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의 역사 -두 번째 수필집을 내고-
오늘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수필의 거목 윤재천 선생님이 영면하셨
다는 부고는 하루 종일 비를 내리게 합니
다. 이제야 두 번째 수필집으로 인사를 드
리고 마음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았다 싶
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수필집은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선생님의 그늘이
던 구름카페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영원
한 추억의 장소로 남았습니다.
내 수필의 스승이며 아버지인 운정 선생
님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빕니다.
20여 년 전 수필 등단 후 1년 만에 첫 수
필집을 냈습니다.
8년 전엔 시 등단 후 25년 만에 첫 시집 을 발간했고, 이제 세 번째 책으로 두 번
째 수필집을 묶었습니다. 이것이 이름 없
는 작가의 글쓰기 역사입니다.
무슨 할 말이 있을까요. 지난 삼십 여 년
세월이 아쉽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글을 쓴다고 밤을 새운 적도 많았지만,
항상 글은 미완성이라는 생각에 쉽게 내
놓지 못하지요.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내보
냈어도 다시 천착과 퇴고를 기울여야 한다
는 마음이 언제나 무거운 짐으로 돌아오 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썼습니
다. 학창 시절 글짓기 대회나 독서 대회 참 가는 담임 선생님과 국어 선생님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따른 결과입니다. 처음 의지를 다지고 글을 쓴 것은 고등
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가을에 열리는 교내 문학제를 위해 만든 문집 한 권. 아직 책장 한 자리를 지키는 낡
은 그 문집,『선율』은 생애 첫 책이며 세 상에 한 권뿐인 귀한 자료이지요. 여고생
의 감성과 꿈, 사랑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직접 쓰고 그린 글과 삽화 모음집입니다.
마른 꽃잎과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붙이고,
애송시와 좋은 글 필사도 하고 방학 동안
에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도 편지지 그대
로 넣었습니다.
글쓰기의 시작은 그때부터 인가 봅니다.
열정과 몰입의 낭만이 가득했던 한때, 순
수해서 아름다웠던 시간을 가끔 떠올리곤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삶의 밭
갈이에 흔들려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
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글을 쓴
다는 것은 걸어온 삶의 길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걸어가기 위한 작은
몸부림입니다.
젊은 날 같은 열정은 사라졌고, 몰입하
는 노력도 부족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
천히 느리게 걸어온 길 위에 새로운 점 하 나를 찍었습니다. 과작寡作인 글쓰기 탓에
글이 자꾸 낡고 늙어가니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부족한 대로 책으로 펴냈습니 다. 한 편 한 편 작품을 갈고 다듬어 물 흐
르듯이, 글이 매끄럽게 흐르게 하려고 애 를 썼지만 만족하지는 않습니다. 미흡한
글이나마 읽어주는 누군가 있다면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겠지요. 글을 묶으며 느끼고 알게 됩니다. 책을
엮으면서 배웁니다. 그동안 써 두었던 글
이 얼마나 많이 부족한지 깨닫고, 글을 다
듬으면서 글쓰기가 한 단계 발전한다는 것
을 알게 됩니다.
망설이던 나에게 글을 묶어보라고, 책을
내보라고, 힘을 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을 다듬느라 칠팔 월 의 폭염을 거뜬히 넘어와, 어느새 겨울에
닿았습니다. 뜻깊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시집 한 권과 수필집 두 권. 지난 세월 속 가난하고 쓸쓸했던 글쓰기의 역사를 돌아 봅니다.『복사꽃 그늘에 들다』,『당신이 오지 않는 저녁』,『왜, 너를 사랑하지 못 할까』 , 이 세 권 안에 40년 가까운 글쓰기 의 역사가 들어 있으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붓을 놓지 않은 자신에 게 스스로 쓰담쓰담 위안을 보냅니다.
작고 어설픈 몸짓이라도 뒤틀린 길을 바
르게 풀어가려는 노력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역사로, 빛나는 글쓰기가 될 것을 희망합니다.


조순배
계절의 안부
눈이 내려야 할 계절에 비가 온다
차가운 물방울들이 나뭇가지 끝에 머물다가 이내 떨어진다
말을 다 하지 못한 눈물처럼
나무들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작게 몸을 떤다 깊은 겨울잠 속에서도 세상 쪽으로 난 귀 하나를
끝내 접지 못한 채
거리에는 우산들이
묵묵히 피어나
검은 꽃이 되고
공원의 연 밭은
물 위에 몸을 낮춘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한때 하늘을 품던 줄기들은
검게 마른 어깨를 맞대고
시든 잎들은
차가운 물속에 얼굴을 묻고 숨을 줄여
시간을 견딘다
바람이 불어도
더는 흔들리지 않는 것들
기다림에 지쳐
움직임마저 내려놓은 것들 앞에서
빗방울이 연잎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계절아
너는 지금 어디쯤 와 있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