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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Show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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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미국

지역: 캘리포니아 주

행정구역: 로스앤넬레스 군

설립: 1781년 9월4일

인구 3,928 , 864명(2014년)

인구밀도 3,198명/km2

면적 1290. 6 km2

웹사이트: lacity.org

로스앙헬레스(스페인어: Los Ángeles [los

ˈ aŋxeles]) 또는 로스앤젤레스(영어: Los Angeles

[lɒs_ ˈændʒəliːz],문화어: 로스엔절리스[출처 필요],

음차: 나성(羅城 ))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1290. 6 평방 킬로미터이다. 2010년 미국

인구조사를 기준으로 3,792 , 621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어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미국 전체에서는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가장

많다. 로스앤젤레스는 약 1, 8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로스앤젤레스 대도시권의 중심지로, 이 대도시권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며, 세계에서 가장 큰 대도시권 중

한 곳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드는

군 중 한 곳인 로스앤젤레스 군의 군청소재지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사람들을 앤젤레노스 (Angelenos)라고 부르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는 1781년 9월 4일 스페인 총독 펠리페

데 네베에 의해 설립되었다. 1821년 멕시코 독립 전쟁이

일어나면서 멕시코에 편입되었다. 이후 1841년 멕시코-

미국 전쟁의 결과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맺으면서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지역을 미국에게

양도했다. 로스앤젤레스는 1850년 4월 4일 지방자치제를

시작했고, 5달 후 캘리포니아 연방 자격을 획득했다.

천사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는

사업, 국제 무역, 엔터테인먼트, 문화, 미디어, 패션, 과학,

스포츠, 기술, 교육의 중심 도시로, 세계 도시 순위 6위,

세계 파워 도시 순위 13위에 올랐다. 도시에는 문화,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 기업 본사들이 밀집해 있어

미국 내 가장 중요한 경제 도시이다. 또한 할리우드는 텔레비전 제작, 비디오 게임, 음악 산업에 있어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영화 제작 산업으로 매우 유명하다. 1932년과 1984년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적도 있다. ▪패서디나

패서디나 (Pasadena)는 캘리포니아주 남서부,

치페와 (Chippewa)

‘계곡의 정상 ("Crown of the Valley," "Key of the Valley," "Valley of the Valley," and "Hill of the Valley.")’

(Indiana)에서

캘리포니아공과대학 (Caltech: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 부속된 여러 연구소들을

전자 •항공기, 미사일 부품 등의 경공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 Jet Propulsion Laboratory, JPL)는 대학과 미국항공우주국 (NASA)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과 풀러신학교 (Fuller Theological Seminary), 디자인아트센터칼리지 (the Art Center College of Design), 패서디나시립대학 (Pasadena City College), 퍼시픽오크스대학 등이 있다. 찰스 그린 (Charles Green)과 헨리 그린 (Henry Green) 형제가 디자인한 갬블하우스 (Gamble House), 노턴사이먼박물관 (Norton Simon Museum of Art), 패서디나역사박물관 (Pasadena Museum of History), 어린이박물관인 키드스페이스 (Kidspace Children’s

Museum)와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

패서디나 미술관 등이 가불만한 곳들이다.

이밖에 1890년 이래 매년마다 새해 첫날 신년행사로

열리는 전통적인 로즈 퍼레이드 ( Tournament of Roses Parade)와 미국 서부해안과 중서부지역 대학들의

미식축구대회인 로즈볼경기 (Rose Bowl football)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방송계 최대의 행사인 에미상

시상식 (Emmy Awards)이 해마다 패서디나 시립회관

(Pasadena Civic Auditorium)에서 개최된다. (출처 tp://www.lifeinus.com/Travel/269/ )

▪

샌타모니카(Santa Monica)

샌터모니카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군 서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이다. 태평양을 접하고

있으며, 샌타모니카 만에 들어서 있다. 샌타모니카 시는

로스앤젤레스 시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다시 말해,

패시픽 팰러세이즈 및 브렌트우드가 북쪽에, 그리고

웨스트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 및 마 비스타가

동쪽에, 그리고 베니스 (캘리포니아)가 남쪽에 위치한다.

2006년 미국 인구 조사청의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샌타모니카의 인구는 약 8만 8050 명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재무국의 예측치에 따르면 2007년 인구 추정치는 9만

1124 명이었다.[1][2].

샌타모니카의 이름은 서방 교회의 4대 교회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히포의

모니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히포의 모니카 축제일 (feast day)에 스페인 사람들이 이 지역을 처음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스케이트보드나 파도타기 애호가들은, 샌타모니카의

오션 파크 근처 지역과 베니스근처 지역을 때때로 "

사모"(SaMo)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노스 할리우드를 "노호"(NoHo), 웨스트 할리우드를 "웨호"( WeHo)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날씨가 화창하기 때문에, 20세기 초부터

샌타모니카 지역은 리조트 타운으로 꽤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1980년대, 특히 도심 재개발이 있은 후, 경제

붐이 일어났는데, 지역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으며, 관광수입도 급증하였다. ▪ 베니스 비치

산타모니카 비치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베니스비치는

(Canals), 해변, 그리고 각종

참여자:

• 참여작가 : 권오상, 김도균, 노순택, 문형민

• 참여 큐레이터 : 임대식, 황희승

• 촬영감독 : 김형주

주최 : 토탈미술관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 . 스케쥴

11월24일 (화)

여행자 보험 @ 공항 OZ 202 출국

11월24일 (화)

오전 11시 임대식 큐레이터 입국

오후 01시 자동차 렌트 (코리아 타운)

오후 06시30분 Welcoming party @ Art Always

)

일대에서 거주하는 한인들의 숫자도

여전히 상당한 편이다. 1992년 LA 흑인폭동에서 가장

많은 약탈과 불법적 행위들이 이뤄진 장소이기도 하지만,

다운타운과 베버리힐즈 등과 인접해 있는 등 LA의

노른자위 지역이어서 교통이 편리한 등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로는 코리아타운에 두 가지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나는 코리아타운 일원에서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서서히 도시 재개발이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로 인해 코리아타운은 ‘부활하는 도심 속의

도시’ 같은 이미지와 60 ~70년대의 낡은 도시 이미지, 둘

다를 갖고 있다. 코리아타운은 과거 일제시대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만큼 미주 한인들에게는 이민 역사의 출발점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또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고루 흩어져 사는

한인들이 꼭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자주 찾게 되는

구심점 역할을 감당해내고 있다. 또 최근에는 서울과 LA를 오가는 한인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서울의 한 부분일 정도로 한국과 유행이나

Forest, Jackson Lake

오후 06시30분 Jina Han & Amad Morshed 집 방문. Thanks Giving Day

Wrightwood https://en.wikipedia.org/wiki/ Wrightwood,_California Jackson Lake https://en.wikipedia.org/wiki/ Jackson_Lake

11월27일 (금)

오후 12시 점심@딤섬하우스

오후 01시~ 09시 the last book shop, Grand Central Market. Bradbury Building (Brad Runner building), WACO 장난감가게

The Last Bookshop http://lastbookstorela.com/ Grand Central Market http://www. grandcentralmarket.com/ The Bradbury Building https://en.wikipedia.org/ wiki/Bradbury_Building

11월28일 (토)

• LA 코리아타운

미국 내 한인 인구가 2000년을 전후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미국의 대도시에는 코리아타운(Korea Town)이라고 부를만한 곳들이 여기저기에 형성되게

됐다. 이들 가운데 LA 코리아타운은 압도적으로 그

규모가 크고, 또 Korea Town의 원조로써 손색없는

위상을 자랑한다.

LA 코리아타운은 동쪽으로 LA 다운타운을, 서쪽으로는

베벌리힐스 (Beverly Hills)와 센트리시티 등과 접하고

있다. 코리아 타운은 행정적 차원에서는 동서남북으로

경계가 대략 정해져 있으나, 한인의 유입과 비즈니스의

확장으로 실제적으로 그보다 크게 수백 스퀘어블록에

걸쳐 있다고 봐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코리아타운의 핵심을 꼽으라면 동서로

슈퍼 블록의 축인 윌셔 블러버드( Wilshire Bl.) 와 올림픽 블러버드( W. Olympic Bl)를 빼놓을 수 없다.

시대 흐름이 동조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 미국 내 K-pop

이나 한국 음식 등 한국 문화, 즉 ‘ K 컬처’ 확산의

전진기지로써도 주목 받고 있다.

11월25일 (수)

오후12시 점심식사 @

오후2시~ 6시 Walt Disney Concert Hall, The Broad Museum, MOCA, MOCA Chinatown

! 자동차 타이어 펑크

오후 9시 저녁@ 일식집 Japanes Village Plaza Mall

Walt Disney Concert Hall http://www.laphil.com/

The Broad Museum http://www.thebroad.org/

Japanese Village Plaza http://www.yelp.com/biz/ japanese-village-plaza-los-angeles

MOCA http://www.moca.org/

11월26일 (목)

오후 12시 Joshua Tree, Wrightwood, National

Santa Fe Art Colony http://www.santafeartcolony. org/

11월30일 (월) 오전 작가 인터뷰

오후 01시 Susan Baik 미팅 오후 04시 ~ 05시 큐레이터 인터뷰

오후 07시 숙소 출발

오후 08시30분 저녁 오후 09시 자동차 반납 오후 10시 공항도착

12월01일 (

3. 숙소

11/24 -27 8307 Grand View Drive, Los Angeles, CA 90046, USA

11/27-12 /01 Ocean Front Walk, Venice, CA 90291, 미국 1.

오전 11시 Getty Center

오후 01시 EAMES HOUSE

오후 03시 점심@Malibu Seafood

오후 04시 LACMA

오후 07시 Network Party : Jennifer Rad Ochs, Jina Han, Ahmad Morshed, Joohung Lee, Jamie 외 Getty Center http://www.getty.edu/ EAMES House http://eamesfoundation.org/ eames-house-history/ LACMA(Los Angeles Country Museum) http:// www.lacma.org/

Malibu Safood Fresh Fish Karket & Patio Café http://www.yelp.com/biz/malibu-seafood-freshfish-market-and-patio-cafe-malibu

11월29일 (일)

오후 01시 Santa Fe Art colony: Jina Han, Laurel Paley, Cherone 스튜디오 방문

권오상

권오상은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권오상은 ‘조각’의 주요 개념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그의 대표적인 작업인 <데오도란트 타입 (Deodorant Type)>시리즈는 스티로폼과 같은 가벼운

재료로 형태를 조각하고 사진을 조각의 표면에 덧입히는

작업으로, ‘사진 조각’과 ‘가벼운 조각’ 두 개의 축을

세우며 한국 현대 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개인전 <Sculpture>(두산갤러리, 서울, 2011), <Adore>(안도 파인아츠, 베를린, 독일, 2011), <OSANG

GWON>(아라리오 갤러리 청담, 서울, 2012), <Structure>(페리지갤러리, 서울, 2014), <New

Structure>(백아트, LA, 미국, 2015) 등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싱가폴미술관(Singapore Art Museum)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서있는

듯한. 초기작들은 그래요. 부모님들은 손가락만한

알루미늄 쫄대가 들어있었고. 안에 폼 같은

게 채워진 게 이제 2001년부터. 코팅이 된 게

2003년이었던 것 같고.

저는 약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처음에 봤을 때

쿨하다... 대답도 쿨하고 작업도 쿨하다고. 그게

말은 가볍기 위해서라고 말 하셨지만. 미술픔은

육중한 권위? 무게는 권위랑

있으니까. 그래서 작업이 구체적인 면을 띄고 있어요.

플랫 작업들도 실제 사물들이 등장해서 서있든가.

조각을 하더라도 자동차가나 오토바이, 아주

구체적인 사물들이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게 사실은 의미기 빠져있다든가 서로 연관돼서

이상한 조합이 된다든가 이러면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모호해지는 그런 작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왜냐면 굉장히 형태를

가진 조각들이기 때문에.

가방 되게 재밌던데요?

이건 컨셉 자체는, 플랫 작업을 이런 식으로

했어요

그런 건 차차 만들어도 될 것 같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그 안에

대표적인 작품들을 미니어처로 만들어서 넣는

게 목적이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것보다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 제 작업에 나와 있기 때문에

응용해서 만들 게 된 거죠.

플랫 작업도 되게 흥미롭게 봤는데 조각의

정의라고 하면 독립할 수 있냐 없냐... 그게

작가님의 정의이고. 그렇죠. 뭐든지 혼자 설 수 있으면 조각이 될

수 있고. 종이장도 누워있으면 2d인데 세워 놓으면 3d가 되는 거니까. 이것도 조각이다, 생각을

한거죠.

하여튼 그게 되게 직관적이고 쿨한 면이

있어가지고 그런 걸 물어보고 싶은 건 있어요. 저는

귓동냥으로 듣는 건데 미술 쪽 필드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소속작가라는 것도 다른 작가 친구들한테

얼핏 얼핏 듣고. 그렇게 기회가 왔던 건 어떤

계기로...?

저 같은 경우에는 99년에 데뷔했고 IMF

이전에 한국에 저희 또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유학 자유화가 돼서 굉장히 많이 유학을

. 그게 저보다 세,네살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 근데

그게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랬던 것

같고 IMF가 터지면서 유학 갔던 사람들이 다

들어왔거든요. 미국, 파리, 독일 다 들어오니까

서울이 세계 미술의 작은 격전지 같은 느낌이

됐어요. 그리고 어린 애들은 어린 애들대로 졸업도

안했는데 미술관에서 전시 하게 되고. 그리고 그때

생긴 게 대안공간이었어요. 제가 데뷔를 대안공간

루프에서 했는데 거기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출신이 모여서 만들었던 대안공간이었고 홍대

앞에 있어서 왔다 갔다하다가 친구들이 거기서

전시를 하게 해달라 해서 저는 거기 껴서 전시를

하게 됐고. 루프의 세 번째 전시였어요. 그래서

거기서 제 작업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그때

사진 조각이 나왔었고. 그래서 이제 알려지게

됐죠.

그때 나왔던 게 돌맹이...?

아니요. 그때는 쌍둥이에 대한 280장의

진술서. 학교 안에서 하는 전시라든가 학교 밖에

조그만 갤러리에서 한 적이 있었고 살 빠에서 저희

과 전시가 있었고.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번

전시를 하게 되면서 확 알려지게 됐던 것 같아요.

이런 저런 인터뷰도 많이 하게 되고 미디어도

많이 노출이 됐어요. 그러던 와중에 그때는

미술품이라는 것을 팔 수 있을지 없을 지에 대한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원래 안 팔리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 게 아니라 팔린 다 안 팔린다의 개념

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좋은 미술을 하고

멋진 조각을

활동하는 작가인지. 이런 걸 좀 잘 알았던 것 같고.

.

하고 열심히 하게 된다거나. 근데 뭐 어쨌든 작품을

되게 좋아했는데 나중에 마음에 안 들어가지고...

그렇게 됐어요. 결국 정보는 상관이 없는....

실제로 부딪히면은...

부딪히면 할 수 없죠. 작품을 다 들어내는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은 착하지만. 그땐 맘에 안

들면 중간에 작품을 빼왔어요. 제가. 그런 일들이

있었고. 초기에는.

아니었네요.

생각을 하는데

미술을 밖에서 본 사람들은 판타지가 있거든요.

독고다이...이런 판타지가 있는데. 저도 이제는

없지만 4 , 5년 전만 해도...

오히려 저는 어렸을 때 국제전이라든가...

해봤으니까. 이런 게 있었어요. 대안 공간 루프

포트폴리오가 아트선재 포트폴리오였어요.

그럼 아트선재 포트폴리오는 국제전이거든요.

스물여섯인데 전 세계를 여행을 하면서 그룹전을 하는 거예요. 신나는 일이기도 하고 멋진 일이잖아요? 근데 그 일을 하다보니까 행정적인

같은 게

전화통을 붙잡고 있고. 이메일로 일을 하고. 제가 어떻게 보면 핸드폰과 이메일을 업무적으로 쓰는 첫 세대인 것 같은데 행정처리가

너무 많다보니까 작업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누군가가 빨리 내 행정 처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 면에서

좋았고. 작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요. 작업실을

작은데 열망은 항상 큰 걸 만들고 싶고. 작품이

어디론가 빠져야 작품을 만들 수가 있는데 그런

것도 문제였고. 작업실도 없고. 내 작업을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수도 있고. 왜냐면 미술은 공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기금을 받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자랑스럽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문화를 위해서, 세계문화유산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왜 나를 도와주지 않지?

이런 생각을 했었죠. 내가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외부에서 봤던 거랑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미술관은 중요한 일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존 버거 소설에도 나오는 건데,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인데

당대에 인정을 받거나 뭔가가 되면 당혹감 같은 게

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존 버거가 쓴 글에 나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화가>라는 소설에 나오는 글인데 화가가

행방불명이 되요. 개인전이 대박이 났는데.

거기까지가 일기인데, 한두 마디 아포리즘처럼

적어놓는 글인데 그런 내용이 있고. 소설 내용이

재밌는 게 행방불명이 되기 전에 개인전이 대박이

나요. 노동자들을 거칠게 그리고 그랬던 그림인데,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게 아니냐, 이슈가 있다가

행방불명이 되는데. 이 사람이 대박 난 개인전을

간신히 큐레이터에게 사바사바해서 간신히

치렀는데 거기 못 들어간 거야. 근데 난 그 심정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저는 그런 소설이나 글들이 작가를

왜곡시킨다고 생각을 해요.

너무 판타지? 네. 퍼센티지로 따지다 하더라도

좋겠어요. 근데 모든 업체에서 원하는 건 내

작품으로 뭔가를. 자기네 물건이 안 나와도 좋은데

돈을 줄테니 작업을 만들어 다오. 그랬어요.

그건 에르메스가 안 나와도 돼. 근데 네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 대신 신작이야. 이런 게 있어요. 그럼 제가 제 작품을 만들거든요. 근데 워낙에 저는.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이 오타쿠 적인 게 있기 때문에 그건 누가 잘못했다, 잘했다의 문제가 아니어서

좋은거죠. 근데 처음에는 뭔가 협업이

들어오면 그건 광고의 수단이었어요. 첫 협업은

일본의 긴자에 오파크라는 백화점이 있는데 그

백화점 크리스마스 광고를 제 작품으로 하는 거 였어요. 광고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거 였어요?

광고 같은 거 였는데 크리스마스 때, 그냥

거는 전혀 관계 없는 제 작품 중에 하나였고.

그렇게 저도 알고 있었는데 기억이...

연결되죠. 가방도 들고 있고 하니까.

그래서 콜라보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아까 말한 예술적 판타지가 있는

사람에겐 배신감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게, 작가님

데뷔 할 때가 제가 학교 다닐 때 였으니까...

아니, 에르메스랑 콜라보를 하다니

배신잔데...? 이런 그만큼 문화예술 쪽에 흥미있는 학생들의 특징이

좋아하던 사람이

백화점 위에 전광판에 띄우는. 작품을 찍은

띄우는 프로젝트 였는데,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이태리에서 모델 보내주고. 일본에서

스텝들 들어오고 그때는 어쨌든 제 작품이었어요.

일본에서 그룹전을 한 직후였고 광고를 하는 게

목적이었고 실제로 광고하는 게 목적일 돈 밖에

안 줬어요. 그리고 작업실의 규모가 커진 이후에는

아르바이트에요. 한 번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셈이죠. 예를 들어 킨이라고 하면 어쨌든 그걸 해서 작품도 많이 알려지고 그건 작품을 소장하면

돈도 많이 받으니까 그걸 받으면 1, 2년 작업실을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게.

작가님 보면 데오드란트하고 플랫하고 그 다음에

이름이 좀 복잡해서...

데오드란트, 플랫, the sculpture 그리고

지금 new structure 라는 게 나왔어요.

도록 보고 알았어요. 보통 데오드란트 쪽으로

콜라보가 돼죠?

데오드란트로 콜라보가 많이 되고 최근에는

데오드란트로 콜라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신작으로

하자는 말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 new structure

로 많이 하고 있어요.

그쪽에서 요구하는 건가요?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근데 저는 제가 유도를

많이 해요. 데오드란트 타입을 많이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서. 다른 쪽 콜라보를 많이 유도해요.

저도 그게 궁금한 게 다른 쪽 작가들도 자기가

끝나고 새로운 걸 해서 이전 껄 하기가 싫어

죽겠는데 이전 걸 돈 때문에 계속 해야 하는?

저는 중간에 싫었던 때가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근데 제가 멍청하다면 관둬야 돼요. 이걸. 근데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끌고 가는 거고.

무슨 뜻이냐면 돈을 벌고 안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사에 정확하게 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봤을 때 사진 조각이 굉장히 유리해요.

그리고 얘가 뭘 해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얘를 관두면 안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 얘라는 게 데오드란트 작업인가요?.

네. 왜냐면 카피 작업이 전 세계에 굉장히

많아지고 있거든요. 그건 그만큼 제가 알려졌어요. 그래서 그건 그냥 태그를 붙여요. 이번에 졸업을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한국작가 같은 경우는 첫째로 생계가 곤란해서

그러는 경우가 많을 테고. 생계 때문에 불씨가 꺼질

확률이 제일 높아요.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작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작가라는 게 이래서 힘들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죽고 난 다음에 유품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런 게 재밌더라고요. 개인의 드라마든 뭐든 그런

걸 가지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계시잖아요? 그게 더 흥미로울 때도 있긴 있고. 잘 만든 걸 떠나서

드라마가 보이면 흥미로운. 그러면 오래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고. 그렇진 않고. 잘 모르겠다. 근데 드라마 거리를 만드려면 드라마 적인 상황에서 자랐던 사람이 유리하겠죠. 근데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죠. 그게 고흐 같은

돈도

있어야겠지만, 아무 생각 없을 때는 그냥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뭐든.

저는 그 얘기를 바꿔서 후배들한테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작업에만 집중해라.

그리고 미래의 작품의 원천은 전작이라고

보거든요. 아트 스쿨 나온 사람들을 고민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테이스티가 하도 높기 때문에

자기가 만든 거에 만족을 못해요. 일단. 그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만든 작업에 진짜

만족을 해요. 계속 들여다 보는 경우가 많아요.

때문에 기준이 너무 높아가지고

사람들이 얘기가 되잖아요. 병도 있었고 귀도 한

번 자르고. 그런 우리가 생각하는 건 천재적인

드라마를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거고.

근데 본인이 그게 아니면...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예고나오고 대학 나오고... 이러면 너무

평범하잖아요? 예술하는 사람으로. 양친 다

살아계시고. 때가 돼서 결혼도 하고. 그러면

드라마가 성립이 안 되거든요? 그럼 그냥 해야죠.

그걸 배제하고. 거기까지는 작가로서 드라마의

운은 없는 거니까. 근데 저는 드라마가 없는 작가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작가 본인이기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다행이 이혼도 하고. 다행이

면허도 취소되고. 병에 걸리고 자살하고. 원하는

건 아니지만 솔깃하잖아요? 그런데 본인은 얼마나

그렇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평탄하고 행복한 삶은

사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의 미션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러면 후배들한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업을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저는 어려운 것 같아요. 빨리 끝내야 되니까. 내년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내년에 아라리오 개인전이 상해하고

서울에서 있을 거예요. 6월에 서울에서 있고,

11월에 상해에서 있는데 중간에 뉴욕에서 조그만

갤러리에서 하나 있을 것 같고. new structure

로 서울에서 할 것 같고요. 상해에서는 또 다른

조각품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데오드란트에서 더 플랫 넘어간 것도 점프가

되게 많았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sculpture는

모르겠지만 점프가 되게 많았다고 생각이 돼서.

내가 처음에 데오드란트를 봤을때는 지향하는

게 뭐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놀란 게 있어서.

더 플랫에서 지향하는 게 무엇을 것이다 또 한 번

놀랐던 게 있어서 그럼 상해에서 하는 거는...

상해에서 하는 건 아주 구체적이진 않는데

대략적인 거는 브론즈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고전적인 걸 아주 현대적으로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건 결과적으로는 사진 조각하고 다르지

않을 거예요. 재료는 완전히 다르지만. 사진 조각과 플랫과 뉴 스트럭쳐와 다 비슷하다고 생각을

저는.

그 세

위인들은 조각을 하잖아요. 길이 남을 인물을

조각을 하는데. 길이 남을 디. 자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디자인 하는 거예요.

모든 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건 모든지 조각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이 물체 자체도 조각이 될 수

있죠. 이 카메라도 되게 근사하잖아요?

근데 뭐든지 조각이 될 수 있으면 나는 무엇을

조각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남지 않나요? 그럴 때는 아무거나 막. 타이밍일 수도 있고.

건

? 비싸다는 말의 여러 가지 의미가... 가치가 있는?

없어도 되는데 작가의 취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요. 그 물건은 작업실에 있는 경우가

많고. 작업실에 있는 물건들을 덩어리를 구성할 때,

사진 조각이지만 덩어리가 많이 붙어 있잖아요?

이런 건 어떻게 시작을 하냐면 자, 붙여봅시다.

이러면서 시작을 해요. 만들어 놓은 덩어리는

있는데. 조각에서는 흙으로 덩어리를 붙이는

모델링이라는 게 있어요. 그 덩어리를 만들 때 이런

걸 붙였다가 저런 걸 붙였다가 깍아내고 다시 얇은

걸 붙였다가 두꺼운 걸 붙였다가 이런 걸 보면서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런거랑 가까워요. 이만한 덩어리가 필요한데 아 이거.

해요. 설악산을 보면서 설악산의 풍경은

무슨 의미가 있지? 이렇게 생각 안 하잖아요. 저는

현대미술 감상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추상을

보는 것도 있고. 제가 생각하는 감상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럼 아무 근심걱정이 사라지겠죠.

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죠.

각자 관람하는 사람이든 만드는 사람이든 자기 기준이 있으니까. 저는 모든 기준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LA는 어때요? LA는 날씨가 좋고. 우리가 좀 바쁘네요. 원래 LA는 일주일이면 할 일이 없어야 마땅한

도시인데 우리는 시간에 쫓겨가지고. 너무 늦게

일어났어. 그게 원래 스타일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라크마에서도 제대로 못보고 게티에서도 제대로

못보고. 미술을 보는 게 목적이지만 어쨌든 LA는

날씨는 좋은 것 같네요.

김도균 KDK

김도균은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마이스터쉴러와 아카데미브리프에서

수학했다. 평범한 건축물의 인공성에 주목한 <A>

시리즈에서부터 <SF>시리즈에 이르는 김도균의

작업에는 일관되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우선

그가 선택하는 피사체가 주로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상상력이 발휘되는 건축물을 선택한 후 가장

스펙터클하고 초현실적인 글을 포착하여 화면을

구성한다. 그렇게 선택된 건축물은 각기 그것들의

고유성을 읽고 가상의 색면 이미지로 재탄생 된다.

김도균은 사진은 단순히 건축물 본연의 미학적

효과를 노린 건축 사진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각적, 신체적,

물리적, 심리적인 반응의 복합체이기를 바라고 있다. <p>(2015, 페리지갤러리, 서울), <KDK b.ios.lu.sf. w.>(2014 , 신세계 백화점본관 아트월, 서울), <Space Odyssey>(2013, KAIST경영대학SUPEX, 서울), <b>(2012 , 갤러리2 , 서울),<Facility Skins>(2011 , Michael Schultz, 베를린, 독일) 등 다수의 개인전을

했으며, 안도파인아츠, 삼성미술관 플라토,갤러리플래닛,

백남준아트센터, 광주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많은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IKB Deutsche Industriebank, UBS, 삼성미술관

리움, 마리오보타 컬렉션,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김도균이라고 합니다.

가방 얘기를 좀 해볼게요. 자기소개랑... 솔직히

제가 미술계 외부의 사람으로서 전시를 본다고는

하지만 아주 자주 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작가님

개인전을 보지는 못했거든요. 저는 도록이랑

인터넷으로 보고 <거짓말의 거짓말>에서 뵙고 그랬었으니까. 포트폴리오 가방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좀 설명을 해주시면...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스페이스 작업의 일환으로 이 수트케이스

가방을 포트폴리오 가방으로 만들라고 했을 때,

저는 제 시리즈 중에 SF시리즈라는 게 있거든요?

SF시리즈의 일환으로 내가 우주여행을 한다는

상상으로 가방을 만들었어요.

Science Fiction 의 약자인가요?

Science Fiction으로 시작을 했죠. 그 작업은

처음에 일상적인 공간에서 미래의 공간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이런. 사실 스탠리 큐브릭 영화 보면서

시작을 했었거든요. 60년대 스탠리 큐브릭은 그런

공간을 만들었었고. 영화에서. 저는 2003년부터

시작을 했었는데 과연 2100년 이럴 때는 어떤

공간에 살고 있을까? 이렇게 SF로 시작을

했다가 나중에는 Space Faction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어요

, 그런 것들은 한거고.

내용 중에 달 같이 생긴 건물을 찍은 이런 작업들을 넣고. USB같은 것도. 큐레이터들한테

이 가방이 전달 될 텐데 저에 대해 하나씩 뽑아

가라고. 이 안에는 저에 대한 내용들이 있고.

하나씩 가져가게 하는 컨셉으로 만들었죠.

저는 우주여행? SF관련 된 컨셉으로 이 가방을

만들었어요.

인터뷰를 많이 해보셨겠지만 저는 이런 질문들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영화 카메라를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른 미술가들하고

쓰는 카메라가 어떤 종류인지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지 않나요? 쓰시는 카메라가 어떤 건지, LA에

갖고 오신 것도 있잖아요? 좀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20년째 제 친구인데요. 군대 갔다가 복학

하고 나서 저랑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제 친구.

96년이니까 거의 20년이 돼가죠? 독일제 린호프

테크니카라는 카메라에요.

어떻게 구매를 하시게 되었는지...

원래 핫셀블라드를 샀는데, 새 거 인데도 자꾸

아니에요. 필름을 사용해서 찍게 되죠.

필름 비싸잖아요?

한 장에 오천원 꼴 하죠. 근데 그걸 찍고

디벨로프 하는 데 오천원 정도 들고. 한 장에

만원 정도 드는 거죠. 저는 이걸 한 20년 정도

찍다보니까 테스트 안해도 될 정도의 그런 건

생겼거든요. 처음부터 뭐를 찍어야 겠다 기힉을

하고 찍기 때문에. 노출 같은 것도 노출계로

먼저 재고 제 감이 있어서. 무브먼트 카메라이긴

하나 필드용으로 나온 카메라여서, 그렇게 심한

무브먼트는 안 하고요.

생각보다 세팅이 헤비하지 않아서 놀랐던 적이

있어요.

디지털카메라나 DSLR에 비해서 민첩하게

찍을 순 없지만 다른 대형 카메라에 비해선 세팅이

용이하죠.

작가님 사진을 봤을 때 스튜디오에서 찍은 느낌이

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살짝 놀란 지점도

있고, 물어보고 싶은 지점도 있었어요. 저도 필름을

공부할 때 포지티브 하루에 한 장을 찍어오는

그런 수업을 했었는데 피사체 선정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노순택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서사가

보이니까 딱 알겠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전체적인 맥락은

스페이스에요. 저는 스페이스가 주요 키워드라면

그 안에서, 공간이라 하면 우주도 있을 수 있고.

모서리도 공간일 수 있고. 건물의 외관이 공간일

수도 있고. 이런 여러 가지가 있는데 스페이스라는

가지고 되게 다양하게

항상 고통스러운 게, 다큐멘터리를 할 때... 분명히 좋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해 못하는 선에서 이 사람은 행동하고 이 사람은

그렇게 감정을 느끼고. 나는 왜 그렇게 감정을

느끼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런 것들이

컨트롤이 안 되니깐. 할 때 마다 상처받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작업적으로는 노순택 작가

좋아하거든요.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도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확실히 들지는 않는데 사람이 내 작업의

피사체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만약에 지금 내가

사람을 피사체로 사용을 한다면 스페이스로

접근을 하겠지, 포트레잇 이런 건 아닐 것 같아요.

스페이스에 집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친 누나가 건축을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르 꼬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이런 사람들의

책들을 누나 때문에 접했던 것 같아요. 뭔지

모르고 봤죠. 그러다가 독일로 유학을 가서

20년대 모더니즘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 예를 들면 바우하우스 학교나, 르 꼬르뷔지에가 지어놓은

뭔지 궁금했어요. 핸드폰 사진이라든지... 권오상 작가나

이런 작가들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작가님은

작업용이랑 구분이 된 게 있을 거란 추측이 들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어서

피사체로는 작업용하고 아닌 거하고 구분이

되죠. 예를 들면 사람. 핸드폰으로는 사람을

찍어요. 근데 그건 사람은 아닌 거죠. 근데 저는

수평 수직에 대한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항상

맞추고, 맘에 안 드는 사진은 거기에 안 맞는

사진이에요. 핸드폰으로 찍을 때도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제 친구도 그런 친구가 있었고 저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는데 제가 들었던 건 영화를 수평 수직을

맞춰서 찍었는데 영화가 그렇게 재미가 없더라는...

그래서 궁금한 건 그런 게 있었어요. 영화에서

좋은 촬영이란 뭔가. 이게 사진하는 분들에게도

똑같이 해당 될 것 같아서. 근데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수평 수직만 맞는다고 좋은 건 아니다.

저는 노순택 작가님이 여기 계셔서 그런

게 아니라 전에도 얘기했죠? 노순택 작가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수평

수직은 제가 훨씬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아해줘도 뭐.

이게 좀 실례되는 얘기일수도 있는데 설치되어

있을 때가 되게 좋더라고요.

저는 그 부분까지도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걸려질 것인지 어떻게

프레이밍이 될 것인지 그것도 굉장히 많이 생각을

하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노순택 작가님 같은 케이스에 비해서 되게

설치되었을때 에너지가 확 생긴다는 말은

바꿔말하면, 화이트 큐브 안에서만 생명력이

있다는 얘기 아닐까요? 그건 아니에요. 꼭 화이트 큐브 말고도 어떤.

지금 이 방이라든지.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봤거든요. 현장에 Site-specific 된 작업을 해봤는데 그럴

때마다 그 부분들이 되게 재밌어요. 그래서 꼭

화이트 큐브만은 아닌 것 같아요. 러프한 공간도

괜찮고. 이런 공간도 괜찮고.

설치되었을 때 인트로가 느껴지고 아웃트로가

느껴지고 이런 게 명백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어가지고. 그런 부분은 큐레이터와?

일단은 제가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미술관이면

미술관, 갤러리면 갤러리. 이렇게 같이 얘기를

하기도 하죠. 처음부터 같이 협의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난 이런 공간에서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하고... 공간에서도 얘기를 하고 협의를

해서...

전체적인 걸 이번에 인터뷰하려고 맥락 없이

봤었던 건데 이렇게 시기적으로 쫙 봤는데 lu

같은 거예요. 처음에 ios, images of speed 이

작업은 독일에 가서 한국하고 풍경적으로 달라진,

이런 거에 대한 작업이었는데 지금의 모습하고

봤을 땐 되게 달라요. 처음에 사람 냄새가 난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과도기죠. 이제 넘어왔고. 아까 형식미를

얘기 했는데 독일 가기 전에도 제가 좋아하던

작가들은 다 사람냄새가 안나는 작업들인 거예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독일의 그런 게

좋아서 갔었던 것 같은데. 결국 저는 제 작업에서 감성적인 면이 앞으로는 더 나올 것 같거든요.

재밌겠는데요? 오히려 작가님이 안 하셨던

것들이지 않나요?

그렇게 될지 아니게 될지. 돌아가면 12월

3일날 결정을 하기로 했거든요. 지금 현재

작가하고 결정해 놓은 거는, 그 작가는 72cm

아래로만 작업을 하겠다. 나는 그 위로 할 지

아래로 할지...

LA는 어때요? 처음 미국 서부 쪽에 왔는데, 유럽에 오랫동안 살던 거에 비하면 처음에는 굉장히 싫었어요.

낯설기도 하고. 굉장히 퍼져 있어서 시각적으로

낯설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그

느낌이라는 게, 여기서 살려면 재밌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업을 통해서 지금은 철저히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좀

여리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다른 작가들 보다 작가님 아이폰이

게 독일 스파이 같은 느낌? 이중적인 그런 걸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년

서울가면 추가적인 걸 찍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제 작업실로 한번 오세요.

뭔가 카메라 매커니즘에 대해 더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사진학과 정통파여서.

노순택 선생님은 정치외교학과잖아요.

인터뷰에 얘기해 내가 노순택 홍보대사야. 그런 것들은 나중에 작업실에 가서 얘기하고요. 사용하시는 렌즈나 이런 것들. 미술쪽에서 잘 안

물어보지 않아요?

잘 안 물어보는데 되게 의외인 게 아마 제가 장비가 제일 없을 걸요? 이 세 분 중에 제일 없을 것 같아요.

노순택

노순택은 대학에서 정치학을,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하다 멈췄다. 교수신문과 오마이뉴스 기자를 거쳐

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imagepress. net)

편집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무크 <이미지프레스>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그의 주요 작업은 분단에 관한

현재적 기록이다. 한국전쟁의 과거 흔적뿐만 아니라,

거기서 파생되어 나온 현재의 사건들과 정황을

눈여겨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폭력의 문제가 반세기전의 전쟁과 무관하지

않음을 필름에 담고자 한다. <좋은, 살인>(2010, KT&G상상마당, 서울), <성실한 실성>(2010,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 망각기계>(2012 , 학고재갤러리, 서울), <실성한 성실>(2012 , 동강사진박물관, 영월), <어부바>>(2013, 류가헌,

서울)등 개인전과 <Real DMZ project - from the North>>(2013, 아트선재센터, 서울), <에르메스 미술상

3인전>(2013년, 아틀리에 에르메

스, 서울)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림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518기념재단, 평화박물관, 한국미술은행, 독일 F.C. Gundlach

Collection에 소장되어 있다.

모든 분들이 하셨는데 소개를... 네. 저는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이름 기억 안 나세요?

이름은 기억나죠. 이름은 노순택입니다.

그리고요?

이곳저곳 싸돌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고요.

뭔가를 주으러 다닙니다.

복면을 쓰시니까 제가 자꾸 질문은 기억나십니까?

사실을 밝혀주세요. 이런 식으로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주으러 다니고 바라보는 게

일이에요. 바라보면서 생각도 하고 유달리 눈에

들어오는 것들. 그런 것들을 가급적이면 주워

옵니다. 주워 올 수 없는 것들은 사진으로 찍고.

아니면 글로 묘사하고.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LA는 어떠셨어요?

LA의 첫인상은 (2‘17“ ) 이었습니다. LA

이에 10년 산 사람도 저렇게 걸리는 구나. 내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공항에서 걸렸을 때 제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건, 미국은 처음이고

영어를 잘하지도 못해서 제가 그런 상황에

빠지면 굉장히 난감했을 것 같아요. 내가 왜

언어의 도움을 받아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죠. 한국에서 모든 것들이 순탄하게

흘러가느냐를 살펴보면 한국도, 말로는 통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순탄치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하물며 한국에서도 그러는데 외국에서 봉착하면

그걸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나. 물론 어느 정도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는 있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 벗어나기 까지의

과정이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쉽지 않겠다.

선생님 주민등록증도 없었죠?

네, 저는 주민등록증은 없지만 여권은

있으니까.

그럼 여권으로 증명을 해야 하나요? 그렇죠 어차피 외국에 나가서는 그 나라의

신분증이라는 게 어떤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여권을 잃어버려서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신분증의 도움을 받아야

겠죠. 근데 외국에 나가서 제일 중요한 물건이

여권이니까 그거 있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국가가 개인의

삶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반발감이 있어서

안 만들었던 건데 외국을 드나들때는 또 협조를

기분 나쁘시겠다... 그렇긴 하지만 거기서 주민등록증의 발급

유무를 따지는 자리는 아니니까. 그 자리가.

자꾸 달라붙죠. 복면이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여권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죠? 그래서 항상 여권하고 운전 면허증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신분증이 없을 때 유일하게 발급받을

수 있는 게 주민등록증이거든요. 다른 신분증은

또 다른 신분증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여권을 만드려면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운전면허증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운전면허증도 마찬가지로 여권 같은 게 있어야

해요.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둘 다 잃어버리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아야겠죠. 사회를 살아가면서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해야할 순간이 많이 있으니까.

그럼 그게 맨 처음에 얘기한 국가의 통제에 대한

대항? 저항? 때문에 안 받은 거에 대한 한계 지점... 그렇죠. 그건 근본적으로 모든 타협이 없이

살아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상징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열손가락 지문 채취를 거부한 것이지 주민등록자체가 무용하다든지,

주민등록증을 받지 않았으니 또 다른 신분증도

필요 없다든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죠. 다만

주민등록증 일체 갱신 사업이 취했던 형식에

문제 제기는 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하다못해

작가, 예술가 이런 사람이 거기에 저항하기에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비교적 다른

일주일, 한달 기술적인 테크닉을 배우면 취할 수

없는 테크닉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카메라 수업 나가면

한학기만에 모든 걸 다 알려줘서

테크닉이 해주지 못하는 것. 대상에 대한

건 다른 것에 힘을 빌어햐 하는데 그건 책을

읽는다거나 무엇을 찾아다닌 다거나 생각을

계속 해야한다든지 적지 않은 시간과 딱히

제시해주는 방법론이라는

보시나요?

아무래도 저도 사진하는 사람이니까 사진

작업을 열심히 보죠. 물론 사진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시작적인 표현이라는 데 있어서 그리고

많은 도움을 받죠. 다른 장르의 작업을 보면서도.

다른 맥락의 작업들도 있는 것 같아서. 그렇죠. 그렇지만 아무래도 방법론을

사진으로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작업을 더 유심히

보고요. 국내외 작가들 망라해서 보게 되는 것

같고. 어떤 경우에는 이걸 이렇게 했어야 했을까

의문을 갖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너무

열등감을

. 시위대로부터 경찰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거나 아니면 경찰로부터 시위대 편이라는 오해를

받고. 때로는 물리적인 공격을 받기도 하니까 그럴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밖에 없거든요.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작업의 결과가

아니라 배신감이 들 때도 있잖아요. 현장에 똑같이 있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죠.

저는 그래서 뭔가 딱 잘라서 국제시장 같은 영화를

보면 배신감이 하늘을 찔러요.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영화에 이렇게

얘기를 쓰는 건 정말 책임감이 없다. 같은 판에 있다고 해서. 그럴 순 없다고

당연히 생각을 하고요. 근데 저도 나이를 먹고

보수화 되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 코딱지만한

판에서. 날카롭게 의견을 표명해야 하는 상황이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죠. 그런데 사사건건 의견을

표명하고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진 않아요. 차라리

옆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모하고 같이 열심히 하는 게 훨씬 스트레스도 덜

받고.

왜 자꾸 보수화 됐다고 하세요... 오늘 인터뷰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형민

패서디나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을 순수미술

전공으로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하나의 장르에 제한되어 있지 않은 문형민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형식 안에서 펼쳐지며 작가

고유의 작품 성향을 유지시킨다. 작가는 각각의 요소들

안에서 균형을 잘 잡아가는데, 이는 작가가 ‘형식과

내용의 모순’ 그리고 ‘블랙 유머’라는 공통의 기본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dumb project>(서미앤투스갤러리, 서울, 2008), 갤러리쌈지 (2005), 성곡미술관(2004)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그룹전으로는 <SEMA 청년 2012 열두 개의

방을 위한 열두 개의 이벤트>(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2), <Enormous Eyes> ( The Guild Gallery, 뭄바이, 2010), <Rosonance Green Korea - Climate Change in the Bosom of Culture>(토탈미술관, 서울, 2009), <The 3rd Nanjing Triennial>(난징, 중국, 2008), <City_Net Asia>(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7 ) 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하고

있어.

포트폴리오에 보면 있던데요? 2015년 해리오?

개인전이라고 하기 보다는 갤러리에서 예전 작업 꺼내서 한 개인전이고. 신작은 하나 정도

밖에 없었고. 2014년에 했던 건 하나는 베를린에서 했었고 하나는 싱가폴에서 했었고. 한국에서는 실질적으로 7년 째 개인전을

예전 작업 꺼내서 한 건 개인전이 아니에요?

회고전이라고 하기엔 나이도 아니고

경력도 아니고 맨 초기 작업부터해서 한 개 씩

꺼내서 걸어놓고 전시라고 하면 개인전이든

그룹전이든 방향이 있거나 의견이 있거나 이런

뭐가 있어야 되는데 뭔가를 늘어놓는 게 전시는

아니니까. 갤러리랑도 방향 없이 진행을 한 거니까.

그걸 굳이. 창고에 있는 스튜디오 비짓 정도로

생각하면... 오픈 스튜디오 정도로. 굳이 나는 하고

싶지 않았으나.

어쨌든 개인전은 안 봤지만 정보랍시고 이렇게 모았는데

노순택 작가님이나 김도균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착착착착 이런 게 있거든요? 근데 좀 전에

애기하신 것처럼 펼쳐지는 게 연대기가 구성이

안되는... 정리가 안되서 어렵다는 느낌이... 그게 초반엔 몰랐는데 사람들이 개인전 할

때마다 전부 다른 사람 개인전 같다고 하는데 지금 까지 작가들은 도록도 매 전시마다 내고 그러는데

나는 그런 걸 안 하는 이유가 나는 한 작업, 한

방향이 되겠구나를 보여주는 걸 지향을 하다

보니. 아직 책이 나올 정도의 프로젝트는 안 됐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 보시는 분들은 과정을 보시는 거니까.

지금까지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책 같은.. 나는 알고 있죠, 근데 페이지 페이지가 허술하게 만든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복선을 까는 거거든요. 복선을 깔고

있는 거죠. 다르게 가는 부분도 있지만 비슷한

부분도

누군가가 나보다 더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다면

누군가를 쓰는 게 낫다고 생각을 하고. 내용적인

면 같은 것도 표면과 내용이 모순되게 한다든가.

왜냐면 표면만 읽고 돌아가시는 분과 작업의

내용을 읽어보면 전혀 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든가. 아니면 한 얘기를 하는 작업은 별로

안 하거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얘기를 할 수

있다든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선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지만 취급을 하지 않고. 어떤 주제가

생각나면 즉흥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리서치부터

어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이 문제는 어디서

왔고 이런 걸 파악을 하고. 리서치 페이퍼 쓰듯이

들어가는 게 내 작업이라. 그런 규칙도 있어요.

어느 작가들은 어느 날 생각나면 종이에 막 써서

하시는데 방법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그 방법

자체를 잘 하지도 못 할뿐더러... 어떤 사람들은 시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추리소설 좋아한다고 하면

나는 추리소설에 더 가깝게 움직이고 있다고...

쉽게 얘기하면.

제작 방식에서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제가 느낀

걸 얘기하면 키워드로 빡세다. 모든 작가들이

빡세겠죠. 근데 제가 느껴지는 건 현대인의 노동...

컴퓨터가 해도 되는 걸 사람이 굳이 하는 바람에

빡세진...

그건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쉽게 만들 수 있는데, 쉬운 게

보기가 더 좋으면 쉽게 만드는데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을 때는 굳이 쉽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하나 있고. 또 하나는 나는 표면을

보고 사람들이 내 작업을 보고 오해를 하길 바랄 때도 많거든

계획은... 개인전 계획은 있는데 그 어떻게 할까 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전시를 크게 하고

크게하고 작게 하고 싶으면 작게 하는 건데 아무리 작가라도

제작비 문제도 있고 갤러리 문제도 있고. 뭔가 생각이나 구상은 다... 생각이나 구상은 6,7년을 놀았는데 작업을

구상을 안 했겠어요. 난 현대미술 하는 분,

순택씨나 도균씨나. 오상씨는 조각이니까 케이스가

좀 다르지만 나는 일단 몸이 꾸준히 가기 보다는

머릿속이 꾸준히 가야하는 작업이에요.

머릿속에서 개인전은 끝나있네요

끝나있는데 어느 게 먼저 갈까. 궤적 자체가

맞을까를.

그것도 묻고 싶었어요. 여기서 제일 형님이시니까

요즘에 젊은 애들 전시는 잘 가시는지...

늙은 애들 전시도 잘 안가서...

좀 궁금하긴 했어요. 저는 미술씬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되지만 아는 몇몇 친구들을 보면 여러 가지

이슈들이 씬 안에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젊은

작가들 활동하는 거 보면 어떤 생각 하실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죠. 이걸 옆에서

이래라 말아라 하기가 특히 다른 것도 그렇겠지만

경우에

나오고는 관객의 몫인데 자꾸 물어보면... 젊은

작가들도... 어르신들이 그때는 힘들었다 이러는

게 아니라 각 시대에 맞는 문제와 각 시대에 맞는

다 다른 문제가 있을 거 아니에요. 사십대 작가가

이십대 때 겪었던 문제와 지금 이십 대가 겪는 문제가 완전히 다를 거란 말이에요. 근데 그걸

나머지는 가면서

신 보 슬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서 “정보화시대에서의 예술과 기술:

상호작용성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박사과정 중에 있다. 1997년

미술현장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면, 지금까지 다양한

형식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다. 2000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미디어아트

분야의 전문성을 띤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제4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디지털 호모루덴스>) 전시팀장, 2005년 의정부

디지털아트페스티벌(«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 »)

큐레이터를 맡았으며, 2005년 독일 베를린의

« 트렌스미디알레(transmediale)», 런던 골드스미스의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 인도 델리에서의

제1회 CeC&CaC 등 국내외 미디어아트 관련 학술행사

및 전시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2005년 독일

뷔템베르크 쿤스트페어라인 슈트트가르트에서 개최된

«On_Di erence», 2010년 «Re-designing the East» (독일, 인도,헝가리, 체코, 태국 공동기획), 2012년 “Acts of Voicing ”(독일, 프랑스, 인도, 홍콩 등 10개국 큐레이터 공동기획)과 같은 국제전시에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미디어아트 뿐 아니라 현대미술 전방위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07년부터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중이며,

미디어아트 보존 및 아카이브에 관한«404 Object Not Found», 비디오아트 스크리닝 프로젝트 «Co ee with Sugar»,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Digital Playground»,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가방형식으로 제작한 <the show must go on>, 국내 작가의 해외 홍보를 위한

영문 잡지 <K.NOTe>등과 같은 중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국작가의 해외 홍보, 신진작가와

신진기획자들간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the room>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 Digital Playground”

의 베이스캠프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옮겨

현지 관객 및 학생들과 미디어아트 쇼케이스, 워크숍,

스크리닝 프로그램, 장소특정적 설치작업 등을 아우르는 페스티벌을 진행하였다. 또한 현대미술의 다양한

소통가능성, 새로운 방식의 전시방식 등을 고민하는

게 이완 작가가 절에서 이만한 고목을 빌려가지고, 우리가

방법을 몰랐어. 근데 어디선가 도끼 소리가

들려서 보니 수건 깔아놓고 그걸 잘라가지고

나무 젓가락 만들고 있었고. 근데 딱히 보러갈

데도 없으니까 서로한테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사실 로드쇼의 핵심은 차타고

만족도 1위인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서 묻고 싶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거지. 그리고 불가촉천민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미친 애들 아니야 ? 이런. 얘넨 어느 땐데 아직도 계급사회야.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델리에만 있던 게 아니라 차 타고

나갔는데 정말 티비에서 본 인도가 펼쳐진 거지. 그래서 딱 내렸더니 멀티미디어 카오스더라고. 옆에는 낙타가 있고, 여기는 소가 있고, 오토바이 빵빵 거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만지는데 깜짝 깜짝 놀라고. 머리랑 몸이랑 다르게 반응하는 걸 느끼면서 되게 창피하고. 바깥에서 함부로

얘기하는 건 아니다..는. 왜냐면 나도 그 사람들을

필요는 없지만 궁금하긴 한

내가 생각하기에 여행이란 게 그런 지점이기

때문에

그게 아마 내가 생각할 때 내가 첫 인도

여행에서 느꼈던 것 때문에 계속 하는 거 같아.

아주 쉽게 얘기해서, 노순택 선생님 데려올

때 미안하다고 했잖아. 김영삼 서거... 그런

맥락인거야. 돌면서 되는 작가들이 있다고 생각도

되는데 분명히 그 땅 안에 있어야만 뭔가가 나오고

그렇게 보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만진다고 해서 피부병이 옮는 것도 아닌데 5분을

시장을 못 걸어다니고 그냥 차로 들어왔어.

근데 들어와서 내내 너무 우울했던 거지. 나는.

이것 밖에 안되나 나는? 그런 생각도 들고. 근데

작업하는 작가의 상당수는 작업실에 혼자 쳐 박혀

있단거지.

그 부분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작업으로

도망치는 거. 현실적인 거, 내 몸도 무시하고. 작업으로 도망치는 케이스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 년에 일주일이라도 빼 내는데 그냥 휴양이나 이런 게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하고 같이 빠져 나오자가 메인인 것 같아요. 로드쇼는.

그럼 로드쇼는 그 로드를 선정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네요?

그죠. 그러니까 한국 버전이 잘 나올 수밖에

없는거야.

그게 정치색이 들어가 있든 아니든..

얘기나 이런 것들이 뭉쳐지기가 쉬운데

나머지는 관광이 되기 쉬운거지.

오해의 소지도 쉽고

되게 오해 많이 받았죠. 그리고 심사 받아서

기금 받아서 움직이는 거니까. 심사 가면 그

얘기부터 먼저 해. 너네들은 나랏돈으로 여행가는

거냐고.

일반적인 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네, 나랏돈으로 여행갑니다.

얘기하거든.

근데 말씀하신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들하고 큐레이터한테. 현장을

본다는 거. 저는 더욱이 배우는 게 현장 베이스가

중요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추가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직업만족도

1위의 큐레이팅이란... 여행사 직원은 아니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자면 거짓말의 거짓말 때도

물어봤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본인이 알고 계신 것

같아서... 백화점 쇼핑하듯이 이름 있는 작가들을

해서 패키지를 바꾸는...?

엠디. 엠디.

그게 약간 그래야 되나? 제가 그때 물어봤던 거

신진작가나 그렇게 들어갈 수 없는지. 왜

들어가 있는 거예요. 김태동, 김진희 이런

작가들은 이미 신진이거든. 근데 내가 모르겠는

건 이 친구들이 언제까지 작업을 할 지 모른다는

거지. 언제 멈출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거

밖에 할 수 없어.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자칫 바깥에

잘못 불려다니면 바람만 들수가 있어요. 그래서 신진이나 그런 작가들은 다른 라인으로 소개를

나왔다는 거, 물론 퀄리티는 들쑥날쑥이라고

생각은 하기는 하는데... 그게 사실은 문타다스 전시보다 돈이 더 든

전시에요. 작가론 나가야되지, 작가 fee나가야

되지, 16명이잖아. 50만원씩만 줘도.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 전시지.

어쨌든 그 전시의 가장 메리트는 패키지인데

각각의 요소를 하찮게는 안 다뤘다는 게 제가

봤을 때 가장 큰 장점인데, 의심이 드는 것들은

약간 있었던 게 토탈은 왜 개인전을 안 할까. 하고

문타다스 말고 퍼잡스키 전시 봤을 때 내가 느끼는

큐레이터. 그리고

나름 고민해서 하는 거거든. 그런 부분인 것

같아. 거짓말의 거짓말은 그거였어. 그냥. 코리안

컨템포러리 포토그래피 보단 낫잖아. 제목이.

그렇죠. 저는 제목과 전시가 매치가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그렇지만

거짓말의 거짓말 온 포토그래피잖아.

그러니까 사진에 대한 건 다. 그렇지만 난

재패니즈라든지, 차이니즈 아방가르드 이런 것처럼

그게 앞에 붙는 게 싫었다는 거지. 어차피 패키지로

나가는 거라면 그리고 불륨을, 영어로 나가는

도록은 다 개별로 쪼갰어요. 그래서 거짓말의

건 약간 그런 게 있어요. 큐레이터의 야망이 보여.

작가가 보이는 것보다 전시장에 딱 들어갔을 때

큐레이터가... 그게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었던 거죠.

야망은 이런 거 자꾸 바깥에다 얘기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없는 거 같아.

그런 얘기를 누가 하지 말래요? 되게 착한 얘기 같은데

미술계 선배들은 사람들은 모르는 거기

그렇게 단정짓지

기저에 깔린 모호한 theme은 있었어요. 3년전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고. 그러면서 건축이나 그런 얘기들. 뉴타운

고스트 다 그렇게 했던 건데. 전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거든. 전시를 봤을 때 그 전시를 보기

전과 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걸 하고

싶은 거지. 퍼잡스키도 문타다스도, 문타다스는

내가 다시는 하나 봐라 했을 정도로 개인적인 갈등지가 많았었어요.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들면서 고집만 세지시고.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문타다스의 전시는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우리의 도상을 외국의

인문학자 같은 미술가가 읽어야 하는 것도 나는 잘

모르겠고.

나도 시작은 그거였어. 한국말, 중국말,

일본말, 어느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가능한가

나는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약간...

오리엔탈...문타다스는 문타다스 얘기니까. 그거는

별도로. 그런 전시를 하고 싶은 거죠. 나로서는

전시를 보기 전과 후가 달라지는 전시. 개인전도

마찬가지고. 그게 만약 야망이라고 하면

야망인건데. 사실은 이제 좀 있으면 큐레이터 한

지 이십년 되가거든. 근데 약간 고민이야. 언제까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게 되는 것 같아.

젊은 작가들한테 내가 자꾸 선생님이 되 가면서

거지 같은 말을 해도...

그래서 다른 작가들한텐 별로 물어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큐레이터한테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니까.

작가들이 치고 올라온다기 보다, 젊다는

생각해. 그만큼 확고하기가

때 어떻게 보면 외국에 나가고 다음 레벨로

올라가는 거에 가장 갈등이 많은 게 권오상인거지.

사실 나는 플랫시리즈가 나온 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플랫시리즈는 전 거에 비해서 이게

어떻게 나갈까 되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그

플랫시리즈가 너무 좋았고. 그래서 같이 움직여

보자. 그리고 이 사람이 뭘 고민하고 그런게 점점

궁금해진거지. 권오상의 사진 조각은 그 전에

나한테

... 관심이 없어지는 거지. 근데 이게 되게 좋은

방향으로, 굳이 레벨 업이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궁금한 건... 뭐 역시 넌 잘해. 인터뷰에 못 쓰는...

인터뷰를 길게 했는데 마지막으로 로드쇼 총평을

하고 내년 계획을 듣고 싶네요.

요번 로드쇼의 총평은 아마 일기를 쓰게 할 것

같거든요. 사실 그 전엔 내가 일기를 쓰진 않았어.

애들한테 다 쓰게 하고. 근데 이번에는 40대

작가들이 들어온 것처럼 나와 잠시 오버랩 했던 현 큐레이터가 다시 들어오고 시작부터 여기에

코디네이션하고 의사소통에

의미에서 임대식. 괜히

뿌듯한거는 큐레이터 한 명 살려냈다. 살려낸게

잘한건지 못한건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워딩을

빌리자면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주늑 들었는데

그걸 좀 풀수 있는 계기가. 나도 임대식을 봤을 때

그동안의 공백. 싸우고 5년 안 봤다고 그랬잖아요.

그런 시간들을 공유해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경험과 내가 갖고 있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좋은 방향의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리고 가장 큰 수확은 로드쇼는 역시 도시는 아니다. 로드쇼는 현대 미술이 없는 곳을 가야한다.

토탈이 40주년이라 안에 정리하는 데

좀 더 집중을 할 것 같고. 내년 로드쇼는 한국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까지 DMZ가로지르기.

아프리카. 말레이시아. 이 세 개는 늘 있는 거니까.

그리고 내년에는 프랑스랑 하는 전시가 하나 있고.

그게 내가 하는 전시는 다에요. 프로젝트는. 올해에

비하면 안 바쁜거지. 작년엔 프로젝트 17개 했는데

그래서 끝나고 애들이 다 그만뒀잖아. 올해도 한

10개, 15개 한 것 같아요. 좀 바쁘지 않아야 돌아볼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난 오히려 나와 있으면 그런 걸 훨씬

긴밀하게 컨택을 하고 싶다. 이런 거에서 출발을

한거니까. 어디 딴 데 못가게 해놓고 미저리스러운

개인적인 욕구인거지. 그치. 난 계속 얘기하고 싶은데 전화오고 약속

있다고 하고 세시간 보고 싶은데 한 시간 밖에 시간

안된다고 그러고... 그렇구나. 미저리스러운.

전 준비하느라 힘들었어요. 제 수첩에는

나름대로의 작가론이 담겨있어요. 이건 나중에...

로드쇼LA:

패서디나에서 샌터모니카까지

Roadshow LA:

Pasadena to Santa Monica 2015 11 24 -12 02

큐레이터

신보슬

참여자

권오상, 김도균, 노순택, 문형민, 임대식, 황희승

촬영

김형주

디자인

손혜인

기획

토탈미술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Baik Art Gallery, Art Always

Special Thanks to Susan Baik, HooJung Lee, Jina Han, Ahmad Morshed, Laurel Paley, Sharon Ryan

발행인 | 노준의 (토탈미술관)

발행처 | 토탈프레스

주소 |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6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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