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아녜스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할머니 방에
들어간다. 오동나무 반닫이 3층장을 조심
스레 연다.
‘이거, 내 색동저고리!’ 손가락을 꼽아본
다. 설날까지 몇 날이나 남았나.
동지 지나 섣달이 들면 할머니는 가마
솥에 장작을 때 하루 종일 조청을 고셨다.
안방 아랫목이 설설 끓어 콩댐으로 길들
인 노르스름한 장판이 탈까 봐 놋대야에
찬물을 담아 이리저리 옮기셨다.
“아가”하고 부르시면 나는 냉큼 달려가
장독대 뚜껑을 뒤집어 들고 섰다. 엿물 한
바가지를 퍼 주시면 그것을 마당으로 옮
기는 것이 내 몫의 일이었다.
섣달 추위 속에서 엿은 타다닥 소리를
내며 금세 굳어 투명한 갈색의 갱엿이 되
었고, 할머니는 굳기 전에 모양을 잡아 깨
도 묻히고 콩도 섞어 네모난 대바구니에
기름종이를 깔고 차곡차곡 쟁여 다락에
올려두셨다.
해가 반짝 나는 날이면 쌀가마니를 잘
라 펴고 놋 제기를 꺼내 닦았다. 기와지
붕 조각을 갈아 짚수세미에 묻혀 빡빡 문
질러 물로 헹구면, 칙칙하던 놋그릇이 신
기하게도 반짝반짝 윤이 났다. 밥주발, 대 접, 수저, 양푼, 세숫대야, 심지어 요강까
지! 온 집안의 놋그릇이 환골탈태하는 날
이었다. 설맞이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 신호였다.
불린 쌀과 찹쌀을 다라이에 담아 리어
카에 싣고 막냇삼촌이 애오개 방앗간에 다녀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까치까치 설날은
길게 담겨 돌아왔다. 요즘처럼 길이로 잘 려 있지도, 떡국용으로 미리 썰려 있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도마 옆에 턱 괴고 앉아
있으면 한 가래쯤은 얻어먹을 수 있었고,
그것을 할머니가 주신 조청에 푹 담갔다
가 먹다 보면 조청이 뚝뚝 흘러 옷을 버리
기 일쑤였다.
찹쌀로 만든 흰 인절미는 콩가루 위에
쏟아 노란 옷을 입혀 네모반듯하게 잘라
담았다. 남은 콩가루는 덧뿌리고 그래도
남으면 밥을 비벼 먹기도 했다. 윗목에 광
목 면포를 덮어 꾸덕꾸덕하게 말린 가래
떡을 어슷하게 썰면, “왜 동글게 안 써냐”
라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어슷썰어야 커
보이지.” 하고 웃으셨다. 떡을 썰며 들려주
시던 한석봉 이야기는 역시 엄마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녹두를 타서 껍질을 벗기고 불린 물에
치자 한두 송이를 깨 넣으면 주홍빛 물감
이 화르르 번져 녹두의 틱틱한 색이 노르
스름하게 변했다. 심하게 얽은 맷돌 아래
위를 맞추고 함지박 위에 우물 정자 각목
을 놓아 고정한 뒤, 한 수저씩 녹두를 넣고
물을 찔끔 더해가며 손잡이를 돌리면 우
둘투둘 갈린 알갱이가 맷돌 허리에서 삐
져나왔다. 그 맷돌 돌리기가 재미있어 보
였지만, 요령을 모르던 나는 힘만 빼고 결 국 구경꾼으로 물러섰다.
아버지가 목재소를 하셨기에 화목이 흔 했다. 마당 화덕에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돼지기름을 흠씬 녹여 녹두빈대떡을 부쳐
냈다. 양념한 배추김치도 길게, 고사리도 길게, 움에서 나온 쪽파도 길게—그러나
나는 ‘음… 돼지고기 들어갔네.’ 하며 고소 한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았다. 숙모들은
첫 소당을 맛봐야 한다며 뜨거운 빈대떡 을 죽 갈라 나눠 먹었고, 할머니 눈을 피해 하나씩 집어 먹으며 “산 조상이 먼저지”
하고 낄낄거렸다. 생선전 부치는 틈에서
덩달아 킥킥대던 나에게 “아가, 밀가루나
탈탈 털어라!” 하고 조무래기도 일을 시켰
던 종갓집. 전도 종류별로 한 채반씩 쌓아
두면 할머니가 갈무리하셨다.
섣달그믐날 밤, 잠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어른들의 농담에 눈 부릅뜨고
있던 그 밤, 숙모들은 둘러앉아 만두를 몇
백 개씩 빚었다. 밖에 내놓기만 해도 띠글
띠글 얼어붙던 추위였다. 육촌 시누이가
결혼하고 처음 오는 명절이라고 고춧가루
를 듬뿍 넣은 특제 만두를 하나 만들어 새
신랑 떡국에 넣어주던 장난도 있었다. 나
는 그걸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
만 꾹 참았다. 그믐밤, 자정이 지나서 복조 리 장사가 외치는 복조리 한 쌍을 사서 벽
에 걸었어도 새벽에 대문 안에 투척된 복
조리 값을 받으러 온 젊은이에게 후하게
값을 줬던 할머니.
삼촌 넷, 숙모들, 사촌들, 작은할아버지 들, 고모할머니, 오촌 당숙들까지 모이면
잠자리 하나 찾는 일도 북새통이었다. 사
촌들과 한 이불 속에서 속닥속닥 나누던 이야기들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서로의
체온이 만들어낸 따스함만은 오래 남아 ‘
정’이라는 울타리를 쌓아주었다. 설빔을 차려입고 차례가 시작되면 부엌
에서는 대가족을 먹일 떡국이 끓었다. 가 마솥에 소고기 장국이 펄펄 끓으면 떡을

김윤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차례가 끝나면 부모님이 먼저 할머니께
세배를 올리고, 삼촌 내외가 그 뒤를 잇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세배드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뱃돈은 빳빳한 신권, 그 출처
가 아버지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대가
족의 장점은 세뱃돈의 출처가 많다는 데
도 있었다.
세배가 끝나면 우리는 떼를 지어 윗동
네 외가로 향했다. 외가 친척들도 세뱃돈
을 주셨고, 뒤돌아 앉아 액수를 확인하는 동안 점심상이 들어왔다. 그 상이 그 상인
듯해도 외숙모 통영 친정에서 보내온 해
산물로 외가 점심상은 더 풍성했다.
*전문은 www.vanchosu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삐뚤빼뚤 아이들 그림이 세상 단 하나의 인형으로… 기적 선물하는 ‘고마저씨’
【아무튼,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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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이는 인형 제작
업체 고마컴퍼니의 박성일(59) 대표.
크리스마스까지 한참 남은 이달 중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고마컴퍼니 작
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계절은 이제 막
봄을 향했지만, 박 대표 마음은 이미
크리스마스에 가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알록달록한 그림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공주와 강아지, 공룡과 자동차,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형상…. “정
말 잘 그리죠? 피카소가 따로 없어요.
매번 깜짝 놀란다니까요.”
작년 900여 통의 그림 편지가 고마
우체국에 도착했다. 저마다의 바람이
삐뚤빼뚤한 그림과 글씨로 담겼다. 잘
때 나를 지켜주는 화살 쏘는 공주 인형
을 만들어 달라는 아이, 일하러 나가는
엄마를 위해 자신을 닮은 인형을 만들
어 달라는 아이, 이가 7개나 빠졌는데
이빨 요정이 오지 않았다며 요정 인형
을 만들어 달라는 아이…. 박 대표는 “
아이들의 편지를 보고 있으면 절로 웃
아내 살리려 시작 아내 떠난 뒤 방황하다 아이티 소녀 편지로 재기
째.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던 인형은 그
의 삶을 지탱하는 사명이 됐다. “절망
에 빠져 있던 저를 일으켜준 게 ‘나만
의 인형’이죠.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위 한 인형을 만들고 싶어요.”
◇고마우체국에 온 8914통의 그림 편지 -‘나만의 인형’은 어떻게 만드나요. “2월부터 아이들이 보낸 그림 편지
를 받기 시작해 여름쯤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요. 그리고 성탄절 즈음
에 아이들에게 보내죠. 2014년에 첫발 을 뗐으니 올해가 12주년이네요. 작년
까지 총 8914통의 편지를 받았고, ‘나 만의 인형’ 1384개를 만들어 선물했습 니다. 올해는 한 달여 만에 벌써 200통

고마컴퍼니
고마저씨가 만든 날개 단 휠체어에 앉은 소녀 인형(왼쪽 사진)과 휴대폰을 든 아빠 고양이 인형.

가까이 왔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형, 아이디어 가 좋습니다. “순수하게 제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미국의 ‘버지스(Budsies)’라는 회사가 맞춤 인형을 만드는 걸 보고 알게 됐 어요. 다만 그쪽은 수익 사업이고, 저 는 그걸 아이들과 소통하는 콘텐츠로 만들었어요.” 버지스에서 맞춤 인형을
제작하려면 최소 20여만원이 든다. 반 면 고마우체국은 1만8000원의 신청비 (그림 편지 키트 비용)를 받는다. 고마
우체국은 접수된 그림 편지 중 일부를 선정해 인형으로 만든다. -어떤 그림이 선정되나요?
“기성 캐릭터를 그대로 베낀 그림이 나 너무 추상적인 표현, 부모님의 손길 이 많이 느껴지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그다음에 ‘이건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
음이 드는 편지를 중심으로 고릅니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 있는 게 좋
고요. 아이들은 자기랑 가장 친한 친구 를 그리기도 하고, 할머니 댁 강아지를 그리기도 해요. 낙서처럼 선만 끄적여 보내는 아이들도 있지요. 상상력과 창 의력이 엄청나서, 제가 항상 놀란답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