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스무살 <청소년교육예술연구소 달꽃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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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무 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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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무 살 이 사 는 세 상 과 스 무 살 이 바 라 보 는 세 상 에 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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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난 방황해 갑자기 나타난 선택의 기로와 어정쩡하게 주어진 자유들로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3


기획 주아현 이아현 임지영 허수경 이정태 글 황진욱 주아현 임지영 이아현 허수경 이정태 김창희 2016.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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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3:00 나는 엄마의 종교가 부끄러웠다 좋은어른 언제 부터 길을 잃은거지? 공유합니다 어느 스무살의 인터뷰 나의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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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욱,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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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연필을 들었다. 지금의 나는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하다. 사

1. 집에서 공부하며 뉴질랜드 양봉학교 유학을

모르고 분량 조절에 실패해 15분 전에 공부를

2. 농마고 진학 실패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흘 전에 시작한 인강의 양이 이리도 많을 줄 마친 까닭이다. 평소 같으면 늘 그래왔듯 내일 로, 모레로 미루었겠지만 일정에 잘 맞춰 들으

면 수강료의 절반을 돌려주는 ‘환급코스’ 라 그 럴 수 없었다.

치킨 10마리 값이 걸린 지난 사흘을 필사적으

준비한다.

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3. 부모님을 거들며 가업(과수원)을 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4. 군대에 있다.(젠장!)

로 보내고 이 글의 마감이 코 앞에 와서야 글을 쓰기 시작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스

무살도 이렇게 정신 없고 바쁘고 흔들거리겠

지. 근데 그때는 또 뭘하고 있느라 바쁠까?’ 나 름 꽤 설레는 상상을 하던 중 앗, 막혀버렸다. 상상 속 2년 후 20살이 된 나는(지금 나이 18

중3) 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이하 농마고) 에서 몸빼를 입고 괭이질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

직 이 학교에 합격은커녕 원서접수도 안했고( 내일 하러간다) 합격자 발표도 다음주 금요일

은 되어야 나온다. 아직 ‘나는 그럴 것이다’라고 말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거기다 기숙사가 의무인 마이스터고 특성상 내일 오후에 나오 는 건강진단서에서 B형 간염이나 결핵이라도 나오면 입학이 곤란해지니 더욱 더 불확실해젔

다. 그래서 20살의 나에대한 몸빼+괭이질 외에 다른 대안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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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것 들을 따져보며 고민에 빠져든다. 역시 언제나 그렇듯이 답같은

건 나오지 않고 생각이 뿌리처럼 쫘악 뻗어나가 수십가지 경우들이 머리 속 에서 소리를 지른다. 머리를 싸매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답답한 마음에 살 짝 우울해젔다. 그새 20분이 지나있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건 어른들이 말해준 “10년, 1년, 한달 뒤의 내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는 말이다. 내 지난 시간들도 그랬다. 중학교 입학 2주전에 학교를 다니지 않 기로 결정 할 때이고 그랬고 집에서 놀다 부모님의 권유로 아무런 연결고리 도 없던 양봉을 시작 했을 때도 그랬고 2년 뒤 우연한 소개로 2014년 처음 생

긴 방송통신중학교 1기로 다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도 그랬고 학교 수 학선생님의 추천으로 농마고를 알게 되어 원래 계획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 말이 열심히 기

웃거리며 노력하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면, 아니 지금 처럼만이라도 하면 뭐라도 되겠지. 기 분이 좀 괜찮아젔다.

다시 20살의 나를 생각해 보니 역시 불안하긴 하지만 앞으로의 나에 대한 기

대와 약간의 흥분으로 들뜬 마음이 든다. 지금의 18살 처럼 내 20살도 뭔가

있을 것 만 같이 훅 왔다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무심하게 지나가 버릴 것 같기 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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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주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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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종교가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 엄마는 *무슬림이다 한국인이다. 근데 무슬림이다. 내 기억으로는 엄마가 이슬람으 로 개종했을 초반에는 그다지 신앙심이 있어

서 개종했던게 아닌걸로 알고 있다. 이슬람이 국교인 사람과 재혼을 해서 자연스럽게 남편

의 종교로 개종을 했던 것 인데 그 남편도 그다 지 신앙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여서 부인에게

자신의 종교를 적극적으로 어필하지는 않았던

걸로 안다. 그래서 엄마는 세례를 받기만 했을 뿐 딱히 신앙 생활을 하고 그러는 편은 아니였

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히잡을 쓰고 자신

의 몸을 긴 옷들로 드러나지 않게끔 하였다. 엄 마의 히잡과 긴 옷들이 하늘하늘하고 예쁜 무 늬와 빛깔들이여서 참 좋아했었다. 그 너풀거

리는 옷자락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 게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초등학교를 입학하 고서부터 우리 엄마의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 과 다르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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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엄마랑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엄

를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엄마에게 다가와 “한국 사람이예요?”

“네 한국 사람이예요”

“한국 사람이 이슬람을 믿으면 안되지”

라고 얘기하더이다 그러자 엄마는 그 아저씨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아저씨는 엄마를 향해 소리 쳤다.

“한국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되지!” ...

초등학교 졸업식 때에는 엄마에게 히잡을 쓰고 올거면 졸업식에 오지 말라 얘기 했었다. ...

엄마와 함께 외출을 하게 될 때면 엄마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떨어져서 걸었다. ...

몇 몇 사람들은 지나가는 엄마를 붙잡고 “한국사람이냐” “머리에 그건 왜 쓰는거냐” 묻기도 했 다. ...

외할머니는 포교하고 다닐 정도의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

어느 날엔 외할머니가 책장에 꽂혀 있는 엄마의 꾸란(기독교의 성경과 비슷함)을 보고 찢어서 집 마당에다 아무렇게나 던져 놨었다 . ...

엄마는 면접을 볼 때마다 직장에서 예배를 해도 되는지, 히잡을 써도 되는지 물어본다. ...

엄마는 사장이 터키사람이고 무슬림인 여행사에서 면접을 봤는데 히잡을 쓰면 채용을 하기 어렵 다는 얘기를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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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인구 수 16억 중 IS,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의 인구수는 1프로가 안된다 0.몇프로이고

심지어 무슬림들은 IS와 알카에다를 무슬림이라고 보지를 않는다 ...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기 위해 나침반을 챙기고, 기도 카펫을 들고, 깨끗한 몸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씻고, 심지어 누군가는 자고 있는 시간인 해뜨기 전에도 기도를 하고,

더운 여름 날에도 긴 팔 긴 치마 머리카락까지 다 천으로 가려야 하는 것 만으로도 힘들었을텐데 가장 그것을 이해하고 배려해 줄 가족들이 오히려 타박하고 배척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개종하 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종교를 지켜나갔다.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종교와 신앙에 대한 이해가 없어 이슬람을 믿는 엄마를 창피해하고 미워했

지만 내 주변에 다양한 종교와 신앙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엄마도 그 사람들과 같이 그저 자신의 종교를 자신의 방식대로 믿고 있는 뿐이라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 다. ...

엄마가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를 믿었다면 어땠을까?

불교를 믿었다면? 천주교를 믿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전에는..아니 요즘도 종종 이런 생각 을 하지만 이내 그런 고민과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

불과 서울이 한양인 시절 천주교는 박해를 받았었다. ...

미얀마에서는 대부분이 불교이고,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소수종교인데 미얀마에서는 지금도 기 독교와 이슬람교가 불교와 대립중이다. ...

그 외 다른 나라에서도 다양한 종교로 사람들은 쌈박질을 해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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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과자를 사먹을려면 뒤에 성분표시를 다 읽고 고기 성분이 들어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먹는다 . ...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주문하면 “햄은 빼주시구요,햄 묻은 칼과 비닐장갑을 새 걸로 또는 바꿔 서 해주세요” ...

나의 부모가 한국인이고 무슬림이기에 한 고민들이 있다. ...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가 가족들이 모여 친척 집에 가게 되었다. 삼촌은 차를 타고 가는 길 내내 엄마의 종교에 대해 모독하며 갔었다.

“이슬람 믿는 인간들이 많은 이유는 그 인간들이 바퀴벌레처럼 증식해서 많은거야” “미개한 종교야”

“누나 내가 좋은 한국 신랑감 소개 시켜주게 그 보자기 좀 벗어. 그래야지 소개 시켜주든 말든하 지”

“내가 절친한 친구한테 누나가 외국인이랑 결혼했고 무슬림이라 했다가 그 친구랑 연락 끊겼어” “누나는 가족의 수치야” ...

아마 삼촌이 그 날 그렇게 엄마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이 글과 생각들은 없거나 모호하게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끝맺으면 좋을지 몰라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하고 있었어?“

“스트레스 받아서 자고 있었어 자면서 스트레스 풀게“ “그렇군..엄마에게 이슬람은 뭐야? “ “이슬람은 나의 삶과 죽음이야“

음 그래 좋은 결말이군..(실제로 저렇게 대답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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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 16

나는 거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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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 어른 초등학교에서 국제 중학교 그후 특목고, 혹은 자사고 외고 처럼 명문 고등학교, 졸업 후에

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는 것이 대부분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바라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을 맹목적으로 쫓아가는 삶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배운 배움이 나에게 무엇을 남길런지. 시험 보고 뒤돌아서면 까먹는 것이 그런 배 움이 아닐까 싶다.

정말 재미 있어서 내가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배움을 하며 살고 싶다. 나는, 성공한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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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살은?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크릴물감을 붓에 묻혀 그림을 그려나갈때 나는 행복하다.

디자인을 할때도, 내가 만든 책과 가방을 다른 사람들이 봐 주는 것도 기뻤고 흐뭇했다. 그래서 나는 더 배우고 싶다. 예술을 하시는 분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듣 고 싶다.

그래서 대학에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각디자인과에 가고 싶기도 하고 순수 미술을 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아마도 나의 20살은 대학을 풍경으로 하지 않을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어떤 어른이 된다는 것을 어떤 직업을 갖을 것이냐는 질문으로 받아 들이고 싶지 않다. 정말 어 떻게 살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 갈까의 의미로 이 질문을 받아 들이고 싶다.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유난히 많이 보았다.

그 아픈 부분을 사회에 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약한 사람들의 편에서는 예술을 하는 것,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아니어도 세상에 물음을 던 질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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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여 행, 대구로 20


오로지 내 결정으로 내 선택으로 내 시간으로 하루를 사용한다면 그리고 그 하루에서 만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본다면 그 하루는 ‘나 혼자 떠난 여행’ 이 된다. 나홀로 여행기: 처음 떠난 여행, 대구

내가 도망친 이유: 배운다는 것은 재미있고 설렌다. 나도 내가 이런말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험기 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즐거워서 배우기 보다 좋은 성적을 위해 공부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 느꼈다. 그래서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는 시험공부를 시작 할 수 없었다.

좋은 성적을 위한 공부는 경쟁심을 일으키고 그러한 경쟁심은 즐겁기 때문에 배운다는 내 생각 을 흔들어놓았다. 시험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이 번져 진학고민으로까지 이어졌 다. 비인가 대안학교를 가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제도권 안에서는 제도권 밖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얽메이기 쉽다 생각했다.

도망쳤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지기 위해 나는 여행이라는 도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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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1205 열차, 무궁화 나는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입석표를 샀다. 기차 바닥에 앉아 여행의 시작을 느낀다.

기차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마치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내가 보는 세상에 배경음악이 깔린다. 마치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는다.

창문 밖으론 산이 보인다. 가끔은 푸른 하늘만이 창을 가득 채울때도 있다. 김천역을 지난 후 똑같이 생기신 할머니 두 분이 내 앞자리에 앉았다.

감을 깎아 드신다. 그러다 옆에 있는 아이엄마와 아이에게 감 한쪽을 내민다. 땅바닥에 안기 싫다고 할머니에게 칭얼 거리던 4살쯤 되보이는, 스트라이프 티를 입고 앞머리가 있는 작은 여자아이가 터널을 지나가느라 캄캄해진 창을 보고 “ 어 밤이다‘ 하며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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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 숲 대구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가파른

절벽에 수직으로 자라난 측백나무 숲이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란다.

오랜시간 걸려 마주한 그 측백나무는 여러 넓 은 잎을 가진 나무들 사이 눈에 띄지도 않는. 절벽에 듬성듬성 자란

그 숲은 참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마저 내 게 주었다.

그 숲은 황홀해야만했다. 숲을 마주하기전 내 가 그린 숲은 그랬다. 측백나무 숲은 대구로

여행 온 이유였다. 나는 이 숲에서 위로 받고 싶었다.

그 숲을 어떻게든 마음에 담으려 그 자리에 앉 25

아 숲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측백나무를 보

며 그림으로 담았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측백나무 에게 받은 실망감을 감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

고 그렇게 해야만 내 마음에 그 숲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었다. 내가 측백나무를 마음에 담게 된건 서울

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엿다. 숲은 황홀하지 않았

다. 측백나무는 그저 상처입은 존재였다. 모든 것을 쏟아내는 절벽에 홀로 쏟아지지 않은

자신을 쏟아내려하는 절벽과의 기나긴 이야기었다. 슬픔이였다. 그리고 절벽을 향해 건네는 용서였다.

맞다. 측백나무 숲은 황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숲 은 이미 어른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측백나무를 내 마음에 담을 수 있었

다. 측백나무는 내 마음속에 있는 절벽과 다시 기나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암산성,

용암산성을 보깅튀해 팔공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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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올라왔다. 올라오며 다음 일정을 제일 많이 생각한 듯 싶다. 무얼 먹을까, 어 디를 갈까

그러다 정상에 섰다. 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순간 숨이 턱 막힌다. 황홀하게 아름

답다. 햇빛을 받아 낸 것들이 일렁인다. 도동천도 지나가는 자동차도 비닐하우스도 일렁인다.

대구는 도시였다. 아파트가 있었다. 내가 온 곳들이 시골스러워 순간 잊고 있었다. 나는 왜 대구에 오고 싶었을까. 그래도 멀리 도망쳐왔다. 도망친 만큼 도망자답게

스릴있게있다 가야지 않겠는가. 아 한가지 후회 되는 것이 있다. 산에 올라올 때 물 한병 사들고 올라 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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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등산하다 만난 아저씨 일행을 다시 만났다. “ 학생 막걸리 한잔하지” “ 중학생인데요 ..”

허허 웃으시다 사이다와 김밥을 건네신다. 김밥은 입에 맞지 않아 먹다 그만두었다. 사이다만 홀짝 홀짝 넘긴다. 29


산성은 생각보다 자신이 산성인 것을 티내지 않았다. 산성을 따라 난 길이 이뻤다.

출발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춤도 추고 사진도 찍는다. 신이 난다.

저 대구가 내려다 보이는 것이 신난다.

어쩌면 도망자라는 신분이 신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진도 여러장 찍는다. 여행오기 참 잘했다.

아 참, 풀벌레에 대한 이야기도 적어야 겠다.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소리가 멈춘다.

그러다 가만히 서 있다보면 사람이 없는 줄 안다. 다시 풀

벌레 소리가 들린다.

내 옆에서 풀벌레가 울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자연에 스며들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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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홀로 여행은 소중했다.

예측할 수 없어 좋았고 서툴러 좋았다.

일상에선 지나칠 작은 것들도 소중했던 순간들이었다. 애벌레와 거미를 ,

길가에서 만나 나만 보면 미친 듯이 짖어 대던 개도 소중했다.

지나가다 마주친 할머니께서 따 주신 탱자 열매 2개의 냄새가 아늑했다. 기찬에 탄 시간도 소중했고 옆사람의 이야기도 행동도 소중했다. 몸은 참 고되다.

많이 뛰고 많이 걸었으니까..

아무렴 어떠냐, 마음은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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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고 사랑하고 즐거웠던 수많은 날들이

항상 아득하게 기억에 남아 멍한 웃음을 짓게 하네 그래 멀리 떠나자 외로움을 지워보자 그래 멀리 떠나자 그리움을 만나보자

- 출발 , 어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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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라

나도 몰라

모른다구-34


19, 이아 현 35


어릴 적부터 일기를 쓰는 것조차 싫어하던 내가 어떻게 여기에 글을 쓰게 되었을까? 나의 선택이 불안해서 였을까...?

언제부터 였을까 허무했다. 나는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온 가족이 건강하였고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으며 오늘 아침, 점심도 잘 먹었다. 성적도 올랐다. 이정도

면 인서울 이었다. 내가 싫어하던 친구보다 시험을 잘 봤다. 모든 것이 내 가 상상하던 바였다.

하지만 이건 내가 상상하던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평범하고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뭐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고 중학교

때는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있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호기롭게 자사고 에 갔다. 자사고의 첫 시험인 예비 평가에서 나는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던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모든것을 미 루고 공부에 매진 했다. 친구들과 하교 후 버스 밖 웃으며 노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건 나의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성적

은 바닥을 기었다. 그래서 1학년 때는 거의 매일을 눈물로 지세웠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 나는 결국 패배감이 쌓기기 시작했다. 결국 나의 공부는 삐걱 거리기 시작했다. 공부를 해서 뭐해? 이정도 해서 이것밖에 안 나오

는데 더 뭘 어떻게 하라는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학교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속으로 친구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너는 강남사

람이잖아 너네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경쟁하니까 잘하지 다 학원 빨이 야 등등 친구들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도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나의 행동은 점점 소극적으로 변했다. 그래 도 전학은 가기 싫었다. 도망치긴 싫었다. 그래서 억지로 공부를 계속했다. 공부도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던 내가 바뀐 것은 고3 6월 모평 이후였다. 6월에는 성적이 당

연히 떨어진다는 말과 달리 성적이 오르자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성 적이 오르면 당연히 기분이 좋아야 하는게 당연지사, 하지만 나는 오히려 36


머리가 아파왔다. 아 이정도면 대학을 갈 수 있겠구나 그럼 어디를가지? 무슨과를 가지? 대학을 가면?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저요. 대학 안 가려 구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내 머리 속에 쏟아졌고 처음으로 내가 어떻

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았다. 이런 생활의 끝은 안 보였

다. 대학을 가도 취업을 해야 할 것이고 취업을 해도 승진을 해야 할 것이 고 결혼도 해야 할 것이었다. 끝이 없었다.

나의 인생은 정해진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이건 나를 위한 것 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허전함을 다른사람의 인정으로 채우

려는 행동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먹었다. 이런 짓 그만하자. 몸은 불편해도

마음만은 편하게 살자.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뭘 좋아 할까? ...몰라 그랬다. 나는 꿈이 없었다. 아니 그저 명문대를 가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랑을 받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래서 진정 나

를 위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대학이 그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었다. 나는 속도보다 방향이, 지식이 아닌 경험이 필요했다.

이런 결정을 하고 난 어느 날 아침 등굣길이 었다. 그날은 참 많은 사람들 이 버스에 탔고 많은 표정들이 사람들의 얼굴에 있었다. 무표정도 가지 각 색들이었고 같은 버스안이지만 각자 다른 곳으로 가는 듯 했다. 그들을 보 면서 생각했다. 참 열심히들 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이렇게만 살아야 돼? 나는 궁금해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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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돈 그 놈의 돈, 이제 돈이 문제였다. 한달 남짓 뒤 나는 성인이 된다. 이제 자

유다 라는 말이 무색하게 책임이 나를 누르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나는 이 제 여행을 가고 싶어한다. 아 그럼 알바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최저 임금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돈을 벌 궁리를 하는 도중 상담 선생 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에게 달라고 해 아현아 너는 그럴 가치가 있어. 그렇게 너를 낮은 가 격으로 팔지마 그 시간에 더 좋은 일을 해봐”

나는 이 말이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았았다. 어떻게 방법이 있는데 엄마에

게 손을 벌리라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일찍이 독립을 한 언니 의 한마디가 마음에 확 와 닿았다.

“독립하려고 하면 독립 할 수 있어 근데 나는 독립하려고 정말 알바만 하 고 살았던 것 같아. 엄마에게 돈 타서 쓰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지마 아 현아”

그랬다. 나는 이런 바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나에게 쉼을 주고 싶어서

이런 선택을 했다. 그런데 독립을 하려고 아둥바둥 살면 내가 이런 목표가 길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부탁했다. 1년만 도와 달라고

결정을 하고보니 하루 하루 도태에 대한 불안과 나의 선택에 대한 만족감 사이를 넘나들며

살고 있다. 아직도 나의 소심한 성격탓에 대학가지 않는다는 말 대신 침묵 으로 넘어갈 떄가 있다. 하지만 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후회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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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기억

언제까지 참으라는 거야

고3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에 들어오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좀만 참아 였다. 우리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창시절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그 래서 많은 부모들은 부모 자신과 아이들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못했던 것 을 아이들을 통해 이루려한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하

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다고 했다. 나도 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억지로 해야되는건가? 해야하는 일이 뭔데? 마음에 안 들면 포기해도 괜찮다.

일이라는 건 난 이제 일을 해야 하는 나이다. 이것이 일이라는 것이 뭘까 라는 생각을 하 게 만들었다.

일,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는 네가 원하는 일을 해! 도전해!! 망설 이지마!! 라고 한다. 근데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법 그래서 나는 이런저런 책을 읽던 도중 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발견했다.

일은 남을 위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떤 직업이 좋은 것일까 나는 가장 남을 잘 도와주는 것이 좋은 직

업이 아닐까? 나는 원래 가장 좋은 직업이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흥미와 적성 중에 흥미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 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다 싶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없을 수도 있다. 모든 일

에는 어려운 부분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것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

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일에 이게

내 적성에 맞나 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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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가 사람 환장하게 만드네 나를 되돌아 보면서 나의 실패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나의 행동들이 덜 비참해 질 것 같았다. 이런 와중 나의 기억 하나 를 찾아냈고 이를 적으려 한다. 777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 숫자를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다. 이것은 1학년 때 나의 국영수 내신 석차등급이다. 모의고사에서 한 문제 한 문제 열심히 풀었건만 내신 등급이 777이 나왔다. 하하... 정말 너무 슬퍼 서 웃음이 나왔다. 그 성적표를 받은 주말 나는 10km 마라톤을 나갔다. 아 뿔사 나의 배에 붙여야할 번호가 □777이었다. 그때 정말 집에 가고 싶었

다. 성적이 부끄러워서 남에게도 말 못하고 그냥 기분 좋은 척을 하고 있었 다. 마라톤이 시작되고 나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계단 올라가 는 것도 숨이 차는 나인데 그 날은 그냥 죽을 만큼 달리고 싶었다. 눈을 뜨

기 힘들 정도로 달렸다. 결국 일행 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생각했다. 실패한다고 인생이 망하는 것은 아니더라 생각

보다 별일 없더라 그리고 실패는 아프지만 좋은 추억이라고 어제 실패한다

고 내일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그 아픔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그리고 그 실패 덕분에 더 좋은 일이 일어 날 수 있다고 아니 실은 그냥 그렇게 믿 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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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간다는건 어떤 일을 그냥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을 가지고 하는 지 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의 대학은 참 의미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의미에서 대학을 안 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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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즐거워 괜찮아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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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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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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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거: 손에 쥐고_ 과거는 힘들었건 좋았건 나빴건 큰 일이 있었건 절대 바꿀려고 생각하지말고 잊으려고도 하지말 고 그저 이해하고 저편에 잘 정리해 놓고 미래에 있을 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 은 행복하게 회상하면 그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거나 아프고 안 좋은 기억들은 잊으

려한다. 물론 나도 그랬고, 그런데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만큼 더 행복한 일을 원한다면 앞서 말 했듯이 이해하고 잘 정리하는 습관을 들어야한다. 내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나쁜일이건 좋은일 이건 절대 잊혀진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잊혀지더라도 나중에 꼭 기억해야할 일

도 잊어버리는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이해하고 잘 정리해 넣어두고 현재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비슷한 일들이 생기면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이렇게 된다

면 미래에는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 과거는 내가 지금 손에 쥐고 가고 있고 현재 는 몸이고 미래는 눈앞에 펼쳐지는 것 이라고 잘 손잡고 건강하게 서있고 그렇다면 눈 앞에 펼쳐 지는 것은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과거가 있어 든든한 이유도 있을거라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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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애: 헤어짐에 완벽_ 연애는 참 신비로운 것 같다. 친구 이상의 그 감정의 폭과 또 다른 무언가를 안겨주고 이 관계가

발전해서 부부가 되어 가족이 된다니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나는 연애를 잘 못한다. 그리고 연애

도 많이 해보지 않았고 약 3년 전 까지만해도 남자에 대해서는 정말 토 나올 정도로 부담스러워 했었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려웠던 것 같다. 주변에 연애박사 친구들이 한 명씩 있

을거라고 생각한다. 연애 상담은 그 친구들 한테하고 나는 내경험을 통해 ‘이렇게는 하지마라 내 가 해봤는데 아니더라’라고 꼭 이야기 해주고싶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연애에 있어서는 더 더욱 헤어짐에 완벽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불행해 질 것 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 했듯 크게 생각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과거에 청산 못한 사람들과 아직도

만난다고 생각 해보자. 충격 그 자체일 것이다. 물론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뭐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이렇다. 나는 끝맺음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태까지 만 나서 관계를 가졌던 분들에게 죄송하다. 계속 현재에 안착하지 못했엇고, 또 같이 미래를 봐야하 는 것이 정상인데 내 눈은 과거로 가 있었기 때문에 1명에서 짧고 굵게 끝내도 될문제를 여러명까

지 피해를 주는 상황까지 만든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그 피해를 끔찍하게 느껴보았 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나처럼 과거에 눈이 달렸었더

라면 고민하지 말고 현재에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큰 상처주지 말고 눈 앞 으로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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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기 개 발: 기본_ 자기개발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한 번쯤 고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하지 더 못한 사람이 되려하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계발에 있어 가장 중요

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들이다. 내가 약을 판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지금 정말 방황하 거나 중심이 잡히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다면 이 비법을 통해서 점차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법은 인생에 있어서 목표를 잡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꿈에 대해 연간 목표를 잡고

그 후 월별 목표, 주간 목표를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건 연간목표에서 일일목표로 갈수록 큰 목표 에서 사소한 목표로 잡는 것이 포인트다. 일일목표에 하지도 못하는 것을 처음부터 세우면 당연 히 못하고 망한다 다 아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일일목표는 하나만 세우는 것이 좋다. 너

무 시간계획표처럼 짜게 되면 해보던 사람은 익숙할지언정 안해본 사람은 미친다. 예를 들어 나

의 목표를 행복한 사람 되기라고 정한다면 독서1, 3번 크게 웃기 등 짜잘하고 인생목표에 있어서

영향을 끼치는 일을 잡는 것이다. 뭐 여기까지는 잘 아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목표를 실천하 기 전에 앞서 말한 기본적인면들을 2주일을 익히고 난 후에 목표 실천에 들어가는 것이 효율적

이다. 내가 말하는 기본적인 것들은 규칙적인 생활패턴이다 밥을 먹는 것이나 노는 것 제 시간에 자고 제 시간에 일어나는 것 이불을 개는 것 내 주변을 깨끗이 하는 것 이다. 이 것들을 2주일 동 안 규칙적으로 잘 지켜주고 목표실천을 한다면 부스터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목표를

굳이 잡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것들을 항상 지켜주다보면 어느 새 변화한 모습을 느낄 수 있으리 라 감히 짐작해본다 왜냐하면 사소한 것들의 힘은 크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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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이의

잠재

되어

있는

의.식

.

의 나의 옷은 아빠의 젊은 시절 옷 그리고 명동, 홍대에서 결정 된다. 빈티지 상품, 아니면 가격대가 좀 있는 디자이너의 옷 2가지로 분류되는거같다. ● 명동의 쇼핑 코스는 ( 에이랜드 본점 구제샵을 주로 층별로 돈다, A,A, H&amp;M,8세컨즈, FOREVER21 / 구제,퀄리티 있는 옷들 ) ● 홍대의 쇼핑 코스는 ( 스타일난다를 기점으로 세븐일레븐 골목으로 쭉 걸으며 본다 / 여성스러운 옷들)

새 옷을 얻는 것 보단 아직은 아빠의 옷장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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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맛집에 대해 눈이 트인건 아마 이번년도 여름쯤이 아닌가 싶다. 나는 맛집 탐방보다는 맛집을 찾으면 그곳에만 가는 것 같다. ‘그 곳’을 공유해 볼까 한다. ● 빈티지함과 유니크한 분위기 + 서양음식 + 맛 = 서울대입구 (이태리상회) 1. 영화 ‘차이나타운’이 영상된 나의 아지트, 가자마자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2. 파스타, 햄버거, 피자, 맥주를 먹고 싶고 사진을 건지고 싶다 하면 추천. ● 왠지 모를 정겨움 + 천상의 맛 + 육식 = 합정 (김치생삼겹살) 합정 4거리에 위치한 이 고깃집은 뭔가 다르다 고기가 거기서 거기 라고 생각해왔던 나에게 천상의 고기 맛을 선사한 이 곳. 과찬을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냥. 추천. ● 시장의 맛 + 족발 + 달달 = 화곡 (영양 족발) 중학교 때인가 가끔 엄마가 줄 서서 사가지고 오셨는데 이렇게 대단한 맛 인줄 몰랐다. 순대 + 순대국 + 족발의 조합은 옳다. 족발이 입에서 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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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빈칸채우기 01 사람들은 나를 ( 야 ) 라 부른다

02 내가 요즘 가장 하고 싶은 것은 ( 여행 ) 이다

03 미래를 생각하는 밤에 잠기면 듣는 노래는 ( 자우림-샤이닝) 이다 04 나의 현재의 상황은 ( 바다에 잠긴 ) 상태이다

05 내가 미래에 가장하고 싶은 것은 ( 추진력있는 삶을 사는 ) 것이다 06 나의 가치관은 ( 행복하게 자립심을 가지고 사는 ) 것이다 07 나의 아지트는 ( 신사(신월사거리)광장 ) 이다 08 내가 좋아하는 날씨는 ( 비 오는 날 ) 이다

09 나는 ( 로맨스 영화 )에서 가장 영감을 받는다

10 내가 요새 가장 흥미롭게 본 영화는 ( 카페소사이어티 ) 이다 12 나에게 2016년은 ( 늦은 사춘기 ) 였다

13 나는 2017년에 ( 내 자리 찾기 )를 하고 싶다 14 나는 2017년에 ( 인기쟁이 ) 가 되고 싶다 15 나는 (

)

이런날도 요새 들어, 난 아빠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깬다.

“여보세요..” “수경아. 아빠가 좀 아파서 세원이 못 챙겨

줄 것 같다. 미안해 ... 오빠 학교 가야되니까. 좀 깨우고..” “아.. 응.. 알았어 끊어.” “응..수경아 미안하다 아빠가... 그럼 수고 좀 해라..” “으..응..” -

시간을 보니 여섯시 정도 되었다. 나는 잠에 찌들어 오빠에게로 간다. ‘오빠 일어나. 아빠가 일어나래 빨랑.’ ‘으..응 알았어.’ 나는 방으로 가서 털썩 또 잠이든다. 얕은 잠에.. 나는 빨리

일어나서 세원이를 챙기고 학교에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피곤함을 이끌고 핸드폰을 본다. 여느 때와 같이. 일곱시

이십오분이다. 역시 그렇다는 듯이 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이불을 54


겐다. 춥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오빠는 머리를 말리고 있다.

한편에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 동생이 깊은 잠에 빠져 자고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내 동생을 이른 아침에 깨우기 미안해진다.. ‘세원아.. 세원아 일어나 유치원가야지!’ ‘...’ ‘세원아! 빨리밥먹어

야지~! 누나가 오늘 말 잘 들으면 데리로 갈까? 아니면 맛있는거사줄까?’’으..응! 누나 나일어났 어’’빨리 얼굴 씻고 앉아 있어 밥줄게’ ‘응’

역시. 매일 난 아침에 세원이에게 똑같은 말을 하면서. 잠을 깨운다.

이불을 게고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 들고 밥을 놓고. 나는 말한다.

‘세원이 빨리 먹어! 알았지!? 물같다 줄까? 기달려봐 먹고있어~’ 나는 밥 한숱가락을 뜨고 세원이 에게 물을 갔다 준다. 물을 마시곤 나를 처다보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이제 사십분이다. 학교에 지

각하지 않기 위해서 난 씻으러 들어가야한다. 씻으러 들어갈때 또 세원이에게말한다. ‘누나 씻을 동안 꼭~다먹고 있어 다 먹으면 옷 갈아입고!’

‘응 누나’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문을 닫을 때 세원이의 모습을 잠깐 본다. 혼자 아무말 없이 밥을 먹는 세원이. 미안하다. 옆에서

있어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어린 나이에.. 나는 빨리 씻고 준비를 하고 나오면. 세원이는 나에게 웃으며 자신의 준비한 모습을 보라며

씨익 웃는다 ‘누나누나! 나 옷 다 갈아입고 밥도 다 먹었지~ㅎㅎ짱이지’ 그래도. 아직 일곱살인 세 원이 내복이 배앞으로 나와있다.

세원이 옷을 단정히 해주며 나는 또 교복을 입는다. 시간이 벌써 이십분이 넘고있다 .. 나는 미세한 감정에 동생에게 화를 낸다. 이러면 안되는 걸 알고있지만.. 아마. 화낼 사람이 없어서 ..

세원이는 미안하다는 듯이. 얼굴이 우울해진다. 나는 내가 잘 못 한걸 알고. ‘누나가..미안해 세원 이도 짜증 많이 났지? 그러니까 우리 다음부턴 세원이도 일찍 일어나고 누나도 빨리준비하자~ 화

풀고! 세원이 이제 가자!’하고 나서면 금새 기분이 좋아진 세원이. 유치원에 왔다. 세원이는 손을 흔들면서. ‘누나! 지각이야? 지각하지말고! 빨리 뛰어가! 알았지?’ 하며 웃는다.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고. 선생님께 인사를 한다. 그렇게 난 혼자 매일 가던 등굣길로 학교를 향한다. 이렇게. 짧고 바쁜 아침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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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 , 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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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무살과 인터뷰 저는 현재 모대학교의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한 대학생을 인터뷰하려 합니 다. 실명이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아 신원 보호 차원으로 익명군이라고 하 겠습니다.

-본인 소개 간단히 해주세요.

저는 간호대 학생 익명입니다. -간호학과에 가게 된 계기가 무엇 인가요?

사실 저도 간호학과에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기회가 생 겨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할까 대학교를 갈까 고민했어요.

이왕 할 것이라면 간호조무사보다 간호사가 낫겠다고 생각하여 받아주는 대학 교가 있다면 대학교를 가고 없으면 취업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운이 좋게도 받 아주는 학교에 간호학과로 가게 되었어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 인가요?

간호사는 면허를 가지고 의사를 보조하여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간호조무사는 자격을 가지고 간호사를 보조하여 일을 하는데 가장 큰 차이는 조무사는 주사 를 놓는 것과 같은 침습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있어요. -간호학과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문성이 높고 국가고시를 합격만 하면 취업률은 100%이기 때문에 굶고 살 걱 정안하고 미래가 보장 되는 과라고 생각해요. -간호대생의 하루일과는 어떠한가요?

저는 기숙사를 살다보니 과제나 용어시험이 없는 날은 거의 방에서 뒹굴뒹굴 거리고 과제나 용어시험이 있다면 하루 종일 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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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 다니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학교 선후배 관계에 대한 군기 때문에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간

호전공 공부가 배워야할 것들이 너무 많고, 어렵고, 경쟁도 많이 해야 하고, 내가 진짜 이 전공이랑 잘 맞는지도 모르겠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 걱정되는 점이 있나요?

흠...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간호사가 되는 것이 부담스러

워요. 아무 생각 없이 취업 잘되고 수입도 어느 정도 있고 직업에 대한 자부

심도 있어서 간호사가 되려 하는데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고 사람의 생 명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책임감도 많이 가져야하고 그런 부분이 심적으로 많이 부담스럽죠.

-앞으로의 진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간호사 말고 다른 하고 싶은 진로를 찾고 싶어요. 아직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좋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면 그 길로 빠지고 싶은 생각이 있고 찾지 못한다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해야죠.

-꿈이 정확히 정해지셨으면 그 꿈을 찾아 가길 바라고 아직 잘 모르겠으시

면 그 꿈을 향해 천천히라도 좋으니 내가 하고 싶은 진로를 찾아 가시기 바 랍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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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힘이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 할 때, 하는 것 없이 쓸데없는 고민으로 시간낭비하고 위로 받고 싶을 때 듣고 싶어지는 노래이자, 방황하는 많은 스물들을 위해 추천 해주고 싶은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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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orite Song

참 이상한 날이야 - 소란(Soran) 참 이상한 날이야

어쩌면 되는 게 하나 없고 미뤄둔 일은 많고

당장 오늘 입을 옷도 별로 시간은 흘러만 가고

매일 똑같은 다짐을 하고 한살, 한살 나이를 먹네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마음이고 오늘 하루 역시 무겁게 저물면

언제였지 내가 갈 수 있던 길들이 이렇게 줄어든 게

여긴 돌아보고 돌아봐도 나뿐이고 따가운 후회들만 머릴 맴돌고

누군가 내게 말 해줬으면 좋겠어 넌 괜찮아

시간은 흘러만 가고

매일 똑같은 다짐을 하고 한살, 한살 나이를 먹네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마음이고 오늘 하루 역시 무겁게 저물면 언제였지 내가 선택할 카드가 이렇게 줄어든 게

여긴 돌아보고 돌아봐도 나뿐이고 따가운 후회들만 머릴 맴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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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싫어하는 사람이 한명 있어. 내가 원래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내가 진짜 싫어하는 사람 이 한명 있어. 처음에는 진짜 괜찮고 좋은 친구였는데, 대학교를 같이 들어와서

같은 기숙사를 쓰다 보니 그 친구의 진짜 모습을 본거 같았어. 초반에 친했을 때

는 그 친구를 믿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나에 대해 이런 저런 사적인 이야기까지 해줬어.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누군가에게 말 안하고 혼자만 알기를 바랐어.

그런데 내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내가 그런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 라 그러면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며 그냥 넘어가더라... 그럴 때마다 나는 걔 한테 상처를 받았어. 나는 걔를 믿었었거든. 내가 생각하기엔 걔는 남의 감정을

생각안하고 말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 악의로 그런 건 아니라고 생

각이 들긴 한데 그런 일은 한 두번이 아니었어. 그런 일들이 있었던 후로 그 친

구에게서 신뢰감은 바닥이 났어. 그래서 요즘은 걔한테 아무 말이나 안하게 됐 어.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고 싶지만 글로 표현하기엔 너무 많아서 안할게. 그리 고 같은 방을 쓰다 보니 애가 너무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맨날

내 과자나 먹을거 있으면 꼭 뺏어 먹고 내가 나중에 먹으려고 놓아 놓으면 말도

없이 꺼내먹고, 내가 말하고 먹으라고 그러면 나보고 ‘이거 뜯어서 먹자’ 나는 ‘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을거야.’그러면 삐지고, 식충이 자식... 진짜 너무 싫어. 지 는 주는 것도 없으면서 계속 가져만 가니까 내가 음식 창고가 된 기분이었어. 한 때는 다 퍼주고 싶을 만큼 좋았는데 지금은 껌 하나도 주고 싶지 않을 만큼 싫

다... 그리고 걔는 ‘난 되고 넌 안되’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어서 자기가

잘못한 건 생각 안하고 막말하고 내가 똑같이 해주면 정색하면서 개지랄하니까

나는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어. 내가 걔를 갑자기 싫어하게 된 건 아니었어. 처 음에는 친했으니까 대부분 걔를 이해하고 참고 넘어갔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서 그렇게 된 것 같아. 내가 예민 했던건지, 내가 예민해 하는 부분을 많이 건든건 지... 왠지 후자라는 생각이 들어.

걔는 좀 친해지면 예의라는 게 없어지고 그냥 막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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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지

지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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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야 했

나....? 뭔

가 후회

되...


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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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김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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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으 으 이 이 십 대 애 액

나의 20대 라는 주제로 무언가를 말하는것은 시작을 하기 전에 참

많은 고민이 된다. 아직 20대의 선을 밟지도 않은 나는19세고 오로

지 무엇을 할까 라는것에 대해 고민만 해왔지 아직 이루어진것도 없

고 이루려고 노력하고있다 라고 말하기에는 내 노력은 다른 사람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걸 나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무엇이 되었든 아마 무엇 하나를 위해 열심히 노력

하고 있을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기 꿈이 아닐지언정 어느 것 하나도

노력을 안하고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것이다.

난 어렸을때부터 게임을 많이 했다 (물론 지금도 충분 이상으로 하

고있긴하지만) 그때도 난 상위가 되기위해 노력을 많이 해왔고 최연

소로 대회도 나가본적도 있다. 지금의 나의 꿈이랑은 관계가 먼 이

야기지만 어쩌면 내가 게임을 많이 하고 잘하려고 노력한 것은 나에

게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계기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

제 하루아침에 꿈이 생겨 그것을 이루려 중학생2학년때 미국에 계

신 친척의 권유로 유학 기회를잡았었던 나는 2년 반의 유학을 마치

고 고등학교졸업도 대학교 입학도 아닌 애매한 나이 18살 즉 고등학

생 중반의 나이로 한국으로 돌아올지도 몰랐을것이다.

현재 내 꿈은 파티시에가 되는 것이다. ‘왜?’ 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할 말은 별로없다. 나도 그냥 미국에서 살면서 즉석으로 만들어주던

디저트가게에서 보고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누구는 고작 그런거로

잘 다니던 유학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냐고 할수도있지만 적어도

나는 뭔가 될수있을꺼같다 라는 자신감이 어디선가 들었고 한국으

로 돌아왔던것뿐이다.

돌아오자마자 제과제빵이 정확히 어떤건지, 무엇을 하는건지, 또 내

가 직접 해보고싶어서 제과제빵 학원부터 다녔다. 그때부터 나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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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의 20대의 계획이 어느정도 잡히기 시작했던 시점

이다. 빵집 업장에서 방학동안 일도 했었다. 솔직히 엄청 힘들었지만 힘들면서도 재미있었고, 하면 할수 록 잘 맞는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가 한국으

로 돌아와서 1년이 지났고 19세가 되었을때 대학고 민으로 갈등이 되기 시작했다.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 와 고등학교에 들어왔을때 따라가지 못하는 수업으 로 내신은 바닥을 찍고 생활기록부 마저 아무것도 없 으니 전문대도 힘든 수준이였다.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본 결과 처음에는 고등학교 남은 기간동안 내신을 좀

올려 전문대를 들어가려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고 결국 가장 나에게 있어서 좋은 방법은 일본으

로 유학을 가는 방법이였다. 어렸을때부터 어느정도 일본어를 읽고 쓸줄알아 어느정도 자신이 있어 마음

빵 빵 67

빵 빵

을 먹자마자 내가 찾아낸 것은 JLPT(일본어능력시험)

과 EJU(일본유학시험) 이고 곧바로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선택한 내 20대를 어쩌면 가장 빛나게 해줄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길이 나에게 있어서 20대를 맞이할수있는 최선 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도 각자 자신의 20대를 맞이하는방법이 각자 있을것이고, 자신이 할

수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나의 20대를 빛나게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20대를 빛나게 보낼수 있다고 생 각한다.

nj


조금 남의 만 것 을 모 모르 겠다 고 능

방 선택 꿈 그래 도

생각 하느 할 라 겠

생각

독 적 할

고민

내 즐거

자유 로

되는

꿈이 사는 게

것들 이 뭐야 것들 즐거워 이 술마

많지

시고

우니

자유

난어

롭지

디여

긴누

못해 68


부모 님 성인 의 은 굴레 경제 독 립해 에서 적 야해 벗어 독립 스 무살 나고 ? 은 성인 싶어 정신 이잖 적 아 독립 ?

내것

너무

진로 가 노는 그래 게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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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을주 어 신경못 세요 썼어 했던 요 가..? 야

즐거

해 황 많아 뭐야 좋아


“친구랑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 한 거 처음인거같아”

‘대체 이런게 왜 오랜만이고 처음일 수 있지? 왜 오랜만이지? 난 이렇게 대화하는게 너무 자연스럽 고 당연한 일인데 왜 몇몇 친구들은 이렇게 대화하는게 새삼스러울까? 아 그래 내 친구들은 고삼

이고 스무살이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고3은 대학 입시에 취업 준비에..스무살인 친구들은 대학 새내기에 회사 신입사원에 재수에 아르바이트에.. 다들 바삐 살아 시시콜콜한 수다를, 자신의 속

깊은 얘기를 할 여유가 없었구나..근데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인가? 그래 중요한 일이겠지 중요한 일 인데..그러한 것들만 중요한건가? 그런거 말고 뭔가..뭔가 다른것도 중요할 텐데 아니 중요해야만

해야하는데... 성적,대학,취직만이 우리가 생각하고 이야기 해야 하는 주제인가? 그런 것들만 중요

한거면.. 내 인생은 이미 끝났다! 다음 생을 노려야겠..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그런거 말고 이야깃거 리가 없나? 아 근데 다들 공부하느랴 일하느랴 너무 바쁘잖아 그러니까 못 할 수도 있지 근데 지금 얘기하기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얘기 하지 않을 것 같아 지금 성적 때문에.학교 때문에,알바

때문에 라고 하면 앞으로는 회사 때문에, 결혼해서, 육아 때문에 뭐 때문에 뭐 때문에..자신의 얘기 를 제대로 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사회로 나가 일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다니! 이게 대체 뭐야야아아악! 뺴애애애애애액!!!!!!!!! 안돼! 잘은 모르 겠지만 그러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단말이다!우리는 대화를 해야해애액애애애액!!!!!!!!!!!!‘

이런 생각을 시작으로 잡지를 만들기 시작 했던 것 같네요. 지금은 아직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잡지를 만드는 것도 어색하고 미숙한 스무살들이지만! 하다보면 늘겠죠 한 번 두 번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써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늘거라 믿어요. 하하 긍정파워!

-주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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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스무살&gt; 잡지(?!)는.. 스무살을 스무살이 스무살 답게 쓴 잡지입니다. 주제 무 그냥 스무살 때 쓴 글입니다.

스무살 잡지의 크리에이터와 에디터를 모집합니다 당신이 앞두고 있는, 살아가고 있는 스무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모집대상 자신이 앞두고 있는 스무살, 살고 있는 스무살, 지난 스무살에 대해 글,사진,그림으로 담고 싶은 사람. 모집기간 일단 연락 주쇼 문의 Email- zoomaleda@gmail.com , 카톡ID- zoomaleda

이 잡지는 서울시 해방촌 도시재생센터의 주민공모사업의 지원으로 제작 되었습니다. 저작권자가 표시되어있지 않은 글 그림 등의 저작권은 스무살 잡지에게 있으며 사전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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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아직도 여전히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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