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E-MijuChosun_050526

Page 1


전자신문 THE MIJUCHOSUN E*NEWS

불가에서 음식은 수행자의 육신을 지켜

주는 최소한의 자양이자, 약이다. 음식의

맛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금물이다. 그런

데 왜 세계 유명 셰프들은 ‘절밥’이라고 하

는 한국의 사찰음식을 배우고 싶어 할까.

그 이유를 사찰음식의 장인 여거스님을 찾

아가 알아봤다.

◇마음과 정신을 채우는 수행

경기 수원시 광교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비구니 사찰 봉녕사.

고려 1208년 원각국사 덕소가 창건한

봉녕사는 국가무형유산인 사찰음식 특화

사찰이다.

음식을 가르치는 교육관인 ‘금비라’ 1층

내부 벽면에 커다란 글귀가 눈에 띈다.

스님들이 공양(供養)하기 전에 외우는

게송인 ‘오관게’를 해석한 글이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의 과정에 담긴 은혜

에 대한 감사와 공경의 정신을 나타낸다.

공양은 단순히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을 채우는 수행의 과정이다.

◇직접 키운 것들과 천연 조미료들의 향연

교육관 1층에 들어서자 검은 뿔테 안경

을 이마 위로 올리고 선보일 음식 준비에 바쁜 여거스님이 취재팀을 반갑게 맞는다.

4인 1조로 40여명이 조리 실습하는 시설 을 갖춘 이곳은 마치 넷플릭스의 요리 경 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스튜디오 같은 느 낌이다. 용인 극락사의 주지인 여거스님은 24년째 사찰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스님은 극락사 옆 조그마한 밭에서 다양한 작물

을 농사짓는다. 스님이 “한꺼번에 달려들 자”라고 말하자 조교팀 4명이 일사불란하 게 움직인다. 나물 한 움큼이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라 가더니 이내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비름 나물이다. 직접 농사를 지어

하다가 도저히 맛 이 안 난다 싶으면 그때 사용하는'한 수'는 들깻가루다. 이 또한 들기름의 원료다. 비 름나물은 생김새는 수수하고 들풀처럼 흔 하지만 예부터 오래 살게 한다는 뜻으로 ‘ 장명채’(長命菜)라고 불리기도 했다. 삶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스님이 말 한다. 너무 오래 삶으면 물러진단다. 비름나물을 볶은 뒤 눈에 익숙한(?) 것 이 한 접시 등장했다. 횟집에서 많이 봤기에 “멍게가 있네요?” 라고 말하자 스님은 웃음을 감추지 못한 다. 흔히 ‘늙은호박’이라고 하는 청둥호박 으로 만든 호박꼬지였다. 농사지은 청둥호 박의 속을

2026년 5월 7일

이어 향을 지키기 위해 소금을

치지 않은 더덕 유자청 버무림이

만들어진다. 더덕을 적당히 두들긴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 유자

청을 가미하고 청포도를 반으로 잘

라 살짝 올린다. 한젓가락 해보니

더덕과 유자의 향이 어우러져 상큼

하기 그지없다. 스님은 2024년 일

본 오사카에서 한국문화원 행사

때 이 음식을 선보였는데, 현지인

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고 한다.

일반 식당에서 흔한 배추겉절이

도 나왔다. 제철을 맞은 세발나물

과 파프리카, 홍시가 앙증맞게 곁

들여진다. 그런데 위에 뿌리는 새

콤한 향의 무언가는 생소하다. 다시

마 식초였다. 감칠맛을 돋운다. 두

꺼운 건다시마에 현미식초와 설탕

을 넣어서 1년간 숙성시킨 것이다.

여름에는 물에 희석해 음용하기도

한단다. 장 만들기와 함께 다양한

식초 만들기는 교육관에서 스님이 가르치는 핵심 과정이다. 통상 ‘메인 메뉴’를 먹기 전에 식

욕을 돋우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샐러드다. 스님이 내세운 것은 귤청

식초가 곁들여 진다. 돌산갓은 향을 내기 위한 것 이다. 곶감은 적당히 말린 반건시

를 잘라 넣는다. 국수를 넣으면 싱 거워지기 때문에 소금을 약간 넣는 다. 마지막으로 3년간 숙성시킨 매

실청을 가미한다. 백김치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육수가 멋진데요”

라고 말했다가 이내 실수임을 깨달 았다. 사찰에서 고기를 우린 국물

은 없다.

한쪽에서 대추와 들깨를 넣은 밥

이 다 되자, 건다시마와 건표고버섯

우린 물로 냉이 된장찌개를 끓인다.

표고버섯을 말린 건표고는 생표고

보다 영양가가 4배 많다. 스님은 호

박을 칼로 자르지 않고 계량스푼으

로 일일이 한술씩 뗀다. 모양을 각

기 다르게 해 식감을 다양하게 하

기 위해서다. 담근 된장을 한 젓가

락 입에 넣었더니 짠맛은 전혀 없

고 달곰한 맛이 감돈다.

스님은 직접 띄운 청국장에 삶은

애호박을 올리고 조청과 매실, 참기

름을 두른 청국장 애호박 버무리를

만들고 조교들은 산에서 주운 도

토리와 미나리로 조그마한 전을 부

친다. 이어 토마토 속을 파내 가지

와 피망 등을 채워서 찐 토마토 찜

이 완성된 뒤 스님은 “우리가 안 한 게 뭐가 있지요?”라고 조교들에게

묻는다. 2시간여만에 그렇게 웰빙 식단이 차려졌다.

◇발우공양, 그 귀한 경험 이왕이면 공양하고 가는 게 좋 지 않겠느냐고 스님이 권유한다. 은 근히 발우공양을 하고 싶은 마음 이 생겨 요청하니 한 상을 만들어 준다. 발우는 스님들이 식사할 때 사용하는 식기를 일컫는다. 바리때 라고도 한다.

들깨밥 위에 비름나물 등을 올 리고 고추장으로 비비면서 여기저 기 정신없이 젓가락을 대다가 청량

한 맛이 나는 무언가를 씹었다. 멜

론과 산초가 들어간 장아찌다. 입

안을 정화한다고나 할까. 조금 전

에 먹은 음식이 뭐였는지 잊게 하

는 독특한 식감이다.

장아찌는 사찰의 대표적인 저장

음식이다. 접시를 죄다 비워갈 즈음

백김치 국수 국물이 입안을 싹 정

리해준다. 허기를 채우는 것에 함

몰돼 오관게의 정신을 되새길 틈이

없었다.

식사 뒤 발우를 씻으려 하자 “놔

두세요”라며 스님이 만류한다. 귀 한 발우를 수세미로 씻다가 흠집

을 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찰에 서 스님들이 공양을 마치고 발우에

물을 부어 김치 한쪽으로 닦은 뒤 그 물을 마시는 모습을 봤다면 이 해할 수 있다.

◇세계 유명 셰프들에게 전수하 다 여거스님은 오는 4월과 10월 프 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등지의 세 계적 요리 아카데미 채식가 과정 에 강사로 초청받아 사찰음식을 전 수할 예정이다. 동양 음식 중에서 도 한국의 사찰음식 전문가가 되 고 싶어 하는 현지의 유명 셰프들 이 많다. 스님은 일본 등 아시아권 의 사찰과 음식 교류도 자주 했다. 봉녕사 사찰음식교육관은 2013년 개관했다. 작년 한 해 배출한 수강 생만 1천250명이다. 2009년부터는 매년 사찰음식대향연을 개최하고 있다. 여러 불교권 국가의 사찰음 식을 맛보고 명장들의 강의도 들 을 수 있다. 봉녕사는 현대 불교 계 거목인 청담스님의 속가 딸 묘

엄(1932~2011)스님이 승가대학을 설립하고 비구니 승단의 발전을 선 도한 곳이다. 주불전인 대적광전과 도서관인 소요삼장에는 묘엄스님 의 대형 사진이 걸려있다. 묘엄스님 은 제자들과 배추 농사도 짓고 온 갖 작물도 키웠다. 여거스님은 묘엄 스님의 손주 상좌(속가에서 손녀의 의미)다. 묘엄스님은 먹는 것이 수 행과 직결돼있다고 말하고, 이에 대 한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고 여거스 님은 회상했다.

롯데플라자 마켓본사 승원

-그래픽디자이너

풀타임(월-금: 7:30am~5:00pm)

메릴랜드

703-957-3010 703-817-2818(첸틸리) 703-865-8615(비엔나)

서비스 가능

구인

롯데플라자 마켓 본사 승원유통 함께 일하실 분 * 사무직원 (서류관리 인보이스

장거리 최가가격으로 모십니다 미국 어느 지역이든 OK 240.796.0093

결정 Max7576@hotmail.com

“내 인생이 왜 네 맘에 들어야 되는데

요?”

지난 18일 첫선을 보인 JTBC 토일드라

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

다’(이하 모자무싸)에서 이 말을 하는 주인

공 황동만(구교환 분)은 20년째 데뷔만 준

비하고 있는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감독, 제작자로 잘 나가는 8인회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리는 인생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

이라곤 떠드는 것뿐이다.

8인회는 그의 말을 ‘소음’이라고 치부하

지만, 황동만은 자신을 실패한 인생이라 여

기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공포와 마주하

기 위해 쉴 새 없이 떠들며 존재를 확인 한다.

는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난 내 무가치

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릴 거

야” 같이 삶의 통찰을 담은 문학적 대사

가 흐른다.

박 작가는 전작들에서 결핍 있는 인물의

이해와 연대를 발신했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에선 각

자의 상처를 알아본 남녀가 편견 없이 서

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구원의 서사로 그 렸다.

‘모자무싸’에서도 변은아는 모두가 기피

하는 황동만에 동질감을 느낀다. “겪어보

려고요”라며 사회 부적응자 취급받는 그

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한다.

박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이

유로 불안하고 우울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러나 ‘모자무싸’는 공개 후 시청평이

갈렸다. 황동만이 쏟아내는 명대사 열전은 “역시 박해영”이란 감탄을 자아냈지만, 동 시에 자기 연민으로 똘똘 뭉쳐 ‘밉상’이 된

그의 무차별적 대사가 불편하다는 목소리

도 나왔다.

호불호는 시청률 답보로 이어졌다.

2.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출발한 ‘모

자무싸’ 시청률은 4회까지 2%대에서 머물 렀다.

공 평론가는 ‘모자무싸’가 박 작가의 전

작보다 어려워졌다고 평가하며 “작품이 명

작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려는 비

주류의 생각에 제대로 공감하면서 보는 사

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했다.

JTBC ‘모자무싸’, ‘나의 아저씨’·‘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 신작 구교환·고윤정, 전작처럼 결핍있는 인물의 이해와 연대 그려

명대사 화제성에도 시청률 2%대 답보…“함께 잘 살아갈 답 주는 드라마”

반면 고윤정이 연기하는 영화사 기획

PD 변은아는 자신이 맞닥뜨린 고통을 속

으로 삭이는 인물이다.

변은아는 유명 감독이 영화사 대표까지

뛰어넘고 직접 시나리오를 건넬 정도로 안

목 있는 인물이지만, 사내 견제와 지독한

이별의 아픔으로 빛을 잃었다.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마주할 때마

다 변은아는 코피를 쏟는다. 침묵하며 고

통을 감내하던 그는 자신과 달리 고통을

말로 풀어내는 황동만을 만난 후 달라진

다.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영화사 대표

에게 처음으로 “난 만만하고 약한 애가 아

니라 얌전한 애”라고 일갈한다.

‘모자무싸’는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

나의 해방일지’ 등으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다.

“편안함에 이르렀나?”, “추앙해요”라

는 명대사를 낳았던 전작들처럼 ‘모자무 싸’ 역시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때

삶의 무게를 버티고 인내하는 이들이다.

‘모자무싸’ 속 인물들 역시 다르지 않다.

20년간 영화라는 꿈에 매달리는 황동

만도, 다섯 번째 작품까지 개봉했지만 아

내 덕을 본 감독으로 치부되는 박경세(오

정세)도 모두 자신 안의 지독한 시기와 질

투, 열등감, 불안과 싸운다.

이 드라마 제목이 ‘황동만이 자신의 무

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인 이유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박해영 작가답

게 삶에 대한 질문을 처음부터 던져주고

있다”며 “황동만 같은 부류의 사람도, 아

닌 부류의 사람도 모두가 공감할 부분이

있다. 시청자들이 타인을 이해하고 자기 자

신을 이해하는 것, 우리가 어떻게 같이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주는 것이 드

라마의 역할이라면 박 작가는 그런 부분에 서 굉장히 충실하게 드라마의 역할을 보여 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모자무싸’는 철길 건널목, 빨간색과 초

록색이 대비되는 ‘감정 워치’로 극

변은아는 모두 이준환(심희섭) 의 동생이 개발한 ‘감정 워치’

“40대 무직 남”이라 뽑힌 황동만과 “정

신적으로 문제 있는 30대 여자”라 뽑힌 변

은아에게 ‘빨강’은 부정, ‘초록’은 긍정의 색 깔이다. 두 사람이 ‘감정 워치’에서 ‘초록

불’을 확인하는 것은 유일하게 서로가 소 통할 때뿐이다.

변은아가 일하는 영화사 대표 최동현(최

원영)은 변은아를 불러 황동만이 쓴 ‘날씨 를 만들어드립니다’ 시나리오를 대신 신랄 하게 비판하게 만들고, 황동만에게는 “내 가 총대 메고 말할게. 이제 그만하자”라며

망신을 준다. 그때 황동만의 ‘감정 워치’에 붉은색으 로 떠오른 글자는 허기.

시청자들은 배고픔이 아니라 존재의 가 치가 고팠던 그가 8인회 모임마다 게걸스 럽게 음식을 먹어치웠던 장면을 떠올린다. 또한 타인에게 재단당한 삶의 허기를 채 우고 싶었던 황동만의 모습을 통해 자신 의 내밀한 감정도 되짚어 보게 된다. ‘모 자무싸’가 시청자들의 거대한 ‘감정 워치’ 가 된 셈이다. 철길 역시 ‘나의 아저씨’에 이어 주요 장 소로 등장해 황동만과 변은아의 관계 변화 를 찬찬히 보여준다. 변은아가 황동만에게 ‘날씨를 만들어드 립니다’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하는 곳도, 그에게 할머니 가수자(연운경)가 만든 반 찬을 건네는 곳도 철길이다.

이들 앞을 막고 있는 차단봉에 쓰 여있는 “갇혔을

힘 내세요!

FAITH MAKES ALL POSSIBLE

(히브리서 11:6)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E-MijuChosun_050526 by THE MIJUCHOSUN - Iss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