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정선에 살어리랏다 [2024년 겨울 vol.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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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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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정선을�만나다

정선의�풍경 & 休

작품�속의�정선

정선 봉양리 뽕나무

오지 속의 오지

임철우 장편소설

벗밭과 깊은터

『이별하는 골짜기』의 배경

04 정선사람

별어곡역에 가다

36

57

84세 초등학생

정선�여행Ⅱ-민둥산

유춘자 할머니

정선아리랑열차 타고 가요

정선�지명�여행

은빛 억새 춤추는 곳으로

‘뙡’과

16 정선�여행Ⅰ- 동강

겨울 강가에서 고요를 캐다

24 정선을�추억하다

동화나라의 겨울나기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44 정선음식�이야기

60

추위를 녹이는 맛

정선군�소식

갓김치 만두

돌아본 2023정선 미리 보는 2024정선

48 정선의�문화재

구미정사와 정선 수고당 고택


2 정선을 만나다

글·사진 강수래 기자

정선 봉양리 뽕나무

지구 곳곳에는 수천 년 산 나무들이 많

제89호 ‘상유재(桑惟齋) 고택’ 앞에 서 있는

다. 국내에도 수령 1,000년 이상 된 나무

데, 500년 전 고순창이라는 이가 중앙 관

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게 정

직에 물러난 뒤 정선에 집을 지으면서 심

선 두위봉의 세 그루 주목인데, 수령이 각

었다고 한다.

각 1,100~1,400년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봉양리 뽕나무를 찾

면 뽕나무는 얼마나 살까? AI에게 물었더

았다. 푸르던 잎들이 황갈색으로 물들어

니 30~50년이라고 답변했다. 일반적으로

가고 있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나무

70~100년까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들 앞에 서면 신령스러운 기운과 함께

그런 상식을 여지없이 깨는 나무가 정선

‘신목(神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잎이

봉양리 뽕나무다. 2021년 12월 30일 국가

다 떨어지면 겨울이 오고 또 생명이 움트

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 그루

는 봄이 찾아올 것이다. 세월의 풍파 속

의 뽕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 정도로 알

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계절 따라 옷

려져 있다. 국내 뽕나무 중 최고령이며 키

을 갈아입는 뽕나무 앞에서 경건한 마음

도 25m로 가장 높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으로 국운(國運)의 상승을 기원한다.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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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선사람

글·사진 이호준 기자

84세 초등학생

유춘자 할머니

아리랑 아리랑~ 가락 타고 시름도 세월도 넘었지요 84세라는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유춘 자 할머니를 알게 된 건 우연히 본 영상을 통해 서였다. MBC강원영동이 만든 <여음(餘音)>이라 는 다큐멘터리로, 일상 속에서 아리랑을 즐겨 부 르는 노인들을 인터뷰한 프로그램이었다. 영상 속의 유춘자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리 랑을 부르고 있었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리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정선초등학교 가수분교 학생들이 아리랑을 배 우는 날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날은 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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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교실에서 시험지를 보고 있는 유춘자 할머니

자 선생님이었다. 나이로 보면 손주보다

밈도 없이 산속 옹달샘처럼 맑은 음색으

는 증손주에 더 가까워 보이는 아이들 앞

로 부르는 노래. 그 소리야말로 정선아리

에서 노래하는 당신의 모습은 아름다웠

랑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밭

다. 수줍은 듯, 무심한 듯, 조금은 떨리

에서 돌을 고르다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

는 것 같은 목소리로, 가사를 생각하는지

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흘러가는

눈까지 슬며시 감고서 부르는 소리는 가

구름을 바라보다가, 한숨인 듯 신음인 듯

슴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졌다. 기교도 꾸

내뱉던 소리가 정선아리랑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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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사람

유춘자 할머니가 교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평생 아리랑과 함께 하다

전엔 글씨를 하나도 못 썼는데, 지금은 많

유춘자 할머니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이 쓰고⋯.”

듣고 싶었다. 당신이 부르는 아리랑이 먼

노인은 이가 빠져 홀쭉해진 입을 가리며

저 마음을 끌었지만, 늦은 나이에 학교에

수줍게 웃으면서도 자랑스런 기색을 감추

다니는 산골 노인의 사연도 궁금했다. 이

려고 하지 않았다.

분이야말로 바람결에도 지워지는 지난 시

“올해 연세가 몇이신데요?”

간을 말해줄 수 있는 ‘정선사람’이라는 생 각이 들었다.

“여든넷입니다.”

“음! 여든넷에 초등학교 4학년이면 조금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정선초등학교

늦으신 거네요?”

가수분교에서 유춘자 할머니를 만났다.

노인은 가벼운 농담에도 환하게 웃었다.

하얗게 센 머리에 입가를 흐르는 주름,

성격이 밝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정한 옷차림⋯. 얼굴과 몸짓에 오랜 세

“글씨를 참 잘 쓰시더라고요.”

월 꿋꿋하게 지켜온 시간이 새겨져 있었

영상에서 본 기억을 말했더니 얼른 손사

다. 가수분교의 가을 풍경은 아름다웠다.

래를 쳤다.

수령 570년의 느티나무는 갈색으로 계절

“잘 쓰진 못해요. 1학년 땐 아무것도 몰랐

을 치장했고, 흐르는 강물과 예쁜 학교 건

고 이제 3년째 제대로 배우는데, 배우길 그

물은 마치 동화 속 배경 같았다. 분교장

렇게 배워서 그런지 이쁘게 못써요.”

선생님의 배려로 교무실에서 할머니와 마

학교 다니는 이야기는 뒤에 더 자세히 듣

주 앉았다. 가장 궁금했던 학교 다니는 이

기로 하고 정선아리랑으로 화제를 돌렸다.

야기부터 꺼냈다.

“영상에서 소리하시는 걸 봤는데, 목소리

“올해 몇 학년이세요?”

“4학년이요. 학교 다니며 많이 배웠어요.

가 참 고우세요.”

“뭘요. 이젠 전처럼 못해요. 목에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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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잘 안 나와요. 이도 다 빠지고⋯.”

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게다가 타고난 신

노인은 수줍게 웃으면서도, 목청껏 노래

명도 있었다.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안타까운 마음을

“동네잔치 같은 걸 할 때도 노래를 불렀

털어놓았다.

어요. 그런 자리 가면 막 신이 나요. 노래

“아리랑은 언제 어떻게 배우신 거예요?”

하고 춤도 추고⋯. 농사지으면서도 많이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처녀 때는 아리

불렀고요. 소리하면서 일하면 어려운 것

랑이 뭔지도 몰랐고, 시집온 뒤 저절로 배

도 몰라요. 노래 부르면 일이 더 잘돼요.”

웠지요. 정초에는 설날부터 보름까지 모여

재차 깨닫는 사실이지만 유춘자 할머니의

서 놀고 노래하고 그러잖아요. 그럴 때 남

아리랑이야말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

들 하는 거 듣고 보면서 배웠어요. 젊을

겨나고 전파된 가락이고 가사였다. 실은

적엔 아기 업고 산보 다니면서도 아리랑

모든 정선아리랑이 그랬다.

을 불렀어요.”

옛날 정서로 볼 때 노래하고 춤추는 며느

“배운 적도 없는데 그렇게 잘 하시는 거

예요? ”

리가 탐탁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일 로 시댁에서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그게 뭐 배우고 그럴 건가요? 남들 하는

고 한다. 더구나 시아버지는 선비라는 명

거 듣다 보면 저절로 나오는 거지. 전에는

분으로 손에 흙 한 번 묻힌 적 없는 한문

저녁에 동네 사람들이 자주 모였어요. 어

선생이었다. 동강이 흐르는 강 마을이라

느 집에서 찰밥을 해놓고 놀러 오라고 해

사람의 마음도 강물처럼 흘렀던 걸까?

서 가보면 여럿이 와 있어요. 함께 먹으면 서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유춘자 할머니는 요즘으로 보면 ‘음악 신

동’쯤 됐던 것 같다.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 이 많이 모인 곳에서도 사양하지 않고 아

유춘자 할머니의 그림과 글씨, 채점한 시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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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사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유춘자 할머니가 불

‘지는 해’와 ‘가시는 그대’라는 대구(對句)가

러주는 아리랑이 듣고 싶어졌다. 영상을

가슴을 적셨다. 본인은 옛날만 못하다고

통해 듣긴 했지만 직접 들으면 감동이 더

자꾸 겸손해하지만, 노인의 목소리는 여

클 것 같았다. 염치불구하고 청해봤다.

전히 맑고 고왔다.

“가장 자주 부르고 좋아하는 아리랑 한

번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여덟 남매를 혼자 키우며

뜻밖이었다. 한두 번은 사양할 줄 알았는

유춘자 할머니는 가탄마을에 산다. 가탄

데, 전만큼 소리가 안 된다면서도 망설임

은 가수분교가 있는 가수리에서 조금 떨

없이 시작했다.

어진 강변 마을이다. 열여덟에 시집와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니 66년을 한동네

서산에 지는 저 해 지고야 싶어 지나

에서 살았다. 자신은 “바보같이 바깥세상

나를 버리고 가시는 그대

한 번 못 보고 살았다”고 은근히 자조하

가고야 싶어 가나

지만, 그렇다고 한 같은 게 남은 것 같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는 않았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유춘자 할머니는 광덕이라는 곳에서 해방 을 몇 년 앞두고 태어났다. 그 시절 산골

젊어서 멀리 가버린 남편을 그리는 걸까?

살이가 대개 그랬듯, 밥걱정을 해야 하는

유춘자 할머니가 쓴 글. 손으로 써서 제출한 글을 선생님이 컴퓨터에 입력한 뒤 수정해서 프린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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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이었다. 어릴 적 기억 중에는 전 쟁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열 살 때 6.25(한국전쟁)가 터졌어요. 무

섭더라고요. 사람을 죽이고 죽는 걸 직 접 보지는 못했지만 가까운 곳에서 총소 리가 나고⋯.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피 란 가고 나는 할아버지하고 집에 남아있 었어요.” 유춘자 할머니는 외동딸이었다. 동생들 이 생기긴 했는데 자꾸 죽었다. 영아 사 망률이 무척 높던 시절이었다. 지금 1학 년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지만 정규학교에 다닌 적도 있다. “전쟁 끝나고 늦은 나이에 낙동학교(초등

학교)에 입학해서 한 2년 다녔어요. 그런

데 막상 학교에 간 날은 합쳐봐야 한 달

수업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이나 되려나? 그러다 그나마도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누가 못 가게 잡는 것도 아 닌데 다니기 싫었어요. 좀 먼데다 추워서 못 가고 비 와서 못 가고⋯.”

어요? ”

“예! 마음에 들더라고요. 잘해주니까⋯.

착한 사람이었어요. 더구나 집 앞에 강도

훗날 그렇게 좋아하게 된 공부도 그때는

흐르고 사는 것도 괜찮고. 다만 친정에

인연이 안 닿았던 모양이다. 흔히 ‘공부도

는 자주 갈 수 없었어요. 1년에 한두 번

‘때’는 팔십쯤에 온 셈이다.

“왜요? 가탄서 광덕이 멀어서?”

때가 있다’고 하는데, 유춘자 할머니의

이나 갔나?”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열여덟 살에

“멀기는요. 냇물(지장천) 따라 올라가면

혼인했다. 부모님이 서둘러 시집 보낸 이

십 리도 안 될 텐데. 시집에서 어렵게 하

유는 단 하나 가난 때문이었다.

지 않았는데도⋯ 옛날에는 다 그랬어요.”

“밥이나 실컷 먹으라고 일찍 보냈어요. 혼

농사짓는 외아들에게 시집와서 일이 많

인하고 보니 남편은 외아들이었는데, 농

았다. 남들보다 몸이 약한 바람에 힘도

사 채가 좀 있어서 밥걱정 안 할 정도는

많이 들었다. 그래도 금슬은 좋았고 8남

되더라고요.”

매를 낳았다.

‘밥 먹는 입’ 하나 줄이려고, 또는 밥이나

“내가 몸이 좀 약했어요. 남편은 80kg짜

실컷 먹으라고 서둘러 시집을 보내던 시

리 쌀 한 가마니를 번쩍번쩍 지고 다니는

절이었다.

데, 나는 몇 행보 해야 나르고⋯.”

“혼인하니 어떠셨어요? 신랑은 맘에 들었

부부는 부지런히 일했다. 하지만 좋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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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사람

슬이 백년해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편은 마흔여 덟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춘자 할머니 가 마흔여섯 살 때였다. “막내가 일곱 살이었어요. 아들 다섯, 딸 셋 해서 아

이 여덟에, 시부모님까지 열 명이 넘는 식구를 두고 떠났어요.” 남편을 허망하게 보내고 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슬퍼할 새도 없었다. 아이들 키우랴, 농사지으랴, 시 부모 모시랴. 식구가 많으니 먹는 것만 해도 엄청났 다. 다행히 땅이 있어서 열심히 일하면 굶을 일은 없 었다. 산에서 (땔)나무도 하고 강에서 골뱅이(다슬기)도 줍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다. “몸이 약하니 산에서 나무하다 보면 땀이 뻘뻘 나요.

많이 하지도 못하지만, 한 번에 가져오지도 못하고. 남들보다 몇 행보를 더 해야 했지요. 방학 때는 아이 들을 데리고 갔어요. 올라갈 때는 공부한다고 책 읽 으며 가서 나뭇짐을 끌고 내려오고⋯.”

힘든 일? 그런 거 없었어요 남편을 떠나보낸 뒤 유춘자 할머니의 목표는 빚을 안 지고 사는 것이었다. “빚 안 지려고 아등바등 살았어요. 땅을 떼어 팔아서

남의 돈 다 갚고, 그때부터는 밥만 먹고 다른 데는 돈 을 안 썼지요.” 시부모가 있었지만 농사짓는 데는 큰 보탬이 되지 않 았다. 특히 시아버지는 평생 농사에는 손도 안 댔다. 외아들을 잃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은 전혀 안 하셨어요. 어린 손자들이 일을 해도 모

른 척 하셨지요. 시아버지 환갑도 되기도 전에 시집갔 는데 그때도 일을 안 하시더라고요. 연세가 더 많았던 시어머니가 도와주긴 했지만 큰 도움은 안 됐어요.” 시어른들은 장수했다. 시어머니는 93세에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는 그보다 3년 전쯤 돌아가셨다. 남편 없이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유춘자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570년 된 느티나무 앞에 앉아 있는 유춘자 할머니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두 시어른을 평생 모시고 산 거네요?”

“모시고 말고 할 게 뭐 있어요. 시어머니

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 방에서 같이 지냈 는걸요.”

“그 정도면 봉양을 제대로 하셨구먼요.”

“봉양 같은 거 안 했어요. 그저 밥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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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자식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안 타까워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따로 돌 볼 틈이 없으니 거의 ‘저절로’ 자랐다. 큰 아이가 크면서 동생을 돌보고, 또 그 아 이가 자라서 동생들을 챙기고⋯. 학비 마 련해 줄 여력이 안 돼서 공부도 스스로

드린 거지요.”

했다.

“하하! 일하면서 때맞춰 따뜻한 밥 지어

“애들에게 밭을 한 뙈기씩 맡겼어요. ‘이

드리는 게 봉양이고 효도지 다른 게 있

게 네 밭이니 스스로 농사지어서 학비를

나요? ”

마련하든지 해라’ 그랬지요. 셋째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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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사람

정선초등학교 가수분교

제 밭에 농사를 지어서 신학대에 다니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건, 주어진 형편

나중에 목사가 됐어요. 등록금을 받아서

에 순응하며 살아왔기 때문이겠지만, 굳

공부한 아이는 없어요. 다행히 머리들이

이 힘들었던 이야기까지 털어놓고 싶지 않

좋아서 전부 스스로 했지요.”

은 마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

“대처에 나가서 살 생각은 못 하셨겠어요? ”

“엄두도 안 났지요. 농사지어서 애들 먹여

살릴 생각뿐이지 언제 나갈 생각을 해요.”

기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힘들지는 않았는데⋯ 시집와서 한 번도

여길 못 떠나고 살아온 게 아쉬워요. 넓은

인터뷰 내내 노인은 자식들에게 미안한

세상이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잖아

마음을 드러냈다. “아이들에게 해준 게

요. 우물 안의 개구리지 뭡니까. 빚 안 지

하나도 없어요. 다들 저절로 컸지요.” 겸

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보니 세월

양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

이 이만큼 흐르고 백발이 됐어요.”

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러다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더니 한

대부분 그랬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힘들

가지가 더 생각났다는 듯, 힘들었던 이야

게 자식을 키우고도 늘 미안해했다.

기를 덧붙였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힘드셨어요?”

“아! 그때가 가장 힘들었겠네요. 칠십몇

“힘든 거 없었어요. 일도 힘들게도 안 했

살 때였는데, 밭을 태우다가 불이 번져

고요. 뭐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니까.

서 남의 산을 홀라당 태워 먹었어요. 그

그렇게 살았어요. 뭐든지 하기 싫으면 안

땐 정말 힘들었어요. 300만 원이나 까먹

해요.”

고, 산소를 태우는 바람에 제사까지 지내

그 시절에 누군들 헐렁한 삶을 살았을까

주고⋯.”

만, 남편을 일찍 보내고 시부모를 모시며 여덟 명의 아이들을 건사하는 과정에 눈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물 나는 날들도 많았을 텐데, 노인은 힘들

화제를 다시 학교 이야기로 돌렸다. 지나

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고생

온 세월을 더듬는 동안 밭고랑처럼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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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었던 얼굴이 다시 활짝 펴졌다. 목소리

가, 내년에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

에도 신명이 얹혔다.

자고 했지요. 그런데 그 할머니가 우리 큰

“학교 다니시니까 좋으세요?”

아들한테 그 이야기를 했어요. ‘이 집 할

“재미있어요. 일도 손 놓고 공부만 열심

히 하면 되니 얼마나 좋아요.”

머니가 내년에 학교 간다고 하던데⋯.’ 그

말을 들은 아들이 분교장 선생님에게 노

“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인도 뽑느냐고 물어본 모양이에요. 그렇

천자문 공부를 할까 했어요. 그런데 가

“어린아이들하고 공부하시니까 어떠세요? ”

“일을 놓은 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르치는 데도 없고 머리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어렵더라고요. 한글도 전에 쓰던 거 다 까먹고 잘 안 돼요. 한글이라도 제대 로 써 봐야겠다 싶어서 학교에 갈 생각 을 했지요.” 학교 갈 생각을 하기 전에 초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도 준비해 봤다고 한다. 그 런데 막상 책을 사놓고 보니까 글씨도 많 이 잊어버리고 진도가 안 나갔다. 그런 어 머니를 보던 막내아들이 ”그렇게 배우는

게 해서 입학할 수 있었어요.” “좋지요. 재밌어요.”

“불편한 건 없으시고요?”

“그런 건 없어요. 처음 입학했을 때는 말

도 못 했어요. 형편없었지요”. “가장 힘든 게 뭐였어요?”

“수학 같은 게 힘들었어요. 기초가 없으니

더하기 빼기도 잘 안 되고.” “지금은 공부 잘하세요?”

“잘하진 못하지만 보이는 건 다해요. 그래

도 애들은 못 따라가요. 1학년 때는 아무

것보다 학교 다니는 게 더 빨라요”라며 학

것도 안 되더라고요. 글씨는 삐뚤빼뚤하

교에 가라고 권했다.

고⋯. 계속 써야지요. 지금도 하루에 한

“어느 날 동네 친구하고 점심을 먹다가 내

장씩 써요.”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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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사람

현재 가수분교 학생은 모두 다섯이다. 그

노인에게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중에 두 명이 유춘자 할머니와 친구고 제

행복인 것 같았다.

나이에 다니는 아이들은 3, 4, 6학년 하

“그동안 써놓은 게 엄청 많아요. 글을 쓰

나씩 총 세 명이다. 그중 6학년 학생은 유

다 보면 한 시간은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춘자 할머니의 손자다. 노인에게 초등학

금방 가요. 뭘 써서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

교 졸업 이후에 대해 물었다.

려는 게 아니라, 내 가슴에 있는 걸 글로

“2년 뒤에는 졸업하실 텐데, 중학교도 가

쓸 수 있어서 좋아요.”

“굳이 그럴 생각은 없어요. 욕심이 안 나

난 뒤 보여주는 글들은 완성도가 꽤 높았

실 거예요?”

는 건 아니지만⋯. 공부 욕심대로라면 대 학교는 안 가고 싶겠어요? 다만 공부를 해 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내가 쓰 고 싶은 거 쓸 수 있으면 된 거지요.”

노인은 실제로 글을 잘 썼다. 인터뷰가 끝 다. 옆에 있던 분교장 선생님도 “유춘자 할머니가 욕심이 많다”며 “글을 정말 잘

쓰신다”고 거듭 칭찬했다. 두 사람은 글공

부를 함께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종이에 글을 써서 선생님에게 제출하면 선생님이 컴퓨터에 입력해서 고치고 다듬어서 프린 트한 뒤 할머니에게 돌려줬다. 그러면 할 머니는 그걸 정성스럽게 모아서 보관했다. 선생님은 “유춘자 할머니 덕분에 저도 시

인이 될 것 같아요. 그 맛으로 삽니다”라

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젊은 스승과 늙 은 학생, 그 부조화적 구조 속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혼자 된 큰아들과 함께 사는 유춘자 할머 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환한 표정을 지 었다. 자식들은 모두 제 몫을 하며 잘살고 있다. 바로 이웃에 둘째 아들 내외가 살 고, 막내아들도 한동네에 산다. 제사 같 은 집안 대소사는 둘째 아들이 챙긴다. “내가 잘 산 거 같아요. 애들이 참 잘해

요. 철철이 옷도 해주고, 학교도 보내주 고. 농사 손에 놓으니까 편하고⋯.”

“일은 완전히 놓으신 거예요? 깨도 안 털

어요? ”

“안 해요. 농사 놓은 지 10년 가까이 됐어 마루에 앉아서 그동안 쓴 글을 보여주고 있다.

요. 비닐하우스 하나만 관리하는데. 거기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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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자 할머니가 쓴 글과 통지표

에다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그냥 나

겨운 풍경이었다. 할머니는 집에 도착하

먹는 거나⋯.”

자마자 방에 들어가 그동안 쓴 글과 그림

“편찮으신 데는 없고요?”

과 생활통지표를 들고 나왔다. 통지표 종

“그럭저럭 괜찮아요. 혈압약도 먹고 당뇨

합의견란에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여

도 좀 있는데, 의사는 약만 잘 먹으면 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남에게 신뢰

찮다고 해요. 뭐 그거야 시키는 대로 하

감을 줌⋯ 짬짬이 나는 시간에도 집중하

면 되니까.”

여 공부하는 모습이 한결같음’이라고 적

소원 같은 건 없느냐고 물으니 망설이지

혀 있었다.

않고 고개를 젓는다. 대신 아리랑에 대한

유춘자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가슴 찡

열정을 은근히 비친다.

하면서도 즐거웠다. 노인은 당당하고 밝

“아리랑 부를 때가 가장 좋아요. 화요일에

았다. 거친 비바람조차 운명으로 받아들

는 학교 아이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러

이고 아리랑 한 자락에 묻어버리는 의연

선생님이 오는데, 나도 그 자리에 가서 소

함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리를 해요. 시키지 않아도 그냥 해요. 내 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요보소 당신아 요 내 얼굴을 좀 보소

인터뷰를 마친 뒤 할머니를 모셔다드릴

포근폭신 곱던 얼굴이 절골이 되었네

겸 해서 함께 집으로 갔다. 강변 마을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시골집이었

고난 속에서도 의연함과 정갈함을 잃지

다. 단풍을 곱게 차려입은 산이 집을 안온

않고 살아온 한 노인을 마당 가에 두고 내

하게 품고 있었다. 기둥에는 옥수수가 걸

려오는 길, 오래전에 들었던 정선아리랑

려있고 채반에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정

한 대목이 뒤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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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여행Ⅰ-동강

정선 여행Ⅰ-동강

겨울 강가에서 고요를 캐다 글·사진 이호준 기자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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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소 전망대에서 본 동강 풍경

겨울 강은 그 이름 속에 웅숭깊은 고요를 품는다. 또, 고요는 그리움을 잉태한다. 그래서 “겨

울 강” 하고 소리 내어 부르면 서늘한 그리움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겨울 강 앞에 선 사 람들은 기침 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않는다. 강의 견고한 침묵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겨울이 깊어가는 계절에 동강을 찾은 이유는 태초의 고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겨울 강의 고요 속에 나를 헹구면 온갖 번뇌와 속세의 먼지까지 씻겨 나갈 것 같았다. 탐방은 나리소 에서 시작한다. 나리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몸을 한껏 뒤틀며 흐르는 강물 을 오래 바라본다. 길옆 절벽 위에 데크를 설치한 이곳을 제1전망대 혹은 구(舊)전망대라고 하는데, 여기서 10분쯤 더 올라가면 나리소 풍경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 대가 또 하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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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쌓여있는 동강 주변의 산들

정선 여행Ⅰ-동강

▶ 적막 속의 강 마을

겨울에도 깊고 푸른 나리소 수량이 많지 않은 계절인데도 나리소는 깊고 푸른 물 에 속내를 감춰놓고 있다. 소(沼)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대개 그렇듯, 나리소도 오랜 세월 구전돼온 전설을 품 고 있다. 옛날에 절벽 아래에 있는 굴에 이무기가 살았 는데, 해마다 3~4월이면 용이 되기 위해 신동 운치리의 점재에 있는 용마루까지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그 이무 기가 용이 돼서 승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물은 지 금도 이무기 하나쯤 몸을 맡기기 어렵지 않을 만큼 검 푸르다. 백사장과 강물의 경계를 이루며 길게 펼쳐진 하 얀 얼음 띠가 강이 머금은 미소처럼 싱그러워 보인다. 내 안에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고요와 고향 집 같은 안식 이 똬리를 튼다. 오늘 탐방은 동강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오르기로 한다. 즉 신동읍 나리소에서 운치리를 거쳐 가수리, 귤암리 까지 강을 따라갈 계획이다. 여기서 하류 쪽으로 물길 을 따라가면, 나리소를 활처럼 휘돈 강물이 제장마을 을 지나 칠족령 발치를 적시고 연포를 거쳐 영월 쪽으 로 빠진다. 강물은 깎아지른 듯한 뼝대와 나목(裸木)들의 그림자를 품고 유유히 흐른다. 네 계절 중에 가장 맑아지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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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강은 애써 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겨울

“동강은 그냥 흘러 내려오는 물이 아니라

인데도 강물은 얼지 않았다. 강 가장자리

그래요. 석회암 지대라 중간중간 물이 솟

만 얼음 띠를 둘렀을 뿐이다. 대체 이 강

아오르거든요. 그 물이 여름엔 얼음장처

이 통째로 얼기는 어는 걸까? 주민에게

럼 차고 겨울엔 온기가 있어서⋯.”

물었더니 자기들도 결빙을 본 지 꽤 오래

아! 석회암 지대의 용출수가 쉬지 말고 가

됐단다.

라고 강물의 등을 떠미는구나. 얼음은 그

“강가나 조금 얼었다가 풀어지고 전체는

렇다 치고 눈 덮인 강변 풍경이라도 보고

거의 안 얼어요. 제대로 언 걸 본 지 10년

싶었지만, 그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눈

은 된 거 같은데⋯. 대엿새 영하 20도쯤

내린 지 며칠쯤 됐는지, 강물에 시린 발

떨어져야 하는데, 요즘은 어디 옛날만큼

을 담그고 있는 산들만 듬성듬성 흰 눈

추운가요? ”

을 이고 있다.

“그래도 다른 강은 잘 얼던데⋯.”

길옆의 얼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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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여행Ⅰ-동강

섶다리

아름다운 섶다리 앞에서 강물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는다. 강 건너 모래밭에 조각배 하나가 쓸쓸한 모습으로 누 워있다. 강을 건너는 사람이 없으니 긴 잠에 빠진 것 같다. 꽃 피는 봄날 강을 오가는 꿈 을 꾸고 있을까? 산자락을 따라 듬성듬성 집들이 들어선 강 마을도 적막 속에 잠들어 있 다. 느닷없이 길가에 웅장한 얼음덩어리가 나타난다. 산에서 내려오고 바위틈에서 흘러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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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물이 얼고 쌓여서 만든 얼음폭포

길게 들어선 마을과 그곳으로 건너가는

다. 거대한 얼음의 성 앞에 서서야 겨울

다리, 흰 눈을 모자처럼 쓴 산들, 그리고

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 중심을 흐르는 강물⋯. 겨울 풍경이야

다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눈앞에 그

말로 군더더기를 지운 원초적 아름다움

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가수리 가탄

을 보여준다.

마을 앞에 놓인 섶다리다. 이 섶다리는 가탄마을과 건너편 유지마을을 이어주 는 것으로, 동강의 물이 줄어드는 매년 11월이면 다리를 놓는 재연행사를 연다 고 한다. 섶다리는 Y자 모양의 나무를 거꾸로 물속에 박아 다릿발을 세운 뒤 긴 통나무(널래)를 놓아 상판을 만들고 그 위에 소나무 가지를 펼치고 흙을 덮 어서 완성한다. 이곳 섶다리는 전통방식 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가치 가 있고, 아름답기도 해서 구경 삼아 찾 는 사람들이 많다. 다리 앞에 서서 가만 히 귀 기울이면 나무를 베어 다리를 놓 고 마을 잔치를 열던 옛사람들의 흥겨 운 아라리 가락이 들릴 것 같다. 다리 위를 장식한 솔가지는 여전히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청청하다. 섶다리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가수리 마을을 만난다. 가수리는 말 그대로 물 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특히 가수분교 운동장 가의 느티나무와 절벽 위에 서 서 강을 굽어보는 소나무는 가수리 풍 경의 백미를 이룬다. 마을은 비어있기라 도 한 듯 조용하다. 이 마을에서는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간다. 강물도 그렇고 바 람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다. 오송정 언 덕으로 오른다. 소나무 옆에 서서 바라 보는 풍경은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고도 아름답다. 강을 따라

섶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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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여행Ⅰ-동강

물과 물이 만나 동강이 되는 곳 가수리는 동강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시

겨우내 닫았던 문을 열고 수줍은 꽃을 내

작되는 곳이다. 정선읍을 지나온 조양강

밀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젊은이들

이 사북 등을 거쳐온 지장천과 만나서 동

의 함성이 강을 메울 것이다.

강을 이룬다. 그래서 이곳은 물이 아름다

여기가 귤암리쯤이겠지? 깎아지른 듯 펼

운 가수리(佳水里)이자 물이 합해지는 가

쳐진 이 산은 병방산이겠다. 문득 강에 눈

수리(加水里)이다. 이제부터 조양강을 따

길을 주다가 반가운 풍경을 만난다. 마을

라 걷는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강변 풍경

앞 강에서 주민 서너 명이 반두질로 물고

이 바뀌는 건 아니다. 아득한 높이의 바위

기를 잡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겨울 천렵

절벽과 강 사이로 뚫린 길을 따라 걸음을

이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눈

재촉한다. 지금은 아무 내색도 않고 있지

앞에 펼쳐진 풍경 위로 문득 고향 풍경이

만 저 바위틈 어딘가는 동강할미꽃을 품

겹쳐진다. 겨울 토끼몰이나 천렵은 얼마나

고 있을 것이다. 봄기운이 강을 건너오면

재미가 있던지. 그 긴 겨울도 지루하지 않

가수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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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 오송정 소나무

게 날 수 있었다. 화석처럼 그리움으로만 남은 시간을 여기서 만나다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늘 동강 탐방은 동강생태체험학습장을 조금 못 미쳐 끝내기로 한다. 행정구역으로 광하리 에 속하는 곳이다. 여기서 계속 강물을 거슬 러 오르면 정선읍에 닿는다. 이 정도면 겨울 강의 풍경을 충분히 본 셈이다. 강 이쪽이든 저쪽이든 여전히 적막강산이다. 산골의 겨울 낮은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다. 해가 서쪽 하 늘로 설핏 기우는 시간, 산천이 빚어낸 고요가 깨질까 봐 가만가만 발길을 돌린다.

▼ 천렵하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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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지 이미 오래. 읍내 이발소에 가서 머리 깎고

정선을 추억하다

글 최준 시인

공중목욕탕 뜨거운 물에 한껏 주눅 든 배꼽도 좀 헹구었으면 좋겠지만 언제 길이 뚫릴지는 하늘만

동화나라의 겨울나기

이 알 노릇이었다. 사돈 핑계 삼는다는 오일장 구 경도 한동안은 그만이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 을 리 없었다. 해답은 고립무원에 갇힌 마을 안에 서 찾을 도리밖에. 선택이라는 것도 그랬다. 사그라지는 화톳불 보듯 빤한 노릇이었다. 장화 신고 족대 들고 마을 앞개

웃바람으로 시린 콧등까지 이불자락을 끌어당겼

울에 나가 망치질로 얼음을 깨거나, 지게작대기 움

다. 뒷산 참나무 숲에서 부엉이 우는 겨울밤은 얼

켜 들고 뒷산으로 기어 올라가는 두 개 문항 중 하

마나 깊고 길었던지. 목화솜이불 무게에 짓눌려 까

나였다. 앞개울엔 물고기와 개구리가 있고, 뒷산엔

무룩 잠들었다 깨어도 안팎 세상은 여전히 캄캄했

토끼가 있었다. 겨울을 안간힘으로 버텨내는 애먼

다. 밤새 쏟아져 내리는 눈이 적요의 두께를 보태

생명들을 빌미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는데, 작은삼촌 또래의 동네 청년들은 사랑채 아

비극적인 역설이라니! 겨울엔 값싼 동정심 따위는

랫방에 모여 겨울의 무료를 화투로 달래고 있었다.

필요 없었다. 추수의 넉넉함과 느꺼움은 눈이 내리

아랫동네에서 서리해 온 닭 모가지를 비틀어, ‘마

면서 논밭두렁에 묻어버렸다.

빡에 피도 안 마른’ 시절 배운 담배를 피워 물고 술

내린 눈은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았다. 겨울 초입

잔을 돌렸다. 원하지 않아도 오고야 말 내일을 어

엔 식구들 모두가 손을 보태어 제설작업에 부지런

찌 죽일까 고심하며 둘러앉아 판이 끝날 때마다 진

을 떨었다. 안마당과 바깥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

지하게 무릎 앞의 동전을 세었다. 딱히 할 일도 없

고 집 앞길도 싸리비로 말끔히 비질했지만 한여름

는 겨울 하루 버티기가 늘 난감한 당면과제였다.

잡초처럼 적설도 종래에는 불가항력이었다. 사흘

차라리 어둑새벽부터 땀 흘리던 농사철이 더 나

도리로 퍼붓는 눈은 한 번만 치우지 않아도 혹독

았을까. 하지만 그리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한 추위에 솔아서 얼음장처럼 굳었다. 그 위에 다

하루 두 번 다니는 정선 읍내 행 버스길은 폭설에

시 눈이 내려 쌓이면 그때부턴 도리가 없었다. 봄

최준 시인 강원도 정선 화암면 출생.《월간문학》 신인상 시 당선. 《문학사상》 신인상 시 당선.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 『너 아직 거 기서』 『개』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 『칸트의 산책로』 3인시집 『집에 관한 명상 혹은, 길 찾기』 3인시집 『슬라브식 연애』 인도네시아 번역시집 『Orang Suci, Pohon Kelapa』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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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기다리며 집 안팎으로 이어지는 토끼길만 겨

다진 김장김치에다 뼈를 발려낸 토끼나 꿩고기 살

우 내었다. 바깥마당 한구석 눈더미에 꽂아 놓은

점을 섞어 만두를 빚었다. 만두소의 재료라는 게 그

가래는 보초병처럼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제자리

게 다였다. 어쩌다 운때가 맞아 두부를 만든 집이

를 고수했다.

라도 있으면 두부 한두 모쯤 거기에 더 보탰다. 반죽

사랑채 가운뎃방은 증조할아버지의 처소였다. 증

한 밀가루를 홍두깨로 밀어 펴서 양은주전자 뚜껑

조할아버지의 방에 가면 온갖 시골냄새를 다 맡을

으로 만두피를 떠냈다. 입이 여럿인 만큼 양도 엄

수 있었다. 누렇게 바랜 신문지 바른 흙벽에 짙게

청났다. 초저녁잠이 많았지만 아주머니들이 모인

배어 있는 댓진 냄새, 윗목에 놓여 있는 가마니 짜

날 밤엔 잠도 안 잤다. 담배연기가 매워 콜록거리

는 틀 옆에 쟁여놓은 볏짚 냄새, 방안 가득 안개처

면서도 동네 청년들과 사랑채에서 만두를 기다렸

럼 은은하게 퍼져 있는 묵향, 반닫이 틈새로 새어

다. 졸음을 쫓으려고 자꾸만 감기는 눈을 손등으로

나오는 옛날 책 냄새, 바깥마당 툇마루 쪽 문틈으

비비면 김이 폴폴 오르는 만두 그릇이 비행접시처

로 들어오는 돼지우리와 소외양간 냄새.

럼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네 살 때부터 천자문을 배우러 매일 들락거린 증

꿩고기는 맛이 독특했다. 담백하고 새콤한 맛이

조할아버지의 방에 뒤섞여 있는 냄새들을 나는 용

났다. 꿩은 총보다 약으로 잡았다. 참나무가 숲을

케도 분별해냈다. 그 냄새들은 마치 세퍼릿 코스

이룬 뒷산 아랫녘 완만한 비탈은 양지였다. 온종일

를 질주하는 스프린터들처럼 저마다의 레인을 고

햇볕이 들어서 눈이 금세 녹았다. 바로 거기가 꿩

수한 채 내 코로 스며들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그 모

들의 기착지였다. 무릎이 묻힐 정도로 쌓인 낙엽에

든 냄새들을 당신의 옷자락에 일생 묻히고 계셨다.

몸을 숨기면 매와 수리의 매서운 눈으로부터 온전

거의 매일 밤 사랑채로 몰려드는 청년들처럼은 아

히 벗어날 수가 있었다.

니나 가끔씩 동네 아주머니들이 안방으로 모였다.

하지만 천적의 눈길을 피해 안도한 그 순간, 뒤엔

청년들이 토끼나 꿩을 잡은 날이었다. 사철음식이

훨씬 교활한 인간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콩알 속을

지만 한겨울밤에 먹는 만두는 맛이 달랐다. 잘게

파내어 거기에다 ‘사이나’라는 독극물을 가루 내


26

정선을 추억하다

어 채우고, 파낸 콩가루를 물에 개어 입구를 때웠

이 찾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배고픈 토끼를 어김

다. 그걸 꿩들이 앉는 자리에 두세 알씩 갖다 놓았

없이 만났다.

다. 몇 군데 놓고는 멀찍이 숨어서 지켜보기만 하

제가 다니던 길이 사라져버린 토끼의 움직임은 자

면 되었다.

유롭지 못했다. 한 걸음 뛰어 달아날 때마다 전신

내려앉았던 꿩들이 갑자기 소란스레 날아오르고,

이 눈에 파묻혔다. 뒷다리가 유난히 긴 토끼는 내

그중 몇 마리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죽은 꿩

리막이 지옥이었다. 내리막으로 내몰린 토끼는 뛰

을 찾아 들고 돌아오자마자 독극물이 든 내장을 제

지 못하고 눈덩이가 되어 떼굴떼굴 비탈을 굴렀다.

거하고, 처마 끝에 매달아 놓으면 금세 얼어붙었다.

쫓아가서 지게작대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제풀에

방 바깥은 전기가 없어도 겨울 한철에만 가동되는

먼저 절명해버리는 성질 사나운 놈도 더러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냉동고였다.

조류인 꿩은 털을 뽑고, 포유류인 토끼는 가죽을

토끼몰이는 폭설이 내린 직후가 적시였다. 올무로

벗겼다. 개구리는 구워 먹고, 물고기로는 매운탕을

도 잡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현장감과 생동감은 토

끓였다. 겉보기에는 순하고 평화롭기만 한 겨울이

끼몰이였다.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에 찍힌 토

었지만 그 안쪽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방식은 거의

끼 발자국을 발견하면 사냥은 이미 절반의 성공이

원시를 대물림하고 있었다. 자루가 반질하게 닳은

나 다름없었다. 토끼가 온 방향과 간 방향으로 패

호미와 곡괭이를 헛간에 던져놓은 산골의 겨울 일

를 나누어 발자국을 좇아가다 보면 눈 속에서 먹

상은 수렵이 생계수단이었던 선사시대나 다름이


27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생기가 돌았다. 겨우내 화투장을 두드리던 청년들 은 그들이 부러웠다. 도시 노동자로 농사일보다 힘 없었다.

든 일상을 버텼겠지만 아무튼 설을 쇠러 온 그들은

한해 겨울에 한두 번이었으나 요행히 멧돼지를 잡

개선장군들이었다.

은 날엔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 입구 새마을

생각하니, 이게 먼 과거가 아니라 당대였다는 게

회관 앞마당에 차일이 쳐지고, 겨울잠 자는 곰처

믿기지 않는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에 돌아오

럼 어디 깊숙한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노인네들

면 태반이 빈집이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고향을

이 어슬렁어슬렁 고샅길을 걸어 나왔다. 눈 마주치

떠난 자식들은 타지에서 도회의 문명을 한껏 누리

면 인사를 건넸지만 그건 치레에 지나지 않았다.

며 산다. 지난날보다 한결 더 적요해진 고향은 앞

산촌의 겨울은 깊고 깊은 계곡이었다. 물소리가 얼

으로 어떤 풍경으로 남아 있게 될까. 길었던 겨울

어붙고 외부와의 소통이 끊긴 별세계였다. 지난 늦

의 기억들도 이젠 아슴아슴한 추억이다.

가을에 파종해 놓은 보리와 마늘은 무사할까. 이

평생 농사일로 거칠어진 막내당숙의 손이 내게 술

또한 봄기운을 허락한 적설이 녹아내린 다음에야

잔을 내민다. 그는 몇 안 남은 고향 지킴이 중 한 사

확인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람이다. 눈 쌓인 겨울 산을 휘저으며 토끼몰이하던

동지가 지나고, 고향을 떠나 타지의 삶을 열심히 살

그들이 이젠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다. 예나 지금이

아낸 이들이 설을 빌미삼아 고향을 찾았다. 선물꾸

나 앞뒤 산에 갇힌 마을 하나가 깊디깊은 침묵으

러미를 바리바리 챙겨 들고 온 그들은 하루나 이틀

로 가라앉아 있다. 눈발 날리는 허공만이 한없이

을 머물다 다시 떠나갔지만 그때만은 마을에 제법

넓어졌다.

일러스트 임림 작가


28 정선의 풍경&休

글·사진 김서연 작가

오지 속의 오지

벗밭과 깊은터

깊은터 가는 길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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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더뎠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와 기상 변화에 취재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모르 면 행동하라 했던가. 서둘러 정선으로 향했 다. 먼저 움직이고 감각으로 확인하고 나서,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 다. 어쩌면 계절이 앞서 와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풍경이 느닷없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을 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를 만나 옛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 게 여행이라고 한다면 어지러운 마음에 위로가 될까.

김서연 번역작가·프리랜서작가 ‘작가그룹 해토머리’에서 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잊히거나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 여행한다. 『산골의 부엌을 엿보다』, 『정 선의 고원을 걷다』, 『여행스케치 정선』, 『정선을 가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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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풍경&休

벗밭마을 전경

‘세상의 끝 마을’ 벗밭

지는 사이.

평창 진부에서 정선 북평을 잇는 오대천로로

숙암교를 건너면 길은 양쪽으로 갈라진다.

방향을 잡았다. 그 길을 따라가면 북평면 숙

왼쪽은 단임골로, 오른쪽은 벗밭으로 가는

암리를 만나게 된다. 상원산과 가리왕산 사

길이다. 벗밭은 여태 가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 오대천 주변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숙

반드시 가야 할 것 같았다. 계곡 초입에 들

암(宿岩). ‘잘 바위’란 이름. 옛날 이 길을 오

어서니 잎들을 떨군 나뭇가지 사이로 가지

가던 길손이 큰 바위가 많은 이곳에 이르러

런히 놓인 벌통들이 보였다. 어느새 시간을

바위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역행한 듯 낯선 풍경이 시야를 채웠다. 길을

나도 전설 속 길손이 되어 깊은 골짜기 어느

안내하던 내비게이션도 종료를 알리고, 어디

바위 밑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까.

를 봐도 마을은커녕 빈집 한 채 보이지 않았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이 정선까지 이르

다. 여기가 마을인가? 잠시 방향을 잃었다.

는 옛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장

조바심을 내려놓고 기계음에 기대지 않으니,

쾌하게 솟은 산과 유연하게 계곡을 휘도는

풍경이 앞장섰다. 길은 좁은 데다 가파르고

물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 백 리 길이 아슬

거칠었다. 돌들이 흘러내린 너덜지대를 지나

아슬하도록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 이끼 옷을 두른 바위틈에서 흐르는 물소

길 위에서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마음에

리를 따라 골짜기를 천천히 올라갔다. 한참

여백 한 자락 들였다는 것을. 그런데 언제

가도 여전히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물소리

부터인가 기억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옛이

와 어우러지는 새소리를 동무 삼아 나도 풍

야기가 되고 말았다. 구불구불 느리게 흐르

경이 되었다. 그제야 보이는 것들. 가을볕에

던 시간이 더 빠르게 직선으로 깎이고 넓혀

물든 붉은 돌단풍과 노란 산국이 바람에 손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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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밭의 계곡

짓하고, 어딘가에서 지켜보던 다람쥐 한

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목 같았

마리 쪼르르 달려오더니 쫑긋 뒤돌아서

다. 그 길이 세상 끝 어딘가에 숨어있는

제 그림자를 쫓았다. 나는 바람과 햇살을

마을로 나를 이끌어, 그곳에서 눈 깊은

깊은숨으로 들이쉬었다. 산비탈 낙엽송

한 계절을 건너는 꿈을 꾸었다.

군락지가 나타났다. 낙엽송잎들이 물들기

벗밭은 어디쯤일까, 얼마나 더 가야 할까,

전이었다. 가을의 낙엽송이 나를 상념 속

걱정이 들 무렵, 문이 활짝 열리듯 구릉지

으로 이끌었다.

대가 나타났다. 그곳이었다. 해발 700m

깊은 가을 정선의 산길을 달리다 보면 노

가 넘는다는 깊은 산중마을. 벗밭이었다.

랗게 물든 낙엽송 군락지가 유독 많이 눈

언뜻 봐도 네다섯 가구가 전부인 듯했다.

에 띈다. 화전민의 터전이었다는 흔적이

가을걷이가 끝난 마을 앞 밭은 고르게 갈

다. 저렇게 높은 산, 저렇게 깊은 골짜기

아놓았고, 그 한쪽 끝에서 노부부가 들깨

에서 사람들이 살았구나. 구불구불한 산

를 거두고 있었다. 마을 어귀 느티나무 밑

길을 돌아가는 동안 속도는 줄고 생각은

에 차를 두고 혹여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많아진다. 어느 해 깊은 가을, 정선 임계

까, 주변을 기웃거렸다. 햇살이 내려앉아

에서 고한으로 넘어가는 산골 어디쯤이었

아른거리는 마을 안은 고요했다. 이렇게

던가. 정선의 산마을은 이미 겨울의 문턱

높고 멀리 떨어진 산중에 마을이라니. 마

을 서성이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며 금빛

치 동화를 재현해 놓은 세트장 같았다. 풍

으로 흩어지던 낙엽송잎들이 꿈결처럼 아

경은 때로 다가가는 걸 바라지 않는다. 서

름다웠다. 간혹 산 중턱으로 낮게 내려앉

두르면 돌아가라 하고 조바심을 내면 기

은 구름이 보이기라도 하면, 마주한 풍경

다리라 한다. 언제나 그곳에 있으면서도


32

정선의 풍경&休

수시로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 앞에서 나

도 있었는데, 지금은 토박이 원주민 네 가

는, 머물러도 되는지 묻지도 못하고 서성

구가 산다는 얘기를, 산을 내려가다 무작

이다 돌아서고 만다.

정 들어갔던 ‘깊은터’에서 듣게 되었다.

벗밭을 바라보는 심정도 그랬다. 저만치 에서 들깨를 거두는 허리 굽은 노인들에

깊은터에서 만난 부부

게 함부로 다가가도 될까 망설이다가, 안

고요하던 풍경이 수런댔다. 벗밭에서 내

타까움을 달래며 마음을 돌렸다. 벗밭(友

려오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우전교’에서

田), 구전에 따르면 북방에서 내려온 벗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쩌면 벗밭

이 이 산중에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살

에서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이곳에서 만

았다. 1960년대에는 20여 호가 있었는데,

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느닷없이 비포장

화전정리사업에 떠밀려 주민 대부분이 정

길이 나타나는 깊은 골짜기. 하늘과 맞닿

선 읍내나 산 아랫마을로 이주했다. 그러

은 낙엽송 군락지는 당연히 화전민이 살

나 보상비는 적고 경작지가 없어서 살기

던 옛터전이다. 그로 인해 지명도 ‘깊은터’

힘들어지자 다시 산마을로 돌아오기도 했

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 더러는 1990년대 새로 들어온 외지인

깊은터로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벗밭으로 가는 길보다 더 협소하고 거칠

들깨를 거두는 벗밭마을 주민

었으며, 한 구간은 비포장 길이어서 낮은 차체(車體)는 수시로 부딪히며 덜컹댔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조차 짐작 할 수 없어 불안했다. 그래도 풍경은 나를 이끌었다.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 가 차를 돌릴만한 마땅한 장소도 눈에 띄 지 않았다. 그러다 언덕 위 주변 숲과 어 우러진 통나무 골격의 하얀 이층집이 눈 에 들어왔다. 처음 만나는 인가였다. 길가 작은 공간에 차를 세웠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옆, 자작나무로 외벽 을 두른 작은 통나무집이 예뻤다. 아궁이 가 있는 걸 보니 구들방인 듯했다. 매콤한 냄새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고추를 말리 는 것 같았다. 그 앞에는 배추가 자라고 있고, 모퉁이에는 비닐하우스 닭장에 몇 마리 닭들이 나를 내다보았다. 고요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하얀 집 쪽으로 올라갔 다. 테라스에 엎드려 있던 개가 일어나 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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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직접 지은 구들방 집

깊은터 청산지기 부부가 사는 집

컹! 순하게 짓고는 제자리로 갔다. 그때 뒤에서 “누구세요? ”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청산지기’라고 하셨는데, 굳이 익

명이어야 할까요? ” 물었더니, 그는 “그냥

돌아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취재차 왔

번거로운 게 싫어서요”라며 웃었다. 이해

다가 풍경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고 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자연과 더불

사한 뒤, “혹시, 이곳 어디에 ‘바느질공방’

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 있나요? ” 물었다. 계곡 초입에서 스쳤

내 질문에 남편이 주로 대답하고, 아내는

던 이정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 집

남편의 이야기를 거들었다.

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부인이 맞이

‘청산지기’ 부부 이야기

했다. 공들여 지은 별장 같은 내부 분위

관심 “직장생활을 할 때는 단순히 시골에

사람이에요. 들어오세요.” 뜻밖의 환대였

기가 아늑했다. 겨울을 위해 준비한 듯,

서 살아봤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어요.”

화목난로 옆에 쌓아놓은 자작나무 장작

40대 초반이었다. 시골에서 살면 뭘 할 수

이 불 없이도 따뜻해 보였다. 사과, 삶은

있을까. 귀농을 생각했다. 이런저런 정보

달걀, 빵과 커피가 금세 차려졌다. 남자가

를 찾다가 알게 된 곳이 ‘전국귀농운동본

농사지은 사과와 기르는 닭이 낳은 알이

부’였다. 귀농에 관해 좀 더 깊이 알아보

라고 설명했다. 이런 만남도 있구나. 고마

기로 했다. 본부에서 운영하는 귀농학교

운 마음으로 가슴이 푸근해졌다.

에 주요 교육강좌가 있었다.


34

정선의 풍경&休

교육 “퇴근 후 일주일에 두 번씩 3개월 과

그땐 아이도 어렸고 교육도 있었으니까.

정으로 공부했어요. 실질적인 농사를 가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그곳에 농가주택

르치기보다 일종의 정신교육이었죠.”

을 샀어요. 텃밭 수준이지만 농사도 지었

골자는 생태환경을 생각하며 자연과 더불

죠. 그런데 거기가 너무 좋아 11년이나 살

어 살아가는 생태적인 삶이었다. 취지에

았어요.”

도 맞았고 나름대로 원하던 삶이었다. 동

그들은 그동안에도 계속 이곳저곳 알아보

기부여가 됐다.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며 귀촌을 꿈꾸었다.

시작했다. 용접, 목공, 전기, 배관 등 필

실행 “일반적으로 귀농하면 농사만 짓는

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다 배웠다.

진짜 농사꾼이 돼야 하는데, 그건 내가 원

“시골살이를 하려면 이것저것 뭐든 혼자서

하는 삶이 아니었어요. 농사는 생활의 보

다 해야 하니까. 웬만한 건 혼자서도 다 해

조역할로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돈 버는

요. 미용도 배워서 우리는 머리도 서로 깎

게 목적이 아니라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아 줘요.”

까. 어떤 작물이 좋을까 알아보니 과수가

준비 아내는 아내대로 시골살이를 준비했

있는데, 그중에서 사과가 가장 좋을 것 같

다. 전통 복식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부전

더라고요.”

공이었던 복식학을 다시 공부했다. 아내

기후변화로 사과 주산지가 대구를 떠나 북

가 말했다.

상 중이었다. 당시 영주 다음으로 정선이

“군포에 대야미 마을이라는 데가 있어요.

주산지로 바뀌고 있었다. 대구에서 사과

집 앞에 넓은 논이 펼쳐진 도심 속 농촌

농사를 하던 사람들이 정선 임계로 많이

마을이에요. 거기서 3년만 살아보고 정말

이주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2014년이었다.

나한테 맞다 싶으면 귀농하자고 했어요.

“인터넷을 뒤지다 정선에서 사과 농사 교

청산지기 부부가 직접 지은 구들방 집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35

사과밭

육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보게 됐어요. 연

교 때문에 부득이 떠난다는 것이었다. 전

락했죠. 숙박할 데도 있고, 최저 시급이지

기도 그들이 집을 지을 때 들어왔다고 했

만 임금도 받고 일손을 도우며 교육받을

다. 서로 의견이 맞아 바로 계약이 이뤄

수 있다는 거예요.”

졌다.

정선에 오게 된 이유다. 그렇게 숙소를 얻

귀촌 10년 차인 부부는 첫해의 설렘을 잊

고, 사과밭에서 일손을 거들면서 1년을 살

지 못한다고 했다.

았다.

“살면 살수록 너무 좋은 거예요.”

“쉬는 날마다 정선 구경을 다녔는데, 가

는 곳마다 정말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정선에서 살아볼까, 하고 골골이 다 다녀 봤어요.”

정착 원하는 집을 지으려고 땅만 보러 다

“아침마다 여기 앉아 경치를 보면서 좋지?

너무 좋지? 라는 말을 끊임없이 했어요.”

“자연이 좋아 자연에 들어왔으니, 농사를

지어 사과 세 알을 얻으면, 한 알은 새들 주고, 한 알은 자연에 돌려주고, 남은 한

니다가 우연히 만난 분한테 이곳을 소개

알을 내가 먹는 거죠.”

받았다.

자급자족을 위해 닭을 키우며 알을 얻고,

“제가 찾는 위치에 집이 있다는 거예요. 새

뒷산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받아 고추, 가

로 집을 지으려면 돈도 많이 들고 10년은

지, 배추 등을 키우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

고생한다며 적극 권해서 와봤는데, 둘 다

는 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청산지기

첫눈에 반했어요.”

부부가 이야기하는 내내, 그들의 몸짓과

40대 초반부터 전국의 오지는 거의 안 가

표정과 대화의 결에서 피어나는 온기가 내

본 데가 없지만 첫눈에 반한 곳은 여기가

게 전해졌다. 주인을 따라 집 주변을 돌아

처음이었다. 2월이었다. 비포장 길이었고,

봤다. 기슭의 고추밭에는 고추가, 그보다

잔설이 덮인 골짜기에 주민이 상주하는 집

낮은 사과밭에는 볕을 머금은 사과가 붉게

은 여기밖에 없었다. 아이가 셋인 젊은 부

익어가고 있었다.

부가 집을 짓고 6년 살았는데, 아이들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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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여행Ⅱ-민둥산

글·사진 강수래 기자

정선아리랑열차 타고 가요

은빛 억새 춤추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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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정선은 도회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여전히 먼 오지로 자리 잡고 있다. 따 라서 정선 여행은 차를 갖고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정선=대중교통’이라는 등식이 낯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만한 사람들

은 안다. 피곤하게 운전을 하지 않아도,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여 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면, 은빛 억새의 축 제가 펼쳐지는 민둥산이나, 산촌의 정취가 가득한 정선 5일장, 아름다 운 강변 마을 아우라지 등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청량리에서 아리랑열차를 타고 민둥산은 전국의 여러 억새군락지 중에서도 발군의 풍경을 보여준 다. 66만m²의 능선 가득 펼쳐진 억새의 물결은 마치 신이 그린 그 림처럼 장관이다. 특히 억새꽃이 활짝 피는 10월 중순 전후에 절정 을 이룬다. 10월 17일 민둥산행을 택한 것은 물론 은빛 머리를 푼 억새꽃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정선아리랑열차(A-train)를 타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매주 토, 일요일 그리고 정선 5일장이 열리는 매달 2, 7, 12, 17, 22, 27일 운행하는 이 기차를 타면 강원도 산악지대 를 가로지르는 열차 안에서 가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10월 17일 08시 30분. 청량리역에서 아우라지행 정선아리랑열차 를 탔다. 화요일인데도 객차는 여행자들로 빈자리를 찾기가 어렵 다. 특히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녀가 많다. 민둥산으로 가는 사람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정선아리랑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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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여행Ⅱ-민둥산

◀ 민둥산역

▶ 민둥산 등산로 입구

들도 있겠지만, 정선 5일장이 목적지

선-나전을 거쳐 종착역인 아우라지

인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 열차

역에 닿는다. 08시 30분에 청량리역

는 2시간 50분쯤 달려 11시 20분에

을 출발한 열차는 서서히 서울을 벗

민둥산역에 도착한다. 돌아오는 정

어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10월의 하

선아리랑열차는 아우라지역에서 17

늘은 맑고 푸르다. 양수리를 지나면

시 53분에 출발해서 21시 34분에 청

서 전형적인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량리역에 도착한다. 정선아리랑열차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이, 물안개

를 타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건 없다.

를 피워올리는 강이, 곡식이 익어가

민둥산역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는 들판이 가슴을 잔뜩 부풀게 한다.

있기 때문이다. 청량리역에서 07시

산들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높아지

35분, 09시 55분, 12시 30분, 17시

고, 높아질수록 울긋불긋 물들어 있

02분, 19시 10분 출발하는 열차가

다. 풀 끝에 맺혀 반짝이는 아침이슬

있으며, 민둥산역에서 청량리역으로

조차 얼마나 경이로운지. 모든 게 풍

가는 열차는 07시 28분, 09시 09분,

요로운 가을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13시 47분, 17시 03분, 19시57분에

는 것은 축복이다. 운전하고 갈 때는

있다.(2023년 10월�기준) 당일 산행을

스쳐 지나가기 바빴던 것들을 열차

할 계획이라면 청량리에서 늦어도

안에서 편안하게 즐긴다. 영월을 지

09:55분 열차를 타야 정상까지 갔다

난 열차가 예미에 닫는다. 여기부터

가 내려오는 데 무리가 없다.

정선 땅이다. 그리고 한 역만 더 가

정선아리랑열차는 양평-원주-제천-

면 민둥산이다. 정선의 하늘은 구름

영월-예미-민둥산-별어곡-선평-정

한 점 없이 맑다.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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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55분 달려 민둥산역에 민둥산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5분. 예정보다 5분 정도 연착했다. 아무 정보도 없 이 떠난 사람은 민둥산역에 내려서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역과 민둥산 사이가 생 각보다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상가를 관통하는 중심 도로를 따라 15~20분 정도 걸어서 육교를 건너면 민둥산 등반의 출발지인 증산초등학교에 닿는 다. 버스가 있지만 자주 다니지 않고, 맑은 물길을 따라 조성된 억새길이 아름다워 서 걸어갈 것을 권한다. 증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산에 오를 준비를 하면서 고도를 재봤더니 해발 501m다. 민둥산 높이가 1,119m니 실질적으로는 618m만 올라가면 된 다. 그 정도면 3~4시간이면 큰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다. 그렇다고 민둥산이 만만 한 산은 아니다. 대부분이 경사길이기 때문이다. 1,000m 넘는 산 치고 설렁설렁 올 라갈 수 있는 산은 없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4개 코스가 있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가 증산초등학교에 서 출발, 쉼터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구간(1시간 30분�정도�소요)이고, 능전마을~발구

덕~정상에 이르는 코스(1시간 20분, 억새축제�기간에는�차량�통제)도 많이 이용한다. 그 밖에도 화암약수~구슬동~갈림길~정상(6시간 30분) 코스와 삼내약수~갈림길~정상(2

시간) 코스가 있다.

12시 정각에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좁고 경사가 급한 구간이 나타난다. 숨이 턱에 찰 무렵에야 등이라도 두드려줄 듯 잠시 완만한 코스가 나오고, 곧 갈림


40

정선 여행Ⅱ-민둥산

길에 닿는다. 여기서 길이 갈라지는데 안내판에는 급경사 2.2km, 완 경사 2.8km라고 써놓았다. 조금 덜 숨차게 600m를 더 걸을 것인가, 힘들더라도 거리와 시간을 줄일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안

내자’(?)답게 완경사를 선택한다.

빽빽한 침엽수와 활엽수가 교대로 나타난다. 수령이 2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중간중간 위용을 자랑한다. 눈을 들어 보면 능선을 타고 내려온 단풍이 코앞에 있다. 길가에는 야생화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면 쉼터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전과 막걸리, 음료수 등을 파는 매점이 있어서 쉬면서 간단 하게 요기를 할 수 있다.

▲ 바람결에 나부끼는 억새꽃

▼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정상석 앞에서 기다리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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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민둥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증산마을

은빛 억새의 바다와 돌리네

다른 산들이 그랬듯, 민둥산에도 화전

쉼터를 지나 30분쯤 올라갔을까? 누가

민이 살았다고 한다. 불을 놓고 씨앗을

커튼이라도 걷은 것처럼, 느닷없이 억새

심어서 거둔 옥수수와 감자, 메밀 등으

군락이 나타난다. 갈기를 휘날리며 질

로 삶을 지탱했을 것이다. 그래도 부족

주하는 백마 떼를 보는 듯 눈앞이 환해

한 식량은 나물을 뜯어 채웠을 것이다.

진다. 여기서부터는 천천히 걸을 수밖

그러다 화전이 금지되면서 벌거벗은 산

에 없다. 위로 갈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에는 나무 대신 참억새가 자라기 시작

은빛 바다가 펼쳐진다. 너울거리는 억새

했고, 어느덧 억새군락지가 됐다.

꽃의 춤사위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산정엔 서늘한 바람이 먼저 올라와 있

새벽부터 서둘러 온 모든 노고를 한꺼

다. 그 바람 앞에 서니 온몸의 땀이 순

번에 보상받는 기분이다.

식간에 식는다. 일망무제(一望無際)라고

민둥산이 ‘억새 산’이 된 배경에는 옛사 람들의 팍팍한 삶이 깔려있다. 정선의

했던가? 시선이 닿는 곳은 모두 산과 산 으로 이어져 있다. 동쪽으로 보이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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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여행Ⅱ-민둥산

백산과 지장산, 서쪽의 가리왕산, 남쪽의 백운산, 북쪽의 상원산, 태백산⋯. 산과 산 사이로 사람 사는 마을도 보인다. 민둥산 정상을 알려주는 정상석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서 있다. 올라온 곳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쪽에도 억새가 그려놓은 그림으로 장관이 펼쳐져 있다. 정상에 머물다 그냥 내려가면 민둥산의 반만 보고 가는 셈 이다. 무엇보다 민둥산 또 하나의 명물인 돌리네를 봐야 한다. 요즘은 돌리네를 보기 위해 민둥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7부 능선쯤에 자리한 이 연 못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들은 민둥산 돌리네를 ‘리틀 백록담’이라

고 부른다. 돌리네(doline)는 일종의 땅 꺼짐 현상이다. 카르스트 지형에 빗물이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43

돌리네

스며들어 석회암이 녹으면 표면층이

4시간이 넘는 산행이었다. 사진 찍

붕괴하는데, 이때 사발 모양의 연못

고 메모하느라 쓴 시간을 감안해도

이 생긴다. 깊은 산속에 저렇게 완벽

꽤 오랜 시간을 보낸 셈이다. 민둥산

한 원형의 연못이 있다니, 신비롭기

역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서울로 돌

까지하다.

아가는 길은 무궁화호 열차를 예매

정상으로 돌아와서 하산하기 시작한

했다. 17시 03분 출발이니 조금 여유

다. 나름대로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

가 있다. 역 근처 편의점 앞에 맥주

각했는데, 민둥산역까지 계산해보니

한 캔을 놓고 앉아, 억새 속에서 행

그렇지도 않다. 풍경에 너무 오래 빠

복했던 하루를 되새겨본다. 가을을

져 있던 탓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통째로 가슴에 들인 듯 넉넉하고 뿌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를 택한다. 증

듯하다.

산초등학교에 도착하니 16시 10분.


44 정선 음식 이야기

글·사진 김서연 작가

추위를 녹이는 맛

갓김치 만두 갓김치 만두의 추억 어느 초겨울 저녁 북평에서 먹었던 갓김치 만두를 기억한다. 추워지면 생각나는 따뜻한 음식 중 하나다.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들어갔던 좁다란 골목식당이었 다. 안쪽 구석진 곳에 네 명쯤 앉을 수 있는 나무 탁자와 걸상이 놓였고, 벽에 는 투박한 손 글씨로 적은 메뉴판이 있었다. 만둣국, 메밀국죽, 밀국수, 장칼국 수, 콧등치기, 그리고 라면, 소주, 맥주. 그중 라면과 술을 빼고는 모두 5,000원 이었다. 미안할 정도로 싼값이었다. 인기척에 내다본 주인어른이 작은 방을 가리 켰다. 만둣국을 주문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누우면 맞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다. 왠지 편안했다. 찬바람을 맞다가 들어갔던 터라 방안 온기만으로도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정선갓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45

수확을 앞둔 갓

주인 할머니는 안에서 음식을 만들고,

최근 오랜만에 사북의 노른가리 가정

할아버지는 부지런히 상 시중을 들고

집에서 갓김치 만두를 먹으며 그 맛을

있었다. 만둣국을 끓이는 동안 도토리

다시 떠올렸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묵, 갓김치, 콩나물무침이 먼저 나왔

정선 토속음식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

다. 배춧잎과 실파를 깔고 부친 메밀전

직한 갓김치가 빚어낸 맛이었다. 아득

도 있었다. 여름 김치처럼 살짝 익힌 갓

하게 잊었던 어머니의 손맛이었고, 그

김치의 알싸한 맛과 환상적으로 어울

리운 고향의 맛이었다.

리는 조합이었다. 주문은 만둣국 한 그 릇인데 밥상은 넘치도록 가득했다. 메

갓김치로 완성되는 토속음식

밀전과 도토리묵으로 배는 이미 찼는

계절과 상관없이, 갓김치는 어떤 음식

데, 만둣국은 두 사람이 먹어도 될 만

에나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았다.

큼 많았다. 맑은장국에 끓여낸 만두는

콧등치기, 가수기, 메밀국수, 칡국수,

한입 크기로 빚어 조금도 흐트러지지

올챙이국수 등에는 고명이 되고, 겨울

않았다. 국물은 국물대로 깔끔했고,

철 별미로 꼽는 채만두와 각종 만두,

만두는 만두대로 쫀득한 맛이었다. 분

메밀전병에는 주재료가 되었다. 다른

명히 양념한 갓김치로만 소를 넣었는

채소처럼 나물이나 쌈 또는 국거리로

데, 무언가 톡톡 터지는 맛이 담백하면

소비하는 부식이 아니라, 반드시 숙성

서도 씹을수록 고소했다.

된 갓김치로 모든 역할을 감당했다. 갓


46

정선음식 이야기

의 무엇이 그렇게 오랫동안 정선의 식

옛날에는 갓김치를 피나무통에 담았

생활에 뿌리를 내리게 했는지. 갓김치

다. 통은 보통 어른 키보다도 컸다.

의 무엇 때문에 음식문화가 바뀌고, 다

김장하는 날이면 여덟 살쯤 된 사내

른 식재료들이 풍부한 지금도 옛날 그대

아이를 깨끗이 씻긴다. 그런 다음 삼

로 식생활에 관여하는지 궁금했다. 먹

베옷을 입히고 삼베 버선을 신겨 피

을 게 부족하던 시절, 배를 채우기 위

나무통에 들여보낸다. 밖에서 어른이

해 이것저것 먹다 보면 자주 배탈이 났

씻은 갓을 넣어주면 아이가 받아 버

는데, 그럴 때 갓김치를 함께 먹으면 속

선발로 밟는다. 다음에 소금을 넣어

이 가라앉고 편해졌다고 한다. 또 나무

주면 위에 뿌리고 소금물이 고일 때

를 땔감으로 쓰던 시절에는 숯불을 담

까지 밟는다. 아이는 그렇게 갓과 소

은 화로를 방안에 두어 추위를 덜었다.

금을 번갈아 다지다가 다 차오르면 밖

그러다 보면 숯불로 인한 두통이 자주

으로 나온다. 아이가 열두 살쯤 되면

일었다. 그럴 때도 갓김치에 물을 붓고

몸이 자라 더 이상 피나무통에 들어

불붙은 숯 하나를 집어넣어 식힌 국물

갈 수 없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동생

을 마시면 두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이 그 일을 물려받는다.

렇게 갓김치는 음식뿐만 아니라 민간요

갓김치는 일 년 내내 다양한 음식과

법에도 두루 쓰였다.

어울려 밥상에 오른다. 각종 만두와 전병의 속이 되고, 양념하면 양념 김 치, 물만 부으면 물김치가 된다. 정선

피나무 김치통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에서 갓김치는 보통 김치보다 훨씬 많 은 역할을 한다. 어려웠던 시절 반 식 량이나 다름없던 산나물처럼 갓도 저 장식품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생 활환경이 변하며 피나무통은 사라지 고, 숙성 과정이나 저장 방법도 간편 하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켜켜이 재워 저장한 갓김치는 옥수수, 감자와 고 구마, 메밀 등으로 만든 음식에 없어 서는 안 될 토속음식의 원형이다. 잘 게 썰어 물기를 뺀 갓김치에 고춧가 루, 파, 마늘, 들깨소금, 들기름 등으 로 양념하여 만든 속을 넣고 귀리만 두, 메밀만두, 수수만두, 감자만두 등 을 만들면 그 또한 별미 음식이다.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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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김치 만둣국

갓김치로 만든 별미 음식 채만두 겨울철 별미로 주로 많이 해 먹는다. 설날 세배 갈 때 들고 가는 특별한 음식이다. 메밀가루로 피를 만들고, 볶은 들깻가루를 넉넉하게 넣어 양념한 갓 김치로 속을 채워 반달 모양으로 빚는다. 빚은 만두를 삶아서 건져내거나 찜통 에 쪄서 들기름을 바른다. 메밀과 갓의 향이 어우러진 맛과 쫄깃한 식감이 특별 하다. 배가 불러도 자꾸 손이 간다. 메밀전병 음식의 맛은 그 지방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정선에서는 정선 갓김치 를 다지듯 썰어 양념한 소를 넣고 메밀전병을 만든다. 식재료가 풍성해지면서 메 밀전병에 들어가는 내용물도 많이 변했다. 입맛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속을 넣 은 메밀전병도 많다. 그러나 똑같은 재료를 써도 음식을 만드는 이의 손맛이 다 다르듯, 정선 갓김치 하나로 맛을 낸 메밀전병의 순박하고 정직한 맛은 따라올 수 없다. 입에 넣으면 정선의 오염되지 않은 바람과 물과 공기의 맛이 난다. 그래 서 더욱 특별하다.


48 정선의 문화재

김주희 정선군 학예연구사

구미정사와 정선 수고당 고택

구미정사 주변 풍경

문화재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

산으로 재편되어 각기 문화유산법, 자

산을 말하며,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

연유산법, 무형유산법에 따른 체계를

호법에 따라 보호·관리되어 왔다. 최근

갖추고, 문화재청 소관 8개 법률 내 ‘문

문화재청은 변화된 문화재 정책 환경

화재’라는 용어가 ‘국가유산’으로 일괄

을 반영하고 유네스코 국제기준에 부

변경된다. 또한 포괄적 관리 범위에 향

합하기 위해 국가유산기본법을 제정하

토유산, 미래유산, 역사문화자원, 예비

였고, 이에 따라 2024년 5월부터 ‘국가

문화유산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문화

유산체제’로의 전환을 맞게 된다. 즉 국

재를 관리하는 지자체 역시 국가유산

가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

체제에 걸맞는 보호체제 정비가 필요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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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이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정

문화유산의 분류에서 ‘지정’과 ‘비지정’

암사 수마노탑 중수비’ 역시 문화재자

가름하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문화

로 지정받기 위해 지정 신청과 현지조

재 관리는 우선적으로 소유자에 의한

사까지 마친 상태이다. 우리의 생활 터

것이며, 다만 문화재로 일찍 지정된 것

전에서 익숙했던 이야기와 장소들이 문

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관리

화재로 지정되고, 정선을 대표하는 역

되어 온 반면, 비지정문화재는 훼손이

사문화자원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은

나 도난 등의 우려가 있고 보존에 어려

무척 값지고 보람된 일이다.

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문화

2023년 10월 26일에는 ‘정선군 구미정

재 지정은 지역의 유래와 문화재적 가

사와 골지천 문화재 등재를 위한 학술

치가 있는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1987년 도 향

관리 근거와 방안을 마련하는 길이다.

토사적대장 구미정 현황 자료를 보면

결국 문화유산이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주변 경관이 좋아 경승지로 뜻이 있음’

문화가치 상승과 발전의 원천이 된다는

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런 기록을

점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내고 후

통해 볼 때 이미 30여 년 전부터 문화

대에 전승 보전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재 이상의 가치를 변함없이 지켜온 곳

우리의 소임인 것은 분명하다.

임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구미정’으

정선군 또한 지역의 향토문화에 대한

로 불렸던 이곳은 조선 숙종 때 사정

조사와 발굴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寺正)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한 이

은 해당 문화재의 가치가 ‘있다’ ‘없다’를

해 왔다. 2023년 3월에는 ‘정선 용탄리

료로, ‘정선 삼베길쌈’은 도 무형문화재

자 선생이 1692년 임계면 봉산리로 돌

구미정사


50

정선의 문화재

아와 은거하며 지은 건물로, 현존하는

에�줄지어�있는�듯�뚫려있는�바위�구멍)라는

건물은 1946년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아홉 가지 아름다움을 말한다. 구미정

있다.

은 위와 같이 절벽과 하천, 연못, 전원

사실 구미정은 경치 좋은 곳에서 즐거

의 풍경을 모두 관망할 수 있는 최적의

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은 여느 누

위치로 역사문화적인 측면은 물론, 골

정(樓亭)과 달리 공부하고 가르치는 장

지천의 감입곡류와 침식작용으로 발달

소인 학사(學舍), 서재(書齋)로서의 공간

한 하식지형과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

이기 때문에 ‘구미정사(九美精舍)’로 명

관으로 지역의 오랜 명소이자 문화재로

명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명환의 『해

서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악집(海嶽集)』에도 같은 용어로 전한다.

구미정사는 임계 지역 문화재와 깊은

‘구미(九美)’란 어량(魚梁, 폭포에�물고기가

관련이 있는데 바로 직선거리 2.2㎞에

변의�아름다운�전원�경치), 반서(盤嶼, 정자

선 수고당 고택’ 이 그렇다. 지정은 1985

벽), 석지(石池, 정자� 뒤쪽� 작은� 연못의� 풍

으로 불렸으나 2017년 현재의 명칭으

튀어�올라오는�모습), 전주(田疇, 밭두둑, 주

앞�물�건너�돌섬), 층대(層臺, 층층이�된�절

위치한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정 년에 되었고 원래는 ‘정선 이종후 가옥’

치), 징담(澄潭, 물�맑은�연못의�아름다움),

로 변경되었다. 이자 선생은 이곳에서

사이에�있는�쉼터의�경치), 열수(列峀, 암벽

과 그의 아들이자 자신의 부친인 외재

평암(平巖, 넓고�큰�바위), 취벽(翠壁, 석벽

조부인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

정선 수고당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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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외재 이단하 선생 내외분 옷

(畏齋) 이단하(李端夏, 1625~1689)의 많은

각한다.

유품과 문적들을 보관하기 위하여 별

이렇게 구미정사와 함께 연관된 장소,

채의 당호를 ‘수고당’이라고 짓고 가문

유물의 상호연계를 통해 역사의 꼭짓점

의 유지를 지켰다.

을 찾고 문화재적 가치 재조명이 이루

더불어 1965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

어지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한 일이다.

정된 ‘외재 이단하 선생 내외분 옷’ 또

한편 전문가 발제 및 토론에서도 언급

한 시대 양식과 착용자가 명백하고 조

되었듯이, 구미정사와 연관된 인물에

선 중기 복식의 양식을 연구하는데 중

대한 역사학적·건축학적 구체적인 학

요한 문화재다. 외재 이단하는 우암 송

술연구자료 집적과 문화재 지정 형태

시열의 제자로 숙종 때 대제학을 거쳐

와 명칭에 관한 논의 역시 수반되어야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는데, 이 유물

할 것이다. 이처럼 문화재 지정은 자원

은 좌의정 시절 입었다고 전하는 중치

의 발굴과 체계적인 조사 및 정리를 통

막 1점과 그의 부인이 입었던 의복과 머

한 역사 문화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에

리 장식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에서

대한 보편타당한 공감대 형성과 같은

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주기적인

여러 방면의 과정이 요구되는 일이다.

훈증소독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장기

이 중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것은 남아

적으로는 해충이나 균류에 의한 피해

있는 향토문화자원들을 소실되지 않게

예방과 보존을 위해 유물에 적합한 환

보호하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우리

경의 수장고로 이전 보관하고, 복제품

지역의 문화유산을 조금 더 귀중하게

의 제작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

여기고 보살펴 주시길 당부드린다.

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


52 작품 속의 정선

글·사진 이호준 기자

임철우 장편소설 『이별하는 골짜기』의 배경

별어곡역에 가다 소설을 만나기 전에 먼저 짚어볼 게 있다. 별어곡(別於谷)은 정말 ‘이별하

는 골짜기’라는 뜻을 가졌을까? 소설에서는 그렇게

전하고 있다. 이 아름답고 슬픈 이름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한자를 풀이하면 헤어진다는 뜻의 ‘別’과 골

짜기라는 듯의 ‘谷’을 썼으니 분명 그런 해석이 가능 하다. 소설을 쓴 임철우 작가는 ‘이별하는 골짜기’라

는 뜻을 의심하지 않은 것 같다. 소설 후기에 그런 믿음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 공은 간이역이다.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애틋한 이

름을 지니고 태어났으나 이젠 모두에게 잊힌 채 홀로 흔적 없이 스러져가고 있는⋯.” 하지만 지금의 별어곡역 앞에 써놓은 안내문은 소설 내용과 자못 다르다. 소설 속의 ‘오류’를 바로잡겠다 는 의지까지 엿보인다.

별어곡역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사랑하는 연인 이나 가족을 떠나보내는 눈물의 골짜기가 된다. 애틋하고 구슬픈 정선아리랑 곡조와 바람 따라 흩 날리는 억새, 그리고 떠나간 사람의 자취가 남은 역사 풍경과 독특한 이름 때문에 역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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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소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 별어곡 지명의 실제 유래는 이별과는 큰 연관이 없다. 별어곡의 우리말 표현은 ‘큰 벼랑이 있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이며, 일부에서는 마을 앞 동쪽 강변에 자라 모양의 바위가 있어 별암이라 부르면서 마을도 별어 실, 별어곡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하긴 ‘진위’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설은 소설로 읽으면 될 뿐. 소설의 배경을 찾아가는 길은 그 자체로 행복하다.

별어곡역 전경


54

작품 속의 정선

소설 속으로 별어곡역을�배경으로�하는�이�소설은�두�명의�남자와�두�명의�여자가�등장한다. 즉�별어

곡이라는�한�공간에서�다른�주인공들이�서로�스치면서�이야기를�끌고�나간다. 타인의�죽 음을�가슴에�얹고�사는�청년�역무원, 플랫폼에서�죽은�한�남자의�그림자를�안은�늙은�역 무원, 슬픈�과거를�품은�채�늘�어디론가�떠나려는�노인, 그리고�어느�날�역�앞에�빵집을�연 여자의�사연이�펼쳐진다.

‘가을-별어곡의�시인’이라는�테마로�먼저�등장하는�청년은�별어곡역의�막내�역무원�정동

수다. 스물일곱�살의�그는, 「별어곡�풍경」이라는�시가�철도청�사보에�실리면서�시인으로

불린다. 하지만�역을�중심으로�펼쳐지는�현실은�아름답지만은�않다. ‘빨강머리’라는�다방

여종업원의�자살, 그리고�주인이�버리고�간�개의�죽음, 제초제를�마신�아들에게�달려가는

여인을�지켜본�그는 ‘세상에, 얼마나�어리석었는가. 아름다움만으로�시가�될�수�있으리라 믿었다니’라고�고뇌를�털어놓는다.

다음은 ‘여름-이별의�골짜기’라는�테마를�신태묵이라는�늙은�역무원이�풀어나간다. 그에

게는�사랑하는�아내와�피가�섞이지�않은�딸이�있다. 청년�시절, 자신의�실수로�열차�플랫

폼에서�죽은�한�남자가�있었다. 그리고�훗날�우연히�죽은�남자의�아내와�딸을�만난다. 남 편의�죽음과�신태묵의�관계를�알지�못한�여자는�끈질긴�구애에�못�이겨�결혼하지만, 신태

묵은�아내가�떠날지도�모른다는�불안감에�휩싸인다. 어느�날�여자는�남편의�사고�이야기 를�전해�들은�뒤�강에서�시신으로�발견되고….

별어곡역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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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다음은 ‘겨울-귀로’라는�테마로�가방�할머니, 순례가�등장한다. 일본군�위안부라는�역사

의�질곡을�고스란히�떠안은�가방�할머니의�사연은�이�소설의�절반�이상을�차지할�정도로 비중이�크다. 50대�여자와�함께�마을로�흘러들어온 70대�중반의�노인은�늘�가방을�끌고 동네를�배회한다. 열여섯�살에�일본군�위안부로�끌려가�말할�수�없는�고초를�겪었던�노인

은�해방�후�가족마저�잃고�조카의�수발을�받고�있다. 하지만�끊임없이�떠나려는�노인의�걸 음은�여전히�비극이�진행형임을�알리고….

마지막은 ‘봄-손가락’이라는�테마다. 주인공은�역�맞은편의�빵집 ‘음악이�있는�베이커리’ 를�운영하는�말라깽이�여자다. 그녀�역시�말�못�할�사연을�품고�이곳으로�왔다. 어린�시절

산에서�만난�탈영병으로부터�아내에게�보내는�편지를�전해달라는�부탁을�받지만�군인들 에게�그가�있는�곳을�알려주고, 탈영병은�끝내�자살한다. 그�기억은�내내�그녀의�삶을�옭 아맨다. 단골손님인�정동수가�탈영병의�아들이라고�확신한�그녀는….

별어곡역에 가보니 산마다 옷을 갈아입고 가을을 전송하고 있다. 소설도 “10월의 끝자락, 강 원도의 가을은 깊다. 그중에서도 정선의 가을빛은 한결 더 깊고 아늑하 다”라는 문장으로 배경이 가을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역사(驛舍) 옆 작은 공원에는 늙은 나무들이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역사 건 물은 너무 단정해서 진열장 안에 모셔둔 유물처럼 보인다. 사진을 찍다가 낙엽을 쓰는 노인과 인사를 나눈다. 노인은 공공근로를 하 는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기차는 자주 옵니까?”

“잘 안 와요. 장날 같은 때나 서는데 우리는 잘 안 타요.” 억새전시관으로 사용 중인 맞이방


56

작품 속의 정선

별어곡역이 있는 정선군 남면 소재지

“왜요? ”

“자주 오지도 않고 버스가 더 싸니까⋯.”

밖으로 나오니 광장 역시 한산하다. 자 동차 몇 대만 주차돼 있을 뿐 오가는 사

“전에 왔을 때는 맞이방 문이 잠겼던

람은 없다. 조금 걸어 나와서 면 소재

“모르겠어요. 일하는 사람이 있을 땐

가는 슬레이트 지붕을 뒤집어쓴 채 찻

열어놓는데 잠가 놓을 때도 많아요. 오

길가에 부스럼 딱지처럼 오종종 나앉은

늘은 모르겠네.”

시골집들뿐”이라고 쓴 것처럼 썰렁하

정선선 별어곡역은 청량리에서 아우라

다. 도로 건너에 치킨집이 하나 있지만

지역까지 운행하는 정선아리랑열차만

문을 닫았는지 저녁에만 여는지 기척이

1분간 정차한다. 맞이방은 2009년부터

없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역 맞은 편

데, 오늘은 열렸을까요?”

지인 마을을 둘러보지만, 소설에 “삭아

민둥산 억새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혹

엔 제과점이 하나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나 해서 문을 밀었더니 저항 없이 열

시작한다. 혹시 그 제과점이 있을까, 아

린다. 억새전시관에서 여성 하나가 일

니면 흔적이라도 남았을까 싶어 두리번

을 하고 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뒤편

거리지만 찐빵집조차 없다. 제과점이 있

으로 나간다. 열차가 오든 안 오든 철

었다면 위치가 치킨집쯤일 것 같다. 거

로는 여전히 힘차게 달리고 있다. 정동

리는 영화를 찍고 철수한 세트장처럼

수도 신태묵도 이 자리에 서 있었겠구

쓸쓸하다. 느닷없는 공복을 핑계로 얼

나.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들

른 소설의 배경에서 빠져나온다.

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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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정선 지명 여행

글·사진 김서연 작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고 긴 지명

‘뙡’과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과 가장 짧은 지명이 정선에 있다. 가장 긴 지명은 북 평면 숙암리에 있고, 가장 짧은 지명은 임계면 도전리에 있다. 바로 ‘안돌이지돌이

다래미한숨바우’와 ‘뙡’이다. 둘 다 산골살이의 고단함이 녹아든 순우리말이다. 정

선에는 옛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서린 우리말 땅 이름이 많다. 어디를 가든 높은 산과 깊은 골이 외부와의 왕래를 가로막았고, 평지가 드물어 화전을 일궜지만 돌 과 바위로 뒤얽힌 땅은 거칠고 험해서 한 뙈기의 밭을 얻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렇 게 일군 밭에 옥수수, 콩, 수수⋯ 등을 심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 땅에 이름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가령 좁은 들, 긴 들, 큰 들, 뒷들처럼, ‘들’의 정선 말

‘~드루’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름하여 졸드루, 진드루, 가드루, 뒤뜨루⋯. 너른 ‘들’

에 대한 바람과 애환이 정선 지명 곳곳에서 읽힌다. 밭에서 골라낸 돌로 쌓은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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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지명 여행

‘뙡’의 유래

‘뙡’도 그중 하나다. 옛날 임계면 산지 일대에는 유난히 뙈기밭이 많았다. 이를

‘뙈밭’이라 부르다 ‘뙡’이 됐다. 그 ‘뙡’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뤘다. 지금의 도전 (리)이다. 산촌의 뙈기밭엔 돌이 많았다. 뙈기밭을 일구던 시절, 사람들은 땅속

에 숨은 그 많은 돌을 손으로 일일이 파내고 골라내어 낱알을 묻었을 것이다. 골라낸 돌들은 지금도 낮은 처마까지 닿는 담을 이루거나, 군데군데 쌓인 돌무 지로 남아있다. 안도전 길을 따라가던 중 먼발치에서 보이는 붉은 함석지붕이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가니 빈집이었다. 처마 밑에는 녹슨 농기구들만 고단했 던 지난 세월을 품고 잠들어 있었다. 뙈기밭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아있는 곳에.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유래

가장 긴 지명을 만나러 단임골로 갔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숲이 붉게 물든다 고 해서 ‘단임(丹林)’이다. 이 단임계곡에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가 있다 고 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곳은 산기슭 깊은 풀숲이었다. 푯말은 물 론이고 인가도 없는 계곡 중간 어디쯤에서 ‘내비’는 길을 잃었다. 차를 두고 길 을 따라 오르내리며 물어볼 곳을 찾았지만,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소리만 계곡 을 적셨다. 저무는 해를 가린 산 그림자는 계곡의 깊이만큼 짙었다.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아서 내려오는 길에도 자꾸 두리번거렸다. 계곡 초입까 지 내려와서야 무언가 발견하고 급하게 차를 멈췄다. 지명안내판이 거기 있었 다. 길옆 숲에 반쯤 가려지고 돌아서 있어서 계곡을 오르는 방향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 캄캄한 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인가의 불빛을 발

도전리 어느 빈집 처마 밑에 걸린 농기구들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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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한 듯 반가웠다. 안내판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 인 ‘안도리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가 생 긴 내력을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안 도리는 ‘바위를 안고서야 가까스로 지나

가는 길’이라는 뜻이고 지돌이는 ‘바위를

등지고 겨우 돌아가는 길’이라는 뜻이며 바위를 어렵게 돌아가니 ‘휴~’ 하는 한

숨이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안돌

▲ 치마들이바위 ▼ 안도리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를 설명하는 안내판

이’가 아니라 ‘안도리’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물길이 바뀌어서 바위를 안고 등

벽이며 한숨이고 험한 길이었다가 이제

지고 매달려 돌아가던 험한 옛길은 없어

는 자연으로 돌아간 고단한 이름. 안돌

졌고, 계곡 건너편에 주름치마처럼 생긴

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는 이곳 사람들

바위 절벽만 옛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의 생애 그 자체였다는 걸 골짜기를 내

바위를 주름치마처럼 생겼다고 ‘치마들

려오는 어스름 속에서 소리 없는 메아리

이’라고 불렀다. 분명 바위인데, 삶의 절

로 전해주는 것 같았다.


60 정선군 소식

돌아본

2023정선 미리 보는

2024정선 ‘다사다난(多事多難)’ 한해를�돌아볼�때�빠 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2023년도� 말

그대로�다사다난한�해였다. 세계�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이어졌고, 경기침체로� 허덕 였다. 나라� 안에서도� 정치를� 필두로� 경제,

사회, 문화�등�각�분야에서�크고�작은�일들 이� 잇달았다. 정선군에도� 굵직굵직한� 일들

이�많았다. 특히�지난 3월�뮤지컬�퍼포먼스

<아리아라리>가�호주�애들레이드�페스티벌 에서�위클리�어워드�연극�및�뮤지컬�부문�최

우수작품상을�수상했다는�낭보는�정선아리

랑에� 대한� 자긍심을� 한층� 높여줬다. 2023 년의�정선을�돌아보고, 2024년�갑진년을�전 망해본다.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에서 <아리아라리>를 공연하고 있다.

정선아리랑, 세계인을 감동시키다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는� 이� 페스티벌

한민국의�아리랑에서�세계의�아리랑으로!’ 정선

연극�및�뮤지컬�부문(Best Theater & Physical

‘정선의�아리랑에서�대한민국의�아리랑으로, 대 아리랑의�큰�걸음은�새삼스러울�게�없지만, 2023

에서�각국의 6천여�작품과�경쟁, ‘위클리�어워드 Theater Awards) 최우수작품상’을�수상했다. 가

년은�세계화에�또�하나의�이정표를�세운�해였다.

장�한국적인�혼을�열정적으로�펼친 <아리아라리>

인�호주�애들레이드�프린지�페스티벌(Adelaide

론, 코로나19로�힘든�시간을�보낸�지구촌의�많은

<아리아라리>가�세계 3대�공연예술축제�중�하나 fringe Festival)에서� 큰�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

다. 정선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개념

는�전�세계�아티스트의�가슴을�설레게�한�것은�물 이들에게�큰�감동을�주었다.

<아리아라리>는�조선�시대�경복궁�중건에�참여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61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에 참가한 <아리아라리> 공연팀과 최승준 정선군수(뒷줄 가운데)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했던�정선�산골�목수의�이야기를�아리랑에�투영

여�곳의�후보군을�선정해�국민발굴단�심사와�빅

리움, 가족의�유대감을�춤과�노래, 타악기�연주를

100선을�확정한다.

한�작품이다. 남녀�간의�사랑부터�고향에�대한�그

통해�전하는�것은�물론�강원도의�수려한�산세를 수묵화로�표현한�완성도�높은�영상을�선보였다.

2023년� 호주에서� 출발한� 낭보는 2024년으 로� 이어진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이룬� 쾌거가�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Edinburgh Festival Fringe) 공연관계자들의

이목을�사로잡으며, 2024년�에딘버러�페스티벌

에�정식으로�초청됐다. 이�페스티벌은�에든버러

에서�매년 8월에 3~4주�동안�개최되는�세계�최대 의�예술축제이다. 정선군은�에든버러�페스티벌에

서�보다�크고�확실한�성과를�이루기�위해�사전준 비와�홍보에�만전을�기하고�있다. 지난해 6월에는

에딘버러�페스티벌�예술감독과�글로벌문화교류

위원회(GCC) 위원들을�초청하여�업무협약을�맺

었다. 아울러�에든버러�페스티벌을�통해 K-POP 으로�대표되는 K-컬쳐에�전통 K-뮤지컬을�접목

데이터� 매력도� 분석, 전문가� 심사를� 통해� 최종

정선군은�이밖에도�정선아리랑�가사 1만여�수�가 운데� 대표적인 1,228수를� 영어와� 중국어, 일본 어, 프랑스어로�번역해�가사에�담긴�한과�애환을 세계인에게�전하고�있다. 아울러 2019년�러시아 에서�아리랑국제학술대회를�열었고, 2020년�인

도네시아 MCI 그룹�특별공연, 2021년�카자흐스

탄�고려인협회 A-컬쳐로드, 2022년�한국관광공 사�주관�국제로드쇼�참가�등�정선아리랑의�세계

화에�힘쓰고�있다. 앞으로도�정선아리랑을�기반

으로�한�생활문화관광�거점�공간�조성과�정선아 리랑�콘텐츠를�활용한�인문학�중심의�아리랑마 을�조성, <아리아라리> 세계�공연페스티벌�참가 확대, 해외�아리랑�네트워크�구축, 세계한민족아

리랑페스티벌�개최�등을�통해�아리랑�문화도시 로�거듭나는데�박차를�가할�계획이다.

함으로써 ‘가장�지역적인�것이�가장�세계적’이라

첫 번째 웰니스 관광도시로 선정

지평을�확대해�나갈�계획이다.

다. ‘2023년�올해의�웰니스�관광도시’로�첫�번째

는�사실을�확인하고�전통민속극�분야�세계화의

정선군에는�지난해 3월�또�하나의�경사가�있었

이뿐� 아니라� 지난해 10월에는 <아리아라리>가

선정된�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한국관광공사

100(지역문화매력100선)’은�지역문화의�매력을

진된�사업이다. 정선군은�전국�기초자치단체�중

문화체육관광부의 ‘로컬100’에� 선정됐다. 로컬 찾아내고�그�가치를�널리�알리기�위해�문화체육 관광부가�주관하는�사업으로, 전국�지자체 1,000

가�선정하는�웰니스�관광도시는�지난해�처음�추 가장�많은 3곳(하이원�리조트, 파크로쉬�리조트 앤웰니스, 로미지안�가든)의�웰니스�관광지를�보


62

정선군 소식

유하고�있으며, 이런�관광자원을�기반으로�특화

올림픽�국가정원은 183만㎡ 면적에�올림픽정원,

으로�꼽혔다. 특히�향후�한국을�대표하는�웰니스

등 8개의�테마정원을�조성한다는�구상으로, 총

된�관광상품을�개발・홍보하고�있다는�점이�강점 관광도시로�도약하겠다는�장기적�비전이�우수하 다는�평가를�받았다. 웰니스�관광도시로�선정되

면서 5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강원도-정선군� 간 업무협약을�맺고, 테마상품�개발�및�관광�실태�조

사를�위한�용역에�착수했다. 정선군은 2024년에

스포츠테라피정원, 아리랑정원, 복원숲치유정원 1,280억�원의�사업비를 4년에�걸쳐�투입할�계획

이다. 가리왕산�올림픽�국가정원이�추진되면 1조 5,000억�원의�경제적�파급효과와 5,500여�명의 고용유발�효과가�창출될�것으로�예측하고�있다.

도�힐링�명소, 트레킹�명소, 캠핑�명소�등�매력적

다양한 교통망 확충

업을�적극�추진할�계획이다.

사업인 ‘동서6축�고속도로�건설사업�영월~정선~

인�웰니스�관광자원을�활용해�차별화된�관광사 이와�함께 2018 동계올림픽�문화유산인�가리왕

지난해 5월 9일에는�강원�남부지역의 30년�숙원

태백~삼척�구간’이�기획재정부�재정사업�평가위

산� 케이블카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2023년� 강

원회에서�예비타당성조사�대상사업으로�선정되

센티브를�받는�것은�물론�한국관광공사와�업무

설계획이�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강원� 정

소형�잠재�관광지로�선정됐다. 그�결과�재정�인 협약을�통해�가리왕산�케이블카�주변�관광지�빅

데이터�분석, 인프라�개선, 연계상품�개발, 온・오 프라인�홍보마케팅�등을�중점�추진하고�있다. 가

리왕산�케이블카는�개장 10개월�만에�이용객 13 만�명을�돌파하며�매력적인�웰니스�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정선군은�또�웰니스�관광자원, 가리왕산�케이블 카, 군�면적의 86%를�차지하는�산림자원을�활용 하여�가리왕산을�중심으로�한�국가정원�사업을

추진하고�있으며, 서울시�면적의�두�배가�넘는�군 전체를 ‘대한민국�대표�정원도시로�발전시켜�나

가는�것’을�신성장동력으로�선정했다. 가리왕산

◀ 가리왕산 케이블카

는�쾌거를�이뤘다. 아울러�남북9축�고속도로�건

책과제에�포함되면서 2023년도�정부예산(국회) 3억�원을�확보했다. 이에�따라�해당�지자체들과

연대하여 ‘남북9축� 고속도로� 추진협의회’를� 구 성, 국토교통부 ‘제3차�고속도로�건설계획�중점

사업(2026~2030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있다.

또� 철도환경� 개선을� 위해� 태백선(청량리~동해)

을�운행�중인�무궁화열차를 EMU-150 준고속열 차로�변경, 9월 1일부터�민둥산~사북~고한을�경

유해서�동해역까지�운행하고�있다. 더불어 KTX 경강선�평창(평창역)에서�정선(나전역)까지�고속

으로�연결하는 ‘정선군�철도연결망�구축�용역’을

▶ 웰니스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는 로미지안 가든


63

아라리 · 2024년 겨울 · vol.4

정선을 방문한 라오스 계절근로자들

완료하고, 국토교통부에서�추진하는 ‘제5차�국가

가로지르는� 국도59호선� 직선화가� 마무리되면,

도록�적극적으로�건의하고�있다.

변모할�것으로�보인다.

철도망�구축계획(2026~2035년)’에�반영될�수�있 2016년부터�추진해�온 [국도59호선] 정선~남면

정선군은�교통�오지에서�벗어나�교통�요충지로

구간(7.2㎞)이�올해�완공을�목표로�마무리�공정

농촌 인력난 해소 및 농업지원

있는 [국도42호선] 정선~여량� 구간(3.7㎞)은� 터

격�상승에�따른�부담�증가�등으로�많은�어려움을�겪

에�박차를�가하고�있으며, 2017년부터�추진하고 널�및�교량�건설을�마쳤다. 2019년�사업계획이�확 정된 [국도42호선] 임계~동해(백복령) 구간(13.1 ㎞)은 2030년�완공을�목표로�올해�착공한다. 또

[국도42호선] 여량~임계� 구간(8㎞) 선형개량사 업은�제6차�국도・국지도�건설계획에�반영될�수 있도록�추진�중이다.

두�개의�고속도로와�두�개의�고속열차�노선이�완

공되고, 동서를�가로지르는�국도42호선, 남북을

농촌�지역은�여전히�인력난과�인건비�및�농자재�가

고�있다. 정선군은�농촌�인력난�해소를�위해�라오스 정부와 MOU를�체결하고�외국인�계절근로자�유치 (2022년 36농가 94명/2023년 55농가 350명)를�진

행했다. 아울러�농촌인력�중개센터�확대�운영을�통 한�내국인�근로자�농가�알선�등�농촌�인력난�및�인 건비�상승에�적극�대응하고�있다. 또�여성농업인�가

사부담을�줄이고�농촌�일손부족�해소를�위해�농번 기�공동급식지원�마을을�대폭�확대했다.

아울러�농자재�가격�상승으로�경제적�부담이�증가 함에�따라�농자재�반값�공급, 농산물�가격하락�시 농가�부담�경감을�위한�농산물�최저가격보상�품목 확대, 농산물�물류비�부담�경감을�위한�농산물�판

매�운송비�지원, 농업인�소득�안정화를�위한�농업인 수당�증액�추진�등�농업경영�안정화와�농가소득�증

대를�위해�다양한�농업인�지원�정책을�추진�중이다. 특히�농촌인구�고령화�및�농촌인구�감소로�영농�기

계화가�요구됨에�따라�북평면, 신동읍, 임계면, 화

암면�등 4개�권역에�농업기계임대사업소를�설치하 여�농업인�영농부담�감소�및�농업기계�이용�편의를 높였다.


청옥산 청옥산

(1,257m)

중왕산 중왕산

(1,381.4m)

(1,561.8m)

가리왕산

단임계곡

59

숙암계곡

42

(975.3m)

동강생태체험학습장

동강할미꽃마을

스카이워크, 짚와이어

정선507미술관

정선읍행정복지센터

상유재 상유재

정선군청

정선양떼목장

기우산 (873.7m)

어천 정선 선 59

반륜산 반륜산

(975.9m)

424

어천

덕우리 대촌마을

덕산기계곡

(1,007.3m)

상정바위산

아리랑센터/아리랑박물관

정선약초시장

정선역

아라리촌

정선5일장

정선아리랑시장

42

아리바우길1구간 이동거리17.1km

정선군농업기술센터

남산

(959m)

북평면행정복지센터

365행복마을

선 정선

노추산 노추산

(1,322m)

사달산 사달산

(1,181.8m)

거북바위

용마소

그림바위예술발전소

42

각희산

화암약수야영장

그림바위미술마을 화암면행정복지센터 화표주

정선아기동물농장

421

문래산 문래산

(1,082.5m)

(904m)

자후산 자후산

4

35

송계산성

임계면행정복지센터

임계사통팔달시장

35

(979m)

42

삼척시

중봉산 중봉산 (1,262m)

괘병산

(1,201.5m)

(1,021.4m)

달팽이산

백복령쉼터

백복령카르스트지대

강릉시

백두대간약초나라

임계면

(756.2m)

상경바위산

민둥산 민둥산

(938.9m)

석병산 석병산

(1,052.5m)

석이암산

(812.6m)

도름산 도름산

백두대간 생태수목원

임계시외버스터미널

덕우산 덕우산

(1,007.4m)

구미정

(1,085.2m)

화암동굴

화암면

왕치산 왕치산

(901.8m)

정선향토박물관

고양산 고양산

(1,152.3m)

화암카트체험장

(1,077.2m)

반론산 반론산

골지천

여량면

아리바우길3구간 이동거리13.8km

오장폭포

정선아리랑전수관 아우라지주례마을 여량버스터미널

아우라지

415

여량면행정복지센터

아우라지역

415

3

배나드리마을

구절리역(폐역)

벅스랜드

정선레일바이크

자개골

아리바우길2구간 이동거리21.9km

토속음식 맛전수관

나전역

42

항골계곡야영장

솔돌마을

정선군종합관광안내소

민둔산 민둔산

정선시외버스터미널

정선경찰서

정선읍

강 조양

동강광하안내소

424

레포츠단지

회동계곡

로미지안가든

410

항골계곡

상원산 상원산

(1,421.7m)

골지천

나전시외버스터미널

졸드루야영장

백석폭포

아라리 인형의 집

북평면

가리왕산케이블카

파크로쉬 리조트

회동솔향캠핑장

가리왕산야영장

가리왕산자연휴양림

평창군

2

강 조양

C

B

A

1

JEONGSEON TOURIST MAP

정선관광지도

천 골지

상월산 상월산

(970.5m)

5

동해시

C

B

A


2022년 여름 vol.1

1

연하역

영월군

백운산 백운산

(883.5m)

고성산성

동강

E

D

만지산 만지산

(716.2m)

지장 천 천

38

함백선

2

(989.6m)

예미산 예미 산 예미산

예미역 예미MTB마을호스텔

(925m)

벽암산 벽암산

개미들마을

타임캡슐공원

함백선 421

서해

제주

목포

15

서산

인천

위치도

(1,173.8m)

질운산 질운산

단곡계곡

태백선

광주

전주

25

대전

순천

남원

청주 세종

서울 수원

1

남해

35

원주

춘천

3

두위봉 두위봉

(1,470.8m)

38

50

60

38

태백선

거제

창원

포항

영덕

울산

30

독도

울릉도

동해

고속국도

부산

안동

대구

55

정선군

65 동해

강릉

양양

노목산 노목산

(1,151.3m)

424

영월역 전망대

공원

함백산

(1,572.1m)

박물관, 전시관 리조트, 콘도

탄부역

탄부역

유적지

사찰

경찰서

만항재

적조암

정암사(수마노탑)

추전역

스키장

기차역

지방도

국도

Tel. (02)3443-9745 정선군관광안내지도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므로 무단복제 및 전재를 할 수 없습니다.

• 지도 디자인 : (주)지오마케팅

424

59

폭포

계곡

휴양림

E

D

•발행일 : 2020년 5월

연하역

버스터미널

약수터

관공서

5

문곡역

태백역

태백시

•발행처 :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Tel. 1544-9053

시장, 쇼핑 영월역 골프장

캠핑장

체험마을

동굴

호텔

만항마을

4

414

정암사 순례길 이동거리5.8km

삼탄아트마인

고한구공탄시장

관광안내소

범례

하이원C.C

하이원 팰리스호텔

백운산 백운산

(1,426.2m)

고한역

38

고한읍

백전리물레방아

고한읍행정복지센터

메이힐스리조트

고한사북공용터미널 하이원 그랜드호텔

사북석탄유물보존관

사북읍행정복지센터

하이원스키장

하이캐슬리조트

424

남전산 남전산

(943.1m)

광대곡

사북읍

사북역

사북시장

몰운대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

도사곡휴양림

민둥산역

421

소금강

민둥산시장

정선 선

(1,120.7m)

지억산 지억산

(1,117.8m)

민둥산 민둥산

고병계곡

불암사

화암약수

남면행정복지센터

자미원역

59

별어곡역 38

남면

백이산 백이산

(972.5m)

선평역

함백역

안경다리탄광마을

에콜리안정선C.C 태백선 아리랑브루어리

신동읍

신동읍행정복지센터

동강탐방안내소

동강전망자연휴양림캠핑장

나리소전망대

조양강

동강 태 백 선

선 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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