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일의 기독교 주간지
크리스천신문 The Christia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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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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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 작은 정성을 드립니다 "아메니다에 선물 전달" 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단장 정문현 장로, 지휘자 정성자 권사)은 매년 정기 연주회 이 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메니다(로사 박 총괄매니저)를 방문해 외롭고 사람이 그리 운 시니어 분들을 위해 어린이 단원부터 남, 여 합창단원 모두가 방문해 공연과 함께 성 탄의 기쁨과 선물을 나누는 행사를 매년 진 행했었다.
집사(회계)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합 창단은 코로나 상황에서 거주하는 모든 어르 신들의 건강을 위해 비타민 영양제를 준비하 고 전달했다. 아메니다는 지난달 26일 스텝 중 한명이 코 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며 프레이져헬스 직원 이 1달간 상주하며 감독을 받았다. 방역과 위 생, 안전 부분에 대한 전반적인 감독을 받았 으나 단 한 건의 지적을 받지 않았다. 또한 스 텝과 어르신들에게서 단 한 명의 추가 확진자 가 나오지 않았다.
올해는 코비드19로 인해서 정기 연주회가 열리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최고의 찬양을 드리고자 virtual Choir 영상 2곡을 준비해 은혜를 나누었다. 또한 올해는 아메니다 시 니어홈에 방문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르신들 의 건강과 마음을 전달하고자 밴쿠버시온선 교합창단에서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 지난 25일(수) 전달식을 가졌다.
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은 내년 1월 2째주부 터 온라인으로 다시 연습과 활동을 시작하 게 되며, 12월 중 내년에 함께 할 신입 단원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이다. 모집공고는 추후에 안내될 예정이다.
이날 전달식에는 로사 박 매니저(아메니다 총괄매니저)와 정성자 권사(지휘자), 김수 동 장로(총무), 진영란 권사(총무), 문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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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LA 팬데믹 세미나 ‘Happy Spoon’ 12세 이상 BC주 거주자 마스크 의무 착용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가정에는 적어도 한 가지 아픔은 있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세 대가 악해지고 있어서 많은 가정들은 여러 가지의 갈등으로 깨지고 있으면 그 결과로 우리의 자녀들을 잃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현재 전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 으로 인해 우울증, 공황장애 등과 같은 정신 장애를 일으키고 있으며 가정 폭력과 이혼 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여러가지 원인을 찾고 있는데 결국은 각자 의 마음 속에 커다란 상처가 생기고 삶에 서 생긴 여러가지 결핍으로 인한 것임에 틀 림없는 것 같다. 이는 상대를 나보다 사랑 해 주는 성숙함보다는 나만 더 사랑 받고 자 하는 미성숙함의 관계로 살아가기 때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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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1월 20일 <GCLA 글로벌 코칭 리더십 협회>는 시애틀을 중심으로 활동하 고 있는 Sarah Lee 전문상담가를 초청하 여 GCLA의 다섯 번째 팬데믹 세미나인 ‘ 행복한 스푼’ <가족 치유 세미나>를 개최했 다. 세미나에 초빙된 강사인 이혜영(Sarah Lee) 상담치유 전문가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우리 내면의 치유와 그를 통해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의 풍성함이 풀어지 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 갈등을 겪는 많은 가정이 있지만 이 갈등을 넘어서면 이전보다 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 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나의 내면에서 이야기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 어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가 자 신이 하던 일을 모두 멈추어 버린 이 순간 에도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치유 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라 고 힘주어 이야기 하였다. 이번 팬데믹 제 5차 세미나 “행복한스푼” 에서는 메인 강사인 Sarah Lee 전문상담 사 뿐만 아니라, 현재 <캐나다 크리스천 칼 리지>의 코칭상담학과 교수로 있는 피터정 GCLA 국제대표가 진행을 맡았으며, 패널 로서는 <연변과기대> 상담학 교수를 역임 한 웬디전 선교사가 토론을 이끌었다.
장소에서 마스크 사용이 권장되지만 의무사항 은 아니며, 정신적 및 신체적 장애로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마스크 착용이 면제 될 수 있다. 또한 실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개인의 신원이 확인된 상태로 스포츠 시설에서 체력단련 활동에 참여하거 나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는 동안에는 한시적으로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24일(수) 마이크 판워스BC주 공공 안전 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마스크 착용 의무 를 이행하지 않을 시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 다. 현재 BC주는 제2차 팬데믹이 닥친 상황” 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도 공중 보건 명령을 잘 지켜야 한다. 지난 주 BC주는 모든 공공장 소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한 상태”라 고 전했다. BC주 정부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이제 경찰 및 집행관 비롯한 공무원들은 공공장소 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공무원의 요청(퇴 거 요청 포함)에 불응하거나, 적대할 시 $230 달러의 벌금을 받게 된다. 법무부가 규정한 마 스크는 의료용과 비의료용 제품으로, 안면 가 리개(Face shields)는 아래가 뚫려있는 관계 로 권고되지 않는다. 단, 2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 아이들은 공공
마스크 비착용자를 신고하고 싶으신 분은 해 당 지역 조례 기관(Bylaw Office)에 연락하 면 되며, 해당 기관에 연락이 불가능할 경우 비응급 라인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으며, 또 마스크를 써 달라 요청을 거부하거나 상대가 위협적으로 반응할 때도 경찰에 신고할 수 있 다. 마스크 의무 착용이 적용된 곳은 다음과 같다. ▲ 쇼핑몰, 쇼핑센터, 커피샵, 마트 및 기타 소 매점 ▲ 주류 판매점 및 약국 ▲ 공항, 시청, 도 서관, 커뮤니티 센터, 레크리에이션 센터 ▲ 식당 및 술집 ▲ 교회, 성당 등 예배장소 ▲ 대중교통, 택시, 차량 공유 서비스(예> 우 버, 리프트)▲ 법원, 병원, 호텔, 사무실 내 공 용 공간 ▲ 스포츠 센터(헬스장 포함) 내 공 용 공간 ▲ 대학교 또는 비영리 단체 내 공용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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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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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기독교 항공사
‘JUDAH 1(유다1)’ 출범
민간항공사로 출발한 <유다1> 항공사는 최근 미 연방항공 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FAA 인증’을 획득하고 내년부터 델타항공사와 동일한 연맹에 속한 항 공사 표준으로 출범할 예정이라고 크리스천포스트(CP)가 지난 17일 보도했다.
들과 협력 중이다.
그는 CP와의 인터뷰에서 “유다1 함대는 현재 5대의 비행 기로 구성돼 있다”면서 “함대는 의사 또는 소규모 팀을 선 교지로 데려갈 수 있는데, 이 가운데는 제3세계 국가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짧은 활주로에도 착륙이 가능한 웨스트 <유다1>항공사는 현재 민간 항공기로서 이미 루이지애나 윈드(Westwind)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시리브포트에 위치한 시리브포트 리저널 공항에서 소규 모 선교사 단체를 재난 지역과 선교지로 이송한 바 있다. 웨스트윈드는 부상 당한 전사와 어린이도 쉽게 탑승할 수 에버렛 아론(Everett Aaron) <유다1>대표는 크리스천포 있는 낮은 갑판이 있으며, 승객 8명과 1,200 파운드의 화물 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비영리 사역 단체가 선교사들을 돕 을 실을 수 있다. ‘세스나414(Cessna 414)’ 역시 부상당한 기 위해 최초 기독교 항공사를 출범하게 됐으며 소규모 선 전사들을 이송하는데 사용되며, 재난 구호 스카우트는 6명 교사팀을 위한 소형 항공기를 배치중이지만, 2021년 말까 의 승객까지 이송할 수 있다. 지 수백명을 운반할 수 있는 더 큰 비행기를 확보할 계획 함대에서 가장 큰 항공기인 MD83은 최대 120명과 17,000 이다.” 파운드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다. 또한, “내년 말까지 3~4대의 대형 비행기를 보유하길 원한 아론 대표는 가까운 시일 내로 더 큰 용량의 비행기를 구매 다. 어제 '보잉 767-200ER' 항공기가 추가됐다. 238명을 하여 함대를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시리브포트 외의 수용하고 30톤의 화물을 탑재할 수 있다. 원스톱으로 전 다른 허브에서 함대 운영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 동해안에서 비행을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른 주에 유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1의 허브를 구축하는 방법도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다1>항공사는 선교사들이 항공료는 지불해야 하지만, 수하물이나 화물 요금을 받지 않는다. 아론 대표는 “대부 지난 2015년 게시된 유튜브 동영상에서 아론은 유다1의 이 분의 항공사들과 달리 우리는 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고, 야기를 처음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영상에서 아론은 1994 특정 경로로 다닐 필요가 없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때에 년 주님이 수많은 비행기가 줄지어 있는 환상을 보여주셨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항공사가 지닌 인도주의 던 것을 언급했다. 적 성격 때문에, 일반 항공사가 갈 수 없는 폐쇄된 국가에 “비행기는 음식, 의료 용품, 성경으로 가득했다. 엔진에 시 도 들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동이 걸렸고, 갈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행기 <유다1>은 작년 허리케인 도리안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행기에는 타지 않았 기독교 방송 네트워크(CBN)와 연계된 인도주의 단체 ‘오 다. 왜 사람들이 비행기에 타지 않는지 하나님께 여쭤봤을 퍼레이팅 블레싱’(Operating Blessing)을 바하마로 이 때, ‘네가 비행기를 얻기 전까지 그들은 선교지에 갈 수 없 다. 이것이 내가 너를 부른 일이다’라고 하셨다.” 송한 바 있다. 아론 대표는 유다1을 통해 최근 허리케인으로 심한 타격을 입은 국가인 과테말라, 니카라과 및 온두라스 지역에 구호 물품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향후 몇 주 내로 오퍼 레이팅 블레싱과 협력할 예정이다. 또 오퍼레이팅 블레싱 을 비롯해 사마리아인의 지갑(Smaritan's Purse) 및 이 글 마운틴 교회(Eagle Mountain Church)등 여러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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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 미국에는 특이한 정부기관이 하나 있다. 국가기밀문서해제센터(National Declassification Center, NDC)라는 기관이다. NDC는 적어도 25년 이상된 국가의 비밀 문서 가운데 국가 주요기관의 자문을 받아 순차적으로 일반인에 게 공개한다. 국가기밀로 분류되었던 일들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감추었던 많은 일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중에는 우리 들의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들도 꽤 많다. 예를 들어, 1950-60 년대의 냉전시대 때 미 정부가 계획했던 핵무기 사용계획이다. 구 체적인 도시까지는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적어도 수백 만이 모이는 대도시를 파괴하는 끔찍한 계획이 담겨 있었다. 또 한 국가의 원수를 제거하여,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계획들도 담겨 있다. 이런 식겁한 내용들은 다행히도 여러 대안 가능성 중 하나 로 검토되는 것으로 그쳤지만, 만약 이 비밀문서들이 계획대로 실행되었다면 전 세계에 여러 큰 혼란을 초래했고, 역사가 꽤 많 이 바뀌었을 것이다. 계시록 10장에는 그 존재는 알려졌지만, 그 내용은 기밀로 분류 된 하나님의 비밀계획이 살짝 드러난다. 바로 하나님의 일곱 우 레다(11:2). 우레 하면 천둥 번개를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곱 우레는 강력한 하나님의 음성을 담고 있다(3절).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려 하자 하나님은 일곱 우레를 인봉하고 기 록하지 말라고 하신다(4절). 세상을 향한 진노의 심판이 계획되 어있지만 실행하지 않고 감추신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은밀한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을 순간순간 붙들 어 주셨음을 발견할 때 우리는 깊은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다. 내가 알기도 전에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깨닫기도 전에 먼저 나 를 붙드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수많은 손길이 있다. 나는 이것 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였나? 조용히 돌아보며 은밀하게 감추어 진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발견하라. 그리고 더욱 깊이 감사하라!
•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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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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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핵심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기다리는 훈련을 시키 고 있습니다. 소멸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벌 주님과 동행하며 또 주님과 동역하기 위하여 써 9개월째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성품이 기다림입니다. 주님께서 기다려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면 인내 다른 사람에 대하여도 기다려 줄 알아야 합니 를 기를 수 있기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였 다. 당연히 주님의 역사에 대하여도 기다릴 줄 으나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힘듭니다. 부끄럽 알아야 합니다. 게도 저는 매우 조급한 사람입니다. 어떤 생각 과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참 기다림의 핵심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 그저 참으려 노력한다면 결코 오래 기다릴 수 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기에 기다려지는 것 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기다릴 수 있는 부교역자들을 대할 때도 교인들을 대할 때도 것입니다. 그들이 더디 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항상 저의 조급함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독방에서의 설교] 도 기다려야 함을 알면서도 너무나 힘들게 여 라는 책에서 나치 정권과 공산 정권 아래서 말 겨집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지금의 제가 있 할 수 없는 핍박을 받는 중에 겪었던 낙심과 두 었던 것은 전적으로 제 주위의 사람들이 저 려움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도 실수투성이지만, 어릴 때, 결혼해서, 초년 범브란트 목사님은 이 책에서 하나님께 강력 목회 시절, 저는 정말 답답 했습니다. 히 항의하였습니다. 그 오랜 시간 아내와 딸 들, 부교역자들과 장로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 님들, 교인들이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다〉고 하셨으면서 왜 저는 이렇게 독방에 가 그러나 저를 가장 기다려 주신 분은 주님이실 두어 놓고 있습니까? 아담에게는 아내를 주시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다려주시지 않으셨다면 면서 왜 제게서는 아내를 데려가셨습니까? 〈 저는 벌써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 나 똑같이 햇빛을 주신다〉 하셨으면서도 우 그런데 주님은 저를 기다려 주실 뿐 아니라 기 리를 고문하는 자들은 지금 바닷가에서 햇빛 다리는 훈련도 시켜주셨습니다. 제가 목회하 을 즐기고 있지만 저는 지하 10m에 있는 이 감 는 중에 참을 수 없다고 느꼈던 많은 일들이 방에 갇혀 몇 달 동안 해를 못보고 있습니다. 다 기다리는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옳지 못하다고 인정하셨던 하나님께 배우는, 목회의 비밀은 기다리는 목 일을 바로 제게 행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하 회 입니다. “목회는 기다림이다.” 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보다 하나님이 자신
의 말씀을 이루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나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만나는 날,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변명하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항의하던 범브란트 목사님에게 몇가 지 성경 이야기가 생각 나더랍니다. 첫 번째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도 무엇인가 바쁜 일이 있었지만 강도 만난 자를 보고는 그를 도와주러 지체하 였음이 생각났습니다. 야이로의 딸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야이로 가 죽어가는 자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빨리 오 시라고 간청했지만, 도증에 열두해 혈루병 앓 던 여인을 만나 그를 고쳐주려고 지체하신 바 람에 야이로의 딸에게 늦게 도착하셨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성경말씀들을 묵상 한 후 에 그가 다시 고백합니다.
원하시면서도,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저를 얼른 제 가족에게로 되돌려 주시려고 빨리 오실 수 없 으심을 저는 이제 이해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리의 양이 구덩이에 빠져 그 양을 도와주셔야 했었는지 누가 압니까? 주님 은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저를 하나님의 온갖 율법에서 해방시 켜 주시듯, 저도 주님이 저에게 약속하셨던 모 든 임무에서 주님을 해방시켜 드립니다. 저는 이제야 주님이 저를 혼자 내버려 두셨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군요. 저는 주님과 같이 있 습니다. 주님은 태양도 없이 저를 버려두셨던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의(義)의 태양이 저의 어 두운 감방에 떠 오름을 봅니다. 감사와 찬송을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기다리는 것이 힘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사랑은 빨리 빨리가 아니군요. 사랑하는 자 구원도 영적 회복도 오직 주님만 믿고 바라볼 는 언제나 늦어지게 마련이군요. 이제야 제가 때 임하는 것처럼 지금의 어려움도 기다리는 왜 이 감옥에서 더디오는 저의 신랑을 오 랫 훈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동안 기다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 니다. 저는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려고 계시던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주님은 제가 지금 곳을 분명히 떠나신 것을 알고 있지만, 주님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 다 보고 계십니 오시는 길에 강도만나 다쳐서 누워있는 사람 다. 저는 주님 안에만 거하 을 만나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셔야 했는지 누 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가 알겠습니까?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고 어린아이처럼 믿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시다가 길에서 고 의지하고 기다려 보기 이슬 방울에 꽃잎이 짓눌린 꽃을 발견하고 그 바랍니다. 것을 바로 해주시려고 걸음 을 멈추셨는지 누 가 압니까? 주님은 저를 위하여 태양이 떠오르게 하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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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christiantimes.ca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만나고 싶지 않은 사 람이 바로 판사, 검사, 변호사가 아닐까. 법조인 들은 아무래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강제권이 부여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 해서인지 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부류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데 좋은 일만 있을 수가 없으니 법의 힘을 빌려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들이 우리의 편에서만 서준다면 좋겠다는 얄 팍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여간 그리 썩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법조인들은 최대한 안 만나고 살 수 있다면 또한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면 나름 바른 삶을 살아 온 증거라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런데 두란노 출판사에서 어떻게 판사의 책을 펴낼 생각을 하 게 된 것이었을까. 기독교 출판사인 두란노에서 현직 판사를 저자로 해서 책을 출판하게 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발상임에 틀림없다. 즉 많이 팔 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 운 출판기획인 것이다. 이 책을 읽어 보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오래 전 우연히 본 동영상에서 재판정에 서 있는 청소년 들을 향하여 가슴 속 호통을 쏟아내는 영상 속 의 주인공이 이 책의 저자인 천종호 판사였기 때문이다. 판사로서 판결만 하면 될 텐데 청소 년들이 정말 바르게 되고 돌이키기를 원하는 마 음으로 호통을 치는 한 판사의 가슴속에 무엇 이 들어있는지가 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호 통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심과 호소가 담 겨 있어서 당시 많이 회자되었던 동영상의 주인 공은 과연 책을 통해서는 어떤 호통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을 까가 은근히 기대되었다. 그런 기대가 있었지만 괜히 뻔한 이야기를 호통 만 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과 혹시 너무 전 문적인 용어의 사용으로 따분하게 되거나 판사 가 법조문을 읽은 것과 같은 형식으로 지루하게 책이 쓰여 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따분하거나 지루하지 않도록 다 양한 이야기를 통해 관심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다. 특히 어려울 수 있는 용어들은 우리의 일상 의 용어로 다시금 설명하여 흐름을 놓치게 않게 해준다. 누군가 ‘익숙하지 않는 책을 읽으라’고 하였다. 이 책은 목회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그 리 익숙한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익숙 하지 않은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그로 인한
새로운 관점을 얻는 인사이트 가 순간 순간 터진다.
우리는 늘 근 원에 대한 목 마름이 있다.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 그 근원을 찾 천종호 / 두란노, 2020 이 책은 저자 아가는 목마 의 궁금증에 름은 실정법 서 시작한다. 을 다루는 판 법이 존재하는 목적은 정의의 실 사에게도 깊은 갈증으로 남아있 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가 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판사가 될 때까지 실무에 필요한 통해 저자는 선을 잃어버리게 된 법 해석학 공부에 전념하느라 정 시점은 최고선이신 신의 존재를 의의 실현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볼 망각한 결과라고 결론짓는다. 그 여유도 없었다고 한다. 특히 가장 러면서 이 책을 통해 그 잃어버린 기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 ‘정의가 무엇인가, 선이 무엇인 며 우리에게 손짓하며 따라오라 가’에 대해서 사고할 여유도 없었 고 한다. 그리고 함께 하는 여행 고 또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한 을 통해 결국 종착지에서는 잃어 상태에서 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판사라 버린 하나님(신)을 찾게 될 것이라고 한다. 고 하는 경력은 쌓여가지만 법의 목적이라고 이 야기하는 정의와 선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 수 세기 동안 법률가들의 손가락을 가장 고통 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스럽게 찔러 왔던 밤송이가 있다고 한다. 그것 이 바로 ‘도덕의 제정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특히 왜 법학에서는 가장 핵심이 되는 정의와 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판사가 나오게 되더라도 선에 관한 문제는 가르치지 않는 가에 대한 질 제정법, 관습법, 조리를 재판의 기준으로 삼아 문이 늘 있었는데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사 적용할 때 그것만으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실 정의와 선의 문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법이 는 빈 공간이 발생하는데 그것을 ‘법의 공백’이 라는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법 라고 한다. 이런 ‘법의 공백’의 상황이 되면 법관 학계에서는 정의와 선에 대해서는 유구무언하 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 있느냐를 확실히 밝혀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때 ‘법을 넘는 법’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와 독서를 통해 한국의 법학과 법체계 가 어느 나라의 영향을 받았느냐가 결정적인 요 ‘법을 넘는 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인으로 작용했음을 알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근로자인 A씨가 B회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 소 송을 냈다. 그런데 B 회사에서 근로 계약을 체 한국의 법학은 유럽, 특히 독일과 프랑스로 부 결된 적이 없다는 이유로 A씨는 패소판결을 받 터 시작되는 근대법 체계를 수입하였다. 그러다 는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딱한 처지에 놓인 보니 자유주의적 입장에 기울어지게 되었고 신 A씨를 구제해 보려고 온갖 법리를 구상해 보았 의 존재에 대한 내용은 철학, 윤리학, 정치학, 다. 그러나 현행 실정법의 테두리에서는 A씨를 법학 등에서 설 자리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신 구제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판사는 A씨 의 존재를 배제하는 세속주의에서는 하나님으 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게 된다. 물론 실정법상 로부터 시작되는 선과 정의에 대한 언급은 더 으로 적법한 것이며, 공정한 판결이라고 할 수 이상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인간을 이 있겠지만 A씨가 실수로 또는 법을 잘 몰라 임금 해하기 위해 진화론과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 청구 기간을 넘겨 더 이상 임금을 받지 못하게 에 집중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신학, 철학, 윤리 된다는 것은 안타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학은 실질적인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무시 하고 논의의 석상에서 배제되기에 이른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 법을 넘는 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 이다. 로 B회사의 양보라는 것이다. 임금 청구 기간이
지났지만 일한 것은 맞기에 자발적으로 A씨에 게 임금을 B회사가 지급하게 된다면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환영하는 결과가 되며 담당 판사 의 고뇌도 사라지게 된다. 이는 모든 법관의 염 원이라는 것이다. 정의를 세워 가는 데에 실정법 뿐만 아니라 양보, 희생, 박애와 같은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는 법을 넘는 법이 있다는 것이다. 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저자는 지속적 으로 하나님 없는 선과 정의와 법이 가능한지에 대해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현실 속 의 판사로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최고 의 선이신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상정하지 않으 면 선과 정의의 시작이 불가능함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나만 안전하면 되고, 나만 법 잘 지키면 되고, 나만 범죄에 연류 되지 않으면 되 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하는 자기 중심적인 삶 을 살아가는 보통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한 자기 중심성의 한 복판에서 둘 이상이 모인 공동체에서의 가치의 충돌로 빚어지는 다 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판사로서의 저자는 다시금 공동체에서 그 해법 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책표지 에도 선명하게 드러낸 것처럼 “하나님의 선은 어떻게 인간 공동체에 구현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답을 찾아간다. 그리고 솔직하 게 말하자면 본인은 저자의 논리에 설득당했다. 사실 본인은 저자의 시원한 호통 소리를 이 책 을 통해 듣고 싶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을 통 해서 호통이 아니라 진정한 호소를 한다. 끝까 지 호통은 없었으나 지속적인 호감 어린 어투로 우리의 가슴에 호소한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 의 그 깊은 울림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 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아모스 5:24)하 는 엄청난 물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 득함’을 보기 원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양심", 마 음에 새겨진 법 저희 옆집 개 주인은 집안에서 생활하 는 강아지 두 마리를 매일 저녁시간에 밖으로 내 보냅니다. 개들은 어김없이 저희 거실 바로 앞 잔디 밭에 와서 뒷 일을 보고 돌아갑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 속에서 일어납니다. 개들의 이런 모 습에 이웃집을 향한 제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더 신기한 상황은 제가 요청하지 않았지만 옆집 사람은 비닐 장갑을 끼고 와서 변을 제거하는 것입 니다. 제가 불편해 했던 이유와 옆집 사람이 오물을 치운 원인은 한 가지입 니다. 우리 사이에 “옳고 그른 행동”에 관한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 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제 마음은 불편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웃집 사람이 오물을 치운 이유도 자기 개가 남의 거 실 앞에 변을 하는 것이 바른 행동 법 칙에 벗어난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입 니다. 더 흥미로운 현상은 옆집 사람 이 그것을 치우지 않을 때 불편하게 생 각하는 제 자신이 한 그리스도인으로 서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람 들이 다툴 때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 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옳고 그름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 발견 됩니다. 이런 식의 말들은 좋은 예가 됩니다. “내가 너에게 선물을 했으니 까 너도 나에게 뭘 좀 해줘 봐!” “내가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면 좋겠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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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의 유무에 상관 없이 일정한 방향으 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식과 함께 책임 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안에는 우리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행 동하게 만드는 영향력 있는 지배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 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 를 나타내느니라.” 양심은 마음에 새 겨진 법이며 또한 법의 집행자입니다. 성경은 인간 마음에 법을 새긴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 이 내안에 존재하는 지배자를 고대 헬 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
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죠!” 이 렇게 말하는 이유는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 되는 행동 기준 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동의하는 이 원칙에 대하여 C. S. 루이스는 그의 중요한 작품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것은 사실 양 당사자가 서로 공정한 대우, 바른 행 동, 도덕, 혹은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실질적으로 마음에 동의하는 규칙이 나 법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법칙 과 규칙을 갖고 있다. 만약 이런 것 이 없다면 짐승처럼 으르렁 거리며 싸 울 수 있겠지만, 인간적인 감각 때문 에 다투지 않는다. 다툼이란 상대방의 그릇됨을 밝히려는 행동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옳고 그름’에 관해 서로 합 의가 없다면, 다툼은 무의미하다. 마 치 미식 축구 경기에서 규칙에 대해 서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선수 에게 파울을 선언하는 일이 무의미한 것과 같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 하는 옳고 그름에 관한 법칙 혹은 규 칙을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 레스는 “자연의 법 Law of Nature,” 혹은 “인간 본성의 법칙 Law of Human Nature”이라 불렀습니다. 인간 은 지리적, 문화적, 시대적, 그리고 배
다윗의 경험입니다. 인구조사를 마친 후에, 그의 마음 속에 자신이 그릇 행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곧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고백합니다. “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 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 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지금까 지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라 문화에서는 “수네이데시스”라는 낱말로 표현했습니다. “수네이데시스” 는 자신의 행실이 그릇되었을 때 그 잘 못된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마음의 기 능이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수네이데시스”는 우리가 도덕적이고 지혜롭게 결정하도록 마음 속에 고통 을 일으켰습니다. 이단어는 우리 말 “ 양심”으로 번역됩니다. 고대 유대인들 에게 양심은 활활 타오르는 불보다 더 뜨겁게 우리의 잘못을 꾸짖는 이성적 인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깊게 숙고하여 바른 길을 행하도록 충동했 습니다. 성경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 이 설명합니다. “이 사람은 율법이 없 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 와의 말씀이니라.” 어떤 사람들이 말 하는 것처럼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이 기도 하지만, 또한 양심은 우리가 하나 님의 법을 따르도록 판결하는 재판관 과 같습니다.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내 가 일정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원하 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은 내가하나 님의 질서대로 움직이도록 압박을 가 합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법칙입니 다. 약간의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사 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 속에 있 는 이 자연의 법칙을 이렇게 설명합니 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
감사 기도로 시작된 간증은 간구 기도로 막을 내렸다. 기도와 기도 사이는 부모로서 받은 사 명과 소명으로서의 삶으로 오롯이 채워졌다. ‘2020 다니엘기도회’ 강사로 나선 배우 신애라 집사가 60분간 전한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 는 기성세대와 다음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 에 충분했다.
하나님은 다윗의 반석이셨고, 요새였 으며, 건지시는 구원자였습니다. 그런 데 지금은 하나님보다 군인을 의지하 기 위해, 그 힘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 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 는 양심의 지시에 다윗은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여러 실 수를 통해 다윗은 마음에 있는 하나님 의 법을 따르는 인생길은 실족함이 없 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보내심을받은 생명의소리교회 담임 훼이스대학교 신학대학장
면 걱정할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 의 기도법을 소개했다. “100% 응답받는 기도의 비법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에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익히 아는 구절이지만, 우 리는 ‘모든 것을 달라’고만 기도하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꾸 구하지 않아도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겁니다.”
신 집사는 18일 오후 기도회 현장인 서울 오륜교 회(김은호 목사) 강단에 올라 “귀한 자리에 하나 님의 도구로 서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기도로 말문을 열었다. 이날 ‘부모의 사명’을 주 제로 강의한 그는 “평생 연기자 교육사업가 예능 인 등 수많은 자리에 섰지만 제일 어렵다고 느낀 자리는 부모”라고 고백했다. 신 집사는 이날 ‘부모의 사명’을 4가지로 정리했 다. 첫 번째 사명은 ‘성경을 통해 양육의 기본원 리를 깨닫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귀한 자녀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키우는 게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 라고 꼬집었다. 이어 “성경적 양육의 두 가지 기 본원리는 ‘내 자녀가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 과 ‘하나님께서 아이의 부모로 나를 택하셨음을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 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 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 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 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 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자 신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핑계할 사람 은 누구도 없습니다. 자연의 법인 양 심이 알려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가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양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릇된 길을 택한 결과입니다.
신 집사는 ‘말씀을 가르쳐 지켜 행하게 하는 것’ 을 세 번째 부모의 사명으로 꼽았다. 행함의 키 포인트는 ‘긍휼함’이었다. 그는 “공부는 철이 들 고 나서도 능률이 오르는 시기가 있지만, 내 이 웃을 불쌍히 여기고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은 어 릴 때 아니면 키워줄 수 없다”고 말했다.
성경 읽기에 대한 간증도 덧붙였다. 그는 “중학 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을 제 대로 믿게 된 건 28세 되던 해였다”며 “기도의 응답이었던 첫아이를 배에 품고 10개월 동안 성 경을 통독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두 번째 사명은 ‘제대로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세상적 성공을 바탕으로 남들이 부러워하 는 삶이 아니라 부모를 떠나 어디에 속해 있든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계심을 아는 ‘코람데 오’의 삶을 살 줄 아는 아이가 되도록 기도한다
이어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등 크리스천 부모로서 회개의 마음이 들거나 용기 가 필요할 때 부르던 찬양을 현장 참석자들과 함 께 불렀다. 그는 “네 번째 사명은 참된 신앙을 유 산으로 물려주는 것”이라며 이 시대의 부모들이 부모로서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 는 기도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km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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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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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섬에서 칼럼 본 세상이야기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 나누 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으 로 도덕성에 대한 것입니다. 포스 트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사람 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신들 에게 가르치려 하거나 강요하지 말 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 지는 내가 결정한다고 말하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에 포스트 모 더니즘의 모순과 비일관성이 있습 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것을 포 스트 모더니즘의 아킬레스 건이라 고 말하기도 합니다. 포스트 모더 니즘은 도덕적 상대주의를 말합니 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다 르다는 것입니다. 상대에 따라 다 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일관성 과 동일하게 적용하면 안된다고 생 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 향을 받은 젊은 사람들중에는 ‘다 른 사람이랑 섹스를 하던지 안하던 지는 내가 결정하는거다.’라고 말합 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
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옳 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 문제지 자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입니다.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기준 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포스트 모더니 즘의 영향을 받은 젊 은 사람들은 도덕적 정의를 원합니다. 불 의에 대해서 분노하 는 마음도 있습니다. 가정, 교회, 사회적 부패를 반대하기도 합니다. 사실 여기 에 포스트 모더니즘 의 비일관성 있습니다. 위에서 말 씀드린대로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 향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자신이 결정한다고 말합 니다. 다른 사람이 맞다 틀리다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정, 교회, 사회 의 불의와 부패에 대해서는 분노하 며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옳다 그르다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다른 사
람이나 교회, 사회에 대해서는 그 것은 불의하니까 잘못되었다고 말 하는 비일관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비 일관성을 비난하기 보다 그들이 추
구하는 정의를 긍정하고 비판하고 복음적인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합니 다. 그들이 정의를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정의를 원하시는 분 이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 다. 예를 들어 구약 아모스에 보면 하나님은 그 백성의 죄를 심판하십 니다. 열방에 대해서, 하나님의 백 성들의 불의에 대해서, 가난한 사 람들에 대한 억압과 폭력에 대해 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정의 가 이루어지길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말하는 정의를 인정 하면서 동시에 도덕적 비일관성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것입니다. 도덕 적 상대주의를 말하면서 어떻게 교 회, 정부,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 비 판할 수 있는가? 포스트 모더니즘 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말한다면, 사회나 정부도 그들 마 음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 는 것 아니 냐고 비판 하는 것입 니다. 포스트 모 더니즘의 영향을 받 은 사람들 은 자신이 옳고 진리를 말하는 것 같은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 니다. 누군가 자신이 옳다고 말하 면 불편해 합니다. 그들에게 사람 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아니라 복 음이 제시하는 정의를 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 혀 죽으셨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정 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 님은 죄를 그냥 두지 않으신다. 하 나님의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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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짐을 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 으실 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 여 주옵소서.” 기도하셨다. 십자가 에서 진정한 정의를 발견할 수 있 다. 도덕적 절대적 가치에 대한 기 초가 거기에 있다. 원수를 사랑하 셔서 대신 죽으신 분이 예수님이시 다.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 내가 옳다 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다. 복음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가 정의를 행하되 정의롭고 겸 손하고 폭력적이지 않게 행해야 한 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 는 정의라는 것을 소개함으로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 사회가 생각하는 정의와 성경이 말하는 정의가 어떻게 다른지, 과연 어떤 정의가 진정한 정의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 는 것이 이 시 대 그리스도인 의 책임일 것입 니다.
•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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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COLUMN
브런치 칼럼 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불편하고 불안정적인 상사와 일을 할 경우 직장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 까지도 그 악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솔직히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 려고 애쓰지만, 현실이라는 곳 즉 직장은 물론이고 가정 및 다른 조 직에 속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또 다른 인간 관계들 속에서 이런 저 런 상처를 입게 되고 끝내는 세파에 찌든 모습으로 남는 것이 일상인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또한 세상을 살면서 마주쳐야 할 만해도 지겨운 코비드 19이라는 바 현실이 아니겠는가. 이러스로 인해 특히 재택근무가 일 상적인 현상이 되고 타인과의 접촉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을 금지하는 지금의 상황을 꿋꿋이 행복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리 버티고 나간다는 것은 보통 인내력 더’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과 정신력이 아니고서는 힘들 것이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의 팔로 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자 워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연스레 이마에 계급장을 그리고 내 가?” 이는 “리더인 당신은 과연 다 적으로는 온갖 스트레스로 인하여 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긍정적인 바 구겨진 마음밭 모양을 하고 있음에 이러스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틀림없다. 것이다. 우선 여러분들과 짧은 한
요즘에 필자가 자주 쓰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미지 전쟁’ 이라는 말이다. 이는 어떠한 사람 을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 는 첫 이미지가 종종 그 사람을 규 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인 적으로 코칭과 리더십을 강의하는 위치에서 늘 ‘리더’라는 단어를 사 용할 때마다 가슴에 아련하게 남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 리더’라고 불리는 이들이 타인의 가 슴에 ‘진정한 리더’로서 기억이 되 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하면 늘 나오는 결과는 일반 사람들이 웬 평소에도 과중한 업무와 긴장감 속 만한 아시아의 국가들보다도 훨씬 에서 지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스트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 레스라는 흔한 친구와 늘 함께 산다 실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생각 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함께 일하
생각할 때마다 그분의 따뜻한 미 소가 한 컷의 사진처럼 자꾸 떠오 른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 속 에서도 그 할머니는 집 앞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바이러 스를 따뜻한 미소와 웃음을 통하 여 흘러 보내고 있다. 솔직히 이러 한 바이러스라면 누구든지 언제나 환영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가정에 서 그리고 직장에서 따뜻한 웃음을 흘러 보낼 때 그 가정과 조직에는 이미 ‘해피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 기 때문이다.
‘무례함의 비용’을 쓴 크리스틴 포 래스는 자신의 책에서 3가지의 기 본적인 삶의 자세를 추천하고 있 다. 그것은 바로 ‘미소와 배려 그리 고 경청’이다. 한 번의 웃음이 초컬 릿 바 2,000개를 섭취하는 수준으 로 뇌를 자극한다고 하니, 미소의 효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미소 는 또한 목소리마저 바꾸어 준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한다. 예를 들어, 전화로 통화할 때 도 미소를 지으면서 대화할 경우에 우리 동네에는 장수하시는 분들이 그 목소리가 더욱 따듯하게 전달된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옆 다고 한다. 집의 할머니만 생각해 보더라도 연 세가 상당한 듯 하다. 그 할머니를 또한 직급이 낮은 동료들을 대할 때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 박국 선지자의 기도이자 찬양이다. 또한 그 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이 구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 절은 하박국서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나이다”(합1:2) 어떤 고난의 상황 속에 처할지라도 오직 여 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는 신실한 하박국의 하박국의 노래 구약의 선지자인 하박국을 말할 때면 의례 마음이 새벽 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 다. 하박국의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다. 문장 히 회자(膾炙)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도 수려하거니와 운률 또한 감미롭다. 그리 바로 하박국 3장 17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 고 그런 기도를 드리는 하박국의 마음은 또 얼마나 미쁜지… 그러나 사실 하박국이 처 이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 한 상황은 몹시 고단하다. 하박국은 인생의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라면 누구라도 자신이 버림 받았다는 느낌 없으며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을지라도 나는 이 강하게 들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을 향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해 삿대질을 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을지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 모른다. 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심’에, 그래서 무언가 ‘있음’에 감사한다. 다시 말 로다”(합3:17-19) 해 ‘소유’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박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이 아름다운 노래는 하 국의 노래에는 이런 단어가 나열되고 있다.
“못하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부정적인 다섯 개의 단어가 연이어 등장하 고 있다. 그리고 이 다섯 단어는 사실상 모든 것이 전무(全無)함을 일컫는다. 아무 것도 없다.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먹는 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영위하게 하는 기 본적인 행위요, 또 원초적인 욕망이다. 그런 데 먹을 것이 모두 떨어진 상황, 그것은 어떤 고난에도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요, 또 최고의 고통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절망적 상황이다. 그런데 하박국의 다음 고백에 이 르면 그만 감격하고 만다. “없을지라도” 이 말은 앞에서 나열한 다섯 개의 부정적 (2) 인 단어들을 일시에 뒤엎는다. 그것은 우리 의 상식과 생각, 그리고 신앙관마저 세차게 흔들어버린다. 우리의 영혼에 흡사 다이너 마이트를 터뜨리는 것과 같은 거대한 파열 음을 던져주고 있다. 하박국은 절망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오 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 다”(합 3: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이 기뻐하고 즐거 워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여호 와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 나님이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이다. (계속)
표현되는 그 ‘배려심’은 팀원들의 헌신을 이끌 수 있다고 한다. 그들 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며 동시에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그 어 려움 등을 나누고자 할 때, 팀원들 은 그 리더를 더욱 존중한다는 것 이다. 흔히 ‘꼰데 리더’라고 하는 이 들을 보면 타인을 위한 척 말은 잔 뜩 늘어 놓지만, 실은 그의 말 속에 는 자화자찬이 범람하고 오직 자신 중심의 행보를 하는 이들이다. 그러 한 리더에게는 절대로 팀원들을 위 한 배려심이나 겸손함을 찾아 볼 수 가 없을 것이다. 요즘에 유행하는 ‘공감’ 이라는 것 은 듣기는 좋지만 실행하기에는 너 무나도 어려운 말인 것 같다. 상대 방을 공감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경청’ 이라는 단 어이다. 이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대화의 최고의 경지를 일컫는 것이다. 타인에게 조언하기 를 즐기기 보다는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적극 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따뜻한 리더의 모습이라는 것 이다.
•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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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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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승자로 살아남기 보통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는 그 삶의 여정도 여정이지만, 그 삶의 끝을 보고 평가하기 마련입니다. 젊은 시절 엔 남들보다 앞서고 잘나가는 것 같지 만, 인생의 말년에 아픈 경험들과 상 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습니 다. 본인 스스로에게도 아픔과 고통이 겠지만, 보는 이들에게도 아련함을 느 끼게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또 어떻게 잘 마무리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 아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는 "다니엘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이 오늘 말씀의 제목인 '최후 의 승자로 살아남기'의 근거가 되는 구 절입니다. 그 근거의 이유를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1장 1절에 보면, 유다의 18대왕 '여호 와김이 다스린지 3년'에 당시 근동의 신흥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던 바 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 렘 성이 포위 당하고, 2절과 3절을 보 면, 여호와김 왕과 성전의 성물 그리 고, 다니엘과 세 친구를 포함한 왕족 과 귀족들의 일부를 하나님이 느부갓 네살의 손에 넘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때는 바벨론의 3차례에 걸친 침공 으로 인해 유다 사람들이 모두 3차례 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바 벨론 유수 중 1차로 바벨론에 잡혀 가 는 상황을 말하며 연대로는 B.C 605 년입니다. 여호와김을 왕으로 세웠던 유다의 종 주국 애굽까지 물리친, 최강대국 바벨 론 앞에 유다는 너무도 약한 존재였 고, 특별히 본문의 주인공인 다니엘은 왕족이나 귀족의 신분에서 하루 아침 에 포로의 신분으로 끌려가야 하는 절 박한 상황 가운데 놓여져 있는 것입니 다. 그런데, 유다를 정복하고, 다니엘을 비롯한 많은 포로들을 잡아 갈 정도 로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에,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바벨론 은, B.C 539년에 바사(페르시아)왕 고 레스에 의해 정복당하여 멸망하고 맙 니다.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던 바벨론 이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무너 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1절에는, 바벨론이 멸망 하는 가운데도, 바벨론의 포로에 불과 했던 다니엘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 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고레 스 왕은 강대국 바벨론을 정복했던, 또 다른 강대국 바사의 왕을 일컫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니엘은 근동의 최 강대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바벨론이 멸망당하는 상황 가운데에 서도, 오히려 포로의 신분이었던 다니 엘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뿐만 아니라 6장에 가서 보면, 바사의 한 지역 왕이 었던 메대의 다리오 왕 때에는, 총리에 까지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강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바벨론은 망할 지언정,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망하지 않았 습니다. 바벨론이 이긴 것처럼 보였지 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바로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었음을 성경은 말씀하 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시 대가 변하고, 권력이 변하는 하수선한 상황가운데 다니엘만은 어떻게 최후 의 승자로 살아 남을 수 있었는지 함 께 살펴보며, 우리도 다니엘처럼 최후 의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모습 이 무엇인지 도전받기를 원합니다.
첫번째, 다니엘이 어떻게 최후 승자가 될 수 있었는가? 다니엘은 세상 속에 서, 끝까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체성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니, 사실 다니엘은 왕족이나 귀족 가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 고 그에 합당하게 훈련된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4절에 보면, 다니엘을 포함한 그들의 모습을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 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
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만한 소년"들 이라고 설명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왕족이나 귀족이라 함은 최고의 교육과 최고의 대우를 받 으며 양육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어 쩌면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권력자 들의 보호와 관심 속에 자라난 자들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포로로 잡혀 간 일 만큼이나 엄중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들 을 '바벨론 화' 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 한 것이었습니다. 4절 후반절과 5절의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 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 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유대의 왕족과 귀족으로 유대의 교육,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훈련을 받아왔을 그들에게 바벨론의 주류 민 족이었고, 느부갓네살이 속해 있던 민 족인 갈대아인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 칠 뿐 아니라, 왕이 지정한 왕의 음식 과 포도주를 주어 먹게 하여 3년간 훈 련시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왕이 주는 음식이라는 말은, 이방제사의 음식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이방왕의 하사품이라는 의미도 내포 되어 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대 변되는 하나님의 하사품을 대신할 수 있는 유혹으로 이제 하나님을 떠나 바 벨론 왕을 의지하고, 충성하게 만들도 록 하기 위한 느부갓네살 왕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그 들을 감독하던 환관장은 그들의 이름 까지 고치게 됩니다. 성경은 특별히 다 니엘을 비롯한 세 명의 이름을 언급합 니다. 6절입니다. "그들 가운데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그리고 다니엘 을 포함한 네 명의 유대식 이름의 본 래 뜻은 이렇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은 나의 심판자', 하나냐는 '여호와가 은혜를 베푸신다', 미사엘은 '누가 하 나님인가?', 아사랴는 '여호와는 도우 신다'. 그런데,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7절 과 같이 바꾸게 됩니다. "환관장이 그 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 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 벳느고라 하였더라" 그리고 바뀌어진 그들의 이름의 뜻은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벨드사살 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 사드락은 '아쿠의 명령', 메삭은 '누가 아쿠 신인가?', 아벳느고는 '느고(느 보)의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래 하 나님의 이름이 다 들어가 있던 이름을 바벨론 신들의 이름이 들어간 이름으 로 모두 개명시켜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다니엘 은 이처럼 의도적으로 '바벨론 화' 시 키려는 느부갓네살 왕의 음모에 완전 하고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 바벨론 화' 한다는 말은 '여호와 신앙' 을 그들에게서 없애고, 이방신의 문 화... 우상의 문화를 그들 가운데 덧입 히려는 계획인 것입니다.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최후의 승자로 살기 위해 서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임 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DNA가, 영적인 혈관이, 하나 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우 리를 자신들처럼 바꾸려고 하고, 우리 를 자신들의 문화에 동조시키게 만들 려고 하는 세속의 계략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이 사람으로 남아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어떻게 다니엘은 최후의 승자 가 될 수 있었는가... 다니엘은 뜻을 정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 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 기를 더럽히지 않도록 환관장에게 구 하니" 다니엘이 정한 뜻은 '왕이 하사하는 음 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뜻이었 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신을 더 럽히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살펴 본 것처럼 다니엘이 왕의 음 식을 먹지 않은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왕이 지정한 음식이 우상을 숭배한 음식일 수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왕이 하사한 음식에 길들여 지므로 인해 하나님만을 향한 경외의 마음이 사라질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 습니다. 그런 다니엘의 마음을 하나님 이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뜻을 정한 다니엘은 왕을 대신해 자신들을 감독하고 있던 환관장에게 그 음식을 먹도록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어쩌면 목숨을 건 행동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니엘의 정한 뜻에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9절입니다. "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 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때 문에 환관장은 다니엘의 말에 노여워 하기 보다 오히려 사정하는 것 같은 어 조로 다니엘을 설득하려 합니다. 10절 입니다.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주 왕을 두려워 하노라 그가 너 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 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 다.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울지 모른 다는 항변입니다. 저는 10절을 읽으며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보게 할 것이 무 엇이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다 니엘과 세 친구를 제외한 다른 소년들 이 왕이 하사한 음식을 먹은 이유가 무 엇이겠습니까? 그들도 다니엘처럼 똑 같이 유대교육을 받았고 여호와 신앙 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다니엘과 같은 뜻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있지 않았겠 습니까? 그럼에도 왜 그들은 왕이 지 정한 왕의 음식을 먹을수 밖에 없었 을까요?
그러나 다니엘은 바벨론의 음모와 계 략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의 의미처럼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심판 자'임을 다니엘은 분명히 알고 있었기 에 '세상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사 람'으로 정체성을 지키며 살 수 있었 습니다.
그들은, 같은 또래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초췌해 보일 자신의 모습이 두려웠 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왜 여호 와 신앙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세상 의 방법과 삶의 양식을 기웃 기웃합니 까? 바로 이런 부분 때문입니다. '혹시 나 다른 사람보다 더 인생이 초췌해질 까 하는 염려함'때문이 아닙니까? 그 래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법, 같은 생각, 그리고 세상이 지정한 그 모양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함을 부담스러워하 고 때로는 두려워하는 것 아닙니까?
사단의 권세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 을 '세속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왕 족과 귀족으로 살 때는 말씀 잘 배우 고, 학문을 닦아 훌륭한 유대인들인 것처럼 보였지만, 느부갓네살 왕이 그 들을 '바벨론 화' 시키려는 상황 가운 데로 노출되었을 때... 다니엘과 세 명 의 친구들 외에 다른 자들은 모두 왕 의 음식을 먹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순간, 세상 권세에 의한 '바벨론 화'작업은 우리 삶에 그 물꼬를 트기 시작하는
그러나 다니엘은 달랐습니다. 다니엘 은 환관장이 걱정하는 것처럼, 왕의 산해진미를 먹지 않음으로 인해 '초췌 해 질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가지 고 있지 않았습니다. 11-13절까지 말 씀입니다.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 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청하오니 당신의 종 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 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
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 소서 하매,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 흘 동안 시험하더니" 다니엘은 확신합니다. 이방신을 섬기 는 바벨론왕을 두려워하여 그가 하사 한 산해진미를 먹는 것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 해 뜻을 정하여 채식을 먹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 습니다. 애초부터 느부갓네살왕이 주 는 그 산해진미를 먹지 못하면 초췌해 질지도 모른다는 '가정'이나 '염려함' 이 다니엘에게는 전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경외할... 그 신앙의 뜻을 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니엘의 청대로 시험한 열흘이 지납니다. 그리고 15절입니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 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 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여러분! 말씀을 잘 보십시오. 산해진 미를 거부하고, 채식만 먹어 초췌해진 다니엘과 친구들의 모습이 아니라, 오 히려 '뜻을 바로 정하지 못하여' 자기 를 더럽힐 지언정, 왕의 산해진미를 취 한 다른 소년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 더욱 윤택하여 좋아'보이는 그들의 얼 굴을 감독관은 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뜻대로 살 아가는 인생이 세상의 방법과 다르다 고 하여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를 바랍 니다. 혹시나 그들보다 뒤떨어짐으로, 더 초라하고 초췌한 인생을 살아갈 것 이라 염려하지도 마시기를 부탁드립니 다. 뜻을 정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힘쓰는 사람이 결국 '더욱 아름답고', '더욱 좋아보이는'모습으로 최후 승자 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권모와 술수로, 때 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버리 면서까지 마치 마라톤에서 초반에 선 두로 나서는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을 보 며 두려워 하지 마시기를바랍니다. 끝 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 을 더하시는 인생이 결국 최후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뜻을 정하여 '가장 아 름답고 좋은' 인생의 축복을 경험하시 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세번째, 어떻게 다니엘은 최후 승자가 될 수 있었는가?.... 하나님이 다니엘에 게 다른 이들보다 열배나 많은 지혜와 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살아남 기 위해 뜻을 정하는 모습을 보였지 만, 결국 하나님이 그런 다니엘에게 은 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말씀입 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 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 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그리고 마침내, 왕이 정한 3년의 기한 이 참으로 왕족과 귀족으로 포로된 자 들을 왕 앞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그 런데, 왕의 눈에 특별히 띄는 사람들 이 있었습니다. 일단 용모가 다른 사람 들보다 더 아름답고 좋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이 대면하여 말해보니 가장 뛰어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자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난 모 습을 보이는 그들을 다시 따로 불러내 어, 왕은 여러가지를 묻게 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왕이 그들에게 모 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 은 줄을 아니라" 왕이 그들과 대화 중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은,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얼마나 뛰어난지,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들보 다 열 배나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박수 와 술객은 그저 단순한 무당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박수와 술객은 지혜자 로 구성된 특수한 계급을 일컫는 것으 로 바벨론의 모든 학문과 지혜를 대표 하는 계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이 주신 그 지혜와 총명 때문에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거쳐가는 모든 왕들로부터 유대 포로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존귀함을 받으며 최후의 승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장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느부갓네살 의 꿈을 해석할 때에도, 벨사살이 잔 치를 베푸는 중에 손가락이 나타나 쓴 글씨를 해석할 때에도, 그리고 메대 왕 다리오 때에도 다니엘은 늘 그 지혜와 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으 로 높임을 받게 됩니다. 뜻을 정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 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이 결국 높여 주십니다. 모든 자들이 자 신의 힘을 믿고, 능력을 믿고, 주변의 강자에 기대어 자만하는 삶을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높 여 주실 것을 기대하며 끝까지 하나님 의 편에 서는 자들입니다. 바벨론의 뛰 어난 지혜자들보다 10배나 많은 지혜 와 총명을 다니엘에게 허락하신 하나 님은 다니엘을 결국, '최후의 승리자' 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앞길을 열어 주셔야 합 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올바로 자리를 지켜나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분명히 기억하셔서 어떤 세상의 권세 나 능력보다 열 배나 많은 능력으로 세 워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 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일생 가운데 경험할 수 있는 저와 여러 분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 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누가 최 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 니다.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결은, 첫번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 로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내야 합니 다. 두번째, 신앙의 뜻을 정하여 자신을 더 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세번째, 하나님이 열배나 많게 부어주 시는 은혜를 기대하며 누리는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의 신앙 의 모습을 본받아 최후의 승자로, 승 리의 깃발을 올리시는 믿음의 인생들 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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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지역한인기독교회협의회 주관
성탄감사 연합예배 < ON-LINE >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s.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일시: 2020년 12월 9일(수), 7PM 온라인 방송으로만 진행 됩니다 유튜브 채널: 밴쿠버교회협의회
설교: 홍성득 목사 축도. 송철웅 목사 교협회장. 이흥수 목사
•2020년 11월 27일(금) 특별판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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