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체다

어느 환자를 두고, “암입니다. 6개월 생존율이 5%이고 현
재로선 치료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 A와,
“어려운 상황이긴 하나 현대 의학이 빠
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치료
약이 나올 겁니다. 그때까지 저와 함께 버
텨봅시다.”라고 말하는 의사 B가 있을 때,
환자는 어느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
고 싶을까.
남편 중에도 A타입과 B타입이 있다. 아
내가 저녁밥을 먹은 뒤 배가 살살 아프다
고 할 때, TV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많
이 먹을 때 알아봤다.”라며 이죽거리는 남
편이 있는가 하면, 다가와서 “어디가 어떻
게 아프냐?”라고 물어보고는 우선 약이라
도 먹어보자며 약병 뚜껑을 열어 들이미
는 남편이 있다. 인간관계는 대개 이런 말
에서 시작되고 말에 의해 그 향방이 정해
지는 것 같다.
말이란 소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
의 입체가 아닐까. 누군가로부터 모욕적
인 말을 들은 날 그 말이 이리저리 굴러다
니며 내 마음 바닥을 긁어대는 걸 보면 말
이다. 입체가 가지는 부피감, 무게감, 그림
자 같은 것이 말에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말의 부피는 듣는 이가 정한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얘기나 도움이 되는 얘기는
큰 부피로, 자신과 별 상관이 없거나 득이
되지 않는 얘기는 작은 부피로 받아들인
다. 딸의 결혼식 때 일이다. 주례 없는 결
혼식을 하면서 신부 아버지의 소회를 듣
는 순서를 넣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
이 일어났다. 길어도 5분 정도만 해야 할
상황인데 남편의 얘기는 끝이 없었다. 딸
애가 잘라 때까지 도움을 준 분들에 대한 “
합동 감사제”가 이어졌다. 그날 남편의 얘
기 속에 언급되었던 이들은 재밌게 들었
다고 했고 다른 이들은 신부 아버지의 얘
기가 너무 길었다고 했다.
가볍게 흘려버릴 수 없는 말은 그 무게
로 인해 마음속에 가라앉는다. 우리가 어
떤 말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은 가라앉아
있는 말을 들어 올려 ‘생각’이란 빛을 비추
는 것이다. 사물에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듯, 이때 말에도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 말을 한 사람의 표정과 어조, 그곳의 분
위기, 그 말을 들은 나의 기분이나 상황들
이 한데 어우러져 말의 그림자가 될 것이
다. 어느 언어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말이
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며, 단어가 7%, 목소리가 38%, 태도가 그 나머지 55%를
차지한다고 한다. 말이란 귀로만 들을 게
아니라 눈으로 상대방을 보고 마음을 느 껴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말
의 그림자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사시험에 다시 낙방한 아들의 어
깨를 두드리며 어머니가 “지금 네 속이 오 죽하겠냐.”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아들의 아
픔을 달래 주고 말의 그림자는 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동료
의 입상 소식에 “축하한다.”라고 말은 하
지만 입 꼬리 한쪽이 삐죽 올라갔다면 말
의 그림자에는 시기심에 가득 찬 표정이
들어 있을 것이다.
삶의 후반기가 행복 하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연골’, ‘할 일’ 그리
고 좋은 인간관계’. 그중 인간관계가 가장
신경 쓰인다. 인간관계의 기본이 되는 말
을 돌 이후로 육십 년쯤 수련 중이건만 여
전히 나는 말실수가 잦다. 지난 일을 떠올 리다가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
데….’하며 머리를 흔들기도 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로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한
일이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발을 구른다.
심리학에서는 상대에게 열 번 잘 해주
려고 애쓰기보다 상대의 기분을 망치는
말을 삼가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어떤 사
람들은 자신의 말에 상대방이 화를 내면, “내가 욱해서 한 말 갖고 뭘 그러냐?”라며
오히려 그를 소심하고 속 좁은 사람으로 몰아간다. 사람마다 심장의 두께가 다 같
은 건 아니지 않는가. 이전에는 사람을 보 며 저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싫다’로 가 르곤 했다. 그게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근래에 깨달았다. 사람은 그저 ‘나와 소통
이 잘 되는
여러 개의 평면이나 곡면으로 둘러싸여 있어 부피를 가지는 물체다. 그
렇다면 말이라는 입체 속에도 여러 가지 를 채워 넣을 수 있겠다. 둥글고 각 지지 않은 것들로 채워 넣을 때 말이 제대로 굴
러가지 않을까. 따뜻한 정, 이지적인 배려 심, 부드러운 연민, 사심 없는 조언, 상대 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등. 내가 하는 말 속에는 무엇을 더 넣고 무엇을 빼야 할까.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더 어렵게 생각되 는 요즈음이다.
1960년쯤, 어떤 날, 어떤 날들

조규남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세 갈래 길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거든
세상살이의 이치여, 지나온 길 뒤 돌아 보게 하고
잠겨서 보이지 않는 길,
찾아야 할 희망을 가늠하며
마음 걸터 앉아 숨 고르는
쉼터 인 것을 알려 주구려.
삶이 한번이라도
등골이 휘는 세상살이를 일러
우연이라고 위로 해 주지 않듯
세월에서 배운다는 치기 하나로
삶의 가뿐 숨을 돌린 곳은
걸터 앉은 삼거리
표지판 아래였지.
살아간다는 일상은 언제나
손해 없는 결산서를 요구 받고
지나온 길 뒤 돌아보면 또 뽑기의 달콤한 줄타기처럼
아 슬한 선택의 삼거리였지
가난이 발에 밟히는
질퍽거리는 재래시장에서
좌판 콩나물 한줌을
덤이라는 아귀다툼으로 치열한 하루를 완성했던
실망을 안주 삼아 포장마차 막소주를 따르며
내일의 희망을 가불했던

돌아보면 눈물이 핑 도는 그 시절의 삼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