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효자의 곡(哭)
생명체인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당연
한 이치이겠지만 태어남은 죽음을 약속하
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세월이 흐르면 생명체의 세포는 노화(老
化)되고 유한(有限)한 것이기에 영원한 것
이란 없다. 진리(眞理)는 불변(不變)인가
하는 것도 요즈음 세상에서는 장담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세상에 불변이란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해보기도 한다.
보름 전 어머니의 부고를 접하고는 다음
날 바로 한국으로 갔다. 운명의 순간을 함
께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이미 포기하고
있었지만, 고국을 떠나 사는 자식의 불효
함은 늘 가슴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 생활 20년이란 세월을 어머니의 가
슴에 깊은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더욱 가슴 이 아프다. 이민 오기 전 결혼 후부터 이 십
여 년을 함께 살다가 이민을 선택했을 땐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아쉬움보다 조금만
떨어져 산다면 어머니를 캐나다로 이주시 켜서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큰 걱정을 하지 않고 결정한 일이기에 이민 후 6개월 이 지나 어머니를 이곳으로 오시게 하였고 또 6개월이 되면 다시 한국으로 가셔서 몇
달 지내시다 오시면 될 것 같은 생각에 몇 년은 그렇게 하였는데, 어머니는 그때 우 울증이 왔었고 우리는 슈퍼 비자를 신청 하면 적어도 10년은 비자 걱정 없이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여 슈퍼 비자를 받고 보니
불과 2년이었다. 그리고 또 한 차례 신청한
슈퍼 비자는 불과 1년이라 너무 난감했지
만 1년이 지나서는 무비자로 계시는 데까
지 지내보자며 함께 지내셨다. 5년 전부터
는 어머니는 약간의 치매 증상으로 약을
복용하고 계셨으나 아무리 해도 정상적인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경이니까 우린
한국으로 모셔 가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한국 생활을 하셨다. 물론 나는 이곳 밴쿠
버에서 외톨이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그
러기를 2년 반 때는 전 세계가 코로나로 어 수선할 때 아내는 어머니를 장기 요양 시
설로 모시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왔다. 어 머니는 요양원에서 지내시다 침대에서 떨
어져서 대퇴부가 부러져서 급히 접합 수술
도 하시고 재활 치료도 하셨지만 워낙 어 려운 부위라 결국은 재활도 못 한 채 3년이
란 기간을 침상에서 누워 계셨다.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때론 세 번도 한국에 가기 도 하였고 코로나 기간에는 입 출국 후에 격리도 되었고 특히 한국에서 지내는 아들

꽃은 아직
함박꽃이 피면 바람결에 낯익은 그림자 올 것만 같아
아침마다 마당을 서성인다
밤새 비라도 내리면
꽃봉오리 빗물에 무거워질까 창문을 열었다 닫는다
햇살 깊은 날이면 오늘은 끝내 환한 속살 보일까
그림자 길어질 때까지 골목 끝에 걸린 눈길 하나
꽃은 아직
꽃잎을 여미고 있다
함박꽃 봉오리 앞에서
심장 소리 먼저 봄을 건너고 마른 입술 사이 침을 삼키듯
아껴둔 이름 베어 문다
마중 나간 발소리는 더뎌서
몇 번의 봄비를 더 지나야 그 골목 끝에 가까워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