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inute read

각막기증, 어머니가 남기고 간 종합선물세트

각막기증 ,어머니가 남기고 간 종합선물세트

Advertisement

각막기증인 故 김영애 씨의딸 이금복 본부 상담국장

지난 2003년 본부에 입사해 17년째 근무하며 현재는 상담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금복 국장. 부서 특성상 그간 수많은 장기기증 사례 를 마주하며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기증인에게는 감사와 예우를, 슬픔에 빠진 유가족에게는 위로를 전해왔던 그녀다 . 이처럼 늘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익숙했던 이 국장 역시 얼마 전 생명나눔가족이 됐다 . 지난 5월 18일 , 오랜 기간 암 투병 끝에 세 상을 떠난 어머니가 각막 기증을 통해 두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새 빛을 선물한 것이다 .

슬픈 이별을 극복한 아름다운 죽음

故 김영애 씨가 4년 넘게 난소암으로 투병하며 세 번의 대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막내딸 이금복 국장은 늘 어머니 곁을 지켰 다 . 결혼 후에도 위아래 층에 살며 가장 많은 정을 쌓은 까닭도 있겠지만 , 과거 자신의 몸이 좋지 못할 때 정성으로 간호해 준 어머니의 사 랑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간병에 힘썼다 . 호스피스병동에서 임종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어머니에게 “ 엄마 , 딸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 부에서 일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각막기증은 해야지 ?” 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넬 수 있었던 것도 모녀간의 깊은 이해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 능한 일이었다 .

“ 장난처럼 얘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어머니께 준비할 수 있는 시간 을 드리고 싶었어요 .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죽음의 공포와 두 려움에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 누군가에게 새 삶을 선물할 수 있 다는 사실을 통해 엄마가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이를 위해 가족들은 어머니가 입원 중이던 서울특별시동부병원에 서 진행하는 ‘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 에 참여했다 . 생전 장례식이 라는 다소 낯선 콘셉트로 임종을 앞둔 환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청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밝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별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데 , 어머니와 가족 들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이 됐다 . 평소 그토록 살을 붙이고 살았지 만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사랑의 말을 전하고 진심을 다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 이 국장의 아들이 할머니를 생각 하며 한 자 한 자 마음을 다해 적어내려 간 편지를 읽을 때는 자리 에 함께한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 어둡고 슬픔만 가득한 장 례식에서 벗어나 죽음을 조금 더 의미 있고 아름답게 준비할 수 있 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

어머니가 남기고 간 사랑의 유산

얼마 후 어머니와 가족들 모두가 함께 준비해왔던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 각막기증 절차를 진행하려고 하자 선순위자인 아버지가 “ 엄마가 생전에 원했던 일이었니 ?” 라는 한 가지 질문을 하고는 특 별한 반대 없이 기증 절차에 동의했다 . 이후 이 국장은 평소 다른 이 들의 기증 상담을 했을 때처럼 실무적 절차를 직접 진행했는데 , 기 관 관계자와 의료진들과 직접 대면하서 슬픔에 빠져 있는 가족들 에게 진심을 담은 위로와 감사의 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 그때 그녀에게 든 생각이 바로 ‘ 이 지점이 본부의 존재 이유 구나 ’ 라는 것이었다 . 지금까지 자신이 유가족들을 대할 때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갔었는지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 고맙습니다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금복입니다 ” 라고 말하며 받는 전화 한 통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 간이 됐다 . 실무자로서 장기기증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 슬픔 앞에 직면한 유가족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의 온도와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마음 에 새기는 계기가 됐다 .

“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간의 투병생활과 각막기증 과정을 통해서 막내딸에게 인생 공부를 제대로 시키신 것 같아요 . 업무적인 것뿐 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전보다 더 깊고 넓게 성장할 수 있게 하셨고 , 그간 사람들을 통해서 받은 사랑을 더 많이 나누며 살 라고 하신 것 같아요 .”

이 국장이 회상한 어머니 故 김영애 씨는 항상 사랑이 넘치는 사람 이었다 . 손자가 소풍가는 날이면 , 딸이 일하는 본부 직원들이 모두 나눠먹을 수 있도록 수십 줄의 김밥을 싸줘서 모두가 함께 즐긴 기 억이 있다 .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부침개 , 김치 등을 나눠 먹으 라며 출근 길 손에 들려주기도 여러 번이었다 . 또 남녀노소를 불문 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서도 환 자들 사이에서 ‘ 이야기 잘 들어주는 착한 언니 ’ 로 통했다 . 정 많고 따뜻했던 어머니의 생전 모습과 떠나면서도 나눔을 통해 모르는 이에게 빛을 선물한 고인의 삶이 , 이금복 국장은 마치 자신에게 남 기고 간 어머니의 종합선물세트인 것 같다고 말했다 .

“ 아픔도 슬픔도 없는 하늘나라로 이사 간 우리 엄마 , 늘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는 모습에 ‘ 참 오지랖 넓다 ’ 고 많이 뭐라고 했었는데 , 이 제는 내가 엄마를 따라하고 있더라고요 . 근데 그게 너무 좋네요 . 앞 으로도 엄마처럼 더 많이 나누고 베풀며 살게요 . 잘 지켜봐줘요 . 사랑합니다 .”

1. 가족과 함께한 고인의 생전 모습 2. 이금복 국장의 아들 황규민 군이 할머니께 쓴 편지를 읽는 장면 3. 본부 근조기가 놓인 빈소

This article is fr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