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앤]악마와의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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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계약 (The Devil to Pay)

제인 앤 크렌츠

에밀리나는 라이튼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는 동생을 돕기 위해 라이튼의 별 장에 무단침입하려다 이웃 별장의 줄리안에게 들켜 버린다. 사정을 안 줄리 안은 그녀를 돕겠다고 하지만 그의 정체는 마피아라는 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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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에밀리나 스트레튼은 해변에 인적 없는 집의 뒷문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잠시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불안한 표정으로 손전등을 둥글게 흔들어 보았다. 불빛은 짙은 안개를 가를 뿐이었다. 안개 때문에 그녀는 겨우 10피 트 정도 앞을 볼 수 있는 게 고작이었고, 그나마도 곧 힘들어졌다. 고적한 해변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속에선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의 왕성한 상상력이 또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평 상시에도 넘치는 그 상상력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는 일 이었다. 자신을 그렇게 진정시키며 에밀리나는 길로 탐스러운 갈색 머리를 어깨 뒤 로 쓸어 넘기고는 다시 한 번 손잡이를 잡고 실랑이를 버렸다. 물론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쉽게 문이 열리도록 놔둘 만큼 라이 튼이 부주의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 이었다. 그녀는 잠시 부질없 이 문손잡이를 잡고 돌려보고 나선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남 은 건 창문을 살펴보는 일뿐이었다. 과감하게 창문을 깨고 침입해도 괜찮을 까?

라이튼이 그저 젊은 아이들의 치기어린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

을까? 그때 누군가에 의해 주시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다시 강하게 들었다. 에밀 리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안개 낀 어두운 해변을 불편한 눈초 리로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몇 야드 떨어진 곳에서 작은 파도가 바위투성이 의 오리건 해안선을 따라 작게 일렁이고 있었다. 파도의 부드러운 소리 외 에는 위험을 알리는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섬세 한 머리카락을 목덜미에서 들어올릴 때 그녀의 말초 신경들을 따라 미세한 떨림이 번져 나갔다. 임박한 위험을 감지한 그녀의 무의식적인 신체 반응은 점점 커져만 갔다. 주위의 그림자 진 곳을 살펴보았지만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에밀리나는 두 손으로 팔을 위 아래로 문질렀다. 오리건 해변의 밤은 추웠다. 그녀가 입고 있는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색 스웨터는 안개에 둘러싸인 공기의 냉기를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옷은 특공대의 임무 수행시에나 어울릴 법 한 것이었다. 빌어먹을 상상력!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데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전문적인 강도들은 왕성한 상상력이 초래하는 재난에 대해 알지 못 하기에 자신의 직업에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리라.


이 늦은 시간에 이런 한적하고 조그만 해변에 사람이 어슬렁거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백 번쯤 되뇌며 그녀는 창문 틀을 흔들어보았다. 라이튼 의 별장 뒤에는 몇 채의 집이 더 있었지만 매년 이맘때쯤에는 거의 비어 있 기 마련이었다. 해변이 바라보이는 작은 절벽 위에 몇 채의 집이 더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사실 그 중에 한 채의 집에 에 밀리나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밤중에 잠자 리에 들어 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는 이 지역 사람들의 좌우명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시내 거 리에 웅성거리며 나타나곤 했다.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짜증 섞인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에밀리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가 뒤 로 돌아서는 순간 안개 속에서 서서히 들어나는 두 개의 형체를 보곤 그대 로 굳은 듯이 멈추어 섰다. 「이런 세상에!」 놀라 숨을 들이키며 내뱉은 그 말은 속삭임에 가까웠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커다란 도베르만 견을 먼저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주인을 살피는 건 그 다음 일이었다. 맵시 나게 윤기가 흐르는 검은 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그녀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경계하는 태도로 작고 예민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고 잔인하고 어두운 눈길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 다. 에밀리나는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아주 천천히 눈을 들어 그 옆에 서 있는


음험하고 위험하게 보이는 주인을 보았다. 순간 그녀의 머리 속엔 개의 주 인인 줄리안 콜터야말로 저 무시무시한 개만큼이나 치명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 만 손전등 빛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저 야수보다 훨씬 위협적인 요소를 지 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좋은 저녁이군요」 귀에 거슬리는 낮은 목소리는 에밀리나의 신경을 팽팽 하게 긴장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드라큘라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드라 큘라 백작에서 소개되고 있는 듯했다. 「오늘 저녁을 보낼 곳을 찾는 거라 면 내가 그 인적 없는 집보다 더 쾌적한 곳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데」 당연히 그러시겠지! 그녀는 짜증스럽게 생각했다. 저 사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을까? 그녀는 힘겹게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저 사람은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아니에요」 그녀는 바짝 마른 아랫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잘 곳을 찾던 중이 아니었다는 거죠」 이 사람 나를 하룻밤 묵을 곳을 찾는 지나가는 여행객쯤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다행인데. 「나… 나 는 그저 산책을 나왔어요」 「산책이라」 줄리안 콜터는 손전등의 불빛을 무시하고 한걸음 더 다가왔 다. 도베르만 견이 따라왔다. 주위의 안개가 소용돌이치듯 흩어졌다. 「산 책을 하기에 적당한 시간은 아닌 것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정중 하게 예의를 갖춰서 물어왔다. 손전등의 빛으로 에밀리나는 그의 모습을 가까스로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당신도 같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녀는 허세를 부리며 지적했 다. 흰색 섬광이 그의 얼굴에 나타난 희미한 미소를 드러냈다. 「하지만 내게는 해변에 나올 충분한 이유가 있소」 「당신에게 이유가 있다구요?」 어느새 에밀리나는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 다. 「음, 그러니까, 당신을 따라왔소」 「뭐라구요? 나를 따라왔다구요? 당신은 그런 일을 할 권리가 전혀 없어요. 나를 따라왔다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거죠?」 「음, 당신이 알지 모르겠지만, 이런 한적한 마을에서 할 일이란 게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오」 그는 사과하는 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신이 내 관심을 끌었소」 「세상에! 난 당신에게 하찮은 오락 거리나 제공하려고 이 외진 곳을 돌아 다닌 게 아니라구요!」 「나도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이 이곳에서 하고 다니는 행동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 점에 대해서 서 섹스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서 브랜디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 떻소? 점점 더 추워지는 거 같은데…」 이름이 불려지자 그 개는 일어서서 기대감에 찬 시선으로 주인을 바라봤다. 에밀리나는 그 둘을 쳐다보며 도망가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요」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건 불가능하겠군요. 당신의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콜터 씨」


잠시 비열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당신은 내 이름을 알고 있군. 그건 당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는 얘기군. 난 당신의 이름을 모 르니 말이오」 「그거 잘된 일이군요」 에밀리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꾸했다. 그는 다소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밤의 여인이여, 빨리 오시오, 잠자리에 들기 전데 당신한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소」 그는 다시 한 걸음 다가왔고 에밀리나는 완전히 기가 죽었다. 순간 맹목적 인 공포감을 느끼며 그녀는 뒤돌아 해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결 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해안선은 바위투성이로 울퉁불퉁했고, 안개로 인해 5피트 앞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달렸다. 드라큘라 백작과 그의 애완견 늑대 인간이 뒤를 따 라오는 양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달렸다. 그 순간 에밀리나에 게는 이런 무모한 질주 외에는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줄리안 콜터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에 관해 숙덕대는 이야기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달아나게 하기에 충분히 위협적이었 다. 늑대 인간이 먼저 그녀를 따라잡았다. 멈추라는 경고나 협박하는 날카로운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야수나 그 주인 모두 그런 일을 애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녀가 도망가게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 채 그저 조용히 그녀를 추적할 뿐이었다. 도베르만 견은 안개를 헤치며 에밀리나의 옆에서 가뿐하게 달렸다. 에밀리 나는 몸을 획 돌려 다가올 공격에 대비하며 손을 앞으로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 개는 공격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멈추고는 웅크리고 앉아 그녀를 보며 웃었다. 에밀리나는 이 모든 것이 녀석에게 게임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는 공격 명령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그 동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주인이 안개 속에서 모습 을 드러냈다. 「이런 식으로 몇 번만 저 녀석을 데리고 달려 준다면 녀석은 당신의 평생 친구라도 돼 줄 거요」 콜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달리기 를 좋아하죠」 그리고 나서는 에밀리나가 미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도 전에 손을 내밀어 팔을 잡았다. 「그렇지만 오늘밤은 달리기에 썩 좋은 날씨는 아닌 것 같소. 집으로 돌아갑시다. 자, 가자, 서섹스」 그는 개를 흘낏 내려다보며 덧붙여 말했다. 다음 순간 에밀리나는 다소곳이 그를 따라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 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강한 손가락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있었 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는 흔들림 없는 의지를 전달하기엔 충분한 강도의 힘으로 잡고 있었다. 에밀리나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서 뭔가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 로의 무덤을 파는 꼴이 되는 것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무덤의 형상에 그녀 는 이를 갈며 다시 한 번 그 빌어먹을 상상력을 저주했다. 「밤의 여인이여, 당신에게도 이름은 있겠지요?」 「에밀리나. 에밀리나 스트레튼」 그녀가 느끼는 공포를 감추려 일부러 퉁 명스럽게 대답했다.


「에밀리나. 좋은 이름이군. 에미라고 부르겠소. 그리고 에미, 날 무서워할 필요는 없소」 「오, 그렇죠. 한밤중에 해변에서 몰래 따라와 말을 거는 사람이 뭐가 무섭 겠어요!」 그녀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콜터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해변을 바라보는 절벽위로 가 는 샛길로 안내했다. 「난 그저 몇 가지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싶을 뿐이 오, 에미」 「왜죠? 내가 밤중에 무얼 하든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구 이러는 거 예요」 「이미 말했지만 난 당신에게 관심이 있소. 당신은 일주일 전에 혼자 이곳 에 왔고 내 집에서 한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별장에 세 들어 살고 있소. 그 것도 관광객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는 한겨울에 말이오. 게다가 당신은 해변 에 있는 저 인적 없는 집 주위를 살피느라 하루를 보내곤 하고 있소. 그러 던 어느 날 밤 당신이 해변의 이 샛길을 따라 가는 것을 보았소. 그리고 그 집에 무단 침입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거요. 난 저런 낡은 집에서 훔칠 만한 물건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고, 당신 같은 여자가 이 밤중에 저런 행동 을 하러 한겨울에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해진 거요.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도 그 답을 알 수 없기에 서섹스와 난 당신을 따라가 대답을 듣기로 한 거 요. 간단한 이야기요. 그렇지 않소?」 「그래요. 간단한 이야기죠. 간단히 말해 당신은 상관할 바 없는 일이에요, 콜터 씨. 내가 장담하죠. 이건 절대로 당신과 관계없는 일이에요」 에밀리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얻어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마피아. 에밀리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던 바로 그 아침에 건너편의 손님에게 카페의 종업원은 털어놓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동부에서 일이 진정될 때까 지 숨어 있는 마피아 거물일거라고.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줄리안 콜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공론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만은 명백한 일이었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만 하는 가게의 점원이나 종업원들에게는 정확하게 예의바르게 대했으며 어 디를 다든 도베르만 견과 함께였다. 도베르만 견은 거친 맹수로 알려져 있 었고, 흔히 공격과 난폭한 행위를 위해 훈련받는다고 생각되는 개였다. 이 동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 개는 그야말로 콜터에게 딱 맞는 동물인 것이 다. 에밀리나는 그를 비스듬하게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확실히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이 남자와 그의 개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온몸이 떨려왔다. 오싹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을 이해하는 것이 쉬워졌다. 그리 매끈하게 생기지 않은 그의 옆모습은 단호하고 냉정한 무자비함이 있 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안개에 굴절되어 빛나는 달빛에 더욱 검게 보였다. 희미하게 패인 입가의 잔주름과 그의 검은 눈에서 보이는 그 냉소적인 표정 들을 보건대 그는 아주 고된 인생 역정을 지내며 자신의 경험을 얻어 왔으 리라 생각되었다. 그의 나머지 부분들은 단단하고 군살 없이 늘씬했다. 검은 바지와 가죽 재 킷 속의 육체는 그의 개가 그렇듯이 남성적인 우아함을 가지고 움직였다. 치명적으로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름의 아름다움


이 느껴졌다. 그들은 어느새 절벽의 꼭대기로 가는 샛길에 다다랐고 에밀리나는 걱정스레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저 가죽 재킷 밑에 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쨌든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에게 그녀가 전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일 게다. 그녀의 머리에 갑작스럽게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 그가 이 밤중에 그 녀를 따라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가 될법했다. 한적한 낚시터 마을 에 가명을 사용하여 은둔하고 있는 마피아 두목에게 낯선 방문객은 당연히 의심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렇군. 이거야 말로 콜터가 그녀에게 관심을 두 는 것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되겠다. 서섹스는 절벽의 꼭대기를 향해 펄쩍 뛰어올라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며 멈춰 서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도학하자 그 녀석은 몸을 돌랴 비바람에 씻 겨 고생이 찬연한 작은 별장으로 갔다. 줄리안은 조용히 열쇠를 꺼내 손잡 이에 꽂았다. 「이런 동네에선 이렇게 문을 잠그는 것이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 지만 습관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말이오, 그렇지 않 소?」줄리안은 천천히 말하며 불청객을 위해 문을 열어 제쳤다. 「게다가 이렇게 낯선 사람들이 한밤중에도 어슬렁거리는 마당엔…」 서섹스는 마치 에밀리나를 안으로 들여보내려는 듯 교묘하게 코를 그녀의 손에 대고 밀어 댔다. 에밀리나는 갑작스런 접촉에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올 랐다. 「염려 말아요. 당신을 좋아해서 그러는 거니까」 줄리안은 문지방 쪽으로


그녀를 부드럽게 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녀는 윤기 나는 그 개의 머리에서 손을 홱 잡아 빼며 투덜거렸다. 「그 녀석이 아직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지 않았잖소?」 「당신의 유머 감각을 정말 엉망이군요」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자 동적으로 그녀는 방으로 가로질러 벽난로 쪽으로 가 아직도 깜빡거리며 남 아 있는 잿더미로 다가갔다. 「그거 유감이오. 사실 난 연습할 기회가 없었소. 내 유며 감각 말이오」 그는 그녀가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나무 바닥을 긴장한 채 가로질러 가 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곳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비바람에 바랜 전형적인 별장 이었다. 집 내부에는 드문드문 가구들인 놓여져 있었다. 그 가구들은 양탄 자와 여기저기 해진 자국이 있는 것들이었지만 놀랍게도 약간의 위안을 느 낄 수 있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이 있 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브랜디를 좀 가져오겠소. 밖은 지독히도 춥고, 당신이 걸치고 있던 거라 곤 그 얇은 스웨터뿐이잖소」 에밀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 무거운 재킷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얇은 옷만을 입었노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녀는 그저 조심스럽게 벽난로를 쳐다보고 있었고, 줄리안은 부엌으로 가 브 랜디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판단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칠흑같이 어두운 눈이 그녀를 배회하며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않고 있었다. 담갈색 머리는 땋은 채로 그녀의 등 뒤로 드리워져 있고, 그 긴 머리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그저 평범한 모습이었다. 커다랗고 끈이 살짝 올라간 듯한 개암나무 빛의 담갈색 눈은 푸른색이나 초록색이 그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을 정도로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그녀는 31이었다. 각각의 이목구비는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드는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호감이 갈만한 외모였다. 통찰력 있 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녀의 숨겨진 지성과 왕성한 호기심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성격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강한 자의식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기쁨이나 실망 또는 그 많은 다른 감정들을 쉽 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얼굴이다. 그녀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녀가 감정이 격해지면 그 담갈색 눈이 때때로 색깔을 바꾼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에밀리나는 거울을 볼 때면 자신의 모습이 건강해 보인다고 스스로에게 위 로하듯 말하곤 한다. 매우 여성적인 몸매에 둥근 곡선들의 풍만한 모습. 그 녀는 자신의 이런 건강한 외모에 즐겁게 적응하기로 마음먹은지 오래였다. 검은 청바지는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는 엉덩이에 다소 낙낙하게 맞고, 검정 스웨터는 그녀의 가슴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녀는 브래지어 를 하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오늘밤 누군가 와 맞부딪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좀 편안해졌소?」 줄리안은 거실로 돌아와 브랜디를 건네주며 예의바르게 물었다. 서섹스는 벽난로 앞에 있는 작은 양탄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에밀


리나와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 고마워요」 에밀리나는 마지못해 브랜드를 한 모금 마시며 나직이 말 했다. 「앉아요, 에미」 줄리안은 그녀의 이름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불렀다. 그는 그녀 뒤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에밀리나는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 낡은 집이 당신의 흥미를 끌었던 이유를 말해보시오」 「이건 당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그녀는 열심히 그를 납득시 키려 애썼다. 그가 겉옷을 벗자 그 속에서 총이 보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최소한의 안도감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난 그저 잠이 오지 않아 서 산책을 하러 나간 것뿐이라구요」 「이 한밤중에 말이오?」 그는 미심쩍은 어조로 물었다. 「난 밤에 해변을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구요」 「그 얇은 스웨터와 청바지만 걸친 채로 말이오?」 「콜터 씨, 난 당신이 왜 남의 야행성 취미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녀는 거의 필사적으로 응수했다. 「내가 정말 당신 에게 약속할 수 있는 건 이 일은 당신과는 절대로 상관없다는 거예요!」 「글쎄, 그건 상황에 따라 엄마든지 바뀔 수 있는 일인 것 같소」 그는 넌 지시 말했다. 「뭐라구요?」 에밀리나는 무척 당황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아, 내말은 남자들이 흔히 하는 미묘한 구애였소, 에미」 그는 그녀가 얼 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


며 담담하게 설명했다. 「당신한테 그렇게 충격적이었다면, 그건 분명히 조 금 심하게 미묘해서 이해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군. 놀랍군. 당신은 그 정도 농담은 이해할 정도로

충분한 지적인 능력을 가진 여상으로 보이는

데. 아무리 그 의미가 미묘하더라도 말이오」 에밀리나는 마침내 가가 하려고 한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고, 그녀의 얼굴 을 새빨갛게 변했다. 「이봐요, 콜터 씨. 난 나의 야행성 습관을 당신의 습 관과 연결지을 마음은 전혀 없다고요. 난 우리가 좀더 진지한 이야기를 하 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이야기한… 아무튼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것보다 진지한 주제 말이에요」 그녀는 발치에 있는 서섹스를 무시 한 채 일어났다. 그 충성스런 개는 그녀를 주시하며 고개를 들었다.

「오

늘밤 같아 보내려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수고를 하신 거라면 매우 유 감스럽지만 당신은 시간만 낭비한 거예요. 난 눈곱만큼도 그런 일에 관심 없다구요!」 「그건 당신이 여기에 볼일이 있어 왔기 때문이오?」 「정확히 맞는 말이에요, 안녕히 주무세요. 콜터 씨. 이제 집에 가야겠군 요」 하지만 그건 그녀의 희망 사항에 그쳤다. 서섹스는 이미 그녀보다 빨 리 문 앞에 도착해서는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문 앞에 떡 버티고 앉아 있 었다. 에밀리나를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줄리안을 바 라보았다. 그는 그저 자기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시 동안 방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줄리안은 개를 불러들일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브랜디를 홀짝이며 그녀 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서섹스는 그녀의 뒤에 있었다.


그녀의 왕성한 상상력은 도베르만 견의 엄청난 공격에 대한 망상을 일으켰 고,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의자로 물러나 앉아 브랜디 잔을 다시 들게 했다. 줄리안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하기 전에는 어디로 갈 수 없다는 것이 명백 해졌다. 「브랜디 좀더 하겠소?」 그가 마침내 정정하게 물어 왔다. 「아니, 괜찮아요」 에밀리나는 의자에 뻣뻣이 앉아 벽난로의 불만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줄리안의 은근한 협박이 정말 싫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전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을 털 어놓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험이 있을 듯했다. 「콜터 씨. 이 일 은 매우 복잡하고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어요」 「줄리안이요」 그는 부드럽게 정정했다. 「그래요. 줄리안」 에밀리나의 얼굴은 더욱 찌푸려졌다. 「내가 오늘 밤 해변에 간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면 저 개를 불러들여 주겠어요?」 서섹스는 에밀리나 쪽으로 걸어와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밀어 넣었다. 에밀 리나는 살짝 움찔했다. 「저 녀석이 불러들이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 같군」 줄리안은 즐겁다는 듯 이 쳐다보았다. 「당신을 좋아하고 있거든」 「난 기본적으로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설명을 좀 해주면 좋겠 군요」 에밀리나는 비꼬며 말하고는 주저하며 그 동물의 목을 만졌다. 서섹 스는 귀를 씰룩거렸다. 「서섹스는 경쟁을 마다하지 않소. 저 녀석은 자기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


에밀리나는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니까 당신과 당신 개가 똑같은 철 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인가요?」 그녀는 도전적으로 말했다. 난 그저 내 개에 대해서만 말한 거요. 너무 앞질러 생각하지 말아요「 에밀리나는 다시 자신이 처함 문제점에 주의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무의 식적으로 그녀의 손가락은 서섹스의 귀 뒤를 문질러 주기 시작했다. 「해변 에 있는 그 별장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집이에요, 줄리안」 「계속하시오」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그녀는 문득 줄리안은 에릭 라이튼같 은 사람을 잘 이해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 집주인은 내 동생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고 있어요」 「동생에게 협박 편지를 보낸다고?」 그가 놀란 얼굴을 하자 그녀는 그 점 에 잠시 의아해했다. 이런 일들은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마치 오 래되 모자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 다.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이야기군. 어서 얘기를 계속해 봐요」 그녀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그다지 대수로울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 주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어요. 난 라 이튼이 내 동생 주위를 얼쩡거리지 못하게 할 뭔가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여기에 와 있는 것뿐이에요」 「라이튼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집의 주인이고?」 「맞아요, 이제 괜찮다면…」 「긴장을 풀어요, 에미」 줄리안은 부드럽게 충고했다. 「아직은 어디도 갈


수 없을 것 같소. 당신은 이제 막 벌레가 가득한 깡통을 땄다는 걸 알아야 겠군」 「당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들이에요」 그녀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단지 당신이… 만약… 그러니까」 그녀는 갑작스런 충격에 말을끊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라이튼과 얽혀 있는 사이가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말이요? 그게 당신 이 지금 걱정하는 거요?」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라이튼은 늘 혼자 있고 싶어하곤 했어요」 그 녀는 숨을 들이마셨다. 「난 그가 당신이나 그밖에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걸 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가 파트너를 가질 수도 있는

일이

죠, 그래도 당신이 그런 위치에 있을 리 없겠죠」 줄리안은 검은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 「그가 날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 라는 건 확실히 말해 줄 수 있소」 에밀리나는 안심하며 약간 기운이 빠지는 듯 느꼈다. 얼마나 끔찍한 소동이 일어날 뻔했단 말인가! 아슬아슬한 순간이 지나고 약간 어찔해진 그녀는 의 자에 깊숙이 들어앉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서섹스의 귀 뒤 민감한 부분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개는 좀더 가까이 어깨를 들이밀고 눈을 감 았다. 일시적으로 만족한 늑대 인간이다.

「자, 이제 정말 모두 이야기한

거예요. 난 그저 그의 집 주위에서 뭔가 그럴싸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했던 거예요. 내 동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거 말이죠」 줄리안은 그녀를 신중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왜 당신 동생이 직접 그 집 을 감시하지 않은 거요?」


「우린 라이튼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의심하길 바라지 않았어요. 내 동생은 시애틀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주 큰 회사에서 말이죠. 만약 그 별장을 지켜 보려고 잡자기 몇 주간 사라진다면 누군가가 그걸 알아차릴 거고, 그러면 라이튼이 눈치채게 되는 건 시간 문제죠」 「그럼 당신은 갑자기 몇 주간 사라져도 일에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말이 요?」 그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 집에선 당신이 갑자기 사라져도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요?」 「작가들에겐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죠」 「당신, 작가요?」 「정답」 그녀는 손가락을 퉁기며 말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의 작품 중 내가 읽을 만한게 있소?」 「그렇지 않을 거예요」 「출판한 책 제목이 뭐요?」 줄리안은 고집스럽게 계속했다. 「난 아직까진 출판한 작품은 없어요」 그녀는 서둘러 털어 놓았다. 「하지 만 계속 시도 중이에요. 사실 두 편의 작품은 출판사에 이미 제출한 상태에 요. 난 공상과학 소설과 로맨스 소설 두 장르를 아우르는 새로운 범주의 장 르를 만들어 내는 중이죠」 「그런 종류의 책에 대한 시장은 넓은 거요?」 「아니요」 에밀리나는 침울하게 인정했다. 「알겠소」 이 간단한 말의 뒤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에밀리나는 다소 사납게 이를 갈았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어왔다. 책을 출판하지 못한 작가는 종종 사람들에게 동정 의 대상이거나 은근한 경멸의 대상인 것이다. 근래 들어 그녀는 수백만 번 씩 상황이 곧 달라질 거라고 조용히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오늘 저녁 일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줄리안?」 그 녀는 지나치게 친절한 말투로 물었다. 「있소, 사실은 좀 다른 일에 관해 궁금한 게 있소」 그는 미소지었다. 「이번 일은 누구의 생각이었소?」 「생각이라니요?」 「그 해변가의 집을 감시하러 온다는 생각 말이오」 「내 생각이었죠. 그건 왜 묻는 거죠?」 교활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줄리안의 검은 눈 동자는 잠시 번쩍였다. 「그저 궁금했었소」 「당신은 이 모든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군요. 난 당신의 그런 태도에 신경쓰지 않겠어요」 에밀리나는 이를 갈며 단호한 어 조로 말했다. 「이젠 집에 다도 될까요?」 「당신만 괜찮다면 한두 가지 질문이 더 있소만…」 에밀리나는 낙담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지나치게 정중한 그 몇 마 디 말은 그녀보고 그 자리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과 같았다. 「도대체 뭘 더 알고 싶은 거죠?」 「뉴욕의 출판사들이 당신을 발탁하기만을 기다리는 상태라면 그동안 당신 은 무얼 해서 먹고 살고 있는 거요?」 그녀는 눈을 홱 떻다. 「아니 도대체 그게 당신한테 무슨 상관이 있는 일이


란 말이죠?」 「난 당신에 관한 한 만족을 모르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소」 그는 공손하게 사과했다. 「내가 계속 지적했듯이 이런 조그만 마을에선 재미있는 일이 별 로 없소」 「나는 당신의 놀아 대상이 아니에요」 그는 그녀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곤 에밀리나를 짜증나게 하 는 그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의 압력을 이기지 못 하고 에밀리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난 포틀랜드에 있는 서점에서 일 하고 있어요」 「아하」 「무슨 뜻이죠?」 그녀는 도전적으로 물었다. 「그건 당신이 습작을 하는 동안 다른 어떤 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는 거요」 그는 부드럽게 설명했다. 「당연히 아니죠. 난 서른한 살이나 먹었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에 요. 아주 오랫동안 난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왔어요」 그녀는 자랑스 럽게 주장했다. 「출판업계에 혜성 같은 등장을 기대하며 점점 쌓여 가는 빚더미 속에 있는 건 아니고?」그는 살짝 비꼬며 말했다. 에밀리나의 눈은 갑작스런 분노로 타올랐다. 「난 절대로 빚을 지지 않는걸 원칙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녀의 예상치 못한 격렬한 반응에 그는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그녀는 뒤늦게 이성을 찾곤 자신의 분노가 단지 그의 말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


다. 줄리안 콜터가 그녀의 지나온 세월에 대해 알 리 없었던 것이다. 그녀 의 무책임한 아버지가 승용차를 개조한 경주용 차를 몰고 충동 사고를 일으 켜 돌아가신 후 그녀에게 어마어마한 빚더미를 남겼던 일과 대학원을 다니 던 그녀의 남편이 같은 학교의 여학생과 눈이 맞아 달아나며 떠맡겼던 학자 금 대출금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녀의 이런 과거를 모르 는 사람이 에밀리나에게 있어서 빚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를 이해할 리 만무한 일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줄리안의 말에 지나치게 반응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좋소」 그는 기꺼이 동의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모든 청 구서에 지불한 능력이 있는 작가 지망생이군. 그리고 그 해변의 집을 감시 하기로 한 것도 다 당신의 생각이었고. 당신이 주장한 바에 의하면 당신 동 생을 협박을 당하고 있고…」 「협박당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이 한겨울에 그 협박 편지에 대항할 뭔가를 찾기 위해 여 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말이군」 줄리안에 결론을 내렸다. 「꽤 그 럴듯한 이야기요, 에미」 「내 말을 믿지 않는군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손은 서섹스의 목에서 멈추었다. 「재미있는 건 내가 이 이야기를 믿고 있다는 거요」 줄리안은 미소지었다. 「아마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이없는 얘기이기 때문인 것 같 소」 에밀리나는 안심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렇다면 이제 날 집에 갈 수


있게 해 주시면 고맙겠군요. 이젠 아시겠지만 이 일은 당신과는 전혀 상관 없어요. 우리가 같은 해변에서 함께 머무르게 된 건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 이게요」 그녀는 그가 요점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말을 끝맺 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이 마을에 머무르는 이유 같은 것에 전혀 관심 이 없어요」 「이런, 충격이군. 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거요?」 에밀리나는 발끈하며 일어섰다. 「잘 자요, 줄리안. 우리 둘의 저녁을 망치 는 성가신 일을 하셔야만 했으니 유감이군요」 개와 그 주인은 문까지 그녀를 따라왔다. 「집까지 바래다주겠소, 에미」 「그럴 필요 없어요」 그녀는 재빨리 거부했다. 「당신을 이 밤중에 혼자 가게 한다면 난 최악의 매너를 가진 남자라는 죄 책감에 시달릴 거요」 그는 옷장에서 가죽 재킷을 꺼내어 그녀의 어깨에 걸 쳐 주고는 정중하게 문을 열었다. 밖은 짙은 안개가 하얀 종이들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서섹스는 대낮처럼 밝다는 듯이 자신있게 종종걸음치며 걸어나갔 다. 「손전등을 가져가야겠소」 줄리안이 찬장 문을 열며 말했다. 「당신이 한 블록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다는 건 다행한 일이오. 그렇지 않소? 물 론 당신이 이 안개 속에서 모험을 즐기는 일을 더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 과 같이 밤을 보내는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말이오」 「아니, 아니에요. 난 괜찮아요」 「당신이 그렇게 말할까 봐 걱정했소」 그의 입술이 비딱하게 올라가 미소


를 짓고 있었다. 「갑시다」 그들은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고, 마침내 에밀리나의 별장을 둘러싸고 있는 낡은 말뚝 울타리에 도착했다. 문 앞에서 에밀리나는 돌아서 서 원치 않던 에스코트에 대한 인사치레를 했다. 「매우 고마웠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오늘 저녁 일은 당신이 신경쓸 필요 가 전혀 없는 거였어요. 당신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 드렸으니 이제 우리 가 각자의 길을 갔으면 좋겠군요」 「당신이 확실히 알아야겠군. 당신과 나, 우리 들은 아직 이야기해야 할 것 이 많이 있소.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당신이 집에 가는 것에 동의 한 거요. 그러나 내일은 나머지 이야기를 마저 합시다」 「난 당신의 질문에 모두 답했다구요」 그녀는 화가 나서 펄펄뛰며 숨을 몰 아쉬었다. 「당신은 겨우 내 호기심을 돋우기 시작했단 말이오」 「하지만, 줄리안」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그녀의 입을 자신의 입술로 가볍게 쓸어 내려서 그녀의 항의의 말들을 막았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경고였다. 그 러나 에밀리나는 즉시 그 경고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문 안으로 한 걸음 들 어가 등뒤로 문을 쾅 닫았다. 그녀는 자신의 입술에 남겨진 암시적인 협박 에 대한 반응으로 몸을 심하게 떨었다. 나중에서야 그녀는 자신이 콜터의 재킷을 여전히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짙은 안개 속에서 줄리안은 그가 빌린 별장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서섹스는 그의 발치에서 충실하게 보조를 맞추며 걷고 있었다. 줄리안은 조


용히 개를 불렀다. 「잘했어, 서섹스」 그는 잠시 멈추곤 중얼거렸다. 「이봐,

친구. 넌 그녀

를 어떻게 생각하지?」 그 개는 조용히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 를 좋아하는구나, 녀석. 그녀가 널 무서워하는 데도 말이지. 그녀는 우리 둘 모두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어. 아마도 마을 사람들이 우리들에 대해 하 는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지. 난 진짜로 그녀가 이 해변에서 무얼하고 있 는지 궁금해. 그녀의 이야기는 진짜 황당하다구. 하지만 왠지 그녀가 거짓 말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 줄리안은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재 미있는 여자야. 그렇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여자지「 그는 그녀의 말이 사실일까 의아해하며 자신의 별장에 도착해서 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동생의 협박 소동에 도움이 되고자 그런 첩보 활동을 하러 밤중에 돌아다닌 것일까? 그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 들은 협박편지라는 얘기를 듣기만 해도 히스테리를 부리고 기절하고 말 것 이다. 이런 생각들로 그날 밤 줄리안은 내내 깨어 있었다.

2

다음날 아침 일찍, 에밀리나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했다. 작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갖는 것은 글을 쓰는데 중요한 자신이 된다라고. 그러나 청바지를 끌어당겨 입고 스웨터를 집어들며 그녀는 지난 저녁의 경험을 장차 이야기 의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줄리안 콜터가 그의 개와 함께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기억은 아직도 그녀의 척추를 따라 냉기를 느끼게 했다. 어제의 경험에 대해 떨리지 않는 손으로 타자기 앞에서 글을 서내려 가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더 필여할 것 같았다. 살을 에는 듯이 추운 아침 공기를 느끼며 에밀리나는 가죽재킷을 팔에 걸치 고 반대편에 있는 별장을 향해 좁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에밀리나는 한숨을 쉬고 줄리안의 별장이 가까워지자 걸음을 발리 했다. 그녀는 그저 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계획은 간단했다. 현관문의 손잡이에 옷을 걸어 놓고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녀의 단순한 계획은 불행히도 실행되지 못했다. 서섹스가 아침에 일찍 일 어나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옷을 현관문 손잡이에 걸고 있을 때 개 의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문 앞을 떠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서섹스는 반색을 하며 뛰어나왔다. 줄리안은 즐거운 표정으로 개가 인사하 는 것을 바라보며 문가에 서 있었다. 「앉아, 서섹스」 에밀리나는 한 발을 현관 계단에 꿇고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자, 착하지. 앉 아!」 「좋은 아침이오, 에미. 모닝커피 시간에 딱 맞추어 왔군」 「아니에요」 그녀는 본능적으로 갈 쪽으로 내려가려고 하며 말했다. 「그 러니까 내 말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는 거예요」 그녀는 적절한 예의범절을 기억하며 덧붙였다. 「난 시내로 커피를 마시러 가는 중이었거든요. 초대는 고마운 일이지만 난 그저 장신의 재킷을 돌려주려고 온 것뿐이에요」


줄리안은 문손잡이에 걸려 있는 문제의 옷을 바라보았다. 「오… 알겠소. 그럼 이제 난 내 재킷을 찾았으니 감사의 표시로 당신과 같 이 가서 차라도 한 잔 사야겠군. 이리 와, 서섹스. 집으로 돌아가. 아침 산 책은 좀 뒤로 미뤄야겠구나」 서섹스는 에밀리나를 그리워하는 듯이 바라보다 곧 주인의 말에 순종적으로 껑충 뛰어 계단을 올라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에밀리나는 도베르만 견이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줄리안은 문을 닫고 재킷을 집어들었다. 「나와 같이 갈 필요는 정말 없어요」 이 뜻하지 않던 데이트를 취소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생각해 내느라 골머리를 쓰다 에밀리나가 말했다. 「난 매일 아침마다 시내로 커피를 마시러 나가거든요. 가는 길은 안전하고, 또 난 아주 익숙해 있다구요」 「나도 알고 있소」 줄리안은 계단을 내려오며 재킷의 지퍼를 올리고 조용 히 동의했다. 「당신이 매일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소. 그리고 어떻게 하 면 같이 갈 수 있을까 핑계 거리를 찾고 있었지. 드디어 오늘 아침 난 당신 과 같이 갈 핑계를 찾아낸 것 같소. 그렇지 않소?」 에밀리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핑계죠?」 그녀는 도전적으로 말했다. 「어찌됐든 우리는 일종의 공모자들이지 않소」 그는 그녀에게 다가서며 그 검은 눈에 웃음을 띤 채 교묘하게 말했다. 「해변에서 그 집을 탐험하던 당 신을 발견한 이후 나도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되오」 「당신은 이 일과 전혀 연관 없어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당신은 그저


지루하던 차에 뭔가 재미있는 일을 찾고 있었던 거라구요. 어젯밤에도 그렇 게 말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나타난 건 나에게는 행운이지. 오늘 아침에는 나머 지 이야기를 듣고 싶군, 에미」 「알고 싶어하는 건 다 말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녀는 항의했다. 시대 로 가는 길을따라 걷는 내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에밀리나는 앞만 바라본 채 묵묵히 걸어갔다. 어떻게 하면 이 위험한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남자는 왜 그녀에게 이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으려 하는 걸까? 「당신 얘기에는 한두 가지 세세한 부분이 빠져 있소」 그는 태평하게 설명 했다. 「예를 들면 어떤 것?」 「예들 들면 당신의 동생이 무슨 일로 협박을 당하고 있는가 하는 일이지」 에밀리나의 입을 굳게 다물어졌다. 「댁이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날 납득시켜 보시오」 그는 간결하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녀는 새롭게 느껴지는 긴장감에 눈이 커졌다. 「지난밤에 누차 말했듯이 당신은 이 일과 아무 상관없어요」 그녀는 속삭였다. 그는 아직도 그녀가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 은둔하고 있는 조직 폭력단의 두목은 보 통의 사람보다 더욱 의심이 많을 거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날 납득시키기에 어제 이야기로는 부족하오」 줄리안은 커피숍의 문을 열고 유쾌한 소음으로 번잡스러운 따뜻한 실내로 그녀를 인 도했다.


그가 비어있는 좌석으로 그녀를 안내할 때 에밀리나는 주위 사람들의 호기 심 어린 시선을 느꼈다. 그들 대부분은 이 고장 사람들이었다. 익숙하지 않 은 불쾌감이 그녀에게 엄습해왔다. 관광객 여자와 마피아 보스와의 커피 한 잔은 당장에 이 사람들에게 입방아를 찧게 할 게 자명한 일이었다. 제기랄! 상황을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줄리안은 이런 시선을 감지하지 못하는지 그저 뭐라고 낮은 소리로 웅얼거 릴 뿐이었다. 그가 재빨리 주문을 하는 동안 에밀리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는 그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군거림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는 그런 것들을 일일이 상대하기엔 너무나 거만한 성격인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좀 들어봅시다. 당신의 동생을 왜 협박당하고 있게 되었 소?」 때마침 커피가 도착했다. 에밀리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컵에 많 은 양의 크림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남자에게 벗어나는 실은 오직 진실을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와 같은 직업의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것을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동생은 매우 영리해서 다국적 대기업에서 고속 승진을 계속하는 관리 직에 있어요」 그녀는 빈틈없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는 지금 부사장 직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고 샌프란시스코로 전근을 예상하고 있죠」 줄리안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료를 한 모금씩 마시며 아무 말 없이 고개 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그녀의 얼굴에서 절대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에릭 라이튼은 한 달 전에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났어요. 그는 한때… 그 러니까… 예전에 동생의 친한 친구 중의 한 명이었죠」 「그 친구라는 사람이」 줄리안은 온화하게 말했다. 「협박이라는 치졸한 일을 벌이는 군」 「그래요」 동의를 알리는 외마디가 에밀리나에게서 간신히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 친한 친구들과 또 다른 이들과 있었던 일이 협박 내용이 겠군」 줄리안은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친구라는 사람들은 종종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지. 요즘 세상에 의리는 보기 드문 도덕 항목이오」 「당신은 그런 일을 많이 알고 있는 게 당연하겠죠」 에밀리나는 생각 없이 대꾸했다.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이 하는 그런 종류의 일들을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는 말이에요. 당신은 아마도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 을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게 된 거겠소」 에밀리나는 서둘러 말을 마쳤 다. 「당신 동생에 대해서나 더 이야기해 보시오」그는 차분하게 재촉했다. 「라이튼과 몇몇 친구들은 대학생 때 내 동생과 어울려 다녔어요」 그녀는 신중하게 말했다. 「내 동생이라고 항상 지금처럼 관리직에 있었던 건 아니 니까요. 유감스런 일이죠. 한때 그는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고 다녔어요. 그 것도 아주 급진적인 방법으로」 「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군」 「케이스는 자신의 신념에 헌신적이었어요」 그녀는 이야기를 계 속하며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도 있었다.


「다시 말해 대학생 시절 그는 세상의 혁명을 부르짖는 열정적인 급진주의 자였단 말이군」 「뭐 그런 거였죠」 그녀는 마지못해 인정했지만 곧 그를 옹호하기 위해 열 심히 말했다. 「그 당시 그는 지신이 하는 일에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가 마음을 바꿨던 거군?」 「다들 그렇듯이 그도 철이 들고 세상을 단 하룻밤 사이에 바꾸는 것이 불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는 워낙 활동적이고 근면한 성격인데다 재능도 있는 사람이에요. 조직 사회기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 는 영역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가 일하는 회사가 매우 보수적이고 온건한 곳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의 상사는 그의 급진적인 과거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되면 그를 더 이상 친절하게 보지 않을거란 말이군?」 에밀리나는 머리를 우울하게 흔들었다. 「에릭 라이튼은 몇 년 전 대학을 중퇴한 후에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성 공을 거둔 친구에게 그 성공의 약간을 나누자고 하는 거죠. 동생의 과거 대 해 입을 다물고 있는 대가를 바라는 거예요」 「처음 라이튼이 다시 나타났을때 당신의 동생은 어떻게 대처했소?」 「그는 당장에 경찰에 전화를 걸어 모든 일을 공개적으로 처리하려고 했었 죠. 그렇지만 난 그러지 말라고 그를 설득했어요. 결국에 라이튼은 자신의 계획대로 케이스의 과거를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그로 인해 동생이 곤란을 겪게 될 거라고 말이죠. 난 다른 방법으로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


각했거든요. 라이튼은

대학 시절에도 마약에 빠져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

당시엔 뭐 공공연한 일이었어요. 나와 동생은 그거 아직도 마약 밀매나 또 는 그와 관련된 일일 하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한번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일다운 일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케이스는 라이튼이 오리건 해변에 별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해 냈죠. 부모님의 유산으로 남겨 주 신 거죠. 라이튼은 종종 혁명의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하곤 했대요」 「절대로 오지 않을 그날」 줄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어쨌든 케이스는 지방 법원의 기록계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그 해변 의 집이 아직도 라이튼의 소유로 남아 있다는 걸 알아냈죠. 그때 난 그 집 을 잠시 감시하는 것이 해볼 만한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그가 자신의 옛 친구에게 협박하는 것 이외의 다른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고 있다면 그 집을 정기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여기에

내려와 그 장소를 감시하고 위해 몇 주간을 보내

는 데 자원했다 이거군. 맞소?」 「뭐 그런 얘기에요」 에밀리나는 고백했다. 그녀는 걱정스런 순간에 자신 의 버릇대로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씹고 있었다. 「꽤 그럴듯한 계획으로 들 리지 않나요?」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계획이오」 줄리안은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반박했 다. 「내 생각엔 당신 동생의 처음 생각이 옳았던 것 같소」 「경찰에 신고했어야 한다구요?」 그녀는 놀라서 소리질렀다. 「그게 좋은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에요?」 줄리안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경찰에게 신고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상상할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이라니! 「경찰이라는 사람들도 다 쓸모가 있는 사람들이 오」 눈을 가늘게 뜨며 그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글세,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내 동생의 경력을 망칠 거예요!」 「협박꾼들은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소, 에미. 벌을 받지 않고 일을 해내는 한 그들은 희생자의 피를 말리곤하지. 허풍을 실행할 테면 해보라고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오」 「이건 그냥 단순한 허풍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내 동생의 과거가 알려지면 그의 경력은 위태롭게 된다구요. 당신은 그의 회사가 얼마나 보수 적인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그들은 동생이 근본적으로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구요. 그들은 대부분 명문 학교 출신에다 학생운동 따위에 관계되지 않으려 조심하는 그런 사람들이라 구요. 그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않을거예요」 「당신은 동생을 무척 걱정하고 있는 것 같군」 줄리안은 부드럽게 말했다. 「당연하죠, 내 동생 일이니까요」 「남동생이요, 여동생이요?」 「남동생이요. 나보다 두 살 어린 29살이죠」 「그래서 라이튼을 덫에 걸리게 하자는 당신의 그 엉뚱한 계획을 동조한 게 로군. 그러니까 당신의 동생은 고속 승진을 한 회사원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린 동생이라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거군. 내 짐작이 맞다면 말이오」 「그 짐작이 무슨 뜻이죠?」 「그가 누나에 의해 휘둘려지는데 익숙하다는 얘기요」 줄리안은 킬킬 웃었


다. 「내 자족이나 내 남동생과의 관계에 대해서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요!」 에밀리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줄리안은 미소지었다. 「좋소. 내가 돕겠소」 「당신이 뭘 하겠다구요?」 「목소리를 낮추시오.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기 를 원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짧게 경고했다. 에밀리나는 충격에서 헤어나려고 애썼다. 줄리안 콜터의 도움은 그녀가 절 대로 기대하지 않던 것이었다. 의심스러운 조직 폭력배 스타일의 두목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고마운 말이에요. 하지만 사양하겠어요. 콜터 씨」 그녀는 흥분하여 그에게 말했다. 「내가 혼자서 처리하는 게 더 났겠어요」 「이런 일은 두 사람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인 거요」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 다. 「그런가요?」 「당연하지. 게다가 내 별장은 라이튼의 집에서 더 가깝소. 망보는 일을 내 가 돕는 게 일을 더 쉽게 하고 눈에 덜 띄게 할 거요」 그녀는 도대체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에밀리나는 가만히 앉아 그 의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줄리안 콜터가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서 그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이고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똑똑히 기억해야만 했다. 「고마워요, 줄리안」 그녀는 매우 정정하게 격식을 갖춰 말했다. 「그러나 당신의 도움은 사양하겠어요」


「당신 동생을 위한 일인데도 말이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움찔했다. 「난 그저 이 일에 외부의 도움은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 각하기 때문에 거절하는 거예요. 난 와벽하게 이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 어요」 「난 아무리 당신의 왕성한 상상력이 그 계획을 잘 만들어 냈더라도 몇 가 지 실질적인 면에서 약점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소. 당신은 이런 종류의 일 을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이 없소. 그렇지 않소?」 「물론, 그래요. 그렇지만 이 일이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를 모르겠군요」 「당신이 어젯밤 겪었던 그 소동을 생각해 보시오. 내가 라이튼이었다면 어 떻게 됐겠소?」 「라이튼이 아니었잖아요. 그러니 그게 문제될 건 없겠군요」 그녀는 간신 히 완고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찡그린 얼굴로 그녀는 보았다. 「당신은 내가 도와주는 걸 두려워하는 군. 그렇소?」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왜?」 에밀리나는 이 엉뚱한 질문에 예의바른 대답을 찾느라 애썼다. 근 아마도 그녀가 왜 그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지 잘 알고 있으리라! 「이건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리고 난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이 개입되는 걸 원하지 않아 요」 그녀는 마침내 웅얼거리며 대답했지만 차마 그의 눈을 마주 보진 못했 다.


「당신이 나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로 난 이미 개입되어 있다고 생 각하오」 그는 지적했다. 「그래서 난 내 자신을 발로 걷어차고 싶어요」 그녀는 뚱하게 투덜댔다. 그는 차분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당신에게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겠 소」 「그럼요. 당신은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죠」 그녀는 동의했다. 「당신은 항상 이렇게 거만하고 위협적인가요?」 「일의 영역에 따라 그렇기도 하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했다. 에밀리나는 당황하게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군요. 그러리라 짐작했죠」 「그래서?」 그는 도전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래서 뭐 말이에요?」 그녀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당신의 그 엄청나게 자비로운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한단 말인가요? 당신이 살아 있 는 동안에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당신 동생을 위한 일인데도 말이오?」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에밀리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녀가 탁자에 몸을 기울이고 있을 때 눈동자는 거의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는데, 난 당 신의 도움을 원하지 않아요. 당신 도움은 필요없다구요. 이건 내 일이고,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난 당신 같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 아요. 내말 알아듣겠어요?」 줄리안은 커피잔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굳어졌고,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위험으로 가득 차 보였다. 「아주 잘 알아들었소」


「좋아요. 우리가 마침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서 기쁘군요!」 에밀리나는 그를 뒤로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막 문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 는 그녀를 줄리안의 목소리가 낚아챘다. 「명심하시오, 에미. 당신이 날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몰라도 내가 당 신과 당신의 동생을 도와줄 유일한 이웃이라는 걸 말이오」 에밀리나는 난폭하게 카페의 문을 열어 제쳤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가 거리 로 나가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맹렬하게 느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상황이란 말인가! 머리를 떨구고 두 손을 청바지에 꾹 찔 러 넣은 채 에밀리나는 그녀의 별장으로 가는 내내 자기 자신을 꾸짖었다. 별장에 들어서는 그녀의 머리 속엔 어두운 지하 세계를 다른 신문의 기사들 이 맴돌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동생을 생각했다. 케이스는 그녀가 몇 주간 라이튼의 별장을 지켜보는 것에 동의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도 에릭 라이튼과 의 싸움에 유리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는 이 모든 일을 권위있 는 사람들에게 맡기도 그 결과에 무조건 따르기로 약속했었다. 케이스는 지금의 성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에릭 라이튼같은 사악하고 교활한 협잡꾼에 의해서 모든 것이 망쳐지는 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밀리나는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검 토하며 거실바닥을 서성였다. 하지만 지난 1주일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밤새 불침번을 서고 감시를 했 지만 불행히도 줄리안 콜터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한 사람이 혼자서 24시 간 감시 업무를 수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줄리안 콜터. 왜 하필이면 그란 말인가? 카페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에밀리나는 자신의 불운을 저주 하기 시작했다. 애써 절망적인 생각을 털어 버리고 그녀는 공책을 집어들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글 쓰는 일에 집중해서 지금의 문제를 잠시 잊어 보려 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활동적인 상상력은 소설속의 주인공에게 만 집중하지 못했다. 그녀 집 근처 별장에 사는 남자와 그가 동생의 문제를 돕겠다고 나선 일로 자꾸만 나아가고 있었다. 줄리안 콜터라면 동생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피할 수 없는 진실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자기혐오를 느끼며 그녀는 펜을 던졌다. 정신이 나간 건가? 어떻게 그런 모 험을 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동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지. 케이스는 그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힘든 일들을 겪을 때 케이스는 동생이자 친구로 곁에 있어 주었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서 요약해 보면 결론은 동생을 위한 일이라면 그 녀가 못할 일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 가 없었다. 에밀리나는 코트를 꺼내 입고 벨트를 채웠다. 결의에 찬 표정으 로 코트 깃을 세우고 별장 문을 나섰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줄리안의 별장으로 가는 길은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길이 갑자기 뚝 끊어지고 어느새 집 앞 오솔길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줄리안의 별장의 현관으로 향하는 약간 경사진 오솔길을 걷고 있었 다. 그녀가 미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서섹스가 먼저 그녀의 방문을 알아차렸 다. 그녀는 기대에 찬 낑낑 소리를 들었고, 문이 열리면 있을 녀석의 기운 찬 습격에 마음에 준비를 해야했다. 「아, 에미」 줄리안은 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만족스런 목소리 로 말했다. 「날 실망시키지 않을 줄 알았소」 그녀는 줄리안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을 그의 눈에서 엿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앉아, 서섹스」 그녀는 퉁명스럽게 명령을 내렸지만 개는 그녀 주위를 춤 추듯 뛰어다녔다. 「그 문제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하려고 왔어요」 에밀리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소. 들어오시오, 에미. 저녁은 먹었소?」 「아니요, 하지만 배고프지 않아요」 「내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 당신은 내 음식도 받아들여야 할 거 요」 그는 공격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논리로 지적했다. 「그리고 약간의 수도 역시 그래야 할 거요」 그는 그녀 뒤에서 문을 닫으며 덧붙였다. 에밀리나는 문이 닫히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용기를 끌어 모아 간 신히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쩌면 술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 군요」 서섹스는 에밀리나가 지난 저녁에 사용했던 그 낡은 의자에 앉는 것을 확인 하고는 벽난로 가에 앉아 만족스럽게 축 늘어져 있었다. 침묵이 방안을 감


싸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손에 검붉은 진이 담긴 유리잔이 밀어 넣어졌 다. 그녀는 한 모금 쭉 마신 후 줄리안의 눈을 마주보았다. 「매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예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동생은 이 거래에서 제외되었으면 해요. 이 계약에 관계되는 건 당신과 나 뿐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줄리안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제공하는 도움에 대한 대가를 치를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그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숙였다. 「당신을 믿어도 되나요?」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날 믿어도 좋소」 그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우리의 거래를 위해서, 에미 스트레튼」 그들은 침묵 속에서 장엄한 축배를 들이켰다. 오랫동안 벽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와 에밀리나의 심장 박동 소리 소리만이 들려 왔다. 자신이 저지른 일 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수록 그녀의 박동 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녀는 줄리 안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악마와 저녁 식사를 할 때 매우 긴 숟가락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고 있 었죠」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그는 그녀를 주시하며 딱딱한 입가에 묘한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에게 나와 같이 저녁을 하자고 청했으니, 가서 긴 숟가락을 찾아봐야 겠군」그는 중얼거리며 깊숙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유연하게 일어섰다.


에밀리나는 남아서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며 말을 꺼내기 전에 혀를 깨물 었어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후 줄리안은 샌드위치가 담긴 커다란 접시와 따끈한 수프가 담긴 그릇 두개, 그리고 약간의 샐러드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는 그녀가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준비해 두었던 것 같았다. 「내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군요?」그녀는 다소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그저 당신이 오늘 저녁에 와 주었으면하고 바라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소」 그들은 거의 말없이 천천히 저녁을 먹었다. 에밀리나는 벽난로의 일렁이는 불꽃이 그 어느 때보다 매혹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줄리안 역시 에밀리나의 잔뜩 찡그린 얼굴을 보며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무척 두려워하고 있군. 그렇지 않소?」 마침내 줄리안이 말 했다. 「아니에요」 그녀는 서섹스 쪽으로 빵 조각을 던져주며 말했다. 「난 그저 적당히 조심스러운 것뿐이라구요!」 놀랍게도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웃어버렸다. 마음껏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건 그녀를 희생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그녀는 심 술궂게 생각했다. 서섹스는 빵 껍데기를 주워 점잖게 입맛을 다시고 있었 다. 「당신이 조심스러웠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소. 특히 동생을 보호하 기 위한 일을 할 때는 더욱 그 조심성이란 게 찾아보기 힘든 것 같고. 당신 이 동생에게 보여주는 그 충절은 당신의 연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거요?」 「뭐라구요?」 그녀는 머리를 번쩍 들고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

굴에 떠오른 표정은 그녀를 완전히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속에서 남성적인 호기심과 어두운 눈동자에 어린 억제된 욕망의 번득임을 볼 수 있 었다. 줄리안 콜터는 둘 사이를 갈라놓았던 짧은 공간을 가로질러 다가와서는 손 쉽게 그녀를 자신의 무릎으로 끌어당겼다.

3

「당신은 벌써 악마와 식사를 할 용기를 냈으니」 그의 입술이 그녀 위에서 맴돌며 굵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악마와 키스할 용기도 있는지 알아 봅시다」 에밀리나는 그의 허벅지 위에 누워져 있고 그의 팔 하나가 그녀를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최면에 걸린 듯했다. 오, 하나님 맙소사. 그녀는 씁 씁하게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이 남자와 그런 느낌이 드는 거지? 그녀가 뭔가 저항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채 끌어 모으기 전에 줄리안은 손을들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키스로 그녀를 꼼짝못하게 만들었다. 그녀 는 자신의 뺨에 닿는 그의 손가락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고, 이어지는 그의 입술의 따뜻함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 키스는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듯이 위험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뭔가 요구하는 듯 하면서 동시에 달래


고 어르듯 하는 걸까? 그 모순된 키스는 마술을 거는 듯 매혹적이었다. 에밀리나는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희롱하는 동안 감히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눈 을 감았다. 그녀의 머리 속으로 그의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그리 고 그의 혀끝이 그녀의 떨리는 입의 윤곽선을 따라 움직였다. 부드럽고 달 래는 듯 그의 혀는 움직이며 그녀의 혀를 살짝 깨물었다. 마침내 부드러운 신음소리와 함께 에밀리나는 그 관능적인 요구에 굴복하고 그를 자신의 따 뜻함 속으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허용한 구역을 굶주렸듯이 침범하며 그의 목 깊은 곳에서 으르렁거 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 있던 손가락을 머리를 헤집 고 다니고 비틀기 시작했고 나중에 그녀는 희미하게 자신의 땋은 머리가 다 풀렸음을 알았다. 몸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그의 키스의 영향력 아래서 더 이상 늦기 전에 이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마침 내 그녀는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때늦은 조심성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줄리안은 더욱 꼭 껴안았 다. 그리고 그의 도발적인 풍미를 그녀의 입안에 가득 채웠다. 그녀의 손이 그의 어깨 쪽에서 고심하며 떨고 있자 그는 머리를 만지던 손을 들어 그녀 의 손가락을 잡아 자신의 풍성한 검은 머리 위로 인도하였다. 그가 그녀의 손을 놓았을 땐 그녀의 손은 결국 그의 머리 속에 얽혀 있었다. 「에미, 사랑스런 에미. 날 두려워 말아요. 당신을 원하오. 당신은 정말 흥 미롭고 매우 부드럽고…」 주저하며 입술을 땐 줄리안은 그녀의 목으로 입 술을 옮기며 끈질기고 설득력있게 말을 이어갔다.


「줄리안, 줄리안, 제발」 그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현실을 차단 하려는 듯 눈꺼풀을 굳게 다고 그녀의 황갈색 손톱으로 그의 건장한 목덜미 에 선을 긋고 있었다. 「며칠 도안 난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소」 그는 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손바닥은 그녀의 목에서 어깨로 쓸어 내려가고 있었다. 「당신을 궁금 해하고 생각하며 난 혼자 추측하는 게임을 하곤 했소. 가까이 다가갈수록 당신은 더욱더 날 흥미롭게 했소」 「그건 바로 아무도 없는 이런 곳에서 지루하기 때문이겠죠」 그녀는 말하 기 시작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막았다. 「쉬, 조용히, 에미.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군」 그 는 소유욕을 드러내며 그녀의 풍만한가슴을 손으로 덮었다. 에밀리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냉혹한 저항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부드럽게 헐떡이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돌렸다. 그가 입고 있는 셔츠의 편 안함에 좀더 가까이 몸을 밀어댔다. 「어떤 남자라도 당신의 부드러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거요, 에미」 그는 서서히 그녀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손가락은 에메랄드빛 스웨터의 가장자리에 다다랐다. 그의 손 가락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지 에밀리나는 움찔했다. 그녀가 주저하자 줄리안은 더욱 세게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문득 그녀 아 래서 느껴지는 허벅지의 단단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몸속에서 남성적 인 긴장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후퇴할 힘을 끌어 모으기도 전에 그 는 브래지어의 훅을 찾아내선 그것을 풀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가슴은 그의 손에 들어찼고, 에밀리나는 다시 신음했다. 이런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어떻게 줄리안 콜 터같이 위험한 악마가 지난 수년간 지켜온 방어벽을 이렇게 간단히 전복시 킬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엄지가 그녀의 젖꼭지를 스쳐 지나며 어르듯 만지자 그녀의 혈관을 타 고 녹아내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전에는 이처럼 빨리 그녀의 관능을 일깨운 사람이 없었다. 전 남편과의 섹스를 위한 일반적인 접촉은 그녀에게 실망감 을 안겨 주고 친밀한 포옹에 대해 갈망하지 않게 했다. 이혼 후부터 그녀는 남자들과의 관계를 안전한 수준에서 유지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안돼요」 에밀리나는 목 안쪽에서 나오는 탁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줄리안, 제발 멈춰요」 「난 당신을 원하오, 사랑스런 에미. 오늘밤 당신이 필요해.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는 걸 느끼지 못하겠소? 나를 좀 불쌍히 여겨 자비를 배푸시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그는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딱딱하게 흥분한 유두를 애무했다. 「줄리안, 난 할 수 없어요」 그녀는 아련한 아픔을 느끼며 속삭였다. 「내 안에서 당신은 기분이 좋잖소. 어떻게 당신을 보낼 수 있겠소」 줄리 안은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곤 그녀의 완만한 복부의 곡선을 따라 아래로 손을 미끄러트렸다. 그는 그녀의 청바지의 지퍼를 내리면서 그녀가 혹 저항 할까봐 미리 손을 쓰듯이 키스했다. 그의 부드러운 공격이 친밀한 사랑이 행위임이 명백해지자 그녀는 즉시 몸 을 뻣뻣하게 굳혔다. 에밀리나는 그의 가슴에 손을 대고 그를 밀어냈다.


「안돼요, 줄리안. 그만해요. 더 이상 원하지 않아요」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그녀를 평가하듯 바라보았다. 이 정도가 당신 용기의 한계로군?「 그는 살짝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분명히 그래요」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당신은 자신의 용기를 과소평가하고 있군」 줄리안은 머리를 숙여 입술로 그녀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날 놔줘요, 줄리안」 「그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거요?」 「그래요」 그녀는 속삭였다. 「난 집에 가고 싶어요」 「난 당신이 밤새도록 여기에 있었으면 좋겠군」 「안돼요」 그는 한동안 망설였다. 에밀리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궁금했 다. 그녀는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점에 의아해했다. 이런 부류의 남자가 감정의 갈등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 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좋소, 에미. 집에 데려다 주겠소」 예상치 못한 싱거운 승리에 놀란 모습을 감추며, 그가 놓아주자 그녀는 서 둘러 그의 무릎에서 벗어났다. 허둥지둥 그에게서 등을 돌리며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려 애쓰고 있었다. 「에미?」 그녀는 뒤돌아서지 않았다. 「에미,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에밀리나는 거짓말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고심하며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에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하면 좋을 것이다. 그게 훨 씬 안전한 관계를 위해 바람직하다. 「믿거나 말거나, 난 다소 활발한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편이에요」 그녀는 청바지를 단단히 여미며 경박한 말투 로 말했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그녀 가까이 다가왔다. 팔을 그녀의 허리에 두르고 그 의 얼굴을 그녀의 머리에 묻었다. 「에미? 날 놀리거나 거짓말할 생각은 마 시오, 그저 사실만 말해줘요」 그녀의 입술은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바짝 말랐다. 이런 남자에게 왜 진실 을 말해 줘야 하는거지? 그의 팔은 더욱 조여 왔고, 그는 여전히 들떠 흥분 된 몸에 그녀의 등을 더욱 밀착시켰다. 에밀리나는 얼굴을 보지 않고도 그 경고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아무도 없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은 없어요」 「전에는 있었단 말이오?」그는 고집스럽게 추궁했다. 「난 이혼했어요」 그녀는 굳어진 말투로 분명히 말했다. 「나도 그랬소」 「아」 그녀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혼은 우리 둘 다 자유롭게 해주었군. 그렇지 않소?」 에밀리나는 조용히 이 덫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뭐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녀는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지금 나한 테 사귀는 사람이 없으니 이건 공정한 게임이라고 이정하라고 하는 건가 요?」


그 말에 그는 그녀를 한바퀴 돌아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에밀리나는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서 분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 그저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오」 줄리안은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 가 둘 다 자유롭다는 사실은 일을 더 쉽게 풀리게 할 거요. 물론 당신이 지 금 연인이 있다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을 거요. 난 그래도 당신을 원했 을 거고 당신도 날 원하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 했을 테니. 알겠소?」 「그래요. 아주 분명히 알아들었어요」 그녀는 그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성 나서 대꾸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내가 어딘가에 헌신을 약속한 누군가 가 있든지 말든지 난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요? 당신같이 거 만하고 비윤리적이고 비열한 그런 사람과…」 줄리안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술을 막고 조용히 시켰다. 그의 눈동자에선 근심어린 즐거움 대신 격렬한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제발, 에미. 오늘밤 은 이것으로 충분한 곳 같소. 당신은 내 감정을 상하게 하려 하는군」 그가 손을 치우자 그녀는 경멸하는 투로 불평을 해댔다. 「난 당신이 나에 게 키스하며 보여주었던 그런 종류의 감정 외에 다른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성욕 외에는 다른 감정이 없다는 거요? 음… 그 점에 있어서는 인정할 수 있소」 그는 여전히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그녀의 몸 윤곽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그러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밖에 다른 감정들도 가지고 있소, 에미」 그는 다정하게 덧붙여 말했다. 「이젠 정말 집에 가야겠어요」 그녀는 희미하게 말했다. 「좋소」 더 이상 정항의 표시 없이 줄리안은 그와 그녀의 재킷을 모아들고


서섹스에게 휘파람을 불었다. 「자, 가자」 줄리안은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듣고서야 발치의 서섹 스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하체에서 여전히 희미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에밀리나는 그가 그녀의 예민한 방어벽을 넘어서 얼 마나 그녀에게 다가갔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녀를 몹시 원했다. 해 안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이 줄리안의 머리를 스치며 그의 열기를 식 혔고 그는 이를 꽉 다물었다. 아마도 이 냉기가 그를 진정시켜 줄 수 있으리라. 그는 우울하게 결론을 내 렸다. 운이 좋다면 이 차가운 바람이 냉수 샤워와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 겠지. 빌어먹을. 이처럼 갑작스럽고 절대적으로 한 여자를 원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오랜만의 일이다. 지금 그는 약속이라면 충실히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여자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가 빚을 갚으라고 말하면 그녀는 뭐가 할까? 그가 받고자 하는 대가를 그녀는 치를까? 그가 그토록 열망하는 충절과 신의로 그녀는 그에게 보답할까? 어쨌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그가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는 이 계약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성립시키는 일이다. 그녀는 이제 겨우 그가 남 동생의 협박 소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에게 다가온 것뿐이었 다. 서섹스가 별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 총총히 걸어가고 있을 때, 줄리안은 휘 파람으로 녀석을 불러 에릭 라이튼의 별장이 보이는 절벽의 가장자리로 걸 어갔다. 오랫동안 줄리안은 그곳에 서 있었다. 가죽 재킷의 깃을 세우고 손


을 양털로 장식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에밀리나가 그에게 한 이야기와 그 집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며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의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그 무모한 라이튼 감시 작전에 대해서는 믿지 못할 이유가 수백 개도 넘었다. 그는 너그러운 미소로 입술을 비틀며 그의 여자는 지독히도 왕성한 상상력의 소유자라고 단정지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 는 있어」 그는 의아하게 쳐다보는 서섹스에게 중얼거렸다. 「내일 밤 그녀 를 저 해변의 빈집에 데려가 같이 안을 살펴봐야겠다. 바닥에 단서가 널려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녀는 내가 이 거래를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줄리안은 자신의 별장으로 몸을 돌려 걸어가며 그녀에게 거래를 충실히 이 행해 가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전적으로 신임하게 되기를 원했다. 잠시 후 그는 베개에 기대어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 되는 것을 보며 그는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육체적 불만족에 보상이 될

만한 것은 못되었다. 그는 침대 속에서 에밀리나를 그리며 잠이 들었다. 한편 에밀리나는 줄리안의 애무가 남겨둔 후유증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음날 아침 이상하게도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동생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 어떤 새로운 흥분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영향력을 미친 사림이 왜 하필이면 줄리안 콜터란 말인가? 우울한 기분으로 그녀는 커피를 끓였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 다. 지난 저녁의 일을 되새기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었다. 지난밤 거의 내내


바로 그 일을 하느라 보낸 뒤에는 더욱더 쓸모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정신 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그 남자와 계약을 맺었지만 자시도 모르게 끌리는 불편한 매력을 느끼게 되기를 원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서섹스의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신나서 낑낑대는 녀석의 소리는 그녀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폭력 조식의 갱들도 더 이상 무섭지 않은 이 마당에 이제 더 이상 저 도베르만 견은 신경 쓰이 지 않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줄리안」 문을 열며 그녀는 조그맣게 말했다. 그는 그 녀의 손에 들린 커피잔을 나무라듯이 바라보았다. 「오늘 서섹스와 난 당신이 평소 습관대로 마을의 카페로 가는 걸 보지 못 했소」 「그건 오늘은 집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기로 정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사실 그의 집을 지나다가 그에게 다시 동반할 기회를 줄까봐 나가지 않았다 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에밀리나는 어제 아침에 카페에서 마주쳤던 눈길 들을 떠올리곤 움찔했다. 「커피를 잘 타오?」 그는 뻔뻔스럽게 물었다. 에밀리나는 큰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말할 뻔했다. 「아니요」 그녀는 그가 커피를 포기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음, 난 그리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오」 그는 기대에 부푼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한잔 하겠어요?」 그녀는 결국 체념한 채 물었다.


「당신이 청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소」 눈 감짝할 사이에 그는 안으로 성큼성큼 거침없이 들어와 서섹스를 벽난로 앞의 깔개에 앉게 했다. 「사실 난 당신에게 오늘밤에 라이튼의 집을 둘러보러 갈 때 같이 가겠냐고 청하러 왔소」 그는 창가에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으며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오, 물론 좋아요. 언제 갈 거죠?」 그녀는 재빨리 그에게 커피를 따라 주 었다. 「해질 무렵이 좋겠소. 그래야 플래시 빛이 필요없을 테니 말이오. 그런 빈 집에서 불빛이 보이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소」 그는 그녀가 건네는 머그잔을 받아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당신 말 이 맞군」 그는 그녀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그는 건너편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 커피 말인가요? 난 이미 당신에게 경고했을 텐데요」 「왜 아침마다 마을까지 내려가 커피를 마셨는지 이해가 되는군!」 「내 커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가도 됩니다」 에밀리나는 퉁 명스럽게 지적했다. 「난 그렇게 예의없는 사람이 아니라오」 그는 씩씩하게 대꾸했다. 「그렇 지만 내일 아침에는 당신은 나와 함께 마을의 카페로 가든지 내가 만든 커 피를 마실지 정해야겠소」 에밀리나의 유머 감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날 사랑해 주오. 나의 커피를 사랑해 주오」 초록빛 눈을 빛내며 그녀는 가볍게 비아냥거리듯 노래를 불 렀다.


「그 구절은 원래 <나를 사랑해 주오. 내 개도 사랑해 주오>가 아닌가?」 그는 간단히 받아쳤지만 그의 눈에 번득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어요」 그녀는 조용히 앉아 있는 도베르만 견을 세심 하게 바라보았다. 「저런 개들은 거칠고 사납게 자라고 살인 청부업자처럼 감시견으로 훈련받는 종족들이죠」 「당신은 서섹스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아니면 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든지」 서섹스는 자신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이 유연하게 일 어서서 방을 가로질로 어슬렁거리며 서는 에밀리나의 무릎에 머리를 들이댔 다. 영리한 갈색 눈은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내가 당신의 커피를 참아내려고 노력한다면 당신도 내 개를 참아줄 수 있 겠소?」 줄리안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아주 상냥하게 물었다. 「우리 둘 사이엔 벌써 한 건의 계약이 성립되어 있어요. 그러니 그 문제는 잠시 보류하죠」 에밀리나는 커피를 좀더 가져오려고 일어났다. 그는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너무 오래 머물러 눈총을 받 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에밀리나는 줄리안과 그의 개가 등을 보이 며 길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떠나면서 이 낡 은 장소에 있었단 따스함과 흥분을 같이 가져가 버린 것 같았다. 그 따스함 과 흥분은 그가 가지고 온 것이라는 것을 불편한 심기로 깨달았다. 줄리안이 돌아왔을 때는 거의 석양 무렵이었다. 그는 청바지와 낡은 플란넬 셔츠를 입고 서섹스는 데려오지 않았다. 「그 녀석이 불필요할 것 같았소」 계단을 내려오는 에밀리나에게 그는 말


했다. 「이런 모험에 녀석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오. 게다가 먼지투성이 바닥에 녀석의 발자국이라도 남기면 곤란하지 않겠소」 그는 그녀가 입은 청바지와 스웨터를 만족스럽게 훑어보았다. 「우리 발자국은요? 우리도 역시 흔적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요?」 잔뜩 찡 그린 얼굴로 앞을 바라보며 에밀리나는 줄리안의 곁에서 걸음을 재촉했다. 「우린 조심하면 되오. 운이 좋으면 우리 별장처럼 그곳에도 낡은 카펫이 온통 깔려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 발자국이 남지 않을거요. 희망사항이지 만」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 당신이 혼자 한밤중에 이러는 것보다는 안전할 거요」 그는 진심으로 성 내며 말했다. 「당신도 알겠지만 그날 밤 당신 혼자 저 곳으로 간 것은 바 보 같은 짓이었소」 그는 솔직한 그의 생각을 말했다. 「누구라도 당신을 발견하고 쫒아갈 뻔 했단 말이오! 「누군가는 그렇게 했죠」 그녀는 비꼬며 지적했다. 그는 그녀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그게 나였단 사실에 감사해야 하오」 그는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전에 당신은 많은 집을 털어보았나요?」 그녀가 거침없이 물었을 때 그들 은 해변으로 가는 오솔길에 막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그 집을 털러 가는 게 아니오. 그저 조사를 하러 가는 것뿐이지」 그는 중얼거렸다. 「그게 뭐 다른 점이 있나요?」 「적어도 10년형 정도는 차이가 있을거요」


「감옥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줄리안?」 「아니,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소. 당신은 나에 대해 그리 좋은 생각을 가지 지 못한 것 같소. 그렇소?」 그는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불평했다. 「난 그저 궁금해서 물어봤던 것뿐이에요」 「그렇다면 용서해 주겠소. 무관심한 것보다야 호기심이라도 가져 주는 게 훨씬 좋은 일이지」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바다가 보이는 그 집의 옆으로 데려갔다. 「이러면 혹시 누군가 저 절벽 위에서 이쪽을 우연히 보게 된데 도 우리가 보이지 않을 거요」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창문을 살피며 설명 했다. 「유리를 깨뜨리지 않고서도 창문을 열수 있겠어요?」 「그리 단단히 잠겨 있지는 않는 것 같군. 매우 낡았고, 적당한 압력만 가 한다면 문제없이 열릴 것 같소」 「당신이 사는 그 세계에서는 매사가 그렇게 압력을 행사해야 돌아가나 요?」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서 그 어두운 눈동자로 침착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애 써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그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빛바랜 그 집의 벽에 등을 기대었다. 문득 에밀리나는 자신의 부주의한 마지막 말이 지나치게 한 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긴장하면 어제나 그렇 듯이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암갈색 눈은 거의 초록빛을 띠기 시작했다. 「당신의 그 멋지게 생긴 엉덩이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날 자극하는 당신의 그 즉흥적인 충동을 자제하는 게 좋겠군」


「조심하겠어요, 줄리안」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예의바르게 천천히 말했 다. 「난 당신이 그렇게 쉽게 기분 상해할 줄은 몰랐어요」 그는 벽에서 떨어져 반듯이 섰다. 다시 창문으로 몸을 돌려 낡은 창문틀에 지렛대를 넣어 비집고 열어 보려 했다. 「난 쉽게 기분 상해하는 사람이 아 니오, 그저 당신에게 분명하게 선을 그어 두어야 당신이 무작정 날 침범할 것 같지 않아서」 「겁쟁이」그녀는 이렇게 웅얼거리지 않고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창문이 열렸다. 줄리안은 먼저 들어가 그녀가 창문턱을 넘는 걸 도 왔다. 에밀리나는 자신의 흥분의 도가 점점 더해 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에릭 라이튼의 별장의 실내장식을 둘러보며 에밀리나는 서 있었다. 에밀리나의 첫 번째 반응은 실망감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별장과 똑같잖아요!」 그녀는 투덜거렸다. 실제로 다른 여름 별장들이 그렇듯이 그곳은 낡은 가구들과 빛바랜 양탄자들로 채워져 있는 남루한 모습이었다. 「그래, 뭘 기대했던 거요? 벽난로 앞에 선적을 기다리는 한 뭉치의 코카인 이라고 있기를 바란거요?」 줄리안은 조용히 말하곤 카펫 위에서 다른 카펫 위로 조심조심 발을 옮겨 부엌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적어도 그 비슷한 뭐라도 있을 줄 알았어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반박했 다. 「카펫 위에서만 이동하며 주위를 둘러보기나 합시다. 난 부엌을 맡을 테니 당신은 침실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소」 침실은 하나뿐이었고, 그나마 그곳에는 기울어진 침대 하나와 얇은 판자로


만든 서랍장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에밀리나는 조심스럽고 세밀하게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녀가 다 끝마쳤을 때 줄리안은 다른 방을 계속 살피 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나머지 조금만 방들도 살폈지만 결국 놀랄 만한 증거물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 다. 「바닥에 헐거운 부분이 있거나 벽 속에 비밀 금고라도 있는 건 아닐까 요?」 식당에 있는 찬장을 당겨 열어 보고 난 후 에밀리나가 물었다. 「거긴 뭐가 좀 있소?」 그녀가 찬장에서 무얼 찾아냈는지 보려고 돌아보며 줄리안은 투덜거렸다. 「나보고 지금 온 바닥을 다 뒤엎어 살피라는 거 요?」 「아마 그럴 수는 없겠조」 그녀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잔뜩찌푸린 채로 찬 장 바닥에서 발견한 깔끔하게 개어진 갈색 쇼핑 봉투를 바라보았다. 「라이 튼은 모근 쇼핑 봉투를 아껴둘 정도로 강박적으로 절약하는 사람인가봐요」 「뭐라고?」줄리안은 그녀 뒤에 서서 찬장을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했는 지 궁금하군」 그는 그것들을 뒤집어 보았다. 「이런 일을 그저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슈퍼에서 가져온 비닐 봉투에다 가게에서 가져 온 쇼핑 봉투까지 모조리 개켜서 보관하는 사람들이요. 한때 라이튼도 나무 를 보호자자는 운동에 열의를 가지고 참여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네 요. 그와 케이스는 한동안 환경 보호에 열광적으로 매달렸던 적이 있으니까 요」 「라이튼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소?」


「한두 번」 에밀리나는 한쪽 어깨를 으쓱했다. 「그에 대한 기억으로 뭐 그리 특별한 것이 있지는 않아요. 그는 그런 혁명적인 그룹의 지도자가 되 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어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는 그런 자신의 단점을 다른 방법으로 보완하려고 노력했죠」 「마약을 다루는 것들로?」 줄리안은 웅얼거렸다. 「그걸로 그는 한동안 대학 시절 영웅처럼 대접받았죠. 뭔가 중요한 사람이 라는 느낌을 그는 가질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케이스는 그가 잘못된 방 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와 관계된 일들에서 몸을 빼내기 시작했 죠」 「그럼 당신 동생은 마약과 관계된 일들은 하지 않은 거요?」 줄리안은 느 리게 말했다. 「절대로 아니에요」 에밀리나는 동생을 열심히 옹호했다. 「건강식이나 보 약 등에 빠져 있던 적은 있지만 마약은 절대로 손댄 적이 없어요」 줄리안은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의 그 잘난 동생 은 정말 잘못된 일은 한 적이 없다는 거요?」 「정말 심각한 잘못은 한 적이 없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강조하며 말했다. 「으흠, 그러나 그는 여전히 라이튼이 그에게 협박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 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뭔가 더 있을 것같군, 에미」 「말했잖아요, 그의 현제 고용주는 반정부적인 집회나 급진적인 정치 이념 따위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구요. 줄리안, 내 동생은 그 어 떤 불법적인 일을 한 적은 절대로 없어요.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비인습 적인 생활 태도를 가졌던 것뿐이라구요. 그게 다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


사실이 그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구요」 「당신은 동생이 설혹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더라도 그의 편에 서서 옹호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한 번 실수는 누구에게라도 있는 법이에요」 그녀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내가 동생이 한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있더라고 그건 그리 중요 한 일이 아니에요」 「알겠소. 내가 졌소」 그는 반쯤 웃는 얼굴로 말했다. 「동생이 어떤 일을 잘못했든 아니든 당신이 그를 위해 변호하리라는 건 분명한 것 같군」 줄리 안은 한 더미의 종이봉투를 넣고 찬장의 문을 닫았다. 「자, 갑시다. 어두 워지는군.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는 게 좋겠소」 「그렇지만 우린 아직 아무것도 찾아낸 게 없잖아요」 「그저 뭔가를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온 거요」 그는 달래듯 말했다. 「이제 확실히 알았소? 만에 하나 라이튼이 이 집을 뭔가 불법적인 일에 사 용하고 있다 해도 증거를 남기거나 하지는 않을거란 말이요」 「그래도 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그럼 우리가 할 일은 이 집을 다음주 내내 지켜보며 감시하는 거겠군요. 뭔가 의심스러운 일이 일어나는지 봐야 하니까요」 「좋소」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그는 말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ㅇ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소」 「다른 일은?」 그녀는 열심히 질문했다. 그리고 그들은 창문을 기어올라 밖으로 빠져나왔고, 줄리안은 창틀에 손자국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글쎄, 몇가지 사실을 조사시켜 볼 수도 있소」


「오, 알겠어요」 어디든지 손을 쓸 수 있는 마피아 조직의 감시망이 작동 하게 되도록 지시하는 줄리안의 영상이 떠오르자 에밀리나의 몸은 무의식적 으로 떨려왔다. 줄리안은 절벽으로 가는 오솔길에 들어서며 그녀의 눈에 떠오르는 의심의 눈빛을 보았다. 그는 그녀의 왕성한 상상력이 만들어내고 있는 영상들을 충 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은」그는 냉정히 말했다. 「우리가 지금 범죄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 같군?」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방금 무단 가택 침입을 한데다가 그 집을 마구 뒤지기까지 했소. 그건 사유 재산을 침범한 거요. 에밀리나. 라이튼의 별장에 들어갈 권리는 우리에게 없었소」 「그래서요?」 그녀는 그의 앞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며 몸을 불편하게 움직 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불법적인 행위에 얼마나 관련괴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거요」 「당신은 우리가 <보니와 클라이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저 그들과는 다른 좀더 나은 결말을 맞아하기를 바랄뿐이오」 그는 냉 담하게 대꾸했다. 뒤늦게나마 에밀리나는 보니와 클라이드라는 전설적인 무법자들이 그리 오 래 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만큼이나 격렬한 죽 음을 맞이했었다.


「줄리안, 난 당신의 프로다운 기술이 우리를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지켜 줄 거라 믿고 싶어요」 「당신은 요점을 이해하지 못했군, 에미」 그는 길에 들어서는 에밀리나를 위해 팔을 부축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와 함께 그 집을 무단 침입함 으로써 우리의 거래에 승인 도장을 찍었다는 거요. 알겠소?」 「당신은 내가 우리의 거래에서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살피고 있다고 생각하 고 있었단 말인가요?」 그녀는당당히 물었다. 「난 약소을 취소할 마음이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요」 「난 당신이 이 일보다 나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소」 「난 당신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일인지 잘 알고 있어요, 줄리 안」 그녀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항상 빚을 지면 갚는 사람이에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당신이 청구서를 내밀기만 하면 난 그에 따라 충분히 변상할 거예요」 에밀리나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도망치듯 집을 향해 달렸다.

4

다음날 커피를 마시려고 몰래 마을로 들어가는 에밀리나를 발견해 잡은 건 서섹스였다. 집 앞 계당에 앉아 있다가 반갑게 짖으며 달려드는 그 검은색 의 잘생긴 녀석을 보며 그녀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는 데 다행히 줄리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그녀를 반기는 그 동물에게 서둘러 말했다.


「앉아. 이 녀석아! 돌아가.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알겠어?」 그녀는 엄 하게 명령조로 말하려 애썼다. 그러나 서섹스는 말을 잘못 알아들은 듯했 다. 녀석은 낑낑거리며 머리를 그녀의 손에 갖다 대고 애절한 눈으로 올려 다보았다. 「물러서, 서섹스!」 그녀는 다시 시도했지만 녀석이 귀를 움찔거리며 넌지 시 바라보자 한숨을 쉬며 그 귀를 긁어 주었다. 난데없이 줄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밀리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몸을 돌렸다. 그는 아마도 라이튼의 집 근처 해변에 내려가 있는 것 같았다. 서섹스가 집으로 돌아오는 달리기에서 그를 이긴 모양이었다. 「그렇게 혼란스런 신호를 보내 가지곤 그에게 먹혀들지 않을거요」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좀 더 단호한 표정이어야 하지. 그렇게 다독여 주며 집으로 돌아가라는 상반된 명령을 동시에 내리는 건 녀석을 혼란스럽 게 할 뿐이오」 「전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 「어떤 신호가 더 중요한 건지 잘 알고 있으니 혼란스러울 리가 없을 거 요」 그는 가까이 다가오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다독고료 주는 것이 집으 로 쫓겨 나가는 것보다 더 상위에 랭크 돼 있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소?」 「멍청한 개군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가서 낯선 사람이나 찾아 공격하 는 게 어떻겠니?」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서섹스의 이런 행동이 고맙다고 말해야겠소」 줄 리안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녀석이 여기서 당신을 막고 있지 않았다 면, 나를 빼놓고 마을로 내려가 버렸을 거 아니오?」


「운이 좋았다면 그랬겠죠」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당신은 어제 내가 오늘 아침엔 먹 을 만한 커피를 사도 좋다고 말하지 않았소」 「내가 그랬나요?」그녀는 죄책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어제의 대 화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내 기억에 그런 약속을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 데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정확히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내포된 의미는 그런 것이었소」 줄 리안은 활기차게 말하곤 곧 서섹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자, 들어가라, 서섹스. 너 때문에 오늘 아침 커피 타임이 늦춰지는구나」 에밀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도 아침 커피 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논쟁을 벌이기엔 이 미 너무 늦었다. 줄리안은 벌써 계단을 내려와 그녀 곁에 서 있었다. 그와 같이 마을로 내려가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섹스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보다 그를 돌려보내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 다. 「라이튼의 별장에 내려가 뭘 하고 있었던 거죠?」카페에 거의 도착했을 무 렵 그녀는 돌연히 물었다. 「그저 한 번 더 살펴보려고 갔었소.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어서 손놓고 있 을 수가 없었소」 「그 꺼림칙한 게 뭐죠?」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소. 그냥 그 별장에는 뭔가 아귀가 딱 맞지 않는 그 런 느낌이 들어서」 줄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카페 문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아도 이제부터 내 걱정하느라 바쁠 텐데 말이오. 기억나 오?」 카페에 들어서자 은밀한 눈짓과 의심 가득한 침묵이 그들을 맞았다. 에밀리 나는 줄리안과 나란히 아늑한 실내로 걸어가며 목덜미의 머리를 들어올렸 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어깨를 펴고 도전적인 태도로 줄리안과 빈 테이블 로 가 앉았다. 「그 바에 앉아 있는 어부를 그렇게 째려보는 것 좀 그만 두시오」 줄리안 은 종업원이 다가오자 조용히 충고했다. 「그가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잖아요」 「그래서?」 「그건 무례한 짓이에요. 그가 당신을 그런 식으로 쳐다볼 권리가 없다구 요」 그녀는 씩씩대며 말했다. 「그는 그저 궁금해하는 것뿐이오」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하곤 종업원 에게 주문을 했다. 에밀리나는 쿠션에 기대어 그의 옆모습을 살펴보았다. 「저런 일들이 신경 쓰이지 않아요?」 그녀는 종업원이 물러가자 잠시 주저하다가 마침내 물었 다. 「그러니까 저런 호기심 어린 시선이나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듯한 태도들 말이에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소」 「잘나셨군요」 약간 도를 넘어서는 참견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중얼거 리듯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 사람들에게 굳이 변명 같은 걸 하는 수 고를 하고 싶지 않다 이 말이군요. 설혹 당신이 커다란 은행의 총재쯤 되는


데 이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해도 말이죠」 「아상한 사람이라니 어떤 사람 말이오, 에미?」 그는 검은 눈동자를 흥미 롭다는 듯이 빛내며 추궁했다. 「별거 아니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녀는 과감하게 말을 받아넘겼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얼마나 여기에 머물 거죠, 줄리안?」화제를 바꿀 수 있는 이야기라면 어느 거라도 좋았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소」 「당신은 어디서 살죠?」 「애리조나」 그녀는 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하 세계의 거물들이 썬벨트 지역 (미국 남부를 동서로 뻗은 온난 지대)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이 있었다. 「다른 질문이 더 있소?」 줄리안이 물었을 때 마침 커피가 도착했다. 더 이상 안전한 질문들을 생각해 낼수 없었기 때문에 에밀리나는 머리를 흔 들었고, 뜨거운 커피를 꿀꺽 삼켰다. 그녀의 눈은 앙심을 품은 채 여종업원 을 따라가고 있었다. 「저 종업원을 째려보는 것도 그만뒀으면 좋겠소」 줄리안은 점잖게 충고했 다. 「저 여자가 당신에 대해 어부와 이야기하고 있다구요」에밀리나는 계속 그 여종업원을 노려보았다. 「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라고 그냥 내버려둬요. 뭘 어쩌려고 그러는 거요? 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었다고 해서 달려가 때려눕


히기라도 할 거요?」 「하나도 재미없는 농담이군요, 줄리안」 「이제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오?」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 었다. 「어떤 질물니요?」 「당신이 왜 지금은 혼자인가 하는 따위의 질문이오」 그는 침착하게 물었 고 그 질문을 에밀리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건 매우 개인적인 영역을 침해하는 질문이군요」 그는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대답을 기 다리는 태도에서 에밀리나는

자리가 불편하게 뒤척거리며 움직이도록 하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줄리안, 결혼이 나에게 남긴 거라곤 지불해야만 하는 청구서들뿐이었어 요.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주제예요. 더군다나 잘 모르는 사람과는 요」 「난 오르는 사람이 아니지 않소?」 그는 계속해서 추궁했다. 「어떤 종류 의 청구서들었소?」 「전 남편은 대학과 대학원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학자금 융자를 얻었어 요. 게다가 그는 고급스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녀는 전남편이 가지 고 있던 자동차와 멋진 옷들을 기억하며 덧붙였다. 「그가 나를 떠났을 때 많은 청구서들을 지불하기 위해 난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죠」 그녀는 얼굴 을 찌푸리고 창 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마 난 내 인생의 절반은 빚을 갚느라 보냈던 것 같아요」


「남편말고 당신에게 짐을 지운 사람이 또 있었던 거요?」 「아버지는 항상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이 돈을 쓰고 살았죠」 그녀는 명랑 하고 성격 좋으며 동시에 지독히도 무책임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

다. 「마침내 아버지의 힘에 부칠 정도의 빚을 지시고는 몇 년 전 어느 날 잡자기 사라죠 보리셨죠. 케이스와 나에게 뒤처리를 남기시고. 엄마도 아버 지 비슷하게 무책임한 분이라… 다행히 그녀는 재혼했어요. 돈 많은 사람 과!」 그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줄리안이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줄리안, 난 정말 뛰어난 신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빚을 떼먹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붙들어 매두어도 좋아요」 「내가 요구하는 대가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어도 문제없겠소?」 그 는 계속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찬찬히 보았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 될까요?」그녀는 간청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왜 아직도 재혼하지 않은 거죠?」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꼬치 꼬치 캐물었으니 그도 그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담하 게 물었다. 「내 전 아내는 다른 남자와 도망갔소」 「그랬군요」 「같이 달아난 남자는 한때 나와 가장 친구요. 동업자였던 사람이었소」 그 는 개략적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줄리안!」 놀라움에 커진 눈동자로 에밀리나는 그를 응시했다. 정


말 지독한 일을 겪었군요.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그런 것에 신경을 썼던 거 군요「 「헌신과 신의 말이오?」 그가 그녀를 대신해서 말을 완성했다. 「그렇소」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죠?」 「내 전 아내와 전 친구 말이오? 그걸 왜 나에게 묻는 거요?」 에밀리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궁금해서요. 내 생각엔 당 신이 복수심 같은 걸 느끼지 않았을까 궁금해서요」 「잠시 동안은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소」 그녀는 그가 유명한 마피아식 복수를 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녀가 읽었 던 몇몇 폭력적인 소설에서 본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마음 을 사로잡았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어 봐서는 안 되겠다고 결론 지었다. 「난 가게에 들러 몇 가지 식료품을 사고 우편물로 확인해야 해 요」 그녀는 이 지나치게 친밀한 대화를 그만둘 방법을 찾으며 신중히 화제 를 돌렸다.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내려놓았다. 「좋은 생각이도. 나도 여기로 배달되어 올 것이 몇 개 있소. 그런데 식료품을 사는 건 다른 의견이 있는 데」 「그게 뭐죠?」 「같이 물건을 고르는 거요. 그리고 오늘밤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이나 하 는 거요」 그녀는 그 말이 거의 명령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시할 만한 용기를 끌어 모으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좋아요」


「당신 요리 솜씨가 커피 타는 것보다는 좀 낫소?」 「당신이 요리를 떠맡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어요」 그녀 는 성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난 기막히게 맛있는 치킨 카레를 만들 줄 아니까」 「좋소. 그걸로 정하지. 그럼 닭고기를 사러 가 봅시다」 카페를 나와 걸으면서 에밀리나는 다시 한번 줄리안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들을 느끼게 되었다. 에밀리나는 줄리안에게 한 걸음 다가가서 그의 팔 을 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줄리안은 처음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곧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의 팔을 꽉 끼었다. 그래서 결국 들은 팔짱을 낀 채로 카페를 나섰다. 그들은 식료품 가게로 가는 길 내내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에밀리나 는 어떻게 팔을 빼내야 할지 궁금했다. 줄리안은 자진해서 팔을 풀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내가 정육 코너에 가서 닭 가슴살을 주문하겠소」 그는 길을 따라가다가 맨 마지막에 있는 가게에 들어서자 제안했다. 「좋아여. 나는 처트니(달콤하고 시큼한 인도의 조미료)같은 이국적인 향신 료들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에밀리나는 그가 자신의 팔을 놓아준 것을 다 행으로 여기며 재빨리 말했다. 「계산대에서 만나요」 그녀는 복도 저쪽으 로 서둘러 갔다. 에밀리나는 카레 가루를 찾으러 근처의 선반을 뒤지다가 남편과 서 있는 중 년의 부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가게의 주인이었다.


「오, 좋은 아침이에요, 에밀리나. 몇 분전에 당신이 들어온 것을 보았어 요」 에밀리나는 전투를 치를 자세로 그 연상의 여인의 눈을 바라보며 속으로 지 겹하고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안녕하세요, 존스턴 부인. 전 카레 가루를 찾고 있었어요」 「여기 있구려」 밀드리드 존스턴은 작은 깡통을 집어들어 그녀에게 건네주 었다. 「당신 그 줄리안 콜터와 같이 오지 않았수?」 「아, 네. 사실 그랬죠」 에밀리나는 뒤로 물러서며 웅얼리듯 말했다. 밀드 리드 존스턴이야말로 이 마을의 입방아들 중에 탁월한 주요 정보 제공자로 유명했다. 에밀리나는 이 마을에 도착한 이틀 후 존스턴 마켓에서 쇼핑을 하면서 즉시 그 사실을 알수 있었다. 「내가 듣기에 댁이 그와 같이 커피도 마시는 그런 사이라던데?」 밀드리드 는 결연히 말을 이어갔다. 「그래요」 「난 당신이 지금 우정을 쌓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조심했으 면 해요. 당신은 줄리안 콜터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그렇죠?」 「음… 그건 말이죠…」 밀드?는 더욱 바싹 다가와 속삭였다. 「사람들 말로는 그는 조직 폭력단에 있는 사람이래요」 「정말요?」 에밀리나는 힘없이 되물었다. 「아가씨, 내가 아가씨 입장이라면 그와 너무 친밀하게 지내지 않겠어요」 밀드리드는 잘난 척 하며 말했다. 「난 아가씨같이 젊고 착한 사람이 마피


아 일당과 연루되는 걸 바라지 않아요. 왜 알아요? 그의 이름도 콜터가 아 닐지!」 「아니라고요?」 「콜터는 아마도 가명일 거예요. 그는 분명 동부의 그의 활동 무대에서 일 들이 정리되는 동안 여기 은신하고 있는 거라구요. 내 충고를 받아들여요. 그를 멀리해요」 「존스턴 부인」 그녀는 얼음같이 싸늘하게 말을 시작했다. 「전 그를 절대 적으로 신뢰하고 있어요. 적어도 그는 이 마을 사람들의 95퍼센트가 그렇듯 이 뒤에서 남의 험담이나 늘어놓고 다니진 않을 사람이죠. 존스턴 부인, 줄 리안이 마피아라고 확신하신다면 앞으로는 더욱 혀를 조심해서 놀리셔야겠 군요. 그가 더 이상 인내심을 갖지 않게 되면 어쩌시려구요. 그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말씀 안 드려도 아실텐데요!」 밀드리드 존스턴은 기절할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당신 생각에 그가… 그런 일을…」 그때 옆 선반에서 줄리안이 나타나 에밀 리나의 뒤어 섰다. 밀드리드는 그 광경에 그만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에밀리나는 때맞춰 나타난 줄리안을 향해 뒤로 돌아섰다. 「거기 있었군요, 줄리안. 닭고기는 찾았나요? 난 얇게 저민 코코넛만 찾으면 돼요. 내 생각 엔 그건 가게 앞의 코너에 있을 것 같군요. 갈까요?」 머리를 높이 치켜들 고 그녀는 줄리안을 이끌고 계산대로 걸어나왔다. 어이없이 쳐다보는 밀드 리드를 뒤로하고 줄리안은 순순히 따라왔다. 그는 식료품들로 가득한 종이 쇼핑백을 집어들고 가게를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그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에밀리나, 이 동네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둘러 볼 생각이오?」 그녀는 재미있다는 식의 그의 목소리를 듣곤 못마땅해서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휘두른 권력은 당신 거예요. 난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그런 식으로 쳐다보고 수군거리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줄리안. 그렇지만 적어도 밀드 리드 존스턴 부인은 앞으로 그 입으로 재잘거리는 걸 조심하기는 하겠죠!」 「글쎄, 정말 그럴지」 그는 싱글거리며 말했다.

「아마 그녀는 입방아를

찧을 상대를 신중히 고르기는 할 거 같소. 당신도 마음먹으면 상당히 위협 적이군, 에미」 「그녀는 그런 일을 당해도 싸요」 「이제 당신과 내가 온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거군. 으흠?」 그는 가볍게 질문했다. 에밀리나는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씹으며 자신과 혼란스런 싸움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을 넘어섰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정 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녀는 그에게 단순히 빚을 갚는 것 이상의 일을 해주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우체국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소포는 좀더 그녀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이었다. 「 뉴욕에서 온 거요?」 줄리안은 반송되어 온 소포의 주소를 힐긋 보고는 궁금해하며 물었다. 「출판사에서?」 「출판 거절당한 원고죠」 그녀는 소포와 다른 편지들을 주워 모으며 중얼 거렸다. 「난 이런 일엔 익숙해요」 줄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젠 어떻게 할 거요?」


「다른 출판사애 보낼 거예요」 우체국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며 그녀는 불 만스럽게 말했다.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내가 한 번 읽어봐도 되겠소?」 에밀리나는 머리를 거칠게 내저었다. 「절대로 안 돼요. 난 내 작품을 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 지고 있어요」 「당신은 당신의 작품에 대해 얼굴을 맞대고 평하는 걸 두려워하는군?」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죠」 그녀는 굳은 얼굴로 시인했다. 「이런 얘기는 지나치게 사적인 부분이에요. 왜 그런지 설명하지는 어렵군요. 아마 도 작품을 읽고서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두려워서 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난 어떤 경우든지 계속 글을 쓸 생각이에요」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겠소」 그는 천천히 동의했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당신의 작품을 읽고 싶군」 「절대로 안 돼요」 그녀는 무뚝뚝하게 그에게 알렸다. 「오늘 저녁은 몇 시에 먹을까요, 줄리안?」 「화제를 잘도 바꾸는군. 그렇지 않소?」 「6시는 어때요?」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재촉했다. 「그쯤이 좋겠소. 그래도 지금 같이 들어가서 이 식료품들을 정리하는 걸 좀 도와주면 어떻겠소? 서섹스도 한 번 보고가고. 아침은 먹은 거요?」 「오, 그럴까… 아니 안 그러는 게 좋겠어요. 아침은 됐어요. 서섹스는 다 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이따가 저녁에 올게요, 줄리안」 「난 당신이 지금 좀 들렀다 가면 좋겠소」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커피


한 잔 더 하는 건 어떻소?」 「정말 괜찮아요. 고맙지만 커피도 됐어요」 그는 걸걸한 목소리를 더욱 낮게 깔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친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소?」 「난 이 원고를 다시 정리해서 다른 출판사로 보내야 해요. 그리고 난 집에 서 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도 있구요」 그러나 그는 벌써 별장의 문을 열 었고, 서섹스는 뛰어나와 환영의 인사로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는 줄리안의 부엌에 서서 그가 꾸러미들 을 풀어 정리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집에 와인이 있어요. 오늘 저녁에 가지고 올게요」 그녀는 예의바르게 행동하기로 하고 다시 한번 모험을 하 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녀는 무심코 서섹스를 토닥이고 있었다. 「그거 좋소」 그는 냉장고 문을 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닭고기를 냉장고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에미」 그는 종이 쇼핑백에서 마지막 물건 을 꺼내 정리하며 말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카페와 식료품 가게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해…」 에밀리나는 그 거북한 주제로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에 얼굴을 붉혔다. 그런 데 그녀는 줄리안이 생각에 잠긴 채로 종이 봉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야 기를 멈춘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에요?」 「종이봉투 바닥에 영수증이 있소」 그는 봉투를 바라보며 지적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녀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그렇소. 흔히 영수증을 쇼핑 봉투 바닥에 놔두고 신경쓰지 않지」


에밀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잘 접어서 찬장에 쌓아 둔다? 그러 니까 당신 말은 라이튼의 별장에서 본 그 찬장에 있는 봉투들을 말하는 거 군요?」 줄리안은 쇼핑 봉지에서 영수증을 꺼내 들고는 그 봉투를 구겼다. 「영수증 엔 날짜가 써 있게 마련이오, 에미」 「우리가 라이튼의 집에 있는 쇼핑 봉투를 보면 영수증에 적힌 날짜를 알 수 있다 이 말이군요?」 「그 봉지들은 아마도 식료품들을 나른 것들일 테니 라이튼이 별장에 머무 르는 동안 필요한 것들만 샀을 거요」 「그가 마지막으로 여기에 머문 게 언제인지 알 수 있겠군요?」 「그리고 영수증이 넉넉히 있다면 그가 별장을 방문하는 시기가 정기적인 주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도 있을 거요. 오늘 저녁 무렵 한 번 가볼까?」 에밀리나의 눈은 새로운 흥분으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지금 가면 안 될까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에요」 「아니, 누군가에게 들킬 거요」 그는 단호히 반박했다. 「우리는 해변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절호의 기외를 갖게 되면 그때 가는 거요」 「오, 즐리안」 그녀는 가볍게 항의했다. 「당신은 이

일에 나의 프로답고 전문자적인 면을 발휘하기를 바랬던 것

아니오? 자,

앉아요, 에미. 지금부터 난 당신한테 최고급 커피를 만드는

걸 가르쳐야겠소」

무단 가택 침입은 어스름이 질 무렵에 행해졌다. 몇몇 종이봉투에서 영수증


이 나왔다. 그들은 찾을 수 있는 모든 영수증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종이 봉투를 접어놓고 서둘러 창문으로 빠져나왔다. 「우리가 점점 이 일에 능숙해지는 것 같아요」 에밀리나는 영수증 뭉치를 꽉 붙잡고 앞서 걸어가는 줄리안에게 매우 기뻐하며 알렸다.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범죄자의 길로 들어설 생각을 할 정도요?」 「이건 정확히 말해서 범죄가 아니에요. 범죄자는 라이튼이지 우리가 아니 라구요!」 「그걸 나에게 계속 각인시켜 주어야겠소」 그는 부탁한다는 듯 말했다. 즉시 에밀리나는 약간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줄리안은 은신하거 나 휴가를 즐기는 동안은 그의 직업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해요. 당신은 휴가 중일 텐데 이렇게 일을 시켜서 말이에요」 그들은 비스듬히 경사진 길을 따라 별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난 이 수고에 대해 후하게 대가를 받기로 되어 있잖소. 잊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 말은 그녀가 치킨 카레와 샐러드. 그리고 샤블리 포도주 한 병을 준비하 는 내내 침묵을 지키게 만들었다. 벽난로에 장작을 쌓고 두 개의 유리잔에 브랜디를 따른 후 그가 기운차게 말했다. 「자, 이제 우리가 무얼 얻었는지 살펴봅시다」 그는 벽난로 앞에 있는 카펫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영수증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적 힌 날짜를 부를 테니 당신은 받아 적도록 하시오. 알겠소?」 「좋아요」 에밀리나는 줄리안이 앞에 늘어놓은 영수증 더미를 바라보다니 다시 그 열성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수첩과 연필을 가져다 줄리안이 부르는


날짜를 적기 시작했다. 그 날짜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가장 놀란 것은 줄리안이었다. 「아직까지 이 사실을 가지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 만, 어쨌든 분명한 건 이 날짜들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거요. 모두 매 달 28일 즈음에 있군. 그렇지 않소?」 그는 마침내 에밀리나가 적어 놓은 것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매달 마지막 주였어요. 그리고 조금 있으 면 다시 이번 달 마지막 주예요. 다음 수요일이 28일이라고요」 그녀의 옅 은 갈색의 눈동자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생생히 빛났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날 바라보게 하려면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군」 그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라이튼에 대한 몇가지 단서들을 찾아내는 것」 그는 그녀가 몸을 떠는 것을 감지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녀는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줄리안은 오늘밤은 자신이 전혀 신사 같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갔다. 그는 남 성적 본능은 그녀가 도망갈 궁리를 하기 전에 빨리 움직이라고 명령하고 있 었다. 그녀는 손에 연필을 곡 쥐며 주저주저 말을 꺼냈다. 「줄리안, 난 우리가 이러지 않는 게…」 「당신의 달콤한 입술을 맛보게 해주오」 줄리안은 약간 초조한 듯 손을 뻗 어 그녀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그는 기대감과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카펫 위에 편안히 뉘


였다. 그리고 둥근 곡선미가 돋보이는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그 의 아래에서 좋은 느낌이 들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우며 정확히 딱 맞는 자 신의 자리였다. 그는 완벽하게 초대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춘 그녀의 입술을 관능적으로 깨 물었다. 그녀가 그의 아래에서 전율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에밀리나를 절실히 원했다. 오늘밤 그들의 거래는 과거와는 다른 수준 의 확인 절차를 다시 한 번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됐다.

5

에밀리나는 자신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남성적은 욕망의 파도에 휩쓸려 버 릴 것 같았다. 그녀는 지난번 줄리안의 품에 안겼을 때 자신이 보인 심상치 않은 반응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밤 줄리안은 그녀의 감각 들은 그저 시험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압도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 다. 줄리안이 그녀의 몸을 장악하려 하고 그녀에게 점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질 즈음에도 에밀리나의 머리 속엔 여러 가지 복잡한 질문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묶는 것이 있더라고 그것이 채무 관계 이상으로 발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줄리안의 입술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탐험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날 아침 그를 옹호하고 싶어했던 이상한 욕망이 떠올랐다. 싫든 좋든 그녀는 빚을 갚기 전까지는 그의 편을 들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에미, 당신은 내 피를 뜨겁게 하는군.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난 흥분되고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차오.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 게 허락해 주오」 사랑하게 허락해 달라고? 그를 어떻게 멈추게 하지? 에밀리나는 신음했다. 그러나 그녀의 소리는 줄리안이 그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완전히 덮어 버 려 그의 입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그녀는 가대감에 온몸이 뜨끔거리는 듯했 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그녀의 본능은 완벽하게 일을 해낼 것을 울 부짖고 있었다. 「줄리안…」 줄리안이 입술을 그녀의 목선으로 움직이며 탐험을 계속해 나 가자 그녀는 헐떡였다. 그녀는 손을 펴서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당신의 몸은 나의 몸을 위해 맞춰진 것 같소」 그는 입술을 그녀의 목에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 셔츠의 첫 단추를 찾기 시작했 다. 「여기 어딘가에 꼭 맞는 게 있을거요. 풍만하고 둥글고 부드럽고 믿을 수 없이 섹시한」 「그게 내가 통통하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거라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 로 말을 이어갔다. 「난 아마 화낼 거예요」 그 악의 없는 희롱은 그녀를 즐겁게 했다. 「내 말은 당신이 완벽하다는 거였소. 바로 내가 원하던바 그대로요」 줄리 안은 반박했다. 그리고 셔츠의 두 번째 단추를 발견하면서 그녀의 벌어진 입술을 사이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에밀리나는 그가 만들어내는 관능적인 리듬에 너무나 매혹되어서 자신의 옷 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줄리안의 손바닥에 그녀의 유두를 가볍게


스치자 알아차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와 더욱 가까이 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줄리안, 난 당신을 멈추게 해야만 해요. 그만둬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 런데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요?」 그녀가 속삭였다. 「오늘밤 날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에미」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말을 확인이 라도 시키듯이 그의 입술을 그녀의 가슴으로 옮겨 세심하게 애무했다. 에밀 리나는 온몸을 떨며 그의 몸에 깔려있지 않은 그녀의 한쪽 다리를 구부렸 다. 「날 만져 봐요, 내 사랑」 줄리안은 쉰 목소리로 낮고 거칠게 말했다. 「제발 날 느껴 봐요」 어떻게 그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에밀리나의 손가락은 그의 머리에서 목덜 미로 옮겨가서 셔츠 깃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거기서 그녀는 그의 부드러 운 근육을 애무했다 그의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끼며 우쭐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미친 영향에 더욱 자극 받아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쓰다듬고 셔츠의 첫 번째 단추를 잡아당겼다. 줄리안은 그녀가 단추를 풀 수 있도록 그녀로부터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점점 더 침착 하지 못하자 그는 매우 조급해져 스스로 단추를 모두 끌러 버렸다.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손을 뻗어 그의 가슴에 난 곱슬곱슬한 털에 손가락을 엮었다. 「서섹스처럼요」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타오르고 그의 입술은 의외의 유머 에 뒤틀려 있었다. 「내 개처럼? 그거 고마운 말씀이군」


「늘씬하고 강하고 그리고…」 그녀는 나머지 말을 주저하며 말을 멈추었 다. 「그리고 뭐지?」 「그리고 약간은 두렵고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을 맺었다. 「내가 두렵소, 에미?」그는 손으로 그녀의 복부를 배회하다가 그녀의 청바 지 지퍼로 손을 옮겨갔다. 그는 그녀의 마지막 남은 옷을 벗기기 시작하며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꼼짝할 수 없었다. 「때때로 가끔씩 그래요」 그녀의 입술은 말라 갔고 하체는 뜨거워지고 긴 장되었다. 「그러지 마시오. 난 당신을 정말 신뢰하고 있소. 날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소.

사랑스런 에미」 그는 머리를 낮추어 그녀의 입술을 잠시 쓰다듬었

다. 그리고 나서 줄리안은 그의 손을 그녀의 청바지 허리 아래로 밀어 넣었 다.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로 밀로 내려갔다. 그녀는 벽난로 앞의 카펫 위에 벌거벗을 채로 누워있었다. 그녀의 개암나무 빛 머리카락은 바닥에 온통 펼 쳐져 있었고, 흐린 갈색 눈동자는 반쯤 감긴 채로 속눈썹을 드리운 채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불빛 속에서 그들의 몸은 금빛으로 타오르는 듯했다. 에밀리나는 줄리안의 단단한 몸을 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그녀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의 몸을 보고 싶었다. 「당신은 점점 대담해지는 군」 그는 그녀가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는 것 을 발견하곤 다정하게 놀리듯 말했다. 「바로 지금이야!」 당황하여 에밀리나는 손을 뺐다. 그러나 줄리안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원래


있었던 곳으로 단호히 다시 되돌려 놓았다. 줄리안의 격려로 그녀는 그의 옷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다. 그의 흥분된 몸의 상태는 그녀로 하여금 숨 을 헉 들이마시게 했다. 「이제 날 좀더 느껴 봐요」 그는 간절히 말했다. 「세상에, 당신의 손가락 이 내 피부에 닿는 느낌은 정말 멋지군!」 그는 그녀의 허벅지 부분을 쓰다 듬고 곡선미 있는 몸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며 그녀의 몸에 조이는 듯한 느낌을 높여 갔다.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의 은밀한 곳으로 손을 옮겼을 때 그녀는 크게 신음 소리를 냈다. 「마음에 드오, 에미?」 그는 그녀의 허벅 지 안쪽의 실크처럼 부드러운 살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그의 손은 어느새 좀더 위를 향하고 있었다. 「기분이 좋소, 내 사랑?」 「아, 그래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그가 자신의 기분을 걱정해 주는 것 이 정말 친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전남편은 그런 주제에 대해 고 민해 본 적이 없었다. 전남편은 자신의 그 거친 포옹에서 그녀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 에밀리나는 줄리안 의 그런 배려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 차 카펫 위에서 꼼지락거리며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리고 머뭇머뭇 그의 다리의 근육을 느끼려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다리는 털로 풍성히 덮여 있어 거칠고 색다른 느낌이 났다. 줄리안은 더욱 가까이 몸을 밀어 부쳤다. 그는 손을 펴서 에밀리나의 다리 와 둥근 엉덩이 아랫부분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욕망으로 활짝 핀 매우 민감한 부분을 에로틱하게 어루만졌다. 에밀 리나는 그녀의 온몸을 격렬히 흐르는 에로틱한 감각에 평정을 잃었다. 「줄리안, 오, 세상에. 난 지금… 너무나…」 그녀는 적당한 말을 찾을 수


가 없었다. 그 감각은 너무나 쾌락적이었다. 눈을 감고 그녀는 줄리안의 어 깨를 더듬어 찾았다. 그녀의 다리는 기꺼이 벌어졌고 유두는 단단해져서 그 를 희롱하고 있었다. 「에미」 그녀의 여성적인 부름에 응답하면서도 그는 초조하게 말했다. 「에미, 난 당신을 몹시도 원하오!」 그는 몸을 들어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충동적인 힘으로 줄리안은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자신의 몸을 맞추었다. 그녀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깊은 곳에 둔한 충격을 주며 그가 닿자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그래, 내 사랑」 그는 격렬하게 몸을 비벼 댔다. 「당신을 나에게 던져 버려요. 당신이 너무 필요해!」 에밀리나는 순종적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그를 만족시키는데 맞추었다. 그 녀는 그가 자신이 완전히 녹아 버리기를 원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녀의 손은 그의 등을 쓰다듬었고 다리로 그를 꽉 조이며 그에게 매달렸다. 그는 자신이 그에게 맞추어 준비할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 그의 흥분된 정도 를 짐작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만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의 몸이 단단해지는 정도와 그녀의 손 밑에서 긴장하는 근육들을 느끼며 그녀 는 그를 위한 시간이 다가온다고 결정했다. 기꺼이 그가 그녀에게 원할 것 같은 반응을 보여주려고 열중하여 에밀리나 는 사랑의 절정에 다다른 여자들이 하는 열정적인 경련을 거의 똑같이 흉내 내는 데 열심을 다했다. 그녀는 불타오르듯 뜨거운 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톱을 세워 파고들었다. 그리고 하체를 가능한 최선을 다해 조였다. 그리 고 헐떡이며 흥에 겨워 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렸다.


그러나 줄리안은 그녀의 이런 행위로 남성의 절정에 도달하는 대신 그녀의 위에서 가만히 있었다. 에밀리나는 혼란스러워하며 눈을 떴다. 그의 단단함 은 여전히 그녀 안에서 느껴졌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를 기쁘게 하지 못 한 건가? 내가 만족스럽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에밀리나는 어떤 공포감을 느꼈다. 지금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그를 만족시키는 것이었 다! 「자, 이제 당신의 그 연기가 끝났으면 우리 진짜로 해볼까?」불빛에 비춰 지는 줄리안의 모습은 절제된 욕망을 지니고 있었고 동시에 뭔가가 더 있어 보였다. 그 분노에 가까운 그런 감정이 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줄리안…」 그의 단단한 몸이 그녀를 완벽하게 덮고 있는 것을 느끼며 그 녀는 숨을 멈췄다. 「줄리안, 미안해요. 난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내 말 은 난 한 번도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없어서 난 그저 당신을 기쁘게 만족 시키고 싶었던 거예요」 그녀는 서글픈 어조로 허둥지둥 말을 꺼냈다. 「그만 말해요, 내 사랑. 그리고 나를 따라와요」 그는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막고 허리를 천천히 돌렸다. 에밀리나는 포기하 고 말았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는 실패였다.

이제 그녀는 오직

그에게 매달려 그가 안내하는 대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을 따라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떨구어 버리자 에밀리나는 자신의 느낌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꺼질 듯 깜빡거리던 불꽃은 어느새 그녀의 척추를 타고 전해지는 전율을 느끼게 하고 그녀의 허리 부분 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불꽃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줄리안은 마치 그녀가 이 세상 전부라도 되는 양 사랑했다. 그의 손과 입은 그녀를 희롱하고 애무했다. 그녀가 전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사랑 의 애무였다. 그녀는 그녀를 관통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그 스릴 넘치 는 쾌락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온몸을 던져버렸다. 「줄리안!」 외마디 외침은 명령이며 동시에 애원의 그것이었다. 에밀리나 의 머리는 그의 팔위에서 뒤로 젖혀졌고 그녀의 눈은 엄습하는 욕망으로 꼭 감겨져 있었다. 「날 잡아요, 에미. 다시는 놓지 않을 정도로 꼭 잡아!」 줄리안이 거칠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우 거진 수풀 사이로 갔다. 그는 에밀리나를 보이지 않는 절벽의 가장자리 까 지 몰고 갔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그의 이름을 속삭일 수도 없었다. 숨을 쉬기도 어 려웠다. 그녀는 그가 드디어 자신의 절정에서 격정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것 을 간신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는 그 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의 밑에서 맥없이 무너져 갔다. 다시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줄리안이었다. 아주 잠깐, 그녀가 카펫에서 머리를 들어 눈을 내리깔고 그를 살짝 보았을 때 그는 만족스런 표정을 완연히 드 러내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절대로 나에게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그는 그녀의 헝클러 진 밤색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거짓말도 안되고 거짓 행동도 역시 안 되오. 날 속일 수는 없소. 날 화나게 하고 싶다면 거짓말하시오. 난 당


신이 나에게 진실하기를 바라오. 알겠소?」 에밀리나는 불현듯 알 수 없는 냉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미안해요, 줄 리안. 난 그저 당신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만족한 느낌을 가지지 않으면 당신도 기분이 좋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절정 에 이른 느낌을 연기했던 거예요. 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얼굴을 돌려 그의 눈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웅얼거렸다. 그는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 그녀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이번에 그녀는 그의 눈에서 다정함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귀여운 바보 같으니라구. 당신 은 열정과 흥분의 화신이라고. 그것도 몰랐단 말이야?」 「그래요」 그녀는 비참하게 토로했다. 「난 정말 몰랐어요」 「흠, 당신은 정말 그런 사람이야. 그럼 지금부터 난 당신의 그런 면을 알 게 할 수 있는 유일함 남자가 되겠군. 분명한 일이지?」 그는 엄지손가락으 로 그녀의 입술 윤곽선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는 듯이 그를 뚫어져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줄리안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심상치 않은 질문을 알아차리고 고래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당신이 다시 한 번 그런 엉터리 열정을 연기하면 난 당장 하던 일을 멈추 고 다신을 내 무릎 위에 엎어놓고 그 매력적인 엉덩이를 두들겨 줄 생각이 오. 다시는 그런 게임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말이오」 「그건 일종의 변태적인 행위겠군요」 그는 마침네 웃음을 터트리고 그녀를 더욱 바짝 끌어안았다. 「그렇군」 그 는 한 술 더 떴다. 「당신이 침대 속의 화끈한 작은 악녀가 아니라면 이런


제안을 할 생각도 못했을 거요」 그는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쓸어내리고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애태우며 애무했다. 「줄리안?」 첫 번째 흥분의 전율이 그녀의 명치에서 시작될 때 그녀는 부 드럽게 물었다. 「당신은 사랑을 하는 행위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소. 당신 나이를 생각 하면 우린 더 이상 시간만 낭비하고 있을 수만은 없소」 그녀는 곧바로 대꾸했다. 「내가 듣기로는 여자들은 30대에 절정기를 맞는 다던데요」 「그렇다면 나에게 증명해 보시오」 그는 유혹했다. 에밀리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녀는 난로 앞의 카 펫 위에 있지 않고 대신에 줄리안의 침대에 있었다. 그녀의 눈을 뜨게 한 건 흐린 하늘에서 간간이 비치는 햇빛도 아니고 그녀 옆에서 편안히 누워 있는 남자가 가르쳐 준 사랑의 열정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를 깨운 건 그녀 의 손바닥을 간질이는 차갑고 축축한 코였다. 서섹스는 그 까만 머리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그녀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 다. 녀석의 기대에 찬 애절한 표정 때문에 그녀는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얼굴을 배개에 묻어버렸다. 서섹스는 좀더 강도 높은 행동에 들어갔다. 다시 한 번 주의를 끌기 위해 코로 그녀를 찔러 댔다. 그리고 목 깊은 속에서 나는 작은 소리를 냈다. 그 녀는 이불을 벌거벗은 가슴까지 끌어올리며 의심스러운 눈으로 서섹스를 노 려보았다. 서섹스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일을 착착 진행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녀석이 나가고 싶어하는 거요」 줄리안이 그녀 뒤에서 하품을 하며 말했 다. 「오늘의 당번으로 당신이 선택되 것 같소. 당신과 같이 침대를 사용하 면 이런 멋진 보너스도 있군, 자 나가서 서섹스와 같이 좀 뛰어주고 녀석을 내보내 주고서 내가 전에 일러준 그 방법을 실습할 겸 커피를 끓여 보는 게 어떻겠소?」 「난 당신이나 당신 개의 시중드는 일을 해 버릇하고 싶지는 않아요」 서섹스는 다시 한 번 목 깊은 곳에서 협박하는 듯한 으르렁 소리를 냈다. 에밀리나는 고개를 홱 돌려 녀석을 노려보았다. 「어서 움직이는 게 좋겠소」 줄리안이 재촉했다. 「녀석이 인내심을 잃어 가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소」 「말했잖아요. 난 당신이나 당신 개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일꾼 따위가 될 생각이 전혀 없다고요!」 그녀는 도전적으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번엔 줄리안이 낮은 으르렁 소리로 협박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그 으르 렁거림은 그의 검은 눈동자에 어린 나른한 유머 감각과 모순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침대 끝에 걸린 조각이불을 홱 낚아채어 몸에 둘둘 말고는 서섹스의 요구에 부응하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줄리안은 이상하리만큼 복잡한 즐거움을 느끼며 그녀가 방을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난밤의 그 열정과 완벽한 일치감을 기억해 냈다. 그 는 자신의 새로운 미래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욱 조심조심 발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어젯밤 그는 그것이 최선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녀를 침대로 서둘러 끌어들였다. 그의 모든 본능들은


그녀를 가능한 철저히 자신과 얽어매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었다. 에밀리나가 일단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하자 보여준 그 만족스런 열 기를 기억해 내며 그는 입술 끝을 살짝 올렸다. 그녀가 다시 한번 더 그 말 도 안 되는 연기를 하면 그는 정말 그녀의 둥근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주리 라 생각했다. 그녀의 전남편은 그녀가 그런 일을 해도 모를 정도의 멍청이 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건 오히려 잘된 일이야. 줄리안은 흡족해하며 확신했다. 만약 여전히 행복 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면 그가 겪었을 수 있는 고난은 생 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의 운명인 것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나무 바닥에 큰 소리가 나게 내려왔다. 그녀 를 팔에 안고 있는 생각만으로 쿡쿡 쑤시는 욕망을 느끼자 그는 머리를 애 처롭게 흔들어 댔다. 줄리안은 샤워기 아래로 들어서며 지난밤의 일은 언젠가는 닥칠 수밖에 없 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그녀가 깨어났을 때 그는 그녀의 눈에서 경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아직은 그녀의 온 밤 을 그의 침대에서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이 거래를 이행하리라 생각했다. 「자, 여기 커피요. 마시던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에밀리나는 대담하게 화장실로 들어와 큰소리로 말하곤 커튼 너머로 삐죽이 머그잔을 내밀었다. 줄리안은 머그잔을 그녀의 손에서 낚아채곤 그녀가 미쳐 손쓸 틈 없이 재빨 리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를 잡은 채로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전에 당신에게 커피 타는 법을 가르칠 땐 제대로 듣지 않은 것 같 군」그는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건 상당히 지독한 맛이군」 에밀리나는 커튼의 반대편에서 반항적인 만족감을 느끼며 미소짓고 있었다. 「난 배우는 데 서툴러요」 「모든 과목에서 그런 것은 아니오」 그는 커튼을 한 쪽으로 밀어 제치며 여전히 이불을 몸에 두르고 서 있는 에밀리나를 보았다. 그녀의 머리는 마 구 헝클어져 있었고, 그의 눈에 무척 유혹적인 자태로 보였다. 조심스럽게 커피 잔을 내려놓고 그 손으로 그녀를 감싸고 있는 이불을 풀어 내렸다. 「줄리안, 안 돼요」 그녀는 그의 손가락을 찰싹 때리며 저항했다. 그러다 가 그의 건장한 벗은 몸으로부터 허둥지둥 시선을 돌렸다. 「쉿, 조용히」 그는 굵고 낮게 최면을 걸듯이 달랬다. 「난 그저 당신이 해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도와주려는 것뿐이오」 그는 다정하게 그녀를 샤워기 아래로 잡아당겼다. 둘이 마주보고 앉아 아침 식사를 시작한 것은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에밀리나는 자신의 기분을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를 경계해야 한 다는 생각이 드는 가하면 그녀가 느껴서는 안 될 것 같은 시뢰기 느껴져 복 잡한 기분이었다. 그녀의 일부는 지난밤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분명 좋아하 지 않고 있었다. 그건 마치 덫에 걸린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또 한편에 선 그녀 주위를 둘러싼 이 유대감을 환영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 깨달음은 그녀에게 또 다른 경계심을 가지게 했다. 줄리안 콜터에게 매혹 당하는 일 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 영수증에 적힌 날짜들 말이오」 줄리안은 메밀로 만든 팬케이크 위에


시럽을 부으며 침착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래요. 우린 어떻게 할 거죠?」 에밀리나는 이런 중립적인 화제를 고른 줄리안이 고맙기까지 했다. 「라이튼이 자신의 집을 뭔가 불법적인 일에 사용하고 있다는 당신의 황당 한 이론이 뭔가 신빙성이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내를 수 있는 결론은 그 가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가 어떤 시간표를 세워 놓고 그에 따라 일을 진행하다는 거요. 무슨 일인지 모르는 그 일을 항상 월말에 한다는 거 지」 「그거 말되는군요. 그렇죠? 물건을 선적하는 일은 그게 불법적이든 합법적 이든 항상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법이라고요」 「에미」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난 당신이 그 해변가의 별장에서 다음주 에 뭔가 불법적인 일 비슷한 일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걸 알았 으면 좋겠소」 「우리가 알아내야만 해요, 줄리안.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예요」 「알았소, 알았다구. 한 번 알아보시다. 하지만 난 당신이 실망할 경우를 대비했으면 좋겠군」 「그럴게요」 그녀는 선뜻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런 일에는 전혀 대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당신이 꼭 기억해 줬으면 하는 건 라이 튼의 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면 아무일도 없는지 여부를 확인하 고 나면 내가 우리 계약의 의무를 다한 거라는 것이오」 애밀리나는 커다란 팬케이크 한 쪽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렇게 자꾸 나에


게 상기시킬 필요 없어요」 그녀는 간신히 작은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손을 뻗어 식탁을 가로질러 그녀의 손을 감싸쥐었 다. 「미안하오. 당신에게 그런 식으로 상기시킬 필요 없다는 걸 알고 있었 소. 당신은 항상 빚을 갚는 사람이잖소, 그렇지?」 「그래요」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무서운 기세로 팬케이크를 먹어 치 웠다. 줄리안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녀가 자신의 별 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자 선선히 동의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에밀리나 를 약간 놀라게 했다. 「오늘 아침엔 무얼 할 거죠?」 그녀는 서섹스에게 작별 인사로 토닥이며 현관문에 서서 그에게 물었다. 「전화 몇 통을 걸어야겠소」 「누구에게?」 「날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할 거요. 자, 이제 가시오, 에미. 점심 때 들르겠소. 그때 나에게 커피를 대접하려 애쓰지는 마시오. 내가 가져가겠 소」 「날 가르치는 걸 그렇게 쉽게 포기하려고요?」 「천만에 말슴. 난 단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가르치지 않기로했소. 좀더 생산적인 분야에 에너지를 집중시키기로 결정했거든. 당신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분야지. 커피에 관한 수업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소」 에밀리나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그녀 별장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 녀의 얼굴은 그의 은밀한 시선에 뜨거워지고 붉어졌다. 그건 마치 모래 무 덤에 빠진 것 같았다. 점점 더 이 남자에게 속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녀 전 생애를 통틀어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에밀리나는 아침 내내 그녀의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남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충분히 악화되어 있었다. 한 시간 후쯤 그녀는 우연히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줄리안이 서섹스를 데리 고 별장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다. 둘은 나란히 시내를 향해 가고 있었다. 공중전화를 찾으러 가는 건가? 여름 별장은 쾌적한 편의 시설을 갖추지 못 하고 있어서 전화가 없었다. 줄리안은 누구에게 전화를 하려는 걸까? 에밀 리나는 그가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을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줄리안은 약속한 대로 점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팔에 커피가 든 보 온병을 들고 있었다. 서섹스는 그의 옆에서 뒤를 쫓아왔다. 그리고 셋은 놀 랍게도 아주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에밀리나는 보온병에 있는 커피를 잔에 부으며 물었다. 「전화 를 걸어 처리하겠다는 일들은 다 잘 됐나요?」 「카델리니가 오늘 오후에 여기로 올 거요」 줄리안은 의자에 편안히 기대 며 부드럽게 말했다. 「카델리니가 누구죠?」 「말했잖소. 날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그가 하는 업무의 종류가 정확히 뭔가요?」 「그는 보안에 관한 일을 맡고 있소」 줄리안은 다시 한번 상냥하게 설명했 다. 「알겠어요」 에밀리나는 힘없이 말하고 그녀의 커피에 집중했다.


카델리니는 정말로 그날 오후에 도착했다. 에밀리나는 아랫입술을 신경질적 으로 씹으며 창문으로 내다보았다. 차체가 긴 검은색 링컨 콘티넨털이 줄리 안의 별장 앞에 멈추어 섰다. 젊고 냉혹하게 생긴 얼굴에 검은 머리의 남자 가 가는 줄무늬 정장을 입고 차에서 내리더니 서섹스를 친근하게 토닥여 주 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에밀리나는 그의 재킷 위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불 룩한 부분이 분명 권총용 가죽 케이스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줄리안 콜터의 생활상에 관한 그녀의 모든 상상이 이제는 현실적인 근거를 갖고 구체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커튼을 내리고 턱을 치켜세우며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처음에 이 계 약을 할 때부터 그녀는 줄리안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 꺼려할 일은 없었다. 그녀의 주요 목적은 에릭 라이튼을 막는 것이었 고, 줄리안 콜터야 말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 일을 저질렀으니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옷장에서 재 킷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섰다. 어찌되었든 일은 일단 저질러져 있었다.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그녀는 길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 줄리안의 현 관에 올라섰다. 서섹스가 기분 좋게 그녀를 맞았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열어 그녀를 맞아들인 건 바로 냉혹한 표정의 그 남자였다. 「전 에밀리나 스트레튼이에요」 그녀는 분명하게 자신을 밝혔다. 「들어오시라고 하게, 조. 그녀가 바로 이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숙녀분이 라내」 줄리안의 목소리는 부엌에서 들려왔다. 「전문가가 완벽한 커피를 만드는 걸 보기에 딱 맞춰 왔군」


조 카델리니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한 걸음 물러섰다. 에밀리나는 줄 리안을 찾아 허둥지둥 부엌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녕, 줄리안. 잠깐 둘리 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줄리안이 커피를 주전자에 넣는 것을 보며 재 빨리 말을 시작했다. 그는 곁눈질로 그녀를 슬쩍 보았다. 「그러니까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행각했단 말이군. 음? 좀 카델리니를 만나보시오. 우 리가 만약 증거가 될 만한 걸 건질 수 있다면 그걸 찾아다 줄 바로 그 사람 이오」 에밀리나는 매우 정중하게 가는 줄무늬 양복을 입은 과묵한 남자와 악수했 다. 그녀는 그가 여전히 겉옷을 벗지 않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깨에 총을 메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는 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좋았다.

「처음 뵙겠어요, 카델리니 씨」 「네, 스트레튼 양」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는 아직 어린 얼굴 을 하고 있었지만 강한 자제력을 지니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잘못된 일 들을 하고도 그것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자제력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때 그녀는 줄리안의 모습에서도 그 못지않은 그런 자제 력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그냥 넘어가는 게 뭐 대수란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 에밀리나는 서둘러 대화를 시작했다. 「저 별장에 가서 무 얼 할 생각이죠, 조?」 그녀는 자신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듯 보이기를 바 라며 물었다.


「도청 장치를 하고 다음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녹 음할 생각입니다.」그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오」 에밀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줄리안은 뒤에 서서 껄껄 웃어댔다. 「무얼 기대했던 거요? 그가 그 별장에 잠복하고 있다가 라이튼이 나타나면 총부리라도 겨눌 거라 생각한 거요? 이봐요, 에미. 지금은 현대 사회요. 우 리는 최신 설비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거요. 증거를 원하오? 우리가 가져다주겠소」 「고맙군요」 그녀는 그 두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겸손하게 웅얼거 렸다. 「천만에」 줄리안은 점잔빼며 천천히 말했다. 그는 커피포트의 스위치를 누르며 계속했다.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은 나중 일이 될 거요. 필요한 경 우가 생기면」 에밀리나는 놀라 움찔했다. 「필요한 경우라니요?」그녀는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만약 라이튼의 별장에서 당신 동생을 협박하는 일을 그만 두게 할 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땐 좀더

원초적인 기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줄리안은 덤덤하게 미소지었다.

6

「그만하십시오, 보스」 줄리안의 터무니없는 말에 맨 처음 반응을 보인 사 람은 다른 아닌 카델리니였다. 「그녀를 그렇게까지 놀라게 할 필요는 없다


고 생각됩니다. 그녀가 긴장하게 만드셨습니다」그의 동정적인 시선이 에밀 리나의 잔뜩 굳은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을 때면 늘 긴장하곤 한다네」 줄리안은 냉 담하게 말했다. 「그녀 걱정은 말게, 조. 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 는지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나도 그렇고. 자네는 이만 나가서 라이튼의 집 이나 살펴보는 것이 좋겠네」 「네, 알겠습니다」 완전히 무안을 당한 조 카델리니는 조용히 일을 하러 나갔다. 에밀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그저 예의바르게 행동했던 것뿐이에 요. 그를 그렇게 떠나게 할 필요는 없었어요. 마치 하인 대하듯 하다니!」 「나는 그를 고용한 사람이요. 내가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봉급을 받는 거지. 내가 그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건 그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오」 「그럼 뭐가 중요한 거죠?」 그녀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이 그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가 앞으로 손쉬운 이 돈벌이를 계속 유 지할 수 있으냐 없느냐 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될 거요」 에밀리나의 입은 놀라서 크게 벌어졌다. 「내가 그를 대하는 태도라니! 난 그를 방금 만났어요」 「으흠. 하지만 그는 벌써 당신을 옹호하기 위해 끼어들 정도로 당신을 생 각하고 있지 않소. 에미, 그의 곁에 얼씬거리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난 그를 해고할지도 모르오」 줄리안은 침착하게 커피 잔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당신도 알겠지만 이건 미친 짓이에요. 도대체 당신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난 소유욕이 약간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요. 이 멋진 커피나 좀 들겠소?」 「아니요, 사양하겠어요!」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카델리니 씨가 지적했 듯이 난 정말 긴장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가는 군요」 그녀는 줄리안에게 등을 돌리고 성큼성큼 걸어 창문가로 갔다. 그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커피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는 그것이 화해를 요청하는 몸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녀는 표정이 풍부한 그녀의 입가에 걸리는 작은 미소를 억누를 수 없었다. 「날 비웃는 거요?」 그는 그녀의 머리에 가볍게 키스하며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당신의 행동이 가끔은 서섹스를 연상하게 하 는 경우가 있어서요. 당신이 커피 잔을 내 손에 밀어 넣는 행동은 서섹스가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내 손 바닥에 밀어넣는 모습을 생각나게 했거든 요」 그녀는 참담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당신들 둘을 어떻게 해야 하 죠?」 「쓰다듬어 주시오」 그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려 그가 손가락을 올렸다. 에밀리나는 몸을 떨었다. 「불쌍한 조를 유혹하려 했다는 말도 안 되는 비난에 대해 사과하는 건가 요?」 「아마도」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난 사과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오, 에 미」 「그럼 익숙해지도록 노력하세요」 그녀는 간결히 명령했다. 「미안하오, 에미. 그런 말로 안 되는 이유로 당신 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덤벼드는 게 아니었소」


「그럼요. 그러지 말았어야죠」 「그런 문제에 대해 난 약간 예민한 편이라 그런 거요」 「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어요」 「어젯밤의 일이 있은 후에도?」 그녀의 목덜미에 있던 그의 손길은 애무하 듯이 움직였다. 에밀리나는 침착하지 못하게 한걸음 움직여 손길에서 벗어 났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이 당신에게 어떤 권리를 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줄 리안」 「당신도 당신이 하는 말이 옳지 않다는 걸 알거요. 당신을 내 것으로 한 이상 내가 다신을 다른 남자에게 보내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을거요」 줄 리안은 엄숙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소. 난 당신을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으니까」 「정말 안심이 되는 말이군요」 그녀는 그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딱딱거렸 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 문제에 대해 히스테 리 증상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겠군요」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눈을 가늘게 했다. 「그렇게 하시오. 난 히스테릭한 여자는 참아내지 못할 거요」 「까다롭기는. 그렇죠?」 「매우 그렇소. 자, 이젠 이 소모적인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접고 다 른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겠소. 오늘 저녁 같이 해변가에 있는 작은 식당에 서 외식을 하자고 제안하고 싶소. 차는 당신 걸 써야 할 거요. 난 차를 가 지고 오지 않았거든」


「조도 함께 식사하는 건가요?」 그녀는 일부러 더욱 뻔뻔스럽게 물었다. 「조는 오늘 오후에 떠나서 내가 다시 호출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거요」 「그게 언제죠?" 그녀는 뚱하게 질문을 던졌다. 「라이튼의 집에 설치한 도청 장치에 뭔가가 포착되는 즉시. 이제 날 도발 하려는 노력은 그만하시오. 28일경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우린 서로를 괴롭힐 시간이 4일이나 있소」 「내가 계속 당신과 이렇게 어울려 다니며 당신의 지루함을 달래줄 거라 생 각했다면 말이죠…」그녀는 심하게 동요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곧 그가 한 걸음 다가와

손에 든 컵을 치우자 멈추고 말았다. 다음 순간 에밀리나

는 소리나게 키스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키스로 지난 밤의 그 격 정적인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줄리안이 물러섰을 때 둘은 가쁘게 숨을 쉬 고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늘밤엔」 「네?」 「오늘밤 초대는 오직 저녁 식사에만 해당되는 거요. 침대로가 아니라」 에밀리나는 실망해야 할지 안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안심하는 마음이 승리를 거두었다.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정했기 때문인 지도 몰랐다. 일 후 28일이 되었을 때도 그녀는 같은 말을 되뇌고 있었다. 줄리안은 그 녀와 거의 같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를 침대로 유혹하려는 그 어떤 지도 도 하지 않았다. 마을로 가는 작은 여행은 그녀에게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공공연한 시선이나 낮은 수군거림이 없어졌던 것이다.


「당신이 저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군, 허니」 줄리안은 별장 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했다. 「다들 얼마나 예의 바르게 대하는지 보았 소?」 「그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람은 당신이라구요. 난 그저 그들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알려준 것뿐이에요. 줄리안,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신경 쓰이지 않나요?」 「낮은 목소리로 수군대는 것 외 달리 날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소」 그는 간단히 지적했다. 「나는 예외군요」 에밀리나는 냉정하게 언급했다. 「나야말로 당신의 휴식 과 고독을 즐긴다는 계획에 구멍을 꿇은 사람이군요. 그렇죠?」 「당신은」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 모든 여행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어준 사람이오」 「줄리안, 정확히 당신은 왜 이런 외딴 오리건 주의 해안가에서 휴가를 보 내고 있는 거죠?」 그녀는 근심스럽게 심장이 박동 치는 소리를 들으며 대 답을 기다렸다. 「일에서 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 중이오」 그는 담 담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차라리 사실을 듣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할 거라 결론지었다. 그녀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드디어 28일이 됐네요. 오늘은 뭔가 라이튼의 죄 를 증명할 걸 찾을 수 있겠죠" 「 아마도」 「당신은 회의적인 것 같군요」


「처음부터 말했지만 당신이 꾸민 이 일은 머리가 조금만 돌아가는 사람이 라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요. 상상력이 풍부한 건 분명 매우 훌륭한 장점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왜 조를 시켜 도청 장치를 하는 수고를 한 거 죠?」

그녀는 물었다.

「난 항상 내가 맺은 거래에서 의무를 다하기 때문이오. 당신이 그렇듯이 말이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녁이 되어 줄리안이 에밀리나르 집으로 데려다 줄 때 즈음엔 라이튼의 해 변가 별장에서 특별한 조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줄리안은 에밀리나가 뭔가 놓치는 일이 없다는 걸 재확인시키기 위해 그녀를 언덕 위로 데려가 그 별 장을 잠시 살펴보도록 했다. 「애미, 오늘밤 저 아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도청장치에 연결된 테이프에 녹음될 거요. 그러니 혼자서 저 곳으로 갈 생각은 절대 마시오. 알겠소?」 그는 그녀의 현관문 앞에 서서 근엄하게 말했다. 「알아들었어요, 줄리안」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도 빠짐없이 녹음할 거요. 내일 아침까지만 참고 그대로 있어요. 내 생각이나 하고」

그는 그녀를 팔로 안으며 말했다.

그는 짧고 강렬한 키스를 한 후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에게 줄리안의 인 내심은 놀랍고 의아스러운 일이었다. 서섹스는 작별 인사로 그녀를 슬쩍 치고 갔다. 에밀리나는 치명적으로 위험 해 보이는 그와 서섹스가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줄리안의 말이 옳을까? 오늘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바라던 대로 일이 되


지 않으면 케이스를 보호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줄리안은 기꺼이 그녀를 위해 다음 단계의 조치를 취해 줄 것이다. 희미하 게 몸을 떨고는 에밀리나는 커튼을 내리고 침을 향했다. 그녀는 애초의 계 획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때 가서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골 칫덩이가 될 소지가 있는 도움을 받는 것은 무분별한 일이었다. 지금 지고 있는 채무만 해도 충분히 골머리가 아팠다. 이런 생각들로 그녀는 두 시간 동안이나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냉 장고에 먹을 게 있는지 보려고 부엌으로 가만히 걸어갔다. 달빛이 밝아서 불을 켜지 않고도 부엌 안을 볼 수 있었다. 에밀리나는 어둠 속에서 크래커에 크림치즈를 발라 우적우적 먹었다. 그때 그녀는 저만치에 서 자동차의 미등을 보았다. 누군가가 해변을 향해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분명히 차는 에릭 라이튼의 별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입에 채 들어가지 않고 있던 크림치즈와 가 꼴사납게 떨어졌고, 에밀리나의 혈관을

크래커

타고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 달

리기 시작했다. 결국 오늘밤 일이 벌이지는 것이다! 입안의 크래커를 간신히 삼키고 허둥지둥 침실로 달려가 옷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찾아 입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만 했다. 줄리안의 경고를 잊고 그녀는 현관으로 나가 절벽을 향해 출발했다. 그녀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흥분은 그녀의 머리 속에서 다른 생각을 모두 몰아 내고 있었다. 적막하게 늘어선 다른 별장의 그림자에 숨어 에밀리나는 길을 따라 가만가


만 움직였다.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자세를 낮추었다. 아 래를 자세히 내려다보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기어갔다. 그녀의 추측은 적중 했다. 아까 그녀가 보았던 차는 해변의 끝에서부터 이어진 자갈길을 따라 라이튼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축축한 밤 공기에 몸을 떨며 에밀리나는 조 마조마한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차를 타고 있는 건 에릭 라이튼 일까? 차는 별장의 뒤에 멈추어 섰다. 그녀의 동생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차 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에밀리나는 라이튼의 모습을 기억해 내려 애쓰 며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임에 틀림없었다. 그가 아니면 누가 한밤중에 이 런 장소에 나타나겠는가? 그 남자는 한 손에는 종이봉투를 다른 손에는 서 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볼 수 없다는 좌절감에 에밀리나는 조금씩 절벽을 따라 앞으로 나갔다. 조심하기만 한다면 일단 그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들키지 않고 작은 오솔길을

따라 별장 근처로 기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남

자가 들어가고 문이 닫힌 후 집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후 몸을 낮게 구부리고 절벽에서 해변을 향해 비스듬히 난 길을 조금씩 나가갔다. 그녀는 바위가 울퉁불퉁 솟아 있는 곳에서 숨을 곳을 찾았다. 절벽 기슭에 는 바위들이 돌출되어 있어 충분한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에밀리나는 집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가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모래사장을 과감히 가로질러 기어갔다.


별장을 주시하며 그녀는 추위를 쫓아내려 손으로 팔을 문지르며 몸을 움츠 렸다. 이런 상태에서 더 오래 있어야 한다면 그녀는 얼어죽을 것만 같았다. 그때 뒤에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는 추위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헸다. 그늘 아래 누군가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가 채 뒤로 돌기도 전에 단단한 손이 그녀의 입을 꽉 막고 바위 밑에 있는 모래에 그녀를 던졌다. 그 남자는 그녀 위에 같이 넘어졌지만 그의 팔은 그녀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입 닥치고 그만 꼼지락거려요. 이 못 말리는 아가씨야!」 줄리안의 목소 리는 사나웠고 그녀의 귀에 거슬렸다. 즉시 에밀리나는 음직임을 멈추었고,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줄리안은 조심스럽게 손을 치우고 천천히 일어나 앉아서 그녀의 등을 그 쪽으로 당겼 다. 「소리 내지 마시오」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에밀리나는 숨을 고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를

꽉 안고서

바위 가장자리로 서서히 나가 별장 쪽을 바라보았다. 「이런 젠장! 여기 꼼짝없이 갇히게 됐군. 해안으로 보트가 오고있소」 「보트라고요?」 「쉿, 에미. 진심으로 말하는데, 집으로 안정하게 돌아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마시오. 내말 글어요. 돌아가면 반드시 마음껏 소리지를 수밖에 없도 록 해줄 테니까. 내가 오늘밤에는 여기 오지 말하고 하지 않았소. 어떻게 이렇게 내 말을 거역할 수가 있는 거요? 오늘 기필코 내 허리띠로 당신의 그 예쁜 엉덩이 가죽이 닳아 없어지도록 해주겠소」 그녀가 뭔가 항의하는 말을 하려 할 때 그는 다시 한 번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다. 이런 빌어먹을! 그녀는 씩씩거리며 생각했 다. 해안에는 한 척의 보트가 노를 저어 오고 있었다. 라이튼은 아무 생각 없이 별장의 현관 계단을 내려와 보트에 탄 두 사람을 마나려 했다. 작은 배가 해변에 닿자마자 세 명의 남자들은 모두 별장을 향했다. 바위 뒤 에 숨어 있는 에밀리나와 줄리안은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그들의 대화를 간 신히 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무척 춥군. 커피는 가지고 왔겠지. 라이튼?」 「물론. 오는 길에 사 왔지. 댄, 너는 맨날 춥다고 난리군. 한여름에 여기 왔을 때도 춥다고 투덜거렸잖아」 「아, 그래」 세 번째 남자가 달관한 사람처럼 말했다. 「이 작은 여행에서 얻어지는 이윤을 고려해 볼 때 물건을 운반하는 동안의 이 정도 추위쯤은 난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어」 「모든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겠지?」 「오, 당연하지. 오늘밤엔 찰리가 요트에 남아 있어. 우리가 물건을 가지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찰리라구? 늘 오던 놈은 어떻게 하구?」 에밀리나는 라이튼의 걱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주 게이 바에서 마리화나 한 대 피다가 잡혀갔어」 그 남자는 낄낄거 리며 웃었다. 「이게 말이나 되냐? 2년 동안이나 들키지 않고 맹독성 마약을 갖고 이 해 안가를 왔가 갔다 했는데 그 불쌍한 녀석은 겨우 그런 하찮은 풀 따위를 피


다가 현행범으로 잡혔다고!」 「아마 경찰이 그 바를 문닫게 할 핑계만 노리고 있던 차에 녀석이 운 나쁘 게 그날 밤 그곳에 간 거겠지」 두 번째 남자가 말을 마쳤다. 「뭐, 그래도 괜찮아. 다음달이면 다시 나와서 물건 운반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세 남자들이 곧 무너질 것 같은 베란다 계단으로 올라서서 안으로 사라지자 나머지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에밀리나는 줄리안이 덮어 싸고 있는 밑에서 감히 용기를 내어 꼼지락거렸다. 「무거워요」 그녀는 속삭였다. 「튼튼한 거요. 가만히 누워 있으시오」 「하지만 다들 집으로 들어갔잖아요. 우리를 보지 못할 거예요」 「녀석들이 집안에서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잖소. 우리가 길을 건너는 도 중에 그들이 다시 해변으로 나가기로 마음먹고 나오기라도 하면 눈에 뛸 수 도 있소. 우리는 알을 품고 있는 신세요」 줄리안은

살짝 몸을 움직이는

하더니 그녀의 몸을 더욱 바짝 끌어 당겼다. 「한동안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야 하오」 「과잉 반응이에요」 그녀는 비난했다. 「아니, 난 이런 상황에서도 이토록 침착하게 처신하는 내가 놀랍기만 한 걸. 서섹스가 집안을 서성이는 소리에 일어나 녀석이 밖으로 나가려고 낑낑 거리는 걸 보고 난 뭐가 잘못된 줄 눈치챘소. 그래서 옷을 입고 당신한테 갔지. 당신이 없어졌다는 걸 알고는 어디로 당신을 찾으러 가야 할지 단번 에 떠오르더군」 그녀의 허리에 얹어 있는 그의 손이 위협적으로 조여왔다. 「에미, 당신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있소. 이 소동이 가라앉은


후에 내가 당신에게 가할 벌은 당신이 나에게 한 것보다 훨씬 심할 거란 거 요」 「협박 좀 그만해요」 그녀는 화가 나서 툴툴거렸다. 「당신한테 여기로 와 달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었단 말이에 요」 그녀는 그녀 위에서 줄리안이 화를 누르며 욕설들을 웅얼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뭔가 조리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별장의 문이 다 시 열렸다. 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트를 향하는 두 사람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손에는 좀전에 라이튼이 가 지고 온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 라이튼이 가볍게 말했다. 「다음달에 보자구」 다른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라이튼은 해변에서 보트를 밀어 내어 그들을 출발시켰다. 그는 그 작은 배가 튀어나온 절벽을 돌아 사라지 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재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몇 분 정도 흐른 뒤 집안의 불이 꺼지고 라이튼은 차를 타고 절벽의 꼭대기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사라졌다. 「됐소, 올해의 최우수 비밀 요원 아가씨. 이제 갑시다」 줄리안은 몸을 들 어 올려 일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손을 에밀리나의 허리에 단단히 감은 채 였다. 절벽의 꼭대기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승리감에 도취되어 빛나고 있었다. 「성공이에요, 줄리안! 우린 이 제 라이튼이 마약 거래나 그 비슷한 일에 별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아


낸 거예요. 케이스에게 당장 알리고 싶어 죽겠어요. 그가 라이튼에게 이 사 실을 들이대기만 하면 그 사람은 다시는 공갈 협박 따위는 할 생각도 못하 겠죠. 라이튼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그가 동생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휠씬 더 위험하잖아요」 「그렇게 간단할 거라 생각하오?」 줄리안은 그녀를 집으로 끌어당기며 거 칠게 말했다. 「라이튼 같은 악당이 자시이 이 별장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는 일에 당신 동생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관대히 넘어갈 거라고 생 각하오? 이 바보 같은 아가씨야. 당신 동생이 라이튼을 역으로 협박하려 했 다가는 자칫 더욱 엉망으로 일을 꼬이게 할 수도 있는 거요」 순간 에밀리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켰을 때 그 는 에밀리나가 놀란 얼굴로 그를 망연히 쳐다보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갈 색 눈동자는 갑작스런 공포로 커졌고, 그녀는 고목처럼 거실 한가운데에 우 뚝 서 있었다. 「드디어 건전한 공포를 느낄 시간이 왔군」 그는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서 화해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태도로 그녀와 마주보았다. 「이건 게임이 아니오. 물론 오늘밤 그 집에 라이튼이 나타났을 때 솔직히 놀라긴 했소. 당신의 그 상상력과 직관에는 만점을 주겠소. 하지만 논리적인 추리력은 빵 점이요. 오늘밤 해변가에서 정말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단 거요. 라이튼과 그 패거리들이 당신을 봤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소?」 「난 매우 조심했어요」 「아니, 당신은 매우 어리석었소」 그는 냉혹하게 정정했다. 「나한테 고함치지 말아요. 이건 애초부터 내 일이었어요. 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할 권리가 있다구요!」 「오늘밤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내가 말했잖소. 당신은 그러겠다고 약속까지 했었고」 「난 그런 적 없어요」 그녀는 울컥 화를 냈다. 「당신은 당신의 그 잘난 명령을 알아들었냐고 물었고 난 알았다고 대답했던 거예요. 그 말을 듣겠다 고 약속하지는 않았다구요」 「그렇게 말꼬투리를 잡으며 다지고 들다니 배짱이 두둑하시군」 그는 딱딱 가리며 말했다. 에밀리나는 그가 정말 많이 화났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이 악마를 진정시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봐요, 줄리안. 걱정시켜 미 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결국 모든 일이 잘되었잖아요」 「그만두시오. 서섹스한테 하듯이 몇 마디 다정한 말과 머리를 두들겨 주는 것으로 날 달래볼 생각은 집어치우시오」 「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 거라구요」 「난 지금 당신의 그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어 줄 기분이 아니오. 그자 당 신을 혼내 주고 싶을 뿐이지. 오늘 저녁에 내 의견을 확실히 전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군」 에밀리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줄리안, 나한테 손가락 하나도 댈 생각하지 말아요」 그는 의미심장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악마에게 도전하지 말았어야 지, 에미?」 그는 협박조로 천천히 말했다. 「난 결단코 당신에게 손대겠 소. 그리고 쉽게 잊지 못할 교훈을 가르쳐 주지, 아가씨. 지금부터는 내가


명령을 내리면 당신은 복종하게 될 거요」 에밀리나는 몸을 돌려 현관문으로 재빨리 도망갔다.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턱을 넘어섰다. 열려진 문으로 서섹스가 이 새로운 이 새로운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기꺼이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섰 다. 시계 바늘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뒤를 이어 줄리안이 쫓아 왔 다. 그는 그녀가 별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서섹스는 그 녀의 발치에서 춤을 추듯 따라가고 있었다. 달빛 아래서 머리를 나부끼며 달리는 그녀의 실루엣은 유혹적이었다. 줄리안은 그녀의 섹시한 엉덩이를 단순히 두들겨 주는 것 이상의 뭔가를 원하게 되었다. 그는 꾸준히 그녀와의 간격을 좁혀 나갔다. 이 추격전은 그의 모든 혈관에 지극히 남성적인 열기를 전달해 주고 있었다. 곧 그는 그녀를 덮쳤다. 저항 의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고 끌어당겨 그녀를 도로의 중앙에 세웠다. 「줄리안!」 에밀리나는 쉰 목소리로 헐떡이며 말했다. 「놔줘요. 당장 내 려놓으라고요!」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몸을 구부려 그녀를 어깨에 들쳐 멨다. 손에 그 녀의 허벅지의 부드러운 곡선이 느껴졌다. 그녀를 무릎 위에 엎어야 할지 아니면 사랑을 해야 할지 동전이라도 던져서 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별 장으로 가는 내내 그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필사적으로 그녀는 주먹을 쥐고 그의 등을 쳐다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녀가 계속 몸부림치자 그는 엉덩이를 찰싹 소리나게 때렸다.


「진정하고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요. 나한테 잡힌 몸이니까」 줄리안은 별장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그리고 문을 걷어 차 열 었다. 그녀는 불편하게 침을 꿀꺽 삼겼다. 당장이라도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상 황이었다. 줄리안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문턱을 넘어서 주저 없이 침실로 향했다. 그 는 에밀리나를 오래된 침대 한가운데에 털썩 내려뜨리고는 만족감과 기대감 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포로를 살펴보았다. 에밀리나는 반신반의하며 그를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행동에 모욕감 을 느꼈지만 어렴풋이 자신이 그를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다가올 기간이 매우 편안할 거라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줄리안은 말리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제발, 줄리안. 진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요」 그녀는 낡은 침대 커 버를 가로질러 급히 물러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당신을 화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잠깐만 다시 생각해 봐요. 그럼 오늘밤 내가 라이튼의 집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올려 그가 입고 있는 플란 넬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당신을 때려 줄까 아 니면 꼼짝 못할 때까지 사랑을 나눌까 고민했었지만, 이제 마음을 정했소」 「줄리안, 우린 애기를 해야 해요. 섹스는 이런 상황에서 답이 될 수 없어 요」 그녀는 이성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서로 아주 사소한 오 해를 하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이젠 당신 말이 옳다고 인정하겠어요」 그


녀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줄리안은 이미 셔츠를 벗어 방바닥에 던져 버리고는 바지를 벗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는 완전히 알몸이 되었다. 그녀는 놀라 정신이 나간 듯 멍하게 그의 도발적이고 매혹적인 몸을 바라보 았다. 「이리로 오시오, 에미」 그는 부드러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투로 명령했 다. 「와서 우리의 그 사소한 오해에 대해 말해 보시오. 내 이야기도 분명 히 하고 싶군」 「줄리안, 섹스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섹스는 상당한 만족감을 줄 거요. 뭐 만에 하 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면 되겠지」 「나를 때리겠다구요? 감히 그런 일을 할 순 없어요」 그는 단지 미소지을 뿐이었다. 「자, 이리로 와요, 에미」 그는 쉰 목소리 로 천천히 말했다. 「다시는 나한테서 달아날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오늘밤 난 당신을 괴롭힐 거요」 에밀리나는 숨을 들이쉬고 그의 손을 피해 벽에 기어올랐다. 「날 감히 협 박할 순 없어요」 그는 더 이상 말을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여자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한 분노한 남자, 줄리안이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어두운 눈동 자는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7


줄리안이 먼저 잡은 것은 에밀리나의 발목이었다. 그는 그녀를 잡아 잡아끌 어 침대를 지나 그의 앞으로 오게 했다. 청바지로 감싸인 그녀의 허벅지 사 이에 무릎을 꿇고 줄리안은 부드럽게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을 놓아줄 거라 생각했소, 스위트 하트?」 무한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는 서서히 그녀의 몸을 따라 내려갔다. 그의 지독히 남성적인 나체는 그 녀의 옷감을 통과해서 그 열기를 전했다. 그의 묵직한 체중을 느낄 수 있었 다. 에밀리나는 선정적으로 돌진해 오는 그의 육체가 가진 마력에서 벗어나려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꼼짝 할 수 없었다. 그는 노골적인 자세로 그녀의 다리 사이에 발을 뻗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꽉 잡고 있었다. 「정말 지독히 거만하군요, 줄리안」 그녀는 쉰 목소리로 비꼬았다. 「거만 하고 미개한 원시인 같으니라구!」 「내 안에 있는 원시인을 불러낸 건 바로 당신이오」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코로 비비며 느리게 말했다. 「계속 서로에게 모욕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지능에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겠군. 아니 어쩌 면 그 귀여운 머리에 생각하는 기능이 없는 건 아니오? 절대로 다시는 오늘 밤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거는 행동은 하지 마시오」 「이건 모두 내 계획이었고 위태롭게 했던 것도 내 목이었다고요」 그녀는 자신의 말이 그에게 얼마나 먹혀 들어갈까 의아해 하면서도 단호히 말했다. 「당신의 그 예쁜 목은 내 거요. 잊었소? 당신이 빚을 갚을 때까지 당신에 대한 모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걸!」 에밀리나는 좀전과는 다른 모욕감에 눈을 부릅떴다. 「빚! 당신이 걱정하는


것이라고는 그 빌어먹을 빚에 관한 것뿐이었군요. 당신의 빚도 갚지 않고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단 거군요? 자기만 생각하는 나쁜 사람! 그런 말을 하고도 나를 침대에 끌어들여 사랑을 나누자고 말하다니 당신은 미친 사람 이에요」 「에미, 에미」 그는 놀랍도록 부드러운 어조로 그녀를 달랬다. 「당신이 내 침대에 와 있는 이유는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내가 당신을 원 하고 또 당신도 그렇게 바라도록 내가 해줄 수 있기 때문이잖소. 지금은 그 빚에 관한 이야기는 다 잊고 사랑의 행위에 대해서만 생각합시다」 그는 격렬하고 마약같이 취하게 하는 키스로 둘의 입술에 열기를 더하며 더 이상의 항거를 잠재웠다. 그는 그녀가 그의 원초적인 면에 도취할 때가지 자신을 밀어붙였다. 줄리안은 몸을 그녀와 맞대어 그녀를 꼼짝못하게 하며 손으로 얼굴을 잡아 키스를 계속했다. 무으식적으로 항복의 한숨을 내쉬고 에밀리나는 그의 아래에서 나긋해졌다. 이 남자야 말로 그녀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정열을 풀어내 줄 수 있는 유 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그의 검은 머리카락 속에 집어넣고 다리로 그의 벗은 허리를 격정적으로 감쌌다. 순간 에밀리나는 자신이 얼마 나 이렇게 하고 싶었었는지 깨달았다. 못 견디게 매혹적인 일을 굳이 계속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아, 에미. 당신은 너무나 부드럽고 따스하고 완벽하오」 줄리안은 그녀의 반응을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당신을 잡기 위해서라면 그 짧은 길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까지라도 쫓아갈 거요. 내겐 당신이 필요해」 「그래요, 줄리안. 오, 그거예요!」


그의 단단해진 남성이 육감적으로 그녀를 눌렀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옷을 어서 벗겨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둘 사이에 피어난 정열은 순식간에 타올 랐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그의 손길과 그가 그녀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 만이 있었다. 「당신도 나를 필요로 하오?」 그는 도발적으로 속삭였다. 「제발, 줄리안」 「나에게 말해 주시오」 그는 헐떡이며 말하고는 손을 내료 그녀의 스웨터 밑단에 가져갔다. 스웨터를 들추고 그녀의 가슴을 향해 손을 미끄러뜨렸다. 「당신이 말해 주면 좋겠소」 「당신을 원해요.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잖아요」 그가 그녀의 유두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그녀의 온몸을 떨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그의 벗을 어깨를 긁었다. 「얼마나 원하는지 정확하게 듣고 싶소. 내가 이렇게 해주면 어떤 기분이 들지?」 그는 집요하게 엄지와 검지로 그녀의 활짝 핀 가슴의 봉오리를 만 졌다. 「당신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갈망해요. 줄리안. 당신을 만나기 저네는 누군 가를 원하는 일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녀가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동안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그녀 를 잠깐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녀 머리 위로 옷을 벗겼다. 거추장스런 옷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그는 자신의 가슴으로 그녀의 상체를 부숴 버릴 듯이 껴안았다. 그의 눈은 그녀의 얼굴 위에서 번뜩였고, 그녀는 숨을 헉 들이마 셨다.


「오, 세상에. 줄리안」 「당신의 유두를 느낄 수 있소」 그의 숨소리가 다급해져 갔다. 「작고 귀 여운 씨앗이 날 찌르는 것 같군」 그는 촉촉이 젖은 부드러운 혀로 그녀의 단단한 유두를 희롱하듯 애무했다. 에밀리나가 그의 감질나는 사랑의 행위로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갑자기 몸을 떼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로 돌아 갔다. 「줄리안?」 「날 위해서 옷을 마저 벗어 주겠소, 허니?」 그는 목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 「청바지 지퍼를 내리고 벗어 던져요. 당신이 나와 같이 침대로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소」 에밀리나는 주저하며 갑작스런 부끄러움을 느꼈다. 줄리안의 어두운 눈동자 가 저렇게 바라보고 있는데 손가락이 말을 들을지 의문이었다. 옷을 벗기는 문제에 관한 한 그에게 일임하는 게 더 수월할 터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손은 천천히 내려뜨려졌다.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요」 그녀는 애원조로 말하고 손가락을 떨며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당신은 날 긴장되게 해요」 「ㄷ아신은 날 거의 미치게 하고 있소」 그는 입 가장자리를 힐끗 올려 미 소지으며 응수했다. 그리고 그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조금 뒤로 물러섰다. 어색하게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고 침대 밖으로 떨어뜨리자 줄리안은 그녀의 허벅지 사이의 은밀한 곳에 손을 뻗었다. 도발적으로 그녀는 팔을 벌려 그 가 다시 가까이 다가오도록 재촉했다.


「당신의 팬티」 그는 나일론 천 조각의 가운데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 듬으며 그녀에게 상기시켰다. 그 천 조각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옷 이었다. 「잔소리꾼! 철저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녀는 벌써 그의 손에 기대어 엉 덩이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의 손길을 더욱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난 그저 당신을 애타게 원하는 남자일 뿐이오. 그리고 내 생각엔 당신도 마찬가지고. 당신의 정열을 촉촉하게 느낄 수 있소. 당신은 정말 열정의 화 신 같은 여자요. 오오, 맙소사. 에미, 나를 위해 어서 그 천 조각을 벗어 버려요」 그 명령은 그의 눈에 이글거리는 열정과 이어져 강력한 효과를 나타냈다. 에밀리나는 전보다 더욱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그녀의 마지막 옷을 기꺼이 제거하고 있었다. 「사랑스런 에미」 거의 야만적인 욕구에 따른 탄성을 지른 후 줄리안은 그 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부드러운 허벅지 사이의 은밀한 부분의 온기 속으 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에밀리나는 크게 헐떡였다. 그는 자신의 여자를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다 는 다급함으로 그녀를 취했다. 그녀는 숨김없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며 그 가 보여주는 건장한 힘을 구하며 그에게 매달렸다. 천천히 줄리안은 달구어진 열정의 리듬을 조절해 갔다. 그 리듬은 에밀리나 의 내부에 신비로운 흥분을 일으켜 그녀가 다 불타 버리게 할 것 같았다. 「꼭 잡아요, 허니」 그들의 사랑의 행위가 마침내 급류를 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줄리안이 속삭였다. 「날 꼭 잡고 가만히 몸을 맡겨봐요」


에밀리나는 그가 주는 절정의 환희에 온몸을 던졌다. 그녀는 자신이 손톱으 로 그의 어깨에 작은 반달무늬를 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줄리안 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살필 정도만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뒤로 물러설 수 없을 지경까지 그녀와 함께 급류 속으로 휘말 려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팔에서 서서히 현실로 흘려 돌아오는 에밀리나를 바라보며 그 녀의 얼굴에서 밤새 머리카락 한 가닥을 쓸어넘겼다. 「여기가 바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오, 에미. 여기 내 품속에 말이오. 다시는 나에게서 도망가 지 마시오. 나는 반드시 쫓아갈 거요」 「그럴 건가요, 줄리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줄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가 얼 마나 진정으로 그 말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 를 것이었다. 그의 의도를 알아채자마자 그녀는 도망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 은 아닐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줄리안은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녀 는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 무척 후회할지도 모르 지만 그녀는 반드시 빚을 갚을 것이다. 「혼자서 뭐가 그러게 재밌는 거죠?」 애밀리나는 그의 팔에서 그를 찬찬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기분 좋소」 그는 간단히 대꾸하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코끝에 키스했 다. 「그리고 이건 모두 당신 탓이오」 「그래요?」


「이처럼 만족스런 방법으로 내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건 늘 좋소」 그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의 눈에 나른한 쾌감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많이 해 봤나요?」 그녀는 일부러 경박한 말투로 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고 대신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생각 을 하는 거요?」 「난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난 당신이 여자를 다루는 방법으로 섹스를 사용하지 않을 거라 믿어요. 결정적 인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거란 거죠」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를 응시했다.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했소?」 「왜냐면 그건 그리 믿을 만한 무기가 아닌데다가 당신은 그런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을 만큼 경험이 많을 테니까요. 잘 알겠지만 당신이 여자에게 바 라는 헌신과 정절이라는 덕목은 섹스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어요」 「오늘 저녁 당신은 무척 철학적이군」 그는 다소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말도 옳소. 침대에서 해줄 수 있는 일로 당신이 내 말을 듣게

하거

나 심지어 겨우 몇 시간이라도 나와 함께 있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 소」 그는 그 특별한 무기를 휘두를 수 없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당신이 침대에서 멋진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의 말을 얌전히 따르겠 다고 해볼까요?」 그녀는 과감히 그를 약 올렸다. 「그렇다면 일이 간단해지겠지」 「그리고 난 자신의 욕망에 좌우되는 천박한 사람이 되는 거구요」 에밀리 나는 냉정히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고, 대신에 성실성이라는 잣대에 따라


행동하지. 그렇지 않소?」 그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무슨 뜻이에요?」 그는 서서히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조만간 설명해 주 겠소. 눈 좀 붙이시오, 에미.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음 일은 이야기합시 다」 그녀는 유순하게 하품을 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라이튼과 그의 패거리들에 대해서요?」 「그리고 당신의 동생에 대해서도. 그야말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 는지 알아야 할 사람이오. 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있 소」 「그에게 특별히 제안할 계획이라고 있나요?」 그녀는 졸린 목소리로 물었 다. 「내일 아침에 이야기합시다」 더 이상의 말없이 그녀를 바싹 감싸 안으며 줄리안은 그녀를 재웠다. 하지만 그녀가 잠든 뒤 한참 후에도 그는 어둠 속 에서 그녀가 한 말을 생각하며 깨어있었다. 에밀리나의 말이 옳았다. 그는 그녀를 다루는 데 섹스는 소용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전혀 효과가 없었 다. 그녀가 혹시 그가 그녀를 제압하려는 계획을 눈치 챈 건 아닐까? 아마 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기만도 벅차 고 있으니까. 줄리안은 천장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며 그의 계획의 위험 수위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만일의 실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줄리안이 에밀리나에게 던진 첫 마디는 그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때 그녀는 샤워를 하고 있는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얌전히 건네 고 있었다. 「우린 오늘 오후에 시애틀로 떠날 거요. 조가 도착해서 그 도 청 테이프를 들려줄 거요」 「시애틀로! 오늘?」 「에미, 이런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신의 커피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군. 노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아마도 열심히 노력해볼 동기가 부족해서 일거예요」 그녀는 그의 빗을 집어 머리를 빗으며 거울을 보고 씩 웃었다. 「어젯밤에 당신이 내 말을 거역한 데에 대해서 가볍게 넘어갔다고 해서 당 신이 커피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에 대해서도 끝까지 관대하리라고 기대하진 마시오」 그는 협박조로 말했다. 「당신이 만든 이 액체는 정말 최악이오」 「어제 당신이 날 깨끗이 사면해 준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기분 좋게 뻐 근한 근육을 뻗어 보며 불평했다. 거울에 비친 그의 목욕가운을 입은 그녀 의 모습은 부드럽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강아지 같았다. 전에 에밀리나는 자신이 그런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리라고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니만 이런 느낌이 그녀를 즐겁게 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찬 찬히 거울을 보며 서섹스처럼 이를 드러내고 얼굴을 찌푸려 우거지상을 만 들었다. 「뭐하는 거요? 자신의 얼굴에 화라도 내는 거요?」 「당신이 그 잘난 남성적인 힘으로 부셔 놓은 나의 공격성을 되찾으려 하는


거예요」 그는 무자비한 약탈자처럼 싱긋 웃었다. 「약간의 자극만 주면 난 기꺼이 당신을 다시 침실로 데려가 다시 한 번 그 공격성을 부수어 버릴 거요. 나 의 남성적인 힘은 언제나 솟아날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거 성적인 풍자인가요?」 그녀는 물었다. 「그럼. 자세히 설명해 주길 바라오?」 「천만에요. 시애틀에 가는 이유나 설명해 봐요」 그녀는 짐짓 거드름을 피 우며 명령했다. 「당신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오」 「왜죠, 줄리안?」 이번에 그녀의 목소리에선 진지함이 배어나왔다. 그녀는 걱정스럽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젯밤에 말했잖소. 다음에 취할 행동은 그가 정해야 하오. 그에게 몇 가 지 선택의 여지가 있소」 에밀리나는 빗으로 세면대를 톡톡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생각은 달 라요, 줄리안」 그는 의아한 듯 검은 눈썹 한 쪽을 치켜올렸다. 「에미, 당신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거여.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를 대신해 결정을 내를 수 없소」 그는 자상하게 말했다. 「나도 알아요. 이 다음 단계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케이스뿐이죠. 그는 이 작은 소동의 피해 당사자니까요. 그렇지만 당신이 직접 그에게 상황을 알려주거나 충고를 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그녀는 샤워기 밑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심각한 주제를 꺼내 이야기해야 하는 상


황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줄리안, 당신은 나에게 우리 거래는 당신과 나에게만 국한된다고 약속했어요」 「당신, 아랫입술을 씹어대기 시작했군. 그건 당신이 뭔가 대단히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지. 이제 서서히 당신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군」 그의 목소리는 경직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당신과 한 이 거래에 케이스 를 연관시킬까봐 염려하는 거요?」 「당신, 그럴 건가요?」 「약속했잖소, 에미. 내게 진 신세를 갚아야 하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 오」 「하지만 당신이 케이스에게 가서 이야기하고 그가 일을 매듭짓는 데 당신 의 도움을 받아들이면」 에밀리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 러니까 그가 관련되는 거라 여기지 않을 건가요?」 「절대로 아니오. 난 그 모든 일은 당신과 약속한 거래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오, 에미」 한동안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머리를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날 신뢰하는 거요, 에미? 내가 이 거래를 당신과 나만의 일로 할 거라고 믿어 주는 거요?」 다급한 어조로 그는 그녀에게 다그쳤다. 「그래요, 줄리안. 당신을 믿어요」 그녀는 진심이었다. 마피아 일당에 관 한 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려 볼 때 그녀는 그를 믿을 만한 이우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를 믿었다. 에밀리나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일상적인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언제쯤 샤워기 밑에서


나와서 그 잘난 커피를 끓여 줄 거죠?」 「오늘 아침엔 마을로 내려가 커피를 마셔야겠소」 그는 친절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직접 만들기는 귀찮다?」 「아니, 난 당신이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걸 보고 싶을 따름이 오」 「줄리안!」 그녀는 몸을 획 돌려 줄리안을 노려보았다. 그는 샤워 커튼 너 머로 고개를 쑥 집어넣었다. 「당신이 날 위해 열심히 변호하고 화내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 그는 천 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뭔가 중요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거든, 서섹스 와 당신 덕분에 난 정말 든든하다구」 에밀리나는 성난 얼굴로 샤워 커튼을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더욱 화나는 부분은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마을에는 가야 하오」 줄리안은 무심히 말하고 있었다. 「조를 부 르려면 가게에 있는 공중전화를 써야 하니까」 40분후에 에밀리나는 줄리안이 전화를 거는 동안 길에서 기다리며 한 쪽 발 끝으로 땅을 파대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는 검은색 링컨이 그의 별장 앞에 도착했다. 「오늘 아침엔 어디에서 오는 거죠, 조?」 에밀리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 다. 「무척 빨리 도착했네요」 「포틀랜드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하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의 강렬함은 말 그대로 약해 져 있었다. 그가 그의 주인의 소유물에 손댈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문득 에밀리나는 그가 줄리안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존경해서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날 아침에도 줄리안도 바로 그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 여전 히 그녀에 대한 소유욕을 노골적으로 들어내기는 했지만 그녀나 조에게 은 근한 협박이나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포틀랜드에 쭉 머물고 있나요?」 그녀는 물었다. 「지난 몇 년간 그곳으로 발령 받고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중한 어조 로 설명했다. 「발령? 오, 알겠어요」 에밀리나는 짐짓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그녀는 현대적인 마피아들이 군대와 족벌 경영 회사의 중간 형태로 운 영과고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소위 보안을 위해 사람들을 노 스웨스트에 배치할 정도라면 줄리안이 미치는 지리적 영향력은 상당히 막강 함에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은 그녀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조만간 줄리안은 자신의 그 사람이라는 것을 위해 돌아가야만 할 것이고 그 러면 이 낭만적인 이야기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 일이 마무리 된 후 다시 줄리안의 소식을 듣게 되는 건 아마도 그가 빚을 청산하 기 위해 보낼 대금 청구서를 통해서일 것이다. 에밀리나는 비관적인 생각에 몸이 떨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에미? 듣고 있는 거요?」 줄리안이 그녀의 생각을 방해했다. 그는 그녀가 딴 생각을 하는 모습에 잠깐 얼굴을 찌푸리곤 말을 계속했다. 「조가 라이


튼의 집에 내려가서 도청 장치를 가져와 우리에게 녹음된 내용을 들려 줄 거요」 에밀리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를 쭉 폈다. 이 일이야말로 그녀가 바라던 것이었다. 결국 그 테이프는 그녀가 바라던 대로 라이튼을 괴롭힐 완벽한 증거가 되어 주었다. 에밀리나와 줄리안이 지난밤 해변에서 들었단 대화들을 되살려 정 리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에릭 라이튼과 다른 사람들은 전문적인 마약 밀수 업자들로 지난 2년간 들키지 않고 서부 해안을 따라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 로 추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가 왜 공갈 협박 따위의 일을 했나하는 겁니다. 돈이 라면 여기서도 충분히 벌 수 있었을 텐데」 조는 의아한 표정으로 지적했다. 「뭐 하러 다른 위험을 자초한 걸까요?」 「질투심 때문이죠」 에밀리나는 유감의 뜻을 표하는 한숨을 쉬었다. 두 남 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에릭은 내 동생의 사회적 성공을 시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대학에서 함께 급진적인 사회 운 동을 하던 그때에도 존경과 주목을 받던 사람은 늘 에릭이 아니라 케이스였 죠」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를 보았다. 「 그 별장은 잘 정리하고 왔겠 지?」 「어디에도 손댄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해 놨습니다, 보스. 전 문제가 될 만한 증거 같은 것들은 남기고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 니다」 조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보스를 보았다.


줄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잘 알고 있지. 난 그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짓 고 싶었다네」 그녀는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집에 도청 장치를 한 건 불법적인 일이군요. 그랬죠?」 「이를테면 이 결정적인 증거를 오리건 주 경찰에 넘길 수 없다는 얘기요. 이 정보는 의심스럽게 생각했던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개인적인 자료 정 도로만 사용할 수 있소」 「경찰이라고요!」 「그렇소. 이 문제에 대한 동생에게 알리고 나서 가능한 한 빨리 이 문제를 파헤쳐 줄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지」 「하지만 줄리안」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런 위험을 감당하게 할 수는 없어요. 물론 케이스도 안 되구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됐소, 에미? 자, 이제 가서 짐이나 챙기시오」 그녀는 포틀랜드로 가는 길 내내 검은색 링컨 뒷좌석에서 줄리안과 입씨름 을 벌였다. 조는 서섹스를 앞자리에 앉히고 차를 몰았다. 비행기가 시애틀 에 도착했을 즈음에 에밀리나는 계속된 논쟁으로 목이 쉴 지경이 되었다. 줄리안은 택시를 불렀고 들은 시내로 들어갔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케이스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에요. 그가 직접 경찰 에 가서 신고한다면 그의 이름을 알리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줄리안은 차분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체포뵐까 봐 나도 경 찰에 보낼 수 없고, 또 동생도 경력을 망치면 안 되니까 안 된다 이 말이 군.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당신뿐이군, 당신을 경찰에 보내야 하는 거요?」


「나요?」 그의 말은 그녀의 입을 즉시 다물게 했다. 어느새 택시는 그녀의 동생 직장이 있는 고층 건물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회사 안내원에게 자신 의의 도착을 케이스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할 때 이미 그녀의 머리 속은 경 찰에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구상으로 꽉 차 있었다. 경찰 들은 분명히 그녀가 어떻게 라이튼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게 되 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그녀는 미친 듯이 변명 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에미!」 5분 후에 케이스 스트레튼은 승강기에서 내려 로비로 들어섰다. 에밀리나는 자랑스럽게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생은 성공한 사회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와 같은 짙은 밤색의 머리는 단정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진회색 줄무늬의 정장은 고가의 수제품이었다. 「에미, 어떻게 된 거야? 오리건에 내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케이스는 누 나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녀 옆에 있는 남자를 신중한 시선으로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난 줄리안 콜터라고 하오」 손을 내밀며 줄리안이 말했다. 「우리와 같이 카페라도 잠깐 가서 커피 한 잔 했으면 좋겠소. 의논할 일이 좀 있소」 케이스가 줄리안에게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카페로 길을 안내했다. 그 녀는 지하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과 합법적인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의 모습 이 사뭇 비슷한 것이 무척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줄리안에 대해 잘 몰랐다면 지금의 그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동생이 오르려고 애쓰는 경영 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케이스는 커피를 가지고 앉을 자리를 찾고 나서 스스럼없이 이야 기를 꺼냈다. 「휴가는 어땠지, 에미?」 그는 그녀를

날카롭게 보았다.


「줄리안은 나의 그 휴가 건에 대해 알고 있어, 케이스. 그러니 애써 다른 이야기로 돌려 말할 필요 없어」 그녀는 커피를 홀짝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케이스는 아무 말 없이 한 쪽 눈썹을 올리며 궁금하다는 듯이 그 연상의 남 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줄리안이 내막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듣기 전에 섣

불리 행동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똑똑한 녀석! 「정말 놀랍게도」 줄리안은 비꼬는 말투로 점잔빼며 말했다. 「당신 누나 의 그 얼토당토않은 계략이 유혹했소. 당신의 친구라는 라이튼은 결코 합법 적이라고 할 수 없는 목적으로 그 해변의 별장을 사용하고 있었소. 해안선 을 따라 마약을 운반하고 있었지. 정확히 한 달에 한 번씩. 다음달 28일이 면 또 선적이 있을 거요」 케이스는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닌가요?」 그가 펄쩍 뛰는 모습은 그녀에게 그의 현재 기분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내가 말했잖아!」 그녀는 딱딱거리며 말했다. 「그가 무슨 일인가 저지르 고 있다고 했을 땐 넌 믿지 않았어. 그렇지?」 「그래」 케이스는 솔직히 토로했다. 「전혀 믿지 않았어」 그는 줄리안에 게 몸을 돌렸다. 「그렇기 때문에 누나 혼자 그것에 가겠다고 했을 때 그냥 눈 겁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그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무례하게 굴지마, 케이스. 줄리안은 나를 도와줬어」 그녀는 동생을 위해 모든 이야기를 열심히 해주었다. 「식료품 쇼핑 봉투 바닥에 있는 영수증을 살펴보자고 한 것도 줄리안의 생각이었지. 그리고 라이튼과 그 패거리가 해 변에 왔던 그날 밤에도 나와 같이 있어 주었어」 「우린 네가 필요한 모든 증거를 확보했어」

그녀는 말을 마무리했다.


케이스는 줄리안의 무표정한 얼굴을 연신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알 겠어. 하지만 여전히 내 질문에는 답이 되지 못 하는군. 그렇죠? 당신은 누 구시죠, 줄리안?」 시애틀에 hckr한 이후 처음으로 줄리안의 입이 살짝 휘ㅓ졌다. 「난 당신 누나가 무단 가택 침입이라는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혀는 것을 막아내고 그 일을 대신 해치운 사람이오. 사실 난 누나가 빌린 별장 옆에 있는 집에서 짧은 휴가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소」 「당신은 무얼 하는 사람인가요?」 케이스는 그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 졌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케이스」 에밀리나는 줄리안이 궁지에 몰릴까 걱정하 며 단호히 동생의 입을 막았다. 게다가 그녀는 케이스가 줄리안의 정체를 알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줄리안은 서부 해안선 지역에 사업적인 흥 미를 갖고 있어」 그녀는 설명하지 시작했다. 「원래 집은 애리조나에 있 지. 그는 불행히도 내가 임대한 별장 옆으로 휴가를 보내러 왔을 뿐이야. 그게 다야」 케이스는 그녀와 시선을 맞추고는 당분간 이 문제를 접어 두기로 작정했다. 줄리안은 혼자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 미소를 더해갔다. 「누나가 당 신을 이 일에 끌어들였다니 현재 상황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군요. 그래, 이젠 어떻게 하실 작정이죠?」 「몇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줄리안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떤?」 「우리가 알아낸 것들을 경찰에게 알려서 다음달 28일에 라이튼의 집을 감


시하게 하는 것이 좋겠소. 만약 당신을 공갈 협박하던 그 녀석이 마약을 운 반하는 도중 경찰에 검거되게 되면 당신의 골칫덩어리는 깨끗이 제거되는 거요. 라이튼은 당신의 이름을 말해서 또 다른 불법행위를 했다는 걸 고백 하는 바보짓을 하지는 않을 거요. 마약 밀수라는 죄목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복잡할 테니 말이오」 「경찰은 많은 걸 물어볼 거예요, 줄리안」 에밀리나는 걱정스럽게 그 문제 를 다루었다. 「경찰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이?」 케이스는 그를 신중하게 쳐다보았다. 「오리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던 어느 날 밤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고 간단히 제보하기만 할 거요. 오리건 지방 경찰들은 그 정도에서부터 추적해 나가는 것도 분명히 좋아할 거요. 당신이나 에밀리나는 관련될 필요 없소」 케이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에밀리나는 줄리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고마운 말씀입니다. 줄리안」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런 관대한 제안을 하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주리안의 입술이 귀밑에 걸쳐졌다. 「당신은 비즈니스 사회에서 반드시 성 공하겠군, 케이스. 계속 질문을 퍼부어대니 말이야」 「전 아직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요?」 줄리안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자진해서 도움을 주려는 이유는 자 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가? 난 에미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거네」 그는 그

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의 동생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네」


「알겠습니다」 케이스는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누나는 무시한 채 조용 히 말했다. 그는 한동안 냉정한 눈으로 줄리안을 평가하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에밀리나는 갑자기 대화에서 자신이 제외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소위 남자들끼리의 대화가 다 끝난 거라면」 그녀는 벌컥 화를 내며 날카롭게 말 했다. 「좀더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요?」 케이스는 비딱하게 미소지었다. 「누나가 아랫입술을 깨무는 깜찍한 버릇을 시작하면 조심하세요」 그는 줄리안에게 충고했다.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죠」 「걱정스럽거나 긴장했을 때의 버릇이라고 생각했었소」 줄리안은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에밀리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누나는 뭔가 계략을 꾸밀 때 그러죠. 굉장한 상상력의 소유자거 든요」 케이스는 경고했다. 「음, 잘 알았소」

8

그날 밤 포틀랜드에서의 조의 평소보다 험상궂은 얼굴은 대하자 에밀리나는 줄리안과 함께 한 이 낭만적인 드라마가 끝나지 않기를 내심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줄리안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지, 조?」 그는 링컨의 뒷좌석에서 에밀리나는 태우며 물었다.


「오늘 오후에 애리조나 사무실에서 전언이 있었습니다. 보스」 그는 그 큰 차로 공항을 빠져나가며 조용히 말했다. 「투손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 다. 토니가 가능한 빨리 연락을 취하고 싶어합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에밀리나는 의자 깊숙이 들어앉아 창 밖을 바라보 았다. 그녀는 줄리안의 생활의 단면을 엿보고 싶지 않았다. 「토니에게 내일 아침 일찍 전화하겠다고 전하게, 조.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는 일이겠지?」 줄리안의 시선은 에밀리나의 옆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네, 그럼 오늘밤에는 특별히 볼일이 없으신가요?」 「없어. 에밀리나의 아파트까지만 데려다 주게. 투손에서 생긴 일에 대해 알기 전에 그 해변가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네」 에밀리나의 머리는 조용한 질문들로 어지러워졌다. 그녀의 아파트라니? 「오늘 하룻밤 재워 줄 수 있소, 에미? 난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잖소?」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그녀는 조가 이 대화를 다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녀는 조가 아직 자신 둘의 관계에 대해 정확히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건 빚에 대한 청구액의 첫 번째 할부금쯤 되 나요?」 그녀는 일부러 경박하게 빈정대듯 말했다. 「아니오」 그는 온화하게 말을 받았다. 「그저 우리의 관계 그러니까 우리 의 우정에 호소하는 거요」 그녀는 번뜩이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같이 집 으로 가요」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맙소, 에미」


20분 후에 그녀는 시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의 문을 조용히 열고 거실의 불을 환하게 켰다. 줄리안은 흥미롭게 실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당신의 왕성한 상상력은 줄거리를 구상하거나 계략을 세우는 것 말고도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군. 그렇지?」 그는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 는 화려한 실내 장식을 살피며 싱긋 웃었다. 「난 파스텔 톤의 희미한 색깔들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는 덤덤하게 말 하며 그의 눈길을 따라보았다. 그는 밝은 노란색의 카펫과 드문드문 광택나 는 검정색을 섞어 칠한 녹색의

가구들을 보고 있었다.

「자주 색깔은 쓰지 않았소?」 그는 차분하게 물었다. 「아쉽게도 없어요. 앉아 봐요. 가서 먹을 걸 좀 찾아볼게요. 냉장고에 먹 을 만한 게 있을 거예요」 에밀리나는 서둘러 울퉁불퉁한 벽에 흰색으로 칠 한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냉장고와 찬장의 문을 열어보았다. 「참치와 베 이글 빵으로 샌드위치 어때요?」 「근사하군」 그 순간 그의 목소리는 샌드위치가 아닌 다른 뭔가에 마음을 뺏긴 듯 다소 공허하게 들렸다. 「줄리안?」 무슨 일인가 하며 그녀는 부엌 문가로 나와서 거실 쪽을 보았 다. 그는 그녀의 타자기 앞에 서서 그녀가 한쪽에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원 고 더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물러나요」 그녀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원고는 아무도 읽지 못한다고 말했잖아요」 「뉴욕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편집장은 제외하고?」 그는 마지못해 비켜서 며 말을 마쳤다. 「나는 그 예외에 들 수 없는 거요, 스위트 하트? 난 당신 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고 더욱 많이 알기를 간절히 바라오」


「미안해요」 그녀는 씩씩하게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 규칙에 대해 다른 예외를 만들 생각 전혀 없어요」 「날 위해서인데도 말이오, 에미?」 그는 부드러운 눈길로 애타게 그녀를 졸라댔다. 「그 어떤 사람을 위해서도 안 돼요」 「왜 안 되는 거요, 허니?」 「그건 무진장 개인적인 거라고요! 그게 이유예요. 그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리 와서 참치 샌드위치를 어떻게 먹을 건지나 말해봐요」 그는 한숨을 내쉬며 걸어왔다. 「내용물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는 거 요?」 「양파를 넣을 건지 말 건지 선택할 수 있어요」 그녀는 표정 없이 말했다. 「양파 없이」 2시간 후 그는 소파에 앉아 에밀리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가 양파를 먹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지」 그는 마침내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고 나서 말했다. 「오」 그녀는 연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설명해 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나도 먹지 않았을 텐데」 「괜찮아. 당신은 맛있는 맛이 나는 걸」 그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키스하 고 자신의 무릎 위로 그녀를 바짝 당겨 보듬어 안았다. 「에미, 아침이면 난 떠나야 하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 생각엔… 투손에서 벌어진 일이 심각한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녀 는 걱정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마도 그럴 거요, 내가 떠나기 전에 제조했던 물건이 커다란 폭발을 일 으켰소」 「오, 줄리안」 그녀는 걱정스레 숨을 몰아쉬었다. 「내일 아침에 내가 돌아가면 당신은 날 조금이라도 그리워할 거요?」 그는 가볍게 물었다. 에밀리나는 그에 대한 자신의 헌신 정도가 얼마나 깊은지 느끼며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그럼요」 「좋군」 그는 만족스럽게 반응하고는 입술로 그녀의 목선을 헤매기 시작했 다. 몇 분 후 그녀는 그의 손길에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뒤틀기 시작했고 줄리안은 그녀를 안고 일어서 거침없이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두움에 싸여 내일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두려움이 깃든 다급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는 줄리안을 영원히 그녀에게 묶어 둘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만 며칠이라도 그와 함께 오리건 해변의 별장에서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다음날 아침 에밀리나는 침대 옆에 놓인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그녀는 아침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며 나른하게 움직였다. 그때 가슴에 얹혀진 줄리안의 팔의 묵직함을 깨달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잠을 쫓아내려고 애썼다. 「줄리안! 전화요!」 「나도 들었소」 그는 으르렁거렸다. 「그냥 놔둬요. 아마도 당신의 전 애 인일 거요」 「내가 시내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조뿐이에요」 에밀리나는 육감으로 전화선 너머에 있 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팔꿈치에 기대어 몸을 들고는 수화기로 손을 뻗었다. 「여보세요?」 「에미? 조입니다. 보스가 거기에 있나요? 지금 당장 할 이야기가 있습니 다」 그녀는 울적하게 전화기를 줄리안에게 건넸다. 「그래, 조. 무슨 일이지?」 그는 체념한 어조로 물었다. 「알았어, 알았다 구. 당장 전화하지」 그는 에밀리나가 침대의 가장자리로 물러나는 것을 보 았다. 그때 그는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들고 다른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 했다. 「그렇게 서둘러 나가지 마시오, 에미」 그는 상대편이 전화를 받기 를 기다리며 말했다. 「아직 나한테 아침 키스도 하지 않았잖소」 「서섹스가 따로 없군요」 그녀는 명랑하게 말하려 애쓰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내 애정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 하 며!」 「당신도 동의하는 게 좋을 걸. 자, 와서 키스해 줘, 스위트 하트」 그녀의 입술이 닿자마자 전화선 너머로 찰칵하고 전화 걸리는 소리가 났다. 마지못해 줄리안은 입술을 떼고 투손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준비를 하였 다. 에밀리나는 샤워를 하러 서둘러 샤워실로 향했다. 그녀는 그를 데려가 버릴 대화 내용을 듣고 싶지 않았다. 10분 후 줄리안이 샤워실로 들어와 그녀의 뒤에 섰을 때 그녀는 가장 안 좋 은 상황은 지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줄리안은 그녀의 허 리를 감싸고

그녀의 귀를 코로 비볐다.


「애리조나로 가야 하는 거죠, 그렇죠?」 「오늘 오후까지 그곳으로 가야만 하오, 에미. 난 가고 싶지 않아. 이렇게 빨리」 그의 말속에는 투박한 정직함이 있었다. 그녀는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말없이 그녀는 돌아서서 비누처럼 부드러운 자신의 가슴을 그에 게 기대고 손을 그의 어깨위에 올렸다. 그녀는 입술을 들어 키스했고 그 역 시 굶주린 사람처럼 그녀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조가 알아서 당신 차를 갖다 놓을 거요」 줄리안은 아침을 먹으며 조용히 말했다. 「난 당신이 일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는 그 근처에 다시 가지 않 기를 바라오」 「당신은 지독히도 두목 행세하기를 좋아하는 구요」 그녀는 투덜거렸다. 조가 비행기 표 예약을 확인하는 동안에 그들은 아침을 먹고 간단한 산책을 했다. 에밀리나나 줄리안 둘 다 작별 그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둘 은 모두 당면한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 되어서야 줄리안은 검지로 에밀리나의 턱을 가만히 들어올리고 다정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린 다 끝난 게 아니야. 당신도 알고 있지?」 「오! 줄리안, 난…」 그녀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미처 말을 끝내지 못했다. 「내일 밤에 전화하겠소」 그는 거칠게 말을 가로막고는 몸을 구부려 입술 에 스치듯 살짝 키스했다. 「집에 꼭 있어요」 「스케줄을 살펴보고 아무 일 없으며 그러죠」 그녀는 장난치듯 말했다. 하 지만 그녀의 갈색 눈동자에 맺힌 이슬은 어쩐 일인지 감출 수 없었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요」 그는 사뭇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으며 다음에야말로 반드시 당신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요」 「알겠어요, 알겠소. 약속해요. 난 여기 꼼짝 않고 있을게요, 줄리안」 그 녀는 재빨리 덧붙였고, 그는 눈을 가늘게뜨고 있었다. 그는 이런 주제로 농 담 따먹기 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더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조가 열려진 문에 모습을 드러냈고 정중하게 줄리안의 가방을 집어들었다. 에밀리나는 자신의 남자 얼굴에 주저하는 기 색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사정은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충동적으로 에밀리나는 타자기 앞으로 가서 원고를 모아들었다. 「여기」 그녀는 엉겁결에 그 뭉치를 그의 손에 건네며 말했다. 「가져가요, 비행기 안에서 읽을거리로. 잘 가요, 줄리안」 「고맙소, 에미」 그는 원고와 그녀를 번갈아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다 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소 거칠게 그녀에게 키스하고 가버렸다. 에밀리나는 그 후 한 시간은 족하게 규칙을 깨버린 자신을 몹시 책망하고 있었다. 줄리안에게 원고를 건네주다니 뭐에 홀려도 단단히 홀렸던 거다. 그녀가 이미 사태를 수습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인정하고 그 문제에 대해 냉정을 찾아갈 무렵, 줄리안은 투손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튜어디스가 지나며 그의 손에 커피를 들려주었다. 커피를 쏟을까 염려해서 원고 뭉치를 바깥쪽으로 당겨 놓았다. 그는 한참 동안 표지에 적 힌 제목을 바라보았다. 마인드 링크(마음의 연결). 점점 더해 가는 열의를 느끼며 그는 첫 페이지를 펴 보았다. 라나라는 이름의 여자 주인공이 있었다. 텔레파시와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


여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그녀는 그런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그녀는 그런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 다. 처음부터 그녀는 아웃 사이더였다. 두 사람이 마음을 연결해 이루어지 는 특별한 의사소통은 그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또한 남녀가 사랑에 빠져 함께 마음을 연결해 나누는 막연한 일체감을 갖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회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에 라나는 막강한 권력가 의 장녀를 수행하여 함께 여행을 가는 일자리를 수락했다. 이웃 혹성까지 그 어린 아가씨를 수행하여 가는 것이 임무였다. 그 아가씨는 이웃 혹성에 서 역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상류계급의 한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일은 라나에게 자신의 별을 벗어날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은하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넓은 우주 어딘 가엔 그녀처럼 초능력이 없는 것이 정상적으로 대접받는 곳이 반드시 있을 터였다. 그녀는 그런 곳을 찾아가려고 결심했다. 그러기에 앞서서 그녀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야 했다. 하지만 일은 그리 간단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들이 타고 있던 우주선이 예비 신랑의 적들에 게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아름답고 초능력도 가지고 있는 이 예비 신부를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 예비 신부를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지 니고 있는 약혼자에게 바래다주는 그녀의 임무는 매우 복잡해지기 시작했 다. 우주선이 공격을 당하고 있는 동안 라나와 그녀의 책임인 아가씨는 망 가진 구명 우주선에 몸을 피해 달아났다. 그리고 구조되기를 바라며 우주를


표류했다. 물론 그 구조가 어떤 편에서 행해지는가가 문제였다. 예비 신부 를 납치하려고 했던 약혼자의 적들이 그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컸다. 2장에 서는 구명 우주선에 구조대가 도착해 굳게 닫힌 기밀실 출입구를 열려고 하 는 부분에서부터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소용없어, 라나」 카리는 비탄에 잠겨 울먹이며 그녀의 수행원을 향해 말 했다. 「당신처럼 저 사람들도 마음이 닫혀 있어서 도무지 알 수 없어! 밖 에 몇 명이 와 있는지도 모르겠는걸!」 「그래도 우리에겐 이 광선총이 있잖아요」 라나는 지적했다. 「그리고 불 을 끄면 저들이 문을 통과해 들어 올 때 우리가 조금은 유리할 거예요. 저 문은 좁아서 한 명씩밖에 통과할 수 없거든요」 그녀는 구명선 창고에서 발 견한 여성용 무기의 가느다란 손잡이를 꼭 움켜쥐었다. 「그게 무슨 소용이야?」 카리는 머리를 내저었다. 「밖에 있는 사람은 분 명히 머리에서 발끝까지 무장하고 있을 텐데」 「하지만 이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에요, 컴퓨터 제어대 뒤로 가 있어요, 카리. 사격을 위해서는 시야를 확보해야 하니까요」 오, 태양신 맙소사. 그 녀는 한 번도 총을 쏴 본 적이 없었다. 정작 일이 닥쳤을 때 그녀는 방아쇠 를 당기기나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불을 홱 잡아 껐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쉿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육중한 우주복 을 입은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헬멧을 벗어 뒤로 넘기자 잔뜩 찌푸린 엄격한 얼굴이 들어났다. 「토란 가문의 카리 아가씨」 그는 예의를 다해 정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


다. 「전 찰입니다. 러넬 가에서 보내서 온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 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아요. 다만 낯선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 로워 있을 뿐이지요」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상 황을 리드하는 것이 그녀인 것처럼 들리게 해야 했다. 저 남자와 같은 사람 들은 쉽게 허세 부려 속이지 못할 것 같았다. 「힘든 하루였을 겁니다. 새 신부님이 초조해하시는 것도 당연하겠죠, 자, 이제 당신이 누군지 알려주셔 야 겠군요」 자신을 찰이라고 밝힌 그 남자는 옷에 부착된 불빛으로 원을 그리며 비추어 보았다. 그러다 의자에 앉아 광선총을 겨누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곤 멈칫했 다. 「아니,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그의 목소리에서 침착함은 완전히 사 라져 버렸다. 「아가씨의 여행을 수행하는 사람」 잠시 어이없는 미소를 짓고 나서 그는 평가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주시 하며 서 있었다. 「수행원이라면 항상 얌전하고 점잔빼는 타입의 사람이라 고 늘 생각해 왔는데」 「뭐 시대에 맞춰 바꾸어지는 거죠」 라나는 광선총을 흔들며 말했다. 「당 신 수하 사람을 시켜 컴퓨터로 러넬 가와 연결시켜 주세여. 난 당신이 누군 지 확인할 때까지는 당신 말을 들을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는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출입문 쪽으로 뒷걸음 쳤다. 「당신의 현재 임무가가 끝나면 날 찾아와 주겠소? 그러면 나도 자신 의 업무에 진지한 수행원을 둘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서 가기나 해요」 라나는 다소 절박한 심정으로 그를 쫓아냈다. 「가고 있소. 걱정말고 이거나 기억해 두시오. 당신이 나에게 고용되어도 지금과 같은 봉사 정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글을 읽으며 줄리안의 입술은 살짝 휘어졌다. 찰이라는 인물에는 어딘지 줄 리안을 닮은 구석이 있었다. 또한 여주인공이 우주 공간에서 모험을 시작하 는 이야기도 줄리안에게 그리 황당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에미의 이야기는 스릴과 흥미가 있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특히 줄리안을 매혹시킨 것은 에 미가 라나와 찰 사이에 일어나는 열정적인 로맨스를 다루는 솜씨였다. 그 둘은 마음을 연결하는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운명이었다. 정직과 성실성을 확인하는 도구로 마음의 연결이 사용되는 사회에서 이 둘은 옛날 식으로 서로를 무작정 믿어야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들 주위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알고 있었고, 사랑을 할때도 서로의 감정 따위를 의심해 볼 필 요도 없었다. 그저 마음을 연결해 보기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라나와 찰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에밀리나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섬세하고 깊은 애정 관계를 키워 나간다. 그 관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쌓아간 것임으로 더욱더 강하고 든든한 기 반에서 만들어졌다. 비행기가 투손에 다다를 즈음 줄리안은 그 이야기에서 그의 사랑스런 에미 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실성, 풍부한 상상력, 낭만적인 관점… 이 모든 것이 이야기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담겨 있었다. 그는 결국 그것들을


차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려 화물 수납 지역으로 걸어가서 뿌루퉁해 있는 서섹스를 찾아왔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소유해야만 했다. 에밀리나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그의 여자를 만나 기 전까지는 꽉 막힌 마음의 소유자들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 이다.

다음날 오후 포틀랜드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 계속 에밀리나는 줄리안 에게 원고를 준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화기를 통해 그녀가 들 은 것은 천국에서 들리는 듯한 뉴욕의 편집장의 목소리였다. <마음의 연결> 을 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에밀리나는 더 이상 줄리안이 그 원고를 읽었다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반짝이는 눈 으로 아파트의 벽을 그저 바라보았다. 그리고 온 맘을 다해 지금 이 자리에 줄리안이 있어서 함께 축하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섬광이 번뜩이듯 그녀는 이 지구상에서 이 멋진 사건을 함께 축하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줄리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투손에 있는 그의 전화번호조차 알지 못했다. 전화번호 안내 원도 그녀에게 줄리안 콜터라는 이름은 등록되어 있지 않다고 알려 왔다. 그날 저녁 7시가 되자 에밀리나는 준비한 15달러짜리 샴페인을 따고 캐비아 로 상을 차렸다. 스테레오엔 모차르트의 협주곡 테이프가 꽂혀 있었다. 그녀가 막 자리에 앉아 쓸쓸하지만 화려한 축하잔치를 즐기려 할 때 전화벨 이 울렸다.


「줄리안!」 그녀는 숨이 찼다. 「오, 줄리안. 책이 팔렸어요. 오늘 오후에 편집장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당신에게 전화하고 싶었는데 번호를 몰랐어 요. 동생은 LA로 출장을 가버려서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구요」 「축하하오, 스위트 하트. 하지만 난 솔직히 그리 놀랐다고 말할 수 없소」 그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난 진작에 그 책이 좋은 책이라는 걸 알 고 있었소. 아주 좋았소」 「당신 그래요?」 이건 편집장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만큼이나 그녀에게 중 요한 문제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음. 그건 온통 당신의 분위가가 묻어 있더군. 매 장마다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소?」 「오」 그녀는 간신히 말했다. 「뭐 하는 중이었소?」 「지금요? 축하하고 있었어요」 즉시 그의 목소리에서 경쾌함이 사라졌다. 「누구하고 있는거요?」 「나 혼자서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소유욕을 드러냈나?」 에밀리나는 그 말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는 당신은 무얼하고 있었나 요?」 「서섹스를 쓰다듬어 주며 저녁 뉴스를 보고 있었소. 녀석이 당신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것 같소」 「으흠, 그렇군요」 에밀리나는 약간 미심쩍은 어투로 중얼거렸다. 「아주 가정적인 풍경이겠군요」


「그럼 내가 저녁 시간에 무얼 할 거라고 상상하고 있었던거요? 「난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아니, 당신은 분명히 했을 거요. 그 왕성한 상상력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소?」 「줄리안, 지금 날 놀리는 건가요?」 「당신 곁에서 축하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여기서 서섹스나 쓰다듬어 주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 그러오」 「줄리안, 난 너무 행복해요」 그는 속삭였다. 「내일 당장 일을 그만둘 생 각이에요」 그는 웃었다. 「이제 막 책 한 권을 팔고서?」 「그 출판사에서 여성들이 읽을만한 공상과학 소설을 기회하고 있다고 편집 장이 말했어요. 내가 쓰는 글이 딱 어울리는 분야죠. 내가 쓴 다른 책도 빨 리 보고 싶다고 했어요」 「흠」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렇다면 빨리 당신 일을 처리 해 줄 에이전트를 찾아봐야겠군. 그렇지? 난 당신이 뉴욕의 출판업계를 혼 자서 상대하게 할 수 없소」 그리고 나서 그는 목소리를 풀고 말했다. 「그런데 당신 개인적인 경험도 책을 쓸 때 사용하오?」 「경우에 따라 쓸 수도 있죠. 당신 이야기를 써 볼까요?」 「저런, 천만에. 사양하겠소」 「그럼 나에게 잘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필요하다면 가벼운 공갈 협박 정도는 마다하지 않는군. 좋소. 정 그렇다면 기꺼이 당신에게 잘 하겠소. 지금 거기에 있다면 내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증명할 텐데」 「그건 또 다른 성적 풍자같군요」 그녀는 비난조로 말했다. 「야한 풍자야 말로 가장 재미있소」 「통화 내용이 점점 외설스럽게 변질돼 가는 것 같네요" 「상관없소. 우린 연인이잖소」 그는 그녀에게 납득이 가게 말했다. 그날 밤 전화를 끊고 난 후 한참 동안 에밀리나는 그 말에 대해 생각해 보 았다. 연인. 남아 있는 캐비아 접시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녀는 적어도 그 말이 자신의 경우에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줄리안 콜터를 사랑 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녀와 사랑을 나눈 그의 손길을 생각하면 그녀에 대한 욕망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싱크대로 접시를 나르며 그녀는 어깨를 경직시켰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원 하든 빚을 갚고야 말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가 빚을 다 청산한 후에도 그녀를 계속 원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어느 날 이 모든 것에 대한 결과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그녀 는 다시 한 번 전화기로 가서 케이스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다. 케이스는 그 녀의 원고가 팔린 것에 대해 듣고 싶어할 것이다. 이번에는 운이 따라 주었다. 그는 LA에 갈 때면 흔히 머무는 호텔에 투숙하 고 있었다. 그의 반응은 그녀가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그래서 일을 당장 그만두겠다고? 그렇게 쉽게?」 그는 한바탕 축하 인사 후에 킬킬거리며 말했다.


「난 글 쓰는 일에 전념하고 싶어, 케이스. 그리고 편집장도 다음 책에 대 해서 관심이 있다고 말했어」 「그래,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어. 그리고 누나는 이제 혹 편집장이 마음을 바꾸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가끔씩 식료품을 가득 가지고 날 구해 주러 가끔 씩 들르겠단 말이니?」 그녀는 비꼬았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케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누나가 제대로 먹고사는지 확인할 사람으로는 줄리안이 있잖아. 안 그 래?」 「줄리안이라고!」 그녀는 놀라 숨이 막혔다. 「그 사람이 누나를 자기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던데」 「그렇지만 그는… 그러니까 내 말은… 결혼이나 그런 거 생각하지 않는 사 람이야. 그저 같이 사는 것조차도 교려하지 않아」 에밀리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에게 항의했다. 「나한테 괜히 연막 칠 필요 없어. 난 누나 동생이라구. 잊었어? 난 누나가 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장담할 수 있어」 「오, 케이스. 그래. 난 어쩜 좋니?」 「줄리안 콜터는 자신의 소유는 잘 돌볼 수 있는 남자야」 케이스는 간결하 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누나를 원해. 그러니 당연히 그가 누나를 돌봐 줄 거야」 「누가 날 특별히 돌봐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야」


「나도 알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난 불타는 사랑과 영원한 정열을 약속해 주길 하라겠지. 하지만 남자라는 족속들은 그런 낭만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지 않아. 누나도 이제는 그걸 좀 알아야 해. 적어도 콜터같은 사 람은 그래. 이 문제에 관한 한 내 말을 믿어. 그런 타입의 남자는 좀더 원 초적인 시각에서 그런 문제를 생각하지」 「그러니까 섹스에 관련해서?」 「그래, 그것도 포함되지. 그건 그렇고 편집자가 뭐하고 할 했는지나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말해 봐. 계약서는 언제 도착한대? 선금으로 얼마나 지불할 생각이래?」 「솔직히 말하면 난 너무나 흥분해서 그런 자세한 질문들은 하지도 않았 어」 에밀리나는 웅얼거리듯 말했다. 「어서 에이전트를 찾아보는 게 좋겠군」 「줄리안도 그렇게 말했어」 「당연히 그랬겠지. 출판업계는 장밋빛 안경을 쓰고 뛰어들 만한 곳이 아니 야. 누나같이 낭만적인 사람은 그곳에서 조각조각 씹히고 말 거라는 예감이 드는걸」 「줄리안이나 너나 너무 냉소적이야」 「둘이 생각이 통한 거지. 콜터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출판업자를 협박해서 제때에 인세를 지불하게 하는 식으로? 에밀리나는 비 딱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화재를 바꾸려 했다. 식은 아직 없니?」

「케이스, 라이튼에 대한 소


「없어. 지난달에 최후통첩을 한 후에 다음달에 뭔가 일을 보러 다시 올 거 라고 했었지. 줄리안이 어제 전화를 해서 나더러 라이튼이 의심하지 않게 그가 원하는 돈을 일단 보내라고 했어. 그가 오리건 경찰에게 신고했고, 경 찰들이 28일에 그 해변가 별장을 감시하기로 했대. 계획대로만 된다면 골칫 덩어리 에릭은 11월 1일이면 내 머리 속에서 깨끗이 사라지게 될거야. 그렇 게만 되면 정말 안심인데」 그는 진심에서 우러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엉망진창이야! 콜터가 없었으면 일을 이렇게 잘 처리할 수 없었을 거야」 「이 모든 게 내 생각이었단 걸 잊지 말아줘!」 케이스는 웃었다. 「그래. 난 그 멍청한 계획이 제대로 될 리 없다고 생각 했었지. 누나의 생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는 얘기야. 그렇 지?」 「이 소동을 통해 네가 뭔가 배운 게 있다니 다행이구나」 「잘자. 누나. 에이전트 찾아보는 얘기는 잊지 말고」 케이스는 전화를 끊 었다. 에이전트는 줄리안 문제도 대신 처리해 줄까? 그녀는 흥미롭게 생각했다. 줄리안이야말로 대리인을 보내 마지막 빚을 청산하는 것에 대해 협상을 해 야 할 상대일 것이다. 그녀는 단호히 그 기발한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웠 다. 그녀에게는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줄리안에게 원하는 것은 무 엇이든 주겠다는 불공정한 약속을 이미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약속을 지켜 왔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28일이 가까워 왔다. 어느 날 오후 케이스는 전화로 자 신이 에릭에게 첫 번째 돈을 주었다고 알려왔다. 「아휴, 다음주에 마약이


가득 든 가방을 든 채로 경찰에게 잡혀가는 라이튼 녀석의 얼굴을 정말 보 고 싶어」그는 말을 맺었다. 줄리안은 거의 매일 밤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오리건 경찰들에게 했던 이 야기들에 대해 알려 주었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 인시켜 주었다. 「다음주면 모든 게 마무리 될 거요, 허니」 28일이 가까워지자 그는 말했 다. 「여기 투손에서의 일도 그때쯤이면 정리될 것 같소, 그러면 우리 시간 을 가질 수 있겠지」 그는 만족스러운 투로 말했다. 에밀리나는 심호흡을 한 후 간절한 심정으로 말했다. 「줄리안, 난 빨리 빚 을 갚아 버리고 싶어요. 계속 고민거리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요」 「걱정 말아요」 그는 냉담하게 말했다. 「내 계획표의 첫 번째 항목이 그 거요」 그날 밤 전화를 끊으며 에밀리나는 기뻐해야 할지 안심해야 할지 몰랐다. 어찌되었든 28일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에밀리나는 그녀가 빌렸던 별장으로 가서 일의 결말을 직접 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서 뭔가가 그녀를 말렸다. 그녀가 그 근처에라도 가까이 가면 줄리안은 분 명히 격노할 것이다. 그녀는 다시 글쓰는 일에 집중했다. 29일 날 아침,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다 끝났소, 에미」 줄리안의 목소리는 냉혹하고 다소 만족스럽게 들렸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경찰이 라이튼을 잡았나요?」 「그렇소. 동생에서 몇 분전에 알려줬소. 라이튼은 더 이상 협박 편지 따위 로 그를 괴롭힐 수 없소. 라이튼은 마약 운반에 대한 기소를 처리하느라 바


쁠 거요. 그리고 경찰들에 의하면 그가 빠져나올 구멍은 없다고 하오」 「고마워요, 줄리안」 「고마워할 필요 없소」 그는 투덜거렸다. 「당신이 대가를 줄 거잖소. 기 억나오?」 「물론 잊지 않았어요」 그녀는 가만히 앉아 마치 무거운 납덩어리라도 들 고 있는 양 힘겹게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여기서 처리할 일들이 마저 끝나면 그때는 우리 사이의 일을 마무리 지을 시간을 낼 수 있을 거요, 에미」 줄리안은 냉정하고 초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다음주에 제일 먼저 전화하겠소」 「서섹스에게 인사 전해 줘요」 그녀는 조용히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 다. 그녀는 눈꺼풀 안에 모인 물기를 없애기 위해 속눈썹을 몇 번이고 깜빡 거려야 했다. 그는 다음주에 빚을 청산하기 위해 그녀를 소환하려 하는 것이다. 그가 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에밀리나는 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줄리안의 빚을 갚는 일을 어서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전에는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 이다.

9

그는 그의 신경이 모두 파괴되기 정에 그 일을 해치워 버리고 싶었다. 아 니,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모든 것은 계획대로 잘 되어 가고 있었다.


에밀리나는 부르면 반드시 올 것이다. 아니야.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오라고 말할 게 아니라 와 달라고 부탁해야지. 에밀리나에게 명력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그가 출석을 요청하기만 하면 그녀는 두말없이 올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 었다. 줄리안은 폭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 자신의 손을 압지대에 올려 쭉 펼치고 보았다. 잠시 도안 그의 손가락이 떨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불쾌한 표 정으로 단호하게 두 손을 움켜쥐었다. 서서히 가죽 의자를 회전시켜서 창문 쪽으로 향했다. 그는 생각에 잠겨 14 충 사무실에 난 창밖을 응시하였다. 이 사막의 도시는 정말 아름다운 날씨 를 자랑하고 있었다. 늦가을 정도의 기온으로 햇볕이 눈부셨다. 관광객들이 꿈에 그리는 그런 날씨였다. 그렇지만 줄리안에겐 안개 낀 해변에서의 그날 밤 생각뿐이었다. 신비에 싸 인 여인이 자신의 별장을 지나갈 때 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유혹을 무리치기 는 불가능했다. 그는 아침이면 그녀가 마을로 내려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었 다. 그리고 그녀가 누군가를 어쩌면 연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궁 금해했다. 그러나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래 별장의 여자에 권리를 주 장하는 남자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그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육체적인 욕망은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가지는 감정이 그 런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었다면 그는 자신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다. 그 들을 가깝게 한 데는 단순한 섹스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전화기를 들어 그녀를 투손으로 오라고 하기를 두려워하는 이 유일까? 그는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그녀에게 빚을 갚으라는 청구 서를 보내는 걸 두려워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에밀리나는 반드시 그의 청 구서를 지불할 것이다. 그녀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결산 날짜를 늦출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의지를 다해 줄리안은 전화로 손을 뻗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감이 더 생기기 전에 어서 그녀를 투손으로 불러 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매우 천천히 공을 들여 줄리안은 에밀리나의 전화번호를 돌렸다. 그녀가 집 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그의 손은 실제로 떨고 있었다. 그 는 이 일을 더 미룰 수 없었다. 그는 전화를 끊고 다른 번호를 눌렀다. 서 부 연방 우체국이었다. 줄리안은 어쩌면 전보를 치는 것이 일을 훨씬 쉽게 해줄 수 있다고 자신에게 타일렀다. 서부 연방 우체국의 교환수에게 메시지를 불러 주는 것을 끝내고, 줄리안은 포틀랜드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조 카델리니를 불렀다. 즉시 조는 전화를 받았다. 그 누구도 줄리안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 에미를 위해서 비행기 표를 예매해 주면 좋겠네. 그녀는 투손으로 올 건데, 음, 가만있자…」 줄리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관자놀이를 손으로 문 질렀다. 「일을 정리하고 짐을 싸야 하니까 이틀 도의 시간은 주는 게 좋겠 지. 이번 주 목요일 비행기로 해주게. 그녀가 자네에게 전화해서 확인하게 하겠네」 「제가 전화해서 일정을 조정하겠습니다」


「그럴 거라 믿네. 고맙네, 조. 해변에서 일도 고마워. 28일 날 모든 일이 완벽하게 처리되었다네」 「그 정도 일이라면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줄리안은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고 책상을 일없이 두들기며 방 건너편을 바 라보았다. 이틀 후면 에미는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그의 마음을 온통 어지 럽히던 초조함을 몰아내고 줄리안은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6시, 에밀리나가 공립 도서관에서 돌아왔을 때 전보 한 장이 그 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찢어 안에 있는 전언 을 훑어보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소, 목요일 날 투손으로 오시오. 비행기 예약에 관해 서는 조에게 연락하시오. 공항에서 기다리겠소.

그녀는 천천히 얇은 전보 종이를 구겼다. 마침내 줄리안이 그녀를 소환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에밀리나는 집에 오는 길에 사 왔던 식 료품들을 내려놓고 가까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정신을 수습하려 애썼다. 모든 일이 어서 지나서 정리되기를 원했던 건 자신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 녀가 원했던 일이었다. 그녀는 빚을 갚고 나서 줄리안과의 관계가 어떤 식 으로 남게 될지 알고 싶었다.


전보에는 그녀가 이틀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녀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어서 그 정도나 더 기다려야 된다 면 다시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이 모든 일들을 끝장내야 만 했다! 충동적으로 그녀는 전화기를 들고 한 항공사의 번호를 눌렀다. 도저히 목요 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내일 당장 떠나야 했다. 에밀리나는 너무나 쉽게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어서 놀랐다. 무의식중에 그녀는 비행기 표가 매진되기를 바랬던 것일까? 뭐가 문제란 말이지? 에밀 리나는 전화를 끊으며 떨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초조하게 일어서서 뭔가 먹을 것을 찾으러 부엌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치즈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았지만 목으로 넘기는 것이 거의 불가 능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위 속에 온통 나비들이 펄럭거리며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신경쇠약에 걸린 환자가 되고 말 거라고 잔인하게 깨달았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24시간 안에 일어날 모든 일들에 그 녀의 전 생애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얼 요구할까? 채 먹지 않은 샌드위치를 손에 든 채 서 있는 에밀리나에게 마피아 조직의 활동에 대해 그녀가 읽은 모든 정보들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는 뭐든지 요구할 수 있다. 공금을 횡령하라고 하지는 않을까? 아니,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돈을 훔칠 고용주도 없지 않은가! 그녀는 2주전에 일을 그만두었다.


아마도 그는 투손에 있는 어떤 조직에 침투시킬 알려지지 않은 얼굴의 여자 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마피아의 스파이로 일하라고 요청받을 수 있단 말인 가?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들이 그녀의 마음속을 생생하게 휘젓고 지나갔고, 그 녀는 그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결국 에밀리나는 투손으로 가져갈 가방을 쌌다가 풀었다가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방 하나에서 시작했던 집은 커다란 세 개의 짐 꾸러미로 바뀌었 다. 이런 생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조가 사무실에 출근을 했을 거라 생각되는 시간쯤에 그녀는 전 화를 걸어 그를 바꾸어 달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에미. 타고 갈 비행기 편은 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조는 전 화를 받자마자 술술 이야기를 꺼냈다. 「서섹스 녀석이 당신을 학수고대하 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고마워요, 조. 그런데 줄리안의 투손 주소를 좀 알 수 있을 까요? 공항에서 그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필 요할 것 같군요」 「예? 물론 알려 드리지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가져오겠습니다」 조는 곧 돌아와 그녀에게 주소를 불러주었다. 「하지만 줄리안을 마나지 못하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는 아마 발에 방울을 달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기세니까요」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되겠군요」 에밀리나는 빈정대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러고도 남으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녀는 조


가 천천히 웃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행기 표는 목요일 날 공항 계 산대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아니면 제가 공항까지 모시고 갈까요?」 그는 빨리 덧붙였다. 「오,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에밀리나는 허둥지둥 말했다. 「친

구가 날 데려다 줄 거예요」 「좋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하십시오」 「고마워요, 조」 「줄리안의 여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가능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강조하 며 말했다. 에밀리나는 전화를 끊고 그의 마지막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줄리안의 여인 아니. 그녀는 그에게 진 부채를 청산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그 의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줄리안이 정말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면 어떡하지? 그녀는 그의 경쟁자의 잔 에 독을 넣는 따위의 임무를 상상하며 몸을 떨었다. 아니야, 줄리안은 뒷골목 악당이나 살인마가 아닐 것이다. 줄리안은 분명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그런 일에 몸담고 있을 거야. 에밀리나는 세 개의 무 거운 짐 가방을 지하실 차고에서 끌어내며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다. 투손까지 하는 비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하지만 에밀리나는 폭풍우라도 뚫 고 지나온 듯 긴장한 채로 도착했다. 그녀는 간신히 세 개의 커다란 짐 가 방을 택시에 싣고는 현대식 모텔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한 후 그녀는 자신 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다. 행동. 그녀에게는 어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필요했다. 그녀는 상황을 미


리 살펴보고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서둘러 그녀는 청바지와 셔츠를 챙겨 입고는 택시를 잡으며 모텔을 나섰다. 「이 주소로 가 주시겠어요?」 그녀는 뒷자리에 타며 요청했다. 「그럽시다」 운전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리시지는 않으실 건가요?」 「네, 그냥 그곳을 한 번 보려구요」 그녀는 자리를 고쳐 앉아서 운전사가 데려다 준 부유해 보이는 그 지역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집들은 사막에 둘 러싸인 풍경과 조화롭게 조경된 지역에 널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차는 한 집 앞을 지나며 속도를 늦췄다. 순백의 건물에 잘 꾸며진 안마당이 둘러싸고 있는 집이었다. 철제 대문은 유혹적인 정원을 보호하고 있었다. 집에 누가 있는지 알 길은 없어보였다. 「여깁니다」 운전사는 말했다. 「다시 한 번 지날까요?」 「아니에요, 한 번이면 돼요」 그녀는 뒤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집을 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운전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충분한 사전 답사를 마친 후 에밀리나는 모델 방으로 돌아가 바닥에 서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가 또다 시 택시를 부르기 전에 뭐가 음식스러운 것을로 그녀의 위를 안정시켜야 할 것 같았다. 이 중요한 재회를 대비해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세 개의 짐가방을 모두 풀어 헤치고 난 후에야 그녀는 이런 경우에 어울릴 만한 옷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결론지어야 했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청바지를 다시 주워 입었 다.


거울 앞에 서서 느슨한 매듭으로 머리를 묶어 올렸다. 옥스퍼드 대학 셔츠 와 청바지는 매우 실용적으로 보인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모 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그렇지만 메뉴판에 적힌 그 어떤 음식도 그녀의 위를 안정시키지 못할 것처 럼 보였다. 「마가리타 한 잔 주세요」 그녀는 결국 지나가던 여종업원에게 주문했다. 약간의 알코올이 그녀의 날카로워진 신경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 았다. 에밀리나는 시계를 힐긋 쳐다보았다. 6시가 자나가고 있었다. 줄리안 은 몇 시쯤 집으로 돌아올까? 20분 후 그녀는 시계를 다시 보며 줄리안의 귀가 시간이 늦어졌을 거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집으로 미리 쳐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 「마가리타 한 잔 더 드릴까요?」 종업원은 에밀리나의 테이블을 지나며 물 었다. 그거야말로 에밀리나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네, 주세요」 「감자칩도 좀 드릴까요?」 그 여자 종업원은 손님의 이상하게 빛나는 눈을 살피며 친절하게 권했다. 「그거 좋겠네요」 그녀는 좀더 유쾌한 기분으로 결정했다. 감자칩이 나오자 그녀는 세 번째 마가치타를 마시고 있었다. 술은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그녀는 세 번째 마가리타를 마시고 있었다. 술은 확실한 효 과가 있다고 그녀는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녀의 위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 온 듯 했다. 물론 그녀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으로 생각을 단순하게 하는 장점도 있었다.


「정말 멋진 저녁이었어요」 여종업원이 네 번째로 그녀 곁을 지나자 에밀 리나는 털어놓았다. 「이제 그만 가 봐야겠네요. 일을 더 미룰 이유가 없거 든요. 그렇죠?」 「네, 그러시겠죠」 종업원은 입가에 미소를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에밀리 나는 작은 탁자 뒤에서 매우 어렵게 몸을 빼내고 있었다. 「차를 가지고 오 셨나요, 손님?」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아니에요. 난 택시를 탈거예요. 아시다시피 난 이곳 투손의 지리에 깜깜 하거든요」 「그러시면 제가 택시를 불러 드릴게요, 손님」 「정말 고마워요」 에밀리나는 팁을 후하게 주고 조심조심 문을 향했다. 택시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 주소로 가주세요」 「그러지요」 젊은 운전사는 미소를 감추며 이 만취한 승객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앉은 쪽의 문이 안전하게 닫혀 있는지 확인한 후 운전사는 고급 주 택 지역을 향해 차를 몰았다. 「파티를 먼저 시작하신 모양이네요」 잠시 후 차를 어느 현대적인 집 앞에 세우며 기사가 말했다. 「파티요? 무슨 파티 말인가요?」 에밀리나는 눈을 떴다. 차는 어느새 목적 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올빼미처럼 눈을 크게 깜빡거렸다.

「오늘 여기서 파티가 열리는 것 같은데요」 운전사는 에밀리나를 보며 설 명했다. 「차들이 다음 교차점에 모두 주차되어 있잖아요」 「오, 그렇군요」 줄리안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차도에는 차가 꽉 들어차 있 었고 그덧도 부족해서 집 앞거리에까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저것 참


안 됐군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얼마죠?」 그는 가격을 말했고, 에밀리나는 차비에 팁으로 5달러를 더 얹어 주었다. 「오늘 난 아주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운전사가 너무 많다고 말하자 그녀는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러시다면 고맙습니다」 운전기사는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말하곤 그녀가 문을 여는 것을 도와주러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문을 여는 것이 힘 들었다. 「잘 가세요, 고마워요」 에밀리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당당하게 턱을 치켜세우고 그녀는 열려 있는 철제 대문으로 걸어갔다. 아름 다운 조경을 갖춘 뜰로 들어서는 그녀를 막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드러운 불빛 아래 잘 차려입은 선남선녀로 뜰은 붐볐다. 웃음소리와 담소 하는 소리는 밤공기를 타고 쉽게 전해졌다. 그녀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자 몇몇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 다. 하지만 그들아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 려 자신들의 대화로 돌아갔다. 몇몇은 그녀의 청바지를 재미있다는 듯 보았 지만 무례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려있는 유리문 근처에 한 쪽으로 비켜 선 곳에서 에밀리나는 손님들에게 접대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는 바를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그곳을 향 했다. 「마가리타 한 잔 부탁해요」 그녀는 약간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보는 바텐 더에게 점잖게 말했다. 「난 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거든요」 「이게 분명 도움이 되길 겁니다」 그는 술을 준비하며 동의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줄리안 봤어요?」 바에 등을 기대어 서서 유리잔 가장자리에 있는 소금을 핥았다. 기댈 곳이 있어서 좋았다. 그녀는 활기찬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 「몇 분전에 이곳에 오셨었죠」 바텐더는 말했다. 「그리고 아마 이쪽 방향 으로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정원의 반대편 쪽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에밀리나는 한쪽 팔꿈치로 몸을 받치고 바텐더의 시간을 따라갔다. 그곳에 줄리안이 있었다. 그는 다른 두 남자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 다. 그는 얼음을 넣은 스카치 잔을 무심히 홀짝이고 있었다. 전통적인 이브 닝 재킷과 검정색으로 보이는 바지를 입고 있는 그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에밀리나는 바텐더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요」 「물론 그가 영화배우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건 인정해요. 그렇지만 줄리안 에게 뭔가 매력이 있어요」 「여자들은 그의 권력에 끌리곤 하죠」 에밀리나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에요. 내 남동생의 친구들 중에도 힘 있는 사람들은 많았어요. 하지만 난 그들에게 한 번도 반 한 것이 없어요. 줄리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다름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 이라는 거예요. 그는 언제나 거래의 목적을 끝까지 이루어 나가죠」 그녀는 마가리타 한 모금을 더 마셨다.


「그런 점을 말하는 거라면」 바텐더는 신중하게 인정했다. 「그는 그런 명 에서 이 지역에서 명성을 얻고 있죠. 한 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해낸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요한 바텐더에게도 후한 임금을 준다고도 들었죠」 그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이 사람들은」 그녀는 모인 사람들을 손짓하며 말했다. 「모두 그의 친구 들인가요?」 「친구들도 있고 사업상 아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압니다. 콜터 씨는 이런 파티를 1년에 두 차례 정도 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차원에서 말이죠.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파티를 특별히 즐기는 것 같지 않 습니다.」 「그래요」 에밀리나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는 정말로 조용한 사람이에 요, 그렇죠?」 「글쎄요, 전 그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합니다」 남자는 허둥지둥 말했다. 「그를 바람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의 애정 생 활에 대해 비밀로 하고 공공의 눈에 띄지 않게 하죠. 당신은 그와 친한 사 이인가요?」 「난 그에게 신세를 졌어요」 에밀리나는 심각하게 설명했다. 「난 빚을 갚 으려고 여기 온 거예요」 「그러시군요」 그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대꾸했다. 그때 맹렬하게 짖어대 는 기운찬 개의 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끊어놓았다. 「이런, 맙소사. 망할 놈의 개가 풀려난 모양이군! 콜터 씨가 아시면 화내시겠는 걸. 뒷마당에 묶 여 있었는데!」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열려진 문을 쳐다보았고, 서섹스는 코너를 돌 아 뛰어 나왔다. 그 잘생긴 도베르만 견은 에밀리나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서섹스!」 줄리안의 목소리가 갑작스런 침묵으로 변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에밀리나!」 줄리안은 기뻐 어쩔 줄 모르는 개에게 깔려 있는 사람을 유심히 보았다. 서섹스는 그녀를 넘어트려서 잔디밭에 누이고는 그 위에 서 있었다. 줄리안 은 너무나 놀라 꼼짝할 수 없었다. 「그래, 착하지, 착해」 에밀리나는 숨을 헐떡이며 개를 부질없이 떠밀고 있었다. 「내려가, 이 녀석이. 좀 일어나자. 서섹스. 난 일어나야 된다구」 「서섹스! 앉아!」 줄리안의 목소리에는 어떤 논박도 용서하지 않는 단호한 어조였다. 개는 순순히 내려와 에밀리나의 뒤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오, 줄리안」 에밀리나는 힘들게 일어나 앉아 옷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군요. 당신의 개를 물리쳐 줘서 고마워요. 녀석한테 나쁜 뜻이 있 었던 건 아닐 거예요」 줄리안은 개의 옆에 사정없이 헝클어진 모습의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핀에서 빠져나온 머리는 폭포처럼 흘러 내려 그녀의 어깨 부분에서 흩 어져 있었다. 물 빠진 청바지는 그녀의 풍만한 둔부에 꼭 낄 정도로 타이트 했다. 담황색 셔츠는 풀물이 들어 있었다. 줄리안은 기쁨과 갑작스런 공포 사이에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 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적절한 때와 장소가 아닐뿐더러 적절 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녀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했다.


「에미, 이 사랑스런 사고뭉치.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요?」 「빚을 갚으려고요」 그의 품에 안겨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고 서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는 정중하게 설명했다. 「어련하시겠소」 그는 매우 냉담한 어조로 천천히 말했다. 「그거 말고 무 슨 일이 있겠소. 들어갑시다, 에미」 그는 퉁명스럽게 바텐데에게 손짓하며 덧붙였다. 「조지, 서섹스를 당장 뒷마당에 데려가 이번에는 정말 단단히 묶어 두시오」 「당장 그러겠습니다. 콜터 씨」 남자는 순순히 말하고 약간 주저하며 서섹 스의 목걸이에 손을 뻗었다. 「자, 가자」 서섹스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는 에밀리나에게 못박 혀 있었다. 바텐더는 조심스럽게 개를 끌어 보았다. 하지만 개는 그를 완전 히 무시하고 있었다. 「같이 데리고 가요, 줄리안」 에밀리나는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녀석 은 완전히 고집불통이라구요. 당신처럼」 줄리안은 불만스런 신음 소리를 냈다. 상황은 마치 그의 손안에서 벗어나 있는 듯했다. 상황은 마치 그의 손안에서 벗어나 있는 듯했다. 「놔두시오, 조지, 가자, 서섹스」 그는 성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열려 있는 문을 향 해 걸었다. 여전히 팔로 에밀리나를 감싸고 있었다. 개는 민첩한 걸음으로 둘을 따라 들어갔고,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 가 있었다. 「당신이 계획대로 하지 않은 줄 알았소」 줄리안은 할 수 없다는 듯이 한 숨을 내쉬고는 에밀리나를 천천히 커다란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한 쪽에


있는 바로 가서 스카치 한 잔을 따랐다.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 「나도 마가리타 한 잔 더 할 수 있을까요?」 줄리안이 성큼 그녀 앞에 다 가왔을 때 그녀는 기분좋게 물었다. 그를 찬찬히 바라보던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내는 매력적이었다. 스페인 스타일로 육중한 기둥을 사이사 이에 두고 있었다. 가구들도 역시 육중한 느낌을 들게 하는 것들로 모두 수 제품들로 보였다. 「안 됐지만 여긴 마가리타를 만들 재료가 없소. 와인으로도 되겠소?」 「너무 좋아요」 그녀는 맑은 하늘처럼 청명하게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에미, 당신의 앙증맞고 매력적인 두개골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거요?」 그 는 와인을 따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내가 잡은 모텔 옆에 있는 식당에서 멋진 저녁 식사를 했어요」 그녀는 평온하게 말했다.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군. 그래, 도대체 마가치타를 몇 잔이나 마신거 요?」 그는 와인 잔을 건네며 얼굴을 찌푸렸다. 「기억 안 나요. 하지만 감자칩이 있었다는 건 기억나요. 종업원이 감자칩 을 가져다주었어요」 그는 자신의 술을 한 잔 마시고 그녀의 건너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서섹 스는 둘 사이에 행복한 표정으로 편안히 누워있었다. 「당신이 술에 취해 있는 게 일을 더 쉽게 할지 아니면 더 어렵게 할지 모르겠소」 그는 눈꺼풀 을 살짝 내리고 에밀리나를 응시했다. 「오, 물론 일을 더 쉽게 풀리게 할 거예요」 그녀는 활기찬 어투로 말하며 와인 한 모금을 삼켰다. 「소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유리잔을 살피며


줄리안에게 말했다. 「무슨 소금 말이오? 와인에 아니면 우리 대화에?」 그는 낮게 투덜거렸다. 「와인에 필요하단 말이죠. 우리 대화에는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에밀리나는 얼굴을 찌뿌리고 머리를 저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는 것 도 같아요. 우리 대화를 어서 마무리지을 필요가 있어요」 「당신 말이 맞소」 그는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동의했다. 「하지만 우선 당신이 왜 이렇게 조급하게 굴었는지 설명을 듣고 싶소. 왜 목요일이 아니라 오늘 온 거요?」 「난 기다릴 수 없었어요. 난 거의 미칠 정도로 신경과민이 되어 있었다구 요. 줄리안」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주시했다. 「난 빚지고는 못 살 겠어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요?」 「빚을 갚는 거요?」 그녀는 졸린 듯 눈을 깜빡였다. 「그건 당신이 어떤 걸 원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렇잖아요?」 「그렇겠지」 그는 그의 굳은 결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녀에게 무엇을 원 하는지 선뜻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유리잔을 쥐고 있는 그의 손 가락 관절은 하얗게 되었다. 「조는 당신이 여기에 온 걸 알고 있소?」 그 는 중요한 질문은 놔두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것만을 묻고 있었다. 「아니요」 에밀리나는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가 내일 3시 10분 비행기에 탈 거로 알고 있어요. 내가 그를 속였어요」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군. 한 마디 해야겠군」 줄리안은 냉정하게 말했다.


「안돼요! 그에게 뭐라고 하지 말아요. 그의 잘못이 아니에요. 다 내가 꾸 민 일이라구요!」 「당신이 일을 꾸미는 건 뭐 그리 새삼스런 일도 아니오」 「조에게 화내서는 절대로 안 돼요. 그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그 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구요」 「알았소. 화내지 않으리다」 오늘밤 에밀리나와 언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는 생각에 줄리안은 깨끗이 항복했다.

바텐더 조지가 멋쩍은 듯이 방으로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얼음 이 떨어져서요.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그 젊은이가 허둥지둥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얼음주머니 몇 개를 들고 나오 는 동안 거실에는 완전한 침묵만이 흘렀다. 그는 에밀리나는 보고 잠깐 고 개를 까딱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상냥한 미소를 줄리안에게 보이고는 정원 으로 나갔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에요」 에밀리나는 줄리안에게 말했다. 「난 오늘 친 절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운전기사 아저씨, 식당 종업원, 바텐 더. 모두들 나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어요」 그녀는 잔을 들어올려 건배했 다. 「여기에는 온통 친절한 사람들뿐이에요」 줄리안은 그녀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는 것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 속에는 나도 포함되는 거요, 에미?」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오, 당연하죠」 그녀는 확실하게 말했다. 「그런데 와인 한 잔 더 주실래


요?」 「허니, 이미 많이 마신 걸로 아는데」 「아니에요, 아직 부족해요, 난 여전히 조금은 생각할 수 있다구요. 제발 좀 친절하게 굴어 봐요」 줄리안은그녀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는 것을 보 며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 송게는 나도 포함되는 거요, 에미?」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오, 당연하죠」 그녀는 확실하게 말했다. 「그런데 와인 한잔 더 주실래 요?」 「허니, 이미 많이 마신 걸로 아는데」 「아니에요, 아직 부족해요. 난 여전히 조금은 생각할 수 있다구요. 제발 좀 친절하게 굴어 봐요, 줄리안」 그는 마지못해 일어서서 와인 잔을 받아 갔다. 「서섹스에게 말하듯이 말할 필요 없소」 「당신네 둘은 똑같은 걸요」 「둘 다 애정에 굶주려 있다는 점에서?」 그는 와인 잔을 건네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의 심장 박동은 심하게 쿵쿵거리고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줄리안은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울컥 화가 났다.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이! 「이런 제길, 에미.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은 없었소. 원래 계획은 당신을 멋진 식당으로 데리고 가 저녁을 먹고 사막의 날씨를 즐기며 드라이브를 해서 여기로 돌아오는 거였소. 그리고 나서 코냑을 마시며…」 「그리고 날 유혹한다?」 그녀는 명랑하게 말을 마무리지었다. 「아니! 적어도 그 즉시는 아니오」 그는 솔직함이 묻어나는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아니오, 에미. 난 빚을 갚는 방법에 합의하기 전에는 당신을 유 혹하려 할 생각이 없소」 그는 잇새로 말을 내뱉었다. 「아! 드디어 우리가 문제의 핵심에 다다랐군요. 자, 당신이 나한테 원하는 게 정확히 뭐죠, 줄리안?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난 스파이 노릇이나 횡령 사 이 또는 남을 해치는 일 따위는 잘 하지 못해요. 그리고 이 말도 꼭 해 두 어야겠는데, 난 더 이상 일정한 수입원이 없어요. 그러니 당신이 원하는 게 돈이라면 내 책의 인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예요」 그녀는 아랫입 술을 씹으며 대답하게 그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줄리안은 그의 모든 신경 세포들이 긴장으로 팽팽하게 되는 것을 느끼며 그 녀를 마주보았다. 「에미」 그는 천천히 말했다. 「난 돈을 원하는 게 아니 오, 당신이 스파이가 되거나 공금횡령하기를 바라지도 않소. 내가 바라는 건 당신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오, 여기 투손으로 와서 나와 같이 살았으 면 좋겠소. 내가 필요한 건 당신이오」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예요?」 그녀는 숨 막혔다. 「그렇소」 그녀는 잠시 동안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그 외마디에 줄리안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느낌 이었다. 어찌해 볼 수 없는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 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의 깊이가 그 정도인지 미처 깨닫지 못 했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그를 거절했다. 줄리안은 그를 둘러 싸고 있는 세상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잠시 냉랭한 침묵이 거실을 감싸 돌았다. 에밀리나와 줄리안은 그저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서섹스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의아해하며 고 개를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줄리안은 혼신의 힘을 모아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 는 느릿느릿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항상 빚을 갚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 줄 알았소」 에밀리나는 하품을 하며 손으로 점잖게 입을 두드렸다. 「물론이에요, 줄리 안. 하지만 난 거래를 마무리지으려는 이유로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살지는 않을 거예요」 「알았소」 세상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줄리안은 화를 내거나 비 난하거나 아니면 그녀를 나무라고 싶었다. 그녀는 빚을 반드시 갚겠다고 굳 게 약속했었다! 그녀는 정말 진지하고 엄숙하게 약속을 어기고 있었다. 그 는 이처럼 처참하고 속수무책인 느낌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 에밀리나는 다시 한 번 하품을 하더니 와인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의자 의 한 옆으로 편안히 기대어 누었다. 긴 속눈썹이 그녀의 볼에 드리워졌다. 「난 당신과 살겠어요, 줄리안」 그녀는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하지 만 그건 거래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날 놀리 는 건 그만 둬요. 내일 아침에는 거래의 대가로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확 실히 말해 주세요」 줄리안은 벌떡 일어나 에밀리나에게 성큼 다가가다 서섹스에게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러나 그날 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에밀리나가 푹신한 가죽


소파에 편안히 기대고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10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에밀리나는 침대 옆에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줄리안을 발견했다. 「오, 세상에. 줄리안」 그녀는 심한 두통에 머리를 만지며 끙끙 괴로워했 다. 「당신은 지금 나보다 더 심한 상태로 보이는데요」 그녀는 그의 불타 는 검은 눈과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는지 온통 구겨진 셔츠와 바지를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대단한 파티였나 봐요」 「아니」 그는 냉정하게 귀를 거슬리는 소리로 말했다. 「사실 당신이 오기 전까지는 좀 지루한 파티였지. 하지만 당신과 서섹스가 활기를 불어넣었던 거요」 침대 옆에서 호위병처럼 서 있던 서섹스는 코를 에밀리나의 손에 밀어 넣었 고, 에밀리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쓰다듬어 주었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 고」 에밀리나는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오, 세상에.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아요」 줄리안은 커피를 들고 가까이 와서 그녀에게 건넸다. 「여기 있소, 도움이 될 거요」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베개에 몸을 기대고 앉아 흔들이는 손으로 커피 잔을 받았다. 줄리안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을 떠날 줄 몰랐다. 「정말 형편없는 몰골일 거라는 거 알아요, 그렇죠?」


「아름답기만 한걸」 그는 살짝 미소지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에밀리나는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위장 상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대화가 소강상태에 빠진 것을 의식하고는 에 밀리나는 매우 예의바르게 말했다. 「집이 정말 아름다워요, 줄리안」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여전히 그녀의 긴장된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에미」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소?」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어제 일을 자세히 기억해 내려 애썼다. 「왜요?」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 틈을 타서 날 유혹했 었나요?」 「물론 아니오!」 그는 거친 목소리로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거 안 됐군요.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는 한 더 불평할 일은 없는 것 같 네요」 「에미, 날 놀리는 일은 그만 두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는 어쩔 수 없이 말을 끊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쩌시려구요? 날 때리기라도 할 참인가요?」 그녀는 차분 하게 미소지었다. 「굳이 물리적인 폭력을 쓸 필요는 없어요, 줄리안. 난 이미 전쟁이라도 한바탕 치르고 난 것 같은 기분이니까요」 「이런, 에미. 당신이 어제 한 말은 진심이었소?」 그는 조바심에 손을 꼭 쥐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좀더 자세히 말해 주겠어요?」 「날 사랑한다고 했던 거 말이오!」 그는 거의 으르렁거리며 호통치듯 말하


고 나서는 곧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숨을 훅 들이쉬는 모습은 그 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에미, 당신이 어제 나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소? 그러니까 나에게 빚을 졌기 때문 에가 아니라 날 사랑하기 때문에 나와 같이 살겠다는 것 말이오」 「아, 그 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쾌활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진심이었어요」 그녀는 남자들이라는 족속들이 얼마나 여자에 대해 아무것 도 모르는지 새삼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녀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는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갈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강렬한 눈길로 그녀 를 바라보았다. 「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소」 「아마도 당신이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녀는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줄리안, 그건 날 묶어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당신 은 정말 날 도와주는 대가로 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당신이 당신은 항상 빚을 갚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소」 「사랑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그런 식으로 빚을 갚으려 했다고 해도 난 그런 척 할 수 없어요. 당신이 전에 말했잖아요. 사랑을 가 지고 속일 생각은 절대로 말라고 기억해요?」 그녀는 살살 놀리고 있었다. 「그건 섹스에 관한 이야기였소, 에미. 그건 사랑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 였단 말이오」 「그랬나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당신에게는 상관없 는 일이었던 모양이군요, 줄리안. 하지만 나에게는 그건 사랑이었어요, 당 신과 함께 할 때는 그 모든 일은 다 포함되는 거라구요. 사랑, 섹스, 당신


그리고 당신의 개까지」 「이걸 농담거리로 만들기로 작정을 한 거 같군?」 「놀랍게도 난 오늘 아침은 농담이나 할 기분이 못돼요. 지난밤에 내가 실 수를 많이 했나요?」 「아니, 스위트 하트. 바보짓을 한 사람은 나였소. 난 당신이 나와 같이 살 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그 순간에서야 당신을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당신이 거절하는 그 순간 내 모든 미래가 거울이 깨질 듯 산 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소. 난 그 전까지 당신을 거래의 대가로 나에게 오도 록 할 수 있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소. 난 나 자신에게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고 신의와 충절을 지키는 여자라는 담보를 철저히 믿고 있었소」 「충성스런 개처럼 말이죠, 으흠?」 그러나 줄리안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에 밀리나의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사랑을 고백하는 동안 미묘한 따스함이 그녀의 온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애정에 기반을 둔 관계에 대해 다소 냉소적 이라는 걸 인정하겠소. 그건 전적으로 나의 첫 번째 결혼 생활을 통해 얻게 된 것이오. 난 애정보다는 성실성에 기반을 둔 관계를 가지는 것이 나은 선 택이라고 믿게 된거요」 「그 부분에 관한 한 당신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잖아요」 에밀리나는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시며 결론지었다. 「진 정한 사랑은 약간의 모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거니까요, 그렇죠?」 「에미, 당신은 언제부터 날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던 거요? 언제 그 위험을 감수할 생각을 한 거지?」 그는 그녀의 소설속의 주인공이 사랑을 하며 감


수했던 위험을 생각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난 점점 당신에게 헌신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죠」 에밀리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 는 줄리안을 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게 바로 당신이 나에게 바랬던 것 아닌가요?」 줄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당신이 나에게 단단히 속박되어 절 대로 벗어날 수 없게 되기를 바랬소. 아니,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할 필요 없소. 나도 잊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했으며 냉혹했었는지 알 고 있으니까」 「그래요, 그렇게 심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서섹스는 당신을 좋 아하다니」 「에미! 난 지금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중인데 당신은 계속 개 이야기 나 꺼내다니!」 「당신이 전에 말했잖아요, <날 사랑해 줘요. 나의 개도 사랑해 줘요> 라고 요?」 그녀는 물었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당신이 만든 커피도 함께 사랑해야 한다는 말도 했 었지」 그는 부드럽게 상기시켰다.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요? 하지만 당신은 내 커피 맛을 그리 참아내지 못 하고 있잖아요?」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커피 문제에 관해서는 뭔가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거요. 당신과 함께 있는 한 분명 그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걸」 그는 거침없이 솔직하게


덧붙였다. 「에미, 사랑하오, 아마 처음부터 당신을 사랑했었던 것 같소. 다른 여자들에게는 느끼지 못한 그런 마음으로 당신을 원해」 「난 지난 몇 주 동안 당신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정말 많이 걱정했 어요」 그녀는 그동안의 지루했던 전화 통화를 떠올리며 털어놓았다. 「당 신이 포틀랜드를 떠나던 그때 난 우리가 어느 정도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관계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전화 상에 당신은 점점 멀어져만 갔어요」 「그건 내가 두려워했기 때문이오. 당신에게 빚의 대가로 투손으로 와서 같 이 지내자고 말을 꺼내는 그 순간이 너무나 두려웠었소」 그는 낮은 목소리 로 말했다. 「한편에서는 내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지 만 그래도 난 두려웠소, 에미. 아마 난 이미 당신에게 원하는 것들은 그런 흥정으로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오. 단순히 욕망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어젯밤까지도 그것에 구체 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 두려웠소. 에미. 당신이 하루 일찍 들이닥치는 바 람에 내 모든 계획을 망쳐 놓았다는 건 알고 있소?」 그는 으르렁거렸다. 「난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단 말이오」 「아마 하루 더 기다렸다간 내 신경이 배겨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지 적했다. 그의 입술을 비딱하게 휘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지난밤의 일로도 이미 내 신경을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나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난 당신을 침대로 옮겨 놓고 서섹스에게 지키게 하고는 손님들과 당신 사


이를 계속 왔다 갔다 했지. 난 당신이 깨어났을 때 즉시 내가 정말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그럼 잠을 자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의 헝클어진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 았다. 「잠자리에 들기는 했었지」 그는 방의 다른 쪽에 있는 넓은 침대를 가리켰 다. 「저기서 잠을 잤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거의 대부분 시간 동안 난 천장을 보고 누워 당신이 언제 깨어날까 생각하고 있었소. 어젯밤은 아마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긴 밤이었을 거요, 에미. 난 다시는 이런 일을 또 겪고 싶지않소. 나와 결혼해 주겠소, 내 사랑?」 에밀리나의 요동치던 위가 잠시 진정되었다. 「당신이 나에게 했던 마지막 제안은 같이 살자는 것이었어요」 「이 세상사는 동안 영원히 함께」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선언하듯 말했 다. 「이 말은 나와 결혼해 주면 좋겠다는 말이오, 제발, 에미!」 대답하는 대신 그녀는 그의 수척한 얼굴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당신은 정 말 깡패나 마피아가 아니죠, 그렇죠?」 「실망한 것처럼 말하는군」 그는 묘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음, 진짜 마 피아 두목과 결혼하게 되면 그건 나에게 다음 책의 훌륭한 소재를 줄 수 있 을 테니까요」 그녀는 짐짓 심각하게 말했다. 「에미! 쓸데없는 얘기로 그만 괴롭히고 어서 답이나 해줘!」 그는 소리쳤 다. 「그래요, 줄리안. 당신과 결혼할게요」 그녀는 유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그녀 손에 들린 커피 잔을 뺏어 들어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


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모아 잡았다. 「언제」 그는 얼굴을 바싹 갖다대 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 소?」 「당신과 내 동생이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일 거예요. 그리고 결정적인 건 어젯밤에 본 당신의 친절한 친구들을 보고서 당신이 평범한 사업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가와 결혼하기는 좀 지루한 타입이오?」 그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전혀요. 오히려 당신이 나에게 영감을 줄 거라고 생각이 드는 걸요, 줄리 안. 사랑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폭력 조직 두목의 부인이 되는 건 정 말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난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어서 더 좋아요」 「허니, 당신과 함께 하는 생활이 정상적인 삶이 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 는 바요」 그는 다정다감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나나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은둔하는 지하 세계의 사람 이라고 생각하게 놔뒀죠?」 그녀는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신경쓰고 싶 지 않았소. 내가 리무진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소. 그들은 조도 몇 번 봤던 것 같고. 그런 일들이 사람들에게 인상 깊었 던 모양이오」 「그런 일에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도 않을 만큼 거만한 사람이란 인상을 남겼겠죠」 「아마도」그는 애매한 태도로 동의했다. 「난 그 해변에 쉬러 갔었소. 난


혼자 있고 싶었고, 방해받고 싶지 않았었지」 「음, 그럼 당신이 하는 사업이란 건 정확하게 뭐죠, 줄리안?」 에밀리나는 신중하게 물었다. 「난 서부 지역에 호텔 체인 사업을 하고 있소」 「그리고 그 선량한 조는 정말 보안 문제를 다루는 사람인가요?」 「그렇소. 호텔의 보안 문제는 매우 복잡한 일이오. 조는 그런 일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지. 손님방에 도청 장치를 하는 그런 일은 아니오」 줄리안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에미, 처음부터 당신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오, 적어도 당신 의 그 오해를 풀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이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솔직히 당신에게 그런 일상을 일부러 심어 준 면이 없지 않아 있었소. 내 가 지하 세계와 연결된 듯하게 보이면 당신이 동생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적임자로 여길 거라 생각했었소」 「내가 당신을 지하 세계의 인물로 생각하게 놔둔 건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 아닌가요?」 그는 잠시 창백해졌다. 「스위트 하트! 그런 일은 절대로 없소. 난 그저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오. 당신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군」 줄리안은 바짝 몸을 기대어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 가까이를 배회했다. 「오, 당신을 정말 사랑해, 허니. 당신을 만난 후부터 당신 없는 삶은 생각 할 수도 없었소」 「줄리안」 그녀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부탁했다. 「지금은 키스하기에 적당


한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몸을 굳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안 된다는 거요?」 「왜냐면 지금 난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

3일 후 에밀리나는 왼손에 끼어진 단순한 디자인의 금반지를 흐뭇하게 바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반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피고 줄리안의 정원에 있 는 긴 안락의자에 앉아 나른하게 기지개를 폈다. 「당신 그거 알아요?」 남편이 한 손에 샴페인을 다른 한 손에는 유리잔 두 개를 들고 정원으로 걸어오자 그녀는 짐짓 점잔 빼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나와 결혼할 이유에 대해 몇 가지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그는 유리잔을 내려놓고 샴페인을 따르며 끙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어디 당신의 과도한 상상력이 이번에는 어떤 생각을 해냈는지 들어나 보지」 「오늘 아침에 결혼식을 하면서 들은 생각인데요. 그 예식 내내 우리는 많 은 맹세와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그건 다 진심이지 않았소?」 줄리안도 새삼스럽게 그 많은 맹세와 서약에 대해 생각하는 듯 했다. 그는 샴페인 잔을 건네고 그녀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섹스도 의자발치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걸어 다니다가 자리를 잡고 평안하게 앉았다. 「당신은 내가 결혼 서약을 반드시 지킬 사람이라는 생각에 결혼하자고 한 것 아닌가요?」 에밀리나는 남편의 품에 아늑하게 자리 잡으며 그가 혹 마 음속에 가지고 있었을 동기에 대해서 특별히 놀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혀. 그건 부수적으로 따라온 이득일 뿐이지」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정말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덧 진지해져 있었 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샴페인 한 모금을 마셨다. 그녀가 투손에 도착했던 그 운명의 밤 이후에 처음으로 입에 대는 알코올이었다. 「뭐,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이겠지. 당신 이 약속을 잘 지키는 여자라는 사실은 당신을 약속이라는 함정으로 묶어둘 계획을 세우게 했으니까. 하니만 난 결혼 예식에서 서약의 말과는 아무 상 관없이 당신과 결혼 한 거요. 나도 당신에게 헌신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 면 좋겠다고 생각했소, 에미. 요즘 같은 시대에 나의 헌신과 맹세를 표현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소. 당신은 내게 약속 같은 걸 요구하지 않으 니, 난 나의 약속과 맹세를 결혼식이라는 형식으로라도 당신에게 주고 싶었 던 거요」 「오, 줄리안」 그녀는 숨김없는 사랑으로 가만히 손을 올려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난 언제나 당신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는데 그런 약속들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죠」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뒤집어 입술을 대고 더없이 아름다운 친밀감을 드러 내며 그녀의 손목에 키스했다. 「그리고 난 아마 처음부터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아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에미.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그는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로 옮겨 평생을 함께 할 약속의 키스를 했 다. 「사랑해요, 줄리안」 다급한 몸짓으로 줄리안은 에밀리나의 손에서 유리잔을 뺏어서 자신의 잔


옆에 내려놓고는 그녀의 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에밀리나는 그의 손길에 깃 든 부드러움과 욕망 그리고 소유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목을 팔 로 감싸 안고 그를 바짝 당겼다. 그의 손길에 유두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 며 이 친밀한 행동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줄리안, 누가 보겠어요!」 「아니」 그는 으르렁거렸다. 「이곳에 있으면 우리를 볼 사람은 없어. 그 리고 누가 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서섹스가 알아서 쫓아 버릴거요」 그녀는 어쩔 수 없는 항복의 신음소리와 함께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는 다 시 한번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포겠다. 서서히 조심스런 사랑의 손 길로 그들은 욕망을 채워 나갔다. 에밀리나의 옷은 어느새 녹아 버린 듯 사 라졌고, 줄리안의 옷도 금방 없어졌다. 「당신을 원하오, 나의 아내」 그는 함께 발가벗은 채로 누워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강인한 허벅지가 그녀의 다리를 스치고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둔부에 대고 더욱 몸을 밀착시켰다. 「나도 당신을 원해요, 나의 남편」 에밀리나는 그들이 너무나 쉽게 만들어 내는 이 만족감에 기뻐하며 숨을 헐떡였다. 그는 자신의 독점욕을 채우며 그녀를 탐험하듯 온 몸을 애무해갔다. 에밀리 나는 줄리안을 마음껏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은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음탕했지만 언제나 사랑이 느껴졌다. 그들은 점점 가까이 서로에게 녹아 들어갔다. 희열에 찬 신음 소리와 함께 줄리안은 그녀의 다리 사이의 전율하는 따스함 속으로 침전되어 갔다. 「오, 세상에, 에미」 그는 그녀를 완벽하게 소유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잊


고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맙소사」 둘은 그 무엇도 둘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듯 서로에게 매달려 그 조용한 폭 풍우를 함께 경험하고 있었다. 폭풍이 지나간 후 줄리안은 에밀리나의 환영 하는 듯한 포옹 속에 기분 좋게 누워 있었다. 그는 그녀와 한 치의 틈도 없 이 붙어 있었다. 「이거 알아?」 그는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경이로움에 찬 목소리로 말 했다. 「전에는 한 번도 이렇다는 걸 몰랐다는 걸」 그녀는 꿈꾸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섹스?」 「아니」 그는 결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섹스가 어떤 거라는 건 알고 있 었지. 하지만 난 사랑을 나누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었다구」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달링. 나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을 만나가 전에는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어요」 그는 매력적으로 헝클어진 자신의 아내를 보며 장난기가 발동했다. 「난 당 신 같은 타고난 낭만주의자들은 그런 분야에 대해서는 옛날에 다 알고 있으 리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의 그 왕성한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나?」 「상상력」 에밀리나는 단언했다. 「그것은 여자들을 황홀하게 만들기도 하 죠」 그녀는 그의 무게감을 느끼며 몸을 움직였다. 그의 몸과 자신이 완벽 하게 한 몸을 이루는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줄리안?」 「으흠?」 그는 어느새 그녀의 귓불을 세심하게 입으로 잘근잘근 물고 있었 다. 「빚을 갚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음, 사실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어」 그는 머리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사랑이 담긴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이 마침내 내 입맛에 맞는 커피 를 만드는 날을 빚이 청산되는 날로 해볼까 고려 중이지. 오늘 아침 당신의 최신 작품을 맛보고 나서 생각해 낸 거야」 에밀리나는 질겁했다. 「그건 평생 걸릴 거예요. 커피에 관해서라면 당신은 정말 까다롭다구요」 그는 그녀의 귓불로 다시 몸을 숙였다. 「음, 그게 바로 내 계획이야. 당신 을 평생 동안 꽉 잡아 둘 거거든」 그의 목소리에는 쉰 음성이 베어 있었 다. 에밀리나는 그의 몸이 다시 긴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운 몸도 그의 흥분에 반응하고 있었다. 얼얼하게 느껴지는 따뜻한 감 각이 그녀의 혈관을 침투해서 불타기 시작했다. 에밀리나의 눈은 놀라서 커 졌다. 「줄리안?」 그녀는 숨을 헐떡거렸다. 「걱정 말아요, 내 사랑」 그는 다급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건 당신의 상상 속의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는 그의 사랑을 현실로 보여 주는 일 에 착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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