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캠프 2016 여름가을호 No.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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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Camp Magazine | 2016 여름가을호 | No.49

세상을 바꾸는 자원활동,

평화캠프


Contents 01

2016 여름가을호

제11회 인연콘서트

02

자원활동가대회 자원활동가 교육의 중심

04

인연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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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어린이와 함께 떠나는 여름캠프

16

포이동 사람책

여름 네팔 해외자원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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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캠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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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수상작 평화캠프 2016 광주역사기행 <청년, 광주를 가다>

평화캠프 이모저모 전국 지부 소식

| 전주지부 금동운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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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do 기본소득?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참가기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 구술 기록 자원활동 <2조 조장 김용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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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Again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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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캠프 후원인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단법인 평화캠프 사단법인 평화캠프 PeaceCamp Magazine 2016 여름가을호 peacecamp.or.kr | Vol.49


사람, 자연, 평화를 노래하는 제11회

인연 콘서트 2016년 12월 3일 (토) 14시 서울 관악문화원

2015 인연콘서트 Pray For Nepal 사진 : 박김형준


평화캠프 자원활동가 교육의 중심

자원활동가대회 자원활동을 운영하는 전국의 자원활동가들이 모두 모여 자원활동팀별 한해살이를 평가하고 새로운 자원활동을 준비하는 자리를 가집니다. 자원활동운영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누고 새로운 모색들을 탐색해갑니다. 2016 하반기 자원활동가대회의 유쾌했던 이야기를 따라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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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평화캠프


한 학기의 자원활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학 기의 준비를 하는 자원활동가대회는 언제 나 넘치는 자원활동가들의 에너지로 가득 합니다. 서로의 자원활동에 대한 격려는 물 론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워가는 평화캠프 의 의미가 더더욱 빛나는 시간이지요. 올해 도 40여명의 참가자가 평화캠프의 역사를 함께 쓰고, 정신을 담아가는 행복한 시간이 었습니다. 이 즐거운 시간에 한바탕 웃었던 두 장면을 회원들과 나누고 싶어 (입이 근질 근질하면 못참는 성격) 소식지의 한칸을 차 지하고 앉았습니다.

#2. 10분만 더 시간을 주셨으면 좋았겠어요. 언젠가부터 자원활동가대회 바다운동회 시간은 신입코디들의 손에 맡겨졌다. 올해 도 어김없이 신입코디들의 고민 속에 제출 된 기획안을 검토했다. 몇 가지 기준이 있 었다. ‘함께하는 놀이일 것, 결과에 대한 집 착보다 놀이하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서로 도울 수 있는 놀이일 것, 바다라는 환경을 잘 이용한 놀이일 것.’ 정도의 기준이었다.

#1. ‘풀을 베어버릴 꺼에요.’ 그녀의 별칭은 ‘낫' 이었다. 자원활동가대회 첫 프로그램은 각자의 이 름을 짓는 것.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 어진 이름말고 내가 불리우고 싶은 별칭을 만들어서 대회 내내 서로를 그렇게 불러 주 자 했다. 각자의 이름을 고민하고 있는데 한 모둠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슨 일 일까. 다양한 별칭들 속에 가장 눈에 띄었 던 이삼미 코디네이터의 별칭 ‘낫’ 탄생이 유 때문이었다. 이삼미 코디네이터는 각 지부서류의 제출 여부와 서류 검토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지 부에서 서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함동엽 코디네이터. 꼼꼼한 이삼미 코디는 매번 서 류 제출 때 마다 눈사이에 내천자(川)를 그 리곤 했다. 가장 많은 서류를 제출하고 있는 서울지부의 함동엽 코디와의 관계는 악어 와 악어새의 관계, 하지만 현실은 톰과 제리 의 관계이다. 함동엽 코디네이터가 자신의 별칭을 ‘풀의 자연스러움, 겸손함등을 닮고 싶다’며 ‘풀’이라고 지었다. 이를 본 이삼미 코디가 ‘그렇다면 저는 ‘낫’이 되겠어요‘라 고 선언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수원에서 서 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슬비 코디네이 터의 별칭은 ’종이‘ 였던 것. 신기한 별칭 먹 이 사슬(?)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전주지부에서 올해 여름캠프부터 코디네 이터로 활동하게 된 금동운 코디의 프로그 램은 각 모둠이 둥글게 서서 진행자가 던져 주는 풍선이 떨어지지 않게 협동해서 유지 하는 것. 중간에 바닷물과의 경계지점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꽤 재미있을 듯했다. 하지 만 당일에 바람이 꽤 쎄서 원활하게 진행되 지 못했다.

서울지부 문경원 코디가 제안하고, 이번 에 새로 서울지부에서 활동하게 된 전누리 코디네이터가 진행한 머리에 물그릇을 이 고 공이 담겨있는 들통으로 물을 옮기는 게 임은 들통을 구하지 못해 세숫대야로 대신 했더니 파워풀한 선수들의 활약으로 두세 번만에 공이 튕겨나가버려서 일찍 게임이 끝나버렸다. 서울지부 김정현 코디의 코스달리기는 바 닷물이 우리가 그려놓은 모래경기장(?)을 덮쳐버리는 바람에 서둘러 끝냈다. 한시간이나 미리 나와서 준비를 했던 바 다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울산지부 안형준 코디의 경기였다.

미리 신입코디들과 삽을 들고 모래사장 에 파묻은 탁구공.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정된 장소에 얕게 그리고 약간의 표시를 남 기며 탁구공 23개를 묻었다. 하지만, 시작 소리와 함께 장갑을 낀 자원활동가들의 손 은 마치 포크레인이라도 되는 듯 모래사장 을 헤집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하나가 걸 린 흰색 탁구공, 그리고 20개의 아이스크림 이 걸린 주황색 탁구공을 찾기 위해 모래사 장은 완전히 갈아엎어졌다. 포도밭 형제라 는 동화가 있다. 일을 하지 않는 형제에게 밭에 보물이 있다는 유언으로 포도밭을 갈 아 엎게 해서 다음 해 포도농사가 잘되었다 는 동화. 딱 그 동화가 생각나게 하는 장면 이었다. 결국 16개의 탁구공을 찾아냈고 아 이스크림 20개가 걸린 주홍색 탁구공을 포 함한 7개의 탁구공은 찾지 못했다.

모든 경기를 끝내고 자유롭게 물놀이를 하 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탄성이 난다. 모래사 장에 묻어놓은 탁구공이 밀물에 물 위로 떠 오른 것. 바다에 남기고 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주홍색 탁구공을 어떤 관광객 이 가지고 놀고 있었지만 차마 달라하지 못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자 원활동가대회가 끝나고 각자가 제출한 평 가서에 있는 한 줄이 눈에 띄었다. ‘10분만 더 시간을 주셨으면 좋았겠어요. 그럼 탁구공 다 찾을 수 있었는데’ 내년 봄 농활 때, 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 로 실행해 봐야겠다.

문미정 / 평화캠프 사무총장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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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어린이, 장애청소년/청년들이 함께 떠나는 평화캠프 여름캠프

인연썸머 매년 여름, 평화캠프는 각 지부별로 모두가 함께 떠나는 여름캠프인 인연썸머가 펼쳐집니다. 당일 물놀이 혹은 1박 2일, 2박 3일 일정으로 늘 생활하던 곳을 벗어나 여름을 만끽하러 떠납니다. 2016 평화캠프의 인연썸머를 사진이야기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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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평화캠프


나는 나비

울산지부 7.9~10 경주 이사금 유스호스텔 자원활동가 18명 활동참여자 9명

우리는 돌고래 자원활동가

물썰매를 씽씽!

이제 슬슬 놀아볼까요?

떨어지는 물 속으로~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놉시다~

너무 열심히 놀아서 코피가...그래도 놀테야.

목포지부 7.23 무안 회산벽련지 야외 물놀이장 자원활동가 16명 활동참여자 9명

부산지부 7.30~31 양산 해운 수련원 자원활동가 12명 활동참여자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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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조 이름은 '하얀곰' 2. 다같이 만들어 먹는 팥빙수 3. 멀리 멀리 날아갈 종이비행기를 접어요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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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놀아요. 풍덩풍덩 물놀이 시간

손바닥으로 그려보는 인체의 신비

전주지부 7.30~31 군산 새들강자연학교 자원활동가 19명 활동참여자 11명

날씨 좋은 오전, 공놀이도 함께~

신나는 타이어 그네타기

인천지부

모둠별 글자 조각 맞추기

여름엔 역시 시원한 물놀이

비눗방울 놀이

캠프의 마무리는 역시 단체사진

8.10~12 연천 푸르내마을 자원활동가 20명 활동참여자 29명

청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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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탁사정 계곡에서 물놀이 하기 전 단체사진 2. 다함께 장기자랑 후 찰칵~ 3. 제1회 늘채움 놀이터 인연맺기학교 여름캠프 개회식 6

사단법인 평화캠프

8.13~14 제천시 청소년 수련원 자원활동가 15명 활동참여자 14명


대구지부 8.14~15 황석산 청소년 수련원 자원활동가 16명 활동참여자 23명

물놀이 전, 단체사진! 두근두근

계곡에서 신나는 물놀이

장기자랑 시간 전, 레크레이션!

함께 부르던 노래에 어느새 눈시울이

서울지부 & 수원지부 7.29~31 문경새재 유스호스텔 자원활동가 44명 활동참여자 79명

5.18~7.27 [기획단 회의] 첫 OT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기획단 회의를 하였습니다. 인연썸머 여름캠프의 기 본, 시간표부터 프로그램을 짜고, 연극을 연습 하며 인연썸머 여름캠프를 준비하였습니다. 6.5 [함께 걷는 캠페인] 인연썸머 기획단이 ‘함께 걷는 캠페인’을 진 행하였습니다. 당시 서울 시청에서 농성 중이 던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 보호자들과 함께 거리를 걸으면 발달장애인법 시행을 요구하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이 의제에 대하여 함께 알 렸습니다.

7.5 [2016 인연썸머 후원의 밤]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도 먹 고 이야기도 나누며, 인연썸머 여름캠프를 후 원하는 후원 찻집, 후원 주점을 진행하였습니 다.

7.23~24 [발런티어학교] 인연썸머 사전교육, 발런티어학교를 진행하 였습니다. 자원활동론, 성평등교육, 스탭/짝꿍 교육 등 여러 가지 교육과 함께 캠프에서 펼쳐 질 프로그램과 안전 수칙 등에 대하여 이야기 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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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인연썸머 선발대] 인연썸머 하루 전, 스탭자원활동가 들이 먼저 출발합니다. 프로그램 사 전 준비에서 연극 리허설, 공연 준비 까지 몸도 마음도 바쁩니다.

7.29~31 [입소식] 부릉부릉~ 버스를 달려 도착한 문경새재! 어색함도 잠시, 다 함께 가면을 만들고 춤을 추며 어색한 분위기를 풉니다.

7.29~31 [아침체조]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부비고 대강당으 로 내려가 모두 아침체조를 합니다. 하 늘 높이 쭉쭉~ 팔을 뻗다보면, 잠도 자 연스럽게 깨겠죠?

7.29~31 [손,발 그리기] 내 손과 발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종이에 대고 한 번 그리고, 원하는대 로 꾸며봅니다! 예쁜 팔찌도 하고 손 톱도 색칠합니다.

7.29~31 [물놀이] 가장 기다리던 시간! 물놀이. 물 총으로 과녘을 맞추기도 하고 시 원한 물에 앗 차거! 튜브를 타고 빙글빙글~

7.29~31 [문화제] 어린이들의 장기자랑과 자원활동가들 이 준비한 토끼와 거북이 연극이 펼쳐 집니다. 토끼를 이기는 것 보다 함께 가 고자 했던 거북이~과연 동화의 결말은?

7.29~31 [실내운동회] 앗 이것은 뭐지?! 다 같이 힘을 합쳐 큰~ 짐볼을 다 같이 굴리기도 하고, 동대문을 열어라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12시가 되면~ 문 이 닫힌다! 이번에는 누가 걸렸을까요? 동대문이 닫힐 때 걸린 친구와 함께 페이스페인팅 하고 V~ 이것이 벌칙인지, 상인지~??? ^^

7.29~31 [퇴소식/단체사진]

2016 인연썸머 여름캠프가 끝이 났습니다. 함께 해서 행복했던 즐거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2017 평화캠프 인연썸머에서 또 만나요~ 8

사단법인 평화캠프


대구지부 김재란

고구마 활동을 지난 한 학기동안 하면서 장 애어린이와 활동한 경험이 있지만, 하루종일 함께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이번 캠프 는 제게 장애어린이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장 애어린이의 보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 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그 자체로서 인정하 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 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목포지부 운영진

울산지부 김승목

나에게 있어서 인연썸머가 가지는 의미를 정의하기 보다는 돌고래 인 연맺기학교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말하고 싶다. 돌고래 인연맺기학 교의 모든 활동들이 나에게는 소중했고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처음 활동했던 그때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 에 남아있다. 새로 모집을 하게 되면서 바뀐 사람들도 있고 새로 오신분 들도 있었지만 난 여전히 돌고래 인연맺기학교가 좋았다. 사람들은 바 뀌었어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장소는 변함없다는 사실이 너무 좋 았다. 물론 전보다 바쁘긴 했지만 여전히 힘이 되었고 즐거웠다. 앞으로 살면서도 인연맺기학교는 내 머릿속에서 늘 그렇게 기억되고 있을 것이 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함없이.

물놀이장이 목포에서 가까워 여름이면 자주 가는 곳이다 보니 활동참여자들에게도 익숙한 장소로 안전장치, 안전요원들까지 잘 배치되어 있어 사고없이 즐겁게 잘 놀았습니다. 활동참여자들도 즐거웠지만 올 여름 물놀 이 한 번 제대로 못 갔었던 자원활동가들도 더운 여름 시원한 물속에서 신나게 놀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만의 특색 있는 여름캠프(물놀이)가 아니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 여름캠프(물놀이)는 미리 논의해서 평화캠프 만의 캠프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할 것 같습니다.

전주지부

나에게 인연썸머란?

수원지부 청주지부 | 문준기: 인연썸머란 아이스크 림입니다. 보기 전에도 달콤하 고, 먹은 후에는 더 달콤해서 또 가고 싶어요, | 오수아: 인연썸머란 인연입니 다. 발달장애청소년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 장재성호: 뜻밖에 감동과 처음 스텝으로 가서 성공적이게 캠프 를 마무리했는데 캠프 후에도 캠프 활동참여어린이들이 찾아 줘서 매우 뿌듯하다. | 김정민: 나에게 인연썸머란 또 다른 시작의 피드백이 되어 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인천지부 김건형

강신덕

서울지부 서승우

금동운

시간이란 것이 항상 오직 나에게만 속해있을 때 그 의미가 가장 클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비록 여러 번 갔지만 이번 인연썸머는 3년 만에 가는 것이고 또 수원 에서 같이 하던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 한 조가 되 어 같이 2박 3일을 지내니 깨닫는 것도 남는 것도 많은 활 동이었습니다. 방학이라 무료했을 시간들, 평소처럼 그 시간을 혼자만 썼더 라면 아무런 의미 없이 기억에 남는 것도 없이 흘러갔을 텐데 그 시간을 빼곡히 함께 채워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한마디 더 하면 5모둠 즐거웠어요~~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 것 부터 시작해서 잠자는것, 씻는것, 옷 갈아입는것 까지 생 활을 온전히 함께 하는 경험은 매 주말마 다 있는 인연맺기학교 프로그램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만큼 더 서로 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이해하기 위한 노 력을 필요로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한편 으로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데에 필요한 신뢰를 지난 한 학기동안 인연맺기 학교를 통해 쌓아 온 것은 아닌가 뿌듯하 기도 했지요. 여름캠프를 다녀오고 나서 포도알인연맺기 학교가 자리잡을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열었 습니다. 앞으로도 여름캠프에서 만든 인연 과 신뢰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곳이 되었으 면 좋겠습니다.

흔히 어떤 사람 또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그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것 같을 때 ‘운명적 만남’이 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요, 저에게는 이번 인연썸머가 그 운명적 만남인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할지 생각하던 때 저는 페이스북을 보던 중 인연썸머 기획단 모집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 니다. 평소 자원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 글을 보자마자 ‘이거다!’하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어 곧바로 참가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달여 간 기획단으로서 후원의 밤 행사나 프로그램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또 인연썸머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하며 조금 바쁘고 힘들었지만, 인연썸머 활동참여어린이들이 즐 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몰랐던 저의 재능 과 소질을 많이 알게 되었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좋은 향기를 가진 분을 만나 참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이번 인연썸머를 통해 얻은 값진 경험들과 멋진 인연, 많은 추억을 앞으로는 인연맺기학교를 통 해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자원 활동을 몰랐던 저를 이렇게 바꾼 인연썸머, 운명적 만남이 바로 이런 거겠죠?

기획단에 가장 늦게 모둠교사로서 들어가게 되었다. 짝꿍교사로 활동하려다 모둠교사로 활동하는 것을 제의 받았을 때만 해도 모둠교사로서 의 경험을 쌓고 싶었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불볕더위에 쭈글쭈글 쪼그라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피곤하고 배고 파하면서도 열심히 사진 찍고 거들어주는 모둠스텝들을 보니 축 늘어지지 않고 힘낼 수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다. 2박 3일의 캠프 그리고 준 비 기간과 앞으로의 후속모임까지도 함께한 기획단과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올해도 좋았지만 내년엔 더 풍성한 캠프가 되길 바란다.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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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썸머 수다회 유현(캠프 단장) : 우와~ 벌써 캠프가 끝나고, 수다회라니.. 믿기지 않네요! 오늘 이 자리는 캠프 활동을 돌아보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라 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기획단으로 활동하신 분들이 많이 보이시는데, 캠프를 어 떻게 준비하고 진행되었는지, 각 모둠들은 어 떻게 활동했는지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 아요! 슬비(프로그램 팀장) : 우선 프로그램에 대 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매주 수요일! 기획단 이 모여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했었죠~ 프 로그램 제안부터, 시연, 대본, 준비물 체크까 지..! 기획단이 없었으면 캠프가 어떻게 진행 되었을까 싶을 정도에요~ 캠프가 다가올수록 매일매일 얼굴을 보는 선생님도 많았던 것 같 아요! 모두 수고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누리 : 저는 ‘빨간 모자를 도와주세요!’가 가 장 좋았어요~ 쌤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어울 려 놀 수 있어 좋았어요. 저는 본캠프 기간동 안 모둠짱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표현언어를 힘들어했던 저희 모둠 몇몇 어린이들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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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평화캠프

여름방학의 즐거운 추억이 된 인연썸머! 준비 과정부터 캠프 당일까지, 2달 간을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다함께 준비한 인연썸머, 그 뒷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롭게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프로그 램이어서 더 좋았어요!

이들을 위해, 다른 프로그램을 따로 준비해놓 았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성 : 저는 비슷한 맥락에서 윷놀이가 아쉬웠 어요. 도개걸윷모라는 규칙도, 말판에 적힌 미 션들도, 어린이들이 바로 이해하기에는 어려 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윷놀이 프로 그램을 진행했던 재근쌤도 어린이들이 윷놀 이 프로그램에서 집중도가 떨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10분이 지나자 어린이들이 각자 놀기 시작했다고.. 하하...

재근 : 다음부터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어린이들을 위해, 스페어 프로그램을 많이 준 비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예림 : 아, 맞다! 저희 둘째날 밤에 한 연극은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거북이 역할을 했던 이 재쌤께서 어린이들이 지루해할까봐 걱정했는 데, 호응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신나서 연극을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지성 : 이번 연극은 배우들이 직접 무대 아래 로 내려와서 어린이들과 같이 달리기하고, 어 린이들에게 질문을 하는 등 참여를 유도하는 형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모둠 어 린이들은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좋아 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런지, 연극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눈물 글썽). 참여하지 않는 어린

미정: 맞아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보다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있 어서, 어린이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그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 너무 프로그램 이야기만 하네요~ 인연썸머도 잘 마무리되었 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캠프동안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나 요? 우리 훈훈하게 서로 칭찬해볼까요~? 지성: 음.. 저는 한 짝꿍쌤이 하신 말씀이 기 억이 나요. “처음엔 나의 가치관대로 짝꿍어 린이의 행동을 고쳐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조 금 지나서 내 짝꿍이 어떻게 해야 더 즐거울 지를 생각해보고 원하는 것을 함께 하려고 노 력하다보니 캠프를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었 어요.”라고.


인연썸머 후, 귀를 기울이며... 동엽 : 맞아요. 캠프동안 변하는 선생님들의 모습 이 몇몇 보였던 것 같아요. 캠프 처음 시작할 즈 음에, 계속 어디론가 사라지시는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었어요. 원래 저는 잔소리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자꾸 이 야기를 하다보니, 마지막에는 선생님들이 다 열 심히 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되더라구요. 정현 : 앗 뭔가 훈훈한.. 저는 저희 모둠에 한 분 이 조금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짝꿍 어린이가 중간에 집에 가게 되어서, 모둠스탭으로 활동을 하신 분이셨어요. 저희 모둠에 있던 한 어린이가 같은 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편인데, 그 어린 이의 말을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땀을 뻘뻘 흘 리시면서 계속 듣고 계신 거에요. 그래서 옆에 계 시던 선생님이 “어린이가 그냥 혼잣말을 반복하 는 건데, 왜 계속 듣고 계세요?”라고 하자, “그냥 제가 궁금해서요.”라며 말씀하셨는데, 기분이 싱 숭생숭하더라구요. 유현 : 선생님들의 모습도 많이 좋았지만, 활동 참여어린이들을 보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했어 요. 작년에 비해 어린이들이 많이 성장한 것 같 아요. 그 모습을 보며, 더디지만 우리 어린이들 이 잘 해내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오늘 인연썸머 수다회를 마무리하면 좋 을 것 같아요~

이번 2016 인연썸머는 아이들을 보낸 세 번째 인연썸머 입니다. 그간 평화캠프 수원 지부 완두콩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는데, 그 인연으로 인연썸머를 알게 되어 신청했어요. 힘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첫 번째 캠프 때를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떼놓고 보내는 것이) 불안해서 캠프장소 근처에 있었는데, 이후엔 쌤들을 믿고 아이를 보냈어요. 어린이가 부 모를 떠나 캠프를 경험하는 기회가 아주 적기 때문에 앞으로도 매년 보낼 생각이에요. 요즘 꿈고래 놀이터 부모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어요. 꿈고래는 발달장애어린이와 어 린이 심리치료를 하는 곳이에요. 비장애어린이와 함께 문화통합수업을 해요. 개인적으 로는 장애인 인권과 장애인의 성에 대해 강연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인연맺기학 교나 인연썸머가 없을 때는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부 족해요. 아이들에겐 일상생활과 관련된 훈련을 집에서 많이 가르치고 있어요. 상호작용 을 해서 놀아주는 것은 현재 상황으로선 힘들어요. 거기에 활동까지 하다 보니 쉴 수 있 는 시간이 거의 없죠. 아이들을 캠프에 보낸 후에는 주로 여행을 했어요. 서울에서 문화투어를 했는데 영화 와 뮤지컬, 콘서트를 하루에 즐겼어요. 인연썸머 첫 해엔 부부여행을 갔고, 두 번째엔 부 모님을 모시고 가족여행을 갔어요. 이번 세 번째엔 혼자 여행을 했고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꿈고래에서도 캠프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화캠프에 서 관련해서 무언가를 같이 하거나 노하우를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부모들이 장 애인 인권 관련해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평화캠프에서도 장애인 인권에 관해 관심 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으니 부모들이 장애인 인권 투쟁을 한다거나 관련 활동을할 때 연대활동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수원 완두콩 인연맺기학교 김동현, 김혜승 어린이 보호자

안녕하세요, 이번 인연썸머에서 5월부터 기획단 활동을 하며 여름캠프를 기획한 서명 보입니다. 본캠프에서는 진행 스탭으로 활동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사실 인연썸머 장소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제가 무엇을 위해서 인연썸머에 참여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인연썸머를 떠나기 전 어린이들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인연맺기학교 수 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활동에 전혀 흥미가 없어 보였어요. 또한 일 부 어린이들이 활동 장소를 뛰쳐나가거나 심지어 짝꿍 선생님을 때리기까지 하는 모습 을 보니, 제가 무엇을 위해 인연썸머에 참여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개월을 고생하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본캠프에서 불침번을 서고, 밥을 마시듯 먹어가며, 캠프 를 준비하는 일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하지만 인연썸머에서 제3자의 상황이 아니라 어린이들과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그 제야 이 캠프가 모두를 위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들과 보호자들이 사회 로부터 제공받았어야할 서비스를 우리가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활동참여어린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대화하고 어린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활동참여어린이들이 비장애 어린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린이들은 활동 중간중간 사 소한 일에도 즐거워했고, 그런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저 역시도 매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이 행복을 이어가기 위해 다음 학기부터 인연맺기학교에서 신입 자원활동가로 활 동할 예정입니다. 아마 새로 인연썸머에 참여하실 분 중에서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 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자원활동가들도 분명 인연썸머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가 되어줄 것입니다. 인연썸머를 통해 편견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났으면 합니다! / 서명보 인연썸머 자원활동가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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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again Nepal! 평화캠프 희망네팔 프로젝트 <네팔에 학교를 짓습니다>

지난 4월 네팔 대지진 이후 1년 만에 다시 네팔을 갔었고, 우리는 그곳에 하나의 흔적을 남기고 왔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8 월 그곳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겨울 네팔해외자원활동에 이어 여 름 네팔해외자원활동까지 함께 떠난 신연주 자원활동가의 네팔 자원활동 이야기를 전합니다. Come again Nepal!

신연주 / 평화캠프 네팔해외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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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you!” 카트만두의 공항 앞에서 마헤스(네팔 FFN 코디네이 터)가 나를 보자 했던 말이다. 수많은 캠퍼들을 만나고 보내왔을 마헤스가 나를 단번에 알아봐주었을 때 굉장 히 고마웠다. 내가 네팔에 다시 오는 것이 ‘top secret’ 이었다고 농담하면서 넘어가느라 말하진 못 했지만 정 말 고마웠다. 네팔의 풍경은 지난번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우선 달 리는 버스의 지붕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없어졌다. 인도 와의 관계가 나아지면서 물자 공급 사정이 좋아졌다고 한다. 지난번에 왔을 땐 겨울이었는데 이번엔 여름이라 풍경도 훨씬 푸르렀다. 공항에서 출발해 수도 카트만두 의 Encounter 호텔에 도착했다. 다시 오는 이곳도 조금 리모델링한 것 빼곤 그대로였고 너무 반가웠다. 그곳에 서 나빈(FFN의 또 다른 코디네이터)이 여유롭고 느긋하 게(?) 반겨주었다. 그렇게 나 혼자 속으로 감격스러웠던 재회를 하고 다음 날, 다른 외국인 캠퍼들을 만나 우리 가 활동할 바네파 지역의 캠프 하우스로 갔다. 캠프 하우 스도(예쁜 파란색으로 변한 것을 제외하고), 바네파 마 을도, 나중에 ‘맥스’라고 이름 붙여준 동네 슈퍼마켓의 강아지도 전부 그대로였다. 도착 첫날은 짐을 정리하고 다 같이 숙소에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쇼핑가서 점심을 사 먹었다. 우리 테이블은 모모(네팔식 만두)와 탄두리 치킨을 먹었는데 이 두 메뉴는 역시 어딜 가나 실패하지 않는다. 캠프 하우스에선 모든 캠퍼들이 wash, clean, cook 팀에 매일 다르게 속해서 집안일을 한다. 그래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팀을 나눴다. 저녁은 마헤스 쉐프 의 수제 치킨 커리다. 다음 날은 학교에 올라가는 날이었다. 아침 식사 후

에 쇼핑팀이 사 온 페인트, 우리의 점심, 어린이들과의 프로그램 준비물을 들고 올라갔다. 이번에는 올라가 는데 지난번보다 훨씬 힘들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나 중에는 손발 끝이 저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많은 사 람들이 걱정해주고 도와주셔서 회복하고 학교까지 올 라갈 수 있었다. 기억나는 많은 얼굴들이 보였다. 한국 에서 출발하고 셋째 날, 드디어 순드리 학교에서의 페 인팅과 놀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올라가서 오전 작 업을 하고 포커 댄스,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교실 꾸미 기, 풍선 꽃 만들기 등을 며칠에 나눠 진행했다. 그리 고 점심을 먹고 오후 작업 후에 하산 하는 것이 우리의 작업 일정이었다. 점심은 삶은 달걀, 바나나, 네팔 식 빵과 망고 주스가 전부지만 작업을 하고 산바람을 맞 으며 먹는 식사가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내려와서는 서로 씻기 위해 샤워실 눈치 게임을 하고 쇼핑팀이 장 을 보고 오면 저녁을 먹고 전체 평가를 하는 것이 캠 프의 일과다. 여자 숙소의 공간이 작아서 몇 명은 베란다에 모기장 을 치고 침낭에서 잤다. 바네파의 밤공기와 바람을 느 낄 수 있다. 비가 온다면 추적추적 쏴아아 하는 빗소리 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아침엔 네팔의 따가운 햇살을 모닝콜로 잠에서 깼다. 난생처음 본 반딧불이, 돗자리에 누워서 보던 수많 은 별, 우리만의 영화관, 불이 들어오지 않아 손전등에 의지하던 일, 화장실 품앗이 등등 약 일주일간의 소소 한 행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기를 항상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샤워실, 화장실, 잠자리 등 시설 들이 불편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의 생활을 더욱 행복 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들이었다. 지난번 캠프에서 Joy 가 말했던 ‘uncomfortable happiness’가 떠올랐다.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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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이나 이번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작업하는 시간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날씨도 더워서 왕복하는데 3~4시간이 걸렸다. 작업 시간은 정말 많아 봐야 2시간 정 도였다. 전에도 했던 생각이지만 겨우 며칠 한두 시간 일 하고 가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고민했 다. 우리가 이 워크캠프에 참여한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 캠퍼들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네팔의 누군가 가 그 등산길에 올라 일을 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돈 을 지급하고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생계가 있는 사람들이 따로 시간을 냈을 거다. 우리는 일상을 잠 시 접어두고 가니 그 사람들이 느꼈을 부담과는 무게가 다 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이것이 곧 일상이니까. 두 번째는 지진 발생 이후 소중한 사람들 또는 어떤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먼 곳에서 온 우리가 참 여함으로써 그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다. 전달하고 싶은,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거기에 치유의 힘 이 있다고 믿는다. 사전 모임에서 지진 후 네팔의 사정에 대한 다큐멘터리 를 보았다. 지진으로 인한 사상자와 자살한 수많은 사람, 그리고 당연히도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 들이 나온다. 지난번에 갔을 땐 마냥 밝고 좋은 사람들로 기억됐던 네 팔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 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사는 곳에 자연재해로 소 중한 이들을 잃는다면 하는 상상을 했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캠프 가기 전에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돈 내고 고 생하러 가네.” 혹은 “좋은 일 하러 가네.”였다. 내가 가서 겪을 경험과 감정들, 새로운 배움, 소중한 인연들은 고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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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는, 내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준다는 것 같아 기 분이 좋진 않았다. 그 사람들이 이 활동을 한다면 생각이 바뀔 것을 확신한다. 네팔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 나빈에게 캠퍼들을 보내는 것이 슬프지 않냐고, 괜찮냐고 물었다. 나빈은 스스로 ‘Good bye’를 이별이라고 생각하 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곧 ‘Come again’이라고 했다. 수많은 캠퍼들을 보내며 살아왔을 나빈과 마헤스를 생각 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지난번엔 안 그랬는데 나빈이 우 리를 보내고 뒤돌아 갈 때 눈물이 나고 슬펐다. 정말 내가 또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소피가 나를 달래 주다 같이 울었다. 아름이도 나를 놀리긴 했지만, 눈가가 촉촉한 걸 보았다. 사실 네팔에 다시 가겠다고 하기 전에 고민이 많았다. 지난번의 좋았던 경험과 추억이 바뀔까 봐. 그렇지만 다시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이나 이번에 같이 갔던 한국의 자원 활동가들도 기 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나빈의 말처럼 모두들 꼭 ‘Come again’ 하길...... 정말, 정말 바란다!

마헤스, 나빈, 순드리 학교 어린이들, 바네파 마을 주민들, 사이토, 타로, 알렉슈오, 아만다, 레아, 이번 1월 겨울 네팔 해외자원활동가들, 그리고 햇님, 애너, 소피, 서나, 아름, 제니, 홍, 영을 생각하며

Joo.


우연히 찍힌 같은 장소 활동모습 - 1월 겨울 자원활동에서

우연히 찍힌 같은 장소 활동모습 - 8월 여름 자원활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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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3일, 사람책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가 있었다. 저 녁 7시에 10명 남짓한 자원활동가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마을회관 1층에 모였다. 주민들이 차려주신 밥을 먹고, 김용금 님 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진행하는 인터뷰였기에 모두 기 대 반 걱정 반이었다. 김용금 님은 자활근로대가 아닌, 결혼을 통해 마을에 오시게 되 었다고 한다. 마을이 형성되던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마을에 오셔서 그 당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계셨다. 인터뷰는 포이동 재건마 을을 처음 마주하는 자원활동가들에게 마을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 으로 시작되었다.

‘포이동 266번지’, 사람이 살게 되다 지금의 개포4동 1266번지, 포이동 재건마을은 원래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니었다. 개발독재 시절 정부의 강제 이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에 마을이 만들어졌다. 하천부지에서 사람들은 척박한 땅 을 일구고 양재천 물을 길어먹으며 마을을 일궜다. 그것은 철저히 통제 받는 삶이었다.

포이동 사람책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 구술기록 자원활동, <포이동 사람책 프로젝트> 사단법인 평화캠프 서울지부에서는 2015년 하반기 포이 동 재건마을(현 개포동 1266번지) 주민 인터뷰 자원활동, <포이동 사람책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개인사를 엮어내 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습니다. 그간 진행된 주민들 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포이동 사람들>을 연재하고자 합 니다. 이 기획물이 포이동 재건마을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 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이야기. 2조 조장, 김용금 님 사진 : 박김형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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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79년도에 이 자활근로대 발 대식을 해가지고 전국에 있는 부랑자들 있잖아요, 거리에 그런 사 람들을 모아다가 서초구에 있는 정보사에 한 450명 정도를 모아 서 집단 이주 시켜가지고 천막치고 거기서 정부가 관리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서 민원이 자꾸 일어나, 다른 데로 옮겨라 그 래가지고 그때 1981년 12월 21일 우리가 여기 1-2지대로 우리 가 왔어요. 우리가 온 게 아니고 저기 버스에다가 태워가지고 데 려다 놓은 거지” 1981년 정보사에 있던 자활근로대는 뿔뿔이 강제이주되어 흩어 졌다. 그 중 자활근로대 1-2지대 45명이 지금의 포이동 재건마을 로 이주되었다. 이후에도 정부와 행정당국에 대한 빈민들의 포이 동 재건마을로의 이주는 계속되어, 1989년 봄 개포4동 청사 건축 으로 그 부지에 살던 14가구 이주, 1989년 여름 베트남전 상이용 사 16가구 이주, 1998년 양재천 개발사업 중 공공주차장 부지에 살던 넝마주이 36가구 이주 등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마을이 포이동 재건마을이다. “그때 당시 여기가 마을이 아니라 하천부지로 있었을 땐데, 45 명을 여기다가 실어 다 놨죠. 실어 다 놓고 니네들 살아라 했으면 괜찮을 텐데 그 사람들이 관리했어요. 여기 구청이나 경찰서나 그 사람들이 나와서 주민을 관리 감독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고 물 같은 거 주워오고 그러면은 경찰관들도 있고 허니까 자기네가 다 저울에다 달아. 그래가지고 이제 주민들은 몇 프로나 줬냐면 ‘ 그냥 밥만 먹고 살아라, 너네들도 돈을 모아야 할 거 아니냐 우리


가 관리를 해서 다음에 모아지면 주겠다’ 하면서 통장을 지네가 갖 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이 개최되던 시기에 정부는 ‘나라 망신시킨다’라며 낮에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걸 금지했다. 그래서 낮에는 집에만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먹을 걸 사러 나가고, 일도 밤에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89년에 국가는 ‘자유롭게 살게 해준다’고 이야기하며 자활근로대 사표를 내라고 요구하고 자활근로대증을 다 수거해갔다. 그때 당시에 마을 주민들은 경찰 관들, 하다못해 동사무소 직원들만 와도 무서워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하라는 대로만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약속한 ‘자 유’가 아닌 ‘무단점유’라는 새로운 속박과, 그에 따른 토지변상금 청구였다. 당시 근로재건대 왕초의 말에 따라 다들 한 번씩 토지 변상금을 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토지변상금을 낸다는 것이 무단 점유를 자발적으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며 그 주민들이 전체적으로 내지 않았지만, 토지변상금은 계속해서 나왔다. 그러다가 2003년 에 철거계고장이 나왔다. 당시 마을 위원장의 소개로 철거민 단체 들과 연대를 하게 되었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본격적 으로 시작되었다.

포이동 재건마을에 오기까지 “우리 아저씨(남편) 아버지가 일찍 돌 되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우 리 어머니가 그래가지고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가셨어요, 누가 소 개를 시켜줘 가지고. 그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가셨는데 거기 가서 보니까 그 본처에게도 자식이 있을 거 아니에요. 다르게 대접 을 해주니까 이 아버지부터 우리 아저씨가 일찌감치 서울로 도망 을 왔어요. 우리 아저씨가 그때 17살, 18살이나 되었을까. 그 정도 에 서울을 와서 살았는데, 근데 나는 이런 생활하는 건 몰랐지. 그 냥 서울에 있다니까, 시골에서는 그때 당시만 해도 서울에 가서 살 면 다 잘사는 줄 알아. 옛날 어르신들은. 그래가지고 서울에 산다 니까 시집 가라고가라고 해 싸서 사람만 보고 결혼을 일단 했었어 요. 근데 나는 안 올라왔어. 여기를.” 결혼은 했지만 김용금 님은 남편과 떨어져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23, 24살 때 결혼을 했어. 난 늦게 왔어. 이 동네 오기를. 난 안 들어올라 그랬지. 여기를. 나는 장성에 있었지요. 시댁에. 전 라남도 장성. 내장산 밑에. 나는 거기서 살고 우리 아저씬 여기 서 울에 있고. 그래가지고 이 동네를 가라고가라고 했었는데 그때 당 시만 해도 여기를 진짜 안 올라고 안 올라고 버티고 있다가 89년 도에 나는 여기를 왔었어요. 87년도 처음 여기 와서 한 번 보고는. 에에, 그때 와서 보니까 못 쓰겄더라구. 오면 안 되겠어. 그래서 안

온다고. 안 온다고.” 87년 처음 마을을 보았을 때와 89년 마을을 처음 왔을 때의 이 야기가 교차하며 이어졌다. 동정사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89년 개포4동 동사무소를 짓기 위해서 강제 이주된 무허가 가옥주 에 살던 원주민 14가구이며, 그해 여름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상이용사 16가구도 강제 이주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제. 그때는 89년도 내가 3월 달에 왔었는데 전체 적으로 동정사 사람들이 이사를 안 왔어. 그때는 몇 집만 1월 달에 와서 집 지은 사람이 있었고, 집을 아직 안 지은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들 동정사 사람들. 또 상이용사들도. 암튼 동정사는 내가오니 까는 그때 당시 집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어. 뭐 그냥 집들이 다 저 렇게 생겨가지고 다닥다닥 다 붙어서 있고 한번 와봤는데 죽어도 오기가 싫더라고. 그래서 안 오려고 버티고 있다가 집 다 지어놓고 해 놨길래 이제 할 수 없이 왔지.” 마을에 선뜻 올 수 없었던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그때만 해도 무서웠지. 감독하는 사람들. 저런 속에 가서 어떻게 사나 싶고 오기가 싫어서 안 올라고 버티고 있다가 그래도 할 수없이 왔지. 또 어떡해요. 그렇게 와서 살다 보니까 우리 딸도 90년도에 태어났고. 근데 삶이 뭐 그냥 비참허지. 맨 그 고물이나 주어다가. 그렇게 얼마나 많이 벌어져요, 그게? 얼마 안 벌어지지 돈이. 그러다 보니까 우리 아저씨는 그 좀 지저분한 일만 허다 보니 까 인제 일이 끝나면 이걸 많이 먹게. 술을 많이 먹게 되잖아요. 그 렇게 살다가 뭐 여기서 사는 게 나는 그 자체가 싫어가지고 울고. 진짜 울기도 많이 울었었고. 가고 싶다고 해도 또 신랑이 여기 있 으니 어떡하냐고. 안 간대는대. 빠져나갈 수도 없고. 거 맨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니까 돈이 모아져야지. 돈이 우선 안 모아지니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그냥 살고 있다가. 결국에는 우리 아저씨 는 이제 저 돌아가셨지만. 그 삶은 그게 뻔하지, 뭐. 얘기 안 해도.”

“여지껏 친구를 데리고 온 적이 없어요” “우리 지영(가명)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좀 소극적이고 막 이렇 게 저러지 않아요. 말도 잘 안 해. 그런 거는. 근데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 안 데리고 와. 절대 안 데려오고 여기서 산대는 걸 알리지도 않고. 여기 바로 중학굔데 돌다리만 건너오면 오는데 저 다리로 돌 아서 오든지 요쪽으로 돌아오든지. 그렇게 돌아서 저 앞으로 앞 동 네로 해서 들어와, 친구들 다 가고 난 다음에나. 아니면 근린공원 있지 저쪽에? 버스 저쪽 정류소. 거기서 이제 저는 놀다가 다 가고 나면 혼자 들어오고. 여지껏 친구를 데리고 온 적이 없어요. 자존 심이 그만큼 강한 거지. 지 치부를 안 드러내려고.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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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사는 게 죄냐 이제 나는 맨날 그러지. 이런 데 살 수도 있고 그 러지. 뭐. 그런 거를 챙피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친구들 안 데리고 오냐. 싫대는 거야. 저는. 여지껏 한 번도 안 데리고 왔어. 좀 짠하 기도 하고 부모가 진짜 이런데 와서 이렇게 있으면서 남들처럼 대 학교를 못 보내갖고 내가 그게 지금 한이 돼요.

“우리가 여기 사업장이 있었어요. 자활근로대 재활용 사업장이. 동네가 열 몇 군데가 있었는데 화재가 나서 지금은 하나도 없잖아 요. 다 구청에서 쫓아내고 화재 안 난 데는. 아무튼, 연세 드신 분 들은 할머니고 할아버지고 리어카 손수레 그런 거 끌고 다니시면 서 그거 하시다가 갑자기 11년도에 화재가 나다보니까 있던 사업 장도 쫓겨나고 그러니까 인제 돈벌이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할 머니들은 뭘 주어서 싣고 가야하는데 멀잖아요, 고물상이. 그러니 까 다 이제 손 놓고 계시잖아요. 이제 좀 어려운 분들은 전기요금 같은 거도 부담되요. 전에는 조금씩만 냈으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전체를 십시일반으로 내주고 그런 것도 있었고. 전기나 수도요금 같은 거도. 그냥 서로 또 텃밭에서 뭐 심으면 노나 먹고 그러니까.”

우리 딸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알바를 댕겼는데, 그래서 그 선 생님하고 같이 공부도 못하던 이유가 알바가느라고 못했고. 시간 이 또 안 맞고 그러다 보니깐 그랬지. 인제 집에 돈이 없으니까 내 가 학원 같은 것도 못 보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평화캠프 인연 공부방)와서 공부를 해라 해도 걔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그 알바 한다고. 집에서 돈을 땡전 한 푼도 나한테 달라 소리를 안 해. 걔 도 인제 돈이 조금 저기 하면은 나 갖다 주면서 엄마 이거 쓰라고 또 갖다 주고.

현재 마을 주민들이 가꾼 텃밭은 강남구청에서 사용하지 못하 도록 막고 있었다.

그러더니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아무튼 지가 또 알어서 디자인 고등학교 나왔잖아요. 그래서 인테리어 하는데 사무실을 나가더라 고. 거기서 한 5년 일하고, 혼자서 공부도 많이 했대. 그래서 그쪽 으로 쭉 나가라고 했지. 인제 회계사 그거 해보고 자격증 따고 내 년에 취직 하겠대.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니가 알아서 하니까. 내가 제대로 해준 게 없어서 기특하기도 허고. 내가 너를 안 낳았으면 어 떡할 뻔했냐. 속으로 인제는 그러지. 잘해요.”

“거기도 솔직히 우리 화재 나기 전에는 주민이 살던 그 터전이 었는데. 집터였는데. 걔네들이 그거 막아놨어. 구청에서. 펜스 쳐 놓고 지금 못 지어먹게 해요. 아 올봄에 그랬구나. 작년에 씨앗 뿌려놨던 시금치, 그거를 올봄에 났으니까 이제 뜯어다 먹어야 는데. 그거 뜯어다 먹는다고 용역들이 들어와서 그 실장하고 같 이 용역들 끌고 들어와서 대여섯 명이 들어가서 그걸 죄다 발로 짓밟고 다니는 거예요.

화재 이후, 주민들의 삶 2011년 여름, 포이동 재건마을에 화재가 발생했고 96가구 중 75 가구가 전소했다. 처음엔 작은 불이었지만 초동 화재 진화를 제대 로 하지 못한 탓이다. 그 여름, 화재가 난 포이동에 함께하러 온 청 년들과 주민들이 몇 달간 공동생활을 하며 집을 다시 짓기 위해 노 력했고 당시의 인연은 지금까지 ‘인연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이 어지고 있다. 물론 포이동이 눈엣가시였던 강남구청은 주거복구를 허락하지 않으며 용역을 투입하기도 하고 짓고 있는 집을 부숴버 리기도 했다. 주민들과 많은 시민의 노력으로 강남구청이 임시주 택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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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다가 저쪽 집이 그 할머니가 심어놓으신 게 있어요. 그 펜 스 밑으로 조금 땅이 요 정도 된 거. 거기다 쭉 심어서 먹는데 거 기도 세상에 다 짓밟아서 뽑아버리고, 땅에 구댕이를 파고해서 저쪽에 뭐 저기 이 판자 쪼가리 같은 거 있는 거 갔다가 거기다가 덮어놓고 짓밟고 그러고 댕기더라고 걔네들이. 그게 이제 주차장 도 우리가 쓰는 주차장을 못 쓰게 해. 펜스 칠라고 하다가 우리가 지키고 있으니까 못했어요. 아직까지 안했잖아.” 김용금 님은 식당에서 일을 하거나, 요양보호사 일을 하신다. 주중에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맡고 계셔서 토요일과 일요 일에 일터로 향하신다.


“마을에 일이 있어서 주말에만 일해요. 간병인으로. 그 집은 따 님만 다섯 분이야. 다섯 분인데 막내 따님이 나하고 동갑이야. 대 단해 그래도. 딸들이 하루 저녁씩 바꿔서 와요. 간호하러 오셔 서 자리를 지켜요. 나는 주말에만 가고. 주중 낮에는 요양사분 이 또 있어요. 인제 아침 10시부터 6시까지. 8시간. 아직은 건강 해요. 다행이야.”

“또 우리 몰래, 그렇게 하는 거야.” 2015년 1월 22일 강남구청장은 ‘부구청장 밑에 두는 도시선진화 담당관을 한시기구로 설치’하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행정기구 설 치 조례 일부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2월 27일 주거환경개 선과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도시선진화담당관’을 신설하였 다. 강남구청의 도시선진화담당관은 ‘시민의식 선진화팀’, ‘구룡재 건마을 정비팀’,‘달터수정마을 환경개선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 재는 포이동 재건마을까지 드나들며 영향을 주고 있었다. “외적으로. 아 뭐 구청장이 자꾸 우리를 못살게 굴어. 완전히 못 살게 이렇게. 오늘도 또 왔다갔어 용역대장이. ‘야, 그거 찍지마라. 왜 맨날 날마다 와서 찍냐’고 여기 막 찍어가고 했었어. 그러면 ‘아, 우리는 여기 보고해야 되니까 어쩔 수 없어요.’ 보고하면 뭘 해. 직 원들 바뀌면 전임자가 했으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쇠로 나가 고 맨날 그러는데. 그거 갖다가 보고하면 뭐 할거야. ‘아이고 그래도 구청장님 왜 전 구청장님은 잘해 주셨잖아요?’ 그 러면서 ‘혹시 알아요. 이 신연희 구청장님 가고 나서 다른 사람이 되면 또 뭐가 바뀔지.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거야 잘해줄지도 모 른다고. 그래서 보고를 잘 해놔야 된다고. 그래서 ‘아, 시끄러. 그런 소리하지 말고 그냥 가.’ 이랬지. ‘갈게요.’ 그러고 가더라고. 그래 도 날마다 와서 사진 찍어가고 그래. 자동차도 찍고. 주차장. 거기에서 벌써 삼 십 몇 만원씩 된 거 나왔잖아. 벌써. 거 기서 찍어간 사진들로. 불법주차라고 그게. 미친놈들이지. 주민이 몇 십 년 쓰던 주차장을 이제 와서 불법이라고 또 그걸 갖다가. 마 을 안에 있는 자동차까지.

주차 단속하는 사람들 아니고. 구청에서 지네들이 와서. 그것도 용역들 시켜서. 엊그저께도 한 번 와서 그냥 한바탕 하고 갔지. 도 시계획과 갔어요. 압류 때문에요. 그 때 갔는데 가니까 거기는 자 기네들은 모른다는 거야. 도시계획과에서는 ‘우리는 모릅니다. 선 진화 사무실로 가세요.‘ 라고 하대. 포이동 재건마을에서 왔다고 하 니까 대뜸 거기로 가라는 거야. 무슨 이유로 뭔지도 모르고 민원인 이 왔으면 왜 뭐 때문에 왔는지는 물어봐야 될 것 아니냐. 무조건 그리 가라고 그러면 그게 말이 되냐고 했죠. 나중에 거기 직원이 왔 어. 우리는 얘네들 깡패니까 인정 안한다. 깡패들이 우리하고 같이 일을 해결할 것도 아니고. 이제 건수만 있으면 토지 변상금하고 연결을 시켜요. 구청에서. 그래갖고 원래는 압류는 되어 있지만은 실행은 안 하기로 그렇게 약속을 한 것도 그 세무과에 가서 문중 선산까지 얘네들이 압류를 하려고 보내고 있는 거야. 그 형제분들은 아무 것도 모르잖아. 이 런 거 통지가 날라 왔는데 어떻게 된 사건이냐고. 늘 그래. 또 우리 몰래. 그렇게 하는 거야.”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에 대한 강남구청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 다. 원래 주민들이 살던 집터였고 지금은 텃밭, 주차장으로 사용되 는 곳을 금지하고 빼앗으려 한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용역과 구청 직원이 사진을 찍어간다. 매일 누군가는 와서 감시하는 마을, 포이 동 재건마을. 무엇보다 강남구청은 담당 부서를 바꿔가며 이전에 주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국가 권력은 오늘도 다른 얼굴 로 마을에 와서 말한다. 이곳에 살 수 없으니, 떠나라고. 여전히 옥 죄는 토지변상금.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2015년 10월 23일 인터뷰는 마을주민 김용금 님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문경원, 한승윤, 김민선 님이 인터뷰 녹취 및 녹취록 정리를, 문경원 님이 기사 작성을 맡아 주셨습니 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질문을 주도하여 자원활동가 들과 포이동 주민들의 어색한 골을 메꿔 준 평화캠프 고양 지부 신지혜 코디네이터와 포이동 사진들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작가 박김형준 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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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do '기본소득' ?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참가기

평화캠프는 꾸준하게 '사회적 약자와 기본소득'을 주제로 세미나 진행 및 기본소득 초청 강연회, 토크 콘서트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7월 7일에서 9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된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 한 엄선미 코디네이터의 참가기를 전합니다.

엄선미 / 평화캠프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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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끝 이 났다.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 이라는 주제로 7월 7일에서 9일 사이에 서 울의 서강대에서 열린 이 대회는 아시아에 서는 처음이었다. 23개 나라의 기본소득네 트워크가 함께하고, 전 세계 기본소득 이론 가들과 활동가들이 모였던 이 대회에서 나 는 대회 운영의 한 부분을 맡게 되었고 처음 으로 기본소득의 열기를 느껴보았다. 물론 대회 참가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저자 사인 도 잊지 않았다. 대회 운영의 그 작은 한 부분은 혹시 있을 지 모를 단 한 명의 참가자를 위한 공간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유아 및 어린이를 동반 하는 참가자들을 위한 돌봄지원 및 장애인 참가자를 위한 활동보조지원이었다. 인권 및 장애 인지 교육, 성평등 교육을 기본으 로 하는 평화캠프의 발런티어 교육 프로그 램을 이수한 자원활동가들이 스태프로 함 께 했다. 조금은 이 공간이 북적이길 바랐던 마음과는 달리 흥행(?)에는 실패했다.

나 기본소득. 이 간명한 네 글자가 던져 중 새 로운 가능성에 마음이 쏠리고 호기심이 피 어나던 무렵,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2010 년 1월,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가 지금과 같은 장소인 서강대에서 열렸다. 처음 기본 소득이 싹을 틔웠다. 함께 기본소득에 관심 을 가졌던 동료들이 그 대회를 멋지게 치러 내는 모습을 기사와 사진으로 보며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으며 응원했다. 첫째 아이가 7개월 무렵이었다. 혹시나 영유아 양육수 당 지원대상자가 될 수 있나 하는 마음에 필 요하다는 소득 및 재산에 관한 여러 증빙 서 류를 제출해보기도 했다. 물론 탈락. 어디선 가 양육수당 등을 이유로 전세계약 등은 부 모의 이름으로 한다든지, 은행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사서 부채 규모를 늘려둔다는 이 야기가 들렸다. 부모가 자식 이름으로 만들 어 둔 통장들이 양육수당을 신청하면서 자 식들이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들도 심심찮 게 들려왔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다시 한 번 도약했다. 2014년 2월, 기본소득공동행동(준)을 만들 며 더욱 다양한 영역의 개인과 단체들이 함 께 기본소득을 노래했다. 더는 기본소득이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그 당시 둘째 아이 가 8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어느새 영유아 양육수당은 보육료 지원 및 유아학비 등과 더불어 소득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확대 시 행되었고 영유아의 나이에 따라 차등 지급 되고 있었다. 당시 매월 들어온 양육수당은 둘째 아이의 첫 통장의 시작이 되었다. 물론 세상이 놀랄 만큼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이 커져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놀랄 만큼 심각했던 저출산 문제 때문이었 다. 이제는 노인, 청년, 장애인, 여성, 생태, 일자리 등 사회 어느 곳 할 것 없이 위태롭 다. 안타까운 것은 더는 그리 놀랍지 않은 사회가 이미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본소득의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뺐앗 겼던 그 무렵에 여전히 멈춰 있었다.

카티야 키핑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의 한 귀퉁이를 책임지며 온전히 대회 세션에 집 중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두 아 이와 함께 컴퓨터 속 모니터를 통해서 아닌 대회 속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 분했다. 그리고 대회 마지막 날, ‘기본소득 과 민주주의 정치’ 마지막 전체 세션으로 < 기본소득: 민주주의의 일반화>를 발제하기 위해 독일에서 온 독일 좌파당 공동대표인 독일 연방의원 카티야 키핑이 단상에 올랐 다. 키핑은 남편, 그리고 딸과 함께 이 대회 에 참가했다. 딸은 나의 둘째 아이보다 한 살 많았고 아이들은 따로 또 함께 그 작은 한 공간을 누비며 어울렸다. 키핑은 말했다. 10여 년 전 주의회 의원이 었지만 처음 기본소득을 주장했을 때의 들 었던 조롱들을 먼저 밝혔다. “저 어린 여자 가 미쳤다” 기본소득을 처음 주장하기 시작 했을 때의 기억을 말하는 지금의 모습은 참 여유로워 보였다. 시간이 흘러 언제 그랬냐 듯 자신과 인터뷰하기 위해 이제는 정중한 자세로 다가오는 언론 기자들의 모습들을 들려주었고, 지금은 그 아이디어는 불가피 하고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했다.

득을 받는 것이지 국가에 의존하는 복지 수 급 그룹의 일원으로서 기본소득을 받는 것 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평화캠프가 꼭 밝히 는 내용 중 하나인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 상을 만드는 우리의 자원활동은 시혜적인 자원봉사가 아닌 말하는 이유와 같았다. 공 동체를 분열시키는 조각난 낙인들로 나누 는 이가 따로 있고 받는 이가 따로 인 삶들 을 종용하는 사회는 모두의 삶을 보장해 주 지 못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키핑은 이후, 다른 자리에서 평화캠프 인 연썸머 후원을 위한 카드지갑을 샀고 발달 장애어린이들과 여름캠프를 떠나는 우리들 의 활동을 인상 깊게 소개하기도 했다. 대회를 통해 알게 된 소소한 사실 하나 에 순간 울컥할 때가 있었다. 옆에 함께 앉 은 예전의 인연맺기학교 교장선생님께 슬 쩍 귓속말했다. “키핑이 저랑 나이가 같아 요...ㅜㅜ” 웃으시며 말해주셨다. “나보다는 한참 어리단다.^^” 대회 중은 아니었지만, 키핑은 한국에서 여러 곳을 다니며 인터뷰하고 기자회견을 하며 기본소득을 알렸다. 그리고 꼭 잊지 않 고 기본소득의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기본 소득은 첫째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 에 가족 부양 같은 문제가 슬쩍 들어와선 안 된다. 둘째, 어떠한 자산 심사도 없어야 한 다. 셋째, 어떤 대가도 없어야 한다. 넷째, 가장 중요한 건 최소한의 빈곤선 이상으로 빈곤을 없애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정치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수준이 어야 한다.” 그래서 평화캠프는 늘 말한다. “Shall we do 기본소득?” 그리고 나는 키핑을 만난 후, 절망속에서 도 춤을 출 에너지를 +10 획득했다.

키핑은 세션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급진 민주주의적 접근들을 소개하고 사회경제적 전환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 기본소득임 을 단호하게 밝혔다. 사람들은 정치 공동체 적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조건 없는 기본소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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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캠프 사람들 내 인생의 평화캠프는 바로 당신입니다. 사람, 자연, 평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걸음에 기꺼이 함께 하는 사람, 함께 맞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평화캠프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그 고마운 평화캠프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대학교 1학년 자원활동가로 처음 만났던 평화캠프를, 이제는 돌고 돌아 평화캠프 전주지부 코디네이터로...

평화캠프 전주지부 금동운 신입 코디네이터를 만나다. Q. 자기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하반기부터 평화캠프 전주지부 코디네이터가 된 금동운이라 고 합니다. 대학교 1학년 자원활동가로 처음 만났던 평화캠프를, 이제는 돌고 돌 아 코디네이터로 인연을 이어갑니다. Q. 그 인연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여름방학에 인연썸머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포 스터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 평 소에 좋아하던 캐릭터가 그려진 포스터 를 보고 이거다 싶기도 했구요(웃음). 인 연썸머 기획단을 함께 하면서 가슴에 남 은 의미들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이후에 포이동 인연공부방을 함께 만들기도 하 고, 팀 리더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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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양한 자원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 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2012년 여름에 갔었던 평화캠프 필리핀 해외자원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필리핀 아니슬라그 지역으로 자원활동 을 갔었는데요, 아니슬라그는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사람들이 이주하여 모여사 는 지역이었습니다. 8박 9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내가 자원활동가로서 어떤 일 을 할 수 있을지 여러 고민을 했었던 것 이 기억납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인상깊었는데요, 어디에 가든 다른 세상 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어요. 필리핀에 갔을 때 좀더 열심히 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Q. 금동운 코디네이터가 좋아하는 평화 캠프의 모습을 자랑해 본다면? 평화캠프의 자원활동은 다릅니다. 주변 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진행하는 이른바 “봉사활동”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활동 들도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지만, 활동 을 하면서 활동참여자를 대할 때에 동정

과 시혜의 시선을 거두는 일은 쉽지 않 은 일입니다. 평화캠프는 항상 자원활동 가, 활동참여자가 동등한 공동체의 구성 원으로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인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제가 처음 평 화캠프를 접하고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 도, 세상을 바꾸는 자원활동을 만들기 위 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Q.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전주지부가 문을 열었습니다. 포도알 인연맺기학교 자원활동가들이 너무나 기다리던 소식 입니다. 첫만남은 어떠셨나요? 포도알 인연맺기학교 자원활동가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자원활동에 대한 크나 큰 애정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포도 알 인연맺기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수년 간 지부도 없이 고군분투해오셨을 자원 활동가들을 보니, 좀 더 일찍 전주에 왔 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원 활동가들도, 활동참여자도, 보호자분들 도 편하게 대해주셔서 앞으로 함께 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 기쁩니다. :)


Q. 앞으로의 계획도 살짝 들려주세요. 먼저 새로운 공간에 포도알 인연맺기학교 가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전까지 실내공간이 정해져있지 않았던 포도알을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대학생들을 대상 으로 하는 나눔인권센터를 만들어 볼까 고 민하고 있어요. 이전 자원활동가, 활동참 여자들과 함께 장애청소년과 함께하는 팀 을 새로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답니다.

태양쌤과 똑 닮음! 푸근하고 친근한느낌이였어요~

1 첫인상을 솔직하게

복있는 인상

생각보다 젊은 쌤이어서 놀랬...... 대학교 조상급의 선배님?

성실해보였지만 성실했다 ^^

동네형같았다. 친근하고 어딘가 낯익은 인상 :) 잘웃는다 잘웃어서 착해보였어요.

자신의 일에 열정이 느껴져요.

말이 없을 듯 했는데 얘기하다보면 재치있는 말을 많이하세요

2 하고싶은 말말말

오래오래 함께해요!

서로 도와가면서 평화캠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갖고싶어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주세요~ 저도 도와드리러 가겠습니다 ^^~

항상, 화이팅~!

앞으로 더 즐거운 활동이 기대됩니다.파이팅! 타지에서의 새로운 시작, 포도알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일이 있더라도 지치지않기!

평화캠프 전주지부

포도알에 든든한 지원군이 생겨서 기뻐요!

드디어! 전주지부에 코디쌤이~정말 기쁩니다! 포도알도 코디쌤도 화이팅!

포도알 인연맺기학교 자원활동가들에게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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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캠프 이모저모 5월 부터 8월 까지의 평화캠프 지부 소식을 전합니다.

고양지부 작년에 이어 고양인권학교를 함께 개최하여 매주 목요일, 혐 오를 주제로 이주민혐오, 성소 수자혐오, 장애인혐오 등 다양 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별모래놀이터 5월14일 발런티어학교를 시작 으로 매 월 성사고등학교 자원 활동가들과 어린이들이 공동체 놀이, 보드게임 등 즐거운 활동 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6월 5일 하늘달리기와 나무숲 이 소우주센터와 함께 성교육 및 성에 대해 알아보는 체험관 활동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하늘달리기 5월 1일 향토문학관과 경상감 영공원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목포지부 월 1회 운영위원회에서 팀별 활 동내용 및 지부 사업 및 운영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콩세알인연맺기학교 5월 요리수업과 버스타기 활동, 6월 콩세알운동회와 아쉬운 졸 업식, 7월 방학맞이 더위탈출! 물놀이를 진행했습니다. 8월 하반기 자원활동가모집과 발런티어학교진행을 위한 준비 가 한창입니다.

나무숲 5월 8일 수목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세상길들이기 5월28일 발런티어학교를 진행 하고, 매월 성라공원/ 서삼릉누 리길/ 서오릉 등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 도 우비를 챙겨입고 아담한 나 들이를 진행했답니다. 8월에는 수영장으로 늦은 여름 휴가를 즐기러갑니다.

대구지부 매 월 팀리더회의를 통해 자원 활동팀 운영 및 지부활동에 대 한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고 있 습니다. 6월 25일 한 학기를 마 무리하며 자원활동 평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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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구마인연맺기학교 6월 25일 상반기 활동을 마무 리 하였습니다. 인연썸머 7월 기획단활동이 시작되어 13 일 캠프장소 답사를 다녀왔습 니다. 8월 7일 사전교육을 마치 고 14-15일 황석산청소년수련 원으로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활동가 모임 매월 셋째주 일요일 <불평등한 삶>을 주제로 5월 15일 광주민 중항쟁 사전교양, 6월 19일 “당 신은 장애를 아는가”의 저자이 신 김도현님의 강연을 개최했 습니다. 또한 7월 7일 “여성과 몸”을 주제로 사회적으로 여성 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를 표현하는 차별적언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화사업단_기왕이렇게된거타 조로간다 5월 가우도 출렁다리와 강진영 랑생가를 방문하여 삼행시와 짧 은 글짓기를 하며 작가가 되어 보고, 6월 담양 죽녹원을 방문 해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소리 를 들으며 숲을 함께 걷고 얼굴 가면으로 팬더가 되어 보기도 했습니다. 7월에는 풀장에서 얼 굴이 빨개지도록 함께 놀며 더 위를 잊었고 8월 즐거운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지부 5월 15일 광주역사기행 사전교 육을 진행했습니다. 7월 23일 인연썸머 자원활동가 사전교육 을 진행하고 30일-31일(1박2 일)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야학 한글/영어교실/검정고시 5월 2일 야학 봄 소풍을 다녀왔 습니다. 5월 말 한글/영어교실 은 잠시 방학을 하고 8월 29일 개강했습니다. 8월 3일 검정고시반 시험이 있 었고 함께 응원을 다녀왔습니 다. 검정고시반은 8월 29일 종 업식을 했습니다. 공간인연맺기학교 공간 운동회, 충렬사 탐방, 성지 곡수원지 나들이, 요리하기, 스 포원파크 나들이 등 한 학기 동 안 즐거운 활동을 함께 하고 6월 18일 종업식을 진행했습니다.

하늘달리기 매월 둘째 주 토요일 국제금융 센터, 범어사, 화명장미공원으 로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나눔인권센터 두 팀으로 나뉘어 인권, 장애, 여 성, 환경 등 다양한 내용을 공부 하며, 인권, 최저임금을 주제로 전체 자원활동가 세미나를 진행 했습니다.


서울지부 매월 1회 자원활동팀 운영회의 를 통해 지부사업을 공유하고 자 원활동팀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5월 15일 광주역사기행 사전교 육을 ‘광주민중항쟁와 오늘’이 라는 주제로 오준호님과 함께 했습니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광주민중항쟁을 읽으며 평화캠 프의 ‘나눔운동’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6월 8일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포이동재건마을 화재5주기 문 화제 ‘희망의 집에 살자’에 참 여하여 희망의 집 채색도 하고, 직접 준비한 공연으로 문화제를 멋지게 장식했습니다. 6월 22-29일 ‘생명평화의 초록 농활’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인연썸머를 마치고 8월부터 하 반기 신입자원활동가 모집 및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인연썸머 5월 18일 기획단 오리엔테이션 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6월 5일 기획단의 준비로 발달 장애인법 시행을 위한 ‘함께걷 기’ 캠페인이 진행되었습니다. 캠페인에 함께 참여한 장애인부 모회와 서울시청 주변을 걸으며 시민들에게 발달장애인법에 대

해 이야기하고 ‘마음으로 말해 요’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인연썸머에 대해서도 함께 알 렸습니다. 7월 6일 후원의 밤은 기획단이 준비한 ‘보이는 라디오’와 즐거 운 ‘공연’으로 더욱 알차게 진행 되었습니다. 7월 28일 선발대(스탭)가 출발 하고 드디어 29-31일(2박3일) 서울/수원지부가 함께 한 인연 썸머 ‘마음으로 말해요’가 개최 되었습니다. 즐겁고 안전하게 캠프를 마친 뒤에는 7월 3일 인 연썸머 ‘수다회’를 열어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캠프에 참여 했던 마음들을 모았습니다. 나눔인권센터 2016 새내기나눔인권캠프 이 후 여성주의 세미나를 매주 금 요일마다 진행했습니다. ‘페미 니즘의 도전’, ‘섹슈얼리티 강 의, 두 번째’, ‘여성혐오를 혐오 한다’ 를 읽으며 서로가 느꼈던 고민들을 나누었습니다. 하반 기에는 조금 더 적극적인 활동 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연맺기학교 지난 4월 봄 학기 활동을 시작 하여 서울숲, 상상나라, 둘리뮤 지엄, 북서울꿈의숲 등으로 나 들이를 다녀왔습니다. 6월4일/11일 고슴도치, 골뱅 이, 달팽이, 도토리, 바람개비 인연맺기학교가 방학식을 진행 했습니다.

비누방울 정기자원활동과 함께 자원활동 가들이 매 주 운영위를 진행하 며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 고 있습니다.

29-31일 모든 참가자들과 함께 인연썸머 “마음으로 말해요”를 서울지부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울산지부

포이동 인연공부방 매 주 월/수/금 수업을 진행하 며 월 1회 전체교사회의를 진행 했습니다. 하반기활동을 준비하 며 새로운 모습을 고민하고 있 습니다. 5월 20일 “세월호 유가족, 518 참여자 만나다” 라는 주제의 간 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수원지부 5월 14일 완두콩학교와 땅강아 지의 합동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운동회를 마친 뒤 자원활동가들 과 함께 광주역사기행 사전교양 을 진행했습니다. 6월 22일-29일 생명평화의 초 록농활을 다녀왔습니다. 8월 현재 하반기 자원활동가 모 집을 진행 중입니다.

완두콩인연맺기학교 6월 11일 졸업식을 했습니다.

돌고래인연맺기학교 바람개비 놀이, 요리교실, 고래 박물관 견학, 지점토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봄 학기를 진행 했습니다. 7월9-10일(1박2일) 여름캠프를 다녀왔습니다.

도배자원활동_덕지덕지 매 월 1회씩 도배활동을 진행하 고, 활동 전/후에는 사전답사와 후속방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후속방문시에는 도배가 잘 이루 어지지 않거나 떨어진 부분들을 추가로 수리하기도 하고 필요한 댁에는 반찬나눔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연썸머 7월 6일 인연썸머 후원의 밤 을 진행하였습니다. 28일 캠프 준비를 위해 인연썸머 스탭선 발대가 문경새재로 출발하고,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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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부 8월 10일-12일(2박3일) 인연썸 머 장애/비장애인 여름통합캠프 ‘다 어우름’ 을 다녀왔습니다. 도배자원활동 매 월 격주로 인천지역 곳곳에 서 도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꿈샘인연맺기학교 매주 토요일 노래방, 시장, 놀이 터나들이도 가고 신문지놀이,사 물놀이,미술,요리,만들기 등 다 양한 실내활동도 함께 하며 즐 거운 한 학기를 함께 했습니다. 7월9-10일(1박2일) 캠프도 다 녀왔습니다.

홈커밍데이에서 새로운 인연도 맺는 즐거운 시간들이었답니다. 7월에는 군산으로 여름캠프도 다녀왔습니다. 물놀이도 하고, 119 체험도 해보는 즐거운 시간 을 함께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천안지부 별사탕인연맺기학교 매 월 격주 토요일 초등장애어 린이들과 함께 주말활동을 진행 하고 있습니다. 따뜻했던 날들 을 맞아 청주동물원, 의왕시 조 류생태관, 철도박물관, 태조산 안전체험관 등으로 나들이를 다 녀왔습니다. 6월 18일 방학식을 진행했습니다.

전주지부

그간 자원활동가들과 회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사무실을 드디 어 열었습니다. 전주에서의 활 동을 넓혀갈 새로운 코디네이터 도 생겼습니다. 8월 24일 사무실 개소식을 진행 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했습니다. 따뜻한 볕이 있었던 농번기에는 직접 작물을 재배하 는 활동을, 비교적 할 일이 적은 농한기에는 친환경자연농법, 로 컬푸드 등의 공부를 했습니다.

세상길들이기 매 주 토요일 중/고등 장애청소 년들과 함께 활동을 진행했습니 다. 한 학기동안 청주동물원, 장 영실과학관, 의왕시 조류생태관 및 철도박물관 등 다양한 곳들 을 다녀왔답니다. 날짜와 상황 이 맞을때에는 별사탕학교와 함 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6월 18일 방학식을 진행했습니다.

로드스쿨 로드스쿨은 한 달에 한 번, 장애 청년들과 함께 여행을 다닙니 다. 5월에는 자원활동가들과 함 께 광주역사기행에 참가했고, 6 월에는 시원한 바다가 있는 대 천해수욕장으로 다녀왔습니다. 많이 더웠던 7월에는 직접 파스 타를 만들어 맛있게 나누어 먹 기도 했답니다.

평화캠프의 여름은...

포도알인연맺기학교

이다.

20명의 자원활동가, 12명의 활 동참여어린이와 함께 10주에 걸친 봄 학기를 잘 마쳤습니다. 생태공원으로 나들이도 가고 26

사단법인 평화캠프

풀벗도시농부 매주 토요일 오전 텃밭에 가서 작물도 심고, 멀칭도 하고, 직접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보수하 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2016 평화캠프 광주역사기행 수기공모전 수상작 우수작 김은진 / 평화캠프 울산지부

5월인데도 덥더라 사람가득했을 그 길을 걷는데 문득 생각나더라 나였으면 내가 그 때 있었다면 어땠을까 걷는데 자꾸만 무언가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게 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그 때의 마음이 아직 광주를 가득 떠다니는 것 같아 지금까지의 광주 앞으로의 광주 모든 것은 산 사람의 몫이구나 사람가득했을 그 길을 걷는데 5월인데도 덥더라 5월인데도 참 덥더라

장려작 고윤정 / 평화캠프 서울지부 바쁜 생활을 보내다가 문득 그 시간이 떠오를 때 그 시간은 어느새 추억이 되어있음을 발견합니다. 광주를 다녀온지 딱 3주가 지난 지금, 타자기 앞 에서 광주를 떠올리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며 지나 간 그 흐릿한 일상 속에서 뚜렷히 남아있는 그 이 틀의 시간이 어느새 추억이 되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 추억이 된 지금 광주의 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잘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 7시까지 서강대 앞까지 모이라는 말에 4시 반부터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피곤한 몸 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탔고 가는 동안 자야지라는 제 소박한 바람을 김유현 코디네이터께서 매몰차 게 깨주셨습니다. 각자 왜 광주로 가는지 소개하 는 시간을 가지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고 바 로 26년 영화를 보며 광주로 향했습니다. 그 때 제 소개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왜 광주에 가는 가를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반골이라서? 진보기 에? 평화캠프에서 가라고 해서? 제 자신에게 물어 봤습니다. 단지 저는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부산 이 고향인 제게 광주의 공기는 어떻게 다를까, 그 게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곳은 한여름 같이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잔디가 자라고 있던 아 름다운 전남대 캠퍼스였습니다. 나무그늘을 찾아 아무 곳에서 퍼질러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처음 비누방울 활동가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팀명을 만 들며 서로 얼굴을 익혀갔습니다. 전남대 정문까지 연두빛이 부서지는 가로수길을 걸어가며 팀원들 과 즐겁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다 다른 전남대 정문에서 5.18 민주항쟁 기념비를 마 주했습니다. 그때 어렴풋이 오늘같이 따스하게 해 가 내리쬐던 1980년의 이맘때, 일상의 공간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는걸 느꼈습니다. 대인 시장에서 상인분들이 광주 5.18을 얘기해주실 때 광주 시민들에게 5.18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 임을 느꼈습니다. 집담회에서 기억을 담담히 하 지만 아리게 전하시는 박영순 여사님을 보면서도 5.18이 일어나고 그들에게 광주의 거리는 더 이상 추억의 애틋함이 아닌 기억의 쓰라림만을 계속해 서 현재진행형으로 상기시켜주는 곳이라는 걸 느 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광주를 걸으며 나에게 역사였던 그들의 기 억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슬프 기만 한 그들의 기억속의 거리를 환하게 빛내주 고 있었던 레드페스타 축제가 더욱 기억에 남습니 다. 레드페스타 축제를 통해 저와 같이 기억이 아 닌 역사로서 그들을 기억하는 청년들이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일 상의 회복을 축하함과 동시에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는다는 행위를 통해 그들의 아픔이 치유되고 있 음을 느꼈습니다. 여기가 광주에 있음을 느끼게 한 분이 있습니다. 광주를 걷고 있던 저희에게 ‘요즘 대학생들은 데 모안하나? 데모를 해야 성공을 하지!’라며 한 상 인분이 얘기하셨습니다. 저희 모두 깔깔거리며 웃 었고 광주 역사를 배우며 무거워졌던 마음이 가 벼워졌었습니다. 그 분은 상처 속에서도 다시 웃 을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의 투쟁에 대 한 자부심과 상처보다 굳건한 그들의 의지를 보 여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패배하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는 승 리할 것.” 그랬습니다. 레드페스타 행사에서도, 지나가는 상 인 분들에게서 느꼈던건 정의에 대한 투쟁, 부조 리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역사 속에서 얻 은 승리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광주로 향할 때 궁금했던 광주의 공기에 저는 흠 뻑 젖어서 돌아왔습니다. 1980년대의 광주의 공 기를 느끼며 분노했고 슬퍼했고, 2016년 시간이 지나고 아문 상처 속에 역사 속에서 얻어낸 승리 와 자부심을 느끼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 같이 역사에 공감하고 광주의 햇빛을 견뎌내 고 서로 알아갔던 비누방울 활동가들이 있었습니 다. 광주의 인상 뿐만 아니라 선명히 기억하는 ‘소 프라도’. 신문 만들고 롤링페이퍼 쓰고 아무데나 앉아서 밥먹고 광주를 하루종일 걸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들. 여기 다 담아내지는 못하지 만 그 빛나는 추억들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 하고 즐거웠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사랑해요 소프라도S2)

언제나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평화캠프의 걸음에 함께 해 주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가을의 풍성함을 담아 평화캠프의 자원활동도 새로운 학기의 시작을 맞이했습니다. 2016년 함께 한 모든 이들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인연콘서트는 12월 3일 회원분과 함께합니다. 2016년 가을, 보름달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추석보내시고 더 많은 곳에서 알차게 나눔을 실천하게 될 평화캠프의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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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년 5월~8월, 후원해 주신 분들입니다. 고양지부 강지우 고태영 권오현 권혁동 김남균 김미연 김민지 김성민 김성윤 김수정 김영희 김정수 김준형 김지훈 나황선 박서연 박서정 박선미 박주형 박준영 박지해 박철완 송병용 송서이 신지혜 신해수 오세연 오춘분 우예송 유다예 유지연 윤소현 이경령 이상현 이선애 이숙이 이은정 이은주 이정원 이지연 이창용 이혜린 임현주 장미라 장혜송 정기훈 정명철 정병규 조범준 조승아 조예찬 조혜진 차성민 차진효 최김재연 최순옥 최은지 최칠성 최혜원 한은영 홍정환 황환준

광주지부 강상훈 강서기 강선양 강윤희 고재대 고학규 고혜영 곽달중 구영도 국영욱 김가람 김경숙 김경애 김계석 김나엽 김낙형 김다빈 김대용 김대현 김도연 김도희 김동채 김동효 김미숙 김민정 김병호 김봉식 김상균 김상우 김상윤 김상호 김서희 김선미 김선영 김선희 김성수 김세라 김소이 김슬기 김승만 김승철 김승철 김신남 김신철 김양진 김연경 김연현 김영국 김영애 김옥주 김용배 김유정 김윤진 김은경 김은하 김은화 김재영 김정옥 김정희 김주혁 김중태 김지수 김천운 김태규 김태성 김현지 김현철 김형남 김형주 김혜련 김화석 김흥국 나삼주 나솔이 노대을 노진화 류창표 류현경 마용선 마화곤 문영희 문철주 박경훈 박기현 박려형 박병규 박상욱 박선애 박선애 박성용 박용일 박원요 박유미 박은성 박은영 박재현 박정민 박정태 박정희 박종근 박종윤 박좌연 박창근 박철현 박춘길 박태성 박평강 박현 박현민 박휘요 백한선 서기봉 서난희 서영아 설임섭 송종원 송철 신대식 신원옥 신종헌 신화정 안교철 안민수 안병삼 안종삼 안진호 안홍연 안화숙 양문구 양승미 양인수 양희성 유기준 유삼용 유수영 유수현 유영선 유영안 유예준 유호영 윤경 윤영귀 윤예림 윤우람 윤진학 은희만 이기곤 이다희 이대중 이무형 이민철 이병삼 이성옥 이수진 이승문 이승현 이양재 이연수 이영선 이요성 이용로 이재섭 이재욱 이정상 이준승 이진숙 이희석 임다봄 임미라 임소라 임순택 임아라 임재철 임지웅 장수은 장영근 장우성 장치명 전용복 정병인 정영곤 정일태 정종혁 정평화 정하나 조규식 조미옥 조선익 조성근 조아름 조원익 조유영 조현지 조희진 주낙빈 주현오 지병근 진승언 최성욱 최현림 최현정 최효연 최희진 한석현 한희수 홍희연 황나래 황대용 황덕성 황민호 황용주 황은영 황인애 기아차노조광주지부 새한캐피탈(주)

수원지부 강다혜 강보한 강혁 곽동훈 구부회 권계현 김광연 김광원 김기린 김대희 김미강 김민교 김병업 김부현 김상헌 김숙연 김연성 김예은 김완수 김용아 김우연 김유리 김윤억 김은미 김장오 김재형 김정훈 김준현 김중호 김찬울 김태윤 김태훈 김현수 김혜량 김홍균 김희정 남궁화 노태훈 노혜미 라홍범 라홍범 마혜응 마혜정 문상해 문세영 민지영 박동혁 박문수 박문영 박유리 박은지 박현선 배수현 백영일 변수정 부재호 서은정 서태성 서현정 석동수 손대석 송하영 안소연 양금숙 양부현 오창엽 오하은 오휘수 원명호 유지은 윤성찬 이규민 이방래 이수연 이순녀 이승민 이승호 이은지 이재문 이정화 이지원 이진 이화영 전남구 전누리 전혜영 정민식 정수용 정양현 정은해 정은화 정의룡 정재영 정평옥 정현준 조수현 채명훈 채호병 천민호 최혁준 하윤경 한애현 한영순 홍성우 홍혜원 황가연 황지현 바른숨한의원

대구지부 강다영 곽수인 곽지원 구은지 구자승 구지헌 권진영 권휘 김가민 김가빈 김경하 김경희 김다은 김대근 김대욱 김도형 김동규 김동현 김민재 김민정 김아영 김영교 김영숙 김영진 김영진 김용운 김은실 김이소 김재란 김재훈 김정석 김정진 김주현 김준혁 김지민 김지현 김지혜 김지홍 김진수 김진영 김채진 김태현 김현지 김혜수 나금조 문석호 문정환 문지영 문형숙 박규준 박민정 박상미 박상우 박상희 박선영 박성헌 박성후 박송이 박진강 박태이 박한규 박한슬 박현배 박현준 박호철 배유미 배재환 배준석 변중석 서민규 서영훈 서종숙 성하빈 송수정 신동윤 신원호 신은철 신재민 신효진 안영빈 안현진 안희애 오석준 오승아 우민혜 유현경 윤경빈 윤정현 윤정호 윤진영 윤혜정 이규홍 이다빈 이명란 이미자 이미현 이민경 이민정 이상윤 이석범 이성일 이수지 이수함 이승봉 이승용 이연숙 이우영 이유진 이윤영 이인 이인수 이재원 이재현 이재훈 이정민 이준우 이지환 이진욱 이한결 이현기 이형석 이혜진 이희수 이희훈 임상준 임성택 임준엽 임준현 장경수 장다은 장종영 장지혁 장혜진 장호국 전나경 전미연 전형하 전혜정 전호균 정민구 정병기 정숙희 정순림 정원익 정현담 정현종 정형교 조은경 조창수 진선아 진정은 최상섭 최유리 최주현 최창수 최창진 피경민 하재승 한명자 한수정 한유영 한해정 한호경 홍현우 황란아 황순옥 황현정

대전지부 강보라 강윤서 강윤희 고제열 공윤희 곽두호 권상복 권윤주 권혜진 김남훈 김대순 김도훈 김명규 김명석 김명이 김명환 김보매 김사학 김선욱 김성진 김숙열 김승모 김승용 김아영 김연 김영신 김영주 김영희 김유경 김윤섭 김일환 김지영 김진숙 김철호 김혜영 남동현 28

사단법인 평화캠프

남명옥 도영실 류보현 목화균 민숙자 박근용 박금안 박동수 박보람 박상민 박선임 박선향 박성훈 박수민 박순영 박영국 박용현 박종옥 박주승 박충근 박현정 박희찬 백정화 성용수 소민섭 손영경 송유선 송직근 안석순 안설아 안정현 오세완 우종우 유미조 유지영 유충조 윤지수 윤천탁 윤현숙 윤환 이경미 이경순 이경이 이경자 이경환 이계남 이광희 이동민 이보라 이보은 이봉호 이상국 이선화 이성한 이세열 이슬비 이승상 이영광 이원호 이정화 이준혁 이진희 이현민 임경옥 임해란 장유미 장은주 장현주 전계영 전성찬 정선희 정우순 정인숙 정일찬 정임순 정지용 정태용 정혜경 정효영 조영미 조영호 조재호 조지영 진수종 최경만 최명숙 최윤석 최윤희 최인애 최정숙 최종왕 최현희 탁금호 태경섭 하인숙 하희숙 한기환 한미숙 한정미 홍제기 고두환(주)공감만세 나무시어터 이용원(월간토마토)

목포지부 가홍현 강가로 강미화 강종석 고광건 고영복 곽오손 구종철 권영운 권준홍 권희선 김덕수 김미라 김병윤 김삼환 김상균 김서곤 김석원 김세중 김소희 김수진 김승진 김신안 김영진 김영태 김예순 김옥현 김우석 김운영 김유연 김은미 김은섭 김재현 김재홍 김정아 김정희 김종준 김중식 김지아 김지희 김진 김진관 김진규 김진우 김진욱 김진혁 김천국 김철홍 김태경 김현숙 김형석 김형준 김형채 김희영 김희정 나기봉 남기원 노일경 라수동 류재하 문예진 문지연 문지영 박금순 박금철 박선하 박성남 박소영 박수성 박용성 박웅기 박웅찬 박유경 박윤경 박재준 박준우 박진우 박포미 박하은 박형용 배재성 백성재 백정화 백종석 서강오 서진우 소명환 소진영 손민지 송성문 송수연 송진섭 송혜지 신나리 신상은 안수부 안전원 양선일 양현주 오승열 우은희 유명철 이강찬 이경현 이광민 이광성 이규호 이그리 이기형 이기형 이민경 이상권 이선근 이선아 이수진 이수현 이영웅 이윤철 이재훈 이정혁 이정현 이진아 이창희 이학승 이해귀 이홍대 이화 이효정 장소영 장재인 전성욱 전성철 정다혜 정민균 정분옥 조두성 조유리 조현문 주수황 주요셉 주훈석 지일주 채희종 천은철 최다혜 최송춘 최순재 최윤석 최응재 최재민 최홍엽 최화심 추연성 하천수 한금양 한수민 한정효 허성욱 현동준 현성건설 홍길순 홍미정 홍수진 황종인 (유)유달어망

부산지부 강선희 강영자 강찬구 강현빈 고은미 고혜진 권민주 권우상 권진주 권현숙 권현진 권혜란 김경숙 김경아 김경자 김광민 김구오 김근하 김동언 김동현 김동현 김문령 김미선 김민주 김병일 김선미 김선우 김송이 김순화 김승원 김연자 김연정 김영석 김옥순 김용 김용순 김유경 김유주 김유환 김윤환 김은숙 김은정 김은희 김정석 김정우 김정주 김정훈 김종은 김주영 김준우 김지영 김지현 김진만 김진호 김태연 김현숙 김현순 김현철 김형명 김혜정 김효임 김희정 나경진 남병희 노도영 노성진 문삼지 문연숙 문정행 문지영 문희원 민예강 민정식 민정자 박경자 박규상 박길제 박도분 박미경 박범각 박상민 박석민 박소라 박영수 박정현 박정훈 박정훈 박준우 박지혜 박창인 박현미 박현숙 박혜리 박혜진 박홍범 박홍석 방금자 배성민 배성우 배성하 배영희 백경민 서나래 서민자 서상진 서수지 서수한 서희원 석상헌 선남옥 선쌍임 선옥점 선형훈 설희정 성영준 소정숙 손명섭 손민지 손석영 손혜선 송선임 송영훈 송인숙 송현주 신문숙 신성현 신옥인 신윤지 신정자 신혜정 심동규 심민석 심성호 아하영 안순둘 양재범 양찬우 엄민수 염선미 오병모 오순영 오용택 오유진 우미자 우새하 원혜정 유경미 유보람 유영란 유은지 유종석 윤정미 이가윤 이갑남 이갑선 이경희 이대희 이동훈 이명자 이미영 이민정 이복희 이상현 이소영 이연지 이영신 이윤표 이인철 이자호 이정하 이주언 이주영 이지원 이창현 이치훈 이한나 이형일 이화연 임지수 임훈 장가현 장덕자 장소라 장영란 전소영 전숙희 전태원 전한얼 전희숙 정경수 정경욱 정경화 정대윤 정덕수 정민영 정병주 정상규 정숙자 정순례 정원희 정유진 정윤희 정정자 정춘목 정현숙 조가휘 조경단 조미숙 조아람 조유진 조은비 조재상 조현석 조형래 주명자 진태옥 최민지 최우영 최은보 최종근 최지원 최창숙 추명희 하수정 하신호 하준호 한수민 허지은 현보영 현희순 홍종기 홍지민 황경선 황신순 황영숙 부산교통공단노동조합

서울지부 강길우 강동균 강동현 강민호 강병문 강병은 강서영 강석원 강성주 강세민 강수헌 강애리 강영은 강운채 강유정 강은 강은실 강은정 강은정 강정운 강지숙 강지혜 강태석 강태이 경신수 고명화 고병기 고예진 고윤정 고종국 곽동민 곽동우 곽여림 구교현 구본아 구재은 구한나 국민우 궁찬영 권산하 권오진 권용학 권용학,이영미 권웅 권창범 권혁주 금민 김가연 김경란 김경범 김경수 김경은 김광훈 김군욱 김규일 김기연 김나린 김난슬 김남훈 김다정 김다혜 김다혜 김단아 김도연 김도영 김도현 김동선 김동현 김동희 김명균 김명준 김무겸 김미성 김미진 김미현 김민수 김민우 김민정 김민종 김민지 김민지 김병국 김보람 김상희 김새로 김새롬 김선심 김성겸 김성경 김성민 김성인 김성일 김성주 김성준 김세일 김세종 김세준 김소정 김솔아 김수민 김수정 김수진 김수현 김슬아 김시영 김여름 김영길 김영도 김영숙 김예진 김완로 김용욱 김용일 김우린 김우섭 김우용 김우진 김원지 김유나 김유진 김유현 김윤전 김윤지 김윤태 김은미 김은숙 김은애 김은정 김은주 김은지 김은지 김은초 김은하 김은혜 김이나 김재근 김재섭 김재의 김정기 김정식 김정원 김정현 김종원 김종현 김주경 김주연 김주현 김주혜 김준 김준래 김준수 김준호 김준희 김중곤 김지성 김지수 김지수 김지윤 김지하 김지현 김지환 김지환 김진근 김진범 김진산 김찬우 김찬원 김청희 김치송 김치홍 김태균 김태영 김태영 김태형 김태형 김태훈 김태훈 김태훈 김하린


김한샘 김해정 김현기 김현숙 김현재 김현정 김형준 김형준 김형철 김혜미 김혜원 김혜윤 김호준 김홍 김효영 김희윤 김희진 나상호 남성욱 남용주 남윤채 노순동 노원석 노현성 노희종 도태광 류승훈 류아름 류은경 류호선 마민영 맹은영 목승주 문경원 문서휘 문석배 문성빈 문소희 문혜광 문호준 민지홍 민충기 박건태 박규은 박기훈 박대진 박도혜 박미경 박민성 박민지 박상준 박선영 박성석 박성연 박성진 박성혜 박세원 박소현 박소현 박소희 박수영 박수진 박승빈 박연교 박예슬 박용덕 박윤하 박인서 박인혜 박정애 박종만 박종범 박종웅 박종홍 박종훈 박주혜 박준홍 박지수 박지영 박지혜 박진옥 박진훈 박찬범 박찬숙 박창수 박태연 박해수 박현경 박현정 박현주 박현준 박효인 방영호 배강일 배다래 배미연 배소희 배수인 배아람 배윤정 배종민 배현아 배형찬 백보령 백선화 백영진 변상현 변상훈 변지은 빙창민 서명미 서미정 서승연 서원준 서인아 서진희 서형석 석예리 성석환 성영이 성재호 성창진 성현우 소혜성 손가영 손각중 손상희 손세일 손승현 손영심 손지수 손지영 손형채 송강일 송미나 송상현 송선빈 송정님 송정엽 송현수 숙영 신경준 신교명 신나리 신민기 신민주 신상문 신상민 신선미 신수현 신연주 신영환 신용연 신재욱 신정혜 신지혜 신진주 신혜민 신혜주 심경삼 심다인 심상억 심현수 안경빈 안데레사 안동현 안미희 안서영안희경 양다혜 양이랑 양재혁 양희석 엄귀섭 여동희 염영서 오범준 오세진 오소라 오승민 오정화 오진아 오태우 오태환 오혜선 왕천영 용다솜 용윤신 용혜인 우람 우숙형 원서연 원항아 유미나 유승경 유영상 유용곤 유재환 유종수 유진희 윤귀옥 윤나영 윤다현 윤상일 윤상희 윤선영 윤선혜 윤소현 윤어진 윤여진 윤완희 윤재웅 윤정민 윤종철 윤주영 윤지권 윤지상 윤채영 윤현정 윤희진 이가현 이가현 이경미 이경원 이경훈 이광은 이길형 이나리 이남경 이다은 이대로 이대훈 이도길 이도현 이동연 이동운 이두선 이미경 이미나 이미현 이민영 이민정 이삼미 이상남 이상호 이상휘 이새결 이석 이선일 이선화 이성은 이성준 이성준 이세윤 이소연 이송원 이송희 이수경 이수진 이수현 이슬기 이승민 이승연 이승윤 이승훈 이시형 이언주 이여원 이영범 이영헌 이영호 이예은 이완기 이우진 이원재 이유리 이윤승 이윤정 이윤하 이은별 이은주 이은주 이음래 이인호 이재광 이재빈 이정아 이정우 이정원 이정윤 이정은 이정인 이정현 이정희 이종찬 이주희 이준구 이준범 이중민 이지수 이지애 이지열 이지은 이진영 이찬우 이학성 이한별 이현곤 이현승 이혜경 이혜선 이호종 이환희 이회구 이희표 임규택 임근 임다운 임동재 임석영 임성원 임시예 임영준 임유리 임준호 임채홍 임태형 임효정 장건우 장민수 장서영 장일영 장준혁 장지윤 장지혜 장지혜 장진석 장효원 전민영 전세계 전수빈 전승연 전유경 전준휘 전지민 전희수 정남 정명준 정명화 정미나 정민기 정민진 정민호 정빛아름 정상화 정선희 정성재 정성현 정세진정순규 정영호 정용안 정유리 정은경 정은지 정의융 정의정 정중호 정지성 정지훈 정진훈 정철 정현준 정현희 정형준 정혜진 정호용 정화경 정효선 정효은 정희수 조규정 조민규 조성국 조솔비 조아라 조양호 조우란 조은별 조은실 조철호 조한길 조현기 조혜진 조희은 주미혜 주지나 주필홍 지경숙 지주연 진보라 진선희 차민구 차상우 차수인 차준석 채원영 채유정 천수진 최가영 최고은 최광덕 최기원 최다혜 최문규 최미령 최새미 최석주 최성은 최소현 최솔이 최송 최송이 최원영 최유나 최유은 최윤희 최은지 최은지 최정아 최정옥 최지원 최지윤 최하린 최하영 최현호 최환석 최희재 최희지 추영롱 추유현 추지은 탁민경 편다혜 편진범 하수민 하윤정 하정구 하태용 한보미 한상준 한승우 한승윤 한아로 한우리 한정용 한정윤 한지선 한지윤 한효선 함동엽 함성보 허군자 허지영 홍가득 홍기완 홍성리 홍성림 홍성완 홍순영 홍승수 홍재하 홍정인 홍지영 홍진수 홍진원 황다솜 황문종 황수진 황영재 황이랑 황지민 법무법인 공존

울산지부 강명진 강영순 강용범 강현순 곽정훈 곽태현 권원대 권은지 권준덕 권진회 김건태 김경희 김광희 김규동 김남호 김덕민 김묘정 김미라 김미숙 김미정 김미정 김민희 김상영 김석한 김성호 김소리 김수미 김승목 김영아 김예슬 김윤영 김은경 김은진 김은희 김응규 김인현 김일호 김정우 김준한 김지훈 김지훈 김진경 김진수 김진희 김현종 김현주 김현주 김화정 김희영 김희진 남현정 류가영 명훈 문경미 문승현 민정현 민현기 박민희 박병남 박선준 박성락 박성란 박성무 박영순 박인주 박지원 박진향 박혜민 박희원 방귀순 배미희 백동섭 백은종 서건우 서영현 서태현 석동현 손정호 송해민 송해인 신건숙 신동엽 신만철 신영석 신예진 신우섭 안정훈 엄경혜 엄성수 여인엽 오경택 오민선 오영미 위경희 유병재 유지선 유진기 윤성익 윤혁진 윤희정 이갑용 이경옥 이광열 이다솜 이맹재 이민우 이민정 이복희 이상규 이상배 이상현 이순제 이승연 이승준 이승진 이영주 이은정 이은정 이장우 이재원 이재현 이정애 이정은 이정화 이지연 이진희 이창훈 이한솔 이향희 이현정 이혜성 임영상 임종호 임현옥 장재석 장재욱 장한혁 전영애 정기호 정상희 정성길 정세윤 정의훈 정인화 정점순 정해용 정해창 조구현 조성완 조성철 조신정 조용식 조유라 조윤식 조정주 주우진 지정화 채보배 최선미 최인영 최정희 하중재 한상규 한은영 한창희 허숙경 허준영 홍명기 홍성웅 홍종민 황재영 황혜주 법무법인 대안 울산대병원지부

원주지부 김명수 김보현 김선하 김순희 김연진 김정우 남영진 남윤진 박미란 박성기 박재덕 변상훈 신은숙 신현우 윤경준 이건수 이관섭 이광희 이새봄 이성숙 이순영 이영진 이우종 이정원 이화범 임호근 전용석 정운기 최명은 최영주 한은주 허연숙

인천지부 강승관 강은지 강진수 강태욱 고유미 권순욱 김경환 김광백 김다혜 김미화 김민성 김범수 김범진 김선호 김성산 김성희 김수빈 김수영 김순늠 김유진 김재혁 김정필 김창환 김혜신 김홍규 남희태 노근아 모동진 민경철 박순남 박연실 박주동 박태균 박현봉 방현수 송진욱 신영로 신재창 신현창 신효은 심재호 심재호 엄정용 유근혜 윤수미 이경만 이경호 이다솜 이대근 이미경 이미희 이상훈 이성종 이영기 이원희 이종민 이중희 이학준 이해림 이현경 장동해 장시정 장영길 장종인 전수민 전종순 전지인 정진선 조상연 조순봉 주재영 차현승 최기일 최선미 최웅 최원자 최은정 한승훈 허영구 황광열

전주지부 강성경 강태우 고재민 권용수 권유리 권효남 금동운 김가율 김나래 김다영 김명석 김민아 김원배 김은영 김주화 김지영 김진영 김진홍 김태현 김현탁 김효민 노경석 노은정 도희준 문창규 박광재 박미연 박석호 박성수 박세현 박수민 박지혜 빈영옥 손우진 손준호 손지은 손지현 신지현 신홍현 안성현 안유정 안유진 유도수 윤완형 이강휘 이관섭 이나연 이다정 이다향 이루세 이승은 이연우 이유나 이장원 이준형 이지은 이진아 이현정 이현정 이현중 이효령 임선이 임태양 임희선 전성희 전유찬 정민재 정하연 조선경 조선웅 조성우 주지혜 차유리 최다혜 최송규 최수종 최영준 최우현 최인선 최형진 하예지 홍성진 황민지 황서이

중국해외자원활동 김영국 김찬호 안성현 안철균 오성숙 임동성 임수민 임영희

천안지부 강민영 강승권 강정운 강지수 고경호 고진수 곽은주 권수정 권오범 권혁민 권혁찬 권혜영 김강식 김경애 김기덕 김다빈 김대순 김도영 김동현 김동효 김만기 김미선 김범수 김보현 김석우 김선 김성규 김성수 김성현 김소라 김수연 김순화 김영석 김영숙 김영오 김영환 김옥경 김용기 김용주 김용철 김재정 김지현 김진수 김진수 김진아 김진희 김창중 김현숙 김현순 김현진 나고은 나석균 남기완 남영랑 남혜진 노승현 도병문 라소라 맹석재 문대수 문준수 박대한 박문희 박민숙 박세레나 박소정 박아름 박옥경 박유빈 박유정 박은자 박인형 박인희 박재운 박정웅 박종섭 박지현 박지혜 박진수 박희성 박희원 방민정 방우람 백광우 백대중 백승민 백은희 백인혜 백한울 변지혜 변현주 변혜숙 성기창 손윤경 송미숙 신다혜 신명희 신보미 신학범 심성민 심현민 심화섭 안덕근 안중범 안형근 엄균용 엄수진 엄순화 오미영 오세배 오양우 오준민 우병선 유석준 유연희 유영근 유진방 유행복 유현정 유형찬 유환민 윤경민 윤원준 윤평호 윤홍규 이건희 이규문 이규섭 이기쁨 이기연 이대영 이명휘 이미연 이미영 이미영 이병훈 이석종 이선영 이숙길 이순연 이시형 이애란 이영이 이영주 이영준 이재숙 이재우 이정희 이종희 이지수 이진숙 이창숙 이태규 이현경 이효정 임경희 임수진 임채연 장가연 장다혜 장순단 전영주 전영희 전유정 전재효 전진수 전훈 정 성희 정지은 제갈은하 조근원 조기성 조순희 조우선 조원석 조희숙 주남경 주명숙 주은아 진중록 차명중 차승우 채수범 채승연 최문영 최연교 최정미 최정호 최진 최진옥 추용엽 한경미 한경의 한미희 한성희 한유리 한혜솜 허남경 현동호 현익환 홍성태 홍영주 황기동 황보상인 황영남 황은진

청주지부 곽동우 권영미 김경숙 김규주 김도현 김동현 김선민 김성은 김안순 김은숙 김재욱 김재진 김종수 김태윤 김태혁 김태형 박기순 박상우 박선영 박은정 박재군 박효나리 송건 송상호 송재희 송하은 신동훈 신민희 신석준 안지윤 오수아 오지연 우석 유인애 유지은 유환국 윤금향 윤남용 윤도현 이기종 이기현 이동은 이보람 이송연 이승연 이승준 이용섭 이윤정 이윤정 이은희 이종형 이창윤 이효주 임준희 정가영 정상식 정진수 조문성 조수민 조연희 차재철 최어진 최유리 최은희 표상희 한아라 홍효영

평화캠프 강서희 강연미 강인성 강주희 강준형 강철원 고경은 고명우 고병현 곽정훈 구홍진 권동희 권문영 권수정 권영빈 권유신 권은희 권태혁 권효상 김강호 김경만 김경탁 김기찬 김길삼 김길오 김남일 김남일 김대훈 김덕종 김동도 김병우 김보화 김삼연 김석 김석국 김선영 김성경 김수연 김수진 김순원 김연주 김영규 김유미 김일환 김재광 김재호 김정민 김정아 김종혁 김준현 김준형 김진영 김창욱 김창주 김태룡 김태영 김태용 김태호 김현 김현구 김홍익 김희정 나장주 나준호 남택범 남현창 류경원 문미정 박경환 박기홍 박성수 박세증 박순영 박윤진 박정열 박지원 박창현 박철홍 박혜선 백현주 서기웅 서동민 서은경 성주연 손명균 송병원 송진규 신나리 신명희 신미미 신종호 신헌주 신현수 신희철 안지영 안효상 양정필 엄선미 엄원주 오준호 원용수 위찬우 유동희 유수강 유은정 유증희 윤덕로 윤동심 이계순 이동우 이미경 이상남 이선주 이영범 이윤순 이은희 이정현 이철우 이충회 이하리 이현희 이혜규 이혜정 이희연 인미숙 임동국 임세병 임영근 임은숙 임형규 전명근 전수진 정광진 정상훈 정순오 정영덕 정영훈 조영미 조영진 조용성 조원철 조윤성 조인성 지선영 진천우 최명진 최미라 최병희 최상건 최석주 최성욱 최성욱 최승현 최윤정 최현식 한석만 한석원 한영직 현동섭 현일훈 노무법인 삶 (주)KOREA BOARDGAMES(코리아보드게임즈) www.peace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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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자원활동+기부활동 평화캠프의 나눔은 기부하는 사람과 자원활동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평화캠프의 자원활동가는 모두가 회원입니다. 함께 사는 삶을 고민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우리의 자원활동은 세상을 바꾸는 나눔이 됩니다. 후원계좌 140-009-691222 신한은행 (사) 평화캠프

사단법인 평화캠프 지부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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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캠프 고양지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중앙로 542 (행신동) 세신훼밀리타운 607호 T.031-966-9802 F.031-922-0305

평화캠프 부산지부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37번길 23 수안빌딩 6층 T.051-988-0918 F.051-980-2140

평화캠프 인천지부 인천광역시 남구 석정로 462번길 16 (주안동) 1층 T.032-876-8374 F.032-714-3864

평화캠프 광주지부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버들로 22 영동빌딩 4층 T.062-363-2592 F.062-366-9222

평화캠프 서울지부 서울특별시 마포구 고산길4 성이빌딩 5층 T.02-701-4802 F.02-322-0396

평화캠프 전주지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3 코앞상가 303호 T.063-276-9015 F.063-276-9016

평화캠프 대구지부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 59 신라빌딩 501호 T.053-742-0417 F.053-742-0418

평화캠프 수원지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갓매산로 51 (매산로2가) 에스알프라자 301호 T.031-296-3863 F.031-292-6617

평화캠프 대전지부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로 364번길 19 (지족동) 성훈플라자 605호 T.070-8879-7946 F.042-825- 3270

평화캠프 울산지부 울산광역시 남구 대학로 86(무거동) 3층 T.052-294-7302 F.052-294-7303

평화캠프 목포지부 전라남도 목포시 통일대로 11(상동) 화봉빌딩 3층 T.070-4068-8685 F.0303-3440-8685

평화캠프 원주지부 강원도 원주시 치악로 1470 (단구동) 좋다빌딩 3층 302호 T&F.033-765-7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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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캠프 천안지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중앙로 140 (문화동,소망빌딩), 6층 T.041-555-4592 평화캠프 청주지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구룡산로 370-1 (수곡동) 자성빌딩 5층 T.043-284-4592 F.043-285-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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