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소재의 아름다운 구게누마(鵠沼) 해변에서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미군 점령기의 일본에 주재하던 몇몇 미국 특파원들은 폭격의 피해 를 입지 않았던 구게누마 해변 근처의 휴양용 별장을 얻어 함께 쓰고 있었는데, 그날은 「시카 고 데일리 뉴스」의 케이즈 비치Keyes Beech 기자와 나, 이렇게 둘이 별장에 묵고 있었다. 수영을 하고 돌아와서 케이즈가 먼저 일본식 나무 욕조의 뜨뜻한 물에 몸을 담갔을 때, 벽에 걸려있 던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고 ‘모시모시’라고 답하자,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상대 편이 다급히 외쳤다. INS의 상관인 하워드 핸들만Howard Handelman이었다. “리치, 당장 도쿄로 돌 아오게!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어!” 케이즈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곧바로 욕조에서 뛰쳐 나왔고, 나는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일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곧장 지프차에 올라 도쿄 로 출발했다. 당시 미국 언론사들은 점령군이 마련해 준 라디오도쿄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평상 시 밤이 되면 문을 닫던 INS 사무실에 그날 밤 간이침대가 놓여졌고, 그 간이침대는 한국전쟁 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게 된다. 그리고 그날부터 라디오도쿄 빌딩에 있던 모든 언론사 사무실들이 24시간 체제로 운영되었다. 해리 투르먼 미 대통령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 군에게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고, 맥아더 장군은 우선 한국에 거주 중이던 미국인들의 대피 작전을 직접 시찰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는데, 이때 미국 3대 통신사의 책임자 세 명— AP의 러셀 브라인즈Russel Brines, UPI의 어네스트 호버레트Earnest Hoberecht, INS의 하워드 핸들만 Howard Handleman
—을 함께 데려간다. 시찰에서 돌아온 핸들만은 내게 한국으로 갈 것을 지시했고,
나는 일단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서 부산항을 향해 출발하는 미 해군상륙함에 올라 대한 해협을 건너게 되는데, 그 배에는 공산군을 저지하기 위해 첫 번째로 투입되는 미군 포병부대
”
가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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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사진집 국문팀장님수정.indd 38
2010-05-10 오전 1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