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츄잉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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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츄잉 Monthly Chew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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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츄잉 한 컷

6 교감일보직전

8 고생했어! -인생은 수미상관이 아니니까.

12 하루 한 장

22 독일어 시간

24 이 달의 츄잉

26 츄잉 새소식


츄잉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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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활한 츄잉룸 출석부 / 만든이 박정은


교감일보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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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아줄게요

7 _ 교감일보직전

초선영 | 작가, 화가. 행복이 무언지, 올바르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 chosunyoung.com | @chosunyoung



고생했어! -인생은 수미상관이 아니니까.

[선생님 수미상관이 뭐에요?] 엊그제 과외학생에게 문자가 왔다. 평소의 나같으면 분명 화부터 났을텐데 왜인지 그 날 그 문자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가 측은했다. 일주일 연기된 수능에 예정에 없던 일주 일치 공부를 더 하고 있을 아이. 1년 반 정도 과외수업을 진행할 동안 먼저 내게 질문했던 적이 거의 없는 아이였는데. 수능 이틀 전에는 질문을 먼저, 더군다나 문자로. 수미상관을 작년부터 몇 번을 가르쳤는지, 그때마다 얼마나 성심성의껏 반복해서 설명했 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모의고사 선지에 '수미상관'이 나올 때마다 세상 처음 보는 단어라는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답답했는지는, 이제와서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 다. 수능은 내일 모레였으니까.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었다. 미력하게나마 문자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설명일테니. 1연과 마지막연 사이의 연관성이 있어야한다. 1연의 시행이 그대로 마지막연에 반복될 수 도 있고, 1연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수도 있다. 누가보든 이 두 연 사이의 형식적 다. 조금 더 시 자료들을 분석해주었어야 했나. 벌금이라도 받아가면서 외우게 했어야 했 나. 별별 생각이 들면서 나까지 초조해졌다.

띡띡띡띡 문자를 줄줄이 쳐놓고보니, 폰 액정으로 알아보기 어렵겠다 싶었다. 가능한 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단어 사이사이 커서를 옮겨가며 줄바꿈 버튼을 누르던 찰나,

고생했어! - 인생은 수미상관이 아니니까

연관이 느껴져야 한다는 둥. 나도 잘 모르는 수미상관의 뜻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적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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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지금 와서 '수미상관'이 뭔지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할까. 그 단어를 안다고 이 아이의 등급이 바뀔까. 올해 수능에 수미상관이 출제될까. 앞으로 이 아이 인생에 수미상관이란 단어가 등장할 일이 있기는 있을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데, 수미상관 외울 시간에 연계작품 줄거리는 다 읽었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더 궁금하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렴. 결국 문자의 마지막은 힘없는 글귀였다. '언제든지 물어보렴' 다음에 어떤 말을 쳐야할지 아무래도 감이 오지 않았다. 좋은 결과가 나올거란 말은 거짓같았고, 부담갖지 말고 평소 하던대로 보라는 말도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닐 것 같았다.

눈가리고 아웅. 과외를 하다보면 부모와 학생, 과외선생인 내가 서로 모두 눈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각자의 목적을 위해 아이의 학습능력이나 꿈을 외면한 채, 부모와 과 외강사가 짝짜꿍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사실은 안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면 서도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저 돈만 벌면 되는 것일까. 수능 등급을 극적으로 끌어올려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아이가 글 읽는 재미를 어렴풋하게 나마 알게 되길 바라며 아이들을 가르친다. 문득 인생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이 외로 울 때 손에 책을 잡게 되기를. 역을 오가다 잠시 들른 서점에서 눈에 들어온 시집을 뒤적 거려볼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타인의 글이 곧 내 이야기가 되는 이 신비로운 세계를 향한 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과외를 해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타협했다.

고생했어! - 인생은 수미상관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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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을 읽는 일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일이라고. 그 때 적어도 상대방이 하는 말을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단구성의 흐름, 작가가 내고자 했던 목소리의 결 정도는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눈꼽만큼이라도 내가 가르친 시간이 아이의 훗날에 도움이 되기를. 더 많은 세상의 이야기들로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그 과정에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적어도 그런 눈가리고 아웅이라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한들, 결국 줄세우기를 위한 시험장에 아이들을 보내야할 때는 속절없이 허무해 지고 만다. 시를 가르치다 울음이 터져버린 아이를 달래본적도, 고전소설을 가르치며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아이를 만난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어느 대학을 갔느냐고. '웃으면서 동창회 가자', '거울 볼 시간에 책 봐' 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을 책상 여기저기 붙여놓은 열아홉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싸늘해 진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네 인생의 행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아이들을 달래보지만,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그 시험에서 따낸 간판때문에 지금 글을 쓰 며 과외를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면 우주의 먼지가 되는 기분이다. 나 역시 이 아이들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혼자 내린 타협 안에서 정신승리를 이뤄낸 것뿐. 그러니까. 결국 나는 미안할 뿐이다. 몇 년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러쿵 저러쿵 어떤 삶 이 행복한지 조금 더 아는 척 하는 일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면서 나 자신과 아이들 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결국 기존의 체계를 공고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는 생각에. 나 때보다 더 나아진걸까 의문을 지울 수 없는 상황에. 적어도 그 미안함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네가 너무나 하기 싫어했던 글 읽기를 위해 책상 앞에서 아웅다웅 하던 시간들을 기억할테니.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읽다 울음이 터져버렸던 그 날도, <이생규장전>을 읽으며 이생의 찌질함에 대해 갑론을박하던 네 모습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대학간판이나 수능점 수따위가 아니라 오늘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한 너의 시선 그대로 이미 근사하다고. 그럼 에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통과의례를 위해 오늘까지 참아온 네가 정말로 대견하다고. 인생은 수미상관이 아니니까. 얼마든지 네가 자유롭게 써내려갈 수 있으니까. 이제 마침 내 주어진 그 자유를 만끽하길 바란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점수가 네 인생의 행복 과 연관이 없다는 내 말이 '진짜'라는 걸 스스로 깨우치고 성장하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고생했어! - 인생은 수미상관이 아니니까

어서 어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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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블 | 떠들고 쓰는 일을 합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습니다. 대본 창작 중. 팟캐스트 <서늘한마음썰> 진행 중. brunch.co.kr/@miyath | @la_leche


하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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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하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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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하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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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하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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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하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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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_ 하루 한 장

박정은 | 기억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울림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ddurudduru@naver.com | pje.kr | @pjekr


프로산책러. 스스로를 산책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걷는 것보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고, 목적지만 생각하며 늘 바쁘게 걷는 사람이었는데, 반려견을 기르게 되면서 이러한 나의 성향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십 대에는 '저의 취미는 산책입니다'하 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성향을 지녔다고, 애 늙은이 같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 다. 하지만 요즘은 누가 나를 보고 늙은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산책을 좋아한다. 나는 수도권에서 나고 자라왔지만,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가족 모두 외곽지역으로 이사해 살게 되었었다. 취업과 동시에 이사하였기 때문에 이사하고도 몇 년간은 야근과 출장에 쫓겨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었고,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탓에 새로운 동네는 언제나 불편한 동네라고 여겨질 뿐이었다. 내가 불평하는 사이, 봄이 되면 박새는 날아와 우리 집 우체통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서 함께 날아갔다. 비 오는 날이면 두꺼비가 어김없이 나타났는데, 대문 앞에서 비를 맞고 꿈쩍 않고 서

독일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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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날이면 발걸음도 자연히 조심스러워졌다. 겨울엔 눈이 쌓인 너른 들판에 간혹 꿩이 날아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던 그곳. 일을 쉬게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익혔다. 자연 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매년 같은 시기에 초록을 부르고 살구나무에 꽃을 틔웠다. 예쁜 것은 두고두고 오랫동안 지켜봐야 그 예쁨을 더 깊이 알게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 다. 자연을 보고 걸으며 관계 속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고, 지켜보는 법을 깨닫게 되었 던 때이기도 하다. 언젠가 걸어서 가는 여행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만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걷기 위한 여행. 꼭 다녀올 수 있길 기대해본다.


출산에 대해 고민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나는 선택에 앞서 결정이 빠른 편이고, 긴 시간 고민하 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고민만은 벌써 삼 년째 지속하고 있다. 일은 도중에 포기할 수도 있 지만 아이는 태어나게 한 뒤 포기할 수 없다는 무거운 중압감. 생명을 돌보고, 길러내는 일이니 만큼 큰 부담감을 느낀다. 파트너는 아이를 기르고 싶어 하지만 본인의 몸에서 일어날 일이 아 니므로 나만큼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 몸으로 아 이를 ‘가지는’ 일이라서 더 책임감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독일어에서는 임신한 사실을 말할 때 동사 haben(가지다)가 아닌 bekommt(얻다, 도착하다) 를 써서 말한다. 처음 이 단어를 알았을 때 '낳는다는 것이 아닌 나의 몸을 빌려 아이가 태어난 다' 느낌으로 엄마와 아이가 인격체로 분리되어 보였다. 한국어보다는 책임감이 여성에게만 집 중되지는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결혼식 다음 날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 큰절 올리고 앉자마자 시아버님 입에서 나온 첫인 사는 ‘그래, 아이는 한 명만 낳고’였다. 물론 시아버님은 시어머니께 등을 맞으시긴 했지만, 그 나의 몸을 그냥 내 몸이 아닌, ‘아이를 가질 몸’으로 보는 시선에 불쾌함을 느낀다. 자녀의 결혼을, 손주를 가질 몸(며느리)을 집 안에 들이는 풍습이 아닌, 자녀들의 선택으로 보 고 존중되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할까.

윤나리 | 프로산책러. 반려견 포카 @poca_girl 와 산책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독일어 시간

때의 당혹스럽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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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같이 오던 사람들이 각 자의 자리로 흩어져 슬펐던 적이 있었다. 그랬던 곳을 오늘은 새 로운 친구와 가게 되었다. 새 친 구의 추천으로 한번도 주문해본 적 없었던 커피를 마셔보았다. 그렇게 매번 왔었는데 이곳에 비 엔나모카가 있었는지조차 몰랐 다. 달고 맛있었다. 안개꽃이 참 예뻤다. 사장님이 또 젤리를 주 셨다. 하리보 젤리도 맛이 있었 다. _블블

츄잉 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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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았다가 부쉈다가. 또 쌓았다가 부쉈다가. _박정은


보지 못했다고, 안 보인다고 없 는 것은 아닌 것들에 대해 생각 한다. 어쩜 여기 이 빛과 그림자 도 그럴지도. 나를 돌아보고 내가 찾는 시간 을 달리하면 또 다름을 찾고 만 날 수 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일단은 나를 성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선과 마음을 주는 것, 그 시간의 계기가 나에겐 성 당 시간. 많이 받고 나눈 한 해. 12월 한해의 마무리를 잘- 짓고 싶다. _이지나

나의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단점인 줄 알았던 부분 분. _윤나리

이 달의 츄잉

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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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때 마다 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 속에서 학자의 언어, 당사자의 경험에 의지하는 나의 모습과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테이블 위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 내가 책상에서 배 운 것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서 버팀목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물음이 되었던 말과 글을 현존하는 집결지의 수인 42개의 설치물을 통해 전하려 한다. - 윤나리, <테이블> 작업노트

츄잉 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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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안내 일시 12/11(월) ~ 12/17(일)까지 | 10am ~ 7pm 장소 Tak Gallery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113, B1) 참여작가 윤나리, 손상민, 전민주, (주)둘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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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잉 새소식


월간츄잉 #42 2017년 12월호 츄잉룸 chewing.kr | chewingroom@gmail.com | @chewingroom 디자인 윤나리 @nari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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