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는 길

금발의 미녀가 귀여운 개를 이끌고 허
드슨 강변을 거닐고, 노부부가 산책하는
센트럴 파크의 한가로움, 월스트리트를
숨 가쁘게 오가는 화이트칼라들의 모습은
절묘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TV 화면을
통해 비추어지는 이곳 맨해튼은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하게 되는 도시다. 그러나 처
음 발을 내디딘 이들은 한결같이 실망과
당혹감을 경험하곤 한다. 지독한 교통체
증, 좁고 불결한 거리, 곳곳에 늘어선 부랑
자들과 끊이지 않는 사이렌 소리. 비라도
내리는 날의 음산함은 오싹함마저 느끼게
한다. 분명 이곳은 낡고 성장의 한계를 잃
어버린 도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뉴욕
은 여전히 경제와 문화, 국제 정치의 대명
사로 불리며, ‘아메리칸 드림’을 품은 수십
만 명의 인파를 매년 끌어모으고 있다. 불
친절과 무관심의 도시라 불리는 이면에는
140여 인종이 뒤섞인 복합 문화와 극명한
빈부격차, 쫓고 쫓기는 치열한 생존의 질
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차갑고 거친 불협
화음이야말로 뉴욕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 에너지원이다. 화려한 스크린 뒤
에 숨겨진 지독한 현실을 마주하고도 사
람들이 다시 이곳을 찾는 이유는 명확하
다. 그 무관심 속에는 역설적으로 누구에
게도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있으며, 낡은
건물 사이로 흐르는 긴장감은 곧 무한한
기회의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
국 뉴욕은 완벽해서 아름다운 곳이 아니
라, 가장 추하고 치열한 순간마저 하나의
거대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도시의 생명력
그 자체다.
주말의 맨해튼 거리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뒤따라오는 이가 불시에 위
협을 가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서둘러 눈에 띄는 카페를 찾
아 낡은 의자에 심신을 맡긴다. 창밖으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라틴계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거지가 되는 것조차 자유라며 당
당했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왜
그리도 초라하고 찌든 모습으로만 보이는
것일까?
순수 백인이 아닌 핏줄이 조금이라도
섞였다면 ‘유색’으로 분류되어 홀대받는
이곳에서 경계의 눈초리는 최근 들어 더
욱 확연해졌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생
존의 전쟁터 속에서도 낙천성과 여유로
들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던 이 거리의
낭만이 사라지고 없다.
지난 뉴욕의 시장 선거에서 인도계 젊
은 이민자가 승리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
가 크다. 국가의 안보와 강력한 힘을 과시
해야 한다는 공화당의 논리보다 개인의
평등과 개성을 우선하던 전통적 가치관
이 다시 부활하는 것일지 모른다. “소수자 의 목소리를 경청하려는 이민자 출신 시
장의 당선은 오늘날 미국이 마주한 거대 한 모순이자 성장통이다”라고 일부 언론 은 말한다. 결국 뉴욕의 진정한 힘은 획일 화된 질서가 아닌 공포와 자유라는 두 가
치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새로 운 균형점에 있다. 그 치열한 갈등의 중심 에서 뉴욕은 다시 한번 자신들만의 방식 으로 내일의 ‘아메리칸 드림’을 재정의하
는 것이다.
맨해튼의 낡은 한국 식당 한구석에서
된장찌개를 주문한다. 김 너머로 비치는
한국 신문의 활자들은 묘한 기시감을 불
러온다. 신문 속 세상은 여전히 날 선 언
어들이 부딪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
는 세대와 계층의 갈등이 복잡한 타래처
럼 얽혀 있다. 바다 건너 뉴욕은 이질적인
것들을 거대한 용광로에 녹여 새로운 질
서를 창조해 내고 있지만 고국의 정치 현
실은 여전히 각자의 평행선 위에서 반목
과 불협화음으로 대처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변화와
도약의 실마리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이곳의 모습에서 해답 이 있을지 모른다.
뉴욕의 소란스러운 소음이 누군가에게
는 소음일 뿐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는 새로운 기회의 전주곡이 되듯, 우리 안 의 혼돈 또한 정체(停滯)가 아닌 성장을
위한 진통이길 바란다. 무심하게 숟가락
을 놓으며 식당 문을 열고 나서면, 차가운 빌딩 숲 사이로 다시금 치열한 삶의 파도
가 밀려든다. 그 거친 파도 속에서도 자신
만의 중심을 잡고 묵묵히 걸어가는 수많
은 발걸음이 모여 결국은 새로운 시대의 물줄기를 만들어낼 것임을 믿고 싶어지는
봄날의 저녁이다.
맨해튼의 낡은 벽돌 건물 안에는 여전 히 수만 개의 샘플이 쏟아지지만 이곳의
본질은 단순한 봉제가 아닌 고부가가치 의 브랜딩과 IP(지식재산권)에 집중되어
있다. 한때 이 자리에서 코리안의 위상을 드높였던 기성복들은 프리미엄 시장과 초

김영선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혁신 의 구호가 혹시 허상은 아닐까? 차가운 빌
딩 숲 한복판에서 뼈아픈 질문을 스스로 에게 던진다.
맨해튼의 밤거리는 위험하다. 그러함에
도 눈치를 살피며 유엔 본부가 보이는 강
변을 따라 걷는다. 무표정하게 스쳐 지나 가는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 중 누군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건넨다. 그 내면에는 강
력한 미국을 건설한 국수주의적 우월감과
보수적인 정신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실체가 오만과 이기일지라도 그 안에 는 세계를 끌어당기는 거대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나는 그들의 위대한 정신이나
숨어 있는 자존감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
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이 거대한 도 시의 모퉁이에 서 있다.









vanchosun.com
“경석쌤 덕에 한국사 1급” 대중 웃길 때와는 다른 새로운 감동이 있더라
【아무튼, 주말】


“이것(신석 기 시대) 역시 절대 잊지 않는 작업 들 어갑니다. 농삼 신~라빗!” 모 회사 라
면 광고를 살려 따라 해보시라. ‘농경
과 목축의 시작, 부산 동삼동, 신석기, 가라악(가락)바퀴, 빗살무늬토기’까
지. 다섯 글자에 신석기 시대 특징을
제대로 담았다. 20년 전 서경석이 토
크쇼에서 말한 후, 아이들이 잊지를
않아 국사 선생님이 절대 시험 문제로
안 낸다는 이 사례도 있다. “임진왜란
이 언제 일어났느냐, 1592(일오구이)
년이죠. 왜구가 쳐들어왔는데 ‘일오구
있’을 때가 아니다!”
육사 수석 합격부터 서울대 불어불
문과 졸업까지, 연예계 대표 브레인으
로 꼽히는 서경석은 지난해 2월 제73
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100점으
로 1급을 받았다. 연예인 최초다. 혼자
시험 점수 잘 받는 데 그치지 않았다.
1년여에 걸쳐 자신만의 공부법을 담
은 동영상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사 강사) 최태성 선생님과 친한
데, 같이 다니다 보면 ‘선생님 덕분에 수능 국사 만점 받았어요’ 이런 인사를 많이 받더라고요. ‘이야
본 개그맨 시험서
받으며 화려한 데뷔
르다, 신기하다’ 했거든요. 요즘 제가 그런 인사를 받아요. ‘서경석씨 팬이에
요, 진짜 웃겨요’도 좋았지만 또 다른 감동, 새로운 보람이 있습니다.”
◇서경석 선생님 덕분에
-어쩌다 한국사시험을 봤나요.
“어릴 때부터 국사를 좋아했고, 방 송에서도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하면서 ‘한국사를 좀 더 공부해 보
고,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었어요. 관심 이 많다고는 하지만, 전공을 하진 않았 으니 국가가 인정하는 시험을 통과해 야 그나마 자격이 생긴다고 본 거죠.
2024년 5월 첫 시험에서 79점으로 2

유튜브
급을 받았는데, 이게 전화위복이 됐어 요. 좀 더 깊게 공부해 고득점으로 1급 을 받자고 생각했죠. 그다음 시험에서 94점을 받았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가 주관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1 급에서 6급까지 있다. 그중 1~3급은 심화 내용을 시험 본다. 60~69점이 3 급, 70~79점이 2급, 80점 이상이면 1 급이다. -94점 이후에도 시험을 또 보셨는데. “마포복지관에서 평균 연령 69세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재능 기부 차원 의 한국사 강의를 하게 됐어요. 강의하 면서 어르신들 힘내시라고 ‘저도 같은 시간에 시험 보며 사인펜 들고 마킹하 고 있을 겁니다’ 했죠. 마음을 좋게 써 서 그랬는지, 하늘이 도와서 그 시험에 서 100점을 받았습니다.”
-점수 잘 받는 비결이 있습니까. “시험 보기 전에 ‘농삼 신~라빗’ 같 은 암기 코드 200여 개를 만들었어 요.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단순 암 기만이 최고라고 잘못 착각할 수 있 는데 그건 절대 아니에요. 시험을 잘 보려면 반드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 다. 암기 코드가 중요한 건, 이해를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