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서부 유일의 기독교 주간지
크리스천신문 The Christia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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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9일(금) 특별판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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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함께 동거하고 연합하는 아름다운 밴쿠버 성도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 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 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 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 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3: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감당하고 오는 세대를 위해서 바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 는 지역교회(Local church)입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지역교회라는 개념마저 흔들리며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온 라인 교회가 생겨나는 듯 합니다. 흔들리지 마시기를 바 랍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총체적인 교회와 지역교 회입니다. 총체적인 교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범 우 주적인 교회이며, 이곳에는 오직 믿는 자 만이 멤버로 구 성된 교회입니다(마 16:18, 엡2:21, 벧전2:5).
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지역교회의 성 도님들과 목사님들, 사모님들에게 힘 내시라고 격려를 보내드립니다. 어려 울 때 일수록 더욱 함께 연합하 여 동거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지역교회의 역할은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의 떡을 나 누며(주의 만찬, 성만찬), 침례 또는 세례를 주어 그리스 도로 옷입고 살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갈 3:26-27, 마28:19-20).이 지역교회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19으로 인하여 교회들이 이전에 서 기뻐하시는 교회들이요, 총제적인 교회의 복사판이며, 경험해보지 못하던 온라인 예배와 성도들과의 교제도 할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요,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유일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을 지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 하게 진리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어둠의 세력들 나면서 기독교인들도 점차 상황에 적응되어가고 있는 듯 은 교회를 싫어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깨트리려 고 합니다(엡6:12, 갈2:4; 1:6-7). 합니다.
그러나 지역교회들은 이 땅에 우리 시대에 맏겨진 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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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맞추어 지난 19년 동안 발행인으로, 편 집인으로 또 신문배달인으로 섬겨온 저는 9월말로 크리스쳔신문의 모든 사역에서 완 전히 은퇴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간 개별적으로 감당해온 가정치유사역에 집중하고자 준비 중에 있습니다.
샬롬, 어렵고 힘든 시기를 모두 잘 견뎌내고 계시 내년 8월 전후로 계획 중인 크리스쳔신문 리라 생각됩니다. 창간 20주년 행사에서 조촐하게 은퇴예배 를 드리고자 예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가운 데 크리스쳔신문도 지난 6개월 동안 어쩔수 그동안 크리스쳔신문을 음으로 양으로 지 없이 휴간 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사역 원해주시고 기도로 함께 동역해 주신 모든 을 지체할 수 없어 지난 10월 첫 주부터 “온 애독자분들 그리고 은혜가 넘치는 칼럼으 라인 인터넷 신문”으로라도 발행을 재개하 로 섬겨주신 많은 칼럼니스트님들께 깊이 고 은혜의 말씀들과 교계의 소식들을 전하 감사드립니다. 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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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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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무도 선뜻 하고자 하지 않는 이 사 역에 저의 뒤를 이어 헌신하는 김병진 대표 에게도 변함없는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 니다. 모쪼록 하나님의 은혜가 애독자님들 모두 의 가정과 사업, 그리고 섬기시는 사역 위에 늘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충현 장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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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9일(금) 특별판 제2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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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복음방송(GBS) 밴쿠버 대표 이.취임 감사예배 드려 예배를 드 렸고 참석 하지 못한 분들을 위 해 ZOOM 과 유튜브 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송출 했다.
2018년 2월에 개국감사예배를 드리며 시작 된 글로벌복음방송(이하, GBS) 밴쿠버는 오일석 장로를 초대 대표로 라디오 스트리 밍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미국 하와이에 본 부를 두고 씨애틀, 밴쿠버, 서울에서 라디오 방송을 제작하고 있으며, 100여명이 제작자 와 스텝이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하와이에서는 AM주파수를 이용해 송출하 고 타 지역은 앱을 통해 24시간 라디오 스트 리밍을 제공하고 있다. 오 대표는 지난 2년 8개월간 GBS가 밴쿠 버에 자리잡는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고 2 대 대표로 선출된 정성자 권사에게 바톤을 넘겼다. 지난 3일(토) 그리스도를본받는선교훈련센 터(ICTC)에서 열린 이취임 감사예배에는 코비드19로 인해 초청된 인원들만 모여서
Leader에 대해서 나누려고 한다. 섬김의 지도자는 리더가 먼저가 아니라 섬김이 먼 저이다. 종은 성경에 무익한 종이라고 표현 하지만, 유익을 안가져다 주는 의미가 아니 라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의미 이다.”
“지도자는 리더의 덕목을 잘 알아야 한다. Leader의 단어를 풀이해 보면 Listening 경청을 하고, Empathy 공감을 하고, 이날 예배 Awareness 인지하고, Decision maker 는 김윤섭 결정을 하는 사람, Exampling 본보기가 목사(GBS 되고, Responsibility 책임을 지는 사람이 방 송 국 장 ) 다. 리더의 덕목을 잘 생각해서 대표로서 의 사회로 의 사명을 잘 감당하길 바란다.”고 말씀을 G B S 시 애 전했다. 틀 대표 이상진 장로가 ZOOM을 통해 실 시간으로 대표기도를 했다. 이.취임식을 축 박신욱 목사(GBS 국제대표)는 ZOOM을 하하기 위해 시온선교합창단 단원 4명이 특 통해 인사말과 함께 오일석 장로에게 감사 송으로 섬겼다. 이날 남상국 목사는 마가복 패와 정성자 권사에게 추대패를 증정했다. 음 10:44-45절, 누가복음 17:7-10절 ‘섬김 또한 각 지역별 대표와 오정현 목사(GBS 이사장 / 사랑의교회)가 영상으로 감사와 의 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남 목사는 “정성자 권사는 이틀 전 아버지 고 이상선 장로의 천국환송예배를 드리고 오일석 장로는 이임사에서 “오늘 준비한 이 이번 한주간 굉장히 힘든 한 주간일 것이 임사는 성경구절 한절인데 남상국 목사님 다. 이상선 장로는 살아생전 25개의 교회를 설교 말씀과 같은 구절이라 놀랐습니다. 누 세우고 평생을 주의 종으로 살아왔다. 묵상 가복음 17: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 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엘리야가 승 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 천한 후에 엘리사가 바톤을 이어받은 것처 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 럼 아버지로부터 주님을 섬기는 바톤을 이 라 할지니라. 아멘]” 오 장로는 성경말씀 한 구절을 이임사로 대신하며 모든 영광을 하 어 받은 것 같다.” 나님께 올려 드렸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Servant
놓인 1,000년 이상의 역사 인식 공백을 메우는 시도 이자, 신학적·사회적으로 경직된 한국 교회를 이끌어 갈 상상력으로의 초대이다. 된다. 즉 부정되고,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천 년이 규정되어 왔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최종원 교수 의 신간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가 출간 되었다.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2018)로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최종원 교수의 ‘다 시 읽기’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중세는 476 년 서로마 멸망에서 시작해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까지를 가리킨다. 흔히 이 시기는 ‘암흑기’, ‘교황 지배 시대’로 여겨지며, ‘면 벌부’와 ‘십자군’이라는 상징으로 주로 기억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이러한 평가가 계몽주의 시대에 생겨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임을 밝힌다. 지금 역사학계는 중세를 암 흑기로 보지 않으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벗어나 독자적 그리스도교 문화를 형성하 여 르네상스와 근대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 고 보고 있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중세 전반과 중세교회를 재평가한다. 중세 와 종교개혁 그리고 근대를 연속선상에 놓 고, 교황제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중세를 형 성한 수도회와 외부에서 중세 형성을 추동 한 비잔틴과 이슬람 문명 등의 기여도 다시 평가된다. 교회사는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기록해 야 한다는 지은이의 지론은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와 함께 《중세교회사 다시 읽 기》까지 일관된다. 중세교회를 통해 이어 져 온 유의미한 성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 는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바울 및 아 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와 칼뱅 사이에
한편, 2018년 출간된 《초 대교회사 다시 읽기》는 그해 〈국민일보〉 최고의 책, CTK(크리스채너티투데이) 지 평 확장 특별상을 수상하며 독자들의 관심 을 받았다. 지은이는 “한국 개신교가 과도한 교리적· 신학적 틀로 정체성을 확인해 온 흐름에 대 한 답답함을 반영한 것 같”다고 첫 책이 관 심을 받은 이유를 짚었다.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은, 강고한 벽에 둘 러싸인 한국 개신교 전반의 역사인식”과 “ 이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적 마음” 이 큰 어려움이었다는 지은이는 그러나 “여 전히 이 시대는 종교에 길을 묻고 있으며, 유 럽 천 년 동안 교회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 회의 요구에 응답”했다며 소회를 밝혔다. ‘다시 읽기’ 시리즈는 《종교개혁사 다시 읽 기》로 2021년 마무리 된 다.
정성자 권사는 취임사에서 “오일석 장로님 께서 지금까지 수고하시고 이어오신거에 대해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방송에 문 외한 제가 대표로 취임하게 되어 두렵고 떨 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상국 목사님의 말 씀처럼 리더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 는 시간이었고, 코비드19로 인해서 Untact 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만나고 싶어도 만 날 수 없는 시대에 방송의 전파 선교사로서 방송의 사명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하는 시 간입니다.” “방송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 사람으로서 제 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 나님께서 하시고,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제 작자와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과 협력하여 잘 이끌어 갈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 다.” “마지막으로 말씀 한구절을 나누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로마서 10장14-15절 [14:그런 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 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 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 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 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아멘] 이날 예배는 정시우 목사의 축도로 이 취임 감사예배를 마무리했다.
온라인예배 녹화& 편집 해드립니다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3 Serving the local Churches // Equipping the missionary workers // Evangelizing the nations // Discipling the national leaders
•2020년 10월 9일(금) 특별판 제2호
3. 선교 수행자들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선교는 교회와 선교사, 파송기관, 다양한 협력자의 연 합으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교회는 여러
2019년
어려움이 있지만 선교사들에게 관심을 기울리고, 선교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비드-19 사태
로 세계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SEED Canada & Korea
사는 후방의 교회들이 처한 상황을 두고 기도하면서
정성헌 대표
한 몸 의식을 세울 때입니다. 특별히 선교단체는 세계
그 작은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국경이 봉쇄되고 경제 활동이 락 다운 되고, 이동제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으로 인류의 평범했던 일상이 한 순간에 위기로 변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코비드-19는 선교계에도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불러 왔습니다. 한국선교사의 40% 정도가 현장을 떠나 본 국으로 일시 철수한 상황입니다. 저희 단체도 30%정 도가 일시 귀국한 상황입니다. 각국의 입국 제한과 집회금지등의 조치로 복음전도와 교회개척, 교육 훈 련에 심각한 어려움이 발생했고, 선교계도 비대면 사 역이란 새로운 도전과 과제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작금의 상황이 교회나 선교단체의 내부적 요인으로 발생한 사태가 아님으로, 이를 통제할 수 없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인가라는 ‘태도’ (Attitude)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므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봅니다.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 움츠린다!.” 만사가 그러 하듯 확장기가 있으면 수축기가 있습니다. 무한정의 성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해 움 추려야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선교의 수축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기 위 해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1) 주복음/전하리 중앙아시아 K국 (SEED Canada)
방방곳곳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관리합니다. 소속 회원 1. 선교의 활동(Doing) 중심에서 정체성(Being) 확립의 기회로
들과의 연합과 일치, 서로를 위한 관심과 섬김의 공동 체를 이루고자 노력하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선교사의
이 팬데믹 더욱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하고 한 몸 의식
정체성과 바른 선교를 고민하며, 이 전 사역 전반
을 키워 연합하는 공동체성을 강화할 좋은 기회입니
에 대한 평가와 수정, 개선의 기회로 삼는다면, 성
다.
숙한 선교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4. 교육과 배움의 기회로.
봅니다.
한국의 파송단체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대
2. 가정을 세우는 기회로
대적인 선교사 추방과 팬데믹으로 일시귀국한 선교사
많은 선교사들이 사역의 과중한 부담으로 가족관
들에게 가장 절실한 재정이 아니라, 시의적절한 재교
계에 돌봄이나 자녀들에게 적절한 관심과 지원이
육과 훈련을 통해 정체성과 다음 사역을 준비하는 일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족관계의 질은 어떤 면
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선교능력을 업그레이드
에서 그 사역의 질과 직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구
시킬 절호의 기회라 봅니다.
성원 간의 지지와 격려, 화목, 일치로 충만함이 생
이런 점에서 볼 때 어느 때 보다 선교본부의 책무가
성되는 곳은 가정입니다. 소속 회원들을 상담하다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단체는 선교사의 멤버케어,
보면 간혹 오래된 자녀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후방과현장의 네트웍를 강화시키고, 선교계가 연합으
풀어야 할 지 난감하여, 사역에만 몰두하는 경우들
로 전략수립과 전문적인 재교육과 훈련등의 제공하고,
도 봅니다. 지금이야 말로 가족을 돌아보고, 가정을
지역교회와 선교헌신자들과 긴밀한 소통으로 신실한
건강히 세워야 할 시간입니다. 사역은 성취감을 줄
조력자가 되어준다면 우리가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수 있지만, 건강한 가정은 행복감을 가져다 줄 것
선교의 New Era를 함께 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입니다.
부, 지금은 유스호스텔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 데 려와 다소 거칠은 안내를 받으며 5층 2인실에 수용 되었다. 특별히 이상 증세를 갖고 있지 않았던터라
Newsletter Contents / 목 이차결과를 살펴 차량 안전을 꼼꼼하게 조사한다. 그리고 차량 안전을 위한 신기술로 이어지게 한다. 집요한 노력이 결정적인 ■ 고객의 안전을 위한 이팬더믹상황을 새로운위기의 순 간에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다.
선교도약의 기회로
처음에 잘 믿기지 않았고 나중에 당혹스러웠다. 다 1) 내게 닥친 코로나 팬데믹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코로나 재앙으로 인해 전 세 계가 큰 충격에 빠져있다. 새해 벽두부터 지금까지 무려 반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 질병은 도무지 끝 이 보이질 않아 모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전 지 구적 팬데믹 현상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그 어떤 곳으로 우리의 일상을 휘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선교지 중앙아시아, K국의 선교대학교인 미션대학에 서 행정과 교육사역하는 우리에게도 팬데믹 상황은 순식간에 불어 닥쳤다. 국경이 닫히고 사회적 격리가 강화되어 사역적 활동이 크게 제한 받는 상황을 맞은
정성헌 대표
행히 아내는 남고 나는 얼마음성판정이라서 전 한 방송인 부부 숙소에 가족이 차를 타고 가다‘무 맞은편에 ■ 서 술을위해 먹고 서울시가 역주행을 하던 2.5톤 ‘생활보호치 트럭과 정면충돌하는 증상감염자’를 마련한 사고가 났다. 사고가 난 현장에는 이 방송인 부부가 탔던 //// SEED CANADA 료소’에 입소하여 보름간휴지조각처럼 격리생활을 감당해야 차량의 전면부가 구겨져 있었다. 했 이런 경우 (1) 팬더믹 위기와 우리의 선교사명 차량 무슨 안에 탑승했던 운전자와않으면서도 일가족은 커다란 다. 이게 대체 일인가 믿기지 주어 부상을 당하기 마련이다. 놀라운 것은 차 안에 탔던 일가족 네 명 주복음/전하리 (중앙아시아 K국) 지는 일과가 그저 부상을 생경스럽기만 경찰차가 이 경미한 입은 것을 하였다. 제외하고는 크게 다치지 않 (2) 비대면선교에 필요성이 커져가는 고 무사하게 생명을건물에선 건질 수 있게 된 것이다.방송 입구에 상주하며 지키고 시간마다 진가는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진가는 위기에 드러 미디어선교요성 으로 지시를 내리며 환자들을 원격조정하였다. 청 이 사건 후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 방송인 부부가 탔 난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장지영/김성희 (북미 하와이) 차에 대한 관심이 검색순위 신앙생활이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힘들어질 때, 그 때 소며 주변던정리며 모든 것을올라갔다. 지시에 인터넷 따라 실시간 환자 스 에 이 방송인 부부가 탔던 차량 이름이 오를 정도였다. 알 내 안에 감추어진 신앙의 민낯이 고스란히예배의 드러난다.기쁨! 평 (3) 코로나위험속에서도 스로 챙겨야 하는이것이었다. 구치소에 가면 이렇게 고 보니 차량을 만든 회사의 핵심 목표가 ‘자동차를 소에 나는 어떻게 믿음을 쌓아왔는가? 진면목은 평소에 최현숙/박정남(일본 오사카) 고객 중에 사망.것! 중상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 때 일수록 그 진가는 더 하겠구나 타는 싶었다. 구속된 협소한 공간에 갇혀 었다. 이 차량은 2002년에서 2018년까지 영국에서 사망사 욱 드러난다.(4) 코로나, 그러나 선교는 계속된다! 온종일 지내는 무척 답답하고 또 끊임없이 파 김봉국/박미영(태국 치앙라이) 고가 단것이 한건도 발생하지 않은 차량으로 기록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서서히 드러나는 내 신앙의 //// 요즈음 SEED같은 USA 16년 동안 적어도 80만대에서 100만대 정도는 팔렸을 텐 진면목은 어떠한가? 한 번 점검해 보자. (5) 진정한 방역은 하나님이 만드신 데, 한 번의 사망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이 자동차 자체면역력 강화와 그 분께 집중하는것! 회사에는 이미 50년 전인 1970년에 회사 안에 교통사고 홍석종/노성은 (볼리비아) 조사팀이 조직되었다. 조사팀은 실제 충돌사고가 일어나 면 사건 현장에 나가 차량의 손상상태와 운전자의 부상 정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일어났는지를 면밀히 이동준/이숙희 (멕시코)
(7) 인도 브라만 카스트 마지막 남은 사역! 박정일/박소영 (인도)
것이다. 공동체도 서둘러 귀국과 철수를 준비하는 가 고드는 불안한 생각과 싸우며 일주일이 지나고 나
SEED KOREA
운데 우리 가족도 6월말 전세기를 통해 한국으로 일 니 어느 듯 적응이 되었다. 40대의 생면부지의 낯선 단 철수하였다. 그날 도착해서 공항에서 검사가 오래 분과 왼종일 꼼짝없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매우 낯
유동윤/김나윤 (페루)
걸렸던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다음날 지역 구청의 선 분이었다. 국적만 같을 뿐 서로가 달라도 너무 보건소에 가서 검진을 받고 다음날 음성통보를 받고 다른 분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해 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약 한시간 후에 다시 금씩 마음을 열어가며 대화하던 중 주님이 나 뿐만
최영/양애자(헝가리) — 한국외항선교회(KHE)
연락이 와서는 양성 판정을 수정 통보 받았다. 한시 아니라 함께 있게된 그분도 사랑하심을 깨달을 수 간 후 방역소에서 보낸 구급차가 와서 남산 옛 중정 있었다. 치료소에서 나오기 전날 그에게 복음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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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International Mission of Canada
•2020년 10월 9일(금) 특별판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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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교회, ” 에클레시아 ②
포도 나무와 가지, 몸과 지체, 가족과 자녀, 스승과 제자, 주인과 종,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과 같은 상호 긴밀성을 나타내는 표현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은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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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의논하고 결정하기 위해 광장으로 소 집된 시민 대표들을 에클레시아로 불 렀습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헬라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일반적인 의미로 에클레시 아를 이해 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인 들은 자신들을 일반 사회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로 해석하여, 구별된 의 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근거도 성 경에서 찾았습니다. 예를 들면 “성도 saint” “거룩한 나라 holy nation,” 혹 은 “택함받은 족속 chosen people”과 같은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이 말을 직접 들었던 제 자들의 마음 가운데 먼저 떠 올랐던 이 미지는 일반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달 랐습니다. 이들에게 에클레시아는 자 신들이 있어야 하는 필연적인 장소였 고, 또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유 일한 공동체였습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 생활과 구별되는 방 식으로 교회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 신 누구도 이해 할 수 있는 생생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교회를 묘 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그 리스도인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혼동합 니다. 그 이유를 호트 (Hort)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교회는 헬라어 ‘ecclesia 에클레시아’를 표현하는 가장 친숙한 말로, 이 단어는 (처음 사용 사용되었 던 때의 의미보다는) 후대의 제도와 교 리에서 파생된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 렇기 때문에 오늘날 ‘에클레시아’가 본 질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정확하고 완 전한 영향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 속적인 정신적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 다.”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에게 평범 에클레시아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 하게 이해 되었던 “에클레시아”는 문 한 사도 바울의 은유는 새로운 공동체 화와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의미가 변 의 본질과 기능이 무엇이지를 매우 잘 했습니다. 설명합니다. 그는 한 지역의 에클레시 아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라고 그렇다면, “에클레시아”를 처음 사 표현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부른 이유 용했던 사람들에게 이 낱말은 무슨 의 는 자신이 실제 경험한 사건에서 배웠 미였을까요? “밖으로” 나왔다는 전치 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사 (ek)와 “소집되었다”는 동사 (ka- 그는 그리스도인을 전면적으로 박해하 leo)의 합성어로 이뤄진 “에클레시아” 는 자였습니다. 어느날 바울은 위협과 는 집 밖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 살기가 등등한 상태에서 다메섹에 모 을 뜻했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문제를 여 있는 주님의 제자들을 잡으로 갈 때
였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길을 막으시 며 “네가 왜 나를 괴롭히느냐?”고 질 문합니다. 그 순간 “당신은 누굽니까” 라고 묻는 바울에게, 주님께서는 “나 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고 대답합니 다. 자신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는 데, “너는 나를 핍박한다”는 주님의 반 응에, 바울은 그 때부터 에클레시아의 정체는 주님과 밀접한 동일체임을 깨 닫습니다.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바울의 비유는 다음 세가지 사실을 증 명합니다. 첫째, 눈에 보이는 현실 세 계에서 예수 그리스도 의 몸은 사람들의 눈으 로 어떤 증거도 없습니 다. 대신, 일반 사람들 이 주님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에클레 시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
면,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의 몸으 로서 주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탄생된 새로운 공동체 회원들의 생명은 몸의 머리 되 신 주님과 멤버들 상호간의 유기적인 결합에 의존합니다. 어떤 몸도 생명을 유지하고 기능을 위해서는 한 쪽에는 팔이 있어야 하고, 다른 곳에는 발이 있어야 하며, 또 귀도 필요할 뿐만 아 니라 다양한 지체가 있어야 합니다. 동일하게, 에클레시아는 여러 멤버들
이 그리스도의 진리와 은혜 그리고 사 랑에 의해서 서로 긴밀하게 묶여 있을 때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셋 째, 몸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의 한 지체가 병들어 있 는 상태에서 신체의 정상적인 기능이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몸 (에클레시아)은 그 안에 질병에 대 항하기 위한 자체 치료 장치를 갖고 있 습니다. 신약 성서에 기록된 여러 경 우들은 죄를 범하는 (질병) 멤버을 치 료하고, 혹은 방탕한 자 (기생충)을 제 거하기 위한 징계 절차를 규정하고 있 습니다. 더욱이 에클레시아의 멤버 자격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쪽 혹 은 저쪽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 사항 이 아니었습니다. 멤버십은 합당 한 자격이 필 요 했었고, 새로운 제자
는 회심의 연속으로 단순하게 예수 그 리스도의 몸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는 새로운 인간 인 에클레시아의 심장 박동과 긴밀하 게 연결됩니다. 개인은 그 몸의 고통도 함께 받고, 그 몸과 함께 기뻐하고, 그 몸의 내적 긴 장도 같이 경험하며, 또한 그 몸을 위 해 함께 섬깁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그 몸의 머리이신 주님을 섬기는 것입
리스도인들에게 있다. 우리 모두가 불타버 린 숲과 죽어간 야생동물들의 죽음에 영향 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 전기의 40%를 기 후위기를 초래하는 석탄발전으로 얻고 있 고, 타고 다니는 자동차 또한 온실가스의 주 요 배출원이고 보면, 그들의 죽음을 마주하 는 게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 두려워진다. 기후위기로 인해 재해재난을 막으려면 하루 라도 빨리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지금껏 우리의 필요를 채워준 지구가 회복력을 잃 지 않기 위한 시간은 10년도 채 남지 않았 다. 2018년 채택된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를 1.5도 이상 상승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을 제로 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 서부가 최악의 대형 산불을 겪고 있 다. 캘리포니아 주에 번개로 동시다발적으 로 시작된 산불이 두 달 가까이 불타고 있 다. 불 탄 면적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나 되는데, 숲은 물론 거주하는 사람들과 야생 동물,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큰 피해를 입 히고 있다. 빈번해지고 있는 대형 산불은 기후변화가 직접적으로 일으킨 재난이다. 폭염이 계속 되면서 기온이 높아지고 건조해지면서, 초 목이 수분이 증발해서 타기 딱 좋은 장작 과 같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
센 바람까지 불어 한 번 붙은 불이 순식간 에 번져 끄기 어려워져 대형 산불로 이어지 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여름 긴 장 마와 마찬가지로 산불이 빈번해졌고 비상경 계 기간 또한 길어졌다. 더 건조하고 강해진 바람에 5월까지 전국 산지가 산불의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이 같은 대형 산불의 책임은 특정한 사람들 에게만 있지 않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우리 모두, 특히 ‘지키고 돌보라’는 명을 받은 그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석탄발 전을 모두 퇴출하되,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 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탐욕스럽게 살아온 삶 을 회개하고, 에너지와 먹을거리, 이동수단 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필요만큼만 누리 며 쓰레기 배출을 원천 감량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내연기관차와 석탄발전소와 같이 탄소 다배 출 산업을 신속히 퇴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 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에 무책임하고 게을러 기후악당이라는 비판까
니다. 뿐만 아니라, 지체는 몸을 의지 할 때 살 수 있기 때문에, 그 개인은 극 히 중대하게 몸 (에클레시아)에 달라 붙어 있어야 합니다. 초기 교회를 연 구했던 Bruce는 에클레시아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종으로서 사역을 계속 하기 위해 지상에 존재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공통된 삶을 공유한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 해 살거나 죽지 않는다. 성경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사도적 복음은 홀 로된 신자와 독립적 신자들에 대해 아 무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독립적 신자가 된 다면, 그는 훼손된 신자이며 영적으로 절단되 상태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인들은 지역 교회의 멤버가 되지 않아도 심지어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도 스스로 “성숙 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적인 은둔 자에 관해한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습 니다. 에클레시아를 이탈해서 독자적 인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묘사할 수 있는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팀이 없 는 축구 선수,” “소속 부대가 없는 병 사,” “오케스트라가 없는 튜바 연주 자,” “무리에 속하지 않는 양” “가족이 없는 아이,” 등등. 그러나 가장 이해하 기 쉬우며 성경적인 비유는 “몸에서 떨 어진 지체”입니다. 잘린 팔이나 발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몸은 지체들의 연합으로 그 목적을 이 룰 수 있고, 지체 역시 몸을 통해서만 자기 기능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 니라.” 보내심을받은 생명의소리교회 담임 훼이스대학교 신학대학장
지 받고 있다. 국내 석탄발전소가 60기가 가 동되고 있는 데다 신규로 7기를 건설하고 있 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의 재해재난의 한 복판에 설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해를 거듭할수록 상황이 더 위 급해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절망하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는’ 그리스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형 산불뿐 아니 라 우리의 탐욕스러운 삶이, 기후위기를 앞 으로 더 부추기겠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신 뢰하면서, 재난과 죽음으로 가는 길을 거부 하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지구를 위해 생 명을 선택해야 한다. 재해재난으로 죄 없이 사라져 가는 수많은 생명을 마음에 품고, 함 께하는 이들과 더불어 탄소배출 제로를 향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일상은 물론 교회 와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위기와 당당히 마 주하며 대응해야 한다. 우선은 코로나와 긴 장마와 태풍, 그리고 산 불 속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우리 하나 님의 자녀들을 향해 보내는 긴급구조신호 (SOS)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에 사 로잡혀 있지도, 너무 안일하게 있지도 말고, 모두의 풍성함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믿고 사랑으로 행함으로 주님 하신 일을 우 리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igoodnews.net
•2020년 10월 9일(금) 특별판 제2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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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9일(금) 특별판 제2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BRUNCH COLUMN
브런치 칼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리더십에 있어 모든 것은 유동적이지만 ‘위대한 리 더’ 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한 가 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위 기가 닥쳤을 때 문제 해결의 능력을 보여주고 구성원들과의 관계 형성 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는 사실 이다. 왜냐하면 구성원들이 진정으 로 신뢰하고 싶은 리더는 문제 해결 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 문이다. 시대적 위기가 닥쳤을 때는 사회적 갈등은 고조되기 마련이다. 갈등이 복잡해지고 그 갈등이 깊어질수록 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찾기는 어려 울 뿐이다. 이 때 흔히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은 정치 권력자들은 이러 한 상황에서 반대편을 진압함으로 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는 것이다. 요즘 누군가가 “한 나라 의 왕이나 리더가 그 국가를 구한 적은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일부 의 소수 권력층은 본인들에게 집중 된 힘으로 국민의 다수를 대신해서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마련 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질 때 이러한 현상은 더 크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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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 이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 는 것 같다. 이 시기에 우리는 정말 로 그 어느 때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리더의 존재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 는 것 같다. 위기의 순간에서 리더의 역할은 절 대적이다. 저 밖을 내다보면 세계에 서 영향력이 있다는 지도자들은 지 금 매우 혹독한 시험을 치르고 있 다. 왜냐하면 그들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 미의 어느 나라 언론에서는 최고의 지도력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를 최 강대국에 올려 놓은 리더에 대해서 총 공격을 가하고 있고, 아시아 어느 나라의 언론에서는 나라를 말아먹 고 있는 리더를 치켜 세우기에 정신 이 없을 정도이다. 이 와중에 혼돈 을 겪는 대상은 그저 순순하게 자신 들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오고 있는 국민들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급한 시기에 요 구되는 리더십은 어떠한 유형일까? 2020년도 초반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사태는 그야말로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고 사회 곳곳에 서 정치적 분열과 불안감이 증폭되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고 있다. 그야말로 ‘혼돈’ 이라는 단 과연 최고의 리더와 최악의 리더는
“교회의 머리는 시저(Caesar)가 아 니라, 예수” 라고 발언한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의 존 맥아더 목사는 CNN과의 인 터뷰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정 부와 보건 당국의 발표를 믿을 수 없으며 모두 거짓으로 들린다. 또한 이런 통제는 특히 교회를 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라고 말하면서 ‘예 배 금지’를 강조한 LA 카운티에 도 전하였다. 물론 법원의 판결은 신앙 의 가치와 헌법의 가치를 존중한 존 맥아더 목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 는 그동안 예배의 숨통을 조르고 있 던 코로나 19으로 인하여 고통받던 수많은 교회의 문이 다시 열리게 한 순간이 되었다. 물론 리더가 전지전능한 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역 경에 대처하는 탁월한 능력은 갖추 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 의 상황에 정확한 판단력은 물론이 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 도 없는 리더를 가진 교회와 나라들 은 얼마나 고달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까? 자신들의 구성원들에게 방 향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잠잠히 있으라고만 하는 그 무능하고 어리 석은 리더들을 어쩌란 말인가? 어찌 그러한 이들을 리더라고 부를 수 있 단 말인가? 당신은 리더가 왜 ‘리더(Leader)’라 고 불리는 줄 아는가? 위기의 시기 에 리더의 결정은 그 구성원들에게 다가 온 불안을 잠재울 수도 있고 혹 은 반대로 불안을 증폭시킬 수도 있 기 때문이다. 솔직히 리더는 남들을 좇아가는 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바 른 방향으로 먼저 인도하는 이들이 다. 감언이설로 그 구성원들을 잠시 속이고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한다 면 그를 어찌 ‘리더’ 라고 부를 수 있 단 말인가? 그리고 판단력과 통찰력 이 부족해서 그저 중간의 위치에 머 물고자 하는 무능력한 이들 또한 어 찌 ‘리더’ 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특별히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부르 신 영적인 리더들의 역할이 더할 나 위없이 중요함을 이 시기에 다시금 깨닫는다. 정말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구성원들을 위해 정말로 당신은 기도를 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주관 하시며 정치와 경제 그리고 인류의 역사 마저도 아우르시는 그분 앞으 로 달려 나가 구성원들을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떠 한 방향으로 인도해야 하는지 진실 되게 여쭈어 보길 원한다.
또한 당신이 이 세상의 사상과 이념 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이들이라 면 지금 당장 ‘리더’ 라는 이름표를 떼어버리길 원한다. 참된 진리의 방 향을 가리키면서 당신의 구성원들 을 그 방향으로 인도하시라는 그 분 의 음성을 듣지도 못한다면 그 또한 어찌 ‘리더’ 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혹시 자신이 없어 남들의 눈치만 보 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귀한 주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가고 있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길 바란다. 그렇 게도 그 자리가 탐난다는 것인가? 위기의 순간은 곧 기회의 순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 당신의 구성 원들을 위한 헌신의 모습과 눈물의 기도는 곧 당신을 탁월한 리더로 다 시 세울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그리고 누구 를 의지한단 말인가? 당신이 두려워하고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한 분 뿐임을 깨닫고 지금 그 분께 달려 나가, 시편의 말씀처럼 “ 내 영혼이 주를 기다림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합 니다. 내 영혼이 주를 기다 리며 내가 주의 말씀 만을 원합니다. 내 영 혼이 주를 의지합니 다” 라고 고백하길 바 란다.
한국사회와 교회의 공동선 실현을 위해 신학자와 법학자가 만났다.
그렇지 못할 땐 사회가, 그다음엔 교 회가 나서야 한다”고 답했다.
송용원 은혜와선물교회 목사와 천종호 부 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지난 6일 미래목 회와말씀연구원(미목원·이사장 김지철 목사)이 주관한 ‘신학자와 법학자의 대 담’ 온라인 행사에서 ‘모두의 좋은 삶(공 동선)’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천 판사는 “하지만 비행 청소년 꼬 리표만 보고 도움을 주지 않는 교 회가 적지 않더라”며 “교회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자기 공동체 경계 를 넘어선 이웃을 더 도와야 한다” 고 했다.
미목원은 ‘저자와 함께하는 북토크’ 일환 으로 각각 ‘하나님의 공동선’(성서유니 온)과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두란 노) 저자인 두 사람을 초대했다.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을 전하며 대 담은 마무리됐다. 송 목사는 “공동 선에서 중요한 건 경청과 공론의 장, 원수를 향한 사랑이다. 한국교회가 이 원칙을 품고 공동선을 실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 목사는 먼저 “전작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을 감명 깊게 읽었는데 선과 정의, 법을 다룬 이번 책도 참 유익했다”고 덕 담을 건넸다. 천 판사는 “소년범 처우 개선을 위해 이론적 토 대를 제공하려고 정의를 연구하다 보니 선의 문제까지 손을 대게 됐다”며 “선과 정의를 공부하며 가장 알고 싶던 게 ‘공 동선’이었다. 송 목사의 전작 ‘칼뱅과 공동선’의 도움을 적잖게 받았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각자 책에서 언급한 공동선의 개념과 특징을 설명 한 뒤 서로에게 궁금한 점도 물었다. 송 목사가 “천 판사는 시 정(是正)적 정의와 분배(分配)적 정의 중 후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전자에 더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 다”고 하자, 천 판사는 “비행 청소년의 재비행을 막기 위해선 분배적 정의 실현이 중요한데, 이 역할을 국가가 해야 하지만
천 판사는 “기독교인에게 공동선이란 최고선인 하나님을 닮 는 것이다. 공동선을 추구하며 동시에 삶이 배타적이지 않고 열려 있는 시민으로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 많 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COLUMN
섬에서 칼럼 본 세상이야기
오늘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인 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포스트 모 더니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일은 저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어떤 형태 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 떤 형태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 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영향 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 이 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깊이 영 향받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목사인 저를 비롯해서 포스트 모 더니즘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 100년 전의 문화는 성공이나 돈에 유혹을 받 는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 늘날은 물질주의와 포스트 모더니 즘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영향을 받 으면서 개인의 성공이나 돈의 유혹 에 민감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포 스트 모더니즘 이전의 문화에서 “ 인생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거나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 요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 는 나의 갈망을 채우고 나의 욕망 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은 광고, 영화, 노래 가사, 소셜미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전 모 디어를 통해서 매일매일 전파되고 든 세계에는 자기자신이 아니라 가 있습니다. 족이나 국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관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에서는 크게 점이 있었습니다. 4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당신은 당 인생의 의미는 이기적으로 자기 자 신 자신에 대해서 진실해야 한다. 신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 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은 부끄러운 삶이 었고 돈보다는 정신 적인 건강을 추구했 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 세계에서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거나 “당신의 인생에서무 엇이 가장 중요합니까?”라고 물으 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 지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 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거 나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 의 인생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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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행복 하게 해야 한다. 셋째, 다른 누군가 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은 한,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 넷째,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강요할 수 없다. 이러한 사상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 사람들에 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권위 적인 체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대 부 모든 목사든 누군가가 이래라저래 라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냐하 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도덕적 기 준을 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 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무 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는 다른 사람이 규정해 주거나 가르치 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정하는 것 이라고 생 각하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이 런 문화적 변화는 무 척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 니 다. 제 어린 시절만해도 포스트 모더 니즘 문화보다는 전통적인 문화에 서 자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 희 아이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 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차이와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종종 느끼 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는 도시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 만 오늘날 모든 세계는 전통적인 문화와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 사 이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의견 충돌 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뿐 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 오늘날 현실인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가족안에 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런 문화 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어떻게 줄이느냐?에 따라 행복한 가정이 되고 평안한 교회생활이 될 수 있 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주에는 포스트 모 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접근하면 좋을지 나눠보도록 그러다 보니 저희 집에서는 한국적 하겠습니다. 이냐? 캐나다적이냐?는 문화적 갈 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자라 고 배웠던 전통적인 문화와 포스
•2020년 10월 9일(금) 특별판 제2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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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함께 기뻐하라!" 오늘은 10번째 사랑의 속성을 살펴보 도록 하겠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 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깨닫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깨닫 고 느낀 것들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결단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사 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는데 이 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정말 불 의한 일을 볼 때 기뻐할까? 사실 대부 분의 경우 우리는 옳지 않은 일,불의 한 일을 경험하거나 바라볼 때 기뻐하 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분노하는 경우 가 대부분이죠. 살인사건을 보고 기뻐 하는 분들 계신가요? 누군가가 도둑질 을 했을 때 그것을 기뻐하시는 경우가 있으신가요? 불의한 일들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지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특 별한 두 가지의 경우 우리는 그 일들이 불의한 일들임에도 그 일들로 인해 기 뻐합니다. 첫 번째는 그 불의한 일들 이 나에게 유익이 될 때 입니다. 말씀 을 준비하는데 떠올랐던 한 사건이 있 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약속 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급하게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데 계단에 지갑이 떨 어져있었어요.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 무도 없어서 지갑을 열어봤더니 돈이 꽤나 들어있었어요. 제가 어떻게 했을 것 같으신가요? 물론 평소의 제 모습을 보시면 당연 히 제가 주인을 찾아줬을거라고 생각 하셨겠지만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 다. 그 때 제가 꽤나 돈이 궁한 상태였 어요. 그래서 지갑안의 돈은 빼서 제 주머니에 넣고 지갑은 우편함에 넣었
우리가 기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철 저한 기준의 변화가 일어나야지만 오늘 본문이 말하는 사랑을 행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 운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당 연한 것이죠.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이번주에 한 성도님의 이야기를 들 으며 참 많은 감동이 됐습니다. 이분은 평소에 나무와 꽃과 같은 식물에 참 관 심이 많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집에 식 물들을 참 많이 키우신다고 해요. 그런 데 이분이 대화중에 어떤 말씀을 하셨 냐면 이제는 나무나 꽃을 보면 그 나무 나 꽃의 마음을 느끼신다고 해요. 그래 서 식물을 보면 지금 그 식물에게 무엇 을 원하는지 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안다 고 하십니다. 놀라운 일이죠. 제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여쭤봤더니 그 분께 서 식물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 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깊은 관심이 있을 때 우리는 식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 다. 그래서 식물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 이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 게 됩니다. 제가 그 분과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 이게 참 맞는 말 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는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3살 된 아 들 로희가 있습니다. 최근에 갑작스럽 게 말이 많이 늘었지만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말을 잘 못했어요. 말을 하더라도 그 발음이 정확하지가 않았습니다. 아 마 들어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로희가 한 말 예를 들 것. 신기 한 것은 저희 부부는 로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로희에게 깊 은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희가 무엇을 원하는지 로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로희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그 아이의평소의 관심사를 알고 기 억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말하는 것
어요. 처음에 돈을 가지고 갈 때는 수 치심이 느껴졌어요. 야 내가 이래도 되 나? 이거 걸리는 것 아닌가? 누군가가 내 모습을 봤으면 어떡하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제가 그 돈을 가지고 친구들과 맛있는 짬뽕 과 탕수육을 사 먹는 순간 사라졌어 요. 맛있는 짬뽕을 입에 넣는 순간 이 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뭐 어짜피 그 사람 부주의로 떨어진건데 뭐, 원래 지 갑 잊어버리면 가장 짜증나는게 신분 증들 다시 신청하는건데 지갑이라도 돌려주는게 어디야? 이 돈 친구들이랑 같이 사용하면 되지 뭐. 이런 생각들 이 머리를 가득 채웠어요.
요. 너무나도 괴 롭습니다. 자괴 감이 듭니다. 그 런데 그게 계속 해서 반복되다 보면 또 그 일이 나에게 유익과 즐거움을 계속 해서 주게 되면 그 달콤함에 빠 져 스스로의 행 동을 정당화시켜 서 이제는 더 이 상 그 불의한 일 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거에 이게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불의한 요. 여러분 이런 일을 저지르고 나면 물론 처음에는 수 자기정당화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 치심이 듭니다. 자신이 불의한 일, 즉 는지 아시나요? 올바르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 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수치심을 주게 자기기만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게 가 돼요. 이 수치심은 인간 속에 있는 양 장 추악한 죄악이죠. 다른 사람에게 자 심이 작동해서 만들어내는 자연스러 기 자신을 정당화 하는 것에서 그치지 운 감정이에요. 그러나 그 불의한 일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이 한 행동이 정 이 나에게 주는 유익을 경험하게 될수 말 의로운 행동이라고 자기 자신을 속 록 우리는 점차 자신의 양심의 소리와 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무시해버 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아무리 우리 리게 돼요. 그럼 어떤 결과가 나타나 가 그럴듯한 이유들을 만들어내서 스 는줄 아세요? 스로를 정당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자 기자신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처음 느꼈던 수치심도 사라지게 되고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이유들을 찾아내며 자신의 행동을 점차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버 하나님은 결코 불의한 일로 기뻐하지 립니다. 그걸 성경은 한 단어로 양심의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의한 일 화인 맞은 상태라고 이야기해요. 화인 들이 내게 유익을 준다고 하더라도 하 맞았다는 것은 뜨거운 불로 지지는거 나님의 공의를 기억하며 그 일들을 끊 에요. 뜨거운 불로 지지면 어떻게 되나 어내는 결단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언 요? 죽을 것처럼 아픕니다. 그런데 계 제 불의한 일들로 기뻐하나요? 그것들 속 지지다보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이 나에게 유익을 줄 때 입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감각이 사 라지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에요. 처 언제 불의한 일에 기뻐하나요? 그것이 음에 불의한 일을하면 수치심이 생겨 자신의 유익이 될 때 입니다. 또 한 가
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깊은 관심이 있 을 때 우리는 알아듣기 힘든 어린아이 의 말도 심지어 말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생물의 감정도 필요를 느낍니 다. 어떻게 진리이신 예수님과 함께 기 뻐할 수 있나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깊은 관심입니다. 우리 는 얼마나 예수님께 관심이 있나요? 여 러분 관심이 있으면 그 관심있는 대상을 위해 반드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됩 니다. 심지어 그것에 쏟는 시간과 노력 은 시간 가는 줄모르고 아까운 줄 모르 게 사용하게 됩니다. 내가 관심있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얼마만큼 나의 관심사가 되시나요? 한주의 삶 가 운데 예수님을 알기 위한 시간과 노력들 이 얼마만큼 있었나요? 한주간의 삶 대 부분 다른 것에 대한 관심들만 가득 가 득 채웠다가 한주에 한 시간 예배 때에 만 예수님에 대한 관 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결코 진리이신 예 수님과 함께 기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분에게 우 리는 마치 그 집사님의 식물과 같은 존 재입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이죠.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놀랍게 운영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시나요? 자신이 창조한 세상의 위대함을 누리시기 위함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하신 인 간을 위해서인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세히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일상은 생각해보면 아주 놀라운 우연, 또는 변수들로 가득 채워 져 있습니다. 당장 이곳에 오는 길에 교 통사고가 나지 않은 것만 해도 우리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토록 큰 관심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 랑을 받는 우리들 역시도 하나님에 대 한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주간의 삶에서 실 제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함께기뻐할 수 있을까요? 저를 따라해보시겠습니 까?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 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무엇인가를 결 정해야 할 때, 누군가와의 만남 전에, 어 떤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생겼을 때 내 생각과 판단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서서 이 질문을 던지는 것 입니다. What would Jesus do? 지금 내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 을까? 무엇이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일 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주간의 삶 가운데서 진리이신 예수님이라면 어 떻게 하셨을까? 를 고민함으로 그 분께 서 기뻐하시는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함 으로 그 분의 기쁨이 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랑해야 예수님과 함께 기 뻐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이 힘든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요? 함께 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아내가 임신 때문에 3개월 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아쉽고 보고싶었 지만 육체적으로는 참 편했습니다. 왜 그런가요? 혼자 있기 때문이죠. 혼자 있 하나님께서 마치 어린 아이를 먼저 보 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함께 내고 뒤에서 챙기면서 앞에서 이끌면서 있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에요. 가는 부모처럼 은혜로 우리의 삶을 인 도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 함께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 에게 지극히 큰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 희생해야만 하기 때문이에요. 쉬는 월 입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원 요일 저는 미친듯이 잠을 자고 싶지만 하시는지 아시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 아내의 윈도우 쇼핑과 외출에 동참해 십니다. 한 명 한 명의 간절한 기도와소 줘야 하는거에요. 왜요? 아내와 함께 기 망의 내용들을 올바른 방법과 때에 이 뻐하기 위해서에요. 아내와 함께 기뻐 루어주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에 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만 합니다. 사 게 지극히 큰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 랑하는 여러분 교회 생활이 힘든 이유
지의 경우는 바로 기준이 잘못 되었을 때 입니다. 여러분 불의와 의로움의 문 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이 무엇 이냐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분명하게 세워야만 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불의한 일이 의로운 일 이 되기도 하고 의로운 일이 불의한 일 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뻐하지 아니하며 후에 자연스럽게 나 와야 하는 것은 의로운 일로 기뻐하며 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더 맞 는 말이죠. 그런데 뭐라고 하나요? 진 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누구에게나 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를 들어 한 사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람이 캐나다에서 대마초를 피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똑같은 지나면 사람에 따라 변합니다. 사람이 한국에서 대마초를 피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같은 대마초를 피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오직 한 가지 예 것이지만 왜 그런가요? 대마초에 대한 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 인 스스로를 소개하시며 내가 곧 길이 준을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소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자 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님과 함께 기뻐 신이 한 말과 행동이 불의한 일이 되기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하나요? 세상의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기 법, 관습과 문화가 기준이 아니라 예 준을 가져야 할까요? 수님이 기준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기준을 이야기합 예수님이 의롭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이 뭔가 이상하지 않으셨나요? 불의를 기 불의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인해
가 뭔가요? 교회는 함께 기뻐하는 곳이 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혼자 믿음 생활 하는 곳이 아닙니다. 주변의 믿음의 사 람들과 함께 하는 곳이죠. 함께 하기 위 해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다 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포기해야 될 때 도 있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이 있어도 다 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해야 하는 희생 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희생이 자발적인 희생이어야 한다는 거에요. 즉 누가 억 지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희생하는 것 이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 스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희생하는 태 도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자발적이 아 니라 누군가가 시켜서 억지로 희생해야 한다면 그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겠지만 자신에게는 결코 기쁨 이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발적으로 희생해야지만 비로서 상대방 뿐만이 아 니라 나도 기쁠 수 있는거에요. 그렇다 면 이런 자발적인 희생이 어떻게 가능할 까요? 해답은 사랑입니다. 뜨겁게 사랑 하면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기 위한 희 생이 가능합니다. 제가 전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데 제 앞에 한젊은 아기 엄마가 있었습니다.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서 캐나다 로 오는 것 같은데 아이가 참 많이 울 었어요. 그런데 그 긴 비행시간 동안 아이를 돌 보고 아기띠로 안고 서 있고 베시넷 시 트에 눕혀놓기도 했는데 한 순간도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 아기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바라보는데 시종일관 너무나도 행복하고 사랑스럽 게 바라보더라구요. 그 분이 참 아름답 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간의 비 행 시간 가운데 우는아이를 케어한다 는 것은 결코 작은 희생이 아닙니다. 그 러나 그 분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희생 하며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아이를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 하는 것이죠. 뜨겁게 사랑할 때 예수님 을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며 그 분과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서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는데 마치 부모 와 자녀와 사랑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여러분 자녀가 먼저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가 보 여준 뜨거운 사랑에 사랑으로 반응하 는 것 뿐입니다. 그 사랑의 차이가 얼마 나 큰 가요? 자녀가 아무리 부모를 사랑 해도 부모의 사랑에는 결코 비교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사랑이라 고 하더라도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깨 닫고 표현할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와의 사랑도 마찬가지죠. 내가 하나님 을 먼저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 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해주신 그 뜨거 운 사랑을 먼저 깨달아야지만 그 사랑 으로 인해 하나님께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 리는 사랑의 크기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그 분께서 원하시는대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노하는 우리의 그 사 랑의 반응으로 인해 기뻐하십니다. 하 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 버지 되시는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 마 반응하는 자녀가 되길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을 준비하며 계속 떠올랐던 찬양이 있 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 이라는 찬양 이에요. 가사는 이렇습니다. 아버지 당 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 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 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 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 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발이 향하 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몸이 아버지의 마음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이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서 그 분의 계명에 순종하고 한영혼이 돌아오 는 일에 쓰임받아 주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저와 여러분의 한주가 되길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