를 정상적으로 떴을 때 천년은 간다는 뜻이고

강은경 작가, 김보민 작가, 박민경 작가, 이재은 작가

불화장 권영관 선생님의 작품을 직접 보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창파(김혜경) 책임 큐레이터, 반달(문건호)큐레이터, 김혜정, 이수인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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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견오백년은 비단이야 비단은 500년간 다는 거니까 한지가

기술을 전수하고 우리나라 제자들도 여러 명 있죠. 무협

더 오래간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나오잖아요? 수제자에게만 물려주고 곁에

왜 한지가 천년은 견디느냐? 산성도 아니고 알칼리지도

두려고 하는 이야기책에서 봤죠? 요즘은 그렇진 않지만,

아니고 중성지이기 때문에

문중마다 특성이 있어요. 불화라는 것은 독특한 게

왜 중성지냐? 반죽을 하고 풀을 넣어서 물질을 할 때

그런 식으로 되어있는 물감을 사서 쓰는 게 아닙니다.

딱풀이라고 뿌리를 캐서 풀어 넣어야 중성지가 되는

그런데 요즘은 사서 쓰면서 자신의 전통이라고 하죠.

거랍니다. 요즘은 화학약품으로 하니까 오래 안 가는 거죠.

(저는) 채색도 만들어서 합니다. 좋은 채색이 무엇인지

옛날에는 자연건조를 시켰는데 지금은 철판에 불을

고민해보면, 자연에 다 있는 것이죠. 자연에서 얻을 수

가하고 해서 한지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지를

있는 게 광물성, 식물성, 동물성이 있겠죠. 단적으로

자세히 보면 비단 같아 촘촘하고 친환경적이고 그런데

식물성은 내구성이 제일 오래가는 것은 그을음입니다. 솥

그걸 정상적으로 뜨는 곳이 없어요. 내가 볼 땐 중국에서

아궁이에서 그을음을 갈아요. 검은색은 (이것보다) 좋은 게

수입해오고. 전통이 사라지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없습니다. 참나무나 소나무를 떼서 하면 정말 좋은 것이죠.

‘솔선수범해서 돈을 얼마를 줄 테니까 제대로 된 한지를

요즘에는 폐타이어로 하고 이러죠. 동물성에서 코끼리

만들어라’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빛을 볼 날이 있지

상아가 대표적이죠. 가루로 만들면 빛깔이 자연스러운

않겠습니까.

색이 나와요. 옛날에 시집갈 때 연지곤지 찍잖아요. 연지가

옛날에는 불교 그림이 우대받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주도가

무슨 색입니까? 붉은색이죠. 본래 어원이 연지벌레 혈액이

달라져 버렸어요. 항상 정상적이고 똑바른 생각만 하고 살

붉은색입니다. 광물성 같은 경우는 제일 쉽게 황토 같은

순 없지만 기본적인 건 애를 써줬으면 좋겠다는 거죠.

것이 있죠. 미세하게 걸러서 쓰죠. 황토가 보존되려면

시대가 지나가면서 정말 지켜야 할 것을 모르죠.

아교를 타서 써야 해요. 콜라겐의 일종이죠.

자본주의사회에서 기본적인 걸 지키는 사회가 되어야

아교를 직접 보여드릴게요. 여러분들 과자 만드는 재료가

한다는 거죠. 이런 부분(진정한 한지를 제작하는 것)은 좀

그겁니다. 먹는 음식에 식용 젤라틴이 그거죠.

지켰으면 좋겠어요.

창파: 이거는 직접 만드신 건가요? 이거는 소가죽을 따로 구하기 힘들어서 사서 씻고 만든

풀삭히기, 아교, 석채

거죠. 여름에 하면 상하니까 겨울에만 해야 해요. 그냥

한지를 가지고 배접을 해야죠. 20, 30번 배접해야 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만들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포기해요.

한지를 한 장 두 장 붙여야 해요. 풀이 너무 강해도 안

약탕기를 응용해서 만든 거죠. 온도가 낮으면 어묵처럼

됩니다. 밥풀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그 다음은 찹쌀풀.

흐물흐물해져요. 여러분들이 어디서 들을 수 없는

이건 잘 붙긴하지만 강도가 너무 세요. 밀가루도 세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 이야기해주는 거죠.

센데, 순화를 시켜야 해요. 그래서 밀을 삭히는 거죠. 이런

강은경: 왜 삼각형인가요?

삭히는 과정을 보내면 강도를 조절하죠. 생 밀가루에는

모양은 상관없어요.

단백질이 많아요. 삭히는 과정에서 벌레가 꼬이는 요소를

이재은: 채색할 때 쓰시는 거라고 하셨죠?

없애버리는 거죠. 콜라겐 성분도 다 없애면 접착력이

네. 농도도 잘 조절해야 해요. 굉장히 어려워요.

약해지지만 그래도 좋죠. 요즘 보면 본드를 물에 타서

창파: 예전에 제가 학교에서 채색 배울 때 아교 같은 걸

배접하는 거죠. 밀(풀)보다 편하니까 작품에 대한 책임감

섞어서 썼어요.

없이 그냥 쓰는 거죠. 지금은 밀을 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런 거는 방부제가 들어있죠. 어느 날 본드가 좋다고 해서

밀가루를 사서 해요.

아교가 없어졌죠. 그러다가 통도사 박물관에서 일본학자를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생풀을 끓여요. 적당한 자리에

불러서 아교 만드는 법 강의를 했어요. 사람들이 막 모여요.

방치를 시켜요. 그럼 곰팡이 피고 막걸리 냄새도 나요.

국내에서 아교 만드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일본의

그 위에 곰팡이를 걷어내고 밑에 있는 것을 끓이면

유명한 학자를 굳이 불러서 하는 거죠. 인당 15만 원씩

풀이되는 거죠. 유황 풀 들어 보셨습니까? 이런 거는

강의비를 냈죠.

지금 불화하는 사람들도 모릅니다. 일본은 대를 이어서

자연에서 다 얻을 수 있어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황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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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걸려 만든 밀가루 풀

붉은 석채(주사)의 원료

직접 만든 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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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이야기를 돌아가면 황토 쓰는 건 까다로워요. 잘 부러지고.

못생긴 진주는 갈아서 그림을 그리지만, 진짜 좋은 빛을

아주 옅게 써야 할 때, 쓰죠. 특별하게 다른 채색하고

내려면 좋은 진주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로또가 되면

혼합해서 쓰기도 해요.

진주를 많이 사서 직접 갈아서 써보고 싶어요. 지리산 정각사는 여러분들 나이보다 어렸을 때, 작업했어요.

석채

여러분들이 등 긋기만 했는데, 시간이 넉넉했으면 좋은

석채이야기를 할게요. 석채보다는 천연 채색이라고

작품을 만들었으면 작품을 볼 때 더 느끼는 게 많았을

해야 더 맞아요. 그 안에서 석채도 있고 동물, 식물성이

겁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잘 모르죠. 옛날에 입자를

포함되죠. 석채를 어떻게 쓰냐면, 보석 있죠. 금, 은,

선별하는 과정이 3가지이죠. 특별한 채를 가지고 해야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진주 이런 거로 다 그림 그릴

하죠.

수 있습니다. 그 비싼 거로 그림 그리려니까 좀 그렇죠.

강은경: 그러면 쓰고 싶은 색에 따라 조절하시는 건가요?

여기서 석채를 쓰는 이유는 정말 혼을 불어넣어서 몇

그렇죠. 여기서 더 선별하면 색이 다르겠죠. 아주 미세한

년간 작업했는데, 재료가 열악해서 또는 내구성이 없어서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아요. 돈이 매우 많았으면 좋겠어요.

작업을 못 하면 의미가 없겠죠. 특히 종교에서는 색깔에서

지금은 실력이 있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돈을 주면서

느끼는 기분 좋은 ‘기(氣)’같은 것이 중요하죠. 실제로

가르쳐주고 전수하고 싶어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보석의 원석은 엄청 비싸거든요. 불화에서 쓰는 석채는

적이 없는데 몇 년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술,

준보석에 해당하는 것을 쓰죠. 불화에서 붉은색을 가장

문학 이런 곳에서 필요한 사람을 잘 선별해서 지원을

많이 쓰는데, 붉은 돌(=주사)이 있어요. 경면주사라는 말

해줘야 할 것 같아요.

들어보신 적 있어요? 주사도 종류가 많아요. 진짜 좋은 주사는 외관은 은빛이 나고 갈면 붉은빛이 나요. 저렴한 것부터 비싼 것까지 다양하게 있어요. 부적 쓸 때도 쓰는데 아마 싼 거 쓸 겁니다.

여러가지 석채의 종류들

우리가 색의 3원소하면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이 있죠. 빨간색 했으니까 파란색. 남동석이라고 있어요. 가격이 아주 비싸요. 잘 팔지도 않고. 과거 유럽에서는 금이나 다이아몬드보다 비쌌다고 해요. 원석은 없고 가루만 있어요. 종류에 따라 색이 다양해요. 원석 중에 가장 비싸요. 보면 신비롭죠. 안타까운 건 많이 구할 수가 없는 거죠. 황색은 금을 많이 사용했어요. 그런데 비싸니까 석황을 썼죠. 금빛 대용으로 쓰죠. 그냥 그림 그릴 때, 흰색, 붉은색을 섞으면 분홍색이 되죠. 석채는 개념이 다릅니다. 원색이 있으면 가루를 낼 때 원색의 색을 가장 그대로 가질 수 있는 굵기가 있어요. 그것보다 고와지면 색이 옅어지죠. 다 그런 건 아니고 주사나 석록 석채 같은 것이 입자크기에 따라 색이 달라지죠. 석채로 그림을 그릴 때는 아교하고 석채 굵기에 따라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색을 만들 수 있죠. 원석만큼의 색을 내기 위해서 모래알처럼 굵어야 하는 것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리지는 못하겠죠. 입자가 너무 굵어서. 하지만 석채는 붓으로 찍어 올리는 기법으로 사용해서 그리죠. 그만큼 정신적으로 집중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죠.

권영관 불화장이 작업하고 있는 석채의 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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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현장탐방1: 영도 영화사

2017년 8월 22일 화요일

왼쪽에서부터 강은경, 김보민, 박민경, 이재은 작가

왼쪽에서부터 창파(김혜경)책임 큐레이터, 반달(문건호) 큐레이터, 이수인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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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현장탐방2: 지리산 적조암, 산청 정각사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2017년 8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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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장 권영관


지연장 배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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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장 배무삼


기술워크숍1: 동래연

1회차 2017년 7월 12일 수요일

배무삼 지연장이 있는 전통연 보존회 사무실 작업장 안의 여러 종류의 얼레들이 있다.

배무삼 지연장이 지금까지 만든 동래연들

연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배무삼 지연장

창파: 연을 날리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세요?

영산, 산천, 경주, 작년에 처음 연 강릉, 평창, 서울, 양평,

나도 날아봤으면 하고 만든 것이 연입니다. 우리나라도

남풍이 불잖아요. 항상 바람이 불지. 연은 계절과 큰

보수동에서부터 연을 날리고 있었어요. 1973년도부터

판문점 등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연의 역사가 참 길었는데 일본강점기 때 다 사라지고 도둑

연관성은 없지만 대신 겨울바람은 조금 일정하다 해야

MBC 주최한전국연날리기대회에 출전하게 됐는데 그때

이렇게 자꾸 늘긴 느는데 프로급(4~50명)이랑

맞아버렸어요. 대한 연 협회 사이트(http://cafe.daum.net/

하나 여름에 비해서.

동래 어르신들(철도관 한태정 사장님, 문장원 이사장님)과

참가자(6~70명)이 따라다니면서 연을 날려요. 그런데

yeonssaum)에 들어가면 연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창파: 연을 만드는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인연이 되었죠. 그때부터 부산 연 동호회에 가입하게

부산에서 제일 많이 하죠. 그래서 연에 각 지역의 특색이

창파: 배무삼 연이 선생님이 만드시는 연 인가요?

잘 만들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주문받아서 하는 연은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이사장님이

사라지고 연의 규격 같은 게 부산이 모태가 되었어요. 모든

그건 문양에 따라 달라요 연 모양이 아니라요. 내가 학교

빨리도 가능합니다. 연살 작업이 되어 있지 않은

돌아가실 때 여관으로 나를 불러서 경주대회를 책임지라

연날리기 규정, 기법, 규격은 정해져 있지만, 연의 문양은

다닐 때 그림을 배웠어요. 문양은 자기만의 스타일이라고.

상태에서는 하루에 5개도 힘들 것 같아요.

하시는 거야. 난 그때 총무보조 비슷하게 하고 있었거든요.

각 지방 특색이 있어요. 이게 또 통영이 유명하죠.

이걸 어디 가서 띄워도 문양을 보고 아, 이건 누구 연이다

나한테는 그 말이 유언같이 들렸어요. 자기 아들도 아닌데

세계의 어느 나라나 연이 있습니다. 연에 문양이 가운데

하고 누가 연을 띄우고 있는지 알 수 있죠. 그래서 연의

그래서 그 대회도 이어왔죠.

방구멍이 있는데 이런 연은 한국 연 밖에 없죠. 덕분에

문양을 보고 이름을 붙이는겁니다. 그래서 내 연 문양을

그래서 이게 동래 전통 연이 된 거예요. 내가 2대째. 부산에

장력이 있어 힘이 좋고, 튼튼해요.

보고 배무삼 연이라 하는 거예요. 자신만의 문양을 뽐내는

피난민이 많았지만, 동래는 본토 사람들이 많아서 부유한

남미랑 유럽은 꼬리연이 속도가 엄청 빨라요. 일본 연은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래 연은 종이도 좋고 실도

방구멍이 없는 사각형 연이고 색채랑 그림 위주예요. 중국

정만영: 겨울에 연을 참 많이 날렸던 것 같은데 연이 계절과

좋은 명주실과 얼레를 사용했어요 그때부터 어르신들

연은 천을 사용한 모양 연이고. 베트남도 중국처럼 모양

관계가 있나요?

따라다니면서 벌써 47회째 해운대백사장에서 연대회가

연이더라고. 매미, 나비, 용 등 많습니다.

농사짓고 사는 민족이다 보니 모든 민속놀이가 겨울에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삼락체육공원에서 주말마다 연을

그리고 대회에서는 규격 대형이 60부터 90, 중형은 50부터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어요. 농경사회인 우리나라는

날리고 있죠. 동래연이 또 특이한 게 연살이 다른 지방은

70 소형은 40부터 50인데 연이 길다 보니까 4:3비율로

동지부터 정원 대보름까지가 지금으로 말하는 방학이죠.

납작하지만, 부산은 타원형으로 만든다는 거죠

자꾸 짧아지고 있어요. 짧을수록 빠르죠. 연날리기

이때 아니면 농민들을 모을 수 없었던 거예요. 요즘도

창파: 예전에는 연 날리는 분들이 많았나요?

대회가 요즘 속도전입니다. 그리고 연이라는 글자가 다른

밭농사 짓는 사람들은 뭐 일이 끝이 없는데 그땐 농민들을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많아요. 사천, 진주, 통영, 부여,

나라에는 뜻이 없어요. 한국은 하늘에 나는 새를 보고

언제 다 모으겠어요. 겨울은 북풍이 불잖아요. 여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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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장 배무삼


기술워크숍2: 가오리연, 방패연

2회차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9월 5일, 9월 6일

방패연은 앞에서 띄우기가 힘들어요. 상대가 10미터앞에 가서 띄어 올려서 바람을 받으면 아주 얌전해져요. 꼬리는 까끌까끌하는데 이건 얌전히 있습니다. 부산에 있어 꼬리연을 까뿔쪽지라고 하고 경상도말로 까분다고 방패연은 참연이라고 합니다. 참하다고 까분다고 하는게 경상도 말이지 ‘촐랑거린다’ 라는거 ‘까뿔쪽찌’ 그래 우리 경상도 말이 무뚝뚝하면서 정감가는 말이 많아요. 인제 잘 만들고 못 만들고가 아니고 배의 균형을 봐야해요. 띄울 때 지금도 조금 펴주면 됩니다. 강은경: 여섯개가 다 붙어야해요? 바닥에 여섯개 살이 다 붙어야죠. 만들 때 힘조절을 잘했다는거예요. 띄울 때 잘 떠 형이 잡혀서 연이 아주 섬세하거든요. 장발이 보이죠? 여긴 색지나 다른걸 붙여도 됩니다. 김보민: 되게 얇아도 무게가 있어서 균형을 잡아준다고요? 그게 별거 아닌거 같아도 균형이 잡힙니다. 아까 왜 이렇게 새치를 매어났냐에 이 줄이 핸들과 마찬가지야. 연이 일로 돈다면 핸들 한가지야. 반대 줄로 당겨주면 균형이 잡히죠? 그러면 오른쪽으로 돈다면 요기다 묶어줘요. 매듭이 생기죠? 매듭이 생기면 짧아져요. 목줄로서도 조절하고

이 살을 붙이고 떙겨 붙이고 그 다음 기둥살, 그 다음에

감아 매는 건가요?

아까처럼 연살을 휘어서도 조절합니다. 연살이 휜 건

허리살이예요. 이렇게 하면 동래연을 어떻게 만드는지

연은 맞춰서 떙겨 줘야해. 이고리를 ‘홀챈다고’ 하는거야.

반드시 원위치가 됩니다.

알아야 하니깐

고리를 들어올려야 해요 4개를 잡고 그렇게 올려야합니다.

옛날엔 안 붙이고 접기도 했어요. 돌면은 여기에 꼬리도

박민경: 그럼 이렇게 붙이면 그냥 붙인거와는 어떤 차이가

다 맞아졌죠? 하나는 조금 길고 하나는 짧게 해야하는데

붙여 애들 띄우라고 무겁다면 꼬리를 조금식 자르고

있나요?

뒤에서 앞으로 한번만. 이렇게 실이 나오죠? 이게

세개를 다 붙였는데 길게 붙인 것도 있고 지금은 방패연을

모양도 그렇고 외대살을 타원형으로 해가지고 뒤 집어서

버릿줄입니다. 활 시위할 때 활 그 줄을 버릿줄이라고

동적이라고 해요. 그래서 꼬리가 없을수록 동작이 빨라요.

대가 맵시가 있고 강해지죠. 대를 반대로 휘는 것과 반대로

해요이 소리가 날수록 좋은겁니다. 활 튕기는 소리. 연 띄울

지금 연들, 70년도 이후부터는 꼬리가 없습니다. 장발이

휘는 것과 강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때 붕붕 소리를 나게 하려면 이렇게 하고 날리면 소리가

없어졌어요. 전엔 다 있고 없고 했는데 왜 그게 없어졌냐면,

연 만드는 것이 새 목에 줄을 묶는다고 이야기 했잖아요.

납니다. 이거 잡을 때 엉키면 안됩니다. 두 줄 내려 온 것

동래 연은 과거에도 있었어요. 동작이 지장을 준다고 해서

새목에 줄을 너무 꽉 묶으면 숨이 차서 못날아가요.

중에 한 개를 짧게 짤라주세요. 요래 가지고 밑에는 오른쪽

동래에선 안 붙였어요. 70년도 이후는 안 붙여요. 붙은 건

이 실을 두 가닥으로 잡아봐야 합니다. 하나는 오른손

왼쪽 관계없이 연 살 위로 빼서요. 자, 각을 보면 가오리연

70년 전이고.

잡고 하나는 왼손 잡고 밑에 거는 손가락에 걸쳐가지고

각이랑 같아요 이건 대각선으로 올라갔잖아요? 그러면

창파: 선생님, 연들의 실은 전체 길이가 어떻게 되나요?

쭉 댕겨봐요 두 가닥을 잡고 끝과 끝을 잡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했을 때 밑줄이 길면 어떡해요 이렇게 잡았을 때

두 팔 반 정도네.

해서 옆으로 해서 실이 7CM 나오게끔 한쪽을 모아서

바람을 흘려버려버리고요 너무 서 버리면 올라갈 각이

이게 인제 연 시합할 때 쓰는 연 규격인데 떨어져 박히고

왼쪽 모서리 앞에다가 얹어주세요. 그럼 실이 이렇게 뒤로

없습니다. 꼬리연이랑 같습니다. 좋은 각이 17도예요.

하면, 병원가서 깁스 하는거예요. 지금은 균형은 안

갑니다. 한 가닥은 앞으로 오고 뒤로 하면 이런식으로요.

비행기나 새가 나는 각도랑 똑같아요. 과거엔 연살이

뒤집어지니깐, 여기 들어간 연이 휙 돌아가요 원체

이렇게 해서 이대로 얹어 오른쪽으로 귀에 모서리에

무르고 해서 바람이 세면 뒤집어 졌습니다. 이걸 방지하기

확 당기니깐, 여러분은 그런게 없으니깐 뒤집어 지지

놓아봐 뒤로 감아주세요. 그 다음부터는 홀쳐 매세요

해서 버릿줄 뒤에는 활버릿줄 요대로 가운데로 해서

않는거예요. 굉장히 강해져 버립니다. 가운데 안 내려가고

어렵죠?

그대로 땡겨주어요. 안 땡겨질정도로.

활버릿줄 묶고 안 내려가는거예요. 여기를 묶느냐 여기는

김보민: 무슨말씀인지 모르겠어요 하하, 홀쳐 매는 건 손을

바람이 세거나, 약할 때 이 밑줄로 조정을 하는겁니다.

강해야 하는데 똑같이 나와 버리니깐 강하게 안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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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장 배무삼


이 연을 보면 여기도 부러져 있고 그래서 이런 거는

어디에도 없는. 창작연은 만들어놓고 좋아 하는 연, 띄워서

뭐라할까요? 우리 안에서 살아야지 야생으로 돌아갈 수

감상하는 용. 동남아쪽으로 가면 중국문화가 확산이 되고

없은…

창작연이 많고, 일본은 한국연이 많이 들어가서 기능은

창파: 연이요, 보통 한번 날리고 부서지면 버리 잖아요.

없는 대신 색채 위주, 그림 위주로 많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연은 1회용은 아니겠네요?

유럽으로 가면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덴마크는 델타연.

그래서 다 회수합니다. 명주실 30미터 모아서 감아 논 것이

천으로 만든 큰 연들, 곰이라던지 낙하산연이라던지

빨강 노랑 실입니다. 목줄 맬 때 줄 맬 때 쓰는 거예요.

무지개연 같은 돌아가는 연들이 있어요.

창파: 목줄 맬 때 하는 실 말고 끈으로 하는 실은 또 달라요?

제가 75년돈가 76년도인가, 일본사람이 해운대 백사장에

그때 쓰는 실 얼레를 가져왔어요. 사각연. 이 얼레

왔는데 가오리 연을 연결해서 띄우는 걸 보고 방패연

나무들이 그냥 같아도 다 기름을 먹인 연입니다. 오동나무

연결해서 띄우는 것을 만들었어요. 내 자랑 같지만,

기름이라던가 동백이라던가 5천원 하면 소주병 하나

최초로 한국의 연결연을 만들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나오는 기름들. 그 이름이 뭔가 있는데…

가오리 연결연이 많이 나왔어요. 이제 축제장 가면

스며드는 그 기름하면 될 거예요. 코팅 되는 건 안좋아요.

많죠. 세계연이 그렇다 치고 방패연은 연모양은 같은데

습기에 숨을 쉬어야 하니깐.

만드는 사람들, 모양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것이고요.

아까 방구멍을 뚫어 놓은 것은 예전엔 종이 반을 접어서 다

방구멍을 잘라 먹칠을 해서 중심살 위에 붙이면 먹꼭지,

오려냈지요. 이건 태극선 인데, 연 크기에 따라서 이걸 대고

파란걸 붙이면 청꼭지, 노랑거는 황꼭지 반달모양으로

그려요.

잘라 붙이면 반달 청꼭지, 밑으로 칠한 건 치마연이라고

처음엔 콤파스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칼날이

하고 까치연이라고도 해요. 통영가면 이 충무공 임란때

있거든요. 지금은 밀리잖아. 가운데 칼날이 왔다 갔다 해서

신호연으로 썼다는 것이 많았다는 통영사람들 주장인데

종이를 대고 여기가 칼날인게 신기하다. 종이를 눌리면서

문헌에 없는게 안타깝고 문헌에 몇 페이지라도 나왔으면

자르는거야. 요기 칼날이 들어가 있어요.

통영연이 기네스북에 올라온 유일한 연이었을텐데

우리나라는 얼레라고도 하고 자세라고도 합니다. 경상도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3일동안인가? 연 만들기 하면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이 6.25 이후라서 몰라요.

자세라고, 위로 올라가면 얼레라고 합니다. 이 각이 4개는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 어떤 상상을 하게 될 것인지는

그 사람들이 계보가 없다는 것, 구전으로만 내려

사모, 6개는 육모라고 해요. 실이 빨리 풀릴 때 각이

모르겠지만 연이라는게 그렇습니다. 아주 단순하면서

온다는거죠. 살아온 어르신들을 그래서 동래연 계보라는

적을수록 빨리 풀리잖아요. 그래서 이모 사모로 개발 되는

파고들어가면 좀 복잡하다는 거예요. 또 자기가 직접

건 제 스승 앞에 최수용씨라던지 한태전씨, 박보은씨,

것 같아요. 8모에서 12모까지 나와요 요즘은요.

만든 연을 띄우는 것, 그 연이 뜰 때의 감정을 느끼실거고,

문자은 씨 녹천당 사장 등 6.25 이후에 만난 사람들,

창파: 연을 만들어보니 대살이 안에 다 들어가는데

역사도 중요하고 문화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즐거움이

이사람들이랑 같이 연을 날리면서 동래연 계보를 정해

허릿살도 얇고 그렇잖아요. 어떤 건 납작 하기도 하고 그게

들어가야해요. 그게 없으면 레저가 안되는거 같아요.

버린겁니다. 문자훈 동래연 이사장이 되어 전언이

인상적이었어요.

이것도 일종의 레저활동 취미 스포츠라고 하는데, 같은

되어버렸죠. 인제 우리 방패연의 종류가 다양해지면

연을 어떻게 만들다보니 되었겠죠? 바람 맞을때 덜

연동호회라도 같이 마음이 맞아야 확산되고 하는데, 연에

연종류 200백개 정도, 나비 그리고 태극선 붙이고 무궁화를

당겨지잖아요. 바람을 흘려 주기 위한거고 새도 내려올 때

대한 레져 스포츠가 확산이 안되어 있어요. 연을 이용한 건

그리면 무궁화 곰 그러면 여러문양이 나오죠? 만드는

날개를 접잖아요. 풀때는 편해지거든? 비행기가 이착륙할

확산이 되는데 낙하산이나, 스카이 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사람의 문양에 따라 달라지고 조금씩의 다름은 있습니다.

때 날개에서 한 가닥 날개가 나와요. 그 날개가 내려오면서

같은거. 이런 것이 다 연을 이용한 스포츠거든요. 그런데

연대회를 부산서 개최하면서 연 모양이 중구난방이었어요.

오그려져 바람을 막는겁니다. 연에도 그런 과학적

이런건 활성화 되는데 가장 단순한 기본적인 연문화는

90년도에 추진하면서 소형연은 40-50을 하고 대형연은 60-

방식이이 있나 아닌가 생각합니다.

밑에 묻혀버린다는거죠. 우리 수업하는 목적은 그런

75 로 규격을 정하고 날렸습니다.

대형할때는 60수, 소형은 38수를 하는데 여기서 수라는 건,

뜻이라 아니라 난 생각하고 싶고, 여러분이 몇 명 아니지만

대형연 소형연에 있어서 연들도 점점 작고 길이가

명주 누에 한가닥 요게 200데니아라고 해요. 굵기가. 이게

앞으로 나가서 얼마나 홍보가 되고, 또 창업의 아이템이

짧아지기 시작해요 40-47까지 작아지고 있습니다.

30가닥이 모여 꼬인 실이 30수 실이예요.

될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뿌리가 있다는 것을 내가

연 만들면서 느낀거 말씀해주세요. 쉽게 말해서 수업

이재은: 그럼 연 날릴 때는 실 중에서는 명주실을 쓰나요?

강조하는 것이고 연이라는 것이 종류가 꼬리연, 방패연,

끝났으니, 질문해 달라는 거예요.

용도에 따라 다릅니다. 탄소섬유는 전혀 늘어남이 없고

창작연. 꼬리연은 세계적으로 다 날리고 있다는 것과

박민경: 얼레가 왜 사각 육각인지 궁금합니다. 기능이

불에 타지도 않고요. 그런실은 방탄망이나, 방탄 조끼로

방패연은 한국만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연이예요. 세계

다른가요?

소재를 쓰죠. 면이 좋고 연실은 나이론도 있고 목실도 있고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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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무삼 지연장의 다양한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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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장 배무삼


열에 어느것이 제일 강하냐에 따라 달라요.

펴지죠. 에어로빅이나 요가 같은거예요. 신선한 공기

마찰에 열에 강한게 명주실이예요. 신축성이 있어야

마시죠? 가을에 햇빛에 일사광이 진하니 선크림 많이

좋습니다. 이런걸 보니 명주실이 제일 좋아요. 연싸움을

바르고 나와야 해요. 가오리도 방패연도 만들어 보셨고,

하려면 코팅을 먹여야 하잖아요. 사기먹인다라고 왜

이렇게 옛사람이 만들어서 날렸구나 할 수 있게 동래연

하냐면 예전엔 유리가 없었어 사기그릇을 빻아서 연실에

전통방식으로 만든 겁니다. 이해도 안되고 어렵기도

입혀서 잘랐어요. 지금은 사기 먹인다 해요. 전에는

하고 목줄 만드는 것도 어렵고 하지만 이게 동래연의

광석가루 쓰는데 유리가루가 실제 있어요 야간에 도로

기본이구나라고 인식하시고, 색채도 나오고 만드는 모양도

바닥에 빛나는게 유리가루거든요? 그게 몇백번 굵기에

달라지고 그걸 수없이 만든 것이거든요. 여러분은 내가

따라 번호가 있어요. 400, 600 이렇게 있는데 그게 굵기를

몇 십년 한걸 단 세번 만에 한거예요. 내가 할 땐 이렇게는

말하는 번호예요. 그 강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안했거든.

김보민: 그런 실을 손으로 만져도 상관없나요? 찹쌀풀, 아교 등 여러가지 접착제로 풀을 다 썼는데, 카슈라는 접착제가 나왔어요. 연 붙일 때 목공용 본드 나오듯이. 카슈는 물기에 배합을 해야 굳어지거든요. 그리고 3차에 유리가루를 입혀요. 만져보면 광택이 있어요 실도 탄력이 있고 휘었을 때 안 부러진다는거야. 매끈한 것 같아도 코팅되어 있는거예요. 이렇게 했을 때 안 꺾인다는 거예요. 풀었을 때 안 풀어진다는 거죠. 요게 4가닥 실입니다. 4가닥이 몇수나면 10가닥인가,

9가닥이니 처음에 코팅했더니 딴 실 보다 비싸요. 상주에 실크 단지가 있었는데 실패했거든요. 왜냐면 누에 기르는 사람도 없고 단가도 안 맞고. 닥나무도 마찬가지예요. 농사가 다 하우스로 되고 하니 외국산 들어오니 토종은 별로 없어지고 단가 약한 것으로 쓰려하고…그러니 앞으로 경제가 안좋은 것은 없어질 거야. 연날리기도 없어질 거야. 반달: 초등학교때는 교과서에 연날리기가 있어서 비닐로 된 연을 사서 날리고 했는데, 그래서 학교에서 만들어서 날렸던 기억이 었거든요. 지금은 뭐 하겠다 하면 안된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 무엇을 하겠다 하면 금액에 따라서 교육청에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과정이 귀찮으니깐 안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교장선생님 재량으로 하는 곳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체험은 없는 곳으로 진행하는 부분이 많아요. 연을 띄워보면 알지만 누군가 자기가 만든 연은 어떨 때 기분이 좋습니까? 물었어요. 자기가 만든 연을 띄울 때 무아지경이 됩니다. 동심이고 나이 많고를 떠나서 그냥 연하고 노는거죠. 연을 날리면 컴퓨터만 보고, 아래만 보다가 하늘을 보니 목을 치켜들죠? 연 날릴 때 만큼은 연을 본다는 것은 눈동자를 움직이고 굉장히 좋아져요. 어깨를 올렸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올라갑니다. 움직여지면 어깨가 올라가면 자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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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장 배무삼


현장워크숍: 삼락공원 부산연날리기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3회차 2017년 9월 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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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장 배무삼


위쪽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강은경작가, 박민경작가, 이재은작가, 박미라매니저, 이수인인턴, 김보민작가 아래 오른쪽 방향으로 반달(문건호)큐레이터, 정만영 초량1925대표, 배무삼 지연장, 창파(김혜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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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장 배무삼


조선장 김창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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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장 김창명


현장워크숍1: 나룻배 제작 현장 답사

1회차 2017년 7월 5일 수요일

: “옛날에 하단에서 명지로 가는 나룻배가 150개가 있었어요.” : “일을 시작한 것은 1957년부터 시작했으니까 60년 정도 했습니다.” : “안쪽에 하단포구라고 비석이 세워진 곳까지 물이었으나 지금은 다 매립지입니다.”

: “배 만드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연세도 많고 아프시기도 하고 돌아가셔서… 돈벌이도 안 되기 때문에 작업하기 힘들죠…”

: “약 40년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선배님하고 같이 했죠.” : “부친께서 쓰던 공구통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 : “도끼, 망치, 나무를 이어주는 것들을 다 쓰고 있어요.” : “이걸로 다 배를 만드는 겁니다.” : “6개월 정도 걸려요, 나무 건조시간이 오래 걸려서… 배를 띄우려면 나무를 건조시켜야 하니깐요”

: “경기도 1명, 전라도 3명, 경상도 1명(김창명 장인)있습니다. 조선장이 힘들다고 다른 일에 비해서요”

: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조선장 일을 하셨어요. 학교 마치고 아버지 일 을 도우면서 시간을 보내니 자연스럽게 조선장 일에 몸을 담게 되었죠. 4대 째거든요.”

: “어릴 때 많이 배워야합니다. 1,2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10년 정도. 예전에는 4년 동안 대패질이나 연장 관리만 계속해야 그 이후에 배를 만들죠.”

: “배 만드는 게 돈이 많이 듭니다. 하나에 약 4000만원이니까. 경주시청, 진해, 등등 5대 주문이 들어왔어요.” : “나무를 파고 못을 박았어요. 그 위에 본드로 칠하는 거죠. (위판과 아랫판을 연결하려고)”

: “우리가 직접 만들지. 황토흙을… 염색도 직접 하고. 돛 색도 저색으로 해요.(나무색이랑 비슷한 색) 지금 돛은 안 달려있지.”

: “관리하면 15년은 갑니다. 나무도 수리해주고 관리하면…” : “옛날에는 둥근 나무를 배 바닥에 깔아서 밀어 내렸습니다. 지금은 크레인으로 배를 옮겨요. 크레인 쓴지는 한 5,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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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장 김창명


현장워크숍2: 나룻배 진수식

공구통의 도구들

배를 만들 때 쓰는 못

2회차 2017년 8월 4일 금요일

비메이커즈 참여작가들이 조선장 김창명의 목선을 보러 가고 있다.

김창명 조선장과 조목근 전수자

김창명 조선장과 창파(김혜경)큐레이터와 목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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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메이커즈 작가들과 주경업 선생님

현재 제작중인 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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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돛배

김창명 조선장과 조목근 전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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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장 김창명


: “마을에서부터 부두에서부터 정기여행선까지 가는 나룻배가 있다고, 그 배들은 크면 안됩니다. 정기여행선에 부딪치면 배가 상하거든요. 배 밑이 얕아요. 사람이 바로 타고 바로 내릴 수 있도록 한 거예요. 이거는 단단해야 해요.”

: “낙동강에 물이 범람하면 물살이 굉장히 세. 낙동강에 나룻배들이 떠내려가는 사고가 참 많아. 그거는 배가 얕아서 그래 이것처럼 배가 튼튼해야지.

: “예전에 진해에서 건너온 사람들 부산에 물건 하러 오는 사람들 전부 다 이거 다 탔어요. 명지에 내려 명지에서 내려서 제방 놓으면 그 밑에 바닷가 마을이 있습니다. 이거는 배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야 뱃머리에 포탄껍데기같은 종 모양으로 출발 5분 전에 두드려 그러면 막걸리 먹다가도 모여요.”

: “배를 띄우는 걸 진수식이라 하는데 고사부터 지내야 합니다. 사고도 없어야 되고, 복도 많이 받아야 되고, 제사 먼저 지내고 배를 띄워야 되는 거랍니다.”

: “17살부터 만들었어요. 경력이 한 65년 70년 됐나 내가 5남매 중에 막내거든 내가 4대째 하고 있습니다.” : “그때는 많았죠 사람도 싣고 물물교환도 하고 삼랑진에서 한 달 두 달 걸려 오기도

위에서 제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비메이커즈작가들(박민경작가, 강은경작가, 김보민작가, 이재은작가) 창파 큐레이터, 주경업 한국민학회회장, 김창명 조선장, 조목근 전수자. 현재 작업 중인 목선 앞에서.

하고.”

: “전라도 군산까지 한 7일 걸렸어요. 옛날엔 바람으로 갔어요.” : “여기서 만들어서 하동까지 가는 거죠 그때도 기술이 좋아서 화개 장터 까지 가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 “밑에서 일 배울 때가 제일 힘들었죠. 부친이 엄하게 가르쳐서.” : “이 못은 나무가 썩을 때까지 안 빠져 여기 보며 둥글지? 둥글 때 쓰는 대패가 따로 있어. 그래야 깨끗이 나간다고. 공구가 한두 개가 아니야.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집 하나 짓고 하는 거랑은 달라. 대패도 사용 목적으로 여러가지가 있고, 톱도 여러 톱이 있어. 그런 기구를 적절하게 다 이용을 해야 해. 저런 도구도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기도 하고, 조선장쯤 되면 도구는 다 만들 수 있어.”

: “삿대 가 낙동강에 뻘을 밀고 가는 삿대가 또 따로 있어. 부산에서 노만드는 곳이 100개 정도 있었는데 영도에서 만든 노가 제일 마지막으로 오래된 노야. 지금은 선생님께서 다 만드시지 노도. 옛날엔 노를 만드는 장인이 다 따로 있었지. 노가 제일 힘이 강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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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장 김창명


침선장 송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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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선장 송년순


현장워크숍1: 일생의례의 옷

1회차 2017년 7월 5일 수요일

: “우리 복식은 갖춘다는 것은, 철저하게 속에서부터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 어른들이 말하는 ‘어간을 갖춘다는’ =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추어 입어야 한다’라고 말하죠. 체계적으로 겹겹이 입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한복이 생겨났습니다. 갖춘다는 것이 의례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왕실 의복을 보면 체계적으로 속치마를 일곱 겹으로 입으며 의례를 지켰습니다.”

: “처음에 옷을 시작할 때는 서양복식이었는데, 서양의 복식 드레스는 옷을 꽉 조여 입지만, 우리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옷을 입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속옷을 많이 입어서 엉덩이를 부풀리는, 우리나라 전통라인은 A라인이 아니라 항아리모양이죠. 옛날에는 기생이라는 자체가 의복을 다 갖추었을 때 최고의 화려함을 나라에서 허용했잖아요. 그들의 의상이 지금까지 남아있어서, 미인도를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잖아요. 우리는 철저하게 속옷을 갖추어 입었어요. 그게 우리 의복에서 최고의 고급문화 라고 생각하거든요. 바느질 자체도 과학적이고, 제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제도가 없으면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의복은 기본으로 제도를 할 수 있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 “중학교 졸업하고 양장을 먼저 익혔어요. 양장 보조도 몇 년 겪고 양장을 다 취득을 하고 난 뒤에 1980년 이후부터 우리 한복을 했지요. 어머니의 영향으로 다시 한복으로 했어요. 우리 복식을 좀 더 알아야겠다 싶어서. 폭넓게 하고 싶어서 서울 단국대 건국대 등 학교를 다녔지. 서울을 일주일마다 많이 오르고 내렸어요. 그래도 지금도 끝없이 하고 싶지, 우리 복식 중에서 하고 싶은 거 더 갖추고 싶은 게 많지만, 나이도 있고.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싶은데. 다들 나이가 들면 일을 할 수 없게 되더라고. 16~17세기 조선시대의 의상이 충북대학교에서 발굴한 유물에서 최초로 나왔어요. 1995년 즈음. 우리 저고리의 선하고 깃이 옷이 정말 조신했어요. 그때부터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었어요.”

: “조선시대는 의복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나타냈는데, 5000년 이어온 전통을 말살시키는 거지.우리 한복은 평면제도예요. 평면으로 제도하면 입어도 반듯하거든.”

: “잘못 전해지면 5000년 전해온 우리 옷이 국적 없는 옷이 될 수 있는 거지.” 2. 조선 말기까지 모든 관원이 평소 집무복으로 착용한 상복(常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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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선장 송년순


: “장롱 속에 우리 옷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신이 달라요. 우리 옷을 입으면 : 자연스럽게 조신해져요. 개량한복은 일(노동)복입니다. 우리 옷은 최고의 멋으로

현장워크숍2: 낮잠 베개 만들기

2회차 2017년 8월 9일 수요일

입는 사람이 예복으로 입고 생활복은(전통과) 비슷하게 만드는데.”

: “처음에는 양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생활 복으로 시작했지만 우리 전통복식을 2

유물로 접하다 보니까 어느새 전통 쪽으로 빠지게 됐어요. 유물 보다가, 단령 으로 빠졌어. 남자의 관복인데, 아들의 직계에 따라서 입힌다고.”

: “무덤에 넣는 옷은 아주 갖춰진 자세로 해요. 삼베로 해서 하는 것은 일본식이죠. 장례하는 사람들이 문화도 모르고 하는 건데. 이 땅에서 마지막 모습을 다 갖춰서 입혀 놓으면 화사한 느낌으로, 삼베는 병이 들어서.(장례를) 하는 사람들에게 입히는 거고”

: “바느질만 하루 종일 할 수는 없어요. 수업도 40분하고 쉬듯이. 보통 낮에는 상업적인 것 하고. 밤에 한두 시간씩 하면.. 딱 정해진 일수는 없어요. 좀 오래 걸려요. 그런데 하면 보람도 있고 재밌어요.”

: “예전에 매료되었을 때, 속된 말로 새가 빠지도록 했죠.” : “처음에는 한두 개씩 찾아서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끝이 없어요. 끝이 안 : “우리나라 일생의 의례 옷에는 많은 의미가 있어요. 첫 번째는 출생 옷인데,

보이는게 우리 복식문화구나 하죠.”

첫돌옷이고요. 두 번째는 관례옷. 관례옷은 갖춰 입는 옷인데, 사례가 있어요. 성년식 할 때 입는 거죠. 남자는 성년식을 16~19살까지 하잖아요. 그 의상을 관례옷이라고 해요. 예전에는 성년식을 다 치루었거든요. 그 다음에는 혼례 옷. 족두리까지 갖추고 남자는 사모관대를 갖춘 것. 돌아가실 때, 수의. 그 다음에 삼베로 만든 상 옷. 상주는 다르게 되어있어요. 그런 의식을 철저하게 갖추어서 입었죠. 그러니까 멋쟁이들이죠. 상을 당했을 때, 입죠. 여섯 번째는 제사 옷. 거의 다 미혼인 거 같은데 여자가 자라서 시집을 갈 때, 지금은 자유분방한 시대라서 관심이 없는데. 예전에는 시아버지의 도포는 필히 어른의 필요의상이었어요.”

: “여자는 천담복3이라고 해서 우리의 의상이 이중구조로 되어있어요. 시집가기 전까지는 꽃분홍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잖아요. 색동저고리라고 해서 색이 있어요. 시집갈 때 함을 받을 때는 그게 기본 의상이고 시집갈 때까지 색동저고리 3. 국상·일반상의 3년상을 치르고 100일간 입는 옥색의 제복(祭服). 육자복(六字服)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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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선장 송년순


입어요. 그리고 그 위에 활옷을 입고 식을 올리잖아요. 시집을 가서는 다른 옷을 입어요. 그때는 청색 치마로 바꿔입어요. 이 옷은 시어른이 해주는 옷이에요. 저고리 색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 “아기들 돌을 치를 때, 예식장 같은 곳에서 하죠. 그건 정말 엉터리예요. 첫 돌인데, (아이를) 그 고생을 시키는 것이 아니고. 정말 집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 둥근 상에다 빨간 보자기를 펴고 수수떡, 백설기 등을 올려서 돌 복 예쁘게 입히고 갖고 싶은 거 뭘 갖는지 해야죠. 집안끼리 모여서 담소를 하는 것이 맞는데, 잔치 행세를 하는 건 우리 문화가 아니에요. 우리 전통문화가 정말 고급스러운 문화라는 건 알죠? 못 살 때는 외국문화가 좋다고 했는데 알고 나면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좋아요. 우리 조상들 문화를 지켜야 하잖아요?”

: “일반 서민들은 농사 짓느라 바쁘고 사대부들이 규방에서 공예 했죠. 서민들은 노동일을 한다고 솜씨가 좋아서 옷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긴 하지만, 거의 노동일이죠.”

: “우리 삼신할머니가 다 점지해준다고 생각하잖아요. 삼칠일. 이십일일간은 삼신할머니한테 미역국, 쌀 올리고 했죠. 의사나 병원이 없으니까. 백일잔치는 아이가 안 건강하면 소문내지 않고 그냥 넘어가요. 어른들도 건강이 안 좋으면 환갑잔치 안 하듯이 아기들도 건강하지 않으면 안 했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 전통의 의미는 이왕이면 서민의 의식보다 양반가의 의식이 기본으로 알죠. 문화를 계승해야 하니까 한복도 고급문화로 전해줬죠. 지금은 너무 전통을 벗어나면, 전통이 아닌 것은 유행이 지나면 못 봐줘요. 그래도 전통이면 유행에 지나도 봐줘요. 우리 옷은 갖춰서 입으면 행동을 함부로 못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문화가 정말 고급문화라고 생각해요.”

: “왕은 대홍색, 그 밑에는 청색, 녹색으로 정해요. 빨간색은 거의 못 입죠.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죠. 중국은 빨간색 더 선호하잖아요. 품위도 없는 용 좋아하고. 중국의 용은 싸구려죠. 우리나라의 용은 엄청 품위 있죠.”

: “용은 대비가 봉황은 왕이 세자는 사조룡. 용의 발가락이 다섯 개면 오조룡인데, 오조룡은 왕이 입죠. 그러니까 우리 복식이 (공부)할 것이 참 많아요.”

: “연화문단은 왕만 썼어요. 왕은 십장생무늬가 다 들어있죠”

낮잠 베개를 만드는 순서. 천으로 주머니를 만든 뒤, 속은 말린 메밀껍질로 채운다. 메밀껍질은 머리에 있는 열을 내려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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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례는 성년이 되는 의식을 말하고. 혼례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고. 상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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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갔을 때 치르는 거고. 제사가 돌아오면 제례거든요. 제례는 예에요. 태어나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이죠.”

: “조선 시대는 유교 사상이니까 제사를 모시잖아요. 흉상이 아니라 길상이거든요. 좋은 의미로. 세종대왕이 만든 제례악이 있잖아요. 예를 지내는 것이 제례고 상례는 사람이 돌아가셨을 때죠.”

: “제사 지낼 때 제례가 종묘제례죠. 통과의례, 사례 중 하나죠. 서양 사람들은 검정 양복 하나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그게 아니죠.”

: “한복장이들이 기술자가 없어요. 어깨너머로 배운 거죠. 지금은 제도가 되어있어야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초창기부터 제도를 먼저 알았기 때문에 한 거죠. 제도가 없으면 안 되죠. 그래서 제가 젊었을 때부터 제도를 배운 영향이 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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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1925 좌담주간 오래된 일식가옥에서 ‘장소’와 ‘기술’을 나누다 두번째 좌담 ― 비 메이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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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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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초량1925 좌담주간

일시 2017년 9월 30일 토요일 오후 3시

오래된 일식가옥에서 ‘장소’와 ‘기술’을 나누다

장소 초량동 일식가옥(등록문화재 349호)

비 메이커즈의 시작

과정에는 ‘손’이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비단을 염색하고 도구를 다루고 꽃잎의 주름을 잡고 밀랍으로 이어

모더레이터 창파(초량1925 책임 큐레이터)

안녕하세요. 저는 초량1925의 큐레이터 창파입니다.

하나의 꽃을 피우기까지 셀 수 없는 손길이 필요한

두번째 좌담

장인 권영관, 김창명, 배무삼, 송년순, 주경업

반갑습니다.

기술이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손길에는 능숙한 기술이

― 비 메이커즈

참여 작가 강은경, 김보민, 박민경, 이재은

먼저 좌담에 앞서 초량동 일식가옥과 초량1925단체,

되기까지 우리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느린 시간’이

일맥문화재단에 관하여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필요합니다. 그리고 2016년 부산의 수정동을 리서치하며

초량1925는 여러분이 앉아 계시는 초량동 일식가옥인

생활근대사라는 주제로 어르신들의 구술을 인터뷰하면서

등록문화재 349호의 건립 연도이며, 이 건물로부터

지역 역사서의 빈틈에 자리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192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일본에서

되었습니다. 인생의 선배인 어르신과의 대화가 주는

부산으로 경부선 토목공사를 하기 위해서 건너 온

가르침은 그 어떤 역사보다도 생생하고 깊은 울림을

다나카라는 사람이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수많은

주었습니다. 이러한 두 경험은 제게 비메이커즈를 기획할

사람들이 이것을 거쳐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이

토양이 되어주었습니다. 바로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기획이

집은 그 시간들과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이 자리에 남아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전통 예술과 기술의

있습니다. 초량1925는 이 일식 가옥의 시작년도를 붙여

현장을 가보고 장인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 그들의

주경업 선생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이야기 그 시대 행적을 담고 있는 장소들을 발견하고 그

사실 작가와 장인의 만남에 걱정이 많으셨겠지만,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다시 현재의

그보다도 우리 전통에 관심을 두는 작가들이 모이고

시각으로 그 시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목적으로 초량동

있다는 것에 반가워하셨습니다. 주경업 선생님의 그

일식가옥의 설립 년도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대와 진심 어린 조언으로 4분의 불화장, 지연장, 침선장,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맥문화재단은 1975년

조선장 선생님들과 비메이커즈를 시작하였습니다.

장학재단으로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문화 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초량1925는 일맥문화재단과 함께 지역연구와 문화예술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지역의 기관, 작가들과 뜻을 모아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초량 1925의 좌담주간의 첫번째 좌담인 〈골목에 기억, 도시의 상상 ‘영주동’〉에 이은 두번째 좌담은 올해 새로 시작한 〈비 메이커즈〉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추석을 앞둔 연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기 위해 자리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비 메이커즈〉는 부산의 ‘메이커Maker’. 만드는 사람들이 이야기입니다. 부산의 만드는 사람이 되자라는 ‘be 동사’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과 부산을 대표하는 장인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두 그룹이 만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이후의 활동과 소통의 자리를 모색해 보자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비 메이커즈〉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2014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아름다운 궁중채화의 전시에 참여하며 처음 채화라는 우리 전통 예술을 알게 되었습니다. 궁중채화가 만들어지는

창파(김혜경) / 초량1925 책임큐레이터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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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송년순 침선장이 직접 제작한 의복을 반달(문건호)

장인 선생님 소개

큐레이터에게 입혀보며 궁중의복을 입는 방법과 순서를 설명하고 있다. 이 의복은 송년순 침선장이 태조 이성계가

오늘 이 자리에 장인 선생님들께서 모두

실제로 입었던 의복을 복원한 것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염색부터 재단, 바느질까지 총 3년에 걸쳐 손수 제작하였다.

참석해주셨습니다. 먼저 주경업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화가이시면서 부산민학회의 회장이십니다. 1983년부터 22년간의 교직 생활 결별하고 전업 화가 선언하셨습니다. 그림 주제를 전통문화에서 발견하기 위해 전국의 춤판, 소리판, 굿판, 놀이판 등 민속 현장을 찾아 그림으로 재현하며 예·기능을 가진 어른들을 만나 그들의 전통예술세계와 삶을 기록하셨습니다. 그간 아홉 번의 펜화 개인전과 세 번의 유화 개인전,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주경업의 인물기행 부산의 소리 꾼, 쟁이를 찾아서》 외에도 1994년부터 근래까지 전국문화유적답사기 84권, 1997년 드로잉여행기 등을 펴내셨습니다. 비 메이커즈 자문위원으로 부산시광역시지정 무형문화재 명인과 장인을 추천하셨습니다. 주경업 선생님 덕분에 비 메이커즈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비 메이커즈에 함께하신 장인 선생님들을

주경업 선생님

한번씩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불화장은 불교 교리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탱화를 제작하는 장인을 말합니다. 부산광역시 지정무형문화재 제15호 불화장 권영관 선생님은 조부이신 용성 스님과 부친 권정두 선생님에 이어 3대째 불화 그리는 일을 가업으로 일생을 종사하셨습니다. 1972년 제3회 불교 미술 전람회 불화 부문에 후불탱화를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1973년 제4회 때에는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다음 해인 1974년 제5회 때에는 특상을 수상하셨고,일본 오사카 금강사 괘불 조성, 김제 금산사 미륵삼존 대불 개금불사, 부산 범어사 아미타후불탱화 조성, 단양 구인사 삼존불 개금 및 목탱화 채색, 부산 삼광사 지장전 시왕상 조성, 봉화 축서사 석채후불탱화 조성 등 전국 주요 사찰은 물론 미국, 일본 등 국외에 이르기까지 약 350여 점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조선장은 한선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습니다.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5호 조선장 김창명 선생님은 부산 하단의 어촌계 포구에서 62년 평생을 바쳐 한국 전통 범선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증조부때부터 같은 곳에 살면서 이어받은 조선장이 가업이 되었고, 할아버지와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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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곁에서 경험한다면 어떨까, 나는 그 분들께 어떤

참여 작가와의 대화

아버지를 이어 4대째 계승해 오셨습니다. 배 만드는 일을

KBS 민속의상 패션쇼를 연 이후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17살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목선과 돛단배를 1천척

주미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진주성 특별무대, 인사동

넘게 만드셨으며, 10월에 있을 ‘서부산 구포나루축제’에

아트센터, 사할린 주립박물관 특별전시 및 패션쇼,

비메이커즈는 6월 한달 간 청년 작가를 모집하였습니다.

30명이 승선하는 규모로 나룻배를 제작하고 계십니다.

국립 안동대박물관 등에서 우리 옷의 멋을 펼쳐 보이고

선정된 작가는 강은경, 김보민, 박민경, 이재은

계십니다.

작가입니다.

지연장은 연을 만드는 장인을 말합니다. 배무삼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 오는 시기에 공모를 보게 되었어요. 기획 자체가 재미있었고, 특히 불화 섹션이

선생님께서는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1호로

마지막 소개해드릴 분은 가운데 앉아계신

강은경 (이하 ‘강’) 식사를 통해 사람과 만나고,

있어서 지원하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불화와 단청에

1973년부터 제3회 전국 연날리기 대회에 참여한

조목근 선생님이십니다. 조선장 김창명 선생님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만드는

관심이 많았는데, 배울만한 곳을 못 찾았거든요. 그

것을 계기로 40여 년간 동래연 제작에 종사해오고

전수자이십니다. 처음 리서치로 방문했을 때 김창명

사람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한 그릇 밥이 사람을 구할 수

때는 막연히 불교미술의 색감과 반복된 패턴을 위주로

계십니다.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문장원, 천재동

선생님께서 전수자 선생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픽과 결합시켜 짧은 영상작품을 만들어보려고

김보민 (이하 ‘김’) 전공과는 무관하게 다른 작업들을

했었어요. 경력이 애매해서 반신반의하면서 지원했고,

어르신의 제안으로 부산연 동호회에 가입한 후 ‘연

선생님께 배 만드시는 일을 하신지 얼마 되셨는지

할아버지’로 불리던 한태정 어르신으로부터 동래연

여쭤보았는데 선생님께서 40년이 되셨다고 하셔서 저희

해왔네요. 영화를 만들면서, 미술, 촬영, 조명 등 각

제작과 연날리기 기량을 전수받고 전승계보를 이어와

모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목근 선생님께서도

파트를 거쳐 연출을 해보았고, ‘부산노리단’이라는

동래연 제작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으셨습니다. 1987년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공연/기획 단체에서 악기를 제작하고 거리 공연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전 작업과 관련해서 재개발문제나

했어요. 자체적으로 거리축제나 지역 사업, 해외교류

도시재생에 관심이 있던 터라 원도심을 연구하고 다시

일본 도쿄 국제연날리기대회 창작부 최우수상,

젊은 작가에게 흔쾌히 작업장을 열어주시고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워크숍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박: 올해 초 지인의 소개로 초량1925를 처음

1996년 한국관광공사 주최 대전국제연날리기

선생님들께서 쌓아오신 지식과 각 분야의 기술, 생각들,

사업도 기획하는 단체라, 퍼포머로서 활동하면서도

재생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는 초량1925에 관심이

대회 최우수 등 다수 수상하셨습니다. 2000년

정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장인 선생님들께 감사의

기획자로서의 실무 또한 많이 배웠고요. 우연한 기회와

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하셨던 프로젝트들이 무척

8월에는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에서 연 전시회를

말씀을 드립니다.

단순한 호기심이 연결되어 다양한 경험들을 했던 것

재밌어 보였고 당시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서

비롯하여
부산민속예술협회 회원으로 있으면서

같아요. 현재는 영상그래픽을 공부하고 있고, 장르나

고민 끝에 당시 모집중이던 비메이커즈에 지원하게

한국민속연보존회 부산지회장, 한국민속연연구소

매체의 구분없이 떠오르는 주제를 이미지화시키는

되었습니다.

소장, 부산민속연보존회 이사장도 맡고 계십니다. 해외

작업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부산에 계신 기술 장인분들은 쉽게 만나볼 수 없으니 워크샵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은 흔치않은 기회라고

박민경 (이하 ‘박’) 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류도 활발히 해 일본 후쿠오카연협회 특별임원, 중국 세계연축제 국제심사위원을 역임하시면서 전통 연을

가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일상속에서 다른

생각하기도 했고 그분들의 세월이 녹아 깊이있는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큰 힘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통해

전문적인 기술을 익혀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혼자서

부산국제연날리기대회에도 선생님을 중심으로 개최가

무언가 바뀌어 간다면 좋을 것 같아요.

작업하는 것보다 다른 작가분들과 만나며 이야기하고 작업을 공유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많은 경험을 하고

이재은 (이하 ‘이’)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지식을

매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장인 선생님은 침선장 송년순 선생님이십니다. (박수) 선생님은 1962년 양장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셔서

연결하고 새롭게 조합하기를 좋아하는 안무가 입니다.

싶었습니다. 비메이커즈 워크샵을 통해 더 발전된

동적인 춤을 통해 정적인 공간의 구조를 밝히고 해석하는

작업물, 혹은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할 수 있을것 같다는

것에 흥미가 있고, 공간의 개념, 시점, 구조, 매체와

생각에 기대가 많이 되었습니다. 이: 전통에 관심이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정확하게

1980년부터는 전통한복을 공부하고 연구하셨습니다.

조건들을 흔들고 다시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2002년 부산대에서 천연염색전문과정을 수료하고,

작업을 하는 방식에 있어 즉흥춤의 다양한 개념들을

기억은 나질 않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2007년 단국대에서 조선시대여자 속옷 제작과정을,

주요하게 사용하고 있고, 현재 즉흥춤판 ‘움직임

시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전통 중에서도 살아있는

건국대학교에서 침선전문과정을 수료해 2013년 4월

즉흥잼’을 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중요합니다. 똑같아야 하는 의미의 전통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즉흥춤처럼 그 순간에 살아 숨쉬는,

(사)한복문화학회에서 침선장으로 선정되셨습니다. 2017년 부산광역시 공예명장의 침선장으로 선정, 2013년

〈비 메이커즈〉는 작가를 공모로 신청받았습니다. 모집

팔딱거리는 활어같은 전통입니다. 궁중예술보다는

제6회 한국공예예술공모전(문화관광상품대전)에서

당시에 작가님들에게 신청하는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굿판이나 탈춤을 좋아하고 또한 현대의 변화와 흐름에도

〈황후 직금황원삼〉이란 작품으로 대상(국회의장상)을,

그 질문에 쓰신 대답이 기억나세요?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예민한 편입니다.

같은 해 ‘제8회 대한민국 한복 침선 문화상품 공모대전

그때 작가님의 상황과 함께 신청이유와 기대했던 부분을

및 전통한복 고증제작전’에 〈금관조복〉을 출품해

말씀해주세요.

첫 만남의 자리였던 7월 18일 오리엔테이션에서 참여 작가들이 해 온 작업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강: 지역의 토박이이자 장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대상인 황금골무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대한민국 전승공예전에서 5차례나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에게서

비 메이커즈에는 여러 장르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 온

옷 패션쇼를 개최하셨고, 1994년의 심장병어린이돕기

살아온 이야기, 기술이 예술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작가님들이 함께 하고 있는데 자신 이외의 다른 작가님의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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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김: 노리단에서 했던 일들과 맥락이 비슷해서 익숙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서

느낌이 먼저였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 이면의 엄청난

정말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기획팀의

노력과 고생이 느껴졌고요. 그럼에도 각자의 신념에

좌절은 엄청났었답니다. 그래도 조선장 선생님과 대화나

따라 열심히 무엇보다 꾸준히 오래 하시는 열정에

방문에서 기억에 남는 것과 아쉬웠던 지점이 있다면

감동받았던 것 같아요. 매뉴퓨쳐북성로에서는 ‘사람

무엇인가요? 강: 그 날, 정말 더운 날이었던 것이 생생하네요.

냄새’가, ‘언메이크랩’에서는 ‘일상에 질문 던지기’와

의외로 기억에 남은 것은 옛 방식 그대로의 목선이

같은 키워드가 남아 있네요.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는 작은 선착장 야외에서

박: 워밍업 워크숍은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새로운 기술의 활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만들어지고 있는 광경 그 자체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북성로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은

기술과 재료는 낡아지는가, 아니면 더 귀해지는가,

지역성과 기술 모두 고려한 재생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구전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던 기술들이 맥이 끊겨가면서

변화하는가에 대해 생각했었습니다. 김: 일단 너무~ 더웠고요. 차양막의 엄청난 기능을

사라지고 있던 것을 다시 재생시키고 활력을 불러 일으키려 하는 취지가 좋았습니다. 기술과 사회에서

몸소 체험했던 것 같아요. 부여에서 목선을 탔던 기억도

만들기 탐구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나고, 섬사람이라 어릴 적 놀던 바닷가 생각도 나고. 배

제시해주는 시간이었어요.

구석구석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었는데, 정교한 이음새와 곡선이 색다르게 다가왔고, 공구의 모양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술이나 새로운 기술을 지금 쓰여지고 있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쓰임새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완성됐을 때엔 너무나

편이라 여러 장르의 예술가가 모인 것은 낯설지

활용하여 다양한 가능성들을 만들어 내는 방식에 대해

당연한 것들이, 만드는 과정에선 하나하나가 다 이유가

분야와도 크게 겹쳐지 않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않았습니다. 다만 신청 당시 무용가인 나를 뽑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와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있고 원리가 있다는, 사실은 놓치기 쉬운 것들에 대해

조합과 매칭이 될 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선정이 된 걸 알고는 비

여러 방식들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메이커즈 사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손 작업을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할 작업들, 그리고

분야와도 크게 겹쳐지 않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하는 장인들과의 매칭 프로젝트에 안무가를 뽑았으니

장인분들의 기술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을숙도 근처에 배를 만드는 곳이 있는지 처음 알게

조합과 매칭이 될 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 메이커즈와의 작업에 기대와 신뢰(?)를 더욱 갖게

책임감도 느꼈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나가야

되었습니다. 작업장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조용한

했습니다.

할지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 볼 수 있게 해주어 유익하고

곳이어서 과거에는 이곳이 목선을 타고 운송업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파가 바글바글 했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다양한 장르의 작업자들과 작업하는데 익숙한

발표를 보고 어떠한 생각이 들었나요? 강: 네 명 작가들의 장르가 모두 다르고 장인분들의

강: 네 명 작가들의 장르가 모두 다르고 장인분들의

김: 다들 나이와 경력과는 무관하게,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하게 ‘탐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박: 조선장 선생님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낙동강

이: 비메이커즈에서는 워밍업으로 공부가 되고

황포 돛을 달고 낙동강 끝 저 멀리까지 배를 타고

워크숍에서는 장인 선생님을 만나기에 앞서 기술을

나누어 알면 좋을 강연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나아갔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하실 때 영화를 보는

활용하는 두 가지 사례를 초대했습니다. 북성로

강의는 대구 북성로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메뉴퓨처

것처럼 머리 속에 그 장면들이 그려졌습니다. 배가

끝 사이의 과정을 상상해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동시에

공구박물관의 ‘매뉴퓨쳐북성로’의 활동 사례와

안진나님이셨어요. 북성로는 한강이남 최대 공구거리를

처음 뼈대부터 모든 것이 나무로만 만들어지고 있는

장인의 작품세계와 작가 서로의 장르가 어떻게 엮일 수

‘언메이크랩’이 들려준 기술과 사회에서 만들기

갖고 있어 “북성로에 가면 탱크도 만든다.”라는 이야기도

것을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만드는 중인

있을지 난감하면서도 신이 났던 것 같아요.

탐구였습니다. 워크숍이 종료한 시점에서 돌이켜 봤을 때

전해 내려온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술자의 신체,

배를 보기만 해도 배를 만드는 일이 힘이 많이 드는

워밍업 워크숍이 준 감상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작업 공간, 일과, 가진 물건, 주변 사람들을 탐구하여 젊은

정교한 작업이란 것이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배를

시각예술가와 협업한 사례를 듣고 아이디어도 상상해 볼

만드는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 원리, 뼈대.

저는 현장 위주의 일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7월 19일과 7월 26일 양일에 걸쳐 열린 워밍업

주제를 가지고 끝까지 파고들면서 여러 시도들을 해볼 기회가 적었어요. 개념을 가시적으로 풀어내는 그 시작과

박: 회화,조각장르 외에 다른장르의 작가님들의

강: 다소 막연했던 장인들과의 본격적인 프로그램에

작업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없었는데 기존에 작업으로 옮겨올수 있다고 생각치 못했던 분야나 새로운 작업들이

앞서, 기술과 관련된 작업을 개성있게 펼치고 있는 두

수 있었던 반면, 기술자와 시각예술가는 손으로 무언가를

등을 관찰하고 직접 나무를 다듬어 본다던지 하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풀어낼

그룹의 활동상을 들었던 것이 많은 힌트가 되었습니다.

만든다는 공통됨이 있는데, 무용가인 나는 무엇을

기술을 체험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기간이 매우

수 있는 이야기와 수단에는 장르의 제한이 없다는 것을

매뉴퓨쳐북성로는 끈질기고도 장기적인 접근으로서

읽어내어 어떻게 밝혀내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오래걸리는 작업이라 워크샵에서 체험할 수 없었던 점이

확인 받았던것 같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작업에 내가

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리서치를 아카이브하고

호기심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직접 참여해보고 싶기도 했고 이야기를 하며 더 깊게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언메이크랩은 오늘 우리가

알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같이 협업도 해보고

기술을 이용하는 태도와 방식에 있어 일종의 유쾌함과

조선장 김창명 선생님의 작업장을 방문한 날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업 파트너 처럼

싶었습니다.

유머를 잃지 않는 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불볕더위에 참으로 힘들었지요. 실제로 목선이

여러 사람이 몫을 나누어 일을 하게 되는데, 그날도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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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른 장인의 작업과는 다르게 배를 만드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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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김창명 선생님 말고 조금 더 나이가 젊으신 선생님이

시간들이 편안해서 좋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함께 작업을 하고 계셨어요. 장인이 되는 과정에 있어

남는 것은 빛바랜 한복의 색감이엇다. 있는 그대로의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계보가 아닌지…

옷감도 아름다웠지만 햇빛을 받아 색이 바랜 부분 또한

누구에게 사사를 받고 어떻게 이어져 내려와 누구의

자연스러운 색이 묻어나서 아름다웠다. 각자가 만든 베게

뿌리인지 그런 것인데, 아마도 나이든 김창명 선생님

하나씩 들고 돌아가는 길이 마음이 한가득 푸근했다. 이: 송년순 선생님의 작업실에 가서 낮잠 베개를

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듯한 파트너 선생님이 홀대되는 상황을 마주하니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평생

만들어 보았다. 학창시절 가정 시간에 바느질 수업에서

2인자여만 하고 평생을 배와 함께 했을테지만 더 위에

버선 만들기를 했었는데, 바느질을 하고 안감, 겉감,

더 위에 스승이 없다는 것으로 노동의 역사를 부정할 수

작은 구멍으로 빼내기 등 천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없지 않을텐데,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의 갈등이란 생각이

내는 것이 머리로 너무 이해가 안가서 점수를 제대로

들었습니다.

못받았던 기억이 있다. 설렘반 걱정반 작업실에 가서 미리 준비해두신 비단을 구경하고 각자 하나씩 재료와

침선장 송년순 선생님은 원래 작업장만 보여주실

도구를 골라 들었다. 네모 모양의 주머니를 만들어 속에

예정이었는데 방문하기 전날 낮잠 베게 워크숍을

메밀껍질을 넣는다. 양 귀퉁이를 잡아 바늘을 여러번

준비하신다고 연락주셨습니다. 작가에게 자신의

통과하면 빵빵하게 모양이 잡히게 된다. 송년순 선생님의

기술을 전해주는 방법을 나름 고심하셨다는 게 느껴져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낮잠 베개가 만들어졌고 뿌듯했다.

기획팀에게는 감동 자체였답니다. 그날 우리 한복에 대해

완성된 베개를 실제로 베어보니 도넛츠 모양의 베개

들려주시고 입어 볼 기회도 가졌습니다.

가운데 푹 들어간 부분에 머리가 고정되어 뒷통수와

강: 중요한 전시를 앞두고 한창 작업에 몰두해 계실 시기에 찾아뵀기 때문인지, 선생님의 모습은 작업중인

목이 편하고 옆으로 누우면 한쪽 귀가 배기지 않고 어깨 높이와도 딱 맞아 낮잠 자기 좋은 전통 베개가 되었다. 작업하신 의상을 입어볼 기회를 주셔서 대비마마

사람의 모습 그대로셨습니다. 장 안쪽에서부터 일일이 귀한 복식들을 꺼내 손수 입혀주시던 모습은 자신의

옷을 입어볼 수 있었다. 무게가 엄청나고 입는 과정도

작업을 사랑하는 젊은이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복잡하여 절대 혼자서는 입지 못하는 의상이었다. 색이

김: 너무 재미있었어요. 한 번뿐이어서 아쉬웠고요.

곱고 화려했고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이

저희를 위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고 재미있게

소맷자락이 아주 크고 넓었다. 송년순 선생님의 최근

해주시려는 게 느껴져서 정말 감동이었어요. 여전히

전시 도록을 선물 받았는데 한번도 본 적없는 한복 속

공부를 하고 계신 것도, 어릴 적 이야기도 정말

속옷이 인상 깊었다. 겹겹이 입어야 하는 한복 특성

멋있었고요. 이 때 ‘손’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생각을

때문인지 속옷에는 구멍이 송송 있었는데, 그 또한

해보게 되었어요. 지금은 당연하게 사서 쓰는 것들이,

아름다우며 실용적이고 디자인적으로도 독특하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손에서 탄생한 것들, 그 작업을

생각했다.

하는 수많은 손들과 절대적인 시간을 지나야만 가질 수 있는 어떤 완전한 손에 대하여. 실제로 제작하신 한복도

첫 번째 기술워크숍인 불화장 권영관 선생님께서 계신

입어보았는데, 정통의 구조와 방식, 한복의 다양한

경암불교미술원으로 찾아뵈었을 때 2층 작업실은

종류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매우 넓고 선생님의 작품이 한켠에 놓여 있었습니다.

박: 비가 많이 왔던 날이었다. 비를 뚫고 도착하니

기술워크숍은 한창 무더운 여름에 진행되어 선생님과

송년순 선생님과 작업실의 다른 선생님들께서

함께했던 시간은 뜨겁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낮잠베게를 한가득 준비하고 계셨다. 바쁘신

권영관 선생님의 작품은 제작기간만 5년이 걸린다고

와중에 워크샵을 위한 준비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하셨습니다. 강: 권영관 선생님은 선비같은 분이셨어요. 좋은

낮잠베게에 들어갈 메밀껍질이 한자루 가득 쌓여있고 맛있는 차한잔을 대접받고 앉아서 도란도란 베게를

말씀을 참 많이 해주셨고요. 특히 작업하시면서 더 나은

만들고, 선생님께서 작업하신 옷을 직접 입어보며 웃던

방법, 더 좋은 재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모습과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78

강은경, 김보민 박민경, 이재은

79

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중 석채 사용의 과정, 제대로 된 순지를 만드는 방법과

만들어져야하는데 과학적 지식과 세밀한 감각, 조형적인

구하는 일의 어려움, 아교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경전의

심미안까지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

내용을 형상화하여 옮긴 그림 속의 이야기와 의미들,

또한 작업을 하시면서 자신에게 딱 맞는 도구나 기계를

단어의 한자풀이 등이 흥미롭고 재밌었습니다.

만들어 써 오신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렇지만 가장 강렬했던 경험은 역시 실제로 연을 날려본 날이에요.

‘지천년 견오백’ 종이는 천년, 비단은 오백년이 간다는 뜻인데, 우리 선조들이 종이를 만듦에 있어 내다

어쩌면 그렇게 가볍게 떠올라 하늘에서 잘 떠있던지,

보는 시간은 무려 천년, 무엇을 만듦에 있어 생각하는

또 그 손 맛은 어떻고요. 지나가시던 연날리기 동호회

바가 오늘날과 차원이 틀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회원께서 농담으로 ‘낚시하는 남자나 연 날리는 남자랑은

적조암에서 권영관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시간이

결혼하지 마세요.’하셨던 것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지나면서 고유의 색이 드러나게 되는게 석채이며

그만큼 매력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김: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번도 연에

지금도 작업은 진행중이다’라는 말씀이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네 분의 장인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어서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라져가는

그런지 겪어 오신 이야기를 상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제대로 하려는 마음인 사람과 어느 정도에서 만족할

예전의 것들이 최신의 것으로 빠르게 대체되는 시대에서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갈등, 이익과 욕망 때문에 거짓이

어떤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 잊어가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만들어지는 것들은 제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어요.

대한 생각. ‘연’이라는 물건이 가진 과학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의 절묘한 밸런스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권영관 선생님의 후불탱화 중 가장 규모가 큰 실제로 작업을 위한 재료를 직접 만들어 쓰시는 모습은

나오는 석채들. 오래오래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아요. 박: 작업실에 들어가니 선생님이 앉아계시는 뒤로

작업의 경지가 비단 종이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영화사의 대웅전과 20대 초반에 조성한 금강사를 방문한

색감의 다채로움이나 미묘한 곡선의 아름다움과 같은

뒤 지리산 깊은 산중에 자리한 적조암과 정각사를

예술성과, 약간의 차이가 비행에 미치는 영향 그 때문에 세심하게 제작되어야 하는 기술성이 잘 맞아떨어져야

아니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어요. 소가죽을 끓여서

웅장한 작품이 보였어요. 이전까지 보던 불화보다 훨씬

리서치했습니다. 정각사에는 선생님의 부친의 탱화와

직접 아교를 만드시거나 밀을 3년 이상 삭혀 풀을

정교하고 웅장한 분위기였고, 절에 가면 불상이나

권영관 선생님의 후불탱화가 함께 하고 있기에 더욱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었어요. 실제로 연을 날려본

만드는 과정, 또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돌을 구하고

단청이 제일 눈에 먼저 들어와 불상 뒤에 있는 불화를

의미가 깊은 장소였는데 부친의 탱화에 화기(그림 밑에

게 제일 재미있었고요. 충분한 기다림, 당겨줘야 할

직접 갈아가며 입자의 크기를 연구하신 것이나 제대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불상과

조성한 이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가 날조되어 있는

때와 풀어줘야할 때,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의 리듬감이

만든 종이를 구하기 위해 겪으셨던 에피소드들은 켜켜히

다른 웅장함이 감도는 그림이었습니다.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인상적이었고 손맛(?)이 매력적인 놀이라고 할까…?

선생님께서는 오랜기간 워크샵을 진행하시면서

쌓인 작업의 도구들만큼이나 방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니었을 선생님은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셨지만

박: 그저 어린시절 기억으로 남아있던 연은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수행자 혹은 연구자의

불교와 불화,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이 안타까움을 어찌할지 몰라 화가 나고 답답했어요.

아주 과학적인 물건이었어요. 종이와 나무로 만들어

모습이었습니다.

많이 해주셨어요. 불화의 명칭과 제작과정, 절에

불화장의 작업은 사적이자 공적인 작품이고, 절이라는

가벼운데다 얇은 실과 매듭으로 결정되는 각도에

모셔지는 불화의 종류, 절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 그것의

공간도 소망을 빌고 마음을 다스리는 공간인 동시에

따라 연의 비행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아니라, 삶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던

의미,등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된 유익한

불교미술을 조성한 장인의 박물관입니다. 정각사는

다가왔습니다. 인상깊었던 점은 연을 ‘새’ 로써 생각하고

부분들에서 배우고 느낀 점이 많아, 이런 가르침을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술과 작품을 오랜 기간 유지하기

대를 이어온 장인의 역사와 뿌리를 한 곳에 담고 있는

그 모습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꼬리,

얻기 위해 부산으로 왔고, 작가로 선정이 되어 기회를

위해 재료 하나하나를 연구하고 찾아다니시는 모습이

장소인데 선생님의 작업장에서 들었던 것을 눈 앞에서

몸통 같은 명칭들은 전부 연을 새라는 생명체로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묵묵히

정통을 지키고 그것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시는 모습이

목격했고 방치되고 있음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생각해온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연은 다양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천천히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현대에 와서 과거에 사용되던

여전한 열정과 애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지난한

재료의 고갈 등 여러 어려움들을 마주하고 계시면서도

첫 번째 기술 워크숍이 불화라는 숭고미를 알 수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넘볼

과거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시는 모습, 그리고 그것에

있었다면 두 번째 기술워크숍인 지연장 배무삼

수 없는 힘.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한 강한 믿음이 나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과는 또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연은 생활과도

잘 날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그것도 잠시 의외로

매우 친근한 민속놀이이자 과학적인 예술이었습니다.

하늘 높이 잘나는 연을 보니 한없이 기뻐지고 마음이

김: 5번이 너무 아쉬웠어요. 어떤 기술이나 작품이

이: 이번 워크숍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분은

물론 선생님의 경탄스러운 작품들도 압도적이었는데,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림에서 느껴지는 어떤

불화장 권영관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형태로 이루어져 놀이를 넘어선 하나의 스포츠와 예술이 결합한 형태로 발전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요. 삼락공원으로 연을 실제로 날리러 갔을 때, 내 연이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지연장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던

강: 배무삼 선생님과는 시종 웃고 떠들고 즐거웠던

무아지경이란 상태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운들과 또다른 세계가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검색을 해보았어요. 절에는

기억이에요. 연이라는 것이 놀이문화여서였을까요. 날고

수행처럼 그렸던 시왕초 등긋기,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끔 가지만 탱화를 유심히 본 적은 없었는데, 가끔

싶다는 사람의 욕망을 담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연이

지연장 선생님께서 연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직접

바람과 햇살, 큰 쟁반에 담긴 여름과일, 절로 탄성이

무섭다거나 차분해진다는 인상 정도 였어요. 천연 채색

잘 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세밀하게 잘

날리는시면서 보이는 모습에서 정말 연을 좋아하신다는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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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것이 느껴졌어요. 그곳에서 연을 날리시는 모든 사람들이

중간에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김: 처음에는 1:1 매칭인 줄 알고 불화를 좀 더 길게

모두 아이가 된것처럼 순수하게 즐거워 하는 것에서 연이 가진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가오리연과 방패연 만들기 워크숍은

한가지 일을 오랜시간동안 이어온다는 행위 자체에

작품을 내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해온

존경심, 경외심이 느껴지는 순간들 이었다.

작업의 속도나 일하는 양의 관성 때문인지 무언가 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직접 해보니 오히려

싶은(해야할 거 같은) 욕망와 싸우고 있었던 시기였다.

다양한 장인분들을 뵙고, 다양한 배움을 얻은 것이

비 메이커즈와 함께 할 예술인을 찾는 공고를 처음

그분들이 기술을 닦아오고 유지한 세월 자체에 녹아드는 숭고미. 시간의 거대함이 그분들의 작품에서

부산민속예술관 작업실에 있었는데 연과 도구들을

좋았던 것 같아요. 장인의 기술을 짧게 배우는 것이 크게

봤을 때가 생각이 난다. 오래된 것, 시간과 함께 하는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이분들처럼 내가 아끼는

구경했어요. 이리저리 세계의 연 대회를 다니시며

의미가 없기도 하고, 콜라보레이션으로 작업을 하기도

것, 의미를 담고 있는 것, 남겨질 가치가 있는 것을

가치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오랫동안 해나가고

교환하셨던 연들도 꺼내어 보여주셨고요. 각 나라별 연의

난감한 부분이라, 여러 워크숍을 통해 스스로 느낀 점을

좋아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장인들의 작업을

싶다는 다짐을 다지게 되었다.

특징이 달랐고 자유롭게 만드는 창작연도 있었습니다.

토대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지금의 형태가 좋은 것

들여다보고 함께 하고 느끼고 배우고 싶다는 충동이

한중일의 특징이 있다면 일본은 강렬한 인상의 인물,

같습니다.

마구 솟아났었다. 모처럼 나를 흥분시키는 일을 마주하게

‘경험’하여 ‘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다. 그리고

된거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시간이라는 공통점을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곧 교육이고 리서치(교육의

박: 2달간의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중국은 일단 크기가 크고 동물 이미지를 주로 이용하는

이: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반면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연 가운데 구멍이 뚫린

바뀐것은 전통문화, 그리고 무형문화재에 대한

갖고 있고 전통 중에서도 살아있는 느낌이 중요하다.

과정)는 예술가,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에게 울림이

방패연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 만들기 워크숍의

인식이었다. 현대에 와서 주변에서 쉽게 보기

똑같아야 하는 의미의 전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있었다. 서울에서 7년 넘게 무용가 활동을 활발히

시작은 순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대나무를 도구를

어렵고 그래서 심리적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었던

즉흥춤처럼 그 순간에 살아 숨쉬는, 팔딱거리는 활어같은

하고 부산 소재의 감만창의문화촌 레지던시 3년차가

이용해 갈고 깍아 풀을 발라 붙였어요. 우리 연은 새에

전통문화기술은 정말 의외였다.

전통이다. 궁중예술보다는 굿판이나 탈춤을 좋아하고

되면서 서른 중반이 되었다. 이전의 활동을 회고하며

또한 현대의 변화와 흐름에도 예민한 편이다.

앞으로 예술가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하는

장인분들은 오랜 세월동안 기술을 연마하고

비유되어 머리 몸통 꼬리 이렇게 나누어 지고 바람을

시간을 보냈다. 무용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 중 하나가

잘 탈 수 있도록 열을 가해 대나무살을 휘게 하고 실을

지켜오시면서 기술뿐만 아니라 잊혀져 가는 정신또한

이용해 기울기를 조절했습니다. 모든 워크숍 과정의

지키고 계셨다. 그 정신은 비용이 많이들고 느리게

비 메이커즈 프로젝트에서 작가님이 찾은 의미가

신체인데 무용가로서 30대 이후의 남은 시간은 어떻게

마지막날이었던 날 사상 삼락공원에 모여 연날리기를

하더라도 최고의 품질을 고집하는 진정한 명장의

있을까요?

디자인 해나갈지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지나간

했다. 한쪽에서는 연날리기 동호회 분들이 실에 아교를

정신이었다. 오늘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내는 것을

묻혀 연싸움을 하고 계셨다. 연을 하늘에 띄운 다음 실을 느슨하게 풀면 연이 휘청휘청 오른쪽과 왼쪽으로

목표로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간다.

시간을 회고하며 서울, 부산이라는 물리적인 위치

강: 장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업의 과정을 따라가보면서, 과연 오늘 나는 어떤 작업자의

변화와 상관없이, 지역이라는 경계없이, 오히려 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넓은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어디에

그러고 보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들 그리고

있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좌표가 궁금하던 시기에 긴

흔들거리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머리가 방향을 잡았을

실제로 기술을 배울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때 제빠르게 감으면 그 방향으로 속도를 내어 부웅하는

실용적으로 작가들의 작업에 도움이 되는 기술전수가

찾아야 할 대답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던 것이 가장

시간을 누구보다 농도 있게 보낸 장인과의 만남은 좋은

소리와 함께 쭈욱 전진을 합니다. 얼레를 재빨리 감는

워크샵의 의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행해보니

유익했던 것 같네요.

공부가 되었다. 작업을 뒤바꿀만한 변화라기보다는 현재

능숙함과 순발력으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해 손과 연이

2달간의 시간은 그것을 배우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일체되어 제 몸과 같이 조종을 하는 것이죠. 현장에서

기술전수보다는 그 분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앞으로는 그 표현을 쓸 때 네 분의 얼굴과 말씀이 떠올라

측정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속하는 것, 자족하고

보니 너무 멋있었습니다. 연싸움에서 진 사람이 이긴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짜의 것을

스스로 믿는 것,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어떤 과정에서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는 인사와 예의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소풍처럼 각자 준비해온 간식을 나누어

이런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꼈고, 내가 어떤 상태에

먹으며 워크숍 일정을 모두 마무리 했던 기억이 나네요.

있는지를 먼저 말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그 동안 해왔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방법과 목표하는 곳과의 시간을

우리는 장인정신이라는 표현을 곧잘 쓰지만,

경험하고 나면 그 이전과 이후는 같을 수 없는 것처럼 오늘 이렇게 비 메이커즈의 워크숍 과정을 오늘 이렇게

말이지요.

발표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발표회로 비 메이커즈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감히 제가 작업자로서

흥미를 가졌던 작업 방식과 표현법들을 지역 무용계

제가 목표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을 봤다는 생각이

워크숍은 일단락하고 작가들은 선생님과의 기술워크숍을

비 메이커즈의 워크숍이 종료하였습니다. 신청할 때의

안에서 선보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내 공연을 본 대학교

들었습니다. 앞으로 제 작업을 대하는 저도 이전과

토대로 어떤 창작품을 만들게 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부분들과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달라진

후배는 ‘언니 이번 공연에 왜 춤을 안춰? 잘하는거

달라져있겠고요. 그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비메이커즈 워크숍이 종료되어도 작가들의 창작

점에 대해 말해주세요.

해.’ 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말하고 싶은 것을

김: 열정을 지켜내고 지속시킬 수 있는 순수함과

발표회는 연속적으로 갖고자 합니다.

신체로 어떻게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더

용기…?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작업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다양한 곳에서 움직임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단단하게 부딪혀야겠다는 생각도

수 있을까를 천천히 탐색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는 작업도 있다. 내 작업이 궁금한

하게 되었고, 앞에 놓여진 시간들을 묵묵히 버텨야겠다는

저는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배우며 기록하고 의미를

사람이 있을까? 작품을 어떤 플랫폼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보는 여정이 즐거웠습니다.

내놓아야 할까? 공감하고 같이 협력할 사람들은 어떻게

강: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장인들과 젊은

참여 작가들 간에도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았는데 관련한 워크숍이나 미니 프로젝트가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B Makers

박: 각자 다른 네 분야의 장인분들을 만나뵈면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계속 있었다. 올해는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이분들이 이 기술과 일을 정말로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아끼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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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좌담―비메이커즈


초량1925 정만영 대표님의 감사 인사

주경업 선생님 말씀

안녕하세요, 정만영입니다. 비메이커즈의 프로그램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놀랍습니다. 내 오늘 자꾸 놀래고 놀랍니다. 처음에 이 양반들을 만났을 때 날카로운

권영관 선생님께서 지리산 적조암에 작품을 함께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대웅전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왔는지도 잘 모르겠고 정말로 이 여인들이 수년

안에 선생님의 작품인 후불탱화를 보고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다함께 삼배도 하고

동안 수대 걸친 장인들은 만나서 어떤 생각을 할지 이분들의 속내에 들어가서 어떤 작업

인사하고 나오면서 권영관 선생님께서 반배를 하며 나오시는 모습에 본존불에 반배를

형태를 구상하고 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어요. 처음 볼 때 그 동안 해 온 작품들이

하는 것이 아닌 선생님께서 만드신 작품에, 후불탱화에 예를 갖추고 계시다는 생각이

공중에 붕 붕 떠 있는 그렇게 밖에 안 보였어요. 저도 그림을 60년 40년 그랬습니다만.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5년 정도 걸려 만드신 작품, 오랜 시간이 들인 그 작품에 스스로

여튼 대단히 고맙습니다. 좋은 말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작가는 자기 작품을

예를 갖춘다는 것은 그 성스러움에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걸어놓고 말을 해야 하는데 지금 작품이 없습니다. 포인트가 없어요. 알맹이가 빠져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절에 가면 항상 부처에 삼배를 하는데, 권영관 선생님의

있는 느낌입니다. 알맹이는 일부로 감췄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췄다면 말할 수 없지만

작품을 본 이후에는 그 성스러움에 인사를 드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계신 장인

작가에게는 알맹이가 꼭 중요한 것입니다. 여려분에게도 알맹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은 작품이 아니라 성스러움을 만들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제가 꾼, 장이라는 얘기는 부산에서 처음 했습니다. 꾼과 쟁이는 뗄레야 뗄 수

저도 많이 배웠고 선생님들께서 젊은 작가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시고 좋은 이야기를

없습니다. 꾼이 형체없이 나타나는 거라면 쟁이는 손으로 만져서 만드는 것입니다.

많이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연도 만들고 하면서 정말

쟁이와 꾼은 느립니다. 적조암 뒤의 그림들 5년간 만들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

재밌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작업실에서도 날리다가 연이 찢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정신세계가 느림의 정신세계. 이는 쉴세없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지독한

초량1925는 두 가지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원도심 지역에 역사가 남아있는

이름입니다. 이분들에게는 엄청난 큰 그늘이 있습니다. 그늘이 뭐냐 하면 춤을 추는

곳을 소리로 기반하는 〈골목의 기억, 도시의 상상〉 리서치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비

사람이 춤을 추고 무대 밖에 내려가면 무대는 암전이 됩니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에는

메이커즈〉입니다. 두 프로그램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 발품을

춤추는 모습이 생생히 살아 있고 뒤에는 음악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게 바로 굼뜬

팔아야 한다는 것, 몸으로 해야한다는 것,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한 가지가 있습니다.

느림입니다. 여러분도 그늘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이야기 속에서

그것이 뭐냐면 바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결시키고 만나서

그늘을 느꼈습니다. 저는 꾼쟁이에 관해 세 권의 책을 썼습니다. 10월 13일에 마지막

서로 알아가고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란 생각이

꾼쟁이가 나옵니다. 처음 책에 나온 꾼쟁이는 거의 다 돌아가셨습니다. 배무삼 선생님은

듭니다. 좌담의 자리도 만들고 초량동 일식가옥 건물과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여기 계시지만… 거의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들의 사진을 펜화로 그렸습니다.

지금 이 시간과 이 건물이 지어졌을 때 시간과 연결시켜서 계속 커뮤니케이션에 만드는,

그분들이 손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을 나열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책은 신명을 사는

그런 만남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노력을 하고 있는 창파 선생님과 저희 스탭

사람들입니다. 그 사이 낙동강 사람들의 책을 펴냈습니다. 저는 전통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박수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경업 선생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장인

문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 바닥에 깔려야 합니다. 그리고 전통의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주경업과 장인 선생님들께 한 말씀

초월해야 합니다. 그것이 문화입니다. 그것이 작업 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듣고 싶습니다.

전통은 다 고리타분합니다. 고리타분해요. 정말로 생활에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전통을 고수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도움 안되는 전통을 고집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오늘 선택을 하신 장인 분들을 보면 각기 다른 성격에 장인을 잘 선택했습니다. 장인을 한자로 쓰면 장인인데 우리나라 말로는 쟁이 입니다. 우리말 쟁이로 이야기를 하면 장인을 낮추는 말이라고 얘기합니다. 전혀 아닙니다. 장인을 낮춰서 얘기할 때가 있었죠. 우린 우리나라의 쟁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문화의 혁명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앉아계시는 네 분 장인께서 하시는 일이 굉장히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사실은 제가 그동안에 쓴 글은 신문에 쓴 글이기 때문에 지면이 한정이 되어 있어 그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기록하면 어른들의 만나면서 속내를 많이 보았죠. 이분들의 속내를, 이 분들의 아픔도 봤을 것이고, 이 분들을 작품도 봤을 것이고, 이 분들의 힘을 봤을 것이고, 이 분들을 가능성도 아마 봤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 간곡히 부탁 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어떤 정신이 소중한가. 그것의 바탕에는 큰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전통에서 찾고, 찾아 보려고 노력하는 이런 프로그램이 대단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서울에도 없습니다. 부산에도 여러가지 주변에 많은 예술단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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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글쎄올시다. 그런 분들에게서 어느 정도 진정성을 찾을 수 있는지. 이미 여러분들이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진정성을 찾아왔던 노력에 비해서 글쎄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의문이 된다는 이야기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네 분을 장인 매일 만나서 여러분들의 작업에 어떤 변화가 올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전통을 재연하는 것으로 끝일 것인지, 거기서 초월 할 것인지. 전통을 여러분들이 초월 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인들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합니다. 단순 하지 않으면 장인들의 세계는 없습니다. 많은 생각을 가지면 그것을 뛰어 넘는 장인의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세계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확대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하셔야 합니다. 여튼 어떤 작업이 완성되어서 나올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여러분이야말로 내일의 새로운 꾼쟁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장인 선생님들의 말씀 권영관 선생님 불화가 뭔지도 모르고 선친께서 하셨던 것을 조부님께서도 해오셨고 그림이 마냥 좋아서 그냥 그렸던 게 점점 심화할수록 책임감도 느껴지고 선친들께서 해왔던 작업을 허투루 쓰지는 않아야겠다는 이런 소명의식이랄까 그런 게 생겨서 작품 한점마다, 제작할 때마다 그런 생각하는 것을 습관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흐르고 선친이 왜 이런 재료를 쓰셨을까 생각만 해도 그냥 헛되이 함부로 재료를 쓸 수 없었고. 그래서 옛날하고 지금을 비교해 보면 2~30년 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재료들이 주위에서 하나씩 하나씩 없어지는 겁니다. 국가와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정신적인 원초적인 재료 하나를 발굴할 때도 정신적으로 양질의 어떤 석채를 발굴한다던가 이런 것들이 전부다 흩어진 것 같아서… 그래서 외람되지만,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기도 하고 후손들에게 정신적인 뭔가를 작품을 통해서 남겨줘야 하겠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재료라든가 종이라든가 배접하는 과정을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데. 적어도 문외한이 작품의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봤을 때 뭔가 모를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그려야 최고 작품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항상 그런 화두를 머리에 두고 하다 보니깐 세월도 흐르고 아직 못다한 부분도 많고 점점 나이가 들어… 죄송합니다. (청중 웃음) 앞으로 붓을 들 수 있는 힘이 있을 때까지는 열심히 정진해서 작품을 통해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을 우리 후배 후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경암불교미술원 공방에 찾아오셔서 제가 얘기할 때 열심히 듣고 제 이야기에 집중하여 듣는 그런 모습 때문에 저도 더 열심히 이야기하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젊은 작가님들 눈을 보니까 속에 훌훌 오르는 열정이 보이는 것 같아서 굉장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계속 지키시길 바랍니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경업 선생님께서도 권영관 불화장

김창명 조선장

말씀하셨지만 새로움을 항상 받아들일 수 있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반드시 이건 하면

송년순 침선장

배무삼 지연장

된다는 그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 자체 시작입니다. 이건 너무 어려워서 안된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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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순간 안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마인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시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장시간 지치셨을 텐데 들어주셔서 청중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김창명 선생님 장인 김창명입니다. 반갑습니다. 조선장이란 것은 배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단 선착장에서 조선장으로 지금 사대째 배를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대로 보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목근 선생님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우리 김창명 선배님 밑에서 40년을 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선배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문화를 지켜나가겠습니다.

송년순 선생님 우리 전통 부분을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여러 선생님도 다 같은 심정이겠지만 우리 전통문화가 사라진다고 다들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명감에서 지켜야 한다고 우리 오천 년 이어 온 우리 옷을. 돈도 안 되는 조선 시대 옷을 쫓고 있는 저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오천 년 복식을 꼭 지켜나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배무삼 선생님 지연장 배무삼입니다. 반갑습니다. 항상 꼴찌다, 그죠? (청중 웃음) 지루한 시간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들이 본 대로 느낀 대로. 전통을 이어 간다, 맥을 잇는다 하는 사람들 정말 힘들죠. 여러분들이 좋은 것만 보전하고 발굴하고 또 산업화가 되지만… 우리의 것, 옛것이 중요합니다. 단맛은 입에 들어가는데 쓴맛은 뱉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전통을 끝까지 계승하게 해주기 위해 이런 모임을 만들어 주신 일맥문화재단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꼭 바라는 것은 이 프로그램을 네 분 장인만 참여하는 게 정말 아쉽습니다. 이 기회로 우리 부산의 여덟 분의 장인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누구나 다 볼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렵지만 옛것이 있어야 선생님 말씀대로 현대가 있습니다. 그 교량 역할을 하기 위해서 저희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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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경 작가 퍼포먼스

말씀의 맛

아직 차를 우리고 계신 분도 계시고 분주한게 자연스러운

분들과 함께 나눴던 대화에서 남았던 말씀이었습니다. 제

것이니 충분히 시간을 갖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런

기억에 남았던 말씀과 노트에 기록 해두었던 말씀들을

지시가 없이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으시다면 성공한

등긋기를 한 그림을 잘라 그 안에 다시 적어서 넣었습니다.

것입니다만 성공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설명을

좋은 한지인 순지의 느낌도 손으로 만져보고 감촉을

드리기 앞서서 이게 무슨 일일까 지금 차를 드시고 있는

느끼실 수 있도록 하고 그 안에서 제가 느꼈던 것들을 물론

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첫인상을 말씀해주실 수 있는

다른 경험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발효 차의 맛에 실어서

분이 계신가요?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준비해보았습니다.

관객1: 아까 처음 말씀해 주실 때는 몰랐는데 차를 풀고

찻잔을 싼 포장지는 (제가 생각했던 완성도의 것은

종이를 확인하면서 여기 써주신 말씀에 맛이 도대체

아니지만) 거칠게 나마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제가 이 장인

뭘까… 전혀 몰랐다가 이걸 풀어보니까 또 다른 말씀이

선생님들의 말씀을 혹은 기술을 듣는 프로그램을 했을

쓰여져 있더라고요. 이 말도 좋은데 서로 다른 말씀을

때 정말 범접할 수 없는 기술에 오히려 누가 되지 않을까,

확인 해보면서 서로 서로 이야기가 되고 좋은 경험을 하고

혹은 그 깊이에 제가 얼마나 부응 할 수 있을까. 젊은

있습니다.

현대의 작가라는 위치에서 이 분들과의 대화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과정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제가 심어놓은 분도 아닌데 훌륭한 답변을 주셔서

중에 한 조각을 떼어내서 오늘 발효차 형태로 보여드리게

감사합니다. 차를 마시는 일은 사실 누구나 해 본

되었습니다.

경험입니다. 근데 우리가 이미 익숙한 경험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들거나, 보시면 차를 한통에 우려 나눠 마시면 편할텐데 일일이 차를 따르고 종이를 풀어서 차 향을 맡아보라고 하고. 그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조금 더 차 맛을 음미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제안 드립니다. 차를 소개해드리면 두 가지에 발효된 어떤 맛을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발효라는 것은 제가 다루고 있는 음식 분야에서 가장 전통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전통은 고루 하다는 선입견을 저 역시 갖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것을 우리가 현대에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시중에서는 보기 어려운 두 종류의 차를 준비했습니다. 누룩차는 한국에서 만든 차는 아닙니다. 일본에서 삼대째 누룩을 만드는 집에서 쌀을 가지고 발효시켜 만든 차입니다. 드셔보시면 향이나 맛이 쌀이 삭았을 때 나는 조청과 비슷한 맛, 시큼한 향과 맛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강한 맛은 아니지만 은근히 복잡하고 미묘한 맛이 있어서 그게 사실 발효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친구가 농사짓는 농장에서 받은 차입니다. 좀 더 오래 걸리는 방식으로 발효하고 숙성해서 일일이 손을 많이 거쳐 만든 차입니다.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와는 조금 다른 독특한 향을 느껴지실 수 있을 거예요. 각자가 느끼는 맛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제가 이 과정을 통해서 담고 싶었던 것은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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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경

첫 번째 장인 선생님. 불화장 권영관

자문위원. 주경업

매니져. 박미라 Park Mi Ra

개인의 기록이 갖는 가치에 관심이 있다. 그 이야기를 글로

불화장은 불교 교리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탱화를 제작하는

화가, 부산민학회 회장. 1983년 22년간의 중등학교 미술

초량 1925 매니져. 어쩌다 보니 영주동 리서치를 하고 있고,

그림으로 종이 위에 기록해 책으로 펴내고, 밥상 위에 차려

장인을 말한다.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 불화장

교사 등의 교직 생활 결별하고 전업 화가 선언하였다. 그림

어쩌다 보니 비 메이커스 팀과 연도 날렸다. 필요하다면 빵도

함께 먹는 ‘식사의 경험’을 디자인한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권영관은 조부(용성스님)와 부친(권정두)에 이어 불화 그리는

주제를 전통문화에서 발견하기 위해 전국의 춤판, 소리판,

만들고,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발표도 한다. 다양한

식食경험디자이너, 독립출판브랜드 스몰바치북스 대표 등으로

일을 가업으로 일생을 종사하였다. 약관의 나이로 1972년

굿판, 놀이판 등 민속현장을 찾아 그림으로 재현하며 예기능을

경험을 하게 해준 초량 1925에 감사하다.

불리고 있다. 부산-쓰시마 식문화교류 프로젝트 《Cross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주최 제3회 불교 미술 전람회 불화

가진 어른들을 만나 그들의 전통예술세계와 삶을 기록해

Noodle Shop》(2016)을 기획 및 진행하였으며 《장(醬)하다

부문에 후불탱화를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왔다. 그간 아홉 번의 펜화 개인전과 세 번의 유화 개인전을

인턴. 김혜정

내인생》(2017,서울 혁신파크 맛동) 프로젝트에서 식경험

1973년 제4회 때에는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다음 해인

가졌으며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경업의

부산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에 재학 중인 학생이자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1974년 제5회 때에는 특상을 수상하는 등 일찍부터 그

인물기행 부산의 소리 꾼, 쟁이를 찾아서》 외에도 1994년부터

청년문화기획자. 공연무대, 전시공간, 청년문화공간,

실력을 인정받았다. 작품은 부산 범어사, 삼광사, 충북 구인사,

근래까지 전국문화유적답사기 84권, 1997년 드로잉여행기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문화예술콘텐츠가

김보민

전북 금산사 등 전국 주요 사찰은 물론 미국, 일본 등 국외에

등을 펴내었다. 비 메이커즈 자문위원으로 부산시광역시지정

표현되는 문화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부산

(주)부산노리단에서 공연기획, 퍼포머로 활동하며 영화제작을

이르기까지 약 350여 점이 봉안되어 있다.

무형문화재 명인을 추천하였다.

버스킹페스티벌2016》청년기획단, 《전시: 시작할까요 - 부산 전시공간 홍보 프로젝트 2016》기획단, 《글로컬문화학부

하였다. 다수의 거리예술축제와 악기제작/연주 워크숍(20112013)을 기획했고 뮤직비디오 《파리》(2016)와 단편영화

두 번째 장인 선생님. 지연장 배무삼

초량1925 대표. 정만영

전시기획프로젝트팀, 세모아》기획단, 그리고 《초량192,

《강가》(2011)를 연출하기도 했다. 현재는 영상으로 주로

지연장은 연을 만드는 장인으로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1호

사운드 설치 미술가. 부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 후

B-Makers》인턴 등 부산에서 다양한 청년 문화기획자로서

작업하며 특정 장르나 매체에 국한하지 않고 떠오르는 주제를

지연장 배무삼은 1973년부터 제3회 전국 연날리기 대회에

동경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첨단예술표현을 전공하였다. 개인전

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지화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참여한 것을 계기로 40여 년간 동래연 제작에 종사해오고 있다.

《회절回折》(2016, 이주헌), 《Reflected Sound》(2015,

당시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문장원, 천재동 어르신의 제안으로

히로시마예술센터) 외에도 《평창비엔날레》(2017, 강릉)

인턴. 이수인

박민경

부산연 동호회에 가입한 후 ‘연 할아버지’로 불리던 한태정

등의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장소와 소리의 교차 지점들을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에서 문화서비스를 전공하고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어르신으로부터 동래연 제작과 연날리기 기량을 전수받고

연구하는 지역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

있는 학생이며 일맥문화재단의 《초량1925 B.Makers》팀의

두고 회화, 설치, 연극 등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작업하고

전승계보를 이어와 동래연 제작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줄 곳 부산의 ‘소리 지도’와 ‘소리 아카이브’ 제작하며 작가로

인턴으로 참여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다양한 체험활동을

활동하고 있다.

좋아한다. B.Makers를 시작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만남으로

있다. 우리의 내면에 인지하지 못한 감정을 건드리고 자극하는

인한 에너지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이러한 것들을

것, 그것으로 더 나은(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작업의

세 번째 장인 선생님. 침선장 송년순

목표로 삼고 있다. 《신감각》(2017,갤러리루카스), 《컵에

2017년 부산광역시 공예명장의 침선장으로 선정된 침선장

총괄 기획. 창파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 또는 공간을 만들고 기획하는 사람이 될

담긴 물》(2017,스페이스만덕), 《을숙도 부산사랑 젊은작가

송년순은 1962년 양장학교에서 바느질을 체계적으로

문화예술기획자, 예술노동자. 커뮤니티아트의 로컬리티에

것이다.

프로젝트》(2017, 갤러리을숙도)에 참여했다.

배우기 시작하면서양장의 기술을 익혔다. 1980년부터는

관한 논문으로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마쳤다. 일제강점기에

전통한복을 공부하고연구하여 왔다. 2002년 부산대에서

세워진 81살 목조 여관 ‘통의동 보안여관’과 92살 ‘초량동

이재은

천연염색전문과정을 수료하고, 2007년 단국대에서

일식가옥(등록문화재 제349호)’의 창조적 복원과 예술적 활용

2008~2011년 (사)트러스트 무용단의 정단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여자 속옷 제작과정을 인정받았다. 건국대학교에서

사이에서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로컬리티와 관계지향적

이후 독립 무용가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경계를 넘나들며

침선전문과정을 수료해 2013년 4월 (사)한복문화학회에서

예술활동, 사람과 아날로그 문화 활동에 관심이 많다.

지식을 연결하고 새롭게 조합하는 방식으로 안무 작업을

침선장으로 선정됐다. 의복에만 그치지 않고 전통한복 및

하고 있다. 《로터스 랜드》(2017,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한복지를 이용한 다양한 소품들도 연구하여 2016년 대한민국

큐레이터. 문건호(반달)

참여와 《5.6 고리-뉴욕》(2015)의 참여예술인으로 선정. 현재

문화상품공모전에서 대상 수상 외에도 각종 공예품 대회에

(주)부산노리단에서 마을사업 및 축제기획,

부산문화재단 감만창의문화촌 입주작가로 있으면서 예술작업과

수상하기도 했다.

악기제작/연주, 문화예술교육강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부산청년포럼〉기획운영,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다수의

사회활동을 연결하는 접점에서 전문가만의 춤이 아닌 많은 사람과 함께 춤추고자 정기즉흥춤판 ‘움직임 즉흥잼’을 운영하고

네 번째 장인 선생님. 조선장 김창명

문화·기획사업을 운영했다. 반면 부산노리단의 다양한

있다.

조선장은 한선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부산광역시

장르의 공연들을 비롯하여 브라질퍼커션‐바투카다 공연,

무형문화재 제25호 조선장 김창명은 부산 하단의 어촌계

《전방위예술프로젝트 환대‐엑스타시》(2014)에서 안무 및

포구에서 62년 평생을 바쳐 한국 전통 범선을 만들고 있다.

연출, 성인취향의 캬바레·벌레스크 쇼를 표방하는 《반달쇼》를

증조부때부터 같은 곳에 살면서 이어받은 조선장이 가업이

공연하는 퍼포머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을 통한 삶의 변화를

되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4대째 계승해 오고 있다.

믿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문화기획자임과 동시에 퍼포머로

배 만드는 일을 17살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62년 동안

활동하고자 한다.

목선과 돛단배를 1천척 넘게 만들었으며 10월에 있을 ‘서부산 구포나루축제’에 30명이 승선하는 규모로 나룻배를 제작하고 있다.


청년 ― 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값 19,250원

비 메이커즈 B Makers

ISBN 978‐89‐969367‐7‐0

2017년 7월 18일 ― 2017년 9월 30일

청년 메이커즈 강은경, 김보민, 박민경, 이재은 장인 메이커즈 / 부산시 무형문화재 기능 명인 권영관(불화장), 김창명(조선장), 배무삼(지연장), 송년순(침선장) 자문 주경업(화가, 부산민학회 회장) 기획 창파/김혜경(초량1925 책임 큐레이터) 큐레이터 반달/문건호(초량1925 객원 큐레이터) 매니저 박미라(초량1925 매니저) 인턴 김혜정(초량1925 인턴) 이수인(초량1925 인턴) 디자인

greengreem 영상

주최 · 주관

후원

협력

홈페이지

www.choryang1925.com 본 사업은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2017 청년문화 육성지원 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choryang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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