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0주년 기념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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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찬 흑인들의 얼굴들, 그들은 그 무엇이 한이 되어 이렇게 목에 핏대를

하는 한국인들은 부지런한 정신으로 미국의 식생활에 필요한 야채를 다듬

올려 목청을 뽑고 있는지? 한편, 간단한 영어 몇 마디와 단단한 팔목 그리

고 과일을 씻고, 꽃을 둘러놓고 어두운 거리에 밝은 등을 밝혀줌으로써 뉴

고 움켜진 주먹이 그의 모든 자산이었을 한국인의 모습은 다행히 한참 떠

욕 시민들에게 생활의 편의를 주고있는 청과상들 …

들썩하고 있는 독일 통일문제와 정계문제등에 압도되어 TV 뉴스에 잠깐 눈에 비치다 사라지곤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자가 말하기를 기사 내용이 충분히 준비되었으니, 시간문제로 오늘 청과상 방문은 취소하고 다시 질문이 있으면 전화 하겠다

우연히 Mira의 전화를 받기 2주 전에 나는 뉴욕 잡지사의 한 기자로부터

며 나를 중도하차시켰다. 그 한 달 후에 발간된 뉴욕 잡지기사에는 한국인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은 다음날 브루클린 사태에 대한 전반적

에 대한 기사 내용이 우호적인 입장으로 나왔음에 나를 기쁘고 놀라게 했다.

인 스토리를 모을 계획이니 통역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 30대의

그 기사는 한국인의 복잡다단한 재정거래와 계의 놀이를 다루기보다는 한국

목소리로 퍽 공손하고 짤막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그의 신중한 태도

인의‘정’이라는 즉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은‘정’으로 인해 노고를

에 끌려 쾌히 응락하였다. 그 당시 나의 심정은 뉴스에서 몇 번 보았던 브루

견디고 또‘정’에 쏠려 이 외지에서 투쟁한다는 내용도 나왔다. 아마도 잡

클린 사태를 실제로 답사하고 장본인들과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지기자 자신도 그의 뜻하지 않은 한국인의 다른 우아한 인간사회 상을 느

무엇인가 통역인으로서의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결단이었는지도 모른다.

끼게 되었음인지도 모른다.

다음 날 그 뉴욕 잡지사 기자는 자그만한 개인 승용차를 몰고와 우리는

통역중개사 Mira로 부터 C 방송국 취재를 위한 통역인이 필요하다는 메

찬란한 태양 속에 퀸즈쪽으로 향했다. 나의 선입견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Mira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가 불러주는 번호를 돌

그가 묻는 질문들은 한국인에 대한 불이해와 관습적이고 편파적인 입장에

려 C방송국 코디네이터 Lisa를 찾았다. Lisa는 브루클린에 현재 보이코트

서 나오는 그의 호기심이 엿보였다.

를 당하고 있는 청과상 주인집에 새벽부터 출두하여 그의 하루일과를 사진 에 담고 싶다는 것이었다. 가게에 물건을 풀어놓고 하루를 지내는 장씨의

“한국인들은 거의 대학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많이들 청과상을 한다고

모습을 모두 카메라에 담고 그와 대화를 나누어 보고자 하는데, 장씨는 어

들었는데요, 사실인가요? 한국인들은 계를 만들어 돈을 저금한다는데 그

느정도의 영어는 하는 것 같지만 만반의 안전과 이해를 위해 통역인이 필

것은 비공식적인 은행거래가 아닌가요?”등의 질문이 연달았다. 우선 나

요하다는 것이었다.

는 어디까지나 그의 인터뷰 대상자가 아닌 통역인이기 때문에 그의 역질문 에 구태여 대꾸할 의무는 느끼지 않았다. 아니 될 수 있으면 그 질문에 구

다음날 약속한 대로 새벽 4:30분에 C본사 앞에서 만나 그들 밴을 타고

체적으로 답하느니 방향을 돌려 우선 우리 한국인들의 긍정적이고 자랑스

브루클린으로 향하였다. 밴에는 방송 취재인 Peter, 카메라맨, 밤색 머리를

러운 인간적 관계와 풍습에 연관 시키려 시도했다. 나는 부드러운 말씨로

길게 느려뜨린 젊은 사운드워먼, Lisa, 그리고 내 자신이 동승했다. 그 밴

우리의 고유한 풍습, 즉 믿고 존경에 쌓인 젊은층과 노년세대의 유대감, 식

운전기사는 중년 남자로 프로펠라 비행기도 하나 소유하고 있어 비행운전

구하나가 쓰러지면 가족 전체가 뻗쳐주는 재정지원, 그러므로 미국에 거주

도 한다고 했다. 운전사 옆에 묵묵히 앉아있는 취재인 Peter는 약간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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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뉴욕문학 제29집

소설 · 김영자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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