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23호 (201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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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잔디밭에 앉아서 시청사를, 하늘을 바라보았다. 작년 12월의 나는 시청사 로비에 앉아 시청 바닥이 따뜻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올 3월에는 서울시청 혁신기획관이“인권과장과 싸우지 마시라” 는 말을 들었고, 그날 만난 인권과장은 내게“도대체 왜 동성애자들이 시끄럽게 행사를 하는지 이 해할 수 없었는데, 내 딸의‘그래야 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 아니냐’ 는 말에 그제야 수긍이 갔다” 고 말했다.“나는 개인적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다” 던 박원순 시장의 인터뷰도 떠올랐다. 혐오세력이 대놓고 던지는 폭언도 쓰리지만, 너무나도 말끔한 얼굴로 ‘싸우지 말라’ 는 사람을 보면 이게‘희망 서울’ 의 정치인가 싶어 얼떨떨했다. 해가 뜨면 이 광장도 작년의 신촌 거리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금 말끔한 얼굴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혐오세력은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심지어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영상을 틀어 보여주더니, 내년에 다시 보자고 말했다.‘내 년이 아니라 당장 다음 주에 대구에서 보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는,“난나나~ 사랑해” 대구에 도착해 부스를 차리러 나가니 경찰이 이미 펜스를 치고 둘러싸고 있었다. 서울광장과 다르게 대구백화점 앞의 거리에 부스를 깐 터라 자꾸 난입하는 혐오세력이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나가 라” 고 외치며 내보냈다. 모든 부스의 유인물을 말없이 모두 집어가며 눈을 맞추지 않는 혐오세력도 가끔 보였다. 나는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를 위한 재단인‘비온뒤무지개재단’부스에서 자원활동을 했는데, 마 스크로 얼굴을 가린 10대 성소수자들이 우르르 와서 웃고 떠들고 가던 때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이

대구 퀴어문화축제의 부스를 둘러싸고‘동성애 아웃’ 을 외치는 혐오세력들 (사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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