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뉴스위크 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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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코리안 뉴스위크 Korean Newsweek

제1188호 2020년 1월 31일 (금요일)

장동헌 기자의 <세계 인물> ‘아담에서 저커버그까지’

<그때를 아시나요> 전 나 유

144.강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베냐민 네탄야후

겨울 이야기-2 지금은 집안의 형제 자매들이

된 둘째 언니와 그리도 죽이 잘

단촐한 숫자가 되어서 많은 가 족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무척

맞아 날마다 웃음꽃이 떠나지 않게 화사함을 더했던 분위기

생소하고 불편하게까지 느끼는

메이커이기도 했던 언니는 셈세

사람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우 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각 가정

하면서도 호탕한 성격이었습니 다. 동생들이 잘못했을 때 눈물

마다 자녀들이 5남매 6남매 있 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 때로

이 쏙 빠지도록 엄격하게 다루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었습니

는 10명 12명까지 있는 경우도

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 6남

허다했으니 지금과는 상당히 다 른 풍속도를 보였습니다.

매의 가정에서 큰언니로서의 위 치가 지금 생각해보니 무게감으

그러다보니 집안의 장남이나 장녀는 부모님 다음으로 책임

로 보나 서열로 보나 쉽지 않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도 막중했을 뿐 아니라 위계질

한번도 그런 마음을 내비친적이

서면에서도 그 위상이 뚜렷했습 니다. 동생들이 함부로 넘보거

없던 큰언니로 인해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참 많이 배운 것

나 말을 듣지 않거나 하면 무섭 도록 호통을 치곤 했습니다. 우 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큰언 니의 역할은 대단했습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아래로 쪼로 록 달린 동생들을 건사하고 살 핀다는게 보통일은 아니었습니 다. 철없는 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아다니며 이 리 뛰고 저리 뛰면서 큰언니의 다스림을 살짝살짝 피해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약한 몸으로 어린 동생들을 돌 보느라 많이 힘들었을텐데도 씩 씩하게 생활하던 언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학교가 끝 나고 오면 동생들 숙제 봐 주는 일이며 집안 청소를 하는등, 어 머니를 도와 분주하게 움직였습 니다. 이제 그만하고 네 일 하 라고 만류하는 어머니의 권유에 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해 야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선 끝까지 마무리했습니다. 자신 의 학교 공부가 많았음에도 동 생들 먼저 살피던 언니는 천상 큰언니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같습니다. 책을 좋아하던 동생들 의 눈을 생각해서 정확하게 시 간을 재고는 책을 덮게 하고 창 문 열어 초록색 먼 산을 바라 보게 했던 일, 빠듯한 간식꺼리 를 똑같이 동생들에게 나눠 주 면서 정작 자신은 먹지도 않고 먹었노라고 말하던 일, 숙제를 해가지 않아 선생님한테 꾸중듣 고 훌쩍훌쩍 울면서 집으로 돌 아와 속상해 하는 내 등을 토닥 거리며 밀린 숙제를 정성스럽게 도와 주던 일, 그러면서 부모님 께는 나의 칭찬을 아끼지 않아 오히려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들 었던 일 등등….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을 퍼부어 주었던 큰 언니의 고마움을 일일이 다 갚 지 못해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 음만 그득히 갖고 있습니다. 어 느 겨울날, 몸살로 인해 시름시 름 앓던 나에게 호떡을 사주기 위해 한참 떨어진 호떡 가게를 다녀 와서는 시린 손을 호호 불 며 호떡을 한입씩 떼어 먹여 주 던 정스런 언니가 있던 그때, 그 때를 아시나요.

세계 역사에서 유대인만큼 특

과정을 마쳤다. MIT 경영대학원

에서 물러났다.

이하고 기구한 운명을 겪어온 민 족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선민

재학 중에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에서 정치학도 수학했으나 형이

그 후 아리엘 샤론 정권의 각 료로 참여하게 되어서, 2002년

사상’으로 스스로를 하나님이 택

엔테베 작전 중 사망함으로 인해

~ 2003년 외무장관으로 재직

한 민족이라 여기는 그들은 기 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

정치학 P.hd 과정을 마치지 못했 다. MIT 졸업 후 보스턴 컨설팅

했고, 2003년 재무장관으로 임 명되었다. 또한 아리엘 샤론이

듯이 오랜 옛날 페르시아, 이집 트, 로마에 지배당하고 또한 현

그룹(BCG)에서 근무하였다. 이때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

맡고 있던 리쿠드 당 당수직도 다시 노리게 되었다. 그런 가운

대에 와서는 독일 나치와 히틀

해 버락 오바마에 대항할 밋 롬

데 2005년 8월 9일 샤론 총리

러에게 홀로코스트(Holocaust) 라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수난

니를 BCG 동료로 만나 친분을 쌓았다. 1982년에는 워싱턴의 주

의 가자 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 수 계획에 반대하며 재무장관

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 의 나라 이스라엘을 건국한 이

미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근무하 였고, 1984년 ~ 1988년 주 UN

직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샤론 총리가 리쿠드 당을 탈당하고

후에는 팔레스타인을 비롯, 이웃

대사를 지냈다. 1988년 국회의원

카디마를 창당하자 그 해 12월

아랍 국가들과 정치, 영토적 갈 등을 겪으며 수차례의 중동전쟁

으로 선출되었고, 이츠하크 샤미 르 정권에서 각료로 재직하였다.

리쿠드 당 당수직 선거에서 다 시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2006

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네탄야후는 1993년 리쿠드 당 수로 선출되었으며, 1996년 총선

년 총선에 출마했다. 총선 결과 리쿠드 당은 원내 제1당의 자

러나 이스라엘은 미국, 영국, 프 랑스, 독일 등 서구국가의 전폭 적인 지원 아래 오늘날 국제사 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 자는 ‘강한 이스라엘’을 표방하 며 지난 23년에 걸쳐 총리를 지 내온 베냐민 네탄야후이다. 베냐민 "비비" 네탄냐후(히브리 어: ‫ּוהָיְנַתְנ "יביב" ןיִמָיְנִּב‬, 1949년 10 월 21일 ~ )는 이스라엘의 정치 인이다. 리쿠드 소속으로 1996년 부터 1999년까지 제13대 총리를 지냈으며 2009년에 다시 총리에 임명돼 현직 총리로 재직 중이 다. 그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 후인 194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 났다. 대학 교수인 부친을 따라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 후 6년간 군복무를 한 것을 제 외하고는 1980년대 후반 이스라 엘 정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거 의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부를 마 쳤고 MIT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팔레스 타인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실시 할 것을 내비치며, 온건파인 시몬 페레스 당시 총리를 공격하였고, 결국 그는 페레스를 1% 포인트 차로 제치고 총리로 당선되었다. 네탄야후는 당시 이스라엘 역 사상 최연소 총리였고, 또한 이 스라엘 건국 이후 이스라엘 영 토 안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 였다. 총리로 재직하면서 팔레 스타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 을 드러내고 야세르 아라파트 와 대립하기도 했으나, 미국과 요르단의 중재로 와이리버 협 정을 체결, 영토분쟁을 종식시 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 체결은 그 를 지지하던 우파의 믿음을 잃 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개인 적인 문제와 부패 스캔들 등으 로 구설수에 올라 1999년 총리 선거에서 이스라엘 노동당의 에 후드 바라크에게 패해 총리직에 서 물러났다. 이에 그는 리쿠드 의 당수직도 내놓고 잠시 정계

리를 카디마에 빼앗겼고, 총리 는 카디마의 에후드 올메르트 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네탄야 후는 계속해서 자신이 다시 총 리가 되면 이란 핵시설에 선제 공격을 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초강경 우파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 후 이스라엘 정국은 경제 위기, 집권당인 카디마의 부패 스캔들, 가자 지구 문제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네탄야후는 가자 사태가 쟁점이 된 총선 기 간 중에도 강경 우파 행보를 지 속했으며, 이에 호응하는 유권자 들의 반응에 카디마에 대한 국 민들의 반감도 작용, 그와 리쿠 드당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총 선 결과 네탄야후가 이끄는 리 쿠드당은 카디마에 1석 차로 패 했으나, 그는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등과 연정 을 구성해 3월 31일 총리 자리에 올랐다. 향후 국제사회에서 이스 라엘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지도자 베냐민 네탄야후 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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