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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호 제 17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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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평강의 크리스마스 2008 제 63차 새가족반 양경욱 목사 인터뷰 세례식 - 새로운 삶의 시작 외 스데반 사역 - 내가 섬길 차례 외


표지사진설명 크리스마스 뮤지컬 “All I Want for Christmas” 에서 공연한 학생들

www.fellowship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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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03 기쁨과 평강의 크리스마스 2008 08 세례식 - 새로운 삶의 시작 외 - 신준호 외 16 초등부 소식 (MD) - 신율미 18 인터뷰 - 기도의 불을 지피는 양경욱 목사 부부 - 이연일

휄로쉽교회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2 제 63차 새가족반 23 새가족반 - 준비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하여 외 - 김왕대 외 27 또… 낙엽 - 이창섭 28 스데반 사역 - 내가 섬길 차례 외 - 장지원 외 30 TD - 내 마음속의 미움을 녹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 유정미 32 오이코스 - Happy Birthday Jesus! - 유종우 34 종족소개 - 숨겨진 땅 다게스탄 - 유종우 37 사도 바울 - 빌립보에서 루디아와의 만남 - 오장석 42 1월의 추천도서 43 맥체인 성경읽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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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Campus: 18901 WARING STATION RD., GERMANTOWN MD 20874 / 301.444.3100, FAX 301.444.3115 VA Campus: 1439 SHEPARD DR, STERLING VA 20164 / 703.444.5634, FAX 703.444.0567 (제출하신 글이 편집 방향에 따라 수정되거나 게재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양지 바랍니다) *발행인: 김원기 *편집위원: 오장석, 이연일, 오진이, 지용한, 이창환, 안선희, 양하영 *인쇄: KOREA Mon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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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만나고 바뀌게 된다. 꿈에서 깨어난 린지는 엄마에게 자신이 무엇인가를 줄 수 있 는 병원에 있는 아이라든가, 배고픈 사람이라든가, 외로운 할 머니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이 이기 적이었던 것에 대해 용서를 빌고,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방법 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한다.

기쁨과 평강의 크리스마스 2008 -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 뮤지컬 “All I Want for Christmas” 줄거리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간 린지는 장 난감 가게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모든 인형들이 갖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린지는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인형들 을 달라고 하지만, 엄마는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은 원하는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 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베 푸는 때가 크리스마스다” 라고 말한다. 엄마의 대답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린지는, 남아있는 쇼 핑을 하러 간 엄마와 헤어진 뒤에도, 장난감 가게 안에 남아 있다가 잠이 들고 만다. 꿈 속에서 린지는 살아있는 인형들 을 만나게 되고, 그 인형들과 예수님의 탄생을 연극으로 만 들며,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인형들에게 가르쳐 주지만, 여전 히 크리스마스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는 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린지의 생각은 꿈 속에서, 아픈 여동생을 위 해, 자신이 일해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인형을 사는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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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주일예배에서 유치부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발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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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의 시작 글 - 신준호

제가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 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러한 기회가 있었고, 대학원 에 다닐 때에도 반 년의 기간 동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냥 대충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큰 은혜를 받지 못했 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교회에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고, 성경 말씀에 거부감이 적어 졌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모두가 제가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 준비된 시간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제법 괜찮았던 한국의 직장을 접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의 선물 임을 느낍니다. 아마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단지 세 상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향해 무작정 나아 가는 그런 삶에 계속 익숙해지고, 하나님을 멀리 하였 을 것입니다. 저는 현재 이곳에서 일시적으로 물질적 부족을 겪고 있지만, 헛된 것을 향해 쳇바퀴 도는 삶에

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 영혼이 더욱 맑아지고 풍요로워 졌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다 바 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간 증을 통해 저의 가정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분명 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 와서 정착하는 순간부터 저와 아내 사이에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갈 등과 문제들이 유달리 많이 튀어나왔고 폭발하였습니 다. 이러다 보니 때때로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 는 일들이 잦아졌습니다. 만약 하나님 이라는 중심이 없었다면 일이 어떻게 급속히 악화될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저희는 하나님 의 말씀을 통해, 오이코스 내에서의 교 제를 통해, 그리고 부부 성경 모임에서 의 교제를 통해 저희들의 문제점을 인 식하고 과오를 인정하며 서로를 용서 할 수 있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한 가지 큰 변화는 저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나의 삶을 드리려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연구원으로 서 1년 전 쯤 이곳에 와서, 컴퓨터 관 련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국 생활이 쉬운 게 아닌지라 처음에 는 언어 문제로 고생을 하였고, 이후에 는 저에게 주어진 생소한 분야에 대해 지식과 아이디어가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좌절을 겪었습니다.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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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앞이 아득하고 잘 보이지 않지만, 하 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며 저를 하나님께서 원하 시는 대로 사용하기 위해 인도하심을 믿고 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방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앞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자 녀 된 신분의 축복을 누림과 동시에 그 신분에 걸맞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아직 사회 생활에서까지 하나님의 향기를 전달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가정에서부터 그러한 변 화를 만들었고 계속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또한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하나님을 더 잘 알 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여러모로 공부하며 훈 련하고자 합니다. 휄로쉽이라는 훌륭한 교회 공동체와 그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에 위와 같 은 과정이 더욱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 의 역사하심으로 순조로이 이루어져 휄로쉽 내에서 제 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될 수 있 고자 간절히 기도합니다.

같은 날 세례를 받은 아내 신기옥

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때때로 좌절감이 심할 때마다 “내가 왜 좋고 안정된 직장과 삶을 버리고 여기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하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답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Christ is working within me! 글 - Josh Lee

I never actually “knew” Christ. He was just a man that my Sunday school teachers talked to me about. I just went with what was expected of me and pretended like I knew who he was. I thought knowing Christ was something to be ashamed of; I never talked about Jesus in front of my friends or people at my school. Christ was a subject that I only talked about at church. I guess the first time I actually felt Christ working within me was at retreat last year; I was thinking “what am I doing here”, then I felt this big force just sweep me by and I started to shake. I tried stopping myself but the feeling was so strong. I didn’t know what it was, and then I remembered one of the counselors talking about how people start to act weird when Christ was working within me. At that moment, I knew that there was God out there and he was trying to show me signs that would eventually lead to him.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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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계시는 하나님 글 - Johnny Kim

어렸을 때부터 저의 가정은 잦은 이사를 했고 지내 기 편안한 장소를 찾아 다녀야 했습니다. 가정에서는 항상 문제들이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교회는 없었습니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이곳, 저곳의 교회들을 다니곤 했습니다. 어렸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는 분별하지 못했

Growing up as a child, I had to go through a lot of moving around and finding a place to get comfortable with. Dealing with certain family problems, there wasn’t really a church that I attended regularly. I would attend church here and there depending on where I

습니다. 어린 아이였던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고, 예수님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특별한 체험은 없지만, 제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점진적인 하나의 과정이었습니 다. 하나님을 더 자세히 알기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was. Being young I knew it was important to believe in God, but didn’t really know what was real or fake. As a child I just did what I was told and didn’t have much thought about Christ. I can’t think of a specific experience where I came to believe in God. I think in my life it was a gradual process. Not strongly pushing myself to get to know the Lord better, I would just live life the best way possible. I did have an experience that helped me get to a mature stage of loving the Lord. It was my second year at college church retreat. Pastor Alvin was a guest speaker and I had never met him before. During the night worship he would pray over each of us. Feeling nervous, I didn’t know what to expect. The things he said felt like God was speaking through him. Not really knowing Pastor Alvin it seemed like he knew me and my whole life. He

저는 그저 제 삶을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던 중, 어떤 경험을 통하여 한 단계 성 숙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부 수양회에 참석한지 2년 째 되는 해였습니다. 전에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알빈 목사님이 강사로 오 셨는데 너무나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저녁 집회 때, 목 사님은 각각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불안해져 도대체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도 몰랐 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하여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 니다. 저는 목사님을 몰랐지만 목사님은 저의 삶 전체 를 알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대부분 용서에 대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 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다는 말씀을 해 주셨 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우 리의 신분이나 성공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시며, 오직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해 주셨습니

mainly talked about forgiveness, how God forgives and how he’ll always love you. Also how God doesn’t judge or show favor by status or accomplishments, but by your heart. I remember thinking to myself not to get emotional, but I couldn’t help myself. I’ve always

다. 이때 저는 이러한 말씀을 들으며 감성적으로 되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얘기한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믿어왔지만 확실치 않은 무엇인가가 아직도 제 마음속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저는 알빈 목 사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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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ved in God, but here was always this uncertainty I still felt. Later that night, I wrote Pastor Alvin a letter saying how thankful I was for helping me. He really opened my heart and helped me realize how great God really is.

하며, 목사님은 정말 나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이 얼마 나 좋으신 분인지 깨닫게 해 주셨다는 감사의 말을 적 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저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하나님은 언제나 저를 위하여 그 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My life after that experience helped my trust in the Lord. To know he’s there for me at all times. To be able to come to him when times are tough and ask for guidance. Many times I would get angry and do erratic things but I realized that that’s not the best way to handle situations. At this point, I know I’m not nearly as close to God as I want to be. I still have a lot of growing to do but I believe God is helping me and still giving me hope to strengthen my relationship with him.

힘들 때 하나님을 또한 그분의 인도하심을 찾게 해 주 었습니다. 저는 화가 나면 엉뚱한 행동을 하곤 하는데, 그러한 것이 상황을 수습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 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원하는 것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의 믿음은 앞으로도 많이 자라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나를 도와주실 것 을 믿으며,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싶은 소망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번역: 양하영>

하나님은 나의 소망 글 - Lannie Kim

한국 친구들을 만나보면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교 회 안에서 성장해왔다는 얘기를 거의 대부분 하고 있 습니다. 저의 성장과정은 그러한 한국 친구들과는 조 금 다르지만, 하나님은 이런 독특한 성장과정을 통하 여 저에게 나타나셔서 독립적이고 애정이 많은 사람으 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드문드문 교회에 갔었던 기억이 납

Associating myself with mostly Korean peers, it is common to hear that most have grown up inside the church by the influence of their parents. My background is a little bit different from the norm, but it is in this unique way that God has revealed Himself to me to be sovereign and loving. As I was growing up, I remember attending church sporadically. This pattern remained throughout elementary school and the times I did attend, I don’t remember ever reflecting upon why I was there. Being with friends was fun, I enjoyed singing, but the reality of going to church to worship and learn more about

니다. 초등학교 내내 이런 식으로 교회를 다녔고, 또 교회를 다니는 동안에도 왜 교회에 가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있는 것이 재미있었고, 노 래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 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기 위해 교회에 가야 하는 현실 은 아직까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물론 그때에는 정말 단순하고 유치한 기 도 제목들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때 그러한 것들이 제 믿음의 첫 씨앗이 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듭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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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had not yet set in. However, I remember starting my prayer life at a young age, with simple prayers, full of childish requests. But when I look back on it now, I feel like it was one of the first seeds of my faith. My transition from elementary to middle school was a tough one, seeing that God placed difficulties for me to deal with very early in life. Family life shifted tremendously and it was a tender age for me to deal with much pain and hurt. However, by the grace of God and unknowingly at that time, He provided for me, loved on me and cared for me. Every circumstance thereafter has shaped me and contributed to my character to this day. During my adolescent years, like many other teenagers, I felt lonely and misunderstood by my parents, and I turned to my friends to make me feel loved and appreciated. We moved to a different area in Maryland, and I was introduced to a church and its youth group by one of my friends. Despite the fact that I enjoyed going for the fellowship, I began to understand and learn more about God through church. Church attendance was not consistent and stopped for a period of time. My parents were not non‐believers, but we had yet to find a home church to call our own. Furthermore, they wanted me to spend my time focusing on studies. I became bitter about their strict upbringing and life at home did not get much better. In high school, I attended a large revival by invitation of a friend and that night, I made the decision to accept Jesus as my Lord and Savior. It was the first time that a message truly spoke to my heart and I felt God addressing my hurts and weaknesses, welcoming me to lay them at His feet. I felt God reassuring me to put aside my bitterness and lonely feelings and rely solely on Him and His strength. I was ready to walk with Him, and not try to solve everything on my own. I believed in the sacrifice of His Son, His resurrection, and the magnitude of love that He has for me. From then on, I lived out the emotional and spiritual roller coaster that is part of every Christian walk. I saw God’s hand work wonderfully in my life, as my family began attending NCFC together regularly and I began using my time and committing my life with the purpose of glorifying Him. He blessed me with com-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의 변환기는 저에게 힘든 시간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삶의 일찍부터 어려움들 을 겪게 하셨습니다. 고통을 견디기에는 아직 어린 나 이였던 저에게 가정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주님은 저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고, 사랑해 주 셨으며 또한 저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 후에 처하게 되었던 모든 환경들은 저를 다듬어 갔고 지금 제가 가 지고 있는 성격과 인품들로 자랄 수 있게 해 주었습니 다. 사춘기 때에 저는 모든 십대아이들이 그렇듯이, 외 로웠고 부모님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었 습니다. 친구들을 통해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했습 니다. 저희 가정은 메릴랜드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제 친구를 통해 어느 교회의 청년부를 가 게 되었습니다. 물론 친구들과의 교제를 목적으로 간 것이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 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정기적으로 하지 못했고, 어느 기간 동안에는 아예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믿지 않으시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저희 가 족은 섬길 교회를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은 제가 공부에 더욱 전념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부모님의 엄격한 교육방법에 불만스러워졌고, 가정에서의 생활 도 그 이상 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초청으로 큰 부흥회에 참석하 게 되었는데, 그날 밤 저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으로 설교 말 씀이 제 마음속에 와 닿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상처와 연약함을 꺼내어 그 분의 발 앞에 모두 내려놓기를 원 하심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준비 가 되었고, 이제는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하지 않기로 마 음먹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고 다시 부활하 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 난 사랑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부분인 감동적이고 영적인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게 되었습 니다. 식구들이 모두 함께 휄로쉽교회에 나오기 시작 하면서, 저는 제 삶에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손길을 보 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목적을 위해서 나의 시간을 사용하며 내 삶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은 저를 축복하여 주셔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긍휼 함과 찬양과, 청년부, 대학부의 사역을 통해 교회를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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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 to help and serve at church through various ministries, including Praise, youth, and college. Particularly through my work with college ministry and small groups, God has even called to seminary at Gordon‐Conwell where I am attaining my Masters degree in Christian counseling to serve Him full‐time through ministry. There are so many events that testify to His goodness and mercy in my life, and I know that I am a living example of How God can orchestrate every detail and piece it together in a way that can only bring Him praise. Being a Christian has changed my vision for my life and I trust and know that He will continue to see me through every stage and difficulty. He is my hope and I entrust my life in His sovereign hands. It’s taken me a while to finally decide to be baptized, but I am so encouraged that I will be able to share this experience with my brother and in front of my church family, who has loved me and taught me to be the best for the Lord as I’ve been growing in my faith.

기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대학부와 소그룹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저를 지금 제학중인 ‘고돈 콘웰(Gordon Conwell)’ 신 학교로 불러주셨습니다.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 히 섬기기 위해 저는 학교에서 석사과정으로 크리스천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 하심을 증거해 주는 많은 일들이 제 삶 속에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세밀한 부분 하나까지 간섭하시 고 협력하게 하시어, 결국엔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 시는 분이며, 제가 바로 그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삶에 대한 저의 비전은 바 뀌게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과 어려움들을 격을 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저를 지켜봐 주실 것을 믿고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소망이시며 하나님의 유일 하신 손에 제 삶을 맡깁니다. 제가 세례를 받기로 결정 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세례의 체 험을 형제와 모든 교우들 앞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용기가 납니다. 그 분들은 저를 사랑해 주시고 믿음 안 에서 제가 지금까지 성장 해 온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사람들입니다. <번역: 양하영>

나의 아버지 하나님 글 - Michael Paig (11학년)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창 조하신 그분의 자녀 하나하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커다 란 계획들에 대하여 들어왔습니다. 주일예배 때마다 이러한 메시지를 들었지만 이것이 나에게도 적용된다 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습니다. 6학년 때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었지

Ever since I was little, I always heard of God’s grace and the great plans that he had for each and every one of his children he created. Sunday service after Sunday service I would hear of this, but I never really thought that this applied to me.

만, 새롭게 얻게 된 믿음을 나는 그냥 방치해 두었습니 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는 특별한 것을 예비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지 만, 나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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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epted that Jesus was my Christ and savior in 6 grade, but that I didn’t do anything with this new faith. As time passed, I could see all the great things that God had in store for other people, but I thought he did not have one for me. It ultimately made me not

은 마음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내 자신을 항상 남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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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말 많은 재 능과 능력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 도, 능력도 없어 보이는 자신을 보며 내 마음속에는 질 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자격지심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더 이상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도

want to come close to God. Jealousy grew in my heart as I would always compare myself to others, being so amazed about how much talent and skills other people had, and when I looked at myself, I felt like I couldn’t do anything amazing compared to them. It consumed me so much that I no longer wanted a relationship with God. I went to the missions in for YWAM phase 2 in Chicago and God revealed himself to me in a new way, but I still did not surrender everything and my old ways came back. A year past, and my heart was still bitter towards God until the summer of 2008 came. In the beginning of the summer, I went to a huge Christian conference called JAMA and there I realized I didn’t want to be living the way I was. My heart became soft and I wanted to change. Then, I signed myself up for YWAM phase 3, knowing that no one from NCFC

가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시카고에서 열린 ‘YWAM Phase 2’ 집 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나를 새롭 게 만나주셨지만, 여전히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내려 놓지 못했고,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습니 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8년 여름이 되기까지 하 나님을 향한 내 마음은 여전히 원망뿐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자마(JAMA)’라는 커다 란 기독교 집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나 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내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부드러워졌고 나는 변화 받고 싶었습니다. 휄로쉽교회에서는 아무도 참석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마음에는 꼭 가고 싶 은 충동이 있어, ‘YWAM Phase 3’을 신청하게 되었습 니다. 이것을 알게 된 주일학교 선생님 Josh는 나를 위 해 기도해주셨습니다. 기도하시면서 선생님은 계속해 서 “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 다. 그 얘기를 반복해서 듣다보니, 선생님이 그 말씀을

was going to go, but I still had this great desire to go. A week before I left for phase 3, my Sunday school teacher, Josh, prayed for me and as he was praying, he told me that I was going to become great. He kept repeating it, and every time he said it, it felt like God himself was telling me that I was going to become great. Everything I believed for almost all my life had been a lie and for once in my life, I actually believed that I was going to become great. God had so much in store for me and all I had to do was surrender everything I had. When I left for YWAM phase 2, I was finally away from everything; school, church, family, and friends. I was really able to focus on God and give it my all. It was an amazing experience and I learned the importance of evangelism. I began seeing God as more of a

해 주실 때 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나에게 “넌 훌 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믿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거짓 이었지만, 난생 처음으로 나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예비해주셨는데, 내가 해야 할 것은 단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께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YWAM Phase 3’을 떠나면서 나는 학교, 교회, 가 족들과 친구들로부터 모두 떨어져 있을 수 있게 되었 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나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고 전도의 중요성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나를 정죄하시는 심판자로 보다는 나의 아버지로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

father than a judge. The road ahead is not going to be easy, but through God’s strength, I know I can persevere and get to know God more and more every day.

으로 나는 인내할 수 있으며, 매일 같이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번역: 양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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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표본이 되기를 글 - 곽상규 (7학년)

나의 신앙은 기독교입니다. 하지만 이제 13세가 되 었으니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 의 한 여름 수양회를 참석하여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 도인이 되었습니다. 요번 여름 방학 때였으니 최근에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저는 교회에 가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 습니다.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는 저를 교회에 데 리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커 가면서 제 자신이 진정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인 처럼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엄마와 같이 교회에 가는 아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올 해 여름 방학 때, 저는 정말 혼동되 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여름 수양회를 시작하자 저는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손을 들어 올렸 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시길 원했습 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저는 손을 올리게 되었고, 제 친구, ‘에릭 서’에게 그래도 괜 찮은지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는 너무 잘 한 일이라고 하면서, 제가 자랑스럽고 그러한 제 행동에 감동했다 고 했습니다. 그 날 이후부터, 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즐거웠고, 교회에 가는 이유가 생겨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리 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작은 제자반(mini DTS)’에 들어가 전도하는 방법과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 다. 얼마 안 있어 DTS을 마치게 되었는데, 공부하면서 정말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례받기를 결심했고 하나님을 위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문 제가 있었는데, 이러한 행동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되지 않게 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의 문제를 해 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리스도인은 학교 에서 나쁘게 행동한다는 생각을 혹시라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전도를 하기 위해서 제 자신이 좋은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저는 예수님께서 제 마음속에 오시기 를 원하며, 예수님을 위해 제 믿음의 좋은 표본이 되겠 습니다. <번역: 양하영>

My religion is Christianity but I think it’s time for me to be baptized since I’m 13 years old now. I became a Christian when I went to a church summer retreat. That was this year’s summer vacation, so I just recently became a Christian. First of all, I always used to go to church because my Mom made me ever since I was born. Soon, as I got to older, I kept on wondering if I was a real whole Christian or a kid who just thinks and says that he is a Christian just because he goes to church with his Mom when he doesn’t act like a real Christian. I got really confused that summer vacation, so when my church started to go on a church summer retreat, I went to the retreat and rose my hand and said that I wanted Jesus Christ entering my heart. I raised my hand to make sure that if I was an actual Christian. I asked a friend of mine named Eric So, if it was okay to do that and he said that what I did was awesome and he said that he was very proud and impressed of me. From that day on, I loved being Christian and I was very happy to go to church with a reason but now, I needed to know how to act and think like a Christian, so I went to a mini‐discipleship training class (DTS), so that I can learn how to evangelize and be a strong Christian. Soon, I finished mini DTS and I had a lot of fun there and I learned a lot. Now I feel determined to be baptized and be a great Christian for God. I also had problems at school with my friends and it didn’t make me feel like a Christian and I want to fix this problem, so that my friends at school wouldn’t think like I guess Christians are bad at school or like they must be bad at school. When I thought about that, I really wanted to be a good example of my religion, so that I can evangelize. So as I get baptized, I want Jesus Christ coming to my heart and be a great example of my faith for Jesu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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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제출한 아이, 가족예배 기록을 제출한 아이, 그리고 3개월 개근상 시상이 있었습니다. Q.T. 상을 수상한 어린이는 Brian Choi(김재희), Joyce Yu(유종우), Paul Chung(정명철), Katie Li (Richard Li)이고, 가족 예배상을 수상한 어린이는 Paul Chung(정명철), Joyce Yu(유종우)입니다. (괄호 안은 부모 이름)

글 - 신율미

노숙자 위문 12월 13일에는 초등부 어린이 다섯 명이 시온회 주 최 DC 노숙자 위문잔치에 참가하여, 노숙자들에게 노 래와 율동으로 따뜻한 주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이 날, 김선아 사모, 권애린 교사와 학부모로서 최유락 집 사가 동행했습니다.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몸소 돌 아보는 일을 경험한 아이들은, 이날 보고 듣고 느낀 것 을 생각하며, 부모님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뜻 깊은 날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보고 체험 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은 학교에 서 배우는 것, 책을 읽고 알게 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 하고, 평생을 두고 기억되는 가치 있는 교육이 될 것입 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이런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께서 배려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 니다.

아침 9시 클래스 신설 휄로쉽교회 초등부에서는 지난 11월 9일부터 1부 예배에 오시는 성도 및 사역자들의 자녀들을 위해 아 침 9시에 반을 하나 신설했습니다. 이 반은 오전 9시부 터 오전 10시 30분까지 진행되며, 1학년에서 5학년까 지의 아이들이 합반을 합니다. 수업 내용은 어린이들 의 사회성 발달을 위한 놀이, 여러 가지 공작 및 그림 그리기, 그리고 성경 만화 영화 감상으로 구성되어 있 습니다. 담당 교사는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들의 자원 봉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반이 신설됨으로 인해, 이른 아침에 교회 내를 아이들끼리 배회하는 일이 없 어졌고, 아이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또래 아이들과 교 제할 시간을 갖게 되어, 바람직한 일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름표 새학년도 첫 3개월 동안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착용 하도록 해왔는데, 이제 교사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익 혔고 아이들도 서로의 이름을 익힌 것으로 간주하고, 이름표를 더 이상 발급하지 않습니다. 아침 10시 30분 이전에 오는 어린이는 2층의 209호에서 진행되고 있 는 아침반에 가면, 10 데나리를 받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장식 만들기 12월 두번째 주일인 14일에는, 주일학교 어린이들 이 솔방울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고,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초대하는 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 이 사용한 300여개의 솔방울은, 신 쟌 교사가 자신의 거주지 근처에서 수집하여, 소독 건조시킨 후 흰색 페 인트 스프레이를 뿌려, 주일 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준 비한 것입니다. 이 장식물과 초대장은 그 다음 주일에 커버넌트 빌리지 어르신들께 전달되었습니다. 초대장 에는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 순서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그 동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온

시상식 12월 7일에는 지난 3개월 동안 Q.T. 기록을 꾸준

QT 상을 받은 아이들 16


학교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도록 칼라 초대장을 아이 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이 출연하게 될 뮤지컬이 순서에 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초대 할 친구들을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초대장을 돌린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온 초등학생 중 휄 로쉽 초등부 아이가 아닌 아이들이 약 20명 있었습니 다.

뮤지컬을 선보인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 습니다. 커버넌트 빌리지 방문 셋째 주일인 12월 21일에는, 솔방울 장식과 초대장 을 가지고, 휄로쉽교회 옆에 있는 커버넌트 빌리지에 가서, 아이들이 한 집, 한 집 공손히 방문하여, 어르신 들께 솔방울 장식과 초대장을 전달하며, “메리 크리스 마스!”를 외치고 왔습니다. 외롭게 지내시는 어르신들 께 아이들의 쫑알거리는 소리, 밝고 순박한 웃음소리 와 미소는 오랜만에 갖는 신선한 즐거움이었을 것입니 다. 아이들 또한, 외로우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기쁘 게 해드렸다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뮤지컬 11월초부터 연습을 해온 뮤지컬이 드디어 크리스 마스 이브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그 날을 위해 여러 차 례 있었던 총연습에 아이들을 보내주시고, 도와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공연된 뮤지컬, “All I Want For Christmas”는 김선아 사모가 안무와 총감 독을 맡았고, Jay Chang & Eugenia Chang 교사가 무 대 장식을 총괄했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교사와 부모 님, 교회 스테프들이 협력하여,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 지 않은 은혜 충만한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이 뮤지컬을 통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Q.T. 초등부에서는 2009년도를 아이들의 Q.T.에 주력 하는 해로 방향을 잡고, Q.T. 책 주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말씀 묵상에 관심을 보여 책을 주문하였습니다. 새해에는 휄로쉽교회 초등부 자 녀들이 Q.T.를 하여 가정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변화 시키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1대 1 양육 1월 중순부터 매 주일 5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1대 1 양육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초등부를 졸업 하기까지 기독교 교리의 기본적인 것을 익히고, 구원 의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 구상되었습니다. 영어권 제 자훈련 교사가 아이 하나와 함께 약 15분에서 20분 동 안 기본 교리를 검토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아 이에게는 복음을 확실하게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렇게 확실한 교리와 복음을 갖고 중고등부에 올라가게 되면, 좀 더 깊이 있는 신앙생활에 쉽게 들어서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어 커버넌트 빌리지 방문하여 전달 하고 있는 초등부 학생들.

다가오는 행사 다가오는 행사로는 1월 4일에 제 6회 성경 암송대 회가 있고, 1월 14일에 어와나 클럽 겨울 학기가 시작 됩니다.

초대장 초등부에서는,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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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불을 지피는 양경욱 목사 부부

글,정리-이연일

버지니아 캠퍼스에서 이른 아침마다 기도의 불을 지피고 터를 다지는 양경욱 목사 부부를 만났다. 혼잡 한 거리를 헤쳐 나와 두 분을 만났던 화요일은 유난히도 메릴랜드 캠퍼스에서 회의와 모임이 있는 날이 었다. 양경욱 목사는 늘 하던 대로 회의에 참석하고 이른 아침부터 동반해서 나온 사모는 회의시간 내내 중보기도실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간구하고 기도하다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2008년 9월부터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휄로쉽교회 느낌이 어떠셨나요? 양경욱 목사: 김원기 목사님과 처음 만나 인터뷰를 할 때 아주 신선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과 얘기를 하면서 제가 한국에 돌아가서 사역할 경우, 다음 세대를 목회할 때 도움이 되고 배울 수 있는 면이 많겠다는 기대감이 크고 그 기대감에 맞게 지내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캠퍼스에 오시는 성도님들의 대부분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곱고 순수하며 영혼을 사랑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참 사랑하실 만 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가 강한 교회라고 느껴집니다. 메릴랜드 캠퍼스에 자주는 못 오 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은혜가 풍성한 교회, 기름부으심이 있는 교회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곳에 서 목회할 수 있도록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수연 사모: 학교를 졸업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교회를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으로 주신 약속이 예쁜 교회를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얼굴이나 교회의 모습이 예쁘다는 것 이 아니라 성도님들의 바탕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예쁜 교회를 주신다는 것을 말씀한다는 것을 알았 습니다. 예쁜 성도님들과 함께 ‘한우리반’ 교사 여섯분 가운데 한사람으로 사역하고 있는데 가르친다기 보다는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가운데 오히려 더 은혜를 받습니다. 듣는 분들은 성경 말씀에 대한 갈급함 이 생기고, 교사들은 가르치기 위하여 기도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나옵니다.

목회자로서의 소신을 말씀해주세요 양경욱 목사: 제가 아는, 저를 만났던 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싶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살아간다는 간증을 듣는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또 성도를 온전히 하나님의 신부로 들림받게 하고 싶은 나름대로 의 소신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셨나요? 양경욱 목사: 저는 전라남도 함평의 아주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초가지붕이 기와지붕으로 바뀐 것이 제가 6학년때였고, 전기 들어온 때가 열일곱살 무렵입니다. 지금도 하루에 3회만 차가 다닐 정도로 깊은 시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수원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 3학년 때 다니 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새벽예배 후 저를 찾으시더니 가난한 저에게 차비를 주시면서 목회에 관심 이 있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아니라고 거절을 하였지요. 나름대로의 답변은 사회 경험을 쌓고 가겠다는 변명이었지요. 한 달에 한 번씩 3회에 걸쳐 물어보셨는데 그때마다 “아니요” 라고 답을 하 고 자신을 합리화 했는데 어느 날 성경 요한계시록을 읽는데 하나님의 강한 도전을 받고 흰 옷 입은 자 들이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는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일반 백성인 나도 이렇게 좋은데 하나님의 종이 되어 헌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으랴 하는 마음이 들어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 학을 졸업한 뒤 침례신학대학을 마치고 전도사 안수를 받고 지금까지 굳건하게 걸어오고 있습니다.

두 분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셨어요? 양수연 사모: 남편이 찬양사역자가 되기 이전에 제가 먼저 찬양을 시작하였었지요. 저와 찬양사역자들이 남편이 군 복무하는 부대로 찬양집회 위문공연을 갔을 때 처음 만났지요. 그 후 남편은 제대를 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저희 찬양사역자들을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제가 다니던 교회에 남편도 같이 출석을 하였고 남편을 유심히 살펴보시던 담임목사님이 중매를 하셨어요. 그리고 데이트를 하다가 결혼을 하였습 니다.

목회자가 되신 뒤 어떤 분야의 사역을 하셨나요? 양경욱 목사: 신학대학 중에는 파트타임 찬양사역자로 사역을 하였습니 다. 졸업후에 찬양 전임사역자로 섬기다가 CBS 기독교 복음방송국 주최 창 작복음 성가제에 ‘글로리아 찬양 선교단’으로 출전을 하였는데 대상을 받았 습니다. 곡목은 ’주를 위해’였지요. 입상을 하면서 6년 동안 찬양사역자로 바쁘게 활동하였습니다. 그 후 주일학교 분야에서 1년간 사역을 하다가 미국을 오게 되었어요.

양수연 사모: 저는 주로 청년 사역을 하였습니다. 청년들이 아주 많 은 교회였는데 그들이 교회에 정착하고 하나님을 만나는데 밑거름이 되는 사역을 5년 동안 하였습니다. 청년들을 향한 열정이 있기에 그 사역이 즐 거웠고 감당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 안에서 서로 이끌어주고 함께 성장 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놀라운 그 멋을 봅니다.

양경욱 목사: 담임목사님께서 외부 집회에 많이 초청되어 가시는데 그때 마다 저를 함께 데리고 다녀 주셨습니다. 함께 찬양인도를 하고 찬양을 부르면 서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시간이 지났는데 그렇게 찬양사역을 오래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남아있는 한 찬양 사역자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새로운 환경에 도전도 하고, 공부도 하기위해 미국 유학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결정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에 오신 뒤의 생활은 어떠셨어요? 양수연 사모: 2004년 1월에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는데 미주리 로 도착했어요. 그곳에서 1년간 지내다가 버지니아의 리버티 신학교 로 와서 M. Div. 성경과 교회사역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남편 이 공부하는 동안 평범하게 두 아이 양육하면서 지냈습니다. 전에 섬 기던 교회에는 교인이 많지 않아 제가 유년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사 역을 하였습니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양경욱 목사: 저는 4형제의 막내로 자랐고 현재 부모님과 형제들 모 두 한국에서 살고 계십니다. 저희 가족은 아내와 두 아들이 있습니다. 큰 아들이 현재 5학년으로 이름은 양일곤이고, 작은 아들은 현재 4학년이고 이름은 양동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두 아들이 되기를 바라며 세상의 기준으로 보는 잘난 것보다 주변을 돌아보며 사람답게 사는 자녀가 되기 를 기도합니다.

목사님이 보는 사모님의 장점과 사모님이 보는 목사님의 장점을 얘기해주세요. 양수연 사모: 저는 목사님과 결혼 한 후 예전과 같은 좋은 감정이 아직도 식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순수한 모습이 변치 않았습니다. 얄팍하게 생각하여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도 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결같은 자세가 좋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좀 더 리더쉽이 강하여 추진력 있게 나가실 수 있으면 하는 점입니다.

양경욱 목사: 제 아내의 장점은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너그러움과 넉넉함입니다. 영적인 면은 물론 다른 부분에서도 상대에 따라 도전을 주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는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폭넓은 교제를 합니다. 현재는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 한우리반 교사 가운데 한 사람인데 새로 교회를 찾아오는 분들 또는 예전에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잠시 쉬신 후 오시는 분들을 맞이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모님이 가장 잘하는 음식은 무엇이라고 얘기할 수 있으세요? 양경욱 목사: 저희들은 많은 것을 차려먹는 가정이 아닙니다. 손님이 오시면 반찬 수가 좀 늘어날 까? 평소에는 아주 간단한 식단으로 살아가지요. 예전 린치버그에 살 때는 신학교가 있는 만큼 목사님들 이 아주 많이 오시고 또 가시고 하는 일이 많았어요. 오시면 짐을 운반해주고 살림을 옮겨주고 서로 도와 주고 아내는 그런 날 육개장을 끓여서 대접하는데 잡수시는 목사님들께서 식당에서 드시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곤 했지요.


버지니아에서 주로 사역하시는 목사님으로서 메릴랜드 캠퍼스와 버지니아 캠퍼스의 다른 점을 무 엇이라고 말하실 수 있으세요? 양경욱 목사: 분명 뭔가 다르다는 느낌은 있는데 정확하게 이것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네요. 메릴랜드는 풍성한 부잣집 집안의 막내아들 같은 기분이고 버지니아는 왠지 사랑 많이 받지 못 하고 사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직까지 저에게 휄로쉽교회하면 소극적인 사고인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버 지니아 캠퍼스만 떠오릅니다. 메릴랜드에 계시는 분들은 당연히 메릴랜드 캠퍼스가 우선적으로 생각나 겠지요? 그러나 감사한 것은 모든 교우 분들이 사모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음에 참 좋습니다. 특히 요즘 진행되는 TOJ (희망의 날) 기도회를 보면서 서로가 함께 자라는 기분이어서 좋습니다.

목사님이 보시는 부흥은 무엇인가요? 양경욱 목사: 제가 생각하는 부흥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으로 침체된 자신의 영이 살아서 생수의 강이 넘치고 생명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분들, 예수님을 잘 몰랐던 분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나타나 신자나 비신자나 영혼이 살아나고 그리스도의 교회 안팎으로 사람이 살아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목회하면서 어려웠던 일이라면 무엇을 얘기하실 수 있나요? 양경욱 목사: 현재 부목사로서 목회 생활 6년차인데 심적인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는 없으나 성도들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음 단계가 잘 보이지 않아 침체되고 주저앉을 때 안타까움이 있습니 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들림받게 하는 사역을 감당하여야 하는 부담이 있을 때가 나름대로 안스럽고 어려운 시간이지요.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목회자가 어디 있을까 마는 양경욱. 수연 목사 부부는 특히 사람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곳곳에서 묻 어났다. 겨울을 녹이는, 영혼을 달구는 열정 의 소유자이기에 그 주변은 늘 따뜻하고 편 안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리고 하나 님도 그 품을 푸근하게 유지시켜 주시리라고 믿는다. 그의 찬양이 배고픔을 느끼는 한. 짧 은 해는 어느덧 중천을 넘어가려고 기웃거린 다. 내일은 또 새로운 희망의 해가 떠서 우리 를 즐겁게 그리고 감사하게 이끌어줄 것을 믿는다.


(위줄 왼쪽부터) 김덕규 장로, 조경혜, 김흥수, 김정원, 김흥석, 김진광 목사, 김성호, 이인영 목사 (가운데줄 왼쪽부터) 최인석, 최민정, 조우현, 김재희, 김혜은, 홍영은, 박성연, 임현리, 박경희, 김서영 (아래줄 왼쪽부터) 황준성, 황지은, 이해숙, 김미진, 김원기 목사, 김혜정 사모, 김왕대, 김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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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하여 글 - 김왕대

먼저 나의 가족을 소개하자면 나보다 나이는 아홉 살 아래지만 키는 삼인치 큰 딸 같은 아내 김원희 (Kristine )와 다섯 살된 귀엽고 활발하며 말광량이 딸 김정민(Samantha), 그리고 두 살된 저와 똑같이 닮았 다고 하는 고집불통 아들 김정철(Abraham)이 있다. 우 리가 결혼한 지 7년. 2001년 9월 5일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신혼 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와서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이, TV에서 목격한 미국을 놀라게 했던 911사태를 목격하면서 미국을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던, 잊을 수 없는 결혼 기념일을 매년 보낸다. 휄로쉽교회 온 지는 이제 한 4개월이 되었다. 휄로 쉽교회를 오게 된 동기는 순전히 나의 결정이 아닌, 아 내의 결정에 오게 되었다. 휄로쉽교회를 오게 된 동기 를 생각해보면 ‘자마(JAMA: 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라고 하는 집회를 다녀와서부터였 다. 우리 가족은 매년 가족 휴가를 다니면서 항상 느끼 는 것은 재미있게 잘 쉬었다보다는 힘들고 오히려 고 생만 하고 돌아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아마도 어떤 부 분에서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힘든 것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해는 처음 자마 집회에서 받 은 은혜와 도전을 생각해서 아내에게 6월달에 필라델 피아에서 있었던 자마 집회를 소개하였다. 올 휴가는 의미없이 그냥 놀기위하여 휴가를 가기보다는 우리의 영적 삶에 도움을 위하여 가기로 결정하고 갔다왔다. 자마 집회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

다. 아내는 자마 집회에서 구속받지 않고 예배속에서 자유롭게 찬양드렸던 것을 나누었다. 그리고 설교 말 씀을 통하여 미국에 이민 온 우리 한국교회를 세운 하 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도전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종종 나눔의 대화에서 아내가 몇 년 동안 고민하고 갈등했던 예배속에서 구속받지 않고 하나님 께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를 찾기를 다시 얘 기했다. 아내는 한국에 있으면서 다녔던 여의도 순복 음교회 예배를 많이 그리워했고, 아내에게는 친정교회 라 할 만큼 아내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교회였 다고 했다. 또한 수요성경 아카데미에서 신앙의 자람 을 많이 얘기하곤 했다. 별로 마음에는 내키지 않았지 만 4년 동안 예배드리던 교회 예배 대신 다른 몇 군데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었다. 하지만 아내의 영적 갈 급함은 채우지 못하였다. 메릴랜드 주 안에 이민 교회 는 많지만 아내의 영적 갈급한 마음을 채울 교회를 찾 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여의도 순복음 교회같은 교회를 집 가까운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교회가 바로 휄로쉽 교회였다. 휄로쉽교회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교회였고, 청 년시절에 몇 번 학교에서 예배드릴 때 예배를 드린 적 도 있었다. 그래서 휄로쉽교회를 아무 생각 없이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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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교회 오신 방문자 종이를 적고 난 후, 예배실 안에 들어갔다. 발을 드리자마자 느꼈던 것은 장로 교회에 서 드리던 예배와는 전혀 다른 교회들이 말하는 열린 예비가 너무나 놀랄 만큼이나 차이를 느꼈다. 거기에 다 교인들이 너무 많아서 부담이 들었던 것도 있었다. 나는 청년시절에 교회 밖에서 이루어졌던 선교모임 (Para-Church)들을 통하여 자유롭게 예배드리며 훈련 도 받아왔었지만, 진정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익 숙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예배를 마치고 집을 향하여 가면서 아내는 예배속 에서 정말 자유롭게 예배를 드렸다며 너무 기뻐하였다. 아내는 휄로쉽교회에 다니기로 나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결정을 하였다. 나는 그때부터 불평을하기 시작 하였다. 나의 불평의 내용은 대강 이런 것들이였다. 지 금 현재 다니던 교회와 맡고있었던 책임들, 정든 교회 교인들, 휄로휍 교회 45분이나 되는 먼 거리, 그리고 너 무 교회가 큰 것들 등이었다. 나도 아내를 많이 맞추려 는 편이지만 이번 만큼은 너무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 에 결정을 한 것 같아 불평도 하였다. 집에 도착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먼저 내 가 아내에게 불평한 것을 생각해보니, 결론은 4년 동안 신앙의 삶과 은혜를 나누었던 교회에 정든 목사님, 교 인들이었다. 다른 교회를 가면, 또 다시 사람들을 만나 야되는 불편함이 나를 아내에게 불평하게 함을 깨달았 다. 아내가 결정한 것에 못 마땅했지만, 잘못된 교회를

에게 소개하였다. 휄로쉡교회를 소개받은 아내는 교회 가 어디에 있는 지도,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도 못 한 채, 아내 나름대로 휄로쉽교회 웹사이트로 통하여 교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저녁을 하기 싫다며 버거킹에서 저녁 을 먹자고 하였다. 집을 나가면서 컴퓨터 노트북을 가 지고 나왔다. 왜 컴퓨터 노트북을 가지고 나오냐고 물 었더니, 버거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휄로쉽교회 웹사 이트에 들어가서 예배시간과 거리를 알아보자고 하였 다. 저녁을 먹으면서 찾은 정보를 보면서 오는 주일은 한 번 휄로쉽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자고 하였다. 나는 아내에게 거리가 너무 멀다고 하여 불평하였다. 그리 고 다른 교회를 찾아 보느라고 다니던 교회 예배를 드 리지 못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갔고, 교회에서 맡 은 일도 있고 해서였다. 아내와 나 사이에 교회 결정하는 것이 문제거리가 되어버렸다. 나의 성격이 싸우는 자체를 싫어하는 성격 이고 아내와 교회 결정 문제 때문에 말 다툼하기 싫어 서 속 마음으로는 ‘한 번 가 봐라! 교회가 멀면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한 두 번 다니는 것은 쉽겠지만 거리를 무시 못할 걸……’ 그래서 그 오는 주일 날이 되 어 2부 예배를 참석하였다. 차를 주차하고 교회로 향하 여 가는데, 밖에서부터 찬양 악기소리가 들려왔다. 교 회 안에 도착하면서 항상 피해갔으면 하는 곳은 새로 교회 오신 방문자 종이를 적는 곳이었다. 할 수 없이 새

오이코스 목자들이 보여주는 율동의 모범. 그런데 이 부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24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과 이웃에게 덕을 쌓는 것임을 배웠다. 휄로쉽교회를 다니면서 나 자신에게는 세 가지의 목적이 생겼다. 첫 번째는 나 자신도 자유로운 예배속 에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삶에서 변화 받는 것이다. 두 번재 는 미국에 이민 온 지 벌써 25년이 되었지만, 진정으로 믿음의 친구가 없는 것이 언제나 나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의 친구를 찾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에게 영적인 부분과 삶의 부분에서 부족한 점을 지 적하며 도와 줄 수 있는 멘토를 찾는 것이다.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비록 나의 결정으로 오게 된 휄로쉽교회는 아니지만, 정든 교회를 떠나서 휄로쉽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 이 있다고 믿는다. 다음에 있을 훈련과정을 기대하며,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훈련받고, 준비된 주님의 편신도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결정한 것이 아닌 이상, 그냥 아내의 결정을 따르기로 하고 일단은 휄로쉽교회를 다녀보기로 결정하였다. 4 년 동안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만나 사정을 얘기했다. 목사님께서 이해를 잘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그 교 회에서 맡은 책임도 잘 마무리 짖게 되었다. 휄로쉽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에 대하여 배우고 알 아갔던 시간들을 생각해보았다. 한우리반을 통하여 공 짜 점심도 얻어 먹으며, 휄로쉽교회 비젼과 목적, 들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찬양, 그리고 재미있게 인도하시던 집사님 외 섬기시던 분들을 기억해본다. 아마도 처음 교회에서 만나게 된 분들이기 때문인지 교회에서 지나 가다 만날 때마다 반갑기만 하다. 두번째 들었던 ‘확신 반’이 솔직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 번 교회를 옮길 때, 그리고 선교모임들을 통하여 배웠던 것이라 조금은 지루했던 것이 생각난다. 너무나 중요한 반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세 번째 들었던 ‘새가족반’은 구체적으로 휄로쉽교회 교인으로 써 알아야 할 것들을 배운 것과, 반에서 형제는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인지, 인도하시는 장로님께로부터 많은 질 문을 받기도 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휄로쉽교회를 짧은 4개월이지만 다니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그 중 세 가지를 나누자면, 첫 번째로 자유 로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 회복 경험 을 통하여 삶이 바뀌는 것을 체험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 두 번째는 많은 이민 교회 교인들이 교회 를 섬기기를 원하는 열정들은 많다. 그런데 체개적으로 준비된 영적 훈련이 없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면서도 영적으로 매마른 것을 많이 보게 되며, 또한 나 자신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휄로쉽교회는 체계적으로 준비 된 영적 훈련을 받은 교회라 기초가 튼튼하다는 것을 배우며, 동시에 나 자신이 정말 축복 받았다고 깨닫는 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한국식으로 대강

새가족반을 대표하여 김흥수 교우가 수료증을 받고 있다. 25


휄로쉽의 새 가족이 되기까지 글 - 김흥석

올 봄에 휄로쉽교회에 등록을 하고 지금 새가족 환 영회에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함 께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과 정 내내 준비하시고 이끌어주신 목사님, 장로님, 집사 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가족은 2006년 9월부터 휄로쉽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형 가족이 모두 휄로쉽교회에 오 래 전부터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자연스 레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꼭 어떠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만 등록교 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조금은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등록은 안하고 예배에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기를 1년 반. 그 와중에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더 욱 마음과 몸은 바빠져만 갔습니다. 꼬박 주 7일을 일 하다보니, 제 자신의 주일예배 모습이 점차 사라져갔 고, 하나님보다는 비지니스가 저의 생활전부였습니다. 그러다 올 3월, 부활절 주간에 지금의 오이코스 목 자님의 인도로 아내와 아이가 먼저 오이코스에 참석하 게 되었습니다. 몇 주 뒤, 같이 오이코스에 참석하면 서 말씀과 기도, 교제를 통하여 이전의 신앙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열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등록과정에 참여하였습니다. 일터에 갔다가 부리나케 교회로 달려 와서 예배보고, 그 이후에 있는 과정들을 참여하는 것 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지마,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믿음을 점검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 치고 나니 오히려 “한번쯤 자기 자신의 믿음 생활을 다 시금 점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라고 생각하 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들을 통하여 믿음도 ‘제대로’ 믿을 필요가 있고, 말씀, 기도, 찬양도 이젠 ‘제대로’ 해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덥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았던 나의 신앙생활의 모습 속에서 시들었던 나의 믿음을 다시 보게 하시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 해 준비하신 약속의 땅을 위해 믿음을 허락하신 하나 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마음껏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도 좋았습니다. 한우리반, 구원확신반, 목적반, 그리 고 새가족반을 거쳐가면서 리드하시는 사역자분들의 열정과 헌신이 ‘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렇게 까지 열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라고 느꼈고, 많은 감 동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피로 사신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 문에 이제까지 조용히 드려왔던 나만의 예배의식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내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이번 새 가족반 과정에서 제 나름대 로 배운 것은 ‘순종’입니다. 아무 말 없이 드러내지않 고 교회 일에 헌신하고 봉사하시는 많은 분들을 보면 서, ‘내가 많이 낮아져야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 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앞 에서 순종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 기회를 통해 내 삶 또한 순종하는 삶이 되어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낮아져야 하는 나의 모습이 지만, 아버지께서는 그저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차츰차츰 믿음이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모양 으로 변화시켜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의 삶 은 분명한 목적이 있고, 저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 광이 드러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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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낙엽 이창섭

허리 휜 햇빛 지팡이 의지하여 길모퉁이에 우두커니 설 때 권태로움에 몸 떨어 나무는 빠알간 잎 하나 토해내고 황급히 가지는 바람을 부른다. 낯선 바람 낙엽을 꾸짖는다. 저 멀리 부끄러워 빨간 얼굴 더 빨개져서 몸 굴려 나뭇가지 올려다 본다. 빠알간 몸의 고향 빠알간 마음의 고향 그 자리는 그렇게 영원인 줄 알았는데... 지조높아 우뚝 선 나무낙엽을 외면한다. 낯선 바람 낙엽을 더욱 꾸짖는다. 더 멀리 어느새 내 머리카락 하이얀 서리들이 서로 친구하니 나는 낙엽 사이로 부는 빠알간 바람을 잡아 살며시 반으로 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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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습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하나님의 일꾼들을 보내주셔서, 그 분들을 통해서 제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 셨습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섬김을 받고 회복했듯이, 이제 제 가 누군가를 섬길 차례인 것 같습니다. 스데반 사역이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내 아픔과 동감하며, 이해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 전문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을 위해서 조금 이나마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며 섬길 수 있길 원합니 다. 나의 약한 부분까지도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 와 영광을 드립니다.

내가 섬길 차례 글 - 장지원

나를 훈련시키신 하나님 글 - 정지영 (VA)

조경진, 배영선, 장지원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 크고 감사해서, 저도 하 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어 기도하고 있던 중에 스 데반 사역반 광고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쳐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떠나질 않아, 장로님께 신청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 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힘든 사람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기는 마음이 있으니, 더 기도해 보고 시작하라 고 했습니다. 새벽 예배 후, 스데반 사역책을 받고 보니 마음이

저는 스데반 사역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주변 분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도대체 이게 뭔가 하고 어리둥절했었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 습니다. 스데반 사역반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의 모든 상처를 깨끗이 치유해 주시고, 자유하 게 해 주셨습니다. 제 나이 서른일곱. 참 나름대로 많은 일들을 겪었습 니다. 어렸을 때는 술 먹고, 행패 부리며, 어머니를 힘 들게 하는 아버지가 두렵고, 밉고, 공포스러웠습니다. 시집을 가서는 고부간의 갈등이 심해서, 남편과 눈만 뜨면 싸우고, 이혼하자는 말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남 편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어서, 집 값도 몇 달을 못 내고,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겼습니다. 몇 년 전, 어머니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6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황당했습니다. 지금 은 혼자가 되신 아버지는 자식들 눈치만 보시고, 불안 정한 하루하루를 사시지만,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그때는 이 거친 파도와 폭풍 같은 상황들 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었는데, 제 가 이 날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정미영, 이양희, Minja Cha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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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

설레여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자마자 읽기 시작했습니 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그저 저에게 긍휼한 마음 이 있는 것 같아 시작했는데, 책을 읽는 순간, 내가 혼 신을 다해 할 수 있을지, 내 가족도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을지, 걱정과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포기했을 겁니다. 하지 만 예전과는 조금은 바뀐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제가 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생각을 주시면서 마음이 평안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에게는 생각지 도 않은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만두려 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이들을 통해 저에게 용 기를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은 성경 말씀을 이야 기해 주고, 우리 막내는 따라 다니며 엄마가 화내지 않 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고, 큰 아이는 동생을 봐 준다 고 교회를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저는 하 나님께서 저를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단련 하신다 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저를 바꾸신 것과 저를 통 해 하실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기쁨과 함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에게 새벽기도를 통해, 부흥 회를 통해 많은 귀한 은혜를 주시고, 확인시켜 주셨습 니다. 그래서 시험을 받았을 때, 예전 같으면 투정을 부렸을 텐데, 이제는 시험 주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저 의 신앙이 자라 이런 시험도 주시는구나 하고 말입니 다. 저에게 이 사역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저 의 약점을 훈련시키시고, 먼저 기도하게 하시고, 차근 차근 준비시켜 주신 것 같습니다. 또 제가 하나님께 가 까이 갈 수 있도록, 남편과 아이들까지 적극 협조해 주 었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기도하시는 분들까지 붙여주 셔서, 제가 부족한 것을 하나씩 채워 주시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제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아무 것 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인 도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늘 깨어있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조 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할 수 있 다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좋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여러모로 격려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 이윤주

처음 이 스데반 사역 에 대한 소개를 받았을 때, 저는 내 자신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가 생각하며 많이 망설였습 니다. 하지만 나와 내 가 정을 위해서 해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고 시작한 것이, 어느덧 끝까지 마 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너희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 처럼 사랑하라” 라고 하신 말씀을 진 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인생에서 여러 가지 상처와 관계와 환경을 통해 힘든 시간들이 그냥 상처와 아픈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상처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물론 아직도 그 과정 속에 있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통해 진심으로 내가 아프지 않고는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울어 주지 못함을, 확실히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 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아픔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 사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또한 상대방의 감정과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는 방법들을 배우면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 니며, 상대방의 감정 그대로 우리가 인정하고 이해하 며 받아줘야 함을 배웠고, 상대방에게 내 의사를 전달 하는 방법을 연습함으로써 남편과 아들의 관계에서 도 움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누군가를 도우려면, 제가 우선 건 강한 자아와 관계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저 또한 제 가정 과 주변 관계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저를 돌아봐야 하며, 하나님 앞에 한 발 나아가야 하는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부 터 끝까지 하나님과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저는 부 족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사랑을 가지 고 기도하며 나아가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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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미움을 녹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글 - 유정미

성령 충만함과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LPTD 여성 32기를 3박 4일 다녀온 후, 내가 어려웠을 때 지혜롭 지 못하여 늘 가지고 있었던 미움의 마음이 주님의 사 랑으로 녹아버리고, 거기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도전과 설렘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저는 삼남매의 둘째 딸로 힘든 일 없이, 부모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했으며, 미국에는 12 살 때 이민을 오게 되어 미국 문화를 더 편안해 하며 살았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는 섬기는 교회 목 사님의 소개로 지금의 아이 아빠와 결혼하게 되었습니 다. 그러던 중 건강하게만 보이시던 시아버님이 쓰러지 셔서 병원에 가 보니 위암 말기라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던 말과 함께, 1년을 넘기시지 못하실 거란 믿지 못 할 진단을 듣게 되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시는 권사 님이신 시어머니는 아버님을 위해 하시던 가게를 정리 하시고, 간호와 기도에 전념하시기를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어머님은 따로 살림을 하고 있는 저희 부부 에게 시댁으로 들어와, 얼마 남지 않은 시아버지의 남 은 생애를 같이 보낼 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때 전 이미 임신 초기였고, 입덧을 시작한 터라 힘들어서 직장 나가는 것도 벅찬 날들이었기에, 시집 으로 들어오라는 말씀 아닌 명령이 너무나도 야속하게 만 들렸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여위어 가시는 아버님 을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시어머니와 아프신 시아버님을 모시고, 아직도 대학생인 남편의 여동생, 아가씨와 함께 살 것인가 하는 낙심과 슬픔에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시집으로 들어간 후에도 눈물과 한탄으로 매일 밤 남편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임신 3개월이 체 안 될 때 쯤, 깜깜한 새벽에 아직 낯선 시집에서 불 도 킬 새 없이 방을 나와 화장실로 가는데, 내 얼굴 앞 에서 커다란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너 무 놀라, 순간 다리의 힘이 빠지더니 쓰러지고 말았습 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히 보니, 몇 주 전 아가씨 생일로 선물 받은 커다란 풍선이 바람이 빠지며 둥둥

떠다니다가 화장실 앞에 와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땐 별 생각 없이 다친데 없으니 괜찮겠지 하고 흘려버렸 습니다. 몇 주 후, 산부인과 의사가 여느 때처럼 태아 의 심장 소리를 찾다가 계속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음을 알려주며, 더 자세한 검사 후 ‘유산’이라는, 솟아 나오 는 눈물로 듣기조차 힘들었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잔병 한 번 치르지 않았던 저는 처음 누워보는 병원 침대가 그렇게 차갑고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D&C 수술을 하고 남편과 집으로 돌아온 저녁이었습니다. 서 있는데 제 다리에서 무엇인가 흘러내리는 걸 느끼 고는 내려다보니 많은 양의 피가 점점 빠른 속도로 흘 러내리고 있는 거였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비명을 지 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따라 들어온 남편도 저 의 하반신이 피범벅이로 물들은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까지 잃게 되나 하는 급한 마음으로 응급 실에 전화해 담당 의사와 금방 통화 할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 끝에 수술할 때 남아있던 물질이 있어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남편과 저를 안심 시켰습니다. 처음엔 울면서 내가 많은 잘못을 했구나 하면서 내 자 신이 미웠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따뜻한 위로 한 마디 안 해주시던 아가씨가 미웠고, 시집 식구 모두가 미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슬픔으로 눈물이 그치질 않는 남편을 볼 때, 귀한 생명을 몇 달 사이 둘씩이나 잃어야 하는 그를 생각하 면 좀 더 시집에 잘 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저는 점점 피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몸이 많이 회복되어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일 할 때에 는 밝았던 얼굴이 퇴근시간만 되면 점점 굳어지면서, 집 가까이에 가면 시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근처만 수십 번을 돌고, 또 돌다가 큰 심 호흡을 한 번 하고는 집 안에 들어가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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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아버님 병세가 더욱 나빠지셨고, 결국엔 마지막으로 병원에 다시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 님이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에도 저는 ‘Senior Accountant’로 일하는 직장 핑계로, 힘들어하는 남편과 함께 병원에 있어주지 않았습니다. 회사로 전화가 걸 려와 받았을 때, 남편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님 주님 곁으로 편안한 모습으로 가셨다”고 하면서 말을 끝까 지 맺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죄송한 마음 과 슬픈 마음에 흐르는 눈물로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 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후에는 더욱 더 악화된 시집과의 관계 때문에 대화가 거의 없는 분위기였고, 시댁의 모 게지(mortgage)를 내어드리고 있던 터라 어머님은 시 댁을 나와 사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님 의 뜻을 저 버리고 남편과 함께 시댁을 나오게 되었습 니다. 반대하시는 집도 장만하고, 아이도 다시 가져서 낳고, 보란 듯이 잘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급 보석 모으는 걸 좋아하셨던 시어머 님은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이것저것이 부족하니 얼마 큼의 돈을 내 놓으라며 당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결 혼생활 5년 동안 말대꾸 한 번 하지 않았던 저는 쌓이 고 쌓였던 마음속의 생각을 터질 듯이 모두 어머니께 쏟아 부어 버렸습니다. “어머니! 저희 집에 뭐 맡겨 놓으신 거 있으세요? 저희는 아이까지 잃으며 희생하고 도와 드렸는데, 고 맙다는 말 한 마디 하셨어요? 우리 아기가 두 살 반 될 때까지 가까운데 사시면서 한 번이라도 봐 주신 적 있 으세요? 남편이 잦은 출장에 집에 없는 날이면, 몇 달 밖에 안 된 아픈 아기를 데리고 출퇴근할 때, 한 번이 라도 도와주신 적 있으세요? 우리 집 장만할 때 도와주 신 것 있으세요? 아니면 같이 기뻐해 주셨어요? 왜 평 온한 우리 집에 오셔서 빚쟁이처럼 달라고 또 달라고 하세요?” 어머니께서는 화가 단단히 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내 아들 이렇게 하라고 고생해서 키운 줄 알아? 내가 죽으면 무덤에도 올 생각하지 마라!” 그러시고는 가 버 리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의 일 년 동안 어머니는 저 희와 관계를 끊으셨습니다. 저는 그때도 어머니께 잘못한 걸 반성하기는 커녕, 어머님이 본인의 형제분들하고도 관계를 끊고 사시는 분이니, 마음이 맞지 않으면 교회 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저렇게 관계를 끊으시는구나 하며, 계속해서 난 피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나쁜 며느리인 저도 사랑하시는 주님이 둘째 예찬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둘째를 힘들게 낳 던 날, 연락을 끊고 계시던 시어머니와 아가씨가 병원

에 의 의 에 준 이

찾아오셔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가씨는 그 때 저 첫째 딸 하영이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20분 거리 가까운 동네에 살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하나밖 없는 고모를 보자, 2살 반이었던 하영이는 고모가 첫 선물에 마냥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전 많 회개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남몰래, 남편 몰래 계속해서 시집 때문에 첫 아이를 잃었다고 하는 생각 을 거의 매일 한 번씩 하는 저를 보며 제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TD에 가게 되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통곡하며 보잘것 없는 나 때문에 예수님이 고통받고 피 흘리신 주님의 큰 사랑을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 습니다. 어머님과 시누이를 그만 미워하게 해 주세요 하며 기도 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제가 시누이가 된 입 장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현재 뇌출혈로 하룻밤 사이에 31살의 건강했던 그 녀가 뇌 손상으로 겨우 생명만 유지하며, 일 년이 지나 도록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저의 하나 밖 에 없는 라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느냐 고 하나님은 저에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남동생 이 결혼하고 6개월도 안 되어서 아내인 라나가 쓰러졌 을 때, 저는 외아들인 동생이 결혼을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고, 안수집사 였던 라나는 시간 날 때마다 섬기기에 힘쓰고, 여러 단 기선교를 다녀오며,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넓고 깊은 주님 의 계획과 뜻을 헤아릴 순 없지만, 라나가 그렇게 된 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조금씩 주 님께 가까이 가게 하신 것도 주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이웃도 내 식구처럼 섬기 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를 진정 자매로 생각 하는 동생 와이프 라나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느냐 하 고 반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라나에게 동생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의 시집에서는 그런 사랑을 너에게 주길 바라느냐 하는 생각을 같게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있을 영적 싸움을 하여 승리해야 하 는 것은 저의 숙제이지만, TD에 올라가 너무 많은 사 랑을 받고, 배우고, 돌아온 저는 마음속에 미움은 녹아 없어지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만이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아이들 핑계로 피해왔던 섬김, 봉사,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늦었지만 지금부 터라도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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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서서 생일 케잌에 촛불을 켜 놓고 “Happy Birthday Jesus!”라고 예수님께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드 렸다. 이날 우리는 생일 케잌 촛불을 두 번 껐다. 한 번은 예수님 생일 촛불이었고, 또 한 번은 우리 315 오이코스에서 중보하며 후원하고 있는 이안나 선교 사님께서 때 마침 방문하셔서 생신을 맞이하여 함께 생신 축하를 해드렸다. 맛있는 케잌과 커피를 들며 우리들은 돌아가며 지난 한 해 동안 오이코스를 함께 했던 소감들을 나 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어른만 세어도 15명 가량 이 모였는데 나눌 차례를 보니 내 차례가 끝에서 두 번째였다. 좋은(?) 말씀들은 다 다른 분들이 먼저 할 테고 무슨 말을 나누어야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순간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오이코스 안에 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이었다. 여러 가지가 있 겠지만 몇 가지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가장 큰 뉴스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조상우/부미 성도님의 딸인 조앤이 아토피에서 무척 많이 회복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를 시작하며 우리

Happy Birthday Jesus! 글 - 유종우

지난 12월 20일 토요일 저녁에 315 오이코스 목 자이신 방정훈/인선 집사님 가정에서 조촐하지만 기 쁨과 감사가 넘치는 풍성한 315 오이코스 크리스마 스 모임이 있었다. 모임 시간인 오후 5시가 되자 한 가정, 한 가정씩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새로 우리 오이코스를 방문하신 우철윤/반디 성도님 가정도 오 시고, 정대영 장로님 가정과 조진숙 전도사님도 자 리를 함께 하셨다. 각 가정에서 정성스럽게 준비된 음식들을 ‘potluck’으로 함께 나누며 (음식들은 정말 일품이었 다!)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선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심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예배를 함께 드리고, 나중엔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모두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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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코스에서 가장 우선으로 삼았던 합심 기도 제 목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 보아도 별 차 도가 없다고 눈물짓던 조앤 엄마, 아빠의 이야기들 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의사를 통하여서도 일 하시 겠지만 우리들의 기도를 통하여 조앤이 회복되기를 우리 모두가 갈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조상우 형제님의 주일 성수 다짐과 함께한 교회로 의 컴벡도 모두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 어진 귀한 열매 중 하나이다. 황준성/지은 성도님 가정의 새가족반 졸업도 주 목할 만한 열매이다. 황준성 형제님은 이곳 MD에서 알게 된 대학 시절 옆 학과 한 학번 선배님이시다. 우연히 휄로쉽교회를 찾아오셨다가 주차장에서 만 난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까지 한솥밥(?)을 먹고 있 다. 교회는 매주 나오셨지만 새 교우 등록 과정은 천 천히 들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작년에 저희가 속한 오이코스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전도 대 상자들이나 오이코스에 속하지 않으신 분들을 ‘VIP’로 초청해서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었는 데, 그때 초청 받고 오신 것이 인연이 되어 올해 연 초에 315 오이코스가 새로 세워지면서 한 오이코스 에서 계속하여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새 교 우 등록 과정도 마쳐서 지난 12월 중순에 휄로쉽교 회 등록교인이 되셨다. 이 열매 뒤에도 우리 오이코 스 식구들의 든든한 중보기도가 있었다. 비슷한 열매로는 정근덕/윤희 성도님 가정의 경 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정근덕 형제님 가정은 교 회 보다 오이코스를 먼저 와보신 경우였다. 신앙생 활을 가지고 고민하던 중에 함께 말씀 안에서 진지 하게 삶을 나누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 서 감동을 주셔서 우리 오이코스에서 계속 함께 신 앙생활을 하고 계시다. 또 한 가지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 가정의 뉴 저지 집이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켓에 내놓은 지 하루 만에 제 가격에 매매가 된 것이다. 사실 메 릴랜드로 이사를 왔던 2007년에도 집을 팔려고 기 도하며 노력을 무척 많이 했음에도 집이 매매가 잘 되지 않아 1년간 렌트를 주고 나서 지난 4월에 다시 집을 마켓에 내놓았다. 사실 5월말에 몽골로 단기 선교를 떠날 예정으로 있었기에 마음이 급했고 집 이 매매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난다면 가 있는 동안 도 마음이 자유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매우 갈급한 상황이었다. 4월 21일 토요일 아침에 집을 마켓에

내놓고 그날 저녁에 오이코스 모임 때 오이코스 식 구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며 함께 기도했었는데, 바 로 다음 날인 4월 22일 주일날 저녁에 우리가 내놓 은 제 가격에 주겠다는 꿈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 었다. 그 결과 우리 기도한대로 몽골로 떠나기 3일 전에 매매를 끝낼 수 있었다. 그 당시의 필요와 오늘 날의 금융위기를 볼 때 정말 앞서 가셔서 예비하시 고 실수 없이 신실하게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린다. 가장 최근의 큰 뉴스라면 이희숙 집사님이 새로 시작한 ‘장금이네’ 반찬 사업의 대박 등을 꼽을 수 있다. 늘 건강과 경제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것이 기 도 제목이었던 이희숙 집사님을 위해 우리 오이코 스 식구들이 정말 열심히 합심해서 모일 때마다 기 도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친한 사람에게는 주문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너무 맛있어서 우린 정 말 주문하고 싶은데... 이제는 들어온 주문들을 차질 없이 잘 처리하게 해달라는 것으로 이희숙 집사님 의 기도 제목이 바뀐 것을 보며 우리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날 나누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이 런 열매들 뒤엔 우리 오이코스 식구들이 합심하여 전심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했던 중보기도가 있었다 는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하신 일들이 많았음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함께 나누는 가운데 모두가 정말 기뻐하고 감사하 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 315 오이 코스는 우리가 합심하여 전심으로 기도하며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임상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우리 휄로쉽 교우들 모 두 다 이러한 합심 중보기도의 꿀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 리라 (렘 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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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소개

숨겨진 땅 다게스탄 부산의 절반 인구임에도 복음이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민족들이 무려 38개나 살고 있는 민족박물관과 같은 다게스탄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행하고 계신다. 전쟁과 이슬람의 영으로 아파하는 다게스탄 에 하나님께서는 음부의 권세를 파하는 교회를 세우시고 일하고 계신다. 숨겨진 땅 다게스탄에 신속한 복음화가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기대해본다. 글, 정리 - 유종우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국토의 4분의 3이 산지이며 남부 지역은 높은 산악지대이고 북부 지역은 평원을 이루고 있다. 국토는 남한의 절반 크기이며, 인구는 약 220만 명(부산 인구의 절반 정도)이고 이렇게 작은 땅에 38 개의 민족이 살고 있다. 공식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하 고 있으며, 38개의 민족들이 각각의 토착어를 함께 사 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서쪽으로 중국을 지나 러시아 남쪽 흑해 와 카스피 해를 가로지르는 카프카스라는 산맥이 있다. 이 카프카스 산맥의 북쪽을 북카프카스 지역이라고 하 는데, 이곳 북카프카스에는 러시아의 7개 자치공화국, 170개 민족, 6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러시아와 아랍의 다리이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자리에 위 치한 북카프카스는 오랜 역사 가운데 기독교, 정교회 이슬람이 만나 민족 분쟁과 영적 충돌이 끊임없이 일 어나고 있는 곳이다. 러시아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90% 이상이 이슬람이며, 러시아에 의한 기독 교 강제 개종의 상처로 그들의 정체성을 오히려 이슬 람에서 찾고 있다.

[다게스탄의 종교] AD 4세기에 비잔틴과 그루지아의 영향으로 기독교 를 상당히 일찍 전해 받았으나 7세기경 아랍과 이란의 영향을 받아 16세기에는 거의 이슬람화 되었다. 현재 이 땅에는 1300개의 이슬람 사원과 33개의 이슬람 신 학교가 있다. 그러나 이 척박한 땅을 섬기는 선교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참으로 일꾼이 부족한 땅이다. 다 게스탄은 갈급한 영혼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분들을 기 다리고 있다.

이 북카프카스 지역의 동부에 ‘산악의 땅’이라는 뜻 의 다게스탄 공화국이 있다. 이 다게스탄은 그 이름의

지난 겨울 다게스탄을 다녀오신 분이 한 가정을 방 문했을 때 현지인의 어깨를 주물러 드린 적이 있었습 니다. 어디서 배웠냐고 묻길래 어머니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서 배웠다고 했더니 다음 날 초등학교 교사인 현지인 친구를 데리고 왔었답니다. 그리고는 그 분에 게 그 친구도 주물러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자기 친구 에게 그 분을 소개하기를 "이 분은 까레이(Korea)에서 왔는데, 어머니가 맛사지 닥터시고, 이 분은 그 어머니 한테서 배운 분이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부모님 어깨 다 주물러 보셨죠? 이처럼 다게스탄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기엔 작은 섬김이라고 생각하 는 일들에도 매우 고마워하며, 그들을 찾아주는 것만 으로도 기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게스탄에 서는 누구든지 그리고 무엇으로든 작은 일로도 섬길 수 있다고 합니다. 추수할 곡식은 많지만 일꾼이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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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탄 공확국'의 건설을 공포하였다. 이 는 다게스탄을 이슬람 국가로 세움으로써 이 지역에 있어서의 러시아 영향력을 분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분리 독립 세력은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폭탄테 러로 러시아에 대항하고 있다. 얼마 전 다 게스탄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으로부터 온 기도 편지의 일부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이곳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최근 반정부단체의 지도자들은 경찰과 공 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개적인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지하드(성전: 이슬람 신앙을 위하여 비 이슬람교도에 대한 약탈전쟁을 벌이는 것을 의미함)는 모든 무슬림의 의무이며, 순교자가 되는 것은 알라의 가장 큰 자비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은 너희 경찰들과 모든 공직자들이 무슬림이라면 우리편 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알라를 위해 싸우고 너희들은 돈을 위해 싸운다. 우리 가 죽으면 천국에 가지만 너희들이 죽으면 지옥에 간 다. 금년에는 전략상 아무런 테러도 일으키지 않았지 만 내년부터는 지금까지 있었던 것보다 더 큰 전쟁을 벌일 것이다. 경찰들과 경찰청을 공격할 것인데 폭탄 을 사용하고, 매복하기도 하고 수류탄 발사기도 사용 할 것이다.”

다게스탄의 ‘말리(Maali)’라는 마을. 중앙에 이슬람 사원이 보인다.

땅 다게스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게스탄의 역사] 1804년에서 9년 동안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 있었 던 전쟁 후에 다게스탄은 러시아에 편입되었고, 그 영 향으로 러시아 정교회가 미약하나마 일부 전파 되었지 만, 다게스탄의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다게스탄의 수 많은 종족 집단들이 언제부터 다게스탄의 산악지대에 정착해 살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그들 중 일부는 BC 10세기 이전부터 살았다는 고고학적 증 거가 있다. AD 7세기에는 아랍의 지배를 받았고 사람 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1830년에서 40년까지 다게스탄의 2대 이슬람 종교 지도자였던 샤밀을 중심 으로 러시아에 대항하여, 소수민족들이 연합하여 독립 을 위해 투쟁하기도 하였다. 1921년 러시아는 다게스탄을 ‘다게스탄 자치공화 국’으로 지정하였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집단농장 시스템 도입을 위해 다게스탄인들이 강제로 이주되었 고, 재정착되기도 하였으며, 1960년대 초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평지에 산악 사람들을 정착시키려는 정부 정 책이 계속되었다. 1990년대 초, 다게스탄에서 또 다시 독립운동이 일 어났고, 이 운동은 1991년 4월 최고조에 달했으며, 러 시아 연방공화국 54개국 가운데 39개국의 국가가 다 게스탄의 독립주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활동 이나 역할에 있어서는 성과가 없었다. 1998년 4월 다 게스탄 분리주의 세력은 1999년 12월 러시아의 총선 과 2000년 3월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안해 질 러시아 정부를 틈타 바사예프 체첸 반군 사령관을 중심으로 다게스탄 영내를 침입 신생 독립국 '체첸 다

또 어떤 청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저주받는다. 예전에는 그 들이 옳았으나, 그러나 무함맏은 마지막 선지자이므로 우리는 당연히 그를 따라야 한다." 그리고 체첸의 자살폭탄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은 알라의 자비로 가족들을 떠난 것이며, 그들 의 선택은 옳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즘 이곳에도 TV등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의 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변화가 있는가 하면, 한편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의 활동도 더욱 강화되는 것 같습니다. 이곳의 정치, 사회적 부패가 반정부단체 들의 테러활동을 부추기고 있고, 사회적 안정을 위협 하고, 일반 평민들의 삶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 다. 러시아 내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인 이곳에 만연 된 불의가 사라지고 정의가 회복되도록, 그리고 정치, 사회적 안정과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틀에서 전쟁을 정당화하며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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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해서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최근에는 물질주의 까지 들어와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곳이지만 이곳 다 게스탄에 한 줄기 빛과 같은 기쁨의 소식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 한국인이지만 미국 국적을 가지고 계신 어느 목사님이 교회 개척팀을 이끌고 이곳에 오셨었습 니다. 개척 멤버로는 20명의 청년들이 왔었고, 다게스 탄 국립대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기도하며 전도하고 제자를 양육하며, 3년 만 에 현재 200명 이상의 규모인 호산나 교회를 개척하였 습니다. 그리고 1998년 그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헌신된 자와 20명의 젊은 청년들이 연합하여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을 때 이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이 오게 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호산나 교회가 계속해서 감소 추세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 도할 때 교회는 다시 일어나게 되고 계속해서 성장하 게 될 것입니다. 선교 부흥이 다게스탄의 교회들에게 도 흘러가 선교하는 교회로 일어나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다게스탄에 신속한 복 음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복음이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38개의 민족들이 살 고 있는 숨겨진 땅 다게스탄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행하고 계신다. 전쟁과 이슬람의 영으로 아파하 는 다게스탄에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된 주님의 제자들 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음부의 권세를 파하는 교회를 세우시고 일하고 계신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19) 부산의 절반 인구임에도 38개라는 엄청난 민족들 이 살고 있는 민족박물관과 같은 다게스탄. 숨겨진 땅 다게스탄에 신속한 복음화가 일어나길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 1. 다게스탄을 묶고 있는 이슬람과 전쟁의 사슬을 끊어주시고, 다게스탄을 섬길 일꾼과 중보자들을 일으 켜 주소서. 2.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교회인 호산나 교 회를 붙잡아 주시고, 교회를 삼키려는 정사와 권세, 이 슬람의 영을 파하여 주소서.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하 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소서. 그래서

(위) 고데칸(Godekan) 마을의 일을 의논하고 결정하기 위해 모이 는 중심 장소로 다케스탄의 어느 마을이든 고데칸이 있다. 마을 원 로들이 고대칸에 모여 있다. (중간)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여인들 (아래) 젊은 여성들은 보다 덜 보수적인 옷차림이다.

38개 민족에게 나아가 자생적 민족 교회를 세우며 초 원길의 마지막 관문인 카프카스창을 복음화하고, 예루 살렘까지 전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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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빌립보에서 루디아와의 만남

(17)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에서 하루 밤을 보낸 뒤 네압볼리에 도착했다. 드디어 유럽에 발을 디뎠다. 그들은 네압볼이에서 길을 재촉하여 ‘비아 에그나티아’ 길을 따라 빌립보로 들 어갔다. 그곳에서 바울은 부유한 상인,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된다. 유럽에서의 첫번째 열매이 자, 빌립보 교회의 시작인 되었다. 글 - 오장석

현재의 그리스

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어두워 진 후에도 역시 육지를 확인할 수 없기에 항해를 계 속할 수 없었다. 오늘날 사모드라게 섬의 서쪽 끝자락에 ‘카마리오티사 (Kamariotissa)’라는 항구가 있 는데, 아마도 바울이 당도한 1세 기경에는 보다 북쪽에 항구가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모드 라게 섬 항구 근처에는 이방신들 을 섬기는 이방 신전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밤마다 의식이 행해 졌는데 남녀노소, 신분에 상관없 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바울이 사모드라게 섬 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려 이 의식을 바라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바울이 당도한 새로운 땅은 이방신들 로 가득한 곳이었고, 따라서 바울은 도시 어느 곳에 서나 이방신들의 영향을 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 다.

현재의 터키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아시아를 떠 났다. ‘사모드라게’라는 섬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마게도냐의 네압볼리에 당도하였다. 드로아 에서 네압볼리는 약 15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데 사모드라게는 그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 사모드 라게 섬의 정상은 1마일 가까이 되기에 바다의 배 들이 멀리서도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당시의 배들은 육지를 끼고 항해를 해야 했

(아래 왼쪽: 사모드라게 섬의 전경, 아래 오른쪽: 사모드라게 섬에 서 발견된 여러 신전들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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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이 도착했던 네압볼리, 현재는 그리스의 ‘카발라(Kavala)’ 항구 도시의 전경.

력을 선택하였다. 따라서 로마 제국을 외적으로부 터 보호하기 위해 넓은 제국의 어디나 신속하게 군 대를 움직일 수 있는 효율적인 도로망이 필수적이 었다. 또한 로마의 도로는 정치적인 선전에도 한 몫 을 하였다. 큰 전쟁에 이기게 되면 그 전쟁에 승리 한 장군의 이름을 도로에 붙여 널리 그 공적을 치하 하였다. 그런데 로마의 도로는 군사적, 정치적 용도 이외에도 이웃도시들과의 교역과 문화뿐만 아니라 종교적 교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로마의 건 축, 과학, 예술, 사상, 패션 등이 잘 갖추어진 도로 망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어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 내었다.

사모드라게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바울 일행은 다시 배에 올라 마게도냐의 네압볼리로 이동하였다. 네압볼리는 ‘새로운 성읍’이라는 의미를 지닌 도시 로 당시 빌립보를 위한 항구 도시였으며, 오늘날의 ‘카발라(Kavala)’로 여전히 지금도 그리스 마게도 냐 지방의 항구 도시이다. 아쉽게도 네압볼리에는 현재 남아 있는 고고학적 유적들이 거의 없다. 바울 은 이 항구 도시에서 말씀을 전하지 않고 바로 빌립 보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없었기 때문 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게도냐로 빠르게 가기 위해 항구 도시들은 그냥 지나쳐 갔는지도 모르겠다. 많 은 경우, 바울은 항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도시로 여겼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 하다가” (행 16:12) 네압볼리에서 빌립보까지는 약 10마일 정도 떨 어져 있는데, 당시 두 도시는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라는 도로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스트라보’ 가 ‘그리스인들은 신경 쓰지 않았던 3가지, 즉 도로, 상,하수도를 로마인들은 중요하게 여겼다’고 언급 할 정도로 로마인에게 있어서 도로는 무척이나 중 요한 부분이었다. 로마의 도로는 무엇보다 군사적 인 용도로 건설되었다. 로마 제국은 방어적이기보 다는 공격적으로 영토를 넓혀갔으며, 새로이 점령 한 지역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견고한 성벽을 쌓기보다는 군대를 신속하게 이동하여 배치하는 전

현재의 그리스

현재의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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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린디시)까지 그리스인 식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비아 아피아(Via Appia)’, 그리스 마케도니아를 관 통하는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 등이 있다. ‘비아 에그나티아’는 BC 146년에 무역과 군사 용으로 건설된 길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 불)에서부터 로마까지 연결되어 있는 도로이다. 즉 현재 터키 이스탄불에서 네압볼리, 빌립보, 암비볼 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펠라를 지나 알바니아 의 아드리아 해를 건너 이탈리아 브린디시까지 연 결되며, 브린디시에서 로마까지는 ‘비아 아피아 (Via Appia)’로 연결되어졌다. 모든 길은 로마로!

로마의 도로 제작 방법은 비교적 독특하였다. 먼저 도로가 될 곳의 땅을 1~1.5m 깊이로 파고 큰 돌을 가지런히 놓은 뒤 그 위에 자갈을 깔고 화산회 로 굳혔다. 일정한 크기의 돌판을 서로 물리도록 깔 아 움직이지 않도록 짜 맞추되 가운데 부분을 볼록 하게 만들었다. 때에 따라서는 길 양쪽에 배수구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도로의 폭은 보통 5∼10m, 산 악지대인 경우는 2∼2.5m 정도인데, 제일 중요한 목적이 군사적인만큼, 사륜마차가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도록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가로수는 심지 않 았다. 로마를 중심으로 여러 도로들이 뻗어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로마와 동부 아드리아 해의 염 전도시를 연결하는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 그리스를 향한 타렌툼에서 브룬디시움(오늘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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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게도냐 지경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당시의 숙박 방법은 크 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자들의 경우, 그 들이 자주 방문하는 도시들마다 자신들이 머물 수 있는 빌라가 있었다. 둘째, 고위 관리들의 경우, 그 들은 방문하는 지역 시민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따라서 그 지역의 부자들 집이나 지 역의 특정시설에서 머물 수 있었다. 셋째, 일반인의 경우, 친척이나 친구의 집에서 머무는 것이다. 바울 도 훗날에는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그런데 바 울은 이곳에 처음으로 방문하고 있지 않은가? 아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경 우에는 여인숙과 같은 곳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리 좋은 시설은 아니었다. 지저분하고 무엇보다 안전 하지 못했다. 언제든지 누구에게 자신의 물품을 분 실당할 수 있었다. 우리는 때로 오늘날의 모습에 비 추어 생각하기에, 타지에서 외국인으로 바울 일행 이 겪게 되는 현실과 그들의 힘든 하루하루의 삶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 니” (행 16:13) 빌립보는 군사적, 농업적 중심의 도시였지, 상업 적인 도시가 아니었던 탓에 유대인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회당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회 당’은 단순히 건물의 개념만이 아니라, 유대교 믿음 의 공동체도 함께 일컫는 말이었다. 유대인의 전통 상 ‘회당’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자가 최소한 10명 은 모여야 하는데, 아마도 당시 빌립보에는 유대인 남자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안식일이 되어 바울 일행은 ‘기도처(프로슈케 아)’를 찾았다. 그런데 왜 바울 일행은 기도처를 찾 기 위해 성문 밖 강가로 나갔던 것일까? 당시 유대 인들의 여러 ‘기도처’는 둥그런 모양으로,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지붕이 없는 형태였다고 한다. 그 리고 바다 해변 근처나 강가 근처에 주로 지어놓았 다. (아마도 정결 의식 때문에 흐르는 물 주변에 지 어놓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 을 바울이었기에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아 성문 밖 강가를 나갔고, 거기에 모인 여자들을 만날 수 있었 다. 흥미롭게도 남자에 대한 언급은 여기에도 없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 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 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행 16:14)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바울 일행은 비아 에그나티아를 따라 동쪽의 ‘네압볼리 성문’을 통과하여 빌립보로 들어갔을 것 이다. 본래 빌립보는 ‘작은 샘들’이라는 의미를 지 닌 ‘크레미데스(Kremides)’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마게도냐 왕 빌립 2세(알렉산더 대왕의 부 친)가 크레미데스 서쪽에 위치한 ‘팡게오 산 (Pangeo)’에서 금광을 발견한 뒤 BC 358년경에 도시의 이름을 ‘빌립보(빌립의 도시라는 의미)’로 개명하고 주민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빌립왕은 이곳에서 1년에 1천 달란트 이상의 금을 채취했다 고 한다. BC 167년 이후 로마의 영토가 되었고, BC 42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비아 에그 나티아를 따라 출전하여 빌립보에서 브루투스 일파 를 무찔렀다. 이 전투 이후 로마의 퇴역군인들이 빌 립보로 이주하여 도시는 또다시 확장되었고, 아우 구스투스 황제는 빌립보를 로마의 식민지로 승격시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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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되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들은 중요한 전 도대상의 한 부류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두아디라’ 는 소아시아에 있는 도시이며 (정확한 위치는 첫 페이지 지도 참조) 염색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이 는 그곳에서 발견된 돌에 새겨진 기록들로 잘 알 수 있다. 여러 가지의 무역 조합 기록들이 발견되었는 데 그 가운데에서도 직물(섬유)산업에 관련된 것들 이 많았다. 두아디라가 당시의 섬유산업에 있어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하겠다. 직물산업 가운데에서 특별히 염색 조합들이 매우 번영하였다. 가장 품질이 좋은 자주색 물 감은 뮤렉스 조개에서 추출 하였는데 동부 지중해 연안 에서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었으며, 두로가 자주색 물감 생산지로 유명했다. 두아디 라는 이 자주색 물감을 직물 에 염색하여 더 많은 이득을 남겼다. 자주색 물감 자체가 뮤렉스 조개 비쌌던 점을 감안하면 자주색 염색을 한 옷감의 값은 더욱이나 더 비쌀 수밖에. 그래서 자주색 옷감은 왕족이나 귀족과 같이 신분 이 높거나 부자에 한해서 누릴 수 있는 품목이었다. 그런데 루디아도 특별히 자주 장사를 하였다고 누가는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루디아가 평범 한 장사꾼이 아니라 값 비싼 자주 장사로 국제무역 을 하는 부유한 상인이었음을 엿보게 한다. 왜냐하 면 당시의 자주색이 지닌 의미와 가치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누가는 루디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소 개를 하면서 그의 남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루디아가 과부여서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니면 루디 아가 자주 장사의 대표 위치에 있었는지도 모르겠 다. 당시 마게도냐에 있어서 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여 자의 위치가 독립적이었으며 때로는 높은 위치에서 자유 스럽게 일하기도 하였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 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 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 라” (행 16:15) 바울이 루디아에게 복음

을 전하자,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기와 더 불어 자기 집에 속한 사람들이 다 함께 세례를 받았 다. 그리고 루디아는 바울 일행에게 자기의 집에 머 물라고 권유하였다. 당시 루디아가 빌립보로 이주 해 왔는지, 아니면 두아디라에 살면서 사업상 빌립 보에도 머물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루디아가 자주 장사를 할 인물이라면 부유한 거상 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렇다면 여러 곳에 집이 있는 것 또한 당연하였다. 복음을 받아들인 뒤, 루디아는 바울에게 어디에 거처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을 것이 고, 어느 여인숙에 머물고 있는 바울 일행의 형편을 루디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 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외국인인 바울 일행이 강도 의 표적이 되기에 얼마나 쉬운 위치에 놓여 있는지 등을 알고 있는 루디아는 자신에게 귀한 복음을 전 해준 바울 일행을 어떻게 해서든지 대접하고 싶었 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머물도 록 청하였는데, 처음에 바울은 그 제의를 거절한 듯 하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떠한 보상을 바 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늘 주지하고 있었으며, 자신 이 복음을 전하려 다니면서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 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루디 아도 물러서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누가는 당 시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바울은 “나(루디아)를 주 믿는 자로 인정하거든 내(루디아) 집에 들어와 머물라” 는 루디아의 강한 권유를 받아들이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 머물렀다. 이것이 유럽에서의 첫 열매요, 빌 립보에서의 가정교회 시작인 것이다. (아래 왼쪽) 전통적으로 루디아가 세례를 받았다고 여겨지는 장소. 그러나 실제적인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아래 오른쪽) 기념 교회 내부 바울과 루디아의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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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추천도서

추천도서 I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저자: 필립 얀시

책 소개 은혜 없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 ECPA 선정 ‘올해 책’을 6회나 수상한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필립 얀시가 은혜 없는 이 시대를 향한 최고의 선물! 천부적인 저술가로서 우리 탁월하고 영향력 있는 저자인 얀시는, 은혜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에게 그 은혜의 의미를 참신하고도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최고의 전하는 시대의 우리들

작가 소개 1977년 첫 책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1400만부 이상이 팔렸다. ECPA가 수여하는 '올해의 베스트셀러'를 두 차 례나 수상하고, 미국 기독교도서 우수 저서상을 여섯 번이나 받는 등 그의 글쓰기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검증을 거쳤다. 그의 책은 한국에서도 많 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을 비롯하여 「아, 내안에 하나님이 없 다」. 「내 눈이 주의 영광을 보네」, 「하나님 나는 당신께 누구입니까」,「내 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등은 이미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의 필독서들로 자리잡았다.

추천도서 II 육이 죽어 영이 산 사람 저자: 후쿠시게 다카시

책 소개 일본 가고시마 출생으로 유명한 히타치(HITACHI)에 입사, 30여 년간 근무하며 전자 카이로(回路) 1급 공학자 자리까지 올랐다. 세 계 최초의 초박형(超薄形) LCD를 미국과 함께 개발할 때 일본팀의 주역이었고 LCD-TV 검사장치 등 여러 건의 세계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일본정부와 NHK가 공동으로 하이비전을 개발할 때 참여했고, 히타치 공장이 들어서는 나라마다 기술책임자로 파견됐다. 한국인 아내 장혜림(張惠林)과 결혼한 후 히타치를 사직, 맥(Macc)이란 회사에 스카웃 되어 새로운 전자제품을 개발하던 중 2004년 2월 21 일 스키장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수술 후 21일간 혼수상태였으 며 이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크리스천을 바르 게 깨우고 일본선교를 위한 선교단체 갓월드(하나님나라 : www.godworld.jp)를 한국에 설립했으며, 이 사역을 이루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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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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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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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역박람회가 있던 날. 부서별로 홍보하는 부스를 돌다 가 주방부가 눈에 뜨인 왕정식 집사. 자원한 사람들이 없는 것 을 보고 무슨 방인데 사람들이 안 들어가나 싶어 갸우뚱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무슨 방인데...., 사람들이 싸인을 안 해서 내가 했어. 그게 뭐하는 방이야?” 아내 왈, “음식하는 부엌인데..” 왕정식 집사, “나는 안방, 사랑방, 거실 그런 방인줄 알았 는데..” 2. 방정훈 집사가 인도하는 오이코스에 교구 담당 정대영 장로 부부가 참석을 하였다. 교회 소식을 전하는 시간에 “요즘 메릴랜드 캠퍼스가 많이 부흥합니다. 특히 EC가 눈에 띄게 많 이 성장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이희숙 집사, “어머, ‘이씨’가 그렇게 많이 와요. 다른 성은요?” 이어지는 광고.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가 메릴랜드 캠퍼 스에서 오후 7시에 있습니다.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뒤따르는 질문, “그럼 1부 예배는 몇 시에 드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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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월 1월 1월 1월 1월 1월

4일(일) - 18일(일) 영어회중 필리핀 단기선교 (MD) 4일(일), 11일(일) 예배학교 (MD / VA) 14일(수) AWANA 개강 (MD) 16일(금) - 17일(토) 금식수양회 (MD / VA) 19일(월) - 21일(수) 중보 기도학교 (MD) 22일(목) - 24일(토) 중보 기도학교 (VA) 28일(수) 겨울학기 수요성경대학 개강 (MD/VA)

손목에 대사를 써 넣어본 적 있으세요? 없으시면 말~을 마세요. (크리스마스 뮤지컬에서)

NCFC-2009-January  

기쁨과 평강의 크리스마스 2008 제 63차 새가족반 양경욱 목사 인터뷰 세례식 - 새로운 삶의 시작 외 스데반 사역 - 내가 섬길 차례 외 2009년 1월호 제 17권 제1호 32 오이코스 - Happy Birthday Jesus! - 유종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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