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행복지기 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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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일깨우는 캔버스

2013 NOVEMBER 행복지기

희망으로 품은 비올라 어렸을 때 작가의 집은 추운 겨울, 손발을 닦거나 머리를 감기 위 해 큰 통에 물을 끓여서 사용했다. 작가가 5살 되던 해, 뜨거운 물 이 쏟아지는 사고로 왼팔과 왼손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그때는 ‘그 냥 다쳤구나! 흉터가 남겠다’하는 정도의 상처였다. 막상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세상을 향한 마음이 닫혀갔다. 놀림 감이 되기 싫어 팔을 감추고 스스로 강해져야한다는 생각에 친구 들을 괴롭혔다. 공부도 바닥이고, 문제아였다. 작가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우울하고 힘겨운 학교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작곡을 전공한 누나를 찾았다가 우 연히 비올라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음악이라면 닫혀 있던 세상에 마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올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 다. 비올라는 암울했던 과거를 잊고, 다시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연주가에서 제작자로 삶의 전환 처음에는 연습량이 부족해서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현 악기를 연주할 때 왼손이 가는 리스크를 깨닫기 전까지는. 왼손이 갖는 힘, 밸런스를 조절하는 능력은 중요했다. 삶의 전부라고 생각 했던 비올라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신체적 한계 때문에 연 주를 포기하는 순간,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어디로 가야할 세상을 움직이는

영혼의

지 삶의 이정표도 상실했다. 인생의 두 번째 방황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쯤 유럽여행을 홀연히 떠났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열흘간 떠난 곳은 스트라디바리, 콰 르네리 등 명기 제작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라는 지역이 었다. 우연하게 들어간 악기 샵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장인을 만

음악이라면 닫혀 있던 세상에

났다. 장인의 손가락은 모두 4개뿐이었다. 그 또한 어렸을 때 화재

마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 손가락 6개를 잃었다고 한다. 그렇게 양쪽 2개의 손가락으로 명

비올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기를 제작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비올라는 암울했던 과거를 잊고,

“나도 이렇게 악기를 만드는데 너는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다시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오히려 꾸지람과 격려의 말을 들었다. 여행에서 만난 장인을 통해 서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 나한테 큰 고민이 어떤 사람에게는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보면 고민이 아닐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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