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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 no.64,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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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 Critique

알 타워, 오비비에이(이소정 & 곽상준) R Tower(The Illusion), OBBA(Lee Sojung & Kwak Sangjoon)

비평 : 트랜스포테이션transportation과 변이variation의 가능성 글. 현명석 건축학 박사

<알 타워R Tower>는 서울시 서초동 이면도로 사거리에 새로 들어선 지하3층

드러내며, 도시와 건축이 교전하는 바로 그 경계 위에 놓여있다. <알 타워>에서는,

오비비에이(OBBAOffice for Beyond Boundaries Architecture)는 이 건물에 “디 일루젼The

이미지는 표면 위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튕겨져 나와 건물의 두 동 사이 틈새를

지상15층짜리 상업 및 사무용 건물이다. 건축가 이소정, 곽상준이 이끄는

Illusion”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최적의 효율적인 업무 공간을 구성함과 동시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 환경 속의 사용자들에게 찰나의 순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환영의 공간으로 [그들을] 초대”하고자 했다는 다소 상투적인 말로 디자인 취지를 밝혔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건축가의 말이 아니라 건축적 경험일 텐데, 그 경험은 실로 인상적이다.

이미지 생산의 기제인 벽/거울이 도시로부터 적당히 물러나 건축 내부로 들어온다. 이리저리 오갈 뿐이며, 안팎을 싸움 붙이거나 중재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알 타워>에서 거리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각 변이 30cm 정도인 정사각형의 구멍들을 격자로 배치한, 상대적으로 변화에 둔감해 보이는 검은

색 노출 콘크리트 타공벽이다. 이 타공벽의 역할은 안팎의 조우를 유도하는 데

있기보다, 가로에서 틈새 공간을 적당히 유리遊離시키면서도 자연광을 들여 틈새의

건물의 평면은 동쪽에 상업/사무동을 놓고 서쪽에 계단실,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을

벽/거울이 제공하는 반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있다. 이 벽을 따라 좁은 계단을 올라

두 동 사이에는 비교적 좁고 높은 틈새가 열리는데, 건축가가 말하는 “일루젼” 또는

뿐이다. 2층에 도달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두 동 사이의 틈새로 진입하여, 도시와

담는 서비스동을 놓은 후, 두 동 사이를 북쪽 뒷면에서 연결한 ㄷ자 모양에 가깝다. “환영”의 경험은, 이곳의 표면적이고 공간적인 특질에서 비롯된다. 틈새의 양 옆을

한정하는 두 개의 벽이 생성하는 표면의 효과는, 특히, 이 건물에서 가장 돋보이는

측면이다. 이들 벽의 표면은 정육면체의 윤곽을 가진 모듈이 마치 벌집처럼 확장된

모양새다. 모듈은 그런데 평평하지 않으며, 마치 은빛 거울처럼 반사도가 매우 높은 알루미늄을 이리저리 접어 만든 다면체(정확하게는, 다른 모양의 네 가지 삼각형이

각각 두 개씩 모여 이루는 팔면체)다. 모듈은 하나지만 놓이는 방향에 따라 세 가지

2층에 도달하기 전까지, 틈새의 벽/거울은 그 면모의 일부를 때때로, 넌지시, 드러낼 건축과 우리 스스로의 이미지를 마주하고 그 속을 유영游泳한다. 미스의 유리면이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비추었다면, <알 타워>의 벽/거울은 서울을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비추어지는 것은 현실 어디에도 없는 픽션의 이미지다. 전자가 현실과 다시

관계 맺기를 원하는 근대적 아방가르드의 꿈이라면, 후자는 좁은 틈새 속으로 마치 순간 이동을 하듯 빨려 들어가야만 꿀 수 있는 그런 가상의 꿈이다.

다른 변형된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 결국, 틈새를 한정하며 비스듬히 마주보는 두

트랜스포테이션transportation의 경험

방향을 바라보고 다른 대상을 반사하는 무수히 많은 삼각형의 분할면들의 조합이

비판적 기제로 위치시키고자 했던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자본주의가 곧

개의 벽은, 인접한 면에 비해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를 뿐만 아니라 모두 다른

된다. 거대하면서도 자잘하게 금이 가고 조각난 거울. 수없이 많은 다면체의 조각 거울들이 일으키는 난반사는, 틈새 공간의 다양한 위치에서, 건물, 도시, 자연,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이의 반영된 이미지와 빛을 다채로운 파편들로 잘라내어 어지럽게 흩뿌린다. 말 그대로 환영이다. 아방가르드와 픽션의 꿈

이러한 시각적 경험은, 베를린 시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제안했던 두 개의 유리 마천루 계획안이 만약 실현되었다면 제공했을 법한 경험을 연상시킨다. 미스의

이러한 차이는 급변하는 근대적, 도시적 삶에 대응하여 적극적으로 건축을 하나의

규범이 된 현대 도시의 한복판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오늘날 한국의 건축가가 처한 다른 조건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지금 현재의 상황이 암울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알 타워>의 건축적 질이 근대적 선례에 비해

떨어진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미스가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 거친

목탄의 질감으로 재현한 마천루의 이미지가 주는 시각적 경험만큼이나, <알 타워>의 틈새 안에서 촉발되는 경험은 실질적이고 강렬하다.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트랜스포테이션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는 이 또는 읽는 이가

주의attention, 이미지, 또는 감각 등의 기제를 통해 구축된 상상의 세계에 몰두하여,

1921년 프리드리히슈트라세 마천루 계획안과 1922년 유리 마천루 계획안의 두

그 세계의 상황이 리얼리티의 상황을 부분적으로 또는 잠시나마 압도하는 현상이다.

세 갈래로 돌출된 평면과 후자에서 올록볼록하게 곡선을 이루는 평면은, 언뜻,

이동하는 경험을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트랜스포테이션을 주로 영화나 소설

평면은 지금 보아도 놀랍게 낯설고 급진적이다. 전자에서 예각으로 뾰족하게

자의적으로 그려진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미스는, 그가 제시하는 이러한 낯선 형상이 일차적으로는 대지와 프로그램의 조건에 대한

반응이자, 더 중요하게는 건물을 둘러싸는 유리 표면의 물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임을 분명히 했다. 미스에게 중요했던 것은 형태 자체의 논리가 아니었다. 형태로 인해 얻어지는 현상, 더 구체적으로는, 다면적인 유리의 표면 위에서

투영되고 굴절되고 반사되고 부서지는 인간과 건축과 도시의 다채롭게 중첩된

곧, 트랜스포테이션이란, 말그대로 현실을 떠나 상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듯

등의 매체가 제공하는 경험쯤으로 다루지만, 이는 우리가 건축을 통해 흔히 겪는

것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그 용어 자체가 공간적 함의를 갖는다. <알 타워>가 성공을 거둔 지점은, 바로, 건축을 통한 환영으로써 트랜스포테이션을 촉발한 데 있다.

이것은, 덧붙이자면, <알 타워>를 포함한 현대 건축의 다양한 작업이 싸우고 있는 전선에서 명백하게 승리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미지였다.

만듦새와 변이의 가능성

가까운 세월만큼이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스의 유리면은,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실험했듯, 질료적 특질의 가능성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영리하게 실천한 결과다.

그런데, 미스의 마천루와 <알 타워> 사이에는 그 둘을 가르는 거의 한 세기에

기술적 조건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도시의 삶과 건축이라는 실체 사이의 긴장을

적극적으로 시각화하는 장치였다. 미스의 유리면은 외부를 반사하면서도 내부를 62

<알 타워>가 거둔 건축적 트랜스포테이션의 성공은, 마치 미스가 유리의 가능성을 그러나, 바로 그 치열한 탐구와 실천을 건축적 경험으로 이어주는 알루미늄 모듈과 그것이 이루는 벽/거울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다소의 아쉬움이 남는다. 시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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