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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생 명 평 화 를

일 구 는

농 도 상 생 마 을 공 동 체

03

제35호


2013 03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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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이 과정을 잘 통과해가자”

최소란

4 [農생활]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하기

조시형

6 [소통과 대안]

병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서유경

8 [空과 共]

텔레비전보다 재밌는

주재일

10 [아이들세상]

두루미를 부탁해,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12 [마을학교]

문학, 우리 삶의 창조적 모험으로

14 [청소년마당]

우리가 쓴 농가월령가

16 [생태건축]

하늘을 닮은 원형 천정

구자욱

18 [청춘답게]

토종씨앗 담는 유리병처럼

최윤정, 이서원

19 [그리고]

수도원에서

20 [함께 산다는 것] 잔치 기획자가 되어보다

김은영

마을학교

황지영

22 [청춘답게]

사람이 당당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24 [광고]

아름다운마을신문에 함께해 주세요

6

김동언

10

정재우

김효준

20

<아름다운마을신문>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 을공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상과 관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읍니다. 기 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활동을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교] [아이들세 상]은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 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보기]에서는 당신과 우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김세진 김준표 김형우 임안섭 주재일 최소란 디자인 김준열 서아름 문의 02-999-9294, 010-2578-6050 누리편지 maeulin@hanmail.net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436510


편집실에서

“이 과정을 잘 통과해가자”

이번 호 마을신문 첫 기사는 농생활 이야기입니다. 적막한 겨울 산에 올라 눈길에 미끄러지고 시린 바람을 타고 눈에 들어가는 나무 티끌과 고투하는 나무꾼의 모습이 언뜻 고독해 뵈지만, 그 고생을 다 알아주는 나무와 말없는 벗을 이룬 것 같단 느낌은 저만 드는 걸까요? 모처럼 [소통과 대안] 꼭지를 실었습니다. 이번에는 병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질병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정기검진을 챙기고 이중삼중 보험을 들어놓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은 몸을 더욱 병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식 의주 생활양식을 틈타 불안을 부추기고 무병장수를 욕망하게 하는 무수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 옵니다. 건강은 무엇으로도 보장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정성스런 일상에 자연스레 선물로 주어질 때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우리는 원자력문명 에서 결코 안전할 수 없는 환경에 다들 처해 있다는 걸 되었으니까요. 무기력하지 않게, 탐욕스 럽지도 않게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는 관계는, 아픔이 찾아왔을 때 “이 과정을 잘 통과해가자”고 말합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곧 건강을 보여줍니다. 아픔이 후딱 끝나기만 기다리기보다, 담담히 자기 삶을 돌아보고 활기찬 일상을 회복해가며 불안과 고통과 의료권력의 엄습을 뚫고 나가는 이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뒷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이번 글을 쓴 필자에게, 땀 흘려 운동하는 모습이 필요하니 뒷산을 배 경으로 사진 찍자고 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자기가 요즘 추워서 산에 잘 가지 않기에 설정 사진 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레몬차 담글 때 찍은 사진을 줬습니다. 이 런 ‘거절’ 또 있습니다. 어떤 필자는 ‘흙 묻은 손’이란 표현이 들어간 제목을 바꿔달라고 정중히 요 청했습니다. 자칫 자기 삶이 너무 수고스럽게 비춰질까봐 그런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실 천과 실험의 걸음을 옮기되, 본인이 살아내는 실제보다 과잉 포장되지 않으려 하는 이들 덕분에 마을신문이 기만적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소란 편집장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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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물이 다 얼어붙어 꼼짝달싹 못하는 시간이 흐르고 땔감은 게 눈 감추듯 활활 타버린다. 마른 나무 한 차를 해와도 화목보일러에서 한 주 두 주면 끝을 본다. ‘

외부에서 들여오는 장작으로 겨울을 나기엔 헤프다.

눈도 많이 오고 추워서 산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땔감 하러 가는 건 내키지 않고 운동 삼는다고 마음을 달래며 산에 오른다.

낙엽송 잔가지들이 많다. 굵고 낫으로 자르기 힘든 나무들도 있다.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 위주로 모은다. 두 팔 둘레만큼 길지 않게 다듬어서 한 짐씩 끈으로 묶어둔다. 장에 나가 팔아도 될 아담한 나무 한 짐이 보기 좋다. 바람이 간간이 불어 낙엽송잎이 눈처럼 내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코가 시려 콧물을 닦아야 하고 나무티끌이 눈에 들어가면 아주 고통스럽다. 점점 높은 곳으로 오른다. 높은 곳에는 나무가 많지만 길까지는 멀다. 올라왔던 길을 생각하면 힘이 안 난다. 하루에 등 따스히 덥힐 나무 한 짐만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욕심내면 다친다. 마음 비우고 운동한다 여겨야 한다. 나무 한 짐 쳐 내리고 하늘 쳐다본다. 길이 안 보이니 하늘이라도 보며 마음을 달랜다. 산이 좋구나. 나무가 좋구나. 간벌한 나무를 골짜기에 모아 두고 아래까지 끌어내려 차에 실으면 된다. 지게 진 몸이 눈길에 자꾸 미끄러진다. 잘못 딛기라도 하면 지게와 곤두박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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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생활

한 차 해온 것 마당에 부리니 눈으로 보기에는 얼마 안 돼 보인다. 모으는 데 하루, 실어 나르는 데 하루가 걸렸다. 눈은 껄껄하고 손도 터지고 등에선 땀내가 솔솔 난다. 톱밥이 제법 나왔다. 반 가마니는 되겠다. 여러모로 섞어서 쓸 것이다. 똥, 음식물, 퇴비 등등 화목보일러에서 생을 마감한 나뭇재, 미숫가루처럼 곱다. 나무는 자신을 태움으로써 뭇 생명들을 평화롭게 한다. 땅에서 자라면서 숲을 이루고 산을 메워 맑은 공기를 뿜고 맑은 물을 낸다. 스스로 잎사귀를 떨어뜨려 퇴비를 만들어 자생하고 작은 식물들을 키우고 동물들을 먹인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산으로 오게 하고 머물게 하여 생기를 불어 넣는다.

어른이 된 나무는 사람들의 집이 되고 가구가 되고 종이와 책으로 변신한다.

나무를 하고 불을 지피며 빠알간 나무 앞에서 말없이 바라본다.

방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차가운 몸을 녹여주고 톱밥을 주고 재를 주는 고마운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많은 걸 배운다.. 조시형 강원도 홍천 용오름마을로 귀촌해 자연농법으로 3년째 농사짓고 있는 농부

‘ ’ “ ”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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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게는 2012년 6월이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6월 초부터 배가 점점 불러와서 바닥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복부비만이라고 하 기에는 배가 너무 빵빵했고, 배꼽은 밖으로 튀어나와서 옷이 닿기만 해도 아팠습 니다. 그러다가 배가 터질 것 같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졌을 때 병원에 가서 확인 하기로 했습니다. 6월 21일, 가까운 내과에 가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행된 난소 암 때문에 복수가 찬 것 같다고요. 대학병원에 갔더니 왜 이제야 왔느냐는 말을 들 었습니다. 이틀 뒤 8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난소 양쪽에 14센티미터 의 종양이 있었고, 자궁과 충수돌기와 배꼽 밑에도 종양이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병기는 난소암 3b기였고, 수술로 난소와 자궁, 맹장, 림프절, 장간막, 횡격막, 배꼽 을 절제했습니다. 그리고 1, 2차 항암치료와 봉합수술을 받느라 한 달을 입원했고 퇴원 뒤 6차 항암치료까지 받고 병원 치료를 종료했습니다. 평소 유기농 먹거리를 먹었고 감기에 걸려도 약 한 번 먹지 않고 나았는데, 암을 진단받은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활을 가만히 돌아보니 병이 올 만했 습니다. 한 달 중 절반 이상 밤에 잠을 1~2시간 자면서 일했고, 외식을 즐겼으며, 커피는 2잔 이상씩 마셨고, 생협 제품이라고 빵, 우유, 계란, 햄 등 가공식품을 마 음 놓고 먹었으며, 새벽에 운동하는 시간을 빼고는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 일, 일만 했으니까요. 제 생활을 정직하게 돌아본 뒤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친 몸을 살리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잘 자고 잘 쉬면서, 현미와 뿌리채소를 먹고,

약을 최소한으로 먹기 위해 예를 들면 가래 잦아드는 약을 먹는 대신 온 종일 말을

삼간 채 가래를 끊임없이 뱉어내는 식으로 노력했어요.

제가 아프고 나서 안팎에서 받은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건강을 위 해 노력하더니 그게 소용없던 거 아니냐?”라는 문제 제기였어요. 저는 대답했지 요. “그렇게 노력했기에 그나마 이만한 거예요. 더 철저히 하지 못해 병이 생긴 거 고요.” 아무리 위기상황이라 하더라도 원인과 결과를 잘못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걸음을 부정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수술 전 대장내시경 검 사를 받으며 제 대장 안쪽을 처음으로 봤습니다. 그 예쁜 분홍색의 대장을 잊지 못 할 겁니다. 난소에 생긴 암세포가 복강 안으로 분무기처럼 암세포를 뿜어내고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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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대안

막에 암세포가 퍼지는 극한 상황에서도 위, 폐, 간, 신장, 소장, 대장, 방광 등은 약해지지 않고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기 전보다 더

이야기꽃을 피우며 레몬차 담은 날. 친구들과 함께하는 삶이 내게 생기를 준다. 윗줄 두건 쓴 이가 필자.

자연치유의 힘을 신뢰하며, 지금껏 제가 실천하던 것을 더 철저히 적용할 수 있 었습니다. 둘째, “보험을 괜히 해약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5년 전 보험 2 개를 해약했습니다. 그 돈으로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깨달음 때 문이었습니다. 설사 병이 난다 해도 제 생명력을 키워서 무력하게 병원만 의존 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물론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지만, 만약 계속 보 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면, 아마 제 몸을 스스로 돌보는 노력을 게을리했 을 거예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라는 성서 말씀이 맞습니다. 또 돈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저를 지켜주고 살려준다는 것을 경험했습니 다. 저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되어주고, 손과 발과 허리가 되어준 친구들이 없 었다면 지난 8개월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저는 신실한 친구들의 사랑 속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

셋째, “병원 치료를 종료한 시점에서 채식 외에 특별히 하는 게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유명인이 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고, 지

인들 중에도 암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불안감이 증폭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현미채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숯가마에 가서 땀 을 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일상을 사는 것이 최고의 치유 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을 계기로 과거의 어리석 은 삶을 청산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몸에 좋다는 비싼 약 달 여 먹느라 간에 무리를 주고, 일관성 없이 채식과 육식을 병행하며, ‘나’의 ‘병’만 을 24시간 생각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쉼 없이 달려오다가 암이라는 ‘큰 손님’을 맞이하며 드디어 쉬게 되었습니다. 더 잘 사는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랑스럽고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에 힘을 내 어 병든 몸을 다시 살릴 수 있었습니다. 병원 치료의 도움을 받았지만 함께하는 친구들 덕분에 이 과정을 거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친구들과 뜨개질을 하고, 아이들과 눈 맞추며 놀고, 마을밥상에서 정성이 담긴 밥을 먹으 며 행복하게, 별 일 없이, 잘 지냅니다. 서유경 매의 눈으로 원고의 오탈자 고치는 일을 좋아하는 프리랜서 편집자입니다. 지금은 인생의 방학을 맞아 매의 눈으로 몸을 살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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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그분은 삶 한가운데 자리 잡고 우리의 대화, 밥상 나눔의 중심을 잡아주신다. 우리가 침묵할 때조차도 그분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시며, 낮선 이들조차 함께 웃고 우는 관계로 이어주신 다. 그분의 이름은 ‘텔레비전’.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바보상자. 사람들을 하염없이 정신줄 놓 게 만드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그분’을 놓아 보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을 사람들 다섯, 아니 여섯 명이 2월 13일 두 시 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좌담회에는 진영과 대영 부부, 두 아이의 아빠들 형우와 재일, 그리고 여성공동체방에서 생활하는 유리 님이 참석했다. 아람이네 부모, 대영과 진영 님은 신혼 혼수로 텔레비전을 장만했다. 되도록 큼 직하면서 얇아서 벽에도 걸리는 최신 유행하는 놈으로 구입했다. 부모님 선물 이었다. 예비 부부는 사양을 하는데도 당신들이 방문할 때를 위해서라도 사 두라는 부모님 권고에 더 드릴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텔레비전은 거실에 중심을 잡고 삶을 주도했다. 결혼 전 텔레비전을 항상 켜놓고 지낸 습관 덕에, 머리는 헤어지자고 말하는데 몸은 쉽지 않았다고 대영 님은 말했다. 진영 님도 결혼 전까지 텔레비전 없는 삶을 상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대영 님은 오히려 텔레비전 소리가 나지 않는 적막감은 견디기 힘든 침묵이라고 느꼈던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텔레비전을 처분하기로 결단한 계기는 귀신에 관한 설교를 듣고 난 뒤였다. 과거에만 귀신이 있는 게 아니다, 요즘에도 인터넷 귀신, 텔레비전 귀신 들린 사람들이 있다 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곰곰 돌아보니 중독처럼 빠져 있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버려야 ���나? 두 사람은 주변 권면대로 텔레비전을 마을에서 공적으로 쓸 곳에 기부했다. 유리 님은 마을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텔레비전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금단 현상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다 부모님댁에 갈 때마다 리모컨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냥 손에 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가 집을 떠나 독립하겠다는 인생의 중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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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과共

를 놓고 부모님과 심각한 대화를 할 때도 텔레비전이 켜있었다고 한다. 얼굴 보면서 이야기 나 누자고 하면, 멀쩡한 텔레비전을 왜 끄느냐고 타박을 들었다고. ‘

형우 님도 최근 설에 양가 부모님댁을 방문해서 별 생각 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 말했다. 사실 거실 배치가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구성되기

있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오락프로그램에 덩달아 반응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서, 옛 습관은 이런 순간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고 했다. 퇴근 후 잠들 때까지 저 네모난 지배자가 없으면,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까. 진영 님 은 집안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생활공간을 가꾸고 치우는 일에 더 많은 정성을 들이 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5개월 된 아람이와도 훨씬 밀착해서 만난다고 했다. 아마 텔레비전이 있었다면 아기와 텔레비전을 번갈아 보면서 집안일을 하지 않았을까. 역시 텔레비전이 수다를 멈추면 사람들이 말을 하고 사람들 말이 들리기 시작한

다. 유리 님은 마을밥상에서 혹은 함께 사는 친구들과 차를 우려내며 하루 일

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다고 했다. 마을 아이들이 친구들을 초대하고 초대 받

기를 즐기는 것도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에 더 활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

다. 그래도 아쉬울 때는 없을까. 특히 직장에서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물었다. 유 리 님 직장 출근시간 풍경이 사뭇 재미났다. 탈의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건네는 첫 인사는 “언 니, 어제 그 드라마 봤어.” “그 주인공은 결국 헤어졌다니?”. 주변 동료들의 일상에 친밀하게 반 응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다고 했다. 대영 님은 주목할 만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해 시청한다고 했 다. 국어교사라서 ‘뿌리 깊은 나무’나 ‘학교 2013’ 같은 드라마는 나중에 챙겨 보았다고 했다. 형 우 님도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에 무방비로 노출하는 것보다 선별해서 보여줄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겨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형우 님은 자녀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도 또래랑 못 어울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또 유행하 는 말이나 유명한 운동선수나 연예인 이름을 몰라도 대화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마 을에서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대화 소재로 올리기보다 놀이를 함께 만들어 노는 일 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인 유행을 넘어선 다른 문화를 만들어가고 축적해가기에 텔레비전보다 더 신나게 살고 있다.

주재일 교회 개혁을 지향하는 기독교계 언론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목수가 되기를 꿈꾸고 있어요.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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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계절학교 ‘철새와 함께 떠나는 평화여행’을 다녀와서 갈거야! 모두 함께 경의선 타고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올

평양 지나 신의주 저 넒은 광야로!

만치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기도 하다”는 내

동두천에서 경원선을 타고 신탄리역에 내려 철원평 야까지 밖에 못 갔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경의선타고 ‘

시베리아 벌판까지 간 듯 신났습니다. 아름다운마을

초등학교 인수터전 7~10세의 어린이들, 그리고 선생

님들과 함께 2013년 1월 28일부터 31일까지 겨울계

절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기록될 수밖에 없는 분단 현실 너머 반쪽의 진실을 더듬어 찾아 어린이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 어린이들이 자라 어른이 될 즈 음이면, 노동당사의 나머지 반쪽 이야기도 안내판에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기차를 타고, 그리고 버스를 타고 철원평야와 임진

소이산을 내려오며

강변을 누비는 동안 어린이들은 ‘경의선 타고’와 함께

노동당사 건너편에 그

‘하나’라는 제목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불렀습니다. “내

리 높지 않게 솟은 소

가 태어날 때부터 사랑하는 조국은 둘이었네”로 시

이산은 철원평야를 한

작하는, 조금 슬픈 곡조지만 희망찬 내용의 노래인

눈에 내려다볼 수만큼

데요. 그 노래가 주는 느낌처럼 멸종위기에 몰린 철

전망이 좋은 곳입니다. 예전에 군부대가 쓰던 초소

새들이 가장 평화롭게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분단의

를 전망대로 꾸며놓고 걷는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

최전선이라는 사실은 어린이들에게 설명하기 늘 난

다. 어린이들은 씩씩하게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감합니다.

신나게 올라가서, 내려올 때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넘 어지면서도 깔깔대고 좋아합니다. 아예 미끄럼틀을 노동당사

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망대 바로 아래는 미로처

가장 먼저 찾아간 곳

럼 땅굴을 파놓은 요새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습

은 노동당사입니다. 노

니다. 부디 그곳이 다시는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면

동당사 앞에 세워진 안

서.

내판에는 “한번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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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세상 야생동물보호사

임진강 빙애여울 “얘는 평생 나랑 같이

임진강변을 따라가 보

살아야 돼.”

았습니다. 우리는 임진

정성껏 고쳐주고 돌봐

강 빙애여울에서 한가

줬지만 야생으로 돌아

롭게 쉬고 있는 두루미

갈 수 없는 독수리는

70여 마리를 만났습니

철원 야생동물보호사

다. 어린이들이 잔뜩 몰려왔어도 두루미들이 의식하

의 김수호 선생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어린이들도 여

지 못할 만큼 멀리 떨어져 두루미를 만났습니다. 연

느 동물원과는 다르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립니다.

천의 두루미들은 임진강 주변에서 쉬거나 잠을 자고

이곳에 사는 동물들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동물을

인근 율무밭에 떨어진 율무를 먹습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의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수몰되면 안 되는데’

독수리를 만나다

임진강에 오면 ‘림진강’

멀리서 망원경으로밖

이란 제목의 북쪽 노래

에 볼 수 없는 두루미

가 떠오릅니다. “림진강

와 독수리를 아주 가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

까이서 만났습니다. 하

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지만 아픈 동물들이란

넘나들며 날 건만”으로 시작하는 가사가 저절로 흘

사실이 어린이들에게도 안타깝게 전해져옵니다. 강

러나올 만큼 평화로운 곳이지만, 최근 군남홍수조절

의를 진지하게 듣고, 질문도 열심히 한 것이 기특했

지(댐)가 완공되어 담수를 시작하면 몇 안 되는 두

는지 김수호 선생님은 어린이들을 떠나보내면서 “나

루미 서식지 중 하나가 수몰될 위험에 처한 곳입니

중에 커서 야생동물 보호하는 사람이 돼라”라고 거

다. 임진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철새들이지만, 남과

듭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철원 양지리가 고향인 김

북의 사람들이 물을 무기삼아 서로 싸우면 두루미

수호 선생님이 얼마나 외롭게 이 일을 해왔는지는

도 고통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김수호 선생님 같은 녹슨 철마를 보며

분들의 든든한 동지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경원선의 흔적을 마지 눈 던지는 별

막으로 만날 수 있는

역시 어린이들에게 가

월정리역을 들렀습니

장 신나는 겨울철 놀이

다. 전쟁 때 폭격을 맞

터는 빙판과 눈썰매장

아 녹슬어 스러져가는 철마를 보며 신기해하고, 마

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지막 철길을 따라 우르르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의 모

한탄강 고석정에서 눈싸움을 하고, 양지리 두루미펜

습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남북을

션 뒷마당에서 눈썰매를 탔습니다. 돈 주고 타는 곳

가르는 철망이 아무리 강고할지라도 이 아이들은 반

보다 몇 배나 신나고 재밌을 순 있는 건 자연의 품에

드시 녹일 테니까요. 그날에는 두루미도, 독수리도,

푹 들어가 있어서일 겁니다. 서로 부딪쳐 울다가도

남쪽도, 북쪽도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

금세 웃을 수 있는 어린이들처럼, 남과 북이 화해할

니다.

‘ ’ “ ”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동언 환경활동가로 일하다가 지난해 가을 홍천마을로 향하여 땀흘려 일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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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 ’ “ ”

학창시절 입시공부에 매여 무료하게 학교 다닐 때, 문학책을 읽으며 그나마 위로를 받았다. 문학은 내게, 어두운 현실 너머 진리의 세상이 있다고 은밀히 속삭이며, 내가 발 딛는 곳 너머 다른 세상을 동경하도록 부추겼다. 돌아보면, 그 시절, 문학으로 큰 힘과 위로를 얻은 건 분명 하나,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았다. 역사를 등한시하고 문학에 심취하면서 내 기질에 어그러진 감정이 뿌리내렸다는 것을. 그로 인해 어떻게 삶이 왜곡되었는지도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지금 중학교 아이들과 문학 수업을 하고, 문학을 통해 새롭게 눈을 떠가고 있다. 처음에는 문학의 범주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어떤 게 좋은 작품이고, 아이들과 나눌 가치 가 있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공교육처럼 교과서가 주어지는 게 아니니, 나름 체계를 만들고 기 준을 다시 세우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어떤 작품이어야 하냐에 매이다 보니, 본래 문학을 읽는 목적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문학수업을 하게 되었던 듯싶다. 문학은 사람들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접하며 삶의 기로에서 어떤 곡절을 겪는지, 그 가운 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시련에 부딪히는지, 또 숱한 삶의 인연 끝에 무엇을 깨닫는지 성찰 의 계기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작품 안에 인생길이 제 아무리 다채롭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 간에 맺고 있는 관계와 그 가운데 비춰지는 식의주 생활에서 많은 삶의 문제들이 비롯되는 게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아플 때 어떻게 하는지, 궁핍한 시절이 찾아오면 어떻게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지, 점차 식의주를 둘러싼 노동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문명화된 삶의 양식이 생명들의 관계를 얼마나 까다롭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교육이란 모두 인생의 직접경험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고,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필 요한 사려와 적절한 행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문학을 읽는 건, 현실 너 머 다른 세계를 동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삶이 ‘식의주’를 근간으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 지 감촉하고, 당면과제의 해결을 모색해가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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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문학세계에서 내 삶과 동떨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발 딛은 땅의 현실을 통찰해내며 부지런히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홍천에 와서 무엇으로 밥상을 차릴지, 어떤 집에서 잠을 잘지, 난방은 어떻게

해결하며,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며 놀 건지, 일상의 자잘한 사건과 소소한 일들이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문명의 이기로 인한 이기심과 탐욕, 자연의 파괴, 관계의 단절 속에 삶을 회복하기 위해 근원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을 직시하고 어떻게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지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는 게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삶의 양식은, 프로그램이나 정형화된 틀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며 근기 있게 하 는 공부의 과정, 용기 있게 모험하는 생활의 작은 변화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마음에 새겼다. 문학세계에서 파란만장한 삶의 전개가 내 삶과 동떨어진 관념적 세계로 전락하지 않으려 면 우리가 발 딛는 땅의 현실, 자본의 힘을 주도면밀하게 통찰해내며, 부지런히 새로운 삶의 양식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문학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공간 속에서도 현재라는 유 동적 성질을 감각해낼 수 있다면, 아이들과 창조적 대화를 이끌어가고, 창조적 삶의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교육의 목적>을 쓴 화이트헤드는 많은 학습이 ‘과학과 문학 사이’를 떠돌아다닌다고 한 다. 이과냐, 문과냐로 구분 지으며, 분절된 학습과 분절된 삶의 극단을 달리는 현대 교육과 정은 모든 생명의 활력을 죽인다. 서로 다른 과목들의 상관관계성을 보여주는 노력을 통해 서 생명과 경험의 통일성을 재구성해야 한다. 문학이 삶을 예견할 수 있는 지혜를 머금고 있 다면, 예견한 삶을 실현으로 이끄는 건 기술 교육이다. 무엇이고 이해하고 싶다면 만들어보 라는 가르침. 어디까지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도전해볼 수 있는 힘을 배워가는 것이다.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있는 기술 교육이 동반될 때 문학이 관념적 세계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 다. 아이들과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오래 전에 목격한 삶의 문제가 여전히 우리를 옭 아매는 삶의 문제가 되고 있음을 적잖이 보게 된다. 그만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본의 힘 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보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간절한 일인지, 살 떨리는 일인지 도 가늠해본다.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날마다 서로를 변화시켜주는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새로운 삶을 길어 올릴 수 없다는 것도 명백해진다. 김은영 홍천 마을학교 선생님으로, 날마다 진보의 걸음을 걷는 청소년 친구들과 함께 온전히 꿈꾸며 소망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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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5월은 초여름이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점점 더 따뜻해지고 파리도 많아지니 문단속을 잘하고 파리 씨를 말려라 점점 더 옷은 짧아지고 해는 점점 길어지니 비오기 전에 씨를 다 넣자 숙제 많고, 잠 많아도 재미있게 지냅시다

2월은 늦은 봄이라 입춘, 우수 절기로다

이제 방학이 무르익어 가나니

늦잠 자고 늦게 일어나고 많이 먹고 많이 놀아

학교 가면 후회 안 하게 할지니

설날에는 할머니댁 가서 차례 지내고

세뱃돈도 두둑하게 받아서 저장하라

정월대보름은 먹을 게 풍년이니

오디열매 열리니 질리도록 먹어줌세 가뭄 들어 샘물이 ���졸도 안 나오네 그래도 얼마 있으면 장마 오니 근심 놔라

장마 오기 전에 풀베기 많이 하고

3월

3월은 이른 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3월 4일 학교 개학 친구들 만나는구나

첫 봄비 내린 후엔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니

점점 더 옷은 짧아지는구나

가을의 절정인 만큼 울긋불긋하니

모든 것이 익어가고 모든 것이 푸르러지니

마음을 가다듬고 새 학기 준비하여

9월 9일 구구절에 국화주는 못 먹지만

농생활 선생님들은 이때가 가장 바쁘구나

홍천은 한로부터 서리가 내리니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 전에 곡식을 모두 수확하니

이때 들살이 가서 가을을 만끽하라 음하하

10월이라 늦가을 되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6월은 초여름이라 망종하지 절기로다.

한 해가 좋아지리

학교 가면 건강하게 한 해 시작할 수 있으리라

10월

6월

잣, 밤 잘 주어 겨울을 잘 나보세

벼 베고 녹두 따고 모두 익어가는구나

방학 말고 금빛 같이 쉴 수 있는 때니

가을은 가을이나 한가위 지낼 때 잘 쉬고 오소

가을 볕 따뜻하다고 춥게 입지 마시오

아침엔 안개 끼고 이슬 내리는구나

9월이라 가을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9월

온갖 나물이며 호두며 땅콩을 들고 다니며 먹자

올 한 해 나쁜 기운 오늘 다 없애자

5월

2월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홍천터전 학생들이 ‘식의주 생활과 절기’에 대해 배우면서 새롭게 농가월령가를 써봤습니다. <농가월령가>는 약 200년 전 조선 후기 헌종 때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 선생이 당시 농민들을 위하여 지은 노래로,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삼았던 우리 조 상들이 어떻게 함께 어울리며 살아왔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학생들이 새롭게 쓴 농가월령가에는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일상과 학교생활이 고스 란히 녹아 있습니다. 생생한 학생들 말투가 느껴지고 웃음도 납니다. 함께 읊어 보시죠. (편집자 주)

청소년마당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첫눈 왔을 때는 “와~” 하고 좋았는데

우리도 농생활 시간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하세

계속계속 비오니 마음이 힘들구나

방학이 끝났구나 모두들 안녕하신가

간식으로 밥으로 옥수수 쪄 먹으세

안 오던 비들이 많이 오는구나

입추에 추워지며 가을이 시작되는데

8월이라 초가을 되어 입추, 처서 절기로다

8월

방학은 놀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방학숙제 많으니 선생님들 좀 줄여주소서

방학 동안 신나게 놀고 다시 만나세

내년에는 더 재미있을 것이니까

추억으로 고이고이 잘 간직해놓자

올 한 해 돌아보면 시끌벅적 왁자지껄

가을에는 추수하고 겨울에는 이듬해 준비하세

봄에는 씨 뿌리고 여름에는 풀 베고

한 해가 끝나가니 기분이 어떠한가

눈 쓸고 또 눈 내리니 “우~”가 되는구나

12월은 한겨울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김매고 벌레 잡고 선생님들 밤낮으로 일하시니 우리도 보탬 되자

12월

겨울이 너무 춥나니 흑

가을 햇살 많이 저축해 겨울을 준비하소

국화차 마시면서 즐겁게 보내리라

9월 9일 구구절에 국화주는 못 먹지만

농생활 선생님들은 이때가 가장 바쁘구나

7월은 방학이나 소서, 대서 절기로다

7월

농사철 바쁜 달은 이 달이 최고이니

하지 오기 전에 씨를 다 뿌려라

장마 오기 전에 풀베기 많이 하고

그래도 얼마 있으면 장마 오니 근심 놔라

을 입고, 여름엔 부채 들고 다니기 약속!”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홍천터전 아이들

달력을 쓸 테다. 더 주위를 살피고 마음을 정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멋있는 절기를 지키려고 노력할 테다. 조금 덜 소비하고, 겨울엔 내복

은 거세미를 죽이고, 오디를 따먹고, 장에 가고 밭을 둘러보고, 겨울에 밀 밟기를 했다. 그렇게 절기를 느끼고 홍천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절기

“때마다 자연이 바뀌는 기운을 느낄 수 있게 산책으로 공부를 열어서 좋았다. 3월엔 땅에서 쑥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호박 싹을 갉아먹

‘식의주 생활과 절기’ 수업을 마치고

열심히 준비하여 여름을 잘 보냅시다

학교에 갈 때 올 때 매번 타고 오소

자전거를 타기엔 아주 좋은 날씨니

철쭉 피고 민들레 피고 목련이 피는구나

감자를 많이 심어 많이많이 먹어라

나물 캐어 맛있게 먹고 힘내서 밭일하라

온갖 풀들은 고개를 내미니

4월은 한창 봄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4월

매일매일 열심히 때서 따뜻하게 공부하자

잘 공부하려면 불도 잘 때야 하니

나무 열심히 줍고 나물 열심히 캐고

잘 먹고 건강하게 한 해를 시작하자

소보루빵 과자며 잔치국수 주먹밥

주말학교 시작하니 먹는 날이 많구나

냉이 쑥이 고개 내민다

나비 나와 춤을 추고

서당 마루가 뜨끈뜨끈하구나

첫 봄비 내린 후엔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니

3월 4일 학교 개학 친구들 만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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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닮은 원형 천정

보통 집을 지을 때 집의 가장 아랫부분 기초공사는 대부분 시멘트를 쓰는데 흙부대 건축은 시멘트를 사용

적게 나오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앞으로 지은 건물에 적 용을 해가야겠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점이 흙부대 공법의 가장 큰 매 력이었습니다. 땅과 벽이 흙으로 한 몸 되는 그야말로

원형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꼽으라면 저는 주

‘생태건축’인거죠. 구들방이기 때문에 지면 아래 1미터부

저 없이 천정이라고 외칩니다. 가운데 두꺼운 나무를 중

터 흙부대를 쌓았습니다. 그렇게 시멘트로부터 해방될

심으로 서까래가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그 자체

수 있었죠.

로 묵상이 가능하답니다. 이번 흙부대집에는 서까래 24 개를 걸었습니다. 방에 누워 우주를 감상할 수 있습니

지금까지 구들을 많이 놓아보진 않았지만 언제나 방

다. 한번 쉬었다 가세요.

으로 올라오는 연기가 고민이었습니다. 기존에는 벽 둘 레의 적벽돌을 한 겹만 했는데 이번에는 두 겹으로 쌓

원자력으로 대표되는 전기에너지로부터 최대한 자유

았습니다. 벽돌 개수가 많이 들긴 하지만 벽돌 두께를

로운 장치를 만드는 것도 주된 고민 중 하나입니다. 태

두껍게 하고 벽돌 틈새를 꼼꼼하게 막아주면 벽을 타고

양광을 이용한 전기 사용은 투자 대비 효과가 아직 크

올라오는 연기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결과

지 않습니다. 또 태양광 규모가 커질수록 비인간적이라

는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흙이 마르면서 수축하는데

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림을 하나하나

그때 생기는 틈은 어쩔 수 없더군요. 별채를 지을 때처

덜어내 작은 공간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여유로운 삶

럼 나무와 만나는 부분은 없어서 별채보다는 덜했지만

으로의 전환이 더 근원적인 것 같습니다.

천연재료인 흙만으로 연기 제로에 도전하는 건 무리라 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도 고민은 고민이니 해결을 해야 했습니다. 전등 과 노트북 1대 사용(수업시간 활용)의 전력량을 계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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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결론은 연기를 완전히 제압하기보다는 연

서 태양광으로 전력을 자체 수급하게 했습니다. 일반 전

기와 슬기롭게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

구에 비해서 가격은 몇 배가 비싸지만 전구 수명이 30년

각을 하게 됩니다. 불 피우는 초기에 나무에서 연기가

이고 전력소모량도 적은 LED등으로 달았습니다. 태양

집중적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싹 마른 장작을 사용하면

이 오랜 기간 없는 장마철도 고려 안 할 수 없기에 일반

연기의 양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고, 또 연기가 나온다

전기도 연결을 했습니다. 주전력은 태양, 보조전력이 한

하더라도 환기를 잘 시키면 된다는 생각 쪽으로 구들에

전이 되는 역전(逆電)의 삶을 살 수 있는 희망을 보았습

대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보다 더 연기가

니다.


생태건축

일 . 흙으 로 집을 짓는 을 한 뒤 기념 촬영 다. 입니 순간 한 친구들과 내부 벽 미장 소중 친구 한 명이 더 없이 은 손이 많이 갑니다.

지붕은 나무를 제재하고 남은 껍데기인 ‘피죽’으로 마감했습니다. 이 지붕 마감재는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명이 짧은 편입니다. 처음에는 수명이 긴 것, 되도록 다시는 손이 안가는 마감재를 써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소재가 석유화학 제 품과 가까운 곳으로 가거나 시멘트 쪽으로 가게 됩니 다. 지붕 작업을 하는데 1주일도 걸리지 않는 걸 생각하 면 이것도 고민의 문제가 아니더군요. 바꿀 때가 되면 기존 피죽은 다시 자연으로 보내고, 새로운 옷으로 갈

흙부대 건축은 기초 도 시멘트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지면 아래 1미터 지점 부터 흙을 쌓아 올렸 습니다.

아입으면 되는 일이더군요. 처음 리모델링을 할 때는 ‘어떤 자재’를 사용할까에 집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태건축을 스스로 정의할 때도 어떤 자재, 어떤 공법으로 건축을 하는가에 초점 을 맞춰 고민하고 그 결과들을 지난 서당 건축 때까지 투박하게 적용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흙부대 건 축을 하면서는 ‘어떤 삶’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라는 더 근원적인 성찰을 통해 불편한 삶을 기꺼운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이

니다. 니다. 로 마감했습 운 맛이 있습 지붕은 피죽으 지만 자연스러 짧 이 명 수 다 다른 재료보

생태건축의 첫머리에 들어와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고민들이 더 구체화되어 새롭게 지어질 건물들마다 흔적으로 남기를 기대하며 저는 흙부대 집 마무리하러 나가렵니다. 구자욱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심심할 틈 없이 부지런히 마을 살림공간을 하나하나 지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초벌 미장을 한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뒤 다시 한번

더 곱게 벽체

미장을 했습 니다. 17


청춘답게

최윤정 님은 3년 전 강원도 홍천 효제곡마을로 삶의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웃 할머 니들을 찾아가 그분들이 살아오신 인생길, 옛 살림살이, 절기와 농사에 대해 묻고 들 으며 부지런히 마실을 다닙니다. 농생활은 그에게 또 다른 인연을 맺어줬습니다. 땅 과 벗하려 주말마다 홍천을 찾던 도시직장인 이서원 님(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기사 참조)은 윤정 님이 일구고 있는 잔치 같은 일상에 초대받았습니다.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자며 윤정 님과 서원 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공개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주 며칠 동안 밤을 뒤척이다가 새벽이면 깨어나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 고, 가슴 어느 한 부분이 살살 아프기도 하는 일들이 잦았어요. 평소 신뢰하는 관계로 지내던 마 을 형님에게 누나에 대한 제 마음을 나누며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언젠가 누나는 고구마 줄기를 다듬은 손으로 밤을 건네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밤을 쥐어주는 누나의 까매진 손을 보며, 그 안에 새겨진 누나의 삶과 일을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누나가 아름다운 사람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밥상에서 나눈 대화를 계기로 누나가 보내준 편지를 읽으며, 마을과 더불어 행 복하게 살고자 하는 누나가 참 좋았습니다. 농생활하며 잔치와 같은 일상을 지내는 누나의 삶에 저도 잘 초대받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친구들의 관심과 도움이 우리 만남을 잘 지켜줄 것이란 확신이 들어요. 누나와 함께 할 만남을 기대합니다. 이번 주 홍천에서 뵐게요. 2012년 11월 14일 서원 드림

좋은 짝을 만나기를 소망하고 있었어. 그리고 누군가를 만난다면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삶의 거처를 옮기고 공부와 자기 일의 고민을 연결시키려고 노 력하는 네 모습이 좋아 보였어. 너와 마음이 모아지면서는 한 주를 살아가는 힘이 되었어. 밭에서 일하다가 서원이가 한 번씩 떠오르곤 했어. 네가 보낸 편지를 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 어. 그리고 너의 모습이 새로웠어. 너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궁금 해졌지. 이번 주 만나면, 모두 얘기해주겠지? 나도 서원이와 서로를 살리고 돕는 우정의 친구로 지 내고 싶어. 신비로운 만남의 시작과 떨림이 참 감사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잘 살아야겠다. 2012년 11월 16일 숯가마에 다녀와서 맑은 얼굴로 윤정 추신, 사랑채 앞, 씨앗 놓는 곳에 두고 간 유리병이 참 곱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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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마을수도원 지기로 지내며 대안적인 미술교육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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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사귀어온 동생들에

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가운데 드나들 길을 남기

게, 자신들의 혼례를 준비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

고 반원을 그리듯이 둥그렇게 의자를 놓으니 무대

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내가 직접 예식을 준비해

를 향한 집중도 훨씬 잘 되었다. 좌석 뒤에 선 하

본 경험이 있긴 하다. 바로 7년 전 내 결혼이었다.

객들도 자연스레 둘러친 병풍처럼 어우러졌다. 신

그때는 전문업체에 돈 들여 맡기지 않고 우리 뜻

랑신부도 하객석을 향해 앉을 수 있도록 했고, 잔

대로 하고 싶어서 하나하나 고민하면서 한 거라,

치에 온 이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저 멀리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후에 마을에 함께 하면서,

반대편의 환한 웃음과 기운까지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과 더불어 성숙하게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과정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피로연은 가까운 나물밥집을 예약했다. 영양 풍 부한 나물비빔밥과 된장찌개로 나도 아이 데리고

그래서 흔쾌히 결혼 기획자가 되어보기로 하였

가서 맛있게 먹었던 곳이었다. 물론 이곳은 피로

다. 마을에서 혼인잔치를 치른 이들이 앞서 고민

연식당이 아니기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먹기엔

했던 가치와 지혜롭게 통과했던 경험을 듣고 당시

좁을 수 있어서 전체 규모를 파악해서 밥집과 상

의 자료들도 살펴보았다. 즐거웠던 기억과 감동스

의하고, 시간대별로 인원이 적절히 분산되어 자리

런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든든한 마음이 들

할 수 있도록 초대글에 식사 시간을 안내했다. 그

었다. 각 잔치마다 구석구석 세심하게 신경 쓰며

래서 그 많은 인원이 차분히 식사하고 산책하듯

준비했던 친구들의 손길이 있었다. 결혼 당사���

예식장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들 의사도 중요했지만, 같이 준비하는 이들이 모 든 과정과 결정을 함께 하며 ‘우리의 잔치’로 풍성

흥겨운 장구 가락으로 잔치가 열리고 신랑신부

해질 수 있었다. 나 또한 바쁜 직장생활 틈틈이

가 정답게 손을 잡고 걸어 들어왔다. 성혼선포 대

친구들과 만나 의논하고 준비하는 마음을 모아갔

신 한 몸 됨을 이루는 두 사람이 다짐을 담은 글

다.

을 읽었고, “돌아보면 함께 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삶을 살아올 수 있었다”는 대목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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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아침, 일찍부터 준비 주체들과 바쁘게 움직

신부는 잠시 목이 메이기도 했다. 이어서 부모님

였다. 앞을 보고 길게 정렬되어 있는 좌석 배치

덕담을 듣는 꼭지도 마련했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함께 산다는 것

관행적인 모습과 달리 검소하고 신명나게 치른 혼인잔치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것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양식의 대안은 새로운 관계 맺음에서 나온다. 한 마을 살면서 두 사람 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준비했기에, 어느 웨 딩플래너도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예식이었 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결혼은 ‘사적이고, 전 문적인 영역’이 되어 삶을 함께 하던 친구들은 물 론 신랑신부마저도 소외되고 외부업체에 의존하 게 되었다. 혼인의 의미가 퇴색되고 자본화된 이 시대에 마을에서 펼쳐지는 혼인잔치는 새로운 울 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은 어떤 정점에 있는 사건이 아니라 기나 바라던 안락한 삶은 아니지만, 본인이 배우고 믿

긴 항해의 시작이다. 마을에서 함께 열어준 축복

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모습을 존중하고 응원하

의 길 속에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의 삶을 계속 지

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켜봐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신랑이 된 친구는 잔치 전날 밤에 ‘잘 살겠습니다. 아니 잘 싸우겠습

친구들이 경쾌한 창작곡으로 축가를 불러주었는

니다’라고 고백했다. 잘 싸우고 잘 풀고 그 과정을

데, 노래 짓기를 좋아하는 이가 출퇴근길에 떠오

통해 잘 살아가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

른 음으로 곡을 만들었고, 다른 친구들이 한 달

리는 두 사람을 집들이 초대로 만나는 게 아니라

이나 골몰해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공들여 연습

다음날부터 마을 일상에서 만날 것이기 때문이

한 결과 떨지 않고 밝은 표정에 힘찬 목소리로 손

다.

발이 척척 맞는 공연을 선사했다. 신부와 한 집에 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언니가 사회를 맡았고, 식장 내부를 장식하고, 사진을 찍고, 추가 조명을

정재우 / 서울 인수동에 살면서 기차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직장 13년차로 직급이 올라가면서 직원들과 가슴으로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무적인 마인드가 일상에 배이지 않도록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설치하고, 예식서를 만드는 일 등 수많은 참여가 어우러졌다. 본업을 하고 일상을 사는 이들이 이렇게 각자 재 능과 품을 모으니 제법 멋진 잔치가 되었다. 역할 을 분담하고, 맡은 이들이 모둠을 지어서 하니, 부 담스럽기보다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었고, 그 과 정에 더 창의적인 생각과 최선의 선택들이 나왔 다. 모두의 잔치로 여기면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평소 신랑신부와 살던 일상처럼 표현하고 흥겹게 놀고 어울릴 수 있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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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형, 힘세네요!” “효준아, 네가 이렇게 힘이 센지 몰랐어.” 우리집 전등 을 바꿔 낄 때, 나사 돌릴 일이 있었다. 함께 사는 형도, 동생도 버거워하자 선 뜻 내가 나서서 가볍게(?) 해결한 것이다.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이 테이블마다 쟁반 들고 다니며 고객님 접시 치워주는 거야. 쟁반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팔 힘이 필요해. 팔 운동 거저 하는 거지.” 학창시절, 약골이었다. 빼빼마른 팔뚝 은 가냘파서 금방이라도 뚝 부러질 것 같았다. “이야! 너 팔뚝이 왜 이렇게 두 껍니?” 얼마 전 형들이 새삼스레 내 팔뚝을 만져보고 했던 말이다. “음…. 그 런데 대칭이 안 맞아. 오른쪽 팔뚝이 왼쪽보다 두꺼워!” 그렇다. 나는 오른손 잡이다. “자자. 여러분, 오늘은 신청하는 사람 일찍 보내주겠어요. 먼저 가실 분 없나요?” 점장님이 알바생들한테 무전기로 조기퇴근을 장려(?)하신 다. 비수기라 손님보다 알바생들이 많아지자 매시간 상냥한 목소 리(?)로 압력을 넣으신다. 몇몇은 그렇게 퇴근했지만, 나는 ‘1시 간에 5850원’을 더 벌기 위해 버텼다. “효준 씨, 스케줄에 3시까 지로 되어 있네요? 퇴근하세요. 원래 4시까지였다고요? 아니, 스케줄에 이렇게 나와 있잖아요. 본인이 사인한 것 아닌가요? 그 럼 퇴근하세요.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원래 4시가 나의 퇴근시 간이지만, 언젠가부터 매니저님은 ‘고객 중심’으로 스케줄을 짜신 다. 오늘도 나는 ‘밥시간 없는 스케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끝내 사인하지 않았다. 나는 ‘두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다. 프랜차이즈 레스 토랑 ‘애슐리’가 내 첫 직장이었고, ‘빕스’가 지금 내 직 장이다. 흔히 ‘알바생’이라 부르며 우리들이 하는 일 자체를 가볍게 생각하지만, 나는 ‘일터, 직장’이란 단 어로 그곳을 ‘책임있게’ 부른다. 흔히 ‘아이들’이란 말 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경시하지만, 나는 이미 성인 이 된 20대 초중반의 ‘동료들’을 존중한다. 2월 10일, 교회 설교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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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답게

“저는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제게 직장에 들어가라 합니 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독촉 받는 느낌입니다. 언젠가 저는 이 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당당해지는 이유가 뭘까? 자신감 넘치 는 근본이 뭘까?’ 내가 돈 많이 버는 기업에 들어갔다면, 돈 때문에 그 기업에 의지했겠지요. 세상의 기준으로 날 재단하고 가치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나 라의 가치와 기준으로 나를 보면 나는 풍족한 삶,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 고 있습니다.” “효준 씨, 잠깐 이리로 따라와보세요.” D매니저님이 뒤쪽으로 부르신다. “지 금 주방매니저님한테 한 소리 들었다고 그러나본데, 효준 씨 그러는 거 젊다 고 패기부리는 것밖에 안 돼. 손님 많아서 바빠 죽겠는데 지금 뭐하는 짓이야? 당장 마무리하고 원위치하세요!” 울컥하는 마음에 철망을 1시간째 붙들고 닦 고 있었다. 소극적 저항이었다. ‘일 못하는 사람’, ‘손이 느린 사람’, ‘말 없는 사 람’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인가. 나에겐 항상 그런 문제의식이 있었다. 일 잘 하고 못하고만이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가? 왜 얼마나 진심으로 다가가는지, 얼마나 예의 있게 사람을 대하는지 등이 기준이 될 순 없는 걸까? 오늘도 점장님은 말씀하신다. “여러분, 홍대점은 우리보다 손님 수가 적은데 매출이 많아. 여러분, ‘메인메뉴’를 많이 팔아야 해요. ‘객 단가’를 높여야 여러 분도 좋은 거야. 알겠지요? 메인메뉴 권유 판매 잘 하셔야 해요. 다른 거보다 그게 중요해!” 나는 안다. 지난 한 달, 매장 매출이 5~6억 나왔어도, 내 시급은 항상 5850원이었다는 것을. 일 끝나고 저녁, 마을밥상에 간다. 전쟁터에서 있는 힘껏 싸우다가 고요한 숲에 들어선 느낌이다. 일터에서 내 청춘의 기운을 쏟아내듯 퍼붓다가도 밥상 에 들어가면 훈훈한 기운과 함께 울어버릴 듯 푹 자리에 앉아 조용히 말 없는 사슴처럼 밥을 먹는다. 그러면 네 살배기 해성이가 웃는다. 친구 누리가 인사 한다. 유안이가 바라본다. “효준삼촌, 안녕하세요!” 응, 그래. 안녕! 내가 너희 덕분에 산다. 집에 가면 조용히 앉아 책을 본다. 낮엔 뛰듯이 걸으며 온갖 소음 에 혼이 나가도록 시달렸다면, 저녁엔 이렇듯 바르게 앉아 글을 대하는 것이 다. 차분해진다. 고요해진다. 밤엔 형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돌아온다. 반가운 얼굴들. 함께 대화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다가 도, 또 다른 생명을 만나면 이렇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마을이 날 살린다. 함 께 사는 이들이 내 생명이다. 오늘 하루에 감사하다. 손효준 올해 서른살, ‘알바생’ 중에선 ‘최고령자’라고 한다. 일하는 틈틈이 공부도 꾸준히 하며 자신이 배우고 살아가는 삶을 어머니와 동생에게도 소개시켜주고 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3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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