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insa_achive_04_2018_Parkwan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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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너무도 큰 재앙이 겹쳤습니다. 그게 제가 성당 나간 지 한 삼사 년 됐을 때, 엉터리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좋은 취미로 나갔던 것 같아요. 그 재앙이라는 게, 아들을 잃기 전에 남편도 그해에, 88년입니다.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어요.

문인사기획전 4

내가 미리 찾아와서 감사까지 하니까 나에게 재앙은 안 닥치겠지 그랬는데, 사실

모든 고락을 같이 해왔고 여러 행복을 같이 해왔는데. 지금도 남편 잃은 얘기보다 아들 잃은 얘기가 먼저 나오는지만. 남편 죽었을 적에 정말 못 살 것 같아서 밤낮 남편 영정을 놓고 나도 데려가 줘, 나도 데려가 줘 그랬어요. 그렇게 비는 게 아닌데. 모든 기쁨.. 그땐 딸 넷을 다 시집 보냈고, 아들 장가만 안 보냈을 때인데, 레지던트만 끝나면 장가 보내려고 그때 그랬는데. 그랬을 적에 아들이 그렇게 되고 나니까 남편에게 나 데려가 달란 말도 쑥 들어가고 아니, 왜 날 데려 가랬더니 우리 원태를 데려갔냐고. 남편도 다 꼴 보기 싫고, 정말 그 견딜 수 없음을... 세상에 제가 별로 고통을 안 겪었는데 한꺼번에 겪는구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몸을 벽에 부딪쳐도 보고. 제가 장례도 못 봤어요, 내가 혼절을 해버려서. 그때가 88년이어서 한 해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습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중에는 상실감도 상실감이지만, 그 자랑스러운 아들을 잃고 나서 그렇게 부끄러워요. 사람들이 와서 위문도 하고 그러잖아요. 와서 어떡하냐 하고. 내가 못 먹고 드러누워 있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도, 교우들도 찾아오고 하니까 내가 너무 지겨워서 딸네 집으로 도망을 가서 있는데 거기까지 또 오고. 우리 딸들도 다 교우입니다. 그러니까 또 성당 친구들도 오고. 저 사람들 좀 안 오게 해달라고 해서 나 혼자 있어도 그냥 그렇게 창피해요. 어떻게 내가 그걸 못 지켰나, 걔를.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나에게 있나. 난 아주 떳떳하게 누구에게 나쁜 짓 하나 안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마음으론 누굴 좀 미워한 적도 있곤 하지만 내가 이때까지 남을 요만큼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행동으로 해코지한 일도 없건만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벌을 주십니까. 원망할 것은 하느님밖에 없고. 그리고 누가 와도 사람들이 다 나를 구경 오는 것 같아. 저 여자는 아주 착한 척 하더니 뒤로 뭘 잘못해서 저런 일을 겪나, 이렇게 다 수군거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때가 88년인데, 올림픽 할 때 아닙니까. 근데 올림픽 때 우리나라가 굉장히 잘 했잖아요. 그래서 텔레비전을 아파트에서 켜 놓으면 아래위층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다 나를 조롱하는 소리 같고. 진짜 못 견디겠고. 밥 한 숟갈, 물 한 숟갈 못 넘기는데 사람들이 뭘 또 해 갖고 오니까 먹어도 토하고. 제가 부산에 딸이 하나 있습니다. 사위가 부산에 있는 대학에 나가는데 그래서 ‘엄마 이러면 안되겠다’고 당시 내가 가 있던 딸은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고등학교 수학선생인 애가 학교를 나가야 하는데 엄마를 누가 해먹이겠느냐, 자기가 봉양을 하겠다고, 굻어서 허청허청 하는 저를 끌고 며칠을 입원 시키겠다고 데려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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