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더욱 자욱하게 내리고 있었다. 갈대숲이며 한강변의 수양 버들에도 눈꽃이 하얗게 피었다. “나리를 따라 죽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절개를 지킬 것입니다.” 박씨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농이라고 하지 않았소? 우리 눈 속으로 나갑시다. 우리 함께 눈 위를 뛰어봅시다.” “누가 보면 어찌합니까?” “누가 보면 어떻소? 젊은 남편과 부인이 눈 속에서 뛰어노는데….” 월산대군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박씨의 손을 잡고 눈밭으로 뛰 어나갔다. 박씨도 깔깔대면서 즐거워했다. 월산대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박씨는 월산대군을 따라 죽지는 않았으나 종실 집안의 부인으로 법도를 잘 지키면서 살았 다. 성종이 죽고 연산군이 새 임금이 되었다. 그는 조선시대에 가장 잔인했던 폭군으로 음란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연산군 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느 날 연산군은 월산대군 의 부인 박씨를 대궐로 불러들여 강제로 정을 통했다. 박씨는 그 일 로 임신을 하게 되자 수치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했다는 이 야기다. 월산대군은 눈 덮인 양화벌의 겨울 경치를 좋아했다. 양화는 한 강 하류 양화대교 일대를 일컫는 것으로 봄 경치도 아름답지만 겨 울에 눈이 하얗게 내렸을 때 눈을 밟으면서 걷는 경치가 일품이다. 그래서 강희맹이나 서거정 등이 양화진의 겨울 풍경을 <한도십영> 으로 꼽으면서 시로 읊었다.
2부 두 개의 강이 하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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