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arjet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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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순응하는 삶,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 밥의 소중함, 건강한 제철 식재료가 보약이라는 믿음. 사찰 음식은 불가의 비기가 아닌 대자연과 우주의 순리를 따르고 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중요함을 깨우친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대두되는 시대, 불가의 음식 문화가 품고 있는 본래의 철학도 귀 기울여 봄 직하다. “사람의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룬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지요. 비닐하우스에서 인위적으로 물을 주며 키운 것이 아닌 제철의 햇빛과 물과 바람과 공기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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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 자연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거예요. 그것이 보약이거든요.” 서울 은평구 수국사의 공양간을 책임지는 지유스님은 이렇듯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는 믿음으로 밥을 짓는다. 지유스님의 말에 의하면 절에서 하는 공양은 그냥 식사가 아닌 ‘감사와 공경의 마음’이다. 쌀 한 톨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농부의 아흔아홉 번 손길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래서 조리사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 밥의 소중함, 건강한 제철 식재료가 보약이라는 믿음. 사찰 음식은 불가의 비기가 아닌 대자연과 우주의 순리를 따르고 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중요함을 깨우친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어찌 보면 사찰은 생로병사의 비밀을 간직한 어떤 ‘비기’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10

자연에 순응하는 삶 올겨울 드디어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이

천진암 강연장에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산속에서 수행에 정진하며 우주와 대자연의

발간되면서 그 명예로운 별을 받은 여러 식당

셰프와 음식 명인들이 자리를 차지해 놀란 적이

경이로움에 눈을 뜬 스님들이 가장 신선한 제철

중 한 곳이 눈에 쏙 들어왔다. ‘발우공양’. 서울

있다. 이 밖에도 한식을 넘어 수많은 양식 셰프가

열매와 이파리, 곡식으로 차려낸 소박한 한 상. 그

종로 조계사 맞은편에 자리한 이 사찰 음식

음으로 양으로 사찰 음식을 연구하거나 배우는

작은 한 그릇 공양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귀를

전문점이 1스타를 받다니! 굳이 <미쉐린 가이드>가

모습이 들리고 포착된다. 한때의 유행으로 넘기기엔

기울여 볼 차례다. 마지막으로 사찰 음식은 절대로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그 스펙트럼이 꽤나 넓고 진지하다. 스님들

맛없지 않다. 자극적인 맛을 향한 희구를 잠시

높아지면서 가장 오래된 한식의 원류를 ‘기억’하는

말마따나 사찰 음식이 ‘스님들의 일상식’이고 ‘가장

내려놓고 오감을 열어 놓으면 팔팔하게 살아 숨 쉬는

사찰 음식에 음식 애호가들, 전문가들의 눈길이

오래된 음식의 원류’에 가깝다면, 사찰 음식을 굳이

식재료 본연의 맛이 입 안 가득 행복감을 준다. 꽤나

쏠리는 현상은 당연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특정 종교의 음식으로 치부하거나 ‘맛없다’고 거부할

오랫동안 조용하고 은은하게 내 몸과 입이 기억하는

음식’이라고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정관스님의

이유는 없다.

그런 맛이다.

Dec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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