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 2013년 9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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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288-2782

VOL.64 www.kcrc.or.kr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2013 09·10

특집

북한 경제, 어디로?


CONTENTS Vol.64 September / October 2013 02 칼럼

|

민화협 창립 15주년을 맞으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민간 차원의 가교가 될 것

| 김덕룡

04 화보 COVER STORY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재회를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로 선정된 할머니가 아버지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국민의 뜻을 모아 겨레의 마음을 모아

행복한 통일을 열어가겠습니다

08 특집

|

북한 경제, 어디로?

·북한의 경제정책, 성공을 위한 과제는?

·달라진 중국의 대북 인식, 북중경협에 변수로 작용할 것

·거스를 수 없는 시장화 진전, 북한판 ‘도이모이’ 필요하다

·개성공단, 근로자ㆍ외화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다

| 조동호 | 조현태 | 이영훈

| 최수영

24 남북교류협력 현장

· 분배 모니터링 위해 방북한 민간단체가 전하는 최근의 북한은?

| 편집부

28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경성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 부위원장

·“남북 체육교류는 신뢰를 만드는 메신저입니다!”

| 염규현

32 진단

·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재연기 제안의 의미와 전망

·속도 내는 아베 내각의 우경화와 군사화, 어떻게 볼 것인가

| 김현욱 | 신정화

민족화해 2013년 9-10월호(격월간, 통권 64호) 등록번호 영등포, 마00041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 4 동우국제빌딩 4층 전화 02.761.1213 홈페이지 www.kcrc.or.kr

발행일 2013년 9월 2일 발행인 김덕룡 편집인 이경형 홍보위원장 김영만 편집기획위원 공용철, 김용현, 노태호, 오한샘, 윤법달, 정영태, 정은미, 정진아, 조동호 편집장 이운식 편집부 이현희, 염규현 디자인 및 제작 (주)풍경애드컴소풍 070.7433.1123

20


통일을 준비하는 격월간지

62 2030통일론

40 공 PD의 북한 취재수첩

·2013년 9월, 북한 변화의 키워드는

·평화와 상대성

| 김보수

‘교육개혁’과 ‘규제완화’ | 공용철

64 현장

44 지금 북한은

·북한의 스키장 건설과 ‘마식령 속도’

·북중 접경지역을 가다

66 민족화해 네트워크 70 포토 에세이

| 이경형

50 해외통신

· 중국의 대북정책,

74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54 통일교육·평화교육

·한국전쟁 체험담 구술현장에서 찾는

분단 트라우마의 극복과 치유 | 김종군

·사회적 합의 통해

통일교육의 중립성 확보해나가야 | 조정아

76 무대 혹은 스크린

58 길에서 만나는 평화와 통일

· KBS 정전60주년특집 ‘다큐멘터리 DMZ’

DMZ의 생채기를 담다 | 양홍선

‘정상적 국가관계’로 조정하나? | 허재철

민화협 정책토론회

· “동북아 협력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 진희관

46 르포

|

·파국을 향해 치닫는 열차

설국 열차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 | 오한샘

·통일평화교육, 남북 모두의 복지와

안전을 위한 새로운 여정 | 박성용

78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80 독자 의견

24

64

70


칼럼

민화협 창립 15주년을 맞으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민간 차원의 가교가 될 것 김덕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꽉 막혀있던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고

교류와 협력은 북한의 변화와 더불어 남북의 통

있습니다. 폐쇄위기까지 갔던 개성공단은 정상화

합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

의 길로 다시 진입하고 있으며, 이산가족 상봉도

각합니다.

곧 재개될 예정에 있습니다. 북한의 3차 핵 실험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새로운

그리고 정부가 앞장서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튼

변화와 발전의 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너무나

만큼 이제는 정부와 민간이 같이 협력해서 남북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관계의 다양한 지류들을 만들어 내고 나아가 거 스를 수 없는 큰 물줄기를 형성해 나가야 할 것

우리정부가 ‘신뢰’를 통해 남북관계를 새롭게 변

입니다. 개성공단 정상화 과정에서 남북 당국이

화·발전시켜 나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정경분리의 원칙’을 확인했는데, 이러한 원칙이

국민적 지지와 국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일관된

대북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교류를 포함한 남

정책을 추진한 것이 주효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

북 민간교류 전반에 확대되어 나갈 수 있기를 기

여와 곡절은 있었지만 먼 길을 돌아 이제 남북관

대합니다. 민화협을 비롯한 민간단체들도 새로운

계의 정도와 원칙을 확립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

자세로 더욱 진화된 남북협력 모델을 만들어 내

었습니다.

면서 남북 민간교류를 본격적으로 재개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 당국관계가 막혀있더라도 민간 차원 의 비정치적 교류와 인도적 지원은 꾸준히 진행

올해는 민화협 창립 1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민

하면서 통일을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

화협은 1998년 9월 3일 창립이래, 민간차원의 다

치를 마련하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양한 교류협력사업을 통해 통일의 물길을 만들기

그동안의 남북관계의 경색을 통해서 우리는 깨닫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2000년 이후 본격화 된

게 되었습니다. 남북관계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

남북 민간교류가 남북관계의 발전과 국민적 지지

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며, 그런 차원에서 봤

속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남과 북 사이에서, 그리

을 때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다양하게 추진해 온

고 남남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 왔으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02 03

며, 남북관계가 어려운 시기에는 남북 당국의 대

올해 민화협 창립 15년을 맞이하면서 시대와 역

화와 협력을 촉구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사가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남 북관계 환경도 변화하고, 통일과 북한에 대한 국

2006년부터는 북한 산림녹화 사업을 통해 북한

민 의식도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정책도

의 식량난 해소와 한반도 생태계 복원에 기여하

정권의 변화에 따라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측

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남북공동기획 ‘고구려전’

면이 있지만, 긴 눈으로 보면 그 올바른 길을 찾아

등 다양한 문화교류 사업을 추진하여 민족의 동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

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기

화협도 변화하고 있는 통일 환경을 예의 주시하

위한 노력도 함께 했습니다.

면서 남북관계의 발전과 국민통합, 통일기반 조 성을 위해 더욱 분발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확대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

건강한 민관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정부가 남북관

다. 남북관계의 주요 현안과 과제를 중심으로 세

계를 발전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대와 지역, 계층 간에 다양한 남남대화를 진행하

조력자·견제자의 역할을 하면서, 남북관계가 화

였으며, 전문가들과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통일

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문제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국민적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정부 또한 이러한 민

합의가 바탕이 된 대북·통일정책의 방향을 모색

화협 활동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입니

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동안 차별성을 강조

다. 또한,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하며 서로를 멀리했던 보수와 진보, 중도 등 각계

통일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내고 통일의지를

각층이 ‘민화협’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민족문제를

결집해 나가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

진지하게 논의하는 다양한 기회도 마련했습니다.

들이 생활 속에서 통일을 느끼고 상상할 수 있도

또한, 젊은 세대를 비롯하여 국민과 함께 하는 다

록 국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공간을

양한 생활 속 통일의 공간을 만들면서, 통일문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에 대한 국민적 참여와 관심을 높이기 위한 활동 도 적극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민화협 15년의 성과를 잇고 부족함을 채우면서, 새롭고 과감한 도약을 준비해 나가야 하겠습니

부족한 점도 많이 있었지만, 민화협에 주어진 시

다. 국민의 뜻을 다시 모으고 겨레의 마음을 더 넓

대의 요구와 역사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게 열어서 온 겨레가 행복한 통일의 미래를 준비

노력해 온 15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

민화협의 존재와 역할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화보

민화협 창립 15주년

민화협은

국민의 뜻을 모아 겨레의 마음을 모아

1998년 9월 3일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행복한 통일을 열어가겠습니다.

온 겨레의 소망을 담아 결성되었습니다.

01

02

즐거운 통일, 생활 속 통일의 장 통일의 주체는 국민 모두입니다. 민화협은 국민적 지지와 참여가 바탕이 된 통일을 위해 즐거운 통일, 생활 속 통일의 장을 만들어왔습니다. 서대 문에서 임진각까지 5만여 명이 손을 맞잡은 겨레손잡기대회, 평화음악회 와 통일마라톤, 자전거대행진, 통일문화축제, 대학생 캠프 및 청소년 통일 문화한마당을 통해 국민과 함께, 젊은 세대와 함께, 평화와 상생의 통일 미 래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01 1998. 9. 3 민화협 결성식 02 2000 통일맞이 대동제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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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10 차세대글로벌리더 평화통일캠프<DMZ일대> 04 1999 겨레손잡기대회<서대문~임진각, 5만여명 참가> 05 2009 자전거평화대행진<임진각 일대> 06 2012 통일문화축제<임진각 및 DMZ일대>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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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합의로 만드는 통일 민화협은 통일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갈등을 줄이고 국민적 합의와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년 각종 토론회와 간담회,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공동회의, 지역포럼, 부문별ㆍ세 대별 대화 등 다양한 남남대화와 격월간 『민족화해』 발간과 <민족화해>상 선정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 민적 합의와 공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통일에 대한 해외동포의 참여와 역할을 높이 고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도 꾸준히 전개해왔습니다. 국 민 참여와 소통, 합의가 바탕이 된 통일미래, 민화협이 열어가고 있습니다.

07 2008 국제학술회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미래” 08 2006 화합과 상생의 국민통합 토론회 09 2009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공동회의 10 2012 민화협 해외본부 전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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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와 협력의 창 남과 북을 잇는 민간차원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녘 동포들을 돕기 위한 인도적 지원사업을 비롯하여, 북한 산림녹화사업, 민간차원의 남북공동행 사, 남북공동기획 ‘고구려전’ 등 다양한 남북협력사업을 통해 평화와 상생의 통일 미래를 준비합니다. 갈등의 역사를 넘어 화해의 역사를 만드는 길. 국민의 뜻을 모아 겨레의 마음을 모아 행복한 통일 미래 를 여는 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함께하겠습니다.

11 2003 국제평화대회<도라산역> 12 2007 평양양묘장 준공식 및 남북공동나무심기<평양> 13 2001 북한 어린이와 임산모돕기 바자회 14 2002 남북공동기획 ‘고구려 특별전’ 15 2011 북한 취약계층을 위한 인도적 지원 활동


특집 북한 경제, 어디로?

01

북한의 경제정책,

성공을 위한 과제는?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2013년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은 김정은 시대의 국가전략으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였다. 흔히 이번 경제·핵 병진정책을 1960 년대 김일성의 경제·국방 병진정책의 재판이라고 평가한다. 북한 역시 경제·핵 병진정책이 “위대한 수 령님께서 제시하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철저히 구현하여 오신 경제와 국방병진로선의 계승이며 심화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연합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08 09

경제에 초점 맞춰진 경제·핵 병진정책

진하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기 때

그러나 명칭은 동일하게 ‘병진’이지만 내용적으론

문에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이번의 병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일성의 경

진정책이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

제·국방 병진정책은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성

인 대응책”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

장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던 상황에서 한·미·일 삼

가 김정은은 “지금 적들은 우리의 위성과 핵도 두려

각 안보체제의 출범과 중소분쟁의 격화로 북한이 자

워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경제강국 건설의 동음이 세

주적 국방력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

차게 울리고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져 그들의 심

다. 즉 말로는 병진이었지만, 실은 국방에 방점이 있

장 속에서 로동당만세소리가 높이 울려나오는 것을

었던 것이다. 이는 1966년 10월 5일 당대표자회에서

더 무서워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핵보다는 경제건설

김일성이 행한 연설에서도 나타난다. 김일성은 “전

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쟁이 일어나면 다 파괴될 것이라 하여 국방건설에만

그러면 향후 북한의 경제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

치우치고 경제건설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 것도 잘

될 것인가. 시기와 정도의 문제일 뿐 향후 북한이 선

못이며 평화적 기분에 사로잡혀 경제건설에만 치우

택할 경제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내부적으로는 효

치고 국방력을 충분히 강화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

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경제관리 개선에 나서는 것이

다”라고 강조함으로써 경제보다는 국방이 더 중요한

고, 외부적으로는 외부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개방의

상황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확대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제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이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

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핵은 외부로부터 체제를

제이든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효율의 증가가

지키는 힘이지만, 내부를 단단히 결속시키는 동력은

있거나 자본이나 노동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 증가

경제발전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정은

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과 같은 저개발경제에

의 치적은 ‘쌀밥에 고깃국’으로 상징되는 수십 년간

서는 상대적으로 노동은 풍부하기 때문에 경제성장

미루어진 숙제의 해결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을 위해서는 효율의 증가 및 자본의 증가가 필수적

다. 2012년 4월 15일 김정은이 최초의 공개연설에서

인 조건이다.

다시는 주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

이와 관련하여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

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의 병진정책은

험은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생산요소의 양적

나름대로 핵을 통해 정치군사적 안정성은 확보되었

동원에 초점을 두는 외연적 경제성장전략(extensive

다는 판단 아래 경제사회적 안정성을 본격적으로 추

economic growth strategy)으로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초기에는 비교적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으 나, 노동의 투입이 한계상황에 이른 1960년대 중반 부터는 경제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비 효율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구조적

01 지난 5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 을 방문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를 참 관하고 있다.

인 문제점들도 점차 노정되었다. 결국 1960~70년대 동유럽 국가들 역시 현재의 북한 경제가 처한 어려


움과 유사한 문제에 직면했으며, 이에 따라 경제성

요약된다. 사회주의의 핵심인 소유권의 국유, 그리

장을 추동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고 계획경제의 핵심인 중앙당국의 계획을 철폐할 수

동유럽 국가들의 노력은 효율의 증가를 위한 경제

없는 상황에서는 체제 자체의 개혁(reform of the

관리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1955년 소련 서기장

system)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의 개선(improve-

에 취임한 흐루시초프는 베오그라드선언을 통해 기

ment within the system)만이 유일한 대안이었기

존의 소련식 모델과는 다른 사회주의 형태의 가능성

때문이다. 즉,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한 개인 소유권

을 인정하였고,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

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해 미약

회에서는 과거의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함으로써

하나마 노동 의욕을 부추기려는 것이었고, 계획경

새로운 변화가 시도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제공

제체제에서 시장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그 대신 하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1962년 계획경제체제의 효

나의 국정가격 대신 다양한 가격제도를 만들고 기

율성 향상 수단으로 이윤개념의 이용을 제창한 리

업관리에서는 부분적이나마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

베르만(Liberman)의 논문 「계획, 이윤 및 프리미엄」

다. 하지만 이들 조치는 모두 실패하였다. 근본적인

이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에 게재되자 소련과 동

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유럽 국가들에서 경제개혁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

의 문제점은 바로 체제 자체에 있는데 체제는 유지

기 시작하였다.

한 채 일부 개선조치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체제 개혁 없는 개선의 한계

그런데 북한도 과거 동유럽 국가와 흡사한 상황에

그 결과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다양한 경제관리 개

놓여 있다. 북한 역시 ‘우리식 사회주의의 완성’을 내

선조치가 발표되었다. 1963년 동독의 ‘국민경제의

세우며 이제 3대 세습을 시작한 상황에서 아직 본격

계획과 조정에 관한 새로운 체제(New System of

적인 체제개혁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Planning and Coordination of the National

향후 북한의 대내적인 경제정책은 과거 동유럽 국가

Economy)’, 1966년 알바니아의 ‘관리제도의 재조직

들이 보여준 개선조치와 유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Reorganization of the Management System)’,

밖에 없다. 다만 과거 2002년의 7·1조치보다는 범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신경제모형(New Eco-

위와 폭에서 더 진전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며, 관련

nomic Model)’, 1968년 헝가리의 ‘신경제계획(New

분야의 재편과도 연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북

Economic Mechanism)’, 1972년 폴란드의 ‘계획 및

한은 경제의 효율을 제고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관

경영제도의 개선방안(Process of Improvement of

리 개선조치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the System of Planning and Management)’, 1973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예를

년 루마니아의 ‘국민경제의 관리 및 계획상의 개선

들어 2012년부터 시범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알려진

(Improving the Management and Planning of the

‘6·28조치’는 경영권한을 현장에 부여했다는 점에

National Economy)’ 등이 대표적이다.

서 분권화 조치이며, 협동농장의 분조 축소는 인센

그런데 이와 같은 조치들의 내용은 인센티브 제도

티브제도의 강화인 셈이다. 더욱이 2013년 3월 전원

의 도입, 가격제도의 다양화, 기업관리의 분권화로

회의에서 현실의 요구에 맞게 경제관리방법을 ‘연구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10 11

체제전환 이전 동유럽 국가의 경제현황(1989년) 단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불가리아

평균

OECD

1인당 GDP

달러

1,807

2,750

3,214

2,311

2,261

2,469

17,390

투자/GDP

%

29

25

26

30

27

27

20

수출/GDP

%

19

33

35

21

31

28

18

외채

억 달러

408

206

79

5

102

160

183

완성’하라는 김정은의 주문은 북한이 새로운 경제관

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리 개선조치를 연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아직 체제의 본질적인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 지만, 향후 북한이 내부적인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외자유치의 절박함

함께 외부자본 획득을 위한 개방 확대에 나설 것임

한편 동유럽 국가의 경우 자본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이 성공을 거둘 가

중요했다. 동유럽 국가는 상당 부분 개방되어 있었

능성은 높지 않다.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동유럽 국

으며 투자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예를

가의 사례에서 확인되듯 개혁 없는 개선의 한계로

들어 체제전환 이전인 1989년 GDP 대비 수출의 비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며, 핵을 가진 상태에서 대

율이나 투자의 비율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

규모의 외자유치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준이었다. 더욱이 외채규모는 동유럽 국가마다 차이

렇다면 우리의 정책방향도 분명해진다. 경제·핵

가 있으나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

병진정책을 일차적으로는 경제·비핵안보 병진정

아 등 5개국의 평균 외채는 약 160억 달러에 달하는

책, 이차적으로는 개혁·비핵안보 병진정책으로 어

데, 이는 그만큼 외부로부터 자본차입이 많았음을

떻게 전환시키느냐가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의미하는 것이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자본부족 문제가 매우 심각 하다. 그동안 지속된 북한의 경제난으로 볼 때 내부 적으로 축적된 자본은 거의 없으며, 나선경제특구 의 실패, 황금평 경제특구의 정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등으로 외부로부터의 자본유입도 크지 않았 다. 결국 북한은 현재 외부자본 확보에 과거보다 더 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개 성공단 사태에서 북한이 보인 적극성 역시 이런 차

조동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 재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동아시아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통일부·민주평통·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등 남북관계 주요 기관에서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집 북한 경제, 어디로?

01

달라진 중국의 대북 인식,

북중경협에 변수로 작용할 것 조현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현재 북한 경제는 중국과의 관계를 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북한은 안보, 경제, 외교 측면에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의 협조나 지원이 없다면 당장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북한은 외부 세계와 스스로 단절하여 국제적 고립을 선택, 선군정치 아래 식량난, 전력난, 외화난 등 경제가 파탄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탈북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김일성의 약속을 손자인 김 정은이 되풀이하는 것이 북한의 슬픈 현실이다. 북한 경제가 단순 재생산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12 13

은 근본적으로 과도한 군비지출 이외에 개혁·개방

상회담 회의록을 보면 김정일도 중국인의 동북 4성

을 거부하기 때문이지만 경제를 모르는 김정일과 김

얘기를 북한 주민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정은의 현지지도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군부대

점을 지적하고 있다.

는 물론 공장시찰에도 군인들을 줄줄이 대동하고 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원조공여국이다. 그러

니면서 즉흥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군인들은 의미도

나 중국의 대북 원조는 대부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모른 채 받아 적는다. 시장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상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보는 추측에 의존하고 있

태에서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자원배분이 심각하게

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힘닿는 데까지(力所能及的

왜곡되어 ‘비날론’같이 마땅히 퇴출되어야 할 기업이

範圍內)’ 원조를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대북 지

살아나고 있다. 민생개선을 제일로 내세웠던 김정은

원 규모와 형태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외교

도 민생과 관련 없는 놀이동산이나 스키장에만 관심

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한 해 북한에 제

을 보이고 있다.

공하는 무상원조 규모는 3억~4억 달러에 이르는 것 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중 교역에 원조물자가 포함

북 교역 90% 중국에 의존

되어 있을 수 있고 물물교환과 밀수 등 불법거래가

이 같은 북한 체제가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것은 전

누락되는 등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가 곤란하다.

적으로 중국의 도움 때문이다. 북한은 교역의 90%

특히 북중 무역에서 북한 주민이 친척방문차 중국에

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고 중국의 석유와 식량지원

와서 가져가는 물건이 밀무역과 비슷한 규모에 달하

없이는 독자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매년

나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단둥 현지 전문

석유 50만 톤, 식량 10만 톤 정도를 북한에 지원하고

가들은 실제 북중 교역이 공식 통계의 2배 이상 달하

북한 광산개발에 대거 투자하는 등 북한 경제의 명

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대북 원조와 투자규모

맥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시장에

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발표되지 않고 있으며, 중

는 중국산 생필품이 범람하고 있어 북한 경공업 발

국 상무부, 지방정부, 각 기업의 발표와 언론보도를

전의 싹을 자르고 있다. 북한은 이미 중국의 상품시

취합하는 수준이다. 중국의 북한 투자 중 70%가 무

장, 원료공급지로서 고전적 의미에서 중국의 식민

산철광, 혜산동광 등 자원개발과 관련된 투자에 집

지 상태로 전락해가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북한

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중국 경제권이 되었다거나 중국의 속국이 될 것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동북 3성 개발의 일환

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는 하였으나 김정일 입에서

으로 랴오닝성 연해경제벨트와 길림성 창지투(長春

동북 4성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2차 남북정

-吉林-圖們) 개발계획을 추진, 북중 접경지역 개발 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한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 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 방북 시 신압록강대 교 건설을 약속하였고, 2010년에는 김정일의 3차례 방중 직후 황금평과 위화도, 나선 공동개발에 합의

01 북한 나진항으로 이어지는 중국 훈춘(琿春) 취안허(圈河) 통상구에 북 한에서 나오는 트럭의 모습.

하였다. 2010년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북중경 협의 상징’이라고 했던 신압록강대교는 폭 33m, 총


중국 신지도부는 김정은 방중 등 북한과 새로운 대화 채널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북 우호 제스처를 취하겠지만 점차 자국 실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조정할 가능성은 있다.

연장 3.03km, 왕복 4차선의 현수교로 2010년 말 착

창 총리는 북한 핵실험으로 압록강 수질이 나빠졌다

공하여 내년 7월 개통을 목표로 현재 높이가 140m

고 말했다. 지금 중국에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인 주탑 2기가 공사를 마치고 상판을 잇는 공사가 진

치열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북중관계가 특수관

행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나진항과 청진항 등 북한

계가 아니라 일반 국가관계라던가, 북한이 중국의

동해항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금까지 대련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담이 되었다던가,

항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동북 3성의 물동량이 폭

북한의 평화적 붕괴와 한국 주도 통일을 거론하고

증하면서 새로운 항구 확보가 필요하나 두만강에서

급기야 북한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는 중국으로서는 동해로

다. 지난해 60억 달러에 달한 북중 교역도 금년 상반

진출하기 위해 북한 항구 이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

기 감소세로 돌아서고 중국의 대북 투자와 경협 프

다. 현재 북중 접경지대에는 북한의 항구와 광산을

로젝트도 보류되거나 연기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연결하는 교량과 도로, 철도망을 확충하는 공사가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 중 북중

착착 진행 중이다.

교역이 29억 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3.2% 감소하였다. 상반기 중국의 대북 수출은 16억 달러

‘전략적 자산’ vs ‘전략적 부담’ 치열한 토론

로 9.7% 감소하였다. 최대 수출품목인 원유 수출이

그동안 중국은 북한의 불안정을 우려해 북한에 대한

20% 감소하였고 금년 2월과 6월에는 원유 수출이 전

압박에 반대해왔고 북한의 1차, 2차 핵실험에도 대

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대중 수출은 13

북 교역과 경협사업을 확대해왔다. 국제사회의 대북

억 6,000만 달러로 5.8% 증가했는데 이는 석탄(7억

경제제재는 중국의 비협조로 효과가 반감되었고 중

4,400만 달러), 철광석(1억 2,500만 달러), 비합금선

국의 북한 비핵화 의지도 의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철, 납광석 등 광물자원의 대중 수출에 주로 기인하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

고 있다. 중국의 대북 투자도 북한의 군사도발과 개

지고 있다. 중국 내 반북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

성공단 중단사태 와중에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작

데 중국이 UN 안보리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통관검

년 8월 북한 광산에 투자했다가 북한 당국의 계약파

사 강화, 은행거래 중단, 북한 주민에 대한 비자발

기로 큰 손실을 본 시양그룹(西洋集團)을 비롯해 투

급 통제 등 출입국 심사강화 등 북한에 대해 압박을

자자금이나 무역대금을 떼인 중국 기업이 속출하고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단호한 어조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불용 의지를 밝혔고 리커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14 15

이념보다 실리 추구하는 북중경협 이뤄질 것

다는 점, 중국의 대북 경제 진출이 북한의 개혁·개

중국의 대북 경제 진출을 놓고 관찰자들 사이에 상

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환영할 일이라는

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주된 쟁점은 중국의 전

견해도 있다.

략적 의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 북한 경제에 대한

셋째, 북중 경제 관계 확대가 남북경협 및 통일과정

영향, 북중경협과 남북경협 간의 관계 등이다.

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양자가 대체관계에 있다

첫째, 북중 경제 관계에서 정치적 고려가 있느냐의

고 보는 시각과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

문제이다. 중국의 대북 경제 진출은 북한의 안정 및

립하고 있다. 전자는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 심화

대북 영향력 유지라는 외교안보적 고려와 북한 시

는 대북 협상에서 남북경협의 레버리지 약화를 초래

장과 자원을 선점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도

함으로써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주도력을 제약할 가

가 있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중국의 대북 교역과

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북한 내

투자는 민간기업이 주도한 상업적 동기에서 추진되

이권사업 참여나 부동산 투자가 대폭 확대될 경우

고 있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적 의

통일 이후 한중 간 갈등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

도의 진위와 별개로,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중

려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북한의 대중 수출 1~3위

국 의존 이외에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북중 양국의

는 무연탄, 철광석, 비합금 선철로 남북 교역에 대한

전략적 계산과 이해관계 속에서 중국의 대북 접근

대체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북중 교역

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

의 확대가 남북경협의 축소를 상쇄했다는 주장은 사

견이 일치한다.

실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둘째, 북중경협 확대가 북한의 개방 및 시장화 개혁

현재 중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는

을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고 있는 반면, 북

증거는 없다. 중국이 북한을 버리거나 북한 체제의

한 경제의 대중 의존도를 심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중

붕괴를 가져올 정도로 대북 지원을 급격히 줄일 가

국 동북 3성 경제권에 편입될 것이라는 주장이 대립

능성은 거의 없다. 서로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 추

하고 있다. 북중경협 심화는 북한의 경제난을 완화

진하고 있는 북중경협 프로젝트도 계획대로 진행될

하고 북한의 도발행위를 억제하는 긍정적 측면을 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신지도부는 김정은 방

니고 있는 반면, 핵문제 해결과 대미관계 개선에 대

중 등 북한과 새로운 대화 채널을 구축하는 과정에

한 북한의 필요성 약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서 대북 우호 제스처를 취하겠지만 점차 자국 실리

영향력 증대, 남북경협의 상대적 중요성 약화 등 부

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조정할 가능성은

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중국 자본의 대북 진출과 이

있다. 최근 중국 내 대북 인식 변화가 대북정책 변화

를 통한 북한의 시장관행 학습은 장기적으로 북한

로 이어질지는 시간을 두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중국 의존 심화를 경계하는 시각은 남북경 협 중단으로 중국이 북한 시장과 자원을 싹쓸이하 고 있다며 남북경협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 해 북중 교역이 한중 교역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적

조현태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 경제학 박사 이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중국 업무를 맡고 있다.


특집 북한 경제, 어디로?

01

거스를 수 없는 시장화 진전,

북한판 ‘도이모이’ 필요하다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북한에서 시장경제는 화폐개혁 등 정부의 시장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확대되어왔다. 북한 정부는 2009 년 화폐개혁을 통해 시장거래 억제 및 국영상점망의 회복을 도모했다. 또한 교환 한도를 설정하여 상인 계층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영상점망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약 두 달 만에 시장 거래를 허용하고 화폐개혁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민심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오히려 시장화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해주었다. 이는 대중국 소비재 수입이 2009년 화폐개혁 등을 계기로 감소

ⓒ연합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북한의 대중국 소비재* 수입(2002~2012)

16 17

(단위: 백만 달러, %)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소비재

113

195

257

283

274

304

452

307

330

415

568

비중

24.1

31.1

32.4

26.1

22.2

21.8

22.2

25.4

14.5

13.1

16.5

* 관세청의 세계HS정보시스템을 참조하여 HS code 2자리를 기준으로 분류

했으나, 2011년 이후 회복되는 것을 통해 확인된다.1)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시사하듯 생산 정체가 장기화

시장화의 진전은 정보 유통의 확대를 유발하고 있

되고 있다. 경제성장률 추정에 다소 오류가 있다 하

다. 2003년 종합시장 개설 이후, 2004년 무역법 개

더라도 생산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징후는

정에 따른 시장과 대외무역의 연계 강화, 전국적인

보이지 않고 있다.

수송망 구축 등으로 정보의 유통과 확산이 빨라졌 다. 상인들은 전국 지역시장의 수급 현황 및 물가 동

생산 및 무역 정체에 따른 절대적 빈곤 지속

향, 이와 관련된 정세 정보 등을 실시간 파악하고 그

그나마 대외무역, 특히 대중국 무역이 북한의 유일

에 대응하고 있다.

한 생명선이 되고 있다.2) 그러나 북중무역도 북한의

이와 함께 휴대전화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11

자생력을 확보하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년 말 100만 명, 2013년 초 190만 명을 기록하고 있

이는 과거 10년 동안 북중무역에서 나타난 북한의

고, 2013년 말에는 300만 명(총인구의 1/8)에 이를

무역특화지수가 거의 개선되지 않은 데서 입증된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해외통화가 제한되어

전체 대중국 무역 품목 가운데 북한의 수출특화품

있기는 하지만, 외부 소식이 국내로 유입되면 전국

목(수출>수입)은 10%, 수입특화품목(수출<수입)은

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예를 들어

90%, 완전수입특화품목(100% 수입)은 70~80%로

중국과의 거래 또는 남한 방송 청취가 가능한 단파

큰 변화가 없다. 최근에는 무연탄 수출이 늘어 총수

라디오를 통해 입수된 정보는 시장이나 휴대전화를

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면,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수

통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는 실정이다.

입대체를 하지 못하고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 고 있다. 그런데 유일한 생명선인 대중국 무역도 2012년 이후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대중국 무역은 5.4%

01 지난 8월 1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모습. 방직 공들이 옷감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국 경제의존의 심화로 북한 의 경공업 생산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가한 59.3억 달러로 증가세가 크게 둔화했다. 이 는 주로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로 북한산 광물자

1) 북한 시장에서 중국산 물품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대중국 소비재 수입 추이를 통해 북한 시장의 확산을 가늠할 수 있다. 2) 대중국 무역은 북한 전체 무역의 90%(2011년 기준, 남북교역 제외)를 차지한다.


원 수입 수요 감소에 따른 것인데, 2013년에도 유사

로 보인다.

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중국의 대

화폐개혁의 경우에는 애초에 시장가격을 1/100로

북제재 강화 이후 정상적인 무역은 크게 영향을 받

인하하고, 신구 화폐를 1:100으로, 한 가구당 구권

지 않고 있으나, 밀수, 무기거래 등 불법거래는 크게

10만 원을 교환해주면서 그에 맞게 통화를 발행했던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법거래 감소는 북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김정은의 배려금(1인당

한의 통치자금 확보나 미사일 및 핵개발에 어려움이

5만 원), 과거 수준의 임금 및 현금 분배 지불 등으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로 통화발행이 대폭 증가한 데다 이들 통화가 은행 으로 환수되지 않고 시장에서 유통되면서 하이퍼인

물가폭등에 따른 상대적 빈곤 심화

플레이션을 유발했던 것이다. 적어도 정책 추진자들

최근의 물가폭등은 예전에 볼 수 없던 현상이다. 화

의 계획처럼 시장을 국영상점망으로 대체할 수만 있

폐개혁 시기부터 2010년 12월까지의 기간동안 시장

었다면 발행된 통화가 은행으로 환수되어 심각한 인

쌀값이 60배, 달러환율이 80배 폭등하는 하이퍼인

플레이션을 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민

플레이션이 나타났다. 2011년부터 완화되기는 했

들의 환심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지만, 2011년, 2012년 달러환율과 쌀값은 전년 대

한편 2011, 2012년의 물가폭등은 2012년 ‘강성대국’

비 2.5~3배 정도 상승하는 등 물가폭등세가 지속

건설, 김정은 권력승계와 관련된 각종 대규모 프로

되고 있다.

젝트 수행에 필요한 자금 수요를 통화증발을 통해

이러한 물가폭등은 은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충족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세수

상태에서 가격조정 및 재정지출 수요 증가(infla-

확대나 국채발행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지만, 북한은

tion tax)에 따른 통화증발에 주로 기인하는 것으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인해 통화발행을 통해 재원을

북한의 시장 쌀값과 달러환율(2009. 8~2013. 7) 북한 원

환율

쌀값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18 19

확보하고 있다. 이는 결국 주민들의 소득을 탈취하

일상적 거래에도 외화사용 늘어

는 것을 의미(inflation tax)한다. 주민들에게 가시적

거스를 수 없는 시장화의 진전, 생산 및 무역 정체

성과를 보이기 위해 통화증발이라는 수단에 의지하

에 따른 절대적 빈곤, 그리고 물가폭등에 따른 상대

고 있지만, 이것은 다음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적 빈곤 심화 등으로 다수 북한 주민의 미래는 어둡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다. 절대적 빈곤에 더해 상대적 빈곤 심화로 계층 및

첫째, 계층 및 지역 간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더욱

다. 현물이나 외화를 보유할 수 있는 특권계층은 상

이 시장화의 진전과 정보의 확산으로 주민들의 비판

대적으로 실질소득이 늘지만, 소규모 상거래에 의존

의식도 형성되고 집단저항으로 표출될 가능성도 커

하는 일반 주민들의 실질소득은 하락한다. 이처럼

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강력한 통제가 이러한

계층 간 빈부격차는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 간 빈부

가능성의 실현을 억제하고 있지만, 경제 여건이 바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이로써 ‘배급제계급’과 ‘자력

뀌지 않는다면 잠재된 저항을 장기간 억누를 수 없

갱생계급’, ‘평양공화국’과 ‘지방공화국’이라는 신조

을 것이다.

어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평양과 지방을 방문한 사

따라서 북한 정부로서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

람들의 증언이 크게 차이를 보이게 된다.

혁·개방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7·1조

둘째, 외화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인플레이

치 때보다 시장화가 훨씬 진척되어 있고 인플레이

션하에서는 가치가 폭락하는 북한원화를 선호할 주

션, 부패 등의 문제가 심각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적

민은 없다. 무역거래뿐 아니라 국내 기업 간 거래 및

극적인 개혁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민들의 일상적인 시장거래에서도 외화 사용이 늘

조치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방, 특히 대규모 외

고 있다. 한편 외화 사용 확대는 정부의 경제 통제

자 유입이 수반되어야 한다. 아무리 인센티브를 높

력을 약화시킨다. 동시에 주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

이더라도 추가적인 자금과 물자 투입없이는 성과를

성심도 약화된다. 지폐에 찍힌 김일성 수령의 초상

거둘 수 없으며, 통화증발로는 부작용이 커서 이를

보다 모택동의 초상을 보게 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경우는 인플레이션 억제 조치가 수반되

셋째, 거시경제가 불안해지고 있다. 화폐개혁 직후

지 않고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데, 이를 위해서는

쌀값 25원/kg에서는 임금 3,000원이 생활비로서 의

기업개혁(경성예산제약 강화), 가격자유화 및 금융

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

개혁(이자율 현실화, 금융기관의 이원화 등) 등 1986

기 위해서는 물가상승에 따라 임금을 현실화할 필요

년 베트남의 ‘도이모이’ 같은 전반적인 개혁과 개방

가 있다. 지난해 북한 정부는 기업과 협동농장에서

이 필요하다.

인센티브를 제고하였고, 인센티브가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임금을 직종에 따라 10~100배 인상하였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물가상승과 임금인상 간 에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제 불안 상황에서는 개혁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이영훈은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통일연구원 책임연구 원,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차장으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SK경 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북한경제에 관심을 갖 고 활동 중이다.


특집 북한 경제, 어디로?

01

개성공단,

근로자ㆍ외화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다 최수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지난 4월 북한이 개성공단 잠정 중단 및 북한 근로자 전원 철수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개성공단은 폐쇄 수 순에 들어가는 듯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재발방지 약속 등을 요구하면서 북측과 당국 간 실무회 담을 6차례 진행했으나 북측의 태도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도 불사한 다는 각오로 8월 7일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경협보험금 지급을 의결하자 북측은 조평통 담화를 통해 7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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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회담을 서둘러 제의하고 나왔다. 결국 정부가

한 북한 당국의 정책적 의지도 분명해 이를 바탕으

북한에 경고해온 개성공단에 대한 ‘중대 결단’을 단

로 시장과 같은 비공식 경제활동 역시 활성화된 것

행할 조짐이 보이자 북한이 한걸음 뒤로 물러선 것

으로 보인다. 최근 방북한 외부 인사들은 북한에서

이다. 그리고 8월 14일 열린 개성공단 7차 실무회담

휴대전화의 보급이 빠르게 증가하였고, 특히 평양에

이 타결되면서 개성공단은 다시 정상화의 길로 들어

서는 중산층의 왕성한 소비활동이 일상화되었다고

서게 되었다.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물론

이번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이 과연 완전 폐쇄

일반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악

를 염두에 두고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시킨 것인지

화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의문이 제기된다. 개성공단 가동의 잠정 중단을 발표

이런 경제상황만 놓고 본다면 북한이 개성공단 폐

한 당사자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방북한 평화자

쇄와 같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으

동차 박상권 사장과의 면담에서 “개성공단 문을 닫을

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북한 경제의 속사정은 겉모

생각이 없었는데 군부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동이 중

습과 달리 개성공단을 통해 들어오는 연 8,000만 달

단됐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위를 떠나

러 이상의 경화 수입을 쉽게 포기해도 좋을 만큼 간

개성공단의 가동 중단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대남 강

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2010년 이래 북

경, 온건파 간 이견이 존재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

한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온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이

이다. 동시에 개성공단의 완전 폐쇄는 북한에도 상당

상 징후가 이미 2012년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

한 부담으로 작용했음을 가늠토록 한다.

했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는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소폭 성장

대남 강경ㆍ온건파 이견 존재

세를 유지했다. 북한 경제의 성장은 대부분 대외경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 경제는 외견상 적

제 부문에서의 성과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특히 중

어도 악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강

국과의 무역이 급팽창한 것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

조해온 농업과 경공업 그리고 핵심 산업분야에서의

하였다. 대북제재의 강도가 심해질수록 북한은 중

생산과 투자가 위축되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

국에 무연탄, 철광석 같은 전략물자의 수출을 늘리

다. 북한 경제를 논할 때 우선 고려 대상으로 삼는

면서 외화 확보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최근 북한

식량 사정은 다소 나아진 것으로 파악된다. FAO와

의 대중국 수출액에서 이들 두 품목이 차지하는 비

WFP의 발표에 따르면 2012년 북한의 식량생산은

중이 거의 70%에 육박할 정도로 북한은 광물자원

약 492만 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 정도

의 대중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경제회복을 위

다. 즉, 북한은 우리 정부의 대북교역 전면 중단 조 치인 ‘5·24조치’ 이후 남북교역 중단으로 발생한 외 화수입을 중국에 대한 자원 수출증대를 통해 만회해 온 것이다. 이외에도 북한은 2010년부터 주로 중국

01 개성공단의 야경. 지난 4월 중단된 개성공단이 7차에 걸친 남북당국실 무회담 끝에 8월 14일 정상화 합의가 이루어져 다시 가동하게 되었다.

을 겨냥한 노동력 송출 및 관광산업의 확대를 통해 외화를 확보해왔다.


남북은 8월 14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5개항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의 주된 외화수입 통로인 지하

중국을 통한 비교역 부문에서의 경화 확보도 2013년

자원의 대중 수출은 2012년 하반기부터 정체를 보

에 들어와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철광석, 무연탄

결국 북한 경제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표면

같은 지하자원의 대중 수출액을 늘리기 위해서는 국

상 악화되지 않았지만, 중국을 통한 외화수입의 앞

제 원자재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수출량도 함께 증

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에 처해 있었다. 더구나

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제 원자재 가격은 불안정

한중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

할 뿐 아니라 하향 추세에 놓여 있었고, 중국의 자

는 중국을 보면서 북한은 중국의 대북 경제적 압박

원 수요도 더 늘어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되었다. 따

이 과거와 달리 장기화될 수 있음을 우려했을 것이

라서 북한은 지하자원의 대중 수출증가율 둔화 또는

다. 이런 상황에서 경화 확보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정체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음이 분

있는 개성공단의 완전 폐쇄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명하다. 북한 당국은 추가적인 경화 확보를 위한 지

수밖에 없었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하자원의 대중 수출증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

외화가 그렇게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외화가 부족

하고 있었다.

한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액수인 것이다.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상

무연탄, 철광 대중 수출 난관

황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을 대체할 새로운 외화수입

따라서 북한에서는 그동안 잠재해왔던 경화 확보 문

창구를 발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와는 별도로 비경제적 의미에서도 개성공단의 완

노동력 송출이나 관광 같은 교역 이외의 채널을 통

전 폐쇄는 북한 당국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음

한 경화 확보의 필요성이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그

을 간과할 수 없다.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되기 전 개

럼에도 북한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에도 악영향을

성공단 근로자 5만 3,000명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

줄 수 있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였다. 북한의 2012

역 근로자보다 안락한 생활을 영위해왔다. 개성공

년 말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2013년 2월 제3차 핵실

단 근로자가 평균 4인 가족이라 할 때 20만 명 이상

험에 대해 중국은 북한 주민에 대한 비자발급 통제,

이 개성공단이 가동됨으로써 혜택을 받아온 셈이다.

출입국심사 강화, 북한 물품에 대한 세관조사 등 각

북한이 개성공단의 완전 폐쇄를 각오하고 우리를 위

종 경제적 압박수단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북한 주

협했다면 이들을 단기간에 다른 직장으로 배치하는

민의 대중국 방문자 수가 크게 둔화하는 등 북한의

노력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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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상태의 근로자를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에 대해서

울러 이 과정에서 온건파들의 입지가 강화되었을 것

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개성공단 근로자들도 북

으로 보인다.

한 당국에 대한 기대는 접고 개성공단이 재가동되기

개성공단 사태가 일단락됨으로써 북한의 내부 경

만 기다렸을 것이다.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장기화

제체제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여건

되었을 경우 이들 개성공단 실업자의 불만은 김정은

이 마련되었다 할 수 있다. 온건파들의 입지 강화로

체제의 리더십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날 수 있었을지

‘6·28방침’으로 알려진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경제

알 수 없는 일이다.

개선 조치는 시범적 추진에서 벗어나 더 확대될 수 있는 추동력이 확보된 셈이다. 핵무기개발과 경제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성과,

설 병진노선에서의 실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비핵화 대화로 이어져야

도 모른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쉽사리 포기하지

그동안 북한은 강경세력의 주도로 천안함 피격사건,

않겠지만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연평도 포격사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군사적

진전될 경우 적어도 국제사회와 어떤 형태로든 비핵

도발을 감행하면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응을 주시

화 협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해왔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도발이 북한 경제에 미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추진과정에서 원칙에

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한 것 같다.

충실함으로써 북한과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라는 성

그 이유는 외견상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군사적 도발

과를 거두었다. 개성공단이 재가동된다고 해서 향후

에 따르는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순조롭

남북관계가 곧바로 예전처럼 복원되는 것은 아닐 것

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적 악영향이 내

이다.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문제 해결, ‘5·24

재되어 있음을 간파했더라도 강경파는 김정은 체제

조치’의 해제를 통한 남북교역 재개 그리고 개성공

이후 경제 전반에 걸쳐 특별한 악화 조짐이 없음을

단의 발전적 확대 등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일들

내세워 개성공단에 대한 물리적 압박을 감행할 수

이 산적해 있다. 북한의 호응과 상호 신뢰가 지속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개성공단이 우리 정부

때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개성공

에 의해 완전히 폐쇄될 수 있음을 주지하면서 강경

단 사태를 통해 얻은 한 가지 교훈은 득과 실이 분명

파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하다면 북한도 정치군사적 요인보다 경제사회적 요

개성공단 7차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종래의 억지 주

인을 중시함을 실감하게 된 점이다.

장을 철회하고 협상 타결에 나선 것은 경제사회적 부담을 회피하고자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음도 외면할 수 없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남북관계의 장기적인 경색에 따르는 부담보다는 실리를 선택하 는 편이, 그리고 3대 세습을 기정사실화해 김정은의 권력과 통치기반을 확고히 굳히는 것이 북한 체제의 안정에는 더욱 바람직하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아

최수영은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 며, 통일정책연구협의회 사무국장, 16기 민주평통 상임위원, 수출입 은행 남북협력자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 현장

분배 모니터링 위해 방북한

민간단체가 전하는 최근의 북한은? 글

편집부 |

사진제공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ㆍ어린이어깨동무

01

02

01 평양 시내를 달리는 택시들. 02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북 여성들.

지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대북지원

‘평양은 24시간 공사 중’, 시내 택시 등장에 놀라

민간단체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사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하 지원본부) 엄주현 처장은 지금

장 홍경표)와 어린이어깨동무(이사장 권

까지 수십 차례 평양을 방문했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외국인

근술)가 각각 평양시와 남포시를 방문했

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라 말했다. 엄 처장이 묵은 양각도호

다. 두 단체가 지난 7월 북한에 지원한

텔에는 빈방이 없을 정도로 투숙객들이 꽉 차 있었는데, 지

물품의 분배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방북

난 2011년 방북 당시 관광객의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던 것에

이었다. 개성과 금강산을 제외한 방북은

비해 이번에는 미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남미 등 다양한

지난 2012년 11월 민간단체 ‘평화3000’의

국적의 관광객들이 호텔을 채우고 있었다고 전했다. 엄 처장

평양 장충성당 남북합동미사를 위한 방

은 호텔 직원이 “하루에만 800명의 손님이 들었다”라고 말했

북 이후 8개월 만이다. 방북을 마치고 돌

다고 전했다.

아온 두 단체의 실무자들에게 최근 변화

지원본부는 2007년 12월 평양에 위치한 만경대어린이종합

된 북한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병원의 현대화 사업과 관련한 합의서를 맺고 2008년부터 사 업을 진행해왔다. 노후화된 병원 시설을 새롭게 바꾸는 사 업이었기에 2008년 건설 물자를 보내고 새롭게 건물을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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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었다. 그러다 2009년 남북관계 악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전했다.

화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5·24

엄 처장은 특히 달라진 평양 시내의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다

조치 이후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방북

고 전했다. 시내 어디에서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시민들을

은 2010년 5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이

볼 수 있었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

루어진 것이었다. 지난 7월 31일 지원본

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남측 방문객에게도 휴대전화의 소지

부는 통일부의 승인에 따라 만경대어린

를 허용한 것은 특히 새롭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종합병원에 항생제, 소염제, 의료소모

“2년 전 방북할 때에는 입국장에서 휴대전화를 무조건 거둬

품 등 약 2억 2,000만 원 상당의 지원을

갔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휴대전화의 제조사와 여권번호만

했고, 이번 방북은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기록하고 휴대전화는 그냥 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심(SIM) 카

위해서였다.

드를 구입해 끼우면 국제통화가 가능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랫동안 병원 상황을 알지 못해 어떻게

물론 한국으로의 서비스는 안 되고요. 최근 페이스북 등 인터

변했을지, 유지는 잘되고 있는지 걱정이

넷에 평양의 모습을 소개하는 사례가 많은데, 어떻게 그럴 수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의외로 상

있었는지 알겠더군요. 저희 역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거나

황이 양호했습니다. 충분치는 않지만 일

메모를 하는 것 모두 자유로웠습니다. 어차피 휴대전화를 가

부 의약품이나 소모품, 검사장비 등을 당

지고 나가봤자 통화를 할 수 없는 것은 과거와 똑같지만, 그

국으로부터 공급받거나 러시아 등을 통

럼에도 방문객들의 편의를 조금이나마 배려하려는 노력으로

해 직접 구매해 사용하고 있었어요. 북

보여 의미 있는 변화라고 느꼈습니다.”

한의 경제사정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

아울러 엄 차장은 평양 시내를 활보하는 택시들의 행렬에 다

인지, 아니면 북한 당국이 어린이를 위한

시 한 번 놀랐다고 전했다. 평양 시내에서 택시를 목격한 것

부분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지 정

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문으로 ‘TAXI’라고 명기한 차들이 자

확히 알 순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입원

연스럽게 시내를 운행하고 있었다. 엄 차장은 이 택시들이 예

환자도 있었고, 병원도 어느 정도 운영되

약한 손님들만 이용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평양 시민 누구나

고 있었어요.”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한 엄 처장은 모니터링 부분에서도 북 측 관계자들이 최대한 협조하려 노력했

휴대전화 반입 허용, 자신감과 활기 느껴져

다고 전했다. 8월 15일 ‘조국해방기념일’

지난 8월 22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평양을 ‘선군문화의 중심

(광복절에 해당)휴일로 시간이 많지 않았

지’로 훌륭히 꾸려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북한은

음에도 북측 민화협을 비롯해 병원 관계

김정은 체제 들어 평양시에 창전거리, 인민극장, 능라인민유

자들이 지원본부에서 요청한 사항들을

원지, 인민야외빙상장 등 대규모 건설물을 많이 세웠고, 현

전부 확인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

재 과학자주택지구, 아동병원, 구강병원, 미림 승마클럽, 문

다. 엄 처장은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에

수물놀이장 등을 건설하고 있다.

따른 남북관계의 개선과 이와 병행한 민

엄 처장 역시 평양 시내 곳곳에서 건설 현장을 볼 수 있었고,

간차원의 교류에 대해 북측 관계자들이

건설 물자를 실은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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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고 설명했다. 2011년 방북 당시 한

모란봉악단은 ‘세계 명작곡’이라는 타이틀로 우리 귀에도 익

창 건설 중이던 창광거리 아파트 건설사

숙한 서구 음악들을 많이 연주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새롭게

업은 완공을 해서 높고 화려한 아파트들

선보인 곱등어관(돌고래쇼)에서도 쇼가 진행될 동안 끊임없

이 대규모로 들어섰고, 대동강에는 건설

이 월트디즈니의 ‘인어공주’ 주제가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예

을 위해 골재를 채취하는 선박들이 많이

전 김정일 체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보였다고 소개했다.

이제 지원본부는 이번 방북을 통해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이

“여기저기 공사 현장이 많았어요. ‘평양

나 추가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하고, 다시 물자 지원 리스트

은 24시간 공사 중이구나’라는 느낌을 받

를 꾸릴 생각이다. 만경대어린이병원 측이 요청한 사항들을

았죠. 그리고 전력 사정도 예전보다는 다

검토하고, 이에 맞게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그 후 9월경 반

소 나아진 느낌이었어요. 더불어 사람들

출 신청을 하고, 가능하면 10월에 다시 한 번 모니터링 작업

의 모습에서 활기랄까, 어떤 자신감 같

에 나설 생각이다.

은 것도 느꼈고요. 예전보다 많이 젊어졌

“현재 북한은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싶어하는

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려항공 기내에

것 같아요. 그리고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를 강하게 원하고 있

서 모란봉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의 공

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정부도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연 실황을 보여줬는데, 모란봉악단의 경

사회문화 교류가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한 준비과정이고 또

우 여성 출연진이 모두 짧은 의상을 하

한 통일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주셨으면

고 있어서 조금 놀랐거든요. 그래서 저

해요. 물론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류가 되어야겠지만,

런 옷차림을 인민들이 좋아하냐고 물었

가능하면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은 이어져야

더니,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노래 내용

합니다.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남북교류는 꼭 필요

을 우선시한다’는 답변과 함께 젊은 인민

한 것이잖아요. 장기적으로 통일을 바란다면 인도적 차원의

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지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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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평양 시내 곳곳에서 새로운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04 건설을 위한 모래와 자갈 채취를 위해 대동강에 채취선들이 즐비한 모습. 05 최근 평양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06 2012년 개관한 릉라인민유원지 내의 릉라곱등어(돌고개)관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남북관계 재개에 대한

어깨동무는 지난 7월 통일부의 승인을 거쳐 남포시 소아병원

높은 기대감 엿보여

에 빵 재료 및 분유 등 약 1억 4,000만 원 상당의 물자를 지원

한편 같은 일정으로 남포시를 방문한 어

한 바 있다. 최 사무총장을 비롯한 어깨동무 관계자들은 이번

린이어깨동무(이하 어깨동무) 최혜경 사

방북을 통해 이에 대한 분배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2011년 이

무총장은 평양만큼은 아니어도 남포시

후 2년 만에 다시 찾은 병원은 의약품 부족을 호소했지만 어

역시 각종 개보수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느 정도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전했다. 아울러 건물을 신축하거나 보수

“의료 분야의 비전문가가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체적

하는 과정에도 ‘디자인’이 반영되기 시작

인 노력을 많이 기울인 것 같았어요. 상당 기간 지원이 중단

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되고 의약품이나 소모품 공급이 없었음에도 할 수 있는 범위

“과거 김정일 시대에 단순히 시멘트로 건

에서 자체적으로 병원을 꾸리려 노력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

물을 마감했다면, 이제는 각종 색의 페인

만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분명 확인할 수 있었죠. 북측 관계자

트를 칠하면서 ‘디자인적 감각’을 건물에

는 ‘지난 시절의 공백 기간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앞으로 서로

접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똑같

협력해 다시 교류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노력하자’고 말했습

이 페인트를 칠해도 약간이나마 입체감

니다. 그 때문인지 모니터링 과정에도 최대한 협조하려 노력

을 느낄 수 있도록 색 배합을 하는 식으

했다고 생각해요.”

로 말이죠. 아울러 유리 역시 굴절유리

어깨동무는 먼저 병원 측에서 지원을 요청한 물자들에 대해

를 사용하기도 하더라고요. 건축공법 자

검토한 후 시급한 것부터 반출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다. 아

체가 바뀐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

울러 남포 이외의 지역에도 영양식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니다. 그리고 조경방법도 바뀐 것 같았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따라 기

요. 보통 도로 주변에 나무를 심었는데,

존에 지원하고 있던 3곳의 보건의료현장에 대한 개보수 작업

이제는 2단 처리를 했다고 해야 하나. 도

도 재개할 계획이다.

로 주변에 잔디를 깔고 그 옆에 나무를

이번에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실무자들은 북한 측이 남북

심었어요. 도로가 한층 더 시원해 보이

관계 정상화와 민간차원의 교류를 강하게 원하고 있음을 확

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별로 체육시설

인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작은 신뢰를 쌓아 더 큰 신뢰

을 조성해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를 형성한다는 우리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본격적인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전

가동이 시작되고, 북한이 이에 성의 있는 자세와 행동으로 대

체적으로 도시가 활기에 차 있다는 느낌

응한다면,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

을 받았어요.”

으로 기대된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경성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 부위원장

“남북 체육교류는 신뢰를 만드는 메신저입니다!” 글ㆍ사진 |

염규현 정책홍보팀

‘교장 선생님.’ 북한 축구선수들이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 김경성 부위원장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는 2006년 남북 유소년축구 정기교류의 물꼬를 튼 이후, 2007년 3월 북한 청소년축구 대표팀 남한 전지훈련 성사, 2007년 5월 서울서 열린 FIFA세계청소년(U17) 월드컵 조추첨식에서 남한 인사 최초로 북한 대표 자격으로 참여, 이후 대회 북한단장으로 참가해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남북의 체육교류를 ‘남북이 서로 힘을 모아 평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소중한 도구’라고 강조하는 김경성 부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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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0일부터 28일까지 열린 ‘2013 동아

을 한 것이 계기였다. 홍타스포츠센터는 2003년 포

시안컵’ 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 여자축구팀

천축구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 부위원장이 선

이 한국을 찾았다. 북한 축구팀이 남녘땅을 밟은 것

수단과 함께 전지훈련차 방문했을 당시, 6개월째 운

은 2005년 남북통일축구 이후 8년 만이다. 남자부 4

영이 중단되어 있었다. 이곳을 그가 임대해 운영하

개국(한·중·일·호주)과 여자부 4개국(남·북·중·

게 된 것이다. 2000년부터 3년 동안 한나라당 월드

일)이 참가해 벌인 이번 대회에서 북한 여자축구팀

컵홍보단 중앙단장을 지낸 그의 경력이 도움이 되었

은 2승 1무(승점 7)로 우승을 차지했다. 아울러 이번

다. 그럼 그는 왜 남북 스포츠교류에 이토록 열정적

북한의 우승은 한국이 일본을 꺾어 가능했다는 점에

으로 뛰어들게 되었을까.

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한편 이번 동아시안컵 축구 대회를 통해 북한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남북 체육 분야의 균형적 발전 중요해

하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허은별 선수가 있다. 오

“무슨 거창한 뜻이나 야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랫동안 북한 축구팀의 훈련을 지원해온 김경성 부위

남북의 체육 분야가 균형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원장은 허은별 선수에 대한 애정 어린 소개로 인터

이 있었을 뿐이에요. 가끔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남북단일

뷰를 시작했다.

팀 이야기가 나오죠. 과거에도 성사되어 좋은 성적을 거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북의 기량이 동등하지 못한

“모든 북한 축구선수가 저를 ‘교장 선생님’이라 부르며 잘

상황에서 단일팀은 자칫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지

따르죠. 어린 나이에 운동을 시작해서 시간이 갈수록 기

난 런던올림픽 때 영국 축구팀이 좋은 예죠. 정치적인 계

량이 성장해나가는 것을 곁에서 쭉 지켜봤거든요. 다들

산에 따라 단일팀이 구성되는 것은 자칫 큰 후유증을 가

소중한 제 자식 같은 친구들입니다. 허은별 선수는 본래

져올 수 있어요. 그래서 북한이 우리보다 비교적 뒤떨어

‘호은별’이 맞아요. 한국에서 이름이 잘못 알려진 건데, 원

지는 종목을 지원해서 남북의 기량이 동등해진다면 단일

래 수비수예요. 그런데 골을 넣는 수비수죠. 지난 런던올림

팀을 만들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픽 때에도 골을 넣었고, 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서도 골을

된 것입니다.”

넣었죠. 4년간 중국 쿤밍에 있는 홍타스포츠센터에서 제가 훈련을 지원했습니다. 14살 때부터 이미 체격이 아주 좋았

--- 김경성 부위원장은 이런 마음으로 2005년부

어요. 그라운드에서는 매섭고 때론 아주 거칠지만, 평소엔

터 북한 4·25체육단 소속 축구, 마라톤, 탁구 선수

천생 여자예요. 부끄러움도 많고 참 순박한 친구입니다. 공

들을 지원해왔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매

격과 수비에 모두 능한 훌륭한 선수예요. 앞으로 더 큰 선

년 여름과 겨울에 보통 3개팀씩 1~6개월 단위로 훈

수로 성장할 것이라 생각해요. 참 보기 좋습니다.”

련지원을 하고 있다. 숙식, 스포츠 시설 등 장소지원 과 우수한 코치들을 초청하는 기술지원 그리고 의류

--- 김경성 부위원장과 북한의 인연은 2005년 5

와 운동장비 등의 훈련용품 지원을 이어왔다.

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 축구대표팀이 이 란과의 독일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그가 운영하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한 결과겠지만, 이제 북한 여자축

고 있던 중국 홍타스포츠센터에서 고지대 적응훈련

구 같은 경우는 아시아 최강을 넘어 세계적 수준에 이


01

02

01 북한과 태국의 예선경기(경기관 전중인 강원도립대 여자 축구팀) 02 경기중 신고 뛰었던 아리축구화 를 들고 있는 북한 선수단

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마라톤과 탁구 역시 기량이 몰라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죠. 특히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

볼 정도로 향상되었고요. 제가 거기에 조금이나마 기여

에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도 뛰어납니다. 최고급 선수용 축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쁘죠. 북한 당국도 매우 고마워하

구화가 13만 원 수준이에요. 현재 베트남, 바레인 등 10여

고 있습니다.”

개 국가로 수출 중이고, 한국에서도 구입이 가능합니다. 한 달에 약 3,000켤레의 수제 축구화를 생산하고 있습니

--- 실제로 북한 당국은 10년에 걸친 그의 지원에

다. 북한 축구선수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보다 우리 제품

감사해하며 평양시 사동구역 장천동에 10만 6,000

을 더 선호하고, 지금도 우리 축구화를 신고 훈련하고 있

평에 달하는 부지를 제공해 스포츠산업 공단으로 개

어요. 다행히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될 예정이지만, 그 이

발하도록 배려했다. 이곳에 그는 1,500평의 건물을

전까지는 유일한 남북 경협사업이었습니다. 이 작은 결실

먼저 지으면서 2008년 당시 이명박정부의 협력사

을 잘 유지하고 싶어요. 물론 남북관계가 다시 좋아지면

업승인도 받았다. 하지만 평양 대동강공장 건물이

평양으로 가야죠!”

80% 정도 완성된 시점인 2009년 4월 북한이 광명 성 2호를 발사하고,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터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체육교류로 시작하자

고 말았다. 이로 인해 5·24조치가 취해졌고, 평양

--- 김경성 부위원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해온

공단 사업은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정말 주저앉고

일은 물론 남북의 스포츠교류다. 2006년부터 남북

싶은 심정이었다.

당국의 허가를 얻어 진행해온 남북 유소년축구단과

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었다. 그는 평양공장

청소년 대표팀 경기가 그것이다. 2008년까지 해마다

을 중국 단둥으로 옮기고 북한 근로자 25명을 데려

남북 체육교류에 대한 협약서를 만들었고, 그것을 실

와 ‘아리스포츠’ 축구화공장을 다시 세웠다. 단지 돈

천에 옮겨왔다. 3년 동안 일 년에 두 번씩 남북의 어

을 벌자는 목적만은 아니었다. 남북관계가 꽁꽁 얼

린이들이, 청소년들이 오가며 우정을 쌓았고, 스포

어붙은 상황에서 한국의 자본, 중국의 경영, 북한의

츠 정신을 배웠다. 2009년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남

노동력이 만나 새로운 형식의 남북 경협사업을 만들

북을 오갈 수 없게 되자 중국 쿤밍에서 ‘인천평화컵’

어내자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든 작은 희망의 물

이란 이름으로 행사를 이어갔다. 그가 상임위원장으

줄기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로 있는 (사)남북체육교류협회의 자체 예산으로 대회 를 치러낸 것이다. 김 부위원장의 고집과 끈기가 엿

“개성공단을 통해 이미 입증되었지만 북한 근로자들의 노

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절대로 남북 체육교류의 끈을

동의욕이나 손기술이 아주 좋아요. 동남아 등에서 만드는

놓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행사를 이어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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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어 남북의 청소년들이 이

공동응원단 구성의 성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기

땅에서 만나야죠. 그리고 이들이 함께 평화와 통일을 키

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한체육회 회장을 맡게 되신 김정

워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축구공에는 이념도 사상

행 회장께서도 남북 체육교류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시

도 정치적 계산도 없어요. 둥근 공 하나가 평화와 화해를

죠. 그리고 2015년엔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와 문경에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남북의 스포츠교류는 평화를 만

세계군인올림픽대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평

들어내는 소중한 소통의 도구이자 저에겐 하나의 사명

창 동계올림픽이 있고요.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

이에요. 이런 만남이 이어지면 결국 진정한 의미의 단일

제행사를 평화와 화합의 축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팀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고, 더욱더 발전해나갈 수 있

중장기적으로 하나하나 해나가야겠지만, 인천 아시안게

지 않을까요?”

임은 개·폐막식 공동입장, 공동응원단 구성을 목표로 하 고 있고요.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단일팀

--- 그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

을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국제스포츠 대회

뢰프로세스의 첫 단추로 남북의 체육교류를 꼽는 데

가 단순한 순위 정하기나 메달 싸움이 아닌 진정한 화합

주저하지 않는다. 작은 것에서부터 신뢰를 쌓아가

과 평화의 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데 남북의 역할이 중요하

고 이것을 더 큰 신뢰의 계기로 삼아나간다는 정부

다고 생각해요. 우리 정부가 여기에서 분명 현명한 판단을

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시작하면서 가장 부담이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없고 또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바로 체 육교류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체육 분야의 남북교

--- 그동안 남북 스포츠교류에 뛰어든 이후 무수

류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광주에서 열리는

히 많은 어려움을 헤쳐 온 김경성 부위원장. 경제적

유스리더십프로그램(YLP)에 참가하는 북한 청소년

어려움으로 가족과 잠시 헤어져야 하는 아픔도 겪었

들의 방남을 승인한 것이다. YLP는 UNOSDP(유

고,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잘 운영되는 회사

엔스포츠개발평화사무소)가 주최하고 2015광주하

를 망하게 만들었냐는 비난도 받았다. 북한과의 관

계U대회조직위에서 지원하는 국제행사다. 2010년

계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

5·24조치로 민간교류가 제한된 가운데 정부의 북

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지난해 펴낸 『불굴

한 인사 방남 승인은 올해 들어 7월 북한 여자축구

의 아리랑』(북스타)에는 남북 스포츠교류협력에 대

선수팀에 이어 두 번째다. YLP는 8월 22일부터 9

한 그의 생생한 증언과 여정이 담겨 있다. 남북의 아

월 3일까지 광주광역시 호남대학교에서 열리며 아

이들이 다시 그라운드에서 만나 뜨거운 우정을 나

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19개국 34명의 청소년이 참

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는 김경성 부위원

석하여 진행된다.

장.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으로 남북이 다시 만날 때 평화와 화해도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그의 확신

“적어도 스포츠 분야의 교류만큼은 정부가 유연하게 나설

이 남북 스포츠교류의 성과로 가시화되기를 바라는

필요가 있어요. 이제 당장 내년이면 인천에서 아시안게임

마음이다. 그리고 내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목소

이 열립니다.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는 이번 인

리로 남과 북 모두를 응원하는 뜨거운 함성을 들었

천 아시안게임에서 개막식과 폐막식의 남북 공동입장과

으면 좋겠다.


진단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재연기 제안의 의미와 전망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는 전작권 전환시기 재연기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7월 30일부 터 양일간 열린 제4차 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맞춤형 억제 전략 발전방안과 함께 전작권 전환시기 재연기 문제 가 다뤄졌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작권 전환시기의 재평가가 필요하 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으며, 재연기 여부는 오는 10월 2일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이 전에 최종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은 지난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작전 권을 환수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며, 같은 해 9월 한 미정상회담에서 전작권 환수에 합의하였다. 2006년 10월 제38차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양국 국방장관 도날드 럼스펠드와 윤광웅은 전작권을 2009년 10월 15일에서 2012년 3월 15일 사이에 한국으로 이양하 는 데 합의하였으나, 2007년 6월 28일 제39차 안보 협의회의에서 전작권 전환일자를 2012년 4월 17일 로 조정, 합의하였다. 또한 2007년 2월 회의에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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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국방장관은 2012년 4월 17일까지 한미연합사령

며, 따라서 전작권 이양과 전략적 유연성 개념은 서

부를 해체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때

로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인 2010년 6월 26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작권

현재 논점이 되고 있는 전작권 전환문제와 미국의

전환시기는 2015년 12월 1일로 연기되었다. 주된 이

전략적 유연성 개념과의 연관성은 냉전종식으로 거

유는 2009년 제2차 북핵실험과 2010년 천안함 폭침

슬러 올라간다. 냉전종식 이후 미국은 주한미군의

이후 한반도 안보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소련억지 역할이 더는 유효하지 않으며, 따라서

전작권 재연기 논의 이유 역시 최근 북한의 장거리

한반도의 상황은 미국이 우려하는 급변사태 중 하

미사일 발사와 제3차 핵실험 단행 등 한국과 미국 본

나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1992년 미 의회에 제출된

토에 대한 전쟁 위협에 있다.

보고서 「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n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st Century」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전작권 재연기와 충돌

에서 미국은 한국에서의 안보정책 목표가 주한미군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이양시기 재조정 요구를 쉽게

의 역할을 ‘주도가 아닌 지원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받아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한미 간 이미 이양시

정의 내렸으며, 이의 결과는 1994년 평시작전통제

기를 합의했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권의 한국 이양이었다.

미국의 국방정책에 있다. 즉, 전작권 이양문제는 단

본격적인 전략적 유연성 개념은 9·11 테러공격 이

순히 한미만의 사안에 국한된 것이 아닌 미국의 전

후에 등장했다. 2002년 「Annual Report to the

반적인 국방정책인 전략적 유연성 개념과 연관된 것

President and the Congress」에서 국방장관 도

이다. 군사력의 유연한 운용을 원하는 미국으로서

날드 럼스펠드는 “미국 안보전략 변화의 목적은 미

는 전작권을 한국에 이양하는 것이 한반도에 얽매이

국 전위 군대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인데, 이는 다른

지 않고 자유롭게 군대를 이동시키는 데 도움이 되

미션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군대의 재배치를 포함하

01

02

01 지난 7월 30일 국방부에서 열린 제4차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에서 임관빈 국방정책실장과 데이비드 헬비 동아시아 부차관보가 악수하고 있다. 6개월마다 열리는 KIDD 회의는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와 전략동맹 2015 공동실무단회의, 확장억제정책위원회 등으로 구성된다. 02 김관진 국방장관(오른쪽)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6월 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제12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는 것이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이 새로운

제34차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재차 강조되었다. 이

국제적 안보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러한 부시행정부의 국방변환 개념은 냉전종식 이후

오사마 빈 라덴과 많은 알카에다 지도자들이 제거

해외주둔 미군을 고정된 거점방위에서 전략기동군

되었지만 여전히 알카에다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

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며, 불량국가와 테러지

탄, 예멘, 소말리아 등지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원세력 등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는 것을 그 목적으

있으며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익을 위협하고 있다.

로 하였다. 주한미군을 한국 방위를 벗어난 기동군

파괴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이와 같은 극단주의자들

으로 바꾸는 것은 이러한 국방변환의 핵심이며, 전

은 미국을 다각도에서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

작권 전환은 전 세계 미군을 신속하게 재배치하려는

을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은 위협은 국제적으로 존

미국의 전략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재하는데, 국방전략지침은 북한, 중국, 이란, 아프가 니스탄, 이라크, 글로벌코먼즈(global commons)

오바마, 급변사태 대비 유연한 미군으로 전환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은 2010년 발간된 미 국방부의 국방

두 번째는 미국의 국방예산 삭감이다. 앞서 언급하

검토보고서(QDR)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였듯이 미 국방부는 올해 초 보고서에서 향후 10년

즉, 미 국방부는 새로운 세력부상과 힘의 분산, 비

간 4,870억 달러를 감축액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국가 행위자의 영향력 증가, 대량살상무기 및 기술

국방예산 자체로만 보면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

의 확산, 새로운 사회경제적 도전 등을 안보적 위협

다. 오랜 기간 매달려왔던 이라크전쟁이 종결되었

으로 들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적 환경 속에서 현재

고 아프간전쟁 역시 조만간 종결될 것으로 예상되기

진행 중인 전쟁에서의 압도적 승리, 분쟁의 예방과

때문에, 국방예산 자체로만 보면 상황은 그다지 나

억지, 적의 격퇴, 그리고 군의 보전 및 강화라는 4

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전반적인 경기

가지 국방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목적

상황과 재정악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 정부예산

합동전력(multipurpose joint force) 구축을 주장하

중 국방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에 해당되는

고 있다. 이러한 국방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미 국

데, 재정악화를 해결하는 대신 예산삭감을 약속했던

방부는 동맹정책을 ‘지역중심 분할’에서 ‘세계적 연

미 의회는 예산삭감 부분 중에서 국방예산삭감 부분

계망’ 구축으로 바꾸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주한미

에 대한 비중을 높이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군을 전진배치(forward-deployed)에서 전진주둔

이와 같은 미국의 안보전략 변화는 주한미군과 어떤

(forward-stationed with family members)으

식으로 관련되어 있는가? 2010년 QDR은 주한미군

로 재설정하고 있다.

의 가족동반 3년 근무제가 정착되는 3~4년 뒤 한반

또한 2012년 초 발간된 오바마 2기 국방전략지침

도를 사실상 비전투지역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후

은 미국의 군대를 보다 날렵하고(agile) 유연하며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을 차출해 해외에 배

(flexible), 모든 급변사태와 위협에 대비할 수 있는

치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한미동맹의 억

(ready for the full range of contingencies and

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 환경 적응적이고 유연한

threats) 군대로 전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는

(a more adaptive and flexible) 한미연합태세를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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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국으로의

위주로 구성되게 된다. 따라서 만일 미군이 다른 지

전작권 이양과 한반도에서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강

역에서 전쟁을 하고 있을 경우에 한반도에서 유사사

화를 명시하고 있다. 월터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태가 벌어지면 미국은 한반도 지역의 전쟁을 동시에

2009년 12월 12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론회에서 주한미군이 미래에 좀 더 지역적으로 개입

실제로 2012년 국방전략지침은 미국이 경제력 약화

하고 전 세계에 배치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와 국방예산삭감으로 그동안 유지해왔던 ‘두 개 전

고 언급한 바 있다.

쟁에서의 승리 전략’에서 ‘한 개 전쟁의 승리, 다른 한 개 전쟁의 억지’로 전환함을 명시하고 있다. 1+1

전작권 전환과 무관하게 북핵 억지력 마련에

에서 1+로의 전환인 셈이다. 미군이 중동지역에서

한미 함께해야

전쟁을 수행하게 될 경우, 아시아 지역의 분쟁에는

따라서 전작권이 이양될 경우 한반도에는 주한미군

‘억지’전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때

차출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대북억지

전작권이 한국으로 이양될 경우 한반도 방위태세는

력에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며, 주한미군이 동

더욱더 힘든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된다.

아시아 지역의 분쟁에 투입돼 원하지 않는 지역분

그렇다고 전작권 전환을 거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

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

며, 한반도 안보상황이 좋지 않다고 계속해서 전환

장관은 2010년 미 하원청문회에서 미군이 이라크와

을 연기할 수만은 없다. 2015년으로 계획되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돼 있기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

전작권 이양을 예정대로 이행하되, 이행준비에 차질

에 미군이 한반도에 신속하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먼저, 전작권

고 말했으며, 이는 주한미군이 해외로 차출될 때 유

이 이양될 경우 생길 수 있는 전력공백에 대비하기

사시 미군의 한반도 투입이 더욱더 더뎌질 수 있음

위해 연합전구사령부 창설에 의한 단일지휘체계를

을 암시하는 것이다. 즉, 한미 양국이 북한의 선제도

유지하여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위

발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마련한 작계

협에 대한 대응이다. 최근 한미 양국은 미국의 핵확

5027(OPLAN 5027)에 따르면 미국은 90일 안에 5

장억지체계 강화를 위해 맞춤형 억제전략을 발전시

개 항모 전단을 포함한 160척의 함정, 항공기 2,500

키고 있으며, 평시에도 미 전술핵이 한국 영토에 있

대, 육군과 해병대 69만 명을 한반도에 투입하게 되

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기 위

어 있으나 이러한 계획이 어렵게 될 수 있다.

해 협의가 진행 중이다.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

더군다나 최근 미국의 방위비 삭감으로 문제는 더

한 확장억지정책 마련은 전작권 전환과 무관한 것인

욱더 심각해질 수 있다. 즉, 한반도 유사시 미군을

만큼, 전작권 이행과 상관없이 억지력 마련에 한미

증원하는 작계5027이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

양국의 지속적인 노력이 이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 2012년 초 국방전략지침에 따르면 미국은 향후 10년간 육군을 57만에서 49만 명으로, 해병대를 20 만 2,000명에서 18만 8,000명으로 축소하게 된다. 또한 미군의 구성요소가 지상군 축소 및 공군, 해군

김현욱은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남가주 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국립외교원 교 수 겸 미주연구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진단

속도 내는 아베 내각의 우경화와 군사화, 어떻게 볼 것인가 신정화 동서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냉전의 붕괴 이래 글로벌 차원에서 급속히 심화되는 경제적 신자유주의에 의해 국가의 행동 방식과 국제 관계의 존재 양식이 변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자연적인 상태로 전제하 면서 인간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상정한다.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시대, 국가는 자국 대자본의 이익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존재하는 일련 의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강한’ 국가에서 자신의 존 재가치를 찾는다. 우리는 이를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정권과 미국의 레이건 정권, 2000년대 중반 조 지. W. 부시 정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 해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반자유주의(신보수 주의)는 쌍생아인 것이다. 냉전체제하 패전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복귀한 일본 은 미일동맹과 평화헌법으로 울타리 쳐진 평화체제 아래에서 경제성장에 매진했다. 그리고 1970∼80년 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서의 경제적 풍요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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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했다. 그러나 일본의 국제적 역할을 둘러싸고는 ‘평

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내각이 9·11테러를 계

화(평화헌법 이념의 구현자)’와 ‘주권(국제정치의 주

기로 2001년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자위대

체)’ 사이에서 갈등했으며, 국내 정치적으로는 현실

의 이라크 파병을 행했으며, 2004년에는 ‘유사법제’

적 보수와 이상적 진보가 55년 체제 안에서 갈등을

를 제정하여 전시대비법 체계를 완비시켰다. 그리고

반복해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개헌을 달성해 ‘보통 국 가’ 일본, 즉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완성하고자 한다.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신보수주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무한한 경쟁력을 자랑

보수정치의 아이콘, 아베 총리

해왔던 일본 자본이 엔고와 미일 경제마찰의 결과

아베는 1954년 9월 야마구치(山口) 현에서 전 외무

약화하기 시작했다. 냉전의 종언에 의한 경제 글로

대신인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를 아버지로, 전 총

벌화의 가속화, 중국의 개발자본주의화와 경쟁에의

리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외할아버지로, 그리

본격적인 진입 등에 따라 일본 자본의 경쟁력은 급

고 전 총리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를 외종조부

속도로 저하되었다. 보수의 위기의식이 고양되었

로 하여 태어났다. 아베는 세이케이대학교와 미국의

다. 보수는 ‘싸우는 보수’로 업그레이드했다. 그리

남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졸업

고 전후체제하에서 지속되어왔던 현실적 보수와 이

후 고베 제강소의 직원으로 잠깐 근무한 후, 1993년

상적 진보의 갈등에서 승리했다.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사망한 아버지

일본은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신보수주의를

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 1구(당시)에 출마해 당선되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신보수주의

었다. 아베의 나이 39살이었다. 이후 아베는 정치가

가 추구하는 최대 목표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한

로서는 어린 나이임에도 내각관방장관, 내각관방부

‘보통 국가’ 일본이다. 신자유주의의 전개가 초래한

장관, 자유민주당 간사장 등 당은 물론 내각의 주요

계급의 양극화가 상징하는 사회분열을 무마하기 위

포스트를 섭렵했다. 여기에는 일본 유수의 정치가

해 신보수주의와 함께 ‘강한 국가’ 일본을 추구하는

집안이라는 그의 개인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었다.

‘대국적 내셔널리즘’이 채용되었다. 대국적 내셔널

특히 그의 외할아버지인 기시는 전전 일본과 전후

리즘의 성장에 핵·미사일 문제와 납치문제의 북한

일본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기시는

과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중국이 위협국가로서 적극

전전에는 일본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의 주요 경제

활용되었다. ‘새역모’의 역사 재서술, ‘국기·국가법’

관료로서 일본의 중국 침략에 필요한 경제적 자원을

의 제정 등을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를 ‘부활’시켰으

적극적으로 조달했다. 전후에는 A급 전범 용의자에

며, 독도, 센카구 열도 등을 둘러싼 주변 국가와의

서 부활하여 총리 자리에 올라 전전의 국가통제주의

영유권 대립 등을 통해 부활된 국가의 ‘자족’을 위한

와 네오내셔널리즘을 토대로 전후 일본의 발전을 이

군사력 강화가 추구되었다. 실제 정치의 차원에서는

끌었다. 아베는 이와 같은 군국주의자 기시를 자신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내각이 1996년 ‘미일안

의 정치 모델로 삼으면서 보수정치세력인 자민당에

보공동선언’과 1997년 ‘미일방위협력에 관한 신가이

서의 입지를 확대했다.

드라인’을 통해 미일동맹을 강화시켰다. 이어서 고이

물론, 아베가 대중적 정치가로 부상한 직접적 계기


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다. 2002년 9월 국교정

을 계기로 5년 만에 총리 자리에 복귀한 아베는 아

상화를 목적으로 개최된 북일정상회담에서 납치문

베노믹스라고 불리는 점진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

제가 부상하자, 아베는 고이즈미 총리의 자세가 우

책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그를 디딤돌로

유부단하다고 비판하면서, 북한과의 회담 중단을 주

완전히 전후체제에서 탈피한 일본을 만들고자 한다.

장했다. 이후 아베는 납치문제는 북한에 의한 일본 의 주권침해이자 중대한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국가

군사력 강화정책의 급속화 추구하는 아베 내각

가 책임을 지고 전력을 기울여 해결해야만 한다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인 지난 8월 15일, 아베 총리

주장하면서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했다. 많은 일본

는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국민은 아베를 북한에 상처받은 일본의 ‘자존심’을

비서가 ‘자민당 총재 아베’ 명의로 ‘다마구시’ 공물료

회복해줄 정치가로 받아들였다. 아베는 북한의 일

를 사비로 봉납했다. 그리고 아베 내각의 우익적 성

본인 납치문제를 최대한 정치적으로 이용해 보수정

향을 상징하는 각료 3명과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

치의 아이콘으로서 입지를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4

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100여 명이

년 뒤인 2006년 9월, 아베는 제90대 총리에 전후 최

참배를 행했다. 전후 가장 많은 수의 정치가가 일본

연소 총리이자 전후 출생한 최초의 총리로 취임을

의 제국주의 침략을 상징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

달성했다.1)

한 것이다. 한편, 아베 총리는 같은 날 정부 주최로

취임 직후 아베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과 이를

개최된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1993년 호소카와 모

통한 ‘아름다운 나라(美しい国)’ 일본 건설을 주장했

리히로(細川護熙) 총리 이래 20여 년 동안 답습되어

다. 전후 일본 사회를 규정해온 평화헌법을 개정해

온,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희생자에 대한 애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 국가’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

도, 그리고 전쟁에 대한 반성에 입각한 부전(不戰)

이었다. 이를 위한 환경정비의 일환으로 아베는 ‘교

의 맹세를 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주변 국가들

육계의 평화헌법’이라고 불렸던 ‘교육기본법’을 개정

의 반발에도 침략전쟁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을 뿐

하고, 자위대 관련법을 개정하여 방위청을 방위성으

만 아니라 우경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메시

로 승격시켰다. 또 개헌을 위한 헌법 개정 절차를 정

지를 표명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아베 내각에

한 ‘국민투표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2) 1년이라

서의 일본의 우경화가 군사 강국화의 움직임과 연동

는 짧은 재임 기간에 아베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

되어 21세기 일본의 국가진로로 급속히 추진되고 있

를 위한 제도적 초석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다는 사실이다.

2012년 12월 16일 중의원 총선거에서의 자민당 대승

1)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의 아베 내각은 제1차 아베 내각이라 부른다. 정식 명칭은 「일본국 헌법의 개정절차에 관한 법률」. 2007년 법률 제51호. 2007년 5월 18일에 제정, 시행은 3년 후인 2010년 5월 18일이다. 이 법률은 일 2) 본국 헌법 제96조에 정한 일본국 헌법의 개정과 관련한 국민의 승인, 투표 절차, 그리고 헌법 개정의 발의 절차에 관해 정하고 있다(제1조). 일본국 헌법 제 96조 제1항이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헌법 개정은 중·참의원 소속 총의원의 2/3 이상의 찬성을 확보해 국회가 국민에게 제안하고, 국민 과반수의 승인 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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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베 총리는 헌법3) 개정을 위한 전 단계로 ‘집

국,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럼

단적 자위권’ 을 제한 없이 전면적으로 행사하겠다

에도 일본에 대해 우리가 더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는 방침 아래 그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연립정당 공

전범국가인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여 군사강국이 되

명당의 협조를 구하고 관련 각료 인사를 마무리 지

면 어느 나라보다도 자국 중심적으로 행동하리라 전

었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총리의 자문기구

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우경·군사화가 남

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는

북통일, 독도문제 등의 사안을 갖고 있는 우리 미래

집단적 자위권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새

와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롭게 해석한 보고서를 연내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반자유

에 발맞추는 형태로 군비 증액도 추진되고 있다. 방

주의(보수주의)가 계속되는 한, 일본의 우경·군사

위성은 2014년도 방위예산을 2013년보다 2.9% 인

화도 계속될 것이다. 결국, 일본을 멈추게 할 수 있

상시켜 2013년도 대비 약 1,400억 엔(약 1조 6,000억

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운동과 사상의

원) 늘어난 4조 8,900억 엔(약 56조 원)을 재무성에

성장이다. 다시 말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의 우

신청하고자 한다. 또 무기를 공산권 국가, 유엔이 금

려와 비판이 일본의 대세에 그리 영향을 끼치기 어

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등에 수출하기 위해 군

렵다는 말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초

수장비를 민간용도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

래하는 심각한 피해에 비해 대항운동과 대항사상이

다. 이처럼 각 분야에서 추진되고 있는 일련의 군사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

력 강화 정책을 좀 더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달성하

의 건전성을 담보해왔던 풀뿌리 시민운동이 아베 정

기 위해 미국 백안관이 만드는 국가안보전략(NSS)

권의 재등장을 계기로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이

과 비슷한 외교·안보 정책을 포괄하는 지침문서인

들이 언제 일본 사회의 주력이 될 것인가? 이들이

‘국가안보전략 통합문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

주역이 되는 그날까지 일본의 우경·군사화는 계속

음으로 작성할 방침이다.

될 것이다.

4)

일본 우경·군사화의 미래 냉전 붕괴 후 글로벌 자본의 확장에 따라 그를 위한 환경 조성이 국가의 제일 임무로 되고 있는 가운데 그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셔널리즘이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일본만의 특수현상이 아니다. 한

신정화는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일본 미 에추쿄대학 정책학부 조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동서대학교 국제학 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3) 일본국 헌법 제9조 제1항: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 제2항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육해공군과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 지 않는다. 4)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가 침략당할 경우 이를 자국에 대한 침략행위로 간주, 침략국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권리다. 국제법상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유엔헌장 제7장 제51조에 명시되어 있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은 보유하지만, 헌법 제9조에 규정된 전쟁의 포기, 전력 및 교전권 불인정 에 의해 헌법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전수 방위 및 개별적 자위권의 행사만을 인정해왔다.


공 PD의 북한 취재수첩

2013년 9월,북한 변화의 키워드는

‘교육개혁’과 ‘규제완화’

공용철 KBS PD

2013년 9월, 북한의 학교에 큰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도입한 새 학제가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 2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에서 2014년부터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기존의 11년제 학제에서 소학교를 1년 늘려 5년으로 하면서 12년이 된 것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이 통합되어 있던 것을 나눠서 초등중학교(우리의 중학교) 와 고등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과정으로 분리했다. 취학 전 교육 1년-소학교 5년-초등중학교 3년-고등중학교 3년 등 모두 12년이 의무교육이 된 것이다. 새로운 학제가 시행되면서 교과과정도 대폭 개편되었다. 기존에 물리, 화학, 생 물 등으로 나뉘었던 학과목이 초등중학교 과정에서는 ‘과학’으로 통합되었고, 고등중학교 과정에서 원래대로 세분화되었다. 논리교육도 강화돼 초등중학교 까지는 개별적인 사실이나 원리에서 일반적인 법칙이나 명제를 유도하는 귀납 적 교육을 하고, 고등중학교에서는 삼단논법과 같은 연역적 사고를 키우는 교 육과정이 마련되었다. 올해 9월부터 각급 학교에서는 위와 같은 방향으로 편찬 된 새 교과서를 배운다. 교과과정 개편과 맞물려 대학교육도 좀 더 전문화된다. 이른바 4대 선행부문인 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와 농업, 첨단기술 관련 교육이 강화된다. 철도를 현대화하기 위해서 고속철도 기술, 자기부상열차 기술을 교육내용에 반영한다. 원자력과 우주개발에 필요한 인재양성도 강화된다. 북한은 지난 4월 우주개발 계획을 총체적으로 지도·관리하는 국가우주개발국을 신설하고 원자력 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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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만들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에 서는 원자력과 우주개발에 필요한 인재양성을 준비 하고 있다고 노동신문(7월 16일)이 밝혔다.

국제기준을 강화한 북한의 교육체제 개편 노동신문은 새로운 교육제도의 시행 목적이 ‘우리

교육을 통해 선진첨단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당의 새로운 병진노선 관철에로 교육사업을 지향시

국제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키고,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에 이바지하는 인재들

북한의 이번 교육체제 개편을 ‘개혁’이라고

을 더 많이 키워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정

평가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국제적 기준을

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등장과 함께 ‘경제건설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이라는 새로운 국정목표를 실천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교육제도의 개편은 북한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바 로미터다. 북한의 중등교육체제는 1966년까지 초급 중학교(3년)ㆍ고급중학교(3년) 체계를 유지해오다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에 선임됐다.

1967년에 중학교(5년)ㆍ고등학교(2년)제도로 변경

1970년대는 또 3대혁명 소조운동이 진행되던 시기

되었다. 1967년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

였다. 3대혁명 소조운동은 1973년 2월, 김일성의 주

15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혁명사상을 ‘유일사상’으

도로 시작된 것으로 현대과학기술과 사회주의건설

로 채택한 해였다.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와 수령의

의 성과에 뒤떨어진 구간부들의 기술실무 수준을 제

유일영도체계가 형성된 시기였다. 수령제의 본격 도

고하고, 이들을 점차 청년층으로 교체하기 위해 전

입에 앞서 교육제도가 먼저 바뀐 것이다.

개된 운동이었다. 대학은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로

1972년부터는 부분적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해 취

신입생의 70%가량이 채워졌고, 그들이 주체사상으

학연령을 만 7세에서 만 6세로 낮췄다. 6년제 고등

로 무장된 3대혁명 소조의 핵심이었다. 중요한 것은

중학교 체제도 중등반 4년에 고등반 2년으로 개편되

이 운동을 통해 김정일이 새로운 청년간부 대열에

었다. 민족간부를 자체적으로 양성해온 사회를 김일

자신의 지도력을 구축하여, 북한체제의 제2인자로

성주의화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교육제도 개편이

부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유일사상 10대원칙이라

었다. 당시의 교육제도 개편은 베이비부머들의 등장

하여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김정일이 후계자로 자

에 따른 인구정책, 후계체제의 토대구축을 위한 간

리를 굳히고, 후계자의 정치적 지지세력을 양성하

부정책과 관련이 깊었다. 북한에서 1970년대는 김

는 데 교육이 선봉에 선 것이다.

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던 시기다. 김정일은 1973년

북한이 이번에 새로운 교육제도를 시행하면서 강조

9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비서국

한 것은 국제기준에 맞는 교육체제다. ‘자기 땅에 발

조직ㆍ선전담당 비서로 선임됐다. 1974년 2월에 열

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볼 데 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린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는 당내 핵심권력기구인

뜻을 받들어,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교육 실태를 구


2010년 이후 10만 세대 주택건설정책의 일환으로 새 롭게 들어선 평양시 중구역의 아파트 가격이 최근 10 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체적으로 분석하여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

겨서 가족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외국

세대들을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 능력을 소유

에서 공부한 자녀가 성장해서 대학에 갈 나이가 되

한 인재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 집필

면 소환돼 본국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다. 그러나 김

된 교과서에 첨단과학기술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

정은 제1위원장이 등장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둘

히고 있다. 초급중학교까지 통합교육을 지향하다가

이든 셋이든 있는 대로 자녀를 해외에 데리고 나갈

고등중학교부터 학과목 위주의 교과로 개편하겠다

수 있게 되었고, 현지에서 대학도 다닐 수 있게 되었

는 것도 국제적 추세를 반영한 조치다. 교육을 통해

다. 부모가 가는 곳에 자녀들이 가서 함께 살 수 있

선진첨단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국제적인 인재를 양

도록 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성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북한의 이번 교육체

‘나라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자금출처를 묻지 말라’는

제 개편을 ‘개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새 방침도 내려졌다고 한다. 북한

국제적 기준을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엿보이

은 정치적으로 손볼 사람들이나 과소비로 입살(구

기 때문이다.

설수)에 오르는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숙청해왔다. 그때마다 전가의 보도로 활용된 것이 ‘수입 대비 지

무역일꾼들에 대한 규제완화

출 검열,’ 즉 ‘자금출처 조사’였다. 사회주의 체제를

북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는 규제

고수하는 북한에서 합법적으로 몇만 달러를 모은다

완화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한 이

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금출처를 조사받을 경

래 북한의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규제완화였다. 시

우 누구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여유자금이 있는 ‘돈

장에 대한 규제완화가 대표적이다. 김정은 위원장

주’들이 일부러 20평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국

이 주민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지지를 얻을 수 있었

가에 기부금을 많이 내고 훈장을 받는 이유도 만일

던 것도 인민생활에 대한 규제완화 덕분이었다. 최

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에 든 것이었다. 자금출처를

근 들어서 대외무역일꾼들이나 해외체류자들에 대

묻지 말라는 얘기는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에 ‘선

한 규제도 완화되었다. 김정일 시대까지만 해도 해

부론’을 강조한 얘기와 맥락이 같다. 국가에 해가 되

외에 체류하는 무역일꾼들은 자녀 가운데 1명만 데

지 않는 범위에서 부자가 되라는 얘기다. 이러한 정

리고 나갈 수 있었다. 자녀 가운데 일부를 평양에 남

책이 가시화된다면 대외무역이나 외화벌이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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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돈이 중요해지고

비싼 이유다. 평양의 아파트 값은 김정일 위원장이

국제적 기준이 강조될수록 남북관계에서

사망한 2011년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 김정은 제1

우리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위원장의 등장 이후 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돈벌이

개성공단을 통해서 북한이 자본주의 회계와

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 등이 맞물려 집값이 치솟고

세무시스템을 배워가듯이, 경협을 통해서

있다. 10만 달러를 주고 아파트를 사고팔 수 있는 계

남북한의 교집합도 확대될 것이다.

층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도 돈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아가 고 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저자세를 보이면서 개 성공단 재개에 합의했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바라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부를 축적하기가 한결 쉬워질

는 열망도 감추지 않고 있다. 2011년, KBS가 실시

전망이다.

한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의식조사를 보면, 같은 민 족이어서라기보다 경제적인 이유로 통일을 원하는

남북관계, 민족과 이념에서 ‘돈’으로 전환되는가

북한 주민들이 더 많았다.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것

2013년 9월, 북한을 볼 수 있는 두 가지 키워드는 교

이라는 기대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통일을 원한다

육개혁과 규제완화다. 두 가지 키워드에 담겨 있는

면, 남한 주민들은 비용 때문에 통일을 꺼려했다. 남

핵심은 ‘경제’요 ‘돈’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

이든 북이든 통일을 생각하는 데 돈이 가장 먼저 고

원장은 선군절인 8월 25일, 군대에 대한 당적지도

려되는 요소였다. ‘돈’이 남북한 주민들을 잇는 접점

를 강조하면서 ‘병진노선을 받들고 경제강국 건설에

인 것이다.

박차를 가해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북한에서 돈이 중요해지고 국제적 기준이 강조될수

강조했다.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돈이 김정은

록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개성

시대의 북한을 움직이는 핵심 키워드가 된 것이다.

공단을 통해서 북한이 자본주의 회계와 세무시스템

사회주의 북한에서 돈이 주민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을 배워가듯이, 경협을 통해서 남북한의 교집합도

핵심적인 요소가 된 지 오래다. 2010년 이후 10만 세

확대될 것이다. 북한이 국제기준을 배워갈수록 남북

대 주택건설정책의 일환으로 새롭게 들어선 평양시

협상도 합리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

중구역의 아파트 가격이 최근 10만 달러를 돌파했

는 북한 내부의 변화가 반가운 이유다.

다. 2008년까지 비싼 지역의 평양 아파트 값이 4만 달러를 넘지 않았으니까 5년 만에 2.5배가 오른 셈 이다. 물론 10만 달러짜리 아파트는 위치도 좋고, 크 기도 198제곱미터(60평)를 상회한다. 평양에서 아파 트 가격이 비싼 지역은 당 고위간부들이 많이 거주 하는 중구역과 중심지에서 가까운 보통강, 평촌 구 역 등이다. 이 지역들은 전기 공급이 잘 이뤄지고, 교통도 편리하다. 아파트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공용철은 1990년 KBS공채 17기로 입사하여 <도전지구탐험대>, <TV 문화기행>, <KBS일요스페셜> 등을 제작했다. 2003년부터는 북한의 시장과 주민생활을 밀착 취재하는 르포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해오 고 있다. 2006년 <KBS일요스페셜> “2006 북한, 중국 자본에 종속 되는가?”로 통일언론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금 북한은

북한의 스키장 건설과 ‘마식령 속도’ 진희관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한 레저 및 편의시설 건설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은 김정은 시대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건설에 대해 ‘속도’라는 표현을 사 용한 것은 마식령스키장 건설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식령스키장, 김정은 시대의 ‘랜드마크’ 될까? 지난 6월 23일자 로동신문은 ‘마식령 속도’를 “김정 은 시대의 새로운 사회주의건설속도, 21세기 사회 주의강성국가건설의 기준속도”이며 “마식령 속도를 북한은 2012년 말부터 강원도 원산시와

창조하는 것은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정책

문천시 사이에 있는 마식령(해발 768m)

을 짓부시는 투쟁”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그리고 6

에 세계적인 규모의 스키장을 건설 중이다. 스키 슬

월 13일자 조선중앙통신 기사는 ‘마식령 속도’를 김

로프의 길이는 모두 합쳐 110km에 이르러서 국내의

일성 시대의 ‘천리마 속도’에 비하였으며, 김정일 시

유수한 스키장의 슬로프 길이에 비해 4~5배에 이르

대의 (1970년대) ‘속도전’, ‘80년대 속도’ 그리고 2009

는 막대한 규모다. 또한 부대시설 건설 규모도 막대

년 9월의 ‘희천 속도’에 버금가는 것으로서 ‘마식령 속

하다. 호텔, 케이블카, 헬기착륙장, 스케이트장, 수영

도’를 통해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전환이 일어날 것

장, 지하주차장, 정화장, 펌프장 그리고 탁아소, 유치

이라는 자평을 내리고 있다.

원, 살림집뿐 아니라 슬로프의 잔디(고지대용)와 조

마식령스키장은 올해 겨울 개장을 목표로 건설 중이

경(고급 수종)에까지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며, 대략 1년 만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이에 따른 부대시설로 도로와 다리 건설도 함께 진

에 대해 북한은 10년이 걸려야 하는 건설을 1년 만

행되고 있다.

에 완수하게 되는 것이라고 자평하고 있으며 ‘일당

더구나 김정은 제1비서는 5월 26일에 현지지도를 한

백공격속도’로 명명하고 있다. 즉 10배의 건설속도

후 3개월도 안 되어 지난 8월 17일 또다시 현지지도

와 백배의 노력을 김정은 시대의 속도로 표현하고

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첫 번째 현지지도 이후 6월 4

있는 것이다.

일 김정은 제1비서는 ‘전체 군대와 인민에게 호소문’

언급한 바와 같이 김정은 제1비서는 자기만의 ‘속도’

을 보내었고, ‘마식령 속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를 제시하여 인민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이른다.

보이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레저시설 건설과

김정은 제1비서가 레저에 관심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기존 지도자들과 차이

사실이다. 지난해 7월에는 대규모의 릉라도 유원지

를 보이면서도 속도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를 준공하였고 많은 놀이시설의 개·보수사업에 최

는 점에서 ‘창조적 계승’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으

룡해 총정치국장이 빈번하게 ‘현지료해’를 하였으며,

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속도를 범대

이 밖에도 수영장, 롤러스케이트장, 목욕탕을 비롯

중적 운동으로 확산함으로써 인민대중에 대한 건설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44 45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은 평양-원 산 간 관광도로가 잘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고 주 장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도로사정과 운수 현황을 놓고 보면 과연 일반인들이 자유롭고 빈번하 게 이용이 가능할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중국 관 지난 5월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대가 건설중인 원산 마식 령스키장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는 모습.

광객이 온다고 해도 그 숫자는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 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북한의 의도는 금강산과의 연계방식을 고려하

을 위한 사상교양의 주제로 활용하는 측면도 확인되

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금강산관광이 중단되

고 있다. 6월 4일 김정은 제1비서의 호소문 이후 6월

어 있지만, 금강산 우리 측 숙소에서 마식령까지는

15~16일 이틀간 북한 전역에서는 호소문에 제시된

약 100km 거리로서 도로 개·보수만 이루어진다면

‘강령적과업을 결사관철’하는 군중대회가 진행되었

1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 할

고 대회에는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의 책임일군들

수 있다. 또 하나의 추정은 5년 후로 다가온 2018년

뿐만 아니라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대학, 전문학교

평창동계올림픽 대회의 부분 개최를 의도하는 것이

의 일군들과 근로자, 교직원, 학생들을 총 망라하여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추정에 불

참가토록 하였다.

과할 수 있겠지만, 지금 북한의 레저 수준에서 볼 때

따라서 ‘마식령 속도’는 김정은 시대의 사회주의 건설

과연 마식령스키장이 막대한 규모에 걸맞게 이용객

에서 하나의 상징적 특징으로 오랜 기간 자리매김할

을 유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평가한다.

‘속도’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인민 대중의 지지를 확보 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기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거대한 규모에 맞는 이용객 유치가 문제

운영과정에서 이용객 유치의 어려움으로 상당한 파

이와 달리 마식령스키장의 규모에 대해서는 의문이

행이 일어나 거대한 흉물로 전락할 가능성도 적지 않

제기될 수 있다. 스키 슬로프 길이로만 본다면 강원

다. 110km의 슬로프라 하면 사람이 1m 간격으로 한

도 내 용평을 비롯해서 10여 개 스키장의 슬로프를

줄로 늘어서더라도 11만 명이 필요하다.

합친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측 강원도

마식령스키장이 성공한 건설 사례가 되기 위해서는

는 연간 1,000만 명의 스키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

북한 자체의 관광 역량만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고 한다. 이중 외국인은 약 10%인 것으로 알려지고

특히 남북의 관광협력을 통한 공동 이용을 전제하지

있다. 마식령스키장의 경우 슬로프 길이만 단순 비교

않는다면 마식령스키장은 거대한 흉물이 될 가능성

했을 때 적어도 연간 500만 명 이상의 스키 관광객이

이 높아 보인다.

이용할 수 있는 규모라 할 텐데 과연 북한 내수관광 객만으로 이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즉 해외 관광객 또는 남한의 관광객을 유치하지 않는다면 이 와 같이 과도한 시설유지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진희관은 동국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 리츠메이 칸대학(立命館大) 국제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 서강대 사회과학연 구소 연구교수로 근무하였다. 현재 인제대학교 부교수 및 통일학연 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르포

북중 접경지역을 가다 이경형 본지 편집인

압록강은 상류에 비가 많이 온 탓인지 흙탕물이었

지 전문가를 비롯한 사업가, 상사원들과 만나 많은

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丹東)을 나누는 국경선

얘기를 나누었다. 이번 여행은 북중 간의 교류협력

이 바로 압록강이다. ‘압록강-7호’ 유람선을 타고 둘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참고삼아 향후 바람직한 남

러본 강안 북쪽의 단둥 시가지와 남쪽 신의주 부두의

북교류협력사업 및 통일교육의 기초자료를 수집하

풍경은 확연히 달랐다. 압록강 위로 석양이 비치면서

기 위한 것이었다.

북안 강변을 따라 늘어선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엔 휘 황찬란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단둥 시민들은 시원

| 중국 경기 안 좋아 북중 물동량 줄어

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강변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들

첫날 저녁 단둥의 한 식당에서 북한으로부터 석탄을

기 시작했다. 수십 명이 음악에 맞춰 스포츠댄스 같

수입하는 등 소규모 무역을 하는 중국 사업가와 저녁

은 율동을 하고 있었다. 삶의 진한 냄새가 묻어났다.

을 함께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최근 단둥 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철교를 오가는 화물차량이

| 북한 사람들 무표정에 가슴이 먹먹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

남쪽 신의주 부두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바지선에

후 고조된 동북아 긴장 국면에 이은 한중정상회담 등

서 모래를 하역하고, 배에서 부린 석탄 더미를 차량

의 여파가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북핵 위기

으로 퍼 나르고 있었다. 부둣가 낡은 창고 건물들과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보다는 중국의 경기

군 막사 같은 우중충한 건물들엔 불빛이 거의 보이

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물동량이 줄어든 것 같다”

지 않았다. 불과 40~50m도 떨어지지 않은 유람선

라고 말했다. 사업가에게는 국제정세보다 매일 피부

상에서 손을 흔들어도 북한 노동자들은 목석같이 무

로 접하는 실물경제가 훨씬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표정했다. 북한 사람들의 무뚝뚝한 모습에 왠지 가

다음 날 아침 단둥을 출발해 퉁화(通化)를 거쳐 북한

슴이 먹먹했다.

의 혜산과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둔 창바이(長白)로 향

지난 7월 3일부터 7일까지 4박 5일간 필자를 포함

했다. 압록강 중류에 있는 임강(臨江)에서 창바이에

한 민화협 관계자(임강택 정책위원장, 이우영 정책

이르는 200여km의 2차선 도로는 강변길이다. 버스

위원, 이현희 정책홍보팀장)들은 중국과 북한의 접

차창 바깥으로 내내 북한의 압록강변 마을과 주민들

경지대를 둘러보았다. 단둥 등 압록강 일대와 옌지

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남쪽 북한 땅의 산들은 거의

(延吉), 훈춘(琿春), 투먼(圖們), 팡촨(防川) 등 두만

민둥산이었다. 경사가 30~40도 돼 보이는 야산들도

강 일대를 돌아보면서 북한과 중국 간의 경제협력과

한때 개간한 흔적은 있었으나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한중정상회담 이후의 한중, 북중 관계 등에 관해 현

마치 뗏장을 사각형으로 떼어낸 듯한 다락밭에 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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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러시아 하산

북한 나진

중국 팡촨

03

04

은 자라지 않았다. 경사가 심해 경작을 포기했거나

리서 보아도 짙푸른 색이어서 한 식구가 먹을 수 있

파종할 씨앗이 없었을 것이라고 중국동포 가이드 손

는 푸성귀는 해결될 것 같았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광태 씨는 설명했다.

강가 물이 얕아 보이는 곳에서는 초등학생쯤으로 보 이는 3~4명 혹은 5~6명의 아이가 무리지어 미역을

| 미역 감는 북 아이들도 한반도의 미래

감고 있었다. 알몸으로 자갈 섞인 모래밭을 뛰노는

이따금 나타나는 마을의 가옥구조는 거의 비슷했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들을 보면서 ‘저들이 통일 한반

‘일(一)자형의 3~4칸’ 집이고, 우중충한 지붕에 굴뚝

도의 미래인데 우리가 함께 안고 가야지’ 하는 생각

이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외관은 허름한 판잣집 비

이 절로 들었다. 압록강을 따라 가는 동안 뗏목꾼들

슷했다. 집 앞에는 저마다 제법 큰 텃밭이 있었다. 멀

을 몇 차례 봤다. 뗏목의 앞머리와 꽁무니에 각기 한 사람씩 서서 삿대로 방향을 조정해나갔다. 수량이 비 교적 풍부한 백두산 인근의 상류에서 벌채한 나무를 뗏목으로 만들어 하류 쪽으로 운반하는 것으로 보였

01 압록강변 북한 신의주 지역에서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02 임강에서 창바이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한 압록강 남안의 북한 마을 03 중국 창바이현에서 바라본 북한 혜산시, 주민들이 강변에 나와 빨래 등을 하고 있다. 04 중국 팡촨에서 바라본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교

다. 중국 쪽에서는 규모가 꽤 큰 제재소를 볼 수 있었 다. 북한 쪽 야산에서는 ‘선군 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 군 만세’라는 큰 글씨가 눈에 띄었다.


| 장엄한 압록강 대협곡은 천 길 낭떠러지

대적으로 철조망을 설치했다”라고 말했다. 또 “2007

창바이현 조선자치구에 들어서자 군복 차림을 한 두

년에 북한에 놀러 갔고, 작년에는 한국의 서울과 제

사람이 버스에 올라 우리 일행의 여권을 모두 거둬갔

주도까지 관광했다. 남한은 너무 잘살고, 북한은 너

다. 가이드는 “전에는 검문하거나 신분증 조사를 하

무 못 산다”라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통제가 까다로워졌다”라고 했 다. 최근 늘어난 탈북자 문제를 중국 측이 예민하게

| 탈북자 때문에 작년 대대적 철조망 공사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투먼에서 잠시 머물다가 중국과 러시아, 북한 3국의

셋째 날(5일) 이른 아침에 백두산(중국 쪽에서는 長

접경도시 훈춘으로 향했다. 사전 약속대로 훈춘에 있

白山이라고 한다)을 향해 떠났다. 천지로 가는 코스

는 ‘훈춘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의 현지 사무소 관

는 북파, 서파와 최근 문을 연 남파 등이 있는데 우리

계자를 만났다. 중국의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헤

일행은 남파 코스를 택했다. 남파 코스는 백두산의

이룽장(黑龍江) 동북 3성의 개발 전망과 이곳에 물

중국과 북한 땅이 좁은 계곡 하나로 국경을 이루고

류거점을 마련하게 된 배경 등에 관해 설명을 들었

있었다. 계곡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목의 북한 땅

다. 동북 3성은 1억 인구에 GDP 규모는 5,795억 달

에는 군데군데 통나무집이 있었다. 집 부근에서 사람

러(2010년)로 세계 20위권 국가에 해당하며 지린성

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벌채를 하거나 약초를 채

의 경제성장률은 13.7%(2011년)로 중국 평균 9.2%를

취하는 사람으로 짐작되었다. 남파 코스의 중간 지점

상회한다. 중국이 동북지역 개발축인 ‘창-지-투(창

에서는 압록강 대협곡을 만날 수 있었다. 좁은 협곡

춘-지린-투먼) 선도구 개발지역’과 연계된 훈춘 외

의 절벽 바위는 거대한 기둥 모양의 절리(節理)를 이

곽에 12㎢의 대규모 국제합작시범물류단지를 건설

루고 있었다. 가까이 갈 수는 없었으나 대충 보아도

하는 것은 이미 포화상태인 서해 항로 대신에 북한의

협곡의 깊이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 같

나진항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다. 북한

아 보였다. 정상이 가까워 오자 한여름인데도 여기저

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경우, 나진선봉지구와 외곽

기 흰 눈 더미가 그대로 있었다. 정상 부근인 천지에

의 훈춘 일대는 동북아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할 것이

이르자 강풍과 함께 빗방울이 짙은 안개 속에서 흩뿌

라고 한다. 포스코와 현대그룹이 이곳에 2,809,917

리기 시작했다. 백두산 산정의 16봉은커녕 코앞의 천

㎡(85만 평)의 국제물류단지를 건설하는 것도 향후

지도 짙은 안개로 볼 수 없었다. 30~40분을 기다려

활발해질 중국 동북 3성과의 비즈니스에 대비하여

도 허사였다. 하산해서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거점을 확보하고, 아울러 앞으로 이 지역을 통해 대

넷째 날, 옌지를 출발해 2시간여 만에 북한과 두만

북 진출의 거점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강을 사이에 둔 국경도시 투먼에 도착했다. 대나무

훈춘을 나와 북한의 나진선봉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통 같은 것을 엮어 배를 만든 7인승의 미니 유람선을

팡촨으로 향했다. 왼쪽 철조망 건너는 러시아 땅이고

타고 강폭 50여m의 두만강을 오르내렸다. 뱃사공은

오른쪽 철조망 아래 두만강을 건너면 북한 땅이었다.

남쪽의 북한 방향으로는 일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

좁다란 도로를 40여 분 달려 중러 국경 경계표지인

다. 아이를 데리고 같은 배에 동승한 조선족 중국인

‘토자패(土字牌)’를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차로 5분

은 자신은 초등학교 교사라면서 “이곳 두만강 양쪽에

가량 이동해 전망대 용호각에 올라 북한의 ‘나진선

는 사람의 출입을 막는 철조망이 없었는데 작년에 대

봉자유경제무역구’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동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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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10여km밖에 안 된다. 왼쪽의 러시아 연해주와

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유엔제제를 벗어나는 것이다.

오른쪽의 북한을 잇는 두만강철교가 시야 가운데에

나선개발 프로젝트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국제협력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나진선봉지구가 펼쳐져 있

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며, 북한을 개혁·개방으

었다. 공장 건물들도 멀리 보이긴 했지만 아직은 광

로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활한 벌판이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안과 북안의 풍경이 왜 이

| 나선 프로젝트 참여는 북 개방 촉진에 도움

렇게 다를까?’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

북중 경제협력의 대표적 사업이 나선지구개발 프로

과 두만강변을 따라 4박 5일간 1,200여 킬로미터를

젝트다. 북한의 대중 수출은 24억 6,400만 달러, 수

달리면서 내내 뇌리에서 맴도는 의문이었다. 북안의

입은 31억 6,500만 달러(2011년)로 수출 품목은 광물

중국 땅은 짙푸른 옥수수밭과 과수원, 벼논 그리고

자원, 해산물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중국의 대북 투

지붕의 붉은 색깔이 선명한 벽돌집, 쭉쭉 뻗은 고속

자사업은 무산 등지의 철광석 등 광물자원이나 동해

도로, 각종 인프라 건설현장으로 이어졌다. 반면, 남

출해권과 관련된 나선지구 항만개발에 집중되어 있

안의 북한 땅은 한결같이 낡은 가옥들, 황토빛 다락

다. 물론 압록강 지역의 북중 협력사업도 없는 것은

밭의 연속이었다. 한국전쟁 정전 60년이 지나는 동

아니다. 중국이 사업비(16억 위안/ 3,300억 원)를 전

안 중국은 개혁·개방을 했고,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부 부담하고 있는 신압록강대교가 내년 7월 개통을

인민을 옭아맸다. 구소련의 몰락으로 체제경쟁은 20

목표로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압록강

여 년 전에 이미 끝났는데도 북한은 아직도 3대 세

유역개발의 대규모 사업인 황금평, 위화도 개발은 거

습 유훈통치의 우물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차이라면

의 진척이 없는 실정이다. 반면, 나선지구 개발에는

차이다.

△나진선봉 화력발전소, 시멘트공장 건설 △훈춘과

정치·군사적 이유로 서울과 평양 양쪽의 거리가 너

북한 선봉 간 교량 건설 △나진 4, 5, 6호 항만건설 등

무 멀다면, 서울에서 베이징을 둘러 경제협력의 길

의 프로젝트가 포함되어 있는데, 상대적으로 압록강

을 통해 평양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북ㆍ중ㆍ러

지역보다는 북중 경협이 긴밀한 셈이다. 그러나 중국

접경지역에 대한 우리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

의 기업들이 이곳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인

이 필요하다. 개성공단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

프라 구축에서부터 투자보장을 비롯한 관련 제도 정

아가면 남북 간 직접적인 경제협력도 가능할 것이

비 등이 시급한 실정이다.

다.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에 우리 정부나 기업이

이날 저녁에는 한반도문제를 연구하는 옌벤대학 조

참여하면 북한을 개방으로 이끄는 데 일조할 수 있

선한국연구중심의 K교수와 식사를 함께했다. “중국

을 것이다.

중앙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나선지구 개발에 속 도를 늦추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권고를 듣지 않았 다. 북한이 중국의 ‘전략적 자산’이라는 전통적인 대 북관에서 상당히 강경하게 바뀌고 있다. 중국의 한반 도정책을 통일을 기조로 해야 한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급한 것은 평화협정 체결이 아니라 북

이경형은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서울신문 편집국장, 논설실 장, 임원, 고문을 역임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와 ‘장준 하공원’ 건립추진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내일신문 칼럼니스 트와 예술마을 헤이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통신

중국의 대북정책, 중국의 대북정책

‘정상적 국가관계’로 조정하나? 허재철 중국인민대학교 정치학 박사

지난 2012년 6월 29일, 신랑웨이보(新浪微博, 대표적인 중국식 트위터의 하나)에는 ‘평양 최성 호’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이 “베이징에서 내가 살 곳, 마실 콜라가 있기에 먼저 지도자에 게 존경을”이라는 문구로 웨이보를 개시했다. 그 후 이 웨이보에는 북한에 관한 사진들과 함께 재미있는 글들이 자주 게재됐고, 이것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1개월 후에는 팔로워가 5만 명을 넘 더니 5개월 후에는 40만 명, 올해 초에는 80만 명 이상의 팔로워가 생기게 됐다. 중국 네티즌 사 이에서는 그를 ‘웨이보계의 진수’라고까지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 네티즌과 논쟁하면서 북 한을 옹호하는 등 자신을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 했고, 이것이 중국 네티즌으로 하여금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가 진짜 북한에서 온 사람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일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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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북한에 대해서 얼마나 궁금해 하고, 북한 사람과 소통

한은 중국에게 지정학적으로 여전히 중요

해보고 싶어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 완충지대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중국을

과거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중국 노년층에서는 여전히 북한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발판으로 아

을 ‘혈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중년층

시아로 복귀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여전히

과 젊은 층에서는 이미 북한을 ‘불가사의한 나라’, ‘이해 못 할

중국에게 전략적인 완충지대가 되어준다

나라’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한

는 점을 강조한다.

번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젊은 중국인 공산당원에게 “한

그리고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주장하는 이

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으니 북한에 가서 단기유학을 해보는

들은 ‘혈맹’과 ‘포기’의 극단적 선택이 아닌

것은 어떠냐?”라고 물어보자 바로 “북한은 자유가 없어 가기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과 관계를 ‘국

싫다”라는 대답을 들었을 정도다. 작년과 올해 서해에서 북

가 대 국가의 정상적인 보통관계’로 조정해

한군에 의한 중국어선 나포사건이 있었을 때는 북한을 그냥

야 한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기본 틀 아래

두어서는 안 된다는 반북 여론이 인터넷에서 들끓기도 했다.

서 개별 사안에 따라 북한과 관계를 융통성 있게 조정해나가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 합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의 특성상 비록

외교정책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북 여론

그럼 중국의 지식인층은 북한을 어떻게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앞에서 살펴본 일

인식하고 있고, 중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반 중국인의 대북 감정과 지식인의 주장이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을까? 먼저 중국

중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

의 좌파 지식인 중에는 중국의 현 체제

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와

를 비판하면서 북한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언론도 공공연히 이를 인정하고 있다.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과거 마오쩌둥 사상을 신봉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회주의 건설에서 북한은 여전히 ‘중국의 동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세력 은 많지 않아 중국의 주류라고는 할 수 없다. 반면 이러한 주장과 거의 상반되는 입장으로 ‘북한 포기’를

그렇다면 실제로 중국

변화의 징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이들은 북한의 핵개발 등 극단적 행

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동이 중국의 국익을 위협한다면서, 과감히 북한을 버리자고

있을까? 최근의 몇 가

주장한다. 만약 북한이 계속 중국의 국익을 무시하는 행태를

지 사례를 통해 전체 방향을 가늠해볼 수

보인다면 중국도 북중 관계의 악화를 감수하더라도 대북정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두

지난 7월 27일 한국과 미국에서 정전협정

입장의 중간에는 ‘미워도 동지’와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주장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을 때, 북한

하는 이들도 있다. 먼저 ‘미워도 동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북

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전승

한이 여러 가지로 중국의 골치를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북

절)’ 행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이 행사에 중


국에서는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국가

을 견결히 반대하고, 조선(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견결히

부주석인 리웬차오(李源潮)가 대표단을 이

주장한다”라고 대답했다. 정부를 대변하는 외교부 대변인이

끌고 참석했다. 리웬차오의 방북 기간에 중

공식석상에서 중국과 북한은 ‘정상적인 국가관계’임을 강조

국과 북한은 전통적인 북중 친선관계에 이

한 것이다. 그동안 중국과 북한이 즐겨 사용해오던 ‘선혈이

상이 없고, 현안이 된 비핵화와 6자회담,

응고되어 만들어진 전통 우의(鲜血凝成的传统友谊)’의 ‘특수

대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 등에 이견이 없

한 관계’와는 조금 온도차가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흐름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지난 6월 19일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세심하게 눈여겨봐

베이징에서는 처음으로 중국과 북한 사이에 ‘전략대화’라는

야 할 부분이 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것이 열렸다. 중국에서는 외교부 부부장(차관) 장예쑤이(张

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공산당의 정치국 상무

业遂)가, 북한에서는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이 각국을 대표

위원이 7명이나 있는데, 왜 그들 중 한 사

해 이 회의에 참석했다. 여기서는 핵문제를 포함한 양국 간

람이 아닌 그보다 급이 낮은 정치국 위원

의 중요 의제들이 정상적인 국가 간 전략대화 형식으로 논의

이 대표로 갔을까? 또 각종 중국 언론 보도

된 것으로 알려졌다.

를 눈여겨보면 “국가부주석 리웬차오가 북

또한 당과 정부로부터 ‘지도’를 받는 중국 언론이 최근 7·27

한의 요청에 응해 방북”이라고 소개하였음

종전기념일과 관련하여 내보낸 보도를 보면, ‘항미원조(抗

을 알 수 있는데, 리웬차오가 중국공산당이

美援朝)전쟁’이나 북한이 부르는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

아닌 정부 차원의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방

(전승절)’이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가치중립적인 ‘조선전쟁’

북했음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에 리

과 ‘조선전쟁 종전기념일’이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

웬차오를 초청한 단위도 북한의 조선노동

용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당이 아닌 최고인민회의와 내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이번 리웬차오의 방북은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당 대 당 의 ‘특수 관계’가 아닌 정부와 정부 사이의 ‘보통 국가 간 관계’에 근거해 이뤄진 것임 을 알 수 있다.

전통우의 (传统友谊)와 여시구진 (与时俱进)

2010년 5월, 후진타오(胡锦涛) 주석은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중조(중북)전통우의는 양당, 양국과 양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북한

국 인민의 귀중한 재부이고, 중조우의가

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인 지난 3월 8

시대와 보조를 맞춰 발전하도록 하며, 이를 양국 세대에게

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华春莹)은

이어주는 것은 쌍방의 공동된 역사적 책임이다”라고 말했

정례 기자 브리핑에서 “북한 핵실험에 대

다. 한 중국학자에 따르면, 여기서의 핵심적인 표현은 ‘전통

한 안보리 결의가 중북 관계에 어떤 영향

우의(传统友谊)’와 ‘시대와 보조를 맞춰 발전(与时俱进)’하

을 끼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중국

는 것이라고 한다. 즉, 중국과 북한은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과 조선(북한)은 정상적인 국가관계다. 동

계승하고 후대에 이어나가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북중

시에 우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진행하는 것

관계를 변화·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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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 이후 북한의 핵실험 등으

물론 중국의 대북정책에 미묘한 변화가 감

로 북중 관계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지난 7월 리

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우리

웬차오의 방북이 말해주듯 전체적으로 북한과 중국은 여전

가 오판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변화

히 서로 중시하고 있으며, 우호관계를 지속해나가려고 노력

가 한국이나 미국, 일본이 원하는 그런 변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진타오가 말한 ‘전통우의’는 시진

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한 언론은

핑 시대에도 계승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조정

‘시대와 보조를 맞춰 발전(与时俱进)’하는 것과 관련해서

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은 결코

양국 관계에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즉, 앞에서도 살펴봤

미·일·한과 한 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북

듯이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과거 선혈이 응고되어 맺어진

한의 극단적이고 중국의 국익을 해치는 행

‘혈맹’의 특수 관계에서 우호관계를 이어나가되 ‘정상적인

동에 대한 필요 반응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보통)국가 간 관계’로 조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움직

태도와 행동으로서 북한 스스로가 잘못을

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바로잡게 만드는 것이다.” 즉, 북한의 붕괴

그렇다면 중국이 정말 북한과의 관계를 ‘혈맹’의 특수 관계에

를 바라는 정책변화가 아니라 북한이 오류

서 ‘우호적인 정상적 국가관계’ 쪽으로 조정하려 한다면 그

를 수정하여 안정적으로 정권을 운영하길

동인은 무엇일까?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시 중국

바라는 정책변화이며, 중국의 국익을 해치

의 국가 이익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우호적

지 않길 바라는 정책변화인 것이다.

인 정상적 국가관계’를 맺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가장 부합

이제 2021년이면 「북중우호협조호조조약

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굴기’나

(中朝友好合作互助条约)」의 유효기간이

‘G2’ 등의 개념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만료된다. 1981년, 2001년과 같이 자동으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대국으로서 국제

로 20년 연기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일

적 사안을 처리하는 데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아

방의 요구에 따라 수정되거나 종료될 것인

졌음을 의미한다.

가? 지금 중국이 보이는 조그만 변화 하나

예를 들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단순히 중국에 직접

하나가 2021년을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생

피해를 줄 것인가의 차원이 아닌, 세계 질서와 동북아 역학

각해본다.

구도라는 큰 그림에서 판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중국은 과거와 달리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국제사회와 하나 되어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에 쓴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 게 된 것이다. 북한의 은하 3호 발사나 3차 핵실험 때 중국 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제재에 동참한 것도 이러한 맥락 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과 맺어온 전통적 혈맹 관계라는 헌옷이 이미 세계적 대국이 된 중국 의 거대한 몸집에 맞지 않아 중국의 전략 공간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재철은 2013년 6월 중국런민(人民)대학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미 디어학 석사학위를, 세종대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취 득했다. 남북관계 전문지 등에서 기자를 지냈고,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마그마 펠로우십’ 연구원으로 있다.


통일교육·평화교육

사회적 합의 통해 통일교육의 중립성 확보해나가야 조정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박근혜정부에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

되고, 통일역량은 제대로 된 교육으로 함양될 수 있

북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이를 실질적 통일준비와

다. 통일교육이 없이는 통일의 궁극적 지향점인 ‘사

결합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기

회의 통합’과 ‘사람의 통합’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반을 구축하고자 한다.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통일

어렵다는 점에서 통일교육은 통일의 필요조건이 된

교육’ 실시는 실질적 통일준비를 위한 주요 과제의 하

다. 또한 통일교육을 통해 국민이 형성하게 되는 북

나로 제시되고 있다. 통일교육의 강화를 통한 청소년

한 사회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는 남

과 국민의 통일의지 및 관련 능력 함양은 실질적 통

북한 주민 간의 신뢰 구축에 직접 영향을 준다. 즉,

일준비의 주요한 요소이다. 통일교육 자체로는 남북

통일과정 및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통일교육은 국민

간의 정치적 통일을 이룩할 수 없지만, 정치적·제도

의 통일의지를 제고하고, 남북한 주민 간의 상호 이

적 통일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통일을 촉진하거나

해를 촉진하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통일 및 북한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관련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적은 비용

사회적 갈등과 문제점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

으로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통일

의가 있다. 통일과정에서 형성되는 사회의 질과 통일

준비 작업인 셈이다.

과정의 가속도는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역량에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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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낮은 통일의식,

결된다고 보거나 통일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비

과거 통일교육의 한계 보여줘

율은 현저히 낮으며, 통일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과

통일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통일에 필요한 지식과

사회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청소년은 통일의 필요성

능력을 함양하는 통일교육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

이나 통일재원 마련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당

황이라는 것은 국민과 청소년의 통일의식 실태조사

위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통일에 대한 관심은 성인에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12년에 서울대학교

비해 적었다.

통일평화연구원과 KBS가 성인을 대상으로, 통일교

2000년대 이후 통일교육이 활성화되었음에도 국민

육협의회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의식 조

과 청소년의 통일의식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 못하였

사 결과를 살펴보면, 성인의 73.8%가 통일에 관심을

다는 점을 생각하면, 새 정부의 대북ㆍ통일정책의 틀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청소년은 통일에 관심이

을 만들어가는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그간 형식적

있다는 응답이 64.7%, 관심이 없다는 응답이 35.3%

으로 반복되어온 통일교육에 대한 강조보다는 통일

로 성인보다 통일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필자는 5년

났다. 통일 필요성에 대해서는 성인의 57%가 통일이

단위로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통일교육이 아니라 지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그저 그렇다는 의견이 21.6%,

속적으로 청소년과 국민의 통일의지를 고양하고 통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21.4%로 나타났다. 청소년

일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중 76.2%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고, 23.8%

통일교육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

가 통일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통일이 불필요

의를 이루어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

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은 그 이유로 49.8%가 사회

난 이명박정부에서는 통일교육이 정책적으로 강조

혼란을, 29.2%가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통일이 자

되고 정부의 통일교육 관련 예산이 상당히 증가했음

신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보는 성인은 26%에 불과

에도 학교현장에서 통일교육은 오히려 위축되었다.

해 대다수 국민이 통일이 직접 자기 자신에게는 이

북핵문제 지속과 남북관계 경색이라는 정치적 상황

익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서 통일교육 기본방향으로 ‘건전한 안보관’이 강조

통일비용에 관해서는 성인의 60.4%가 통일비용 부 담 의사가 있고, 청소년의 80.3%가 통일재원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통일의식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국민의 50~70%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느끼거나 통 일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통일이 자신의 이익과 직

통일교육이 없이는 통일의 궁극적 지향점인 ‘사회의 통합’과 ‘사람의 통합’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통일교육은 통일의 필요조건이 된다.


정부는 민간통일교육기관에서 적극적인 통일교육 수요창출 및 통일교육 콘텐츠 생산, 통일교육 정책입안 참여, 공적 서비스에 대한 책임분담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되었으나, ‘건전한’ 안보관의 의미와 안보와 통일의

립에서 불명료한 지점인 안보와 평화와 통일 간의 관

관계는 명료화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통일교육

계 문제, 민족공동체와 다문화의 조화 문제, 평화적

현장에서는 안보교육이 반공교육으로의 단순한 회

공존과 통일의 관계설정 문제, 북한 관련 교육에서

귀로 이해되고, 안보교육 이외의 통일교육은 크게 축

객관성과 균형성 문제 등 주요 쟁점에 관한 다양한

소되었다. 이와 같이 정권교체에 따라 통일교육의 방

견해를 확인하고 정부와 민간이, 서로 다른 관점을

향성과 내용이 크게 흔들리는 현상을 방지하고 장기

지닌 다양한 통일교육 주체가 공유할 수 있는 합의지

적 과정으로서 통일교육의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위

점과 과제를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해서는 우선 통일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

이와 함께, 통일교육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어떤 교

찰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과제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육 콘텐츠와 방법을 통해 청소년과 국민에게 전달

행복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바람직한’ 통일의 가치가

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적 고민을 해야 한다. 청소년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명료화 작업을 거

의 통일교육 만족도는 그리 높지 못한 편이다. 청소

쳐, 이러한 가치를 통일교육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

년 통일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학생의

가에 대한 연구도 수행해야 한다. 통일교육 환경의

76.6%가 학교에서 통일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

변화에 부응하여 통일교육을 구성하는 내용적 요소

으로 나타났으며, 학교 통일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만

들 간의 균형추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작업은 그 이

족한다는 학생의 비율(34.1%)이 불만족한다는 비율

후의 일이다.

(13.3%)보다 높았지만, 절대적인 만족도는 높지 않 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이 통일 및 북한과 관련

사회적 합의 통한 중장기적 통일교육 필요해

된 정보를 얻는 경로는 인터넷 29.9%, 텔레비전이

통일교육의 중립성과 객관성은 정부의 정책이 아니

나 라디오 등 대중매체 26.2%, 학교수업 25%로, 인

라 사회적 합의로 확보될 수 있는 것이므로, 통일교

터넷과 언론이 청소년의 통일의식에 미치는 영향력

육의 장기적 방향성과 원칙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

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통일교육 못지않게 큰 것으

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관·학을 포함하는 광범

로 나타났다.

위한 통일교육 관련 주체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학교 통일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그다지 높

통일교육 담론의 변화와 쟁점에 관한 다양한 입장 차

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통일의 필요성을 당위

이가 표출되는 가운데 최소한의 합의지점을 찾는 계

적 차원에서는 이해하지만 통일에 대한 적극적 관심

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현재 통일교육 방향성 정

은 없는 청소년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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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략 및 실천활동을 개발, 시행해나가야 할 것이

용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과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다. 청소년은 한민족의식 같은 당위성의 관점에서 통

접속 가능한, 학습대상자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일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현실적

WEB 3.0 시대에 적합한 유비쿼터스 통일교육 환경

필요성과 이익의 관점에서 이를 인식한다는 점을 감

을 갖추어나가기 위해서는 그간 주로 학교와 사회단

안하여, 청소년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납득시킬 수 있

체 등 고정된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통일교육에 초

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다양한 논리를 개발하여야

점을 두었던 시각을 확장해야 한다.

한다. 통일, 안보, 평화 등 통일교육의 주요 내용적

제도적 측면에서는 통일교육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요소들 간의 균형과 북한 사회에 대한 균형 잡힌 이

교육부를 비롯한 유관부처의 긴밀한 연계체제 구축

해를 추구하되, 안보에 대한 강조나 북한에 대한 비

과 정부와 수평적 네트워크 및 파트너십을 통한 통일

판적 시각이 청소년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교육 거버넌스를 형성해야 한다. 민관이 함께하는 통

인식으로 이어져 통일교육에 대한 열의와 교육의 효

일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함으로써 통일교육의 방향

과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교육

성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도출하고, 국가와 시민사

내용 편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회 간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지금까지 통일교육은 주로 통일문제, 북한, 남북관계

공감대를 넓혀야 할 것이다. 정부는 민간통일교육기

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학습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관에서 적극적인 통일교육 수요창출 및 통일교육 콘

주안점을 두어왔다. 통일에 관한 ‘통일’된 입장과 지

텐츠 생산, 통일교육 정책입안 참여, 공적 서비스에

식을 전달하고 정답을 가르치는 것에서 벗어나, 학습

대한 책임분담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체

자들의 통일과 관련된 ‘성찰’과정을 매개하고, 통일

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과정을 조화롭게 이끌기 위한 능력, 통일된 사회에서

또한 통일교육 전문인력 양성체계를 구축ㆍ강화함

함께 살아가기 위한 능력을 갖추게 하는 교육으로 통

으로써 학교통일교육의 효과성, 전문성을 제고해야

일교육을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

한다. 학교통일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교사 양

에서 보면 상호 차이점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갈등을

성과정에서, 특히 도덕과와 사회과 등 통일 관련 교

원만하게 해결하기, 평화롭게 살아가기 등 갈등해결

육내용을 주로 다루는 학과의 학생들은 통일교육 관

교육, 평화교육의 목표·내용·방법론을 통일교육

련 과목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의무화하고 통일교육

의 틀 속에서 결합할 필요가 있다.

과정을 설치한 학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여야 한다. 지역 내 몇 개 학교에서 활동하는 통일교육 전

통일교육의 발전,

담교사, 초등학교 통일교육 수업활동 보조교사, 초·

민관의 유기적 협력에서 시작하자

중·고 통일교육 현장체험학습 지원 보조교사 등 다

또한 청소년 통일의식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미

양한 통일교육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래 통일세대들에게는 인터넷과 언론매체가 학교교

것이다.

육 못지않게 주요한 통일·북한 관련 정보 원천이 라는 점을 감안하여 언론매체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갖추고 통일교육의 장으로 언론과 인터넷을 적극 활

조정아는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통일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길에서 만나는 평화와 통일

통일평화교육,

남북 모두의 복지와 안전을 위한 새로운 여정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한국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60년이 된 이제는 북 한에 대한 연구에서 ‘북한학’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성찰이 중요시되는 흐름에 비한다면 통일 교육은 이름만 교육이지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근 본적인 학습이론, 인간론, 교육학적 도구 등에 대 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식 의 전환이 요청된다.

기존 통일교육의 한계와 문제점 정부 측 통일교육원이나 통일신문 등의 언론에서 소개되는 현재의 통일교육 사례나 60여개 통일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낸 『2012년 통일교육협의회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학교현장에 서 통일교육 이름으로 행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구성됨을 알 수 있다. 첫째, 통일교육의 주제가 북한이해, 통일의 당위성·필요성, 통일방향, 통일편익, 통일 후 부

국강병의 강대국가로서의 번영의 꿈과 과제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민족의 동질성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체제의 다름에서 오는 경계, 국가안보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둘째, 그 전달방식은 수백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두 사람의 전문강사 강연, PPT 등 전

달매체 활용 등을 통한 인지적인 방식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전쟁기념관이나 유적지 돌아 보기, 북한 문화나 전쟁 당시의 상황 체험행사, 백일장 등의 글쓰기나 그림그리기, 사진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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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올리기 등과 같은 인터넷의 활용 등이 강화된다. 그러나 미디어 활용 등의 기술적 도 구의 사용이 강화되었어도 북한의 열등성과 남한 체제이념의 우월성, 국가안보에 기반을 둔 당위론적이고 의무론적인 교육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셋째, 생생한 북한이해라는 이름으로 탈북자 통일전문강사를 파트너로 통일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지만 이들의 역할이 계속적으로 북한의 열등성, 북한 체제의 거짓 과 억압에 대한 정보를 재생산하는 구조를 형성하면서 이념적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 시키고 있다. 탈북자의 북한이해는 그가 남한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 한 생존하기 어렵다는 자기 인식이 있기 때문에 위의 언론에서 보듯이 언제나 북한 비판을 깔고 말하고 있어서 그 것의 사실진위를 떠나 ‘타자와의 공존과 협력’을 위한 전략이나 미래 공동체의 형성에 대한 비전은 약화된다. 필자의 주장은, 전쟁은 남이나 북 모두에게 아픔의 상처를 주었고 체제에서 약점과 어두움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분단상황의 시스템이 쌍방에게 준 구조적이고 모순적인 아픔이라는 것 이다. 부부간의 싸움으로 인한 상처와 분리의 경험은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탓하기 어 렵다. 각자가 나름의 정당성의 논리로 상호 대응한 결과이기 때문에 과거를 넘어 미래로 지 향하는 시야를 갖지 않는 한 과거의 덫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에너지를 모으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 지금의 북한이해란 이름하에 재생산하고 있는 과거중심 및 자기폐쇄적인 타자 열등화의 논리보다 훨씬 실익이 크고 가치 측면에서도 더 낫다. 이념적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힘들고 어 려운 분리와 상처의 상황을 통해 대화의 프로세스를 갖고 아름답고 선한 승승의 결과와 쌍방 의 태도 변화를 가져오는 게 갈등전환과 평화학 실천가들이 바라보는 희망이다. 지금의 북한 이해에서 새로운 개방적 시각과 타자를 품을 수 있는 새로운 모색이 없는 한 대결과 정복하 기의 논리로 인한 분단 고착화는 계속해서 우리의 숨통을 죄고 있을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통일평화교육 필요해 사실상 전혀 모르던 사람이 서로 만나 사는 것보다 함께하던 사람이 서로 싸워 분리된 후에 하나로 합해지는 경우가 사는 게 더 힘들다. 전자는 두 번째의 조건인 약속과 미래 기획에 대 한 대화로도 가능하지만 후자는 증오와 상처에 대한 치유와 화해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 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이들 형제가 사는 집 주위에 다른 이웃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웃들은 이들 형제가 서로 결합한 결과가 자신들에게 위 협이 되지 않을지, 혹 자신들의 권리나 복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는지 주시하고 염려하고 있다. 이렇게 형제의 결합과 이웃의 비유를 현재 분단 체제의 한반도 상황으로 전환하여 보 면 이는 다음과 같은 시대적 요청이 있게 된다.


첫째, 현재의 통일교육은 흡수통일이라는 한쪽 형제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서 평화통

일이라는 상대존중과 대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평화통일은 타자를 어떻 게 보고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문제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각각의 개인이 지닌 생활스타일인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한쪽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것이 현실상 불가 능하고, 이웃들이 그렇게 나뉜 상황에서 다른 대안의 제3의 생활 스타일을 보여줌으로써 마 을 공동체에 새로운 기여를 해야 한다면 동등한 주체로서 파트너십을 가능하게 하는 여정에 대해 마스터플랜을 기획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 두 형제 사이에 그리고 마을 사 람들도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한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과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통일평화교육은 구조적 폭력의 제거, 인권, 공감어린 대화, 평등과 정의, 차이와 다원성,

지속가능한 생활문화, 문제에 대한 민주적 타결 등의 평화적 가치가 사회공동체 구성원 전체 에 파급된 풀뿌리 민주주의의 평화공동체 실현을 과제로 한다. 이는 뿌리 백성에 대한 ‘인간 안보(human security)’와 국제적 관계를 통한 ‘공동안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 다. 서로 행복감을 주는 시너지가 없다면 한 가족이 됨은 또 하나의 고통이 된다. 그러기 위 해서는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공감, 대화, 갈등의 민주적 승승의 해결, 평화에 대한 신념, 마 을 주민과의 우정의 강화-‘민족공동체 의식’을 넘어 동북아평화공동체의 형성과 지구시민 의식-를 위한 공존의 의식과 생활 스타일을 익혀야 한다. 셋째, 통일안보교육이 지닌 우리의 미래세대가 어떤 인간이 되고 어떤 종류의 리더십을 갖기

를 원하는가에 대한 가치와 전망에서 진지한 교육학적 접근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대 수술이 필요해진다. 통일의 이유에 대한 미래세대의 주문이 정치·경제적 이득(통일편익)의 관점에 초점을 두는 통일안보교육의 한계는 공동선, 상호 관계성, 공존의 삶, 봉사와 타자의 아픔에 대한 윤리적 민감성 그리고 약자에 대한 돌봄, 평등과 정의에 기반을 둔 자비롭고 지 속가능한 사회라는 가치·문화적 접근방식에 대한 시각이 필요해진다. 비폭력, 대화, 다양 성, 공동체성, 약자에 대한 배려, 생태적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와 태도를 사회와 교육현장에 서 내면화하고 생활화하는 교육학적 토대와 이를 실제 생활과 시민생활에 구조화하는 접근 방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통일안보교육은 아직도 교육 커리큘럼과 틀거리(frame)에서 자기폐쇄적

이고 과거지향적인 교육내용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학이 갖고 있는 갈등전환, 대 화와 신뢰의 프로세스의 사고방식과 그 진행에 대한 구체적 적용의 실습, 일치와 공동체성 을 강화하는 그룹의 승승의 문제해결, 정세분석을 넘어서 통일을 위한 평화의 소통리더십 개발과 핵심역량 구현, 통일 후 미래의 사회갈등 예상현안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민주적 의 사결정의 실습, 동북아평화공동체 실현에 대한 열정과 가치의 공유와 구체화를 위한 모의 실습, 과거 남북 간 평화와 화해를 위한 긍정적인 외교적 성과에 대한 재복습과 그 실현을 위한 기획실습, 생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지구적으로 지속가능한 평화로운 복지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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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한 희망에 기초한 능력부여의 형성(empowerment-building) 등에 대한 커리 큘럼이 요청된다.

가치와 철학을 담은 ‘인간론적’ 통일평화교육 위에서 보듯이 통일평화교육의 관점은 통일안보교육의 내용과 방향의 한계에 대한 질적 고 양과 새로운 지평을 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통일(안보)교육은 평화학 의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으로부터 긴급한 도전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이는 독일이 통 일 이후 늦게나마 추구하고 있는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이 귀감이 된다. 정전 60주년 이후 이제 다음 한 세대 20~30년 동안 우리는 아직도 교육현장에 강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분단논리와 군사와 경제의 힘의 우선에 대한 맹신과 심리적 두려움을 계속 재생산하는 통일교육 현실에서 대담한 모험과 새로운 꿈과 열정을 품어야 할 때다. 수많은 성명과 기념집회의 상징적 문화행사를 넘어 분단을 넘어서는 ‘가치철학적인 인간론을 내재 한 통일평화교육’이 새롭게 대두되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특별히 우리의 통일평화교육이 미래세대에게 어떤 이상을 품는 ‘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 그리고 상호 의존의 관계성이 중요시되고 수많은 지구적 과제와 위기가 한 개인, 집단, 국가 를 넘어 전 지구적 상황이 되어 있는 지금과 미래에서 어떻게 ‘나’와 ‘너’를 넘어서 보다 큰 지 구적인 ‘우리’에 대한 우정과 협력을 끌어내는 삶의 기술과 태도를 함양할지를 깊이 성찰하 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다. 필자가 보기에 한반도의 평화는 단순히 한반도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체제의 모순이 우리의 분단상황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 은 이미 지구적인 문제가 되고 미래의 지구 공동체에 대한 중대한 문명사적 전환이 될 수밖 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문명사적 전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보편적이고 진실한 가 치와 인류사적 시야가 가능한 ‘영혼’을 길러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고난이 있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인류 역사상 아무도 가보지 못한 전례 없는 모험이 놓여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 정당성의 논리의 덫에 매여 있어서 분단 과 상호 불신 및 상처의 수많은 비용을 감내하고 있는 지금의 어리석음과 고집을 깨고 새로 운 돌파를 하기 위해서 공동의 복지와 안전을 위한 새로운 여정이 필요하다. 정전 60년이 된 지금 이 시대는 그러한 새로운 여정에로 길을 떠나자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

박성용은 비폭력 평화훈련 영역에서 훈련가를 양성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실천가다. 그가 열고 있는 워크숍은 국제 모 델들인 ‘비폭력대화(NVC)’,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청소년평화지킴이(HIPP)’, ‘회복적 서클(RC)’, ‘서클프로세 스’ 등이고 이를 통해 갈등·조정·중재를 진행하고 있다.


2030통일론

평화와 상대성 김보수 중앙대학교 3학년

ECONOMY

CONFUSING

UNDERSTAND

CULTURE NEW CRIME

하나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 형선고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범했지만, 범인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논거를 들며 사형판결에 반대할 것이고, 다 른 누군가는 타인의 생명을 앗아갔으니 사형판결이 마땅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논거를 들

VARIOUS STANDARD

수 있겠지만, 결국 모든 논거는 사형에 대한 찬성 혹 은 반대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당신의 친지나 가족이라는 가정을 더해보자. 그러면 당신은 그 범인에 대한 사 형판결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제 통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금 한국 사회에서 평화와 안보, 통일문제는 상대

상당수의 젊은 세대가 통일을 꺼리는 실질적 원인이

성에 의해 가장 가지각색으로 논의할 수 있는 주제

다. 머리로는 ‘통일은 해야 한다’고 가치판단을 내리

라고 생각한다. 무수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사

면서도 통일로 인한 혼란이 막상 현실적인 문제로

리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다가오면 난색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사는 한 명의 20대 젊은이로서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

통일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다. 당장 나 역시도 가시적인 불편함이 한둘이 아닐

우선, 남북한의 통일은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독일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 있는

의 통일과정에서도 그랬듯이 과도기적인 사회적 혼

일이 아니며, 결국 우리는 더욱 확실한 자신의 기준

란을 경험할 수 있다. 경제적 손실, 문화적 차이, 신

을 마련하여 통일문제를 논의해나가야 할 것이다.

종 범죄나 사회적 차별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이

그래서 나는 앞서 말한 통일에 대한 반대 담론들을

라는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기준 1’이라고 해두고, 내 개인적 의견을 ‘기준 2’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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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통일에 대한 다양한 ‘기준’을 상상해보자

나는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할머

나는 대한민국 해병으로 김포·강화 지역에서 군 복

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소한 생활부터 장손 집

무를 마쳤다. 복무기간에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이 맡는 차례나 제사까지 할머니와 함께했다. 할머

있었고 사건 전날, 일병 정기휴가를 나왔다가 사건

니는 항상 평온하고 차분한 모습이셨지만, 차례나

다음 날 복귀하였다. 그 후로는 약 한 달간 긴장을 늦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음복을 하실 때만큼은 늘 한풀

출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씻지도 못하고 항상

이를 하셨다.

무장하고, 잠을 잘 때에도 전투복을 입은 채 병기를

‘딱 20살 되던 해’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포탄

품에 안고 있어야 했다. 날마다 전시를 가정한 훈련

소리가 났고, 온 마을이 혼비백산하여 사람들이 짐

으로 지쳐갔지만, 누구도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을 들고 곧바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단다. 할머니

이후 실전 같은 훈련은 더 심화되었고, 대원들의 군

는 영문도 모른 채 피난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되

기 또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런 와중에 K4 고속유탄

었고, 그렇게 남쪽으로 넘어왔단다.

발사기 사격 훈련장에서 K4탄이 발사체 내에서 폭

시간이 지나 휴전선 때문에 정전 60년이 되는 지금

파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 말년이었던 선임대

까지 고향 땅에 가보지도 못했다고 하셨다. 나는 이

원이 부상을 당했고, 병장이 된 선임대원이 목숨을

이야기를 약 10년간 차례나 제사 때마다 계속해서

잃었다. 얼마나 참혹했던지,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

들어왔다. 이제는 외울 수도 있는 도입부, ‘딱 20살

다’라는 해서는 안 될 이기적인 생각을 할 정도였다.

되던 해’로 항상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할머니께서는

내가 말하는 ‘기준2’란 결국 역지사지의 문제다. 아

눈시울을 붉히셨고, 나는 늘 그 이야기를 들으며 휴

주 조금의 상상력만 가지고도, 내가 길게 이야기한

지를 할머니께 건네 드렸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몇 가지 일화와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할

눈물을 훔치시고 고향의 한이 담긴 제목 모를 타령

머니의 눈물과 해병대원의 피는 누군가의 것이 아닌

을 부르셨다. 우리 가족의 차례나 제사는 늘 이렇게

나와 내 가족의 눈물과 피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마무리되었다.

동안 눈물과 피를 너무 많이 보며 살았다.

고향인 춘천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나를

상대성을 가지고, 앞서 가정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포함하여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은 주말이나 방학을

당신의 가족이나 친지라고 생각해보자. 한 맺힌 눈

이용해 각자의 고향에 다녀온다. 매주 다녀오는 사

물을 흘릴 사람은 바로 나이다.

람도 있고, 공부해야 해서, 일이 바빠서, 비용이 들

평화적 통일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슬프

어서 고향에 자주 못 가는 사람도 있다. 못 가는 건

고도 끔찍한 상황을 이미 누군가는 겪었고 또 겪게

똑같지만, 우리와 할머니는 말의 무게가 다르다. 우

될 것이다.

리는 시간이나 여유가 생기면 고향에 갈 수 있다. 우

나는 나와 같은 세대의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편

리가 고향에 못 가는 것은 일시적인 문제다. 그러나

협한 사고를 가지는 것보다 여러 ‘기준’에 대한 고민

할머니께서는 정말로 ‘못’가시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이 요원하다면 할머니는 생전에 고향에 가실 방 법이 없다.


현장

Network

현장 - 민화협 정책토론회

“동북아 협력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민화협은 7월 15일(월) 2시, 프레스센터 19층 기

미중 관계의 새로운 변화 속 남북문제

자회견장에서 “동북아 협력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자율성 확보에 노력해야

신뢰프로세스”를 주제로 2차 정책토론회를 개최

토론회에 앞서 김덕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제 우리

했다. 이날 행사는 미중 양국이 새로운 파트너 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계를 구축하고, 우리 정부 역시 한미·한중 정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신뢰는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위한 소중한

회담 등을 통해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기다리기만 해서도 안

국제적 협력 및 공조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북 간의 인도적 문제와 사회문화교류, 경제협

동북아의 협력구도를 분석 및 전망하고 북핵문제

력 등 비정치적 영역의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해결,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정책

한다”고 주문하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나간다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는 막중한 책임감과 의지로, ‘신뢰’를 가동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

임강택 민화협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여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번 토론회는 김흥규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한편 토론회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안홍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과 교수가 ‘진화하는 미중관계와 동북아 평화협

장은 “한·미·중의 공동의 인식을 확산시키고, 나아가 동북아 지역안보체

력’을,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동북

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외교 전략이 필

아 평화협력구상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발표

요”하고 “또한 남북회담을 ‘평화통일 기반 마련’을 위한 대화로 계속 이

했으며, 김용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박인

어나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신뢰를 하나둘 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휘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이상현 세종

첫 발제를 맡은 김흥규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미중

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조성렬 국가안보전략

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

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이 토론으로 참여했다.

수는 냉전 시기 이전부터 최근까지의 미중 관계 변화를 간단히 돌아보고, 현재 양국 관계의 핵심이 되고 있는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신형대국 관계’정책을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새로운 강대국 관계’와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이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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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갈등을 불러오지 않았고, 양국이 상대의 정책

역의 경제적 역량 및 상호의존 심화현상과 정치·군사적 협력 간의 괴리,

에 대한 인정을 어느 정도 한 것으로 분석하며,

즉 ‘아시아 패러독스’현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러한 양국 관계의 변화 속에서 한반도 문

한편, 토론자로 나선 김용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동맹에 기

제, 북핵문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역시 정해

반을 두면서 한중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과 미중 협력의 과정에서 한·

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3개국이 북핵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해법을 찾느냐가 중요하

김 교수는 애초 연미화중(聯美和中)의 전략을 제

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핵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했는데, 이것이 중국의 빠른 부상에 따라 연미

한·미·중이 북한을 어떻게 설득·압박하느냐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협중(聯美協中) 단계로까지 예상보다 빠르게 나

이어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난 이명박정부의 외교적 성과

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로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북핵문제, 북한문제를 다루는 데 우리 정부의

위한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고, 다양한 아이디어

자율성을 확보한 것을 꼽고, 그렇지만 동시에 이런 자율성을 확보한 지금,

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더불어 G2라는 전례가 없는 외교환경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과의 연대를 비롯해 중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하

우리의 자율성이 의도하지 않게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는 모순적 구도

고 화합하면서 일본과도 협력하고 러시아를 끌

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들이고 북한도 끌어안고 가는, 즉 배타적이 아

한편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동

닌 포용적인 정책을 펼쳤을 때 가능하다고 결론

북아평화협력구상이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미중 관계가 잘 풀리느냐

지었다.

아니냐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때문에 이 두 문제를 연관성 있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가 당면한 외교안보의 최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도전이 향후 미중 관계의 전개 속에서 우리의 독자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외연적 확대

인가에 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

끝으로 발제를 맡은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최근의

구위원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전략인 한

북중 관계가 3단계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 같다며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설명하며, 이것이 효율적

으로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북을 다시 제자리로 놓는 작업에 대해서

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남북 차원의 신뢰형성

는 중국이 한미와 손잡고 공조하겠지만, 6자회담과 관련해선 조건 없는

과 동시에 남남갈등을 완화하고 정책에 대한 공

재개를 요구하고, 6자회담이 열린다 하더라도 이것이 9·19공동성명에 따

감대를 넓혀나가는 ‘국내 신뢰프로세스’와 한국

라 합의되기 위해서는 한미가 북과 적절히 타협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

의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통해 협력을

로 설명했다.

획득해나가는 ‘국제 신뢰프로세스’가 함께 추진

이날 행사에는 민화협 김덕룡 대표상임의장, 안홍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장, 설훈 상임의장(국회의원, 민주통합당)을 비롯하여, 이이재 조직위

그는 박근혜정부가 제시한 ‘비전 코리아 프로젝

원장(국회의원, 새누리당), 김성곤 민주당 의원, 구천서(한반도미래재단 이

트’에 남·북·중 및 남·북·러 3각 협력 강화를

사장), 차경애(YWCA연합회 회장), 문난영(세계평화여성연합 회장), 설용수

통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이익을 창출하겠다

공동의장, 이경형 민족화해 편집인, 진민자 여성위원장, 이규홍 조직위원

는 과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하지만 이

장 등 민화협 임원과 회원단체 150여 명이 참석했다.

러한 비전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동북아 지


현장

Network

민족화해 네트워크

민화협 NEWS

민화협 활동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민화협 제4회 대학생 평화통일캠프 DMZ에서 꿈꾸는 통일미래

민화협은 지난 7월 2일에서 5일까지 경기 도 연천·파주, 강원도 양구·철원·화천 등 DMZ 일원에서 국내 대학생, 외국인 대 학생 등 70여 명이 참가하여 제4회 대학생 평화통일캠프를 진행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평화통일캠프는 통일 미래세대인 대 학생들과 분단현실을 체험하고, 한반도 평

원 공동체 체험 ‘한탄강 레프팅’, 철원병영체험수련원 탐방, 박현선 민화협 통일교

화통일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마

육위원장의 ‘통일 미래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강의, 김혜진 이화여대 무용과, 정

련되었으며, 민화협 회원단체들과의 협력

미현 세종대 무용과 학생들의 특별 강의 ‘하나!’, 모둠별 활동 ‘우리가 만드는 통일

으로 진행하고 있다.

도시 이야기 구상’ 등으로 꾸며졌다.

이번 평화통일캠프는 탐방, 강연, 대학생

셋째 날 오전에는 화천 평화의 댐을 찾아 평화의 종을 타종하며 남북의 평화와 화

토론, 통일염원공동체행진, 평화통일대행

해를 기원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민통선 내 12km를 걸으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진, 통일도시 이야기 발표 등으로 진행됐으

기원하는 ‘평화통일 대행진’을 진행했다. 저녁에 진행된 모둠별 활동에서는 캠프

며, 분단과 평화통일의 염원이 담긴 현장을

기간에 준비한 ‘통일도시 이야기’ 발표 시간을 가졌고, 마지막 밤을 마무리하는 화

체험하고, 한반도문제를 논의하고 분단 극

합의 밤 ‘우리의 통일열정, 모여라!’를 가졌다.

복을 위한 실천방안을 논의해보는 시간을

마지막 날은 여혜숙 평화여성회 상임대표(민화협 여성위원장)의 강의 ‘신나는 평

가졌다. 첫날은 파주지역 도라산역, 도라전

화! 즐거운 통일!’에 이어 3박 4일 캠프를 돌아보고,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국토

망대, 남북출입사무소 탐방과 이영동 민화

정중앙점을 찾는 것으로 모든 캠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평화통일캠프에 참가한

협 통일교육위원장의 ‘정전 60년, DMZ’ 주

한 학생은 “캠프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제의 강연, 대학생 토론 및 생각 나누기 ‘썰

었다. 앞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평화와 화해의 한반도를 위해 고민해

전’, 나만의 손수건, 모둠 깃발, 구호, 풍등

야겠다고 느꼈다”라며 소감을 이야기했다.

만들기 등 모둠별 모임인 ‘안녕! 친구야, 반

앞으로도 민화협은 국내 대학생과 외국인 대학생, 해외교포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갑다’ 등을 진행했다.

평화통일캠프를 매년 진행하여 차세대 글로벌 리더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을 제

둘째 날은 열쇠전망대, 철원 노동당사 탐

고하고, 한반도문제를 외국인 대학생, 해외동포 대학생과 어울려 고민하고 발전

방, 금강산 가는 옛 철길 둘러보기, 통일 염

방향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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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참가 대학생이 열쇠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북녘 친구들에게 쓴 엽서

북한 친구들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3학년 박기현이라고 해요.

저는 지금 남한의 최전방선에서 북을 바라보고 있어요. 눈으로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보면 웃는 대신 총구를 겨누고 있네요. 무엇이 우리를 60년 동안이나 갈라서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곳에서는 남한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요?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친미국가? 남한의 몇몇 사람은 북을 공산주의 국가, 빨갱이, 우리나라와 관계없는 나라라고 말해요.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거겠죠? 얼마나 많은 시간이, 돈이, 노력이 들지 저는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는 분명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북의 대학생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고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달려 나가시기를 바라요.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꼭 웃는 모습으로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도 열심히 살아갈게요. 그날까지 안녕히 계세요. 파이팅! 2013. 7. 2 박기현

2013 민화협 통일정책포럼 류길재 통일부장관 초청 강연회

민화협은 8월 14일 오전 7시 30분, 세종문 화회관 세종홀에서 ‘2013 민화협 통일정 책포럼-류길재 통일부장관 초청 강연회’ 를 개최했다. ‘최근의 한반도 정세와 한반 도 신뢰프로세스’를 주제로 한 이번 포럼 은 남북관계의 오랜 경색 국면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동시에, 신뢰를 통해 새로

김덕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금 남북관계를 둘러싸고 국민

운 남북관계를 정립해나가고자 하는 우리

적 갈등이 있고, 정파 간에도 많은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남북관계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소개

만큼은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의

를 통일부 장관에게 직접 듣는 의미 있는

장은 아울러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며 북한의 태도 변화 혹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자리였다.

틀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입장 고수가 자칫 유연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현장

Network

도 있다”면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이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하며, 모든 국민과 함께 정부가 서로 협력해 풀어가야 할 문

나 민간차원의 사회문화교류 등을 확대해

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소 답답하고 때로는 더디게 가는 것 같아도, 분명한 원칙

나가는 것이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

하에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 더 현명한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수 있다는 지적도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류 장관은 강연 이후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 인도적 대북지원

강연에서 류길재 장관은 개성공단 사태를

재개 및 확대 문제 등에 대한 청중의 질문에 “지금 개성공단 문제가 진행되고 있

풀어가는 과정이 곧 남북이 서로 신뢰를 쌓

으니, 이 문제에 우선 집중하는 것이 일의 순서”라며 “신중하게 차근차근 문제들

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한다고 밝

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포럼은 개

혔다. 류 장관은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북

성공단 7차 실무회담과 같은 날 진행되면서 내외신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취재

한이 일으킨 것이 분명하고, 이것이 타협

열기도 높았다. 참가자들도 정부의 정책방향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많은 질의를

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 역시 아니

하기도 했다.

라고 강조하면서도, 정부는 북한이 7차 실

이날 행사에는 손장래 고문, 구천서, 마의웅, 문난영, 박원철, 설용수, 차경애, 이

무회담에 응한 것을 ‘북한이 우리 정부에

장희, 하철경 공동의장, 이성헌 상임집행위원장 등 민화협 임원들을 비롯해 반재

굴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철 흥사단 이사장, 이봉조 전 통일부차관, 양종 대종교 종무원장, 신영석 평화문

류 장관은 또한 대북정책과 통일의 과정은

제연구소 이사장, 김동근 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위원장, 이행우 민화협 뉴욕협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의회 상임고문, 이항우 고문, 이이재 국회의원(새누리당) 등 180여 명이 참석했다.

민화협 통일교육네트워크 2차 간담회 개최

다. 통일교육 방향이 평화, 안보, 통일 등 어떤 것을 중심에 놓고 진행해야 한다는 식의 정답을 제시하거나 단체별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설득하기 위한 자리 가 아니라 공유하고 인정해나가는 구조를 만들고 통일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

민화협 통일교육위원회(위원장 박현선, 이

색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영동)와 참여단체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6월 11일 1차 간담회에서 참여 단체별 통일교육의 목표와 방향, 사업내용을 공유

통일교육네트워크 2차 간담회가 박현선 위

한 이래 7월에 열린 2차 간담회에서는 ‘통일한국의 미래상’과 ‘통일교육현장에서

원장의 사회로 7월 17일(수) 오후 3시에 민

제기되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실제 토론과정

화협 회의실에서 열렸다.

에서도 NGO 단체 사이의 통일교육 내용과 방향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지만, 민관

통일교육네트워크는 통일교육을 시행하는

소통의 통로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일교육네트워크는 북

민화협 회원단체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

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 민족과 다문화사회, 재외동포 통일교육 문제 등 통일교육

하여 새로운 틀의 통일교육방안을 모색하

과 관련하여 실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지속해서 논의해나갈 예정이다. 아

고, 북한문제ㆍ통일문제에 대한 보수와 진

울러 동일한 내용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통

보의 인식을 확인하여 합의 가능한 통일교

일교육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협의하는 통일교육 분야의 민간(民間)협력과

육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기 위해 마련되었

민관(民官)협력을 이끄는 가교가 될 것이다.



포토 에세이

KBS 정전60주년특집 ‘다큐멘터리 DMZ’

01

DMZ의

생채기를 담다 양홍선 KBS PD

02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01 빙판 위의 고라니: 철책선 너머로 언 강을 건너가는 고라니 한 마리. 어디로 가는 것일까. 02 감자밭: 펀치볼 산등성이에 핀 새하얀 감자꽃이 바람 에 흔들리고 있다. 03 해금강: 고성의 율곡 부대에서 본 해금강

70 71

03

‘다큐멘터리 DMZ’를

대한민국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선 하나가 지도 위를 가로지른다. 우리가 이

제작하며

선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고 당연하게 느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전쟁이 멈춘 지 60년, 우리는 애써 DMZ(비무장지대)를 외면하며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잊어 버리려 노력해왔는지 모른다. 지도 위에 매끈하게 ‘일필휘지’되어 있는 선과는 다 르게 첩첩 산 위로 아득하게 이어지는 불빛을 따라 밤새 걷고 또 걷는 병사들을 만 나게 되는 철책선. KBS 제작진은 1년 동안 DMZ를 다큐멘터리로 만들 기회를 얻 었다. 방송을 기획하면서 매끈한 선을 가뿐히 넘어 DMZ의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DMZ를 담아낼 부푼 꿈을 꾸었지만 제작 1 년의 과정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1편

처음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을 때는 길어야 3~4개월 후에는 DMZ에 들어

禁止된 땅,

갈 수 있는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DMZ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선

들어갈 수 없었기에

은 보기보다 훨씬 높았고, DMZ로 통하는 통문은 생각보다 육중했다. 철책선 너

제대로 볼 수 있었던

머로 보이는 그 땅이 이렇게 들어가기 힘든 곳인 줄 누가 알았을까. 제작을 시작

것일지도 모른다

하고 8개월이 넘어가면서 ‘곧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함으로 버텨낸 시간. 그리고 제작 10개월째. 여전히 열리지 않는 철책선 앞에 섰을 때, 우리나라 사람 들의 피와 땀이 흐른 우리 땅인데도 출입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그 현실이 무 겁게 다가왔다. 우리에게 DMZ는 과연 무엇일까. 결국 방송 4일 전에야 DMZ 안 의 GP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군용 지프차를 타고 들어간 GP에는 또 다른 철책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도 복잡하게, 그리고 단호하 게 닫혀 있는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04

05

2편

수색대대 소대장으로 새로 부임해온 소위의 1년 성장과정을 다큐멘터리에 담으

끝나지 않은 전쟁,

면서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역설적인 공간인지 깨달았다. 비무장지대

역설의 공간이 되어버린

는 어느 한순간도 ‘비무장’인 적이 없다. 마치 비무장인 순간이 오면 그 찰나에

비무장지대를 바라본다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비장함으로 남과 북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렇게 지난 60년간 서로에게 더 높게만 벽을 세워온 우리들. 이 구도가 지속된 다면 우리는 영원히 평화를 찾지 못할지 모른다. DMZ에 중화기를 배치해놓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밤새 군인들이 DMZ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매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 다. 역설의 공간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비무장지대’라는 본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 더 나아가 남과 북의 깨지지 않을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찾아보길 원한다.

3편

“어차피 방송 나가도 문제가 해결되거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무

잊혀진 사람들,

엇하러 또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나? 귀찮기만 하지.” 철원읍 대마리 어르신들이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귀에 박힐 정도로 자주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들을 때면 말문이 막혀 헛웃음

있다

만 지어보이곤 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겪은 부당한 처우와 가슴 아픈 사연이 이 번에 또 전파를 탄다고 해서 보상받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 리나라 정부가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 어떤 사안을 처리할 때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서에 기록된 글자를 보는 것 이 그것이다. 이번에 ‘잊혀진 사람들’을 제작하면서 다시 느끼게 된다. 만약 정부 가 군인의 통제로 자유를 침해받은 주민을 생각해봤다면, 지뢰사고로 다리가 잘 리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피해자들을 바라봤다면, 목숨 걸고 힘들게 개 간한 땅에 하루아침에 ‘경작 금지’라는 푯말이 꽂혀 있는 것을 본 농민의 심정을 느껴보려 했다면 지금까지 민통선 마을의 문제들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민통선 마을 사람들을 머릿속에 오래 기억하길 바란다.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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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04 봄꽃과 철책선: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DMZ에 봄기운이 만연하다. 05 철책선: 철책선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 군인의 발걸음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06 지뢰경고판: 선명한 빨간색의 경고판이 이곳이 지뢰지대임을 말해주고 있다. 민통선 마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경고판이지만 제작진의 발밑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07 발목 잘린 멧돼지: 언 땅을 딛느라 상처가 더 깊게 파였다. 멧돼지의 고통이 걸을 때마다 눈 위에 새겨진다. 08 끝나지 않은 전쟁: 건봉산 위에 올라와 있는 이 탱크는 6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치 그 긴 시간 전쟁이 끝 나지 않았음을 대변하듯이….

4편

지난 60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된 탓에 사람들은 DMZ에 대하여 그만큼의

두 얼굴의 생태계,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냈다. ‘숲 속에 가득한 장수하늘소’, ‘어른 팔뚝만 한 물고

자연스럽지 못한

기’,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동물들’ 등 사람들은 DMZ를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

DMZ의 자연

은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본 그곳의 자 연은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발목 잘린 멧돼지와 독수리, 철책선 사이 에 가로막혀 이동이 제한된 고라니들, 야생성을 잃어버린 산양 그리고 전염병 에 걸린 너구리까지. DMZ는 민간인의 간섭에서는 자유롭지만 군인들의 영향 을 가장 많이 받는 모순된 공간이었다. 100만 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확 인 지뢰들, 248km에 이르는 철조망과 곳곳에 버려진 전쟁의 흔적, 끊임없이 계 속되는 사격훈련 그리고 해마다 일어나는 산불. 그곳은 결코 자연 생태계의 보

양홍선은 1995년 KBS에 입사 해 〈추적60분〉, 〈KBS스페셜〉, 〈한국사회를 말한다〉, 〈환경스 페셜〉 등 시사다큐멘터리 프로 그램을 주로 제작했으며, 〈핀란 드의 숨겨진 성공비결〉, 〈남태 평양 심해를 가다〉, 〈13억 시장 의 새로운 변신〉 등도 제작했다.

고가 아니었다.

60년간 계속된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은 사람들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비무장지대 내부의 상처 가 눈에 들어온다. 그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한국전쟁 체험담 구술현장에서 찾는

분단 트라우마의 극복과 치유 김종군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우리의 통일문제를 ‘사람 중심’으로 다루는 ‘통일인

아물지 않은 상처, ‘분단 트라우마’

문학’에서는 남북의 분단과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상

이처럼 분단과 전쟁은 우리의 모든 삶에 지대한 영

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치유할지에 대한 고민이 큰

향을 미치므로 전쟁 이후 계속해서 이야깃거리로 인

비중을 차지한다. 거대한 부조리로서 남북의 분단

구에 회자되어왔다. 분단과 한국전쟁 이야기는 현

과 한국전쟁의 폐해는 지금 한국인의 삶 구석구석

재 70대 후반 이후 노년층의 집단적 혹은 개인적 서

에 자리하면서 나쁜 영향을 뿜어내고 있다. 그 양

사로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곧, 한국전쟁 체험담

상은 정치사회적인 구조에서도 남북갈등·남남갈

은 현재의 이야기 문화에서 역사 사화(史話)와 같은

등의 불씨로 자리 잡고 있고, 개인의 삶에서도 전쟁

위상으로 구비 전승되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은 구

의 상처와 외상 후유증이 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술방식이나 향유의식에서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분단과 전쟁으로 야기되어 우리의 현재 삶에 심각하

있다. 남북 분단과 갈등의 최고점에서 서로를 살상

게 영향을 미치는 상처를 ‘분단 트라우마’라고 명명

한 처절한 이야기이지만 지나간 역사의 이야기쯤으

할 수 있다.

로 순탄하게 구술하다가도, 남북 정세가 적대적으

분단 트라우마는 우리 일상에서 개인적인 문제로 강

로 급변하면 작금의 상황을 대변하는 이야기로 돌변

하게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그 개인이 사건을 겪은

하게 된다.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이

특수한 일부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라는 점에서

중적인 구술방식과 향유의식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

집단적인 문제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상을 영위

다. 곧 전쟁 체험담의 구술방식과 이야기 내용에는

하는 가운데서도 분단과 전쟁에서 비롯된 갈등 요인

분단 트라우마가 깊이 개재되어 있고, 이러한 트라

은 곳곳에 존재하므로, 우리 삶의 문제점은 분단 트

우마는 분단의식을 고착화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

라우마의 표면화라고 과감하게 진단할 수 있겠다.

용할 수 있다.


민족화해 September /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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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체험담의 양상은 제주도 4·3사건 관련 체

다. 그 결과 구술은 자신의 과오를 합리화하는 방식

험담, 여순사건 관련 체험담, 지역 공동체 내부에서

으로 진행될 수 있고, 한쪽에 편중된 입장을 취하면

벌어진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체험담, 한국전쟁 이

서 스스로 영웅화하는 경향도 갖는다.

전 38선 인근에서 있었던 국지전 체험담 그리고 본

전세에 따른 가해와 피해의 반복 순환 속에서 주변

격적인 한국전쟁 체험담, 휴전 후 빨치산 토벌 과정

사람들의 인심 변화가 가장 참혹한 일로 다가왔고,

에서의 체험담 등으로 다양화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불신의 조장이 가장 큰 핵으로 자리 잡았

한국전쟁 체험담의 성격을 구명하는 일은 우리가 갖

다. 그래서 전쟁 체험담에서 대체로 보이는 양상은

고 있는 치부를 건드리는 것일 수 있고, ‘건드리면 덧

전쟁 중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이 무섭다는 생각은

나는 상처’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 체험담의 구

거의 없었고, 지방 빨갱이들의 복수와 그에 대한 재

술에서 분단 트라우마의 극복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복수가 더 큰 공포로 자리 잡고 있다.

이야기의 성격, 말하기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분단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국전

한국전쟁 체험담은 분단이 지속되는 한 온전한 실체

쟁 체험담 구술현장에서 우리는 그 치유의 실마리

를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체험담의 구술은 구술

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체험담 구술태도는 대

자가 어느 한편-남한의 입장, 체제 옹호의 논리, 더

체로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전쟁 상황에서 이

나아가 반공의 논리에 서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루 형언할 수 없는 처참한 사건을 목격하고 체험했

이러한 체험담 구술의 성격이 분단 트라우마이고,

다 해도 상대를 가해자로 지목하여 철저하게 비난하

한국인의 비극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을 겪

는 분단서사의 말하기 방식과 온정에 입각해서, 더

는 가운데 전세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는

나아가 사건의 전모를 객관화하여 말하는 통합서사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었고, 그 와중에서 누군가가

를 지향하는 말하기 방식이 병존하고 있었다. 전쟁

암흑 속에 전짓불을 얼굴에 들이대면서 “넌 어느 편

이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이고, 인간이기를 부정하는

이냐?”라고 묻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경험이 일

행위인지를 고발하는 통합서사를 지향하는 후자의

반적이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하기 방식이 분단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기여

순간의 선택이 생명을 좌우하는 극한의 공포 체험인

할 것은 확실하다. 그러한 말하기 방식을 발굴하여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세상은 다시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통합서사를 지향하는 담론의

뒤집어질 수 있다는 영원한 불안감을 마음에 품고

장을 형성하는 가운데 분단 트라우마에 대한 구술치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전쟁문학 작가는 ‘마음

유는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속의 지뢰밭’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마음속 지뢰밭’을 걷어내기 위한 노력 필요 한국전쟁은 정전상태로 자리하기 때문에 한국전쟁 체험담은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된 상태에서 진 행되는 비정상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구술자들 모두가 어느 한 구석은 감춘 상태에서 구술에 임한

김종군은 건국대학교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 리 옛이야기를 찾아 현지조사를 수행하다가 한국전쟁 체험담 조사 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분단의 상처를 간직한 이야기 구술현장에 서 구술치유 방안을 찾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의 HK교수로 재직하면서 코리언의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에 대한 연 구를 수행하고 있다.


무대 혹은 스크린

STAGE or SCREEN

파국을 향해 치닫는 열차 오한샘 EBS PD

설국 열차 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작 품을 탄생시킨 듯하다. 우선, 이야기의 배경이 된 열차가 갖 는 공간적 특성을 잘 살려낸 듯싶었다. 그 공간적 특성이 봉 감독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2시간 남짓한 운행시간 내내 객 석에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축소된 특정한 공간을 마치 구 렁이 담 넘어가듯 인간 세계의 한 단면으로 바꾸어버린 제작 진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차하지 않는 한 달리는 열차는 외부와 차단될 수밖에 없다. 전속력을 내는 열차의 속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히 통제

얼마 전 우연히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보 았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알려진 봉 준호 감독이 할리우드 시스템과 만나 이루 어낸 작품이라고 했다. 원래는 프랑스 원작 만화를 영화로 각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된 상황을 제공한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라 하더라 도 밖에서 안으로 진입할 수 없으며, 안에서 밖으로 탈출하 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어찌 보면 열차야말로 주변 세 계와 관계가 단절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소 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지나서 되돌아보니 최첨단 정보 화 시대,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를 사는 현대 21세기조차 아 직도 지구촌 일부에는 여전히 영화 속 열차와 같은 사회가 존 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과거나 미 래의 상황을 가정한 단순한 스크린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었다. 비록 영화 속 구성과 인물들의 역할은 전체적인 각본 안에서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으나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야기 속 허구를 넘어 작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훌륭 한 작품은 그 자체의 가치와 상관없이 언제나 현재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때때로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속에 내재된 고유한 힘으로 자신 을 잉태시킨 시대에 기여하기도 한다. 즉, 극장이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대중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선보인 작품은 더 이상 작가 고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의 실현을 가 능케 한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이에 호응한 관객들에게 일정 부분 빚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순전히 필자 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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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이지만) 일단 세상에 나와서 제작자(작가)의 품을 떠나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민초들 앞에서 그

는 순간, 작품은 자신의 창조자에게서 떨어져나가 그 자체로

들의 처지를 헌신짝에 비유하며 일장 연설

서 독립된 온전한 생명체로 자신만의 생을 영위하게 되지 않

을 해대는 열차 속 권력자의 대사가 이 글

을까 싶다. 비록 부모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더는 부모의 소유

을 쓰는 지금까지 필자의 머리 위에 맴돈다.

물이 아닌 우리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예술작품 또한 이 러한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작품의

“ 누구도 신발을 머리 위에 쓰지 않는다.

힘이 있다. 고정화된 해석이나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주제

신발은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애초부터

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자유로운 접근을 가능케 하는 작품의

세상 모든 것의 자리는 정해져 있다. 나는 머리 칸, 너희들은 꼬리 칸. 주제를 잘 파악해!

개방성이야말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영향력과 생명력

너희들 자리를 지켜!! 네 자리를 지키란 말이다!”

을 확장하는 가장 중요한 양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 영화 <설국열차>, 메이슨 총리의 대사 중에서

관객들은 작품의 평가에서만큼은 나름대로 자유를 누릴 권리 가 있다. 이처럼 한 편의 창작물이 작가나 제작자의 손을 떠

파국으로 치닫는 그들을 한 발 떨어져서 지

나 관객의 작품, 시대의 작품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에는 그냥

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의 처지에 왠지

지나쳐버리기에는 아까운 소중한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모를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많이 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가 관객들의 작품이 되었는지, 더 나아

어왔던 이야기였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가 이 시대의 작품인지 잘 모른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엄

아닐뿐더러 작품 외 사안에는 별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다. 한

연히 다르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멈추

가지 확실한 것은 다양한 해석과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

지 않고 달려온 38선 너머의 그 열차가 파

단순 흥행만을 노린 액션영화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군다

국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힘과 지혜를 모아

나 영화의 제목이 나타내듯이 지난여름 찜통더위와 열대야에

야 한다. 그 안의 승객들, 가족들, 동포들을

지친 분들이라면 영화 내내 눈 덮인 설국을 달리는 이 작품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내야 할 의무가 우리

한 번쯤 감상해볼 만도 하다.

에게 있기 때문이다. 힘없는 자들의 허무한

영화는 기상이변으로 동토가 되어버린 지구에서 생존자들이

죽음은 영화 속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

벌이는 사투를 다루고 있다. 재앙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끊임

영화가 끝난 후, 북에 두고 온 가족의 처지

없이 궤도를 달리도록 설계되어 있는 열차에 탑승하게 되고,

가 영화 속 승객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그 안은 다시금 올라갈수록 지배계층이 사는 화려한 머리 칸

않은 것 같다며 한쪽 구석에서 흐느끼던 이

과 피지배계층이 사는 빈민굴 같은 꼬리 칸이라는 공간으로

름 모를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오

나뉘어 있다. 이러한 억압되고 모순된 현실에 눈을 뜬 꼬리

늘 밤은 잠을 잘 못 이룰 것 같다.

칸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드디어 반란을 일으키 기 시작한다. 누구나 다 아는 줄거리인 듯했지만 참으로 놀라 운 것은 영화가 시작된 지 채 3분도 안 되어서 초반 열차 속 상황이 그대로 우리의 현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반도 북쪽 의 현실과 겹쳐지는 것 같은 살 떨리는 오싹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한샘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고, 현재 EBS PD로 있다. 제10회 통일언론인 대상(2004), 대한민국 PD 대상 실험정신상(2008), 푸른 미디어상 (2008)을 수상했고, 〈장학퀴즈〉,〈예술의 광장〉,〈EBS 시 네마천국〉,〈천년의 밥상〉등 공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남북관계 Books 새로나온 책

더 나은 한반도를 꿈꾸는 두 도시의 대화 편집부

벗어난다. 오히려 평양의 변천과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상황에서 두 도시가 서로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 민한다. 이는 책에 참여한 다섯 필자의 공통된 인식이기도 하다. 한국을 대안으로 삼아 북을 변화시키는 데에만 연구를 국한하지 말고 남과 북의 역사성을 모두 인정하면서 이를 넘 1

『평양이 서울에게, 서울이 평양에게』

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통

조동호 외 | 서울: (재)동아시아연구원 | 2013

일이 되면 남북 모두에게 새롭고 좋은 사회가 된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들은 통일의 과정이 결국 북의 주민들에게 변화에 대한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이 될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현재 한국의 모습이 북한 주민에게 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리고 북한의 수도 평양. 이 두 도시

안으로 제시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 역시 인정하고

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각기 자본주의와 사회주

있다. 또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라는 상이한 이념 위에 세워진 두 도시는 지금껏 어떤 형

부정적 인식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미래 한반도에 대한 새

태로 발전 혹은 진화해왔으며, 또한 어떠한 미래를 위해 나

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때문에 책은 단순한 두 도시 간 우열비교나 이분법적 접

2002년 설립된 이후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학제적 연구, 국

근에서 벗어나 각기 도시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두 도시의 장

제학술교류 확대, 지식사회 네트워크 활성화 등에 노력해

점을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온 동아시아연구원에서 펴낸 『평양이 서울에게, 서울이 평

는 지금보다 더욱 많은 교류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

양에게』는 도시 건축, 경제, 영화와 대중문화, 인간의 생애,

하고 있다. 평화를 전제로 한 공존이라는 목표 아래 끊임없

두 도시의 미래 등 다섯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서울과 평양

는 소통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을 비교·논의하고 있다. 아울러 더 나아가 지금보다 더 나

더 나은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두 도시의 대화. 각기 다른 분

은 서울, 평양을 만들기 위한 두 도시의 ‘대화’를 시도한다.

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고민한 결과인 이 책은 부족함과

연구원 북한연구센터에서 북과 통일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아쉬움보다는 또 다른 방식의, 나아가 더 바람직한 형태의

학제 간 연구를 담았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는 시도라 평

공존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에 대한 기대감을 먼저

가할 수 있다.

불러일으킨다. 부디 이러한 논의와 시도가 더 많은 이들에게

책은 단순히 서울의 논리를 평양에 이식하자는 이야기에서

정신적·학문적 자극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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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걷다』 - 황재옥의 평화 르포르타주, 북한 국경 답사기 압록에서 두만까지 1,376.5km를 경유한 8박 9일간의 북중 국경 답사기다. 전직 통일부장관을 비롯한 북 전문가들로 구성된 답사 드림팀답게 접경 지역을 통해 ‘오늘의 북’의 모습이 어떠한지, 북과 중국 의 개혁개방 정책이 어떻게 교류되고 있는지, 남북중·일·러의 팽팽한 동북아 질서가 어떠한지를 꼼꼼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일반인들로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정보와 현장감 넘치는 섬세한 묘사가, 풍부한 사진과 함께 담겨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저자와 함께 국경을 따라 걷다보면 바람직한 남북 관계의 방향과 함께 북의 ‘맨 얼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저 | 서해문집 | 2013 3

『북한정책론』 군 정보기관에서 대북정책, 남북관계 분석업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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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담당했던 저자가 북한의 정책 내용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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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회통제, 경제, 군사, 대외, 대남정책 등 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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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분야로 나누어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대학이 나 대학원에서 북한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물론, 일반 시민이나 정부부처 공무원, 북한 관련 단체 에서 연구하는 이들에게 북한이 추진하는 정책내 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김기수 저 | 팔복원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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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일상』 사진으로 북녘 생활을 엿보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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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보여줄 때가 있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자 매력이기도 하다. 월간 『민족21』의 정창현 대표 가 10년여의 방북취재 동안 촬영했던 사진, 북측 협력사인 『통일신보』, 일본 측 협력사인 『조선신 했다. 풍부한 사진자료를 통해 북녘의 일상을 생

『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가슴으로 써 내려간 아름다운 통일 이야기

생하게 느낄 수 있다. 남북관계의 장기간 경색으

30년차 통일부 공무원으로 수십 차례 오랫동안

로 남북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지금, 사진으로

북을 오가며 국내외 주요 대북사업 현장 한가운데

나마 북녘 사람들의 일상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

있었던 저자의 경험을 담은 책. 남북교류에 대한

다는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제도의 통일에서

열정과 애정, 그리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

언젠가 ‘사람의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또 다

려는 노력과 담담한 성찰이 돋보인다. 해묵은 진

른 우리인 ‘북녘 사람들’의 삶 역시 놓치지 말아야

영논리와 경제적 실리추구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

하기 때문이다.

이에 꽃피는 우정과 연민을 통해 남북교류와 통일

정창현 저 | 역사인 | 2013

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해

보』가 보내준 사진들을 선별하고 여기에 글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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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통일 교양서이다. 이성원 저 | 꿈결 | 2013


독자 의견

READER'S

2013. 07+08 Vol.63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해드립니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지구상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세계 최대 규모의 원시림이란 점에서 생태학적 가치와 함께 냉전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평 화와 상징의 공간으로써 그 의미를 잘 부각해준 글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반목과 긴장 의 연속인 남북관계 속에서도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이야말로 민족화해, 민족통일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잘 제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 다. - 유재범 서울 관악구

‘북한, 어디로 가는가’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목숨을 걸고 중 국 국경 백두협곡을 넘나들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북한에서 불고 있는 ‘집단에서 개인으로’라는 변화의 조짐을 예리하게 분석한 기사가 인상적이었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비핵화’와 ‘개성공단’문제로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 모습엔 미처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북한 주민들에게 ‘개인’의 가치 와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노력을 쏟는다면 북한의 변화를 한 발 더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

<독자엽서>로 정답과 의견을

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이동방 대전 중구

보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63호 정답은

1953년 7월 27일입니다. 회원단체탐방, 한국YMCA전국연맹 남부원 사무총장 인터뷰를 보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

채택되신 분들께는 소정의

이 많습니다. 민화협 창립 15주년! 처음 만들어질 때의 정신을 잃지 않고 이어간다면 반드

문화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시 거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이란 말에 크게 공감을 느꼈습니다. 다음 호에도 좋 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벌써부터 다음 호가 기대되네요! - 안동원 인천 부평구

이번 호에서 가장 관심 있게 읽은 글은 ‘남북한 사회에 형성된 냉전시대의 비합리적 신화’ 를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북은 그나마 서로 평화롭고 또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관계를 발전시켜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은 정말 최악의 남 북관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서로 하루빨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열린 마음으로 통일 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 한유채 전남 여수

민화협을 처음으로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국민합의에 기초한 민족화해, 국민과 함께하는 생활 속 통일운동, 국민과 함께 만드는 평화와 상생의 통일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곳이라 니, 앞으로 관심을 갖겠습니다. 국민통합의 장, 민간교류의 창구, 통일준비의 장, 협력의 소 통로로 그 역할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올해로 정전 60주년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여전 히 남북한의 관계는 냉전시대입니다.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민화 협이 큰 역할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이유림 경남 진주



독자와 함께 읽는 글 ➍

“오, 오마니……”

오, 오마니 사투리로 주저앉으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달래도 듣지 않을 철부지 아이가 되셨다. 오십 년 전 어린아이가 되셨다. 고광근, 「남북 이산가족 만남」

아동문학가 고광근의 시는 맑은 동심의 세계를 깊이 있는 사유로 참신하게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의 동시집 『벌거벗은 아이들』은 지난 2007년 제3회 연필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동시는 이산가족의 애환을 짧으면서도 순수하게 표현했다. 이산가족의 깊은 슬픔이 한 번의 만남으로 풀어질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에 만남은 이어지고 계속되어야 한다.

K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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