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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the

Maya] 싱글 여성 2034를 위한 1인 편집 감성 잡지

[the Maya] issue 1.

이_또.한_지.나.가.리.라 싱글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에 즐기는 영국 소공녀 놀이

Rosemary Cookey & Tea Vocalist 남예지 인터뷰

지금의 남예지를 노래로 기록한 일기장 NamYeJi 2nd Album_Terra Incognita 영원한 이야기꾼

온다 리쿠, ‘삼월은 붉은 구렁을’ 무면허 연애 상담소

골드/올드미스를 위한 추석(명절)맞이 가족들의 결혼 압박 피하는 방법 My Big Fat Greek Wedding

앞으로 발을 내 디뎌라. 그래야 앞으로 갈 수 있으니까.


어서오세요. 저는 Maya입니다.

당신도 Maya시군요.


2011. 9 [the Maya] 창간호


Contents


Editor’s Letter .................... 1-2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기획회의_1 .................... 3-4

.................... 5-10 온다 리쿠, ‘삼월은 붉은 구렁을’ , 그리고 영원히 이어지는 이야기

[Her Book Shelf]

.................... 11-16 [the Maya]’s 홈메이드 로즈마리 쿠키 & 로즈마리 홍차 _싱글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에 즐기는 영국 소공녀 놀이 [Chef Maya]

.................... 17-20 앞으로 발을 내 디뎌라. 그래야 앞으로 갈 수 있으니까. _My Big Fat Greek Wedding

[Maya in the Scene]

[Maya in the Scene] [chef Maya]

[Her Book Shelf ]


[Love, Maya]

기획회의_2 .................... 21-22 [Inter, View]

.................... 23-32 지금의 남예지를 노래로 기록한 일기장 _NamYeJi 2nd Album_Terra Incognita [inter, view]

.................... 33-38 슈에이 선배의 무면허 연애 상담소 _골드/올드미스를 위한 추석(명절)맞이 가족들의 결혼 압박 피하는 방법

[Love, Maya]


[was here]

[Maya Shot]

긴급회의 .................... 39

.................... 40-78 Lonely, Lovely, Paris [was here]

[Maya Shot] .................... 79-84 안녕? 작은 세계. _공방 특성화역 안국역

쫑파티


magazine

[the

Maya]

Publisher

발행인 _ Maya

Editor in Chief

편집장 _ Maya

Editor

기자 _ Maya

Contributing Editor

기자 _ Shu-ei

Design

디자이너 _ Maya

Photo

포토그래퍼 _ Maya

E-mail

maya@themaya.co.kr shuei@themaya.co.kr

Website

www.themay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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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ya]

Letter from Maya

나는 지금 지난 4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썼던 [the Maya] 출판 기획서 파일을 열어 두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4월 25일 작성한(그리고 그 보다 훨씬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 담겨 있던) 출판 기획서는 5개월여만에 이렇게 [the Maya] 창간호라는 이름의 대용량 파일이 되어 저의 USB안에 고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종이로 인쇄 되어 나오지는 않지만, 첫 번 째로 만드는 내 잡지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자, 기자이자, 포토그래퍼이자, 디자이너였던 내가 얼마나 간절히 ‘Editor’s Letter’를 쓰게 되는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 아마 누구도 모를 겁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관심 조차 없었지만 다만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나만의 잡지를 실제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정말 예정했던 날짜에 맞춰 짠~ 선보일 수 있을지)걱정하고, 밤을 지새웠던 수 많은 시간들이 나의 의지 박약으로 흐지부지 되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무엇보다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the Maya]의 Maya는 나의 이름입니다.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불려지기를 원했던 나의 모습을 담은 내 이름입니다. 나는 너무나도 평범하기에 언젠가는 아무도 내가 이 세상에 있었음을 알지 못한채로 사라지겠지만 Maya로서의 나의 삶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음을,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내 삶을 즐기고 영위하고 있었음을 ‘기록’해 두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나. 나의 모습.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의 여러분의 모습일 그것. 말로 그 생각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군요. 하지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Maya는 ‘나’라는 한 사람이지만 [the Maya]는 여러분 모두이니까요. 이런 기분이, 이런 시간이, 이런 삶이 절대로 특별한 어떤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기록하고 정리해 나가는 그 시간동안 충분히 특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무심하게도 계속 흘러 가겠지요. 그래서 창간호의 테마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종종 힘든 일을 겪는 지인들의 미니 홈피 제목으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 문구는 유대경전의 주석서인 < 미드라쉬(Midrash)>의 “다윗 왕의 반지”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령했습니다. “ 나를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 반지에는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 기쁨에 취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는 글귀여야 하며, 또한 내가 큰 절망에 빠졌을 때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함께 줄 수 있는 글귀여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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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ya]

세공인은 다윗왕의 명을 받들어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어떤 글귀를 새겨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자 솔로몬 왕자가 일러 준 글 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 가리라.” 였다고 합니다. 작게는 내 삶 안의 작고 반짝이는 기쁜 순간과 절망스러운 순간들이 이렇게 지나갈 것이고, 크게는 나의 삶, 더 크게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언젠가는 모두 그렇게 지나 갈 것입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아름다워도. 창간호를 만드는 동안 나는 이 문구를 계속해서 떠올렸습니다. 물론, 힘든 시간을 겪을 면서 매번 그렇게 쿨하게 ‘이 또한 지나 갈 거야!’라고 넘기지 못한 순간이 더 많습니다. 다만 나는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것만은 기억했습니다. 결국 지나고 보면 모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뿐이지요. 첫 번 째 [the Maya]를 만들던 순간도 어느 새 모두 지나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편지를 마칠 때 쯤엔 완전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 속에 남겠이죠. 그렇게 담담하게 살고 싶습니다. 다음 번 [the Maya]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 올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될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냥, 나의 이 모든 기록들이 세상 어딘가의 Maya들의 마음 속에 작은 기쁨과 위안으로 스쳐 지나가길 바랍니다. 즐기세요. 언젠가는 지나가니까요.

2011. 8. 27 편집장 Maya

P .S [the Maya] 창간호가 나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고, 응원해 주고, 기다려주었던 몇 안되는 나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감사를 보냅니다. 더 깊은 이야기는 www.themaya.co.kr에서 함께 나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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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회의_1 Meeting Minutes 일시: 2011년 4월. X일, 오후 3시 장소: 회의실 참석자: 발행인 Maya, 편집장 Maya, 에디터 Maya, 디자이너 Maya, 포토그래퍼Maya

발행인: 안녕하세요, 여러분. 발행인 Maya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일동 어색한 침묵으로 서로 목례) 발행인: 오늘은 [the Maya] 창간호를 위한 첫번째 합동 기획회의인 동시에 여러분들과의 첫번째 상견례가 되겠네요. 모두들 아무 것도 없는 와중에 잡지라는 것을 만들려니 힘드시죠? 이렇게 출판 기획서만 여러분들에게 던져 놓고 알아서 해 주십사...하고 있자니 제가 너무 죄송스럽네요. (쑥스러운 미소) 편집장: 아닙니다. 발행인님. 아, 저는 편집장 Maya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발행인님이 [the Maya]의 틀을 구상해 주시고, 이렇게 실제로 발행을 할 결심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오늘 회의도 굳이 소환할 필요는 없었지만 (실제로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이니까요), 다섯명의 자아를 불러내어 회의를 하신다니 각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신다는 의미인 것 같아 참 뜻깊다고 생각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잘, 발행인님의 의도를 살린 잡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겠지요. 발행인: 네, 편집장님. 정확히 제 마음을 알아 주시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저는 이 잡지가 서점에 가면 쏟아져 나오는 그냥 그런 패션지나, 리빙지, 주부지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저 보다 더 잘 알고 더 잘 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이 잡지의 이야기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25-34세의 싱글여성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담고 있고 담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장: 그런 의미에서 [the Maya]의 전반부는 익숙한 소재로 시작했으면 해요. 우리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 같은...? 기자: 익숙함이 전형적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겠네요. 편집장: 그렇죠. 전 그것이 기자의 능력이라고 보고 있어요. 기자: (살짝 당황) 예...그, 그렇죠. (하지만 정신 차리고) 짧은 홍보 대행사 AE경험을 통해 기사 피칭은 해 본적이 있지만 특별히 기자 생활을 해 봤다 거나 한 적은 없어서 사실 제가 쓰는 원고는 전형적인 느낌을 피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이전의 제 피칭 자료들은 많은 기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저 만의 색을 드러내기 보단 무난하게 쓰여져야 했으니까요. 우리 잡지만의 개성을 갖기 위해 어쩌면 제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여기 계신 발행인님이나 편집장님, 포토그래퍼님이나 디자이너님의 사생활이기도 해서....괜찮을지...... 발행인: (너그러운 미소) 괜찮아요. Maya기자. 편집장: (약간 깐깐하지만 응원하듯) 저도 상관없어요. 디자이너: (망설이지만 분명하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꼭 제 사생활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야만 개성있는 기사가 되나요? 편집이나 맛깔나는 사진으로 표현할 수도 있잖아요. 편집장: 디자이너의 마음도 이해해요.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삶의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세련된 편집이나 멋진 포토로 기사의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 있다면, 물론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런데...그게 가능한가요? 전 디자이너의 경력이 컴퓨터 학원 2개월 수강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포토샵 1개월, 일러스트 1개월 도합 2개월. 그것도 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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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회의_1

디자이너: (눈에 띄게 얼굴을 붉히며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 발행인: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렇게 날카로워질 필요 없어요. 모두 진정하세요. 이렇게 솔직히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공격적이 된다거나 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잡지를 만드는 작업은 누구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진행되면서 조금씩 필요한 부분들은 조율해 나가면 되겠어요. 저는 Maya 기자의 의견도, 디자이너 Maya의 우려도, Maya 편집장의 걱정도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은 Maya 기자의 원고를 보고 편집장과 디자이너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 적정한지 함께 논의하셨으면 합니다. 일동: 네. 발행인: 포토는 뭐 하실 말씀 없으세요? 사실 포토에게는 제가 미안한 점이 있어요. 변변한 렌즈 하나 없이 번들렌즈로 다 찍으라고 하기가......사정이 좀 되면 언젠가 꼭 장비 마련해 줄게요. 잡지사의 포토그래퍼다운 그런 렌즈로. 포토그래퍼: (밝은 표정) 네! 감사합니다. 발행인님! 발행인: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칠게요. 다음 회의부터는 저는 참석하지 않고 편집장님의 주관으로 진행될 거에요. 발행인의 입김은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미소) 편집장님을 비롯한 기자와 포토, 디자이너 분들의 의견과 능력을 믿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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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Book Sh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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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Book Shelf

삼월은 붉은 구렁을, 그리고 영원히 이어지는 이야기

온다리쿠

Editor Maya

Story Maker가 아닌 Story Teller 연간 2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독서광. 베스트 셀러 작가이면서 스스로를 소설가가 아니라고 생각 한다는 소설가. 노스탤지어의 전령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면서 작품은 미스테리 장르로 구분되는 작가. 열린 결말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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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Book Shelf

대충, 온다 리쿠에 대한 대중적인 평가는 이렇다. 평범한 보험회사 사원으로 책을 좀 많이 읽는다 뿐 특별할 것 없었던 온다 리쿠는 30대 초반 ‘여섯 번째 사요코’라는 미스테리 소설로 데뷔했다. 더 많이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 두었고, 많은 책을 읽다 보니 ‘나도 이런 걸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그래서 썼고, 그렇게 데뷔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사실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좋아하는 ‘natural born reader’이다. 그래서 일까? 그녀의 이야기는 이상 야릇함으로 가득 차 있다. 분명 너무나 평범한 소재,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이야기들인데 묘한 울림을 준다. 마치 구전 이야기꾼처럼, 이야기들은 그녀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재 해석되고, 재 배열되어 익숙하지만 낯선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 같다. the Maya의 창간호에서 온다 리쿠를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은 창간호 기획 단계에서 가장 먼저 구체화되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빠져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작품들과 너무 빨리, 깊게 사랑에 빠졌다. 내 방 책장의 한 칸하고도 반은 온다 리쿠의 책들로만 가득 차 있다. 그 어떤 작가도 5권 이상 내 마음을 독차지 하지 못했는데, 온다 리쿠는 그걸 한 줄 반이나 차지하고도 아직 내 마음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1991년 데뷔 후 10년여 되는 시간 동안 그녀는 이야기꾼답게 지치지도 않고 수십권의 책을 냈다. 누군가는 평생 동안 원고지를 잡고 않아 끙끙대며 한 권의 작품을 고통 속에서 피워내는데, 그녀는 일년에 몇 권씩이나 되는 책을 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스토리 메이커가 아니라 스토리 텔러라는 반증일 것이다. ‘밤의 피크닉’이라는 사랑스러운 청춘물로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기와 인지도를 얻게된 온다 리쿠지만, 나는 오늘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린다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아서 온다 리쿠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 제목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녀에게 좀 더 익숙해지면 더 이상 그런 것을 고민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즐기는데 집중할 것이다) 그녀는 그렇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기지?’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머리 속은 복잡하고, 현실은 아득해 진다. 이야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중심을 잡고 앉아 ‘지금 무슨 일이 ���어나고 있는 건지’를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온다 리쿠의 이야기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 밖에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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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정말이지, 딱 그런 이야기이다.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이 등장한다(‘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당신이 읽고 있는 그 책이라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안에 등장하는 책이다). 이 책의 존재는 사실 첫 번째 단편, ‘기다리는 사람들’에서만 명확하게 나올 뿐 그 후부터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책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인 것 같다는 추측으로만 존재 하는데 이를테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 자체의 소재를 가지고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 째 단편 ‘기다리는 사람들’ 에서는 전설 속에서 내려오는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아 헤매는 정체불명의 독서광 4명과 그들에게 초대를 받아 저택을 찾아가는 주인공 1명이 나온다. 그들은 매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한 명씩 초대하여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이 책은 200부 밖에 출판되지 않았지만 작가에 의해 대부분이 회수 되었고, 세상에는 단 몇권만 남아 있을 뿐이며, 단 한 사람에게 단 하루 동안만 빌려줄 수 있다는 기묘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묘하고도 마음에 잔상을 남겨 놓는 책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꼭 한번은 읽고 싶어하는 책으로 소개된다. 네 명의 초대자들은 초대된 고이치에게 그 저택에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숨겨져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네 명 조차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설명하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이치는 당장에라도 그 책을 찾아내어 읽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고,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고 어리둥절하던 자신 대신 점차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기묘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기묘한 결말로 치달으며 막을 내리고, 곧 바로 두 번째 단편, ‘이즈모 야상곡’이 시작된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읽고 나면 고이치처럼 자신도 모르게 나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마음을 사로잡히며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언가 조금씩 그 전설의 책의 존재와 실체에 가까이 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힘차게 ‘이즈모 야상곡’의 책장을 넘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작가는 작가와 편집자라는 두 여성의 여행 이야기를 꺼내 든다. 그들은 야간 열차를 타고 수수께끼에 숨어 있는 한 작가를 찾아 떠나는 길이다. 그들은 고이치와는 다르게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실제로 읽은 사람들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정말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았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삼월은 붉은


Her Book Shelf

구렁을]이 실재하는 책이며, 실제로 그것을 읽은 독자가 있고 그 작가가 어디엔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무서울 정도로 지켜온 법칙(단 한 명의 사람에게 단 하루만 빌려줄 수 있다는)에 의해 아주 잠시 이 책을 소유하고 읽어 봤을 뿐이며 이야기는 단지 그들의 머리 속에만 남아 있다. 실재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책은 어쩌면 고이치가 찾고 있던 환상 속의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덧붙여지고, 왜곡되고, 편집된다.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책이 정말 그 책이라고, 그 이야기의 본질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은 그 속에서 이야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끊임없이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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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상 속에서 점차 실체가 되어 가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제 세 번째 단편으로 넘어온 당신은 갑자기 내가 온다 리쿠가 만들어 놓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뺑뺑 돌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이 책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목을 메고 찾고 있는 그 책을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점차 커지고 있는 ‘읽고 싶다’라는 욕망, ‘어디에 있는 거야?’라는 의문, ‘있긴 있는 거야?’라는 좌절. 이러한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읽기라도 한 듯 세 번째 단편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그런 독자의 욕망을 한번 꾹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역시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야기는 독자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둔 채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머리 속에 솟아나는 의문들은 접어 둔채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 온다 리쿠의 이야기에 몸을 맡기는 수 밖에 없다. 마사오와 쇼코라는 이복 자매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세 번째 단편에서는 직접적으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것을 조심스레 따라가는 마사오의 과외 교사가 있다. 그녀는 그 둘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적극적인 탐정의 역할을 맡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처럼 관심과 의문에 그들의 이야기에 이끌려 갈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죽은 마사오의 일기장을 손에 넣게 되고 그것을 소설로 쓸 것을 결심하며 세 번째 이야기가 끝이 난다. 온다 리쿠는 그녀가 쓰게 될 책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독자로 하여금 ‘그렇지 않을까’라는 추리를 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마사오의 일기장을 손에 넣게 된 그녀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쓰게 되고, ‘이즈모 야상곡’에서 두 여주인공이 찾아 나서는 작가가 그녀이며, 결국 그 책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주인공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그 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세 번쨰 단편은 이렇게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온다 리쿠가 뿌려놓은 퍼즐을 끼워 맞출 수 있는 연결 고리 같은 역할을 하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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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라, 그 책은 쓰여지고 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는 긴 여정을 함께하며 드디어 무언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당신에게 네 번째 단편 ‘회전목마’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회전목마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시점의 전환 탓에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차리는 것도 어렵다. 방금 전 단락에서는 온다 리쿠로 추정되는 작가가 나와 지금부터 쓰여질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마치 작가의 습작 노트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는 갑자기 어떤 소설의 한 부분이 예고도 없이 시작된다. 클라이막스인 것 같기도 하고, 결말 부분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되어서 이게 어디에서 온 이야기인지 어지럽지만 하다(그래서 제목이 회전 목마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온다 리쿠의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들지 않고 혼자만 정신 차리고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추’다.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며 넘어가면 결말 부분에서 알게 된다. 작가가 지금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닮아 있다. 작가는 지금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곧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이 되면 독자들은 허탈함과 기대감을 함께 느끼게 될 것이다. 이야기 속의 그 많은 사람들과, 독자들이 (그리고 아마도 작가도 함께) 찾아 헤매던 그 책이 바로 내 손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탐욕스럽게 책장을 넘기던 그 책을 내가 모두 읽었다는 그 허탈감, 그리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이제 끝이 나지만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작가에 의해 쓰여지고 있다는 기대감에 탄성을 내 뱉을지도 모른다.


Her Book Shelf

삼월은 붉은 구렁을’ 밖으로 걸어 나온 [삼월은 붉은 구렁을] ‘삼월은 붉은 구렁을’ 안에서 약 올리듯 조금씩 그 존재를 드러내던 [삼월은 붉은 구렁을] 속의 이야기들은 이후 실제로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녁 백합의 뼈’ 등의 소설로 태어났다. 모두 읽었지만 그 소설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보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그냥 그 이야기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 속에서 걸어 나온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아마도 또 다른 수수께끼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각각의 별도로 존재하는 이야기 속에 어떤 연결 고리들을 남겨 놓는 것이 온다 리쿠식 이야기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온다 리쿠가 독자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견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발견한 사람들에게는 온다 리쿠의 이야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그리하여 온다 리쿠의 이야기는 시작도 없지만 끝도 없다. 본래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 같이 영원히 이어져 있지만 돌다 보면 또 다른 면에 접해 다시 어디론가 흘러 가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에 녹아 있는 ‘슬픔’이나 ‘아픔’, ‘기쁨’이나 ‘열정’은 끝도 없이 피어나고 또 진다. 그리고 또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난다.

온다 리쿠 출생: 1964년 10월 25일 (일본) 데뷔: 1991년 소설 ‘여섯 번째 사요코’ 학력: 와세다 대학교 교육학 학사 대표작: 여섯번째 사요코, 밤의 피크닉, 삼월은 붉은 구렁을,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흑과 다의 환상, 황혼녘 백합의 뼈, 초콜렛 코스모스, 네버랜드, 유지니아, 여름의 마지막 장미 등 그녀의 한마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읽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들은 같다.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읽었던 이야기를 나 나름의 해석을 거쳐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 소설가가 됐다. 지금 책을 쓰고 있지만 내 자신이 소설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소설을 쓰는 동기 또한 독서에서 나오며,다른 작가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2009년 5월 17일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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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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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 Maya’s Home Made

pe_ i c e R

로즈마리 쿠키 & 로즈마리 홍차 싱글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에 즐기는 영국 소공녀 놀이 EDITOR_MAYA PHOTOGRAPHER_MAYA

[Serve 2 Persons] 달지 않은 maua’s

향기로운 maua’s

로즈마리 쿠키

로즈마리 홍차

Ingredients

Ingredients

생로즈마리 20g

일반 잎홍차

땅콩버터 65g

드라이 로즈마리

설탕(or 슈가 파우더) 50g

티색

버터 50g

(잎차를 넣고 우릴 수 있는 티백.

밀가루 130g

다시용 티백으로 사용해도 됨)

노른자 1개 파마산치즈 10g 소금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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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


CHEF MAYA

중학교 때, 학교와 집 근처에 우후죽순처럼 만화책 대여점이 생겨나던 시기였다. 한 반에 한 두명쯤은 일본 문화/만화에 푹 빠진 일명 ‘오타쿠’들이 있었고, 주로 이들을 통해서 ‘꽃보다 남자’니(이땐 ‘오렌지 보이’, ‘우정은 No! 사랑은 Yes!’등의 해적판으로도 많이 소개 되었다) ‘바사라’니 하는 만화책들이 매일매일 교실로 공수되곤 했었다. 이 아이들의 책가방 속에는 늘 5~6권 정도의 만화책들이 들어 있었고 그 아이들과 친한 순서대로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이 만화책들은 반 아이들에게 돌려 읽혔다. 만화책 대여점이 한국 만화 발전에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친 암적인 존재임을 알지만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만화책 대여점의 바퀴달린 두 겹의 책장을 굴리며 뭘 볼까...고민하던 기억은 빼 놓을 수 없는 추억이리라. 한권에 300원, 연체료는 하루 100원. 인기 있는 만화의 새로운 단행본이 나올 때 먼저 차지하기 위한 그 치열한 ‘예약’!

갑자기 뜬금없이 만화책 대여점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대여점이 아니라 대여점을 통해 빌려 읽었던 만화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대여점을 통해 빌려 봤던 만화들은 ‘만화’라기 보다 지나간 ‘추억’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손에 없는 그 책의 이야기, 주인공의 얼굴, 약간은 찜찜하게 때가 탄 비닐로 쌓여있는 그 책 자체. 더이상 내 손에 없기에 그 책은 책이 아니라 그 때의 ‘기억’이라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남아 있다.

그 여러 기억 중 내가 지금 꺼내려고 하는 기억은 ‘홍차 왕자’이다. 홍차를 사랑하는 한 여고생이 보름달을 보면서 홍차 한잔을 가지고 무언가 주문인지, 소원인지를 비는데, 홍차나라의 왕자 둘이 뿅!하고 나타나 그녀와 함께 살면서 이런 저런 해프닝을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인 홍차 왕자들의 이름은 ‘아쌈’과 ‘얼그레이’였는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홍차 나라의 여러 다른 인물들이 현실세계로 끌려 나오게 된다. 그들의 이름도 모두 홍차의 한 종류들이었고 홍차나라의 인물들은 각 홍차의 특성에 맞는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쌈은 인도 출신답게 거무잡잡한 얼굴에 알라딘이 입을 것 같은 동남아 전통 의상을 입고 있고, 얼그레이는 영국 출신답게 금발의 귀족 모습을 하고 있는 식이었다. 홍차왕자를 읽을 때의 나는 홍차는 커녕 커피도 마시지 않는 멋없는 ‘그냥 여중생’이었다. 그래서 만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소개하는 홍차의 맛을 막연히 상상해 보았던 기억이 내가 이 만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추억이다.

만화를 통해 홍차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동경의 어떤 것이었다. 홍차는 커피처럼 잠을 깨우고자 할 때, 술처럼 헬렐레 정신줄을 놓고 싶을때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먹는 것은 아니다. 녹차보다는 덜 대중적인 맛을 가지고 있다. 홍차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는 홍차 맛은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 홍차는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홍차를 먹는다는 것은 나로 하���금 ‘새끼 손가락을 들고 섬세하게 꽃무늬가 그려진 작은 찻잔을 우아하게 홀짝이는 영국 귀부인의 티타임’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나에게 홍차라는 건 먹는 음식의 한 종류라기보다는 ‘여유로운 어떤 시간의 한 토막’이다. 그래서 난 첫번째 [chef Maya]에서 어떤 음식을 소개하면 좋을지 열렬한 고민 끝에, 여유로운 오후의 티타임을 통째로 독자들에게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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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MAYA

달지 않은 maya’s 로즈마리 쿠키

How to Make 1. 버터는 미리 상온에 한 시간 정도 두어(이것을 상온에 돌린다고 합니다) 두었다가 큰 볼에 넣어 거품기나 나무주걱으로 잘 풀어 줍니다. 2. 생로즈마리는 물에 잘씻어 잎만 두번 정도 다져둡니다.(너무 잘게 자를 필요는 없어요) 3. 땅콩버터와 설탕, 계란 노른자, 소금을 조금씩 넣어주며 버터와 잘 섞어 줍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저어서 설탕 알갱이가 다 녹아버릴 정도가 아닌,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알갱이가 만져지는 정도로만 섞어 주세요. 4. 밀가루는 두 세번 정도 채로 쳐서 버터반죽에 넣고 생로즈마리와 파마산 치즈도 넣습니다. 5. 반죽을 나무주걱으로 자르듯 얼기설기 섞어 주세요. 밀가루가 하나도 보이지 않도록 꼼꼼히 반죽을 한다기 보다 대충 섞는다는 기분으로 섞어주세요. 쿠키는 빵처럼 쫀득한 질감보다는 바삭한 질감이 중요하니까요! 6. 바닥에 랩을 깔고 그 위에 반죽을 올려 놓습니다. 깁밥을 말듯 반죽을 랲으로 싸서 동글고 길게 모양을 잡아 줍니다. 7. 이대로 냉장고에서 30분내지 1시간 정도 반죽을 휴지시켜 주세요. 8. 휴지시킨 반죽을 꺼내어 역시 김밥을 써는 것처럼 1.5cm두께로 동그랗게 썰어주세요. 9. 팬에 적당한 간격으로 올린 뒤 앞뒤로 흰 설탕을 묻혀 주세요. (생략해도 됩니다) 10. 180도에 예열한 오븐에 넣고 15분 정도 구우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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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MAYA

향기로운 maya’s 로즈마리 홍차

How to Make 1. 생로즈마리는 잎을 따다 물에 살짝만 흔들어 씻고 채반같은 곳에 올려 그늘에 잘 말린다. 2. 좋아하는 잎 홍자와 잘 마른 드라이 로즈마리를 섞고 일정한 양씩 티색에 넣는다. 3. 90도~95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티색을 넣고 잘 우려낸다.

다 만들었다.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베카(나만의 베란다 카페)에 앉아서 우아하게 새끼 손가락 들고 차 한 모금, 쿠키 한 조각 맛보기만 하면 된다. 로즈마리의 항산화 성분이 칙칙해진 내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라면서..... 14


CHEF MAYA

Maya’s Tip. 나만의 티백(tea bag)만들기

내 입맛에 꼭 맞는 홍차 찾기가 어렵다고 슬퍼하지 말것! 티색(tea sac)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홍차와 함께 할 수 있으니.

Blending? 차 잎을 자기 입맛에 맞게 섞는 것을 블렌딩(Blending)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홍차 종류 중 하나인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English Breakfast Tea)도 블렌딩한 차의 한 종류라고 하니 블렌딩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처음부터 내 입맛에 꼭 맞는 블렌딩을 찾는다는 욕심을 버리고 여러번 실험을 거칠 필요가 있다. 블렌딩이 된 잎차가 있는데 그것을 간편하게 휴대하고 다니거나 지인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면 다시용백이나 티색(Tea Sac)을 활용하면 된다. 다시용 백은 할인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다시 국물용이라 크기가 크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티색은 DIY 티백용으로 나와 여러가지 사이즈가 있어 선택의 폭이 넓지만 차 전문 온라인 쇼핑몰등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티백 만들기 일반적인 티백의 모양을 생각해 만들면 쉽다.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티백은 부직포로 된 티백에 흰 무명실이 연결되어 있고, 차를 우려낸 뒤 티백을 건질 수 있도록 작은 종이태그가 달려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티색과 실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종이태그는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스탬프를 찍으면 정성이 가득담긴 선물로 손색이 없으므로 직접 종이태그를 만들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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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MAYA

1. 태그 디자인을 하고 사이즈를 어느 정도 정한다. 시중의 태그보다 조금 더 크게 하는 것이 만들기 쉽다. 내 이름을 넣거나 나만의 특색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하면 선물을 할 때 더욱 좋다.

2. 그림을 그리고 오리는 것은 정확히 선을 따라 오려야 하므로 어렵다. 태그를 사이즈대로 오린 뒤 디자인을 그려 넣는다.

3. 티백 안에 블렌딩한 차를 정해진 만큼 담는다.

4. 티백과 태그를 실로 꿰매 연결한다. - 티백의 윗 부분을 세모꼴로 접고 두번 아래로 접어 위를 봉한다. - 봉해진 부분 아래 쪽으로 바늘을 넣어 실의 매듭이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시작하여 두 번 정도 꿰매준다. - 그대로 두 겹으로 접힌 태그 사이로 바늘을 넣어 태그와 티백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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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 in the Scene]

앞으로 발을 내 디뎌라. 그래야 앞으로 갈 수 있으니까.

My Big Fa t Greek We d d i n g

EDITOR_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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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지만

원제는“My Big Fat Greek Wedding”이다.

가장 중요한 ‘Big’과 ‘Fat’이 빠진,

약간 김 빠지는 제목이다. “My Big Fat Greek Wedding”의 첫인상으로 기억을 떠올려 보자. 2003년 개봉 당시 영화관 앞에서 분명 포스터와 커다란 현수막을 보았을 때 약간의 촌스러움과, 약간의 B급 영화스러움에 외면했던 기억이 난다.(난 예술혼 충만한 영화보다는 폭탄 빵빵 터지는 할리웃의 블록 버스터를 좋아한다. 트랜드포머 따봉!) 그리고 두 번째 기억은 어학연수를 앞두고 다녔던 매일 3시간씩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시작한다. 그 학원에서는 금요일마다 영화나 시트콤을 잘게 쪼개 보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미국 애들은 실생활에서 어떤 말들을 하고 사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무지하게 웃기다고 틀어줬던 DVD가 바로 “My Big Fat Greek Wedding”이었다. 그런 시간에는 주로 “Friends”나 “Sex and the City”를 틀던 시절이었는데(지금은 영어학원에서 교재로 어떤 영화를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차라리 그런 시트콤을 틀어주지 호흡이 한번에 쭉 이어지는 영화를 한 마디 한 마디 끊어 보다 보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미국에 정착한 그리스 이민자들이다 보니 발음이 그리스식 영어라. 미국식 영어도 잘 안 들리는 판에 왠 그리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히이즈 노 그릭끄!$%@&%&*(*@#^*!!”라고 소리지르는 걸 보고 있자니 재미도 없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세 번 만에 “My Big Fat Greek Wedding”은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처음(사실은 세 번째)봤을 때 정말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K마트나 울월스에서 쇼핑을 하던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이었던 때가 있었다. 엄마, 아빠의 취향이 아닌 고스란히 나의 취향이 반영된 생활용품을 고르고 사던 것이 왠지 어른이 된 것만 같았던 기분이 들던 때였다. 그때 마트에서는 DVD특가 세일을 자주 하곤 했었는데, 술이나 클럽 같은 것에 별 취미 없었던 내가 바비큐 파티 없던 주말을 보내는 오락거리로 DVD를 모았던 것이다. 개봉한지 얼마 안됐던 영화들은 비싼 탓에 주로 9.99달러짜리, 개봉한지 1~2년 이상 된 DVD를 샀는데, “My Big Fat Greek Wedding”은 그 때 건진 영화들 중 한 편이다. 내가 살던 자취방 주인 아줌마의 친구 중에 그리스에서 이민 왔던 아줌마가 한 명 있었는데, 내가 주말에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을 보더니 지나가는 말로 “저거 정말 웃기지? 우린 정말 저래.”라고 이야기 하며 지나가던 기억도 이 영화에 대한 추억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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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 IN THE SCENE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정말 나이 들어 보이는 촌스럽고 뚱뚱한 여자가 어느 비 오는 새벽, 아버지와 함께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그리스 식당으로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절망적으로 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유 룩 오오올~~~드(You Look Old)” 탄식하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나레이션에 의하면 그 이야기는 그녀가 15살부터 들었던 이야기란다. 그녀의 아버지 세대가 생각하는 그리스 여자의 존재의 목적은 딱 하나다. 그리스 남자와 만나서, 그리스 아이를 낳아 그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여자는 뭐 그렇게 많이 배울 필요도, 다른 일을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녀의 언니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던 대로 일찌감치 그리스 남자와 결혼하여 세 명의 그리스 아이(게다가 남자)를 낳아 매일매일 아이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줌마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녀의 동생은 남자라 그리스 여자만 만나 결혼한다면 큰 문제가 없다. 결론적으로 이 집안의 골칫덩이는 그녀 혼자인 셈이다. 하지만 그녀, 툴라에게는 꿈이 있었다. 절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그리스 식당 “댄싱 조르바”의 매니저(종업원과 다를 바 없지만, 그녀는 늘 매니저라고 주장한다)가 아닌 그녀만의 삶을 살아 보는 것. 그리고 쓰레기 쌓인 식당 뒷문에서 늘 먼 하늘을 바라 보며 꿈만 꾸던, 그리스인이 아닌 것 같은 삶의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연쇄적으로 찾아 온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어머니로 인해 단과 대학을 다니게 되고, 그로 인해 고모가 운영하는 그리스 여행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그 남자, 이안을 만나게 되는 것. 그 작은 삶의 변화들은 하나 하나로는 너무나 작았지만 그것들이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그녀의 삶은 그녀가 꿈꾸었던 삶이되, 이렇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안이 청혼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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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녀의 집안 사람 누구도(그리고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리스인이 아닌 남자와 결혼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말 그대로 가족 전체를 뒤집어 놓을 만큼 쇼킹한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화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딸의 마음을 돌리려 하고 식구들 중 누구도 그녀를 응원해 주지 않는다. 물론, 유쾌한 제목답게, 이런저런 험난하지만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겪고, 결국 이안이 그리스식 세례를 받는 것으로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합의하기는 하지만 중산층 미국인 가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안 집안과의 결혼(‘식’이 아닌 ‘가족으로의 받아들임’)은 쉽지 않다 . 영화는 새로운 삶에 대한 툴라의 숨겨진 열정과 이안과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시끌벅적한, 말 그대로 ‘Big’하고도 ‘Fat’한 툴라와 이안의 ‘Greek Wedding’준비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의 가족간의 갈등, 더 깊어진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전혀 질질 끌거나, 찝찝하지 않게, 갈등을 빚던 툴라의 가족과 이안의 가족이 결혼식장에 모두 모여 그리스식 강강술래를 추며 빙빙 돌아가는 화면 속에 하나로 융합되듯 끝이 나고, 6년 후 그리스 툴라와 이안의 딸이 학교에 처음 등교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완전히 막을 내린다. 사실, 줄거리로서는 별반 특별할 것 없는 드라마다.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해주는 건 정말 촌스러운 그리스 여자 툴라와 그녀의 가족들이다. 주인공 툴라 역의 “니아 발다로스”는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면서 작가이기도 하다. 뚱뚱하고, 어딘지 좀 둔해 보이고 모든 것을 귀찮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슴 속에 그녀의 다혈질 가족들보다 더 큰 불을 숨기고 사는 여자. 당장 결혼하기에도 늦어버린 노처녀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이 지금과는 달라질 것을, 그녀가 꿈꾸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믿는 여자.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니아는 그런 툴라의 현신처럼 보인다. 못생겼다는 설정만 살아 있을 뿐 사실은 굉장히 예쁜 여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와는 다르게, 니아는 그 스스로도 꽤 못생긴 여배우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니아가 툴라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여튼, 툴라는, 노처녀들에게는 ‘너 같은 짚신에게도 짝이 있다’는 희망과, 못 배운 자들에게는 ‘원한다면 배움은 늦지 않았다’는 교훈과, 엄격한 부모들에게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깨달음을 산뜻하게 제시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한 그녀만의 철학을 떠들썩한 결혼식을 통해 보여 준다.

“어제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는데, 제 딸 아이가 이안 밀러에게 시집가기 전날 밤이죠. 아시다시피 ‘밀러’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어의 ‘밀로’에서 왔죠. ‘밀로’는 사과를 뜻합니다. 어떻습니까?

딱 그렇지 않은가. 모든 일은 지나 간다. 슬픔도, 괴로움도, 그리고 마침내는 행복까지도. 삶에 대한 희망과 애착을 언젠가는 지나갈 것들에 걸 필요가 없다. 그런 것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의 어떤 것에 거는 것이 좋겠다. 비록 지금 당장은 놀림을 받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앞으로 발을 내 디뎌라.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꼼지락거려라.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에야, 나를 둘러싼 이 배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부지런히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움직여서 삶이 자꾸만 나를 찾아 오고, 또 지나가도록 해야 한다. 슬픔도, 괴로움도, 그리고 마침내는 행복까지도.

물론 잘 아시겠지만 우리 가문인 포르토칼로스는 ‘포르토칼리’란 그리스어죠. 오렌지를 뜻해요. 그래요, 오늘 밤 이 자리에 사과와 오렌지가 모인 겁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결국 다 과일이죠.” -툴라의 결혼식에서 아버지의 결혼 축사-

이 영화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미국에서는 이 가슴 따뜻한 저예산 영화가 엄청난 히트를 하고 나서 동명의 시트콤이 만들어 졌었단다. 영화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툴라와 그녀의 그리스인 가족들이 모두 그대로 출연하는(특히 모기 물린 데에 윈덱스를 뿌리면 낫는다고 굳게 믿는 툴라의 귀여운 아버지). 그렇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쫄딱 망했다. “Big Fat Greek Wedding”은 한번이면 족하다. 결혼식까지 하고 다 끝난 마당에 그 뒷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 또한 지나 가리라’. “My Big Fat Greek Wedding”의 히로인 니아 발다로스는 그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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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회의_2 Meeting Minutes 일시: 2011년 5월. X일, 오후 5시 장소: 회의실 참석자: 편집장 Maya, 에디터 Maya, 디자이너 Maya, 포토그래퍼Maya

편집장: 드디어 두 번째 기획 회의 시간이네요. 우선...Maya 기자, 원고 잘 봤어요. 저는 온다리쿠 편이 마음에 들더군요. 복잡한 이야기 구조인데 풀어내느라 수고 많이 했어요. 기자: (환하게 웃으며) 예, 감사합니다. 편집장: 그렇지만 영화 쪽 내용에 가서는....좀....뭐랄까? 힘이 좀 부족한 느낌이랄까? 시간을 맞추는 건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글에 힘이 없으면 독자들로 하여금 끝까지 읽도록 잡고 있을 수가 없어요. 기자: 아...사실 원고를 쓴 순서가 [Maya in the Scene], [Her Book Shelf], [Chef Maya]순이거든요. [Maya in the Scene]을 쓸 때는 감이 좀 없었다가 [Her Book Shelf]를 쓸 땐 감을 좀 잡은 느낌이었어요. 온다리쿠를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기도 하구요. 편집장: 음. 본인이 관심있는 분야를 잘 쓰는 것은 칭찬할만하지만 기자라면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나 관심있는 분야라도 준전문가가 되어서 쓸 수 있어야 하죠. Maya기자는 그 편차가 심한 것 같아 걱정이네요. 참, [Chef Maya] 레이아웃 좋았어요. 레시피 위주이다 보니 음식을 만드는 과정 이미지가 많아 구성이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디자이너: 네, 로즈마리 티백을 만들기 위해 허브 입을 따고, 말리고 하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들고 하다보니 디자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섹션이라 그런 것 같아요. 다른 꼭지들도 이렇게 시간이 넉넉하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기자: 에...마감을 촉박하게 원고를 넘겨서 죄송해요. 아무래도 지금 기자 생활에 올인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평일엔 회사원 생활을 하는 투잡족이라...... 편집장: 자자, 이제 이미 마감 넘긴 원고 얘기는 그만하고, 다음 준비 중인 기사 얘기 좀 해볼까요? 인터뷰 섹션 준비중이죠? 기자: 네, 창간호 [inter, view] 섹션에 인터뷰어를 누구를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얼마전 제 선배 중 한 명인 남예지씨가 2집 앨범을 냈거든요. 남예지씨를 하면 어떨까 싶어요. 7년만의 앨범이기도 하고, 친한 선배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앨범에 대한 소개 뿐 아니라 그녀의 노래에 대한 철학이나 삶에 배어 있는 태도 같은 것들을 물어 볼까 하거든요. 저희가 평소에는 그런 진지한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아서요. (웃음) 편집장: (신중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음...괜찮을 것 같네요. 평소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친한 사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몰라요. 너무 갑자기 진지하게 시작하기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대화를 나누듯 시작하면 좋을 것 같네요. 포토그래퍼: 저, 편집장님 편집장: 네. 포토그래퍼: 남예지씨 인터뷰를 할 때, 아무래도 가수니까, 공연하는 모습이 현장감도 있고 좋을 것 같은데요. 편집장: 네. 제 생각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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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회의_2

포토그래퍼: 그래서 말인데...공연 장은 어둡잖아요. 아무래도 손으로 들고 찍으면 사진이 다 흔들릴 것 같은데...(망설인다) 편집장: 네. 말씀 하세요. 포토그래퍼: 삼각대 하나 사면 어떨까요...?두고 두고 쓸 수 있게요. 이번만이 아니라. 편집장: 음.........(장고 끝에) 많은 제작비를 지원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라면 좋아요! 5만원 내에서 구입하세요. 포토그래퍼: 감사합니다!! 편집장: 그리고, 연애 관련 섹션 말이에요. [Love, Maya]. 고민 많이 해 봤는데, 이걸 Maya기자에게 맡겨도 좋을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 연애 쉰지 오래 됐잖아요? 경험도 얼마 없고. 뭐 아는 게 있어야 쓰죠. 독자들에게 조언을 줄 수 있겠어요? 기자: (깜짝 놀라며) 에? 편집장: 혹시, 컨트리뷰팅 에디터에게 맡기면 어떨까요? 최종 원고 정리는 Maya기자가 하되, 기본적인 내용 작정이나 조언은 연애 전문가가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기자: (살짝 풀 죽었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다) 네......그런데 누가 좋을까요? 제 주변에 연애를 잘 하거나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디자이너: (조심스럽게) 저, 한 명 아는데요...저희 선배 중에 슈에이라는 선배가 있어요. 나름 연애 좀 한다 하는 선밴데, 지금까지 자기가 사귀고 싶었던 여자는 다 사귀었다고 하더라구요. 포토그래퍼: 바람둥이 아니에요? 디자이너: 아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나름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글도 써 보고 싶어하는 것 같구요. 한번 의사를 물어볼까요? 편집장: 음. 한번 Maya기자하고 미팅을 가져 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주제는 뭘로 할지 생각해 봤어요? 기자: 네, 창간호가 나올 때 쯤이 추석 때잖아요. 저 같은 결혼 적령기 싱글들은 이런 연휴가 굉장히 껄끄럽더라구요. 특히 당장 애인도 없는데 나이만 먹고 있으면 그 명절 연휴 내내 친척들에게 ‘왜 결혼 안하냐, 애인이 왜 없냐, 뭐 문제 있는 건 아니냐’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그런 시달림에서 벗어나는 법에 대해 쓰면 어떨까 합니다. 편집장: 좋아요. 디자이너 Maya는 바로 그 선배에게 연락하고 Maya기자하고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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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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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 IEW

보컬리스트 남예지는 23살, 푸릇푸릇한 대학생 시절 1집 앨범 ‘Am I Blue?’를 냈다. 앨범에는 ‘Am I Blue?’라고 적혀있있지만 앨범 자켓에 실린 그녀의 풋풋한 단발머리는 뒷모습만으로 숨길 수 없는 여대생의 상큼함이 흘러 나왔었다. 그리고 7년, 하나의 앨범을 준비하기에 길다면 충분히 긴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남예지의 2집 앨범이 발매되었다. 아이돌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가득한 남예지의 노래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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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 IEW

사실 남예지는 나의 대학 선배이다. 1년 터울의 심리학과 선배이자 함께 노래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던 동아리 선배이기도 하다. 나에게 주로 ‘예지언니’라고 불리는 그녀의 인터뷰는 어쩌면 나의 [the Maya] 발행 준비와 거의 동시에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친분덕에 섭외 요청도 수월했고, 2집 발매 홍보와 비슷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녀도 흔쾌히 나의 요청을 수락했다. 순식간에 ‘카톡’을 통해 ‘토요일 1시, 중대 앞’이라고 약속이 잡혔다. 하지만 친하기 때문에 오히려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일사천리로 수월하게 이루어진 인터뷰 요청/수락 과정과 달리 인터뷰 진행 과정은 오히려 모르는 사람을 인터뷰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미리 작성해 간 인터뷰지도 무용지물이었다. 나름 신선한 질문이라고 머리를 짜내 만든 질문들을 한번 쓱 훑어본‘예지언니’는 이미 모두 한번 쯤 들어본 질문이라며 식상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계기 노래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수를 하기로 처음 마음먹게 된 계기 -시간 2집 음반이 나오는데 7년이나 걸린이유/그동안의 시간동안 무엇을 했나 -꿈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듀엣을 하고 싶은 가수가 있나?(시,공간을 초월하여) -후회와 희망 내가 힘든 순간에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이 얼마나 되나 -정리 인터뷰를 하면서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데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은?

볼펜 끝을 잘근 잘근 씹어가며 뽑아낸 고민의 질문들이었기에 버리기 아까워 식상하지만, 그래도 한 번 대답해 보라고 닥달을 했다. (이하 Maya-M, 남예지-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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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왜 가수가 된 거야? 노래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거 있어? N: 아니. 노래를 언제부터 했는지는 기억에 없어. 그냥 옛날부터 노래 하는 걸

좋아했어. 어렸을 때 나 혼자 집에 있던 팝송책이나, 가곡책 같은 거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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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남예지, 혼자서 나는 가수다?

놓고 혼자 막 노래 불러보고,라디오 진행하는 것처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보고, 아빠 출근할 때 녹음한 거 주고 막 그랬어. 노래가 부르고 싶 어서 막 비틀즈 노래 영어 가사를 엄마한테 한글로 써 달라고 해서 부르고...... M: 가수는 언제부터 되고 싶었는데? N: 가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 M: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 같은 거 적어 내잖아. 그런 거엔 뭐라고 썼어? 거기엔 가수라고 쓰고 그러지 않았어? N: 응. 그냥 선생님이라고 썼지. 나는 가수가 되려고 막 노력하고 그런 건 없었어.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하다 보니까 가수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거지. 정말 어쩌다 보니 가수가

그녀는 모짜르트과 였던건가? 가수가 되고 싶어 안달난 가수지망생들이 들으면 얼마나 부러워할 일이란 말인가. 기억을 더듬어 그녀와 함께 노래 연습을 하던 시기를 떠올려 봤다. 아직 여물지 않았던 아마추어 음악 동아리의 보컬리스트였음에도 그녀의 노래 실력은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이었다. 특히나 이제 막 대학이라는 신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1학년생들에게, 좋아하는 알앤비 가수를 물으면 대개 머라이어캐리나 박정현이라고 답했던 우리들에게 남예지의 목소리는 대학만큼이나 신세계스러운 것이었다. 특히나 얇고, 가늘고 여성스러우며, 간들어지는 기교가 알앤비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던, 음악에 무척이나 무지몽매했던 나에게 묵직한 안정감을 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연습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고 ‘감탄’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고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거나 어떤 노래든 한번 들으면 그대로 줄줄 읊어대는 타입의 천재는 아니었다. 분명히. 동아리 공연을 앞둔 그녀는 누가 보다도 열심히 연습을 했고, 나를 비롯한 동아리 사람들 대부분은 그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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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를 받지 못한 비정규직같은 동아리였다) 조그마한 동방의 창문너머로 해가 저물어갈 때쯤, 가까스로 우리가 음악 동아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후진 오디오에서 MR이 흘러 나오고 그녀의 목소리가 곧 동방을 가득 채운다. 강의가 끝난 동아리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동방으로 들어오며 조용히 앉아 그녀의 연습하는 모습을 쳐다보던 장면이 기억난다. 스물 한살짜리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큰 울림이 있었다(어쩌면 이 기억은 나의 머리속에서 조금씩 변형되었거나 과장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밝혀 둔다). 1학년짜리 꼬맹이들이 듣기에 그녀의 노래는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곧 MR이 녹음된 CD를 되돌려 다시 부르고 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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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학관 건물에 위태롭게 걸쳐있던 가건물에 있던(내가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 동아리는 정식

불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집에 가는 길 우리들의 대화는 늘 그런 것이었다. “ 예지 언니 진짜 노래 잘하지 않아? 우리는 언제쯤 그렇게 될까?” “ 내 생각에는 예지 언니가 우리 나라에서 제일 잘 하는 거 같아. “

지금의 남예지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담은 일기장 같은 2집 앨범

M: 1집 앨범이 23살에 나왔잖아. 그 때 어린나이에 비해 성숙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 재즈 보컬리스트가 나왔다고 막 기사에 나오고 했던 기억이나. 그런데 7년이면 하나의 앨범을 준비하는데 일반적으로 걸리는 것보다 훨씬 오랜 걸린거잖아. 무명의 신인이 1집을 내려고 준비하는 기간보다도 긴 것 같은데...... 2집이 나오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N: 2집을 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게 아냐. 2집 준비를 시작한 건 작년 9월부터거든. 그리고 올해 5월에 나왔으니 1년이 채 안 걸린 셈이지. M: 그럼? 7년 동안의 공백은? N: 앨범을 내기 위해 공백기간을 가졌던 게 아니라 앨범을 낼 필요성을 못 느꼈었어. M: 1집을 내게된 계기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볼까? 1집 앨범은 어떻게 내게 된 거야? 보컬리스트로서 언니의 커리어를 봤을 때, 지금 생각해 보면 ‘남예지’라는 보컬리스트로서 인지도도 전혀 없었고, 공연을 특별히 많이 한 것도 아니었던 정말 신인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자신만의 앨범을 낼 수 있었지? 다른 가수 지망생들이 보기에 굉장히 부러운 케이스 아닌가? N: 1집을 낼 때도, 난 앨범을 내야겠다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어. 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냥 노래를 하고 싶었고, 노래를 했고, 그 결과로 앨범이 나왔던 거지. 앨범을 내기 위해 그런 과정을 거친 건 아니었거든. 앨범을 내고 싶어하는 가수 지망생들은 대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적 방향이 뚜렸한 사람이 많아. 그러다 보면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난 이런 조건이 아니면 안돼.’ 라던가 ,‘꼭 이런 음악을 해야해’라는 조건이 많아지고, 조건이 많아질 수록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제작사는 줄어들고......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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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조심스럽게)...그러면, 1집 앨범에는 언니의 음악적 색깔이나 주장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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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예지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담은 일기장 같은 2집 앨범

N: (망설임 없이) 어. 그때 난 그냥 노래만 불렀어. 작곡가가 만들어주고 프로듀서가 시키는 대로. 그렇게 1집이 나오고, 욕심내지도 않았던 1집 앨범도 냈겠다, 공연도 하고 어느 정도 커리어도 쌓였겠다, 이제 다음 앨범은 내가 보컬리스트로써 완벽한 앨범을 낼 수 있을 때, 그때 내려고 했지. 앨범을 많이 내고자 하는 욕심도 없었고, 공연도 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도 많으니까. 앨범은 딱 한 장, 정말 내가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내도 된다고 생각했거든. M: 그게 지금이야? N: 물론 아니야. 나는 지금도 부족한 점이 많지. 하지만 2집 프로듀서인 황인규씨를 만나고나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 지금 내 1집 앨범을 다시 들어보면 그때는 지금보다도 부족한 점도 많고, 분명 고쳐야 할 부분들도 있어. 그리고 기량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그때보다 더 나아진 부분들이 많지. 시간이 지날 수록 보컬리스트로서의 남예지는 성장하고 있어. 하지만 반대로 그때, 스물 세살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어떤 것들 중에 지금의 내가 다시 할 수 없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는 생 각이 든거야.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노력할 수록 내 노래는 내가 생각했던 ‘완벽하다’는 방향 가까이로 다가가겠지만 지금의 남예지가 할 수 있는 노래는‘지금’하는 이 노래 뿐이겠지. 보컬리스트로써 ‘지금의 남예지’, 그것을 기록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2집 앨범은 나에게 지금의 모습을 기록한 일기장 같은 거야. M: 일기장? N: 응. 이번 앨범에서는 처음부터 내가 참여했어. 작사/작곡부터 편곡한 노래도 있고(실제로 그녀는 2집 Terrra Incognita에서 7곡을 작곡, 8곡 작사 1곡 편곡을 했다). 가사들도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 많고. 앨범 자켓에는 가사를 실은 게 아니라 그 노래에 대한 내 느낌들을 써 넣었어. M: 이번 앨범에서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뭐야? N: 못 골라. 정말 내 자식같아. 1집 때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이런 노래가 좋다고 딱 말할 수 있었는데 2집은 그게 안돼.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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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리스트 남예지’가 아닌 ‘예지언니’로써 남예지는 나에게 ‘재즈’ 같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레이디가가’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사람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타고 흐르는 피아노 선율같은 정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귓가를 울리는 강렬한 비트 같은 사람, 신나는 율동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보컬리스트로서의 남예지는 날카로운 핀조명이 비추는 어두운 무대위에 서서 가슴을 적시는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하지만, 나에게 익숙한 남예지는 귀여운 소품을 좋아하고, 밤새워 뜨개질하기에 푹 빠지고, 갑자기 수상스키를 배우고 싶어하며 말썽꾸러기 애견 산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적인 여자다. 그래서 갑자기 그녀가 재즈 보컬리스트로 불리기 시작하던 때의 이질감을 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한창 싸이월드가 전 국민에게 미니홈페 열풍을 몰아치던 2000년대 초반, 하루가 멀다하고 업데이트 되는 활달한 그녀의 ‘사진첩’과는 다르게 청춘의 ‘우울’과 ‘불안함’이 가득하던 ‘일기장’을 떠올려 본다. ‘레이디 가가’ 안에 숨어있던 ‘로린힐’은 재즈를 통해 보컬리스트 남예지로 태어난 셈이다.

노래에 대한 애정만은 변치 않는 변덕쟁이 보컬리스트 남예지

N: 그렇지만 날 재즈가수라고 한정짓지는 말아줘. 내가 재즈만 하는 건 아니니까. M: 하지만 언니는 매체에 주로 재즈 보컬리스트로 소개되곤 했잖아. 왜 재즈 보컬리스트로 알려지게 된거지? N: 아, 그건 처음에 ‘누보송(2003)’이라는 재즈 프로젝트 앨범에 ‘춘천가는 기차’로 참여하면서 알려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1집도 그렇고, 이번 2집도 그렇고 재즈 노래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거든. 타이틀 곡도 재즈적인 요소를 가미했지 명확하게 이것은 ‘재즈’라고 할 수는 없고. 또 함께 음악을 하는 동료들도 재즈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앨범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거의 재즈를 베이스로 하는 사람들이야. 그러다 보니 재즈적인 색채가 강해졌을 수는 있어. M: 그럼 좋아하는 노래 장르가 따로 있어? N: 아니. 난 노래 하는 거면 다 좋아. 난 굉장히 많은 것들에 관심이 많고 또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야. 그래서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에 막 꽂혔다가 또

금방 싫증내고 다른 것에 몰두하고 막 그래. 그런 내가 지금까지 싫증내지 않고 계속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좋은 건 음악 밖에 없어. 나 같이 변덕스러운 애가 어떻게 노래에는 싫증을 내지 않고 늘 좋은 건지, 나도 그게 참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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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든 것을 떠나서 그녀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예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상처 받고, 성장했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카세트 리코더의 녹음 버튼을 달칵 누르고 비틀즈의 ‘Yesterday’ 가사가 한글로 적힌 노트를 보며 따라 부르던 소녀 남예지, 노래가 좋아서 그냥 다른 사람들이 써 준 노래를 부르던 1집 신인가수 남예지,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고 곡을 붙이는 ‘Terra Incognita’의 남예지는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어떤 것이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나’의 본질을 지켜주는 요소일까? 언젠가는 그런 것을 찾을 수는 있을까?

보컬리스트 남예지에 대한 인터뷰는 그녀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많은 인터뷰어로 인해 대부분 생략되었다. 남예지 2집 ‘Terra Incognita’또는 그녀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남예지 트위터 @namyeji 를 following하거나 페이스북 친구로 ‘남예지’를 추가해 보자. 남예지의 공연소식이나 최근 활동 소식도 꾸준히 업데이트 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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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Maya]

서른, 아직도 어리버리한 골드미스들에게 믿음직한 인생 선배(?) 슈에이가 전하는 추석특집 ‘친척 잔소리 피하기 특강’!

무면허 연애 상담소_1 Writer: Shu-ei Editor: Maya

대화하기 (C)

편집(E)

보기(V)

동작(A)

도움말(H)

Sue-ei: Maya! 오랜만! 뭐해? Maya:

아, 선배! 우잉~~뭐 하긴~~ 일하죠. 회사에요...

Shu-ei: 뭐야.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 무슨 일 있어? 이 형아 한테 다 털어놓아봐. Maya:

으흉...

Shu-ei: 왜애~~빨리 말 해봐. Maya:

그게....이제 곧 추석이잖아요...걱정이에요. 갈데도 없는데...

Shu-ei: 갈데가 왜 없어? 명절은 가족과 함께! 몰라? Maya:

애인 있는 선배는 몰라요!! 서른 이상 남친 없는 여성들이 명절마다 겪는 설움을... 친척들 얼굴 보는 게 완전 고문이라고... 시집 안것만 빼곤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완전 죄인처럼...ㅠㅠ

Shu-ei: 음...우리 Maya가 벌써 그런 고민을 하는 나이가 됐구나...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피해다닐 순 없지.

형아가 방법을 알려줄까? Maya:

네!!!!!!!

Shu-ei: 단, 쉽진 않을 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빨리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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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YA

지금부터 슈에이 선배와의 나누었던 대화의 전문을 공개한다. (편의 상 대화체가 아닌 서술형으로 옮긴다)

자타의적으로 서른을 훌쩍 넘긴 독신자로 살게 된 내가 결혼을 일찍 하지 않은 것이 가끔 아쉬운 이유는 바로 노후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쥐꼬리 만한 은퇴 자금에서 애들 학비와 용돈까지 떼줘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과 함께 이미 받기에는 때를 놓쳐버린 회사 자녀 등록금 보조에 대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현재 대학 등록금이 500만원이고 매년 5% 오른다면 20년 후에는 학기당 1300만원, 4년이면 순수 등록금만 1억이란 산술적 계산이 나오는데, 회사의 지원금이 전체 금액의 50%만 되어도 오천 만원이라는 작지 않은 금액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따윈 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결혼이란 종신 보험과도 같다. 빨리 가입하면 혜택이 더 많은 것처럼 꼬셔대지만, 약관상 가입은 쉽지만 해지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입하고 나면 매달 엄청난 납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한 달 한 달 헐떡 거리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하면 애 낳고, 기저귀 갈고, 영어유치원 보내고, 초등학교 보내고, 선생님 면담하고, 촌지 주고, 과외 시키고, 학원 보내고, 대학 보내고, 어학연수 보내고, 졸업시키고, 취업 시키고…… (저 가운데 어디에 쉼표가 있을 수 있을까?) 아이는 (말 못하는) 한 때나마 기쁨을 줄 수도 있고,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해 줄 수도 있겠다만, 식어가는 사랑과 그로 인한 배우자와의 갈등은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결혼하면 사랑은 식고, 믿음은 사라지고, 장점은 단점이 되고, 단점은 꼴보기 싫은 점이 되고, 사소한 집안 일로 미친 듯 싸우고, 결국 집에 아닌 모든 곳이, 배우자가 없는 모든 곳이 안식처가 될 것이다. 결혼도 안 한 니가 어떻게 아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만 이건 안 들어도 오디오, 안 봐도 비디오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고, 해야 할 거라면 일찍 하는 게 낫다고도 하지만, 그건 20세기 격언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21세기에는 늦출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뒤로 늦추는 게 나은 법이다. 인생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Maya: 뭐야...내용 왜 이렇게 우울해.... Shu-ei: 쉿! 우선 끝까지 들어 봐. 34


THE MAYA

즐겁고 행복한 나의 싱글 생활에 가장 성가신 일은 ‘몇 살 이냐? 왜 결혼 안 하냐’고 묻는 (나의 부모를 포함한) 기혼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일이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모르는 사람도 아닌 다 아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도 당한 일이니 나도 당해 보라는 억하심정이거나 자기가 한 바보 같은 짓이 ‘그래도 하는 게 낫다’라는 자기위안을 나를 통해 얻고 싶은 거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부모님들의 걱정이야 심정적으로는 이해 할 수 있지만 그들과 결혼의 불합리성에 대해 논한다거나 싱글들이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과 여건을 이해시키는 건 그냥 소 귀에 알파벳을 읊는 거나 다름 없다. (그들이 산 옛날 옛적 세상에서 싱글이란 제 짝 하나 찾지 못하는 루저 같은 존재로 밖에 나가는 것도 쪽 팔려 종일 방에서 뒹굴 거리기만 하고 회사에서도 하자 있는 건 아닌지 이상한 눈길을 받으며 승진에서도 밀리는 그런 한심하고, 불쌍하고, 형편없는 인간을 지칭하는 단어였을 게다) 또한 특히 ‘내 인생 내가 살게 좀 내버려둬’란 식의 신경질 적인 반응을 잘못 보였다간 서로 부부간에만 발휘했던 ‘들들들들’ 볶음을 협고하여 나에게 해댈 확률이 매우 높다. 결국 나의 평화로운 싱글 생활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부모를 포함한 기혼자들의 말에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가장 짧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결혼 압박 질문을 받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싱글녀들을 위해 나의 선험적 경험에 의해 효과가 검증된 몇 가지 대응법을 알려 드리자면 아래와 같다.

# 1. 보통 회사 상사나 먼 친인척에게 쓰기 좋은 방법. 당신이 내 인생에 간섭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닌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만드는 대응법임 They : ‘아무개야, 올해 몇 살이지? 결혼해야 하지 않냐?’ Me : (매우 진지한 말투로) 안 그래도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돈이 300만원 정도가 모자라네요… (애처로운 눈빛을 지으며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며 마무리) ‘돈 빌려줄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닌 당신은 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닥치고 계십시오’ 정도의 표현을 돌려서 매우 공손하게 표현하는 방식. 저런 멘트에 몇 몇은 ‘진짜 300만원이 없어서 결혼 못하냐? 그것만 있으면 되냐?’라며 어설픈 배짱을 보이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네’ 라고 던지면 자연스럽게 마무리 됨. 그래도 불안하다면 걱정하지 마라. 당신의 부모 빼고 300만원을 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음. 특히 이런 질문을 하는 기혼자의 경우는 배우자에게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99.99%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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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역시 회사 상사나 먼 친인척에게 쓰면 좋은 방법 당신이 나에게 결혼을 권할 만큼 모범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냐는 걸 되묻는 비법임 They : ‘땡땡아, 이제 결혼 할 때 되지 않았냐?

THE MAYA

#2

Me : (역시 매우 진지한 말투로) 결혼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결혼해서 모범 스럽게 사는 분을 보지를 못해서 많이 망설여 집니다. ‘내가 결혼 못하는 게 결혼 한 다음에 너처럼 살까봐 무서워서 이다’ 정도의 표현을 역시 매우 돌려서 예의 바르게 표현하는 방식. 이런 말을 션-정혜영 커플에게 한다면 ‘아름다운 결혼’에 대한 세 시간 짜리 간증을 듣고, 함께 기도할지 모르지만, 나의 경험상 그들과 같이 결혼 생활에 대해 떳떳하고 흡족한 이는 1%도 되지 않음 (그렇지 않다면 나 역시도 이미 진작에 결혼을 했을 것이다)

Maya: 노처녀 명절 대처법이 아니라 결혼 환상 깨기 비법 아니에요 이거? Shu-ei: 어허! 우선 들어 보래도!

#3 위의 방법들은 효과적이지만, 결정적으로 통하지 않는 매우 까다로운 상대가 있음. 바로 부모님. 외국처럼 ‘it’s not your business’라고 심플하게 말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괜히 그런 식으로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나중에 혹시라도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손주를 봐달라고 해야 한다거나, 급전이 필요해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할 때, ‘it’s not my business’란 reply를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름. 부모님 중, 특히 엄마를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갱년기를 넘어선 여성의 깊은 고독감과 딸에 대한 애정을 이용하는 것임. Mother : 땡땡아, 올 해는 결혼해야지? Me : 응 해야지… (갑자기 상념에 든 표정���로 10초간 침묵 후 조심스러운 말투로) 근데 엄마 궁금한 게 있어… 엄마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행복했어…?’ Mother : 응~ (오랜 결혼생활에 따라 습관적인 말투로) 결혼해서 너 같은 땡땡이도 낫고, 참 좋았지 Me : …… 으응 Mother : 왜? 못 믿겠어?’ Me : …… 아니 그냥 어릴 때 아빠 술 먹고 외박해서 엄마 새벽에 아빠랑 싸우고 (약간 울먹임이 나올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울고 있던 게 계속 기억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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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YA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큰 상관 없음. 대한민국에 결혼 후 남편이랑 싸워서 안 울어본 여자가 세상에 몇 이나 있겠는가? 결혼 정년기의 딸을 둔 어머니들은 모두 갱년기를 넘어선 여성들로서 ‘엄마의 바다’와 같은 클래식 드라마에서도 잘 소개 되어 있듯이 결혼 후 인생에서 없어진 ‘나’란 존재에 깊은 슬픔을 안고 있는 존재들임. 자녀의 결혼을 바라면서도 결혼 후 자녀(특히 딸)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까 걱정 역시 깊음. 그런 어머니에게 당신에게 결혼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결혼이란 것을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됨. (그럼 아빠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단순 무식한 아버지에게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그냥 엄마를 당신 편으로 만들어서 쪽수를 밀어 부치거나, 난 아빠랑 평생 살래 같은 말도 안 되는 어리광으로 입막음 하는 게 차라리 낫다 )

Maya: 선배...왠지 점점 막장으로 가는 것 같아... Shu-ei: ㅋㅋㅋㅋ

물론 위와 같은 방법들로 평생을 버틸 수는 없다. 당신과 잘 맞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확인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버는 것이다. 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결혼은 적정한 나이에 하는 것 보단, 적정한 사람과 하는 것이 백배는 어렵고,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결혼 생활로 인해 불행한 많은 선험자들과 달리, 부디 그런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결혼을 꾸리고, 유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부분의 선험자들과 다른 길을 걷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선험자들이 하지 않는 더욱 특별한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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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

편집(E)

보기(V)

동작(A)

THE MAYA

대화하기 (C)

도움말(H)

뭐에요, 이게....기대했더니....ㅠㅠ

Shu-ei: 뭐, 선택은 자신의 몫이지. 하지만 확실한 해결책이야. 믿어도 돼. Maya:

잔소리 덜자고 명절날 막장 드라마 찍게 생겼는데 믿긴 뭘 믿어요!!

Shu-ei: ㅋㅋㅋ Maya:

됐공, 추석 지나고 밥이나 먹어요. 친척들의 시달림에도 내가 살아 남는다면....................;;

Shu-ei: OK! 내가 쏠게. 꼭 살아 남아라.

에휴.................... 선배 미워.

보내기

앞으로 [무면허 연애 상담소]에서 깨알 같은 조언을 해줄 Shu-ei 선배는.... * 대한민국, 모처 출생 * 실제로는 한 없이 게으르고 싹퉁머리 없는 성격의 소유자지만 겉으로는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함 *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의 모습을 믿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음(이라고 본인 주장) * 다수의 연애 경험 보유 (증거: “나는 사귀고 싶다고 생각한 여자와는 모두 사귀었다” 고 진술) * 제주도에서 월 생활비 10만원으로 알콩달콩 살 수 있는 여자가 이상형이며 아직까지 만나지 못해 독신으로 지냄 * 사람이 많은 장소는 광적으로 싫어하지만 예외적으로 클럽만은 OK, 도시의 매연에 매우 민감하지만 14년째 애연가로 살고 있음 * 잘생기고 호감가게 생긴 남성과 대화가 잘 통하는 여성을 좋아함 * 결혼 제도에 대한 회의가 있으나 사랑에 대한 믿음과 기대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괴리에 가끔 괴로워 함

그 밖에.... * 죽기 전에 개를 10마리 정도 키워 보고 싶음 *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죽고 싶음 * 슈에이 선배의 연애 상담소에 상담이 필요한 분들은 shuei@themaya.co.kr로 메일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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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회의 Meeting Minutes 일시: 2011년 7월. X일, 오전 11시 장소: 회의실 참석자: 편집장 Maya, 에디터 Maya

편집장과 기자의 단독 면담 편집장: Maya기자! 마감이 코 앞인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에요. 디자이너가 일 못하겠다고 난리에요! 아직도 원고를 안 넘기면 어떻게 작업을 하겠냐구요. 포토에게 듣기론 촬영은 진작에 끝났다고 하던데, 문제가 뭐죠? 기자: 그게......여행 섹션인 [was here]가..... 편집장: 뭐죠? 기자: 잘 모르겠어요. 파리에서 본 것들, 느낀 것들은 많은데 그게 잘 글로 표현이 안되요. 머리 속이 복잡하기만 하고. (혼란스러운 표정) 편집장: (안쓰럽게 쳐다본다) 기자: 파리에서도 조금 써보기도 하고, 다녀와서 바로 몇 줄 쓰기는 했는데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노력은 하고 있는데..... 편집장: 진정해요. 일시적인 슬럼프일 수도 있어요. 잠깐 그 섹션은 잊고, 나머지 섹션 먼저 시작해 봐요. 뭐가 남았죠? 기자: [Maya Shot]이요. 포토 에세이. 편집장: 좋아요. 우선은 여행 섹션에 대한 건 잊고, 그거 먼저 시작해 봐요. 이제 거의 다 왔잖아요. 하다가 정 안되면 빼도 되요. 내가 발행인님께 잘 얘기 할게요. 다른 좋은 섹션들도 많으니까. OK? 기자: (진심으로 감사하며) 네, 편집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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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Lon

ely,

but

Lov ely

Par is

여행과 가출은 돌아오느냐 돌아오지 않느냐의 차이. 일시적인 도망과도 일맥상통하는 여행,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지만 그래서 혼자여도 괜찮은 일주일 동안의 파리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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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Lon

SCHEDULE

ely,

but

Prologue

Lov ely

6/21(화)_출발

Par is

6/22(수)_피로 6/23(목)_차이 6/24(금)_다시 안녕 6/25(토)_혼자라서 행복해요? 행복해서 혼자에요? 6/26(일)_이 시간 속에 남는 것 6/27(월)_돌아서 다시 그 자리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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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언제부터 기다렸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제 와서 분명한 것은 올 연초 인사팀에서 연차 사용분을 포함한 ‘2011년 휴가 계획’을 내라고 했을 때 내가 6월말부터 10일에 걸친 장기휴가 계획을 제출했고,

L

on휴가는 그 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름 e 파리로 갈 것”이라고 주변에 광고를 하고 다녔으며, ly,

bu말에는 4월 말에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고, 5월 t 숙소를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Lo

ve되는 또한 지금 생각하면 참 체계적이었다라고 자체평가 ly 일련의 여행 준비를 통해, Pa

ris 나의 행적뿐이다. 어쨌거나 꽤 오래 전부터 이 여행은 계획되었고 결국은 실행되었다는 그것은 연차 계획서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비행기표 예매 내역과 숙소 계약서가 말해 주고 있다. 명백하다. 오히려 지금 와서 분명하지 않은 것은 내가 정확히 무엇을 보고, 느꼈느냐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 ‘여기가 바로 유럽입네’라고 앞다투어 말하듯 시야 가득 들어오던 고저택들, 햇살 따갑던 노천 카페들, 열이면 열 니콘과 캐논으로 나누어지는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과 함께 5일 밤과 6일 낮을 보냈지만 기억은 매우 모호하다. 내가 그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고 물 흐르듯 그 시간들을 흘려 보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일주일 가까이 한 도시에서 살았는데 모든 것이 이렇게 빨리 흐릿해진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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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화)_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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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ortie=Exit 2. 6/21, 일년에 하루, 파리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 참석을 위해 찾아온 뮤지션들 3. 리용역 앞 전경. 유럽에 와 있다는 사실은 주변 건물이 말해 준다. 4. 파리의 숙소 근처 Lamarck역. 늘 과일 파는 청년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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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미줄 같은 파리의 메트로. 외울 수가 없다. 2, 역앞 꽃집. 꽃과 허브가 만발해 있었다. 3.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있던 숙소. 얼마나 많은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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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를 땐 끔찍했던 그 골목들, 돌아보니 예쁘다. 2, 피카소, 모딜리아니도 찾았다 하여 유명한 라팽아질. 샹송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집에서 너무 가까워서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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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화)_출발

내 생애 첫 번째 유럽 여행은 비행기 티케팅과 동시에 ‘2시간 지연’을 선물했고 그때까지 그게 그렇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국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고, 내 비행기 연착의 직접적인 이유를 제공한 ‘비행기 정비사들의 파업’은 불쾌하기보다는 파리 여행의 시작을 여는 전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만석이라던 비행기에서 이상하게도 내 옆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세 좌석이 연달아 붙어 있던 자리에 중간 한 자리가 비는 행운이라니! 노트북, 카메라, 다이어리, 책 등 11시간을 버틸 오락거리들이 당장 그 자리에 채워졌다. 단, 그 옆에 앉은 남자 승객을 위해 나는 딱 1/2 정도의 크기에만 물건을 올려 놓았다. 당연히 그 가운데 자리는 우리 둘의 공동 소유였으니까. 그도 곧 자신의 소지품들을 옆 1/2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혼자신가 봐요?”라고 물었다. 으악. 그의 목소리는 목욕탕에라도 들어온 듯 깊은 울림이 있었지만 그의 외모가 내 영혼에까지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낯을 가리는 내게 그런 신변에 위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질문을 아무렇게나 던지는 내 취향이 아닌 남자라니. 애매하고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네.”라고 답을 준 것 만으로도 그는 내 기분을 짐작해야 했지만 곧이어 두 번째 질문을 던지는 실수를 했다. “놀러 가시나요?” “네.” “저는 출장인데, 출장을 가는 김에 관광도 같이 하려구요.” 이런. 그는 길고 긴 비행 시간을 나와의 대화로 풀어가려는 듯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특단의 조치로 나는 이번에 대답 없이 그냥 살짝 웃어주는 것으로 대화를 종료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조금 망설이던 남자 역시 나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내 상영 영화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떠난 이유는 혼자가 되고 싶어서였는데 난생처음 보는 이 남자가 갑자기 끼어든다면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엉망진창이 되리라. 나는 누구에게도 전혀 틈을 주지 않아 약간은 무례해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리용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공항에서 한번에 이어진 논스톱 여정 끝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그녀와의 약속 장소인 리용에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메이크업을 한 채로 올나잇을 해 본 여자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개기름이 흐르는 번들번들기름진 피부, 그 속에 이제 막 솟아나기 시작하는 화농성 여드름. 트러블로 꽉 찰 것 같은 그 불길한 느낌. 올나잇을 비행기에서 했다면? 얼굴 가득한 트러블의 느낌에 찢어질 것 같은 건조함이 더해진다. 그건 정말이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망칠 수 있을 만큼 우울함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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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그래서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건 그녀와 파리 시내에서 딱 마주쳤을 때, 당연히 느꼈으리라고 생각했던 눈물이 팍 터질 것 같은 설레는 반가움은 사실 없었다. 내가 앞서 올나잇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은 아마도 그런 설렘이 없었던 무덤덤한 그녀와의 재회에 대한 내 죄책감에서 비롯된 변명 같은 것이리라. 나는 너무나 피로했다. 이미 하룻밤을 비행기에서 긴장 속에 구겨져 보냈고, 이미 한국시간으로 밤 11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인 숙소는 리용에서도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곳에 있는데다가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지라 지하철에 내려서도 15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루이 13세 이후로는 교체된 적 없는 것 같은 고풍스럽지만 울퉁불퉁한 돌로 만들어진 보도블록을 1주일치의 짐이 가득 든 캐리어 가방을 밀며 덜덜거리면서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탈진 상태였다(여행에는 기초체력이 필수인 것을 이 나이에서야 깨달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꾸역꾸역 올라간 숙소는 사크레 쾨르 성당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먹는 것은 아무거나 먹어도 자는 곳만은 좋아야 한다는 나의 유일한 여행 철학에 따라, 에어컨이나 보일러도 시원찮은 데다가 더럽고 습하며 시내 중심가에서도 멀면서 비싸기 만한 악명 높은 유럽 호텔에서 묵는 것은 일찌감치 배제되었다. 도미토리 형 민박 역시 열악한 시설 탓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혈기 왕성한 대학생이면 몰라도 나이 서른에 다리 가득 베드버그(bed bug)에 물린 채 돌아다니는 것은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대뽀’도 어려야 예뻐 보이는 법. 숙소는 원룸 형태의 스튜디오가 아니라 방과 거실, 욕실에 주방과 아주 작은 발코니까지 딸린 어엿한 아파트였다. 1주일간 ‘파리지앵’이 된 기분으로 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방’이었기 때문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집주인(대행)의 온갖 잔소리를-주소 이 집의 물건들이 얼마나 비싼지...-20여분간 경청한 끝에, 우리는 드디어 그 집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TV를 켜 적막했던 아파트에 봉봉흑흑대는 꼬부랑 불어를 가득 채운 뒤, 거실에 연결된 발코니 창을 활짝 열었다. 몽마르뜨 언덕의 시원한 바람이 확 불어 들어왔다. 그래. 그게 바로 자유의 바람이지. 분기에 가까운 사전 작업 끝에 얻은 고귀하신 여름 휴가님이 나에게 보내 주시는 달콤 시원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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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 동안 묵었던 몽마르뜨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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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있는 사크레 쾨르 대 성당. 성당 앞으로 펼쳐진 전망 때문인지 성당 계단에는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2. 계단 앞쪽으로 펼쳐딘 잔디 밭에도 연인과 친구들끼리 피크닉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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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수)_피로

결국 그날 밤 에펠탑에 불 들어오는 광경을 꼭 보겠다며 반 수면 상태로 파리 시내까지 다시 나갔던 탓에, 결국 그 다음 날은 유정이도 나도 늦잠을 잤다. 단체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저렴함과 편리함을 물리치고 늘 자유여행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규칙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 매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15분 전철을 타고 8시 8분에 안국역에 도착해 8시 12분쯤 회사에 도착하며 8시 15분에는 노트북의 on 버튼을 누르는 나. 누군가는 ‘거기까지 가서!’라며 혀를 찰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규칙적인 나의 off 버튼을 눌러 놓고 싶을 뿐이었다. 루브르 미술관 탐방에서 결국 산책과 쇼핑의 날로 급히 변경된 두 번째 날의 일정은 11시가 넘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둘 중 누구도 땡볕 아래 미술관 관람을 위해 몇 시간씩 매표소 앞에서 줄을 서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오후쯤 들렀던 집 근처 마트에서 사온 소시지와 토마토, 프레시 모짜렐라 치즈를 한 접시씩 해치우고 나서야 우리는 본격적인 길을 떠났다. 아직 한 여름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는 에어컨이 멈추지 않을 만큼은 뜨거울 때인데 파리는 달랐다. 햇빛은 따가운데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에는 초가을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빵빵한 에어컨 때문에 겪을 추위를 생각해 가져간 가디건 두 개로 일주일을 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무겁게 끌고 올라온 캐리어 가방 안을 가득 채운 과감한 휴가용 의상들이 모두 쓸모 없어진 것에 대한 허탈함이란.

유정은 나를 퐁뇌프 다리로 인도했다. 영화 ‘퐁뇌프의 연인’을 본적도 없으면서 ‘퐁뇌프 다리’만은 알고 있던 나는 그저 아무 감흥 없이 다리를 휘휘 둘러보며 건너갔다. 다리 중간까지 갔을 때, 그녀는 내게 이제 역에서 너무 멀어지니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퐁뇌프 다리를 건너,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다리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녀에게 내 계획을 말하니 그러면 지하철 역에서 너무 멀어진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때, 첫 번째 피로가 몰려왔다. 관계에 대한, 타협과 대화, 의견 조율에 대한 피로였다. 내가 떠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내 집, 내 가족, 내 나라가 아니라 바로 저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깨달음도 같이 찾아왔다. 결국은 그 다리를 마저 건너, 내가 원했던 대로 반대편의 다리로 다시 건너 오기는 했지만 한번 찾아온 피로는 끈적하게 내 마음에 계속 묻어 있었다. 그래도 유정은 좌절하지 않고 반대 편 다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여긴 예술가의 다리라고 해. 예전에 정재형이 TV에 나와서 신민아랑, 친구들이랑 같이 앉아서 와인 마시고 하던 다리 있잖아. 거기가 여기야. 별로 유명하진 않았는데 그 방송 이후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는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예술가의 다리 양 옆에 붙은 철조망에 촘촘히 걸려 있는 자물쇠를 구경했다. 남산 타워에서처럼 많은 연인과 친구들이 그들의 사랑이 영원히 꽁꽁 잠겨 도망가지 않길 바라며 준비해온 자신들의 자물쇠를 다는 의식을 행했으리라. 우리는 천천히 그 자물쇠들을 둘러보며 거기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으려 지지배배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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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퐁뇌프 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퐁뇌프의 다리가 펼쳐진다 2. 흐린 하늘 아래 있던 퐁뇌프의 다리. 왠지 좀 스산하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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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에 가보고 싶어.” 유적지나 박물관보다는 파리지앵스러운 삶을 좀 더 느끼고 싶었던 나는 그녀에게 불쑥 이렇게 말했다. “마레에 있는 무스타슈라는 애견 백화점에 들러야해.” 마레에 있는 무스타슈.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보다는 수월할 것 같다는 판단아래,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한정적인 정보만을 제공했다. 더 이상 아는 것도 없었다. 애견인의 나라인 프랑스, 파리에 애견 전문 백화점이 생겼다는 짧은 해외 단신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유정은 난감해 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마레로 향했다. 그 옛날 늪지대여서 늪이라는 뜻의 마레라고 이름이 붙었다는 이 동네는 이제 예술가와 게이가 가득한 개성가득한 쇼핑거리가 되어 있었다. 가게마다 나 어때?라고 온 몸으로 색을 내 뿜고 있는 알록달록한 마카롱 하며, 자잘한 액세서리들에 우리는 소녀처럼 꺄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마주친 무슈타슈! 백화점이라는 말이, 해외 단신에 실리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작은 애견 샵이었다. 실소가 비실비실 흘러 나올 것 같았지만 결국 딸기무늬가 독특한 강아지용 목줄을 샀다. 물론, made in China였다. 무슈타슈 쇼핑을 마치자 나는 급속도로 피로한 상태가 되었다. 어쩌면 어제의 피로가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천천히 노틀담으로 걸어가며 주변의 고색창연하고 거대한 궁전과 저택들이 조금씩 내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렇게 손에 쥘 듯 가까이 유럽 안에 들어와 있었지만 피로한 몸은 내게서 그것들의 의미를 앗아갔다. 마음은 안타까웠지만, 육체는 당당했다. 가까스로 도착한 노틀담 성당 앞 동그란 표식을 발로 밟고 나서(이 표식을 밟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성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으로 겹겹이 둘러 쌓인 노틀담은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피곤에 젖은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성당은 그저 꿈속의 궁전처럼 위압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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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1. 1. 예술가의 가리위에 달려 있던 자물쇠들. 다들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3. 아침엔 비가 흩뿌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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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레지구로 옮기기 전 들른 식당에서의 식사. 스테이크가 어찌나 질기던지. 4. 드디어 찾았다! 애완동물 전문 백화점, 무스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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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1. 프랑스의 유명 디저트를 모티브로 만든 악세서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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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레지구와 노틀담 성당을 잇는 다리 위의 이름 모를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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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리 위를 지나던 이들 모두 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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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이다,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노틀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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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목)_차이 한번 찾아온 피로는 3일째 아침이 되어서도 쉽사리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루브르 미술관은 쉽게 건너뛸 수 없는 일정이었기에 여기 저리 울려대는 몸의 경고를 무시하고 가방을 들쳐 맸다. 오후에 가면 땡볕이 내리쬐는 루브르 궁 마당에서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남은 여행 일정도 피로에 싸여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10시반에서 11시 사이에 도착한 루브르 미술관 마당에는 어제와 같지는 않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뱀꼬리처럼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래도 줄이 줄어드는 속도를 보니 30분 안 쪽으로는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 궁 마당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 속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표소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다빈치 코드 이후로 아마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책에 묘사되었던 유리 피라미드의 장면을 연상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곧, 그 유명한 모나리자도 보게 되겠지. 이 끔찍하리만큼 많은 예술 작품들을 모두 둘러 보려면 며칠이나 걸린다지만(끔찍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렇게 많은 명작들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 흘렸을 피를 생각함 때문이었다), 당연히 예술 작품 감상이 방문 이유였다기 보다는 “그래도 프랑스에 와서 모나리자 얼굴 한번 보지 않고 갈 수 있겠느냐”라는 철저한 관광객 모드의 마음가짐 때문이었기 때문에 파리 관광 책자에 소개된 작품들 위주로 동선을 짰다. 꼭 보아야 할 것은 <모나리자>, <시녀들>……등 이었다. 워낙 모나리자에 대해서는 작다는 둥, 실제로는 너무 초라하다는 둥 기대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왠지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모나리자를 찾아 그 넓은 루브르 궁을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박물관 안에도 꽉 차 있었다. 조금이라도 유명해 보인다 싶은 그림 앞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박물관 벽 곳곳에 붙은 “사진 찍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는 있으나마나였고, 신기하게도 그들을 저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찍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카메라를 꺼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긴 복도와 방의 연결 부분에는 어디든 “모나리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우리의 동선은 그 표시를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좀 처럼 미로 같은 루부르는 내게 모나리자를 내어 놓지 않았다. 유정도 나도, 너무나 지쳐서 내 평생 다시 마주칠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예술적이고 값비싼 그림들을 마치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 대하듯 설렁설렁 흘낏흘낏 2. 보아 넘기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물론 지금은 그걸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른다) 그때였다. “모나리자를 꼭 봐야 해?”라고 그녀가 말 한 건. 뭐, 꼭 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나리자가 이 박물관에 쌓인 수 많은 예술작품 중 최고인 것도 아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모나리자!’라고 주장한 이유는 그녀가 루브르를 대표하는 어떤 아이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이런 결론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나리자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여인이지만 그것은 세상에게 그런 것이고 그녀에게는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15C(17C였던가) 프랑스 미술섹션에 더 가고 싶어했다. 그녀에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탈리아 화가가 아니라.

모나리자는 소문대로 작고, 어찌보면 초라했고, 모나리자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곳의 어떤 작품들보다 많았다. 대부분의 그림들이 유리에 덮혀 있지도 않았고 30cm이내의 코가 닿을만한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유리 액자에 갇혀 있었고 2m 정도 앞 쪽에 펜스가 쳐져 있었으며 양 옆에 건장한 남자 가드 두 명을 세워 두고 있었다. 겹겹이 쌓인 사람들을 헤치며 펜스 앞까지 다가가는 동안 유정은 “보고와”라는 말을 남기고 뒤쪽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나는 마음이 왠지 마음이 서늘했다. 그후, 15C(17C였던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 미술작품들도 보았다. 결국 우리는 뼛속까지 지쳐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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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그녀. 모나리자


was here 2. 어떻게 16C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 놀라운 주세페 아르킴볼도의 로돌프 2세. 3. 루브르 박물관 곳곳에 있던 모사화를 그리는 사람들 4. 이곳이 궁전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화려한 천장 4. 너무나 많은 예술 작품들. 너무 많아서 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2.

3.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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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1. 중고지만 명품도 있다

2. 요즘 많이 파는 스탬프

3. 흥정하고 있는 장사꾼과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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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방브 시장 구경을 마치자 곧 점심 무렵이 되었다. 혼자 노천카페에 앉아 분위기 잡고 바게트나 씹어볼까…생각을 하다가, 든든히 먹고 나온 아침 덕에 그렇게 배가 부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난 혼자임을 좋아했다. 공동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카타콤이 600 만구가 넘는 시체들을 맡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때는 레지스탕스의 아지트로도 쓰였다고 하는데, 역사 유적지에 큰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파리시내 한 가운데에 지하동굴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 600만구의 시체들이 쌓여있다는 사실이 뭔가 섬뜩하면서도 흡입력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늘어 놓은 백골들을 관광지로 선보인 파리지앵들의 기묘한 상상력과 감성도 신기했다. 한 시쯤 도착한 카타콤 앞에는 이미 카타콤 주위를 뺑 둘러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삼삼오오 가족과 친구, 연인들의 줄을 따라 난 그 맨 끝에 홀로 섰다. 한 낮의 땡볕, 금방 줄어들지 않는 행렬 곧 닥칠 자발적 공포 앞에 긴장과 피로가 따라 붙었다. 한 시간여를 기다려 표를 사고, 끝도 없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어두운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걸어 내려 갔다. 처음에는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 걸까, 하는 짜증과 축축한 바닥에 불쾌감이 솟았다가 컴컴한 동굴이 나타나자 긴장감이 덮쳐왔다. 지상에서 나와 함께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어느 새 사라지고 없었다. 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또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 대체 순식간에 어디로들 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앞 뒤에서 들려오는 즐거운 대화 소리(알아들을 순 없지만)와 서로가 서로를 놀래키고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이곳에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잇게 해줬다. 긴 지하 동굴은 최소한의 불빛만 제공했다. 주황색 전구는 심장 박동을 더욱 빨라지게 만들었고,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은 불쾌했다. 그리고 한 참을 걸어 나타난 백골의 산. 처음엔 이게 정말 해골인가, 의심스러웠다. 해골들은 차곡차곡 높이 쌓여 벽을 이루고 있었고 그 벽은 동굴 안을 끝없이 잇고 있었다. 해골들의 양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처음엔 충격이었고, 한 500m쯤 가다 보니 이건 코미디였다. 대체 이들은 누구이길래 죽어서도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진열되고 만져지고 백골인채로 사진까지 찍혀야 하는 걸까. 우리는 참 잔인 했다. 여기 저기서 “oh my God”하는 탄식이 들려왔다. 그게, 좋아서인지, 혐오스러워서인지, 불쌍해서인지, 신기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oh my God”이었다. 그리고 그 해골 길은 지겨울 정도로 길었다. 그렇게, 해골을 마치 길가의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보듯 지나칠 때쯤에야 출구가 나왔다. 내려올 때만큼이나 긴 계단을 기진맥진 올라갔을 때, 눈부신 태양이 저승에서 돌아오면 이런 기분일까…할 정도로 눈으로 바로 쏟아졌다. 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다시 빛을 받아들이자 마자 눈에 띈 카타콤 출구 앞 해골 테마샵이 아이러니 하게 다가 왔다. 카타콤을 나오자 거의 3시가 다 되어 있었다. 배도 고팠고, 화장실도 가고 싶었다.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파리 여행 내내 불편한 점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이 사람들은 화장실도 안 가는지, 지하철 역 안에서도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흔한 패스트푸드 점이나 스타벅스도 없었고. 무엇보다, 눕고 싶어졌다. 600만구의 백골들이 품어낸 그 엄청난 아우라에 진이 다 빨렸다고나 할까. 인상 깊은 체험이긴 했지만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체험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 놓고, 잠시 쉬고 지갑만 들고 다시 집밖으로 나왔다. 점심 겸 저녁을 먹으려면 장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혼자 먹을 것을 장본다는 것은 나에겐 늘 설렘이다. 누군가의 입맛을 고려할 필요도 없고, 빨리 해다 받쳐야 한다는 초조함도 없다. 그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먹고 싶은 만큼만, 느긋하게 만들어 내면 된다. 그리고 역시 느긋하게 먹으면 된다. 예의도 격식도 없이, 그저 내가 편한 대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이 집의 주인이 된 듯한 여유로운 몸놀림으로 5시의 이른 저녁과 매우 늦은 점심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글 거리는 소시지는 오븐 속에서 기름을 쪽 빼며 구워지고, 발사믹 소스와 올리브 오일도 없이 신선함만으로 무장한 토마토와 프레시 모짜렐라 카프리제도 금새 만들어졌다. 나는 포크를 쓰기도 하고, 손을 쓰기도 하며 성실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배가 채워지니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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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대하면서도 초라한 무연고 유골들의 집 2. 나가는 출구, 관리인의 책상위에 있던 백골 3. 출구를 마주보고 있던 해골 테마샵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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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일)_이 시간 속에 남는 것 어느 새, 나에게 허락된 일주일의 휴가가 끝을 보이고 있었다(참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휴가는 다음주 화요일까지였지만 내일 아침이면 나는 샤를 드골 공항에 있을 테고, 서울에 도착하면 월요일 아침, 그리고 서둘러 여독을 풀고 나면 출근이기 때문에 결국 휴가는 오늘까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았다. 무엇을 하면 마지막 파리에서의 일정을 가장 뿌듯하고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침대에 누워 고민했다. 대체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면 곧 끝날 자유에 대한 아쉬움이 좀 덜할 것인가. 결국은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며 일어났다. 처음에는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 당겨 다리 근육을 풀어주고, 기지개를 으드드드~ 소리를 내며 켠 뒤 몸을 일으켜 고개를 큰 원을 그리며 돌리며 목 근육을 풀어 주었다. 집이었다면, 출근을 앞둔 아침이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여유였고, 주말이라면 늦잠을 자느라 정신 없었을 시간이었다. 침대 위에서 고양이 자세라고 불리는 요가 자세까지 취하며 아주 천천히 몸의 근육들을 하나 하나 풀어 준 뒤에야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를 위한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오히려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외식을 적게 했다. 처음에는 유정이의 여행 경비 절감을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내 식사를 준비하는 그 준비 과정이 좋아서 밖에서 사먹기 보다 슈퍼에 들러 장을 보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메뉴는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토마토 카프리제와 샐러드, 그리고 소시지 구이, 그리고 약간의 과일이었다. 그날의 아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낯설고도 익숙한 아침을 해치우고 결국 내가 택한 마지막 날의 첫번째 목적지는 오르셰 미술관이었다. 철도역사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미술관. 역사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오르셰 미술관은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출구에는 공항 검색대 만큼이나 깐깐한 가방검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 이해는 한다만, 이해가 안간다, 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더구나 루브르보다 깐깐해서 기차역이었을 때부터 있었을 큰 시계를 찍다가 촬영이 금지라며 저지 당했다. 미술품을 찍는 것도 아닌데 너무 까칠한 가드들 태도에 기분이 상해 보고 싶은 그림만 슬쩍 보고 결국 나와 버렸다. 그리고 바로 전철을 올라타고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한국인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노래.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나나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라고 끝 부분은 늘 얼버무리게 되는 익숙한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대체 왜 그 뒷 가사는 늘 생각이 안 나는 걸까). 우리나라의 독립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개선문은 상상외로 크고 웅장했다. 에펠탑 보다도 나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커다란 개선문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는지 콩알만한 사람 머리가 오글오글 보였고, 개선문 주변은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 우글우글했다. 기념 사진을 찍을만한 스팟에는 한 사람이 사진을 찍고 가기가 무섭게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졌다. 한 틈을 노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파리 여행을 통틀어 가장 관광지다운 곳이었다. 빨간 이층 버스가 쉴새 없이 지나가고, 뻥 뚫린 이층 버스의 2층에서는 역시 쉴새 없이 카메라 셔터가 찰칵였고, 길거리의 사람들 역시 끊임없이 사진을 찍거나 개선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쉴새 없이 뭐라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딱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개선문에서부터 샹젤리제 거리를 거슬러 콩코드 광장까지 걷기도 했다(사실 이 ‘그래서’가 위의 문장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쨌던 그래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서울도 그렇지만, 파리도 도로 여기저기 공사 중인 곳이 많았다. 그래도 머리 위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가로수 길을 걷는 것은 나름의 맛이 있었다. 가로수 변 잔디가 조금이라도 깔린 곳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는 파리지앵들의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흘낏거리는 그런 맛. 그러다가 문득, 내가 참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음이란 것은 늘 전과 후의 상황을 180도 달라지게 만드는 그런 것이 있다. 배고픔을 ‘깨닫자’, 무엇인가를 먹지 않으면 안될 그런 상황이 되었다. 온갖 레스토랑이 즐비한 샹젤리제 거리는 이제 끝이나 있었고, 주변에는 나처럼 갑자기 배고픔을 깨달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작은 키오스크들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리듯 그 중 한 키오스크로 다가갔다. 그 작은 키오스크 안에는 라틴계로 보이는 종업원들이 열심히 크레페며 샌드위치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주인인듯한 브루스 윌리스를 닮은 대머리 남자는 그 중 유일하게 영어를 할 수 있는지 음식을 만들지는 않고 다가오는 관광객들의 주문을 대신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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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here “ 마드모아젤, 뭐 줄까?” 브루스 윌리스만큼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남자가 먼저 물어 왔다. 나는 영어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 수많은 크레페 중 뭘 시켜야 실패하지 않을까 고민에 빠졌다. 이건 뭐고, 이건 뭐죠? 나는 크레페(Crêpe)라고 적힌 메뉴판 아래의 모든 글자들을 가리키며 하나 하나 어떤 맛인지 확인했다. 아저씨는 전혀 귀찮아 하는 기색 없이 친절히 하나 하나 설명해 주었다. 나는 누텔라 & 바나나 크레페를 선택했다. 아저씨는 불어로 무어라고 라틴계 종업원들에게 소리쳤고 그들은 순식간에 크레페 한 조각을 구워내 내 손에 쥐어줬다. 냅킨 한장과 함께. 난 그 크레페를 들고 키오스크 바로 옆 벤치에 앉아 (다른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입안이 단맛에 절여질 정도로 두텁게 발린 누텔라가 따뜻한 크레페에 녹아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 장의 냅킨으로는 입 옆에 묻은 자국을 닦기에도 벅찼고, 이제 곧 줄줄 흘러내리는 초콜렛 시럽이 내 치맛자락 위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브루스 윌리스가 몇 장의 냅킨을 내 손에 쥐어 준 것은. 흐르는 초콜렛 시럽에 정신 못 차리고 패닉 상태에 빠지려던 내 손에 냅킨을 쥐어주며 이거 써. 라고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브루스 윌리스 미소)를 띄우며 말하고는 다시 5m 앞,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그의 키오스크로 뚜벅뚜벅 걸어가 버렸다. 언제 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나는 그의 별 것 아닌 친절에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준 몇 장의 냅킨이 아니라 당황스러워 하던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이 참 고마웠다. 무척 시시해 보이지만 파리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 중 한 순간이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번에는 저녁을 하지 않고 짐만 내려 놓고는 밖으로 나섰다. 마지막 파리에서의 저녁을 먹고 싶었던 곳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묶었던 숙소로 올라오는 골목에는 이제 파리 시내에 단 하나 남았다는 포도밭이 있고, 그 포도밭이 끝나는 언덕 삼 거리 중 오른쪽 코너에 핑크 색의 예쁜 주택이 하나 있다. 1층 현관에는 “La Maison Rose”라고 써 있고 그 앞에는 역시 핑크색의 테이블이 세팅 되어 있다. 원래는 몽마르뜨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와 그의 어머니 쉬잔 발라동이 살았던 집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소박한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유정과 함께 꼭 가려고 했는데, 유정이 그냥 떠나는 바람에 혼자 나온 것이었다.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바깥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오믈렛과 아이리쉬 커피를 시켰다. 음식 맛은 그렇게 뛰어나다기 보다는 평범한 파리의 가정식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그곳이 유명한 것은 위트릴로와 백만불(아니 유로!)짜리 몽마르뜨 풍경 때문일 것이다.

내가 먹었던 한국 카페의 아이리쉬 커피는 술의 비율이 그렇게 세지 않아 그 맛을 기대하며 시켰는데 이곳의 아이리쉬 커피는 그냥 술이었다. 몇 모금만으로도 식도가 짜르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잊고 있었던 극도의 피로가 술기운에 다시 올라 오고 있었다.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도 함께 몰려왔다. 혼자 하는 여행의 좋은 점은 단연코 그 누구의 감정도 신경쓸 필요 없는 편리함이지만, 내 자신의 감정만큼은 컨트롤하는 것이 어려웠다. 누구의 신경도 쓸 필요 없이 그때 그때 순간적인 감정에 충실히 기뻤다, 우울했다, 행복했다, 슬펴졌다. 혼자 이 감정들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나는 황급히 아파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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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영광을 보여 주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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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키오스크 2. 바싹 맛있게 구워진 크레페 3. 초콜렛과 바나나가 듬뿍!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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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집 같은 라 메종 로즈(La Maison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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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 메종 로즈의 트레이드 마크, 핑크 컬러

3. 허브 샐러드와 오믈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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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2. 에피타이저 양파 스프

4. 진한 아이리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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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월)_돌아서 다시 그 자리

돌아가는 비행기는 낮 한시 출발이었다. 주인에게 집 열쇠를 돌려주고, 어디 망가뜨린 곳이 없는지 검사를 받고, 두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자면 늦잠을 잘 만한 시간 여유가 있는 스케줄은 아니었다. 그래도 좀 더 여유롭게 준비하고 싶어서 출근할 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파리의 여름은 생각 보다 싸늘한데, 아침 저녁으로는 초봄이나 초가을 날씨 같아서 약간 스산한 기운이 돌기도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덥거나 하루 종일 추우면 무언가 시작하거나 끝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한 여름이나 한 겨울에는 아침도 밤 같고, 밤도 아침 같아 찌뿌둥하다. 그래서 난 하루에도 여러 계절을 보여주는 파리의 여름이 좋았다. 특히 이렇게 이른 아침 시간, 발코니 창을 활짝 열면 들어오는 싸한 이 바람이. 창을 열자마자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는 약간 미지근하고도 텁텁한 기운이 남아 있는 방안 공기와 재빠르게 치환된다. 그러면 ‘아, 오늘이 시작됐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에 일어나 침대 맡에 앉아 밤의 남은 조각들이 스르르 물러나는 것을 잠시 바라본 뒤 환기를 했다. 그 어떤 여행이 그렇듯, 곧 다가올 마지막 순간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찾아왔다. 서울에서(사무실에서)의 일주일과, 파리에서의 일주일은 시간의 밀도 자체가 달랐다. 서울의 시간이 납과 같은 질량을 가졌다면, 파리에서의 시간은 깃털 같이 가벼워서 후 -하는 한 번의 숨에도 후다닥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조금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작년 겨울 싱가폴로 처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그때는 막연히 아쉽고 돌아가고 싶지않은 기분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너무나 실감나게, 이곳은 내가 속한 곳이 아니고 잠시 머무는 곳이니 진짜 휴식을 위해서는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파티는 끝났고, 충분히 즐거웠지만, 파티를 즐겼던만큼 내 몸과 마음도 지쳤기 때문에, 오히려 떠나왔던 지긋지긋한 일상이 나를 다시 쉬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좀 더 잘 설명하고 싶지만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모두 어떤 감정인지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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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떠오르는 몽마르뜨의 해를 가만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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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벌써 파리에 다녀온 지 2개월이 훌쩍 넘었다. 파리에서의 시간은 이제 슬슬 기억에서 추억으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이제 다시 ‘내가 미쳤었나? 왜 이 지긋지긋한 생활로 돌아오고 싶단 생각을 했지?’라는 감정이 조금씩 머리를 들며 자라나고, 올 겨울에는 또 어디로 떠나볼까, 하는 공상에 잠기게 된다. 여행은, 그리고 삶은 이런 감정들의 반복이다.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가 된 듯, 좁은 어항 속을 평생 탐험하는 3초 기억력의 금붕어가 된 듯, 늘 똑같은 것을 느끼면서도 늘 새로워 하는 내 모습에 신물이 나다가도 그러니 사는 거지...라고 자조하게 되는. 그런 것. 그러니까 다시 그 자리라고 너무 우울해 할 필요 없을 것이다. 떠날 기회는 평생 얼마든지 또 찾아올 테니까. 혼자도 좋고, 다음엔 둘이어도 좋겠다.

이번엔 또 어디로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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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도 내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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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 그리고 중간에 점심시간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세 번씩 안국역에 간다. 대부분의 경우 ‘정류장’이나 ‘역’은 그 장소 자체가 목적지라기 보다는 어떤 곳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나 거점이 되기 때문에 기억에 크게 남는 법이 없다. 내가 ‘안국역에 간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회사에 가거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들른 것’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한번 세어 볼까? 나는 평일에만 회시에 가니까 한 달에 20일 출근과 퇴근을 한다. 공휴일과 버스로 퇴근을 하는 날을 감안하여 한 달에 15일 정도만 안국역을 통해 출, 퇴근을 한다고 가정하면, 1일 3회, 한 달에 45회, 1년이 12개월이니까 540번, 벌써 이 회사에 다닌 것이 4년째니까 총 2,160번 이상 안국역의 계단과 지하도를 밟고 다닌 셈이다. 안국역은 전통적으로는 인사동, 창덕궁과 인접해 있고, 가까이는 DSLR의 열풍과 신선한 산책로에 대한 니즈 때문에 완전히 확 떠버린 삼청동 덕에, 평일 뿐 아니라 주말도 북적 북적이는 곳이다.

갑자기 중학교 때 처음 가보았던 인사동이 기억난다. 엄마와 함께 통인가게를 구경하던 기억, 전 날 내린 비로 골목길이 온통 진흙투성이던 기억, 처음 가본 인사동의 어떤 전시회장 앞에서 무료인지 아닌지 몰라 망설이던 기억.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해버린 지금의 인사동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지만. 물론 그에 못지않게 삼청동의 변천사는 더 빠르고, 더 화려했다. 지금 삼청동 골목 골목 완전히 자리를 잡은 던킨 도넛이나 네스카페를 보고 있노라면 ‘눈 깜짝할 사이’가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매일 낮 12시 7분 나는 안국역 4번 출구로 들어가 안국역 1번출구로 나온다. 그리고 낮 12시 52분 안국역 1번 출구로 들어가 안국역 4번 출구로 나온다. 길다란 안국역 지하도를 대각선으로 왕복하는 것이다. 벌써 4년이 넘었는데, 인사동과 삼청동이 그 난리 부르스를 추며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안국역은 그에 비해 비교적 조용조용한 변화를 겪었다. 가장 기분이 묘했던 것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 분명한 안국문고가 문을 닫았던 때였고, 그 이후로 특별히 안국역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국역 지하 상가에 작은 옷 가게가 들어왔고, 곧 가게자리는 텅 비어버렸다. 그 옷 가게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질감’. 동대문에서 떼왔을 것이 분명한 개성 없는 티셔츠와 짧고 작은 옷들은 안국역에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그래서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가게가 들어설 때부터 묘한 이질감이 들었고,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가게가 사라졌을 때 마음 한구석의 불편감이 사라졌다.

MAYA SHOT

우리 회사는 안국역 근처에 있다.


MAYA SHOT

그리고 나서 주변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또 한번 놀랐다. “한지야”, “클화실”, “반김”, “모영필방”, “혜민공방”…..언제부터 여기 이렇게 많은 공방들이 모여 있었던 걸까? 왜 나는 4년 동안 한번도 그런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그 후부터 점심시간마다 안국역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공방들을 눈 여겨 보기 시작했다. 두 명, 세 명, 많을 때는 대여섯명 정도가 서너평 남짓 되는 공방에 모여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풀로 무언가를 붙이기도 하고, 가위로 자르기도 하고, 꿰매기도 한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는 모락모락 창의적인 에너지들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그랬구나. 내가 몰랐을 뿐, 늘 그곳에 있었구나. 그 많은 핸드폰 가게와, 편의점과, 옷 가게들이 오고 갈 때 저 공방들은 저 자릴 지키고 있었군.

몇 곳을 골라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the Maya]의 공식적인 인터뷰였다.

공통질문 1. 어떤 것들을 만드는 곳? 2. 언제 만들어진 곳? 3. 어떤 사람들이 오는 곳? 4. 수업 내용은? 수강료는? 5. 주변 공방들과의 관계는? 6. 기타 특별한 에피소드는?


후재 전각 연구실 (T: 720-7188) *간판은 모영필방으로 달려있음

1. 한지 공예를 하는 곳이다. 한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만드는데, 작게는 접시부터 크게는 장까지, 한지로 입체적인 작품들을 만든다. 2. 2009년경 문을 열었다. 3. 작품을 만드는 공방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게 수업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들도 오고, 재료도 팔고 완제품도 판다. 4. 월 7만원. 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부터 시작하여 처음에는 접시처럼 작은 오브제들을 만든다. 처음부터 큰 서랍장 같은 것들을 만들고 싶어서 욕심을 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오히려 너무 거창한 것부터 시작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Q. 만들기 어려워서인가?) 아니다. 초보자가 너무 어려운 것부터 만들면 다 만들고 났을 때 예쁘지 않아서 실망한다. (Q. 재료비가 비싼가?) 접시 하나를 만드는데 6~7천원 정도의 재료비가 든다. (Q. 장 같은 건 종이로만 만들면 약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한지만을 겹쳐서 만들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들기도 어려웠는데 요즘에는 두꺼운 종이(하드보드지 같은)로 골격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2~3겹 정도 발라서 만든다. 종이라고 해서 약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굉장히 튼튼하고 생각보다 무겁다 5. 누가 뭘 하는지 정도는 안다. 6. ( Q.외국인이 배우고 있는 걸 지나가다가 본적이 있다. 외국인들도 잘 오나?) 외국인

여행객들중에 2~3달 정도 머무는 장기 여행객들이 있다. 그들은 이미 한국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해오고, 처음부터 ‘상을 만들고 싶다’거나,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생각해 오고 그림도 가져 와서 ‘이런걸 만들고 싶다’라고 한다. 그러면 2~3개월 동안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 간다. (Q.와! 정말 굉장히 뜻 깊은 기념품이겠다) 그렇다. (Q. 수업은 영어로 하나?) 아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지야

행복한 바느질

후재전각연구실

행복한 바느질 (T: 070-8886-6928) 1. 규방 공예를 하는 곳이다. (Q. 규방 공예가 어떤 것인가? 수를 놓는 것인가?) 수를 놓는 것도 있고, 보자기, 버선, 행주 등 주부들이 사용하는 것들을 핸드 메이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2. 2010년 3. 일반인들도 있고, 만든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4. 월 15만원(재료비 제외. 초급만 재료비 포함). 생활자수는 수를 이용해 쿠션, 브롯치, 앞치마, 장바구니 등을 만들고 규방공예는 바느질법을 기초로 배우고 보자기, 방석 등을 만든다. 금요일에는 one day class가 있어서 하루 동안 수업을 하고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5. 안국역은 공방 특성화 역이다. (Q. 그래서 그런지 공방들이 많다. 그런 게 있는지 몰랐다) 처음 안국역이 생겼을 때부터 공방들이 있었다.

지금은 삼청동이 유명하지만 그 전에는 공방들이 있는 곳으로 안국역이 유명했다. 얼마전부터 공방특성화역으로 지정되어 이제 다른 곳들처럼 ‘핸드폰 대리점’ 같은 것들은 생길 수 없다. (Q. 얼마전에 생긴 옷가게가 문을 닫았더라) 다른 게 생겨도 잘 되지 않는다. 6. M사에 다닌다고 했던가..? M사 다니는 분이 수강하고 있다. 12월에 출산하고 아기 배냇저고리를 만든다고 했는데…누구더라….유 00씨! (Q. 우리팀이다!) ㅎㅎㅎ 내 작품은 마니아들이 있어서 늘 구매하는 소비자도 있고 우리 카페도 있으니 들러봐라 (http://cafe.naver.com/102house)

1. 전각을 하는 곳이다. (Q. 전각이 뭔가?) 전각은……………….(뭐라고 할지 매우 고민하다가) 도장이다. (Q. 도장? 도장은 주로 이름을 새기는 건데 여기는 그림도 있고 그냥 이름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옛날에 문인들이나 선비들이 돌이나 나무에 이름이나 좋아하는 문구를 새겨 넣었던 것이 전각이다. (Q.그럼 시 같은 것들도 새겨 넣을 수 있나?) 그렇게 긴 것은 안되고 4~5자 정도가 적당하다. 2. 7~8년 정도 됐다. 2004년~5년 3. 수강가능하다. 월 15만원(재료비 별도)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일반인들도 배울 수 있지만 전각의 기본은 아무래도 글자를 쓰는 것이다 보니 서예를 하는 분들이 많이 한다. (Q. 뭐부터 배우나?) 서예랑 같다. 줄 긋고 목판본을 새기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5. 친하진 않고 그냥 밥이나 가끔 먹는다. 6. (Q. 명함이 다른 공방과 비슷한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이거랑 비슷한 명함을 봤는데?) 내가 파준 도장을 로고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행복한 바느질도 내가 만들어 줬다. (Q. 밖에서 봤는데, 영화사 도장도 있더라.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인가?) ‘크로스필름’이라는 곳에서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Q. 영화사 로고 같아 보이던데, 이렇게 만들어달라,라고 로고를 가져오면 그대로 파주나?) 아니다. 어떤 문구를 넣을지, 그리고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전체적인 컨셉을 말하면 파준다. 크로스 필름에서는 아이가 뛰어 노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상모를 돌리는 아이를 넣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는데 영어로 상모를 크로스라고 한다. 그것에서 착안하여 영화사 이름인 크로스와 연계하여 상모를 돌리는 아이를 메인으로 제작했다. (Q. 얼마나 하는지 물어봐도 되나?) 일반적인 도장 사이즈의 간단한 작품은 10만원대부터 시작하여 재료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서 무한대까지 간다. ㅎㅎ (Q. 크로스 필름의 도장은?) 300 만원 정도 했다. (Q. 간판이 세로 쓰기로 모영필방이라고 되어 있는데 난 처음에 가로로 읽어서 필모영방이라고 읽었다. 뭔가 했다) 간판을 바꿔야 하는데 귀찮아서 못 바꿨다. 이제는 필방이라기 보다 전각 연구실이라고 하는 게 맞다.

Maya Shot

한지야 (T: 070-8815-4041)


MAYA SHOT

한지야

후재전각연구실


행복한 바느질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그 작고 길다란 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고 또 지상으로 올라갔을까? 인터뷰를 하기 전, 그곳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의 나의 모습을 한 무심하고 많은 이들이 그곳을 지나쳐 가는 것을 본다. 그곳에 그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곳. 그곳의 사람들은 그들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 속에 ‘공방’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더 작은 세계를 품고 있었고, 생각보다 서로 친하지 않았다. (웃음) 공방들을 슬쩍 들여다 보면서 이 세상은 하나의 큰 세계이면서 끊임없이 쪼개지는 작은 세계들의 모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이런 작은 세계들이 얼마나 많이 스스로의 삶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세계도 그 누군가에게는 존재하는지도 모를 그런 어떤 세계겠지. 그런데 참 신기하다. 하나의 큰 세계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세계는 계속해서 쪼개지고, 또 다시 뭉쳐진다. 시간이 멈춘듯한 안국역 지하 공방들에서 어이없게도 나는 살아있는 세계의 유기성을 느꼈다.

참고 사이트 서울메트로 안국역 카페 http://cafe.daum.net/anguk3281

2011.5

전통 한지 공예가 협회 http://www.hanjiart.or.kr 행복한 바느질 카페 http://cafe.naver.com/102house

MAYA SHOT

그곳은 작은 세계였다.


쫑!

Party

일시: 2011년 9월. 13일, 오전 3시

발행인: (너무나 기뻐하며)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모든 Maya 여러분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편집장: (환하게 웃으며) 수고하셨어요. 주말마다 딴 짓 안하고 5개월 동안 잡지 만드는 것만 붙들고 있었더니 이렇게 끝이 오네요. 이제 막바지 작업만 남겨 놓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기자: (눈물까지 글썽인다) 정말 너무 좋아요. 모두들 놀고 싶은 거, 자고 싶은 거 참고 작업한 게 이렇게 결과물로 나오니까 꿈 같아요. 제가 뭔가 끝까지 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요. 디자이너: 저도요. 머리 속에는 온갖 세련된 잡지 편집 디자인이 가득한데, 그걸 비주얼라이징 할 수 없는 제 능력 부족에 좌절도 많이 했었고, 결과물이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설픈 능력이나마 이렇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감사합니다. Maya기자님이 그 동안 멋있는 시안 많이 보여주셨는데 그걸 다 살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크네요. 기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처음에 만들어 주신 명함이랑, 로고 디자인이랑 다 너무 유용하게 잘 쓰고 있어요. 홈페이지 대문도 만들어 주시고. 디자이너가 한 명 뿐이라 디자인이란 디자인은 다 맡겼는데, 저도 죄송하면서도 감사합니다. 하다보면 늘겠죠. 이번이 처음이니까. 대신, 우리 학원 한 달만 더 다녀요! 이번엔 인디자인으로! (일동 웃음) 포토그래퍼: 아~ 저도 무지 기쁩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업으로 그럴듯한 삼각대 마련한 것! 열심히 찍을 게요. 번들렌즈가 대포 렌즈로 바뀌는 그날까지! 발행인: 이렇게 끝나니까 힘들었던 시간들이 다 꿈 같네요. 다음 호가 나올 수 있을지, 발행인인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 동안 애써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 순간 또한 기나가겠죠? (웃음) 편집장: 발행인님! [the Maya], 계속 되었으면 합니다. 전 다음 호 테마도 잡아 놓았는 걸요. (일동 궁금한 얼굴로 편집장을 바라 본다) 편집장: ‘화장’이에요, ‘화장’. Make-up.

일종: 화자~앙? -To be Continued-


[the Maya]_1st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