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26호 (201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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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모나리자와 내 방 티슈 곽에 그려진 모나리자, 혹은 구글 이미지에서 찾아주는 수많은 고화질의 모 나리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자를 뒤집어 쓴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의 길거리 연주를 외면했던 이들은 어떨까? CD 음질과 MP3의 음질을 구분하지 못했던 음향전문가들은 또 어떤가? 어쩌면 진짜라는 것은 그저 일종의 형식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상황도 진짜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막지는 못한다. 뒤샹의 샘은 1917년 분실되었고, 1964년 이탈리아의 슈바르쯔 갤러리에 의해서 8개가 복제되었는데, 97년 소더비에서 그중 하나가 176만 2,500달러에 팔렸다.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들도 진품대접을 받으며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고 소장된 다. 화제를 몰고 다녔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도 자신의 작품이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 고, 대신 미술시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이런 거래에는 기묘한 경제논리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미술작품이 자본의 투기적 자산목록에 올 라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때때로 많은 돈을 주고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쩌면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 들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못 견뎌 하는 것이 진짜의 가치 없음이나 의미 없음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도 모른다. 즉 진짜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8개이거나, 아니면 다른 변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는 사실이야 말로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고 싶어 하는 진실인 것은 아닐까? 표절을 둘러싼 소란 역시 이런 진짜에 대한 도착적인 태도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그것은 논의를 제자 리에서 맴돌게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 도착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고유성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증된 진짜들에 나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나의 고유성을 확인받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진짜라고 믿고 있었던 무언가가 표절을 통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사실은 덩 달아서 내가 진짜인가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표절에 대한 과잉반응은 한 때 내가 사랑했던 것이 가짜라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과 동시에 그것과의 분리를 통해 나의 고유성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을 막아보려는 가 련한 영혼의 몸부림이기도 한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신경숙의 표절논란이 한창이었을 때 어떤 이들은 오로지 논란에 끼기 위해 해당 소설 을 읽기도 했다. 우리가 이런 오지랖을 부려야 하는 이유는 나를 빼고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고,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태풍 속에 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진짜라고 여 겨지는 역동성에 나를 투영하고 나의 자리를 얻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 불안과 몸부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어쩌 면 이것이 표절의 기준에 대해서 합의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기획 키워드로 보는 2015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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