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13 아디다스 아웃도어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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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것은 당시 열두 살이 던 그가 “내가 구이 도를 처음 만난 다. 코스 에 참가 했을 때였 습니 나의 루돌 프쉬 테 클라 이밍 방식 을 알고 싶어 했죠 . 구이 도는 후버 형제 의 훈련 클라 이밍 묶어 주는 유대 감은 단지 지금 그와 우리 를 강하 게 은 아닙니다. 파트 너십 에서 비롯 된 것만 것이 기도 합니 다. 우리 의 우정 에서 비롯 된 이머 중 하나 입니 다.” 구이 도는 티롤 최고 의 클라

텐트 안에서의 아침 식사? 안타깝게도 나눠줄 게 없군... 금발미녀가 온다 해도 별 도리가 없어.

모두가 긴장된 모습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새벽 4시에 우리는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곳의 모든 것이 우리가 기존에 알던

선 테라스로 돌아가 허기를 달래고 차를 마신 뒤, 우리는 곧장 침낭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용감한 시도였다. 어느 누구도

곳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쉽톤 트레킹 에이전시의 이쿠발이 이미 마중을 나와 있었다. 공항에서 우리는 마치 막 착륙한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가려고 한 적은 없었다. 상황이 열악한 정도이기만 했어도 –말도 못하게 열악한

우리 모두의 목에 꽃다발이 걸리고 곧 호텔로 안내되었다. 아주 깨끗한 고급 호텔이었다. 다음날 제이콥과 플로까지 도착하고, 이제 우리의 거대한 모험의 첫 발이 드디어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해냈으리라는 걸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해낸 일에 만족스러워했다.

시작되었다. 우리는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카라코룸 고속도로를 3일 동안 달려 갔다. 이 도로에는 사실 다른 이름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비슷한 시간, 에차이와 시몬은 리틀 트랑고에 성공적으로 올랐고 그 직후 스탠다드 루트를 따라 그레이트 트랑고에 올랐다.

가이드인 샤쿠르조차도, “모든 테러리스트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보다 이 길이 훨씬 더 위험해요!” 라고 말했다. 그가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 플로와 제이콥은 슬로바키아 출신의 마르틴과 함께 베이스캠프 인근 암벽을 최초로 등정한 영웅이 되었다.

도로에 파인 구멍에서 전해지는 충격이 온몸을 관통하고, 뱃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끼면서, 악몽 같은 지그재그 도로를 달려 나갔다. 문자 그대로 위장병이 생길 것 같다. 막스와 내가 베이스캠프에 돌아왔을 때 날씨가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무척이나 고약한 날씨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틀 뒤 우리는 마침내 베이스캠프 전에 만나는 마지막 마을인 아스콜에 도착했다. 이 조그만 마을에서 베이스캠프까지는 아직 3일을 더 가야 한다. 그 지프 여행은

무려 12일 동안이나. 첫 반나절은 비가 조금 오는 것 빼고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음 이틀 동안은

누구도 쉽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마을은 기대 이상이었다.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친절했고, 개성이 넘쳤다. 주민들은 우리에게 차와 비스킷을 대접했고, 200년 전의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끔찍한 날씨가 이어졌다.

오스트리아식 외양간인 줄 알고 쉽게 지나쳤을 만한, 그들만의 박물관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밤을 지새울 곳을 마련했고, 거기서 3일간의 여정에서 겪게 될 자연 그대로의 황량한 풍경을 그려 볼 수 있었다.

크래시 패드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정신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크래시 패드 덕분에 베이스 캠프 바로 인근의 짧은 암벽을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스와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긴 여정의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 우리는 마침내 갈망해 마지 않던 대상을 발견했다. 그레이트 트랑고(Great Trango)와 네임리스 타워(Nameless Tower)가 우리

멀지 않은 시비어런스 릿지(Severance Ridge)에서 믿기지 않는 클래식 초등을 해냈다.

눈 앞에 높이 치솟아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이 광경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것만으로 우리가 지난 6일간 고생한 일들이 충분히 가치 있게 느껴졌다. 베이스

이 곳은 700미터 높이의 암벽으로, 크기별로 크랙의 종류가 죄다 모인데다 최고 9등급 난이도를

캠프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 한국, 슬로바키아, 폴란드 사람들 사이에 텐트를 설치했다. 자기가 먹을 식량(양파와 감자 각각 한 자루)

자랑하는 멋진 루트이다.

까지 우리가 등에 지고 오게 만들었던, 우리가 “프란지”란 세례명을 지어준 숫염소는 안전하게 그곳까지 도착한 뒤 베이스캠프 주변 풀밭에서 한가로이 어슬렁거렸다.

우리가 “No pen, no picture!(펜 안 주면, 사진 안 찍어요!)”*라고 이름을 붙인 이 루트는

그리고 잠시 후, 바비큐 파티가 열렸고 바로 그 염소가 주인공이었다.

이미 오스트리아에서도 찬사를 받는 익스트림 클래식 루트로서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을 것이고, 아마도 빌레이 지점마다 반짝거리는 새 볼트와 토포(topo)로 이미 단장에 단장을

이제 짐을 풀고, 정돈하고, 계획을 짜고, 차를 마시고,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장비를 정리한 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내일은 그레이트 트랑고와 네임리스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타워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작은 화강암 기둥, 리틀 트랑고 (5,500m)로 향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 3시, 자명종 소리가 침낭 속에 파 묻힌 우리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이 멋진 바위 덩어리는 카라코룸에서도 가장 먼 구석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위험한 어프로치 협곡을 지나 긴 여정을 시작했다. 5,200미터 높이의 산등성이에 다다랐을 때, 구름이 나타나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언젠가 다시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은 최대한 성대하게 축하해주어야

우리는 희박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고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기다려 봤지만, 곧 장비를 숨겨 놓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휴식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는 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날 집으로 떠나는 막스를 위해 몇 시간 동안 축배를 들었다. 한스와 내가 본 게 맞다면, 막스의 눈에 눈물이 고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간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복장을 갖춰 입고 선 테라스(sun terrace)로 향했다. 이곳은 네임리스 타워(Nameless Tower)로 가는 루트 초입에 위치한 하루 종일 해가

건지도 모르지만. ;)

비치는 넓은 비박 장소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황금색 빛깔의 화강암을 붙잡고 마치 노새처럼 장비를 짊어지고 가기 시작했다. 막스, 제이콥, 한스는 홀 백을 나르는데 주력하고, 플로와 나는 앞에서 로프를 고정했다. 클라이밍할 때는 참 기분이 좋다. 선 테라스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그 곳의 장관에 압도되었고, 전원이 완전히 탈진해

좋은 날씨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척이나 짜증나는 일이다. 더 이상 카드놀이를 하기도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막스는 예외였다. 정말이다. 막스는 팀에서 나이가 제일 많지만, 지금까지 클라이밍한 거리가 가장 길고, 높은 곳에서의 등반경험도 더 많으며,

싫고 읽을거리도 다 떨어져 가고 있던 중, 마침내 우리는 좋은 날씨가 한동안 계속될 거라는

마음만 먹으면 8천 미터 봉의 캠프까지 포터를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우리 팀에서 가장 강인한 멤버이다. 요리를 해 먹고 나서 잠을 청하려고 애썼지만,

근사한 소식을 들었다.

누구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우리가 아직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나타나는 두통이 지속해서 우리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겨우 3일 차이니 당연한 일이다.

의욕이 충만해진 한스, 시몬, 에차이 그리고 나는 네임리스 타워 정상까지 오르는 3일 동안 꼭

우리는 장비를 그 자리에 남겨둔 채 자일을 타고 내려갔다. 이틀간의 휴식기간 동안 우리는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카드놀이를 했다.

필요한 물건들로 짐을 꾸렸다. 에차이와 시몬은 “슬로베니언 루트”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한스와

그러고 나서, 막스와 나는 다시 네임리스 타워를 향해 비탈진 협곡을 올라갔다. 우리는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슬로베니언 루트(Slovenian route)를

나는 귈리히와 알베르트의 익스트림 클래식이자 두말할 것 없이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시도해 보고 싶었다. 온사이트로 그것도 하루 만에 오르는 것이 우리의 희망사항이었다. 2,300미터의 오르막, 최고 난이도 8+, 그리고 가파른 암벽 위의 불확실한

루트인 “이터널 플레임(Eternal Flame)”을 선택했다.

상황. 이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7개의 피치를 훌륭하게 크랙 클라이밍 하고 나서, 안타깝게도 우리의 온사이트 계획은 난관에 부딪혔다. 얼음으로

프리 클라이밍에 대한 포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이

뒤덮인 크랙, 암벽 위의 살얼음, 그늘진 디에드르, 그리고 추위와 물기는 수직 벽 위에 선 우리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는 물기가 많은 얼어붙은

쌓여있는 가운데 기온이 따뜻해져 암벽 위에 물기가 너무 많이 생겼고, 그렇게 되면 어디든 꽉

구간을 애써 뚫고 나아갔지만, 정상 100미터쯤 아래에서 등반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꽁꽁 얼어붙고 완전히 녹초가 된 데다, 상황도 너무 열악해 어쩔 수 없이

붙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정상에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잘한 일이었다.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이다.

*

No pen, no picture !

Pakist

아스콜 마을의 한 아이가 제이콥에게 펜을 달라고 했을 때, 그는 펜이 없었지만 아이의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그러자 아이가 바로 한 대답은 “펜 안 주면 사진 안 찍어요!(No pen, no picture!)”였다. 우리는 바로 이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이 루트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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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never come bac

2012

journey to

twent twelve

heart of the moun a tale by gui do un ter w ur z 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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