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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열네번째

Peacecamp

덕실마을에서 온 편지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기본소득 이야기

기본소득과 프레카리아트 대전청년역사학교

민주화의 상징, 광주를 가다 회원소개

바지런한 청년, 송지은 자두의 한옥 이야기

평 네팔에서 날라온 편지

파이팅 넘치는 1박 2일 트레킹

평화캠프 www.peacecamp.or.kr

대전지부 070 - 8879 -7946

cafe.naver.com/tjsaram

수화통역사 이영경이 들려주는

농아인 이야기 열네번째 편지 1


제 발 행 발 행 발 행 편 일 러 스 사 글

목 일 인 처 집 트 진

평화캠프 대전지부 열네번째 편지 2013년 10월 11일 이경자 (사)평화캠프 대전지부 공윤희 박선향 강용운 공윤희 박선향 신재두 이용숙 공윤희 김영신 박선향 신재두 이영경 이용숙 임해란 우종우 유미조 정태용

2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열네번째 편지 3


PC

EACE AMP NEWS 01 덕실마을 이야기

그대내게

행복을사

주는람 글임해란

2012년 5월 덕실 마을로 이사 왔다. 덕실, 덕실. 이름이 참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30 여 가구에 6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다른 마을과 달리 주변이 나 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한 느낌을 준다. 마을 입구의 은사시나무 터널을 지나 펼쳐지는 마을 풍경이 참 좋다. 은사시나무를 지나는 짧은 시간에 마을을 상상하고 기 대한다. 그런 마을의 옛날 흙집 그대로의 작은 빈집에 들어왔다. 흙집이고, 아궁이가 살아있는 집이라는 매력에 빠져 일사천리로 계약을 하고 벽지와 장판만 새로 한 후 이 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 와서 우리가 당장 할 일은 없었다. 남편은 대전으로 매일 출퇴근하고, 나는 아이 들과 하루를 보낸다. 자전거 타고 마을을, 마을을 넘어 도서관까지 갔다 오는 게 하루 일과다. 그야말로 아이들과 노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농사지을 땅도 없이 무작정 들 어왔기에 열심히 놀았다. 시골에 와서 마냥 놀기만 하니까 괜히 마을 어르신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당장 농사

4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지을 것도 없으니 배우자! 잘 하지는 못하지만, 마을 농부님들의 농사일을 거들어 드리기로 했 다. 하지 무렵 가장 더울 때 뭣 모르고 덤벼들어 더위 먹기 직전까지 했던 감자 캐기. 고추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 고개 들어 쳐다보며 빨갛 게 익은 고추 따 담기. 모르고 고추를 따던 손으 로 눈 비볐다가 눈 매워서 혼났었다. 늘 먹던 참 깨가 어디서 달리는지 신기해하며 낫질로 참깨 찧던 일.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절실히 느끼면 서, 이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 카카오스토리. SNS를 통해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공간. 나, 가족이 전부였던 스토 리 공간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 시작한다. 아는 친구들부터 친구의 친구까 지... 시골에 들어와 아이들이 흙 속에서 자유롭게 뒹굴고 하늘과 땅을 벗 삼아 노는 자 체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힐링’이 되는 스토리라며 친구 신청이 많이 들어 온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도 소통하기 시작한다. 마을 풍경, 농사짓는 광경, 어르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이야기를 담았다. 이와 함께 직거래를 시작하였다. 농부들이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농사지어 판로를 마땅히 찾지 못해 헐값으로 장사꾼에게 팔아넘기는 걸 보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스토 리를 통해 마을 주민이 농사지은 농산물들을 스토리에 소개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서 로 믿고 살 수 있으니까 좋다고들 하셨다. 생산자에게는 판로가 있어서 농사지을 힘이 나고, 소비자들은 믿고 사먹을 수 있으니 좋고. ‘덕실스토리농부’가 되다.「스토리셀링(story selling)은 재능, 경험, 지식 등 개인이 지 니고 있는 고유의 스토리를 판매를 통해 함께 공유하는 지식마켓 프로젝트입니다. 그 어떤 상품보다 새로운 가치를 원하는 소비자와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컨텐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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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 가치를 매기길 원하는 판매자의 지식마켓인 스토리셀링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뿐 인 스토리를 사고 팔 수 있습니다.」나의 멘토이자 스토리 친구인 장미경 선생님이 내 가 하고 있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담아주셨다. 농산물 직거래라는 다소 딱딱하고 어색한 관계를, 이야기를 통해 정감 있게 풀어가니 더 친근해졌다. 진짜 농사는 짓지 않지만,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라는 덕실스토리농부가 되었다. (지금은 진짜 농사를 짓고 있다.) 고구마가 몇 kg에 얼마라는 것보다는, 고구마를 누가 어떠한 마음으로 농사지었으며 고구마가 왜 이렇게 못생기고 큰지를 스토리에 올려 사먹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느끼고자 하였다. 어떤 할아버지가 며칠간 탈곡기로 콩을 털고 난 어느 날, 할아버지 눈이 빨개진 걸 보았다. 콩을 털면서 미세한 콩깍지 먼지들이 눈으로 코로 입으로 들 어간 것이었다. 그렇게 털은 콩을 집안으로 가져와 틈만 나면 손으로 티끌들을 일일이 골라내는 작업을 하신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사 먹는 건 싼기라.” 이 말씀을 늘 가 슴에 새기며 지금까지 직거래를 하고 있다. 지난 겨울 일을 저질렀다. 바로 ‘스토리 밖으로의 여행’을 준비했다. 서로의 믿음이 없 었다면 어려웠을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준 마을 어르신들과 스토리 친구들에게 감사 함을 보답하고자 자리를 마련하였다. 거창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만남의 장이 었다. 내가 하는 직거래는 단순히 농산물을 팔고 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서 로 배려하고 믿으며 공동으로 생산하는 적극적인 직거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내 가 농사지은 콩이 어떤 가족의 밥상에 올려지는지, 내가 먹는 쌀을 어느 누가 어떻게 농사지은 것인지를 아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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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덕실 마을의 열세 농가가 참여한 ‘덕실농부이야기 생산자회’가 구성되었다. 안전 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얼굴 있는 생산자로서 책임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소비자와 함 께 신뢰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모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모두 스토리 친구들 덕분이다. 그동안 친구 수는 계속 늘어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스토 리 친구들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만큼 나를 믿어주는 분들이 많아졌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 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파파로티 OST 중에서> 내가 덕실스토리 농부가 되기 전에 이 노래를 들었더라면 당연히 ‘그대’는 나의 가족이 었을 것이다. 지금은 가족뿐만 아니라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든 스토리 친구들이 다. 스토리 친구들이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친구들에게 보낼 선물을 택배 차에 실어 보낼 준비를 하면서, 행복하다.

열네번째 편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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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번째 편지 9


PC

EACE AMP NEWS 02

기본소득 이야기

기본소득과

프 레카 리아 트 글 오징어 우 종 우 기본소득 포럼이 네 번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이진경 교수를 초대해 ‘기 본소득과 프레카리아트’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합니다. 10월 18일 금요일 저녁 7시부 터 시작하는 평화포럼이자 기본소득포럼, 회차가 반복될수록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 한 이해도가 높아지며 그 열기의 깊이에 감동받기도 합니다. 기본소득은 여러 번 들어 익숙하나 ‘프레카리아트’는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래 이진경 교수가 지난 2011년 1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쓴 글 일부분을 발췌하 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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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자화 되고 있는 노동자, 아니 이미 무산자의 지대로 축출된 노동자를 뜻하 는 이들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

용되기 시작한 이 단어는 ‘불안정함’을 뜻하는 ‘프레카리오(precario)’와 프롤레타리아 트(proletariat)를 합성하여 만든 말이다. 이 말이 광범하게 쓰이는 일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실업자, ‘니트(NEET, 구직활동도, 구직훈련도 하지 않는 실업자)’는 물론 ‘히키코모리’나 비혼모, 가정폭력도피자(DV), 노숙인, 부랑인까지 포함하여 노동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노동하는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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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규정을 갖지 못한 사람들,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의 규정성이 소멸되거나 삭제된 모 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범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무산자 로서, 이미 넘어서기 어려운 무산자의 지대에 들어선 자임을 보여주는 개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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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은 ‘ 노동하는 계급’보다는 차라리 이들 프레카리아트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프롤

레타리아트’라는 단어는 토지를 갖지 못한 로마 시대의 최하층 자유민을 지칭하던 말 프롤레타리(proletari)에서 연원한 것으로, 맑스의 초기 저작인 “헤겔 법철학 비판 서 문”(1843)에서 처음 사용된다. 거기서 맑스는 이 개념을 계급이 아닌 ‘계급’이란 의미 에서 ‘비-계급’으로 규정한다. “철저하게 속박되어 있는 한 계급, 시민사회의 계급이면 서도 시민사회의 어떤 계급도 아닌 한 계급, 모든 신분들의 해체를 추구하는 한 신분”, 그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보다는 무산자,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에 더 가깝고, 노동자 계급조차 되 지 못한 자에 더 가까운 자들. 그래서인지 <자본론> 1권에서 이 단어가 주로 사용되는 곳은, 인클로저(enclosure)로 토지를 잃고 부랑하던 사람들이나 실업자들이 등장하는 곳이다. 하지만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라는 슬로건을 통해 프롤레타리 아트가 ‘노동자 계급’을 뜻하는 것이 되었기에, 노동자도 되지 못한 이질적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기 위해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던 것일 게다. 하지만 그 뜻을 본다면, 애초에 맑스가 주목했던 집단은 바로 이들 프레카리아트에 가까운 존 재들이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에 대한 연구는 이들 프레카리 아트를 통과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프레카리아트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언제나 무산자에서 시작하여 언제든지 무산 자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자들을 지칭한다. 고용되었든 고용되지 않았든, 임금노동을 향 해 열려 있는 무산자의 상태에 있는 자들을. 노동자는 고용되어 있어도, 잠재적으로는 언제든지 무산자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산자에 속한다. 비정규노동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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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으로 노동하는 무산자다. 프롤레타리아트란 이 잠재적인 무산자를 뜻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계급도 프레카리아트와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에 속한다. 이 점에 서 양자는 둘이 아니다. 현재 고용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양자를 가른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와 비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계급과 프레카리아트는 하나 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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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조건은 돈에 상관하지 않은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그 런 활동은 지식이든 예술이든, 기술이든 놀이든, 혹은 사회운동이든 ‘봉사활동’

이든 수많은 영역에서 새로운 창조적 성과들을 산출할 것이다. 이미 러셀이나 라파르 그가 ‘게으름’이란 이름으로 지적했듯이, 자본에 의해 강제되는 노동의 영역 바깥에서, 새로운 창조적 성과를 산출해 온 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하지 않을까? 노동해방 이, 자본에 의해 강제되기에 어떤 창조성도 말살되고 마는 그런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이라면, 돈을 받고 하거나 돈을 바라고 하는 그런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면, 기본소 득은 혁명 이전에 이미 노동해방의 과정을 슬그머니 시작하는 포텐셜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비정규직, 프레카리아트란 이름이 노동이 사라져가는 세계의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노동으로 벗어난 세계를 예견하고 준비하 며 그것을 긍정하게 하는 창조적 존재의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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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EACE AMP NEWS 03

청년역사학교

광주 도보기행 다녀오다

글김미석 일러스트 키욜 박 선 향

들불야학 정신계승,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찾아서 지난 9월 28일(토) 대전청년역사학교에서 광주로 도보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다른 일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기 어려웠지만, 따로 일정을 잡기가 곤란하여 힘 들더라도 소수정예로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함께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송구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광주 도보순례를 기획하며 하고 싶었던 일은, 많은 분들이 광주 민중항쟁의 정수 라고 생각하는 노동민중 야학인 ‘들불야학’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 의 성지인 광주에서 광주 민중항쟁의 마중물이자 불퇴전의 의지로 ‘최후의 항쟁 지도 부’를 형성해 도청을 사수했던 ‘들불 야학’의 강학과 학생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야 말로 반동적으로 퇴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문제를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횃불을 들불로 만들어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했던 80년 5월 광주 ‘들불야학’의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되살려야 할 진 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이 아닐까요.

열네번째 편지 13


광주 도보기행은 우종우 회원과 함께 ‘오월길’ 순례코스로 잡아 진행했습니다. 서대전역에서 10시 출발하는 광주행 기차를 타고 광주역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마친 후 걷기 시작했습니다. 순례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월길 순례코스‘ 전남도청 ▶ 전남대 ▶옛 상무대 영창 ▶ 망월동 묘역 ▶ 광주역 기차에 몸을 싣고 광주로. 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 에 서대전역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깥 광경은 찌푸린 가을 날씨였지만 삭막한 아 파트 단지를 벗어나 싱그러운 시골 풍경을 보니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광주로 출발~~

광주역에 도착하다. 광주역에 12시경 도착하여 목적지를 찾아 ���간 헤매다 마침 광주에 있는 지인이 생각나 지인에게 연락하니 광 주 맛집에서 점심을 쏜다는 얘기에 이게 웬 횡재.ㅎㅎ

오리탕 먹으니 기운이 불끈~ 금강산도 식후경. 지인의 소개로 광주의 맛집인 들깨와 미나리가 곁들여진 오리탕 집에 들러 오리탕을 배부르 게 먹었습니다. 그 거리의 전체가 거의 다 오리탕 집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리탕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자~ 이제 전남도청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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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도청에 도착하다. 전남 도청에 도착하니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습니다. 예술의 전당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분수대만 덩그라니 남아 그 옛날, 그 날을 기억하 게 합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기반인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존중하고, 오래오래 기 억되길 바란다면 이건 역사적 유적으로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 5.18 묘역으로 출발!

5.18 망월동 민주묘역에 도착하다. 5.18 묘역은 ‘국립 5.18 민주묘역’(신묘역)과 ‘5.18 망월동 민주묘역’(구묘역)으로 나뉘 어져 있습니다. 저희는 신묘역에 간 다음 다시 망월동 구묘역을 둘러보았습니다. 묘지가 너무나 많아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앞 산에도 온통 묘지, 옆 산과 뒷 산에도 온통 묘지입니다. 도대체 80년 광주,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산들이 온통 묘지 로 뒤덮여 있을까요. 묘비마다 새겨진 글들을 보니 순수한 마음을 지닌 중학생부터 젊 고 늙음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짓눌려 억울한 사연을 지니고 누워 계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여기 누워 계신 ‘광주 영령들의 희생’ 위에서 생겨났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다시 대전으로. 망월동 묘역 참배를 끝으로 광주도보기행을 마쳤습니다. 광주역에서 표를 끊어 서대

열네번째 편지 15


전역으로 돌아오는 길, 광주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무 살 즈음 다녀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렁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도 하였습니다.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가족과 함께 가을에 떠나는 ‘광주 도보 기행’ 어떠세요?

16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자던 뜨거운 맹세 가 나 생 평 한 름도 남김없이 사랑도 명예도 이 들리지 말자 흔 지 까 때 올 이 만 나부껴 새 날 발 깃 고 없 데 동지는 간 는 끝없는 함성 치 외 서 나 어 깨 산천은 안다 세월은 흘러가도 라 니 산 자여 따르 나 가 서 서 앞 라 자여 따르 앞서서 가나니 산

열네번째 편지 17


PC

EACE AMP NEWS 04 회원소개

듣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마디 건넬 줄 아는 아가씨,

18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송지은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평화캠프 신입 송지은입니다. 23살이구요. 로드스쿨로 인연이 돼서 이렇게 같이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네~반갑습니다. 로드스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얘기가 조금 길어지는데.. 고등학교 때 중학교 친구들이랑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 는데 같이 로드스쿨을 다녀온 친구 인 근영이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다지 친하지 않아 서 전화가 걸려 온 것만로도 당황스러웠는데 갑자기 “인도가자!”해서 처음에는 웃었 죠. 근데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아는 순간..뜨헉.. 어쨌든 재미있겠다 싶어서 같이 가겠다 고 했는데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벌써 5년 째네요. 하하

로드스쿨 활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나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강티죠. 독심술을 사용해요. 강티 앞에선 거짓말 절대 못 해요. 다 들킴. 생각나는 일은, 아무래도 국제미아가 될 뻔했던 태국에서의 일이에요... 거기가 어디였는지는 까먹었는데 아직도 그 거리가 머릿속에 훤해요.. 배탈나서 화장 실 찾아나섰다가 일은 해결했는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을때의 그 당황스러움.. 근데 그 후로 변한 게 있다면 이제 길을 잘 잃지 않는다는거? 캬캬캬 길치탈출입니다.

지금은 대전지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요,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요? 아직 이렇다 하게 맡은 일은 없구요. 회원관리를 담당하게 되었어요. 지난달 첫날부터 출근했는데 평화캠프 사람들을 만나 겪으며 익숙해지고, 회원들 파악하는 일을 했답 니다. 이메일주소가 틀린 분들에게 전화해서 인사하고 메일주소를 고치는 일을 했는 데, 지난 일년 동안 매월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못받은 분들이었지요. 이젠 잘 받아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주 토요일에 있었던 “회원의 날” 기획도 했는데 얼떨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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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아 진행은 했는데 다녀가신 분들 소감이 어떨지 궁금해요. 불편하진 않으셨은지, 즐 거운 자리였는지 등.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지부장님 따라 두레밭에 가는데요, 밭 일이 힘은 들지만 재밌습니다.

벌써 평화캠프에서 일한지 한 달이 되었네요. 일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 한 가지씩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알던 사람들과 이렇게 같이 일을 해보긴 처음이라 마냥 좋고, 농사 배워서 좋고, 몸살 림해서 좋고, 맨날 건강밥상으로 점심 먹어서 좋고! 힘든거요? 대박사건! 앉아서 일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오마이갓 저랑은 너무 안맞아 요!! 그냥 돌아다닐게요. 그리고 한달 되자마자 도깨비가 저를 가만히 두지 않아요! 우 리 천천히 하나하나 해나가요 도깨비!

평화캠프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음.. 제가 하던 일을 두고 평화캠프에 오게 된건..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예요. 의 미있는 삶이라는게 굉장히 광범위한데..하하 이 세상에 한 인생으로 태어나서 잠깐 살 다가 가는데, 송지은이라는 사람이 그냥 살다가 가면 재미없잖아요. 뭔가 하나는 하 고 가야 하는데.. 그게 남들이 알아주던 나 혼자의 만족이던간에.. 그게 뭘까. 내가 그 런 걸 할 수는 있을까. 강티를 오래 봤는데 볼때마다 강티는 제 가슴에 작은 불꽃을 던져주셨어요. “야. 인생살면서 남들 사는대로만 똑같이 살다 가면 너무 재미 없지않냐?”


그렇게 한번 두 번 세 번.. 두근두근 가슴만 안고 집에 가기를 몇 년.. 그러다가 마음 잡 고 들어오게 된거죠. 뭔가 하고는 싶은데 그게 뭔지 못 찾고 그냥 남들 살던대로 평범 하게 살 뻔한 마음에 강티가 불꽃을 던졌던 것처럼 저도 누구에겐가한 사람이라도 그 렇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평화캠프에 왔어요.

아주 소중한 마음을 품고 있네요. 그 마음 평화캠프에서 오래도록 빛을 발하도 록 함께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 중에 평화캠프 회원들에게 좋은 책 한 권 권해주세요~ 제가 판타지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좋은 책?이라기 보다는 제가 좋아하는책을 추천할게요! [악의 주술]이라는 책이에요. 거미를 이용해 예술을 하고, 그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얻게 하고자 하는 게 범인의 목적인데요. 그 방법이 참 대단해 요. 현실을 쓴 이야기지만 판타지 느낌이 나는 내용이에요. 남은 가을날에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몸을 움직이는 일이 체질에 맞는다고 스스로 말하는 송지은 회원. 산더미같이 쌓인 설 겆이꺼리를 단숨에 정리해버리는 능력을 지닌 사람. 맛있는건 달려와 입에 꼭 넣어주 고 가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 달콤하고 고소하고 은은한 커피향이 그리울 때 평 화캠프 사무실로 달려오세요. 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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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EACE AMP NEWS 05 자두의 한옥 이야기

평坪 글&사진 자두 신 재 두

땅의 네모를 일컫는 전통적인 기준 ‘평坪’ 집을 지으려면 얼마만한 크기가 필요한지 정해야합니다. 물론 땅이 있다고 가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예전에도 백성들이 집을 짓는 데는 신분적 제약과 관습적 제제가 따랐 습니다만, 지금은 더 복잡해진 소유관계와 그에 따른 법적제약과 제재가 가해집니다. 전통적인 넓이 기준으로 ‘평坪’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도량형에 대한 법적 기준이 정 비되어 넓이도 미터법으로 따지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겐 ‘몇 평’이 더 익숙합 니다. ‘한 스무 평’하면 금방 넓이가 가늠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몇 평’할 때 그 ‘ 평坪’은 어디서 유래된 걸까요? 한치의 크기

사람살이의 모든 척도는 ‘인체척도’ ‘사람 하나 누울 만한 크기가 한 평坪 올 시다!’ 쉽죠? 이걸 ‘척관법’이라고 그럽니 다. 손가락 한 마디를 ‘한 치’그러고, 한 치 의 열배는 ‘한 자’그럽니다. 참 희한한 일 이 서양에서도 본래 이런 인체척도를 사

22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용했다는 겁니다. ‘feet’라는 단위가 그겁니다. 이게 인체의 어디쯤이냐면 발하나 크기 입니다. 30cm 좀 넘는 크기니까 우리 속담으로 도둑놈발만 한 거지요. 우리 전통의 척관법도 한자는 30cm를 좀 넘 는 크깁니다. 묘하지요? 동양 삼국은 전통적으로 척관법 을 사용하였지만 그 실제 크기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중국, 일 본, 한국이 서로 다르고 한국의 고대 국가별로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요. 한 나라 안에서만 통일된 단위를 쓰면 되었으니까요. 그 러다 점차 국경을 넘는 정치경제적인 활동에 따라 국제적인 도량형의 필요가 생겨났 습니다. 18세기 말에 당대의 강국 프랑스에서 ‘미터법 m’이 정해 동양식 척자눈금

집니다. 사회통합을 위해 그랬겠죠. [1m는 북극에서 적도의 최 단거리를 1천만 분의 1로 나눈 값이다. -네이버 검색] 미터법이 각 국에 통용되었고 잘 알다시피 근대 동양에도 이식되었습니다. 그 래서 지금 우리는 ‘84.95㎡’라고 써놓고는 ‘25.7평’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이 지경을 살고 있습니다. 국민주택기준 25.7평 그리고 박・정・희 새마을운동은 국가주도의 주거 근대화를 주된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전 통의 주거문화를 강제적으로 대체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근 대화’의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미화되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도처

에 깔려 있었습니다. 당시에 법적인 기준으로 마련된 국민주택기준이 크기 25.7평입니다. 난데없이 왜 25.7평일까요? 어느 날 박정희가 차지철에게 그 랬답니다. “내가 전에 살던 집 크기면 4인 가족이 살만하지 않나.” “예, 그 크 기가 25.7평이지요.” 실화입니다. 이런 기준들이 한 번 정해지면 당대의 사 회적인 삶의 기준을 정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독재, 새마을운동, 참.. 쉽 죠?

열네번째 편지 23


설계를 위한 공간 요소들 ‘집은 생활을 담는 그릇’입니다. 무얼 얼마나 담을지 정해야 하겠지요. 초가집이든 기 와집이든 전통한옥은 거실과 침실이 분리되진 않았지만, 현대의 생활은 거실과 침실 을 대개 나눕니다. 그리고 밖에 있던 정지간 즉, 부엌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주방이 되 었고 뒷간도 들어와서 욕실이 되었네요. 이만한 살림이면 웬만큼 살 겁니다. 한옥 식 으로 설계를 해 봅니다. 거실은 칸살잡이가 여덟 자씩 두 칸을 차지하고, 안방은 일곱 자 한 칸, 사랑방은 일곱 자 한 칸 반을 주겠습니다. ‘기역자집’의 모양을 띕니다. 거실 의 일부를 할애하여 주방과 욕실을 두기로 하겠습니다. 한 25.7평 남짓한^^ 한옥의 형 태가 나옵니다. 다음 편에는 땅을 다지고 기초를 놓는 가장 중요한 작업을 소개하겠습니다.

24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PC

EACE AMP NEWS 06 네팔이야기

편지 왔습니다.

나마스테,

파이팅 넘치는 주카와 함께하는 1박 2일!

글&사진 이 용 숙 회원

포카라에서 칸데, 페디, 담푸스를 잇는 1박 2일 코스가 있다. 이 코스는 트래킹 분위기 를 느끼고 싶으나 장기간 네팔에서 머물 수 없는 여행객을 위한 간단하지만 알찬 일정 으로 짜여져 있다. 사실 우기에는 트래킹을 엄격히 금하는 곳 도 있다. 네팔은 5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우기는 우리의 장마와 비슷해 보이지만, 9월이 지나면서 며칠 동안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아서 먼지 가득한 메마른 하늘이 지속되는 건기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8월 초, 현재 우기. 우기에 트래킹을 금하는 이유는 바로 주카(네팔어)! 산 거머리 때문 이다. 실제로 깊은 산속을 걷는 트래킹 코스는 엄격히 입산을 금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1박 2일 코스이기도 하고 1시간 반 거리의 짧은 트래킹 코스이기 때문

열네번째 편지 25


에 주카를 잊은 채 트래킹 일정을 잡았다. 네팔은 특히나 트래킹을 빼고 이야기하기 어 려운 관광나라이기 때문에 짧더라도 네팔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고자 최대한 현지사람 처럼 여행하자 생각하며 포카라의 바그룽 버스파크로 향했다,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에서 제로 스트릿으로 버스를 타고 가, 그 자리에서 바로 바그룽 버스파크로 가는 버스로 갈아 탔다. 약 20여 분을 가는 데 가는 길 맑은 날에 설산이 얼 핏 얼핏 보인다. 도착한 바그룽 버스 파크에서 담푸스 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려 버 스를 탔다. 버스 안은 역시나 외국인은 우리 뿐. 우기라서 트래킹 하는 외국인들이 드물어 현지인들만이 버스에 가득했다. 덕분에 연 예인처럼 온갖 시선을 다 받았다.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인데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는 동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네팔의 시골 모습을 볼 수 있다. 카투만두와 차 원이 다른 공기의 맛!! 지루하긴커녕 1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칸데. 떡하니 오스트리안 캠프가 있을 줄 알았는데 표지판도 없이 입구에 가정집과 작은 찻 집들만 있었다. 결국 숙소에 전화를 했다가 입구의 인심 넉넉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작은 오솔길을 따라 쭉 가라고 하신다. 네팔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옆에선 닭이 울고, 병아리 들이 제멋대로 뛰어 놀며 집집마다 키우는 개들이 짖어대며 우리를 반겼다. 가는 도중에 외국인 여행그룹이 있어 그들과도 같이 주저리 이야기 하기도 하고 쉬면 서 걸었다. 특히나 검은 개 한 마리가 트래킹 초입부터 따라왔는데, 중간에 우리가 뒤 처지면 기다리고, 쉬면 같이 앉아 쉬면서 꼭 가이드처럼 우리와 동행해서 키다리 아저 씨가 떠올려지는 친구였다. 이 친구는 정말 우리를 따라 숙소까지 걸었다. 운 좋게 비 가 오지 않은 맑은 날씨여서 중간 중간 산 여기저기를 사진으로 담으며 느릿느릿 1시 간 반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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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숙소는 넓은 잔디밭이 깔렸고 ‘ㄷ’자로 된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한 쪽 에 레스토랑, 입구를 기점으로 양쪽은 숙소였다. 그 중 탁 트인 곳을 마주한 곳의 방에 묵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명당이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오자마자 짐을 풀고 밖으 로 나갔는데 따로 레스토랑이 없어 숙소에서 해결하고 그 자리에 앉아 창을 바라보며 찌아를 시켰다. 금방까지 맑았던 대기에 갑작스레 안개가 덮 친다. 자욱하게 낀 안개가 커튼처럼 휘날렸다. 순식간에 바람 따라 안개가 움직이는가 싶었 는데 안개가 아니라, 구름인가 보다. 구름 낀 잔디밭을 한참 보고 있노라니 신선이 라도 된 것 같다며 동생과 맞장구를 친다. 멍하니 차 마시며 경치 감상을 하는데 다른 손 님이 들어온다. 뜻하지 않게 한국인을 만났다. 보자마자 나이 지긋한 여자 분이 어떻게 여자 둘이 겁도 없이 왔냐고 하신다. 그러시며 주카는 안 만났냐고 하시는 데 해가 쨍쨍해서 몰랐다고 했더니, 본인들이 올 땐 비 가 내렸는데, 소금 안 바른 데를 어떻게 알고 따가워서 봤더니 주카가 한 마리 붙어 있더란 다. 그러시며 주카 괴담을 들려주시는 데…… 그때 밖은 추적거리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 다. 날씨도 범상치 않은데 들은 괴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서 모기향에 불을 피우려 동생이 등 돌려 앉았는데 등에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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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뭔가가 움직인다. 기겁하고 떼어내 밖으로 던져 버렸는데, 주카다. 괴담은 더욱 무 섭게 현실로 다가왔다. 결국 동생은 내내 악몽에 시달렸고 나는 잠을 제대로 못자고 아예 뜬 눈으로 지새웠다. 게다가 점점 심해진 날씨는 태풍이 치듯 오스트리안 캠프를 휩쓸었다. 무서운 회오리 바람이 창을 흔들었고, 소나기 치듯 비가 창문을 때렸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 설산을 못보고 가겠구나 하며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지샜다. 그러다 문득 방 밖이 조용해진 것 같은 느낌에 깨어 보니 비가 그쳤다. 웬일인가 싶어 창밖을 보니, 설산이 얼굴을 내밀었다.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급하게 동생을 깨워 방 을 나서자 어렴풋이 뜬 해에 밝은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맞아주는 설산이 있다. 벅찬 마음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 이내 사진기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한창 사진을 찍다가 멍하니 산만 바라본다. 구름이 제 멋대로 산을 덮쳐 한시도 같은 산이 아니다. 매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니 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드디어 만나 는 구나, 우기에는 특히나 더 보기 힘들다는 저 안나푸르나 산맥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는 데 한 순간 다시 구름이 덮친다. 딱 20분. 다시 잠들지 못한 채 방금 찍은 사진을 한동안 계속 봤다. 그래도 아침이 되니 밤새 맘 고생한 것이 눈 녹듯 사라진다. 간단하게 찌아와 티벳식 빵을 나눠 먹고, 담푸스로 향했다. 오후에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될 것 같아 짐을 꾸려 일찍 숙소를 나왔다. 주카 때문에 온 몸에 소금 칠갑을 하고도 긴팔, 긴 바지에 우비까지 쓰고 나가자 다들 웃으며 호들갑 이란다. 그 꼴로 트래킹을 하는 데 지나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위쪽에는 비오냐며 묻길 래, 주카 때문이라니 다들 웃느라 바빴다. 담푸스까지는 1시간 반, 다시 페디까지 1시 간 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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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일정은 모두 세 시간이다. 10시 쯤 숙소에서 나서서 트래킹을 시작하는 데 어 제와 다르게 제법 가파른 길이다. 가다가 고개를 빼고 우리를 기다리는 주카를 만났다. 역시 뭐든 부딪히는게 제일이다. 지난 밤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던 주카는 오히려 귀여 웠다. 나중에는 허리를 일부러 내밀며 여기 떨어지라고 장난까지 치는 지경이 되었다. 민가도 없는 산길을 한 참 걸으며 소와 함께 나온 목동아저씨들도 만나고 나무 해가는 주민들도 만났다. 담푸스에 다다르자 나름 유명한 여행지라서 그런지 민가와 함께 게 스트 하우스들이 제법 많았다. 사람들도 외국인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반가워는 하지 만 신기해하진 않았다. 기억에 남는 건 주카에 물린 한 소였다. 멀리 검은 소 등에 빨간 실이 매달려 있길래 설마 하고 다가가 봤더니 목줄기에서 떨어 진 핏줄기가 대롱 대롱 매달려 있던 것이다. 거의 사람 팔 길이로 매달려 있던 핏줄기, 목이며 얼굴이며 주카에 물린 상처투성이였다. 이 곳 사람들은 소금을 바르지도 않고 맨발에 조리 신고 돌아다니는 데, 우리는 잠깐 왔다 가는데도 소금샤워하고 긴팔 긴바 지 입고서도 벌벌 떨었다. 주민들을 보니 괜히 부끄럽다. 담푸스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달밧을 먹고 잠시 쉬는 동안 만난 일본인과 여행이야기 를 나누고 이제 페디로 향했다. 담푸스에서 페디까지 가는 길은 실질적 최고 난 코스였다. 1시간 반. 처음엔 평지를 걷다가 민가를 지나는 오솔길을 지나니 계단식 논이 나왔다. 이때부터 한 여름 태양 볕과 함께, 가도 가도 끝없는 계단이 나온다. 거의 한 시간 내내 계단만 계속된다. 나중에 내려갈 때는 다리가 후들 후들. 저 밑에 세티리버(흰 강)가 보이자 괜히 벅차서 힘을 내 보지만 그래도 한참을 내려간 다. 중간에 밥 먹을 때 한 시간 정도 쉬고 여유를 부리지 않았는데도 도착하니 3시가 다 되었다. 드디어 주카 괴담에서도 해방되어 뿌듯하게 1박 2일 트래킹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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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EACE AMP NEWS 07

수화통역사 이영경이 들려주는 농아인 이야기

사람이

우선되게.... 글 이 영 경 회원

복지 정책이 세분화되고 맞춤식 복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작은 딸이 학교에서 학습도우미를 하는데, 작은 딸이 맡은 학생은 뇌병변장애 1급이랍니다. 그 래서 활동보조인이 학교에 따라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또 다시 생활도우미 두 명, 학습도우미 두 명 해서 모두 4명의 학생을 배치했습니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이동을 할 때, 활동 보조인과 생활 도우미 학생 2~3 명이 늘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 때는 하는 일 없이 손이 남아 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 급에는 뇌병변장애인 외에 시각장애인이 한명 더 있는데 아마도 장애등급이 낮아서 그런지 활동보조인도 없고, 학교에서는 학습 도우미만 배치해서 어떤 때는 공부와 학 급생활에 어려움이 많아 보이더랍니다. (지금은 학생지원센터에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쪽 장애인들에게도 양해를 구해 뇌병변장애인의 학생 생활도우미를 시각장애인에게 돌려 해결을 했다고 합니다. 이 런 경우 불합리한 것을 보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알 고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포기했다면 개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애등급이 높다 하더라도 스스로 생활이 가능한 장애인이 있고, 장애등급이 낮은데 도 많은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조사해서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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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서비스가 제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장애등급제를 없애자는 운 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장애아동 도우미를 신청하려는 어떤 분의 이야기입니다. 두 명의 장애아동 자매의 돌 보미가 필요해서 신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 중 더 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작은 아이인데도, 규칙상 작은 아이는 연령 제한이 있어 돌보미 요청이 안 되 고 큰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특별히 돌봄이 필요 없는데도 큰 아이는 된다고 합니다. 제도에 매어 정작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일 겁니다. 지적장애인 시설이나 청각장애인 시설에는 특별히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꼭 있어야 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에는 반드시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시설을 해야만 허가를 내줍니다. 그래서 굳이 필요 없는 시설 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해 일 처리가 늦 어지거나 힘든 경우를 많이 보면서 좀 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많이 합니 다. 늘 재정이 부족한 청각장애 단체인 경우, 사무실을 구하는데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는 2층 이상의 건물은 안 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임대료를 내고 엘리베이터 가 있는 건물이나 1층을 구해야하는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아마도 담당 공무원들 중에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규정 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몸을 사리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법 자체가 그 상황과 장애 정도와 장애 분류에 맞게 유연하게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장애의 종류는 무척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이 필요한 지원 또한 다양합니 다. 누구나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사 람이다.’ 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기에 사람이 법에 갇히게 되는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직되지 않은 사회, 경직되지 않은 정책. 장애인 당사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들이 더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더 세심한 배려가 필 요할 것입니다.

열네번째 편지 31


PC

EACE AMP NEWS 08

대설 소설

12.22

소한 1.5

2 11.

대한

1.2

0

춘 입 .4 2

동 입 1.7

3

12.7

동지

23

우수 8

10.8

3.5

경칩

한로

10.

2.1

상강

1

9.23

추분

9.7

백로

3

4.2

8.2

처서

곡우 0

청명

4.5

춘분

3.20

24절기 7 8.

추 입

5

5.

7.23

대서

7.7

소서

6.21

하지

6.5

망종

1 5.2

소만


10월 寒露한로 찰한

이슬 로

찬 이슬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한로 무렵이면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늦가을 서리 내리기 전에 부지런히 수확해야 한다. 벼이삭 소리 서걱이 고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고 단풍은 춤추듯 그 자태를 뽐낸다.

霜降상강 서리 상 내릴 강

서리 내리는 가을의 끝자락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므로 비로소 가을이 왔다는 사 실을 실감한다. 들판은 하루가 다르게 누렇게 물들어간다. 밭일 과 벼 수확을 앞두고 바빠진다.

출처 : (사)전국귀농운동본부 자연농사달력


수 1

6

7

8

*AM 11:00 사무실 -수화동아리 *AM 09:30 사무처 회의

*PM 07:00 대전지부 강의실 귀농간담회(정용수 본부장)

13

14

15 *AM 11:00 사무실 -수화동아리 *AM 09:30 사무처 회의

20

21

22 *AM 11:00 사무실 -수화동아리 *AM 09:30 사무처 회의

27 전남 나주 탐방과 실습

34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28 *PM 07:00 대전지부 강의실 슬라이드로 보는 근현대사 (박준성) 청년역사학교

*AM 11:00 사무실 -수화동아리

29

*AM 09:30 사무처 회의 *PM 5:30 사무실 뉴스레터 편집회의


2013년 10월 목

금 3

2

토 4

마을기업연합회 임시총회

한글날

10

9 *PM 07:00 둔산 민들레 기본소득 대전포럼

16

5 *PM 5:00 사무실 옥상 회원의 날 첫번째 “달빛 아래 옥상”

11

12

*11일 PM 06:00 ~ 12일 PM 06:00 랑잠농원 짧은 귀농학교 두번째 “랑잠 농원에서 실습”

17

18

19

*PM 07:00 대전지부 강의실 *PM 7:00 대전지부 강의실 알바노조 간담회(구교현) 평화포럼 열네번째 이진경 “기본소득과 프레 *PM 08:00 대전지부 교육실 카리아트” 기본소득 대전네트워크 모임

23

24

25

26 *26일 AM 09:00 ~27일 PM6:00 짧은 귀농학교 세번째

30

31


36 평화캠프 대전지부 뉴스레터


열네번째 편지 37


편지 열네번째

함께하는 분들 강☺운 강☺희 고☺열 공☺희 곽☺호 곽☺규 권☺주 권☺진 김☺희 김☺훈 김☺순 김☺훈 김☺영 김☺석 김☺이 김☺주 김☺환 김☺석 김☺정 김☺정 김☺매 김☺석 김☺학 김☺욱 김☺진 김☺훈 김☺연 김☺열 김☺모 김☺용 김☺ 양 김 ☺ 김☺숙 김☺신 김☺주 김☺희 김☺경 김☺섭 김☺환 김☺수 김☺권 김☺영 김☺숙 김☺주 김☺호 김☺섭 남☺현 남☺옥 노☺욱 도☺실 류☺현 목☺숙 목☺균 민☺자 민☺란 박☺용 박☺안 박☺수 박☺선 박☺혜 박☺람 박☺민 박☺임 박☺향 박☺ 훈 박☺희 박☺영 박☺국 박☺만 박☺선 박☺현 박☺옥 박☺근 박☺ 정 박☺숙 박☺자 박☺찬 박☺택 서☺순 성☺주 성 ☺ 수 소 ☺ 섭 손 ☺ 열 손 ☺ 림 손 ☺ 경 송 ☺ 선 송이☺호 송 ☺ 은 송 ☺ 근 신 ☺ 규 신☺아 신☺철 안☺나 안☺순 안☺아 오☺완 오☺석 우☺길 우☺우 유☺웅 유☺조 유☺찬 유☺준 유☺종 윤☺수 윤☺탁 윤☺연 윤 ☺ 이☺미 이☺자 이☺환 이☺삼 이☺호 이☺국 이☺록 이☺화 이☺한 이☺열 이☺진 이☺상 이☺경 이☺광 이☺숙 이☺호 이☺화 이☺빈 이☺형 이☺은 이☺선 이☺호 이☺석 이☺민 임☺옥 임☺윤 임☺란 장☺미 장☺혁 장☺주 전☺영 전☺찬 전☺수 전☺미 정☺희 정☺희 정☺지 정☺순 정☺록 정☺숙 정☺순 정☺용 정☺웅 정☺경 정☺영 조☺숙 조☺도 조☺미 조☺호 조☺호 조☺석 조☺영 조☺형 최☺숙 최☺연 최☺ 애 최☺석 최☺희 최☺원 최☺숙 최☺희 탁☺호 태 ☺ 섭 하 ☺ 숙 하 ☺ 숙 한 ☺ 미 허 ☺ 옥 홍 ☺ 화 홍 ☺ 기 공감만세 나무시어터 월간토마토 산호여인숙 숲생태유치원 이 발행물의 저작권은 평화캠프 대전지부에 있으며 임의대로 사용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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