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법 2015 연간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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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al Report 2015: Korean Lawyers for Public Interest and Human Rights

업 과 인권 기

인권

인 권법 일

성별정체

인 장애 권

회의 자유 집

희망을 만드는 법

성적지

보고서 2015 간 연


희망법 연간보고서를 발간하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첫 활동보고서를 펴냅니다.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시는 회원님과 후원자님,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해마다 연간보고서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매번 역량을 핑계로 개소 4년을 넘겨서 펴내는 것이라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첫 보고서에서는 지난 한 해의 활동뿐만 아니라 지난 4년간의 발자취, 그리고 희망법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던 순간부터의 기록들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주요 활동 중 일부를 추려 활동의 과정과 소감도 정리하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이 초창기 희망법의 사업들을 보다 널리 알리고, 이 활동들에 대해 공감을 얻는 통로가 되길 기대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정리한다는 것은 뒤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다시 떠날 차비를 하는 것일 테지요. 희망법도 지난 4년을 되새김질하면서 이를 자양분 삼아 나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뒤늦고 서툴게 만든 연간보고서일지라도, 올해부터는 꾸준히 해마다 낼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이번 보고서에 희망법에 대한 글을 써주신 후원자 달군 회원님, 든든한 연대를 이어나가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님, 희망법이 수행한 소송의 당사자 변강석님, 희망법에서 한달간 실무수습을 하셨던 강미솔 변호사님, 전 희망법 감사 조수진 변호사님, 희망법 자문위원이신 숙명여자대학교 홍성수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를 기획하고 제작하는데 힘 쓴 모든 희망법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무쪼록 이 보고서를 보실 수 있길, 그리고 희망법을 널리 알려주시고 응원해주시길 고개 숙여 부탁드리겠습니다. 희망을 만드는 날들 함께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8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표 김동현


연간보고서 2015

희망을 만드는 법



Annual Report 2015: Korean Lawyers for Public Interest and Human Rights

업 과 인권 기

인권

인권법 일

성별정체

인 장애 권

회의 자유 집

희망을 만드는 법

성적지

보고서 2015 간 연



차례 Ⅰ. 안녕하세요. 희망법입니다 7

Ⅱ. 알려 드려요. 2015년 이야기 19

Ⅲ. 잘 했어요. 주요 활동 이야기 27

Ⅳ. 힘이 나요. 후원자들의 이야기

41

1. 희망을만드는법 의미

8

2. 희망법의 비전과 미션

9

3. 희망법의 가치와 원칙

10

4. 희망법과 함께 하는 사람들

11

5. 희망법의 주요 연혁

12

6. 희망법 영역별 활동 소개

13

1. 2011 ~ 2015년 회원 증가표

20

2. 2014년 재정 보고

21

3. 2015년 재정 보고

22

4. 2015년 주요 승소 사건

23

5. 숫자로 보는 2015년 희망법 활동

26

1. “올해의 판결”을 이끌어내기까지

28

2. 시험에 나를 맞추느냐, 나에게 시험을 맞추느냐

33

3. 어쩔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이 아니다

36

1. 달군

42

2 조수진

43

3.변강석 44

Ⅴ. 덧붙여요. 못 다한 이야기

47

4. 박김영희

45

5. 강미솔

46

6. 홍성수

46

1. 희망법을 만들기까지

48

2. 희망법이 만드는 문화, 희망법을 만드는 문화

58


6


Ⅰ. 안녕하세요. 희망법입니다.

7


1

희망을만드는법 의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은 희망을만드는법입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law)은 희망을만드는 방법(way)이 되고자 합니다. 희망법은 법이 희망이라고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법의 이름으로 인권을 탄압할때는 이에 맞서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법을 통해 인권을 조금씩 확장해나간 역사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고자 하는 ‘희망’은 인권이 모든 영역에서 중심 가치가 되고 그 누구의 인권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활동이 우리가 함께 만들고자 하는 ‘희망’을 실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8


2

희망법의 비전과 미션

희망법이 바라는 세상

희망법은 인권이 모든 영역에서 중심 가치가 되고 그 누구의 인권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희망법이 하려는 일

중점영역 희망법은 소수자 인권옹호 활동을 벌여 나가며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활동을 합니다. 목표 희망법은 인권침해적이거나 차별적인 법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나갑니다. 수단 희망법은 공익인권소송, 입법·정책적 개입, 교육 활동을 전개합니다.

9


3

희망법의 가치와 원칙

세상의 아픔에 공명하는 것이 활동의 출발점임을 인식합니다. 1 국가와 자본을 비롯한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여기고 경험·전문성·새로운

유지합니다.

관점을 함께 나눕니다.

2 법 안에 담겨 있는 인권의 가치를

6 후원자의 지원이 활동의 중요한

실현하고 때로는 법의 힘에 대해

기반임을 인식하며 책임감을

질문을 던집니다.

가집니다.

3 전문적 역량을 강화하고

7 수평적인 문화와 운영을 지향하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발굴하며

구성원의 성장과 행복을 중요하게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여깁니다.

4 희망법의 활동은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넓은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10

5 공익인권단체와의 연대를 소중히


4

희망법과 함께 하는 사람들

구성원

자문위원

김동현, 김재왕, 류민희, 박상미, 서선영, 이종희, 조혜인, 최현정, 한가람

이호중(교수), 홍성수(교수), 박주민(변호사), 송상교(변호사), 김수정(변호사), 이상희(변호사), 김종철(변호사), 염형국(변호사), 김성진(변호사), 김덕진(인권활동가), 장여경(인권활동가), 배복주(인권활동가),

고문

정민석(인권활동가)

김선수(변호사), 박래군(인권활동가) 그리고 감사

2016년 8월, 116명의 정회원님과

전 감사 김성진(변호사), 조수진(변호사),

1,038명의 후원회원, 그리고 희망법을

김영수(변호사), 이동화(인권활동가)

지지하시는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십니다.

현 감사 조숙현(변호사), 강성준(인권활동가)

11


5

희망법의 주요 연혁 2011

8 새로운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을 만들기 위한 구성원 6명 확정 12 단체의 이름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으로 정함 새 단체를 준비하는 임시사무실로 ‘인권연구소 창’에서 업무 시작 희망법의 첫 사무실인 충정로 사무실에 입주

2012

2 창립총회 희망법 최초 소송 시작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사건) 제 1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개최 (이후 매년 개최)

3 사무실 공식 개소 제주 강정에 상주변호사 파견

4 창립행사 ‘희망 심는 날’ 개최 7

2012년 자문위원회 개최

8 박상미 사무국장 업무시작

10

2013

1

제 1회 희망법 회원의 날 개최 (이후 매년 개최) 2차년도 총회

5 사법연수원생 실무수습 시작(이후 매년 시행) 7 로스쿨생 하계 실무수습 시작(이후 동계, 하계 실무수습 매년 시행) 12 성기 성형없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사건이 <한겨레 21> “올해의 판결”로 선정

2014

1

3차년도 총회

2

희망법 두 번째 충정로 사무실로 이사

3 이종희 변호사 업무 시작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6 기부금대상 민간단체 등록 11 ‘KT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회’ 공동주최

2015

1 4차년도 총회 6

희망법 최초의 어린이책 ‘법대로 하자고?’ 발간

8

LGBTI 법률가대회 공동 주최

11 서울시 혁신파크로 이사

12


6

희망법 영역별 활동 소개

‘소수자 인권옹호 활동’과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대응’을 중점영역으로 삼고 있는 희망법은 지난 4년 동안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인권팀’, ‘장애인권팀’, ‘기업과인권팀’, 세 개의 사업팀을 꾸려 각 영역에서 중점적으로 활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 밖에도 집회·시위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 옹호 활동, 인권단체의 운영에 관한 법률지원 활동, 예비법조인 대상 교육, 기타 연대·연구·자문 활동 등을 활발히 벌여 왔습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인권 영역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요건 완화를 위한 소송 대법원 판례, 예규상 성별정정을 위해서는 성기성형을 필요로 하나, 이는 성전환자에게 과도한 의료적 개입을 획일적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성별정정의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희망법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와 함께 소송을 준비하여 성기성형 없는 성전환자 남성에 대하여 성별정정 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트랜스젠더 성별정정과 관련한 상담을 진행하고,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과 인권침해 대응법에 대해서 안내하는 웹사이트 트랜스젠더를 위한 정보인권길잡이 “트랜스로드맵”(http://transroadmap.net)을 제작하였습니다. 부동산등기부에 성별을 알 수 있는 주민번호가 표시되어 성전환자의 성별변경사실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여 개선하였고, 병역판정에서 트랜스젠더에게 성기제거 등 신체훼손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며 문제제기했습니다.

동성애자

동성애혐오성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학생의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를 대리하였고, 레즈비언이라고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사례와 레즈비언 성폭력 피해 사례를 지원했습니다. 무지개행동 학생인권조례실행팀 이반스쿨에서 활동하면서 유네스코 핸드북을 발간하였습니다. 동성간의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 요건으로 규정한 군형법 추행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군형법 폐지안 발의에 관여했습니다.

13


가족구성권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결혼소송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였고, 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생활동반자법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차별금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의 일원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하였고, 서울시민인권헌장 등 지역규범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를 포함할 수 있도록 운동하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실태조사 및 차별판단지침 연구용역을 수행했습니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국제연대

캐나다의 성소수자 축제인 토론토 프라이드에 참여하고, 대만 LGBT 인권단체를 방문하며 국제연대 활동을 하였습니다. 자유권규약 국가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자유권위원회 최종견해에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견이 반영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커뮤니티 빌딩

성적지향·성별정체성법정책연구회에서 연구하면서 소송을 기획하고, LGBTI 커뮤니티 욕구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한국 LGBTI 인권 애뉴얼리포트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장애인권 영역 장애차별사례

저시력 학생용 수능시험 축소 문제지 제공 임시조치 신청

소송 및 구제

저시력 학생들은 확대독서기에 맞지 않는 A3 크기의 수능시험 문제지 때문에 불편을 호소해 왔습니다. 이에 희망법은 저시력 학생의 수능시험에서 A4 크기의 축소문제지를 제공하라는 임시조치를 신청하였고, 상대방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 요구를 수용하여 2014학년도 수능시험부터 A4 크기의 축소문제지가 제공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선거광고 수화방영 적극적 조치 청구 희망법은 2012년 대선 중앙선관위 제작 선거광고에 수화방영이 없었던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농아인협회와 함께 청각장애인 선거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소송을 기획하였습니다. 희망법은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공직선거의 선거광고에 수화방영을 요청하는 적극적 조치를 청구하였고, 중앙선관위에서 이 청구를 수용하여 2014 지방선거 중앙선관위 제작 선거광고에 수화방영이 되는

14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외 선관위 제작 기표대 수정 청구, 승강장 안전문이 없는 전철 승강장에서 추락한 시각장애인의 손해배상청구를 대리해 성과를 거두었고,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법률조력인 활동 등을 수행했습니다. 장애인권

‘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방안’,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법·정책 연구

편의제공에 대한 판단기준’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장애인법연구회에서 장애인법을 공부해 왔습니다.

장애인권교육

KBS 제3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장애차별에 대한 인권위 결정례, 대법원 판례 등을 소개하며 장애차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립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리걸클리닉과 연계하여 장애차별구제소송을 진행하며 예비 법률가를 교육했습니다. 수시로 사회복지 종사자에 대한 장애인권교육, 장애인권단체 활동가에 대한 법률교육을 해 오고 있습니다.

장애인권단체

1주일에 하루 1명의 변호사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파견하여 일상적인

연대

법률자문을 수행해 왔습니다. 사례를 바탕으로 장애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27개 장애인 단체와 함께 장애인 권리협약 민간보고서를 작성하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 시각장애인 선로추락사건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이 밖에도 장애인 시설 인권침해 개선을 위한 오순절 대책위, 형제복지원 대책위 활동 등을 했습니다.

기업과 인권 영역 직장 괴롭힘

직장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에 문제의식을 갖고 직장 괴롭힘을 조사하고

조사·연구 및

연구하는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대응 용역 경비의 상주, CCTV의 광범위한 설치 및 목적 외 활용, 파업참가 노동자에 대한 굴욕적인 대우, 노동에서의 존엄과 건강을 침해하는 지속적 괴롭힘 등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통제의 현황을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분석하기 위한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였습니다.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기업의 전략들을 분석하면서, 작업장에서의 괴롭힘이 경영전략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15


이 작업을 계기로, 외국에서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주제인 ‘작업장 내 괴롭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2013년 하반기 이후 그에 대한 실태 조사 및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외 한국기업

국제인권메커니즘의 활용, 현지 인권단체와의 연대, 현지 조사 등을 통하여

인권침해 감시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 희망법은 기업인권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합니다. 여러 단체들과 연대하여 해외 진출 한국 기업에 의해 벌어지는 현지 노동자 또는 선주민 등에 대한 인권 침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국제인권메커니즘의 활용, 현지 인권단체와의 연대 등의 방식으로 대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버마, 2014년에는 방글라데시 현지에 가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의 취지에 맞게 국가연락사무소(NCP)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NCP에 대한 연구 및 대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OECD의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다국적 기업의 인권존중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가이드라인의 홍보, 교육 및 분쟁해결을 위해 국가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국가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어서 그 실질화를 위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외 현재중공업 비정규직 사망사건 관련 투자자 압박 네트워크에 참여해 기업의 노동권 침해 사실을 알리고 해외 투자자로 하여금 투자를 꺼리게 함으로써 기업의 인권침해 개선을 유도하는 투자자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노동자 건강권과 관련해 노동자 알권리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에 참여하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하였고,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정보공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산업재해 소송을 진행해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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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 일반 영역 표현의 자유

모든 인권옹호 활동의 기초이자 출발점인 표현의 자유 옹호 활동에 희망법도 함께

옹호활동

했습니다. 대한문 앞 집회의 자유 침해 상황에 맞서 집회, 기자회견, 캠페인 등 다양한 연대활동에 참여하였고, 집회 방해를 일삼은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에 대한 고소 사건과 집회 방해를 이유로 한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대리하였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만민공동회에 대한 집회금지통고처분 취소소송과 한국공항공사의 용산유가족 및 용산범대위에 대한 집회금지 가처분 사건을 대리해 승소하였습니다. 이 밖에 2008년 촛불집회, 희망버스, 쌍용자동차 관련 집회 등 참가자에 대한 형사사건을 지원하였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했던 주민에 대한 형사사건을 변론했습니다. 홈페이지 게시글 삭제명령을 불이행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의 형사사건과 연세수동병원 HIV/AIDS 감연인 사망사건 관련 보도자료 게시물 삭제요청 사건을 지원하였습니다. 정치인을 비판했다고 모욕죄로 고소당한 피의자를 변호해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공익인권법

예비법조인 대상 교육 등을 통해 공익인권법 분야의 전문적 역량을 강화하고자

교육

하였습니다.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개최 2012년부터 매년 공익인권법 실무학교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2015년 제4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에서는 ‘공익인권소송의 기획과 수행’, ‘환경소송의 실제’, ‘정보공개청구의 활용’, ‘인권옹호와 형사절차’ 등 다양한 주제로 공익인권법 분야의 전문적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사법연수원 실무수습 매년 하계, 동계 로스쿨 실무수습과 2개월 간의 사법연수원 실무수습을 시행하여 예비법조인들에게 공익인권법의 실제를 직접 경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공익변호사 양성을 위한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하며 공익인권법운동의 확대를 모색하였습니다.

17


단체운영

인권단체들이 운영 과정에서 부딪히는 법률적 문제에 대해 자문하여 단체의 원활한

법률지원

운영을 돕고자 하였습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개인정보처리방침등규정 제정, 아름다운재단 개인정보보호규정 제정,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정관 전부개정,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정관 제정, 서울인권영화제 상영등급면제 추천 관련 법령 해석, 국제민주연대 운영비 마련사업 등을 자문했습니다.

소송과 구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접견 변호인단,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유서대필 조작 사건 재심 공동변호인단, 국가의 집회 주최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공동변호인단 등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인권옹호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진보넷과 함께 경찰의 무분별한 기지국 수사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습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옹호관 운영조례에 대한 무효소송을 대리해 승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연구와 연대

마포구 인권조례제정 활동에 함께하고, 서울시 공무원 인권행정강령 제정을 위한 연구용역에 참여했습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조사와 건설 현장 등에서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동조단식,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인권단체 성명, 국가인권위원회 정상화 촉구 등 인권문제 현안에 연대하였습니다.

18


Ⅱ. 알려 드려요. 2015년 이야기

19


1

2011 ~ 2015년 회원 증가표

2011

312

2012

141

2013

68

51 37 28 14 15 8

6

12 (월)

1

18

10

12

2

3

4

5

6

7

8

9

10 11 12

183

3

2

3

4

11 6

5

6

10

13

5

6

7

18

17

8

24 18

16

9

10

11

12

1

2

10

11

12

20 14 5

8

9

4 7

12 6

182

23 16

4

15

7

4

28

21

9

12

2015

26

2

1

17 9

5

7

1

27

18 13

2014

24

32

3

4

5

6

7

8

13

12

12

10

11

12

7

9

누적 회원 증가율 2011 2012

2013

2014

2015 635 653

453 312 317

20

476

817


2

2014년 재정 보고

2014 수입

회비 및 후원 기금 지원 사업 수입 희망법공동법률사무소 전입금 기타 수입 이월금 예비비 (원)

85.8%

288,056,489

회비 및 후원

50.3%

168,714,489

기금 지원

35.5%

119,342,000

사업 수입

9.6%

32,176,950

희망법공동법률사무소 전입금

1.3%

4,405,650

기타 수입

1.1%

3,778,494

이월금

2.2%

7,299,188

후원 수입

수입 합계

2014 지출

335,716,771

인건비 임대, 관리비 통신, 교통비 사무비 사업비 발전기금 예비비 (원)

95.3%

315,420,397

83.4%

276,072,475

임대, 관리비

9.4%

31,170,220

통신, 교통비

0.4%

1,278,490

사무비

경상비 인건비

2.1%

6,899,212

사업비

3.7%

12,128,171

발전기금 적립

0.3%

1,000,000

예비비

0.7%

2,401,930

지출 합계

330,988,698 21


3

2015년 재정 보고

2015 수입

회비 및 후원 기금 지원 사업 수입 기타 수입 이월금

(원)

85.41%

296,828,013

회비 및 후원

61.77%

214,644,513

기금 지원

23.65%

82,183,500

사업 수입

13.12%

45,590,902

기타 수입

0.03%

102,324

이월금

1.44%

4,994,673

후원 수입

수입 합계

347,515,912

2015 지출 인건비 임대, 관리비 통신, 교통비 운영비 사업비 예비비 (원)

경상비

93.29%

321,040,339

84.54%

290,941,894

임대, 관리비

4.93%

16,954,090

통신, 교통비

0.57%

1,946,110

운영비

3.25%

11,198,245

사업비

6.26%

21,543,600

예비비

0.45%

1,563,530

인건비

지출 합계

22

344,147,469


4

2015년 주요 승소 사건

2015년 희망법 주요 승소 사건을 소개합니다! 희망법은 기업과 인권 영역, 소수자 인권 영역, 그리고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영역 등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일구어냈습니다.

➊ “성전환수술 안 했으면 군대 가라?” 트랜스젠더에 대한 병역면제 취소사건과 현역입영처분사건 승소 2005년 서울지방병무청은 한 MTF(male to female, 출생시 성별이 남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여성의 성별정체성을 가 진 사람)

트랜스젠더에 대하여 '성주체성장애'를 이유로 병역을 면제해 놓고서는, 9년이 지난 2014년 병

역면제를 취소하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희망법은 서울지방병무청을 상대로 이 취소가 위법하다는 내용 의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2015년 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2015년 11월에도 희망법은 트랜스젠더임에도 현역입영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제기한 현역입영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이 사건들은 병무청의 자의적인 병역처분과 성소수자에 대한 병역기피 낙인찍기에 제동을 건 판결이었습니다.

➋ “유해 도장자재를 다루어도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도장자재공정 사내하청 노동자 산재사건 승소 2015년 8월 희망법은 도장자재 공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혈액암으로 사망한 현대중공업 사내하 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을 대리하여 업무상 질병임을 인정받는 승소판결을 이끌어 냈습니다. 기존에 도장 공정에서 벤젠 노출로 인한 혈액암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예는 있었는데요, 이 사건 판결은 도 장 공정이 아닌 도장자재 공정에서의 벤젠 노출로 인한 혈액암 발병을 직접 인정한 첫 사건이라는 데서 의의가 있습니다. 최근 2016년 3월, 항소심에서도 승소를 하였다는 기쁜 소식도 알립니다!

➌ “에버랜드, 장애인을 차별하나” 지적 장애인 놀이기구 탑승제한 차별구제소송 승소 희망법은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와 함께 에버랜드에서 ‘우주전투기’ 탑승을 거부당한 지적장애인과 그 부모를 대리하여 손해배상과 더불어 지적장애인 탑승 제한을 규정한 가이드북의 시정을 청구하는 소송 을 진행했습니다. 2015년 9월 법원은 희망법의 주장을 받아들여, 에버랜드 측에 손해를 배상할 것과 정 신적 장애인을 차별하는 가이드북의 문구를 수정할 것을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지적 장애를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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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률적인 탑승 제한이 장애인 차별임을 확인하고, 가이드북 문구가 차별조장광고에 해당할 수 있음 을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판결에 따라 에버랜드 측은 손해배상과 함께 놀이기구 안전 가이드북의 문구를 수정했습니다.

➍ “집회의 자유가 소수집단과 민주주의에 갖는 중요성” 서울, 대구 퀴어퍼레이드 집회금지통고 효력정지결정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2015년 6월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퀴어퍼레이드를 개최하기 위해 서울지방 경찰청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경찰로부터 옥외집회금지통고를 받았습니다. 희망법은 공익인권 법재단 공감과 함께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에 대한 효력정지를 신청하였고, 이를 승소로 이끌었습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집회금지통고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금지통고 역 시 효력정지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사건은 집회시위의 사전금지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헌법 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취지를 되짚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➎ “지켜지지 않은 사과와 책임의 약속” 용산참사 유가족 한국공항공사(사장 김석기)앞 연행사건 집시법위반 무죄 2013년 11월, 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가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유가족 을 만나 애도를 표하겠다는 발표에 따라 면담을 요구하던 유가족을 공사 직원이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 했었습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용산참사 유가족과 활동가 5명을 업무방해 및 집시법 위 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300만원에 약식기소했습니다. 2015년 11월 희망법은 이 사건의 정식재판에서 변호인으로 참여해 집시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받았고, 활동가 한 명에 대해서는 선고유예를, 다른 네 명에 대해서는 벌금 30만 원으로 벌금을 대폭 낮추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➏ “집회에 대한 집시법과 일반교통방해죄의 무리한 적용” 생명평화대행진 기소 사건 무죄 판결 2015년 5월 희망법은 2012년 쌍용자동차 노동자,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족 등으로 구성한 스카이 액트(SKY Act) 공동행동이 주최한 생명평화대행진에 대한 집시법위반 및 일반교통방해죄 사건을 진행하 여 피고인 4명 모두에 대한 전부 무죄판결을 이끌어 냈습니다. 검찰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던 행진에서 인도행진으로 신고했음에도 인원이 늘어 약 30분 동안 1개 차로를 점거한 채 행진하였다는 이유로 피 고인들을 집시법위반 및 일반교통방해로 기소한 바 있었습니다. 이 판결은 생명평화대행진에 대한 애초 의 수사와 기소가 무리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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➐ “회계문제를 암산으로 풀라고?” 공무원시험 장애인 편의제공 거부사건 국가인권위 진정 인용 2015년 7월 희망법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함께 공무원시험에서 뇌병변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 의제공을 거부한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손을 쓰지 못하는 한 뇌병변 장애인은 2015년 8월 치러질 세무직 공무원시험에 응시했습니다. 그는 회계학 시험과목에 대해 인사혁 신처에 계산식과 값을 대필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었습니다. 2015년 8월 인권위는 이 진정을 받아들여 인사혁신처에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메모대필을 허용하는 등의 정당한 편의 를 제공할 것과 향후 공무원시험에서 시험과목의 특성과 장애 정도에 따른 편의제공 내용을 개선할 것 을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진정 당사자는 메모대필을 통해 회계학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장애인이 각종 시험에서 편의제공 거부로 차별을 당해왔던 관행을 개선하는 중요한 초석이 되 었습니다.

➑ “범죄행위로 둔갑당한 환경파괴 감시” 제주 강정 주민들에 대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전부 무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2년 2월, 강정 주민들은 평소와 같이 카약 을 타고 바다로 나가 공사 과정에서의 환경파괴 감시활동을 벌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2월 27일 경찰 은 갑자기 새벽부터 강정포구를 봉쇄해서 카약 승선을 가로막았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과 주민들 사이 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주민들은 경찰에 연행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죄명으로 기소되었습니다. 희망법은 이 사건에서 변호인으로 참여하여 피고인 전원에 대해 전부무죄를 받아냈습니다. 법원은 경찰 관직무집행법 제6조에 따른 범죄예방조치였다는 경찰의 주장을 배척하고 포구 봉쇄 등이 위법한 공무 집행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경찰이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이유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 위를 엄격하게 축소했다는 데 큰 의미를 가집니다.

➒ “성희롱 가해, 회사에도 책임 있다” 르노삼성 직장 내 성희롱 회사책임 민사소송 승소 희망법은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법률지원단의 일원으로 성희롱 신고 이후 회사의 불이익 조치에 대해 남녀고용평등 위반으로 고소 대리를 하는 한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항소심 을 대리하였습니다. 2012년~2013년 르노삼성자동차에서 발생했던 성희롱, 그리고 신고 이후 가해진 불 이익 조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었습니다. 희망법은 이 사건 항소심에서 회사 측에 책임이 없다는 원심을 깨고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용자 책임의 범위를 확대하고, 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된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의 의미와 판단 기준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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➓ “경찰, 청와대를 지켜라?” 세월호 집회에 대한 경찰의 금지통고처분 취소소송 승소 희망법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청와대 만인대회'에 대한 경찰 의 집회금지통고처분 취소소송을 승소로 이끌었습니다. 경찰은 2014년 6월 예정된 만인대회를 위해 청 와대 인근 61곳에 신고한 집회를 모두 금지하고 원천봉쇄해서 집회 참가가들이 무더이 연행되고 부상 자도 나왔습니다. 경찰은 재판에서 주민들이 장소 보호요청을 했다고 하면서 증거로 주민들의 연명 탄 원서를 제출했지만 그 탄원서는 일자도 적혀있지 않은 매우 수상쩍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집중적으로 추궁하자 경찰은 여러번 말을 바꾸었고 결국 탄원서를 받았다는 경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최근 주거지역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한 집회 금지가 남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생활 보호는 핑계일 뿐 집회 금지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5

숫자로 보는 2015년 희망법 활동

➊ 공익인권소송 등 사건지원 소송·진정

상담·자문

➌ 교육

99 265

실무수습

각종 교육

➋ 입법·정책적 개입 발제·토론 방송인터뷰

대상인원

각종 기자회견 참여

26

47 2750 20

회 수강 인원

여명

15 63

성소수자 인권

25회

장애 인권

25회

기업과 인권

2회

공익인권법 일반

11회

3060

여명


Ⅲ. 잘 했어요. 주요 활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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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의 판결”을 이끌어내기까지 성전환자 성별정정 요건 완화를 위한 기획소송 변론기

한가람

성전환자 성별정정의 높은 문턱들

2006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결정으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역사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이로써 성전환자들이 법원을 통해서 법적 성별을 자신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살아 가는 성별로 변경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제시한 성별정정의 요건은 성전환자의 성별변경을 인정하는 국가들 중에서 가장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법원이 결정문과 예규로 정한 요건은 성전환과 관련한 외과적 수술을 모두 마치고, 생 식능력이 없어야 하며, 자녀가 없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 등등이었습니다(이러한 요건은 국가인 권위원회의 권고와 2011년 또 다른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거치면서 약간 완화됩니다). (트랜스젠더)가

그러나 성전환자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의 건강이나 경

제적 여건, 삶의 이력 등에 따라 사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이러한 요건 달성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이 요건들은 의료적인 관점에서도 지나치게 신체에 침습적 의료조치를 요구하거나 의료적 필요성이 없음에도 시술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별정정이 가능해진 것은 커다란 변화이기도 했지만, 또 많은 트랜스젠더에게 여전히 성별변경의 장벽은 건재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살아 가고 있는 성별과 신분증상의 성별이 달라 일상에서부터 취업, 가족구성, 선거권 행사까지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희망법 류민희, 조혜인, 한가람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소지SOGI법연구회)”에서는, 2012년 위와 같은 성별정정의 요건을 완화하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지법연구회에는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연 구자로 함께하고 있었고, 그의 제안에 따라 이 사건을 기획했습니다. “법원에 기획신청을 해 서 요건을 완화하자.” 이것이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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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준비

성전환자 성별정정 요건 중 인권침해적인 것들이 여럿 있었지만, 우리는 우선적으로 외부성 기 성형수술 요구에 대해 문제제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외부성기 성형수술은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가 부작용 가능성도 크고 의료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국가가 일률적으로 요구한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이 요건은 성별정 정에 있어 실질적으로 가장 큰 장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요건은 특히 비용이 나 건강상 문제 등으로 FTM 트랜스젠더(Female to Male, 출생시 성별이 여성이지만 남성으로서의 성 별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문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지법연구회의 당사자 회원을 중심으로 모두 다섯 명의 신청당사자를 모았습니 다. 2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취업준비생부터 공무원까지, 다양한 연령과 서로 다른 상 황에 놓인 사람들이 함께했습니다. 당사자분들은 법원에 낼 진단서, 진술서, 인우보증서 등 을 준비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젊은 당사자분의 경우 두 개 이상의 정신과진단 서를 받기 위한 비용이 거의 백만 원에 가까워 큰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한국게이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언니장학금’에서 비용 중 일부를 지원해 주어 보다 수월하게 준 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 의견서를 모으기 위한 비용은 한 독지가가 선뜻 도움 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당사자가 확정되자마자 소지법연구회는 신청 준비를 위한 워크숍과 연구작업에 들어갔 습니다. 의학적 정보와 해외 법령들, 해외의 판례들, 국제인권법적 기준들, 헌법적 쟁점 등 을 조사하고 번역하고 연구해 가면서 근거들을 착실히 모아갔습니다. 희망법이 트랜스젠더 모임과 연대해서 “트랜스젠더를 위한 정보·인권 길잡이 트랜스로드맵(http://transroadmap.net)” 를 만들면서 한 작업은 이러한 준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 국내 법학교수님들에게 헌법 과 국제법적 의견서를 받았고, 트랜스젠더 건강에 관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에도 연 락해 성기성형 요건이 부당하다는 의견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청과 심문기일

서면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참고할 만한 서면도 적었고, 법원에 제출할 수십 종의 소명자료들의 내용을 배치하고 목차들을 잡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당 사자들이 살아온 이야기들, 트랜스젠더로서 겪어온 어려움들을 찬찬히 서면으로 옮기는 것 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당사자분들께 10월에 신청이 들어가겠다고 한 말은 자꾸 11월 초로, 11월 중순으로, 12월 초로 늦춰지게 되고, 지치고 힘든 시간도 이어졌습니다. 그 러던 중 결국 12월 19일, 한 명마다 수백 쪽에 이르는 신청서와 소명자료를 새벽부터 준비 해서 밤이 되어서야 법원에 신청서를 낼 수가 있었습니다. 당사자분들께는 “어려운 사건이고, 법원 사정에 따라 늦어질 수 있다. 대법원까지 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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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다. 그러면 3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모른다.”라고 말씀드렸었지만, 대리인단 역시 법원에서는 언제 어떻게 연락이 오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원 사무관님에게 전화를 걸어 서류는 보셨는지, 심문은 잡힐 것 같은지, 그냥 기각시킬 것 같은지 등등을 종 종 물어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자료 요청과 독촉이 몇 번 오간 이후 해가 바뀌어 2월 말, 한 통의 전화가 옵니다. 2주 후에 심문기일을 잡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급하게 일정들을 조율하고 모여서 심문기일에 대해 미리 설명을 하고, 질문 주고받기 연 습도 하면서 기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대리인단 변호사 네 명과 당사자분들은 한 명 한 명 들어가서 법원장님이 진행하는 심문을 마쳤습니다. 심문기일을 마친 이후에는 법원 정문에서 함께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트랜스 젠더들의 삶을 육성으로 전했고, 성별정정이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잘 드렸다고 생각하며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저녁 뒤풀이는 길었고 시끌벅적했습니다. “얘기를 한 것만으로 도 이긴 것 같아.”라고 하면서요. 서부지방법원의 결정과 당사자들의 힘

다섯 분 중 한 명은 상을 당하시는 바람에 다른 분들보다 한 주 늦게 심문기일이 잡히게 되 었습니다. 그는 법원장님 앞에서 “취업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최종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법적 성별은 여자인데 모습은 정장을 입은 남자여서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라고, 내 실력이 모자란 탓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면접을 보면 언제나 떨어졌다.”라는 말을 전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심문을 마치고 나서 “내가 얘기하면 서 우는 줄도 몰랐다.”라고 하실 정도로 진솔하게 말씀을 잘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심문기일 다음날, 법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허가결정문을 직접 받으러 오시면 빨리 받으실 수 있어요.” 꿈만 같게도, 3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몰랐던 이 신청이 4개월만에 마무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정문을 받으러 법원에 모인 우리는 대리인단과 당사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연인이, 가 족이,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함께 그 순간을 맞았습니다. 박수를 받으며 다섯 분 모두 결정문 을 받았고, 하루라도 빨리 주민등록번호를 “2”에서 “1”로 바꾸고 싶어 구청으로 곧바로 향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뒤풀이는 또 길고 길었습니다. “혁명과도 같은 소식이다.” 이 자리에서 한 트랜스젠더가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트랜스젠 더 친구분은 자신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성별정정이 가능해졌다면서, 전날 소식을 듣 고 밤을 지새웠다고 했습니다. 이 법원 결정은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힘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분들이 법원에 찬찬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전하지 않았다면, 이 결정은 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당사자분은 심문기일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법원장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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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양복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 읽어내려 간 것이었습니다. “제가 성별변경을 하고자 하는 첫째 이유는 20년 넘게 살아온 집사람과 혼인신고를 하 기 위함이고, 둘째는 제대로 된 신분증을 내밀고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렇지만 저는 이미 오래 살았고, 이번에 변경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 는 안 되어도 좋으니, 바깥에서 심문을 기다리고 있는 저 친구들에게는 제발 성별변경을 허 가해 주십시오. 성별변경이 되지 않는다면, 밖에 있는 저 친구들보다 2~30년을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저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이 방황하고 힘들게 살지를 압니다. 취직은 물론이고 모 든 관공서나 병원에서와 같이 신분증을 내밀어야 할 때마다 제가 느꼈던 차별과 모멸감과 난감함과 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저 친구들도 역시 똑같이 느끼면서 살 것입니다.” 이어진 결정과 앞으로의 활동

위와 같은 2013년 3월의 서울서부지방법원 결정에 이어 같은 달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 서도 같은 취지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성기성형 없이 성별정정을 신청한 분이 있다는 이야 기를 듣고 당사자와 급히 연락해서 소송위임장을 제출하고 심문기일에 함께했는데, 좋은 결 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법원들에 개별적으로 신청한 분들도 유사한 결정들 을 받는 등 그 결과가 확산되었습니다. 2013년 1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30여명의 성기성형을 하지 않은 FTM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정정을 허가하면서 결정이유 역시 설시하였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사건은 결정이유를 꼭 적지 않아도 되는데, 이 사건에서는 왜 성기성형을 하지 않더라도 성별정정 을 허가할 필요가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한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제1조에서 우리나라가 민주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민주사회는 국민 개개 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평등하게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본 특성을 인정받을 때 유지된다. 이러한 민주사회의 특징은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를 해하지 아니하는 한 다양성 을 존중하고, 차별이 없는 존경과 배려로 서로를 관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관용 은 나에게 편안한 사람들과 편안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에게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삶의 방식을 함께 할 공간을 내어 주는 것으로서 차이를 뛰어 넘는 동등과 배려와 존중을 의미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13. 11. 13.자 2013호파1406 결정) <한겨레21>에서는 우리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이 결정을 “2013년 최고의 판결” 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이후에도 이러한 취지의 결정들이 울산지방법원, 대구가정법원, 제주지방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이어집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른 요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여성성기 성 형수술을 받지 못한 MTF 트랜스젠더(Male to Female, 출생시 성별이 남성이자면 여성으로서의 성별정 체성을 가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한 결정이 아직 없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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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는 생식능력을 제거하도록 하는 요건이나 의료적 조치를 반 드시 받도록 하는 요구를 철폐하거나 위헌이라고 결정하고 있는 등 성별정정의 요건은 그 사이에도 상당 부분 완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여전히 높은 문턱들을 남 겨놓아 갈 길이 멉니다. 희망법은 ‘올해의 판결’에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들이 보다 인간으로서의 존 엄성을 누리면서 자신의 진정한 성별과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제도적 수단 중 하나 로서 성전환자 성별정정 요건의 완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 길에 소지법 연구회와 같은 단체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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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험에 나를 맞추느냐, 나에게 시험을 맞추느냐 수능시험에서의 시각장애학생 편의제공 개선 활동

김재왕

수능시험에서 차별을 겪어 온 시각장애 학생들

“우리도 컴퓨터로 시험 보고 싶어요.” 수능시험에서 시각장애학생의 어려움을 알게 된 것은 2013년 4월 서울북부지방법원의 장 애인의 날 기념행사였습니다. 행사는 한빛맹학교 학생들이 법원을 견학하고 시각장애인 법 률가를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시각장애 학생이 사법시험처럼 수능시험도 컴퓨터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풀 수 없는 시험이에요.” 전맹 학생들에게는 점자문제지와 녹음테이프만이 주어졌습니다. 원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을 수가 없어서 학생들은 긴 지문을 한 번만 읽고 문제를 푼다고 했습니다. 중간계산과정 을 기록할 수가 없어서 수학 문제를 암산으로 푼다고 했습니다. 영어 녹음테이프는 미국인 앵커가 지문을 읽듯이 외국인 성우가 문제를 읽어 주고 있었습니다. 저시력 학생들에게는 A3 크기의 확대문제지가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확대독서기를 사 용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확대 비율이 가장 작은 문제지를 선호했습니다. 어차피 확대독서기 로 확대를 하기 때문에 문제지의 글씨가 클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문제지의 글 씨는 작아도 좋으니, 문제지 크기 자체가 작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차별 시정 요청과 축소 문제지 제공 청구

“요청사항에 대하여 단기간 내 수용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희망법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에 점자정보단말기나 컴 퓨터 사용, A4 크기의 문제지 제공 등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평가원은 요 청에 대해 검토할 필요는 있지만 당장 요청을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회신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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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9월 모의평가 시행 시 부터 A4크기의 축소문제지(71%)를 희망하는 수험생에게 추가 제공” 희망법은 A4크기의 문제지 제공은 시행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2013 년 7월, 평가원을 상대로 모의고사와 수능시험에서 A4 크기의 문제지 제공을 요구하는 임 시조치를 신청했습니다. 소가 제기되자 평가원은 입장을 바꾸어 A4 크기의 문제지를 제공 하기로 하였습니다. 적극적 당사자와 함께 한 차별증언대회

“제 친구들(서울맹학교)이 당면하고 있는 수능의 현실에 희망법이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 다.” 희망법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2013년 9월, 한 고등학생이 희망법에 연락해 왔습니다. 그 학 생은 시각장애 학생들과 SIMB라는 동아리를 같이 하는 비장애 학생이었습니다. 그와 그 시 각장애인 친구들은 수학에서 중간계산 식을 필기하기 위해서 수능시험에서 점자정보단말기 사용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선 수능시험에서 시각장애 학생이 처한 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뜻을 같이할 단체들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그 시작으로 시각 장애학생들이 수능시험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수능시험장에서 ‘점자정보단말기만 있었어도….’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2014년 1월, 희망법은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SIMB 등과 함 께 ‘수능시험 편의제공 개선을 위한 시각장애학생 증언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능시험을 본 적이 있는 시각장애학생들은 수능시험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생생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점자정보단말기가 있었으면 그 어려움이 줄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후 배들이 수능시험에서 시각장애의 특성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 도록 수능시험에서 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습니 다. 증언대회에 온 평가원 담당자는 시종일관 경청했습니다. 평가원의 시정 노력과 작은 변화

“한 사람이라도 불편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2월, 희망법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SIMB 등과 함께 평가원 담당자를 만났습 니다. 이 자리에서 평가원 담당자는 시각장애학생들의 어려움을 잘 알았고 수능시험에서 점 자정보단말기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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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문제지가 필요한 시각장애수험생 중 희망자에게는 … 이에 더하여 올해부터 2교시 수 학 영역에서 필산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제공한다.” 2015년 3월, 평가원은 수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계획안에는 희망법에서 요 구한 점자정보단말기 사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사자와 연대의 힘

“평가원 보도가 나오니 너무나 기쁘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친구들과 고생했던 일들이 결실을 보게 도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처음 수능시험의 문제를 들었을 때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당사자들과 그에 힘을 보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제 제기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평가 원 덕분이기도 합니다. 문제 제기 과정에서 희망법이 배운 점이 많습니다. 희망법이야말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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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일터 괴롭힘에 대하여

서선영

일터 괴롭힘

‘직장내 괴롭힘’, 3년 전쯤 이 용어를 사용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이 처음 들어보거나 무슨 의 미인지는 알겠는데 표현이 생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출근길이 너무나 괴롭고 ‘이건 아닌데’ 라는 일들을 겪고 목격했지만 그것을 ‘괴롭힘’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못했습니다. 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괴롭혀서 스스로 나가게 하는 방식의 괴롭힘, 과도한 목표치를 부여하고 사람을 쥐어짜는 형태의 괴롭힘, 신체적이고 직접적인 폭력들, 폭언들. 정보 안주기 등 사실 우리의 일터에서 괴롭힘은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몇 극단적인 사례나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진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 분의 괴롭힘은 여전히 묵인되거나 수용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괴롭힘의 피해자가 다른 공간 에서는 괴롭힘의 가해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괴롭힘에 대한 조사와 인터뷰, 간담회를 하다보면 괴롭힘은 어쩔수 없는 것으로 당연시 하는 모습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갈등과 괴롭힘은 종종 혼동되고 ‘직장에서 마냥 좋을 수만 있나….’라는 식으로 괴롭힘 문제는 회피되거나 억눌려져 왔습니다. ‘노조파괴’, ‘해고’라는 커다란 문제들 앞에서 괴롭힘 문제는 사소화되고 개별화되기도 했습니다. 괴롭힘을 정면으 로 마주보지 않는 사이 어떤 노동자는 우두커니 책상과 벽만 바라보다 우울증이 걸렸고 어 떤 노동자는 일터를 떠났습니다. 왜 괴롭힘은 관용되고 있는가? 왜 괴롭힘이 발생하고 그 양태는 무엇인가? 괴롭힘을 당 한 사람에서 괴롭힘을 당할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무엇인가? 이것을 규제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괴롭힘을 관용하는 관행과 언어들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게 어디 쉽나.”, “인격은 집에 두고 출근한다.”, “그런것도 못참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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떻게 사회생활하나.”, “재수없는 놈 만났습니다고 생각해라.”, “일 안해도 월급 따박따박 주 는데 왜 불만이냐.”, “소비자가 왕이다.” 괴롭힘이 수용되는 통념들입니다. 임금, 돈, 수수료만 남고 노동의 다른 의미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노동은 돈으로만 교환되면 되는가? 노동이 돈으로만 교환될 수 없다는 원칙은 추상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인류가 비 인류적으로 되는 것이 얼마나 빠르고 쉬운가를 확인한 2차대전 후 인간존엄성을 확인한 대 표적 문서인 세계인권선언(1948).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정초되었던 존엄성 선언은 국제노동 기구의 목적을 담은 필라델피아 선언(1944)이었고 그 제1조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은 돈으로만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고 노동과 인격, 존엄성은 분리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판결에서도 이런 원칙은 문장으로서는 확인되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에 따라 계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 닌 인격체이고 자신의 전인격을 사용자의 사업장에 투입하고 있는 점에서 근로관계에 있어 서 근로자의 근로제공은 자신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한편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 자의 근로제공은 단순히 임금획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는 근로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나아가 기술을 습득하고 능력을 유지·향상시키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 하는 등으로 참다운 인격의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실현시키고 있다는 점도 부 인할 수 없다.”(부산고등법원 2014. 7. 10. 선고 2013라299 판결) 그런데 다시 우리의 통념들로 돌아와보면 선언들과 판결문의 문장들이 너무 공허합니 다. 노동자는 비용의 문제로 환산되고, 성과를 산출하지 못하면 버려져야 할 상품일 뿐인 것 이 지금의 노동 현실입니다. 비용으로만 환산되는 노동은 해고의 요건이 없어도 정리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이 과정을 즐겨라.’라는 말들을 너무나 많이 들어서 낙천적 성격이 아 닌 사람은 ‘불만자’로 여겨집니다. 공동체성이 파괴된 일터에서 일을 잘 못하는 노동자는 동 료 노동자들에게도 걸림돌이 되고 괴롭힘을 당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자신의 일터에 서 당한 모멸을 ‘고객’이 되는 순간 다른 노동자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행하기도 합니다. 각각의 일들로 여겨지고, 당연시했던 생각들에 질문을 던져 보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벌 어지고 있는지를 한번 모아보는 것들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우리 일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괴롭힘의 양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2015년이라는 것이 낯설 정도로 아직 우리 일터에서는 직접적 폭력이 드물지 않습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직장 내에서 신체 폭력을 당한 경험’이 15.7%로 조사된 사례도 있습니다. 폭언이나 모욕도 다반사입니다. 직접적 욕을 하 기도 하고, ‘너 같은 놈은 죽어버려라.’라는 말도 합니다. 돌려서 말하는, 그러나 괴롭히려는 의도가 농축된 모욕적 표현은 더욱 힘듭니다. 남들도 다 가는 화장실인데 비리를 제보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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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화장실을 갈때마다 “왜 그렇게 자주가냐, 병원에 가봐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 니다. 인트라넷을 차단하거나 회식에서 배제하는 등의 왕따는 오히려 알아차리기라도 쉽습니 다. 친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인사를 안 받아서 그냥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노조활동을 한 자신과 같이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인사고과에서 D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그 노동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 립시켰습니다. 도저히 달성할 수 없거나 비윤리적인 영업을 해야만 채울 수 있는 목표치를 부여해서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될수록 자신의 인격을 파괴해야 하는 경우, 우두커니 책상 에 앉아서 벽만 바라보게 하거나 하루종일 취업규칙 베껴쓰기, 산수문제 풀기 등 의미 없는 노동만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괴롭힘의 양태도 다양하지만 그 원인도 다양합니다. 그 중 해고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는 ‘경영방식 일환으로서의 괴롭힘’은 작정하고 괴롭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매 우 심각합니다. C-Player라는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C-Player가 된 사람은 스 스로 회사를 떠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업무지시서, 업무 촉구서, 서면 주의, 또다시 업무 지시서 이런 괴롭힘의 무한 반복을 겪다가 결국 파면을 당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 례도 밝혀졌습니다. 파업 후 복귀한 노동자에게 풀뽑기를 시키는 등의 노조파괴형 괴롭힘, 고용형태의 차이(정규직-비정규직)를 원인으로 하는 괴롭힘, 정체성을 이유로 한 괴롭힘, 비리 를 제보했다는 것을 이유로 한 괴롭힘, 성과주의를 원인으로 하는 괴롭힘, 그리고 괴롭힘의 피해자이면서도 또 그 모멸을 전가하는 형태의 괴롭힘도 있습니다. 괴롭힘은 갈등이 아니다.

부대끼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괴롭힘은 갈 등이 아닙니다. ‘당할 만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괴롭힘 피해자는 어느 순간 피해자가 아니라 ‘저 사람은 성격이 좀 이상해’라는 말까지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롭힘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고조성입니다. 약한 괴롭힘에서 시작해서 점점 괴롭힘이 높아 지는 현상입니다. 괴롭힘의 고조과정에서 피해자는 주변의 자원이 점점 사라져가고 무력해 집니다. 그 과정에서 또 한번의 낙인이 찍히고 결국 괴롭힘의 피해자가 괴롭힘의 원인제공 자라고 의미화된 후 결국은 조직에서 배제되고 추방됩니다. 괴롭힘이 공동으로 대응되지 못 하고 개별화될수록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를 당할 만한 사람’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사람은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퇴출 프로그램에 들어간 사람은 영 원히 능력없는 저성과자가 될 수 있고, 업무지시에 의해 풀을 뽑는 사람, 책상에 앉아서 우 두커니 벽만 바라보는 사람은 회사 비용만 축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불평불만자, 조직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피해야 할 사람이 됩니다. 괴롭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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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화되어 버리면 우리는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양태들에 대한 대응이 가능한가

괴롭힘의 양태와 원인이 다양하다 보니 이것을 규제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 습니다. 그러나 실제 해외에서는 처벌조항까지 두는 사례도 있습니다. 프랑스 노동법전에는 “노동자의 권리들과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직업적 장래를 위 태롭게 할 수 있는, 근로조건의 훼손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를 정 신적 괴롭힘(harcelement moral)로 규정하고 형법전에는 이런 괴롭힘을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터 괴롭힘을 법이나 조례, 협약등으로 규제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규제만으로 가능한가.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접근만이 이 루어질 때 오히려 괴롭힘 문제는 희화화되고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문제 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지 않으면 경영방식에 의한 괴롭힘, 노 조탄압형 괴롭힘,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노동구조 속에서 전가되는 괴롭힘의 맥락은 사라지 고 그저 ‘착하고 친절한 직장인 되기’ 캠페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노동활동가인 Jon Sjøtveit는 <사회적 망이 붕괴할 때>라는 책에서 “괴롭힘은 피해자인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감각에 타격을 가한다.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할 수 없으면, 개인은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를 주저할 것이다. 사회적 망은 붕괴된다.”고 하면서 일터 괴롭힘을 노동조합 의 중요한 이슈로 채택하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일터 괴롭힘에서 노조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조 직률 10%, 그리고 더욱 심각하지만 알려지지 않는 괴롭힘이 많은 비정규직의 조직률은 1.9%에 불과한 현실(2014. 3월 기준)은 노조강화만으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롭힘에 대 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일터 괴롭힘은 노조의 다른 ‘큰 문제’에 덤으로 가는 주제가 아니라 그 자체에 대해 더 많은 실태조사, 더 많은 문제제기가 필요한 이슈입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혼 자서 맞닥뜨리고 있는 괴롭힘의 피해도 함께 말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동의 것으로 대응하는 것’ 연대가 확장되고 강화되는 것이 일터 괴롭힘 대응의 가장 핵심 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에서 일터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은 삶이 괴롭힘으로 점철된다는 것 입니다. 괴롭힘을 전략적으로 채택할 때 가장 좋은 방식은 개인의 업무능력이나 성격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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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돌리는 것입니다. 괴롭힘을 부수적이거나 사소한 문제로 인식했던 관행도 공동으로 대 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던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일터 괴롭힘은 그냥 부수적인 문제나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이란 무엇이 고 일터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입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고 존엄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는 사무실 등 한정된 장소에서 발생하는 대면적인 현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 러나 괴롭힘의 장소와 형태는 다양합니다. 진짜 사장은 숨어버리고 다양한 위계와 등급으로 괴롭히는 형태들이 있고, 장소를 바꿔가며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들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들을 포괄하기 위해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용어 대신에‘일터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1) <일터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에 대하여>. 2015. 9. 일터괴롭힘에 대한 합동 세미나 보고 자료집(희망을만드는법, 전 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인권연구소 ‘창’,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 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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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힘이 나요. 후원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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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달군

사진작가, 희망법 자원활동 전문

재작년에 경찰이 경향신문사를 침탈했을 때 난 집에서 인터넷으로 생방을 보고 있었다. 좋 지 않은 화질에 중간 중간 끊기는 생방을 보면서 한숨만 내쉬고 있을 때 낯익은 이의 뒷모 습이 보였다. 그는 한 손을 높이 들고 뭐라 외치고 있었다. 주변 소음에 그가 무엇이라 외치 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그가 희망법 변호사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외치는 소리가 뭐였는 지 감이 잡혔다. 자신이 변호사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4.16 추모집회에서 시민들은 광화문 분향소로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화문 사거 리에 설치한 차벽으로 인해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성이 난 시민은 차벽을 향해 성토 를 했고, 경찰은 차벽 위에서 채증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 모습은 지켜보고 있는 내 옆으로 밝은 색 몸자보한 이가 지나갔다. 몸자보에는 인권침해감시단 변호사라고 써 있 었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는 희망법 변호사였다. 혹시 무슨 일라도 생길까봐 선두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든든한 마음이 생겼다. 그들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그리고 법을 정직하게 집행하는지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 다. 혹시라도 누군가 억울하게 법에 희생이 되지 않도록 동분서주한다. 희망법을 만나게 된 이후로 인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많다. 사람이 다른 어떤 이들을 같은 사람으로 대해 주는 아주 강렬한 그런 배움이다. 세상은 사람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고, 물질의 대상으로까지도 본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사람만이 사람을 지켜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법을 이용하는 자에게 법으로 맞서는 당찬 그들이다. 특히 공익인권법 실무학교를 참석하면서 그들이 나누고자 하는 의를 충분히 알 수 있었 다. 사진을 찍어야 할 내가 강의에 빠져서 뜻하지 않게 열공 모드로 자리 잡고 있었으니. 특 히 집회에 관한 법과 인권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눌 때에는 더욱 그랬다. 물론 나 는 듣는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법에 이용 당하는지를 알고 분노도 생겼으니. 귀동냥으로 들은 대처법을 간혹 써먹을 때에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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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조수진

변호사, 희망법 초대 회계감사

희망법이 2012년 2월생이니 창립한지 어느새 4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희망법의 후원회원 이 된지도 만4년이 넘었다는 것이지요. 말 그대로 ‘희망’을 만드는 변호사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라 가장 기쁜 후원 중 하나입니다. 희망법과 저와의 인연은 희망법의 든든한 축 서선영 변호사님이 민변에서 상근을 하던 때에 시작되었습니다. 민변의 민생경제위원회에서 열 일 하시던 서선영 변호사님이 어느날 공익 변호사 단체를 준비중이라고 하였지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후원만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꾸려 나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공익 변호사로 산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인 것을 아니 까요.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러나 희망법 역사 대단원의 막을 올린 창립 행사에서 곧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희망법 식구들이 신나고 밝은 얼굴로 팝송에 맞춰 춤을 추는데, ‘그 녀석’을 능가하는 긍정 의 힘이 느껴졌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희망법은 강정마을 활동을 시작으로, 성전환자가 성기 성형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받아내는가 하면, 시각장애 학생에 대한 수능시 험의 편의제공이 미흡한 점에 대해 2013년부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드디어 최근 수능시 험에 점자정보단말기를 제공하겠다는 수능시험 시행기본계획을 받아내었습니다. 씩씩하게 소수자인권과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분야에서 희망을 만들고 있네요. 역시 우리 어머니가 하신 명언이 맞는 말씀임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바로 “남 걱정하지 마라. 너만 잘하면 다 된다.”입 니다.)

후원회원으로서 희망법에서 보내오는 이메일 소식지도 잘 받아보고 있고, 언론에서 희 망법 식구들을 보게 될 때면 참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돈을 팡팡 벌어야 후원도 더 많이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해서, 늘 조금 미안한 마음인 것을 아시는지. 가늘고 긴 후원자의 길을 성 실히 가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희망법 식구들 모두 응원합니다. 계속 무한 긍정의 힘을 보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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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변강석

수어(수화) 연구자, 기획소송 농인 당사자

당사자가 농인인 특별한 소송 사례였고 법에 무지한 상황이었음에도 희망법에서 당사자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준비를 해주셔서 함께 하는데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여러모로 바빴었는데, 희망법 측에서 농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대 표한 한국농아인협회와 함께하는 것에 망설임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고, 네트워킹을 훌 륭히 잘 해냈다. 많은 농인이 의사소통에서 뼈아픈 소외를 일상적으로 체험한다. 소리만 있는 대화로 이 루어지는 사회에서 농인은 여러 면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는 데 어려움이 많다. 법적인 해결 을 하려는 것도 소리만 있는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결국 농인끼리 소통하 는 것에만 한정하다가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남을 뻔했는데 새로운 기회와 경험이 었다. 실제로 법적인 해결사와 함께 하니, 해결하기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문제들을 직접적 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커다란 희망과 기쁨을 느꼈다. 법으로부터의 보호를 받기 위해 당사 자가 직접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실천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직접 느꼈다. 희망법과 함께 당사자로서 법적인 준비, 소송까지 한 경험이 나에게 배움이었 고, 그것은 내가 억압받은 사회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법적인 도구를 주었다. 나의 권리 주장을 할 수 있게 희망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 인격을 존중하는 기반이 되 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희망법은 나에게 농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부여하였다. 이제까지 내가 힘없는 창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해 왔다면, 희망법은 나에게 법적인 잣대를 인식할 수 있게 저울과 방 패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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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연대단체 활동가

“수요일에는 그 분이 오십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어도 변함없이 그 분이 오십니다. 그 분은 한결같이 수요일이면 영등포구청역에 나타나십니다.” 지역에서 장애인 문제로 법률상담이 간절히 필요한 장애인차별상담가가 전화를 하면 “수요일에는 그 분이 오시니까 물어 볼게요.”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당산동 한얼 빌딩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사무실 1577-1330장애인차별상담전화평지(이하, 평지)

플랭카드를 배경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 분은 그 자리에서 장애인의 삶의 일상에서 일

어나는 차별문제를 듣고 또 듣습니다. 장애인활동가들이 억울하다고 분노를 토하면 그 분이 제일 잘 하는 말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게요.”, “그런데…. ’하면서 조근조근 법적인 자문을 거듭해 주십니다. 그 분은 전천후이십니다. 시설에서 인권침해 당한 장애인, 폭행당한 장애 인, 의사소통 조력이 필요한 발달장애인, 집시법위반 장애인운동 활동가 사건, 장애인차별금 지법과 여러 법률 개정, 그리고 그 외의 법률제정 활동과 차별의 현장이 된 놀이동산 모니 터 활동까지, 그리고 직접 기획하는 토론회들까지 준비하고, 발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 정도 하고 정책제안도 하고 눈부신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장애인 차별문제라면 밤, 낮 없이 전화 통화를 하고, 또 달려오시고는 합니다. 그 분은 이렇게 벌써 4년 동안 활동을 하 셨습니다. 그 분의 성품처럼 조용하게, 차분하게, 그러나 쉼 없이 그 분은 활동하셨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활동해 오신 결과 때문인지 갈수록 인기가 상승하시고, 우리만의 그 분 이 아니고 여러 곳의 그 분이 되어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옹호 관련 되는 곳이 면 틀림없이 꼭 있으셔야 되는 분, 장애인 인권문제에 감초가 되어 있는 그 분은 ‘공익변호 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의 ‘김재왕 변호사님’이십니다. 장추련이 장애인 권리옹 호활동에 ‘믿거라’ 하고 등을 기댈 수 있는, 또 미래에도 있을 ‘희망법’의 김재왕 변호사입니 다. 수요일이면 오시는 그 분 김재왕 변호사님은 장애인 인권운동의 최전선에 함께 계시는 법률 현장 활동가입니다. 그래서 든든합니다. 힘이 됩니다. 연대의 힘을 느낍니다.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왕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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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강미솔

변호사, 희망법 실무수습생

희망법의 시작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2014년 겨울, 희망법에서의 로스쿨 실무수습 기회를 얻어 희망법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법률가이자 활동가로서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고, 법조문과 판례 속에 파묻혀 목표를 잃어가던 차에 에너지를 얻고 싶습니다. 실무수습 첫날 일찍 도착해서 충정로역 주변을 서성이다 희망법 사무실을 들어서던 그 설렘의 순간. 한 분 한 분 캐릭터 확실한 유쾌한 구성원 분들과 복닥복닥 지내고 배우며 여 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순식간에 3주가 지나갔습니다.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인권 담론을 구성하고 체제에 균열을 내고 발로 뛰며 결과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후 수험생 생활을 하면서도 희망법 활동 소식을 보며 모니터 앞에서 기뻐하기도 하고 순간 심각해지기도 하며 마음으로 응원해왔답니다. 멀리서 조촐하게 후원하고 응원하는 것 이 전부인 저로서는 희망법에게 많이 빚을 진 느낌이 들어요. 희망법이 어떤 모습으로 또 어 떻게 세상을 바꿔나갈지 기대됩니다.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희망법과 여러 순간을 함께하 고 싶습니다. 4주년을 축하드립니다!

후원회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희망법 자문위원

“희망법 창립행사에 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라는 말 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나에게는 겨우 4주년이라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가 않는 다. 희망법 사람들이 어느 틈에 그들이 응당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하고 있 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동안 ‘희망법 다움’이라는 정체성도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그들에게는 독특한 색깔과 향기가 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다른 변호사들하고도 다르고, 공익활동을 하는 다른 활동가들하고도 다르고, 그들이 천착해온 주제들도 신선하다. 하지만 그 ‘다름’이 무엇인지를 글로 묘사하기 는 쉽지 않다. 그것은 희망법이 아직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 리면 그 ‘다름’은 점점 더 분명히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고, 그것은 - 긍정적인 의미의 - ‘전 통’이 될 것이다. 지난 4년을 축하하면서도 앞으로의 40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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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덧붙여요. 못 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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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을 만들기까지

한가람

희망법의 창립멤버를 확정한 때가 2011년 8월이니, 벌써 4년이 흘렀습니다. 시간 이 지날수록 기억이 흐려질 것이어서, 희망법을 만든 과정을 일찍부터 정리하려고 했지만 막상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서야 희망법의 탄생 과정을 몇몇 자 료와 개인의 기억을 더듬어 짧게나마 정리해 보려 합니다.

사람들

희망법을 시작한 사람들은 김동현, 김재왕, 류민희, 서선영, 조혜인, 한가람 이렇게 여섯입니 다. 김동현과 류민희는 2010년부터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를 함께하면서 공익인권 전담 활 동을 모색해 왔습니다. 2010년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상근변호사였던 서 선영,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공익변호사그룹 공감(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펠로우 변호사 활 동을 하기로 한 조혜인, 로스쿨에 다니던 한가람 세 사람은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소수자위) 발족을 준비하면서 만났습니다. 김재왕 역시 로스쿨 재학 중 2011년 민변 소수자위 활동에 참여하면서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서선영과 조혜인, 한가람은 2010년 연말, 민변 소수자위(준) 회의를 마치고 늦은 밤까지 꼼장어집에서 뒤풀이를 하던 중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는 ‘도원결의’를 했습니다. 변호사로 서의 진로를 서로 이야기하다가, “네가 뭔가 해보면 나도 같이 할게.”, “변호사님이 먼저 깃 발을 올리시면 저도 따라갈게요.” 이런 말들을 나누다가 “그러면 우리 같이 해볼까?”라고 하고는 셋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고 했었지요. 며칠 후에 어떻게 준비를 할까 얘기를 하 려는데 서선영이 “우리가 뭐 같이 하기로 했었어?”라고 반문해 조혜인과 한가람을 당황하 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술자리의 도원결의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약 속은 약속!”이라는 말과 함께 셋은 바로 의기투합합니다. 김동현과 류민희는 공익인권 전담 변호사로서의 진로를 찾으면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님들을 만나 조언을 듣기도 하고, 함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국제인권법 연수를 다 녀오기도 했습니다. 공감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서는 생각할 것이나 준비할 것이 많구나, 했었다고 합니다. 또 류민희는 민변에서 실무수습을, 김동현은 난민인권센터 실무수습을 하 면서 공익인권법 현장의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었습니다. 2010년 말과 2011년 초에는 유독 공익인권 전담 변호사 활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목 소리가 많이 들렸습니다. 서선영은 민변에서 이러한 분들을 종종 접할 수 있었고, 우리만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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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 단체나 활동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 1월, 공익인권법 활동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공감과 공익법센터 어 필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님들께도 조언차 함께해 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연락 이 닿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아홉 명이었습니다. 첫 만남은 조촐하게 서초동의 족발집에서 식사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수준이었습니다. 매달 한 번씩 만나기로 해서 2월에는 서초동 중식집에서, 3월부터는 법무법인 한결의 회의 실에서 모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따로 정하진 못해서, 우리끼리 ‘벙개모임’이나 ‘준 비모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준비모임은 이보다 열린 형태로 논의하는 장으로서 ‘공익변 호사 라운드테이블’로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류민희가 2011년 초 민변에서 실무수습을 하면서, 류민희와 김동현 역시 자연스럽게 ‘준비모임’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서, 한두 달만에 인원은 15 명으로 늘었고, 여름으로 넘어가면서 20명 가까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김재왕은 2011년 여름 무렵 합류했습니다. 김재왕은 로스쿨에 들어가기 전 국가인권위 원회 상담원으로 4년 동안 일했었습니다. 로스쿨생으로 민변에서 실무수습을 하고 민변에 가입하면서, 소수자위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서선영, 조혜인, 한가람은 김재왕이 장애인 당사자로서 소수자인권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입계획을 세웁니다. 2011년 6월 말, 소수자인권위 엠티에 김재왕이 참석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는 서선영, 조혜인과 김 재왕이 같은 차를 타고 엠티장소인 강촌으로 가도록 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하기도 했었 습니다. 그리고 엠티 뒤풀이에서 세 명이 김재왕을 둘러싸고 “공익인권 전담 사무실을 기획하고 있다. 함께하자.”고 이야기합니다. 김재왕은 “아내만 동의하면 동참하겠다.”라는 대답을 합 니다. 그리고 7월 중순 김재왕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아내에 게도 허락 받았어요. 두려우면서도 설레고, 걱정되면서도 기쁘네요.”라는 메일을 보내 동참 의 의사를 전합니다. 세 명은 엠티에서 김재왕에게 사무실 초기비용은 공동으로 출연해서 마련할 계획이라고 얘기했지만, 김재왕이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동의를 받았다는 뒷얘기도 있습니다. 김재왕이 참여의사를 밝히기 직전, 서선영, 조혜인, 한가람은 함께 ‘준비모임’에 참여한 분들께 새로운 공익인권 전담 변호사모임을 준비하는데 같이 할 분들을 모시고 싶다는 제 안서를 보냅니다. 그리고 8월 “제4회 공익변호사 라운드테이블”이 열리던 날 뒤풀이 자리에 서 김동현, 류민희는 조혜인과 한가람에게 동참의사를 밝힙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 41기가 함께 준비하는 공익법률기금의 지원을 받으며 시작할 가능성 역시 이야기합니다. 이날 류민 희가 먼저 참여 의사를 밝혔고, 김동현이 뒤이어 입을 뗐는데, 김동현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려놓고서는 막상 조혜인과 한가람에게 “제가 참여한다고 할 것 같으세요? 제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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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면 두 분은 어떠실 것 같아요?”라고 반문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우연과 필연이 겹치고, 몇 개의 도원결의가 이어진 후, 2011년 8월 30일 여섯 명 의 창립멤버가 모두 모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의 기획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는 것과 함께, 우리가 어떤 조직을 꾸려서 어떤 성격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했습니다. 크게는 조직 형태와 지속가능한 운영에 관한 논의들, 그리 고 활동의 방향과 내용에 관한 계획들로 범주를 나누고 고민하면서 모양새를 다듬어나갔습 니다. 2011년 동안 한가람은 새로운 공익인권변호사 사무실을 위한 ‘꿈꾸는 인큐베이터’라 는 기획서를 작성해 왔는데, 이런 개인들의 기획서도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 기획서에는 “워커홀릭 증세를 나타내거나 사보타주 증세를 나타내면 함께 걱정해 주되, 간섭하지는 않 는다.”와 같은 원칙도 있었는데, 이는 희망법의 원칙은 아니지만 종종 회자되는 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논의 속에서 서선영, 조혜인, 한가람은 ‘준비모임’에 참여 제안서를 보내면서 최소한 견지하고 싶은 가치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국가와 자본을 비롯한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모임을 구상합니다.(구체적으로는 정부로부터의 지 원과 기업으로부터의 후원은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자 합니다.)

1. 변호사, 비변호사를 포함한 모든 성원이 수평적인 조직과 문화를 지향합니다. 1. 안으로, 구성원 스스로가 지치지 않고 즐겁게 활동하며 내적·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를 모든 기획 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1. 밖으로, 아픔과 소통하고 서로를 변화의 주체로 세우며 희망과 감동을 일구고 키울 수 있는 방향의 활 동을 지향합니다. 1. 모임을 준비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공익법 분야의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기보다는, 활동영역을 넓 히고 비어있는 지원시스템 부분을 채워 후속 공익변호사들의 진출 기반을 함께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 니다.

이런 원칙과 가치를 바탕으로 초기부터 생각한 단체의 성격은 “전업 공익인권변호사들이 모인 공익과 인권을 지향하는 독립적 법률·정책 전문기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되도록 새 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다양하고 전문적인 인권법률 교 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이러한 활동 내용을 모색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지속적 운영을 담보하는 조직을 구성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변호사 5명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이들에 대한 급여와 사무실 임대료, 그 밖의 운영비용을 모두 후원으로 충당하기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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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시에는 단체 인큐베이팅 기금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영리 와 비영리 혼재형으로 시작하고 점차 비영리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법률사무소를 단체 의 부설로 설립해서 단체의 가치에 맞는 서민과 약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반사건을 통해 일 부 수익을 창출하고, 나머지 비용은 후원과 자체적으로 형성한 인큐베이팅 기금으로 충당하 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영리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고 오히 려 업무를 과중하게 할 것이며 그러다가 결국 사무실 유지를 위해 영리를 중심으로 운영될 위험이 높다는 조언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많은 고민 끝에 개인구제형 일반사건은 맡 지 않고, 후원을 중심으로 한 비영리단체로서 활동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동현, 류민희가 사법연수원 41기 동기들이 주축이 된 ‘공익법률기금’으 로부터 최소 3년간 급여 등을 지원받기로 하였고, 김재왕 역시 서울대 로스쿨 1기 동기들이 모으는 기금으로 최소 2년간 급여를 지원받기로 한 것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운영에 대한 ‘견적 내기’에는 급여의 수준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단체의 성격상 초기에 는 전체 운영비에서 사업비보다는 인건비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할 것이었고, 그 부담이 어느 정도 될지가 문제였습니다. 논의 끝에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서의 성격과 생활 임금을 고려해서 경력과 관계없이 2백만 원 수준으로 정하였습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급여 의 수준을 최우선적으로 높여가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낮은 급여는 전업 공익인권변 호사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규모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단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고려해서, 저년차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5명 정도의 조직을 구상했습니다. 이후 활동을 안정화하면서 점차 구성원을 늘려나가되, ‘소규모의 가벼운 조직’을 위하여 최 대 10명 안팎의 규모를 생각했습니다. 개소 준비

2011년 여름 서선영은 민변 상근변호사를 그만두고 국제인권법연수를 받으러 유럽에 갑니 다. 8월 30일 구성원 6명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유럽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6명이 모두 논의 하기 위해서 온라인 다자통화 프로그램인 스카이프를 이용했습니다. 다들 새로 써 보는 문 명의 이기인지라, 처음에는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고는 했습니다. 회의를 하면서 사무실을 어떻게 구할지,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구체적으로 언제쯤 시작 할지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생각하는 활동의 상 이나 이 일을 하려는 이유를 공유하는 시간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이 무척 길 수밖 에 없었고, 때로는 다투고 어색한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서선영이 귀국한 이후 첫 회의는 한 봉천동 중국집에서 했는데, 밥을 먹으며 회의를 하다 보니 결국 모두들 얹힌 것 같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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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회의를 하고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이어지던 2011년 가을의 회의들은 끊임없는 도돌이표였습니다. 김동 현은 이 무렵 구성원들에게 “무엇인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는 것 때문에 기대감이 생기다 가도 또 한편으로는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라는 말을 메일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심정 은 모두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정관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단체의 형태는 법인인가 비법인인가, 재단인가 사 단인가, 법률사무소인가 사회적 기업인가 협동조합인가 일반 단체인가, 적은 돈이라도 변호 사보수를 당사자에게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사무실 은 어디에 구할 것인가, 예산은 어떻게 짤 것인가,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구성 원들끼리만의 생각으로는 힘들어, 주변의 선배 변호사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새로 운 공익인권법 단체를 만든다는 소문도 내고, 시간을 뺏어 세세한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점차 비영리 비법인 사단으로서의 단체의 모습을 가지고 송무를 위한 공 동법률사무소를 별도로 설립하는 방향의 구조를 정하고, 정관과 규정들도 조금씩 정비해 나 갔습니다. 이름을 정할 때에는 각자가 생각한 이름들을 몇 가지 제안하고 이 중에서 추려보는 방법 을 택해보았습니다. 좋은 반응이 있었던 이름의 후보는 ‘울림’, ‘이웃’, ‘시선’, ‘함달공(함께 달 리는 공익변호사들)’

등이 있었고, 점차 입에 잘 붙고 생동감 있는 ‘함달공’으로 정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런데 친한 인권활동가 몇몇이 “함달공 결사반대!”를 외치는 바람에 다시 처음 으로 돌아가 긴 논의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싶다가도, 모두가 합의하 는 이름을 얻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토요일이던 2011년 12월 3일, 민변 소회의실에 서 열린 회의에서 긴 논의 끝에 서선영이 제안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을 단체명으로, 약칭으로는 “희망법”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희망을 만 드는 방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법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희망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 지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이름도 정해졌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공익인권법 단체가 생긴다는 것을 소문 내 고 후원회원들도 미리부터 모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학교정에서 단풍을 배경으로 프로 필 사진과 단체사진을 찍었고, 임시 리플릿을 만들었습니다. 단체에 대한 구상을 밝힌 PPT 파일도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도메인을 구입하고 티스토리를 이용한 블로그 형태 의 홈페이지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홍보 수단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 서 프리젠테에션을 하고 조언을 듣고, 후원회원 가입 약정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여서 개소 준비를 할 공간도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음식점에서, 대학원 세미나실에 서, 민변 사무실에서, 류민희의 자취방에서 이어지던 회의는 공간이 일정치 않아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체 인큐베이팅을 위한 공간이 없나 알아보기도 했지만, 마땅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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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서선영이 참여연구활동가로 활동하는 인권연구소 ‘창’에 서 감사하게도 방을 하나 빌려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출퇴근을 하는 기분으로 공간을 쓸 수 있어서 안정감이 생기게 되었고, 짐도 놓아둘 수 있어서 편하게 준비를 해나갈 수가 있었습 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권연구소 ‘창’에 임시로 입주한 지 얼마 안 돼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 습니다. 새로운 공익인권변호사 사무실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독지가가 자신의 오피 스텔을 2년 동안 사용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실 장소로 인권단체들이 밀집 해 있는 충정로 쪽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충정로 오피스 텔을 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돼서, 며칠만에 인권연구소 ‘창’에서 지 원해 주신 테이블과 의자들, 머그잔과 물컵들을 안고 충정로역 근처 SK리쳄블로 이사를 갑 니다. 들어가자마자 약식으로 고사도 지내고, 청소도 하면서 출퇴근을 시작했습니다. 12월에 들어서면서 풀타임 출퇴근을 시작했지만, 김재왕과 한가람은 2012년 1월 초에 있는 변호사 시험 준비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실무는 다른 네 명이 담당 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 새해 벽두에 시작한 변호사 시험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어 졌습니다. 중간 휴식일인 목요일에 류민희는 김재왕과 한가람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변 호사 시험 치르시느라 고생 많으세요. 토요일에 시험 끝나시죠? 그러면 일요일부터 출근하 시겠어요, 아니면 하루 쉬고 월요일부터 출근하시겠어요?” 김재왕과 한가람은 변호사시험 을 마치자마자 그 다음 월요일부터 풀타임 근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개소를 위해 해야 할 실무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 페이스북 페이지, 트위터 계 정, 리플릿 등 홍보매체의 제작, 로고 디자인, 회비의 자동출금을 위한 CMS 시스템을 알아 보고 계약하는 일, 책상과 의자, 책장 등 사무용 가구를 장만하는 일, 컴퓨터와 모니터와 같 은 전산장비 및 소프트웨어들의 정비, 인터넷 회선과 전화 업체를 알아보고 계약하는 일, 시 각장애인 김재왕이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과 기기의 구입, 회계프로그램을 알 아보고 업체와 계약하는 일, 사무실 구조를 짜고 배치하는 일, 법률사무소의 등록, 소송용지 의 제작, 소송기록 표지와 봉투의 제작, 단체 직인과 변호사도장의 제작, 보안을 위한 금고 와 열쇠의 구입 등등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직과 사업을 준비하고 활동의 원칙과 방법들을 합의해서 문서화하는 일들도 쉽지 않았는데, 이에 더해서 이런 실무들을 하는 것은 과중한 업무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를 새로 꾸린다는 신나는 재미 역시 있었는데, 자문위원이신 김수정 변호사님은 “나중에 일하다 보면 이 때를 가장 신나는 때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비용이 드는 일이어서 자금 조달이 큰 문제였습니다. 사무실은 어떻게든 해결됐지만 사무실을 꾸미고 업무공간으로 만드는 일에는 적잖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초기비용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구성원들이 모일 때부터 생각한 것은 각자가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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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원 정도를 출연해서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비용을 단체에 빌 려주고 이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상환받는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 이런 방법은 예산상 도무 지 ‘견적’이 안 나와서 무상으로 출연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무실 보증 금 문제도 해결되어서 여섯 명이 각자 오백만 원씩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누구는 전셋집에 서 월세로 옮기면서 보증금 차액을 냈고, 누구는 은행에서 돈을 빌렸습니다. 변호사로 첫 출 발을 하는 김동현, 김재왕, 류민희, 한가람은 각자 자비로 목돈이 드는 변호사등록비도 내야 해서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전원이 오백만 원을 납입한 것은 2012년 3월 중순이었고, 같은 달 말에 출연한 돈으로 첫 급여를 받았습니다. 많이 낸 후 적게 받았지만, 첫 월급을 받을 때에는 모두들 감격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빠듯하게 시작하느라 비용을 줄이는 일은 희망법의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가구 도 되도록 다른 단체에서 얻어왔습니다. 버려진 물건을 발견하는 재능이 뛰어난 김동현은 쓸 만한 책장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김동현이 자취방을 빼고 본가로 들어가면서 그 방의 물건들도 대거 들어왔습니다. 초기 재정담당이 김동현이었는데, 이렇게 알뜰살뜰 살림을 꾸 리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비용을 아끼느라 사무실 책상과 의자는 사무실 근처의 북아현가 구거리의 중고 가구점에서 사려고 했고, 모두들 날을 잡아 가구거리에 쇼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가 보니 작은 사무실에 딱 맞고 통일감 있는 책상과 의자를 사기는 쉽지 않 았습니다. 그리고 새 가구들도 둘러본 구성원들이 비용상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김동 현에게 매달리며 “제발 이 하얀 색 책상을 사자.”, “이 책상에서는 일이 잘 될 것 같다.”, “맞 추는 책상이니 사무실 크기에도 딱 맞게 주문할 수 있지 않으냐.”, “이 의자가 얼마나 편하 냐.”, 이러면서 결국 책상과 의자, 파티션은 새 가구로 장만하기로 했습니다. 파티션을 쓸지 말지, 파티션에 투명한 유리창을 넣을지 말지 등등도 논란이었는데 서로 싸우고 달래가며 하나하나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창립과 개소

이런 실무만으로도 바쁜데 구성원들은 또 하나 큰일을 벌입니다. 바로 “공익인권법 실무학 교”를 개소 전에 첫 사업으로 개최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성원들 역시도 공익인권법 영역의 실무를 배울 필요가 있었고, 공익인권법 활동에 관심 있는 예비법조인들이 실무 역량을 기 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없어 희망법이 이러한 행사를 매년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희망법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홍보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합을 맞추어 본격적으로 하나의 사업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강의 를 기획하고, 공동주최 단체와 후원기관을 알아보고, 강사를 섭외하고, 강의안 가이드라인 을 만들고, 예비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고, 웹자보를 만들고, 포스터를 만들고, 현수 막을 만들고, 자료집을 편집하고 인쇄하는 등등의 일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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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경험들을 하면서, 2012년 2월, 민변과 희망법이 공동주 최하고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후원한 제1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를 개최하였고 이후에 도 매년 2월 무렵에 실무학교를 열고 있습니다. 큰 소송도 하나 덜컥 맡게 되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육부가 서울시의회 를 상대로 조례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는데, 조혜인 등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에 관여해 온 구성원이 있어 서울시의회의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었습니다. 이 소 송은 공식적으로 희망법이 수임한 첫 사건이 되었고, 다행히 대법원 공개변론 등을 거치며 승소를 하였습니다. 또 하나 개소 전부터 중요하게 수행한 것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되면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강정마을에 상주하는 활동이었습니다. 개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지만, 희망법이 모토로 내건 현장성 있는 활동을 위해 구성원들은 상주변호 사 파견을 결정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서선영이 한 달가량 상주하면서, 함께 결합한 민변 백 신옥 변호사와 함께 마을주민과 활동가들을 위한 변론과 인권침해감시를 이어나갔고, 이후 에는 일 주일가량씩 나눠서 내려가 활동을 해나갔습니다. 한편, 사무실을 구한 이후 저희가 주력한 것은 주변에 새로운 단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리면서 활동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후원과 지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실을 마 련하기 전에는 주로 구성원들이 사람들을 찾아가는 방법을 썼다면, 사무실이 생긴 이후에는 되도록 사람들을 사무실로 모셔서 식사를 대접하고 조언과 선물을 받는 방법을 썼습니다. 사무실이 작아 사무실들이를 한꺼번에 하기는 어려워서 여러 번에 걸쳐서 사무실들이를 하 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받은 후원약정, 그리고 연필깎이와 주방기구부터 소프트웨어와 사무용품까지 사무실들이 선물들은 희망법을 시작하는 데에 큰 자원이 되었습니다. 홍보의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언론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희망법이 만들어진다는 소문을 열심히 내다 보니 몇몇 언론사가 관심을 보였고, <경향신문>이나 <시 사인>에서는 개소 전부터 크게 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또 사법연수원 공익변론기금을 받 기로 한 김동현, 류민희 인터뷰, 최초 전맹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김재왕 인터뷰 등은 그 자 체로 희망법에 대한 홍보가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희망법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공식적으로 발족하게 됩니다. 2 월 1일부터 3일까지 구성원 전원이 아침부터 밤까지 ‘끝장토론’을 하면서 정관 확정, 운영부 서의 구성과 부서장의 선임, 사업영역의 확정과 사업팀의 구성 등을 마치고,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새벽 6명이 사무실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정관을 의결하고 초대 대표로 서선영을 선출하였습니다. 이렇게 3일간의 긴 회의를 마쳤을 때에는 4일 새벽 두 시. 모두가 부스스하 고 피곤에 전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기념 케이트 커팅을 하였습니다. 창립총회 의사록을 통해 보면 창립 소감으로 김동현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꿈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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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김재왕은 “속된 말로 말려서 시작한 것 같지만, 이렇게 서로를 말아가면서 나가 자.”, 류민희는 “빨리 가려고 하면 혼자 가는 게 낫겠지만 멀리 가려고 하면 여럿이 가야 하 는데, 멀리 가기 위해 함께 가자.”, 조혜인은 “외롭다고 느낄 때 가장 원했던 부분이 동료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는데, 고민과 걱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너무나 감 사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창립총회에서 정해진 각 사업팀과 운영팀은 이제 구체적으로 대외활동을 준비했고, 마 침내 2012년 3월 13일, 희망법은 공식 개소를 선언하게 됩니다. 창립총회가 단체의 실체와 구조를 세운 날이라면, 개소는 희망법의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충정로 인근의 단체들에 떡을 돌리며 희망법이 활동을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리고, “희망의 문을 열 겠습니다.”라는 포부를 밝히며 세상을 향해 공식적으로 첫 인사를 하였습니다. 희망법과 함께할 분들을 모시는 일들도 중요했습니다. 공익인권법 활동을 해온 선배 변 호사님들, 희망법이 하려는 사업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활동가 분들을 고문과 자문위 원, 그리고 감사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김선수 변호사님과 박래군 활동가님이 희망법의 고문을, 그리고 10여 명의 변호사님과 활동가님들이 자문위원을, 김성진 변호사 님과 조수진 변호사님이 초대 감사를 수락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개소 이후에는 이 분들을 모시고 자문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개별적인 자문도 얻어가면서 많은 도움을 얻 을 수 있었습니다. 4월 9일에는 개소를 알리는 공식행사로 ‘희망 심는 날’을 개최하였습니다. 희망법을 만 든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고, 공익인권법 운동에 관한 좌담회도 열며 성황리에 진행 했습니다. 구성원들은 이날에 맞춰 단체 점퍼도 맞추고, 노래와 율동도 준비했습니다. 음치 와 몸치들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면서 손님들에게 큰 웃음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박 래군 고문님은 “인권운동하면서 제일 크게 웃었다.”라는 덕담을 주실 정도였습니다. 그 광 경을 찍은 영상이 있지만 저희 보관용 하드에 조용히 비공개로 놓아두기로 하였습니다. 저 희에게는 평생 두고두고 잊지 못할 창피하지만 용감한 시도였습니다. 아마 다시는 못할 것 같지만. 새로운 구성원들의 영입

이렇게 희망법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단체의 온갖 사무를 담당해주실 상근자 도 모셔야 했고,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변호사의 충원도 필요했습니다. 특히 운영업무가 크게 부담이 되면서 상근자를 모시기 위한 작업을 서둘렀고, 2012년 6월 상근자를 공개모 집해서 그해 8월 지금의 박상미 사무국장을 영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4년 3월부터는 희 망법에서 한 달간 사법연수원 실무수습을 하였던 이종희를 영입해 지금과 같은 8명의 희망 법을 만듭니다. 그리고 사무실을 이용하기로 한 2년의 시간도 어느덧 지나가면서, 2014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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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희망법은 보다 넓은 지금의 사무실로 이사를 합니다. 이렇게 희망법의 구성과 조직과 활동들은 계속해서 변화중입니다. 여전히 초창기 때처 럼 활동과 운영의 원칙들을 다시 점검하고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일들도 많습니다. 아직 만 들어지지 않은 부분 역시도 있어 이를 채우기 위한 노력들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기자님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희망법 구성원들이나 활동을 보면 참 젊은 것 같은데, 실제 나이들을 들으면 젊지 않아. 다 언니, 오빠들이야.” 이런 “젊다”는 이미지는 부담이기도 하지만, 희망법이 처음부터 가지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약동하고, 생동 하고, 변화하는 희망법. “함달공(함께 달리는 공익인권변호사들)”의 모습. 그렇지만 마냥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개소인사에서 “좌고우면하면 서도 담대하게” 나아가겠다고 한 것처럼, 앞뒤와 옆을 잘 돌아보면서 희망을 만드는 단체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지나온 희망법의 기록이 새로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그리고 희망법이 앞으 로 이루어나갈 모습 역시 쓸 만한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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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이 만드는 문화, 희망법을 만드는 문화

조혜인

수평적인 문화와 운영, 구성원의 성장과 행복을 지향하며 희망법이 쌓아온 크고 작은 문화들을 소개합니다. 이 문화들이 곧 희망법의 정체성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희망법의 분위기’는 이런 요소들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운영

쓰, 동, 왕, 가람, 레사, 종이, 미니, 혜인. 누가 누구일까요? 희망법 구성원들은 변호사라는 호칭 없이 서로의 이름이나 별명을 부르면서 존대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받는 분들께 4주 수습기간 동안 이런 흐름에 동참하도록 권하기도 합니다. (처음 에는 어색해하시던 분들도 금방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실무수습 정식 후기 글에까지 ‘동이~’, ‘쓰는~’이라고 내 부 호칭을 쓰는 바람에 일일이 원고를 손봐야하는 사태에 이르지요.)

나이와 성별에 관한 고려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를 존중하되, 편견과 선입관에 근거하여 특정한 역할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 습니다. 덕분에 나이와 성별의 구별이 거의 없는 조직이기도 합니다. 희망법의 주요한 의사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됩니다. 크고 작은 사안 모두 1인당 1의결권을 가지고 구성원들의 토론과 협의를 거쳐 결정하게 됩니다. 다만 단체 운영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구성원 각자가 운영부서를 하나씩 책임지고 업무의 진행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희망법은 이처럼 조직의 구조와 문화 양면에서, 형식적·실질적으로 위계가 없는 수평적 인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운영방식이 공익인권단체로서의 성격에 들어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평적인 문화와 운영을 지향한다는 단체의 가치와 원 칙에 따른 것이기도 하며, 구성원 개개인의 개성과 욕구가 어우러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위 계 없음이 비효율적이거나 무책임한 운영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감 이 단체의 생동과 활력으로 이어지도록 성찰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 먹는 점심식사

희망법은 주거형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꾸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 점심식사를 사무실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었지요. 외식이 아닌 집밥을 먹고 싶다는데 의견이 모아 져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식사당번을 맡아 점심을 만듭니다. 사실 이런 점심식사는 이웃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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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단체들의 함께 밥해먹는 문화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단체에서는 흔 하지 않은 일이기에 희망법 밖의 많은 사람들이 이 문화를 아주 재미있게 여기곤 합니다. (희망법이 설립된 직후 한 방송국에서 희망법을 아주 자세히 인터뷰해갔는데 정작 방송에는 ‘(돈이 없어)

밥을

해먹는 변호사들’이라는 식으로 식사 장면만 잔뜩 나와서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는 웃픈 이 야기도 있습니다!) 식사시간은 구성원들이 얼굴을 보고 서로의 안부와 일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희망법을 만들기 전에 많은 술자리를 가졌던 구성원들은(이 술자리들에서 공익인권활동을 전업으 로 하는 변호사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는 인식 공유부터 단체를 함께 만들자는 결의까지 많은 역사가 만들어졌 습니다.)

정작 희망법을 만들고 난 후에는 일정에 쫓겨서 함께 노는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밥을 나누어 먹으며 농담과 토론과 활동이야기와 고민 상담을 주 고받는 왁자지껄한 점심시간은 그래서 소중합니다. 가끔 희망법의 자문위원, 회원, 연대활동가 등 희망법을 방문하시는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합니다. 비싼 식재료도 화려한 음식 솜씨도 없지만 정성스럽게 식사를 만드는 마음을 높이 사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식사 분위기는 풍성해지지요. 사무실에서 점심을 만들 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쌀, 통조림, 반찬 같은 먹거리를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점심식사 문화는 계속될 수 있을까요? 희망법은 활동을 더 활발하게 펼치기 위해 조만간 조금 더 넓은 사무실로 이사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예산으로 더 큰 사무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쉽지만 부엌을 가장 먼저 포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부엌이 없어져 식사를 함께 만들어 먹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하루 일정 시간을 내어 서로 의 일상을 나누는 문화는 다른 방식으로 꼭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이 글이 쓰여진 이후 희망법은 서울혁신파크 안으로 사무실을 옮겼습니다. 새 사무실에는 부엌이 없어 이제 직접 요리해먹는 일은 어려워졌지만, 식사 당번이 반찬을 마련해와 점심을 나누어 먹는 문화는 여전히 이 어가고 있습니다. 점심 먹으러 놀러오시는 분들 환영합니다. 조그만 반찬 슬쩍 들고 오시면 더욱 좋아요.)

연구일과 연구월 제도

희망법을 창립하며 야심차게 기획한 제도가 있습니다. 연구일, 연구월 제도입니다. 연구일 은 일주일에 하루는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자유롭게 업무를 보거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고, 연구월은 일 년에 한 달씩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각자가 정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 제도입니다. 연구월 동안 하나의 주제를 깊게 탐구하기도 하고 논문을 쓰기도 합니다. 국내외에서 한 달 가량의 단기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밀려오는 눈앞의 일정에 대응하다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갖기가 어렵습니다. 긴 호흡으로 문제의식을 가다듬고 몸과 마음 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갖자는 것이 제도들의 도입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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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년을 진행해보니 연구일, 연구월을 애초의 취지대로 활용하는 일이 쉽지는 않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린 일을 처리하는 시간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의욕이 넘쳐 연 구월 동안 일을 벌이다가 평소보다 더 지쳐 돌아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연구월 동안 업무를 완전히 쉬게 되면 동료들에게 그 부담이 돌아가는데, 다들 이미 업무량이 꽉 찬 상태에서 일을 더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소의 업무를 그대로 안고서 연구월에 들어가 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연구월을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체의 전체 업무 량을 줄여야 하는데 이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연구일, 연구월 제도를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는 계속적인 고민거리입니다. 연구일, 연 구월을 각각의 취지에 맞게 사용하도록 서로를 독려하면서 제도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보 완해가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진행된 평가를 통해서는 한 달의 연구월 기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해에는 부득이 2주의 안식주로 대체하여 최소한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보완제도를 마련하였습니다.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문제의식을 더 깊고 더 날카롭게 벼리는 시간은 구성원과 단체 가 함께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일, 연구월 제도가 보다 충실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궁리와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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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만드는법

연간보고서 2015

발행일

2016년 9월 1일

발행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발행인

김동현

편집인

김재왕

교정·교열

박상미, 최현정

디자인

이경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03371 서울시 은평구 통일로 684 서울혁신파크 1동 504호 (녹번동 5) T 02-364-1210 F 02-364-1209 H http://hopeandlaw.org E hope@hopeand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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