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유일하다고 믿지 못했던 그 어느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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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유일하다고 믿지 못했던 그 어느 밤에


좁지 않은 방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기 일쑤라 나는 일부 러 숨을 멈추곤 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게 채워지지 않았 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없었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강박.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숨막힘, 콜록일 수 있는 어둠과의 동화. 그래, 나는 이 넓은 집 안에 서라도 살아 있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두 개의 명제가 교차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이끌림 같은 것이었다. 숨은 몰아쉬며 살아 있음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필히 죽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가득한 아픔과 환기되지 못한 외로움이 그렇다. 나는, 자꾸 위독의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갔다. 살아 있고자 죽으려 했고 죽고자 살려 했 다. 모 위인의 말과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휴대폰을 들었다. 나는 그 넓은 집 구석에 웅크려 자리를 잡은 채 그렇게 남 아 있었다. [밤 바람 차다.] 밖도 아니면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답이 언제 올 지 기다 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심장 박동을 느꼈 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좀 걱정되나.] 너의 문자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빠르게 왔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뱉는다. 안도의 한숨이었는지 아직 너와의 관계를 상기 할 수 있다는 한숨이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모르고 싶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너는 알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어떻게 생각 을 하고 움직이는지 알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는 별뜻 없는 문자를 계속했다. 조금의 시간이 걸리든 아주 빠르게 답장이 오든 그건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어져 있 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간의 상황에서 혼자가 아닌 시간이 없었다. 곁에 누 군가가 있을 때에도 누군가가 없을 때에도 나는 오롯하게 혼 자였다. 내가 나를 그렇게 몰아넣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 만 너와 함께 있을 때에는,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은 나를 살아 있음에 대한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숨을 참을 필요도 없었고 지포라이터 뚜껑을 열어 부싯돌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살아 있음을 네게 인정받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었다.


[난 네가 왜 날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진심이 담긴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내게 너는 안도를 얻게 해 주는 옅은 숨 같은 것이었지만 네게 나는 별거 아닐 게 틀림없었으니까. 나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생각한다. 열아홉 열둘 열하나 일곱으로 내려가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때의 내겐 살아 있음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서로에 목매 어 살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 전에 죽었지만 …… 그래, 죽었다.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갔다. 사고였다고 하여도 나는 그 이후 곁에 사람을 둔 적이 없었다. 십몇 년을 함께했 던 파과에서조차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서로가 유일하니까, 지금은. 그지.] [내만 그래?] 나는 한참을 답장하지 못 했다. 유일하다고 너는 쉽게 말할 지라도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지금은, 이라는 말은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충 분했다. 너는 서로가 유일하다 말했지만 그 언젠가 나를 버리 고 떠날 채비를 이미 끝내 놓은 상태일 수도 있었다. 나는 너 를 내 곁에 놓아둔 지 꽤 되었으나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 렇다고 말하면 정말 그렇게 될까 봐, 또다시 버림받는 사람이 되어 그 그늘에 벗어나지 못한 채 그리움에 빠져 밤을 지샐 까 봐, 나는 지금은이라는 말에 희망 하나를 건 채 너를 또 한 번 밀어낸다. [지금은…….] [지금은 그렇지.] [그래.]


너는 늘 훅 들어오곤 했다. [우리는] [지금이 중요하지.] 내 걱정은 전혀 몹쓸 걱정이라도 된다는 듯이 너는 그렇게 언제나 훅 들어오곤 했다.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너는 문자에서조차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조차 훅 들어오곤 했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는 쪽 은 바로 나였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 람들의 심리를 읽고 움직이는 것을 잘 하지는 못했으나 언제 나 눈치를 보고 읽는 쪽은 나였으므로 할 수는 있었다. 너는 언제나 톡톡 튀었다. 것잡을 수 없을 정도로 튀었다. 내가 무슨 해답을 바라는지 아는 것처럼 굴었다. 어떤 때에는 그 말을 해 주었고 또 어떤 때에는 원치도 않았는데 해 주었 다. 나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백구라는, 배성수라는 작자 의 생각을 감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거냐면, 나는 네게 이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끌려고만 하면 너는 늘 그랬던 것 처럼 주도를 해 왔다. 나는 너의 생각을 읽지 못 했으니 좋아 서 그러는지 싫어서 그러는지 그 단순한 것조차 모를 수밖에 없었다. 너는 얼굴로, 온몸으로 표현을 해댔지만 알 수 없었 다.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지금이 유효할 거란 확신이 없다, 백구야.] [괜한 걱정이냐?] [니는 쓸 구석 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고.] [내는 이변만 없음 죽을 때까지 네가 유일해, 이 빙시 새끼 야…. 생각해 보니 내가 불쌍타.] [백구 네가 불쌍할 게 뭐 있냐.] [아니다, 그래, 성수 네가 불쌍할 게 뭐 있냐.] [나는……나는 잘 모르겠다.] [마 내는……내가 이러는 거는 욕심인 거 잘 아는데.] [말 한 마디 없이 떠나지만 않았음 좋겠다.] [그냥, 씨발. 니는 불안해. 불안하게 만들어.]


좀먹는 것들이 있다. 그게 너일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 었다. 네게 나는 별거 아닐 거라고 온종일 생각했었다. 네가 나와 같은 불안을 떠안은 채 살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나 는 오히려 네가 떠날 거라고, 네가 나를 떠날 거라고 생각했 지 내가 너를 떠날 거란 명제는 주어지지도 않았었다. 내가 떠나봤자 너의 일상엔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욕심이 생긴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네가 나로 인해 무너질 수 있도록 아주 깊게 파고들고 싶 다는, 아주 못된 욕심 하나가, 생긴 것도 같았다.

나는 웅크려 앉았던 구석에서 나와 통으로 볕을 비추어대 는 창가로 향했다. 높은 만큼 아래가 훤히 비춰졌다. 내가 네 모든 것이 되고 싶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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