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드로잉은 거의 안 보이는데 일부러 그런 건가요?
네. 목탄으로 건축을 표현하지 않았어요. 다른
그림들도 그게 건축으로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몇 작품 중에 건물의 매스가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도 건축으로 구현된 작업들과는 무관하단 말씀인가요? 맞아요. 무관해요.
그게 이미지로 누적된 심상의 표현일 뿐
건축대상을 의도한 것은 아니란 말이죠? 네.
그럼 이후에도 드로잉 속의 이미지들이 건축으로 변환될 소지가 있을까요?
그럴 순 있겠죠. 지금까진 없었지만요. 이번
전시의 부대 프로그램인 포럼을 준비하면서 제 작업을 다시 들여다보니까 저의 건축
작업이 그림과 많이 비슷하더라고요. 발표할 PT내용은 주로 현상설계에 제출했던
것들이에요. 건축이 생성되는 시점에 어떤
것을 갖고 작업을 하는지, 어떤 것들이 나의 건축 작업을 발현시키려 하는지 등에 관한 인식지도라고 할까? 오늘 포럼을 진행할
김능현 선생님도 자료를 들여다보고는 제
그림과 건축 작업이 많이 비슷하다는 촌평을
하셨어요. 사실 지난 10여 년간의 건축 작업을 정리하면서 내심 드로잉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편집하다보니까 제가 지닌 아우라 같은 것이 보이더라고요. 김인철 선생님은
오셔서 그림을 보시고는 ‘전성은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느껴진다’ 라고 하시더군요. 혹자는
제가 그림에 건축을 담은 것은 아닌데 대체로
공간적인 어프로치가 느껴진다고 말씀하세요. 제가 미술을 한 사람이 아니고 건축을 해온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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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전의 제목이 〈내면의 시선〉이라고
말에 한 번 해볼까 싶었어요. 근데 앞에
되어있는데 특별히 이 같은 제목을 붙인 이유가 전시를 위해 이번에 그린 것들이 아니라, 사실은 전시가 많이 늦어진 거예요. 2015~16년에
드로잉을 많이 해두었는데 2017년에 어머님이
무엇으로 할까 생각해보다가 모아놓은
얘기처럼 사정이 여의치 않았어요. 그러다가
보니까 아름다워 그래서 그려진 게 아니라
모여진 작품이 꽤 되어서 개인전을 하면
있나요?
그림들은 다 내면의 심상을 그린 거예요.
제의를 여러 번 받게 되었죠. 원래는 2016년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에 이번에 이건하우스 갤러리 초대를 받은 것이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진 셈이죠.
많이 아프시다 돌아가셨고, 저 또한 큰
첫 개인전이군요?
관계자들에게서도 전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처음이에요. 전시 준비를 하면서 제목은
수술을 하게 되면서 그림이 많이 쌓였고, 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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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룹전은 몇 차례 참가했지만 개인전은
그림들이 모두 제 내면의 얘기더라고요. 저게 대부분의 그림을 그릴 때, 제가 침잠해 있을
때였거든요. 기분이 좋거나 들떠 있거나 하는
때가 아니라 바깥의 일로 너무 시달려서 가라
앉아있을 때, 제가 그것들로부터 보호받고 싶을 때, 어디로든지 들어가고 싶을 때, 그럴 때 그린 그림이거든요. 그래서 정말 내면의 이야기를 담은 제목이면 좋겠다 싶어서 지은 것이죠.
저는 그림 그릴 때 풍경화 같은 걸 그리는 건
1. 심연深淵의 빛 The light of an Abyss_78x109 cm. charcoal on pap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