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0주년 기념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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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가왔듯이 이제 욕망, 후회와 좌절 이런 헛된 꿈은 깨끗이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안에서 보람을 찾자. 그리고 우

나는 아직도 날고 싶다

리가 겪은 한이 자식들에게까지 머물지 않도록 평화롭고 긍정적인 삶을

김 주 상

살도록 노력해 보자. 올해 4월이 가도 또 다시 4월이 찾아오듯이. (뉴욕문학 창간호, 1991년)

유리창 바로 앞에 흰새가 앉았다. 이사 온 다음날 아침, 코앞에서 새 를 마주 보다. 첫 번째 만남이 흰새라서 길조가 찾아든 것 같이 반갑다. 조금 쉬다가 날아간다. 그것도 왔다갔다 노닐며 날아다닌다. 이곳 후 러싱에서 흔히 날아다니는 흰새를 누구는 갈매기라 했다. 책상 위 쪽지에‘저녁 4시쯤 흰새는 키세나 파크 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어둠이 깔릴 쯤은 나는 새를 보지 못한다.’라고 적어놓았다. 무 심히 내다보는 바깥 풍경들이, 해가 지고 밤이 되기까지의 외로움과 적 막감이, 나의 내부에 어떤 충동을 불러일으킬 힘이 되리라는 기대로 쪽 지에 써놓았다. 흰새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날았으리라. 아마 여기 바닷가 벌판이 생활 터전이었을지도 모른다.‘어느 날 어쩌다 내다본 눈길에 얹힌 흰빛 의 원무를 가끔씩 떠올리며 그 잔상을 즐긴다’라고 쓰인 쪽지도 보인다. 흰빛의 원무-흰색들은 둥글게 큰 원을 그리듯 내려앉았다. 줄지어 날 아든 것같이 원무를 추듯 서서히 내려왔다. 우아하게 내려옴이 마치 살 풀이 명주수건 춤추듯 환상적이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잔디는 한랭한 공 기 속에서도 파란 풀빛이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풀밭에 내려앉은 새

한수남 (1923-2012?) 1923년 평남 평원 출생, 1947년 남한으로 월남 1965년 브라질로 이민, 1971년 미국 뉴욕 정착 미동부문인협회 창립회원.‘길벗’동인. 공저: <영혼의 불>, <낯설게 서는 하루>, <깨어있는 삶>등

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춤추느라 힘들었다가 잠시 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초 겨울에 살아 있는 풀을 먹으려는가. 5분, 10분을 응시해 도 그대로 앉아있다. 한참만에야 날아온 방향으로 차례로 되돌아간다. 나도 저들과 같이 날고 싶다. 천천히 나래를 휘저으며 미지의 나라로 날고 싶다. 아무리 해가 거듭되어도 인간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해진 길을 가고, 묶여 있는 사슬 속을 이탈 못하는 습성이라 그들이 부러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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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뉴욕문학 제29집

작고회원 9인 작품선 수필 · 김주상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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