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회담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매우 힘든 상황에서 휴전 회담이 시작됐습니다. 공산군이 한국군과 유엔연합군을 부산 부근까지 몰아부쳤 고, 우리는 거의 한반도에서 밀려나기 직전이었어요. 하지만 곧 반격을 시작해서 북으로 다시 올라갔죠. 1951년 1월쯤부터 강화 협상을 해야 된다, 휴전을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전쟁은 계속 되었죠. 전쟁 초반에, 그러니까 50년 9월인가에 중공군이 참전을 했어요. 북한 지역 깊숙이 진군했던 연합군은 중 공군에 밀려 남으로 후퇴를 해야 했고, 서울까지 다시 내주고 말았죠. 전쟁 동안 서울을 두 번 뺏겼던 것 같 아요. 중공군이 수원 남쪽까지 내려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 밤 저도 거기에 있었어요. 저희가 밤을 보낸 교사 근처에서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살된 중공군 시체를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렇게 중공군이 내려 왔었고, 우리는 반격을 했습니다. 그때 리지웨이 장군은 미군과 유엔군의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반격을 시작해 북쪽으로 밀고 올라갔습니 다. 그는 대단한 장군이었어요. 아무튼 유엔군은 북쪽으로 진격하고, 공산군 측은 또 반격하고, 그래서 미군 들이 한국전쟁을 ‘요요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웃음)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많은 행사들이 개최됩니다. 전쟁 동안 한국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다른 동맹국들로부터도 한국에서 받았던 만큼의 지지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국인들은 전적으로 우리를 지원해 주었어요. 아시겠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협조를 얻기 무척 힘들었고, 오히려 우리를 적대시 하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굳건한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 다. 알면 알수록 한국인들에게 감명을 받습니다. 한국은 훌륭한 동맹국입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싸 울 때, 한국은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훌륭한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죠.
리치 씨의 이 컬러 사진들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것인데요. 사진들을 차 담는 상자에 보관하셨던 걸로 알 고 있습니다. 사진을 다시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컬러 필름을 썼는데, 전문 사진기자들은 컬러로 찍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컬러로 찍어 봤자, 본국에 있 는 회사에서 그것을 사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 부터 컬러 필름을 썼습니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코닥 본사에 보내면, 인화된 컬러 슬라이드를 작은 노란색 봉투에 담아 다시 보내줬습니다. 저는 필름을 확인만 하고, 주석으로 테두리를 한 차 상자에 보관했어요. 어 디를 가든 그 상자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렇게 한참이 지났죠. 그러다가 몇 년 전 어느 날 그 상자를 다시 열 어보게 됐는데,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사진들이 손상되지 않고 완벽하게 보관되어 있는 거에요. 전쟁의 시작 부터 그 전개 과정, 그리고 길고 지루했던 휴전 회담까지, 3년 동안 계속됐던 전쟁의 이모저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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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사진집 국문팀장님수정.indd 229
2010-05-10 오후 1:3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