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Report 사비나미술관 겨울기획전
작업실 리포트
(사)사비나미술관 ←경북궁
우110-2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736-4371, 736-4410 Fax 02-736-4372 #159, Anguk-Dong, Chongro-Gu, Seoul 110-240, Korea www.savinamuseum.com 1
조계사↓
백 상 기념관 • 인사 동길 ↓
걸스카 풍문여고 우트 • 안국역● 회 관 • 안국역● 크라운 베이커리
•우체국 • 종로경찰서
원서동→ 낙원 상가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좌측 (종로경찰서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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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elier Report 사비나미술관 겨울기획전
작업실 리포트
김기현
김윤환
김현숙
노순석
드라마고
배준성
백기영
사사 featuring 윤정미
양주방
박경주
박불똥
박찬국
박홍순
방명주
배윤호
애희
오철헌
유근택
이상림
정보영
한생곤
장소 : 사비나미술관 전관 기간 : 2004. 1. 7(수)-2004. 2. 25(수) 주최 : 공간그룹, 사비나미술관 후원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목 차 Ⅰ.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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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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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 김윤환,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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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2: 유근택, 애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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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3: 박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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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4: 배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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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5: 노순석, 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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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6: 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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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7: 김기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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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8: 박홍순, 한생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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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9: 드라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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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0: 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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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1: 이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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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2: 방명주, 오철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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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3: 박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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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대안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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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발제
182
1. 대안 아틀리에, 무단 점거- 김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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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업실의 변동과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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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작 스튜디오의 새로운 개념과 정책적 지향점- 박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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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정 질의 및 토론
194
김윤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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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작가,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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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심 스페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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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유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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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보도기사 및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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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변동과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
김 준 기(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제 작업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작가나 작품에 대해 얘기들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정작 작업실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작업실 리포트>전은 작업실을 매개로 대안적인 미술담론을 찾아나서는 '움직이는 전시'이다. 나아가 그동안 사회학적, 미학적, 담론적 차원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작업실'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뜻에 서 만들어진 전시이다. 더불어 이 전시는 작업실에 관한 다각도의 담론 생산을 시도했다. 향후에 참여 작가들을 비롯해 작업실 전반의 문제에 대한 텍스트와 이미지들을 모아서 단행본을 출판할 예정이다. 전시 진행 기간에 참여 작가들과 함께 하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 램을 진행하여 작가의 출품작과 예술세계 전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및 토론의 결과물들을 담을 것이다. 전시 마지막 날 열리는 이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대안모색>는 기획자, 평론가, 작가가 작업실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진행함으로써, 작업실 담론을 열어나가는 자리이다.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 기본권 같은 걸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제 작업실을 이야기하자. 이제 작업실은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 술가의 고독한 창작 혼을 불태우는 독립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을 생각한다. 이 발제는 이번 전시를 중심으로 작업실의 존재양식의 변동을 토대로 예술지평이 어떻게 넓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작가의 삶과 작업실 공간 재해석 그렇다면 왜 작업실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작업실은 작업을 매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은 예술작품 의 생산으로 직결되는데, 이 점을 두고 하는 일반적인 수사가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지위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 전시는 작업실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간접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작업실을 둘러싼 여 러 가지 모습을 통해 삶과 예술의 현장을 살펴봄으로써, 작품생산과 작가의 삶을 담보하는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공간의 의 미를 재해석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 공장(Factory)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돌아봄으로써,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 되는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화가·조각가·건축가·사진가·영상설치작가 등 시각예술분야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한 회화 및 사진, 영 상, 설치 작품들이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박홍순, 방명주, 사사, 오철헌 같은 이들이 사진 과 3D동영상 작업 등으로 보여준 작가와 작업실의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작업실 작업'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건축적인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배윤호, 백기영, 양주방 같은 이들은 전통적인 작업실의 개념을 벗 어나고 있다. 비어있는 공간, 모퉁이, 사이버공간 등 작업실 공간 개념을 확장 변형시킨다. 작업실의 사회학 우리 사회의 시각예술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해 봄으로써 '작업실의 사 회학'이 필요하다. 또한 예술가의 삶을 담보하는 작업실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휴대-이동식 작업실이나 점거 아틀리에와 같은 대안적인 작업실을 모색해보는 것도 작업실의 사회학을 시작하는 마당에서의 중요한 작업이다. 1) 현장성과 작업실 박찬국이나 드라마고 같은 작가는 작업실을 도시 전체로 넓힘으로써 내밀한 공간에서 열린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예술개 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실이 여주 혹은 경기도, 인천과 같은 지역전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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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개념이나 예술생산의 폭은 모더니즘의 이분법적인 구도와는 다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된다.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이 원화하는 작업실과 전시장의 구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들이 작업실 혹은 작업 개념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문화생산의 장을 열어나가는 활동을 하려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지답사, 역사학습, 문화자료, 사 회적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인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지역문화에 대한 대화'를 시도한다는 그의 프로그램 운용을 통해서 실체화한다. 이러한 예술개념은 문화의 생산과 향유의 장을 작업실 개념에 접목하거나 아예 작업실: 전시장 개념 자체를 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의 작업실 개념은 특정지역의 참여자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문화에 있어서 지역주의의 유 용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참여와 자치와 분권이라는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은 이렇듯 서울이라는 중심과 여타의 지역, 뉴욕 이라는 중심과 서울이라는 변방과 같은 중심과 주변부를 가르는 글로벌리즘의 창궐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담론이 될 수 있 다. 한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문화예술 전문가로 성장한 예술가가 그 지역의 역사, 지리, 환경, 인물들에 능통한 지역 전문가 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생활양식을 보다 현실 속에 뿌리내린 사회의 일 구성원으로 인정 하게 할 것이며, 예술을 사회의 정당한 일 구성기재로 확인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2) 유동성과 작업실 다음은 공간적 의미의 작업장에 관한 대목인데, 김윤환 같은 이의 PMA(휴대형 개인 작업실, personal mobile atelier)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제작해서 공기를 주입하면 공간이 형성되는 작업공간을 구 상한 것이다. 움직이는 작업실 또는 가지고 다니는 작업실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김윤환의 이 작업은 "예술은 움직이는 거야 "라는 패러디 문구를 성립가능하게 하는 노매딕한 발상이 아니겠는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나아가 물리적 장소 에 한정된 건축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이 아닌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되는 작업실 공간의 의미란 그 시사성이 매우 크지 않겠는가. 한생곤의 작업실은 한군데 정주해있는 대다수의 작업실에 비해 늘 움직이며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독특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매번 움직이는 아틀리에에서 다른 상상을 하며 다른 환경과 사람과 도시와 자연을 만나는데, 이때 발생하는 예술 적 유목이라는 발상은 요즘의 관념적인 탈주, 일탈 같은 허약한 예술게임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3) 예술운동으로서의 불법점거 작업실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무단점거해서 작업실로 사용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작업실의 사회학으로 이어질 법 하다. 특히 점거 아틀리에 관한 두 작가의 다큐멘터리는 척박한 환경의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새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참신 한 것이었다. 김기현은 지난해에 청주에서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지역의 여론을 불 러일으켜 점거 직전까지 갔다가 한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이다. 그의 작업은 이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보여주는 설치작 업이다. 현재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김현숙은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점거 아틀리에(squats,스콰트)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인다. 한국에도 점거 아틀리에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척도를 한 단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2002 년의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예술과 스콰트 페스티벌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파리는 바람구멍이 스물여덟개가 있는 바 람난 도시이다." 작업실과 작업실을 근거로 활동하는 작가의 삶과 예술의 문제, 그리고 현장성과 유동성, 그리고 목적의식적인 예술운동으로 서의 점거작업실의 문제 등을 토대로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을 살펴보는 일의 첫걸음을 가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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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작업실 리포트
김기현 김기현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서원대와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0회의 개인전과‘JAALA’전,‘한중교 류’전 등 300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기현의 설치 작품 <대안 아뜰리에 "무단 점거">는 지난 해 여름 청주에서 점거 아뜰리에를 꾸릴 계획을 세워 서 실행 직전의 단계까지 진행했던 작가의 개념과 경험을 토대로 다섯단계로 나누어 변동하는 작품이다. 다섯 단계란 "화사했다 - 접했다 - 동의했다 - 설득과 협박 - 나를 외부에서 보기"로 이어지는 점거 프로젝트의 단계를 은유적으로 담은 것이다.
예술은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사회의 공공영역이다 반세계화(anti-globalization)의 봉화(烽火)를 올린다 노동자와 농민을 보호하는 것처럼 예술가도 보호하라 21세기 남한의 예술가는 대다수 생활보호대상자다 스스로를 저항행위에 구속시킴으로써 자유를 찾는다 행위의 현장과 상황은 언제나 진실하다 천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추방하라
작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필연적 창작의 공간인 동시에 삶의 공간으로의 동시적 역 할을 한다. 작가는 공공의 예술 취미를 충족시켜 대중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써 의 예술활동은 당연히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공의 건물은 당연히 무 단 점거가 되어야 한다. 이 전시는 다섯 단계의 형식을 가지고 전시가 진행된다. 점거를 위한 과정의 일련으로 진행되었던 내용들을 과거적 시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Step 1. 화사했다 대학 졸업 후 화려한 작가로써의 등단은 만만치 않은 벽들이 존재하고 도시 속에서 왜 소한 작가는 시나브로 매몰되어가고 화사했던 짧은 시절을 그렇게 화사했다. Step 2. 접했다 정보는 우리에게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공간의 필요성은 무단 점거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사실을 접했다. Step 3. 동의했다 도시로 입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부분이 가장 크다. 그들과의 내용합의는 점거 에 함께 하는 동의로 가능성과 힘을 함께 얻는 것이었다. Step 4. 설득과 협박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청과 정보경찰은 분주히 작업을 시작했고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대화의 수준과 협박의 수준이 동시에 부유하는 시간 들이 있었다. Step 5. 나를 외부에서 보기 스스로를 평가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내 안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밖에서 나를 보는 모습을 가지고 점거는 곳곳에서 행해져야 한다. 점거아뜰리에에 관한 명상-화사했다, 오브제 설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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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김윤환은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파리 스콰트 페스티벌(얼터나시옹, 파리, 2003)’,‘이라크 전쟁 반대 퍼포먼스[낙서](파리 뽕피두 센터 앞 광장, 2003)’등의 프로젝트와‘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조국의 산하전’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윤환의 개인휴대용아뜰리에는 유대성, 유연성, 자율성 개념을 가지고 대안적 아뜰리에의 전형을 만들어나가 는 설치 작업이다. 휴대형 아뜰리에(Personal Mobile Atelier 이하 PMA)는 점차 늘어가는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활동에 대응하여 시공간의 구애 없이 창작할 수 있는 전천후 아뜰리에다.
“작업실을 들고 다닌다?” “그 많은 그림들과 조각들은 어떻게 하고?” “혹시 자신의 작업실을 개인박물관처럼 꾸며 놓지는 않았는가?” “비싸기 때문에 아뜰리에는 외곽도시로 간다?” PMA는 휴대성, 유연성, 자율성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건축되었다.
'PMA'라는 조어는 Personal Mobile Atelier 라는 용어 그대로‘휴대형 개인 아뜰리에’ 를 뜻한다. 이 기획은 기존 아뜰리에가 고정되어 있어 예술공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는 점과 작업실 운영비용의 과다로 인한 작가들의 경제적 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 으로 제시된 것이다. 또한 정보와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활동이 늘어나는 추세에 발맞추어 예술가의 창작공간의 다양성을 실험하며 관객과 능동적으 로 소통할 수 있는 예술방법을 개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하여 시대성의 반 영, 휴대성, 기능성 등이 고려되었다. PMA는 거리와 공원, 도심과 농촌뿐만 아니라 까페, 전시장, 공공건물 등의 실내장소에 도 머물면서 전시와 창작을 병행하며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다. 또 무선통신망을 이용 하여 다른 지역의 작가들, 시민들과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술가의 배낭에 실려 자동차, 비행기, 수송선 등의 기존 운송수단을 이용하여 이 동하면서 창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작업실의 안과 밖을 이용하여 자신의 회화작품이나 드로잉을 전시할 수 있으 며, 작가의 취향에 따라 멀티미디어 작업을 하거나 영상을 튼다든지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Personal Mobile Aetlier, 혼합재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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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김현숙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중이다. 2회의 개인전을 열었고,‘유럽아트 퍼포먼스의 만남(유럽 사회 포럼, 파리, 2003)’,‘국제 예술퍼포먼스 콩크레(오픈 스페이스, 베를린, 2003)’등 다수의 단체전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김현숙의 설치영상작업 <예술과 삶의 실험실, 스콰트>은 프랑스 파리의 스콰트 아티스트의 활동을 다큐형식의 비디오와 설치, 사진등으로 돌아보면서 현대 예술가에게 있어서의 작업실- 예술이 생산되는 곳-의 의미를 재조 명 한다. 또한,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써의 스콰트보다는 그들이 가진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저항적인 예술정신 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전시될 것이다. 현대 예술에 있어서 작업실로 상징될수 있는 예술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 견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이 설치된다.
비디오 설치 : 9개의 큐브형 모니터를 설치하고, 그중 몇개의 모니터에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스콰트예술가들의 다큐 비디오가 상영된다. 이 다큐들은 프랑스의 스콰트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큐브형 모니터 설치 의 옆에는 3대의 TV에서 김현숙 의 비디오 아트“삶과 예술의 실험실-스콰트”이 상영된다. 사진설치 :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은 100여장의 아티스트들의 사진을 벽면에 부착설 치한다. 이 폴라로이드 사진 작업은 김현숙이 만나는 작가들에게‘ 당신에게 있어서 작 업실은 어떤 의미 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후, 사진을 찍고 작가 자신이 그 사진 위에 질문에 대한 의견을 적은 예술적 대화와 소통의 실험작업 이다. 단순한 사진 작업이 아닌, 사진과 텍스트가 함께 하는 작업으로써, 김현숙과 작가들 간 에‘아뜰리에’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 기록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것은 완결된 하나 의 작품으로써의‘전시’가 아닌‘만들어질 어떤 것’을 향해 가고 있는 예술적 실험이 라 할수 있다. 2003년 9월부터 시작한 이 작업은 프랑스 파리와 베를린에서 진행되었 고, 현재도 서울에서 진행중에 있다. 김현숙은 이 전시를 위하여 프랑스에서 일시 귀국 하여, 설치 및 전시를 할 것이다. 예술과 삶의 실험실-squat, 영상설치, 사진, 폴라로이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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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석 노순석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고, 파리 소르본 1대학에서 조형 예술학을 전공했으며, 4번의 개인전과 ‘혼돈요인전 (파리10대학 전시관, 낭테르, 프랑스, 2001)’,‘비트리살롱전(비트리 쉬르 쎈, 프랑스, 1995)’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노순석의 회화설치작업 <내안의 천사>(캔버스에 아크릴릭)는 "160 x 70cm / 117 x 91cm"의 두 캔버스 작업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 벽면 분위기를 재현하는 메모와 에스키스 등 부착해서 화가의 작업실을 간접 체 험하게 한다.
"나에게 있어 아뜰리에는 내 속에 살고 있는 천사의 품속과도 같다. 나는 매일 그녀의 품속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달아줄 날개를 만든다. 날개를 완성한 날, 그녀가 날아 오르는 걸 보고 기뻐하다가 이내 다시는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고 슬픔에 잠기는… 공간이다."
내 안의 천사, 160×70cm, 117×91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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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고 드라마고는 인하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으며,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 있다.‘카이 홀맨 미술하자 캠프, 2001’,‘디지털 tool & jam camp, 2003',등의 문화기획과 ’낮은 공공미술전, 관훈갤러리, 2002‘, ’몸으로 느끼고 놀이로 표현하는 미술, 연수문화원 갤러리,2003‘,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작은 울림, 2003‘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드라마고는 <제8회 인천인권영화제> 디자인 제작을 위한 작업인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라는 디지털 포 토 몽타주 작업을 실사출력해서 전시장에 걸고, 그 작업에 쓰인 여러 가지 이미지 소스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 어낸다.
하나의 작업과 아뜰리에의 관계 기록되어진 장면들은 지금도 그 순간의 연속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다. 때 론 계절이 달라져 밭 위의 식물들은 누렇게 누워있을 수도 있고, 노란 꽃은 씨를 내 리고, 마른 가지만 새우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겨울이고 보면 붉은 내복을 입고 언 덕길에서 건너편 아파트가 새워진 이웃동네와 사람들이 오르는 좁은 길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이제 재개발로 얼마 남지 않은 집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소스 이미지들은 인천의 풍경들이다. 오랜 된‘부평삼거리역의 겨울아이’ 는 3년전 겨울 지하철역에서 해맑게 웃으며, 역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던 아 이의 모습이고, 가장최근의 사진인 송림동의 식물들은 지역공공문화 프로젝트인 ‘송림동 그림수필’의 과정에서 지역의 청소년들이 촬영한 것들이다. 인천은 내가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고, 나의 성인기의 역사가 남겨져 있는 공간이며 또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가 있는 공간이다. 여러 방식의 공동작업 속에 서 기록된 이사진들은 단순한 기록 사진이 아닌 각기 개인과 지역의 역사와 감상이 다양한 각도로 연결되고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표현물들이다. 아뜰리에 안의 고독한 작업에 대해 대학시절 친구들과 토론을 버린 일이 있다. 지금 시대에 스스로 고독한 작업자로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고귀한 작품을 꿈꾸는 것이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일인가. 작업의 공간, 사고와 상상의 공간, 삶과 작업의 중첩 된 공간이 아뜰리에라면 사회의 변화와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한 아뜰리에는 지역 과 사람들이라는 현장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다시 재구성하고, 사고 하는 작업실은 그 현장의 하나다. 작업과 사고, 삶의 중첩이 작업실에서만 만들어지 지 않고, 지역의 다양한 의미와 사건의 현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이 성찰과 표현의 형태는 평면이나 디지털로 불리지 않고, 각종 공동 활동 프로그램, 수집된 물품과 기존의 다른 용도의 재료들로 만들어지는 생활과 작업공간 구성, 공동체성 을 지닌 삶의 이해와 대안적 사회에 대한 구상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 몽타주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아닌 다른 수많은 지역과 사람들, 궁극적으로 개 인의 삶과 사회의 연결성을 찾아보는 작업의 과정이며, 이에 동참한 시선들의 의미 도 함께 존중되어야 하겠다. 대안적 아뜰리에는 그곳이 작업실일 경우, 이런 공공성 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독립성과 함께 공유된 공간(물품과 기술 등)이며, 그곳이 지역현장일 경우, 각기 다른 개인들의 삶의 과정이 존중될 수 있는 자세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표현활동의 시도와 자본에 왜곡된 삶의 환경에 대해 주체적인 저항과 개선을 의지하는 상호 이해된 일상의 공간이다. 몽타주 제작에 동의하여 주지 않은 몇몇 분들께 미안하다. 이것은 누구의 소유도 아 니다.
편집 : 드라마고 소스 이미지 제공 : 소해진 (송림동 거주주민)‘붉은 옷의 아줌마’/ 김지선 (송림동 거주 청소년)‘붉은 양동이에 노란 꽃’/ 지경 (퍼포먼스 반지하)‘만석동 골목 풍경’ / 조제연 (송림동 거주 청소년)‘자라고 있는 밭’/ 인천장애인이동권연대‘이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 드라마고 (퍼포먼스 반지하)‘빛 바랜 달력의 숫자들’,‘부평삼 거리역의 겨울아이’ ‘버려진 , 개구쟁이 할아버지 인형’ ‘승기천을 , 나는 갈매기'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 디지털 포토몽타주 공간구성, 2004(소해진, 김지선, 지겸, 조제언, 인천장애인이동권연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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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 박경주는 1968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독일 브라운슈바익 예술대학교 졸업 및 베를 린 예술대학교를 수료했으며, 3회의 개인전과‘인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2003)’,‘Art Project Plug-In, PlugIn (바젤, 스위스, 2003), 이미지 엑트 (일주아트하우스, 서울, 2003)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경주는 <아름다운 과일>(16미리 실험영화, 컬러/흑백, 38분, 1998)에서 4인의 젊은 여성작가인 송정임, 정영 숙, 소윤경, 노석미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찍은 영상작업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과일'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제작된 일종의 프로젝트 기 록영화다. 이 영화는 '1000와트 필름 프로젝트' 로부터 탄생했다. 1000와트 필름 프로 젝트의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1995년 독일유학 중 잠시 한국에 방문할 때 내가 만났던 4명의 젊은 여성 작가- 송 정임, 정영숙, 소윤경, 노석미-들의 모습을 수퍼에이트 필름에 기록하면서 시작됐다. 2) 이후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에 유학중 인 옛 친구 김선하의 모습을 기록했다. 3) 1996년 베를린의 *악치온스 갤러리에 프로젝트를 응모했다. 프로젝트 내용은 위의 작가들을 베를린으로 초대하는데 전시회 오프닝전에 약 한 달간의 시간을 갖고 만나서 작품제작도 함께하는데 이 과정을 모두 필름에 기록하는 것이다. 즉 전시장이 다큐멘 타리 영화촬영장이자 작품생산의 만남의 장이 되는 것이다. *악치온스 갤러리는 작가공동체로 이루어진 대안공간이다. 전시장이 위치한 곳은 옛 동베를린의 경계구역이다. 악치온스 갤러리에 적을 두고 있는 작가들이나 퍼포머들, 인디음악가들 모두 치열하게 고민하였던 당사자들이다. 통독이된 상황에서 이들은 원 래 야채가게였던 자리에 행동주의 미학을 고민하는 대안적 공간을 새롭게 꾸려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1000와트 필름 프로젝트로 응모했을 때도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실 험성에 주목해줬다. 4) 베를린에 도착한 작가들 중 김선하는 기획의도에 맞게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그 녀는 프랑스가 주 원산지인 살라미소시지를 가져와서 이것을 이용해 자궁을 상징하는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정영숙과 노석미는 여러 가지 제반사항을 고려, 한국에서 작품 을 완성했다. 전시회 기간 중에도 김선하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녀는 살라미소시지를 한 개씩 작품에 매달았다. 이 행위는 관객들에게 일종의 퍼포먼스로 다가왔다. 이 모든 과정은 16미리 영화로 기록됐다. 5) 전시회가 끝나고 프로젝트 전 과정의 촬영된 필름은 영화적으로 재구성됐다. 편집된 필름에 맞춰 실험음악 작곡가 볼프강 인데어 뷔쉐가 영화음악을 완성했다. 6) 완성된 필름은 악치온스 갤러리 주최로 열리는 베를린 청년 실험예술 페스티벌에서 상영됐다.
그날 삶의 고통을 이겨내며 작품활동에 전념하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이 렇게 묻기보다는 그들이 십여 년 전 아우성치던 그 자리에는 지금 누가 서 있을까 반문 해보고 싶다. 1995년 젊은 여성 작가가 처했던 어려움은 오늘의 그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아름다운 과일을 감상하면서 고통의 호소에 귀기울 이지 말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어떤 '행동'의 아름다움에 주목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낯설도록 실험적인 이 영화가 조금은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도록. 아름다운 과일, 16미리 영화, 컬러·흑백, 38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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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박불똥은 경남 하동에서 출생했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실과 발언' 회원이었으며, 여덟차레 개인전을 열었다. '20대의 힘'전, '민중미술15년전'을 비롯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박불똥은 20여년의 작가생활 기간에 작업실을 짓고, 옮기고, 다시 짓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경험해온 작업실과 작가, 작업의 관계에 대한 소회를 작업실 건축 도면, 사진, 메모지 등의 오브제를 통해 보여준다.
"작업실 (이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는 미망) 때문에 십 년 넘도록 허송세월한 뒤, 마침내 작업실을 짓(기로 결심하)다. 작업을 해야 작가이고 작가라면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 작업실이 없(어서 작업을 못하)는 자는 작가가 아니다? 아뿔싸,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
100일 몽, 오브제 설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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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국 박찬국은 경기도 여주에 밀머리 미술학교를 열고, 공교육과 사회교육의 통합적 관점에서 본 공공미술 프로젝트 들을 진행해왔으며, '서울 미디어 시티 2000 subway priject', '서울 지하철 6호선 월드컵 경기장 역' 외 다수의 공공 공간 작품을 설치했다. 박찬국은 밀머리미술학교를 운영하면서 주변환경과 미술학교의 친화과정,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의 작업실과 소통공간의 경계 허물기 등에 관한 이미지를 담은 스틸사진들을 슬라이드쇼 형식으로 선보인다. 슬라이드쇼에 담긴 이미지들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따뜻한 왼손’(장애 비장애 어린이와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참여한 미술을 통한 소통 프로그램으로 2003년 6월부터 3개월간 진행되었다)과 관련한 이미지를 비롯해 작업실 주변의 풍경 과 일상을 담은 사진 등이 있다.
"밀머리 미술학교는 여주군 점동면에 있는 폐교를 임대하여 스튜디오 겸 공공미술 프 로젝트 공간으로 쓰고 있다. 1년6개월째다. ‘밀머리’는 학교가 있는 동네 이름으로‘미르’(辰)라는 순 우리말에서 나왔다. ‘별머리’혹은‘용머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강,산,계곡이 있고 넓은 텃밭도 있어서 도시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 하지만 현재까지는 비싼 임대료에 비해 공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03년 1년 동안 아트캠프, 따뜻한 왼손, 고구마 프로젝트 등 지역과 함께하는 프 로그램들을 진행 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 하였다. '불필요하게 바쁜 세상에 쉼표가 되자’던 계획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새해부터는 공간을 낭비하지 않고 잘 놀 수도 있는 꿍꿍이를 짜느라 주변 사람들을 괴 롭히고 있는데 밀린 임대료 독촉장이 달뜬 기분을 깨놓는다. 역시 한국 사회에서‘호모 루덴스’로 살아가려면 무모함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아직도 내공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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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밀머리미술학교, 영상, 14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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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주 박명주는 1970년 부산에서 출생했고, 서울예술대학 사진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했으며, 1회의 개인전과‘사물과 상상 (갤러리 룩스, 서울, 2003)’,‘Charity : 선물 (쌈지 스페이스, 서울, 2003)’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방명주는 노석미 홍지연 두 젊은 여성 화가의 작업실을 대상으로 구석구석 숨겨진 공간을 찍어 모자이크 방식으 로 진열함으로써, 마치 퍼즐과도 같은 작가의 일상과 예술행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지 몇 장의 사진으로 작가들의 삶과 작업공간을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 다. 그렇다고 더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영상으로 보여줄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응결 된 사진 몇 장이나 흐르는 영상 몇 분으로는 작가들의 은밀한 삶과 작업공간을 오히려 의식적으로 은폐하거나 신비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들의 작업공간 구석구석을 포착하여 완성된 하나의 사진작품을 만들겠다는 욕심은 포기하였다. 다만 작가들의 삶과 작업공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을 찾기 위해 나의「퍼즐_puzzle」연작은 시작되었다.「퍼즐_puzzle」은 하나의 완결된 상(像_image)을 아직 구축하고 있지 않으며, 보는 이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파편화된 사진 몇 장을 임의로 나열하여 보는 이 스스로가 상(像_image)을 조합할 수 있는 비교 적 자유롭고 능동적인 환경을 연출하는 까닭이다. 이로부터 보는 이의 이해와 오해가 복잡하게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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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puzzle_노석미, 21×29.7cm(19), 디지털 프린트, 2004 퍼즐 puzzle_홍지연, 21×29.7cm(19), 디지털 프린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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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 박홍순은 1965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했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다자인을 전공했으며, 1회의 개인전 과‘동강별곡(가나아트, 1999)’,‘고요한 나라(대안공간, 1999), ’12월 풍경이다(갤러리 조흥 200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홍순은 요절한 조소예술가 류인과 구본주의 작업실 사진을 보여준다. 두 조소예술가는 서로 스승과 제자의 관 계이자 작업적 동반자로서의 관계 뿐만 아니라 요절이라는 기막힌 인연으로도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박홍순은 두 작가 사후에 이들 작업실을 담아 두 작고 작가간의 관계를 상기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구본주 그와 나는 친구이다. 그것은 작품에서의 마음이다. 그의 작업에 대한 열정이 늘 내게 어떤 충동을 야기한다. 때로는 감정으로 와 닿는 구본주를 곁에서 보는 심정은 확신을 줄 수 있는 작가로 믿고 있을 뿐, 별 할 이야기가 없다. 단지 그의 작품에 대한 순수함과 뜨거움은 명쾌한 나의 대답일 뿐이다. 1996.6 류인
나는 행운아다. 류인을 기억할 수 있는, 나는... 나는 행운아다. 조각가로서 그와 사제지간의 인연과 그 기억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된, 나는... 나는 참 행운아다. 이제 진정 그가 내게 바랬고 내가 원한 길을 같이 걸어갈 수 있게 된, 나는... 나는 참 행운아다. 2003. 5. 구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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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 작업실, 27.5×18.5cm, 42.5×27cm, 디지털 프린트, 2001 구본주 작업실, 82.5×34.5cm, 디지털 프린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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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호 배윤호는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포츠담-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를 졸업했으며, <라네즈>, <ADSL>, <디오스>등 다수의 CF와 창작오페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을 연출했다.
흐르는 몸 삶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만큼 사색과 집중을 위한 공간, 나만의 작업실이 절실해진 다. 이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물리적 장소 마련을 위한 재화, 작업실 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여러가지 물건들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소유하면 할수록 쌓이게 되는 물질이 주는 무거움은 자유롭게 흐르는 사유형식 과 늘 새롭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짓누르는 장애 요소가 된다. 이러한 위험성에서 벗어 나기 위해 소유의 개념을 반(反)소유, 무(無)소유로 전환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주변상 황을 상호네트워크, 관계지향성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집 한 칸 마련하는 일이 요원한 이 도시에서 오히려 도시 전체공간과 관계맺음으로써 나만의 흐르는 몸의 공간, 작업 공간이 형성된다. 자유스럽게 공간을 넘나들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고,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행위들…이 때, 작업이라는 행위와 작업실이라는 물리적 공 간은 무한히 확장된다. 내게 있어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팽창하고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축소로서 내가 머무는 최소한의 작업실은 나의 피부를 둘러싼 하나의 껍질, 즉 외피로서의 옷이다. 몸을 둘러싼 껍질인 옷은 나로 하여금 행위를 결정하는 출발점 이 된다. 이는 내 몸이라는 현재의 위치와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나의 몸이 머무는 이 순간, 이 곳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껍질을 입고 움직이는 것은 수평 / 수직적 기억의 움직임들과 함께 하는 욕망의 행위들이다. 내 몸이 자유스럽게 이곳, 저곳에 나 의 의지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사람과 사람, 몸과 몸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내고 그 관계의 범위와 형태, 관심의 집중과 폭에 따라 작업실의 크기가 변화한다. 결국 우리에 게 주어진 인생 시공간 자체가 작업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흐르는 몸, 22×22cm(1), 24×16cm(3), 디지털프린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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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성 배준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6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서양미술사 (공평 아트센터, 서울, 2000), ’아를 포토페스티발 -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아를, 프랑스, 2000)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배준성은 대학 작업실에서 누드 실습 시간의 풍경을 담은 사진 위에 비닐을 덮고 누드 모델에게 옷을 그려넣은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누드를 그리는 사람들과 모델간의 긴장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화가의 옷, 89×139cm, 비닐 위에 오일, 사진 위에 비닐 부착,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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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백기영은 1969년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했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 를 졸업했으며, 4회의 개인전과‘흑백사진’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쾌테인스티튜트, 캅슈타트), 'Art Cologne 2001 November' 퀼른 미술 메쎄 - WDR (독일 서부지역 방송국), 퀼른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백기영이 예술행위의 기초개념 혹은 예술창작을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기울 이기 시작한 첫 작품이다. 8 개월동안 한 평 남짓한 나무바닦이 놓여진 구석에서 생활 하면서 뭍은 때와 낙서들로 이루어진 이 작업에는 작가가 등장 할때 마다 조금씩 상황 이 변한다. 8개월이 지나면 온통 까맣게 가득찬 낙서들로 어떤 순서로 어떤 글이 씌여 졌는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 낙서들은 주로 예술과 삶에 관한 것들이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민거리들이 가득차 있다. 그는 이 공간에서 사 유하고 예술을 창작했다. 어찌보면 예술을 창작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작가의 몸 을 담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아뜰리에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아뜰리에가 작가의 삶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며, 작가의 예술만을 중요하게 생 각하던 우리의 시각이 작가의 삶과 일상으로 옮겨 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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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 8개월 동안 책 읽고, 생각하고, 먹고, 놀며 작업하기, 32×30cm, 행위기록사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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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 사사는 2003년 쌈지 스페이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이머징 Ⅳ : 미나와 44 (쌈지 스페이스, 2003)’,‘가족오락 (가나아트, 2003)’,‘아트스팩트럼 (삼성미술관, 2004)'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사사는 자신이 입주해있는 쌈지스페이스 스튜디오를 작업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일상 속에서 접한 물건들을 버 리지않고 모아두는 수집광이다. 그의 사소한 또는 소중한 물건들로 가득찬 작업실은 수집한 물건들을 가득 쌓아 놓은 편집증적인 수집 취미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 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의 정과 담당의사이며, 사진을 찍은 이는 작가 윤정미있다. 사사는 작가 윤정미를 featuring 개념으로 공동작업작업자로 끌어들여 작가와 작가 사이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사사 featuring 윤정미, Things that make my life worth living. C·print, 193×151cm,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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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방 양주방은 1966년생 동갑내기인 양석윤 주인숙 부부 작가의 이름이다. 양석윤은 홍익대 회화과와 독일 뮌스터미 술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주인숙은 독일 뮌스터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양주방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양주방의 사이버작업실은 3D작업으로 이루어진 인터랙티브 공간으로 관람객들은 마우스 클릭을 통해 구석구 석 정교하고 기발하게 꾸며진 작업실 공간을 탐색한다. 부엌이나 침실과 같은 일상 생활공간은 물론 작업실과 자료실 등에 비치된 각종 소도구들까지 정교하게 세팅함으로써 또 다른 환경이 작업실 체험을 만들어 준다.
사이버 작업실, 3D 컴퓨터 그래픽,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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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희 애희는 1979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한성대 회화과 졸업 및 동대학원 재학중이며,‘쪽’전 (관훈갤러리, 서울, 2003), 'intersection'전 (갤러리 deep , 2003)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성대 대학원에 재학중인 애희는 학교 작업실 공간과 개인 작업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종의 금기와 검열에 대 해 풍자적인 카메라샷을 구사한다. 야간작업, 취사금지, 전열기사용, 사행행위, 애정행각 등이 그 예이다. 작업 실이라는 자유로운 공간과 학교작업실이라는 규제가 많은 공간의 차이 같은 것을 회화화 하는 작업니다.
"작가가 개인이 가장 오랜 시간 생활하며 자유로운 작업을 하는 곳. 그곳은 사회규범을 떠나 스스로 하면 안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내 작업에 있어서의 Inspection은 기존의 검열제도와는 조금 다르다. 법적, 윤리적, 사회 규범적 기준이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분에 따라 '해서는 안되는 것' 가령 학교에서는 수위아저씨의 기분에 따라, 작업실에서는 작업실 주인이나 종종 내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 양태가 가려진다. 각기 개인적인 '벨 꼬임' 정도에 따른 것으로써 기존의 '강권적으로 사전에 검사하여 통제하는' 검열제도에 대한 희화적 패러디이다." Inspection, 60×42cm(8), photo work,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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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헌 오철헌은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2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C&H photo 대표이다. 오철헌은 중광스님, 이석주, 최진욱, 조은영 등과 같은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작가의 잡업이미지와 작업실 의 분위기를 제대로 연결하는 정통적인 사진작업을 선보인다.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미술전문지 사진 기자로 일 하면서 파악해온 작가의 특성과 공간의 특성을 전형적인 장면으로 끌어내는 오철헌 특유의 시각에서 나오는 어 법들이다.
아뜰리에 에피소드- 최진욱, 38 49cm, RP인화, 1997 아뜰리에 에피소드- 조은영, 48.5 37cm, RP인화, 2000 아뜰리에 에피소드- 이석주, 38 49cm, RP인화, 1997 아뜰리에 에피소드- 중광, 48.5 37cm, RP인화,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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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유근택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10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여기있음 (인사 미술공간, 2002)’,‘한국현대미술 40개의 퍼즐 (갤러리라메르, 2002)’,‘화가는 그린다 (전갤러리, 2002)’등 다 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업은 작업공간과 일상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자신의 아파트 거실을 표현함으로써, 아이의 놀이공간으로 변화한 생활-작업 공간을 감당해야 하는 자신의 아내인 여성화가를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업실이자 생활공간 이자 가족의 소통공간인 거실에 담긴 어지러운 편린들이 화면가득 등장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속에서, 그것이 매우 낯설고 기묘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아주 일 상적인 풍경이라도 어느덧 아이에 의해 어지럽혀진 공간을 대할 때면 당황스러우면서 도 나를 환기시키는 힘이 있음을 본다. 그것은 일상 이라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조 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도, 기묘하게도 자연의 힘의 논리와 닮아 있다. 나는 바로 그러한 지점에 관심이 있다. 이 작업은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오는 궁금증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어쩔 수 없는 난제들, 425×150cm, 종이에 수묵채색,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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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림 이상림은 한양대 공대 건축과와 산업대학원 및 New South Wales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공 간그룹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작으로 시민안전체험관, 대구체육고등학교, 서울중앙우체국 등이 있다. 이상림은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공간)"은 생명성의 소통 공간인 자궁에 빗댄 작업실 공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골판지나 비닐튜브의 재질감을 살려 은폐와 내면의 공간으로 상징되는 작업실 공간을 개방과 소통, 생산 의 공간으로 열어나가는 공간 변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womb space, 220×160×160cm, 골판지, pvc비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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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영 정보영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서양미술사(공평아트센터, 2000)’,‘산.수.풍.경 (엘렌 킴 머피 갤러리, 1999)’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being in the path, 0000cm, oil on canvas, 2003 정보영은 특유의 오일 페인팅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질문들을 이어나간다. 그는 작업실이라 는 공간 혹은 임의적으로 규정된 공간 속에서 촛불로 표상된 가치(작가가 믿고 있는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이것은 작가의 주체를 내세우기 보다는 소통의 통로로서의 작가의 위치를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무대는 자의적인 규모의, 어느 정도 조명이 비춰진 빈 공간이다. 이 공간의 경예를 짓는 벽 가운데 하나는 객석을 향해 하나는 저 멀리 보이는 풍경 또 하나의 공간을 향해 열려있고, 이렇게 경직된 틀을 형성한다. 무대의 공간은 언제나 개로운 배열을 기다리고, 따라서 지속적인 변화를 꿈꾼다. 이 공간은 잠재적인 힘으로서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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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in the path, 60×42cm, pencil on paper, 2003 being in the path, 194×130.3cm, 캔버스 위에 오일,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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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생곤 한생곤은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소형버스를 개조한 아뜰리에 작업실을 이용 해 전국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한생곤의 아뜰리에는 그 자체로 삶의 현장이자 작가적 실존을 담고 있다. 미니버스를 개조한 그의 작업실에는 기본적인 생활공간으로서의 조건들이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작업을 위한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비정주의 삶 을 살기위한 매우 구체적인 수순을 밟았다. 그는 이 버스 작업실을 이용해 여러 곳을 다니면서 거기에서 만나는 풍광과 삶을 담아내기도 하고 굳이 그림으로 옮기지 않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그곳의 땅과 사람들과 함께 있도록 하는 것 자체로서 삶의 의미와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한다.
세상이 나에게 보낸 편지 1, 2, 3, 4, 오브제 설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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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일획, 77×57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 옥순이 누나, 77×56.5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 아버지의 등, 56.5×76.5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 소금밭의 추억, 56.5×76.5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 57
Ⅱ. 작가와의 대화
작가와의 대화 1: 김윤환, 김현숙
2004.01.08 목요일 pm.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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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20명 작가의 전시에 작가와의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이 전시가 보여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야기 되는 것과 같이 진행이 됐으면 좋겠다
김현숙: 돈이 없다는 것은 농담이에요. 나는 이와 같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재밌어요. 이것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구
는 욕심입니다. 이 전시의 가장 큰 목표는 '자 이제 우리 작업실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는 것입니다. 작업실을 이야기하면 작가의 존재 양식이 나옵니다. '
하고 많이 못했던 것이라 생각이에요. 프랑스는 현실이 주는 것에서 예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으며, 박스에서 그렸던 것은 개인적으로 매체
예술은 움직이는 것이다. 작업실은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시각예술의 개념과 영역이 더 넓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작업실 논
의 변화를 원하던 상황이었어요.
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윤환, 김현숙의 경우 이번 전시의 핵심 같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작품에는 움직이는 작업실, 점거 하
관객: 예술이라고 이름 지어 지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어요. 현실문제에 대해 의식이 있는 작업을 하는 분들이라 생각해
여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작업실이라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닫힌 미술이 아닌 열린 미술을 만들어 가는 데에 좋은 자
요. 그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금방 이뤄질 수 있기도 하지만, 파리에서의 작업도 그곳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 예술가 '작업
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을 하고 도망간다.'라는 것을 즐거워서 하는 것에 보는 사람도 즐거워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하지 않은가요? 과연 일회성 벽보 붙이기나 퍼포
김현숙: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제가 전시한 작품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린 후 평소에 작업했던 것을 슬라이드로 보여드리면서 말씀드릴게요.
먼스를 통해 관객과의 리액션(reaction)이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 궁금해요.
실제로 저는 파리에서 스콰트라고 하는 불법점거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리포트 형태로 보여드
김현숙: '빈 벽을 공격하라'에 대해 더 말을 하자면, 전시를 보러 가려면 전시장을 찾아야 해요. 저는 그런 것이 아니라 관객의 삶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
리는 것으로 준비했고요. 스콰트운동은 70년대 말에 준비하여 80년대 초에 시작되어 20년이 되었어요. 실제로 파리에는 빈 건물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는 예술 작품을 원했던 것이죠.
것을 대기업이나 시에서 투기의 목적이나 여타의 목적으로 건물을 사용하지 않아요. 그러나 가난한 예술가들은 월세를 낼 수는 없고 작업은 해야 하기
관객: 하지만 그것은 예술가의 입장이 아닌가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예술품인지 낙서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면 이것을 다양한 관객들
때문에 작가들이 작당을 해서 불법으로 점거하여 작업을 하면서 '여기는 예술의 공간이고 문화의 공간이다'라고 선포를 하죠. 예술의 도시 파리라고 하
에게 어떻게 전달하는 것인가요? 전달에의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에요. 일반 시민들이 예술 행위를 인지해야 하는데 간혹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인지 행
지만 정말 예술을 위한 곳인가, 예술을 생산해내는 작가들이 필요한 공간을 제공해 주지 않는 도시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위를 약화시키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단순히 이곳이 닫힌 공간이 아니라, 콘서트, 퍼포먼스 등 예술의 다양한 장르들이 이안에서 펼쳐지면
김현숙: 포스트 모던의 개념을 말하고 싶어요. 예술의 권위가 없어지면서 예술의 위기를 맞았죠. 무엇이 예술이며 비예술인지 논의되고 있어요. 소수의
서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지역주민도 행사를 같이 진행해요. 예를 들어 열린 어린이 연극 교실, 미술/무용 강좌를 열면서 지역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명망 있는 미술 관계자들은 당황했을 거예요. 하지만 나와 같은 예술가는 그러한 현상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었고, 관객들 역시 누
것으로 다가가죠. 실제로 보면, 허름하고 우리식으로 할렘가 같은 느낌이지만, 미술이 화이트 큐브 안에 들어있고, 흙 묻은 발로 들어가면 안 되듯 멀다고
구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그것을 예술인지 비예술인지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미술사가나 비평가의 작품 평에 끌려 다니는 비주체적인 상황이 아니
느끼는 것과는 달리 바로 우리 옆집에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고, 제작 중에 가서 볼 수 있는 굉장히 환영을 받고 있는 공간이에요. 물론 사회적인 문
라 관객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사실 구분할 수 없는 아노미 상황을 주지만, 다양한 예술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예술 느
제들은 있어요. 불법이기 때문에 강제 철거당하는 일은 있어요. 계속해서 이 친구들은 정부당국 언론 매체를 통해 싸우면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죠. 뒤의
끼고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리오따르의 말을 빌리면, 이는 '모더니즘 이후 아방가르드적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빈 벽을 공격하라'의
영상은 1990년대 파리 시 곳곳에 20여개의 작업실이 있었는데, 그 작업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요.
경우, 무책임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식의 접근을 시도한 거예요. 이것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 시켰
우선 영상 작품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것은 강제철거에 대한 기록을 한 영상으로, 그곳에서의 강제철거는 우리 느낌처럼 비장하지 않고 일종의 페스티벌
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어요.
처럼 이뤄져요. 레지스탕스 페스티벌 시위와 전시가 같이 이뤄지는 것, 단순한 작품생산 외에 예술가들이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죠. 직접 찍은 사진
관객: 개인적으로 건물에 관심이 많은 터라, 스콰트라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탄광촌 철암처럼 스콰트의 개념을
및 폴라로이드의 경우 9월부터 파리 베를린 서울에서 만난 작가들과 아틀리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찍은 것으로 장시간에 걸쳐 이뤄진 작업이며
우리나라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공간이라 생각해요. 사비나 미술관의 경우 합법적 건물이라고 했을 때, 스콰트 아티스트로서 이곳에서 직접 과감하게 스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에요. 벽면에 붙여진 지도는 2001년 파리 현대미술관에서 26개의 스콰트와 페스티벌을 여는데, 그때 만들어졌던 지도에요.
콰트작업을 할 수 있지 않았나요? 그렇게 함으로써 스콰트에 대한 개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았나요?
우리나라는 이러한 지도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죠. 제도와 다양한 예술 공간이 서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현숙: 스콰트는 굉장히 다양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제가 하나의 행위로 보여주면 스콰트가 마치 그것인양 받아들이는 한국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리
저는 서양화를 전공했고 프랑스로 간지 3년, 프랑스에서는 예술가들과 많이 어울리고 예술행정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유학중이에요.
포트 형식으로 자제하여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이곳을 점거하고, 오픈 식에도 점거를 하려 했지만, 타인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했어요. 스콰트
대학을 졸업 후 대중미술운동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94년 당시 같은 생각의 작가들이 있었으며 늦바람이라는 시민미술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같이 한 후
의 본 개념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스콰트는 방치된 빈 건물을 점거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기에, 이곳에서의 점거가 이슈
프랑스로 가게 되었죠. 현재는 퍼포먼스, 영상, 사진작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평소 작업에 관해서는 프랑스에서 작업했던 것을 보여드리면서 이야기할
화 내지 재밋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 리포트 형식을 택했어요.
게요.
김준기: 로베르네 집과 알테나시옹(alternation)은 어떻게 다른가요?
유학 초기에는 '빈 벽을 공격하라'라는 프로젝트를 김윤환 선생님과 같이 진행했어요. '평화와 전쟁'에 관한 고민을 푸아티에 개인전에서 보여주기도 했
김현숙: 로베르네 집은 공동작업실이라는 개념이 커요. 작가 개인의 작업실들이 모여 있는 것이죠. 저항정신이 있는 진정한 의미의 스콰트는 아니라고
고. 2002년 아트 퍼포먼스 콩그레에서는 '테러'라는 주제로 108배 작업했어요. 다음으로 계속해서 머리카락, 쌀, 향으로 작업한 퍼포먼스의 한 장면이
프랑스 현지에서도 이야기해요. 개인의 생존을 위한 저항은 있지만, 사회적 저항의 개념은 부족하다고 제가 속한 스콰트 운동가들은 이야기하죠. 알테나
고, 평화라는 것을 주제로 쓰레기를 가지고 작업한 것, 자동차와 달리 비폭력적 성격의 자전거를 소재로 한 퍼포먼스, 미선이와 효순이 일이 있을 무렵 에
시옹은 벨기에의 스콰트가 허물어진다고 하면, 연대 투쟁도 가요. 스콰트에는 개인전을 며칠 앞두고 작업실이 없어서 온 친구들도 있고, 사회/정치적인
펠탑에서 촛불 의식을 행했던 장면, 전쟁반대 시위 '피 흘리는 성조기' 제작하여 시위했던 장면이에요.
저항 메시지를 담은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음은 파리시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로, 파리 시에서 만나게 되는 포스터들을 찍었어요. 그냥 포스터가 아니라 시민들이 낙서를 한 포스터를 찍는
김준기: 그 공간에 시민들이 찾아가 페스티벌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인가요?
거죠. 거기엔 삶의 패러디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유럽 사람들은 광고에 대해 공격적인 사람들도 있는데, 낙서인지 광고인지 모르게 광고를 공격하기
김현숙: 네. 페스티벌은 굉장히 일상적이에요. 큰 페스티벌은 일년에 한번 열리고 각 스콰트마다 적어도 한달에 한번씩은 열고 있죠.
도 해요. 기존에 있는 이미지에 자기의 낙서, 스탬프를 찍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소재로 김윤환과 준비하고 있는 프로
김준기: 스콰트에도 네트워킹이 있어요? 뭐라고 부르죠?
젝트 소개해 드릴게요. 이것은 환경적, 비폭력적인 도구로서 자전거를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김현숙: 있어요. 인터넷 홈페이지도 있고요. 아틀리에 스콰트, 거주 스콰트, 스콰트운동가 중 작가주의로 나가는 스콰트 집단 등이 있죠. 실제로 알테나시
입니다.
옹의 대장은 작품 판매를 하지 않고 가명을 쓰는 등 철저하게 상업적인 것에 반기를 들죠. 왜냐하면 과거 메디치가처럼 후원자의 요구에 의해 작품이 종
김준기: 파리 유학 후 영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1세기 시대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깊은 뜻이 있어서 인가요? 재정과 같은 현
속되는 시기는 지나 현재는 자본에 의해 예술이 종속되는 시기가 왔다고 하면서, 비록 가난하게 예술을 하지만 내 작품을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키고 싶
실에 대한 위치 때문에 빈 벽에 대한 공격과 같은 작업을 한 것인가요? 과연 현실적 위치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작업을 했을 것인가요? 조
지 않다는 식의 전위적인 개념을 가진 작가가 있어요. 또한 고분 분투해서 아주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요. 자기 사는 곳이 따로 있고,
건에서 온 작업 변화인가요?
작업하는 곳이 따로 있는 사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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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김기현 작가의 작품을 보면 청주시내 스콰트 계획이 무산된 경우를 볼 수 있어요. 한국 같은 경우 청주의 실패사례가 있지만, 서울에서 그러
PMA를 통해 그러한 것을 보여줄 수 있나요?
한 스콰트계획을 시도할 계획이나 의향이 있으신가요?
김윤환: 저의 작업 맥락은 없어요. 다양한 작업을 했으며, 근래의 작업 경향은 영상과 퍼포먼스를 주로 해요. 앞으로 저의 작업 방향은 기동력 있고
김윤환: 일단 나는 한국에서 스콰트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허용치가 너무 없거든요.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
유연하면서 컨텐츠에 가까운 작업이기 때문에 작가의 기호품 같은 것은 보기가 힘들 거예요.
죠. 예술 분야에서도 이러한 스콰트가 아주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를 좀 더 풍요롭게 하고 한국사회에 여유를 줄
제가 이것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보여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PMA를 가지고 대중들과 만날 거예요. 궁금한 사람들은 들어가 볼 수도
수 있는 바람구멍의 요소로 기능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초반에는 형편없이 깨지더라도 시도를 한번 해 볼 생각이에요.
있을 것이고요. 여기에 그림을 붙이거나 영상을 상영할 수 있죠. 그러면서 시민들과 서로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 거예요.
김준기: 남은 체류기간 동안 파리의 스콰트의 개념을 어떻게 접목하실 거죠?
관객: (이전과 같은 질문) 예술이라고 이름 지어 지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어요. 현실문제에 대해 의식이 있는 작업
김현숙: 현재 스콰트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스콰트친구들에게 바람을 넣고 있죠. 과거에는 개인의 재산으로 작업실의 유무를 따졌다면, 이제
을 하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그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금방 이뤄질 수 있기도 하지만, 파리에서의 작업도 그곳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는 집단으로 작업실 공간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에 대해 스콰트아티스트들의 조언을 듣고 있어요. 청주의 경우 합법적인
한다고 했을 때, 예술가 '작업을 하고 도망간다.'라는 것을 즐거워서 하는 것에 보는 사람도 즐거워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하지 않은가
케이스이지만 안타까워요. 합법적인 시도와 불법적 시도도 같이 일어나 시민들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형성되었으면 하고, 이렇게 되었을 때
요? 과연 일회성 벽보 붙이기나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과의 리액션(reaction)이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 궁금해요.
작가들도 훨씬 책임감 있는 작업을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윤환: 그런 것이 있으면 저 또한 알고 싶어요. 하지만 저의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의 반응에서 제가 오히려 더 반응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퍼포먼스
김준기: 정리하자면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예술가에겐 작업실이 있듯이 노동자들의 생산 양식처럼, 예술가들의 예술 양식이 있는 것이죠. 예술
나 시민과 미술을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 할 때, 저는 사람들의 예민한 부분을 건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문화가 잘 발생 안한
양식의 개념화 문제에 있어서도 작업실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김윤환 선생님과의 대화가 이어지겠습니다.
다고 생각하여,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작은 것이라도 예민하게 만들어서 문화가 발생하게끔 만들고 싶었죠. 아니면 관객이 그 순간만 만족해도 좋
김윤환: 안녕하세요, 김윤환입니다. 이번 전시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저에겐 아틀리에가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공간적으
다고 생각했어요. 정치가는 '앞으로 어떻게 갑시다.'라고 대안을 제시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예술가는 거기까지 책임지다
로 한정되어 답답했고, 큰 작업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울이라는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이번 작업을 준비했죠. 작가
보면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건들기만 할 뿐이며 그 건드림 속에서 사람들을 알고 싶고, 요즘 사람들이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나의
가 움직이는 것이 따라 움직이는 작업실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으며, 휴대용을 위해서는 작고 가볍고, 부드러웠기에 휴대성, 유연성, 자율성의 세
감수성은 어떠한지, 그 감수성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를 알고 싶어요.
가지 기본 컨셉으로 작업했어요.
관객: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세요? 그리고 파리 유학 후 영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1세기 시대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깊
유연성에 대해 말씀드리면 소재, 접었다 폈다하는 유연함은 사회적 추세와도 맞는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유동적인 직업, 사람들의 직업 활동 모습,
은 뜻이 있어서인가요?
모바일 장비를 이용한 직업 활동의 확대 경향이 있어요. 예술가의 작업실 또한 그러하리라는 예견, 희망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자율성에 대해
김준기: 같은 맥락에서 파리에 가서 바뀌게 된 작업 성향, 변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드리자면, 무엇이 한국에서 화가의 생활과 파리에서의 생활을 바
설명 드리자면, 자본이나 상품은 전 세계적으로 현재 이동이 가능해요.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속에서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저는 예술가의 한사
뀌게 했나요?
람으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동 가능한 것이 아니라 소수에 해당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어요. 체류를 위해선 까다로운 조건을 넘어야 하는 것
김윤환: 저는 파리에서 2년 반간 체류하다가 왔어요. 모든 것을 털어서 가서 시원하게 쓰고 왔죠. 서울은 여러 분야에서 빽빽한 도시에요. 이에 프랑
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데에 장벽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예술가로써 아틀리에를 독립적, 자율성을 가져야
스는 상대적으로 널널하게 느껴졌어요. 저도 심리적으로 아노미,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어요. 말도 못하면 못 먹는 상황에서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출발했죠. 무작정 있다가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외국에서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호텔에서 숙식을 하지 못할 상황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 이것을 펼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으며, 작업도 하
비디오를 시작한 것은 사실 시류에 편승해보고 싶었어요. 그림에 큰 진전도 없다고 느낀 저는 일단 놀아보고, 시류에 편승하듯 영상을 시작했죠. 그
고 작품 발표도 할 수 있죠. 아직 실천은 하지 못했지만 원래 저의 목표는 어디든지 가서 실천을 해보고 싶은 맘입니다.
래서 최초에 만든 영상이 '레몬'이라는 영화에요. 무언가 찍어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퍼포먼스도 정말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되었어요. 몸이
김준기: 그러면 평소엔 어떤 작업을 주로 하시나요?
근질거렸고, 한국에서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경험해 본 상황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었는데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퍼포먼스를 우연히 하게 된
김윤환: 최근 작업부터 과거 작업 순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보시는 것은 아트 스페이스 '휴'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성냥개비'의 한 장면, 카페 시월에
거죠. 너무 재밌었어요. 퍼포먼스의 개념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이은 퍼포먼스를 하다가 지금은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어요.
서 진행한 퍼포먼스 '레몬'과 스콰트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블록게임'의 장면, 그리고 김현숙 선생님과 함께 게릴라 전시를 진행한 모습이에요. 다음
김준기: 영상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은 빈 상자를 소재로 한 전시고, 다음은 과거에 했던 작업으로 자화상 유화 작품,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뇌'를 소재로 한 유화작품입니다.
김윤환: 저는 앞으로 어디를 가던 지 PMA를 지참할 계획이에요. 과태료까지는 물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정치가는 예술적으로 무언가 해보고 싶고,
이것은 지구, 환경에 관한 문제를 소재로 한 작업입니다. 요약하자면, 저는 뚜렷한 작업세계는 없어요. 거기에 관한 질문을 어려워하죠. 저는 싫증을
저 같은 예술가는 정치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요. 정치나 예술의 공통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있다고 생각해요. 능력 있는 정치가가 '사
잘 내고 많은 것에 기웃거리는 편이에요. 저의 작업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어요.
회는 이렇게 가야합니다. 이렇게 갑시다.' 라고 제안하여 국민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목표제시하고 그것을 향해 이끈다면, 예술가는 사람의 마음을
관객: 작품은 쉽게 접어지나요?
미술이라는 매체로 움직여 보고자하는 데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정체성이 너무 다르다는 점에 차이가 있어요. 예술가는 제시하고 이끌지 않고, 사람
김윤환: 사실 이 작품은 샘플이에요. 원 개념의 재료인 PVC로 된 PMA는 제작 중에 있어요.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작가에게도 보급할 수도 있고요.
의 마음을 건들기도 하고, 문제제기를 해보기도 하는 활동을 하는 것에서 정치가와 정체성이 다르죠. 가까운 미래에 저는 모 후보의 선거 참모로 참
공기 주입 방식이라 일반 텐트보다 가볍고, 사용이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텐트 대용으로도 사용가능해요.
여하면서 백 여 일 동안 준비과정, 고민, 재료, 자료들을 이용하여 전시로 풀어내보고 싶어요. 이것이 상반기 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객: 작가가 생각하는 아틀리에의 개념에 대한 질문을 드리자면, 평상시에 예술가로서 생각하는 아틀리에에 대한 개념은 무엇인가요? 김윤환: 작업실은 고충의 공간이에요. 전 가난하고 욕심만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이 무지 많거든요. 서울 바닥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는 것은 어려워요. 저는 제가 가는 곳마다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무명작가이며 아직 서툰 작가이기에 많은 욕심을 현실화시키기에 어려움이 많죠. 그 중 하나가 창작 환경이 아틀리에를 생각하게 된 것이며, 아틀리에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작업실이 제게 준해서 움직였으면 좋 겠어요. 욕심 부리지 않는 최소한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관객: 일반인이 예술가의 작업실을 놀러 갔을 때, 고정된 사고로 보자면, 작가의 기호품 등을 통해 작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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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2: 유근택, 애 희
2004.01.09 금요일 pm.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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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안녕하세요. 두 번째 작가와의 대화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작가 애희와의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동양화과를 졸업해서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동양화가 갖고 있는 내면 지향적인 것들, 이를 테면 모필, 먹이 갖고 있는 것들이 다분히 방안에서 이뤄지는
애희: 저는 한성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으로,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처럼 작업실을 가지고 있거나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사건들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다분히 정신적인 개념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동양 미술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이요. 제가 옛
아니라 작업실이 지정된 공간적 여유 없이 옮겨 다녀야 해서 작업이 단편적이고 중구난방 식이에요. 그래서 여기 가져온 작업도 일관성이 없어요. 다른
날부터 갖고 있던 그림에 대한 생각은 조금 더 인간적인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거예요. 마침
곳에서 다른 작업을 하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죠. 간편하게 단편적으로 작업한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작업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하려니까 모필을 가지고 직접 나가서 현장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 거리가
저는 작업하고 싶은 것이 많으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품 제목이 검열이듯이, 제가 검열당하는 입장을 담아냈어요. 현재 얹혀 활동하는 작업실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에서 당하는 제제 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봤어요. 이번 전시에는 2~3년 전 작업한 것들을 선보였어요.
김준기: 평소엔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작업실이라고 이야기 할 때, 작업실은 지금 현재 제가 하는 작업과 많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동이 잦은 관계로, 작품의 주제 역시 무겁
유근택: 고등학교시절의 작업부터 말씀드릴게요. 당시에도 제가 관심이 있었던 지점은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집념이었어요. 이것은 고1때 야경
지 않은 것이 많은데, 단번에 사진 한 컷으로 담아내는 작업이 그것이에요.
을 표현한 작품으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야경을 많이 그리게 되었죠. 하교 후 화실을 가는 중에 느낀 감성적인 순간들을 스케치하여 화실에 가서 그리는
평소작업에 관해 말씀드리면, 우선 저는 고무장갑으로 만든 장화, 축구공, 야구공, 전선 등을 가지고 다양한 것들을 만드는 즉흥적인 작업들을 해요. 처음
방법을 취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생각이나 지금의 생각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요.
엔 고무 재료에서 시작하여 여러 재료를 이용했죠. 근데 드로잉을 가지고 물체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점도 있었어요. 프로젝트성 작업도 해요. 서로 다른
대학교 시절에 그렸던 작품으로는 안동 하회마을 담장, 달, 풀, 나비와 의문을 갖고 있는 고양이를 테마로 작업한 것이 있습니다. 신화적인 언어를 갖고
프로젝트들을 시도하는데, 예를 들어 동성애에 관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든 프로젝트, 분장/화장을 통해 매일 사기를 치는 프로젝트 등이 있어요.
작업을 했죠.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에요. 평면이라고 하는 것, 동양화 물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평면이 공간을 띄울 수 있다는 것,
다음으로 사진 작업을 소개해드릴게요. 사진 작품에는 연출한 사진이 많아요. 교육제도의 무상함(화장실 화장지로 놓여진 법전)을 사진에 담아본 것, 연
이것은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 교묘히 엉켜 서술적, 서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저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애편지 쓰레기를 연출하여 찍은 사진, 만지면 독화살이 나오는 갑옷 속옷 등 치한방지책을 연출한 사진, 신디 셔먼의 작품을 패러디한 작업, 명품을 선전
것들이 많았어요. 이 작품을 한 후 작업 진행이 잘 안될 정도였죠. 평면성이라는 것과 이야기라는 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작업의 초점이었어요.
하는 잡지 사진을 후배들과 함께 연출하여 찍은 사진이에요.
그 이후 방위 군복무기간도 있었지만, 그림을 계속 그렸어요. 많은 작업을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여기서 고민하던 것은 그 당시만 해도 동양화단이
현재는 '핀 업 걸-글래머러스한 여성'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과거의 '핀 업'은 예전 이성끼리의 만남이 어려웠던 전쟁 상황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
라고 하는 것은 물론 현대미술을 끌어들여서 추상주의라는 것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본질적인 회화는 없었을 때였죠. 지금 이야기하면, 그 당시
면, 지금의 '핀 업'은 대중문화를 많이 흡수, 수용하는 상황에서 문화평론가들이 말하는 대중문화의 천박한 부분을 적극 수용, 편승하는 입장에서 제가 핀
의 미술 사조라고 한다는 것이 물론 수묵운동이라는 것이 있고 서울대쪽에서 일어난 묵조회도 있었어요. 이는 추상표현주의를 어떻게 동양화에서 편입
업 걸이 되기로 했죠. 핀 업 걸이 될 때에는 단순한 핀 업 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대 문화의 아이콘이 많이 묻어 있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저는 제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은 사실상 정신주의에요. '어떻게 하면 동양화라는 정신주의를 추상화화 연결시
가 모델이 되고, 연출을 하고, 사진을 찍고 그 결과물을 사진 사이트에 게릴라처럼 유포를 하고 도망가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죠.
킬 수 있을까'죠. 사실 저는 이것에 신물이 났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제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 자체가 고민이었죠. 또 하나는 동양화에서 이뤄지
이를 통해 대중문화의 이미지 확산, 분열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고 있는 화론이나 미학적인 접근이 거의 전무하다 시피하다고 할 수 있어요. 소위 말해 현실미학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병자호란이나 조선 중
핀 업 걸과 같은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을 보면 저의 모습이 계속 변해요. 신디 셔먼과의 차별성을 말하자면
기나 후기 때, 물론 조선 후기는 철학과 그림이 연결되어 나타난 시기이지만 그 전후 때를 보면, 굉장히 우리가 생각해 볼 사항이 많아요. 만약 일제시대
저는 특정 대상과 특정 지역의 여성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모습도 얄팍하고 천박할 수도 있고 이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저 또한 이것에
상황이라고 하면, 그 시대를 드러낼 수 있을 만한 동양적인 회화가 없어요. 이유 중에 하나는 교묘하게 또 하나의 정신주의로 숨어 들어간다던지, 하나의
편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를 통해 저는 이제야 제가 누구인지,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인지 연구하는 단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기
교묘하게 시대를 회귀하는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에요. 현실미학을 읽어낼 수 있을 만한 미학적인 기
때문에 제 자신을 찍는 것입니다.
재가 없다는 것이죠.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옛날 700년 전 썼던 사역의 화역법, 기운생동을 이야기해야만 하고, 골법용필을 이야기해야만 하고, 시대는
프로젝트 팀을 조성하여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릴까 하는데, 요새는 유행도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현재는 객관적으로 다양성을 그대로 수용하
엄청나게 변하지만 계속 그 시대의 미학을 거쳐야만 이야기되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이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관건이었는데, 아마 그 지점 때문에 제가
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이든, 유행이든 흐름을 파악하여 같이 공부하려는 생각으로 현재 작업을 오래 진행할 예정이에요.
방위를 제대하자마자 그 지점에 엄청나게 질문을 던진 것 같아요. 도리어 인간적인 면, 이를테면 인간의 정서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했고 계속 망치는 이
제 작업을 요약하자면, 저는 연관성 없는 작업을 해오고, 짧은 작업 기간을 가졌지만, 저의 감수성, 관심사에 관한 질문을 한다면 저는 너무 많은 것들에
유는 거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미학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고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의 부재일 수도 있어요.
대해 관심이 있으며, 그러한 관심사를 풀어내는 데 있어 너무 많은 방법들을 사용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교묘하게도 많은 것들이 저에게 확신과 답을 줬어요. 거기엔 소멸해가는 풀밭과 같은 자연이 있었죠. 여기서 꽃이 피어있는 것도 아름답지만 소
관객: 현재는 사진작업만 하나요?
멸해 있는 것 자체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에요. 자연이라고 하는 것과 꼬마아이들의 낙서의 관계는 제 화론을 정립해 나가는 중요한 계기였어요.
애희: 비디오 작업도 해요. 방법은 작업에 맞게 다양하게 하는 편이고요. 비디오 작업의 경우 길게 작업하지는 않아요. 작업 발표의 기회는 많이 갖지 못
이미 만들어져 있는 화론을 걸어가는 것은 쉬워요. 하지만 그린다는 행위는 철저하게 앞을 보고 가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죽음과 항상 가까이
했어요.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상 작가라는 존재는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죠.
김준기: 작업실은 언제 확정되나요?
이 시기에는 대학교 시절에 그린 어법인 나비, 인물 등이 3년 후 90년도가 되서야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대학 때 질문을 던졌던 것들이 조직적으
애희: 현재 선배 작가의 작업실에 하숙비를 내고 얹혀살고 있어요. 하지만 작업실 없이 유동성 있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젊은 시절 고정
로 만들어졌죠. 지금 보시는 작업은 40m에 달하는 작업으로, 대학 졸업 후 저 자신과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역사,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
된 작업 없이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작업을 해 보는 것은 이제 콤플렉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를 또다시 가게 된 것도 제가 관심 있는 작업을 찾기
었어요. 사람이 살아나갈 수밖에 없는 시간적인 사건, 군중, 시간의 질주, 유적 개념으로 작업을 했죠. 걸프전시 학살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고, 일제
위해 간 거예요. 이제는 힘들게 찾고 싶은 생각보다는 모르는 대로 흘러가면서, 찾으면 찾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재밌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은 여유가 생
시대 신문이 오버랩 되는 것을 작업한 것이에요.
긴 것 같아요.
재료에 대해서도 고민했는데, 화선지라는 재료를 어떻게 에너지화 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물성 쪽으로의 접근, 마티에르에 실증을 느낀 저는 먹만
김준기: 작업실은 움직이는 공간입니다. 작업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힘겹게 짊어가는 것이 아니라 형편이 되지 않더라도 작업실 없이 이끌고 가는 것도
을 통해 표현해 보고자 했어요. 먹, 종이, 색 자체를 중요시하고 싶었죠.
좋지 않은가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을 보면, 물리적 공간에의 구애가 아닌, 개념적이고 움직이는 작업실로의 사고의 전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기를 그린 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자면, 아기는 순수한 폭력성과 광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에요. 살아있는 아기는 폭력적인 이미지로 표현해야 해요. 이
그러면 계속해서 유근택 선생님과의 대화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는 순수성과 연결되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의 낙서는 완성이 없지만 점을 찍는 순간 자연이며, 완성이에요. 제가 작업한다는 것과 완성, 어린이의 낙
유근택: 안녕하세요, 유근택입니다. 저에게 작업실이라는 것은 마루바닥에 장난감들이 흩어져있는 공간이에요.
서와 같은 것은 폭력성, 순수성, 자연성과 연결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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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93년까지 진행된 역사관련 작품은 소재주의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저를 대변하는 느낌이 들지 않고 공허했죠. 그래서 다 없애버리고 저의 주변, 저
죠. 연필로 표현 할 수 있는 공간 개념과 먹으로 표현되는 공간의 개념은 다르며 해석자체도 달라요. 연필로 드로잉을 하다보면, 석고 데생에서처럼 자신
와 맞닥뜨리는 장면과 직면하고 싶었어요. 지하철을 그린 작품은 98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지하철의 속도개념을 극대화시킨 작업이에요. 주로 모
도 모르게 평면적으로 해석되게 되요. 물론 이는 제가 생각하는 연필입니다.
필로 작업을 하는데, 저는 모필 소묘를 통해 선으로 읽고, 더듬어 나가는 작업을 해요. 모필 소묘라는 더듬어 나가는 장치를 통해 대상을 구체화하는 것이
먹은 사유의 그림이며 또한 산수화라는 것은 결국 미학적으로 좀더 들어가면 캔버스가 젯소로 발색 장치를 만든다면, 화선지에는 색이 기어들어가는 것
죠.
이라고 할 때 스며들어가는 색채의 상태를 더욱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보는 시각적인 세계가 아니라 시각적인 세계를 뚫고 들어가는 작가의 정
저는 세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리면 그릴수록 생 빅투아르 산이 '내 선을 타고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는 말은 굉장히
신적이고 체험적인 경계가 묻어나오길 바란다는 것이 동양화에서 말하는 사유의 개념인 것이죠. 이는 물성이 갖고 있는 특성에서 비롯될 수 있는 미학이
동양적인 발상이죠. 지금은 일반적이지만, 모필 소묘는 굉장히 낯선 단어였어요. 제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동양적인 태도가 아니었어요. 물론 정선이 취
라 생각해요. 즉 재료에서 비롯된 미학이라는 겁니다. 연필로도 분명히 공간개념을 불러낼 수 있어요. 하지만 물성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개념에서는 이러
했던 지점과 연결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모필 소묘라는 것,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호흡이라던가, 저와 대상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이야기하
한 물성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는 모필 소묘라는 지점은 굉장히 생소한 것이었어요.
김준기: 예, 지금까지 작가 유근택과 애희와의 작가와의 대화를 가져보았습니다. 아직 학생의 신분에서 안정된 작업실을 찾아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
현재는 목판작업을 하고 있어요. 한편 저는 작업하다 답답함을 느끼면 자화상 작업을 많이 해요. 먹을 통해 저를 뚫고 나가고 싶을 때 자화상 작업을 하는
고 있는 애희 작가와 작업실을 일종의 증폭 장치로 여기고, 꾸준히 작업을 하신 유근택 선생님을 통해 또 다른 작가의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본 자
것이에요. 자화상이 전시된 방의 경우 자아의 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밖에도 창문 연작, 정원 연작, 길, 울타리 연작, 맹인 연작과 정원 속 최후의 만찬
리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을 표현한 작품, 6자 회담을 표현한 작업 등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번 전시 작품도 이러한 흐름에서 연결될 수 있어요. 작가들에게 작업실은 각자 다를 것입니다. 저는 지하철에서 작업을 많이 했어요. 지하 철에서의 작업을 작업실로 끌고 와서 증폭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준기: 작업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유근택: 작업실이라는 개념으로 한정시키자면, 저는 작업실 자체를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밖(외부)에서 작업을 한 후, 안(내부)에서 증폭시키는 작업을 합 니다. 작업실은 일종의 증폭장치죠.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궁금증을 찾다가, 작업실로 들어와서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김준기: 다시 말씀드리자면, 작가 유근택에 있어서 작업실의 의미는 작가가 세상에 대한 경험, 수집된 정보를 가공하는 공장, 아트 팩토리, 예술가의 공장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작업실은 세상과 예술행위를 이야기하는 공간이며, 확장시켜 생각하면 버스로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동안 먹과 종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작업을 한 후, 작업실로 들어와 큰 화법으로 증폭시키는 것이죠. 강의를 시작한 후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빈 방에 혼자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은 불쌍해 보였는데, 놀라웠던 것은 화판과 종이가 와있었다는 것, 이는 작가가 천생 어디서나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 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죠. 꼭 작업실에서만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실이라는 주제로, 가부장 화가 유근택의 시각에 포착된 장면은 어지러운 방바닥과 주부화가인 아내와 아이, 아내의 작업실입니다. 그래서 기획자인 입장에서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난제>라는 작품이 가정의 일상을 주제로 포착한 것으로 아파트 일상도 작업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와 기획자의 작업실에 관한 생각은 다르거나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근택: (웃음)동의해요. 관객: 작업에 대한 내용적인 이야기보다는 작업과정상의 의문점이 생기는데요, 그림 작업이 몸에 배어 있으신 것 같아요. 일상에서 생활 중에 무언가 생 각이 나면 즉흥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이것이 작가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 노력을 통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기질이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유근택: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제가 그림을 많이 그린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그림은 그린다고 할 때는 제가 열심 히 그려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제가 드로잉을 한다고 할 때는 무언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질문을 던진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을 하는 방법, 방법론에 의한 드로잉 일 뿐, 그림 자체의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 먹을 가지고 하는 작업도 흔해요. 이번 아트포 럼 기재의 글을 보면, 연필로 드로잉을 한 후 먹으로 옮길 때 연필로 그릴 때의 개념과 먹으로 그릴 때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내용이 실려 있어요. 그 래서 시작한 것이 모필 소묘에요. 연필은 철저히 평면적인 도구이며 합리적인 계산이 필요해요. 하지만 모필이나 먹은 철저하게 공간적인 작업이에요. 연필로 그린 것을 다시 먹 작업으로 옮길 때에는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요. 제가 먹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제가 처음에 대상을 해석한다거 나 제가 느낀 것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모필로 좀더 더욱 적극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죠. 관객: '먹'이라는 재료가 공간적인 재료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셨으면 해요. 예를 들어 번지고 스며드는 것 때문인가요? 연필 소묘도 원근 법을 통해 공간적인 표현은 가능하지 않은가요? 유근택: 공간적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먹은 스며드는 것이라는 개념, 먹 자체를 까맣게 발랐을 때와 유화물감을 까맣게 발랐을 때를 보면, 칸딘스키가 말하는 검정, 죽음을 의미하는 감정과 먹을 연결시킬 수 없거든요. 이는 다른 개념이에요. 그래서 해석 자체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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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3: 박찬국
2004.01.14 수요일 pm.04:00 김준기: 오늘 작가와의 대화에 참가하신 작가 박찬국 선생님은 80년대 이래 다년간 공공미술활동을 하셨고, 여주에 있는 폐교에서 밀머리 미술학교라는
품이에요. 조경 개념의 작품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러 개의 분수가 시간차에 의해 작동되는 오락적인 기능이 가미된 작품이죠. 지하철을 이용하는 회사
작업실로 이용하고 계십니다. 그 작업실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공공미술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술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작업실
원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제작했어요. 일종의 놀이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아이들이 작품을 위해 설치된 센서
은 작가 내면의 공간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소통의 장, 열린 교육의 장이라는 의미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를 뽑아 버려서 분수가 작동이 되지 않던가, 이 곳에서 파업시위를 하던 노동자들이 작품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만
화가의 역할, 예술가의 이 내밀한 작업실 공간에서 작업실 사이로 단선적으로 오가는 관계가 아니라 그 관계를 뛰어 넘는 양수겸장으로 겸할 수 있는 지
해도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죠. 이 지역을 관리하는 담당부서에서 오는 문제도 있었는데, 그 지역일대의 조경을 관리하는 공원 녹
위로 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대중의 미술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앞으로도 더욱 좋은 전시를 해주길 기대하면서 세 번째 작가와의 대화를
지 과와 작품이 소속되어 있는 문화관광부가 서로 다른 부서이기 때문에 공원 녹지 과에서 관리를 하지 않았던 측면이 그것이었어요. 심지어 작품이 파
시작하겠습니다.
손이 되고 있는 데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작가로서 관리의 측면을 소홀히 했다는 것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끄럽죠.
박찬국: 안녕하세요, 박찬국입니다. 저는 밀머리 미술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작업의 중심 공간이며,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고민하
이것은 시골 분교 작업으로, 김은석 부부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폐교가 될 위기에 처하자 일종의 운동을 벌였는데, 그에 지원의 차원에서 그 곳 학생들
고 있어요. 그러면 우선 평소 작업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과 함께 작업한 겁니다. 작업은 약 5년간 진행되었으며, 학교 교정의 계단에서 이뤄졌어요. 이 작업과 운동을 계기로, 이 학교는 정부로부터 '학부형이 원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핵심은 제가 80년대부터 '어떠한 관심을 가져 왔는가.'입니다. 제가 해온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설명 드리면, 우선 지금 보시는 것은
하지 않으면 폐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1호로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당시 학생수가 37명에 이르던 학교가 이제는 (이론적으로라도)
97년 창원에 있는 한 조그마한 아파트 프로젝트에요. 엘리베이터 없이 6층으로 된 아파트에서 이뤄진 작업인데, 이곳은 700세대가 살고 있는 곳으로,
본교가 돼야 한다고 주장될 정도로 시설이 좋아지고 인원도 늘어났죠.
엠조형 운영시절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여 이뤄진 작업이에요. 벽화 작업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을 흙으로 떠서 벽면에 붙여
관객: 음, 관련해서 잠시 질문 드리면, 밀머리 미술학교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파트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기획했어요. 아파트라는 공간은 대체로 처음 입주하면 입주자는
박찬국: 오브제작업보다 좀 더 사람들의 생각과 만나고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작업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작업을 통해 더 생각이 확산 될 수 있는 것이 무
그 공간을 자신이 처음 이용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 곳이죠. 우리나라의 상황 상, 이와 같은 작은 아파트의 경우 부동산 문제로 인해 금방 떠날 곳으
엇인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학교를 들어가서 공교육과 만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가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이 확장되었죠. 그곳은 작가 공간으로써도 중요
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획한 작업의 허가는 '주민이 전부 참여하는(만드는) 조건'아래서 내려졌어요. 시에서 지원을 받았고,
한 공간이면서, 공유를 하는 지역문화 공간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임대료를 내고 있지만, 지역 문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고, 이곳은
20대 후반의 여성 현장 소장의 협조로 진행될 수 있었어요.
일방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 교육이 이야기 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보았습니다.
흙을 직접 반죽하여 시범도 보이고 18세 이하의 어린이 청소년을 비롯한 1000명의 손을 찍었어요. 아파트의 세대는 대개 30대 중, 후반의 가장이 중심
그 지역에서 이뤄지는 공공생산, 예를 들어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은 공공시설 조성과정에 주민과의 소통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주민과의 소통이
이 되고 자녀들이 중학교 2학년이 제일 나이가 많을 정도의 가족 구성을 이루고 있었어요. 벽은 낮고 긴 형태였기 때문에, 벽화로 제작하기엔 무리가 있
이뤄지는 것에 관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그 관여하는 방법으로 아이들과 직접 만나서 어떤 공간에 무엇이 필요할 경우 아이들과 함께 그것
었죠. 손바닥 도벽이 완성된 후, 아이들은 그 공간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손바닥이 아닌, 타인의 손바닥에 직접 손을 맞춰 대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작업
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죠. 그 공간의 여러 가지 맥락을 직접 답사를 하여 알아보고, 이야기해보고, 대안적인 것이 무엇인지 논의하면서 지
은 동네 주민들과 한달 정도에 걸쳐 진행되었고, 작업과 주민들과 작업 외적으로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자리도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주민들의 작품 만족
역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이렇게 학교 공간을 쓰고자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도도 굉장히 높았죠. 이후 여러 곳에서 이 작품을 모방한 작업도 많이 이뤄졌어요.
김준기: 그럼 다음 작업도 보면서 계속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아파트는 현대 도시 생활의 주된 주거 공간이지만 아파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비해서 현재는 매개가 되는 문화적 코드 거의 없다는 것이 사
박찬국: 네. 음, 이것은 생활의 발견이라고 해서, 성북동 달동네 주민들의 집 밖을 꾸민 것인데, 이것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매년 성북동 걷
실이에요. 그래서 이러한 문화적 코드를 통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활동을 전국 아파트에서 하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이러
기를 하던 중 발견하게 된 풍경이에요. 주민들은 작은 화단도 꾸미고, 텃밭도 일구면서 내 집 밖 꾸미기를 생활화 하는 반면, 같은 성북동에 위치한 이른
한 것들이 아파트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고, 프로젝트를 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이것은 금전적인 문제와 관련이 없는 사업이에요.
바 '부자동네'를 보면, 집 내부를 꾸미는 데는 공을 들이지만, 집 외부인 공공적 영역에 대한 서비스가 전혀 없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청담동 골목이 외
두 번째로 보시는 것은 공덕동 삼성 아파트 프로젝트로, 이때 재개발 아파트 공간을 꾸며달라는 제안이 있었어요. 실제로 가보니 아파트 건축에 1% 예술
제 차의 주차로 인해 늘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고요. 저는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공간'에 대한 인식이 아닌가 생각해요.
장식품 관련규정과 함께 선정된 조각 작품이 있었지만 공간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미술 작품을 원한 삼성 건설측은 조경
성북동 달동네에는 생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재밌는 공간들이 많아요. 작은 언덕에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해 마련된 돌계단, 계단 끝선에 계단을
과 어울릴 만한 작품을 문의했고, 그들은 방치 상태에 있던 굴 형태의 건축물에 작업을 하길 원했어요. 원래 밤나무 골로 유명했던 지역이었기에 작업 대
헛딛지 않도록 그려진 선들이 그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를 모델삼아 제가 수업 나가는 학교 아이들과 거리미술동호회원들, 삼성봉사단과 함께 성북구 일
상 공간에 있던 황량한 콘크리트 기둥과 화단의 나무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작업을 해 보기로 했죠. 그 결과 처음에 오브제 작품, 벽화 등을 주로 예술장식
대 6개의 '사랑의 계단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이 작업 이후 계속적인 작업을 제안할 정도로, 동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가장 반대했던
품으로 취급했던 건설회사 관계자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심의에 통과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심의에 통과됨으로써 그 후 삼성은 조경에 미
동사무소의 경우도 작업이후 좋은 반응을 보였고요.
술양식을 끼워 넣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어요. 따라서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작품은 이러한 방식이 불가능했고 화랑, 소수의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유통되
마지막으로 이 사진은 홍제동 소독차와 일본의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된 공원을 찍은 건데요, 소독약 연기를 따라다니던 추억을 작업 소재로 이용하고자
었어요. 삼성의 이러한 움직임 이후 6개월 사이에 엘지, 현대 등의 메이저 그룹들이 이러한 형식을 취하기에 이르렀고, 심지어는 건설회사 측 내부에서
생각하던 중에, 소독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처럼, 연기를 이용한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된 일본의 놀이 공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에는 공
작가 구성을 하여 제작하게 되었어요. 현재 엠 조형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죠. 참고로 예술장식품에 대해 고민하는 점은 청동, 화강암으로 된 작업
원의 개념으로 사람들이 즐겁게 공공미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이 조성되어 있거든요. 예, 제 작업 이미지들은 이것으로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 주로 제작되는 작업인데, 가능하면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저렴한 가격의 재료를 사용하자는 것이에요. 본 작업의 경우도 인조석에 아크릴 물감을 이
끝으로 제 작업을 정리해서 말씀드린다면, 저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이 공간에 예술가가 어떻게 관여하는가를 생각해왔다고 말씀드릴
용해 발색시켜 제작한 것이며 그 밖에 돌, 유리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어요.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연리동의 재개발 아파트 공사로 노출된 대규모 절개지 프로젝트가 진행된 공간은 공룡 화석도 발견되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곳이에요. 때문에 화석, 지층을 소재로 한 작업을 구상, 진행 중이었으나 중간에 공사 담당자가 바뀌고, 관계자의 이해 부족 등으로 인해 원래의 계획은 무산되었죠. 그래서 대안으로 조각을 세워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결국 다른 작업을 시도했어요. 절개지에서 나오는 물(자연수)을 해결하기 위해 인공분수를 제작했죠. 아이들 이 분수대에서 놀 수 있도록 놀이터 개념의 인공분수를 제작했어요. 나선형으로 된 분수대에서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요. 다음은 부평지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관리가 전혀 안되는 작업 중의 하나인데, 이 작품 역시 분수작품으로 인천 지하철역 개통 기념으로 제작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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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4: 배준성
2004.01.15 목요일 pm.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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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안녕하세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오늘로 벌써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 일정이 3분의 1정도 진행되었네요.
옷 입히고, 그러다 보니까 나름대로 들춰 보더라고요. 옷을 누드로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입히지 말자고 결정했죠. 그러니까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는 거
오늘도 작가의 작업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비롯하여, 작품에 관한 작가 개인의 시각을 들어보고, 궁금한 점은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길
죠. 입던 벗던 누드라는 게 상징적으로 요즘에 누드 문제가 여러 가지로 파장이 크기도 하고, 거기에 의미부여 같은 것들이 그 층이 너무나 다양하기도 하
희망합니다. 그럼, 작가 배준성과 함께 대화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소작업에 관한 이야기, 작가가 고민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작품 전반에 관한 이
잖아요. 제 작업을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들 누드라는 개념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저 들춰 보는 와중에, 들춰 보는 과정과 그리고
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쌓아가는 과정과 두 가지를 겸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누드를 활용해보고, 그리고 들춰보는 맛도 좀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누드를 사용했다는 거예요.
배준성: 안녕하세요, 배준성입니다. 먼저 제가 고민했던 문제들과 이제까지 가졌던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에 관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작업
그리고 제작품의 풍경과 인물과의, 인물과 인물과의 관계, 사실은 제 작업의 공정 자체가 전체를 머릿속에 딱 두고 작업을 해나가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의 시작은 어떤 대상을 보고, 그 대상에 접하는 제작자, 그러니까 화가의 입장이에요. 그러한 화가의 입장과 제작자가 제작한 이미지를 접하는 또 하나의
씩 해요. 처음에는 장소들을 찍어요. 그래서 그 자료가 어느 정도 모이면, 그 장소에 알맞은 내지는 어울리는, 얹히고 싶은, 놓이게 하고 싶은 인물을 정하
감상자의 입장이 뚜렷이 구분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고민했었지요. 그렇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다른 영역, 특히 음악과 영
는 게 두 번째 작업이거든요. 이 두 가지가 정해지면, 그거 가지고 컴퓨터 합성을 하게 되는 거예요. 합성은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고 싶지도 않기에
화와 같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그림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쉽게 말씀드리면 감상자가 기분이 안 좋을 때,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데, 그림
그냥 러프하게 해요. 그 작업이 결정되면, 거기에 이번 최근에 한 작업은 A라는 여자 모델과 B라는 모델을 같이 만나게 한 것을 한 번 더 합성을 해요. 그
을 봐서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거든요. 그만큼 그림 자체로 보면 현대적으로 패쇄적이라고 본거죠. 그러면 그림성, 감수성다운 그런 작업을 가지고 출발
게 끝나면 이제야 비로소 거기에 알맞은 옷을 정하는 거죠. 사실은 그런 공정을 아신다면 처음에 풍경에 대해서, 인물의 관계는 저의 중재에 의해 만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되는 모델, 어떤 특별한 어떤 내러티브가 있는 건 아니고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제가 계속 덮게 되는 레이어들처럼 평면적인 것이지만, 그런 레이어의
96년도에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할 때 이러한 유의 일련의 작업을 할 때, 그 중의 하나가 이런 화가의 옷들이란 제목으로 시작한 작업들인데, 그
과정을 거쳤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비닐 위에 그리는 거, 그려서 그 안에 있는 이미지를 네이밍
전에는 단계를 사진 작업이나 그림, 단면 A라는 그림을 그린 다음에 비록 제가 그린 그림이지만, 그림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 이후에 제가 또 그 위
하는 거, 명명하는 거. 이것은 최종적으로 여러분이 A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과 똑같죠. 제 작업은 제가 비록 제 작업을 해나가고 있지만 최종적이라
에 제가 얹고 싶은 이미지를 레이어를 통해서 이중, 삼중으로 얹히는 그런 방법을 택했어요. 그러다가 처음에는 사진이란 매체가 아니었고, 그림 위에 그
는 단어라는 지점도 B에 얹는 밑의 풍경들을 마지막에 얹는 것일 뿐이죠. 그 이미지조차도 약간은 설치처럼 디스플레이하게 되는 거구요.
림 위에 그림 위에 점점 이런 식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그것이 정물화였던 적도 있고, 풍경화였던 적도 있고, 어떤 추상적인 어떤 이미지 위에 제가 또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 모델 안 쓰고 여자 모델 쓴다는 질문에 대한 해명을 하자면, 사실 남자 모델도 계속해서 같이 썼었어요. 최근의 작업이 이렇게
른 이미지를 가지고 이름 붙여지는 네이밍되는 과정들, 그것 때문에 전 이미지들이 이름이 붙여지고 명명되는, 그래서 화가의 옷이라는 제목 자체도 우
17, 18세기 명화에 등장하는 옷들이 아니라, 최근의 디자이너 옷을 가지고 시도를 해보려고 하니까, 그러다보니까 지금 제가 선택한 디자이너가 크리스
리가 입고 있는 물리적인 옷이 아니라, 사실은 작가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보고 감상자가 그걸 느끼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레이어들을, 그 레이어
찬 라쿠르와 라는 사람인데, 국내에는 남성복이 안 들어왔어요. 그리고 제가 관람하면서 인터뷰하면서 조사했던 옷 중에서도 재작년 여름까지의 옷들이
들을 옷이라고 본 것이거든요. 그래서 화가의 옷이라는 개념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여튼 그러그러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죠. 그래서 그것이 여성복이었기에 여성 모델을 쓴 거지 남성 중심적인 것이라는 건 아입니다. 질문 없으시면 제 작업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이고요. 질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은 첫 번째 스테이지에 대해 말씀드린 것이고, 그런 그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작업이 절실하게 와서 걸리고, 자기가 직접 겪게
문 있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되다 보니까 저는 그런 레이어들을 하나하나씩 기존에 과거에 봐왔던 이미지들 위에 현재의 이미지들을 계속 쌓아올리는 작업 공정을 거쳤던데 반해서,
관객: 선생님 작업에 있어서 완성의 시점은 어디인가요?
전시장에 걸렸을 때는 관람자들은 거꾸로 그것을 들춰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이게 들춰보는 그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
배준성: 이게 완성이죠. 이게.
서 그 다음부터는 그 이미지와 그 전의 이미지들의 관계에 대해,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게 한 3년 정도 되었어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이 문제를 어
관객: 더 첨삭하거나, 이 위에 계속 진행해나가거나 할 의향은 없으신가요?
떻게 해결해야 되나 고민했죠.
배준성: 그런 작업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찍어서 사진으로 만들어서 그 위에 또 그리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이게 완성일 수 있고요. 이
그러니까 처음에 예상치 못했던, 처음에 초심과는 다른 문제에 접하게 된 거죠. 첫 번째는 그림에 대한 문제였다면, 두 번째는 이미지의 문제, 내러티브의
게 완성이 아니라면, 제가 어떤 생각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여기에 대한 어떤 생각이 없어요. 만약 있다면 벌써 했겠죠.
문제가 제 나름대로 대두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그런 형식을 어떻게 취할까 하다가 올해부터 지금 보신 것처럼 배경, 풍경을 넣었어요. 원래는 배경,
관객: 제가 궁금한 것은 개인 소장했을 때 작업을 계속 'ing'할 수 있으신지?
풍경이 없었고, 어떤 A라는 인물에 맞는, 아니 맞는 게 아니라 입혀질 만한, 쓰일 만한 비닐이라는 물리적 망막을 통해 다시 한번 얹는 거였다면, 요즘에
배준성: AS차원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웃음)
하는 작업은 풍경을 넣어서 그 풍경과 그 인물과의 관계, 그리고 그 인물과 옷과의 관계 그렇게 해서 구체적인 레이어는 아니지만 겪는 것을 합성 작업을
관객: 작품의 AS라는 것이 완성된 다음의 얘기잖아요. 저는 그것이 저희가 완성된 다음의 작품을 갖고 있느냐, 아니면 작가가 계속 해나갈 의향이 있는
통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갖고 있는 거냐 하는 거죠.
이미지의 문제가 많이 대두되다가 보니까 기자들이 말할 때 혹은 모 잡지사의 기자들이 말할 때, 그 안에 누드와 그 위에 옷과의 관계는 무어냐고 물어요.
배준성: 작업에 따라 틀린데, 분명히 그런 점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러그러하니까 작업 자체가 계속 나름대로 감상하고, 평가하고, 비평하는 감상자적 위
이 작업은 그게 없는데, 어떤 작업은 들춰보면 앉아있는데 들춰보면 서 있거나, 들춰보면 그 안에 남자가 있는 작업이 있거든요. 그게 바로 앞에 얘기했던
치이고, 제작자에게도 있는 거거든요. 그것이 바로 제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작업을 시작한 거구요. 이게 연속적인 부분이죠. 그렇다면 연속적인 부분이
이미지의 문제에 봉착해서 나름대로 표현하게 된 작업이에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가지고 그렇게 묻는 거예요. 그럴 땐 판타지를 얘기하죠. 일반적으로
빈 캔버스 하나 놓고, 계속 연속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제작자인 제가 결정을 오히려 내려야지 연속적일 수 있는 거죠. 이미지가 오히려
관음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심코 던진 말이, 그것이 저는 판타지하고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요. 판타지는 나름대로 자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이미지의 답답함이나 한정성 때문에 오히려 연속성이 아울러 등장한다는 것을 작업했던 거죠. 그래서 원래는 두 겹, 세 겹, 네
기 호자서 암암리에 즐기고, 즐기는 속에서 일종의 쾌락적인 부분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쾌락이란 개념과 다른 점은 제가 지금 집중하고 투자하는 시간
겹이었는데 한 겹으로 정한 거예요. 이제는 한 겹으로 작업을 하고, 웬만해서는 한 겹이에요. 그런데 이제 여러 가지 풍경들이 있는 경우에는 두 겹, 세 겹
이 계산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점이죠. 제 작업이 사실 어떻게 보면 관음적은 아니죠. 관음적인 거에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드러내놓고 하겠어요? 오히려
인 경우도 간혹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한 겹으로 하는 데, 지금 이 시점에서는 한 겹으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수박 하나의 표면을 그린다든가, 돌덩이 하나를 그리는 것이 오히려 관음적이라면 관음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질문이 그러하기에 설명하
관객: 선생님께서 모델을 정하실 때 어떤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미인인지와 같은 일반적인 미적 기준이 있는지요?
기를 이게 어쩌다가 이렇게 됐네요. 하여간 지금까지 그런 질문들을 받았었기에, 이런 대답을 했다 하는 걸 말씀드린 것이에요.
배준성: 오히려 개성이 팍 튀면, 오히려 그 개성 때문에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이미지가 몇 가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작업하고 보니까, 얼굴
그리고 그 다음에 예상 질문 받았던 것들에 대한 몇 가지를 해명을, 몇 가지 질문 들어오기 전에 하면, 왜 안에 누드냐, 그리고 누드와 풍경과 무슨 관계냐
이 특징이 너무 강해서 감당하기 힘들다거나, 제가 별로 안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동안 썼던 남자 모델의 경우 강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하는 거예요. 왜 대부분 여자 모델이고 남자 모델은 없냐 하는 거, 남성 중심적인 시각 아니냐 하는 그 질문이 가장 많았어요. 그 설명을 해드릴게요. 뭐냐
김준기: 출품작 같은 경우는 어때요? 얼굴하고 몸하고, 모델과 옆에 있는 학생들하고, 저작권 문제라든가, 뭐 그런 거요.
하면 처음에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모델을 썼을 때 안에 모델이 그릴 수 있는 대상, 활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이미지였다는 거예요. 근데 미술사에 등
배준성: 모델 몸 전체죠. 저 사진에 등장한 친구들에겐 아직 안 했지만, 사진을 한 장씩 주기로 했어요. 기념사진, 사진 정도로 말이죠. 작년에 제가 성신
장하는 옷을 입히는 과정에 일련의 모델을 썼던, 인물을 썼던 게 그것의 연속선상에서 이 작업이 나왔던 건 틀림없죠. 맨 처음엔 옷 입고 있다가 또 다른
여대 실기실로 수업 갔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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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인위적인 것을 설정하신 거죠?
제가 옷을 변형시켜서 마치 서 있는 옷처럼 보이게끔 서서 펼쳐져 있는 옷처럼 그리기도 하구요. 어쩔 때는 포즈에 맞추어서 서 있는 옷을 구부려서 그리
배준성: 작업하겠다고 한 건 아니고요. 제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수업시간에 찍은 거죠.
기도 해요.
김준기: 작가로서의 작업실과 강사로서 학교 작업실에서 만나는 작업실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대체로 예상 질문 세 가지 준비하셨
관객: 모델 및 방향에 맞추어 의상도 그렇게 맞추나요?
죠? 하나 더 추가해 드린 건 왜 굳이 동양인의 신체에 서양인의 17, 18세기의 의상을 입히냐,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서구의 의상을 한국인의 모
배준성: 그렇지는 않아요.
델에게, 그것도 낯선 풍경에서. 항상 서양 고전 이상을 한국 사람에게 입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아니면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 아니었겠느냐는
관객: 바뀔 수도 있다는 거죠?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김준기: 저 옷 같은 경우에는 얼굴하고 몸하고 합성한 아녜요? 왜냐하면 얼굴이 되게 커요. 아까 누구랑 같이 얘기했는데, 합성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발
배준성: 궁금하세요? 사실 동양인에 서양 옷을 입힌 것은 저도 나중에 알았어요. 알고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이제 그게 아니라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
끝은 여기인데 신발은 더 내려와 있어요. 그래서 합성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델들이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 전에 모델 수업을 하면서 알았든가 아니면 친구로 지내든가 대부분이 지인들이고, 그 지
배준성: 앉아있는데 서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그린다든지, 그런 거까지 있는데, 빛 방향을 맞춘다든가 그런 건 안 해요. 의외로.
인들이 바쁠 때면 새로운 모델과 작업을 했었어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죠. 그랬던 거고. 그 작업 이미지, 최종적 이미지,
관객: 옷을 위에 걸쳐 놓은 것 같아요. 인위적으로 그렇게 의도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왜 옛날에 가지고 노는 인형 중에 옷을 이렇게 걸쳐서 노는 놀이가
비닐에 그려진 이미지는 서양에서 제작된 시작 자체가 서양 옷에서부터 출발했던 거니까요.
있었는데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것도 제가 이 작업이 처음 시작된 것이 96년도에 금호에서‘독후감’이란 제목의 작업이었어요. 어떤 것을 읽거나 보고 나서 느낀 후감을 제작하자는
관객: 사진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나요?
의도에서 시작한 작업 중 하나가 이러한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내가 그 작업을 글이나 이미지를 내 느낌대로 옮겨가는 것이 감상문과 독후감이 다른데,
배준성: 네, 사진이 빠르니까요. 이 사진에 대해서 그림을 제작한다는 것은 대단한 거죠. 맨땅에 헤딩하는 거거든요. 생짜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독후감은 감상 후의 자신의 느낌을 첨가되는 부분이 독후감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독후감이라는 개념을 읽거나 보면서, 제 나름대로 비뚤어서, 내지는
음악하고 틀려요. 음악은 어떻게 보면 창작이 아니죠. 그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거고. 근데 이건 생짜로 만들어 내는 거죠. 영역까지 만들어 내는 거예
비켜가면서 집중한 상태 때문에 발생하는 제 느낌 있잖아요. 그걸 독후감이라고 생각해서 제작을 시작한 거예요. 글 작업하고 이미지 작업 중의 하나가
요. 그게 미술이 아니라는 거죠. 최근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이 비닐하고 사진이에요. 그렇게 정한 거라는 거죠. 그게 어떻게 바뀔 진 모르죠.
이 작업이었는데, 이것도 서양 화집 있죠? 우리나라에 있는 현대 미술에 관한 것을 작업한 게 있었고, 이것은 제가 서양화 학도로서 그 동안 대학을 다니
관객: 사진 그 쪽에 사진 위에 페인팅을 한다든지, 사진하는 분들이 사진을 디지털화 되어 합성 작업을 한다든지, 수작업을 하면 난이도가 굉장히 어려운
면서 혹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했던 서양 미술사라는 부분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투자를 하면서 겪었던 느낌들, 그런 느낌들을 얘기를 하려는 작업
데, 사진 쪽에서 다중적으로 겹쳐지는 작업이 많은데 본 적이 있으신가요? 본적이 있으시면 거기서 느꼈던 것과 자신의 작업에 대해 느꼈던 것을 좀 설명
중에 하나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동양인의 몸매에 서양인의 옷을 입히자는 그런 생각은 없었고요. 그냥 여러 작업을 하다가 이런 작업이 아나 나오게 된
해주세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 생각이 없다가 나온 것임에 틀림없죠.
배준성: 봤죠. 사실 제 작업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면 안 돼요. 대부분 사진 작업을 가지고 이미지로 활용하려는 작가들은 의미에 집중하는 것이
굳이 어떤 얘기를 솔직한 제가 이런 작업을 하는 의지 중에는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80년대 대학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건데, 국내에서 제가 서
90%이상이에요. 제가 볼 땐 그래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재로서 사진이던 그림이던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쓰는 거죠. 그 포즈들이나 내부를 구성하
양화과를 다니다 보니까, 서양에서 유입된 그리고 유행이 되는 패러다임이 되고 있는 학문적인 기초들이 되고 있는 그런 부분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한
고 있는 것들에서 나타나는 의미를요. 그런 점에서 약간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합성을 요번에 처음 해봤는데, 잘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편 국내에서 수묵화나 중국에서 들어온 아니면, 한국사나 제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중국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런 공부를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는
들었어요. 왜 이거 밖에 못하냐. 그런데 원래 이걸 콜라주로 했었어요. 칼로 이걸 오히려 붙여서 일부러 허연 것도 보이고, 그랬다고요. 그런데 이걸 컴퓨
거예요. 그런 부분이 서로 어쩔 수 없이 서양 미술을 공부하든 동양미술, 서양철학에 관심을 갖든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든 그림들이 서로 제 자신 내부에
터로 이걸 한번 해봐야겠다고 해서 포토샵으로 한 게 이 모양인건데. 근데 정교하게 사실 실력도 안 되지만 약간 아닌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름
서는 우열을 가늠하면서 공부를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면 노자를 읽으면서 데리다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데리다를 읽으
대로 선을 두는 것도 있어요.
면서 노자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거구요. 그리고 그런 공통부분도, 그걸 삼으면서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해야지만 탄력도 받고, 제 나름대로 뭘 한거 같
관객: 정교하게를 원한다면 직접 할 필요가 없죠. 맡기면 되는 거죠.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니까요.
기도 했어요. 지금 와서, 최근 와서 돌이켜 보면 요즘에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서양의 보편사하고 동양의 보편사가 나란히 갔다가, 얼마 안 되어서 동양인
배준성: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람도 자국 공부도 해야 하고, 외국에서 들어온 공부도 해야 하는 그런 시점에 놓여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단순하지 않죠. 상황자체가 예전하고는. 예전
김준기: 이렇게 보면 이제 작업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 남았어요. 작업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하는 건 작업실의 주인인 작가가 작품에 대해
엔 주자, 양명학에 집중해서 공부하면 되죠. 근데 요즘에는 그런 부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편으로 재밌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거죠. 그렇지만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오죠. 또 하나는 물리적 기제인 작업실이 어떤 모양인가를 살펴봄으로써 현대 미술이 어떻게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보
상황 자체가 문학이나 철학 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미술 쪽에도 똑같이 있다는 거죠. 그런 관심들이 예전부터 있었던 거 같다는 생각이 요즘 최근 작업을
려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학교 작업실이나 아파트 작업 공간, 여성 주부 화가의 입장들, 작고한 작가의 작업실을 본다든지,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에 있
하면서 느낀 거죠. 저와 이미지의 문제를 말씀드리는데 이런 문제를 그래서 서양적인, 서양으로 향하는 제 마음, 제가 지금 한국 땅에 살고 있지만 중국에
는 작업실, 공공공간을 점거해서 들어가 작업하는 점거 아틀리에라든지, 인위적인 공간 자체가 아닌 거리 자체를 작업실로 보고 작업하는 개념이라든지,
공부해야 할 이미지들, 학문들,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했다는 거예요. 제가 그러한 바탕 속에서 작업이 이렇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작업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 작업실은 창작의 산실이기도 하고,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작가의 고통스런 내밀한 공간, 작업실은 움직이는
거죠. 그런 뭐랄까…….잠재된 저의 생각들, 한국적 이미지와 서양적인 이미지를 같이 쓸 수 있었겠다. 그런 관심 때문에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거예요.
거라는 확장되고, 영역이 넓어지는 거죠. 장소개념을 떠나고 움직이는 행위 개념이 강조되거나, 개념적인 작업실 등 탄생하는 거죠. 예술지향, 미술지향
김준기: 듣고 보니까 그런 거겠네요. 서양화과를 나오면서 익숙해진 의상들, 처음에 제가 기억하기로는 서양의 명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리되, 그
을 새로이 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거죠.
안의 인물들은 실제 한국 사람을 쓰자, 그게 출발이죠?
배준성: 제 작업실은 원래 병원이었는데, 2, 3층이 입원실이었어요. 수술실이었는데, 1층 병원 원장님이 외래만 하는 바람에 입원 환자를 안 받게 되었어
배준성: 그렇죠.
요. 그래서 제가 작업실을 쓰게 된 거구요. 지금 제가 작업하는 공간은 두 명이 쓰는데, 방은 옛날 수술실로 작업했던 공간이에요.
관객: 옷 같은 것도 인물에 따라 설정하잖아요? 주어지는 명암이나 공간적인 측면도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풍경에 주어진 빛의 방향이나 공간감 등
관객: 수술대도 그대로 있어요?
을 생각하시는지요?
배준성: 네, 다 있어요.
배준성: 아뇨.
관객: 그거 참 흥미 있네요. 작가의 작업실을 보는 거에 대해서. 수술 도구도 다 있나요?
관객: 그럼 그냥 옷을 따로 생각하시나요?
배준성: 네, 다 있죠.
배준성: 그런데 옷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요, 사진인데, 예를 들면 모델이 앉아 있을 때 제가 가지고 있는 옷의 포즈가 이런데, 모델 포즈가 이렇다면
김준기: 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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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성: 수술할 때 쓰는 그 등 말씀이시죠? 그게 제 책상에 갖다 놓고 책 읽을 때 쓰고 있고, 그리고 수술할 때 도구들 얹는 통은 제 물감 담는 통으로 쓰
렇게 있는 것이지, 가부장 남성화가 유근택이 보기에 저 장면은 그냥 자신의 일상인 거예요. 그냥 일상을 그린 거예요. 원래 일상을 주제로 작업하는 화가
고 있어요.
예요. 주부 여성화가 이진원에게는 달라지는 거죠. <작업실 리포트>전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저 그림을 보면 좀 곤란한 난제들이죠. 마찬가지의 문제들
김준기: 이번 <작업실 리포트>전에 그런 것을 좀 보여줬어야죠.
이 배작가에게도 똑같이 있어요. 한수정이라고 부부가 같이 그림을 그리시고, 동문이시잖아요. 주변에 같이 자리를 하면, 제가 그 얘기를 한 번 들었어요.
배준성: 출연료를 줬으면 아마 했을 거예요.(웃음)
배작가님과 부인이 같이 계신데 괜히 부인 작가를 위로하느라고 선배가 한수정 작가를 치켜 올리면서, 배작가님께 잘 해야 해, 잘 해줘야해, 구박해요. 잘
김준기: 그러면 작업실 얘기 좀 더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때요? 작업실 옮긴 지가 얼마나 되셨죠? 4년, 5년? 대학 졸업하고 작업실이 있었을 거 아니에
해줘야 해, 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걸 듣고 같은 입장이 이진원 작가와 한수정 작가가 같은 입장일 수 있다는 거. 그런 생각이 겹치는 거죠. 또
요?
다른 부부화가가 가지는 특성. 몰라요, 나중에 이진원 화가가 훨씬 잘 할 거예요. 왜냐하면 유근택 화가는 덕대 교수로 갔기 때문에, 이상하게 교수로 가
배준성: 제가 작업을, 학교를 90년도에 대학을 졸업했거든요. 그리고 군대 다녀와서 한 그때까지 작업실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첫
면 작업을 잘 못 하더라고요. 바빠 가지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하여튼 작업실과 관련해서 사모님 화가 한수정님은 또 어떤지요?
개인전을 96년도에 했었는데, 96년 1월에 그때 집 같은 거, 집이죠, 그 집 방 하나에서 작업을 했었는데, 방벽이 3m정도 되는 데서 작업했었어요. 작업실
배준성: 같이 써요.
에서는 전체의 작업을 보지 못하고 전시장에서 가서 처음 딱 펴놓고 본 적이 있었어요. 작업실 커서 작품 안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웃음)
김준기: 저 아파트 작업실보다는 훨씬 좋은 케이스네요. 작업실도 그렇지만 부부화가로서 어떻게 계속 작가로서 해야 할 지, 공개할 수 있는 한, 구름같이
김준기: 나이 들어 돈 많이 번 분들이 작업실 호화찬란하게 지어놔요. 그리고 작업을 안 하시고. 아시는 일화겠지만 광화문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 이순
모인 시민, 학생, 미술애호가 여러분께 들려주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신 장군이 칼을 들고 있잖아요. (자세를 흉내 내며) 장군이 늠름하게 있는 게 아니라 이러고 있거든요. 김세중이라는 작가의 아틀리에가 천장고가 딱 고만
배준성: 허허(웃음)
큼 모자랐던 거예요. 딱 요러고. 이렇게 봐야하는데, 이러고. 그렇게 작업실 공간이 작품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거죠. 8m짜리를 작업실에서 쫙 펴 본다
관객: 작가 분들에게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당황하게 만드는 건지, 제가 공개적으로 드리기 힘든 거 같은데, 작품이 잘 팔리세요?
는 그런 작가도 있어요. 아마 대부분 그럴 거예요. 그 자기 만의 공간을 꾸린다고 했을 때, 저는 어떤 자기만의 공간이 있었죠. 고등학교 때 저는 80년도
배준성: 저요?
후반에 화실을 다녔어요. 지금은 대형화된 미술학원이죠. 대부분 학원이죠. 근데 그때는 작가의 작업실, 화실, 안창홍씨 화실을 다녔었는데, 거기엔 바깥
김준기: 잘 팔리죠. 해외에서? 개인이?
공간엔 이젤이 있고, 이렇게 잘라서 안쪽에는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죠. 그리고 거기는 신성한 통제의 구역, 그 양반의 에스키스나 작업들, 자료들이. 쉬면
배준성: 네. 개인이 소장하는.
서 들춰보고. 그 다음에 있던 작업실은 고등학교 선배 작업실이었는데, 거기에 김민기의 금지된 앨범이 있었어요. 아침이슬이 있는 보라색 표지의. 그런
김준기: 아까 말씀드렸듯이 오히려 한국에서는 비닐에 그렸다고, 그런데 해외에서는 거꾸로 생각하는 거예요. 앞 질문, 어떻게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그
것들을 몰래 들을 수 있는 공간. 그런 식으로 예민한 공간으로서의 이미지였죠. 학교 졸업하고 작업실 꾸려서 지금처럼 작업실과 얽힌 작가 나름대로의
냥 넘어 갈까요?
얘기가 있을 거 같은데.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화가에게 작업실이 있어야 하는, 거기에 대해서 좀 말씀 해주세요.
배준성: 대부분 재미없는 이야기죠. 작업실이란 공간이 그렇게 행복한 공간만은 아니에요. 아까 자영업이라고 표현했는데, 자영업이라는 것이 만분의 일
배준성: 첨에 병원의 수술실이니까 포르말린이나 화공약품, 그런 냄새가 묻어났죠. 게다가 수술하다가 튄 자국도 있고, 막 그러니까, 처음에는 작가들의
이 될까? 그야말로 자기 작품이 상품화되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바뀌는 경우, 그런 과정이 있어야 자영업이라는 말이 통할 텐데. 이건 무슨 딴
작업 시간이 대부분 밤이잖아요, 밤. 처음엔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음악 크게 틀고, 그러니까 할머니가 시끄럽다고. 거의 후원개념이었어요. 후원이라기
거 가지고 돈을 벌고, 그걸 가지고 작업을 한다면 그건 업이 아니죠.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고 있거든요. 제 주변 화가들도 그렇고. 심란하고 힘든데, 네,
보다는 싸게 있었던 거죠. 제가 예원학교 선생님을 할 때, 2층에 원장 선생님이 학부모였어요. 제 주변에 어떻게 의사 선생님들이 많은데, 의사선생님들
그래서 나름대로 공부 열심히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하고 비슷해요. 정서적으로 골방에서 매일 째고 있어봐요. 특히 외과 같은데, 내과도. 치과, 피부과 말고. 내과, 외과 같은 데는 감수성이 비슷해요. 그러
작업에 대해서, 제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몇몇이 모여서 매달 만나 그 얘기를 해요.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거 할 때 침통하리만큼 철저하게
다가 친하게 되어가지고. 그게 좋은 거죠, 싸게. 7시면 퇴근을 하니까, 퇴근하면 혼자만 남으니까 무섭더라고요, 처음에는. 압구정에서 학원을 했었어요.
얘기하려고 애쓰죠, 서로가. 그래서 그거 가지고 흩어져서 서로 작업하고, 그런 과정을 겪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한,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처음 저 그
그게 북가좌동 집하고 압구정동 학원 옆에 방 하나를 내서 같이 썼어요. 그게 애들 가르치면서 그림 도저히 못 그리겠더라고요. 얼마 안 되어서 그만 뒀
림 가르쳐주셨던 분이 정광홍 선생님이라고 철사에 나뭇잎 이렇게 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인데, 그 분에게 처음 그림을 배웠어요. 해외 전시활동 같이 하
죠. 그만 두고 얼마 안 되어서 대학 시험 보는 애들 몇 명, 그리고 예고 시험 보는 애들 몇 명이서 또 와요. 아직도 오고 있어요. 그런데 제 작업을 펼쳐 놓
고, 그룹전에 같이 할 때 많고, 그래서 대학 다니면서도 줄곧 일년에 한두 번 만나서 계속 작업 얘기하고, 그거 가지고 열나게 하죠. 서로 작업에 대해 생
고 할 때, 누드잖아. 그러면 학부모들 보면 처음에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 꼬마 애들이 보면 변태라고 난리가 나지. 그것 대문에 처음에 좀 그렇다가 이젠
각나는 거 있으면 서로 얘기해주고, 그런데 그런 관계를 그런 모임들이 재미있는 거 같고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고요. 그런 전제 하에는 서로 얘기할
하도 많이 보여주니까 자유스러워져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자기도 그리고, 자기도 그리고 싶다고 그리고, 자유롭게 적응이 되고 하니까. 그런데 처음
때, 공자님 말씀에 서로 허물이 있으면 고치라고 하시잖아요. 작업도 그래야 한다고, 그런 거죠. 저는 애매한 부분, 추상적인 부분 때문에 안 되는 부분이
에는 이 작업 할 때는 오해도 많이 사고 그랬죠. 그때, 압구정동에서 학원을 할 때는 문 딱 잠가 놓고, 학원 끝나면 와서 문 열고 혼자 들어와서 작업하다
참 많거든요. 기본적으로 타고 나기를 안 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지만, 그런 부분 때문에 고치지 못해서 안 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그
가 애들 봐주고 하니까 더 변태 같았죠.(웃음) 그 작업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껍질 말아서 요렇게, 요렇게 하는 작업도 있어요. 슬라이드 크게 확대해서 정
런 관계를 통해서 가급적이면 냉정하게 혹은 보다 깊숙이 남의 작업에 대해서 침투할 수 있는 범위까지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서로 작업실 오가면서 그
리하고 하는 작업도 있고. 애들 있을 때는 그런 작업하고, 애들 집에 가면 또 이런 작업하고.
런 부분이 좋은 거 같아요.
김준기: 여기서 얘기하는 애들이라면 몇 살까지죠?
김준기: 아까 고등학교 때 기억 말씀드렸던 것은 저 같은 경우는 낭만적으로 접근한 케이스고, 맨 땅에 헤딩하는 고통스런 공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이
배준성: 꼬마 애들이었죠. 미술가들의 삶이 애들 미술도 가르쳤다가, 의사 선생님한테 사기도 쳤다가. 그러다가…….
잊을 것 같아요. 저로서는 작가 작업실 방문하면, 이야기 나누고 작업에 대해 토론하는 곳이. 혼자 고독하게 맨 땅에 헤딩하는 괴로울 거 아니에요. 그거
김준기: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작업실 마련하고, 그런 거 보면. 노동자들과 비유해서 얘기했는데, 여러 일화 같은 것도 있고, 특히 배작가님 같은 경우 이젤
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그러고 보니까 권진규 화가의 작업실이, 텅 빈 사진 있잖아요. 거기에 보면 지나간 난간에 쇠사슬이, 목을 맨
을 펼쳐 놓고 싶다라든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저기 있는 그림이 유근택이라는 홍대 동양화학부, 대학원을 나온 작가가 그린 그림이에요.
쇠사슬이 자살할 때. 지금도 그대로 동선동, 돈암동 그쪽에 그대로. 그런 걸 생각하면 고독한 공간일 수 있겠네요. 고독하고 내밀한 공간일 수 있겠네요.
저기 있는 인물은 이진원이라고 하는 유근택씨의 부인, 역시 홍대 동양학과 동문이에요. 저기 가운데 있는 인물요. 저 분도 역시 화가예요. 작업을 해야
배준성: 그리고 '작업이 나온다.'라는 게, 좋은 생각을 해서 좋은 작업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그러니까 그게 뭐냐 하면 그런 말 있잖아요. 쌍방간
돼요. 근데 남편은 파주에 있는 작업실, 어떤 약사님들이 후원하는 곳이 있어요. 파주에 그 어떤 약사님이 후원을 해서 작가들 여럿을 작업실을 마련해줬
에 텐션이 걸려 있는 거예요.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내가 철저하게 독이 되어 있어야 약 같은 작업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게 맞는다는 생각이
어요. 근데 그 작업실에 있는 작가인데, 저 옆에 있는 그림은 아이를 키우면서 아파트 저 지구본 옆에 뒤에 있는 옆에가 이진원 화가의 작업실이에요. 아
들어요. 그러니까 그건 예를 들면, 외로움이라든지 막말로 공부의 양이 없으면 좋은 작업이 나오기 힘들어요. 그건 운이 좋아서 작업이 떠서 좋은 작가가
파트 방, 제일 큰 방 안방을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주부 여성화가인 이진원과 가부장적 남성화가인 유근택과의 관계가 이런 거예요. 생활공간과 작업 공
된다는 그런 생각은 믿지 않아요. 그런 생각을 믿었다면 이런 작업을 하지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고. 제가 그 동안 살아왔던 것이 무너졌을 테고. 아까
간이 뒤섞여 있음으로 해서 발생되는 어쩔 수 없는 난제들, 제목이 어쩔 수 없는 난제들이에요. 지금 이거는 이렇게 <작업실 리포트>전에 와 있으니까 이
제가 말했던 제 선생님 만나서 이렇게 막 얘기하고 서로 막 얘기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서로 작업에 대해서 관여한다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다는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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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5: 노순석, 정보영
2004.01.16 금요일 pm.04:00 요. 그게 그만큼 창작의 고통이라는 게 막대한 거예요.
김준기: 오늘 작가의 대화를 위해 모여주신 시민, 학생 분들께, 미술계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크게 두 가지 틀로 진행되는 두 작가의 작업, 전반
그리고 내가 철저하게 외롭지 않으면 작업이 나오지도 않고, 그런 걸 버텨야하고, 그런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아까 제가 얘기했던 두
적인 작업 세계에 대해서 작업 슬라이드를 보면서 약 25분에 걸쳐서 경청해 주시고, 거기에 대한 질의응답 해야겠죠. 그 또 한편은 주제가 직업실리포트
가지의 상황에 서 있다는 건, 내가 작업을 하면서 작업과의 싸워야하는 부분과 또 하나는 사람들과의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 이 둘이 다르거든요. 첫
니까 작업실과 연관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얘기는 특히 정보영 선생님의 경우는 저쪽에 있는 그림인데, <작업실 리포트>전이라고 붙인 제목으로
번째는 자폐적인 부분이고, 두 번째는 오히려 개방적인 부분이어야 하니까. 그 두 가지를 공유해야 한다는 게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해요. 그게 쉽
접근한 작업치고 추상도가 굉장히 높아요. 관객들이 보면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생각들을 많이 해야 하고, 노순석 작가도 그냥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시
지 않고, 그걸 또 잘 해야 하거든요. 그거 안 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게 안 되니까 맨 날 당하는 거거든요.
를 적어서. 부산 사람이라 시를 쓴다고 안 하고 시를 적는다고 합니다. 이 두 분인데 두 분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고, 알찬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
관객: 창작과 거의 동시에 한 사람이 거의 하루에도 몇 번씩 전문적인 전담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있어야겠네요.
선 인사하시고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김준기: 아직 미약하죠. 아직은.
정보영: 안녕하세요, 정보영입니다. 앉아서 하겠습니다. 저는 그 전시 주제에 맞추어서 제 작품을 골라보는 전반적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제 작업을 말하
배준성: 작업실에서의 삶은 아까 첫 번째에 말씀드렸던 그 부분이거든요. 그러니까 쉽지 않죠.
고. 그렇게 나누어서 준비해오지 않았고요. 그냥. 전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제 그림 작업들의 성향들을 두 가지로 분류해 보았는데요.
김준기: 맨땅에 헤딩하는 것 처럼요?
첫 번째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 그런 것들의 전형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사물 그 자체를 넘어서 다른 어떤 것을 암시하는 초현실적인
배준성: 네, 쉽지 않죠.
느낌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런 사물들을 재현합니다. 보시면 한 가지 형상의 슬라이드를 죽 보실 텐데요. 어두워서 잘 안 보이실 텐데. 이게
김준기: 작업실에서의 즐거움도 좀 말씀해주시죠?
하나의 공간 안에 모과라는 과일이 바닥에 죽 깔려있는 사진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요. 가로등이 바닥을 비추고 있고 나무가 저
배준성: 즐거움? 없어요.
기 있는 풍경입니다. 이것은 프리드리히를 좀 보고 만든 그림인데요. 정확하게 제가 묘사한 것은 브로콜리예요. 바위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시는데 브
김준기: 그러면 마무리 말씀 좀 일분 동안 생각해서 해주시고, 일분동안 또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작업실 리포트>전을 기화로 이 작업실 이야기가 시
로콜리의 이미지를 크게 확대해서 몽환적인 느낌이 들게 한 작품이에요. 그리고 마찬가지구요. 제목은 <어두움 말리기> 라고요. 브로콜리 하나하나를
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대한민국 서울에도 다양한 여러 가지 모습의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고, 작업실이란 것을 통해서 작가와 작업, 예술작품에
빛 가운데 올려놓았을 때 브로콜리 그림자가 생긴 거구요. 다음. 마찬가지구요. 유리에 놓인 것과 물의 흐름. 이것은 천장부분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대해 종합적인 생각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나중에 출판의 형태든 심포지움이든 어떤 형태든 작업실에 관한 이야기들이 더욱 진행될 거
점점 밝아지는 것과 점점 어두워지는 것으로, 핀이 좀 잘 안 맞는 거 같은데, 그래서 익숙한 사물을 재현함에 있어서 초현실적인 느낌이 한 가지 특징이구
예요. 그리고 내려가실 때 아래 데스크에서 성함하고 이메일을 적어주시면, 여러 가지 결과들 작가와의 대화 계속 진행한 거, 심포지움 또 다음 전시들 그
요.
런 거 계속 보내드릴 테니까. 사비나 미술관이 갤러리에서 미술관으로 바뀌고 나서,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것이 작년 후반이고 올해 한
또 하나는 실내 공간의 구성인데, 실내 공간의 구성으로 알레고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런 그림들입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메니나스 그림을 트랩이라
해 동안 그 일을 해야 해요. 그래서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주 찾아주시고, 아껴주시면 열심히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서 자주 찾아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 하긴 좀 거창하고, 공간을 생각하게 하는데. 그런 공간에 캔버스가 놓여 있고, 큰 공간이 맘에 들어서. 다음, 이 작품을 보시면, 배금녀의 그림을 약산
그러면 마무리로 한 말씀해주세요.
설명을 드리자면, 배금녀의 그림은 실내공간이 주로 나오는데, 빛과 바닥이 수평으로 분할된 얕은 공간이 나오거든요. 그런 얕은 공간을 양탄자를 3차원
배준성: 네, 허허. 아 저한테 메일주소 알려주시면 제가 전시할 때 엽서랑 팸플릿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의 화면으로 끌어들이는 굉장히 쉽게 보이면서도 양탄자와 해석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배금녀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 그런데서 모티브를 얻었습 니다. 실내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실제 작업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고요. 실제 작업 공간에 어떤 적절한 사물을 배치해서, 그것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사진 을 참조해서 그림을 그리는 거죠. 주요 관심사가 뭐냐 하면요, 꽤 오래된 질문인데 그림을 그리는 주체와 모호한 대상, 그리고 재현 간의 관계 설정이거든요. 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의 미를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거에 대한 하나의 그림 그리는 행위에 대한 반성에서. 그래서 대상을 재현하는 하나의 사건을 암시하는 최소 단위들은 이젤, 테 이블, 모과, 그런 것들의 배치를 통해서 제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담아봤습니다. 다음, 두 개가 세트로 된 그림. 다음, 실제 작업 공간을 거울이라는 매개체 를 가지고, 이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이 자크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인데, 라캉의 주체형성 모델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음, 뒤에 또 거울이 하 나 있어서 제 자화상이 비치는데요. 계속 보시면, 거울에 비친 상황이구요. 다음, 이건 좀 다른데요. 실제 작업 공간으로 문이 열린 그런 상황인데요. 이때 부터는 이젠 제가 그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대한 관심으로서 관찰자나 화가의 시선,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서 원근법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 다. 다음, 네덜란드 17세기 동판화를 자료로 찾아서 작업한 거거든요. 그것을 재구성해서 이것의 제목이 뭐냐 하면 <일시점에 의해서 구현된 완벽한 공 간 속에 열린>인데, 하나의 소실점이 하나의 합리적인 공간을 구성하는데 그 공간, 소실점에 의해 시각 공간 안에 놓인 사물들이 모든 것이 절제되고, 소 실점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런 원근법에 의해 어떻게 보면 약간 폭력적인 그런 것에 대해서 시점을 여러 개로 한 그림 안에 시점을 여러 개 넣어 제작하거나, 시점의 이동을 통해서 여러 작품을 모아 제작함으로써 원근법의 일시점에 대한 시간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했습니다. 다음, 하 나의 작업실 안에 시점의 이동이 있는 작업이구요. 다음, 이것도 제가 허구의 공간을 구성한 거거든요. 왼쪽의 창문과 오른쪽의 창문, 이것을 보면 시점, 원래 바라다보는 시점이 다르거든요. 두 개의 시점이. 다음, 이것도 창문이 두 개가 보이는데, 같은 풍경이지만 약간 다르게 설명하고 싶어서, 날씨가 틀 린 경우거든요. 다음, 이것도 마찬가지로 창문의 배치를 통해 시점이 다른, 두 가지 시점이 공존을 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다음, 이거는 하나의 건축물 인데요. 하나의 원근법에 의해서 견고하게 구성된 건축물로 원근법에 의해 고안된 건축물이 허구를 나타내고 싶어서. 건축물을 하얀 종이로 백지로 남겨 놓았습니다. 이건 금호미술관에서 했던 작업이구요. 이것은 좌우가 뒤바뀐 상황인데, 이것도 길이가 되게 길게 제작되었는데. 이것도 역시 두 개의 공간, 두 개의 시점으로 합쳐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이거는 이전 그림을 창문을 확대해서 그린 경우구요. 이것도 창문에 올려 그려진 것을 확대해 서, 세 개가 연작이고요. 이 다음, 이 작품은 제목이 방문 이라는 건데요. 제 그림의 출발점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그림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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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 무엇인가에서 생각에서 제작했던 거구요.
거든요.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제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 일반적인, 일반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길거리 위에 공간, 작업 공간이 있다는 거는 통로라
이건 지금 전시하고 있는 작품이고요. 다른 것과 다른 게 천장에 놓이진 않았지만, 나타나진 않았지만 천장이 없는 공간이었고요. 저쪽 깊은 공간으로 놓
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이거든요. 작업 공간이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자신의 통로로서 작업 공간을 생각하고 있어요.
여있는 저쪽에 별이 있어야만 자리하는, 없는 상태로, 저쪽 끝에 또 하나의 공간이 있거든요. 길거리로 끝없이 이어지는 길, 공간이 두 개가 비치는 그런
김준기: 마지막 말씀 해주시고요. 정리를 해주시고요. 이어서 노순석 작가와의 대화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상황이에요. 이것으로 저의 작품들에 대해 대충 설명을 드려봤습니다.
정보영: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좋은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일상성의 재현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저희가 너무 익숙해서 항상 똑같이 보이는 브로콜리나 모과라든지 일상적인 것이 브로콜리였는데, 저
노순석: 예, 안녕하세요, 노순석입니다. 바로 작업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한 그림 안에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하나로 모으는 과정
는 제가 재현을 통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하셨는데, 제가 받은 느낌은 초현실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글쎄 그게 포함되었는지는 모
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이야기 같은 것을 제가 작업을 했거든요. 이거 같은 경우도 옛날 그림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오고요. 쉽게 해서 사람들이 보고
르겠지만, 뭔가 일상을 낯설게 하기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그거에 대해서, 그래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아까 어떤 선생님 처음에 팬 화도 그리
재밌고 상상을 하게 할 수 있게끔 그런 작업이고. 그리고 이거 같은 경우는 제목이 <내기사>인데, 이건 어떻게 보면 권력의 구조 같은 거를 코믹하게 권
시고, 이미 기존에 수세기 전에 그런 작가가 있었지만 선생님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관람객이나 독자에게 낯설게 하기로 의미인지 여쭙고 싶습니
력과 성, 어떤 명령과 복종과 같은 그런 관계들을 일단 코믹하게 다루면서 웃는 가운데,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끔 그렇게 한 작업이구요. 이거 같은 경우
다. 작품 하시기 전에 그것이 의도된 건지, 아니면 일상이라는 것이 항상 익숙하니까 사실 브로콜리 같은 경우 저는 요리의 재료일 뿐이지 선생님과 같은
도 지금 이렇게 보면 남자와 여자, 그런 관계들인데요. 여러 가지 상반된 이미지들을 화면 곳곳에 둬가지고 사람들이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를 상
그런 재료로는 보지 않는. 낯설게 보기라는 것이 의도된 것인지, 어느 날 생활 속에서 브로콜리가 그렇게 보여서 작업을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상할 수 있게끔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한 것이고요. 이거는 권투경기인데요. 지금 벽에 보면 서울역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게 서울이라고 하는 글
정보영: 그게 섞여있는 거 같아요. 일상을 지나치지, 일상 속에서 지나치지 않고 그런 부분도 있지만, 대상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그런 게 좀 있다고 생각
자를 적음으로써 전체의 장면이 서울에서 생기는 일들을 상징적 또는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고. 그런 장소를 정해둠으로써 우리가 좀 더 쉽게 그
하거든요. 제가 의미 있다고 해서 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고요. 소통이란 의미에서 제가 대상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어떤 정물을 복숭아, 모과 같
림에 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제 어떤 사건들을 권투경기에 비유를 해서 승자와 패자, 그리고 지고 나갈 때 그런 모습들을 재밌게 구성했고요.
은 것을 많이 그렸는데, 그것을 클로즈업해서 그리다 보니까 아까 풍경화처럼 풍경화 같은 숲 속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있다는 거죠.
이거 같은 경우도 서울 200년 이라고 해서 그 당시 서울에서 어떤 일이 생겼어요.
노성두: 제가 사실은 르네상스 전공하고 있고요. 원근법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수업도 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원근법에 대해 작업을 하셔
저 같은 경우에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내가 보고 겪고 느꼈던 것을, 내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와가지고 내 나름대로 사건
서 마지막에 놀랐어요. 제가 눈꺼풀이 확 벗겨지고, 벼락을 맞는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정교하고 치밀한 접근에서. 제가 지금 원근법에 대해 책을 내려고
들을 하나하나씩 따와서 거기에 어떤 풍자를 찾거나, 어떤 이야기를 찾아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해체를 시킨 다음에 다시 조합을 시키는데, 내가 볼 때는
하는데, 선생님 작품의 상당수가 제가 얘기하려는 딱 그 부분이어서. 그러니까 제가 느낀 부분은 뉴욕 타임스, 지난 밀레니엄 최고의 발명품 10가지 중에
해체를 시키기 전에 조합을 먼저 시키는데, 조합을 한다는 거 자체가 그런 해체를 한다는 의미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그림을 그리는
하나가 첫 번째가 르네상스 원근법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현대 미술에서 원근법은 죽었다라고 하거든요. 선생님께서는 선 원근법에 대해 회의를 갖는데,
것은 자연스럽게 세계를 해체하는 것 같아요.
대안원근법으로 선형원근법으로 공간과 사물 간의 관계, 체계에 대해 다룬다는 데에, 공간 문제를 다룬다든가, 거울의 문제를 다룬다는 데에 궁금한 게
이것도 마찬가지로 2000년에 서울의 풍경인데, 이때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요, 요기 보면 김정일하고 김대중이 있거든요. 두 사람이 만나는 거고, 그 만남
있다면, 선생님께서 작업을 주로 진행하면서 원근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오늘 보듯, 벨라스케스, 르네상스 원근법에 대해 다루시나요?
을 위해 북한에 소주고 하는, 뭐 이렇게 했던 그런 사건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이 사람이 북한에 가서 손을 흔드는 거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보영: 저는 붓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그리다가 보니까 자꾸 그림의 기본적인 요소로 회귀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첫 번째 재현
사람들은 노력을 하고 있다거나, 못 만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들을 하나의 화면에 재미있게. 이거 같은 경우는 점인데요. 출품한 그림인데, 여기 보면
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제가 그리고 있는 기본 요소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그리고 사진 이미지를 많이 참조하게
부적 같은 게 있고, 점보는 사람이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게 점을 통해서 점과 부적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과 불행을 미리 알고 싶어 하고, 그런 것들
되는데 사진 이미지가 가지는 한계성 때문이었어요.
을 이야기 그림 비슷하게 재구성해 본 거구요. 이렇게 해서 이게 제가 저번까지 했던 작업 중에서 괜찮은 것들만 골라서 가져온 거구요.
관객: 선생님 원근법 작업 중에 보면 아마 예를 들어 공간의 수직성 문제라든가, 명암 등 공간의 수직성 같은 경우에 눈높이에 따라서 사실 수직성을 갖지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은 어떤 작업인가 하면은 어떤 특정한 배우가 있거든요. 그 배우가 그 특정한 배우를 두고, 배우를 그리고 그 배우를 등장시켜 가지
않아요. 높은 건물을 밑에서 보면 건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수직을 유지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작업에서 직선이 모순을 갖는 부분이 있을 텐데. 왜
고 단편 영화도 만들고, 그리고 그 배우에 대해서 글도 쓰고 하면서, 그 사람이 그리는 이상을 색을 섞어가지고 하나의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고도 할 수
곡되는 부분이라든가, 이런 것도 정면에서 보면, 한복판에서 보면 사각형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찌그러져 보여요. 마름모처럼 보이거든요. 이것처
있는 그런 걸 하는 작업을 한 거거든요. 이건 그 작업이 하는 중이라서 이 작업에 대해서 뭐라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잘 못 드리겠어요. 그리고 작업을 하
럼 공간에서 수직선이라든지 수평선이 휘어 보이거나 기울어져 보이는데, 이런 것들을 선생님들의 작품 속에서는 시점 혹은 우리는 안구가 달걀껍데기
는 과정에서 그걸 작업을 정리하면서 진행을 못 시키거든요. 그러니까 작품을 하고 난 다음에 저 작업 속에 어떤 원리로 내가 저 작업을 했는지, 단편적으
처럼 실제로 인식하는 것은 곡선이라는 거죠. 그걸 곡선을 직선으로 만약에 곡선으로 자연을 재현하는데 있어 자연과 충돌하는데. 앞으로 어떤 식으로
로 작업을 보고 난 다음에 다시 한번 생각하죠. 작업의 원리라든지.
정리할 것인지, 그것은 르네상스 거장들도 해결하지 못한 부분인데. 구체적으로 21세기에 500년 전 문제를 끌어들였을 때. 궁금한데 있다면 앞으로 어떻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을 간단하게 보여드린 거구요. 이것은 지금하고 있는 작업에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이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들 가지고 초상화를
게 작업하실 건지.
많이 그렸어요. 그건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거 있잖아요. 뭐랄까, 어떤 존재를 보이게 하는. 이 배우가 지금 가까이 없거든요. 그래 가지고 같이
정보영: 글쎄,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안구의 곡면과 평면이라는 물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해 본 거 같고요. 그리고 제가 특별히 눈이 소실점과
보고 싶다는 의미에서 초상화를 많이 그리고 있거든요.
나란히 일치해서 구체 공간이 있는데, 제가 연구 발전을 못하고 있는 상태고요.
근데 또 중요한 것은 전 작업과 지금 작업하고 약간 그림 그리는 방법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거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석이 가능한가 하면은요,
관객: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화상이 있고 커튼이 있는, 그것은 자기 그림의 출발점으로만 말씀을 하시고 많이 얘기를 안 하신 거 같은데, 그것
전 거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바깥세상이 완전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바깥으로 간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는 그림에서 그림 형식은 제 안
에 대해서 좀.
에 있는 형식을 많이 따랐고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기존에 나와 있던 그림들을 베껴서 차용해서 좀 더 예쁘게 좀 더 보기 좋게, 그런 식으로 지금 작업을
정보영: 제 그림의 출발점은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출발점은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눕힌 의자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페인팅 하는 게 이런 식으로 지금 작업하고 있고요.
가 있는데 그 의자를 제가 만난 사람의 이미지로, 그렇게 봤거든요.
그리고 글도 썼고요. '며칠째 낮에는 더웠다. 밤에는 비가…….'라는 것처럼, 글이 사람들한테 그림보다 직접적으로 오기 때문에 그림이 글에 종속될 수
김준기: 지금까지 전시에 대해, 작품 경위에 대해 설명하셨다면, 이제 이번 전시의 작업실이란 것을 주제로 했을 때,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부탁
있는 거 같아요. 그림을 글하고 동등한 위치 혹은 그림이 글보다 위에 있게 하기 위해서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다르게 하면 종속 관계에서 종속 관계가 성
드릴 수 있을까요?
립되지 않을까 해서 그림하고 글하고 딴 얘기를 좀 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영상작업을 같이 하는데, 영상 작업은 이런 식으로. 이게 지금 영상이구요. 거
정보영: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었거든요. 주변에서 제가 제일 쉽게 접할 수 있는 항목들을 만나는 곳이고, 작업실이라
기에 그림하고 글이 동시에 보여주면서요, 뭐랄까, 영상이 말할 수 있는 것과 글이 말할 수 있는 것과 그리고 그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어떤 작품 같은 것
는 공간을 원근법에 대한 관심이라든가, 허구의 공간을 구성해 가는 통로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제작한 제작품은 길거리 위에 실내 공간이 있는 형식이
을 따로따로 동시에 이렇게. 이거 같은 경우에 지금 사진이 별로 안 좋은데요. 영상 작업 때 같이 들어갈 그림인데요.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은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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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주는데요. 이건 그냥. 크게 본 것이고요. 그리고 이게 동영상을 지금 하나 보여 드릴게요. 동영상은 그림하고 같이 그림의 내용을 도와줄 수도 있고, 딴
분은 12월 달에 세 명이 다른 전시를 했고요. 다른 곳에서 그래서 자료를 찾다 보니까 작업실을 소재로 한 작업이 있어서. 그래서 이것을 좀 풀어주면 좋
얘기를 할 수도 있어요.(동영상관람) 이것은 어떤 내용인가 하면, 그림을 주고 그 그림을 받아가지고 자기 방에 걸어놓고 그림을 보면서 옛날 일을 떠올리
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소재주의를 많이 탈피한 방식이 많았습니다.
는 그런 내용이구요.
정보영: (웃음) 저 같은 경우엔 작업실이란 공간하면은 작가 자신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곳으로서 그렇게 설명하면 될 거 같고요. 촛불이라는 것
저기 보면 여기에 다가 그 외에 종이 위에 간단한 그림이라든지 스케치, 글 같은 거 작업실에 평소에 해 가지고 그렇게 놓고 쓰는 것을 그대로 저기에 가
을 저기에 놓은 것은 잘 보시면 두 개의 상이한 공간이 있거든요. 정면에 보이는 하나의 공간하고, 하나의 공간 앞에 있는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에 있
지고 왔는데, 제가 보기에 작업실이란 공간은요. 어떤 공간이냐 하면은요. 약간 편집적인 어떤 그런 성향하고요. 또는 정신분열적인 성향이 동시에 공존
는 공간이 겹쳐 있는 공간이거든요. 하나의 촛불은 앞에 있는 공간에 놓여있는 거구요. 하나의 공간은 저 뒤에 있는 공간에 놓여 있는 건데요. 저 의자에
하는 그런 공간 같아요. 그래 가지고 그 공간을 최대한 산만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저런 식으로 설치를 했고요. 그래서 작업실이란 테마를 처음 받았을
앉아서 화가가, 제 자신이 저 촛불이라는 것을 하나의 가치로 봤을 때에 그 가치를 저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상징하는 거로 보고, 하나의 가치 뒤에 따라
때는 그런 거 좀 편집증과 분열증의 그런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그런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하고 그 작업에 글
오는 또 다른 가치가 놓여지고, 그런 상황을 나타냈는데, 확고하게 정리된 거는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는 그런 공간, 뭐, 그런 거요.
이 들어가니까, 저기도 간단하게 제가 작업실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텍스트로 적어가지고, 관객들이 볼 때 작업실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라도
김준기: 제가 좀 전에 질문 드린 것은 다른 분들도 가질 법한 질문이다 싶어서. 두 분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어떻게 매칭이 되느냐 하는 것은 기획자의 기
작가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는가를 좀 보여주고 싶어서 저런 식으로 작업했고요.
획 의도가 작가들에게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작가들의 몫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 어떤 작가는 작가적 문제 자체를 부각시키는 작업
그리고 딴 거는 뭐 보여줄게 없어요. 그리고 이거 같은 경우는 이제 텍스트하고 영상물 두 가지를 섞어서 보여주는 거구요. 이런 식으로 종이에다가 텍스
을 한 작가도 있고, 어떤 작가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아틀리에로 접근하신 분도 있는 거 같고요. 또 어떤 작가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아틀리에 특히
트를 적어 놓고요. 텍스트에 맞게끔 여기에 혹은 딴 영상이라도 영상을 두 개를 비춰서 보여주는 건데. 이것도 이 작업은 현재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
파리나 베를린에 있는 점거 아틀리에 같은 다양하게 좀 양상이 나타난 거 같은데. 그러저러한 것에 반해 전시 전체에 대한 것들, 부부 작가에 대한 작품을
고 드릴 말씀은 없고요. 현재 동영상 작업을 잠시 보여드릴게요.(동영상 관람) 이게 뭐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같은 것들을 라디오에서 나오는
포함해 활발하게 얘기 좀 했으면 좋겠어요. 이응로 미술관에 계시다가 창동에 있는 창동 스튜디오로 옮겨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계신 조주연 선생님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그 노래 가사하고 자신이 가진 기억을 설 대입시키잖아요. 그런 것들을 하나의 형식을 빌려 가지고 한 번 만들어 본 거구요. 하여
께서 아틀리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계시니까 어떠신지. 작가들의 창작 환경에 대해. 아틀리에와 직접 연관된 어떤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다든지 그러
튼 지금 작업은 이게 다입니다. 그럼, 질문이 있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신 거 아니죠. 이번에 일을 해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관객: 선생님 작업을 보니까 소위 말하는 구태의연한 멜로라는 작업을 하시고, 특히 사랑이라든지 연애라든지 관심 있는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라든지,
조주연: 지금 많이 부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작가 분들도 교류하시면서 그런 곳에서 작업하시면 영향 받는 부분이 많은 거 같아요. 프로그램이
발생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다루시는데, 다는 아니지만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웃음)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밥 먹고 나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굶주림이 해결된 다음에 바로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알기에 글 같은 것도 많이 쓰시고 그 작업에 추구하는 것을 보면 자기에 대해 사랑에
김준기: 일산 스튜디오가 어디 있어요? 좀 외진 데 있어요? 분위기는 창고 같아요?
대해 굉장히 장시간 생각하신 거 같은데요.
조주연: 고양, 덕양구요. 아뇨, 굉장히 관공서 적이에요.
노순석: 사랑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그리고 만약에 사랑이 없으면 어떤 뭐 예술이 존재를 못 했을걸요. 그런데 중요한 만큼 중요하니까 사랑에 대해 함
김준기: 새로 지어서, 문화부에서 새로 건물을 지어서 만든 거예요?
부로 말 못하겠어요.(웃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사랑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키는가는 관객들이 직접 보시고 판단을 했으면 좋겠고요. 선생님한테
조주연: 네, 새로 지었어요.
정확한 답을 못 해 드려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김준기: 저는 그 파리에 계시다 오신 분도 있지만, 밑에 일층에는 파리에 있는 점거 아틀리에, 그냥 도시에 비어있는 공공건물들을 작가들이 우르르 몰려
관객: 선생님 최근 작업을 많이 봤었는데, 옛날 작업의 많이 설명을 못 들었었는데, 보니까 시점을 굉장히 민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신 거 같은데, 민중
가 작가들이 모여 쓰기도 하고, 몇 년 쓰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계속 쓰기도 하고. 창동이나 고양에 있는 스튜디오가 관에서 운영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미술적이거나, 뭐 특별히 영향 받으신 사조가 있으신지요?
되게 좀 작가들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한국적 상황이란 것이 그런 거잖아요. 작가들을 사육하듯이 가둬두고, 사료를 줘서 좋은 작품을 하게하고,
노순석: 네, 그거는 제가 대학교 다닐 때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 당시에 상당히 유행했던 80년대 민중 미술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
일년 동안 잘 키워서 그래서 전시시키고, 뭐 이렇게 하는 것 같은 것만 있잖아요. 서울에는 두 개 보통 쌈지도 있고, 가나도 있고, 영은도 있고, 고 정도인
가지고 그런 형식 같은 걸개그림을 좀 같이 하면서 그런 문제들을 알게 모르게 그 쪽으로 영향을 받은 거 같고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 그런 것도 있고요.
데. 대개 점거 아틀리에와 같이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들, 사회적 저항도 포함된 그런 것들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파리에는 28개가 있고, 서울에는 하나
한국의 고지도 있잖아요. 그런 거 보면 재미있어요. 전체적인 거 보다는 작은 부분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거를 보고, 그런 거에
도 없죠. 그러저러한 문화적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좀 했거든요.
영감을 받아 가지고 차용해 넣기도 하고, 내 그림에 넣기도 하고, 단편적인 지역성 같은 게 우리 나라 고지도 보면, 그게 고지도의 매력 같아요. 그리고 가
조주연: 그건 좀 문화적 차이라기보다는 성격, 아틀리에나 그런 스튜디오가 여러 가지 성격을 띤 스튜디오들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이 더 좋은 거고. 제
장 큰 매력은 고지도를 보면, 그 지도를 만든 사람이 걸어갔던 길들이 보여요. 저 사람이 가서 본 위치대로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로 바라본 관점 같
생각에는 외국 스튜디오 같은 경우에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폐교나 폐공장같은 우리 나리에도 지방에 많지만, 그런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있잖아
은 것들을 바꿔버리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인 재미있게 잘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여러 관점이 한 지도에 같이 공존하는 것들은 많이 배워왔
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고, 장단점이 있다고 해서 좋은 스튜디오라고 해서 꼭 프로그램이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없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성
어요.
격이 다른 거 같아요. 정말 근데 한 참은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하다가 가장 발전적인 형태는 아무런 프로그램 없이 작가들에게 편안한 작업실만을 제공
김준기: 특히 정선생님 같은 경우, 아까 저 그림에 대해 뭐 좀 따로 설명 좀 하셨어요? 오픈 하는 날 이 자리에 한 10여명 왔었는데, 질문이 들어왔는데,
해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 것 같아요.
다른 작품들이 작업실 장면 사진을 찍거나 자기 작업실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거나, 그런 방식인데. 그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작업실 리포트>전에 출품
김준기: 그렇게 심오한 말씀을. 그게 어제 배준성 작가와 얘기하다 보니까 그 작가는 후원을 받았어요. 작업실을. 근데 외과 병동으로 쓰던 건물이고 자기
하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게 '촛불이라는 굉장히 작가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과 존재하는 작가의 위치, 뭐 이런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말
가 처음 입주했을 때는 외과 수술하느라고 피 튀긴 게 벽에 붙어 있고, 수술도구, 수술조명. 수술조명은 그냥 자기 책 읽을 때 쓰고, 수술대에다가 자기 팔
씀드렸거든요. 저 그림에 대해서 <작업실 리포트>전이라는 것과 그림을 풀어내시는 발상이나 방법, 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중복이 안 된다면 말씀 부탁
레트랑 물감이랑 해서 놓고 쓴대요. 근데 그 얘기들을 때 처음엔 무서웠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은 적응이 되었겠지만, 대개 낭만적인 아틀리에 상, 파티
드립니다.
도 열리고 뭔가 작가 고유의 분위기도 나고 그런 아틀리에 상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중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진짜 맨땅에 헤딩하는 고독한 공간이
정보영: 아까 얘기했는데요.(웃음)
다. 왜냐하면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그래서 옛날 화가들이야 도제식으로 조수들도 좀 두고 공장 식으로 운영했겠죠. 근데 요즘 특히 젊은 화가들의
김준기: 아, 그래요? 제가 본 것은 다분히 소재주의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작업실을 소재로 한 작가와 작업실을 주제로 한 작가 모두가 <작업실
경우는 되게 고독할 거 같아요. 혼자,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되지. 그게 아주 침울한 내밀화된 공간이 될 가능성도 크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틀리에
리포트>전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작업실을 소재로 드러났을 때 최초의 발상이 나왔을 때는 서구의 거장 화가들이 그림의 소재로 아틀리에를 많
의 역사와 의미의 변동들에 대해서 노박사님께서 서구와 비교해서 5분간 짧게, 5분이면 너무 짧겠지만, 8분 동안 말씀을 좀.
이 그렸는데. 그래서 그런 그림에 익숙한 나머지 거기에서 출발해서 기획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 것들을 기대할 때, 여러 화가들이 있죠. 그 세
노성두: 작년에 관장님을 우연히 만나가지고 그런 얘기를 했어요. 화가의 작업실, 조각가의 작업실, 이런 작업실을 전체 주제로 하면 어떠냐, 이게 좀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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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하게 해서 작업실 자체를 재현해보는 거예요. 2000년 전 500년 전 작업실을 그대로 복원시켜서 그렇게 해가지고, 20대, 30대, 70대 작가들을 불러
해서 하루 저녁의 전시, 파티 이런 걸 작가들이 하잖아요. 사실 그런 것들이 다 교류에 대한 열병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업실이 어디
모으는 그런 기획을 가지는 것을 한번 했어요. 그런데 몇몇 작가들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작품이 팔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마구 놓으면 누가 사가냐
있으세요?
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거기서 처음 얘기가 나와서 굴러가다가 선생님께서 떠맡아서.
정보영: 홍대 앞이요.
조만간 그 말씀을, 처음 말씀을 드리는데.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옛날에 어떤 마술사가 있었어요. 근데 마술사가 자기의 마술의 비밀을 자꾸 공개를
김준기: 몇 년째 있으세요? 햇수로 따지면? 10년?
한 거예요. 그런 사람 있었죠. 그죠? 그래서 화가들도 그렇고, 조각가들도 그렇고 자기 작품들의 완성, 미완성 작품으로 꺼내기도 하고. 머리통 안은 완전
정보영: 계속. 한 대학교 때는 학교에서 한 6년. 그리고 계속이요.
히 쓰레기통 안 아닌가요? 굉장히 복잡한 거예요. 그런 관심, 땀, 수고, 이런 과정들을 갖다가 같이 노출하고 완성의 비밀을 털어 놓고 하면 훨씬 더 우리
김준기: 저는 진짜 기억이 많이 남는 작업실이 있는데, 차 한 대 빠듯이 들어갈 만한 지하 차고, 차고 작업실. 근데 그 안에 있을 거 다 있잖아요. 이젤도 있
가 예술과의 거리를 좁혀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공방, 떠돌이 화가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궁정화가 벨라스케스 같은. 그래서 그런 것이 아카데
고, 침대도 있고, 심지어는 개조해 가지고 개수대까지 있고, 그런 거 학교 앞 작업실의 전형적인 특징인데. 지금 있는 곳은 대체로 어느 정도 크기이고, 어
미 공방, 아틀리에, 사실 어떤 신화적인 헤파이스토스가 대장간에서 이상한 방패도 만들고 했던 그러한 것들에서부터 오늘 나온 시장 유통, 미술품 거래
떻게 운영하고 계신지. 그곳에는 어느 누구누구가 다녀가고, 그런 것 좀 소개 좀 해주세요.
되고, 아니면 전시가 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그러한 구조 중에 한 마디로서 아틀리에, 그걸 갖다가 부각을 시키고 있는 전시 같습니다.
정보영: 그냥 집이예요. 집이구요. 뭐 여러 분들이 다녀가고요. 실제 그림 그리는 공간은 되게 조그마하고요.
하여간 그러한 것이 있고. 오늘 선생님의 작품을 보니까 작품들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한 것도 있고, 질문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 다음 분들도 질문하
김준기: 아틀리에와 관련한 에피소드라든지 고충이랄지, 계획이랄지 뭐 있으면 좀 들려줄래요?
고 싶은 게 많을 테니까. 한두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우선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궁금한 것이 소재, 소재를 이루는 색, 면들 있잖아요. 색면 축이라든지,
정보영: 글쎄요. 저는 그림 공간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그림이 점점 늘어나다가 보니까 이사를 가면 다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보관공간도 따로 있고, 그림
짜임새의 틀이라든지의 관계, 또 한 가지는 글과 그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림이 설명하는 인터렉티브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글 자체가 밖으로 튕겨 나
그리는 공간도 작아도 따로 있는. 공간적인 문제가 제일 고충이죠.
온 경우도 있더라고요. 또 이질적인 충돌이 있는 부분이 있고, 다음에 영상은 설명을 하나 밖에 못했지만, 영상이 아주 좋았어요. 아름답고 마치 아주 잘
김준기: 그런 그림을 지인들에게 보관 좀 해라 하고 한 점씩 보관 좀 시키면 어때요? 왜냐하면 정보영 화가의 그림 정도면 애지중지 잘 보관할 것 같은데
정련된 뮤직 비디오랄까, 그런 것들을 보는 듯한 짜릿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는 왜 글, 문자 기호가 그 자체가 선이 굉장히 자유롭고 멋있어
요.
요. 예를 들어 끌어안는 팔이라든지, 그런 것은 정말 옛날에 무슨 소설을 하나 읽었는데 팔이 하나 잘렸어요. 팔이 없는 사람이 연인을 만나서 끌어안으려
정보영: 작품이 크니까요. 집에서도.
고, 그걸 보고 울었어요. 그 아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여성들이 정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위한 멋진 동화, 아까 삽화의 선으로 한 것이 얼마나 좋을
김준기: 지금 몇 점 정도나 쌓여있나요?
까 생각했어요. 저는 맘 잘 통하고 물길이 통하고 '뻑' 갔어요.
정보영: 엄청 많이요.
김준기: 그럼, 답변을 해주세요.
김준기: 100까지 넘어가겠죠. 그것도 좋은 거 아니에요? 아 진짜 문제예요. 작업실이 작업실 공간이라는 것이 그 안에 예술의 종합적인 문제가 다 들어가
노순석: 아, 방금 그것이 제 질문이었나요?(웃음) 글하고 그림하고는 정말로 너무나 관계가 복잡한 거 같아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 같이 그렇게 작업을
있어요. 그림은 쌓여가지, 팔리진 않지, 뭐 이런 거 작업실 갈 때마다 와 그림 많다, 이렇다가 이 짐을 어떡하지. 그래도 예전 그림 꾸준히 잘 보관해두면
하면서 가능하면 정말 서로의 독자적인 영역을 갖다가 유지를 시키면서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해서, 하나의 어떤 이야기를 할 땐 그림만을 하고, 남들은 그
나중에 언젠가는 재산이 되고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고, 잘 보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추운데 참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작가님께 박수치
림을 배치할 수 있게끔 그런 식으로 죽 나가는 것이 맞는다고 해서 계속을 작업을 한다든지, 아니면 글하고 그림하고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
면서 마치겠습니다.
이에 보이는 틈 속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이 들어갈 수 있게끔 그렇게 한다거나 몇 가지 방법을 써서 하고 있는데요. 지금 진행 중이라서 아직 변변치 않아 서. 김준기: 요즘 작업실은 대개 현대 미술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이라고 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 뭐 이런 거에 대해서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거든요. 대개 저 는 그 관심이 많은 게 아틀리에의 정치학 뭐 이런 것도 좀 있는 거 같아요. 스튜디오의 정치학, 쌈지를 유심히 보고 있고요. 영은도 그렇고, 창동이나 일산 같은 경우에 또 관심의 대상이 되고요. 이렇게 보니까 프로그램을 가진 스튜디오들 여기가 어떻게 움직일까 앞으로 그런 거에 궁금증이 좀 많고요. 그런 점에서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셨죠? 노순석: 이제 2년 되었어요. 김준기: 2년째, 처음 들어오셔서는 어디 계셨어요? 노순석: 처음 들어와서는 개인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어요. 김준기: 아, 어디? 집 근처요? 노순석: 네, 홍대 앞에. 홍대 앞에 개인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여차여차 사정으로 작업실이 없어지고. 김준기: 창동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와 목적, 들어가서의 분위기라든지 계획 같은 걸 좀 말씀해주시면. 노순석: 저 같은 경우에는 창동에 가게 된 계기가 딴 게 아니라 오로지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자체. 나머지는 없고, 정말 그래 가지고 가서 지금 작업을 한 반년 정도 했는데, 상당히 좋았어요. 좋고 그리고 또 그런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 하면요. 저 같은 경우는 상당히 권태 상태를 좋아하고요. 지 금까지 계속 그런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했는데, 지금 거기서 지금 보면 선생님들과 같은 훌륭한 작가들과 같이 모이고 서로서로 그림 같은 것도 보여주 고 이야기 듣고, 그런 게 가장 큰 장점 같아요. 김준기: 그렇죠. 만약 창동에 있지 않았다면, 저 분들이 여기에 오늘 안 왔겠죠. 그런 거 같아요.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또래집단 같은 것도 만들어지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되고 이런 게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이렇게 집단 스튜디오가 아닌 곳에서도 오픈 스튜디오 해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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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6: 배윤호
2004.02.04 수요일 pm.04:00 김준기: 작가와의 대화를 맞이해서 헤어스타일을 새로 정리하시고, 배윤호 선생님께서 나오셨습니다. 배선생님은 홍대 시각디자인과에서 시각디자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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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연극, 드라마, 오페라 연출하듯이 소개할 때 무슨 공연이나 이미지나 그런 건 안 하고, 어떤 공간을 설명할 때 공간이 놓여지는 위치와 거기서 느껴
공하시고, 독일에서 다년간 머무르면서 영상 쪽, 영상, 영화 이쪽 전공하시고 귀국해서 ADS, CF도 만들고, 여러 가지 최근에는 스페이스 디렉터라는 직
지는 개인적 감정들이 카메라처럼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가는데, 그 당시에 그리고 '만든 구조체가 어떻게 있을까'에서 스토리를 가지고, 놓여있는 느낌
함을 사용하시면서 공간 연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이번에 이 작업실 리포트 참여하게 된 건, 생활공간, 자기 집, 집에서 딱히 작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라든지 놓여있는 위치라든지, 들어가는 사람의 감정이라든가 보여 지는 방향의 느낌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표현했죠. 이것도 그것에 맞게 잘라 가지
그 공간이 되게 미니멀한 아주 절제된 생활공간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과 작업실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보여주고 더불어서 오늘 배선생
고, 원래 책은 한 권짜리인데 분할해서 잘라서, 이만한 비례를 가지는 공간의 느낌, 그래 가지고 이런 식으로 스토리보드를 가상으로 만들었죠. 거기에서
님 생각하시는 여러 가지 것들, 자기 작업 이야기, 작업실 예술가로서의 삶, 이런 이야기를 좀 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각계각층에서 구름과
느껴지는 공간들이 물론 이거를 작업할 때는 주로 저 혼자 어떤 책이나 판타지나 이런 걸 가지고 작게나마 스토리를 완성합니다.
같이 몰려든, 운집하신 여러분께서 열화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로 배선생님을 모셔주시기 바랍니다.
근데 저는 특별히 이게 작업이라기보다는 제가 받은 어떤 이번 프로젝트에 제가 어떤 상상력이나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집안에서 혼자 많
배윤호: 그 소개받은 배윤호입니다. 뭐, 이제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라는 생활이나 작가 생활,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그렇게 좋아하질 않고요. 예전에 미술
은 상상을 하거나, 물론 이거를 완성하고 난 후에 이제 이거 가지고 하다보면 문제가 생기는데, 완성한 후에 저와 관계된 많은 파트너, 설계사무실이나 시
관에서 작가는 아니라 전시회를 한 번 참여한 적은 있고요. 저 개인적으로 연극을 하든, 오페라 연출을 하든, 영화를 하든, 건축을 하든 여러 가지 장르를
공하는 구성이나 시스템이나, 오페라일 때는 연주자나 기악부로 번역되고, CF일 때는 거기에 대한 프로모션이나 집행으로 번역, 건축, 전시설계일 때는
통해 여러 가지 개인적으로 실험한다기보다 서울에서 돌아와 가지고 이것저것을 하면서, 제가 작업하는 것, 작업이라는 단어를 안 씁니다. 일을 하는 행
시공업체나 구성으로 번역되어, 거기로 번역으로 들어가는 그때부터는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수정하기가 굉장히, 수정하려면 복잡한 과정
위가 내가 살고 있는 삶에 어떤 라이프 사이트, 생활공간 그것과 항상 관계가 있는 것 같아서.
을 다 수정해야하기 때문에 주로 저는 이 안에서 이제 가능성과 판타지라든가, 새로운 어떤 걸 가지고 주로 작업에 또는 사고 형태를 취하고 이 형태가 이
그거에 대해서 아가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작가로 가져온 건 제가 최근에 끝냈던 청주 비엔날레 공간 연출하고, 그 동안 작업했던 스케치북이나 사진을
제 어느 정도 저와 함께 하는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자와 대화하면, 그 다음단계로 실행해 갈 수 있는 권력에 들어가는데, 근데 실행에 일단 딱 들어가면
좀 가져왔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는 제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거나 답을 내리거나 이런 작업보다는 개인이 어떤 일을 맡아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생활하는데, 어떤 게 문제가 되고, 어떤 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게 작업, 자기가 하는 프로젝트에 어떻게 표현이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되고 관심을 많
그거는 예산에 의해서 키를 작게 한다든지, 싼 재료를 쓴다든지, 공기를 줄인다든지, 물리적인 어떤 법칙으로 전담되지 판타지하고는 상관없이 진행되기
이 가졌습니다. 그 잠깐 제가 그 동안 했던 것들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는데. 우리나라 98년도인가, 99년도인가 귀국해서, 그 당시부터 제가 했던 일들은
때문에, 그거는 저한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죠. 근데 이거는 물건일 때는 자를 수가 있는데, 사람일 때는 자를 수가 없거든요. 사람일 때는
CF한 50개, 미술감독으로도 많이 활동을 했고요, 영화도 한 번 한 적 있고, 오페라 연출도 한 번 했었고, 전시설계 같은 것도 했었어요.
목을 자를 수도 없고, 몸을 자를 수도 없고, 저 사람 직업을 자를 수도 없고, 이게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내가 오페라 무용단 하나 써야 하는데, 무용단
저는 특별히 어떤 회사에 소속하거나 회사에서 어떤 직함을 갖지는 않았고, 그때그때 인연이 닿는 대로, 프로젝트에 제가 순응해서 접근해 가서 일을 해
견적이 한 2000만원 나왔습니다. 무용단 한 두 꼭지 나오는데, 근데 무용단을 잘라 가지고 한 두 꼭지하면 그게 15분이 길어. 그러면 드라마는 늘릴 수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식으로 쭉 진행을 해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전공이 뭐냐, 어디가 뭘 스페셜리스트로 하느냐 하는 이런 질문들도 많이
있는데, 그 드라마로 늘리는 데, 연습 시간이 길어.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근데 이런 물리적인 책은 분명히 자를 수 있어. 키를 자를 수 있고, 평
하시는데, 저는 굳이 그런 거에 대한 것이 없고요. 저의 역할과 어떤 한 프로세스에 관심 있고, 그것에 대해 내 나름대로 목적의식이 생긴다면, 전시, 공
을 줄일 수 있고, 재료를 바꿀 수도 있고, 수정이 가능한 데 그런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이런 거는 가끔 파트너랑 커피숍에서 스케치할 수도 있지만 주
간, 연극, 연출, 기획 안 가리고 저는 다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게 장점이 되는 면도 있지만, 굉장히 단점이 되는 점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고 제가 혼자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거를 완성된 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청주고요.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이제 몇 가지 단순한 스케치를 집에서, 아래 내려가면 있지만 사진 찍은 거 있지만, 제 방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스케치가
김준기: 좀 전에 스케치 보여주신 게 국제 작가들의 공간입니까?
단순한 집에서 그냥 스케치 하나를 가지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 예를 들면 영화를 한다면 2,30명에서 2,300명까지 오페라를 할 때는 5,60명에서 400명
배윤호: 아니죠. 생활문화관. 국제 작가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거는 두 가지로 공간을 봐야 했기 때문에 두 가지 같은 스토리로 안 썼고, 그건 어둔 걸로
까지를 컨트롤 해가면서 같이 공동작업을 해 나가는데, 그런 것에 대해 내가 항상 과연 답을 가지고 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거를 항상
따로 스토리로 만들었고, 저는 하나만 미션이 되었으니까 여기 많이 있거든요. 많이 찍고 테스팅하지 않아요. 비슷비슷한 사람 많으니까 창의력도 보지
회의적으로 보아왔습니다. 나에게 예산집행권이 있고, 나한테 어떤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만은, 과연 내가 공동작업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가지고 같이 작
않고, 내가 아무리 재료를 멋진 걸 써도 비싼 건 할 수 없으니까 예산이 나중에 욕심이 생기면 사장님을 만나서 구걸을 하던지 예술 한 번 합시다 꼬셔가
업해 나가는데, 과연 내가 스케치해서 작업한 것들이 과연 이게 답을 가지고, 그것이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는가, 내가 설계한 스케치 하나가 과연 이런
지고 싸게 사서, 주로 문화, 예술 쪽에 있으면 뻔뻔해져 가지고, 제대로 인건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떤 도덕적인 심리가 생기기 때문에 막 합니
사람들 다 설득할 근거가 되는가를, 이 점에서 많은 고민이 됐습니다. 그게 작업실이라고 앉아서 계약을 맺고 앉아서 돈을 준다니까 그것도 상당히 많은
다. 제가 이거 바닥 까느라고 고생 많이 했거든요. 저게 바닥 까는 게 별 의미도 없는데. 제 나름대로 이제 뭐 여러 가지 마감재를 이용한다든지, 사자수열
돈을 준다니까 계약을 해가지고 앉아서, 테마에 맞게, 주제에 맞게, 내 업무에 맞게, 스케치를 하다보면 그 다음에 이것이 다른 사람들한테 의뢰를 받았으
을 이용한다든지, 수치를 이용한다든지, 가운데 결로현상에 의해 물이 생긴다든지, 이런 거에 대한 프로그램에 대한 의미를 미션을 부여했기 때문에 끝
니까 팔려고 이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제가 많이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내가 아직은 아니라 내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와중에 생기는 결
까지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는 나 혼자의 투쟁이지 뭐 보는 사람은 관심도 없어요. 그건 많이 느꼈어요.
정적인 편견이 아닌가 하는 회의도 많이 했어요. 근데 이제 막상 진행하다 보면, 물러설 때 물러설 수 없으니까, 내가 주장하고 내가 생긴 편견을 가지고
저는 많이 느끼고, 그 대신 제가 어떤 프로젝트든지 그거를 하기 위해서 이제 이러다가 공연 설계하다가 영화감독하든지, 뭐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떤 프
그대로 그것을 맞는다고 주장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싸우는 스타일이고, 몇 번 진행하다보면 제가 개인적으로 아 내가 어떤 작업실이란 공간 안에서 생
로젝트나 어떤 과정은 인이 하는 거 같고. 나의 아티스트 친구들, 이런 데서 살죠. 이런 데. 이렇게 자기의 컬렉션을 주로 전시를 딱 하고, 이렇게 사는 건
각했던 편견이나 어떤 개인적 아집이 너무 일방적으로 스텝들과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모든 것들에 너무 영향을 미치고, 너무 대화 위주가 아닌 굉장
데. 이런 건데. 저는 결벽증이 아니라 콤플렉스로 더 이상 내 사는 개인적 공간에 컬렉션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다 버리고 싶어요, 다 버리고 설레는 마음으
히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로 새로운 세계에 가보자. 과거에 있었던 이거 가지고 세팅해 가지고 어떻게 싸게 바겐세일로 리메이크해가지고, 좍 연결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고, 다음
요즘 들어 요번에는 최근에 제가 하고 있는 신촌 아트페스티벌 전체 공간 연출 겸 기획 겸, 전시설계 겸, 같이 전시 설계만 아니라 공간이랑 페스티벌까지
프로젝트 다음 프로젝트에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변화하고 싶어요.
해 가지고, 설계를 하고 있는데, 설계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예전에는 다루는 소재가 이렇게 나무나 죽은 생명체일 경우에는 제가 결정적으로
근데 그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당치 않아요. 그거를 대부분 저도 건축하는 친구도 있고, 영화하는 친구도 있고, 공연하는 친구들도 있고, 여러 가지
제시를 해줄 수가 있는데, 다루는 게 만약 사람으로 바뀌거나 어떤 연주자나 지휘자나 감정을 가진 여러 가지 육체가 되면 제가 설계한 게 아주 의미가 없
영역에 프렌드들이 있지만, 그 친구들을 자기를 구성하는 조건을 작업 공정이나 자기 시스템을 주고 공정과정을 통해서 자기를 인정받기 때문에, 다른
는 상황에 많이 빠져요. 그럴 때 내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게 맞나 안 맞나 그런 생각도 하고, 고민에 많이 빠져요.
쪽으로 전이되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고요.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것들 하면서 뭔가 고민이 되지만, 정체성이 흔들릴 때도 있고 그렇지만, 제가 이제
제가 아까 보여드릴 건, 오늘 가져온 건, 가장 최근 건데. 한 7번에서 8번에 현 작업할 때마다, 제 개인적 스케치한 거예요. 근데 이제 제가 청주 비엔날레
한 번 고민해 보는 건 나이도 점점 먹어갈수록, 20이 있으니까 그걸 뛰어넘으면서 제가 느끼는 게 어떤 프로젝트든지 나를 설레게 하는 미션이 없고, 과
일을 의뢰를 받고, 제가 두 가지의 공간에서 하나는 밤의 공간, 하나는 낮의 공간해서 두 가지의 스케치를 따로 진행했어요. 그래서 이 두 가지 스케치를
정이 없고, 설렘이 없으면 도식화되는 게 너무 많아요.
공간화해서 조형화시켰는데, 물론 이거의 과정에는 이거를 할 때는 개인적으로 저는 빈방에서 혼자 아무 도움 없이 나 개인의 일기장처럼 스케치를 했는
경험 치에 의해서 이 도식화는 결국 스케치를 하는 순간 완성이 돼요. 그리고 완성이 되서 나온 대차대조표의 결과물은 이미 맞나 안 맞나 결론이 나요.
데, 이거를 관에 가지고 저는 이 과정에서 이 하나를 가지고, 이거 하나를 보여드리면, 이게 이제 제가 처음 그렸던 잘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스케치입니다.
과정을 빨리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첫 아이디어서 결론까지 나와요. 근데 될 수 있는 대로 그렇지 않는 방법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좀 더 독일어로 아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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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 열정적으로 해나가기 위해선 그 과정의 새로운 만남이나 새로운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해지고,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저
식으로. 저도 뭐 건축과 가서, 대학원 가서 도시 공간 다큐멘터리를 강의한 적도, 그런 거에 관심 있어 가지고, 그런 거를 내러티브적으로 잘 아시잖아요.
는 개인적으로 그게 상당히 어렵다는 거를 많이 느끼는데, 뭐 저는 뭐 제 얘기만 잔뜩 떠들지만 느끼는 게 요번 거까지만 보시다시피 조그만 스케치로, 요
춤이든 뭐 섞어서 영화 몽타주 가지고 도시 공간 설계하듯이 그 사람도 일찍이 일종의 후발 주자니까. 춤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니까, 그런 텍스트나 그런
스케치가 뭐 거의 완성이죠. 완성 이 완성을 남들이 보더라도 그냥 자세히 보시겠지만, 혼자 끄적이면서 그린 게, 이렇게 콘티를 그린 게 완성이 된 치수
걸 쓰는 것은 여러 시안을 가지고 한 건데, 지금 하고 있는 거는 그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적용시키는 데는 문제도 많았습니다. 왜냐면 초짜로 막 하니까,
가 되고 비례가 되고 뭐가 되고, 결정적인 건데. 그 제가 이걸 만들고 나서 거기에 않아 있으면 관객의 반응이나 뭐 이런 거에 대해 프로그램을 해봤어요.
이제는 여러 경험치가 있으니까 조금은 낫습니다. 조금. 이상 마치겠습니다.
내부프로그램이나 과연 내가 한 게 가능한가. 한 50%는 가능한 거 같고, 50%는 아니길 바라는 거 같습니다. 근데 이제 과연 내가 이런 물질적인 자리고
김준기: 그 저 배작가님이 되게 앞 뒤 정황파악, 문맥 맥락화, 뭐 이런 능력이 워낙에 탁월하다 보니까 오늘의 작가와의 대화가 <작업실 리포트>전에 참
수정할 수 있는 대상인데. 물질적이지 않은 심리니 인간이나 감성이나 어떤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계획한다는 건 어떤 거냐 하면은 이러한 방법은 적응
가한 출품작가로서, 작업실이라고 하는 것과 자신의 위치 뭐 이런 거에 대해 아주 핵심만 딱 얘기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여느 작가들이 했던, 나는 어느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작업 공정을 완전히 가르면 대화하는 거랑 프로세스나 내가 사고하는 사고 체계나 작업 공정 같
그림 그리고요. 중학교 땐 뭐 그렸고, 고등학교 땐 뭐 그렸고 대학생 땐 뭐 그렸고, 초반기에 뭐 그렸고 지금 뭐 그리고 있다. 이렇게 작업실 리포트라는
은 걸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맥락과는 다른 자기 작업 이야기만 막 늘어놓으면서 30분, 1시간 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자기 자신의 작업들
물론 저기 나의 제자나 친구도 있는데, 저 친구를 데리고 완전히 전혀 새로운 팀으로 바꾸려고 해보려면 쉽지 않아요. 선례가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에 대해서 그 동한 6분50초에 걸쳐서 죽 스크랩을 한번 해주시는 것도 여기 오신 분들에게 유익할 거 같아요.
접근되든지 되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연 기획을 하던 친구를 작곡가를 맡겨서 오페라 작곡 교향악곡 작곡하듯이 공연기획 프로그램을 해봐라. 제 공연
배윤호: 그건 짧은 말이지만, 말로써 될 수 있죠. 저는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어요. 만화를. 자폐증 비슷하게. 오늘 안 가져왔는데, 제가 독일에서 한
디자인 하던 애들을 공간디자인 하는 애들과 거꾸로 해서 네가 공연하는 시간에 따라서 공간 기획 시간을 봐라. 이렇게 뒤섞기를 좀 많이 합니다. 물론 헤
만화책이 무언가 하면, 나의 일상 일기를 스토리보드로 많이 그려가지고, 매일 일기를 써서 100컷, 200컷. 처음엔 4컷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하루에
매고 다니는 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러면서 그 안에서 어떤 판타지나 꿈을 계속 발굴해 낼 수 있으면 그 가능성의 진흥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내
기억나는 장면에 수백 개, 수천 개씩 되어가지고 그래서 상당히 많은 양이 유학시절 전체를 스토리보드로 만든 만화책이 있어요. 콘티물이.
작업이다'라고 규정하는 작가작업이나, 그 규정에 대한 프로그램이나 이데올로기에는 솔직히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독학을 했어요. 근데 디자인이나 뭐 이런 부분에 선생이 없었기 때문에. 잡학하게 이것저것 독학하고, 그래서 우연히 무대디자인 하는 선생
작가, 작가가 사는 곳이 작업실, 라이프 사이트, 공간, 그들의 시대, 이것도 너무 포멀하고 너무 체계적이고 너무 고고학적인 어떤 루트로 얘기하고, 스타
님, 독일 분을 만나가지고 그 밑에서 오페라나 무대디자인 국립극장에서 10년 전 조연출 비슷하게 하다가 유학 가가지고 소정의 교육과정을 10년 밟았
일주의 시대 시스템 아니에요? 정형화하고, 그 안에서 명분을 찾고, 명분을 찾은 다음 그거를 포괄해서 그 시대를 전부 다 포괄한다는 거는, 나 개인적으
죠.
로는 활극, 그것이 열정일까, 그것이 설렘일까, 살인을 한다고 설렘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 안에 개인적인 어떤 자기 생각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회의
연극을 하기도 하고, 다시 도시 공간 다큐멘터리를 좀 찍다가 아예 때려치우고, 이거 관심이 생겨가지고, 그래서 저는 연극을 할 때는 자폐증적인 어떤 자
적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건축과 영화와 섞든지, 도시와 영화와 섞든지, 텍스트와 음악과 섞든지 하는 이런 것들을 많이 해보고 싶은 아직은 욕망에
기 세계관에 몰입해 있었어요. 뭐냐 하면 나는 창작에, 예술에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어요.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거의 아직 학생입니다.
나 같은 개인적 고민들이 다른 사람들이나 삶과 시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작가적인 정신에 대해서 회의적이에요. 그래서 삶의 다큐멘
저는 학생이란 표현을 좋아하는 데, 그건 책임 안 져도 되니까.(웃음) 근데 그게 우연한 기회에 김준기 실장님이 저한테 이렇게 작품을 전시에 참여해 달
터리 거기서 소정의 스타일을 느꼈죠.
라고 해서 땡땡이치다가 서로 안면도 있어서, 이렇게 도저히 땡땡이 못 치고 이제 하나 냈는데, 그때 제가 솔직히 고민한 건 뭔가 자꾸 설명하고 뭐 이런
뭐 무슨 기법적인 측면에서, 영상이나 테크닉이나 편집이나 무슨 소정의 교육과정 무사하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죠. 그 졸업하고 나서 그걸
것들이 이런 것들에 의해서 내가 표현하는 것들과 괴리가 굉장히 크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물론 저의 라이프 사이트에 많은 예술가를 많다고, 주변에 많
가지고 우리나라에 써 먹을라고 하니 써먹을 데가 없어요. (웃음) 와 가지고 할 데가 없어가지고, 몇 번의 과정을 거치다가 들어간 데가 CF프로덕션도 있
이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도 많고 굉장히 뛰어난 건축가도 있고, 굉장히 뛰어난 음악가도 있고, 그들도 서로 만나면 서로 대화가 안 돼요. 근데 같은 시대
고, 영화미술 감독도 있고, 그러다가 미술무대디자인도 그렇고, 그러다가 또 오페라 연출도 있고,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은 일년에서 이년단위로 저를 변
를 산다는 거죠. 허허(웃음) 근데 대화가 안 돼. 대화하는 척 하지만, 서로들 본질적으로 너무나 서로 다른 세계의 폼을 가지고, 다른 세계의 주제와 다른
화시켰어요. 왜냐하면 새롭게 자꾸 그걸 갔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전시설계도 하고, 공간연출도 하는 과정에 한 5년 지나간 거예요. 물론 그 와중에 여
세계의……. 그래서 그런 것들이 오늘날 유행하는 노마드적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러 학교에서도 소정의 이러한 일도 강의도 하고 했는데, 제가 저 개인적으로 항상 관심이 많아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사람과 나와의 관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지 그러한 것들에서 꿈과 비전과 가치관과 생활 태도와 그런 것들이 발견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
계는 항상, 여러분들과 나와의 관계는 이러한 긴장적 관계, 잘 몰랐을 때의 긴장 관계, 하지만 잘 알면서 뭔가 배워가는 것. 꼭 개인과 개인의 그런 관계
고, 그래서 요번에 서대문형무소와 신촌 아트페스티벌을 제가 맡아서 지금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이 주제, 작업실이란 주제가 있어서 저한테도 은연중
만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나와 시대, 나와 그룹, 나와 영역, 나와 다른 대상, 나와 도시. 나는 그런 데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나와 나를 긴장시키는 영
에 영향을 미쳐 가지고, 여러 가지 육체, 본질, 껍질, 틀, 누적 뭐 이런 거의 영향을 받아 가지고, 한 달 전쯤 진행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역이나 공간이나 시대나 이런 거에 대해서는 항상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만들고 표현하고 그래요.
이렇게 여러 가지 행위를 하는, 물론 저도 나중에 애널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로 어떤 활동하겠지요. 하지만 대부분 스페셜리스트라고 했을 때 학위
요번에 맡은 설계공간은 돈도 별로 없지만 신촌서부터 서대문형무소까지 전체 공간은 제가 맡은 영역 중에 가장 큰 물리학적 토톨로지죠. 그 토톨로지는
를 뭘 받았냐, 전공은 뭘 했느냐, 어떤 걸로 영역을 하냐, 할 줄 아는 게 뭐냐, 포트폴리오가 뭐냐, 이런 식의 결론적인 결정을 하는데, 저는 항상 스페셜리
저한테 관심이 많거든요. 저는 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제 관심 있는 영역은 토톨로지와 원근법. 두 가지를 가지고 어떻게 변형을 시키고, 어떻
스트가 단점이 뭔가 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결론에 나는 경우가 되게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마추어의 열정이 좋은 게, 아마추어는 아는 게 없으
게 위치시키면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요새 그런 게 제일 관심이 많아요. 결국 특별한건 저를 드러내는 거는 잘 안 했어요. 소심하기도 하고, 근데 이제
니까 물어봐야 해요. 그리고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열정적이야. 모르기 때문에 뭔가 거기에 대해 뭔가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근데 이런 걸 잘 섞어
백데이터 좀 있으니까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내고 구성하고. 근데 아직 젊으니까 아직 학생이니까 다음 단계 들어가면 좀 더 많은 걸 할 수 있
서 뭔가 만들 수 있으면 됐지 않나. 그리고 그런 게 난 인간관계라든지 의사소통 관계가 작업의 형태로 나오는 게 되지 않을까. 난 그런 거에 대한 생각을
고. 뭐 됐지 않습니까?
좀 하고 있습니다.
김준기: 네. 얘기를 해도 그냥 안 하고, 서대문에서 신촌 로터리까지 막 이렇게 하니까, 훌륭하십니다. 이런 거 좀 배워야하는데. 우리. 허허. 그 수업도 같
그런 거를 하고 있고, 무근 사냥꾼처럼 컬렉션해서 집에 걸어 놓고 보기 보다는, 될 수 있는 대로 하면은 다 있고 다 휴지통에 버리고 새롭게 추구할 뭘,
이 들어보시고 그랬어요, 제자 분들? 어, 강의하실 때도 이렇게 멋있게 자세잡고?
자꾸 새로워질 자기 코드로 할 수 있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 그리고 출발은 아마 사람과 사람의 만남, 여러분과 나와 지금 이러한 조건 지은 상황
관객: 네.
에 만났지, 만나는 그 순간 뭔가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나는 요즘 제가 생각하는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김준기: 그런 거 같아요. 벌써 자세가 딱 나오는데요. 아 그리고, 역시나 저 그 건축과 공간연출, 뭐 이쪽이 이야기꺼리들이 되게 많을 거 같아서 한은주
제가 다행히 전공을 넘나들 수 있었던 건, 영화과를 공부하고, 연극을 공부하고, 그 다음 디자인을 공부하고, 그래서 소정의 교육 과정에서 여러 장르를
박사님이 바로 질문 안 받냐고, 긴장하시고. 고런 대목이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그, 저, 작품들, 작품해온 것들에 대한 얘기가 있을 테고. 또 하나는 이 저
했던 거가 기초가 된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게 이제, 그리고 내가 영화를 하더라도 특별한 배우를 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무대디자인이나 프로덕
공간 그룹하고 사비나미술관 공동주체를 했거든요. 초기 계획 단계에 의논하면서 건축공간이나 작업실 공간을 얘기했더니, 아트파인 아트팩쳐 라는 개
션 디자인, 미술 감독, 이런 식으로 베이직한 것들을 여럿 하다가 보니까 이거를 맵핑하듯이 도시공간과 영화공간과 도시와 건축, 건축, 텍스트 뭐 이런
념도 얘기해주고 해서, 건축도 그렇게 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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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과도 연결시켜서 이 배작가님의 생활공간, 작업 공간 등등에 관한 이런 이야기도 좀 할 수 있을 거 같고. 또 지금 출품한 작업 있잖아요?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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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호: 참, 그런데, 그날 카메라도 없고 해서 집에서 하는데, 친구 작가 불러가지고 커트만 찍어가지고 몇 개.
는 일반 관람객에게도 얘기가 좀 되면 길게 얘기하지만. 그래서 작업, 이번에 출품한 작품에 대해서 좀 얘기를 좀 더 붙여주셔야 할 거 같고. 먼저 그걸 듣
김준기: 음, 큐레이터로서, 참여 작가로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참 되게 이율배반적이긴 하지만, 이 전시에 21명의 참여 작가 중, 지뢰 중 한명인데, 어떤 지
고 나서 뭐 신체가 매개되는 작업실, 작업 공간 등에 대해 얘기해보죠.
뢰냐 하면, 사람들이 와서 이게 뭐냐 하면 이런 작업실도 있구나, 알아먹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지뢰, 정보영 화가의 그림예요. 이게 텅 비어 있는 통로 저
배윤호: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제 방을 찍은 거예요. 아무 것도 없는 생활공간에 필요 없는 거를 다 버리려고 노력하는 데, 아직도 못 버린 것이 있죠. 아
그림하고 텍스트가 없으니까 소통이 잘잘 안 되는 게, 요 밑에 층에 있는 사진작업, 김정일이라고 하는 정신과 의사가 사사라고 하는 정신과 상담을 하는
직, 될 수 있는 대로 다 버리려고. 왜 버리느냐? 예전에 모으는 걸 좋아했어요. 근데 이제 앞으로 4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버리는 걸 좋아해요. 제가 절
정신 주치의예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작업실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인데, 맥락을 관객들이 못 읽는 거예요. 왜냐하면 텍스트로 설명하거나 보드로 전달
실하기 때문에 이제 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그래도 소유욕 자체는 못 버리겠더라고요. 14년 동안 안경을 잃어버려가지고 가슴 아프더라고요.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매 따라다니면서 설명할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설명을 붙여놓긴 했지만, 이거와 비슷한 경우처럼 그 배작가님의 작품이 관객
그게 이제 그 작품에 하나는 제가 살고 있는 침대, 매일 저녁에 자는. 세 개는 제가 처음 일어나서 입는 옷 입는 행위를 다른 방향, 자세로 세 커트를 찍었
들에게 작업실 리포트라는 것으로 소통가능성, 이런 것들이 떨어졌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고, 저로서는 알죠.
는데. 물론 그걸 연출해 가지고 표현했는데, 미니멀하다는 거는 외형적인 것이고, 저는 이제 저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만났을 때, 그것이 형상
배윤호: 써 준거 붙여놓으면 되죠.
화되고 형상화되지 않는 순간의 첫 번째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을 옷이란 주제로 가죽옷은 메타포하고 다른 거구요. 창세기에서 나온 거구
김준기: 알죠. 아, 네, 그랬을 때 전시장에서 관객들하고 만나서 자기 작업으로 프레임에 규정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을 그동안
요. 하느님이 인간에게 처음 설명한 게 가죽옷을 설명하시는데, 희생을 바탕으로 한 옷이에요. 그래서 메타포가 있고, 인간이 만든 도구적 개념이 아니라
안 해오셨거나 아니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거나, 별로 익숙하지 않으시거나 뭐 그런 생각을 좀 했어요.
신과 인간의 약속적 개념의 도구가 있고, 희생의 개념의 도구가 있고, 희생의 개념을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이런 메타포가 있는데, 그 메타
배윤호: 아, 네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근데 그것도 맞아요. 원래 이제 그것도 맞고, 근데 나는 작품에서 작가 사진 프레임에서 하는 완성형보다는
포는 설명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가죽옷을 택한 거는 아니고, 있는 것 중에 앵글을 잘 잡기 때문에 선택한 건데. 그 의미는 좀 있어요. 어떤 인간의 형
내 삶과 작업을 작업 전시하라는 것과 이런 것들을 넓게 받아들이고, 전체 프로세스의 텍스트를 하나로 연결해요. 그리고 내가 전시, 오늘 가져온 프로그
식을 입고,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 우리 옷을 발가벗고 대화하는 특별한 장기 아니잖습니까? 나머지는 옷을 입고,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인
램 하나가 퍼포먼스 하나이기 때문에 너무 전략적이에요. 허허(웃음) 그래서 이날 와서 이거하는 거를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퍼포먼스 하는 전략적인 뭐
데, 그 안에서는 예술도 지켜야할 열정도 만들기도, 클라이언트한테 열정을 가져야 내가 팔 수 있는 관계가 있는 거죠. 안 그러면 스케치북 보고 2500이
이런 거를 하고. 나는 완성된 결과에 엔딩을 찍어서 완결된 구조를 갖는 것보다는 항상 진행의 흐름에서의 대한 어떤 단선으로 생각하고 나의 삶 속에 전
야? 이러면 이건 물리적 단가만 하면 2천원, 3천원도 안 되는데. 이거 뭐. 2억5천 되냐? 비싸지 않냐? 4억 드나? 넌센스같지만 이건 행위가 돼요. 이런
시관에 저녁에 가서 강의도 하고, 어디 가서는 또 뭐도 하고 그래요. 이 모든 행위가 부조리하지만, 그걸 연결해 가는 것이 삶이기 때문에 나는 그거를 중
식으로 또 이루어지고, 공연을 한다고 해서 실제 모델해서 3D해 가지고 갖다 주면 매력이 없어요. 거기엔 영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죠. 그래서 저는 될
히 여겨요. 그래서 나는 내 일 뭐라도 버릴 수 있어요. 건축, 문학 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거의 에너지를 찾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 형태의 폼을
수 있는 대로 개인적인 것들에는 하고, 다만 물리적인 프레젠테이션에 대해서는 뭐 그런 하지만, 뭐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이런 프로젝트가 크면 클수록
지키는 게 중요하진 않잖아요.
수많은 사람을 만나요. 그러면 내가 형상화할 때는 그들과 대화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한 거지, 나의 생각의 일방적 강요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건 점점
나는 미술관이 미술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예요. 그리고 어떤 컬렉션이 그 아티스트의 전부이고 물론 비엔날레가 그 컬렉션의 전부
더 그런 걸 많이 느껴요. 그래서 작업을 하든 행위 자체는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꿈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거예요. 나는 그거
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요. 그건 대대로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관계없음의 증명이 미술사예요. 건축사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다들 관계없음이라고요.
를 나눌 수 있는 절대 권력자나 아니면 나눌 수 있는 절대 집단이나, 나눌 수 있는 절대 어떤 소기의 나눌 수 있는 순간, 형상화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는
관계있음도 구체적인 거에서 출발해요. 항상 그 구체적인 것은 가까운 데서 출발해요. 난 지극히 그렇게 컬렉션 하고픈 마음은 없어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을 가지고 뭐 설득하고, 이런 건 많이 없어요. 내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일
김준기: 역시 스케치 한 장 가지고 1억을 벌 수 있는 배작가님입니다. 아, 저도 이 저 배선생님을 출품해주십시오 했을 때 대개 저 타블로를 하거나, 영상
차적인 것을 찾고, 그들과 꿈을 나눌 수 있는 게 뭔가가, 그런 거가 요즘은 화두예요.
작업을 하거나, 설치영상작업을 하거나, 시각예술생산자로 좁은 의미의 미술활동을 하지 않은 분께 이렇게 출품을 의뢰했던 건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
그리고 그 공간이란 것은 거기서 생성되고, 긴장하면서 생산으로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그 만남은 어떤 식으로든 사건화 될 수 있고, 그 만남에 의해서 만
와서 화이트큐브 안에 걸려 있는 거기서 어떤 영혼의 울림, 감동, 뭐 이런 소통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 나 자신도 그렇고, 이
들어질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앞으로도 중요한 몇 번의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그 만남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 나는 또 뭘 형상화하고 드라마화 하고, 극
지나간 역사시기가 규정한 마스터피스를 봤을 때의 느낌들이랑 동시대의 소통되는 어떤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역할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
장에 서대문형무소, 오페라화 하고, 만들어질 수 있는 거예요. 거기서 구성적으로 여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꿈을 안 가지면. 야, 돈도 없는데 또 그걸
그런 차원에서 일각의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말씀드린 거지만, 사실은 그 부분을 뛰어넘는 어떤 가능성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역시
짓냐, 접고 그냥 가자. 그럼 못하는 거예요. 헌데, 거기서 한 두 명이라도 설득이 있으면, '아 예술 합시다.' 그러면 거기서 예술이 뭔데, 그러면 전 할 말이
나 화려한 설명으로 커버를 아주 잘 해주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에게도 말씀드렸지만, 작업실 방문이라는 것으로 이어지고 출판의 형태로 또
없어요. 근데 거기에 뭔가 매력이 있으면 하는 거예요. 그게 내가 볼 때는 과학적 지식, 이론적 체계화하고는 전혀 다른 이 동네 사람들이나 예술, 문화 생
다른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배작가의 작가 섭외는 충분히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만 다음 기회에 화이트큐브 안에 들
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불확실한 모호함에 대해서 애매모호하게 좋아하는 열정을 가지고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육체적으로 다 판 게
어와서 어떤 작업을 풀어주실 때 저랑 앞으로도 어떤 형식으로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있느냐? 무책임한 놈들이에요. 다 팔은 게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 열정이 뭔가 형상화하면 조그만 동네를 변하고, 그 조그만 시대를 바꿀
전시장 아닌 곳, 바깥에서도 그렇고요. 그럴 때 보다 더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겠다. 그건 저의 책임이기도 하고. 또 배작가님이 배려해주셔야 할
거고, 아니면 사람들에게 조금 다른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다른 인생의 생활 태도까지 바꾸고, 결국에 가서는 다른 세계관과 인생관도 바꿀 수 있다는
부분인 거 같아요. 분명히 미술관, 화이트 큐브의 역할과 기능 이런 것도 있고요. 거기에서의 게임의 법칙 같은 것도 있고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가능성만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 가능성마저 배제한다 하면 힘들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래
배윤호: 아, 네.
서 내가 이 작품을 옷을 입고 이렇게 한 거라고요. 그거는 뭐 옛날 1910년대 전부터 매일 했던 다른 거예요. 특별한 것도 아니고, 포스트모던 건축가들도
김준기: 앞으로 그런 말씀 자주 나누고요. 한 선생님, 가까이 와 주시죠.
찍어서 왔다갔다 있고 있어요. 그거는 뭐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어떤 커뮤니케이션 그런데 그 커뮤니케이션도 자신을 드
한은주: 저는 잘 한다기보다는 이제까지 해온 게 건축이다 보니까. 모르겠어요.
러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죽이고 얘기할 수 있는 , 꿈을 공유할 수 있는 그거, 아 그게 요즘 저의 화두입니다. 그래서 요걸 냈어요. 근데 작업실에 막 컬
김준기: 뭐 하시는 분인지 소개 좀 해주세요.
렉션 작업실은 옛날 인상주의가 좋아요. 쿠르베의 아틀리에 이런 거, 이런 게 최고라고요.
한은주: 저는 공간건축에 디자인 기획팀에 실장으로 있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이제 설계실에서 계속 있다가 그 건축에 답답함 때문에 건축이
김준기: 저 뒤에 훌륭하신…….
이래서는 안 된다. 건축이 건축다운 건축을 하고 싶어서, 제가 막 주장을 해서 팀을 만들어 가지고 크로스 디스플레이너리, 인터 디스플레이너리 뭐 이런
배윤호: 컬렉션 아티스트. 아니면 흔히 유행하는 뭐 벨라스케스 뭐 이런 거는 왕정, 이런 게 형식주의예요. 알레고리도 있고. 근데 나는 그런 거보다는 터
걸로 인해서, 그런 거에 관련해서 기획하고 인플러스북 같은 거 기획하고 진행하고 그러고 있어요. 도시 공간에 대해서도요.
치하는 거, 그런 거 네 뭐 좀 썰렁하죠. 좀 더 깊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들 썼을 거예요.
배윤호: 요번에 저와 같이 서대문형무소란 프로젝트 좀. 서대문형무소를 잉여전시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하고.
김준기: 다른 사람들 모델로 써서요?
한은주: 저는 관심 있는 것이 플러스 디스플레이너리 예요. 근데 제가 유연치 않게 프랑스나 영국에서 나오는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관한 트랜드, 전문 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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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예측하는 트랜드 리서치를 보니까, 그것도 크로스인 인터 디스플레이너리, 크로스 디스플레이너리가 화두의 트랜드더라고요. 보니까. 저는 상관 안
꾸는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햇빛이 딱 비추는데, 녹색 공간이 딱 생기더라고요. 아침마다.
하고 봤었는데. 근데 사실은 건축의 특성상 이게 굉장히 독특한 게 뭐냐 하면 건축이 다른 사람의 영역을 빌리지 않고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못
한은주: 그게 바로 아키파잉, 아키텍처예요.
한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배윤호: 그게 보면 인터레스팅하다고요. 그러니까 나는 정원을 잃은 현대인인데, 콘크리트에 사는데, 그걸 퍼포먼스와 나의 음식과 구성에서 느낄 수 있
배윤호: 네.
게 하려면, 햇빛과, 물론 선인장이 있어요. 근데 걔는 에로틱하지가 않아요. 근데 샐러드는 뭔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라이프 사이클과 공간은 항상 있는
한은주: 그래 가지고 우리가 항상 얘기를 할 때 예를 들어서 뭐 이론이랍시고, 가지고 프렉탈 이론, 프렉탈 이론은 원래 다른 영역에서 나온 이론이잖아
거 같아요.
요? 그걸 가지고 도시 공간을 얘기하고 공간을 얘기하고, 뭐 예를 들어서 그 영역이 방대하고 철학은 기본이고, 그냥 퐁티 얘기 매일 얘기하고, 그런 식으
김준기: 역시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단합니다.(웃음) 먹고 살게 없어서 풀 갖다가 접시에 풀 좍 늘어놓고, 내가 이걸 먹어야 하나, 내가 소도 아니고. 뭐 그
로 그렇다 보니까 저희가 크로스 디스플레이너리를 폄하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그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건축가들이 그
러면서 그 순간에 무언가 에로틱한 뭔가를 느낀다고? 대단합니다. 역시. 그 미술세계 김영민 기자님 늦게 오셨는데. 뭐 앞에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아직 맥
리고 이제 아트 쪽에 많이 접해야 한다. 이런 거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걸 가지고 있고. 그런데 이제 그것보다는 저는 그걸 생활 안으로 끌어 들여 가지고
락이 감동이 안 되겠지만, 조금 더 들어보시고. 그 미술세계 2월호가 배달해서 왔기에 습관적으로 딱 뒤져봤는데, <작업실 리포트>전 이야기가 없더라고
체화를 해서 다시 생산해 내는 공간에 대해서 다시 뭐랄까. 좀 되뇌어보는 기회를 삼는다든지 하는 그런 식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해서, 이제 그런 쪽으로
요. 물론 프리뷰가 나갔었어요. 아, 그런 것 때문에 그랬나? 아니면 전시가 후졌나? 기획자로서 그런 거 신경 쓰죠. 신경 안 쓸 수 없죠. 그런 점에서 어떻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고 등등 하고 있는데. 딱 하고, 하시고 있는 일 자체가 건축가가 하는 일이예요. 저희가 건축가라고 하는 일이예요.
게 보셨는지, 전시 오픈하실 때도 오고 그랬는데, 뭐 아주 일반적인 얘기지만 작업실 리포트 전시 자체에 대해 여러 가지 전시를 보고 다니니까 듣고 싶네
배윤호: 엊그저께인가, FOA랑 자하리에서 이대 지하설계, 네, 자하지구 도서관 설계.
요.
한은주: 도서관 때문에 온 사람 되게 많아요. 유명한 사람들.
김영민: 일단 리뷰를 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프리뷰 나갔는데, 뭐 하러 쓰냐고.(웃음) 전 처음 아틀리에 전이 준비된다고 했을 때 제가 기대했던 부
배윤호: 근데 뭐 트랜드 유행 많이 있는데, 저는 이제 아키텍이란 행위, 선망의 대상, 작곡이라는 행위 거대한 교향악 작곡가, 뭐 어떤 아키텍, 거대, 이런
분은 작가들의 작업실 공간이 전시장에 재현된다는 측면에서 기존 전시하고 많이 다른 완성되는 과정이라든지 뭔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신
것들에 대해 나는 절대 나의 삶을 설계한다면 과연 뭐를 할 것인가, 나의 삶의 설계에 있어 일단 나의 행위의 판단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나머지 나의 인
선한 전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 것들이 디스플레이 과정을 보면서 작품 설치하고 작업하는 모습 보면서, 그런 과정들이 전시기간 내내 보
생에서 인생의 에너지가 20년,25년 물리적 한계가 있는데,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설계하고, 나의 인생을 설계할 것인가, 뭐 이런 거랑 연관성이 있는 거
여줄 수 있을까, 그런 거라면 참 좋은 전시라고 생각했어요. 대중들이 작품을 보는 거, 완성된 작품, 그러니까 옷만 보는 거잖아요. 옷 입고 나온 모습만
같아요. 다만 나는 그 만남이 있을 때 퍼포먼스로서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그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는 사고방
보는 건데.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보여준다는 게 자기의 모든 걸 보여주는 공간이고, 또 취재를 하면서 느끼는 게,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가하고 그 아틀리
식도 강하게 서 있죠.
에를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작가들하고, 인간적인 부분은 굉장히 많이 다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전시장에서 그런 것들을 대중들한테 보여준다는 건,
근데 과거에 내가 가르쳤던 교육방식은 만남의 소중함을 가지고 있는 거 같지만, 너는 무대디자인, 너는 영화하려면 셰익스피어, 에이젠슈타인 얘기부터
특별한 같은 미술인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기본적으로 미술이, 미술을 대중들에게 이해하게 하는데 그 동안에는 언론 매체에 보도되는 리
통사적인 거 좍, 연극하려면 셰익스피어부터…….과연 그것과 나와의 관계보다는 너무나도 중압적인 틀이 많았던 게 사실인 거 같아요. 근데 저는 그 중
뷰나 기사를 통해서라든지,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줬다면,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서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획이다.
압적인 틀보다는 재가 할 수 있는 사건에 더 매력을 느끼고 그 사건으로 나는 종횡무진 옆으로 횡으로 달리는 걸로 하고, 그 횡으로 달리는 거 하다가 에
김준기 실장님이 '또 터뜨렸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너지가 떨어지면 포기하는 거죠. 그 전까지는 계속 그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죠. 그게 어떠한 형태의 아키텍이 될지는 저는 뭐 잘 모르겠어요.
김준기: 감사합니다. 아니 뭐 그런 말씀을 다.
한은주: 에, 하시는 게 아키텍처예요. 그야말로. 서대문에서 신촌 로터리까지라고 하셨어요? 아웃파 플레이닝이예요. 그게. 그리고 이제 뭐 그 안에 모든
김영민: 다소 아쉬운 점은, 제가 매일 와서 본 건 아니지만, 전시장에서 아틀리에의 모습이 변하는 기존 최초의 디스플레이에서 완료된 게 아니라, 전시기
게 있고, 그게 사실은 건축가만 하는 일도 아니고, 건축을 저도 뭐 그렇게 연륜이 쌓이도록 열심히 오래했다고는 말 못하는 상황이지만, 어쨌거나 이 시간
간 동안 계속 변화되고, 그 과정에서 가능태의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것까지 좀 예상을 했었거든요.
까지 해오다 보니까 느낀 건 뭐냐 하면, '아, 인간을 알아야지 건축을 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뭐가 어쩌고 이렇게 거기서 주로 말하는 이론적인 것은 고
배윤호: 프로세스까지, 네.
시기에 지나가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라는 생각에 동조하는 건축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그렇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생각보다 경직되어
김영민: 그게 좀 그렇고요. 오늘 선생님 처음 봤는데요.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 질문은 요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러브하우스 많이 하잖아요. 건축
있기도 해요.
하는 분들이 나오셔서 리모델링도 하고, 집도 지어주고, 뭐 그런 건축가들이 건축이란 것이 사회적 역할을 봤을 때, 환경적 측면에서 환경과 인간과 호흡
배윤호: 아마도 다 그런 소재가 딱딱하기 때문에 사고도 딱딱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루는 소재가 말랑말랑한 사람 신체이면 다루는 사고
할 수 있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는, 예전에는 콘크리트, 보드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데. 작업에서의 그 어떤.
자체가 딱딱해질 수가 없거든요. 고금만 이래도 막 화내고, 조금만 해도 확 변하고, 그러니까 컨트롤이 안 되는데, 다루는 소재가 딱딱하다 보면 사고도
배윤호: 사회적 의미나 어떤 뭐 그런 걸 찾는 것도 저는 지금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봐요. 지금 프로젝트, 서대문형무소를 더 이상
딱딱해질 수 있고, 대화방식도 솔직히, 그런 걸 많이 느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축하는 분을 통해 상당히 배우고 싶은데, 그분들 만나면 굉장
이제 형무소 일을 하지 않는 걸로 해서 문화 공연으로 바꾸어서 있는데, 거기에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들어가서 전시공간이 되고, 공연공간이 되가지고,
히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움직임에 또는 생명력에, 또는 뭔가 이거에 사모하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예전에 했던 인간의 육체를 억압했던 공간에서 인간의 육체를 다른 측면화되는 이런 거. 더 이상 도시에서 필요하지 않은 버려진 공간이 새로운 공간이
한은주: 네, 맞아요.
된다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축제를 만들어도 되고, 다만 앞으로 휴머니티를 가장해서 매스컴에서 프로그램화하는 자체는 저는 좀. 그렇게
김준기: 저 배작가의 작업실에 대해서 건축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하하. 건축 쪽 일하는 사람으로서 또 고 대목을 집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이 접하지 못한 방법이고, 다만 이제 사회적이란 의미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이 상당히 있어가지고, 나는 좀 조심스럽게 접근해요. 다만 이제 공간연출
한은주: 아까 뭐, 버린다고 하셨잖아요. 드러내고, 최대한 없는 상태에서 뭐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그거는 제가 김준기 실장님을 맨 처음 만나가지고도
이나 아키텍 입장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그러한 도시에 버려진 그러한 공간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언가. 그것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
그런 말을 제가 작업실을 가지고 전시를 하신다기에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요. 공간이 형성되는, 공간디렉터를 자칭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단순한 건
는가 거기에는 사회적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른 질문 없어요? 하도 많이 떠들어 가지고. 하하(웃음)
물 안 공간도 마찬가지이고, 공간과 길 사이 공간도 마찬가지고, 길도 마찬가지고, 도시 공간도 마찬가지고, 이 공간이란 것이 그 의도한 사람 건축가나
김영민: 이번에 이대 뭐 있었잖아요. 그 과정에서 국내작가의 모습은 거의 안 보였었는데. 요즘 보면 백남준 미술관이나 서울대 현대미술관이라든지, 여
스페이스 디렉터 등등의 사람들이 의도한 바대로 사용되거나 그렇게 사용되는 게 절대로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작가님이 사용하시는 작업실이라고 표현
타의 프로젝트 건축설계 공모에서 다 외국작가들이 휩쓸었거든요. 그런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해서, 그곳이 거기에 들어가서 아키파잉 함으로써 새로운 아키텍처가 생기는 거예요. 그게 바로 아키텍처에요. 또 그래서 저는 그런 개념에 대해서 굉장
배윤호: 물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 외엔 뭐. 뭐 그 분들이 작품이 좋으니까 되지 않았겠습니까? 뭐 특별하게 선발
히 흥미롭게 봤죠.
위원회 자체가 가장 적합한 형태를 선정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참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리진 못
배윤호: 제가 다음번 작품은 옷을 안 찍고 샐러드를 찍을 거예요. 요새 식당에 가보는데, 녹색이 없잖아요. 그래서 식단을 바꿨는데, 아침에 샐러드로 바
하겠고, 다만 좋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선 그 많은 공정 과정이 있지 않았나, 과정 자체가 공개적으로 하고, 국제페스티벌같이. 최근에 들어 유행같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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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니까. 그래도 다양한 형태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관객: 저는 홍대 공간디자인과 대학원에서 공간 디자인과 학생인데요. 선생님은 수업 중에 만나면서, 선생님은 대화를 이것저것하면서 많은 얘기를 하세
김영민: 유행이라고 하면, 그거를 못 따라가는 건가요? 아니면…….
요.
배윤호: 아니 그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할 만한 아이디어와 좋은 작가 분들과 건축가들이 많이 있고, 그거 가지고 충분히 가능하
저는 저 자신이 굉장히 스페셜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경력도 매우 불충분하고, 아는 것도 많이 없는데. 그런데 항상 선생님은 굉장히 저희에게 그런 프로
다고 생각합니다.
페셔널하라는 말씀을 항상 하시면서, 그렇게 저희 말씀을 항상 귀담아 들어주시고, 항상 이렇게 되게 정열적으로 말하시는 거에 굉장히 저도 감동받고
김영민: 구 벨기에 대사관인가. 그게 시립미술관 분관으로 했다고 하잖아요. 원래 그 위치가 용산 쪽에 있던 거를 옮겼다고 하던데, 옮길 때 어떻게 옮긴
있으면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거든요. 근데 선생님의 생활방식을 보면 그게 다 버린다고 했잖아요. 근데 저는 되게 진정한 컬렉터라고 생각하고
건가요. 그대로 떼어서 옮기나요, 아니면 하나하나.
있어요. 항상 모으는 거 좋아하고 항상 어디 가면 항상 빨리 내 걸로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에 뭔가를 사고 그러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다른
배윤호: 공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그 건물을 옮기는 공법 중에 제일 그나마 다르게 본 거는 베를린에 있는 코스탄 관장에 의해 소니 센터 자리에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고요. 그리고 감동적이고요.
빌헬름 2세 때 쓰던 커피 하우스가 하나 있었거든요. 그걸 부수고 다시 옮기자는 호응이 불었다가 옮기는 예전의 방식은 분해, 조립이었는데, 그걸 자체
제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거는 저는 에밀 씰로 씨요낭의 '각질화 되지 않기 위해서 광란을 원한다.'라는 그런 좌우명을 갖고 살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그 각
를 들어서 옮기는 방법으로, 밑에다가 파고 들어가지고 기반에 콘크리트 벽을 쌓아요. 그래서 크레인을 불러가지고 크레인을 한 겁을 옮기면 무너지기
질화 되기 싫어서 제 자신이 항상 평소에 그렇게 광란이나 광기를 갖고 있진 못 한 거 같아요. 근데 노력은 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이나 그런 거에 익숙하다
때문에 하루에 10cm씩 로딩을 해요. 그걸 옮겨가지고 100몇 m 옮겨서 그 소니 센터 안에다가 커피하우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서
보니까 그게 잘 안 되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특별한 좌우명을 갖고 살아가시는지.
그 방법을 했을까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요 기반을 올리는 공법 기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그리고 그거 올리는 기간에 의해서 모든 공사 스케줄이
배윤호: 저는 좌우명이 해마다 바뀌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뭐 성실버전, 성실, 군바리도 아니고 충성.
스톱되어야 해요. 왜냐하면 그거 막 하고 나면 무너지거든요. 그래 가지고 모르겠어요. 우리는 옛날에 옮기는 방법은 기와집이 건축법에서 조립, 분해가
김준기: 열심히 살자.
가능하니까 요기 있다 요기 옮기는 게, 그래 옛날 유행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옛날 높은 사람들이 기와집 수집하는 게, 그래서 옮길 수가 있는데. 근데 유
배윤호: 예, 열심히 살자 뭐 이런 거 하다가. 나중엔 범사에 만족하자는 성경글귀 뭐 그렇게 해마다 31일 끝날 때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할 때, 미션이랄까
럽 건축은 그렇게 하면 안 되거든요.
화두를 하나씩 갖고 가요. 화두를 하나씩 갖고 인생 전체를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갖겠다. 그런 욕망은 있지만 그 욕망에 대한 것을 정의 내려가지고 하나
김영민: 우리나라는 아마 도로 가다가 전선에 걸려서 무너지지 않을까…….
의 문장으로서 나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거 같고. 상황에 따라 인생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해마다 바꾸는 편이예요. 열정을 선택하죠. 내년에는 또
배윤호: 제가 그거 옮기는 그 현장에 있었는데, 아, 대단하더라고요. 근데 그 트레이너를 주문해서 만든 거예요. 기계 가지고. 그래서 그 당시에 많은 사람
뭘 선택할지 몰라요. 심심하다를 할지 뭘 하나를 선택하는데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갖고 싶지, 어떤 걸 지키거나 의무감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요. 쉽지 않
들이 그게 가능할지 안할지 고민했는데, 문화를 사랑하는 어떤 말 한마디에 예산이 아무리 들어도 옮기자는 결정이 났어요. 그래서 공기가 그거 옮기는
아요.
시간 동안에 작업을 안 하고 옮긴 다음에 또 작업을 하는.
김준기: 대체로 우리가 배윤호라는 사람을, 뭐 저야 홍대 앞 동네에서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고, 뭐 이런 동네 선배로 학교 선배로 후배의 애인이기도 하
김영민: 아직까지는 우리가 통째로 옮기지는 못하죠?
면서, 이렇게 만나는 사이지만, 이 넓은 의미의 시각 이미지, 그 시각예술 생산자거든요. 뭐 그런 배윤호 작가의 삶이나 작업들, 이런 것들이 보다 광범위
배윤호: 아마 그랬으면 매스컴에서 또 퍼포먼스가 있었겠죠. 여러 가지로.
하게 시각 문화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향유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으면, 좋은 예술가로 그렇게 자리를. 이미 잡으셨지만 앞으로 더 잡으시길 바라고 ,이제
김준기: 이쪽에 계신 분들이 공간건축 쪽 이상림 선생님 팬클럽인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시네요. 어떻게 전시 보러 오셨다가 참가하신 거예요? 아니면
마무리 멘트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연히 배윤호라는 사람 혹시 알고 있었어요?
배윤호: 이런 작은 만남이지만 이런 거가 인생에서 소중한 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귀찮게 느껴지는 물리적인 것보다, 작은 만남과
배윤호: 내가 뭐 연예인인가? 하하.(웃음)
작은 순간순간, 이런 상황, 상황들, 이런 위치들을 굉장히 소중히 생각하죠. 열정이란 것은 스펙터클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작은 것들로부터 출발하기 때문
김준기: 전혀 모르고 계셨어요? 아 그 대단한. 저는 이런 선례 같은 게 있어요. 작가와의 대화를 하다보니까 전혀 생소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앉잖
에, 그 작은 것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 아침밥 먹는 것, 커피 한잔 마시는 거 이런 거예요. 오늘의 만남도 작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생각하고 여러분
아요. 그래서 컨셉이나 공간에 대대적으로 선전해서 강연회를 한다든지 퍼포먼스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늘 뭐 아는 듯 모르는 듯 와가자고 앉아서
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 거라고 전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인터레스팅하고, 나한테 설렘을 주고,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주 엉뚱한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정확하게 찌르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서, 이런 대화 상황이 되게 재미있어요. 그 그래서 이런
는 거 같고요, 감사합니다. 하하.(웃음)
대화 상황 자체에 관해서도 저 자체로는 흥미진진하게 보는 부분인데. 뭐 이왕 앉으셨으니 이런저런 감회나 궁금한 점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 한 번 해보 시는 것도 어떨까 생각하는데.(웃음) 어떻게 작가, 작업실, 아틀리에, 예술가의 삶, 뭐 이런 거를 용인, 인정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냥 아주 노멀한 잣대 로 보면 뭐 예술가, 작업실 꾸리는 사람으로는 통용이 안 되는 그런 그냥 작업을 하시는 분인데, 그런 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관객: 처음에 저 사진만 봤을 때는 솔직히 말씀하신 대로 잘 와 닿지는 않았거든요. 다른 작가들 직접 아틀리에 찍어서 보여주시는데, 설명을 들으니까 에 너지가 팍 와 닿고요. 되게 알고 싶어져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작가와의 대화를 이렇게 조금 모여서 해본 건 처음이거든요. 좋은 경험인 거 같아 요. 배윤호: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허허.(웃음) 그 작업 때 하면 정신분열, 내가 떠들고, 내가 원고를 읽는 게 아니라 떠들다 보면 혼자 미친 놈 같지만 언어라 는 거나, 느끼고 표현이라는 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막 이런 거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생각이나 행위를 통해서 자신감 있게 자기가 하게 되면 금방 나아 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또 석사학위 밟거나 학계에 발표나 다 똑같은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거기 틀, 업무에 맞추어서 그런 소정의 과정을 해서 귀 찮지만 날짜 잡으면 한 달 전부터 스트레스 받아요. 2월4일 4시 스트레스 받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 그까지 지향 점에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여러 가 지를 고민하지만 그 퍼포먼스를 즐기면서 공유하는 것도 상당히 즐거워요. 김준기: 평소에 후배 또는 제자 또는 작업 동료로서 같이 보아온 배윤호 오빠에 대해서, 아저씨, 배윤호 아저씨에 대해서 평소에 사적인 자리에서 뭐 못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면? '열심히 사세요.'랄지, 하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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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7: 김기현, 박경주
2004.02.05 목요일 pm.04:00
100
김준기: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저번에도 대화에 참여하신 분들이 많진 않았지만, 이렇게 숫자가 적을수록 알찬 이야기가 오갔어
때 한국이나 이런 데 다시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할 때 전화기가 갖고 하는데, 되게 싼 전화카드 같은 걸 가지고 하잖아요. 혼선되게 많이 되고, 감이
요. 이렇게 된 김에 좌담을 진행하고, 먼저 박경주씨가 준비해온 걸 보여주고, 김기현 선생님한테 프레젠테이션을 좀 부탁하고. 그럼 박경주 선생님 모시
되게 멀고 한 이런 기억들이 있어서.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도 그런 카드를 팔더라고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그 카드를 사서 10000원짜리 이런 걸사서 고
고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사실은 저도 박경주씨 작업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거나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서 논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이런 자
향에 있는 가족들이랑 통화하는 걸 봤는데, 그래서 제가 이 작업을 한 건데, 외국인들이 자기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랑 통화하는 내용들을 혼선되는 듯한
리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소중한데. 한 번 보고 얘기해 보죠.
느낌이 나게 편집을 해서, 사운드 편집을 해서 이거를 듣는데, 수화기 공중전화기 수화기를 통해 듣게 하는 설치작업이구요.
박경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경주고요. 여기 지금 CD롬에는 제목이, 여기 제목이 인터레이션 이주 보면 아시겠지만 91년부터 이주에 관해서 작업
이건 이제 광주비엔날레 때 이주라는 걸해서 작품한 건데, 이거는 서울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목동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제가 사람들을 찍은 사
들, 2001년까지 모아놓은 건데. 2002년 이후에는 지금 이주, 꼭 '이주'라는 테마 아니고 다른 전시들을 좀 하고 있는 중이고요. 일단 이 안에 있는 내용을
진이랑 또 다른 장소에서 외국인,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놓고 모니터에서 화성 외국인 보호소가 있는데, 그건 뭐냐 하면 불법체류상태에 있다가 잡혀
간단하게 스피디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가서 추방당하기 전까지 머무는 곳이거든요. 근데 인권이랑 거의 거리가 멀게 거의 죄수복 입혀놓고, 감옥 같이 되어 있어요. 마침 거기에 아는 네팔 친구
먼저 제일 먼저 보여드릴 거는 여기 파란 하늘 배경의 사진인데요. 이 사진은 99년에 제가 베를린에 있을 때, 출입국관리소, 베를린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들이 갔다는 얘기를 듣고 몰래 카메라 들고 촬영한 화면이에요. 지금 화면 상태가 여기 불이 켜져서 잘 안 보이는데. 이런 그리고 그 다음에 보여드릴 거
에 있는 외국인들이 비자를 신청하는 곳, 그런 곳 앞에 이곳이 다리거든요. 사람들이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이 다리를 꼭 건너서 거기를 가야 돼요. 저한테
는 다른 비디오 작업하고, 그 다음에 이거는 제가 이전까지는 사진은 요 작품하기 전까지는 사진 작업이랑 사운드 작업, 비디오 작업 뭐 이런 것들을 했는
는 국경, 이런 거나 비자라는 것이 국경과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출입국관리소를 방문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
데. 그 외국에 있을 때는 보통 거기에 있는 외국인들 그러니까 뭐 다른 나라에서 온 예술가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비자가 없
이 다 비자를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을 다리에서 제가 섭외를 해서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은 작품들이에요.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 베
더라도 작품 발표도 하고 이런 게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체성을 보여주고 하는 이런 기회가 되게 많은데, 우리나라 같은 경
를린에 있는 외국인들은 터키사람이나 동부권쪽 사람들이 많고요. 마침 이때가 제가 이 작업할 때는 제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나토가
우는 주로 포커스가 인권이나 이런 거, 그러니까 노동에 관련된 문제만 있고, 문화적인 어떤 관점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이 없는. 그러니까 제가 여기
유고를 공격할 때였어요. 그래서 그때 남미 문제, 이런 문제로 베를린이 떠들썩했었는데, 그때 제가 그 전까지는 이런 작업을 관심이 없었는데. 그때 이
한국인의 인권단체에서 1년 동안 자원봉사하면서 그거를 느껴서 제가 이제 생각을 하게 된 프로젝트인데요.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한테 직접 자기 느낌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나토문제나 이런 평화라는 이유로 평화라는 이름으로 폭발하는 전쟁을 보면서 제 개인적으로 충격을 좀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을 쓰게 하고. 그리고 그 가사에다가 곡을 작곡가가 붙이고 그 만들어진 곡을 외국인 노동자로만 구성된 밴드가 연주를 하고, 이 연주가 음반으로 나오는
걸 좀 많이 느껴서 이런 작업을 좀 하게 되었고요. 이 사진은 제가 스캔을 많이 안 해 놨는데, 여기 이 다리에서 찍은 사람은 한 300명 가까이 돼요. 지금
그런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완성이 될까도 많이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완성이 되어서 이제 녹음을 하고 직접 자신들이 녹
돈이 없어서 사진을 다 못 뽑고 있는 중이고, 이런 프레젠테이션 할 때는 주로 슬라이드 쇼로 하거든요. 돈이 없기 때문에.
음하고, 연주도 해요. 또 주로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만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연습량이 딸려서 그런 보충할 수 있는 부분을 이제 한국, 여기 한국 전
그리고 요 다음에 한 작업이 이 다리 위에 한 작업을 할 경우에 한국 사람이 청탁하기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왜 외국에 가면 한국사람 오히려 더 커뮤니케
문가들 세션을 써서 조금 녹음한 부분도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횡설수설한데, 일단 여기 타이틀곡이거든요. '하디스 라이프'. 요거를 만든 뮤직비
이션이 안 되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 다음 아까 그 작업 끝나고 생각한 것이 베를린에 있는 한국 분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다 생각해
디오를 보여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친구들은 미얀마에서 온 유레카라는 밴드고요. 이 친구들은 밴드가 이 프로젝트하기 5년전부터 이미 구성되어
서 베를린에 있는 한국 간호사나 광부 분들, 광부로 처음 오신 분들 이런 분들을 청탁하기 위해서 베를린에 사단법인 한인회라고 일종의 단체가 있는데,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중인데, 자기 곡이 없었어요. 그래서 음반 만들면서 곡을 만들고 그걸로 연주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여기까지예요.
거기 가서 사무장으로 일을 한다고 하고, 월급을 조금 받고, 거기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섭외를 해서, 그러면서 이제 나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고
김준기: 그 다음에 이번 출품작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거리낌이 없을 때 이 사진 작업을 했어요. 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매년 연말에 한인회 주체로 한인들끼리 모여서 크리스마스 파티 겸 송별 파티를 하거든
박경주: 그건 여기 CD-ROM에 없는데. 이번 출품작은 저기 이번 여기 전시하는 작품들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95년에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한국에
요. 파티 장소 작은 구석, 되게 작은 구석인데, 제가 빽천을 사서 설치하고, 조명설치해서 거기 파티에 오신 분들을 찍었어요. 그래서 파티 오신 분들이라
있는 여성작가들, 그러니까 대학을 막 졸업한 작가들을 소개를 해달라고 그랬어요. 그래 가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어찌어찌해서 노석미, 정은수, 손정
서 의상이나 그런 게 되게 화려하거든요. 그래서 여기 사진 찍히신 분들은 다 한국 간호사입니다.
희 이렇게 아틀리에를 찾아가서 인터뷰 한거에요.
그리고 제가 이제 2002년에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되게 많이 들어와 있고 되게 문제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그때, 26,7 뭐 25 그랬거든요. 그때 사실 제일 어려운 게 대학 막 졸업해서잖아요. 그 때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제가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작품을 하는 건 쉽지만 한국에 들어와서 내가 내국인으로서 외국인을 작업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까 한 작
도 모르고, 그 당시 같은 경우에는 화랑이란 것이나 하는 상황이 지금보다 별로 좋지를 않았잖아요. 전시를 하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잖아요. 그
업의 연장선에서 이 작업을 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포트레이트를, 그러니까 베를린에서 찍었던 거의 같은 포맷으로 작업을 했어
래서 그런 부분들이나 특히 여자로서 힘든 부분 같은 이런 게 있을 거 같아서 그 친구들을 인터뷰도 좀 하고, 아틀리에도 좀 찍고 그리고 정임이 같은 경
요.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대부분 비자 없이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컨택하는 데 제일 어려웠고요. 그리고 이름 같은 것도 물을 수가 없
우는 무대미술을 했었는데, 무대미술 제작하는 거 뭐 이런 거 따라다니면서 그 대개 옛날에 아마추어 클렌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현상하려면 일본으로
었고, 그런 다른 점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부분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사진 작업은 이걸로 보여드리고요.
보내야 되고, 이런 되게 옛날 필름인데, 그걸로 일단 찍고 그러고 나서 독일에 돌아갔다가, 메인에 되게 많이 나오는 선아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지
그 다음에 요거랑 관련 있는 건데, 이거는 이제 이것도 2000년에 한 건데, 파견광부와 관련된 작품이거든요. 여기에 있는 숫자는 독일에 파견광부들이
금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 친구는 한국에서 대학을 안 나오고, 프랑스로 갔거든요. 그래서 마르세이유에서 학교 다니는 중에 파리에 올라와서 아르바이
간해예요. 63년, 66년 이렇게 광부들이 간 해 거든요. 그래서 63년부터 77년까지 사람들이 갔고, 이래서 이 분들, 파견광부로 가신 분들 중 현재 독일에
트를 좀 해보겠다고 파리에서 초상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그게 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선아가 거기에 초상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파
게신 분들을 인터뷰해서, 이거를 4개의 모니터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줬어요. 이 분 같은 경우에 64년에 가셨거든요. 그러니까 거의 초창기에 가신 분이고
리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파리로 갔어요. 그래서 이제 파리에 가서 그 친구가 초상화 그리는 모습이라든가, 좀 촬영을 아까 말했던 슈퍼 알터 재료로 찍고
거기 한인회 회장님도 하신 분이고, 이 분은 72년, 74년에 가신 분이고, 거기서 자기 홈페이지 같은 것도 운영하시면서 되게 열심히 사시고. 뭐 그런 얘기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그 영화를 편집하려고 생각했는데, 그거를 그렇게 끝나는 거보다 같이 전시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
제가 베를린에 있는 대안 갤러리인데, 거기로 인제 작가들이 공동체로 운영하는 갤러리거든요. 그 갤러리에 찾아가서 이런 프로젝트가 있고, 다 여성작
이 설치장면은 이렇게 바닥에 갈린 게 석탄이거든요. 독일에서 불 때는 석탄이에요. 그래서 그 독일에 있는 석탄을 일부러 가지고 왔고요. 벽면에 보면 깨
가인데 한번 베를린에 불러서 작품을 좀 같이 하고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쪽에서 얘기가 잘 되어서 자기들이 아틀리에 비슷하게 갤러리
알 같은 글씨들이 있는데, 저거는 파견광부들의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노동부에 현재 우리나라 노동부에 보관되어 있는 당시 파견되었던 사람들의 이름
위층에 있는 데로 제공을 해주고, 이제 그렇게 하기로 얘기가 되어 가지고, 한국에 있는 작가 중에 다 오지는 못 하고 그 중에 노석미와 정은수씨만 오고,
이에요. 그래서 파견된 해와 그때 간 사람들의 이름이 좍 있는, 그걸 자료를 어렵게 구해서 그걸 프린트해서 벽에다 벽지처럼 발랐고요. 아까 인터뷰한 분
파리에서 만난 그 친구 오게 됐죠.
들이 5분정도 되는데, 그 분들이 모니터에서 인터뷰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원래 제 의도는 같이 재료를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뭐가 재료를 가지고 와서 같이 작업을 한달정도 하고 그걸 가지고 전시를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
김준기: 그러니까, 무슨 얘길 해요?
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 있는 분들은 그런 컨셉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기들은 완성된 작품을 들고 오고 싶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본인들이 그렇게 원하면
박경주: 독일에서 외국인으로서 사는 게 어떤지, 자기 개인적인 경험들을 이야기하죠. 그 다음에 이 작업은 한국에서 한 작업인데요. 제가 베를린에 있을
또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죠. 프랑스에 있는 제 친구는 여기서 대학 교육도 안 받고 거기에 갔기 때문에 그런 거에 있어서 좀 자유로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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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좀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마침 설치작업 같은 것도 많이 했었는데, 그러면 네가 그런 생각이면 내가 맞춰서 해보겠다고 했죠. 그래서 자기가 재료를
끝나고 두 번이나 세 번 볼 수 없는 영화, 그리고 처음 볼 때나 두 번째 볼 때나 똑같은 걸 보게 되는 것. 그런데 이런 영화, 제가 하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
그냥 가져왔어요. 그래서 그걸 베를린에 가서 아틀리에로 받은 건물 위에 방에서 작품으로 만들고, 퍼포먼스 식으로 천을 전시장에 설치하고, 소시지를
는 처음 봤을 때랑 두 번째 봤을 때랑 되게 느낌이 다르고, 또 세 번 보면 또 다르고 처음에 봤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거를 발견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되
프랑스 소시지를 갖고 왔는데. 소시지를 잘라 갖고 다 하나씩 하나씩 붙였거든요. 얇게 썰어서. 그 작업을 전시기간 중에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하고, 그
게 느슨한 영화예요. 그런 의도에서 만든 영화구요. 그리고 일부러 인터뷰 내용은 되게 많이 인터뷰했는데, 다 삭제를 하고 일부러 음악으로 대체를 했어
친구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계속 필름으로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계속 기록을 하고, 그러고 나서 그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 베를린에서 찍은 필
요. 이 음악은 진짜 제가 얘기했듯이, 그 음악이 어떤 영상을 코멘트할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그게 텍스트가 코멘트할 수도 있지만, 음악이 영상을 코멘
름이나 그 전에 서울이랑 파리에서 찍은 재료들을 가지고 영화를 완성을 해 가지고 갤러리 주체로 열리는 되게 큰 페스티벌이 있었거든요. 그 페스티벌
트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음악이 영상을 코멘트 하는 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인터뷰를 삭제했죠.
에서 상영을 했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그냥 단순하게 여성 작가들 인터뷰하고 그 아틀리에 모습 보여주는 걸로 하려고 시작을 했는데, 그
김준기: 이건 일부러 카메라를 거칠게 움직인 건가요?
게 아니라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이 서로 모르는 사이에, 특히 파리에 있는 프랑스에 있는 제 친구랑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랑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박경주: 음, 저거는 또 제가 장난을 친 건데.
도 그런 사람들이 전시공간에서 같이 전시하고 작품도 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고, 그런 걸 되면서 이제 단순히 그냥 찍고 그걸 트는 게
김준기: 어떤 장난을 쳤죠?
아니라,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그래서 일종의 제가 프로듀서처럼 그 사람들을 이렇게 인터뷰하고 전시공간을 잡아서 전시할 수 있게 하고, 그
박경주: 영사를 시키면서 또 다시 찍고 되게 여기 안에서 기법이 좀 많은데. 그리고 이거는 슈퍼 에이트 마떼리어인데.
리고 그것들을 기록해서 틀고 이런 식으로 전체 프로젝트하고 진행되었던 프로젝트예요. 사실은 제가 그때 과감하게 한 40분짜리 만든다고 돈을 엄청 들
김준기: 슈퍼 뭐라고요?
여 가지고 만든 건데, 일단은 실험영화이기 때문에 좀 그냥 기본적인 다큐멘터리하고는 다르게 접근했고요.
박경주: 슈퍼 에이트. 왜 옛날에 장난감처럼 작은, 그거예요. 이거는 16mm고요.
그리고 그 당시 제가 좋아했던 감독이 요나스 엠파스라고 뉴욕에 있는 소련계의 되게 실험 적인 영화 작가인데, 그 감독은 주로 자기 사적인 것들을 많이
김준기: 슈퍼 에이트라는 게 8mm예요?
촬영해요. 주변에 인디아웃터나 예술가들을 촬영을 해서 기존의 보통 영화가 갖고 있는 영화문법에 맞추어서 영화를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
박경주: 8mm얘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여기 촬영할 때 쓴 카메라가 보렉스 카메라인데요. 보렉스 카메라는 애니메이션 전문 카메라예요. 그래서 프
일말로 하면 '되게 편안하게' 그걸 편집을 해서 마치 홈 비디오 보듯이 필름을 해가지고 보여주는데, 그런 형식을 제가 많이 따라가려고 해서 이렇게 만든
레임 촬영이 되게 쉽고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카메라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도 다 일부러 애니메이션 식으로 촬영을 했고, 또 그런 의도로 이렇게 보여
거구요. 되게 실험적으로요.
주는.
김준기: 뭘 실험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보여주시면서 말씀해주세요.
김준기: 컬러흑백이면 느낌이 확 달랐을 거 같아요. 계속 흑백이니까 좀 그런데요.
박경주: 클럽 지하 창고였는데, 창고를 갤러리로 써요. 근데 이 밑에 공간이 되게 크거든요. 여기 먼저 천을 달고 여기다가 아까 제가 말했던 소시지를 다
박경주: 그거는 제 실수가 아니라, 기계가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이 친구가 이걸 완성을 하고 제가 중간 중간에 인터뷰했던 사람들 나오고,
는 장면을 병행적으로 계속 보여주고 있고, 일단 처음에 전체적인 맥을 이어가는 건 제 친구가 작품을 처음에 준비하고 완성하는 장면이고. 그리고 중간
그리고 이거 완성하고 나서 여기다 프로젝션한 것이고. 이거는 칼라인데, 지금 칼라가 안 나와요. 그 다음에 천에 있는 소시지는 빨간색이구요. 사람의 살
중간에 제가 서울에서 인터뷰했던 사람들, 인터뷰 내용이 들어가는 식으로 편집했어요. 그리고 음악은 제 독일인 친구가 실험과학을 하는 친구가 있는
뜯어낸 거처럼 그런 느낌 나는 빨간색이구요. 여기 영사가 되고 이 영사된 내용은 고거를 입에다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 장면 이예요. 그래서 되게 이상한
데, 그 친구가 직접 화면 보면서 만든 거거든요.
데.
김준기: 아 이게 소시지였구먼.
김준기: 이건 다른 작가들인가요?
박경주: 그리고 지금 이게 칼라와 흑백이 섞여있는 영화인데, 지금 이게 인식을 못하고 전부 흑백으로 다 나오네요. 이게 프랑스 전통 소시지인데, 아까
박경주: 이거는 제가 파리에 갔을 때 이 친구랑 고흐 무덤에 갔는데, 고호 무덤에 가면서 촬영한 내용이거든요. 이것도 칼라인데 흑백으로 나와요. 나중에
이 천을 만든 모양이 여자의 자궁이고, 이 살라미 소시지는 살이다, 피와 살 이런 거다. 이래서 여기다 붙이는 작업을 했거든요. 일부러 다 꿰매는 식으로
묘비가 나오는데, 반 고흐라고 써있어요. 일부러 이날 바람이 많이 불어서 흔들렸어요.
요. 꿰매는 작업은 여성의 작업으로 보통 인식되잖아요. 일부러 그 코드를 이용해서 일부러 꿰맸어요.
김준기: 엄청 멋을 부렸네요. 하하(웃음)
김준기: 꼭 저런 작가들 집에선 바느질 하나도 안 하면서, 작업할 때만 열심히 바느질 한다고, 가증스럽게. 하하.(웃음) 저분은 누구시죠?
박경주: 그때는 좀. 하하.(웃음)
박경주: 노석미, 노석미 초창기 작업이에요.
김준기: 고호 무덤이 어디 있습니까?
김준기: 에, 잠깐만. 저 안경 낀 작가가 노석미씨예요? 전혀 못 알아보겠네. 이 사람은 누구시죠?
박경주: 파리 근교 작은 도시에 있어요.
박경주: 이 친구는 김선아. 교차편집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만들어 놓은 과정을 중간 중간에 보여주면서 사이사이에 사람들 인터뷰한 거를 넣었
김준기: 스틸 사진 좀 보여주세요.
어요. 이 분은 정영숙씨라고.
박경주: 일단은 뭐. 이 영화의 장점이라 하면, 좀 지루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걸 찾으려면 볼 수가 있고요. 일단은 한 친구가 작품을 처음부터 준비하고 그
김준기: 지금 활동하고 있어요?
거를 완성하는 재미도 있고, 그 중간 중간에 그 인터뷰한 내용들이나 뭐 이런 것들. 다들 한국 작가들이거든요. 한국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게 힘들다,
박경주: 지금 활동 안 하고 있거든요.
구질구질하다. 특히 결혼을 안 하고 나이 들어서 혼자서 사는 게 더 구질구질하다. 그런 느낌들이 너무 괴롭다. 뭐 이런 인터뷰 내용들이 나오고요. 그냥
김준기: 나는 박작가한테 궁금한 게 있어요. 실험영화라고 했는데, 도대체 뭘 실험했는지 너무 보기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관람객들이 와서 보더라도, 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들이 접근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약간 놀이 식으로 접근을 하려고 한 영화고, 그 사람들은 그냥 옆에서 친구가 찍는 것
대체 뭘 하자는 영상인가, 그러니까 나름대로 누구 작가 얘기했잖아요. 근데 그 작가의 실험적인 영상들을 이런 것들을 많이 실험적으로 파용하고 그랬
처럼 일부러 찍어서 되게,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나게 찍어서 그걸 보여주는 게 제 의도였어요. 일부러 그렇게 했고, 음악도 일부러 좀 실험적으로 화면에
다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이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편할 뿐이라는 거죠. 그리고 시각 정보가 적고 그리고 인터뷰 다큐멘터리라
맞게 해달라고 해서 그 친구가 영상을 틀어놓고 보면서 기타 줄이랑 다 해 가지고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나름대로 되게 정성이 많이 들어간 거예요. 베를
고는 하지만, 인터뷰 정보가 와 닿지 않고. 그런 아주 불편한 영상이라는 거죠. 그러면 어떤 것이 실험영화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이 있는 대목들인지 어떤
린에서 상영했을 때는 되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하하.(웃음) 아직은 좀 코드가 안 맞는 거 같아요. 문화적 코드가 좀 안
생각으로 왜 이런 걸 만들었는지 설명해주실래요?
맞는 거 같아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실험 영화라고 해도, 그러니까 독립영화협회나 이런 데 가도 실험영화나 뭐 이런 걸 거의 없고요. 제가 좀 안타까
박경주: 이거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는 영화를 전공하고 석사까지 했지만, 일부러 그 코드를 무시하고 싶어 하는 편이예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통 사
운 부분이 그런 부분인데, 주로 드라마 아니면, 다큐멘터리이고, 독립영화라고 하더라도 드라마 아니면 다큐멘터리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독립 영화는
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쉽게 만든 영화는 그 자리에서는 되게 좋고 감동적이지만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두 번 보면 질리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기존에 있는 아카데미즘이나 기존의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영화적 코드를 극복하려고 하고, 좀 배반하려고 하는 노
고, 세 번 보면 더 질리고. 물론 이게 완벽하다는 건 아니고, 이런 실험영화나 이런 걸 추구하는 이유는 그런 게 싫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한번 봐서
력이 영상에서도 나타나야 하고 형식, 그러니까 영화가 가지는 영상의 형식에서도 나타나야 하는 건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내용적인 것만 반체제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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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냥 그게 독립영화인 것처럼, 그리고 또 소자본으로만 만들면 무조건 독립영화인 것처럼 오해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저도 영화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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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어쩌면 10년 후가 될 수도 있다'라는 말도하고, 이상한 말을 해서 피해 가기도 하고, 내용적으로 다지는 부분도 있었죠. 그러는 중에 우리 전체 행사가
같은 데 독립영화 지원하는 거 뭐 이런 거 내용, 나중에 뽑힌 사람 보면 다 드라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데 불만 있는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에
많아가지고 쫓기다 보니까, 그 와중에 점거프로젝트가 조금 루즈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김실장님한테 전화도 받고, 전화 받은 내용을 후배들과 대충하고
요. 조만간에 그걸 연구해서 글도 쓸 생각이에요. 근데 그게 좀 많이 아직까지는 우리나라가 그런 풍토가 잘 안 된 거 같아요.
해서, '한번 참여를 하자. 그러면 뭔가 새로운 관점이 있을 테니까'라고 결정하고 전시에 참여했어요.
근데 실질적으로 제가 옛날에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한국 영화감독 중 되게 유명하신 분을 레트로스펙티브했는데, 그분의 초창기 영화들이 굉장히 실험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 내용을 가지고 사람이 자꾸 회의하는 점거를 하기 위해 그쪽에 살림을 차려야겠다는 젊은 친구들이 변하는 거예요. 8명이 되었다
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유럽 사람들이 너무너무 놀랄 정도로 너무 너무 실험적인 그런 영화였는데, 그런 작업들이 있어요. 그리고
가, 어느 순간 모여 보면 5명으로 줄었다가, 3명으로 줄었다가,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서 다시 7명이 되었다가,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까 기존에 그 3명으
그런 작품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표면에 드러나는 게 일반적인 미국이나 일본영화에 많이 물들어 있어서 그런지, 그런 것들이 딱 보면 되게 낯설게 느
로 있던 친구도 변화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두려움도 느끼고 스스로 가지고 있던 커다란 자신감도 와해되는 부분도 많이 생기고 있었어요. 그러한
껴지는데. 여러 번 보면 되게 재미있는 영화거든요. 저는 제가 만들었지만 매일 봐도 되게 달라요. 하하. 그러니까 그렇게 접근하면 좋을 거 같아요. 쉽게,
과정 중에 겨울이 와버린 거죠. 일단 점거를 하게 되면 그쪽에서는 단수, 단전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거를 지탱하기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좀 보내는 방향
재미없으면 꺼도 되는 영화. 꼭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되는 건 아닌 영화. 그런 영화예요. 질문 있으시면 받겠습니다. 하하하.(웃음) 몇 분 안계시니까.
으로 하자. 그래서 겨울 동안에는 내용 다지기, 그리고 정확한 스케치를 다시 한번 물색하는 방법과 그리고 프랑스나 유럽 쪽에서 행해졌던 내용들, 자료
김준기: 자, 그럼 이야기를 끊어서, 끊어서 할까요? 아니면 김기현 선생님 말씀을 듣고 같이 할까요?
들을 모아서 퍼포먼스 형식의 접근을 시작하고 그것이 여론화시키고 정당성 있게 이야기를 가능하도록, 그런 식으로 진행시켜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박경주: 김기현 선생님 말씀 듣고 하죠. 너무 오래 기다리셨으니까.
상태를 가지고 지금 아래층에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전시를 통해서 왜 점거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예
김준기: 작업실 리포트라는 전시에 맞추어서 죽 작가들 작업 얘기, 작업실과 관련된 얘기들, 이렇게 좀 기록하고 나중에 이제 뭐 작업실이라는 게 뭐다.
술가도 노동자이고, 노동자 중에는 극빈자도 있고 극빈자는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된다 하는 내용으로 성립을 시켰어요. 그래서 생활보호대상자 라
작업실의 의미라는 게 뭐고, 그 작업실은 작가들에게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작업실의 사회학이나 이런 것들 이렇게 죽 진행하고 있어요. 그럼, 김기현 선
고 해서 한달에 한 30만원씩 국가에서 지원해주죠. 고 대상자들에게 보조비를 주는데, 그 정도의 생활도 안 되는 작가들에게는 당연히 보조비가 지급되
생님 말씀 먼저 듣고 나서 토론하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김기현 선생님은 공주에서 작업하고 계시고 작업실 리포트 전시에 참여하신 건, 작년 청주에 점
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우리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공공건물을 무단으로 점거를 해서, 그것에 상응하는 상충하는 우리 살림을 우리 스
거 아틀리에를 만드시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추진하신 바 있고, 지금 작업 내용도 거기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있는 그런 설치를 보여주셨어요. 그
스로 찾아서 하겠다는 내용으로 캐치프레이즈로 걸었습니다.
런 점은 말씀을 좀 해주시고, 설치작업도 하면서 점거프로젝트에 관한 말씀을 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2월25일 날 세미나가 있는데, 그날
그 내용에 맞게 차근차근 단계별로 실시할 텐데. 이 전시관 중에 공동참여를 해보고 있습니다만,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거기에 대한 정책토론회 같은 것 위주로 발제를 하나 해 주실 거예요. 오늘은 작업과 관련해서 대화해보겠습니다.
이 부딪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이유는 저는 이미 작업실을 가지고 있고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생활경제 능력이 되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내용적인
김기현: 네, 김기현입니다. 청주가 어딘지 잘 모르시죠. 대전이나 충남, 충북 잘 구분 못 하시는 분들 계신 데, 충북 청주에 있거든요. 충북 도청 소재지이
보강만 하지, 실질적인 점거에 있어서 그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어요. 그 부분에 있어선 이미 후배들에게 밀려있어요. 그 부분을 가지고 전시하고 전체
기도 한데, 소외되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거기 있는 작가들도 마찬가지고,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인데, 저희가 작년에 점거 아
적인 전시의 내용을 자료를 모아서 가지고 와서 보내주면, 내용은 다져지지 않겠냐 해서 이번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혼자서 작품을 저기 들여와서 하게
틀리에를 준비하게 된 과정에 물론 25일에 세미나에서 자세하게, 미학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말씀드리겠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묘했어요. 의도적이지
되었는데, 그 내용은 청주시 사진으로, 많은 사람들 모여서 필요 없이 남아있는 마지막 한 부분이 되는 것을 뽑아가지고, 고부분만 가지고 그 과정들을 지
않고 우연적이었다고 얘기할까요.
원하는 형식, 그런 류의 회의를 했던 자료들, 문건 나왔던 것들, 점거 대상 사진 찍었던 그런 것들로 모아서 구성했어요. 제 작업은 어떻게 보면 좀 단순하
저희가 단체에 민묘, 분묘하면서 무작위로 회의도 하고 정기회의도 하고 했는데, 어느 날 무작위로 회의를 마치고 술을 먹게 된 자리가 있었는데, 한 친구
고 좀 스스로 봐서 유치하다 싶을 정도까지인데. 그런데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해봤습니다.
가 신문을 가지고 와 가지고, 파리에서는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점거의 과정에 대해 우리나라에 사진을 가지고 와서 제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그래서 오늘 가지고 좀 더 덧붙이고 말하고 싶은 네 번째가 자기 성찰로 들어가는 그러한 부분이 6개월이 지나고, 그거에 대한 정확한 제시를 하지 못했
있어요. 소개된 것이 극히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런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으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안
던 거에 대한 가능성도 가지고, 가져보려고 전시를 했습니다. 근데 다녀간 후배들에게 글을 읽지 않으면 설치된 내용 부분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느냐는
공간으로서의 활동 방향까지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사실 저는 거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시 덥잖게 반응했었는데, 그 젊은 친
지적도 받았습니다. 근데 이 점거프로젝트를 가지고 자꾸 공공건물을 내 놓아라 하는 게 커다란 숙제예요. 하하.(웃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
구들은 그 자료를 집중적으로 모아서 수합하면서 한달을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청주에 있는 문학 동호회 게신 분이 점거 아틀리에와 우리의 움직임, 자
고, 동영상을 가지고 갔었기 때문에 막무가내죠. 점거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좀 안주를 갖지 않을까라는 것들도 스스로에게 변명꺼리
료를 보고 글을 썼어요. 최초로 공개되었던 거고요. 그러한 과정 중에 내용들을 학습하는 과정 중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점거를 하기 위해 대상이 뭐가
가 되지 않느냐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바로 이 전시 끝나고 돌아가면 이제 그 실질적인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해서, 오는 상반기 안에는 한 건물을 할 거
필요한 게 무엇인가, 공공의 건물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일반 사용의 것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했어요. 근데 마침 그때 청주시 안에서 공공의 건물 몇
같은데, 이렇게 진행되니까 오히려 타협점을 가지고 나오는 관이 있어요. 물리적으로 하지 말고, 일정한 공간을 줄테니까 조용히 들어갈 수는 없느냐 하
군데가 새로 지으면서 이사 가는 데가 몇 군데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안기부 건물이라든지, 농업자원기반공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하나가 동
는 식으로요. 그런 부분은 후배들이 원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될 거 같으면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고요. 나는 그래 줬으면 좋겠는데, 그 친구들은 그렇지
이 하나 없어졌어요. 그래서 그 대상의 건물을 중심으로 값도 싸고 해서, 날을 잡아서 시에 들어가자 하고 D-Day를 잡아가지고 했었죠. 근데 그 D-Day가
않더라고요.
되기 전에 아무튼 냄새를 잘 맡는 기자 하나가 그 내용을 보도해버렸어요. 갑자기 전혀 우리 자료를 주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흘려듣고요. 그것이 보도
관객: 실례지만, 활동하시는 분들 연령대가 어떻게 되세요?
나간 뒤로 술렁이고, 도하고 시, 보안대, 검찰서, 이런 데서 인장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협 회장단이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저한테 화살이
김기현: 서른 초반이에요.
날아오기 시작했는데, 수없이 많이 만나고, 설득당하고, 협박도 당했고.
김준기: 30대 초반, 청주 시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에요? 한 3명에서 8명 멤버가 왔다, 갔다 한다는 거죠?
그런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지금 충북에서 유일하게 관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사를 가지고 있는 데가
김기현: 서양화, 컴퓨터그래픽도 있고, 인테리어, 뭐 여러 가지.
충청북도고요. 충청북도 관사가 평수도 커다란 건물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현직 대통령까지도 별장이라고 하는 청남대를 내놓은 상태에서, 도지사라고
김준기: 거기에 큐레이터나 프로듀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한 명 딱 붙어 있으면 진짜 좋겠네요.
관사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시민단체에서는 지속적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내 놓겠다 얘기해야지만, 미뤄져서 지켜지지 않았어요. 이
김기현: 그런 조건과 환경이 청주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후에는 동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해서, 일반인에게 공인했지만 그건 맛배기였고, 사실 가보면 닫혀 있습니다. 도지사 관
김준기: 그래도 청주에 미술대학이 되게 많잖아요? 그렇게 치면 되게 작가 군 이런 게 두텁지 않나요?
사를 점거하겠다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게 그쪽에서는 더욱 긴장해서서 도지사가 지시를 내려서, 문화예술과에 '막아라, 철저히 막아야 된다.'는 지시
김기현: 미술대학, 많죠. 근데 아쉬운 게, 많이 머물러 있지를 않아요. 그 친구들이 다른 지역에서 왔다가 공부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든지, 아니면
를 내려서, 문예총과 저희도 점거를 실행하려 했던 그런 코스들이 집중 포환을 받았죠. 집중적으로 저한테는 매일 확인 전화가 오고, 설득하기 위해서 저
상경하니까 작가 층은 사실 두텁지 않습니다. 그쪽 출신들이 어쩔 수 없이 내려와 있는 경우도, 그 대학을 나와서 직업을 가지는 사람이 대부분 다 가있
녁에 만나서 밥과 술을 같이 먹어줘야 되고. '언젠가 우리가 점거한다. 근데 언제라고는 얘기하지 못하겠다. 그것이 올해도 될 수 있고, 내년인 될 수도 있
죠. 특히 젊은층들이 쉽게, 위험부담을 가지는 부분에서 선뜻 받을 들여놓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런 상태로 진행이 되고 있고. 음 지금 실장님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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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하던 부분이나 미학적 부분들, 후배들이 나와 줘야 하는데. 그걸 어쩔 수 없이 능력도 안 되는 제가 맡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 만든다든지, 이론을 구
관객: 글쎄요. 제가 요즘 저는 청소년들하고 일을 하는데. 그래피티라고 하나요? 그 작업을 한 에피소드를 짧게 읽었는데요. 어느 한 청소년이 자기한테
성한다든지, 조율이 안 되는 거 있으면 맞추어 나간다든지 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실현이 될 거 같아요. 왜냐하면 아
새벽에 부산에 가서 그 관공서 벽에다가 그 태그를 하려고 딱 맘먹고 새벽차를 타고 갔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수위아저씨한테 딱 잡한 거예요. 그래 가
주 최근에 접한 것 중에 공단이 굉장히 크게 시내에 있는데, 한 2,30년 된 공단이 있습니다. 그 중 많은 공장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쪽으로 공장을 옮기기
지고 시작을 한 거 열심히 신나로 닦고, 그 아저씨가 '네가 그러면 나만 죽는다.'고 그랬데요. 그런 것을 우스개처럼 자기 웹사이트에 올려놨더라고요. 자
때문에 공동화 현상이 자꾸 일어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방치해두려니까. 시에서 매입해서 공원화하려는 건물들이 몇 개 있어요. 그래서 이 기
기가 하고자 했던 태그를 하나도 못 하고, 아저씨하고 그냥 좋은, 하하.(웃음) 그런 새벽 담론이랄까요? 그런 거하고, 열심히 벽 닦아드리고 왔다고. 마치
회에 이러한 대안적 공간, 전시 공간, 작업 공간 또는 젊은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작업 공간으로 만들어 보는 방향, 그런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는. 개인
그래피티란 문화가 정말 거기서는 마치 이런 점거처럼 자연스럽게 그냥 이루어진다고요. 어떤 타협이 있는 게 아니고. 들키면 끝장나고.
적인 것입니다.
김준기: 그런데, 그렇게 많아요? 그 위험한 게? 안 들키고도 그렇게 했다는 거죠?
김준기: 조금 전에 문예 진흥원을 미술위원회로 전환하는 것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어요. 그 중에 하나가 문예 진흥원 미술회
박경주: 진짜 위험하죠. 유럽에서도. 그래서 그래피티 작품으로 좋은 작품으로 치는 거는 진짜 가기 어려운 장소에 진짜 위험한 건물에 해놨어요.
관과 인사미술공간 여기 있는 거, 고것을 특성화된 대안공간으로 미술문화 생산지의 거점으로 키워야하지 않겠느냐 독립해서. 그런 얘기를 한참 하더라
김준기: 그래, 저기 가서 저걸 어떻게 해놨을까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높은 장소에.
고요. 물론 바람직하죠. 바람직한데. 그 논의의 함정 같은 게 뭐냐 하면, 대한민국 남한 사회의 중심가 인사동이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1억이든2억이
박경주: 그리고 거기에 자기네 싸인이 있어 가지고, 누구 건지 알고, 아는 사람은 알고. 그게 또 들키면 벌금을 물던지, 감옥을 가던지.
든 이렇게 관에서 주도하는 중심 공간, 메인 공간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미술문화에 발전에 기여하고, 시민의 문화여건을 신장시키리라는 확신을 하고 있
김준기: 아, 감옥까지 가요?
는 거죠. 되게 엘리트주의에 의존하고 있는 방식인데, 국민의 세금으로 1억을 들여서 몇몇 작가의 전시를 유치하고 관람객들을 몇 만 유치했다 오게 했
박경주: 네, 벌금을 못 물면 가는 거죠. 벌금이 그쪽 물가 기준으로 엄청난 액수에요.
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예산 집행인가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올시다.'거든요. 몇몇 문화 권력자들이나 노출증 깊은 작가들의 노출 욕망 같은 거를 충족
관객: 그런 거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그걸 가져왔을 때 그걸 읽으면서 이건 한국식 그래피티구나, 타협적인 그래피티구나라고
시킬 수는 있겠지만, 균형 있는 문화지원, 이런 거는 아니라고요. 그랬을 때 훨씬 더 바람직한 거는 말씀하신 청주하고 하는 지역에서 그 지역을 바탕으로
생각하죠. 내가 알고 왔던 정말 폭력적이고, 그런 게 아니라 한국식의 어떤. 지금 그런 게 느껴졌어요. 하하.(웃음) 근데 어쨌든 그게 필요한 부분인 거는
활동하는 작가들이 활동을 작 할 수 있도록, 점거를 했으면 그 점거를 용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정부의 마인드, 또 작가들이 점거하기 이전에 그런 공간들
같아요.
을 제공하고, 어려운 여건이지만 조금씩 열린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대안공간, 비영리문화공간을 만들어 내는 그런 정책들이 좀 아쉽죠. 마인드, 미술인
박경주: 근데 그게 정말 관에서 주도하는 거랑 아래서부터 진짜 필요에 의해서 올라오는 거랑은 천지차이니까요.
들의 발상자체도 그런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청주에서 그런 시도를 하셨고, 결과를 어떤 형식으로든 낼 수 있
김기현: 저희는 그런 생각을 하는 부분만 아니라 이미 정해주고 돌려진 상태에서의 의식과 사고 수준하고, 절실했을 때의 들어가지고 위험부담을 가지고
다는 게 고무적이지 않느냐. 되게 반가운 거죠.
들어갔을 부분에는 삶의 방식과 작업 내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기현: 예, 그 내용들이 조금씩 전파가 되면서 특히 민중미술 계열 쪽에서, 제가 아는 친구들이 그런 쪽이다 보니까. 자구적 해석을 하는 거죠. 되어 가느
박경주: 그래서 오히려 저번에 그 연영석 선배님이라고, 그분이 노동현장에서 노래 많이 부르는데, 우리나라 그 뭐지 무주택자들이나 이런 데 철거민 지
냐, 되어 있느냐 진행정도 이런 것들도 얘기를 해가면서. 아직 못했다 하는 거에 대해 그 뭐랄까, 소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이랄
역에 사는 사람들이랑 점거운동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게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보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정말 절실
까,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얘기하니까, 그건 아니에요. 이미 그런 사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성공적으로 받아드린다 말씀하시니까 용기를 더 얻었습
하거든요. 이번에 상암동인가, 화염병 들고 두 달, 50여일을 싸웠잖아요. 그러면서 임대주택 얻어냈는데, 그런 절실함이 과연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한국
니다.
작가들에게 있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하고 싶어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진짜 그런 게 필요하고, 그런 게 있는가. 그리고 내가 한국에 와서 한 3년 있으
김준기: 이리로 오시죠. 이제 본격적으로 토론 분위기로, 어디 계시죠?
면서 느낀 건, 오히려 한국작가들이 타협을 더 쉽게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이 미술문화 전반적인 풍토에서도 작품이나 이런 것에
관객: 저는 유럽, 프랑스, 영국, 폴란드에도 좀 있었어요.
서도 많이 나타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고, 그런 것들이 많이 습성이 된 거 같아요. 그런 절실함이 없고, 그리고 일단은 우리나라
김준기: 거기서 점거 아틀리에 좀 보신 적 있으세요?
같은 경우에는 아카데미즘이 되게 자리를 잡고 있잖아요, 미술계통도. 미술은 특히 더 하고, 학력이니 학벌이니 이런 게 이미 다 풍토가 되어 있기 때문
관객: 아 네. 경주언니 비디오에 나왔던 선아언니 그런 곳에 있어요.
에. 사실은 점거를 하는 사람들은 반아카데미즘 사람들이거든요. 학교에서 교육,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런 걸 반대하는 사람
김준기: 어디죠?
들이에요.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봤을 때도 진짜 극좌라고 할 수 있죠. 완전히 아나키스트거나 그런 거에 반대하는. 진짜 우익단체들이 시위를 했을 때 가
관객: 파리 근교인데, 공항 가는 쪽에. 근데 거기는 이미 너무나 정착이 되어서 더 이상 이동될 공간이 없고, 거의 시에서 작가들이 있는 곳이라고 놔두고
서 걔네들이랑 싸울 수 있는 애들이죠. 그런 애들은 그런 정신적인 틀이 과연 있는가. 우리나라 미술풍토는 그런 게 좀 없는 거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있어요. 제가 들으면서 한 가지, 그게 정말 우리 문화와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좀 났고요. 일단 거기는 점거라고 하면 무조건 말 그대로 점거로 시작하
그런 작가 군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거든요. 어떤 준비상태나 그런 거보다는. 걔들은 정말 갈 데가 없다거나 집이 싫기 때문에 그냥 짐 싸들고 애 업고 가서 살기 시작하는 거거든요. 들어갈
관객: 그런데 꼭 그런 위험 부담을 떠나서, 지금도 보면 선아언니가 있는 곳은 굉장히 유명한 작가들도 같이 있어요. 거기는 너무 오래되고 정착이 되어서
준비가 아니라. 걔네 문화에 이미 워낙 그런 게 들어가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꼭 그런 식으로 될 수 없다면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서 우리는 특별한 타협이나 대화가 필요한 민족일 수도 있고. 그
김준기: 18세기부터 벌써 그런 걸 시작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러니까 우리 민족의 성격에 맞추어서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꼭 위험부담, 좌익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고, 또 지금 하신 이런 작업처럼 자연스
박경주: 유목민이죠.
럽게. 두 가지 다.
김준기: 집이 없어서 생존을 위해서 그냥 그렇게들.
박경주: 그거는 저기 일을 하기 전에 이렇다 저렇다 할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요. 누군가 점거를 원한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 지금 우리나라에 이민족 문화, 언니가 지금 다루고 있는 그런 것들. 굉장히 짧고 너무나 할 일이 많은. 갑자기 생긴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금 이
관객: 그렇죠.(웃음)
부분에 있어서도 저는 어떻게 진행되실까 굉장히 궁금해요. 그러니까 하나의 결과물로서, 아마 정말 그쪽 방식이라도 도입을 하게 되면 점거가 되면서부
박경주: 그게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거고. 진짜 저 몹쓸 놈들 하는 말을 듣더라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
터 시작이 되는지. 6개월의 시간이 준비기간이 많은 것이 나쁘게 말하면 왜곡이나 아니면 타협, 설득, 협박되었기 때문에. 이런 것이 더 이상 점거라는 의
문에. 그리고 그걸 원하는 사람은 하는 거고. 그런 방식이 싫으면 나는 어느 정도는 대화를 통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걸 모색해 보겠다는 사람
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제 한쪽의 생각이고, 또 한쪽의 생각은 어쨌든 우리식의 정말 또 필요하니까 그런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
은 또 그렇게 해야 하는 거고. 아까 여기 실장님이 얘기하신 대로, 문예 진흥원이나 이런 데서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만약 그런 데서 지원하겠다면
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말씀 들으면서 저도 혼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어요.
하라 그러고, 그건 그거고. 왜냐하면 그런 데 들어갈 수 있는 수의의 작가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거기에 못 들어가는 진짜 거기 들어갈 수 없고, 그
김준기: 그럼 우리식이라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런데 속하지 않고 그런 사람은 그럼 기회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볼 때는 그거는 생존을 위한 거라고 보거든요. 작가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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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위한 거고. 그런 차원에서 그 작가가 좋은 작업을 하든, 나쁜 작업을 하든, 그 사람들이 우익이든 좌익이든, 그거를 떠나서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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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세금만 내면 되는 거예요?
동이기 때문에. 만약에 그런 아무리 많은 관에서 그런 건물을 짓더라도. 지금 스튜디오 프로그램 우리나라에도 되게 많은데. 그게 다 레벨이 있기 때문에
박경주: 그러니까, 그게 자릿세죠, 일종의. 그래서 세금을 내는 건데, 그게 액수가 생각보다 높더라고요. 그리고 그게 억울한 거죠. 그거 내는 게. 왜 여기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그런데 못 들어가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거리는 모두를 위한 거리고 내가 한 자리에서만 그리는 것도 아니고, 계속 옮겨 다니면서 그리는 건데, 내가 돈을 왜 내. 그래서 제일 많았던 게 중국에서
김준기: 그 점거도 지금 얘기대로하면 점거가 생계형 점거가 있을 테고, 퍼포먼스로서의 점거, 그러니까 작업으로서의 점거. 이 두 가지가 있을 거 같아
온 친구들이었어요. 중국이 딱 문호가 개방되면서 그 때가 95년 그때니까. 중국은 이거를 끝내주게 잘 그리거든요. 초상화를. 거기는 한 일년인가 이년동
요. 그래서 물론 두 가지가 완벽하게 결합하면 좋겠지만 그 둘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하더라도 충분히 한국 사회에서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
안 초상화만 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파리에 입성하면서 (웃음) 기존에 있던 포트레이터들이 기가 팍 죽어서, 값이 떨어지는 거예요. 너
네요. 25일 세미나할 때는 관련된, 예를 들어서 대상 건물의 이미지랄지, 이런 시각 자료들을 좀 CD로 구워 주셔서 보여주시면 좀 더 생생한 발제가 될
무 잘 그리니까. 중국친구들이.
거 같아서. 부탁 좀. 어떤 건물들이 가능하고. 예를 들어서 거기에 공간을 짜서 이렇게 잘라보기도 하고 하셨을 거 아니에요. 누구는 어디에 들어가고 한,
김준기: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많이 왔겠죠, 수가 많으니까.
그런 자료가 좀 있으면 그런 것도 좀 보여주시죠.
박경주: 그런 분위기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여러 가지 레벨이 있는데, 그런 레벨들이 레벨들을 구분 짓는 것 중에 여성이랑 남성 이런 것이 우리나라
김기현: 내부공간은 아직, 답사는 했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어요. 화면을 준비하지 못 해가지고. 그거는 정말 건물이 새로 짓느라 없어지고. 재미는 있
사회에는 되게 두텁게 그 벽이 있고. 그런 걸 내가 지금 더 그때보다 지금 절실하게 느끼는 이유는 그때 예를 들면 여기 내가 찍었던 작가 중에 활동 안 하
었어요. 그동안에도 건물 쪽에 안전하게 들어갈 정도로 자문도 구해보고 했으니까. 사실적으로 점거에 대해서 작가들이 그런 위험 부담에 대해서 책임을
는 작가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니까 10년이 채 안 되었는데. 제가 그때 이걸 찍으면서 뭐라고 했냐 하면은 이 영화는 10년 후에 같이 전시하면서 틀자고
일부 져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우리 사회에 가질 수 있는 그런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 나가라면 나가고, 그동안 있었던 거 임대료
제가 얘기했었거든요. 그때까지 아마 다 작업을 하고 있을 거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10년이 안 됐거든요. 근데.
주고 나오면 그만이다 해서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변론해주겠다 해서 힘이 좀 되지요. 이런 것까지 우린 준비를 해야 하니까, 유럽적 상황, 프랑스적 상황
김준기: 지금 노석미씨 밖에 없지 않나요?
하고 너무 차이가 나는 환경이죠.
박경주: 인경이는 좀 하고 있고요.
김준기: 유럽에서도 점거했다가 터지고, 얻어터지고 쫓겨나고 이런 경우들 많다고 해요. 들어간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치열하게 점거라는 걸 자
김준기: 가끔 하죠.
기의 예술적 생명이란 걸 걸고, 그걸 작업이라고 하는. 아까 얘기했던 형식의 그런 부류들. 또 어떤 데는 아주 평온한 그야말로 아틀리에, 작업실로서 사
박경주: 일러스트를 하고 있고. 그러니까 내 친구 선아 같은 경우는 되게 우수하게 졸업을 했는데, 외국인이기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비자를 못 받고, 그
용되는 그런 데도 있다고 그러고. 다양하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박경주씨, 작업 얘기를 우리가 선생님 한참 하다보니까 안 했는데. 아까 그 실험영화
래서 계속 학교에 등록을 해놓고 다니고 있어요.
를 찍었을 때의 작가들의 인터뷰, 뭐 내용이 어떤 거였나요? 20대 후반 여성작가들이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할 때에 그런 상황들, 그런 내용들이 포커스였
김준기: 파리에 있다고 했어요? 지금도 있어요?
는지, 아니면 그냥 영화실험을 위해서 그들을 찍었는지.
박경주: 네, 파리에요. 지금은 결혼을 해서 다 해결이 됐죠.
박경주: 그런 내용이에요. 주로 처음에는 그런 포커스였죠.
김준기: 현지인이랑? 역시 지름길을 선택했네요. 허허.
김준기: 그렇죠. 그런 것들을 좀 얘기를 좀 정리해 주면, 본인의 경우나 입장, 아줌마 작가로서의 작업실이란 것과 연관지어서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박경주: 그런 게 있고.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그런 벽이 있는 거 같아요. 거기에 대한 증명은 대개 주변에 보면 다 남자작가들이고, 전시 그룹전 같은 데 껴
박경주: 작업실, 글쎄.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그때는 결코 안 했을 때고, 나이도 어렸을 때고 한 데, 그때는 결혼도 안 할 생각이었고, 한국에도 안 들어올
도 여자작가가 별로 없고 그런 거 같아요. 일단은 뭐 그렇게 마무리를 하죠.
생각이었기 때문에.(웃음) 그때는 많이 달랐는데. 한국 사회는 역시 여자들이 뭔가를 하기에는 힘든 상황이라는 거. 여전히 변함이 없는 거 같고, 모든 게
김준기: 마무리를. 지금 박경주씨 같은 경우에는 작업실을 어떻게 꾸리고 있죠?
남성위주로 다 되기 때문에. 내가 직장 생활을 잠깐 했는데, 거기서도 되게 그런 걸 많이 느끼고 그런 게 있는 거 같고. 그때 처음에 할 때는 왜 유명한 작
박경주: 집에서요. 이번에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방이 많은 데로. 전세 3000에 방4개, 마당까지.(웃음)
가는 남자인가 이런 질문부터 해가지고, 그런 작품을 하게 된 거였고. '그럼 나는 여성 작가를 찍을래.', 이렇게 해서 여성 작가를 찍겠다고 해서 한국에
김준기: 아현동이라고 했나요?
와서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들 찍고 그렇게 한 거였고. 또 내가 외국생활을 하니까, 외국에 있는 여자들은 또 어떤가 해서, 고등학교 동창친구들 또 일부러
박경주: 네. 제 작업실로 살 거고. 저 같은 경우는 주로 밖에서 하는 작업이고. 집에서는 편집하고 이런 거 하니까.
포트레이트하는 아르바이트 하는데 데려간다는데, 대환영 상수를 들면서 전화를 해서 나보고 그거 아르바이트 하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
김준기: 그런데 작업실 많이들 바뀐 거 같아요. 화가가 아닌 경우, 화가나 조각가가 아닌 경우에 많이들 바뀌어서. 이젠 뭐 웹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되는
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적극 찬성이라면서. 하하. 한 번 해보라고. 그래서 거기 거의 2주인가 3주인가를 따라다니면서, 그리고 그 친구랑 그거 하면서 에
작가도 되게 많고. 양상들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피소드가 되게 많았는데. 그런 얘기도 듣고, 진짜 되게 예술가가 여러 가지 삶의 레벨이 있는데. 사실 우리 옛날 영화나 이런 거 보면 프랑스 가서 그러고
박경주: 옛날이랑 많이 바뀌었죠.
있는 장면 나오잖아요.
김준기: 옛날이라고 하면 한 10년 전?
김준기: 거기가 어디예요?
박경주: 10년 전만 해도 많이 바뀌었죠.
박경주: 에펠탑 앞이요.
김준기: 이 작가들 찍을 때만 해도 죄다.
김준기: 거리 초상화?
박경주: 다 아틀리에 있었어요.
박경주: 불법으로 해서, 허가를 받은 사람들은 돈을 내요. 경찰한테. 그런 사람들은 증이 있어요.
김준기: 죄다 아틀리에를 꾸미고.
김기현: 자격증을 주는 거죠.
박경주: 홍대 근처에 다 이렇게. 거기 7번 종점 있는데, 그 근처요.
박경주: 증이 있어서요. 단속이 와도 안 도망가는데. 제 친구는 그거 안 했거든요. 그래서 단속이 한 번 뜨는데, 단속 오면 그거 다 싸 갖고 도망을 가는 거
김준기: 망원동 그쪽 말씀이죠?
예요. 그리다 말고. 그래서 모델로 있던 사람도 같이 도망가야 하는 거야. 마저 다 그려야하니까. 그래서 되게 웃겼는데. 나는 따라다니면서 계속 재미있
박경주: 그리고 사무실 자리인데, 아틀리에로 쓰니까 화장실도 잘 안 되어 있고, 막. 다 그렇게 지냈었죠. 지금은 뭐.
다고 그러고, 내 친구는 스트레스 받아 가지고 이래도 계속 해야 되냐고 하면서.(웃음)
김준기: 작업실에 뭐가 있어요? 컴퓨터?
김기현: 그것도 시에서 오디션 받아서 통과해야 그렇게 주는 거 아닌가요?
박경주: 컴퓨터랑 촬영기구. 그리고 창고가 이만한 방 하나가 짐으로 꽉 찼어요. 작품이 팔리지, 우리나라 작가들은 작품이 안 팔리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박경주: 그건 아니고요. 그냥 세금을 내는 거예요.
다 나중에는 짐짝처럼 되어 가지고. 아무튼 그런 것도 있고. 마무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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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8: 박홍순, 한생곤
2004.02.06 금요일 pm.04:00 김준기: 예예. 앞으로 계속 좀 협의하면서 바깥에서 멀리 있는 사람들이 또 도움 줄 수 있는 거 있으면, 그리고 논의를 공론화시킬 내용이 있으면 또 같이
김준기: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작가와의 대화에 함께 해주신 관람객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그러면 바로 작가와의
협조해서 하고. 모쪼록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화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화가, 조각가들의 작업실이 대지 일정 공간의 땅덩이 위에, 대지 면적 위에, 건평을 올려서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작업실
김기현: 노력을 하겠습니다. 허허허.
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작업실이에요. 그랬을 때 작품이미지와 작업실 공간들이 매치가 되고. 노동과 땀이 배어있는 조각가의 작업실, 또 화가
김준기: 오늘 마치겠습니다.
의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작업실의 일반적인 모습이고요. 그런 일반적이고 정형화된 아틀리에의 상,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대
김기현: 고맙습니다.
표적으로 한생곤 작가에게서처럼 움직이는 아틀리에, 이동식 아틀리에,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작가도 있어요. 예를 들면 뭐 저 밑에 아까 보셨겠지만 퍼 스널 모바일 아틀리에 해서 휴대용 개인 아틀리에를 보여준 분도 있고, 또 어떤 분은 그냥 작업실이 아니라 도시, 마을 이런 데 가서 아이들과 함께 주민 참여형 미술로 잠입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은 인천에 사는 드라마고 작가, 지하에서. 그런 사람은 인천 전역이 자기 작업실이다. 이렇게 얘기해요. 또 어떤 사람은 폐교를 작업실로 고치는데, 그냥 자기 혼자 작업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 모셔다가, 아이들 데려다가 미술교육 프로그램 운영하는 공공 미술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그런 작업실. 그렇게 보면 여기에서 보시는 작업실과 그 다음에 움직이는 아틀리에, 가지고 다니는 아틀리에 또는 교육장으로 서의 아틀리에, 이런 것들이 가지는 특성들이 다른 거죠. 우리가 모던하다, 근대적이다 하고 하는 게 뭔가 하면, 사회가 시스템이 서로 분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공간은 작업을 하는 공간, 너는 작업하는 사 람. 자 여기는 전시장, 여기는 관람객,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이 딱딱 되어 있는 거예요. 체계적인 영역 분할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모던한 사회라고 하는데, 포스트 모던한 사회라 하면 이러한 것들이 장르 간에 결합되는 방식이 드디어 나타나는 게, 소위 탈 모던하다고 그렇게 얘기하 잖아요. 그러면 기존의 작업실이 뿌리가 있는, 정주해 있는 작업실이라고 하면, 한생곤 작가처럼 이동하고 유영하고 흘러 다니는 이런 것들. 탈주, 유목민 적이라고 얘기하잖아요. 노마딕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이제 그런 거라고 얘기할 수 있고, 또 모던과 탈 모던의 모드로 얘기하면 탈 모던한, 포스트 모던한 작가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사시는지, 사전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도 있고, 잘 모르시는 분도 있겠지만. 뭔 생각을 가 지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어떤 과정에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과정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이런 얘기들을 좀 먼저 들어보고. 그 다음에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한생곤 선생님 모시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박수를 우렁차게. 한생곤: 만나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저는 정말 이게, 이런 자리 어색한데. 가깝게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거로, 뭐든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대상도 이렇게 서로 하나가 되면 될수록 선명하게 내면에 어떤 해상능력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고. 미술과 미술 보는 사람, 만드는 사람 가깝게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대받아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좀 오늘 보여주겠는데, 조금 있다가 작업실을 갖고 왔는데, 버스 작업실 한 번 구경하 시면 사태파악이 다 되니까. 대충 보는 게 제일 좋은 거 같고. 저 같은 경우는 버스를 왜 사게 되었냐 하면 그걸 안 사면 죽을 거 같아서 샀어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재작년부터 출발했는데, 3년 전 여름에 제가 20 대 전체를 의식탐험을 하듯이 글쓰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냥 생각만 해서는 힘드니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걸 하면서 계속 20대 학교 들어와서 지 금까지 그러니까 제가 올해 서른아홉이니까 한 3년 전이니까 서른여섯 살까지 한 15년 정도, 계속 생각만 하고 있고 뭔가 골방에 와 있는 거 같고. 어쨌 든가 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정밀한 이해기에 도달하는 건 좋은데. 어쨌든 간에 별로 움직임이 없이 그냥 이렇게 식물처럼 한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어 느 순간 갑자기 답답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대학원 졸업 논문 제목이 <깨달음의 회화적 수렴에 관한 논구>란 제 목으로 제출했거든요. 근데 그 논문을 쓰기 위해서 제가 평소에 노트를 시작했는데, 그 노트가 한 35권 즈음 되었을 때 그 논문이 끝났어요. 근데 제가 심심풀이로 노트에다가 앞에 제목을 달았거든요. 책을 흉내 낸 것처럼. 제일 첫 번째 시기 때 한 10권 때까지 제목이 뭔가 하면, '견자의 언덕' 이란 제목이었어요. 볼'견'자, 놈'자'자 해서. 세상에 참여하지 않고 구경하고 있는 느낌. 그래서 '견자'란 제목으로. 어떤 책에서 본 낱말을 쓰긴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조금 제목이 바뀌더니 '지구위의 여행'이란 제목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논문도 논문 장을 정할 때 맨 마지막 장이 '지구 위의 여행'이었 어요. 그래서 뭐 뚜렷뚜렷한 말이 많은데, 간단하게 압축하면 산다는 것은 우리별을 잠깐 여행하는 거 아니냐. 그 생각, 간단하게 압축해 가지고. 그리고 우리가 도서관이나 이런 데서 만나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은 결국 그 사람의 개인적 여행담 아니냐. 그런 간단한 식의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면 나도 이 세상에 한 명의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나 가지고 평생 다른 사람이 써놓은 여행담에 주를 단다거나 해석하면서 시간을 다 보낸다는 것도 좀 답답하다. 작 가라고 하는 문제는 그 여행담에 주를 다른 그런 것보다는 먼저 원고가 되는 뭔가 범본이 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게 작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 어요. 그래서 그렇다면 나는 원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괜히 이제 복사물에 주를 달고 사는 건 아닌가, 그런 등등. 그런 것들이 들면서 어느 순간에 아 이제 좀 뭔가 제대로 내 속에서 나오는 내 삶에서 나오는 줄거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그런 삶을 좀 살아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까. 사실 굳이 뭐 여행을 안 떠나도 왔다, 갔다하는 자체가 하나의 여행으로 보거든요. 그 다음에 그냥 일상으로 생각하는데, 가만 보면 여행이에요. 크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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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렇다면 그것도 다 여행이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형태를 갖춘 삶, 그대로 되고 간접화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사는 게 여행이고 여행이 삶이 되는,
요. 그런 친구가 나만 뭐, 공장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마감 같은 게 좀 문제가 있는데.
사는 게 작업하는 거고, 뭐 이런 식으로 이렇게. 그런 식의 느낌으로 살 수 있게 된 거죠. 처음에는 조그만 트럭을 하나 사가지고, 납권남자라는 영화에 나
관객: 식사는 얼마나 자주 하세요?
오잖아요. 천막 뒤집어 씌워가지고. 그런 식의 모델부터 시작해 가지고, 오토바이, 삼륜오토바이도 생각하고,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그 버스로 낙찰되었
한생곤: 밥은 주로 사먹는 편이고요. 여기는 컵라면 정도. 그리고 여기 열리고요. 아래층도 수납이 되고요.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기본생각은 뭐냐 하면,
어요. 그 이유는 우리가 공간을 쓰다 보면 이 공간이 넓다고 하지만 물건이 들어서다 보면, 그 공간이 실제적인 공간이 좁잖아요. 처음에는 25인승 보통,
여기는 앉아서 작업할 수 있는 거. 이쪽 면은 여기는 이쪽 면은 아직 미완성인데, 화판을 대 가지고 보통 미대 실기실처럼 종이 같은 걸 붙여놓게 할 수 있
콤비 버스가 제일 좋은데. 그거 비싸요. 새로 나온 차라서. 그리고 이전 모델은 좀 낡고, 그걸 사면 공부하는 공간 밖에 못 쓴다. 그리고 일어설 수가 없어
도록. 막아야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제 생각엔 여긴 조금 붙여놓고 전시장에 그림 붙여놓는 거처럼 어느 정도 크기, 제가 실어보니까 캔버스100호까
요, 차 안에서. 그래가지고, 너무 큰 버스는 좀 힘들고 그렇게 해서 버스 작업실이 이어졌어요.
지는 실리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크게까지 여기서 뭘 한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크기라도 지내면서 할 수 있다는 그런 걸 하고 있어요. 여기는 앉아가지
저는 아무튼 10년 정도 기약해 가지고, 어떤 일이든 한 10년은 해봐야지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좀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가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
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하면은 글쓰기하고 어린이 그림동화책에 관한 그런 작업을 하는 걸로 쓰면 될 거 같고. 여기는 평면 작업 같은 거 그런 정도.
년 정도 기약을 해서 투자했고, 지금 이제 1년 8개월 되었어요. 그러니까 올 5월 달 되면 만 1년이라는 것은 보험료가 나가고, 돈을 준비해야 하는. 하
그리고 다니면서 이번에도 제주도 잠깐 다녀왔는데. 우리나라 그 여러 가지 흙, 황토라든지 갯벌이라든지 또는 독특한 색깔 갖고 있는 그런 자연소재로
하.(웃음) 그리고 버스를 구입하면서 버스 값은 800만원, 50만원 깎아서 750만원에 구입했고. 뭐 등록비 등등 한 1000만원 정도. 그리고 실내 내부 정돈
해서, 쇠절구 같은데 넣어서 빻아서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도 좀.
하는데 한 350만원, 1300만원 들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보유한 집이 되었어요. 37세에 제가 처음으로 가진 집, 버스죠. 대충 그런 정도. 궁금하신 거 있
관객: 악기 연주 한번 들려주시면 안 돼요?
으시면, 직접적으로 좀 물어보시면, 짧은 시간에 답해드릴게요.
한생곤: 악기는 거의 장식품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허허.
김준기: 버스 보여주시는 걸 먼저하고, 보고 나서 대화를 하는 건 어떨까요? 나중에?
관객: 배우셨잖아요.
한생곤: 잠깐 내려가서 보면 되니까.
한생곤: 네, 배웠는데. 말도 안 통하고 너무나 짧은 만남이어 가지고, 그게 힘들었어요. 그냥 저거는 유자가 탱자 되듯, 몽고식은 아니고 혼자서 뚱땅뚱땅
김준기: 어디죠?
하는 정도. 지금 여기 화실은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여기 끝나는 데까지 1평 반. 이게 화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지내보니까 앞쪽엔 의자를 좀 만들어
한생곤: 요렇게 내려가서 꺾이는데.
야 할 거 같아요. 어차피 여기 공간이 좀 애매모호해서 운전석도 이쪽으로 해서 두 사람 정도 앉을 수 있게 하고, 여기 한 명 해서 간혹 가다 여행도 같이
김준기: 네, 어떻게 불편하시더라도 잠깐 함 번 보시고 싶지 않으세요? 함께 보시죠.
가고.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는데. 평소 때는 거기다 짐 같은 거 올리면 되고. 혹시 여행을 할 경우에는 사람들도 보고 싶어 하니까. 그런 정도로 쓰고 있어요.
* 미술관에서 도보로 5분정도 걸리는 곳에 한생곤의 노란버스가 주차해 있었고,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버스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시
관객: 저 자전거로 요번에 제주도 여행하신 거예요?
간을 가짐. 버스 앞에서 모두 함께 기념 촬영도 함
한생곤: 예. 고 접는 자전거 가지고. 요즘 버스를 보면 옆에 화물함이 다 있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실으면 다 실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놓고 다니고. 그 리고 이번에 처음 해봤는데. 좀 노숙하면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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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저기 있네요. 저기 노란 버스다.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해요?
김준기: 밖에 기다리시는 분들 있으니까. 대화는 들어가서 하죠. 이쪽으로 쭉 오시죠. 좀 더 이렇게 모여야지. 좀 더 멀리서 찍죠. 이걸 하나씩 돌려서 봐
한생곤: 냄새가 너무 나가지고. 이 꼬마는 제가 수업하는 꼬마예요. 4살 때부터 봤는데, 많이 컸죠.
도 되죠?
관객: 데리고 오신 거예요?
한생곤: 네.
한생곤: 엄마가 지금 놀러왔어요. 엄마랑 아빠랑. 지금 현재 제가 처음으로 그냥 이렇게 통째로 이랬는데. 1년 4개월 지나다가 보니까. 여기가 이쪽이 물
김준기: 저 이 리플렛에 보면 한생곤 작가의 이름과 이미지가 빠져 있어요. 이게 이럴 수가 없는 일인데. 엄청난 비애가 있었습니다. 워낙 이 머무르지 않
감장이예요. 이렇게 물감 사이즈가 들어가 가지고, 이중수납으로 그러니까 물감은 자주 안 쓰니까 이렇게 해서 크기에 맞추어서 칸막이 맞추면 되니까.
고 떠도는 작가다 보니까 핸드폰 연락이 잘 안 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리플렛 원고를 마감을 즈음에 이미지를 받아서 작가와의 대화도
그리고 잘 쓰는 거는 이렇게 호주머니 수납을 해가지고.
잡고 이래야 하는데. 연락이 잘 안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계속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 연락을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자, 어 제주도에 가셨나보다. 그래
여기도 마찬가지로 똑같아요. 양쪽으로 문을 열면 잘 안 쓰는 미술재료는 이쪽에 넣고. 잘 쓰는 미술재료는 여기 넣고, 이런 식으로 작업실을 쓰는데, 아
서 이번 전시에 참여를 못하실 수도 있겠다. 그래서 못 넣었습니다. 그런데 리플렛 마감을 하고 연락이 왔습니다. 오신다고. 그래서 저희로서는 크나큰 회
직은 이런. 여행하면서 음악이 되게 중요한데, 아직 음악까지는 돈이 없어가지고 못하고. 이거 하나 들고 다녀요.
생인데. 다행이도. 나중에 전시 카탈로그를 전시 끝나고 만들어요. 인쇄물로 출판할 것 같은데.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지금 보면 버스투어
관객: 겨울에 춥지 않아요?
했던 거랄지, 작품 낸 거랄지, 지금 말씀해 주신 것들, 이런 것들이 기록으로 잘 남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 큐레이터 입장에서는 지뢰 같은 작가, 아
한생곤: 춥죠. 그래도 노숙하는 아저씨들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리고 이 정도면 눈도 피하고 비도 피하고 하니까 대충 어떻게. 어떻게 보내냐면 이 난방
주 위험 요주의 작가예요. 이런 스타일이. 근데 오늘도 깜짝쇼를 해 주셨어요. 직접 보여주고, 이렇게 해서, 되게 좋네요. 직접 작업실을 보셨으니까 또 이
기구, 이거 하고, 그 다음 이거. 물 끓여가지고 이 안에 물 넣어가지고 이불 속에서 넣고 이거 안고 자요. 그럼 지낼 만 하더라고요.
것도 보시면서 이러저러한 대화를 좀 나눠주세요.
관객: 그 안이 침실이에요?
한생곤: 이게 그림일기 같은 거죠. 어렸을 때 숙제로서의 그림일기가 아니고, 좀 더 자기 삶을 기록하는 손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그런 의미가 되는 거고.
한생곤: 예, 여기가 침실이고, 여기는 수납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여기는 전지 사이즈의 종이가 들어갈 수 있어요. 여기 세토박이 나누어져 있는데, 가
대학원 논문 때문에 또 나는 뭐하는 삶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사는 삶일까,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삶일까 그런 고민에 빠뜨렸어요. 근데 그 고민들을 갖다
운데 하고 양쪽에. 종이 자체, 종이 위에 그려서 보완하면 되고, 여기는 서재 겸 침실, 할 수만 있다면 네스팟인지 뭐 이런 거 가지고 인터넷 같은 걸 하면
가, '선생님 저 앞으로 어떤 그림 그려야 할까요. 종답 좀 말씀해주세요'라든지 그런 게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내부로 파로 들어갈 수밖에 없더
좋겠다는 정도. 옷장이고. 여기는 샤워실, 여기는 여름에 살다보니까, 정말 너무 비인간적이에요. 그래서 인제 여기 수납 통이고요. 양쪽 바퀴 뒤쪽에
라고요. 보통 말하는 자아의 심연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뭐 그런 거죠.
100L 물탱크가 있어요. 그래서 200L이니까 한 드럼 정도 물을 싣고 다닐 수 있어요. 그러면은 모터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보통 쓰는 것처럼 똑같은 물을
근데 계속 뭐가 나오는데, 이게 진짠지 가짠지 판단이 안 돼요. 헛생각인지 잡소리인지, 뭐 별의별 생각인지 하여튼 판단이 안 돼요. 아무튼 계속 뭔가 누
쓸 수 있어요. 그리고 떨어지는 물은 60L정도 폐수 통이 있어가지고, 바로 물이 빠지는 게 아니고, 그 오수 통을 그 물을 버릴 수 있는 데에 가서 버릴 수
에가 실 뽑아내듯이 계속 하는데, 그렇게 계속하다가 보니까, 지금 이 노트가 70권이 넘었어요. 10년 이상 계속 했는데, 하다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느냐
있게끔. 이걸 하는데 인터넷 이런 캠핑 동호회 같은데 들어가서 알아보고, 제 나름대로 친구가 이루어졌어요. 그 친구도 이걸 되게 좋아해 가지고 초등학
하면은 결국은 내가 사는 게 이렇게 하는 외에 어떤 다른 게 뭐 할 게 있지, 그런. 아침에 일어났다. 배고프다. 밥을 먹는다. 심심하다. 이런 삶의 기본적인
교 때부터 이걸 가지는 게 꿈이었데요. 대학도 자동차 전공 무슨 과가 있어서 들어가서 대학교 때부터 봉고 같은 거 뜯어고치고 막. 그런 마니아가 있어
간단한 요구들. 생각이 났다. 까먹었다. 다음에 안 까먹어야겠다. 적어놔야지. 이런 어떤 되게 간단한 그런 운동에 반응한다고 할까요? 이게 제 작업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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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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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우리나라 종이를 편지지가 있으니까 편지 한마디 써야 하는데. 뭐로 슬까 하다가, 종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잖아요. 우리는 바람
여기 보면 엄청나게 술이 많이 취해 가지고 한 작업도 있고요. 어떤 사람이 놀러온 것도 있어요. 그러면은 노트에 찾아온 손님, 그런 정도로. 그리고 이번
부는대로 살아. 내 마음가는대로 살래. 그냥 그렇게 한마디 쓴 거예요. 작업한 게 아니고 그 느낌 같은 거죠. 앞으로 제가 평소에 일 하다가 뭔가 안겨서
전시 같은 경우엔 전시를 최근에 참여를 못 했고, 초대하는 것도 없고, 저도 별로 하고 싶어 한 거 없고, 그랬는데. 아틀리에라는 주제가 제 생활에는 뭔가
이렇게 글발이 팍 선다든지, 그림발이 막 높아져 가지고, 그림도 많이 그리고, 글도 많이 썼겠죠. 하지만 안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
맞는 부분이 있어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고. 대개 여기 보면 다른 작가 분들께서 사진도 되게 잘 찍고, 뭔가 작업을 보면 되게 멋있잖아요. 하지만 실제적
도 있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나는 이거를 해 가지고 해 가지고, 그게 안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러니까 소탈하고.
으로 우리 삶에 자기 속에 진실하게 들어가다 보면 대단하다, 멋있다는 느낌은 안 들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근데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하는
김준기: 아 저기 미술평론하시고 전남대 교수님이신 전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으로 계신 장석원 선생님이세요. 그 오늘 한 작가님 오신다고 해서 미리 예
어떤 걸 이미지를 원하는 데서 작업을 많이 했죠. 그래도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보여준다는 그 때문에 생기는 게 있어요. 표현의 거품이랄까, 그
정해서 오셨어요.
런 게 있어요. 그런 게 그것 말고 사는 그 자체가 어떻게 전달되나, 느낌이 있다든지, 울림이 있다든지, 그런 식으로. 작품을 했어요.
장석원: 아 제가 텔레비전에서 인간극장? 그거를 아마 며칠 나온 거 같은데, 두, 세 번 봤거든요. 버스를 가지고 유랑하듯이. 아무데나 내려서 작업을 하
김준기: 노트에 보니까, 용문이는 어떤 듯 하고, 정대는 어쩌고저쩌고. 예술학과 나온 김정대, 이런 사람이에요? 다?
고. 아 생각이 뭐랄까 흥미롭다고 할까, 이색적이랄까. 오늘 밑에도 보니까 흙으로 아버지의 글인가 하는 작업을 봤는데. 제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버
한생곤: 네, 만나서 오늘 들었던 말들이 상당히 멋있는 표현이 있다하면 써놓고, 뭐. 어떨 때는 제가 생각나는데, 당사자는 자기가 그 말을 했는지 까먹고
스로 이렇게 해서 스튜디오나 그런 작업 유형이 기존의 그런 화가나 보니까 홍대 교육을 받았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기존의
그러더라고요.
미술제도나 아니면 시스템에 대한 거부를 나름대로 갖고 있는 것인지. 그런 점하고, 그것이 서구에서 말하는 노마딕이라는 그런 패턴을 한국 현실에서
김준기: 좀 곤란한 질문 같기도 한데. 하나. 노매드니 탈주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이런 얘기를 했는데, 실질적으로 붙박이 작업실이 아니라 굴러다니는
그런 방식으로 찾은 것인지, 그런 점이 좀 궁금했고.
작업실을 꾸리시면서, 생활하면서 작업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고 새로운 공간 만나고 그랬을 때 작업과 굴러다니기 이전의 작업이 어떻게 다른가, 이 대
또 한 가지는 그런 생활 속에서 작업이 또 어떻게 나타날까 작업을 안 봤으니까, 그게 궁금했거든요. 허허. 근데 오늘 작업을 아까 봤는데, 우리 생활에서
목인데. 이거는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예를 들면 비평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붙박이 작업실의 정통적인 작업 방법, 그런 방식과 굴러다니는
보는 의미나 성격이 예술작품으로서는 이를 테면 분명하게 말하면 성격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뭐랄까 그런 생활을 하지 않아도 나
작업실 운영하는 작가의 작업은 뭔가 다르다고 혹시 나올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 같은 게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하공간에 있는 드라마고 같은 작가 같은
올 수 있는 그런 작업이라든가, 그런 애매한 경우를 발견했어요. 그런 점을 작가 스스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듣고 싶어서.
경우는 인천 도심에 아니면 변두리에 가서 아이들하고 같이 공동작업을 하는 방식을 채택한다든지, 뭐 이런 기존의 작업실이 아닌 다른 작업실을 채택했
한생곤: 어떤 마스트라는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정통한 사람들이 글을 쓰면 유목민의 어떤. 만약에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을 획득했다고 한다면, 그 미술이
을 때,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뭐가 나올 것 같아요. 아마 준비를 하시거나 생각을 하실 거 같은데.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가는 그 사람의 또 배후에.
한생곤: 근데, 저는 거기에 대해 생각을 안 해요. 안 하고 있고. 다만 제가 버스가 제일 첫 번째로 산 차고, 집이고 그렇거든요. 근데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장석원: 본인은 거기에 대해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운전하면서. 그게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있을 때는 고함지르고 그러면 '쟤 미쳤나' 그럴 텐데, 운전하면은 사람이 아무도 안 들으니까 혼자서 괴성
한생곤: 저는 그 부분을 지났죠, 지났죠.
도 내보고, 그런 식의 그러면서 뭐 소리에 관한 그런 생각도 좀 해보고. 왜 나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올까 하는 목소리에 관한 생각도 좀 해보고. 그 다음에
장석원: 지났다고?
만나 가지고, 그 뭐랄까. 불교에서 어떤 그 유파 같은 걸 떠나 가지고, 성 안 내는 얼굴이 참 좋다. 성을 안 내는 얼굴,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탕이
한생곤: 그걸 지났기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다고.
다. 뭐 이런 말 있잖아요. 그러한 표현이 그림의 본질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하고 내 전시해주세요. 사인하고, 그냥
장석원: 어떤 점에서 지났다고 생각하세요?
그때그때,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이야기 나눌 때, 되게 좋은 어떤 이야기 혹은 기분 좋은 대화 그게 그 순간적으로 되게 이인용인 시각이 이루어진다고
한생곤: 그러니까 미술에 관한 모든 담론, 우리 존재. 제가 간단한 그림을 하나 그려볼게요. 이 그림을 왜 그렸는지 아시겠어요? 그런 느낌 같은 거예요.
나. 그리고 붙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구축적인 건데, 구축왕의 논리를 따르거든요. 누가 더 저축을 많이 하는가에.
이 부분은 우연히 제가 여기다 그림을 도형 하나를 그리는 데, 이걸 여기에 먹을 묻혀가지고 동그라미를 그렸다고요.
김준기: 그러면 이런 말씀 좀. 사는 모습 이런 것들은 가서 봤고 알겠어요. 그럼 작업하는 방식, 어떤 방식으로 시각이미지를 축적해 나간다든지, 직품을
장석원: 그러니까 도형 같은 거는 나하고 아무런 상관없고, 그림을 혹은 글을 부쳤어요? 아무 상관없고, 나 말고는 다른 사람하고는 상관없다는 말이죠?
해 나가는지, 사진이든, 드로잉이든, 페인팅이든 아이들과의 공공작업의 유형, 방식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걸 좀 소개를 좀 해주시죠.
그렇다면 상관없다는 것이 그것을 꿰뚫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관있다면 뭔가 확실히 가는 그런 부분에 나이 드나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보
한생곤: 근데 저는 아직까지 작업 방식에 대해서 철저하지 못 해요. 체계적으로 그것은 마치 저의 버스 여행이 어떤 출판이면 출판, 어떤 뭐 이슈, 전시에
는데. 그런 점이 내가 객관적으로 밑의 작업을 봤을 때는 그런 생활에서나 그런데서 오는 그런 부분이 미묘하게 깃들어 되거나, 내면화 되 있다거나 하는
대한 그런 뭐를 가지고 출발하는데, 저는 그게 아니거든요. 훨씬 원초적으로 출발하거든요. 그냥, 이게 가령 지금 작가라는 이 개념으로 초대받고 있지만,
것을 본인이 지금 들어보니까 획득했기 때문에 상관없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작가라고 하는 건 하나의 명사고, 화가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명사거든요. 저는 그 명사화되지 않는 상태로 가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이게 이해가 될 지
한생곤: 네.
안 될지 모르겠지만. 그걸 어떻게 보면 한 연기와 같다고 생각해요. 연기. 명사화된다는 건 배우들이 대장금에서 장금이로 변신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한
김준기: 예, 여기서 모든 분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기엔 조금 어려운 주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한 선생님의 버스 투어가 있었던 관계로, 박홍순 선생
명사는 산수가 등장하거나 장금이가 되거나 그런 거죠. 저는 화가, 작가가 되는 게 똑같은 식으로 되는데. 우리들은 거기서 장금이한테 삼수를 제대로 안
님과의 대화를 이쯤에서 시작을 하고 다시 자유로운 질의응답의 대화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혹시나 더 질문을 하고 싶으시거나, 작가와 더 깊은 이야기
보고, 장금이를 보는 거죠. 마찬가지로 화가가 되는 순간에, 저한테는 화가만 보는 거예요. 저는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 볼 게 뭐 있나. 그런 생각이. 저 같
를 나누시고 싶으신 분들이 있으시면 이 시간 이후에 마련된 뒤풀이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으로 하죠. 예, 그럼 박홍순 선생님을 모시겠습
은 경우는 삶을 연극놀이라는 하나의 룰로 정해 놓은 틀에 들어가 있지 않는 거죠. 저는 그것에 대해서 야 우리 지금까지 이 놀이한다 해서 이 역할을 하
니다.
고 사는데. 갑자기 너무나 무심하게 지나가는 거미가 되는 거예요. 제가 열심히 노트에다 글을 막 쓰면서 아 이거 내일까지 숙제해야 한다고 막 하고 있는
박홍순: 안녕하세요, 박홍순입니다. 음, 제가 작업을 하는 것은 주로, 제 주된 작업은 풍경입니다. 풍경이고, 사실은 풍경이나 월간미술에서 기자생활을
데. 거기에 무심하게 지나가는 작은 거미 한 마리, 그 느낌. 나는 갑자기 뭘까. 그런 느낌 같은 거. 아마 저를 보는 느낌 중에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분
기자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한 4년 동안 사진을 찍고 있고, 작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미술행사들을 보고, 그리고 물론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그건 일로
이 상당히 있을 거 같은. 아 오늘 저기 인사동인가 가야해, 우리 저저기 목동까지 가야해 이런 식으로 보통 우리의 언어 구조가 흘러가잖아요. 근데 저는
서의 사진이고, 그 전에 제가 그 사진을 처음 시작하면서, 저의 가장 큰 주된 작업들은 이런 풍경사진으로 했어요.
그냥. 어떤 명사가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명사에 이르기 위해서 자기를 긴장시키는데, 그냥 명사라고 하는 자체가 그냥 모래 위에 쓴 글자와 같이, 모래
이 사진은 제가 지난번에 개인전을 했던, 백두대간이란 제목의, 저의 이 백두대간을 하고. 그러고 나서 지금은 한강을 찍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위에 모래 이런 생각이 드니까 거기에 별로 그렇게 많은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금강도 찍고, 낙동강을 찍고, 영산강도 찍고, 제 계획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삼년에 한번씩 제 눈으로 본 산하가 되겠죠. 그래서 프로젝트가 큰 프로젝
그래서 그게 포스트에 보면 바람부는대로, 거기에 무슨 작업을 하기 위해 종을 달아 놓은 게 아니에요. 종을 달아놨는데, 선물 받았으니까 종을 달긴 달아
트는 한 20년 생각하고 있고요. 그러고 나서는 뭐 산과 강을 다 찍고 나서, 이제 그 마지막에 바다가 되겠죠. 그래서 그걸 다 모으면 어 제가 본 그 산하가
야겠는데. 이게 뭔데 나한테 와서 소리 나면 어떡하지 해서 달았거든요. 근데 보니까 일본 글자로 막 써있어요. 무슨 글자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종
될 거 같아요. 그 중간에 혹시 그 통일이 되면 작업량이 더 많이 늘어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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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은 사진이 사실은 1839년에 공식적으로 발명이 됐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처음 출발이 자연의 재현이었어요. 그리고 한 150년
그리고 사진이 사실은 딜레마예요. 그러니까 소재가 소재에서 오는 힘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작가가 얘기하는 것들이 희석될 수가 있죠. 그리고 그 소
이 지나서 현재는 현대미술의 굉장히 많이 편입되고, 처음 시작되었던 기록의 의미와 다큐멘터리적인 어떤 의미들은 많이 상실되고, 현대미술에 와서는
재의 힘이 예를 들어, 백두대간 그러면, 사실은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 이 장소에 제가 다녔던 장소에 내가 가서 찍으면 다른 사람이 가서 찍으
굉장히 개인적인, 그리고 제가 미술 쪽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도 사실은 화가들의 생각들을 어떤 때는, 저 같은 경우는 매일 그림을 그리죠. 남의 작가들
면 똑같은 게 나오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도 있고. 그것이 굉장히 객관적이면서도 굉장히 주관성을 어떻게 의심받는 문제인데. 제 백두대간 이후에 한 세
이 한 작업을 보고 작업실을 가서 얘기를 하고 또 듣고, 뭐 광주비엔날레, 작년 같은 경우 베니스도 갔다 오고, 상해에도 비엔날레 갔다 오고. 그러면서 전
개 정도의 사진전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도 다 다른 시각이에요. 다 다른 시각이고, 거기에서 어떤 그 주관적인 얘기들을 할 수 있다는 얘기죠.
세계적인 작가들이 화가들이죠. 화가들이 작업하는 것들을 옆에서 보고 있어요. 옆에서 보고 있으면서, 사진도 현대미술에 와서는 굉장히 주관적으로 변
다음. 이쪽은 계속. 여기는 재미난 게 있어요. 여기 산 이름이 봉화산인데, 여기서 산불이 세, 네 번이 났대요. 옛날부터 봉화산이었던 거예요. 이건 가십
하고 있어요. 거기에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어떤 해석이 필요하고, 작가의 어떤 얘기가 필요하고. 얘기 없으면 안 되는 부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굉장
같이 재미난 얘기로 혹시 이름 때문에 그렇게 난 게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거나 지금 여기 쓰러져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불이 나서 이렇게 잘라
히 많다는 것들을 여러분들도 아마 느끼셨을 거예요.
논 나무들이에요. 다음 볼까요. 그 강릉 쪽 그러니까 강릉에서 오른쪽으로 태백산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이렇게 고랭지 채소 하는 곳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사진, 현대에 와서의 사진들은 거의 뭐,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미술이냐 사진이냐에 대한 어떤 그 구분을 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사진도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산꼭대기에 채소를 가꾸는 그런 곳이에요. 다음 볼까요. 여기는 남한 쪽에서, 여기는 알프스스키장이고, 꼭대기가 마산인데. 남한
처음에 시작했던 그런 예를 들면, 그 기록의 의미, 기록과 물론 기록이 여러분이 이제 지금 많은 사진 속에서. 지금 살고 계신데 본인 여러 가지 입장들이
쪽에서 갈 수 있는 최북단, 백두대간의 끝이죠. 그러니까 이 다음은 아마 TV나 이런 데서 많이 본 그 다음 봉우리는 향로봉이에요. 그리고 지금 여기는 알
있어요. 신문에서 본 사진도 있고, 광고로서의 사진도 있고, 상품으로서의 사진도 있고, 뭐. 예술로서의 사진도 있고 여러 가지의 사진들이 있는데. 저는
프스스키장이예요. 다음. 태백산에서 넘어오는 매봉이란 곳인데, 모르겠어요. 이거는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지금 여러분들이 고속도로나 그런데 가시면
거기에 기록이란 의미에 저의 시각을 포함시킨 거죠. 그래서 이 사진은 지금 제가 한 2년 동안 백두대간을 다니면서, 백두대간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어
굉장히 편리하죠. 그러니까 고속도로가 중앙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 뚫린 거 보면, 거의 거침없이 이 그러니까 산과 강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거의 직
요. 저기 그 김정호 선생님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백두산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어떤 근간이 되는 산이죠. 백두산부터 시작해서 지리산까지 이어오
선으로 뚫려요. 그러면서 주변도 거의 보지 못해요.
는. 그리고 그 지리적인 역사들은 사실은 아직, 지리 교과서에도 백두대간이란 것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거를 우습게 그거를
모르겠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이 인간의 어떤 그 필요에 의해서 너무 자연친화적인 어떤 생각들을 버리고, 너무 필요에 의해서만 개발이 되
다시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은 지리학자들이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등산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아마 백두대간이란 의
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개인적으로는 해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는 예를 들어 국도나 지방도로나 이런 것들을 찾아가는 것들, 그런 도로로 다니
미를 그 말은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학계에서는 인정을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근데 이것이 일제 하에서 우리가 이제 저도 그
는 것들을 굉장히 좋아하죠. 그래서 지금 미시령 쪽에 가는 도로를 뚫고 있어요. 그리고 대관령에서도 그 개통이 되었죠. 대관령을 넘지 않는. 물론 그것
렇게 배웠는데, 아직도 아마 그렇게 배울 거예요.
이 나쁘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그렇게 도로를 뚫고, 그렇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대체 우리 후손들한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리고 자연을 글쎄 너
산맥들을 잇는 것, 태백산맥, 마식령, 마천령, 묘령산맥, 소백산맥. 이렇게. 그런데 그것들은 일본 지리학자가 지리학자도 아니고 지질학자가 만든 개념이
무 빨리 가는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끔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없어지기 전에 저는 기록을 합니다. 다음 볼까요. 여기도 마
에요. 그러니까 그런 개념들은 저 같은 경우는 이 뭐 제목을 백두대간이라고 정한 이유는 그런 어떤 지리학적인 얘기와 우리 산하를 제가 다니면서, 여기
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넘어오는 줄기인데. 중간에 채석장이 있어서 인간이 필요한 돌들을 채굴하고 있는 거죠.
는 많은 것들이 있어요.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 인간관계를 본 거죠. 여기에는 지금 여기 보시면 산꼭대기에 있는 헬기장이예요. 많이 굉장히 많
그 다음. 그 백두대간은 요산에서 요산으로 이렇게 이어져요. 근데 이 중간에 끊겨버린 거죠. 다음. 이것도 이어져 온 것인데, 이 대간으로 이어져 오는 곳
이 있어요. 그거는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런 것들. 어떤 비판적인 시각이라기보다도, 현실을, 현실에 있는 산하를 저의 시각으로 한 2년 동안
인데. 물론 이런 철책선이나 아까 보셨던 그런 헬기장이나 아니면, 고무타이어로 된 방공호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리고 예전 같으면 사실
작업을 한 거예요. 그리고 지금 한강을 찍고 있고. 그리고 그러니까 거기에 핵심이 되고 있는 논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죠.
은 찍지도 못하게 했을 거예요. 여기가 군부대시설들이 있고, 여기 군인들이 많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근데 이제는 많이 제지를 당하는 일은 적어졌어요.
네. 보시죠. 여기는 고랭지 채소를 하는 대관령 지역 밑에 부분인데. 고랭지 채소를 했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백두대간이란 것이 이어지는 맥이거든요. 백
다음. 이런 것들도. 대간은 이렇게 이어지고. 다음. 여기는 속리산이거든요. 속리산인데. 여기 끝에 물론 얼마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이제
두산부터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계속. 어떤 데서는 평지 같은 데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 대산, 맥이란 것은 끊어지지 않는 거거든요. 처음
그런 얘기들을 들어요. 이제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그 등산을 진짜 좋아하고 사진을 업으로 하지 않는, 사진은 작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진을 취미로 하
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이어지는데. 물론 그것이 평지처럼 보이는 것은 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물은 빗물이 물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그 사이에, 그러
는 분들은 이 대간을 이렇게 다니면서, 예를 들어서 백 몇 십일을 대간에 있으면서 찍으신 분도 있어요. 근데 사진의 입장은 약간 틀려요. 뭐냐면 그 자리
니까 그 맥이 있으면 이쪽으로든, 이쪽으로든 떨어져요. 흐르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 재미나죠. 재미난 것이 이쪽으로 떨어지면 한강 줄기가 되고, 이쪽
에 있으면 그 현장에 있으면 보이지 않아요. 만일에 여기를 보기 위해선 반대 산에 가야 해요. 올라가기도 하고, 아니면 밑에서 보기도 하고, 아니면 위에
으로 떨어지면 낙동강 줄기가 되고. 그게 이제 태백산 쪽으로 가면 황지못이라고 있어요. 태백에. 그럼 그거는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하죠. 그거는 태백산
서 보기도 해야 하고. 그 자리에 있는 다고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현장에 있다고, 그러니까 그 옛날부터 이어온 어떤 사진, 기록과 어떤 그 현
에서 이쪽으로 떨어지면 한강이 되는 거고, 왼쪽으로 떨어지면 한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이 되는, 그러니까 그런 줄기를 타고서 다니는
대사진하고는 약간 틀리죠.
거죠.
다른 맥락으로서의 사진은 굉장히 객관적인 눈을 중요시 여겨요. 그렇다면 거기에 빠져들지 않는 거죠. 그래서 얼마 전에 제 작년 즘에 그런 일도 있었어
그 다음에, 이거는 소백산인데요. 천문대 가는데. 그 다음, 여기는 동해 쪽에 한화시멘트가, 그러니까 시멘트 광산으로 채적하는 곳인데. 어떻게 보면 환
요.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든지 그런 이야기를 듣거든요. 예를 들어서 빠져 죽는 사람이 있으면, 강물에서 빠져 죽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건져야 하느
경적인 문제도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뭐냐 하면 우리가 지금 산업화를 외치면서 6.25 이후에 굉장히 많이 발전을 했고, 그러면서 자연에는 굉장
냐, 아니면 사진 찍어야 하느냐. 이런 윤리적인 문제들. 그리고 그렇죠. 언제나 예전에 메모를 많이 하고, 이런 현장에서 거기에 합류를 해야 하느냐, 아니
히 무심했던 거죠. 그것들 지금 우리가 받고 있어요. 외국 같은 경우는 어떤 개발을 해도 거기에 따른 어떤 치유나 아니면 나무를 심는다든지 광산개발을
면 지켜봐야 하느냐. 이런 문제들. 그것이 아마 일반인들, 취미로 사진을 하는 사람들과 다른 입장일거라는 생각을 저는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도 그런
해도 그런 어떤 사후 조치들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없이 너무 빨리 달려온 것이죠. 그러니까 문명을 위해서 너무 빨리 달려와서, 그렇다고 해서
비난 아닌 비난들을 많이 들었어요. '네가 대간을 아냐', 뭐 이러면서, 백두대간을 종주했던 사람들이 '네가 백두대간을 다녀봤어?'. 그런데 다녀볼 필요
제가 어떤 자연보호론자, 환경론자는 아니에요. 그런데 이 부분은 굉장히 여기를 환경론자들이 저것도 많고 서로 논쟁도 많았던 곳이에요. 근데 이곳도
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서 여기 같은 경우는 저는 구간별로 다니는데, 물론 이 속리산 같은 경우는 이쪽으로 올라가서 여기까지 와서
대간 중에 한 곳이에요.
한 장 찍은 거예요. 어떤 때는 한 장도 못 찍을 때도 있어요. 다녀보기도 하고, 아니면 반대편 산으로 가기도 하고, 뭐 이런 식으로 관찰하는 거죠. 그리고
그 다음에 여기는 채석장인데, 여기는 많이 다녀요. 여기는 이어지는 대간인데. 다음 보시죠. 여기는 아까 고랭지 채소 하는 그런 곳이고. 다음. 여기는 삼
보는 거고.
양목장이에요.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장을 했던 곳인데,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이쪽 넘어는 동해안이에요. 그러니까 동해가 보이고
내가 보고자 하는 것들이 거기 있을 때 잘못하면 소재주의에 빠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저는 현장에 있어야 해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한 3년 넘게 한강을
강릉이 보이는 곳인데. 산꼭대기에 이르면서 평지예요. 그러니까 그걸 알고서도 우리나라 지형 중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곳이고,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있
다니고 있는데, 어떤 때는 한 3,4일 다니면서 한 장도 못 찍을 때도 많아요. 왜냐하면 제가 원하는 날씨가 있고, 그리고 해가 감응하기 때문에 그래서 일단
어요. 옛날에는 관광객들 출입을 엄금했었는데, 지금은 횡계 쪽으로 해서 가면 들어가서 관광을 할 수 있게끔 해놨더라고요. 제가 백두대간이란 전시를
고 부분은 촬영하고자 하는 포인트만 잡고 있죠. 남들이 보면 놀러 다니는 거예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어쨌거나 그 이런 작업들은 현장
하고 나서, 한 세 개 정도가 백두대간이란 똑같은 제목으로 사진전이 있었어요. 그렇다는 거는 관심이 있다는 얘기죠.
에 제가 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말로써 될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때문에 저는 이 작업, 물론 이 작업과 사실 여기 걸려 있는 작업은 의미가 좀 틀린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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쨌거나 이 작업이 저한테는 가장 큰 작업이에요. 계속 되어야 하는 작업이고.
요. 그래서 어떤 한 가지 흐름들이 이렇게 있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굉장히 안타까움을 느끼고.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작업들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런 맥
다음. 아까 얘기했던 방공호 같은 거. 다음. 이런 맥락으로 물론 일부인데, 이런 맥락으로 제가 한강을 찍고 있는. 이거는 지금 제 계획으로는 내년 초나
락에서 아틀리에 그 사진 보시면 제가 이전 작업들과는 굉장히 틀려요. 뭐냐 하면 이전에 제가 풍경을 찍고 이런 것들은 굉장히 클래식한 부분들이에요.
올해 말이나 개인전을 하려고 계속 찍고 있었던 부분이에요. 여기는 이제 한강인데요. 한강에, 한강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강이라고
그러니까 사진기를 굉장히 큰 사진기를 대형카메라를 들고 찍고자 하는 고 장소에, 고 시간에, 고 날씨에 가서 트라이포드를 세워놓고, 그 시간을 기다렸
얘기할 수 있는 가장 남한강에서 가장 상류죠. 여기가 말로는 많이 들으셨을 거예요. 뭐냐 하면 정선이에요. 아우라지가 있는, 정선아리랑의 어떤 출발점
다가 한 장을 찍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고전적이에요. 그리고 고전적으로 흑백이죠. 흑백은 흑백의 4.5필름은 대부분 굉장히 수작업이에요. 제가 혼자 한
이라고 할 수 있는, 옛날에는 예전에는 여기 물이 많았던 곳이에요. 이쪽강과 이쪽 강이 이제 합쳐져서 두 강이 합쳐져서 아우라지가 된. 여기는 원칙적으
장씩 현상하고 한 장씩 뽑고. 이 작업과 이 작업은 지금 디지털이에요.
로 조금 가면 한줄기가 더 있는데. 그래서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요. 남한강이 이 다음이 그 뭐 옛날에 예전에 신문에도 많이 나왔던 동강이죠. 그러니까
제가 두 분의 돌아가신 작가 두 분을 찍은 건데. 사실은 작가를 찍진 않았어요. 작가를 찍지 않고 작업실을 취재한 거죠. 작업실만, 아틀리에만 보고. 제가
어떻게 보면 남한강의 각 부분들은 또 다른 이름들을 갖고 있어요. 영월강이라든지, 소양강이라든지, 송강이라든지, 남한강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동강
4년 동안 다니다 보니까 작업실에 작가의 어떤 생각들이 담겨있어요. 그런 것들을 10년 앞으로 6년 정도를 더 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거기
을 지나서 충주로 와서 여주로 와서 북한강과 합쳐져요. 그래서 양수리가 물 두 개가 합쳐지는 곳이란 듯이예요. 양평에 있는. 그런 곳을 저는 다니면서
에 그냥 못 보니까, 다른 분들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고, 그래서 그리고 그 사람의 방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의 성격이라든지, 아니면 굉장히 궁
찍고 있는 거죠. 다음 볼까요. 여기는 자세히 보시면 지금 좀 작아서 그런데. 요기 다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장마 때문에 다리가 무너진 거죠. 그러니까 제
금하잖아요. 그러니까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갤러리라는 어떤 한정된 공간에 걸어놓았을 때랑, 작가의 어떤 이면들, 보이지 않은 부분들, 보지 못
작년 장마로 여기가 무너졌어요.
하는 부분들을 물론 뭐 저기 TV에 나오셔서 어떻게 보면 그거랑 비슷한 맥락이죠. 어떻게 보면. 그래서 제가 저 작업은 작업실을 아틀리에를 먼저 찍고
다음. 여기가 동강 중간 즈음인데. 오히려 지금 와서는 예전에 99년도인가요? 99년도 동강에 댐을 건설한다고 사회적인 이슈가 굉장히 많이 되었었죠.
나중에, 그리고는 새로운 여태껏 제가 찍었던 예를 들어서 여태껏 찍어왔던 작가들 굉장히 많으니까, 그런 자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사회적인 반대도 많이 하고. 그런데 오히려 그 이후로 댐은 건설이 안 되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더 많이 더 많이 망가지기 시작했
그런데 그런 작업들로 내놓기보다 지금 현대에 와서 지금 여기 와 계신 분들도 카메라 폰이나 아니면 디지털카메라나 이런 것들 많이 가지고들 계실 거
죠. 사실은 더 많이. 오히려 신문에 나오기 전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동강의 아름다운 비경들을 다 알고 있었는데, 유명해지기 시작하니까
예요. 이제 지금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이거든요. 인터넷도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고, 디지털 쪽도 굉장히 많이 갖고 있어요. 다른 나라보다.
망가지기 시작한 거죠. 여기 보시면 레프팅이라고 배를 타고 내려오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그 다음은 동강 위에서 본 거고. 다음. 이게 다리고, 동강 중간
그랬을 때 사실은 사진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그 행위가 어떻게 보면 똑같아요. 디지털로 찍으나, 아날로그로 찍으나 결국 결과물을 어떻게 아웃풋을 내
에 다리가 세워지는 건데. 끝에 보시면 부유물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재작년 장마에 이거보다 높이 물이 찼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마을이 거의 다 잠겼
놓는 거냐는 문제인데. 사실은 그것이 필름이 되었건 아니면 디지털로 되었건 제 개인적으로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시각적으로 남들한테
었던 거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한 1년이 지나서도 거의 치워지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요즘 동강에 가면 집들이 다 일층은 철재로 이렇게 높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여주느냐 이게 더 큰 문제지. 그랬을 때 지금 이 시점에서 저도 이제 작년에 디지털카메라를 새로 샀거든요. 그래서 지금 현재
올려놔 있어요. 장마 때문에 그런 거죠. 그전에 없던 건축 방식이 자연의 재해 때문에 새로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 제가 이제 한달에
그 쪽으로 작업할 건데. 아날로그와 그런 논쟁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제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사진을 흑백사진을 하고 프
한번씩 가는 게 목표인데, 그렇게 자주는 못 가고, 가다보면 갈 때마다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매일매일 변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저는 보면서 기록으
린트를 하고. 저도 뭐 그런 입장이었는데. 그런데 사진을 했던 사람들은 디지털은 좀 사진 같지 않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하고. 근데 사실 그것이 한 1년 사
로 남기는 거죠. 다음. 여기 가져온 건 다는 아니에요. 이건 아직 제가 개인전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가져왔습니다.
이에 굉장히 많이 발전을 했어요. 디지털 쪽이 그래서 한 1년 전만 해도 사진만 보고는 금방 알 수가 있었어요. 이것이 디지털프린트인지, 아니면 다른 아
다음. 이거는 북한강 쪽에서 강촌 부근인데. 혹시 북한강에 최북단이 어딘지 모르시죠. 북한강의 남한에 최북단이 평화의 댐이에요. 그러니까 북한강 위
날로그 프린트인지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구분할 수가 없어요. 거의 구분할 수가 없고. 그 문제는 재료를 화가들이 재료를 뭐로 쓰느냐. 유화
쪽으로 가다보면 춘천을 지나서 청평을 지나서, 춘천을 지나서 소양호를 지나 팔당호가 나오거든요. 팔당호의 가장 북단이 평화의 댐이에요. 아직도 건
로 그리느냐 아니면 뭐 먹으로 하느냐 뭐 이런 문제지 그것이 크게 문제될 거는 없다고 생각해요.
설이 되고 있어요. 거기는 그 저기 저 휴전선이죠. 바로 군인들이 바로 있고, 저도 몰랐었던 건데. 다니나 보니까 뭐 굉장히 의미가 남다르더라고요. 여기
그래서 작업실 찍은 거와 그리고 그 작가들, 물론 그런 생각들은 있었어요. 만약 저 분들이 만일에 오른쪽에 계신 분은 작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
까지 저의 앞으로 계속하는 작업들이고.
신 구본주 선생이신데, 물론 친분이 아주 친한 분은 아닌데. 만약 저 분이 계속 살아계셨다면 아마 제가 취재를 갔었을 거예요. 취재를 갔거나 아니면 다
그리고 여기 냈던 작업들은 사실 제가 조금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제 제 3자로서 월간미술에서 제가 사진을 하면서 작가들을 한달에도 새로
른 식으로든 작업실을 찍었을 건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살아생전에 찍은 사진은 없어요. 제 앞에 없어서 그 유족들에게 사진을 받아서 디지털로
운 작가들을 최소10명 이상은 만나요. 그리고 아틀리에를 그러니까 작업실을 제가 가서 보죠. 일반인들은 잘 못 보는 작업실을, 왜냐하면 작가들이 자기
합성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진은 작업실, 아틀리에 사진은 아날로그로 찍은 거고. 작업실은 디지털로 한 거죠. 그리고 보시면 조금 비율이 조금 틀려요.
작업실을 아주 친한 사람 아니고는 보여주지 않죠. 근데 저는 매일 봐요. 매일 보고, 예를 들면 가서 사진 찍고 물론 그건 월간미술에도 나오고, 그렇지 않
자세히 보면 언뜻 보면 잘 몰라요. 저것이 합성을 한 건지, 물론 이것이 시각 디자인 하신 분들, 컴퓨터로 작업하시는 분들에게는 별거 아닌 작업이에요.
은 부분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그 작업은 한 4년 되었으니까. 그러는 한 10년째 되었을 때 그 작업을 한 번 보이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서 계속 작업들을
이거 쉬운 작업인데. 단지 있는 사진에 작가의 사진을 붙인 건데. 그러니까 크게 기술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는 사진은 아니에요.
해오고 있어요. 근데 사실 그 여기 아틀리에라는 제목으로 하자고 했을 때, 사실 저는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작업이
근데 제가 의미를 둔 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이 시작된 거죠. 아마 4,5년 뒤에는 예를 들어서 아날로그는 되게 수공적인, 그러니까 작가들이 작업을
예를 들어서 사진계에서 그러니까 사진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시체말로 굉장히 후진 작업이에요. 그 작업을 젊은 사람들은 안 해요. 왜냐하면
하는 방법. 그리고 나머지는. 5년은 너무 짧고 한 10년 안으로 다 디지털 쪽으로 바뀌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런 작업을 새로, 그러
해봤자, 그러니까 별로 남의 눈에 띄는 작업은 아니니까. 작업실을 찍고 그 작가들을 찍고. 그 작가들의 어떤 초상사진을 찍고. 이런 것들은 굉장히 고전
니까 물론 예전에 했던 작업 내는 것보다 저런 것들을 한 번 실험해 본 거예요. 거기까지가 대강의 제 작업에 대한 얘기입니다.
적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런 작업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서 뭐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거죠.
김준기: 아까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말씀하셨는데, 결국 사진이라는 게 이미지를 저장하는 방식의 문제인 거 같은데.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간에 어떻게
뭐냐 하면 기록의 의미 이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왜냐하면 여러분들 대개 여기 오신 분들은 그림을 그리시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니까. 현대
저장하든 아웃풋은 비슷하게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공통점이 있다면 두 방식 다 렌즈를 통해서 사진작가의 눈과 렌즈를 투과한 이미지가 저장된다는 거
미술시장의 어떤 미술 판도들을 대부분 아실 거예요. 물론 뭐 저도 다니다 보니까 굉장히 사진도 외국에서는 굉장히 많이 팔리고 있고, 굉장히 비싼 값에
죠. 말씀하신대로, 큰 차이는 없을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렌즈 베이스트 아트' 그런 식으로 생각해도. 영화든, 심지어는 그 컴퓨터 자체도 렌즈의 곡가
팔리고 있거든요. 근데 그것은 고전적인, 사진이 처음 시작되고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사진들은 아니에요. 뭐 얼마 전에 작년에 국제에서 세라뇨 라는 작
를 자체로 가지고 있다고 해요. 렌즈의 원리를. 그리고 스캔 받는 거 있잖아요. 드럼 스캔이든, 평판 스캔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죄다 렌즈의 원리를 차용
가의 전시도 있었고, 작년에 사진전 굉장히 많았었죠. 그런데 물론 그런 사진들과 지금 어떻게 보면 옛날서부터 했던 제가 지금 작가의 아틀리에라는 작
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여담이 너무 길어졌네요. 그렇고, 그 류인, 구본주 작가 작업실을 갔을 때 느낌 같은 거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아니면 여러 작가
업들은 제가 앞으로 한 6년 동안 더 하고 전시를 할 건데. 사실은 차별이 되기는 하죠. 그리고 그것이 굉장히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거나 커다란 반
들에 비해서 저 조각가들의 작업실에 대한 다른 느낌들이 있었다거나. 왜 저 작가들을 택해서 작업했는지.
향을 일으킨다고 보지는 않아요.
박홍순: 그냥 뭐. 시쳇말로 천재는 일찍 가시는지, 아니면 신이 조물주가 시기를 해서 그런지. 어쨌거나 조각하시는 분들의 작업실은 굉장히 좀 달라요.
하지만 그런 작업들도 비근한 예로 미국 같은 경우도 그렇고, 일본 같은 경우도 사진의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사진의 흐름들도 여전히 있어요. 근데 우리
사실은 그러니까 조각하시는 분들은 노동의 힘으로, 자기의 노동의 힘으로 작업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지저분하기도 하고 정리가 좀 안 되어
나라는 조금 안타까운 게. 굉장히 역사도 짧고,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도. 제가 사진을 배웠던 선생님들이나 우리의 사진의 역사는 굉장히 중구난방이에
있죠. 그림 그리시는 분들하고 좀 다르게. 그리고 제가 주인이 없는 자리를 갔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고. 뭐냐 하면 주인이 없고 지금은 류인 선생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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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이 지금 아직 남아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기 유족들이 사실은 일반인들이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이나 아니면 관객들이 관심을 안 가지면 없어
멀어져 가는 건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사진은 뭐 쉽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물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현대미술 쪽 와서는 사진들은
지거든요. 왜냐하면 유족들이 계속 관리를 할 수도 없고. 그리고 힘들죠. 굉장히. 그랬을 때 언제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약간 지배적이었어요. 그
그렇지 않아요. 사실은 똑같이 어려운데. 물론 어려운 게 좋고 나쁘고, 뭐 쉬운 게 좋고 나쁘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 그건 어떤 기질의 문제인 거 같기도
래서 그리고 또 두 분의 글도 있는데, 두 분이 관계가 있었고 똑같은 조각을 하시는 분들이었고. 뭐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을 한 번 역어본 거예요. 같이 이
해요. 근데 이제 저는 그런 게 더 좋기 때문에, 명확한 게 더 좋기 때문에. 그런 사진들을 하는 거고. 물론 저도 예를 들어서 정신적인 것들이 어떤 물질적
렇게.
인 것보다, 다른 것들이 있으니까 물질적인 것도 있고 보이는 것도 있고 안 보이는 것도 있고. 안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건 해쳐가
김준기: 백두대간이나 한강 작업, 특히 한강 작업 같은 경우에 세월이 많이 쌓인 그런 작업이라고 하고. 아마 올해 전시를 하시면 반향이 좀 있을 거 같고,
야 할 미술 쪽에서도 해쳐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그러니까 점점 멀어 관객과 어려워지는 부분, 그런 생각을 매일 화가들을 만나고 얘기를 하면서 그런 것
특히 아까 말씀 중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사진가의 그 작업, 그 양 갈래 중에 하나가 예술성과 기록성 그런 건데. 저는 후자의 입장, 기록성이 훨씬
들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아마 제 작업은 또 그렇게.
탁월한 예술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이를 테면 이런 사진들은 기록으로서의 가치인데, 이것은 그 누구도 저 시점으로 돌아가
장석원: 아까 그 세라뇨 말씀 하셨잖아요. 국제에서 몇 년 전에 보니까 오줌 통 속에 예수십자가를 요렇게 집어넣어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우리는 사진을
서, 저기에서 저 장소에서 저 사람 앉혀놓고 저렇게 찍을 수 없는 기록성의 힘 같은 걸 가지고 있다 그거죠. 다큐멘터리로서의 힘 뭐 이런 점에서 아틀리
모르는데, 그 발상이 대단하더라고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단적으로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서, 단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비판하고, 대부분 종교
에 작업도 그렇고, 백두대간이나 한강이나 이런 작업들 계속 해 오시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성이라고 하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하기 쉬운 부분을, 그런 세라뇨가 그런 어법을 쓰기 때문에 아마 사진 기법이란 측면을 넘어서 사진을 통해서 뭔가 문
우리가 예를 들어서 화가 이 아틀리에 작업, 화가를 찍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요. 이거 있잖아요. 이거. 피카소 그랬을 때 이렇게 바라보는 거라든
화적인 비판 내지는 예술적인 창의성, 문제제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생각이 듭니다.
지, 이중섭 그랬을 때의 긴 머리, 담배 피는 모습, 이런 훌륭한 작가의 그 작가를 대표하는 이미지 같은 것이 강하게 각인되는 게 있어요. 이를 테면 그런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거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거거든요. 그냥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어떤
거 누가 남기냐면 사진가가 남겨 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래서 강우근 선생님이 찍은 장욱진 선생님 툇마루에 앉아 성냥 켜서 담뱃불 붙이는
작가나 어떤 대상을 가지고 그거를 찍어서 보여줘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서술이나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문제제기 하는 것을 만들
사진 같은 거 정말 보면 기가 막혀요. 이를 테면 그런 건 마스터피스, 명품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박선생님도 좋은 작가의 좋은 작업실,
어서 이슈로 만들어서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의 작가가 드물지 않을까 그리고 단순히 어렵다고 말할 수도 없고, 상당히 관심을 불러 모으는
이런 것도 좀 남겨주시길. 뭐 질문이나 논평 같은 거 하나 말씀해주시면.
작가거든요. 그건 어렵다거나 쉽다거나 그런 걸 떠나서 이 작가 역할에서 그런 작가들이 꽤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장석원: 뭐 슬라이드 흑백, 그건 아날로그죠? 그거랑 작가들 사진류나 아까 개인적으로 중광스님을 잘 알았었는데, 불자까지 찍은 사진 봐서 굉장히 반가
박홍순: 저도 예를 들어서 뭐 결국에 가서는 어떻게 소통시키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요즘에는 장르 구분은 없어졌잖아요. 예를 들어서
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진, 이게 백두대간 사진하고, 이거하고 굉장히 달라 보이는데. 제가 이건 직업상 찍은 거고, 이건 아마 작업상 좋아서 사진 작품
제가 서양화, 어떤 사람이, 어떤 화가가 서양화했다고 해서 그림만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뭐 조소과 나왔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어
을 해야 겠다는 의지를 갖고 하신 거 같은데.
떻게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느냐 그런 매체로서의 도구들이지, 그러니까 저는 그런 생각들을 해요. 제가 그 사진 어떤 구별을 짓는 그 자체가 사실은 별의
근데 그 슬라이드를 보여주시면, 뭔가 매년 갈 때마다 변화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고 하는 그거를 예술가나 스튜디오 사진에서도 역시 그때, 그 시간
미가 없는데 제가 이제 말씀드리는 거는 그니까 그게 세라뇨 같은 경우는 모르는 사람이 만약에 그 사람의 이력이나 그 사람의 살아왔던 환경들을 몰라
에 그 현장에서만 가질 수 있는 그런 기록성이랄까, 그것을 기억시키는 사진으로서 그런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아, 그리고 내가 알
도 사진만 보고도 굉장히 강하게 오는 힘들인 거죠,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런 거. 어떻게 보면 사진이 갖고 있는 큰 힘인지도 모르겠어요. 강력하면서.
기로는 늘 우리가 책을 보고 상상을 할 때 하고, 실제 거기 가서 느꼈을 때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카메라 렌즈로 기억시키고
장석원: 그러니까 사진작가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통찰력이 있는 거. 고걸로 사진을 이용해서 반응하고 있는 거죠. 아까 한선생님 말이 나는 통했다 이
확인시키고 하는 것이 사진에서 느껴집니다. 저희 같으면 이제 예술작품이라고 하면 굉장히 다양한 세계를 갖고 있고, 어떤 경우는 눈에 보이지 않은 가
렇게 말하는데. 허허. 거기에서 세라뇨 같은 문화 21세기랄까 20세기의 첨예한 문화적인 어떤 흐름, 굉장히 포괄적으로 보잖아요. 중심. 그런 사회적이랄
치가 도 있거든요. 눈에 보이는 가치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도 하고, 그때그때 얘기하는 가치관
까 예리하게 비판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않나.
도 뭐랄까 달라지고, 그런 것이 더 우선하는 우선 순위 같은 것도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그런 여러 가지 측면들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말하면 서로 방
김준기: 좋은 말씀들. 이제 막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된 거 같은데. '뒷 담화'라는 게 있죠. 허허. 나중에 얘기하는 거. 그래서 시간이 됐으니까 뒷 담화를 나
향은 많이 틀리지만, 그런 측면에 살고 있고, 살고 있진 않은가 하는.
눌 자리로 이동하셔서 말씀들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늘 장시간 동안 오셔서 말씀을 들어주시고, 함께 해주신 관람객 여러분들 정말 감사드리고요. 이 두
김준기: 예, 질문은 아니고 평론을 해주셨어요. 허허. 아까 한생곤 작가처럼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사는 게 다 그렇지, 허허. 이런 분위기에서 아주. 한생곤
분 작가에게도 감사의 박수 보내드리기 바랍니다.
작가님 이쪽으로 좀 자리 좀 해주시고. 자 이렇게 마무리 대화를 좀 같이 가지시고, 편하게 두 분 말씀도 좀 하시고. 일단 워낙 많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정담을 나누듯이 이렇게 진행되지는 않을 거 같고요. 여력이 닿으시는 분들은 이 대화 끝나고 나서 아마도 두 선생님도 그렇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실 거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들 이렇게 좀 어울리시고, 그리고 또 오늘 박홍순 선생님 같은 경우 대거 팬클럽을 동원하신 결과, 어디 꽃다발도 보이고 하는데요. 좀 있다가 꽃다발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허허. 그래서 팬클럽에 보답하는 모임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시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가시고. 저기 계속 돌아다니시잖아요. 백두대간이나 한강이나 작가의 작업실 뭐 이런 거 이런 것 중심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생곤: 힘드셨겠어요. 살아야 해. 김준기: 허허. 역시. 재밌겠죠? 참 재미있는 분이세요. 허허. 한생곤: 그 되게 이전에 어떤 중대부대가 산을 등반한 부대가 있었는데, 넌 사진을 한마디로 뭐라고 생각하니 그랬더니, 그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래 가지 고. 제일 긴 시간이 영겁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제일 짧은 시간은 '찰나'다. 그러면 그걸 찰나라고 한마디로 하면 어떨까, 그렇게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가장 우리들이 이 땅을 살면서 한 60년, 70년 정도 쪼개다보면 굉장히 많은 망점들처럼. 그런데 그렇게 많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중에 어떤 것을 남 길 것이냐. 그 문제가 제일 중요한 거 같고요. 박홍순: 저는 아까도 선생님 말씀 하셨듯이, 물론 보이는 거 말고 안 보이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그것들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 것이냐, 이런 문제에서 제 개인적으로 너무 어려워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현대미술 쪽은 제가 만일 관객의 입장이라면 너무 어려운 거야. 이게. 물론 보고 느끼는 대로 느낄 수도 있지만, 너무 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귀족화된 거는 아닌가. 그래서 갤러리라는 공간이 일반인들, 쉽게 접하고 그런 거에서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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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9: 드라마고
2004.02.11 수요일 pm.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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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예, 사회를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프로젝트 문제로 작업 이미지 관람이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드라마고 작가의 이야기를 바로 시작하도록 하
없는 현실에 빠져있는 것에 대해 불합리한 생각이 들어서 학교 외에 인사동 일대 세미나 등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돌아다니다 보니 더더욱 문제였던
겠습니다. 워낙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라 오늘의 작가와의 대화가 많이 기대되네요. 그럼, 드라마고 작가를 소개합니다.
것은 처음에 언급했던 인간 삶에서의 유통, 배급, 인터렉티브한 문제였던 거예요. 여기서 인터렉티브란 터치스크린 식의 인터렉티브 아트가 아니라 의사
드라마고: 예, 안녕하세요. 드라마고입니다. 음…….저는 말이 많아요. 술자리 토론회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개인의 의견에서부터 우리나라 미술계에 대
소통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거고. 인간은 언어를 통해 발달했고 언어적 성장과 함께 오늘날의 인문학의 위기시대-무책임한 언어세계-를 맞이했으며, 말
한 비판, 새로운 작업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쏟아내게 돼요. 이런 병에 걸린 건 아마도 그동안 미술을 생각하고, 미술을 접근해오면서 미술을 포기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는 이미지와 감각을 통해 발달했어요. 이제는 현장에서 체화되고, 그곳에서 이미지를 생산, 유통시키고 이미지적 방법, 에너지의 방법,
될 정도로 의견을 개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도대체 수업을 받고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 제가 생각하는 미술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른 것을 빌어서
만남과 대화의 방법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를 끌어내주는 역할이 중요해진 거예요. 그래서 예술가만이 이미지를 다루는 것이 아
설명하지 않고 순수하게 제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제가 오늘 사비나 미술관에 서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는 제가 말
니라 일상 사람들도 이 언어폭력시대에 자신이 갖고 있는 다른 문화적 특징들-에너지, 이미지 등-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했어
이 많기 때문이에요.
요.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대학 4학년이 되서 일상의 주변적 사건들에 대한 은폐와 의혹을 만들어 내는 사회 구조,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하면 실패한 인
일상 속에서 대화하는 사람들한테는 말을 많이 하면 안돼요. 저는 삶의 시간성들이 각각 나눠져 있다고 생각해요. 생활 속에서 어떤 친구는 말이 많고, 한
생이 될 거라는 사실에 대한 은폐, 작가라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지켜나가면서 암합 리에 미술계를 지탱하는 학력, 학벌 등을 은폐가 그것이에요.
친구는 말없이 가만히 있고, 한쪽은 주장만하고 한쪽은 듣기만하는 것은 일상 의사소통의 건강함이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이죠. 제가 말이 줄어들려면
미술을 지우지 않고서 도무지 저는 미술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제 친구들, 선후배들이 미술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어요.
사실은 누가 마이크를 주는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지역에 살아가시는 분들, 친구들 그리고 미술 이외에 생활 속에서 사회 복지, 노동운
미술을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미술이라는 사회가 살아온 역사를 아무도 같이 짊어지지 않겠다고 해요. 미술을 가지고 미술직업-회화를 하고 디자인을 한
동을 하시는 분들과 이야기해야 해요. 노동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노동운동을 하시는 영역에서 자기 의지와 주장을 하시고, 사회복지를 하시는 분들은 사
다던지-을 하지 않는 한 일상생활에서도 가족, 친구들과 만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도 포기하고 가는 거예요.
회복지의 영역에서 또 미술문화를 하시는 분들은 미술문화영역에서 어떻게 서로 연대되고 도움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 해요. 그러면 말이 많아지지 않
작가와의 대화 역시 저에게는 죄에요. 저는 개인작업을 하지 않고 그룹 활동을 하기 때문이죠. 저는 퍼포먼스 '반지하'라는 그룹 속에서 멤버들과 역학관
죠.
계, 즉 미술을 하는 친구 외에 음악, 영상, 무용을 하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맺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친구들에 대해 자세히 들어가면, 그들은 실제로
그런데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공통적으로 비판하는 점은 "미술이 너무 오만해졌다"는 것이에요. 미술계에서 미술을 이야기 하면 우리나
예술분야의 전공자들이 아니라 생활보장대상자, 장애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이에요. 이들의 삶의 조건 속에는 학교를 그만 두는 문제에서부터
라 미술은 80년대 현장미술에서 90년대 담론의 시대로 변화하거든요. 다시 역사를 재해석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있어서 수많은 이론들과
빈곤자의 문제, 장애인의 문제도 있는 거죠.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점검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에요. 그 시대에는 너무 쫓아가기 어려웠어요.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 시대의 미술이론에
저의 작업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예쁜 그림, 잘되어 있는 그림이 아니라, 예를 들면 제가 한 달에 두 번씩 운영비정도만 받고 인천 지역 활동 단체들이 필
대해 기존 화가들도 이제는 공부하지 않으면 미술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미술은 이야기의 시대, 논쟁의 시대, 재조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죠. 90
요로 하는 디자인으로, 컨셉 회의 등을 거쳐 나온 제대로 된 디자인 작업이 아니에요. 난잡하게 있는 행사나, 지역의 메시지, 인천지역에 관련된 반지하가
년대를 돌아보면 후회스러워요. 세상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는 미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여러 층위에 존재하거든요. 층위의
갖고 있는 텍스트나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제작하는 것이죠. 지역의 행사, 집들을 찍어 자료화하다보면 문화예술행사들이 요구하는 디자인에 맞는 텍스
높고 낮음은 합의의 단계를 거쳐 결론을 도출해내는 피라미드 과정에 따른 것이에요. 정치적인 층위는 높은 것이 아니라 위 방향으로의 과정이죠. 하위
트와 이미지 소스들을 찾아 하루 만에 디자인을 뽑아 낼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은 실로 놀라운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디자인이 예쁘
의 층위에서는 삶에 대한 이야기, 넓은 층위는 문화예술에 있어 사회 곳곳에 영향을 주는 디자인의 영역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요. 대중문화, 상품
진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 맞는 이미지, 메시지, 지역의 사진들, 동네 주변의 사진들을 담고 있는 소스들이 들어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들은 제가
곳곳에 디자인은 존재하며, 이에 대한 저항을 위해서도 디자인은 필요해요. 여러 가지 미술에 대한 논란 가운데에서도 세상의 다양한 층위와 범위 카테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이것은 어렵지 않고 일상적인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죠. 이런 식의 효과가 생기는 거예요.
고리에 적용이 되면서 '미술'이 사회의 소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인 것이죠.
(기존의)디자인에서 이러한 효과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거죠.
저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하나는 그동안 한국미술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에 대해서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 미술
마지막으로 '지역'이라고 하는 문제에요. 저는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났어요. 지역의 문제에 접근하려면 한 개인이 어떻게 지역과 만나야하는지 설명해
영역에서 쉽게 결과로써 정리되지 않은 부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의 이야기, 또 하나는 생활자로써 가져야 될 마인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밝
야 해요. 저는 왕십리에 살다가 강동구 마천동으로 이사를 가서 그 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락동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때는 자녀 셋이 학교를 다녀
혀야 될 입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요.
야 했기에 노동의 강도가 높아졌죠. 신체적 성숙과 육체적 성숙이 일어나면서 저 역시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는 쌀 한 가마니도 들
먼저 미술을 이야기할 때 저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어요. 여러분과 같은 일상의 한 사람으로써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해야 하는가도
정도였고, 오토바이를 타고 쌀 배달을 하기도 했어요. 이런 일상을 보내면서 자라온 저는 지금 미술 근처에 있게 되었죠. 저는 가족을 만나지 않은지 수년
고민이었어요. 대학시절에는 디자인 전공을 하였고, 동양화전공, 서양화전공으로 바꾸게 되었고. 저는 디자인을 할 때, 교수님으로부터 '이게 무슨 디자
이 되었어요.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활동을 할 수 없어요. 정치, 제도에 저항적인 세력들은 아버지를 '죽이지'않으면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인하
인이냐?'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한 예로, 교육에 관한 공익 광고 디자인 과제가 있었는데,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컬러 등의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되지
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자기 정체성, '내가 나인 것'을 확인하기 할 수 없다는 거죠.
않았으며 내용적으로도 미완성되었다는 이유로 욕을 먹기도 했죠. 그리고 인쇄라는 메커니즘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유통 될 수 없고, 저의 작품은 써먹을
저는 인천에서 학교를 나왔어요. 학교라는 울타리가 저와의 관계성에 있어서 제 가족만큼이나 죽여야 할 대상, 저항해야할 대상이라 생각했고요. 사회적
수 없다고 평했어요. 그 이유로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양화과로 과를 옮겼는데, 거기서 교수님들은 3학년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고 있었던 거
불균형이 만들어낸 피라미드의 억압구조, 계층 구조, 경쟁적 구조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데, 경쟁에서 에너지가 부족한 하위,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
예요. 저는 학원도 아닌 곳에서 데생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람들이 제도라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기가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비슷하게 살면 그 당시는 '제도, 아버지와 대화가 되니까 이
당시 저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작업을 했어요. 사진은 제 작업실 근처에 있는 인천 중구 지역을 담은 것이었죠.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
정도는 만족할 수 있다…….'라는 것이 한 순간에 깨지는 거예요.
고, 친구 집에 얹혀사는 시기였어요. 주변의 집들은 제가 알고 있는 서울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어요. 일단 주택의 나이가 꽤 오래되었는데 짧으면
제가 99년 졸업할 때, 제 친구들도 굉장한 당혹감을 느꼈어요. 회화를 전공한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전시장 미술에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대학원에
2,30년에서 길면 4,50에 이르렀고, 이 주택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거예요. 가난해보이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지역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담
진학한 친구들도 또 다시 이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제가 속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거
았죠. 이러한 사진을 찍어서 나름대로 동양화를 하려고 맡겼더니, 옆에서 데생을 봐주시던 교수님은 그것이 동양화가 아니라며, 동양화의 여백, 먹선에
죠.
대한 공부를 하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동양화를 그만두고 서양화로 갔죠. 서양화로 갔더니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더 큰 문제가 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한쪽에는 개인의 역사, 삶이 있는 것이고 한쪽엔 제도라는 것이 있을 때, 크게 글로벌리
었던 거예요. 한국 사회의 학부에서는 예술사나 미학이 아니라 작업과 관련된 매시간의 크리틱 시간이 엄청났어요.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고, 넓어진 예
즘을 시작하여 개인적인 문제에까지 그 중간에 있어야 하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식 할 수 있어요. 커다란 제도 속에서 미술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
술의 영역만큼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하러 온 친구들도 많았죠. 교수님들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준비하는 게 아니라 매시간 진행되는 이야기 중
구는 순간적인 착각을 하게 돼요. 학교라는 제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미술에 대해 논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제도와의
에 말씀하시는 형식이었어요. 학교라는 테두리에서 전 세계적인 미술사적인 논의를 하면서 결국 졸업을 하면 졸업생 50여 명 중에 한 명도 작가가 될 수
고리가 끊기면 버려져서 당황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 사람이 다른 장치에 관한 이해가 생기면 훨씬 상처를 덜 받고 미술인구가 많아져도 각자 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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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기는 게 되는 거예요. 그중 하나가 '지역'이라는 거죠.
까부실 수 있는 정도의, 그러니까 제도판이 잘못 됐으면 제도개혁을 하지 않으면, 그런데 이 제도개혁을 위해 제도를 발판으로 제도 싸움을 하면 사실 웃
서울에서는 지역이라는 것을 찾기 힘들어요. 서울은 중앙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각 지역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천의 경우,
기는 짓이야. 아까 애기했듯이 비평의 계층이 작업가와 그 생활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왜곡된 구조가 생기듯이, 미술도 왜 피카소 얘기를 하고 그 사
나 개인도 사회에서 매장당할 삶을 살 뻔하다가-내 친구들처럼 사회현실에 전사하면서 살아갈 뻔하다가- 인천에서 그 친구들과 모여서 일을 하게 된 거
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보세요.
예요. 나는 예술가라기보다 활동가에요. 활동가에 대해 정의하자면, 인천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삶의 조건이 불리한 사람이 인천에 살다가 어느 순간 '처
김준기: 아니,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봅시다. 아니 그럼 마고씨는 왜 제도권인 사비나 미술관에 와서 서울에 와서 전시를 하셨어요? 그런 이율배반이 어
지'에 관해 깨달은 거예요. 즉 인천이라는 역사 속에서는 인천에 살고 있는 상당 부분이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인천은 현재 인구의
디 있어요?
50%밖에 없었던 조그만 항구 도시였어요. 간척사업을 하고, 60년대 경인 공업지역을 건설하였고 현재 인천 땅의 6~70%는 실제 갯벌이었던 땅이에요.
드라마고: 예, 이율배반이에요. 근데 제가 요즘 제도판을 자주 만나느라고 독서를 안 하고 있어요. 그 독서는 최근에 미술인의 회의에서 준비한 토론을 준
공장을 짓기 위해 간척한 이 땅은 전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으로 수도권에서는 가장 중압적인 곳으로 거듭난 것이죠. 지금도
비하면서 많이 깨졌어요. 전시만 두고 가는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영향을 주고 한사람의 나비효과……. 그리고 글 쓰실 게 있으실 텐데 제
인천의 문제에 대해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인천 땅의 50%가 공장이라는 것을 몰라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일을 볼 뿐, 이것에 대해 모르는
도 특히 왜 미술인의 회의가 나쁘냐면, 저희 그것 때문에 며칠째 지역에서 난리가 났거든요? 포괄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미술인의 회의가 지역문제를 다
거죠. 사람들은 쾌적한 삶을 살기 위해 인천으로 오지 않아요.
룰 때 반드시 지역이 현장이라는 존중, 그리고 거기에 있는 활동가들 뿐 만 아니라 지역민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를 가지지 않고 서울에서 사례발표를 해
학교를 떠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대안지역에서의 미술활동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다보니 제도적인 미술의 논의 속에서는 '난 반드시 전사한다.'
버린다던지, 서울 쪽 루머로 이해한다 해버리던지 그러면 미술인의 회의는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미술인의회의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모
고 생각했어요. 미술만 놓고 봤을 때, 그 친구들이 삶을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 미술이 그렇게 위대한가? 미술이 제도
르는 부분에 대해서 정의하려고 하고 제도와의 싸움이라고 한다면 지역이나 민중들은 버려지게 되거든요. 저만의 주장이 아니에요.
를 만들만큼 위대한가? 미술이 제도를 만들어서 사람의 삶을 경쟁체계 속에서 결정지을 만큼 위대한가? 그렇지 않거든요. 이거 한 가지는 제가 욕을 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의 구분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제도에 있다고 해서 지역에 있는 어떤 선배가 '너 맨 날 떨어지고 나서 어, 서울은 전시하
고 넘어간다면, 한마디로 '좆까라 씨발!'이죠.
네? 너 나중에 봤더니 사비나 유료더라?'. 저는 유료인지 몰랐어요. 몰랐고요. 지역 활동가들이 서울을 버리고 가는 현상 때문에 사실 지역 활동가들에
미술은 그럴만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아요. 왜 이런 현상이 생기냐면, 사회 체계라고 하는 것에서 제도를 끌고 가야만 하는 현대 자본주의…….그런데 그
대한 짜증도 나고요. 그러니까 너무 자기 식을 설파하다보니까 점점 더 에너지가 떨어지고 빈곤해져가지고 파산할 지경이에요, 지금. 노동운동을 한다면
정치가 사람들을 합의하고 하는 게 아니라 자본의 가치, 경쟁을 통해서 어떤 꼭짓점은 자본을 축적하고 어떤 꼭짓점의 나라는 다른 나라를 마음대로 구
노동운동의 역사만 자꾸 얘기하면서 새로운 민중을 만나고 노동자를 만나는 활동을 잘 못해요. 기반도 약하고 돈도 없고요. 그런데 그걸 지키려고 고집
워버리고 그럴 수 있는, 이 전 지구적인 사회실패에요. 그것은 인간들이 영혼적이고 에너지적인 이런 것들이 아닌 언어를 통해서 자신을 가리고 이웃을
을 부리니까 자꾸 말라가는 거예요, 여위어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도판은 더러워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그 중간역할을 하는 단체를 하고
가리고 언어적 합의를 통해서 자본을 만들어 내고 실제로 거기서 생기는 노동력이라든지, 사고력, 문화는 활용이 못돼요. 공장처럼. 그럼 빌 게이츠 같은
있어요. 저희는 연구 활동을 하구요, 비평도 쓰고요, 근데 돈 안받아요. 돈 안 받고요. 근데 제가 미술가라고 얘기 안 해요. 그냥 말장난으로 고문이나 비
사람 빼놓고 나서, 특히 우리나라 심한데 노동자들을 천민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왜 천민이냐면 천민을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말자체도 문제가
평가. 그리고 제 지역에서도 그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민과 만나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완벽하게 현지 활동을 하는 옛날 빈민운동을 하시는 분들
있는 거예요. 욕지거리 같은 말이죠. 누가 천민이냐? 너희가 우리를 천민 취급하는데 아무리 역사적으로 봐도 니들은 그만한 권력과 제도를 가질만한 못
이 있습니다. 빈곤자들의 지역에 가서 그들과 10년 20년 살아야 구민운동을 한다, 그러나 저희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그렇게 하구서 망해서 다시
한 사람들이 그것 갖고 나머지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개미떼처럼 몰려있고 인천 공장에선 하루에 8시간 10시간 12시간씩 좆 빠지게 막 하고 있고 가난한
빈민들은 아파트 건설에 보상금 준다, 활동하는 지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거든요. 다만 한 사람으로써 한
청소년들은 인천에서 학교를 3000명 식 그만두고 있어요. 인천에 강화도에 국제공고라는 이상한 특수 고등학교. 농어촌 출신자와 해외 유학출신자를 동
단체로서 인간이 회복해야 될 가치들에 대한 지악할 부분이 있다면 그게 미술인거죠. 때로는 서울에 가서 전시를 하든, 비판을 받든 지역단체에서 너희
시에 뽑는 이상한 학교, 이상하죠? 이 학교 때도 일년에 천 명씩 학교를 그만 두는데 이 친구들이 다닐만한 학교가 없어요. 이 친구들은 생계도 감당해야
가 빈곤자들과 활동하면서 너희가 빈민이냐 이런 논란을 만나던 저희는 갈 거예요. 그거는 무단히 고집스러워서 가는 게 아니라 제도와 싸우고 인류와
되고 학교도 다녀야 되고 문화도 누려야 되는데 어느 누구도 문화도 누리고 공부도 할 수 있는 학교를 지금껏 서울에 열 몇 개, 전국에 백여 개의 대학이
함께 하는 구조로 갈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기는 동안 우선은 아직 안나오고 있는 게 바로 인천지역의 현실이고요.
그런 활동을 통해서 저희가 또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보니까 좋아진 점은 여러 사람들이랑 그런 얘길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거예요. 근데 그런 기회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하는데요. 지역이라는 부분을 저의 대화에서 끌고 왔어요. 왜냐면 현장이라는 말도 있고 실천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다 같
가 저희 입장에서 확실하거든요? 저 월급걱정 안하시고 자기 명성 좀 버리겠다고 생각하시면 미술하시는 분 중에 할 분이 엄청나게 많아요. 교사 같은 경
이 가야하는 계급이에요. 같이 가야해요. 현장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지역이라는 개념을 왜 얘길 하냐면 가까이 있으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내가 미술
우에는 학교에 가야 교사가 된다는 생각을 버리면 미술교육을 할 데가 얼마든지 있다는 거죠. 그죠? 전시할 때 인사동을 개인적으로 버리면 전시할 데가
을 하고 싶은데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미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미술관을 찾아서 이사도 가야하고 미술작가도 돼야해. 그게 좀 이상하죠? 그거를 이
엄청나게 많아요. 이해가 가시죠? 그런 거들을 좀 버리고 가면 다양한 활동의 미술문화활동가들, 자기가 작가가 아니라 지역적 문제의 화두와 연결시키
사람한테 안 물어보고 멀리가. 차비내야하고 등록금 내야하고 밥값도 내야하고. 그죠? 그런데 사실은 제 생각에 왜 서양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역사적 특
면 우리 스스로가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사회적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고 개입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예술적 형태, 개념미술이란 말장난, 죄송합니다, 원
수성을 갖고 잇는데 왜 우리나라는 서양미술사책이 그렇게 많이 팔려요. 그담엔 보통 철학적 배경을 이론가들이 공부하는 건데, 왜 작가들이 그런 논란
래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어느 정도 개념미술이란 게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들은 백퍼센트 제가 봤을 땐 진짜 좆같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이유가 있겠
에 휩싸여야 되요? 이게 제 개인적 얘기가 아니라 여러분들도 공감하실 거예요. 비평이란 것은 민중들을 학습시키는 거고, 글을 통해서 이해시키고 역사
죠. 그쪽엔 근거가 있는데 여기는 없단 말이죠. 겉에 건 먼저 들어왔단 말이죠. 1960년대부터 아방가르드그룹이 있을 때부터 이상스럽게 들어왔거든요.
적 문헌을 정리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부분적으로 보충시켜주고 작가가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을 이해시키고 설득해내는 거예요. 왜냐면 작가는 작업을 열
김준기: 잠깐만요! 이 대목에서부터 드라마고의 미술사시간입니다.(웃음) 자, 인천에 있는 대학을 나와서 인천에 있는 사람들과 인천의 풍물, 이런 것들에
심히 하니까 역사적인 거나 주변의 것을 잘 못 볼 수도 있어요. 자기일은 작업하는 거니까. 그럼 이론가가 다른 입장에서 이야길 친절하게 해주는 거예요.
대해서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요. 이 사람은 인천에 사는 미술생산자로서의 자격이 있는 거예요. 서울에 와서 어디 살면 어떤 얘기 할지 모르지만 인
관객들에게도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말해 주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의 입장에선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작가에게는 야, 너 이 작업하는데 좋은 생각
천에 관한한. 그래서 이런 로컬리티에 관한 관심이 사실은 인사동이라고 하는 제도화된 공간에서의 방식들보다 훨씬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이 있는데 이거 챙겨야 되는데 이거 빠졌어. 하면서 갖다 보여주는 비평가의 역할인데 지금은 비평의 상위개념수준으로 올라온 부분들이 간혹 있고, 그
런 점은 얼마 전에 이동기 화가님, 암튼 전시장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 분들과 논쟁적으로 그런 것들에 대한 관계를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
너무 거리가 떨어지다 보니까 작가는 비평가들과 대화하려면 쫓아가야 돼요. 그래서 그런 거 말고 인천의 저희 반지하는 인천의 순화에 관한 문화활동을
고 그, 아트컨설팅 서울의 김연주 선생님 같은 경우에 에이씨에스가 하는 일이 공공미술 이런 거예요. 그런데 제도화된 영역의 공공미술이고 제도시스템
하고 있어요. 지역의 사진을 기록해서 이 기록물을 공공적 활동에 얼마든지 공유하고 쓸 수 있는, 돈 받고 쓰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그래
을 이용해서 공공미술을 하겠단 사람이에요. 그랬을 때 아주 야생적인 방식으로 미술의 공공성을 부르짖고 있는 드라마고의 경우 어떤 짓거리를 하는
서 초상권침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집을 짓고, 그런 과정에서 출발한 부분이구요. 현재 활동은 지역의 인권영화제라든지, 노동문화제라든지
지, 왜 그가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이것이 '이율배반적이다'라고 스스로 제도권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보에 비해서 이율배반
저희 아트프로젝트에서 재개발 지역에 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 출판프로그램 등이 있죠.
적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일단 한번 들어보고 그다음에 질문들을 받겠습니다.
그 다음에 서울활동에서는 장애인프로그램 이런 것들을 하면서 거기서의 메시지는 자신의 이야기, 자기 동네의 이야기가 기존 제도적 미술도 공격해서
드라마고: 대화를 하면서 느꼈는데요, 그 미래의 정보를 찾아보고 수업하고 대화하고 이란게 다 똑같은 게 정보가 없이 판단한다는 게 참 힘들거든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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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를 실시간으로 보여 준다는 게 사실은 그 다른 이야기들을 같이 하기가 어려워서 어려운 점이 있는데요. 저희가 하는 활동, 아까 이론으로 말씀드린 여
죠.
러 가지 중에 그중에 하나가 지역과 현장의 의민데, 미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에서 함께 가는 문화적인 행동들이 어떤 거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김준기: 송운동 프로젝트는 재원이 어느 정도 규모였어요?
출발점은 여기 책자가 있어요, 죄송합니다만 이 책이 제가 소개를 하면서 나눠드릴 수가 없는 게 지역주민하고 다 나눠가져서 남은 게 이거밖에 없거든
드라마고: 과정적 프로세스는 재원이 한달에 지역 사업 활동비 4만원 받는……. 나머지 책 구성하고 축제비, 마을 축제비용은 저희가 너무 어렵고 프린트
요.
해서 책을 묶으려고 그랬는데, 사회적 환급력에 너무 미약한거 아니냐 해서 민간후원단체가 있거든요. 소외된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단첸데, 그 기금운동
관객: 저도 지역주민인데 주시면 안돼요?
을 하는 단체거든요. 사회가 얼마나 복잡하냐면, 그 공공모금에 들어오신 분 있으세요? 거대한 단체가 있는데 일년에 운영하는 예산이 몇 백억 정도가 된
드라마고: 예 그럼…….
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규모가 크다보니까 이 예산을 어떻게 지역에 정확한 곳에 타계적으로 지원하느냐를 결정 못하는 거예요. 너무 등치가 커
김준기: 지역주민이라고요?
서요. 이런 데 반감을 갖고 낱낱이 기금들을 아주 소중하게 모아서 정확한 부분에 정확하게 쓰여서 사회적 대안을 만들려고 하는 단체가 있어요. 그 단체
관객: 예, 공감하고 들었어요.
에다 신청을 했고 지역연장활동을 통해서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600만원을 지원한다고 해서, 초기 과정이 아니라 마지막 마을 축제과정, 작가 출판과
드라마고: 인천주민하고 이런 얘길 하면 공감을 하는데 이런 얘기의 출발점을 만드는 게 참 어려운거거든요. 얘기의 출발점을 만든다는데 있어서 얘기를
정만…….
꺼내는 게 출발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거 컴퓨터대로 제가 아까 편집을 못했고 컴퓨터 세팅상태가 임의대로 깔려있지 않아서 준비상황이 어렵기 때
김준기: 그랬을 때 돈이 600이면 사비나 미술관에 이 전시가 문예진흥기금 1500을 받았거든요.
문에 보는데 적절치 않으실 것 같거든요. 좀 시도해보다가 불편하면 자료를 보면서 얘기를 그냥 하죠. 그담에 미리 준비되지 않으신 분들은 저의 홈페이
드라마고: 저희는 이 전시를 몇 개는 하죠.
지가 있거든요. 추후에 홈페이지를 확인해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준기: 그 돈이면?
그럼 그냥 자료 보면서 설명 드릴게요. 이 책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게 만드는데 친구들이 팔아먹어가지고, 팔아먹는 건 아니지만 잘사는데 도움이 되면
드라마고: 예, 그 돈이면요.
좋겠다 싶은데 서울에서 얘기하면 노동이 되더라고요. 소나무 숲이라는 거예요. 책이 참 촌스럽죠? 표지 때문에 욕을 참 많이 먹었는데 이 동네는 송림동
김준기: 딴 데로 갑시다. 최근의 문예진흥기금의 상태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약 3분 50초에 거쳐서 짧게.
이라는 이름에서 소나무 숲이 돼야 정상인 동네에요. 옛날에 소나무 숲이었대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기계공장노동자들이 소나무 몇 개를 치고 집을 지
드라마고: 그러면 조정을 해야 해요. 자료에 공감이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지나가거든요? 그냥 거두절미하구 나중에
어서 소나무들이 사라지는 역사가 시작된 거예요. 지금은 동네에 소나무가 한그루도 없어요. 이제는 소나무라는 것은 동네이름으로만 남아있지 거기에
홈페이지를 통해서 얘기하던지 하고 그냥 여기서 현장을 만들어버리는 걸로 하죠. 이거 이친구들 얘기에 하면 좋지만 다 인터넷 자료를 충실히 올리려고
있던 나무들은 다 사라졌거든요. 뒤에 있는 소나무 숲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서 그냥 하나 차용해다 썼습니다. 작품 같은 걸 갖다 쓰면 저작권 문제가 있기
요. 저희 홈페이지 컨텐츠도 저희가 다 만드는데 노력 많이 하거든요. 게시판을 어떻게 배치 하냐에 따라 컨텐츠가 되려고 하니까, 고급기술이 아니라, 한
때문에 저작권이 없는 것을 가지고, 이 앞에 있는 친구들이 송림동 나눔의 집 친구들이에요. 저희는 송림동 나눔의 집이라는 거점이 반이라 일반 숨어있
번 살펴 봐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냐면 딴 데서 얘기를 해놓으면 은근슬쩍 보게 되잖아요. 근데 안 보시더라고요. 결국에는 여기 오는 게 에너지의
는 청년들을 찾고 싶었는데 어려움이 많아요. 그렇게 찾는 데에는 그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퍼서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그 직접적 만남, 직접적
손실을 가져오는…….그래서 지역에서 지금 거의 일주일이 넘도록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구요, 미술인 회의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대화, 직접적 관계가 필요한데 저희가 사무실을 인천 서구 가정동이라는 곳에 있고 송림동이라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역사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눔의
김준기: 아 잠깐만, 미술인의 회의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집 친구들을 다 알지 못하고 어려움이 있어서 나눔의 집 친구들과 같이 있고요. 이 나눔의 집의 모토는 빈곤의 세습을 막는다는 거예요. 근데 못 막고 있
드라마고: 예. 지난번 토론회도 그렇고 현재 인천 남구의 청소년 미디어 축제하고 관련돼서 일부 영역을 지역의 사람들과 지역의 문제를 토론하는 게 바
어요.
람직하다고 보는데, 그 팀이 미술인 회의 일곱 분하고 지역민이 배제된 분들하고 협의했거든요. 저희 입장에서는 지역민들에게 설명을 드려야 하기 때문
그래서 대충 보면 이 칼라사진에서 이 동네거든요? 이 동네! 지역주민이 찍어 놓으신 사진인데 아주 놀라운 사진이죠. 맨 처음에는 동네 역사를 실제 기
에 여러 가지로 드렸는데도 접근이 안 되는 거예요.
록해온 주민이 있을까 보통 역사는 역사가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반공소에서 하잖아요. 근데 아주,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건요 지역의 역사를 사진으
김준기: 그러면 그 얘기는 논점은 안 되는 것 같네요. 왜냐면 그건 미술인의 회의라는 단체차원에서 전혀 논의된바가 없기 때문에. 그냥 사적으로 개입된
로 기록해온 사람이 무려 한명이 아니라 세 명을 만났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의 받는 충격은, 왜 그런데 문화예술은 이렇게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일까. 여
몇몇 사람들만 그런 것 같은데. 그것보다 아까 문예진흥기금 문제부터 얘길 해서 풀어봅시다. 관객분들은 미술인의 회의에 대해 자세히 모르시니까요.
기 작은 사진. 이게 다른 측면에서 본 송림동이에요. 여기에는 인천의 동구라는 지역이구요 ,여기는 그 저의 부인되시는 분이 오늘 안 오셨는데요, 혼인신
드라마고: 아뇨. 죄송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요, 제가 오늘 마음을 먹고 왔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게요, 그거보다 한 단계 미술인의 회의 정치와 영
고를 안 한 사실혼 관계에 계시는 부인이신데요, 이 지역에서의 개인적인 출발은 빈곤이나 역사나 미술과 상관이 없어요.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이 여기
향에 많은 것이 공공미술문화 토론회가 지난주에 있었어요. 저희가 그 사인발표회를 하고 공공문화위원장 정현석씨를 여러 번 만났었고 저희가 얘기하
살아요.(웃음) 그런데 그 애인한테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내가 뭐라 그랬냐면 당신과 관련된 활동을 하겠다. 나중에 또 만난 적이 있어요. 만났는데 존댓말
려고 하는 것을 처음부터 질문지를 보내서 의도대로 얘기하도록 제안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입장에서는 지역의 문제 얘기가 안 되어 있는 거니
서로 쓰면서 공공적 활동에 대해서 토의 몇 시간하고 헤어졌거든요 그리고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예를 들어, 인천 용현동에서 여기까지
까 바닥부터 얘기해야 되는 데, 의도적 질문이 여러 번 나와서 나중에는 제가 토론회에 안가겠다고 했어요. 예의에도 벗어난 데다 자유성을 안주는데다
가는 동안에 남구, 중구, 동구를 거쳐 가게 되거든요 옛날의 시가지들을 지나치게 되요 그런데 그냥 무심코 봤던 것들이 나중에 사고의 전환이 생기면서
가 당신들 목적성을 부각시키는 거예요. 답사를 내려왔는데 홈페이지 상에는 2차 답사까지 되어 있는데, 1차 밖에 안 왔어요. 1차 왔을 때도 지역의 여러
다 중요한 삶의 근거들을 해주는 과정 같은 건데, 음 다른 멤버들은 저랑 같이 사는 부부는 영상미디어 활동가와 장애여성운동을 하다가 만나게 됐거든
가지 문제를 얘기하는데 정연석씨가 '마고씨는 오래된 것에 향수가 많나봐요?'식의 얘기를 했거든요. 사실은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에요. 보통 동양화가
요. 그래서 장애여성 운동을 할 때 장애인들을 위한 예술극장에서 만나서 된 건데, 그분이 인천에 내려오면서 저희가 반지하를 결성하게 됐어요.
들이 작업실이나 집에서 그리고 인사동에 갖다 놓거든요? 이것은 그쪽으로 다시 가야 돼요. 현장이란 그런 거예요. 현장에서 나온 것은 다시 현장으로 가
멤버모집들을 인터넷상에서 했고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퍼포먼스를 하다가 나중에 사회적 예술을 하는 게 원래 목적이었으니까
줘야지 그걸 가지고 서울을 올라오면 안 되는 거예요.
하게 됐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어떤 연기 지향적이냐면 직장 월급 50만원밖에 안주는 직장에서 청소년 교육이나 문화활동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
반지하가 프랜시스로부터 반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요. 재작년에 전화가 왔어요. 문예진흥기금을 반지하에 내고 싶다고요. '저희는 당신을 만난적도 없고
을 했는데, 제도적인 운영에 넘어가면서 다 해고당하고 이런 일들이 있었고요. 또 문화연대 송수현씨라고 하는 분과 사업을 여러 개 같이 했는데 지금은
무슨 기금을 내자고 파트너를 하자고 합니까, 못 합니다'고 했더니 여러 가지로 얘길 하는 거예요. 딱 한 가지 루트는 워크인성이라는 문화연대의 프로그
문화연대와 적대시하는 관계로 바뀌었거든요. 왜냐면 제도적인 발을 디디고 추진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데, 그런데 송수현씨라는 활동가가 있
램 사례발표 때 저희는 그 때 프랜시스 작업보고 굉장히 놀랬던 게 폐허가 된 재개발지역에 가서 뭐하는 줄 알아요? 망가진 공장에 가서 버려진 물건을
어요. 이분되게 놀라운 분이거든요. 그 안에서 자기의 굉장한 노동력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서울에 있으면서도 지역민들을 만나는 끊임없는 디자인하고
부셔버리고 다시 찢어버리는 영상을 찍어서 작품이라고 내놓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개념적으로 뭔가 하는 거라고 이해할지모르지만 저의 입장에서 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서 논의하고 그러고 있어요. 그분의 제안을 통해서 인천에서 몇 가지 프로그램도 같이 하고 있어요. 그분이 아주 약간의 자원을 만
같은 짓거리거든요? 그걸 작품이라고 자막 넣고 어디 외국 미술제에서 발표했던 작품이라고 떠들고 있는데 그건 아마 그 뒤의 일이였을 거예요. 전화가
들어서 써포트 해준다거나 저희는 돈을 받는 목적으로 사업을 하질 않거든요.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고…….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빈곤하다고 볼 수 있
왔는데 정연석씨 만나기 전에. 그래서 제가 기획안 보내주십시오 그랬더니 한 페이지짜리 메모 같은 기획안을 보내주는 거예요. '그거 가지고 어떻게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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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안됩니다.'고 했죠. 또 전화가 왔어요. 저희는 프로의 근처에 있는 사람을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프랜시스는 약간 근처에 있는 거 같아요. '당신들
토의와 진행, 끝난 후 다큐멘터리를 진행하고 또 10회 이상의 토론을 해요. 토론은 하루 종일 진행되는데, 저는 독일어를 잘 못하지만, 그들의 끝없는 토
믿을 순 없는데 같이 하자면 같이 해야 될 일이긴 한 것 같다. 그러니까 기획안을 과정중심의 프로세스적인 전시를 하고 발표회를 한다든지가 아니라 토
론의 힘은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4일 동안 토론을 하면, 멍해져요. 중요한 것은 제도화된 상태에서 우리가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이전
의하고 같이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기획을 잡는다면 같이 할 수 있다'라고 그렇게 합의를 봤거든요, 전화상으로. 그렇게 제출이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원래
에 누가 프로젝트/다큐멘터리를 진행했다면 그에 대한 데이터를 손쉽게 구할 수 있어요. 모든 데이터화는 투명성을 갖고 있죠.
목적했던 1000만 원 이상이 안 되고 그래서 접게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됐거든요? 저희한테 연락 한번도 안 왔어요. 그건 명백한 사기 맞죠? 그런 사람이
이와 더불어 좋았던 것은 미술이라는 것이 독일의 경우, 박물관의 종류가 정말 다양해요. 이런 박물관은 한국처럼 제도의 상징이라는 박물관 개념과 사
인천에 공공미술 발표한다고 인천에 내려온다고 해서 꾹 참았어요. 아, 선입견을 갖지 말자. 그리고 같이 밥 먹고 지역답사가고 올라갔는데 그런 얘길 한
뭇 다르다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느낀 것은 미술이 보다 현장성, 지역성을 가지고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죠. 제가 회화를 전공하고
거에요. '아, 마고씨도 오래된 것에 향수가 많나봐요?'그러면서……. 빈민지역에 가서 하는 말이 '저도 재개발지역에서 저거 해봐서 좀 아는데요.' 이런
대학에 있으면서 너무나 충격을 받아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공공미술이라는 것이 축제로 다가갈 것인지, 역사적인 맥락, 지역 발전적인 것, 낙
식으로 얘길 하는 거예요. 그 빈민단체는 실패한 입장이라 굉장히 괴로워하는 입장인데 그러고 나서 서울에 와서 토론을 했더니 질문지도 그렇게 보내는
후된 것의 발전으로 다갈 갈 것인지 편협하거나 단순하지 않고 방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저는 반지하라는 팀이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데다 어떻게 또 안한다고 했다가 사회자와 약속 때문에 올라와서 발표를 했는데, 결론을 어떻게 내렸냐면 결국은 공공적 활동은 제도적공공과 만나지 않
저는 플라잉 시티정도만 알고 있었고,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미술이라고 하면 예전의 색깔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으면 안 된다, 아니면 제도적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자꾸 개인의 삶을 조작적으로 하는 것도 기분
저는 그래서 그렇지 않은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대로 보게 된 거죠. 이것(공공미술)이 정말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감히 말
나쁜 데다 저희가 그것을 구분 못하는 사회적 운동을 더 많이 할 거에요. 그런데 사회적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깝죽거리면 이것은 단순히 주먹싸움 문
하건대, 앞으로 미술의 가장 큰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기존의 미술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기존의 미술관과 공존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아니라 아까 말씀드렸던 듯이 다 여위어가고 있단 말이에요.
김준기: 김연주씨는 ACS라는 곳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미술의 공공성을 찾겠다고 하는데 살림살이는 괜찮으세요?
어제 피디수첩 보셨나요? 파워펠리스 옆에 역사로 연결됐다는 것을 피디수첩 팀이 굉장히 중요한 것을 했거든요. 다른 지역도 다 그런 식이에요. 다른 빈
김연주: 살림살이는 어려워지고 있죠. 아마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은 플라잉시티와 마고 선생님의 중간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은 마고 선생님과 같
민가도 다 집짓고 사는 사람들 반이 조직적으로 국가에서 빈민들을 내돌리기 식, 강제 이주한 역사가 계속 있어요. 그럼 지금 우리가 빈곤해지지 않고 그
은 프로젝트와 같지만, 영리회사라는 이유로 중간자적 역할만을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저희가 하는 일은 이런 작업, 예를 들어 전시기획을 할 때, 보통
렇다고 프랜시스같이 이런 좁은 시각으로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이 미술을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어떻게든지 미술인이 회의가 정책적 싸움에 도움이 되
사람들이 즐겁게 참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행사에 꼭 참가해요. 어떤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작가들이 전시를 함과 동시에, 아
는 자료를 확보하기위한 노력은 이해를 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삶의 태도 이야기를 꺼내는 태도에 있어서 그런 식의 태도를 내가 한번도 얘길 안 할라
이들이 그림을 직접 그리는 등 일반사람들이 행사에 꼭 참석해요.
고 그랬는데 그 토론회도 그렇고요.
김준기: 참고로 ACS대표 박삼철은 훌륭한 사람이에요. 주민참여형 프로젝트로 "십만의 꿈"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파주의 비닐하우스에 공간구성
그렇게 영향을 줘가지고 지역미디어 운동을 하시는 모임이 있어요. 어려운 상태에서 저희가 미리 준비를 해오고 있었어요. 퍼블릭 에센스도 재정적 퍼블
을 하고, 통일에 관한 주제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 십만 장을 모으겠다는 야심에 찬 목표로 기획된 프로젝트죠. 국내외 아이들의 통일 관련 주제들이
릭 에센스가 아니라 정말사람들이 영상을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는 것, 그거 어려운 일 아니에요. 첫째 매스미디어를 바꾸면 돼요. 강압적이고 일방적이
수도 없이 날아왔어요. 박삼철은 일간 스포츠 기자,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거든요. 그날 박삼철은 십만 장의 엽서종이를 종이 작두로 잘라 만드는 작업을
고 비현실적인 매스미디어. 사람들이 아이티브이를 바꾸고 있어요. 학교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 미디어들 이거 잘못된 거 있으면 고치면 돼요. 카메라한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엽서의 가장자리를 자르고 있는 그 전시 기획자의 비효율, 역으로 이야기 하면 성실함, 진심을 보았다는 거죠. 하물며 돈벌겠다고
대만 있으면 자기들이 찍으면서 자기들이 소통하는 도구로 쓰면 돼요. 미디어라고 해서 미디어 아트가 아니거든요. 아주 작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데,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일을 드라마고는 지역에서 엄청나게 하고 있는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전시를 할 것을 생각하니까 가
써 고민하고 있는데 청소년들 미디어 축제한다고 했는데 근로청소년들도 있다, 공장도 있다 했더니, 거기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미디어 아트를
슴이 아프기도 해요. 요는 아까부터 제도와 비제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잖아요. 나는 마고를 돕는 사람, 마고의 서포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해서 인천의 문화에 도움을 줘야 될 거 아니냐……. 어디다 대고 미디어 아트를 하려고요. 인천의 지하철역 하나 건너가면 바로 공장지역이에요. 근로청
그래서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고 제도와 비제도, 현장과 전시장, 현장과 담론 공간 등과 같은 경계를 넘나들며 계속 잘 해주길 바라면서, 김연주씨에게 마
소년은 엄청나게 많아요. 그 친구들한테 미디어 아트를 보여주겠다고요?
이크를 다시 넘기고자 합니다.
김준기: 저기, 논평을 들어보고 하죠. 독일에서 베를린미술대학에서 마고가 하는 작업 같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주민참여형식의 작업들. 여름에 베를
김연주: 그래서 이런 작업을 하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영리단체이지만 자금이 없는 관계로 아까 김준기 실장님이 말씀하신바와 같이
린을 들렸다가 허름한 작은 공원에서 시민들, 유색인종들이 많았어요. 거기서 껌을 나눠주고 그 껌을 좀 씹어봐라 해서 씹으면 뱉으라고 해서 통에 담아
모든 큐레이터가 종이를 자르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웃음)
서 서울의 남대문 같은 것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을 봤어요. 거기서 느낀 게 뭐냐면 베를린은 작고 아담하고 지역의 현실에 유착된 예술행위들이 일어
드라마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요. 이것이 자꾸 몇 가지로 정리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열려있는 것을 공장방식
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죠. 베를린은 참 일상적으로 이런 작고 아담하고 지역의 현실에 밀착된 예술행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마고가
으로 정리하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부터는 내가 간단하게 준비한 자료(프로젝트 홍보물)를 보면서 이야기했으
송림동 프로젝트를 위해 600만원을 받아 혼자 생산, 디자인마무리를 하고 육체적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의미에서는 제도와 공공미술활
면 해요.
동이 분명히 연관이 있겠죠. 류희동씨가 이런 독일의 공공미술, 현장미술, 주민미술 시스템이라든지, 마고에 대한 코멘트라든지 코멘트를 해주셨으면 좋
김준기: 그전에 아까 1층에서 이상림 작가의 작품에 소위 '시체놀이'라고 해서 직접 몸으로 체험한 모습을 보여준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겠어요.
관객: 저는 이 전시를 오게 된 이유자체가 작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옛날처럼 전시장에 그려진 결과물 안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류희동: 저는 지금 독일 베를린 대학에 재학 중이에요. 저는 지금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는데, 제가 다니는 학교는 기존의 방식처럼 교수의 스튜디오에서
에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오게 되었어요. 작업실을 공유한다는 것은 작가가 소통을 위해서 자신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여기에 관심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로 하는 일이 베를린 시에서 나온 돈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나도 돈을 받고, 재료비를 받고 주민들과 만나
이 있어서 왔는데, 마침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이상림 작가와 그룹 반지하의 작품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한참동안 앉아서 작품을 보고, 작품
는 루트를 찾는 일이에요. 제가 한 프로젝트는 3개로 양로원프로젝트, 거리미술프로젝트, 불량학생프로젝트에요. 제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데모를 해
의 이미지를 흙으로 만들어 봤죠. 저는 그림에 관심이 있고 그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같이 한다는 것이 미술이 나가
본 적이 거의 없고, 어떤 제도권에 대한 반감도 그리 많지 않았어요. 제 친구들은 많이 잡혀가고 그러는데, 사실 전 부르주아가 아니었지만, 그런 것에 비
야 할 방향이라 생각했고 그런 점에서 작품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거기에 플러스알파로 사람들의 삶과 함께한다는 것에서 대해 굉장히 깊이 인상을
해 제 스스로 거기에 대해 판단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관심도 좀 적었어요.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아직 대학교 1학년이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이런 분야가 있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인상이 깊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독일에서 그런 프로젝트를 하는데, (한국 상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을 때)일단 독일은 반 사회주의, 반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면 돼요. 독일
드라마고: 짧게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작업을 하시다가 참여적인 형태의 예술이 아니라 본인의 개인적인 작업을 하더라도 그런 것에 대한 이
은 모든 시스템 구축을 대단하게 해 놓았는데, 모든 것이 데이터 구축을 통해 이뤄져요. 사용자가 반론이 일어나지 않게끔 미리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
해, 염려를 갖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같이 살아가는 구조가 된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을 배척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
중 하나가 문화정치인데, 문화정치는 재원이 정해 놓은 세금으로 여러 분야에 대해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뤄지죠.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해
게 하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말씀이 정말 감사한 말씀이라 생각해요.
요. 그래서 선생님과 함께 돈을 구상하고 시안을 짜는데 보통 4개월이 걸려요. 돈을 따는 데에는 진행 방식에 따라 6개월에서 1년이 걸려요. 10회 이상의
김준기: 독일은 공공미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요. 근데 한국엔 없거든요. 우리가 소위 선진국의 문화를 자꾸 보고 배우잖아요. 이유는 잘 되어 있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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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템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도입을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모델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유럽사
체냐 대상이냐를 논하는 것은 헛짓을 하는 거예요. 현장은 실천을 통해 가서 몸으로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겪어야 그것이 현장이 되는 것이지,
회의 공공시스템들을 앞으로 많이 도입하게 될 거예요. 참여정부가 제일 강조하고 있는 자치와 분권은 독일사회가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
플라잉시티, 포럼A와 같이 갑론을박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요. 미술 시스템도 공공적인 시스템을 앞으로 만들어 나갈 거고. 또 이러한 작가들도 많아요.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제도권 미술, 아카데미즘이
관객: 저는 홍익대 판화과에 다니는 학생인데요, 과 특성상은 좋은 학과는 아니지만, 학교로 보면 좋다고 하는 학교에요. 과 자체의 문제도 있고, 다른 과
이러한 미술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또한 80년대 민중미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러 경로로 가까운 우리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동시대
들과의 교류 문제도 있어요. 저는 홍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3학년이 되면서 삶과 미술이 떨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
에 인사동이 아닌 지역에 어떤 미술이 있었는가,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경로로 미술의 공공성과 그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관심 있게 봐
이 하게 되었어요. 제가 지금 궁금한 것은 제가 지향하는 것, 현장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과는 제가 지향하는 것과 완전히 틀리거든요. 그럼에
야 할 거에요. 또한 가까운 세대와 함께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면서 세대 나름의 공공성, 미술언어를 만들어 나가야 할 거구요. 마고는 어떻게 보면 나이는
도 제가 여기 있는 상황은 어떻게 보면 자의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안에서라도 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
안 들었지만, 전시장미술, 현장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80년대 감수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마고는 앞으로 80년대의 감성을
세요?
현재형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작가로써, 기획자로써 계속 고민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일 형태든 심정적이든, 지역이든 이러한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드라마고: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근데 이제 홍대를 다니시는 분들이 대안적으로 만든 공간과 사실은 힘든 부분이거든요. 왜냐면 서울대 같은 경
다양한 공공미술의 논의와 실천이 있을 거예요.
우에도 옛날에 서울대 총 동문이라는 것을 발표를 하면서 서울대가 왜 문제인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가를 토론회에서 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미술과 마고식의 미술의 차이라든지, 작업실 리포트 전시에 관한 점이라든지 코멘트를 부탁합니다.
표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면 서울대 사람들이 어떻게 할까요? 홍대뿐 만 아니라 서울대 사람들이 다른 현장으로 가서 활동한다는 것은 그런 자기 기반이
관객: 솔직한 심정으로 감명 깊게 봤어요. 하지만 뒤돌아서 까먹게 돼요. 작품을 제작할 때 '왜 하게 되었는가?'와 같은 목적의식, 처음의 제작의도를 알
있으면 바로 가서 활동하는 거예요. 자기 공간이 있다든지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자기 독립선상에서 보면 저는 홍대 다니시는 분들이 홍대나
고 싶고, 또 하나는 이 작업을 통해 느끼게 된 무언가에 대해 작품을 감상할 때는 느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과연 무엇이 변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서울대가 만드는 왜곡된 미술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내부적 운동들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자기의 허울들. 그것을 벗어던지고 같이 찾아가는 그런 게
무겁거든요. 진행하신 프로젝트가 그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소통되고 있나요? 제도권, 비 제도권은 저도 어려워서 모르겠어요. 지역주민들도 모를 거예
필요한 것 같은데. 자기를 부정하고 긍정하는 것 사이에서 왔다, 갔다할게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서 찾지 말고 자신의 태도 있잖아요, 불안하거나 고치고
요. 중요한 건 작가 의식이라 생각하는데, 이거 하나만이라도 뚜렷하게 알고 가고 싶어요.
싶은 일들. 그것들을 실천해 가는 과정. 자기 작업 속에 포함시키는 거죠.
드라마고: 명료한 질문이에요. 사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오늘의 이야기는 한정적인 이야기만 담고 있는 거예요. 저의 생각은 굉장히 광범위하지만 정리
관객: 그게 제가 고민안할 수가 없는 게, 이미 제가 홍대에 발을 들여놨다는 거. 예를 들면 과에 문제가 많아요. 판화라는 장르에 대해서 1세대 2세대가
해서 이야기 하자면, 제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제가 불만이 있다는 것이고, 그 사회에 대한 대안적 사회를 꿈꾸는 거예요. '이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가
잘못 받아들여왔고 교육이 그런 식으로 계속 돼서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 제가 여기서 그런 담론들을 만들거나 뜻이 같이 있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해도
있을 지 않을까'라는 꿈은 나만 꾸는 것이 아니며, 그런 꿈을 실천해나가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체가 필요했고, 그래서 반지하라는
결과적으로 제가 밖에 나왔을 때는 홍대라는, 공감을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되는, 담론을 형성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되는데 밖에 나
그룹이 생기게 되고 또한 지역 주민이 필요했던 거죠. 그들은 대상이 아니라, 묶여져서 해가는 일들은 '제도 비제도 이야기를 하면 헷갈리게 되는 것이 결
왔을 때는 제가 거기 또 머물지 못한다는 상황에 대한 생각이 들어요. '이거 아니다!' 라고 박차고 나온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국 그 대상이 주체냐'라는 이런 이야기가 처음에도 많이 나왔는데, 그것에서 벗어나는 건 그냥 각기 입장이 다 다르고, 다른 역할을 하고 개인적으로 살아
이거 뭔가 만들자 앞으로 나가보자 했을 때 걷다보면 다시 그 자리에 와있는…….그 부분은.
가면서 공동적 대안적 사회를 위한 꿈을 실천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관련 있는 사람들과 계속적으로 만나면서 후원회를 구축해하고, 후속 프로그램을
드라마고: 저한테 욕을 하시는 거 같은데요? 저는 학교에서 해결 못 했고요, 제도적인 거에서도 해결을 못했기에 비제도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요. 그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주민들과도 만나면서 지금의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 재개발 문제관해 토의하고 재개발과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등의
저도 직무유기인가요? 그담에 그 대학을 그렇게 그만두신 분이 여기 계시지만, 그 얘길 해주시면 좋을 텐데, 어려운 부탁이겠지만, 그거는 사실은…….
활동을 하고 있어요.
관객: 그 부분에서 '직무유기다'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게요, 저 같은 경우는 '이게 아니다'라고 하지만 계속 가고 있어요.
개인을 놓고 보면, 저도 제도적인 부분에 먹고사는 문제로 여러 번 개입될 수밖에 없었어요. 저도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이번 달 집세를 막는 것도 시급
드라마고: 바로 그 지점이에요. 학교만 홍대를 다니는 거지, 제가 왜 홍대사람으로 살고 있고 홍대의 역사에 눌려있어야 되냐는 거예요. 아주 쉽게 생각하
한 상황이에요. 주변사람들에게도 빌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들이 땅 보상 문제를 논의할 때 가서 앉아있는 이유는, 그 분들은 문화라
면 돼요. 저는 그냥 여러 개 학교 중에서 제가 선택한 학교, 홍대가 잘났으면 전 지구에서 얼마나 잘났을 거며 홍대 역사가 얼마나 중요하면 제 역사와 맞
는 기반이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 문화는 있고, 동네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이 3~4분 계세요. 그들이 찍은 이미지는 그 안에 이미
먹겠냐는 거예요. 그렇진 않다는 거예요.
텍스트가 들어있기 때문에 역사가 되는 거죠. 쉽게 정리하면 지난번에 이야기 했듯이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여러 의미로 쓰지 말자, 즉 저의 입장에서 아
관객: 그 부분을 알지만 제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보면 제 역사와 같이 맞물려진다고 어우러진다고 보거든요. 이게 아니라고 버린다고 해서 버림받은 게
이덴티티는 자기동일성으로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것은 선명하게 우리가 이해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 의도적으로 개념적으로 제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그 나름대로 갈 거구요.
도적으로 판단해버리는 이러한 거품들과 수많은 안개 정국을 벗어던지면, 무언가 길을 찾을 수 있는 출발점이라 생각하며, 그 출발점에서 만나는 모든
드라마고: 지금처럼 얘기하면 맞아요. 그게 우리 현실인데. 그런 걸 해결하려면 그런 고민들을 엮어서 관통하는 내 삶의 고민이 우선시 되는. 예를 들어
작업과 생활은 사실 엄청나게 많을 수밖에 없어요.
학교생활이나 술자리나 본인이 생각하는 홍대나 이걸 너무 안고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저는 차라리 학교를 계속 다니냐, 그만 두냐의 문제가 아니라 거
저는 지역에서 컴퓨터가 고장 나면 고쳐주러 가고, 포스터를 만들어야 하면 만들러 가야 해요. 이런 거거든요. 이렇게 살면서 내가 돈을 받고 그런 것은
기서 좀 벗어나야 되지 않냐. 다른 생각을 많이 해야 되고 다른 걸 많이 공부해야 되고 더 경험해야 되는 시간에 그거 보다는 지금 여길 관통하는 그걸 못
아니에요. 지금도 제가 불편함을 느끼듯, 제도적인 부분은 관여할 거예요. 그런데 제도에서 예를 들어 비용을 선뜻 준다던지, 토론회 입장에서 당신들의
하고 있어요.
입장을 이야기한다던지 하는 것은 언뜻 보면 나누는 듯하지만 이것은 인력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우리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다른
그렇다면 제안하고 싶은 건 인류문화가 그렇거든요? 주류적인 현상. 개인도 마찬가지에요. 제 삶에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어요. 제 삶의 주류가 제
장치들이 그것을 대신 담는 구조, 예를 들어 신문의 기사 등, 이것들을 보면 뭔가는 꼭 잘못 나와 있는 것이 있어요. 저는 이것들을 인정은 해요. 그것들도
회사생활에만 있냐, 제 가족에게만 있냐, 여기 빠져 있잖아요? 제 사고의 비주류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거예요. 그럼 자신한테도 도움이 안돼요. 먹고 사
나름대로의 삶,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언가를 놓치는 부분은 정말 아쉬워요. 이것이 방금 질문하신 각각의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삶
는 덴 도움이 되겠지만, 문화나 예술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안돼는 거예요. 왜냐면 사회체계자체가 역학관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인간의 태도이며, 제 생각에는 원시적, 동시대적인 구분, 종교적, 장르적 구분도 없는 것이거든요. 그냥 자신의 삶에 대한 선명함을
나 스스로는 그 역학관계 속에서 하나의 소우주다. 나 자체도 복잡하고 사회자체도 복잡하다. 그런데 내가 사회가 주는 어떤 것에 껴 있으면서 어떤 걸 사
찾아내가는 과정이 동시대에 이론이 많다는 점을 이해하고, 다양한 사람들과도 만나고, 회화의 드로잉, 스케치가 디자인도 활용할 수 있고, 사례발표를
고하고 판단하고 해보겠다는 것은 실제로 사실은 불가능해? 불가능하다는 거는 효과 면에서, 접근 면에서.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하고 싶으면요, 홍대 빼고
통해 모델을 찾아내는 것(그 예로 미국식 위인, 정체성 없는 대가들을 찬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에요. 우리나라는 위인들이 모델로 설정이 되어 예술가
다른 대안학교. 미술 빼고 다른 대안 미술, 예를 들어 회화를 전공했으면 디자인이랄지 컴퓨터나 출판의 장치가 같이 있으면 전이돼서 출판미술이라고
들이 정체성 없이 살아가는 세상, 좀비들이 사는 세상 같아요.)이 조금 개선이 된다면 좋은 거죠.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에요. 직업도 버려
하는 새로운 걸 만든다던지. 다른 자원이 있어야 되거든요. 내가 어떤 회화라는 장치나 그런 거에 빠져있으면 , 미술제도만 보면 내가 대안적인 걸 하고
야 하고, 교직과 같은 제도적 장치도 버려야하고, 돈이라는 장치도 세심하게 조절해야 해요. 교직을 버린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바로 실천인 거예요. 주
싶으면 다른 제도를 봐야 해요. 다른 제도.‘나는 화가이면서 가난한 사람의 문제에 공감한다.’그러면 그런…….‘나는 미술을 하면서도 음악을 좋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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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러면 음악적 마인드를 같이 가져가는 거죠. 그 선택을 누가 하겠어요? 본인이 하는 거죠. 본인이 정체성 찾아가면서. 그런데 말씀하신 현상이 왜
표하기 전날 제가 몸이 안 좋았어요. 밖에 나가서 쉴 데를 찾아 막 길을 헤맸거든요? 기본적으로 얘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던지 최소
생기냐면 홍대라는 장치가 대충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영향을 주고 있는 장치이기 때문에 개인이 벗어나기가 어
한 몸이 아파서 나가버리지 않도록 관객들을 좀 따뜻하게 해준다던지 여러 가지 배려가 돼야하는데, 복사도 바로 직전에 하고 질문도 제약을 둬버리고
려운 거예요. 차라리 지방대 출신들은 더 벗어나기가 쉽죠. 자신의 생각, 활동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아 이게 서울의 대학생들과 지방대학생들과의 차이
이건 종합적으로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종합적인 목적의 동원이거든요? 각각의 장소가 결합돼서 하나의 일관성을 갖고 있고 사람과 같거든요? 이 사
점이구나! 어차피 학교가 나한테 서비스를 주지 않기 때문에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람이 술 먹을 때도 있고 주정부릴 때도 있고 착한 짓 할 때도 있고 나쁜 짓 할 때도 있거든요. 우리는 이 사람을 총체적으로 봐야 된단 말이에요. 이 사람
김준기: 그 질문은 홍대 안에 갇혀있는 질문으로 들리지만 나중엔 마고가 고민하고 있는 제도와 비 제도 같은 걸로 바뀌겠죠. 왜냐면 아직 학생이니까.
이 정말 다른 사람을 위해서 건설적으로 된단 얘기는 자신의 모습이 일반성속에서 총체적으로 대안적인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대학생이면 대학만 나
관객: 저도 밖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반지하라는 운동집단도 인천이라는 지역성에 맞물려 같이 움직이잖아요. 저 자신이 술자리나 선생님
오면 되는 게 아니라 학교가 끝나고 나도 대안적 생각을 만들어가고 대안적 사회가 미래를 바꿀 수 있듯이 미술관도 마찬가지에요 미술관은 공간적인 부
이 말한 그런 건 이미 벗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대생을 벗어난 건 아직 아니라는 거죠. 인천이라는 지역 버릴 수 없잖아요. 인천제도가 나쁘다고
분이거든요. 공간적인 부분인데 공간적인 부분에만 너무 매몰이 되다보니까 시간적인 그쪽에 우리가 사람들의 삶에 시간이라는 역사성, 논픽션 드라마
해서 버릴 수 없듯이 저고 학교를 버린다는 건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고민하는 것은 밖엘 나왔을 때 저는 맴돌았다는 것 밖에 안 된다는 거예
이런 것들에 대한 주변적인 요구들.
요.
'서울에 있으니까 공간적인 거야, 그냥 서울을 담으면 돼 아니면 전시공간이니까 회화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여기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김준기: 직무는 누군가가 당신한테 주는 게 직무고, 스스로 홍대가 당신을 선택한 게 아니라 당신이 홍대를 선택한거니까 직무유기라는 말은 성립 불가
모이니까 토론하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여기는 담론을 생산하는 지역이야, 그리고 여기는 서울제도와 가까우니까 여기서 대안을 만들면 제도를 바꿀 수
능 하죠.
있을 거야' 라고 하는 착각, 오만, 그리고 총체성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공공미술에 대한 총체성에는 아주 빈약한 태도를 갖고 있으면서 자신이 공공미술
관객: 제가 말한 직무유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란 말이에요.
의 총체성을 옹위하고 있다는 태도 이런 것들이 실제로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보조, 디스플레이, 자료 수집. 그런데 이 기능들이 동시에 돼야 미술관이
김준기: 따라서 적어도 일년 정도 후는 처절하게 배신당하면서 H라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거예요.
기능할 수 있거든요. 그죠? 사람들이 오는데 뭣도 모르고 작품 보고 '아, 좋네, 나쁘네.' 하고 갖는 미술관의 무책임함. 그리고 디스플레이 할 때 그냥 거는
드라마고: 홍대를 빼면 뭐가 남아요?
게 아니라 참여하면서 앉아서 쉴 수 있는 구조, 그림을 물건처럼 사서 보관하는 보존이 아니라 이 작품의 방식을 적정하게 유통시키고……. 그래서 필요
관객: 저는 홍대를 빼고도 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건 걱정 안 해요.
한 게 소식지 같은 건데 존중해주는 태도로…….하여튼 적정한 장치를 갖고 있는 미술관이어야 되고, 그 미술관은 작고 힘이 없으면 힘이 없는 것과 차원
드라마고: 거기서 홍대 다니는 친구들 빼고 다하면?
이 맞는 것, 그죠? 그런데 미술관이 하나만 관련돼서 회화가 독보적이거나 언론이나 이론과 관련된 일을 해야 된다면, 그럼 나머지 애들이 다 죽어요. 그
관객: 그건 상관없죠. 그 부분에서 완전히 버릴 순 없다는 거죠.
런 현상을 삼투압이라고 해야 되나. 공공적 특성이 없으면 어느 하나는 부각되고 어느 하나는 죽어요.
김준기: 버리려고 해서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게 물과 공기처럼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이마에 H자를 찍고 다니게 될 거예요.
지금의 미술관들이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게 현장에 대해서 실천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 논의가 되거나 최소한 온 사람들에게 자료를 미리 챙겨
드라마고: 지금 말이에요. H라는 현장에서 놀고 계신 거예요. H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고 지점을 존중하고 실천적 방법을 프로세스적으로 과정은 과정
주거나 따뜻하게 해주는 개념, 디자인에 오류가 있으면 순간순간 바꾸는 융통성, 즉흥성. 시간이 부족해도 대화를 더 하게 한다던지. 인사동에서는 사교
으로써. 졸업하고 나서 홍대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때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클럽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상당히 적용이 돼야 하고 그담에 지역의 문제에서도 저희가 왜 돈의 문제를 안 하냐면 이념적으로는 반자본주의고 사회주의
관객: 현장미술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잖아요. 미술관 안으로 들어 왔을 때 지금 반지하 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마고씨의 작품이 현장에 있어야 될
적 노선이긴 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그런 태도를 안 갖고 있으면 활동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돈을 받아가면서 당연히 예술가는 초조해 있
미술이 어떻게 여기로 들어와서 있는지 궁금하고요, 또 하나 기존의 갤러리에 있던 작품이 아까 말씀하셨던 데로 소통에 있어서 작품의 내용은 바뀔지라
어야 해요.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돈이 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걸 안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제도적인 걸 해야 해! 하고 딱 엮이잖아요?
도 이 형식에 있어서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비제도적인 게 안돼요.
드라마고: 현장의 것의 아주 부분만 갖고 온 거예요. 축약하고 함축해서 대표성을 띄는 게 아니라 그냥 부분만 와 있고 또 현장이란 게 장소, 사람, 시간
그래서 아까 무섭다고 얘기한 게 서울에 한 일년 동안 안 올라오다가 최근에 올라오면서 왜 지역과 여러 가지 말다툼이 생기냐면 총체적으로 대안을 갖
성, 운영시스템, 미술계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여기 전시 되어 있는 것은 부분이 와있으면서 반지하 이름을 빼고 저만 와 있는 것은 저만 혼자 했어요. 왜
고 올라온 게 아니라요, 아까 전시 부분만 갖고 올라 왔는데요, 그런 것을 통해서는 공공성이라는 말이 제도랑 같지 않냐, 공공적 기금을 갖고 하냐, 공공
냐면 평소엔 도와주거든요. 공동작업으로 해서 공공집단이기 때문에. 그런데 미술계라는 데에 다른 멤버들이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와서 한다는 게 옳
적 장소에서 하냐가 아니에요. 공공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총체성, 태도라든지, 철학이라든지, 돈이라는 장치라든지, 제도라는 장치라든지, 회화가 됐던,
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맞닥뜨려서 논의해야 될게 너무 많고 개념이 안통하고 이해가 안 된 상탠데 그냥 도와주세요라고 해서 같이 디스플레이하고, '반
설치가 됐던, 공간을 다루던 시간을 다루던 그런 거잖아요? 영상도 미술이고 돈이 많이 있이 하면 좋은 미술이고 돈이 없이 하면 미술이 아니고. 인천에
지하입니다.'고 해버리면 감당이 안 되거든요. 하여간 부분만 온 거구요, 작업실 리포트전이라는 것은 분명히 프로세스적인 부분이 담겨져 있어야 된다.
서 무슨 얘기가 있었는지 아세요? 너희 반지하는 아마추어다, 당신 입장에서 아마추어라고 하는 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왜 싸워야 하냐, 그게 왜 필요
그런데 그 프로세스가 계속 부동적인 운동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보여주고 싶겠지만, 그것이 안 된다면 그 과정의 부분은 중간적인 입장이나 아니면 참여
하냐, 결국에는 당신하고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당신이 아마추어라고 한다고 당신한테 눌릴지 알아? 이런 거거든요? 우리는 미술만 걸치고 있는 게
적인 부분이 더 진행이 되고 해야 되지 않겠냐 해서, 지금 기존에 있던 것들을 몇 가지 가져왔고 바닥에다 그림 그릴 수 있게끔 해놨고……. 갤러리 같은
아니기 때문에…….
경우는 한국에서 보면 공공미술의 논란이 한 두 해는 아니에요. 적어도 삼, 사년 정도. 그것 때문에 저도 일년 반 정도 전에 인하대학교에서 수업특강을
김준기: 카메라와 언론이 마고를 소개를 해요. 증폭시키는 거죠. 여기 와서 보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매스미디어로 보는 사람은 1000명인 거죠. '마고이
했었는데, 그때 공공미술얘기를 했었는데 미술관의 문제는 미술시스템이나 미술관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사고, 공공미술을 하기에는 안 맞는 모양들.
즘'이 언로에 소개될 기회가 없었잖아요. 공공미술에 관한 공유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계기로 생각
19세기 교실에 20세기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어요. 모양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교육제도도 얘기하는 거죠. 20세기 선생님들은 동시대에
한다면 충분히 전시장에 온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고 미술관을 사교의 장이라고 얘기했죠. 저는 되게 좋아요. 자, 오늘 함께 자리해주신 관객여러분께 감
살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현장을 안 가르쳐줘요. 그러니까 현장의 실천성은 여러
사드리고, 긴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 해주신 마고 작가에게도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리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좀더 나아간 논의는 이 후 시간에 들어
가지를 할 수 밖에 없는 게요. 저희 반지하의 활동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잖아요. 같이 갈수 밖에 없는 게 그중에 어느 거만 하면 이게 대표성을 띄거나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함축적이 돼버리거든요. 이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한국미술은 갤러리에서 어떤 짓들을 했냐면 맨 처음에는 회화중심의 전시, 요즘에도 그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실천성이 상실되어버리고 나머지 작품만 남아버리는 경우가 거기 있고요. 그 다음에 60년대 말에 있었던 아방가르드의 설치적 개념, 퍼포먼 스…….그때도 그것은 미술관에서만 꼭 해결되지 않는데 작가들이 미술관에서 해결하려 했던 거죠. 지금으로 보면 왜 지역미술을 발표하는데 서울에서 발표를 하느냐, 그것도 왜 풀 갤러리에서 하느냐, 그게 적정하냐. 그리고 전 풀 갤러리와 연관이 많이 된 사람인데 졸업하고 첫 번째 전시를 하고. 근데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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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0: 백기영
2004.02.12 목요일 pm.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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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오늘은 백기영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미술인 회의 사무처장을 겸임
분하면 저는 제게 있어서 작업은 풀이예요. 풀 하나의 왔다가 그냥 죽어 버리는 풀이예요. 그러니까 제가 그쪽에 자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런
하시면서 활발한 작업 활동을 펼치고 계시는 분이에요. 그럼 평소 작업에 대한 이야기, 이번 전시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변화가 있었던 거 같아요.
백기영: 예, 방금 소개받은 백기영이라고 합니다. 작업을 하면서 제가 고민했던 부분과 현재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저는
제가 아까 그 종이로 만든 화분에서 죽어버린 화분에서 나타난 경우들 때문에 작업했겠지만, 왜 제가 거기에, 이런 거에 메타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가
어떤 메타포들을 찾아내려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시작했던 게 이젠 '가든 엔 이미그레이션 프로젝트'라고 정원 이주의 프로젝트예요. 그러
하면 인간도 동시에 아까 나뭇잎에서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는 질문을 던졌었거든요. 인간도 동시에 풀처럼 한번 왔다가 사라져 가는 존재라고
니까 독일에서 30년 동안 생활하고 계신 독일에 광부로 가셔서, 1970년대 독일에 광부로 가셔서 30년간 독일에 살면서 너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
요. 그런 거가 더 강하게 저한테 오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게 요번에 다른 기획 사진이고요. 요것도 그 정원에서 찍었던 풀들이에요. 그 풀들을 찍는 데는
런 것들을 잊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시던 한 광부가 한국에 딱 들어와 보니까.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까 고향은 완전히 오염되어 가지고, 파괴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그 다음부터는 제가 풀들을 자주 메타포적으로 자꾸 접근하게 되는 게, 어떤 장소를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서 풀
어 가지고, 다 사라지고. 옛것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모두 그냥 동네가 파랑색 기와집, 빨강색 기와집으로 다 바뀌면서도 새마을 운동, 새로운 것, 뭐
이 다르게 보여요. 예쁜 꽃을 보고 울 수도 있는 거고, 예쁜 꽃을 보고서 웃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정원에서 여러 가지를 찍을 수도 있지만 제가 관
가 달라졌다, 좋아졌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다 바뀌면서 옛것은 다 사라져 버리는. 이젠 이런 상황들을 직면하면서 이 분이 자기의 고향을 완전히 잃어
심을 가졌던 건, 저렇게 막 움트는 싹들에 자꾸 관심을 갖게 되고요. 그리고 메말라 비틀어진 꽃들, 죽어서 시들어진 꽃들이란 게 어떤 양태를 가지고 있
버린 거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고향을 이 분은 그냥 잃어버리고 허탈해 버리는 게 아니라, 독일 땅에다가 정원을 만듦으로써. 거기다 무궁화 꽃을 갖
더라고요. 왜. 제가 그 분의 정원이 어떤 경과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는지를 알기 때문에 거기에서 다른 것들보다 저런 풀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요. 그래
다가 심고, 한국에서 씨앗을 갖다가 심고, 수십 종의 꽃들로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놓고 거기에서 고향을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그 외로움을 달래는 적극
서 그런 사진이고, 어떻게 보면 뭐 대단히 세련된 구도나 뭐 조형적으로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사진을 만들어 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그런 개인적인
적인 프로젝트를 그 작업으로 삼았는데, 그 중에 한 장면이에요.
경험. 내가 보는 어떤 심성들이 투영되어 있는 거 같아요. 사진들이요.
한 장면은 그 분과 제가 정원 일을 한 제 작년 여름 내내 거의 그 분 정원에서 그 분 일을 도와주면서 지냈는데, 그때 찍은 거예요. 그 분이 꽃을 심으면 어
이게 요 영상에 등장하는 그 화면이고요. 요 세부타이틀은‘잃어버린 고향’이라는 테마로 붙였고요. 요 작품이 선보여진 거는 어디서 선을 보였냐 하면
떻게 해야 되고, 이쪽 저기에서는 무슨 꽃이 나오는데, 저거는 바닥의 부분이 얼마나 높게 나오고, 올해는 저쪽 사과나무가 과일이 많이 맺히고……. 되게
독일의 루오 지역에 가면 '한' 이라는 데가 있는데, '한'이 전부 다가 엄청나게 독일에 엄청나게 탄광촌이 엄청나게 많았었고. 엄청나게 많은 그 에너지들
일상적인 얘기들인데, 그냥 농사지으면서 밭일 하면서 하는 얘기들을 담은 것이고요. 그 중에 한쪽 측면은 이제 비가 오는 날 그 분과 그 정원의 처마 끝
을 거기서 끄집어내서 공급해 주었던. 그러니까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로운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이 지역이
에 앉아서 그 분이 자기 얘기를 해요. 한 20분 동안. 되게 자기 독백적인 얘기를 하는데. 엄청나게 진실하면서도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하는 그런 디아스포
거든요. 근데 이제 탄광촌들이 다 문을 닫아버렸어요. 이제 파낼 대로 다 파내 가지고, 이제 거기 탄광촌의 건물들이 다 문을 닫고 폐광을 하고 문을 닫게
라의 정체성, 예를 들면 자기의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까만 머리 손자를 안아보는 것이라는 것. 자기 아들이 2세들이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한국 아이를
되니까, 이거를 이제 어떻게 전용해야 할지가 사람들이 고민을 하다가. 그곳을 예술 공간으로 쓰자 해서 아이디어를 내서, 거기서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
낳았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얘기를 하는 것으로 이 영상이 끝나는데, 이제 이 프로젝트처럼 이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꽃들 같은 것을 보면 되게 예뻐요. 화
는 제안들을 했고. 그래서 저희가 초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거기 가서 전시를 하다 보니까 이 공간에서 뭘 해야 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자
사하고, 나무들도 보면 화사한 데, 사실 그 밑은 주로 자막으로 처리, 전부 다 자막으로 처리되었거든요. 그 분이 하는 얘기들, 육성을 전부 다 자막으로만
료를 찾다가, 자료를 찾다가 보니까 한국의 97%의 광부들이 전부 다 '한'에서 일을 했고요. 저 탄광촌에서 일을 한 거예요. 그 사실을 나중에 발견했어요.
처리하고, 그 분의 목소리, 애잔한 목소리. 독백이 담겨있는 이야기들만 잔잔하게 흘러져 나오는데. 꽃이 아름다운 꽃을 클로즈업시키면 시킬수록, 그 분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광부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지도 몰라요.
의 이야기는 훨씬 더 어떻게 보면 애절한 그 사연들이 담겨있는 경우가 있고. 또 뭐 이런 대비되는 구조들 같은 것들도 맛볼 수 있게 만든 영상입니다. 이
그래서 처음에는 광부 분들이 가지고 있는, 하다못해 뭐 기록사진이 좀 있으면 좀 뒤적거려 가지고, 그걸 모아가지고 뭘 해볼까. 아니면 그 사람들을 인터
것이 조흥갤러리에서 진행되었던 영상작업들이고요.
뷰를 해서 뭘 좀 해 볼까. 뭐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접근하다가. 저의 동네 사는 광부 아저씨를 만나려고 계속 전화를 하니까 안 계시는 거예요. 또 '어디
이 슬라이드 인스톨레이션은 그 분 정원에서 바닥바닥 구석구석에서 자라는 풀들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영상 슬라이드 작업입니다. 요 작업을 진행하는
가 계시냐.' 그러면 정원에 가 계신다고 해요. 그래서 정원에 가 보니까 정원일 하고 계시거든요. 전화하면 정원에 가 계신다고 해요. 그래서 자꾸 가서 물
시기에 같이 했던 작업 중 하나가 제가 거기에는 정원예술가협회라고 정원협회가 있는데. 협회에서 정원예술축제가 있어서 초대를 받았어요. 그래서 작
어보기도 좀 그렇고 하니까, 밭일 도와주러 왔다고. 밭일만 도와주고 이러다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 이 사람을 갖고 무슨 딴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아니
업을 했던 것이 독일 할머니 텃밭을 빌렸어요. 텃밭을 빌려가지고, 할머니들한테 요청을 한 게, 텃밭에 절대 비료를 주지 마시고, 그냥 잡초가 있는 대로,
라, 이 정원 자체가 이 분의 정원 자체가 이 분의 역사고,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 한국 사람의 디아스포라의 역사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
그대로 두세요. 그럼 제가 했었던 일이 한국에서 씨앗 22종류를 갖다가 어떻게 얻어다가 되는대로 파종을 했어요. 그럼 이젠 거기에 자라고 있었던 이미
요.
자라고 있었던 잡초들이 있을 거고. 거기 그러다 보니까 씨가 떨어져 가지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자라나는 놈이 있고, 죽은 놈들이 있어요.
그런 경우가, 이것도 그런. 계속해서. 이거는 충정로에 있는 한 거리인데요. 이런 빌딩 숲 밑으로, 서울에 엄청나게 많은 집들이, 여러분들. 이 서울시내에
그래서 처음에는 할머니가 보더니 저기 싹이 나오고, 저기 싹이 나오고, 싹이 나오는 게 보아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다 막 표시를 해놓는 거야. 내가 물
서 가장 많이 소외되고 있는 그 어떻게 보면, 자기가 있어야 할 과거에 있었던 자리들을 다 빼앗기고 사라져버린 것들 중에 많은 수가 저는 잡초와 풀들이
주러 가보면 막 표시해 놓은 거야.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예술이라고 하는 컨셉을 들어보니까 재미있는 거 같고, 막 애써서 저보다 열심히 가꾸시더라고
고, 그 나무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저희 클 때만 해도, 대부분의 집들이 마당이 꽤 넓게 있어서 나무 한 두 그루씩은 있어 가지고, 이렇게 공간이
요.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그 구분이라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건 어떤 메타포적인 거거든요. 어떤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
있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건축법이 바뀌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뭐 건물 점유 공간 같은 게 확 줄어들면서, 그 공간이 전부 막 건물들로만 다 가득 찼
고 있는 거예요. 한국씨앗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문화가 혼성된다는. 비록 거기서 식물이 자라는 거지만. 문화가 혼성되는 사람들의 세계의 변화, 사회의 변
고, 풀 한포기 하나 남지 않았어요. 여기도 보면 한 군데도 없어요. 딱 여기만 있고. 이 집이 지금 땅이 비어가지고 집이 무너지고 나서 딱 여기만 풀이 있
화를 갖다가 비유하는 거거든요, 이 작품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인위적인 부분이란 것이 필요 없이 그 안에 뿌려졌어요. 그랬더니 옥수수 같은 비슷한 것
는 거예요. 이제 이런 공간들을 대해서 저는 어떻게 보면 '식물들의 혁명', 어떻게 보면 도시 공간에서 새로운 바이올로직한 레볼루션이라는 것이 일어나
들은 진짜 크기 커가지고 막 자라요. 또 상추 같은 뭐 어떤 거는 그냥 막 자라다가, 빨리 자라는 풀 그늘 같은데 있게 되면 죽어버려요. 거기서, 그래서 나
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서울 같은 공간은 도시 계획이 그렇게 반영을 해야 되고요. 예술가들이 어떤 이런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충동제 역할을 해야
중에 가보면 뿌렸는데, 제가 도대체 뭘 뿌렸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게 한국 씨앗인지도 모를 정도로 다 뒤섞여버린, 하나의 그냥 아름다운 화원이 되는 거
한다는 생각을 해서 이런 프로젝트들을 고안 중이고요.
예요. 그냥 모르는 사람이 가서 꽃밭을 보기에는, '아이고' 이게 그냥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르겠어요. 단지 그 할머니와 제가 그 예술행위를 한
요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 하나는 생명의 땅 프로젝트라고, 대동여지도,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 위에, 저런 식으로 어떤 맵 메이킹을 시도하
제가 그리고 그 전시 중간에 왔던 사람들이 그 푯말을 읽었으면, '아, 여기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고, 그래서 나온 상황이구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
면서 그곳에서 땅에 있는 흙만 퍼 와요. 어떻게 보면 지금 전국에 한 20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흙을 퍼서 작업실에서 계속 놓고서 물만 주고 있거든요.
죠.
어떤 거는 진짜 번식력이 강한지 어떤지 땅이 확 풀리면서 요 며칠 가봤더니 화분이 이만큼 무직하게 풀이 올라왔어요. 그러니까 그 지역에 있는 풀들이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제가 그 다음부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식물예술, 죽어버리는 예술, 뭐 이 작업해서 제 전시 때도 평론을 쓰신 한 분 글 밑에 리플이
밀고 올라오는 것 같아요. 이것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저런 어떤 지도들과 거기에서. 어떻게 보면 150년을 간격을 두고 계속 반복해서, 땅 속에서 숨어져
달렸는데. 이 작업이, 예술이 뭐냐는 거죠. 뭐 사진 작업이라고 얘기를 하면, 이게 사진작업이라고 사진 찍는 사람이에요. 저보고 아까도 인터뷰하는 사람
올라온 풀들의 힘이란 것. 그것을 이제 재발견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찾아내는 작업들인데요. 이런 흙 사진하고, 흙이 위치했던 장소들을 계
이 '사진 찍는 사람이에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요.‘내가 사진 찍는 사람인가?’근데 사진 찍는 사람의 일이 뭔지를 잘, 어떻게 보면 하나의 매체로 구
속 맵핑하면서, 이 대동여지도에 대해서 요즘 저도 계속 아직 스터디 중에 있기 때문에, 저게 가지는 역사적 가치, 또 그 의미, 그 또 제작하던 방식,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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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방식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서. 그래서 계속 스터디 중인데.
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한 문젠데요. 그 할머니가 상추를 먹으려고 그걸 심으시겠어요? 물론 요즘 경제가 어렵고 하니까 정말 상추 값도 만만치 않
근데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대동여지도는 자연 중심적이었어요. 이 자연 중심적이란 말이 좀 애매할지도 모르는데, 지도라는
으니까 상추 먹으려고 심을 수도 있는데. 저는 아니라는 거예요. 상추를 심고 가꾸는 것을 통해서 자기를 회복해 가는 거예요. 아까 그 독일의 광부가 자
것은 개념으로 되어있거든요. 땅을 이해하는 개념이에요. 오늘날의 지도를 보면 행정중심이에요. 여기서부터 여기가 경기도고, 여기서부터 여기가 뭐 충
기의 고향을 회복하기 위해서 독일 땅에다가 다시 땅을 일구는 수고를 했었던 것처럼 이 할머니가 상추를 심는 데는 자기 회복의 과정이라는 거죠. 그 예
청도고 라는 그 행정중심의 지역 표시가 강하고. 그 다음 모든 지역 명칭이란 것이 중요하게 되어있는데. 여기는요. 지역명칭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술은 저는 그 본질적으로 자기 회복, 정체를 찾아주는 것과 연관이 없으면 그 뿌리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게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예요.
거의 대부분 산, 산들이에요. 산, 강 그러니까 자연에다가 만들어낸 그 명칭들, 그 명칭들, 그것들 위주로 그려져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지역은
관객: 생태예술, 그 쪽으로 활동하시는 분이.
제가 찾을 수가 없어요. 내가 분명히 여기 가서 도시 이름도 바뀌어버렸고, 바뀌어버려서 없어진 데도 있고, 또 과거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
백기영: 작가들이 꽤 돼요. 요즘 몇몇 분들이 계시고, 지금 사실 다음 주에 전시를 오픈 하는 덕원 갤러리에 산림의 경계란 전시가 오픈 하는데, 산림의 경
고, 과거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존재하는. 그 지역들 뭐 좀 이런 것들이 되겠죠. 그리고 저런 보법 글씨 같은 게 있는데. 옛날에 그 거리를 측정하는 그 수
계에 출품되는 작가들이 미디어와 실존과 관련된 작업을 하게 되지만, 그 중에 몇몇 작가들은 생태적 담론을 가지고 작업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까 예
레차 같은 것들이 있어서 끌고 다니면서, 100 뭐 40리를 걸으면 한번씩 체크하는 어떻게 보면 거의 끌고 다니면서 거리를 다 측정해서 일일이 만들어낸
로 들었던 김주현 선생 같은 경우도 생태 작업을 하고 있고. 저도 실질적으로 영상미디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영상미디어란 기술을 통해서 생태를 다시
지도예요.
보여주는 형태로 접근하는 게 지금은 한계지만. 어떻게 보면 생태적인 담론이란 것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사람이고. 이제 그런 쪽에 관심 있는 작가들이
요거는 제 홈페이지인데요. 제가 앞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작업을 하거나 뭐 하게 될 경우 모든 게 여기에 업그레이드가 되고 여
많이 있어요. 그리고 뭐 요 근대에는 지금 안양에서도 시도하고 있는 게, 안양천 프로젝트라던가, 작년에 광주천을 주목한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기에서 여러분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접속하셔서 보실 수 있게끔 되어있습니다. 그전에 했었던 설명 안 드린 작업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여기 들
있는가.' 해서 광주의 민물고기들을 연구하는 그런 프로젝트. 그러니까 미술이 어떻게 보면 요즘은 하나도 미술 같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환경단체에서
어가면 보실 수 있게끔. 예, 여기까지 제 작업세계였습니다. 혹시 뭐 질문 있으시면.
하는 연구 작업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뭐 정치적 선동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분히 어떤 그렇기도 하는데. 근데 생태적 관심사는 점
관객: 아까 한국에도 시내 공간에도 풀 생명을 이렇게 좀 더 확장시키는 풀로 인한 생명확장 그 부분을 이제 진행하는 과정에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
점 예술 쪽에서 중요한 카테고리라고 생각해요.
로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지.
김준기: 작업 얘기 죽 들었는데, 질문들을 하나씩 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작업실 얘기를 개인사적으로 어떤 작업실을 어떻게, 어떻게 꾸려왔었다 이
백기영: 그건 이제 뭐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뭐 도시 계획 플랜, 뭐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는 아직 아니고요. 왜냐하면 그것이 진행되기까지는
런 얘기도 좀 들려주실래요?
좀 더 어떻게 보면, 저변 확대도 좀 되어야 하고, 사실 이번에 문예진흥기금 신청을 위해서 양평이란 공간에 생태예술프로젝트를 올렸는데요. 그것을 접
백기영: 제 작업실은 이제 홍익대학교, 저는 회화과를 나왔는데, 회화과에서 작업할 때는 항상 문제가 뭐냐면. 학기 끝나고 나면 그 많은 그리고 열심히
수하는 과정에서 그 담당 직원이 근데 생태예술이 뭐예요? 아니 거기서 어떻게 설명하기가 되게, 그러니까 문예 진흥원의 담당직원이라고 하면, 상당히
했거든요. 그 많은 캔버스와 그 작업들을 어디다가 갖다 놓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보존하고 하는, 그러니까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제가 며칠 전에 일
그래도 현대미술에 박식하신 분들이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인데요, 생태예술은 아직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고요. 그 다음에 뭐 풀을 심는 게
톤 트럭 가득 그 캔버스들을 다 싣고 이동하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야,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쓰레기를 만들어 가지고 쓰레기들과 함께 매일 떠
무슨 예술이 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 상당수는 '예술의 공간이란 것은 갤러리이지, 그냥 밭에다가 무슨 뭐 씨 뿌리고 꽃이 뭐', 그
돌다 사는 게 아니냐.'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것 때문에 저희 부모님들, 가난하고 돈 없는데 막 졸랐죠. 그랬더니 옥탑에 집, 저희 집 옥탑
다음에 어떤 '예술은 돈 투자해서 뭘 하면 보존 가능하거나, 매매 가능해야지 그게 무슨 예술이야', 이렇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제 거기에 대한 새로운
에다가 칸을 막아가지고 공간을 하나 만들어주더니, 거기에다가 작업을 모아 놓기 위한 공간으로 제 작업실이란 게 처음 가지게 되었고요. 근데 거기서
자리매김이란 거가 엄청나게 필요한 상황이고.
꽤 작업을 하고 지냈죠.
그 다음에 우리 같은 경우, 저도 지금 왜 대동여지도라든가, 근대라는 것에 자꾸 관심을 집중하게 되느냐 하면 무언가가 사라져 버리고, 무언가가 엄청난
그리고 독일로 가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그 구석 작업실, 그것이 일종의 실기실 공간이면서 중요한 작업 공간이 되었고.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고민하게 하는 근대를 그렇게 보는데. 우리의 근대를 그렇게 보는 게, 제 구속처럼 어떤 존재적인 고민을 끈덕지게 뭔가를 계속하던 그 시점에서 일제 점
부터는 아까 그 밑에 그 김윤환씨 작업에서 그 스콰트프로젝트 같은 경우. 제가 있었던 도시는 뮌스터라는 도시인데, 거기는 저렇게 일종의 점거라는 정
령기가 되면서 우리가 스스로 자기 고민을 하기보다는, 생존의 투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려요. 그런 상황이 되면서 이 고민들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
치적인 어떤 어떻게 보면 위험을 무릅쓴 행위보다는 좀 작가들이, 좀 어떻게 보면 정치적으로 현명하고, 이런 프로젝트 같은 걸 잘 만들어요. 그래 가지고
는 계기가 되거든요. 그 전에까지의 어떤 살아있는 고민의 현장들을. 그래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끌어들이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만 봐
거기는 영국군이 2차 세계대전 끝나고 나면서 독일이 다시 전쟁을 발발시킬까봐 독일을 네 군데로 나눠 가지고 네 나라가 다 점령하거든요. 하나는 러시
도, 그리고 그 당시에 생태적 개념들 같은 경우는 최환기 선생님의 기이론 이란 것을 보면, 생태론적 입장이 지금과 상당히 다르고요. 요즘 현대미술 쪽에
아가 점령하고, 하나는 영국, 하나는 미국, 또 하나는 프랑스 이렇게 점령하게 되는데. 저희가 있었던 도시는 영국군 점령지역이예요. 영국군이 지금도 있
서 들뢰즈의 철학들을 엄청나게 막 받아들이면서 하는데, 사실 들뢰즈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유목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그 밑에 바탕에는 생태
는데, 영국군이 점차, 우리나라 미군이 점차 내려가면서 가는 것처럼, 걔네들도 자꾸 떠나게 되거든요. 영국군이 쓰던 막사 하나가 그 도시에서 비게 되었
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생태주의를, 생태주의라는 것은 훨씬 더 노장사상의 영향이라든가, 더 깊이 응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최환기
어요. 그러니까 딱 비자마자 예술가들이 딱 안건을 내서 곧 바로 정부에다 시에다 요청을 해 가지고 건물을 걔네들이 받았어요. 받아 가지고 정부에 요청
선생님의 기이론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금껏 들춰본 바로는. 그래서 이런 담론적인 구성들, 작업들이 일단은 절실하다고 봐요.
해 가지고, 한 공간 당 10마르크인가 되는 그런 지원을. 평당 돈을 받게 지원을 해 줘 가지고, 제가 5만원 정도를 내고, 한 10평 남짓한 공간을 쓰게 되었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왜 중요하고, 왜 가치를 가져야 하는지, 어떤 인문학적 배경들을 이제는 체계화시키면서 심포지움, 세미나 등이 같이 동반되면서
어요.
이제 어떤 식물들, 소외되어져 버린 식물들, 예를 들면 김주현씨 같은 경우, 저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그거를 사진을 남겼던 적이 있는데,
근데 저에게는 그게 절실했던 게, 작업실이라는 거는 작업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작가들 간에 상호 네트워킹에서 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요. 그러
식물들이 존재해야 할 땅을 다 잃어버린 서울 공간. 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식물들을 다시 가져오는지 아세요? 보면 화분이라는 형태
니까 작가 간에라도 틀을 구성하기 때문에 함께 연대운동을 할 수가 있었죠. 그러니까 걔네들 중에는 걔네들이 그런 거를 기가 막히게 하는데. 정말 허접
예요. 도시 공간 베란다에 보세요. 전부 화분들인데. 그 화분들이 뭐가 있는가. 어떤 경우에는 거의 황당한 경우가 화초가 풋고추, 상추, 그런 게 심겨져
하거든요, 공간이. 막사로 쓰던 공간이기 때문에 정말 낡았고, 허접한데. 그 공간 안에, 그 중 하나는 꼭 전시 공간으로 두고, 또 밑에 공간 하나는 요만 정
있어요. 전 그걸 보면서 뭘 느끼냐면, 우리의 정체성이란 게 뭐냐. 그게 상실된 정체성일 수도 있지만, 또 한 가지 말해주는 건 뭐냐 하면 우리의 정체성이
도 밖에 안 되는 공간인데, 갤러리스트 하나가 들어왔어요. 그 안에 자기 갤러리로 이름을 딱 내고, 엄청나게 부지런히 활동을 하면서, 여기저기 작업들을
란 건. 한국 민족은 농경민족이에요. 우리 어머니들만 해도 농사짓는 거에 너무 익숙하세요. 그게 자기를 규정할 수 있는 건데, 그거를 다 상실했어요. 뭐
모아다가 작업들을 팔고, 거기 위에서 작업한 작가들도 거래하는 형태로 가고. 그렇게 되니까 자기네들 허접한 공간 하나를 내서, 일종의 우리나라 식의
가 상실시켰냐 하면, 산업화와 도시화가. 그러고 한편 더 집을 더 크게 지어서 그나마 전세금이라도 더 받아보려고 하는 황금만능주의가 이거를 다 잠식
대안 공간 형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작가 공동체 안에 대안 공간이 되니까, 거기에 일본 작가들 초대해서 전시하기도 하고. 또 프랑스 작가들을 교류
시킨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잠식되니까 소외가 느끼잖아요, 사람들이. 그러면 어떻게든 회복해야겠다는 향수가 생기니까 화분을 사다가 흙을 뿌리
하기도 하고 하면서 1년에 6번 정도의 전시를 거기서 하게하고. 그런 거를 다 결정하는 회의를 하게 된 그런 그룹에 이제 제가 같이 소속되게 되었죠. 처
고 고추를 심는 거라고요. 그래 어떤 집 같은 데, 옥상 같은 데 보면 상추밭이야. 스티로폼 박스 있잖아요. 왜 그 택배 올 때 있잖아요. 그거 거기에다 다 해
음에는 걔네들이 얼떨결에 그냥 준 거예요. 외국작가들한테 걔네들도 되게 폐쇄적인 게 있거든요. 얼떨결에 막 이렇게 되어 가지고, 제가 들어가게 됐어
가지고 상추 잔뜩 심어가지고는 할머니 올라가서는 매 거기 물주고 가꾸신다고요. 그거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예술이란 것이 과연 어디에, 과연 어디
요. 그래서 제가 나오면서 다시 한국 작가에게 주려고 한국 작가를 초청했는데, 그때는 배제되어 버렸어요. 아무튼 그런 부분들이 좀 있어서. 해외에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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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들이 그 해외의 예술계에 끼어들기 위한 어떤 중요한 베이스가 있는데, 어떤 것들이 그런 베이스가 되느냐 하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런 틀
주로 지하실 어디에 습한 데 짱 박혀요. 하하.(웃음) 그러니까 매일 그 집에서는 계속 소주병만 나와. 이번에 뭐야 천국의 계단인가에 거기에도 보면 남자
들 안에 처음 들어가느냐 마느냐와 뭐 좀 관련이 있어요.
애 한 애가 예술가잖아요. 거기 보면 딱 보면 그런 분위기의 작업실, 항상 닫혀져 있고 잠겨져 있는 허름한 공간에, 좀 그런 느낌입니다. 그리고 거기엔 사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어떻게 보면 지금 그 이후에는 제가 짐을 싸들고 들어와서 어떻게 운이 좋게 옥탑 방에 잠시 머물다가 창동 스튜디오가 돼서, 거길
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뭐 이런 느낌이라고. 몇몇 지인들만, 예술가들만 거기서 어울리는 이런 사교의 장인. 그런데 그렇지 않은. 보면 되게 일상적
들어가게 됐는데. 창동 스튜디오가 공간은 엄청나게 기가 막히게 잘 관리해서 해서 번지르르하게 지어놓고. 가보세요. 아까 보셨죠. 그리고 하루에 두, 세
으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좋은 지역 사회의 문화 공간이 되어야지만, 그게 대중들에게 알려질 거 아닙니까. 작가가 그렇게 고뇌를 해서 만들었는데,
번씩은 청소를 하는 거 같아요, 막. 그거 관리인원만 4명의 아저씨가요 막 24시간 문을 지키고 그렇게 관리를 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미술 행정 자체
작가가 알리려는 의지가 없어. 그러면 대중들이 알 기회가 없잖아요. 이게 자꾸 스스로 차단되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의
가 너무 하드웨어에 집중하다 보니까, 소프트웨어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 건가, 이 안에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 건가,
기능을 회복해 주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어떤 예술가들을 끌어 들여서 어떤 쪽의 예술을 진흥할 건가, 이런 계획은 없고. 공간 하나를 어떻게 근사하게 지어 가지고 누가 뜨거나, 윗사람들 오면
작업실이 그런 기능을 회복해줘서 우리도 스콰트같이 어떤 스콰트라고 이름 붙일 순 없지만, 서울 시내에 숱한 아틀리에들을 죄다 하루 어떻게 보면, 가
얼마나 근사하게 보여줄까. 막 소파 같은 거 번쩍번쩍하고, 거실에 텔레비전 끝내주는 거가 있고, 작가들 보고는 관리비 내라고 독촉하고. 이렇게, 이렇게
을이나 10월중에 오픈스튜디오를 터뜨리고, 아틀리에 맵을 만들면, 제 생각엔 모르긴 몰라도 거의 한 500 여 개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 시내에만. 그
되는 사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에서 운영하는 그렇게 번듯한 레지던시에서 그런 관리비를 요청하는 거나, 그런 경우는 정말 유사 없는 일이지
런 행사를 한 번 추진해서 죄다 그냥 하루, 한 일주일은 서울 시내 모든 아틀리에들이 오픈해서, 동네마다 붙여 줘 가지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여기저
만. 근데 그런 일들이 생겨나는 것도 문제인 거 같아요.
기 구경하는 재미를 좀. 왜 인사동에만 나와야 되느냐. 어떻게 보면 훨씬 자연스럽잖아요. 진짜 술 좋아하는 작가 작업실에 가면 술병만 있고, 아 이 사람
결국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제 베이스 안에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제가 창동 스튜디오 같은 좋은 공간에 있으니까 좋아요. 여러 가지로 좋
이 술 많이 먹으니까 그림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근데 완전히 화이트 큐브로 딱 정돈된 공간 안에다만 작품을. 자꾸 어떻게
아요. 하다못해 짐들도 좀 갖다 놓을 수 있고, 거기에서 이런저런 좋은 작가들과 교류가 있으니까 좋은데. 정말 계속 그 질문을 했어요. 본질적으로 작가
보면 치장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의 작업이라는 게 공간, 이런 거에 완전히 지배받지는 않는다는 거. 그리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들도 있어요. 물론 그게
김준기: 그 과정에서 저는 요즘에 화두 같은 건데. 로컬리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해봐요. 그래서 로컬이 뭐냐. 지역이잖아요. 지역 사회. 그래서 저기 양현
어떻게 보면 물리적인 작품 만들어 내는 데 있어는 아주 필수불가결하죠. 나는 매일 톱질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야 하고, 톱질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되
정 작가가 여기 길 안쪽에 작업실이 있어요. 그래서 얼핏 한 번 한 얘기인데. 우리 오픈스튜디오 한 번 묶어서 동네 주민들, 동네 주민 사람 작가들 묶어서
고, 거기서 먼지가 나는데 그거를 빨아낼 수 있는 그런 환풍 장치에서 기타 모든 시설을 해 놓을 수 있어야 작업이 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런 게 안 갖
페스티벌 같은 거 한 번 해보자. 이런 얘기를 얼핏 지나가면서 한 번 했어요. 그게 뭘 의미하냐 하면 인사동을 남한 사회, 대한민국의 미술 중심지로만 인
춰지면, '넌 작업하지 마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이제 그런 시설들이나 뭐 이런 것들이 자꾸 좀 더 나아져야 되겠죠. 그리고 프랑스의 스콰트처럼 어디
식했지, 인사동을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홍대 앞 하면, 젊은이 문화의 중심,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홍대 앞이라는 지
든지 빈공간이 있을 때, 예술가들이 점유해서“아 우리 공간하겠다”고 했을 때 좀 대중적 지지를 좀 해 줄 수도 있고, 예술가들이 그런 거, 어떤 창작 공간
역, 이렇게 생각해보면, 또 발상의 전환 같은 게 있잖아요. 그래서 인천이나 광주, 부산 이런 데는 지역이고, 인사동, 홍대 앞 이런 데는 중심, 중앙이다 이
으로 사용하는 게 우리 사회와 전체에게 득이 되는 일이고, 그게 어떤 문화적인 재활용이 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을 이해해줘야지 그것도 하는
런 발상들이 변화해 나가는 시발점으로 그런 페스티벌을 한 번 해볼까 생각을 했었어요. 좀 전에 말씀해주신 대목이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고.
거죠. 혼자 가서 작가라고 그러다가 다 잡혀가고, 허허.(웃음) 거의 우리 예술가가 있으나 마나한 존재고, 별로 존중받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란 게, 이런
또 하나는 소위 모더니티, 모더니즘이란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은데. 모더니티, 근대성이라고 하는 건, 어떤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모
작업실 환경이라든가 이런 작가를 둘러싼 삶의 환경 속에서 더 많이 드러나는 거 같아요.
더니즘이란 건 무어냐, 모더니티가 무어냐, 현대성이다. 현대? 늘 시간적으로 보면 자기가 살고 있는 당대가 현대였을 꺼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특정
김준기: 창동 나오면 어디로 가시게요?
해서 부르고 있는 현대라고 하는 것은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건, '근대적인 합리성, 이것이 구현된 게 모더니티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거기에서의 합리성
백기영: 그래서 지금 고민인데요. 제가 지금 올해 갑자기 안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바닷가에 자주 나가게 되는데, 바닷가 쪽에 어디 허름한 데 하나
이라는 것은 각 영역이 자기만의 영역을 특화시켜 나가면서, 체계적으로 영역을 분할해 나갔다는 것이죠. 역할을 나눠서, 너는 곤충학자야, 너는 잠자리
있으면 그 막사라도 하나 얻어가지고 들어갈까, 지금 생각 중인데. 알아보고 있습니다.
날개를 열심히 연구해 봐. 그거만 평생 공부해도 너는 너의 가치가 있고, 너의 일을 잘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영역이 분화된 거예요. 미술 쪽으로 돌려서
김준기: 좀 전에 말씀해 주셨지만 조금 압축해서 요약해서 말씀을 한 번 더 좀 해주세요. 그 현대에 예술가들, 특히 미술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이란 무엇
얘기하면, 그 이전 근대 이전에 미술가들이 했던 역할에 비해서, 모더니티 이후에 미술가들의 역할은 훨씬 좁아져요. 그래서 물감이 뭐야, 캔버스가 뭐지,
인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좀 들려주세요.
뭐 물감과 캔버스의 문제를 가지고 들입다 파서 그 캔버스 안에 갇히는 거죠. 결국 미술이, 그래서 뭐 역사랄지, 내러티브, 서사랄지, 또 삶이랄지 이런 것
백기영: 그러니까 그 작업실이란 개념도 작가마다 좀 서로 차이가 많이 있을 거 같아요. 작업실 공간이 어떤 면에서는 저 같이 아까 예를 들어 구석 작업
들을 좀 배제하고 물감과 캔버스 이것만 가지고 계속 연구해 나가는 게 모더니즘의 정점이에요. 미니멀리즘이라고 얘기하는 것. 그것이 깨지면서 '아, 이
은 직접적으로 작업실이라고 말하기엔 뭐 하지만, 어쨌든 사유 공간이죠. 작업실이 사유공간이고, 또 한편으로는 제가 독일에서 간절히 필요로 해서 국
제는 미술 안에 삶도 들어오고, 역사도 들어오고, 이야기도 들어오자', 이게 포스트모더니즘이거든요.
가에서 운영하는 그래서 작가들이 예술가 공동체를 구성했었던 그 작업실은 어떻게 보면 예술가들 상호 혹은 예술가와 사회와를 연결하는 사교 공간으
그러니까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 작업실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여기는 작업실, 여기는 전시장, 여기는 만드는 곳, 여기는 보여
로서의 중요한, 미술계를 구성하는 틀로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공간일 수 있고.
주는 곳. 이렇게 해서 작업실에서는, 대중들이 여기 있다고 하면, 작업실에서는 열심히 그려요. 한 2년 동안 열라 그려. 그래서 한 2년 쯤 지나면 전시장에
또 한편으로는 그 작업실에서 제가 그나마 또 좋았던 거는 1년에 한 번씩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서 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거요. 그러니
'짜잔'하고 보여주는. 그럼 관객들이 와서 이렇게 보고, 언론도 와서 집중해주고, 뭐 월간미술에 리뷰도 나가고, 신문에도 소개되고, 그러고 나면 뭐 이제
까 제가 지난번에 한 번 그 민예총에서 원고요청이 와서, '여러분 전시를 왜 하십니까.'라는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전시, 작가가 자기 작품을 소개
팔리는 건 팔리고, 안 팔리면 죄다 싸서 작업실. 그러면 생산하는 곳과 유통 또는 소비되는 곳이 말 그대로 분리, 차단되어 있잖아요. 이것이 모더니티가
하고 자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통로를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너무 전시에만 집중해요. 근데 사실은 그 전시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공간 대여 해야죠, 거기
만들어 놓은 영역 분할이에요. 그걸 극복해 나가겠다는 것이 포스트 모던한 미술 또는 포스트 모던한 미술행위 뭐 이런 건데, 작업실도 이젠 그런 식으로
다 뭐, 뭐 초대장 보내야죠, 뭐 팸플릿 만들어야죠. 그것도 계속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그렇게 사람들이 목을 매고, 투자를 하는
바뀌어 나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공장과 전시장이, 작업실과 보여주는 곳이 분리되어 있던 것이 점점 결합되고 있다는 것이. 여기 있는 작가들의 작업
데.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아틀리에는 17세기, 18세기 아까도 예를 들었지만, 자기 작품의 발표 공간이면서, 자기 작품을 쉽게 연결시켜줄 수 있는 중요
실은 대개 개인적인 작업실들이에요. 그냥 작가가 혼자 만드는 곳이에요. 공장이에요. 근데 밑에 층, 지하층, 이런 데 있는 거 보면 섞여있어요. 그래서 작
한 베이스거든요. 아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인데요. 그게 제대로 제 기능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게 큰 문제인 것이, 창동 스튜디오의 예도
업실에 직접 주민이나 아이들이 와서 교육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자기 사는 집은 반지하 작업실인데, 거기서는 작업 별로 안 하고, 편
마찬가지예요.
집, 이런 거나하고, 밖에 나가서 주민들과 함께 삶의 현장에서 미술을 가지고 한다든지. 또 김윤환 작가의 경우에는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아틀리에를 만
그러니까 예를 들면, 제가 저희 집 뒤, 저희 창동 스튜디오 뒤에 있는 자장면 집에 지금도 전화를 하면, 아 거기 미술학원이요? 알겠습니다. 그 자장면 집
들어서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하겠다, 뭐 이렇고, 또 어떤 사람들은 스콰트처럼 공공건물을 점거해서 거기서 작업하고 사람들 불러서 파티하고, 작가들끼
아줌마는 창동 스튜디오가 아직도 미술학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 하면 지역 사회에 전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거예
리 교류도 하고 이런 식의 포스트 모던한 작업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 거죠. 탈 모던한, 그래서 근대성이 명령한 역할, 역분할, 이런 것들을 저희가 섞
요. 그러니까 어떤 지역에 한 예술가가 들어와서 작업을 하고 산다면, 작업실이 오픈이 되고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미술가들은
어 나가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작업실이 변하고 있다. 이것이 곧 예술이 변하고 있다와 연결이 된다는 거죠. 우리 지역 주민작가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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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얘기했던 우리 동네 작업실의 네트워킹 프로젝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짧게라도. 좀 있나요? 이 동네에 작업실들이?
을 때, 내가 과연 어떤 작업을 줘야 될까를 되게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이 전시를 보면서, 마치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까 참 다양한 형태의 작업실에 대한
관객: 제가 말로 들은, 위층의 오빠는 절친한 사람이고, 그 외에 있는 두 셋 정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제가 여기에 온 지 일년 두 달 정도 되었는데, 그
조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면에서 참 긍정적으로 느껴지고요. 이제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게 일차적으로, 요러한 형태가 진행이 될 수 있겠지만,
이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뭔가 작업할 공간을 간절히 원했을 때, 그때 찾으러 다니고 막 그랬을 때는 정말 진짜 지하철에 환승할 때의 넓은 공간마저도 되
좀 더 이 부분은 더 많이 리서치 되면서 더 2탄, 3탄 좀 더 진행되어야 될, 그런 과제 중의 하나가 아닌가. 어떤 이 전시는 한 번 화두를 던지는 차원에서
게 절실하게 느껴졌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공간들도 많은데, 왜 나한테는 정말 몇 호짜리 그림 하나 펴놓고 작업할 공간이 없을까, 하면서 굉장히 절실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그 이후에 더 많은 비슷한 유의 혹은 좀 더 심화된 형태들이 더 나오면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전시란 생각이 들고요. 좀
게 내가 작업할 공간들을 찾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원하게 되면 뭔가 좀 이루어진다고 쪼그마한 지하방에서도 해 본 적도 있고, 뭐 친구들이랑 모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면 이제 요거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전시만 시키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사비나 미술관 자체가 가지는 전시 공간의 협소함, 이런 것들
여서 해 본적도 있고. 근데 이제는 그래도 어엿하게 작업실이라고 해서 딱 자리를 잡았는데. 그나마 그 공간조차도, 되게 좁은 공간이에요. 음. 좀만 가면
도 있고. 그 다음에 좀 저부터도 기록 사진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런 틀들인데. 실질적으로 진짜 작업실의 체취와 작업실의 어떤 이동하는 작업실 같
있는데, 좋은 공간인데, 그만큼의 좋은 공간을 지금은 활용을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많이 했고요.
은 경우에 그래요. 실질적인 좀 더 액티브한 형태들이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었으면 어떨까. 그런 게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다분히 그런 부
이 전시를 보면서 더 어떤 나에게 내 작업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그래서 위층에 있는 오빠가 미디어 아트를 해요. 그리고 그 오빠도 어떤 공간,
분들에 액티비티가 박제화 되어 있는 느낌을 좀 받았어요. 좀 더 여유 있게 확 열어버릴 수 있는 틀을 좀 생각해봤으면 어떨까.
자기의 작업 공간에 대한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저희는 그냥 2, 3층을 오픈을 하자 하는 생
김준기: 그래서 예전에 박불똥 선생이 진행했던 토끼와 거북이 프로젝트인가 뭐 그래서, 이 작가가 처음 전시 오픈 할 때는 전시장에 아무 것도 없어요.
각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할 수 있는 이벤트,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는 거에 대해
텅 빈 전시장에서 전시를 오픈해요. 어, 뭐 하는 플레이지? 좀 있다 갔더니 작가가 그 전시기간 동안 계속 그곳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써서 낙서도 갖다가
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붙이고, 왜 지하에다가 자기 작업실 새로 짓는 도면이랄지, 건축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서류들 붙여 놓은 작가이고. 그래서 그러면서 하나, 한 장, 두 장씩
김준기: 제가 지역주의자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 동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하하.(웃음) 그 옆에 있는 김선주 작가가 얼마 전에 전
뭔가 붙고, 찾아온 사람과 대화하면서 뭐 끄적일 거, 메모한 거, 이런 것들 붙이면서 진행형으로 전시를 가져갔던. 그래서 박선생님한테 그런 부탁도 해봤
시장에서 천장에다가 한 200몇 십 켤레의 신발들을 대충 매달아 놨었어요. 소위 설치작업이죠. 그렇게 되면, 설치작업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작업실의
어요. 음. 또 그리고 어떤 페인터, 기름, 송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화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미술관에 옮겨다가 한 번 관람객들에게 그림 그리는 모습
역할이 달라요. 그래서 작업실에서 그 전시를 위해서 작업실에서 무슨 신발공장처럼 신발을 만든 건 아니고, 작업실에서는 좀 전화하거나 팩스 보내거나
이나 이런 것들도 좀 보여주고, 작업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좀 보여주고, 이런 기획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한계들, 시간, 재정 등등 여러
신발 모으는 일들이죠. 200몇 십 켤레가 다 사람들로부터 모은 거니까. 사람들로부터 신발들을. 그래서 그랬을 때의 작업실의 역할은 이런 작품 생산 공
가지 문제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작업실 리포트 해서 사람들은 '작업실을 여기다 옮겨놨나 보다'하고, '작업실을 보러 가자'고 왔는데, 작업실은 안 보이
장의 작업실하고 달라지죠. 1분 30초에 걸쳐서 그런 설치작업과 작업실의 관계에 대해서 좀.
고 작품만 보여요. 그죠? 다 작품화된 거잖아요. 다 박제가 되었다는 게 정확한 지적인데. 그런 한계를 기획자들 또 어떻게 커버하면서 변명 하냐면, 이
김선주: 예전에는 평면 작업 같은 걸 할 경우에는 어떤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걸 펴놓고 칠하고 이런 공간이 필요했는데, 어느 날 그런 공간을 막 찾
전시가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작업실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그래서 작품 자체를 물질로 그대로
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까, 거기에 얽매여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거기에 목적이 주어지니까 내 것을 못 찾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전시하고 투척하고 옮겨놓은 1:1의 관계가 아니라, 이것을 사진은 사진으로서, 설치는 설치로, 영상은 영상대로 각자의 매체나 방법으로 작업실에 관한
생각이, 내가 막 걸어 다니면서 움직이면서,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도 어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작업실이
담론을 끌어내는 그런 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2차, 3차 다른 변형의 기획들이 가능하겠지만 첫 번째 이 작업실 리포트 전시는 그정도 선에
란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작업실이고, 내가 어떤 공간을 봤을 때, 나로 인해서 어떤 작품이 나오고, 나로 인해서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물이
서 스타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다는 아쉬움에 대한 변명도 좀 있습니다.
또 보이는 것들도 어떤. 내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 달라지니까. 어떻게 보면 나는 내가 내 스스로 작업실이 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 저는 상상했던 것보다는 음…….정말 작은 공간인 거 같아서 실망도 조금 했고요. 집에 와서 좀 더 많이 찾아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좀. 지하의 드
그래서 이제 신발을 모으거나 이럴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고, 어떤 그 과정 자체가 움직이는 자체가, 길이며 차를 타고 가는 것, 그 모든 게 나
라마고씨 작품은 되게 좋았고요.
의 작업실이기 때문에 약간 평면 작업이나 그 어떤 걸 만들 때 하고랑은 틀리죠. 생각 자체가. 공간이란 작업실을 생각했을 때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분 작품도 사진 이렇게 보고 계속 웃었어요. 하하.(웃음) 마치 제 전생화를 보는 거 같아서. 그런 점이 좋았어요.
어떻게 역으로 나처럼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공간이 아닌, 어떻게 보면 크게 보면 우주일 수도 있고, 지구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고. 그냥 내
김준기: 그 작업실에 관해서,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미술가에게는 아트팩토리다. 그래 가지고 사회적으로도 노동자 또는 노동자의 공장 이런 것들에
가 가는 모든 곳이 내 작업실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이 작업실이라고 딱 생각하면, 어떤 스페이스만
대해서는 시스템이 뒷받침해주잖아요. 작업여건, 공장의 위치, 교통, 환경과 공장.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배려와 제도와 염려들이 있는데, 예술가의 작업
생각하게 되죠. 거기에서 좀 여기 있는 것들이 많이 의존하는 것들인데, 저는 그렇게 작업실을 생각하고 있어요.
에 관해서는 그런 시스템에 의한 배려라든지가 없어요. 미술연대 사무처장이신 백기영 작가께서 그런 사례랄지 앞으로 또 그런 것들을 위한 논의 과정에
김준기: 작년에 암스테르담에 갔다가 누구죠? 렘브란트인가? 거기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고 해서 열심히 좇아갔죠. 그런데 다리품
대한 25일 세미나가 있거든요. 그때 저랑 박신의 선생님이라고 프랑스에 오래 계셨던 분, 그리고 청주에서 점거 아틀리에를 만들려고 모의를 하고 계신
판 거에 비해서 별로 볼 것이 없어서 실망했지만, 그 작업실 자체가 하나의 의미 있는 소통 공간으로 바뀔 가능성도 다분히 많다는 거죠. 특히 구본주 작
김기현이라는 작가. 이렇게 발제를 하게 되는데, 그때도 논의가 될 거 같습니다만, 백선생님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가 같은 경우는 작업 공간이 커요. 그리고 저 천장도 되게 높잖아요. 그래서 큰 덩치 있는 작업도 있고. 작년에 작년 9월 달에 요절을 했는데, 어 유족들은
백기영: 사실 그게 어떤 중간 단계 과정이란 것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것이 미술에 대한 인프라에 대한 문제와 연관이 있어요. 왜냐하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저 공간이 경기도 포천에 있으니까 광릉에서 약간만 올라가면 있어요. 저 공간 자체를 뮤지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
면 그런 제도를 집행하려고 할 때 일반 대중들의 입장에서 이제, 저도 독일에서 들었던 얘기예요. 독일에서도 한 두 사람 괜찮고, 그 또 배울 만큼 배우고
고 있어요. 물론 돈도 많이 들고, 계획도 잘 세워야 하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예를 들어 저런 공간이 뮤지엄으로 바뀐다면 되게 좋겠죠. 찾아가면 옛날
한 사람이고 한데, 독일에서 어떻게 지내냐 해서 아 독일 너무 좋다. 지원금도 팍팍 나오고 막 작가들 지원해 주는 것도 너무 좋고. 그랬더니 이 친구가 딱
에 쓰던 작가의 작업실, 도구가 있고, 또 미완성된 작품들도 자연스럽게 배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작가가 쉬던 공간, 생활공간들까지도 이렇게 볼 수
정색을 하면서 하는 소리가 아 나는 그거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취미생활을 하는 데는 한 번도 지원을 안 하는 정부가 예술가라고 등록만 되면 걔네들은
있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사무실 기능을 하는 요즘 작업실과는 또 다른 그 맛이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백기영, 김선주 이런 식의 프로
돈을 파주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젝트성, 또는 미디어를 가지고 하는 작업들, 설치작업 이런 것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열린 가능성들이 있어요. 새로운 미술, 소통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김준기: 독일 사람이요?
이런 것들이 있는데. 저렇게 고전적인 조각이나 회화를 하는 작가들의 공간도 여전히 유의미하고 유효하죠. 그래서 미술이 아마 두 쪽으로 계속 갈 거 같
백기영: 일반인이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런 것들이 어떤 쪽으로 더 전향해야 되냐 하
아요. 설치영상이 뜨니까 회화는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이, 이제 거꾸로 간단 말이죠. 트랜드가 바뀌어요. 그런 것처럼 미술이 어느 순간 싹 바뀌지
면 정말 일반인들이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창작 생활이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동호회나, 그 어떤 것들이 확산되어야지 그런 게 되
않을 거라고. 그래서 저런 작업실의 맛, 의미, 기능, 이런 것들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그런 것들도 이 전시, 작업실 리포트에 충분히 반영이 되어 있다
는 계기가 아니라면 그런 게 쉽게 연결되기가 참 쉽지가 않아요. 어떤 작가들만을 특별 보호하는 거가. 그게 시스템화 되기에는 참 더 어려움이 있지 않을
고 생각해요. 백선생님은 이 전시 전반에 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참여 작가로서. 기획전이니까 궁금하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중간 과정이라는 게 있어야 될 거 같아요.
백기영: 사실 이 전시 기획하시면서 그때, 그때 조언을 많이 구했고, 같이 고민을 많이 했었던 전시거든요. 그러면서도 저한테 작가로 직접 참여요청을 했
김준기: 그래서 그 작업실의 역할이 작가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소통이 되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이어야 되겠다는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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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가 좀 있어야겠죠. 어제는 드라마고라는 작가가 작가와의 대화를 했어요. 여기서. 그때 인천 지역주민도 왔어요. 그리고 미술학생도 많았고, 작가도
백기영: 요즘은 거의 그렇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저로부터 벗어나는 시점들이 아까 말씀드렸는데, 그 어떤 시점부터는 아 이게 나 안에 머물러 있어
있었는데. 그때 나온 얘기가 마고는 한참 지역주의 얘기를 했어요. 인천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작가가 삶을 살아가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어떤 이로운 점
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사회 연구적, 사회, 연구, 학문적 사회연구프로젝트라고 그렇게 부르는. 독일식으로 말하면 '비셴샤프트 소
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는 거죠. 얘기를 하다보니까 이 친구가 인천 얘기를 막 하고 있어. 인천은 원래 어디가 중심지였는데, 지대적으로 어떻
숄 포시용 프로젝트'라고 하거든요. 아예 그런 명칭이 있어요. 프로젝트가 그냥 프로젝트가 아니고. 제가 진행하는 학문적 사회연구 프로젝트라는 형태
게, 어떻게 확장이 되어 나갔고, 거기서 생겨나는 문제가 이런저런 문제고. 인천의 주민들의 몇 %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문
로. 그렇지만 어떤 예술적 방식으로. 작가가 시도하는 것은 미학적 결과물을 유추해내기 위한 예술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형태지만, 결국 연구되는 것은
화적으로 이런, 이런 소외 지역에 살고 있고 등등. 인천에 대해서 막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드라마고는 인천 전문가야. 그리고 인하대학교를 나왔어요.
학문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연구하는 형태이죠. 아까 그 이후에 보여드렸던 정원이주 프로젝트나 지금 생명의 땅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저쪽으로 그런 방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지금 전업활동을 하고 있죠. 예술가라는 지위를 고집하지 않고, 이를 테면 빈민운동가로서의 정체성 같은 것도 가지고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있는 거 같고. 국내 사람의 정체성 같은 이런 것도 갖고 있어요. 그러면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예술가가 과연 뭘 하고 사는 사람이냐. 한 몇 년 동안 작업
김준기: 그. 백선생의 그런 작품 행태에 대해서 한 말씀만 더 보태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 사석에서 얘기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지금 백기영에 대해 얘기
실에 혼자 쳐 박혀서 작업하고 전시장에 갖다 보여주고, '짜잔'하고 나타났다가 다시 싹 들어가고. 이런 식의 활동을 하는 것이 근대적인 예술가의 활동이
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어, 공공미술, 미술의 공공성 뭐 이런 얘기들이 요즘 화두 같은 건데. 로컬리즘이나 공공성 이런 거 얘기할 때 자주 나오는 게 공
었다면, 탈근대적인 예술가의 활동은 아주 로컬한 활동들, 이런 것들이 기본이 되어야겠다고 해서 삶의 영역 속에서 예술 행위가 자연스럽게 매 칭될 수
공미술이 그냥 작업실이나 전시장을 벗어난 바깥에서의 미술이냐, 예를 들면 건물 앞에 조각이 서 있어. 이런 것들을 대표적인 공공미술이라고 불러왔어
있는 그런 삶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했을 때. 그런 작업실 시스템들 아주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시스템들이 공공영역 속에서 고민되어야겠다는 그
요. 그런데 '뉴 장르 퍼블릭 아트'라고, 새로운 공공미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저런 식의 프로젝트성, 그러니까 과정형, 주민참여형, 또 결과가 남지 않
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죠. 합의 과정들은 충분히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고, 세미나도 필요하고. 여기 두 분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
는 미술, 또 비주얼로 결과물을 뽑아내지 않는 미술 이런 것들을 뉴 장르형, 새로운 유형의 공공미술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 공공미술의 비평적
는 분이세요?
잣대 중 하나는 이런 거예요. 효율성, 효과.
관객: 백기영 선생님 후배예요. 회화과. 이제 2학년이요.
아까 우리가 어떤 전시나 작품을 보면 아 이 작품 참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내지는 더러움, 추악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표현적이다. 뭐 이렇게 하는데, 아
김준기: 작업실 언제 가질 거예요?
이 전시 참 효과적이네. 이 작품 참 효과적인 작품이야. 효율성이 높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공공미술 또는 뉴 장르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백기영: 학교 졸업해야 가지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효율적이었냐, 작가 너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서 이런저런 걸해서 미학적 성취도를 높이는가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삶의 현실
김준기: 학교 작업실 얘기 좀 해주세요.
속에 들어가서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그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적인 것들 전시했느냐 이런 것들까지도 학문적 잣대로 제공된다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미
관객: 1학년 작업실은 열악하거든요. 2학년 때부터 자기 공간이 생겨요. 그러니까 1학년 때는 그냥 공동 실기실처럼 그냥 앉았다가 아무데나 앉았다가
술은 효율적인 미술이 무엇인가를 또 생각하게 될 것이고.
가고. 2학년 때부터 우리가 진짜 내 생각대로 다 만들 수 있는 그런 작업실이 생겨요. 4학년 때까지도.
또 하나는 수잔 레이시라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델인데. 공공미술이 얘기되는 건 뭐냐 하면 그동안 미술이 공공적이진 않았다는 거, 아주 사적이었다는
김준기: 제 고등학교 때 작업실 체험을 좀 잠깐 얘기해 드릴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반 하다가 미술학원 다니면서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학
거죠. 그래서 사적인 미술과 공공적인 미술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져있다 라고 하면, 사적인 미술의 모델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하면 작가 개인의
원 다니는데. 그때는 학원이 아니라 화실이에요. 그래서 어떤 화가의 화실. 처음 다녔던 곳은 미술학원의 형태였는데, 그 다음 옮긴 곳은 대학원생 아니면
감수성, 개인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요. 개인의 감정, 개인이 느낀 것,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미학적 차원의 어떤 것으로부터 표현하는
대학을 갓 졸업한 고등학교 선배의 작업실이었어요. 근데 안쪽은 작업실이고 바깥쪽은 화실. 그 공간은 저에게 금기를 넘어서는 비밀의 공간 같은 곳이
것이 사적인 미술의 모델이에요. 근데 이것이 자기가 취한 정보를 가공하고, 이것을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공공성이 요만큼 더 다
었어요. 거기에 가면 눈치 안 보고 담배를 피울 수 있고, 그곳에서는 기타가 있었어요. 레드 제플린의 '스테이 어웨이 투 헤븐' 같은 노래들을 연주, 두드
가오는 것이라고 점을 찍어요. 물론 완벽하게 단절된 단계는 아니라, 선으로 연결되는 것들이겠죠. 그리고 이것이 공공성과 만나는 지점에 와 닿으면, 무
리면서 막 열심히 연습하고. 또 당시에 아직 판매 금지되어 있던 김민기의 1집 앨범, 보라색 단색에 청년 김민기가 이렇게 측면으로 딱 이렇게 있던 앨범.
슨 항목이 들어가는가 하면 새로운 합의, 합의도출, 뭐 이런 거예요. 그래서 어떤 작가가 어떤 지역의 어떤 사안에 대해서 예술적 프로젝트로 개입을 해
그거를 아침이슬, 친구 이런 노래를 들으면서 금기시 되었던 어떤 것들을 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아지트, 아늑함 이런 것들이 있었어요.
서, 이런, 이런 정보를 취합하고 그것을 가공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또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떤 현안사항, 이슈에 대해서, 현상에 대해서 새로운 합의를 도
그 다음 고3때 다닌 데는 안창홍이란 화가의 작업실인데. 역시 바깥에는 이젤과 석고상이 있는 미술학원과 같은 형태고. 안쪽에 내밀한 화가의 방이 있
출하는 거죠. 이게 이런 게 아니라 이런 거 일 수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거나, 인식을 전환시킨다거나, 시스템을 바꾸는 데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프로
어. 거기 딱 열고 들어가면 그 새가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림들, 또 건물과 건물 사이에 그네 같은 게 있어서 거기에서 아이가 그네를 타는
젝트를 통해서. 물론 예술적인 방식이겠죠. 그래서 사적인 개인의 감수성 표현에서부터 새로운 합의의 도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예술적 활동으로
위험한 놀이 라고 하는 그림. 뭐 이런 것들도 있고. 그 당시에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왜냐하면 고등학생의 시각으로 봐서 미술 같지 않은 미술이 거기 있
연결이 되겠지만. 예술의 공공성 등을 좀 더 높게 담보하려면, 합의 도출 뭐 이런 데까지 나아가는 과정들, 뭐 이런 것들이 있어야 되겠고.
었던 거죠. 메모가 있어. 작가가 현실을 떠나서 그 어떤 의미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해서. 연필로, 스케치북에 쫙 해서, 딱 꽂아놓고. '아, 예술이 이런 거
저는 백선생의 작업이 처음에 구석에 처박혀서 요러고 전시장 벽에다가 부딪치고 이러던 진짜 혼자 노는 거잖아요. 혼자, 그죠? 혼자 게임하는 거죠. 내
구나. 아 얼른 예술가가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오늘날에 제가 가지고 있는 미술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은 아마 그 시기의 충격이 되게
가 뭐지? 예술가란 뭐지? 아 이런 고민들로부터 점점 폭을 넓혀나가면서 공공성을 확보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아직까지 방식 자체 이런
컸던 거 같아요. 기회가 닿으면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서 그 향기를 느껴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으면 이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어
것들은 공공성을 좀 더 강화시켜야 될 대목들이 있어야 할 거 같다. 방법적으로도 그렇고, 최종 목표 같은 것들도 그렇고, 그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요. 백기영씨도 또 김선주, 양현주 이런 작가들도 가능하면 지역 주민들과 많이 만날 수 있는 작업실 형태를 만들어주시면. 여러 전시들을 아마 보고 다니
백기영: 저는 이제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전제에 있어서는 좀 다른 부분들을 좀 느끼거든요. 그러니까 그거를 공공미술을 기존 미술은 사적인 미술이고, 공
실 텐데, 이 작업실 얘기 어떠셨는지. 또 백기영 작가의 작업 어땠는지 들어보죠.
공미술은 좀 더 공공적인 형태의 예술이고, 효율적인 예술이라는 형태로 분류하려 하기에는 조금 무리한 부분들이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왜
관객: 저는 제가 말할 자격이 되나 모르겠는데요. 저도 뭐 한동안 작업을 했고 미술대학 4년을 다녔기 때문에 여러 전시들을 다녀봤는데요. 이런 작업은
냐하면 공공미술도 사적일 수 있어요. 그리고 아주 사적인 미술도 공공적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거가 공공이란 것이 단순한 장소 구분만도 아니고, 효
사실상 처음 접하지요. 작업실을 이렇게 드러내는, 그래서 굉장히 새롭고 아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 거 같아요. 제가 미대를 다닌 동안에 그렸던
율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효율성의 문제로 접근하면 디자인보다 더 효율적인 게 없거든요. 공익성이란 것을 목
그림은 단지 막 쥐어짜낸, 삶에서 나온 고민이 아니었던 데 반해서, 작업실을 드러냄으로써 자기 삶과 동시에 그 작업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게, 그게 정말
표로 할 때,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구분하는 데 있어서의 기준은 '공공미술이거나, 아니거나'는 다 같은 상황이 아니냐.
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백기영 선생님 작업도 굉장히 쉽게 저한테 다가올 수 있는. 아직은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모르는 게 많은데 재미있
일례로 공공미술 중에는 어떤 공공미술들이 가능하냐 하면은 예를 들어 타다시 카바마다 같은 사람은 5km를 넘게 나무로 길을 만들어요. 나무로 길을
었어요. 그리고 굉장히 좀 신선하고, 어느 정도 저는 미술에서 많이 떨어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작업들을 통해서 저도 이제 아직은 예술과 가까이
닦아놓는 일이라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무의미한 것이에요. 땅위에다가 왜 나무로 길을 만들었냐는 말이죠. 별도로. 그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그거예요.
할 수 있겠구나 쉽게. 예술에 다시 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웃음)
어느 날 한 할머니가 개를 끌고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나뭇길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 날은 나뭇길을 걸어서 왔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자기 할아
김준기: 백선생 작업은 작업실을 벗어난 프로젝트성이 되게 많죠.
버지한테 말하기를. '아이고 할아버지, 영감. 나 오늘 아침에 나뭇길이 있어서 나뭇길로 산책 해 왔어' 라는 얘기를 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일상 속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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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색다른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 5km의 나뭇길을 닦는 사람이에요. 무지한 거거든요. 거의 어떻게 보면 저게 뭐하는 짓이냐 저게. 그렇지만 그 길이 의도
보인다거나 작가의 섬세한 붓질 같은 게 보인다거나, 이제 그런 게 묘미를 주는 예술이니까. 뭘 그린 걸까? 저 안에 무슨 의미가 있지? 라고 생각하면 안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술가가 아주 그 일상 속에서, 자기가 사소하지만 어떤 색다른 경험들. 예술가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기 섬세한 촉수를 가지고서
돼요. 그냥 그건 물건이야. 그런 미술들에 대해선 또 다른.
일상 속에 느낄 수 있는 그 경험을 일상 공간, 공공 공간에서 다시 체험하게끔 만드는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죠. 일종의 미술 테라피가 될 수도 있는
관객: 미술 같은 것도요. 모르잖아요. 보통 애들은. 그러니까 그런 거라도 쉽게 공부를 하는데요. 일단 전시를 하신 사람들도요 전시하는 사람 눈높이에
거고. 어떤 다른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제 생각에는 그거를 오히려 공공미술이라고 하지만, 공공미술의 무목적성이라는 부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
맞게 국한돼서 하지 말고, 쉽게, 쉽게 했으면 좋겠어요.
는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김준기: 그래요. 미술이 잘 못 했어요. 허허.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왜 그랬을까. 미술가들이 뼈저리게 들어야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어, 벌써
근데 아마 그런 비판에는 어떤 게 있냐하면, 재작년인가 있었던 공동묘지 프로젝트라던가. 무슨 공공미술이라고 해서 공동묘지에 가서 놀면 공공미술이
6시가 넘었네요. 그럼, 백작가가 마무리 발언 좀 하는 걸로 하고 마치겠습니다.
되는 거야. 뭐 이런 그 어떻게 보면 이벤트적이면서, 전혀 무가치한. 저는 한국의 공공미술의 질적 문제에 대해, 저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이게 예
백기영: 예,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제가 지금 종이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혹시 밑에 카운터에 나가시기 전에 종이 하나 마련해드릴 테니까 이메일이나 성
술이야 아니냐의 문제, 그러니까 공공성에, 효율성에 문제만 할 뿐이지, 한국 미술에 있어서는 그 예술의 질은 그냥 사진 작품 보거나, 그냥 평면작업 보
함 적어주시면 제 전시할 때 하다못해 광고 이메일이라도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적어주시면 그때그때 제 활동상황 같은 거 좀 보내
거나, 거기서 느끼는 예술적 감성이란 것이 있는 거고, 그게 가지는 작가의 그 어떤 전율 넘치는 고민의 결과물인데. 그게 공공적인 영역에 나오는 거예
드려서 알려드릴 수 있게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 그것이 나오는데. 어떤 형태로 연결되느냐의 문제지, 그게 그냥 고민하지 않은 것들을 그냥 공공으로만 가지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완전 쓰레
김준기: 예, 수고하셨습니다. 함께해주신 관객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기가 되는 거고. 아 없었으면 좋겠는데 자꾸 길거리에서 거치적거리는 거고. 다들 울고 있는 그 공동묘지에서 진짜 히히거리면서 장난치고 있는. 전혀 분 위기 파악이 안 되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보면 왜 학문적 사회 연구 활동이란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하면 공공성 중요하고, 지역성 중요하지만, 학문적 연구, 스터디를 하는데. 어떤 스터디냐. 예술적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스터디여야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이런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베를린에 엄청난 지금 수도가 되면서 막 폭발적으로 건물이 올라가고 막 변화되는 환경에 한 작가가 어떤 황당한 주 장을 하냐하면, 그 지역에 화산 연구 기구들을 만들어요. 그래서 화산 연구회라는 전문기구들 같은 거를 자기는 조형물 같은 걸로 제작을 해 가지고 가서 막 보고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그래서 전시를 한단 말이죠. 그래서 베를린을 화산폭발지구로 이 사람은 연구를 하는 거야. 멍청하고 아주 황당한 짓인데. 그래서 화산폭발위험 측정을 자기가 측정하는 방식으로 측정해요. 화산폭발지구가 아니죠, 베를린은. 그런데 이 사람은 심리적으로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거를 접근해서 공부하고, 공부한 결과들을 이거는 다분히 예술적인 방법이고, 전위적이면서 황당무계한 작가만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예 술적 카테고리에서 이해가 되지만 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그냥 연구한 것들을 그냥 예를 들어 무슨 생태적인 것들 연구한 결과들을 딱딱 사진만 찍어 놨 다. 아주 지루한 그거는 예술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부분들. 그런데 우리가 아직 과도기적인 부분에 있지만, 예술적 전향이라는 것이 시도되지 않은 공공 미술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는 거 같아요. 그 부분을 저는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에요. 김준기: 잠깐만, 80년대 후반부터인가 겨울대성리라고 하는 프로젝트가 지금까지도 계속 열려요. 당시의 답답했던 미술계 현실, 이런 것들 벗어나려고 젊은 작가들이 대성리로 간 거예요. 그것도 겨울에. 겨울에 대성리가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황량하고. 그런데 거기서 뭔가 예술을 한 거야. 근데 그게 처 음에 할 때는 뭔가 시대적인 정신과 맞물려서 의미 있는 어떤 것이었겠죠. 그런데 그게 해마다 반복되다 보니까 지금은 의미가 없는 거야. 바깥으로 나간 다고 그게 뭐. 왜 나가는데. 그 추운데. 그랬을 때 효율성이 떨어지는 바깥미술이다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효율성이란 비평적 잣대 가운데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 기존에 그러지 않았으니. 앞으로 그것도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거였고. 충분히 예술적인 방식 으로 접근하는 것이 공공미술에. 왜냐하면 퍼블릭 아트니까 충분히 고려해야 될 것이고. 아까 디자인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디자인 영역에서도 퍼블릭 디자인이란 말을 하잖아요. 그랬을 때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뭐냐 하면 클라이언트가 요청하는 그것을 생산하면 그것은 디자인이고. 예술가가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자기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불어넣어서 만들면 그것은 아트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어요. 이 여러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그랬을 때 디 자이너들이 할 수 있는 아트 행위도 분명 있을 거란 거예요.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이런저런 시각 이미지 생산을 하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 고 있어도 충분히 퍼블릭 아트의 영역으로 포함될 수 있겠다. 그래서 아트와 디자인이 경계를 허무는 작업들도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는 백선생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중간 지점에서 앞으로 좀 더 합의점 같은 게 좀 더 있어야 할 거 같아요. 또 질문사항 같은 거 있으 세요? 관객: 좀 더 작가와. 애들이 미술을 생각할 때 되게 어렵게 생각을 하거든요. 미술관 돌아다니다 보면요. 그림이, 특히 현대미술 같은 경우 특히 무제 이렇 게 딱 써있고. 애들이 봤을 때는 하나도 이해가 안 가거든요. 작가들 얘기를 들으면 아 그래서 그게 그렇구나. 그렇게 항상 재미를 느껴가니까. 아까 선생 님 말씀하신대로 개방적이어서 공공적으로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준기: 어디 전시장 갔다가 무제 이러고 써있고, 못 알아볼 도형이나 이런 거 가득 있는 작품 있잖아요. 그럼 저게 뭘까, 저기 뭐가 있을까 라고 절대 생 각하고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작품들은 대체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그림들이에요. 다만 뭐가 있냐하면, 참 물감들을 잘 발라놨어. 정교하게. 독특한 방법으로. 창의적으로. 그래서 그런 것들은 오래 놓고, 거실 같은데 걸어놓고 오랫동안 보면, 처음 볼 때는 별로 안 보이던 것이 다음에 볼 때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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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1: 이상림
2004.02.13 금요일 pm.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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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작가와의 대화를 위해서 구름과 같이 운집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작가와의 대화가 지금 11번째 접어드는데, 항상 하면서 느끼는
방법상의 문제, 그리고 공간을 느끼는 자각, 지각하고 느끼는 문제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거지만 참여 작가 선생님들이 쌓아 오신 작업세계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아주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상
결국 이제 공간이란 것이 특히 건축공간이란 것이 결국 이렇게 뭔가 둘러싸여 있는 위요 공간을 얘기하게 되는데. 결국 위요 공간이란 것은 꼭 벽으로만
림 작가께서 평소에는 사장님이라고 부르는데, 오늘은 작가와의 대화이니까. 공간그룹의 CEO세요. 근데 작가로 참여하셨으니, 이상림 작가라고. 이상림
둘러싸여져 있는 공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지만 이 위요 공간이 건축에서 쓰는 가장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 앞에 있는 공간
작가님을 모시고 좋은 대화의 시간 마련했습니다. 그러니까 공공주체로 공간그룹과 같이 하게 되어서 사전에 얘기된 바도 많지만. 특히나 건축가의 입장
이라든지, 또는 우리의 사찰에 있는 공간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결국은 우리에게 위요된 그런 공간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공간이란 것은
에서 바라보는 아틀리에 공간과의 이야기라든지, 여러 가지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실 거예요. 자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사람이 적을수록 연사에게 작가
이 방안에서 느끼는, 이 벽으로 싸여진 공간. 요 공간과 저 공간을 연결하는 이 목 부분에 해당하는 이런 공간. 이 공간들은 전부 다 폐쇄되어져 있는 내부
에게 힘을 보태줘야 해요. 열화와 같은 박수로.
적인 공간들을 얘기한다면, 큰 의미에서 위요된 공간이란 것은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다 포함하는 그런 공간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까 탄생 또는
이상림: 아, 방금 소개받은 이상림입니다. 굉장히 쑥스럽고 그러네요. 지금 이렇게 얼굴이 많이 보이는 앞에서 3m도 안 되는 앞에서. 사실 건축을 하는 사
생명, 창조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공간하고 결부해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어떤.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움', 해부
람이 전시회를 한다는 거. 전시회의 일부로 참여한다는 거 참 힘든 일이죠. 그러다 보니 건축하는 사람들은 건축설계를 해서 매번 건축으로 얘기를 하고
의 그림이죠. 결국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을 탄생을 시키고, 그것을 자라게 하고, 바깥하고 소통을 하게 하는 것은 결국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있는데, 그거를 또 전시를 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참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건축 전시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해야 하는 일도 많고. 또 거기에서 보여줘야
나 거의 흡사한 그런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움 스페이스'가 가지고 있는 어떤 생명을 창조하는 단계, 이런 공간. 그리고 내부와 외부
할 부분도 상당히 다른데. 특히 요번 주제를 가지고 작가들의 작업실에 대한 얘기를 한다는 자체를 또 건축하는 사람한테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죠. 그거
가 소통을 하는 소통의 관계. 뭐 이런 크게 두 가지의 개념을 가지고 움 스페이스를 지금 만들어봤습니다.
는 작업실, 작업하는 자체의 공간도 저한테는 흥미롭고. 또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 자체가 또 건축가의 일이기 때문에. 결국 두 가지의 역할을 한 번
여기에서 보면 외부에는 골판지로 죽 쌓아 가지고, 벽을 지금 만들었죠. 어떻게 보면 기존에 있는 벽에 기대가지고 이게 만들어진 것이죠. 그리고 이것의
에 해야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더더군다나 건축을 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 공간, 또는 작업실 뭐 이런 것은 일반 작가가 만드는 작업실의 공간과는 또
사이즈는 결국 사방 1m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것이죠.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비닐로 그렇게 싸여져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조금 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좀 더 잘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비닐보다 더 부드럽고, 이것이 뭔가 액체와 같이 되어 있어서 우리 몸을 그대로 밀착시킬 수 있으면 더욱더
그래서 작업실 리포트에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얘기를 들었을 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여기다가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 어떻게 여기에 한쪽에 전시를 하
좋겠다는 생각했고. 또 저기에다가 어떤 조명이 되어서 그것이 변한다든지 또는 그 자체 텍스처가 변한다든지 한다면 더욱더 우리의 지각을 느낄 수 있
고 뭔가를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만드는 어떤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를 만
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오른쪽에 있는 저 계단은 결국 저기에는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계단은 바깥하고 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결국
드는 일 자체가 또 건축가의 일인데. 그렇다면 건축가가 만드는 공간, 작업실이란 것은 꼭 실질적인 장소여야만 하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서. 그래서
한 번 나오고 나면 들어갈 수 없는 그런 계단이 되어져 있습니다. 직접적인 어떤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뭐 이런 것들을 말씀을 이제 드리고. 아까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작가에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 꼭 현실적인 장소가 아니어도 좋겠다는 데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우리에게 상상의 공
얘기했던 우리가 여러 가지 공간이란 것들에 대한 정의도 있고. 또 공간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도 있고. 또 그런 것을 우리가 인식하는 단계도 있고. 여러
간이 있다면 그 공간을 한 번 재현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상의 공간이면서도 우리에게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창조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근
가지가 있게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사용하는 공간은 실질적으로 뭔가 여기서 생활하는 생활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
데 그 공간은 물론 보여줄 수도 있을 거고. 또 물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과 창조에 필요한 이상의 공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가 편의상 제1
그래서 오늘은 이제 여러분들께 그런 생각을 가지고 뭔가 공간이란 얘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제가 공간의 대표를 맡고 있고, 공간이란 잡지
의 공간과 제2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것을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기에서 얘기하는 작업실이란 공간은
를 또 만들고 있고. 그러면서 공간이란 얘기를 할 때가 가장 힘들고 어렵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 아는 공간의 얘기를 천천히 한 번 풀어가
어떤 의미에서는 제2의 공간에 해당하는 창작, 창조의 공간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의미하는 작업실의 공간은 실질적으로 그 장소에서 보면 뭔
면서, 아니면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가 하는 얘기를 조금 해 보려고 합니다.
가를 생산해 내는 생산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좀 더 창조적이고 또는 사회적인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그럼 결국은 그러고 보면 제3의 공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용어는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공간이란 단어의 정의를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공간이란 것, 경계를 일
간이 되고, 그 공간은 결국 유형의 공간이나 실질공간이 아니어도 사실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전시되어져 있는 다른 작품들을 봐도
컫는 말로도 쓰일 수 있고, 우리도 건축에서 얘기하는 공간이란 것은 어떤 것의 틀 또는 관계 또는 그것의 비어지는 것으로도 얘기할 수 있지만. 그것 또
실질적인 어떤 형태나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작업실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이 없는 그런 작업실도 있습니다.
한 어떤 경계가 없이는 얘기되어질 수 없는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서 공간이란 것이 어떤 형식이나 형상으로 정의되는 것 보
그래서 밑에 있는 박스, 움 스페이스라는 박스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는 어떻게 보면, 여기 들어와서 이 작은 공간에서 내가 새로운 어떤 체험도 하고, 지
다는 어떤 집으로서 생각되어지고. 여기에는 어떤 장소라든지, 혹은 여러 가지 간극들이 포함하는 그런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그래서 이
각도 한 번 해보기를 원했지만, 저 자체가 나타나 있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형상, 재료, 저 속에서 느끼는 그런 것들을 뛰어넘는 어떤 우리 상상의 공간이어
제 공간을 한정하는 요소, 경계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결국은 이 공간의 표면과의 사이에서 정의되는 게. 존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나왔던 대로
야 되지 않겠는가. 결국 그런 상상과 우리 현실을 뛰어넘는 공간이어야지만 우리가 뭔가 거기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잠시 동안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란 데에 공간에 대한 정의가 있다고 되어 있지만. 결국 우리 건축에서 공간을 얘기할 때는 무엇인가 지각이 되어야지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를 했는데. 그리고 건축을 하는 사람이 이런 것을 작품을 낸다는 것도 사실 굉장히 어떻게 보면 우습기도 하고. 내놓고
공간으로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서 쑥스럽기도 하고 한 게 사실이었고. 더더군다나 저런 것을 예술작품이라고 과연 볼 수 있는지 하는 것도 참 의문이었지만. 하지만 제가 저기에서 보
그래서 이제 공간과 그 경계, 공간과 지각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는데. 오른쪽에 있는 것은 영국에 솔즈베리에 있는 스톤 핸지이죠. 물론 돌기둥을 몇 개
여주고 싶었던 것은 저 자체가 갖고 있는 형태적인 의미보다는 저기에 나타내주려고 했던 공간 이상의 그런 공간의 의미가 전달이 되었으면 했는데. 결
를 로그해서 그 안과 바깥에 경계되어지고. 또 그 자체로서 공간이 한정되어지고. 그것을 우리가 인지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렇습니다. 왼쪽에 있는 것은
국 몇몇 분들이 여기를 와서 저기를 들어가 보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 안에 가서 앉아 봤는데, 굉장히 튼튼하게 만들어지지 않아 가지고 굉장히 위
사막의 사진인데. 보면 여기는 별로 없고, 어떤 경계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한히 먼 지평선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는데. 그것은 이것을 평면
험할 뻔했다고 나한테 항변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결국 저기 들어가려고 했으면 옷을 입고 들어가면 안 되고, 옷을 다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적으로만 보면 그렇지 그것을 다시 수직적으로 잘라보면 이 사막, 모래가 있는 위와 아래로서 우리가 다시 경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못하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을. 허허.(웃음) 결국 그 얘기하고자 했던 공간이란 것이 각자가 느끼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고 하는 공간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풀이나 나무 또 멀리 보이는 구름 등을 가지고 우리가 인식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공간, 건축적 공간, 우리가 얘기하는 건축적 공
있는지 하고. 저 작품을 한 번 여러분한테 이런 공간을 보여줄 수 있는 굉장히 참 좋은 기회이지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얘기를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
간을 만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 무엇을 파내서 만드는 공간, 전체 덩어리에서 파서 만드는 스테오 테토닉 방법이 있고. 그리고
니다.
두 번째는 쌓아가는 테토닉에 대한 방법이 있겠죠. 그래서 이제까지 건축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대체적으로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왔
김준기: 사무실에 있다가 밖으로 우연히 나왔는데, 이 영걸들, 두 숙녀 분들이 움 스페이스로 들어가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게 뭔가 하면 들이예요. 들.
어요. 그래서 고대에 벽을 파고, 땅을 파고 만들어서 공간을 만들었던 방법과 또 무엇인가를 쌓아서 구축해서 만드는 그런 방법들이 있는데. 결국 이 밑에
한 명이 아니고 두 명이 들어간 거예요. '아니, 저런 엽기적인 일이.' 그래서 관심이 가잖아요. 그래서 가서 봤죠.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냥 들
있는 것은 일종의 외피는 테토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 공간, 그 장소는 스테오 테토닉도 아닌, 테토닉도 아닌 제3의 그런 방법이어야지 않나 이
어가도 된다. 둘이 들어가는 거예요. 하도 신기해서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서 입구에 딱 갖다대고 저 찍어도 돼요? 그랬더니 잠깐만요. 그러더니 이 친구
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에 있어서 공간, 또는 물리적 의미에서의 공간.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우리에게 결국 공간이란 것이 공간을 만드는
가 포즈를 취하는데, 시체놀이를. 이 친구 옆에서. 그래서 그 사진을 나중에 꼭 보여 드릴게요. 하하.(웃음) 제가 본 움 스페이스 체험 관람객 중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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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나중에 보니까 이대 서양학과 1학년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어요. 그리고 요 지하공간에 아주머니가 앉아있는 걸개그림이 있죠. 포토몽타주. 거기 아주머니가 있는데, 사진에. 그걸 똑같이 고 앞에다가 찰흙으로 해서 색
제 한 단계 또 새로운 현대적인 공간건축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그런 동기부여라든지, 색깔이라든지 그런 게 또 사장님 통해서 나온다고 느끼고 있는데요.
깔도 칠하고 만들어놨어요. 그 학생이. 여기 지하에다가. 아 저렇게 적극적인 참여형 관람객이, 21세기형 관람객이 있구나. 에피소드고. 사람들이 꼭 한
사장님께 제가 질문을 드리라고 하시니까.
번 들어가 보고 싶어 하는 이 전시 중에 몇 안 되는 인터렉티브한 작품이었다. 그런 점을 밝히기 위해서 제가 에피소드를 말씀드렸습니다. 전시 다 둘러보
김준기: 네. 지금까지는 공간의 홍보실장. 와, 홍보실장 보직 하나 겸직하세요. 하하.(웃음)
시고 오셨어요? 다 못 보시고 오셨어요? 아까 그 이상림 선생님 작품 보셨어요? 1층에 있는. 여기 다 조소나 회화 이런 작가들인데. 건축가로서 이 전시
한은주: 근데 사실 건축이 워낙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시는 거보다 방대한 부분에 걸쳐 가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는 주로 일반인들은 완성된
에 참여하신 것이 나름대로 특이했었고, 작품 자체도 가장, 대체로 작품들이 뭐냐면 작업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실존하는 작업실이 어떤 건지를 보여주는
걸 생각하시는데. 저희는 그 완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미화를 시켜서 풀어서 다시 완성을 시킬까를 무지하게 고민하고. 또 설치 미술 하는 분들은 워낙에
건데. 개념적으로 풀어 가신 거죠. 저의 상상은 이런 거였어요. 일반적으로 건축전에서 보이는 모델하우스 같은 거, 모델하우스인데 기존의 아틀리에와
풀어놓고 설치를 하시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그것을 구축해서 완성을 할까를 고민하시더라고요, 역으로. 그래서 이제 그런 과정에 있는데. 사장님께서
는 다른 어떤 아틀리에도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상상했었는데. 아주 세게. 셌어요.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생각하고 계시는, 작가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그런 공간 루트에 대해서 시각을 어떻게 포함할 수 있을까, 시각을 담을 수 있는 공간들에 대해서 어떻게
걸로 해주셔서.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를 좀 들어보죠. 기존의 아틀리에라고 하는 공간들, 여기 다른 공간들을 많이 보셨는데, 기존의 아틀리에 공
생각하시는지.
간들이 대체로 어떤 기능이나 모양이나 이런 것들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새롭게 좀 현실 공간, 실제 공간에 아틀리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거나 아니면 제
이상림: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공간들을 보면 오래된 내부 공간들이 이제 없는데. 결국은 그게 중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목조 건축물들
안해 주실 거나 그런 제의 있으면 좀 말씀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있으니까. 그리고 오랜 시간을 갖고 있는 건축물이 없고. 결국 그러다 보니까 뭐 외국에서 미술관으로 개조한다든가, 갤러리로 개조해서 쓰고 있는 그
이상림: 제가 사실 그 아틀리에가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직접적인 저런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 될 것이고. 또 하나는 물론 저런 장소
런 시간이 많이 담겨져 있는. 그럼으로 해서 또 다른 감흥을 우리한테 느껴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얘기인 거죠. 지금 보면 뒤에 있는 북촌의 아주 오래된
를 안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런 것을 만들이 위한 어떤 명상의 장소일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또 있지 않을까
집이라고 해도, 100년이고, 그 100년의 시간을 느끼기에는 왠지 모르게 시간의 깊이를 줄 수 없는 건물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간을 느끼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흔히 나한테 다가오는 작업실하면 우리 건축 설계를 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제 뭐 T자가 있고, I자가 있었고, 종이가 있
시간을 차곡차곡 쌓는 듯한.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장난스런 표현일지 모르지만, 시간을 이렇게 적층하는, 시적공간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런 공
고 뭐 모형들이 왔다, 갔다하고. 지금 같으면 뭐 컴퓨터 모니터들이 좍 있고 하는 그런 장소들이 언뜻 연상되고, 또 이렇게 다른 조형 작업이나 평면 작업
간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결국 우리에게 멋진 공간을 상상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요. 근데 아주 불행하게도 건축가들 중에는 이렇게 본인의 작품
하시는 분들 작업하면 물감통 늘어져 있고, 뭐 이런 거지만 결국은 물론 거기에서 뭔가 다른 생각도 하고 작업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거기에 뭔
때문에 정말 너무 고뇌를 하다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든지, 또는 크게 잘못 됐다고 해서 그 부분에 대해 가지고 많은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가를 만들어 내는 장소 또는 곳이라는 것은 거기가 아니지 않을까. 잠자다가 꿈속에서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걸어가다가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를 않아요. 그 이유 자체가 왜냐하면 다른 작가들은 굉장히 좁고 깊게 들어가야 하는 반면,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여러 부분들을 개재를 해야 한다
좀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업공간이 아니겠는가라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 끝에 결국
고 할까, 관계를 해야 한다 할까.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특징적으로 얘기하면, 그런 부분들 때문에 결국은 한쪽 방향의 깊이 보다는 훨씬 넓은 부
명상의 스페이스 또는 뭔가 사유할 수 있는 공간 뭐 이런 것들이 작업공간하고도 이렇게 맥이 닿아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분들을 관여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그런 치열함이라든지, 또는 아주 극한으로 간다든지 하는 부분들이 많이 없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론
김준기: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라는 것이 보통은, 특히 조소하는 사람들은 보시다시피 철공장이예요. 거의 철공소 같은. 그래서 저기 구본주 같은 작가는
우리가 얘기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 이런 사람들도 보면 굉장히 비즈니스맨이나 엔터테이너에 더 가까운 그런 사람들이지. 치열한 어떤 예술가적인 기
뭐라고 하죠? 무거운 걸 들 수 있는 장치? 아 크레인 뭐 그런 거를 작업실 바깥에다가 몇 톤을 들어올릴 수 있는 그거를 설치해놓고는 자랑을 하더라고
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는 거죠. 그것이 결국은 건축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속성이고, 결국 거기에서 만들어져 있는 결과물이 공간이란 것이 나타
요. 나도 이제 떵떵거리면서 작업할 수 있다. 그래서 철공소 차렸냐? 허허. 조소하는 사람은 저런 게 있어요. 떵떵거릴 수 있는 작업실. 이런 류인 같은 작
나는 것은 지금 결국 그렇게 밖에 나타나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게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이
가도 마찬가지로 쇠사슬 같은 게 있어서 무거운 거 들어올릴 수 있는 저런 게 있죠. 이렇게 하드웨어가 튼튼한 작업실이 있는가 하면. 여기 화가들의 작업
그렇다는 얘기고. 그 개중에는 정말 본인만의 공간을 탐구하다가 지금 이제 어디선가 본인들을 억누르며 살고 있겠지만, 결국은 혼자서 하고 혼자서 끝
실은 대체로 화구들, 그림 저장하는 저런 앵글로 된 선반들, 다 비슷한 유형의 물건 같은 것들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그런 작업실인데. 지금 이상림 선
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생님이나 요 밑에 또 배윤호라는 작가가 작은 사진 몇 개를 걸어 놓은 게 있는데. 그게 자기 집이예요.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인데. 집에 아무 것도 없어
김준기: 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짓자는 거 있잖아요.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미술작품 뭐 이런 것들 전시되는 공간은 상당히 좀 다르다는 그런 느낌을
요. 화구나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고, 그냥 집에서 최소의 생활, 잠자고 먹고 이거만 하고. 작업은 그냥 스케치북 하나, 요거만 있고. 이렇게 명상하거나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아틀리에 건축이란 것도 하나의 장르처럼 작은 부분이겠지만 있을 텐데. 그래서 실제적으로 월간미술이나 뭐 이런 잡지에 보면
하다가 그리고, 그린 걸 가지고 밖에 나가서 뭔가 실현하는 데 쓰는 그런 거죠. 그렇게 따지면 이상림 선생님 말씀하신 하드웨어로 꽉 찬 작업실이 아니라
어느 작가의 아틀리에에 대해 소개되는데요. 과연 그 작가의 작품들을 잘 형성한 걸까, 형성화 의지가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거
텅 비어 있는 작업실 속에서 명상들 통해서 뭔가 생산해 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뭔가 일맥상통하고. 사실은 그래서 그때 같은 시간으로 그렇게 작가와의
는 박서보 선생의 작업실 같은 경우는 서보 파운데이션 이렇게 제목 붙여놨던데. 나중에는 작은 미술관으로 쓰일 수도 있을 용도로 생각한 거 같아요. 외
대화를 잡았던 건데. 이렇게 따로 말씀을 나누는 게 된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또 다른 얘기가 좀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서. 이쪽에 앉아계신 분은 전공분야
형도 작가의 작품 세계와 이렇게 맞닥뜨려져서 뭔가 생각한 거 같고. 그래서 그런 아틀리에 공간이 나중에 뮤지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건축들
나 하시는 일 쪽이 어느 쪽이세요?
이 좀 많이 생겨야 할 거 같은데. 그러지를 못 하는 거 같아요, 요즘들은. 그래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틀리에 집짓기에 대한 비평을 좀. 비평과 앞으
관객: 조소과인데요. 아직.
로의 계획 같은 것들, 어떻게 접근 해야겠다 같은 것을 말씀해주신다면.
김준기: 아, 이제 입학할 예정이고. 저 조소작업실 잘 보세요. 떵떵거리는 작업실. 이런저런 질문을 좀 생각해 주시고. 먼저 저 한은주 실장님이 실장 대
이상림: 지금 미술하시는 분들, 소위 말해서 미술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본인들의 집내지는 아틀리에를 많이 가지고 있고, 지금도 계획도 하고 있고,
사장이 아닌. 하하. 건축가 설계사 한은주와 작가 이상림의 고도로 허심탄회한. 과연 건축 또는 공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평소 일로서 얘기하는 것이
많이 이제 지었는데. 결국 그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지금은 아틀리에로 쓰다가도 나중에는 이제 갤러리로 바뀌는 그런 상황들일 텐데. 내가 많은
아닌 상황에 질문 같은 것들이 분명히 있을 거 같아요. 더군다나 작가에게 질문하는 거니까.
그 사람의 아틀리에를 보지는 못했는데. 지금까지 본 걸로는 그래도 성공적이지 않은가 저는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지으려고 하는 분들의 생각
한은주: 근데 거 참. 말씀드리기가. 하하.(웃음) 근데 사실은 질문을 드리기보다도 항상 거의 어떻게 보면 비슷한 길을 나아가고 있는 상태에서의 선배고,
들도 그런대로 간다면 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까 얘기했던 대로 작가의 그 어떤 작품세계나 공간이 맞닥뜨렸다는 얘기에서 어떻게 표현이 되어
또 이런 관계도 있고 한데. 어떻게 보면 지향하는 바나 사고하는 바가 이게 상당히 다르지 않은 게 상당히 많아요. 그리고 지난 번에 말씀 드렸던 크로스
야지 그것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이 부분 잘 모르겠다는 얘기는 작가가 구형하고자 하는 세계, 궁극적인 목표가 무
디스플레너리에 대한 탐구나 모색도 있지만. 그런 거에 대한 그걸 추구하다 보니까 강박증 같은 것도 사실은 있기도 한 거구요. 특히나 저희 사장님께서,
엇이었냐 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것이 바로 건축공간으로 변화되어질 수 있을 때 어떻게 나타내질 것인가는 잘 모르겠어요.
작가님께서. 하하. 워낙에 기본적인 마인드에서 그런 약간 근대적인 모습의 건축가의 어떤 모델, 거기서 벗어나 가지고. 실험적인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김준기: 그런 상상 같은 거. 좀 엉뚱하지만. 예를 들어 김수근 뮤지엄이 생겨요. 그럼 어떻게 접근해야 되죠?
관심도 많으시고, 지향하고 있으세요, 실제로. 그래서 그게 아무래도 예전에 근대적 공간, 공간건축,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있거나 한 공간건축. 거기서 이
한은주: 뮤지엄이 되어 가지고, 워크 플레인 플레이스이면서 그런 거죠. 김준기: 그건 알고 있죠. 그런데 나중에 따로 후대들이 뮤지엄으로 짓겠다고 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 그 상상을 하고 있는 거죠. 김수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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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직접 한 거 말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건축가를 기리는 어떤 건축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게 어떻게 풀릴지. 예를 들면 박수근 그러면 그의 모노톤,
은 얘기죠. 외부적으로 확대를 해 본다면, 그것이 내부로 들어오게 되면 모태의 공간이 되고. 모태공간을 표현한 것이 움 스페이스였고. 결국 그것은 생명
뭐 마티에르 뭐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풀어서 박수근 작업실을 짓는단 말이에요. 근데 건축가의 그런 것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건 뭐냐 하면
의 창조하고 연결이 되었고. 뭐 그런 연관이 있습니다.
한 건축가가 자기 나름의 독특한 조형어법, 공간구성 방법 뭐 이런 거를 나름대로 상징처럼 가지고 있을 수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까지 연결될 텐
근데 아까 얘기를 할 때 시간에 대한 얘기, 공간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시간에 대한 얘기가 따로 떨어뜨려서 보기가 참 어려운데. 이 공간이라는 게. 이 집
데. 미술가들은 그런 상징체계에 의존해요. 이거하면 누구. 물방울 김창렬, 뭐 한지 마티에르 박서보, 뭐 이런 식으로 상징에 의존한단 말이죠. 건축가는
이 이런 마감으로 이런 상황이 연출되기 이전에도, 이 집은 지어져 있었죠. 지어져 있었고, 또 많은 시간이 흘러왔을 거고. 물론 껍질도 마찬가지예요. 변
상대적으로 그런 게 적을 텐데. 그럴 때 건축가의 상징성을 어떻게 건축으로 상징화시킬 것인가, 이미지화시킬 것인가 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죠.
화되지만은 또 언젠가는 이 집이 또 다른 형태로 바뀔 수도 있고. 또 결국 이 집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땅의 관계로 본다면 또 다른 형태로 바뀔 수도 있
이상림: 어떤 누군가가 그런 거를 만든다고 한다면, 사실은 이제 건축가들도 그런 상표 같은 것들이 있죠. 각자 어떤 작가들은 그리고 그런 것이 전연 보
어요. 그런데 아주 재미있게도 뭐 저만 그런지 몰라도, 파르테논 신전을 본다든지, 또는 터키에 있는 유적을 본다든지 할 때에 그 자체가 굉장히 강하다는
이지 않는 작가들도 있고, 계속 변하는 작가들도 있어요. 그런데 김수근 선생의 어떤 뮤지엄을 누군가가 짓는다 하면, 우선 재료에 대한 얘기를 해봤지만,
거죠. 강하게 사람들한테 주는데. 파르테논 신전이 착 지붕이 되어 가지고 있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줄까. 그래서 항상 저는 그런데 가서
재료에 대한 얘기도 한번 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즐겨 사용했던 소위 말하는 작은 공간들 만들기. 그리고 그 공간을 연결하는 부분들, 뭐 이런 걸 가
보면 복원도를, 복원도를 잘 못 그려서 그런지 몰라도 복원도를 보면 굉장히 실망스러울 때가 많아요. 허허. 그냥 파르테논 신전 한쪽이 깨지고, 뭔가 남
지고 오히려 얘기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지금 보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 놓고 느끼게 하기가 사실상 쉽지는 않은데. 우리 지금 사옥에서 어떤 필로티가
아있고 열주가 서 있고, 뭐 이런 게 강렬하지. 그게 뭐 페디먼트가 탁 되어 지붕 탁 되어있고, 박공으로 가고. 별로 이렇고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없고. 그런
만들어지고, 들어갔을 때의 높고 낮은 거에 대한 변화라든지, 이런 공간들을 만들고 거기에 편안함을 주면 결국 그것이 그 분을 기리는 뮤지엄이 될 수도
데 결국 파괴가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더 가슴 깊게 와 닿는 건지. 아니면 파괴되었다고 모습 남아있는 것은 결국 굉장한 시간의 연륜을 얘기하는 것인데.
있겠죠.
그런 것 때문인지. 생각해보면 결국 두 가지 다가 아닌가 싶어요. 결국 굉장히 오래된 쌓여져 왔던 시간의 기피이하고 망가짐으로 해서, 파괴됨으로 해서
김준기: 메타론적으로 같은 게 될까요? 그러니까 비평에 대한 비평이 있듯이, 건축에 대한 건축 메타론적, 이렇게.
더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런 것들이 두 가지가 다 있기 때문에 더 우리한테 와 닿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한은주: 근데 사실, 저희 김수근 선생님께서 지으신 검정색 구관하고, 그 외에 건너편에 장세아 소장님이 지은 유리신관, 그리고 다시 이제 사장님께서 최
김준기: 일산의 미륵사지 한 2/3 부서진 거 보다가, 그 옆에 쌍탑이었죠, 원래. 새로 하나는 새 것으로 만들어 놓은 걸 보니까 좀 깨더라고요. 그런 거 같아
근에 작년에 그 전체를 정비를 하시면서 어떤 포인트를 딱 지적을 해 가지고, 거기를 새롭게 리노베이션 하셨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게 시간을 다 타 가지
요. 허허.
고, 이렇게 가가지고, 결국은 전체 공간사옥 부지 전체를 갖다가 완성시키는 어떤 그런 행위와 과정과 또 하나하나 과정을 완결시킬 때마다 무엇을, 그 전
이상림: 그거는 더더군다나 또 더 잘 못 만들었으니까, 이제 그렇죠.
에 있던 것들 중점적으로 생각해서 기려서, 말하자면 정리를 해서 들어가는.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이 건물 하나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전체가 어떻게
김준기: 훌쩍 현대로 좀 넘어와서 그 말씀도 좀. 매일 경제가 그랬듯이 건축가가 CEO건축가가 현대미술 기획전에 테마기획전에 참여를 했다라고 하는
보면 뮤지엄이죠. 지금 전체가. 그래서 굉장히 묘하게도 저희 사이트 안에 한옥이 있었어요. 근데 사장님께서 그 한옥에 대한 거에 의미부여를 상당히 하
게 되게 다른 영역의 뭔가로 비춰지는 거 같은데. 음 과연 그게 그런가. 제가 학교에서 배울 때에 건축과 미술은 그냥 하나였는데. 옛날엔 그랬다는데. 뭐
셔 가지고. 이게 건축이란 게 제가 볼 때 이런 거 같아요. 뭔가 근사한 오브제를 갖다가 근사한 마티에르를 가지고 구현을 시켜놓은 것만이 건축은 아니거
그래서 유용성, 튼튼함, 아름다움, 이 세 가지가 고대 건축에 원리였고, 그것은 미술에 있어서 마찬가지였죠. 조각도 그렇고, 회화도 그렇고 다 한 몸으로
든요. 그러니까 그 관계성을 갖다가 제대로 보여주는, 정립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차원의 건축일 수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어떤
움직였다는 거죠. 근데 현대사회는 모더니티가 구현된 모더니즘 아트, 건축, 이런 것들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이거죠. 근데 결정적으로 그것을
새로운 한옥을 갖다가 어떻게 뭐 침투해 들어와 있는 거를 어떻게 정비를 할까 그 자체는 '그래서 뭘 지었단 말이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다르게 만드는 게 뭔가. 가만히 지금 생각해보고, 늘 미술인이나 다른 사람 만나면 고민해 보는 게 그런 거예요. 그 중에 건축과 아트, 파인아트의 가장 큰
는 그 전체로 볼 때는 상당한 의미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자체로 시간성을 굉장히 독특하게 시간적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완성이 되어 있는 상태로 꾸며
경계는 산업화와 산업화되지 않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를 가끔 하거든요. 사비나미술관의 이명옥 관장님은 이 갤러리 사비나를 차리시
져 있어요. 지금.
고 일찍이 미술의 대중화에 기치를 걸고, 근 10년간. 허허.(웃음)
김준기: 여기 우리 비 건축인들을 위해 아키텍처의 어원을 좀 설명해 주시죠. 흐흐. 건자하고 축자하고. 축은 쌓을 축자고, 건은 세울 건. 세우고 쌓는다.
이상림: 여기까지는 홍보실장이예요. 허허.(웃음)
한은주: 근데 영어로 아키텍처 하면 아키가 이렇게 흩어져있고, 군도 뭐 이렇게 얘기할 때 앞에 쓰는 접두사 '아키', '텍처'는 텍스타일, 텍토닉 이렇게 할
이명옥: 아니, 지금 저기 시간도 다 되었고, 서로 다 바쁘신 분들 같으니까, 내 얘기를 굳이.(웃음)
때 엮어서 짜고 하는 거니까. 말하자면 이렇게 흩어져 있고, 질서가 없는 것들을 갖다가 텍처시키는 거죠.
김준기: 지금 말씀, 질문을 드린 게 아니고, 잠깐만요. 그래서 짧게 할게요. 좀 있다 말씀드리려고. 그래서 미술의 대중화라고 하는 것이 건축처럼 그 미술
김준기: 모아서 짜준다.
의 산업화로 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경계에서 늘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미술의 시스템, 이런 것들에 대해서 늘 제 가까이에서 지켜보시고, 또 얼마 전에
한은주: 그러니까 질서를 부여하는. 그래서 스톤 핸지 같은 것도 어떤 나름대로 어떤 질서부여잖아요. 그것을 아키텍처라고 치거든요. 저희들은.
동영상을 옥션에서 컬렉팅하시기도 하신, 이런저런 걸로 봐서 나름대로 미술에 관한 많은 생각들 있으실 거 같아요. 그런 논평을 이 기회에 한 번 좀 들어
김준기: 이 저 큐레이팅 전공하고 계신 강안나씨께서 좀.
보고 싶네요.
강안나: 이렇게 보면 광범위할 수도 있는데요. 제가 아까 아틀리에를 아래층에 작업하신 걸 보니까. 아틀리에에서 예술가들이 작업을 산출하니까, 그게
이상림: 어떻게 보면, 이런 전시회가 20년 전 즈음에는 전시회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었지 않나 싶어요. 저는 영화를 볼 대 그런 걸 느꼈는데, 영화 이제
어떤 모성적인 영역, 신체영역, 자궁 그런 것과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성공간이란 말을 잠깐 아까 저기서 봤거든요. 모성
끝나고 나면 이름들이 죽 나오는데. 30년 전 영화를 보면 뭐 예를 들어 한국영화를 본다고 한다면 신성일 나오고, 김지미 나오고, 뭐 신상옥 감독 해가지
공간.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약간 좀 더 설명을 듣고 싶고요. 그 아틀리에라는 것 때문에 모성공간이란 개념을 접근을 시키셨는지, 아니면 기존에 그냥 일
고 나오는 사람이 다 합쳐봐야 이 손가락 몇 번만 하면 다 셀 수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내가 맨 마지막 본 영화가 실미도 인데, 실미도를 볼 때 보니까
반적인 공간도 여성적인 면, 편안함을 준다든지 이런 식으로 정서적인 작업 때문에 여성적으로 보시는지. 그러니까 성별을 구별하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봐도, 봐도 끝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온단 말이죠. 그거는 결국은 아까 이제 건축과 미술이 결국 한 몸이었을 텐데. 지금 떨어져 있고, 떨어져 있는
공간을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해요.
간극이 뭐 엄청나게 먼 데, 그 멀다는 게 결국 정서적인 멂보다는 굉장히 다양하게 이렇게 잘라져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결국은 지금 보면 서로의 역할
이상림: 두 가지 다 맞는 얘기죠. 두 가지 다 또 그렇게 됐고. 결과적으로 어머니라고 하는 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과 결국은 생명의 탄생을 두 가지를 다
들이 다 달라지고 있는 것이고. 결국 한 100년 전 즈음의 건축가는 화가이기도 했고, 한 200년 전 즈음의 조각가는 뭐 건축가이기도 했고 그랬었는데. 지
가지고 있는 거죠. 결국 그 생명의 탄생이다 생명이다 하는 것은 결국 아까 창조나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죠. 그래서 그렇게 얘기가 나왔는데, 이 모성
금은 건축가 안에서도 서로 다 달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미술을 말하고 해도, 서로가 전혀 다르듯이, 어떻게 보면 하나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양한
공간이다 하는 얘기는 결국 우리가 넓게 한국의 건축을 점지의 묘라고 하는데. 결국 하나하나의 건물을 잘 짓는 것보다는 어디에다가 이렇게 턱 놓느냐,
것이 건축하는 데에서도 달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그런 다양성 때문에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고 하지 않아도 이렇게 전시를 할 수 있고. 그
놓은 것만으로도 사실은 다 끝이 날 정도로 중요한 일인데. 그래 우리가 제일 많이 보는 게 소위 말해서 편안함입니다. 편안함이고. 결국 우리가 지금 북
자체로서 새로운 예술 영역을 또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결국 지금 많이 우리가 하는 게,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뭔가를 막 덧붙이고 바뀌고 하는 것 자체가
위 37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봤을 때 남쪽 빛을 남쪽을 향하는 자리가 좋고, 뒤에 산이 있고, 물이 흐르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뭐 다른 영역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결국은 오늘날의 우리의 예술, 이런 거를 대변하지 않나 싶어
은 방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편안함, 제대로 된, 그러니까 바른 방향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결국 그런 방향에 있는 것이 모성의 공간과 같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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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2: 방명주, 오철헌
2004.02.18 수요일 pm.04:00 이명옥: 관례적인 얘기로 끝을 맺을까요? 저는 그냥 여담이에요. 몇 년 전에 미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투어를 하는 게 있거든요. 작가 작업실을
김준기: 미술 전공하세요? 건축과 미술 쪽에서 작업실이라고 하는 공간에 대해서 관심 많이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얘기하
이제 한번씩 같이 가자는데. 대부분이 환상을 가지고 접근을 해 가지고. 구본주 작가 작업실에 갔는데, 전부 다 정장 차림으로 나오신 거예요. 애호가 분
는 패턴이 있고, 또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앉아 있을 때 패턴이 있거든요. 근 한 10몇 살의 차이가 나다보니까, 그래서 세미나 하듯이 알찬 분위기로 그렇
들이. 그러니까 그 분들이 생각하는 작업실이란 건 굉장히 깔끔하고, 작품처럼 생각했는데, 구본주 작가 작업실 보통 들어갈 때 입구부터 흙투성이이고,
게 대화가 진행되었으면 좋겠고요. 여기 지금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 나중에 녹취가 되어 가지고 다시 글로 꾸려지고 아마 책 형태로 나중에 결과물이 나
들어가니까 한쪽은 용접을 해서 뭐 떨어지고 해서. 나올 때는 전부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와서. 그러니까 그 환상이 다 깨져버린 거. 그 다음에 저희가 이
올 겁니다. 그래서 좋은 얘기 좀 많이 해 주시고, 아 지금 먼저 준비된 게 방명주 선생님이죠, 맞죠?
번에 작업실 리포트 기획을 할 때 물론 지하층에 그런 경우도 있는데.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작업실과 작가들이 현장이라고 생
방명주: 근데 천천히 하죠.(웃음)
각하고 있잖아요. 심지어는 공장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고요. 그 안에서.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굉장히 괴리감이 들어서 빵모자 쓰고, 페인팅 하는 걸로
김준기: 그럼, 두 분 소개를 먼저 할게요. 저 오철헌 기자는 제 옛날 가나아트 기자할 때 직장 선배로, 사진기자를 오랫동안 했었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90
생각하는 그런 거에 대한 환상을 좀 깨보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여러 가지 각도에서 접근했지만, 그런 의도가 좀 강했거든요. 실제 현실의 문제이지, 이게
년대부터 계속 수많은 작가의 작업실을 찍었었고, 이걸로 전시도 했었어요. 개인전도. 그래서 작가와 작품과 작업실이란 공간, 이 세 가지를 이걸로 결합
창작의 산실이 어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상하고 우아하지 않다는 거. 그럼 우리가 어떻게 접근을 해서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고통이라든지, 어떤
해서 함께 묶음을 만드는 그런 작업들을 하셨고, 이런 걸 보면 되게 가증스럽게도 엄청 연출을 했어. 뭐 작가에게 옆으로 돌아앉으세요. 딱 이러고, 조명
실제적인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한 어떤 문제를 담론을 형성해보자. 그렇게 해서 전시가 기획이 되었던 거구요. 어쨌든 방금 이상림 선생
도 일부러 여기서 때려 가지고, 캔버스에 아사모사하게 딱 떨어지게 하고. 최진욱 작가는 90년대 초반 작업 주제가 작업실이에요. 작업실을 작업했어요.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세상은 뭐 전부가 영역이 이거는 건축가다, 화가다 구획이 되어있지 않고 계속 크로스 오버하는 그런 시대이고. 그리고 저
그래서 이 작업실 바깥에는 공간들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들이 전개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 공간은 작가의 내밀한 작업 공간이에요. 차단되어 있고, 세
역시도 미술관 관장하면서, 큐레이터 하면서, 글 쓰는 작가도 하고. 물론 다 썩 프로의식을 가지고 하지는 못합니다마는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
상의 바깥과 상관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아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는 그림을 계속 그렸던 사람인데. 그러한 작가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이렇게 뒤통
에서 이 대표께서 이번에 첫발을 내딛으셨으니까, 계속 관여를 하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게 제 개인적 소견이고요. 자 이걸로 오늘 제가 클로즈
수를 찍어. 그런데 거울 속에 뭔가 응시하는 작가의 모습을 나타나도록 연출한다던가. 여기는 2000년 당시에 조은영 작가의 개를 그리고 있을 때, 그 개
해야 되나?
와 함께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 예를 들면 이 사진에 심오한 예술성이 무엇이냐 해서 구도를 잘 잡고, 어쩌고저쩌고는 하나도 안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냐
김준기: 혹시 질문이 있는데. 허허. 그런 거 아니죠? 작가 선생님의 마무리 발언을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좀 미술계랑 활발하게 교류
하면 2000년 당시에 조은영 작가가 개를 한참 그릴 때, 이 개가 거기에 있었고, 그 장면을 포착한 사람은 오철헌 밖에 없어. 딴 사람은 찍은 바 없단 말이
하는데 앞장 서 주시고. 직접 또 출품이나 여러 가지 역할도 좀 해주시고. 저희 미술계가 그래도 건축 쪽에서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쪽은 공간이거든요.
에요. 이게 사진의 진미 아니겠어요? 기록성 같은 거. 또 이 양반은 중광스님이라고 기행을 많이 한 괴짜 스님 화가의 그 정도죠. 그 분의 이런 아틀리에
왜냐하면 공간이란 잡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성이 또 엄청 크잖아요. 지금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쪽으로도 더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
분위기들, 어느 동네죠?
지면서, 마무리 말씀 좀 해주세요.
오철헌: 경기도 어디.
이상림: 글쎄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공간에서 생각했던 미술계 혹은 미술 이런 쪽에 관여하고는 상당히 다르게 우리가 접근이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가
김준기: 알아볼 수도 있는데, 이천인가 어디? 이천까지는 아니고, 그 초입인데. 돌아가신 분인데, 저 사진도 이상하게 찍은 거예요. 이런 것이 사진의 다
만히 생각해 보니까 굉장히 피상적으로 미술계를 대했고, 상당히 피상적으로 만나왔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요번에 한발을 직접 이렇
큐멘터리의 힘, 이런 거겠죠. 하여튼 그렇고. 나중에 슬라이드 몇 개를 보면서 그 얘기를 좀 나누도록 하시고. 방명주 작가는 화학을 전공한 사진가예요.
게 대고 보니까, 이게이게 아닌데 정말 좀 더 치열해야 되고,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해봤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많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
학부 때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는데. 이 디지털미술관에 아깝게도 촉박하게 섭외를 하다보니, 시간이 안 맞아서 직접 출연을 못 했
이런 사회에서 본다면 결국 앞으로의 예술도 바뀌어 나갈 거고, 다양화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 나오고 있는 사이버에 대한 문제 뭐 이런 것들이
지만. 직접 출연했죠? TV 나올 수도 있었는데. 저기 워낙 재미있게 구성해서 편집진에서 와서 보고, 홍지연이란 작가 작업실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주인
좀 더 결부가 되고, 그런 쪽으로 접근이 더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까 얘기했던 미술계, 예술계하고 좀 더 밀착된 상태에서 관계를 하면서 해야
공으로.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철헌: 저건 내가 얘기를. 디지털 미술관에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그 PD랑 얘기를 하면서, 저 홍지연 작가에 대한 작업실에 대해 재미있게 얘기했었어
김준기: 예, 좋은 말씀 감사하고, 그럼, 오늘의 작가와의 대화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죠. 박수로 마치겠습니다.
요. 그래서 거기서도 되게 관심을 많이 갖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좀 안 됐었어요. 시간상으로 안 되어서, 그런 얘기가 좀 있었어요. 김준기: 저 작업 같은 경우에 아주 컬러풀한 작업실을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여기저기 구석구석 아주 잘 잡았는데. 얘기 거리도 되게 많고. 또 디지털 카메 라로 그래서 디지털프린터로 컬러프린터로 뽑아내서 이렇게 압핀으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네오룩 닷컴'이라고 최금수 아저씨가 만든 건데. 최 금수 아저씨는 방명주 작가가 데리고 사는 남자예요. 그래서 직접 와서 최금수 아저씨가 수평 자를 가지고 와서. 전문 디스플레이어가 따로 있는 작가입 니다. 그래서 디스플레이를 했는데, 되게 좀 독특한 방식이었고,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사람들이 되게 좋아했어요. 방명주 작가의 이야기를 좀 먼저 들어 보고, 그 다음 오철헌 작가의 이야기 듣고, 같이 이야기할 때는 이 두 사람의 작업 플러스 작업실이란 게 뭐냐, 작업실이 뭐냐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하면서 두, 세 단계로 그렇게 얘기를 진행합시다. 먼저 방작가를 모시겠습니다.(박수) 방명주: 안녕하세요. 저는 방명주라고 합니다. 방이에요. 박이 아니라.(웃음) 이렇게 작가와의 대화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저는 사실 처음 되게 좀 부담스 럽다 내지는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속닥속닥한 분위기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고요. 아무튼 김준기씨가 아마 <작업실 리포 트>전이라는 걸 기획하면서 작년 언제죠? 그때 처음 그 얘기가 진행된 게? 김준기: 늦여름이요. 방명주: 예, 한 여름 이렇게 지나면서였던 거 같아요. 근데 아마 그렇게 섭외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던 게 사진 쪽에 이렇게 전공을 하고, 직업을 해 온 지 는 사실 작년에 첫 개인전을 하긴 했었어요. 그 이전에는 월간미술이라고 거기서 제가 그 쪽에서 담당했기 보다는, 그냥 프리랜서 비슷하게 그 쪽 일을 잠 깐 했었던 경험이 있어요. 그때 또 김준기 실장님이 가나아트에 계셨고, 그래서 그런 연유로 만났었던 거 같은데. 그게 한 벌써, 7, 8년 되는 거 같고요. 근데 저는 작업을 하면서 그러니까 <작업실 리포트>전이라고 해서 대부분 여러분들이 여기 작업을 보셨겠지만, 작업실이라고 하는 것들의 어떤 개념적 인 부분들, 다른 작가 분들 같은 경우 그걸 많이 건드렸던 거 같은데. 일단 저는 사진이란 걸 가지고 다른 사람의 작가 작업실을 새롭게 사진으로 보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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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작업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사실 좀 더 아주 편하게 접근을 했었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제 또래, 동년배, 제가 지금 이제 30
방명주: 아 그. 노석미씨가 인형작업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캔버스 작업도 하면서 인형을 직접 만들어요. 저기 재봉틀, 고양이 있는 두 번째 두 번째 보면
대 중반이 되거든요. 그래서 제 동년배의 특히 작업하는 여자 작가들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여성, 여자로
재봉틀이 있는데. 그런 걸 되게 잘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직접 인형 작업을 하고, 그 인형을 팔기도 해요. 그리고 정말로 전업 작가로 하고 있는 사람이죠.
서 자기 삶을 영위하면서, 작업을 계속 하느냐 하는, 어떤 일상적이면서도 자기 삶에서 어떻게 작업을 엮어나가느냐에 대해서. 그 여자 작가로서 또 비슷
네. 지금 거의 비슷한 연배이고. 근데 고양이가 네 마리인데. 제가 거기서 하룻밤 잤다고 했잖아요. 근데 집안에 온통 고양이 냄새, 고양이털이 날리고. 그
한 한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리고 홍지연, 노석미씨 같은 경우는 한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그냥 친구, 가까운 친구라기보다
래서 이불을 깔아 주는데, 고양이가 등이 이만해요. 8kg이래요. 하하. 이만한데. 걔가 제가 자는 잠자리가 따뜻하니까 제 다리 위에 올라와서 자는 거야.
는 서로 알고 지내는 작가였는데, 아무튼 이 전시를 기회로 해서 그 사람의 작업을 좀 더 내밀하게 한 번 보고 싶다. 그러니까 사진이라고 지금 하는 것들
밤에. 그래 가지고 발을 오므릴 수도 없고, 거의 쥐가 날 정도로. 그래서 거의 이쪽 노석미씨 작업 같은 경우에는 그 고양이가 상당히 많이 주제가 되었었
이 <작업실 리포트>전에서 다른 작가들하곤 다르게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서 그 사람들을 좀 더 관찰할 수 있는 지점이고, 그것이 나의 어떤 개인적인 작
고. 그 다음에 캔버스 작업을 하면서, 되게 스타일이 있는 작가예요. 기본적으로 옷차림이라든지, 아니면 자기의 작업실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참 서로 잘
가 작업에서 봤을 때, 한편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부분이 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컨텍을 하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동년배이지만, 자기 색깔을 되게
맞는. 그리고 거기서 천 같은 것도 보면 그걸 천을 사서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자기 옷 같은 경우에도 직접 만들어서 입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런 다
견지하고 있는, 한편으로 봤을 때는 그 사람의 작업 자체를 되게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고, 음 그리고 일상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른 부분을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가로서 전업 작가라고 하죠. 그러니까 다른 업을 업이라고 하나? 그런 것들을 아르바이트 식으로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자기 작업을 통해서 어떻게 자
김준기: 외박의 즐거움 뭐 그런 건가요? 일상탈출이잖아요.
기 삶을 영위하며 사는 그런 작가들인데. 사실 그러한 부분이 되게 부러운 부분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작가 작업실을 가게 됐어요.
방명주: 아 글쎄, 뭐 그렇게 즐거웠다는 거는 잘 모르겠고. 음......,그러니까 뭐죠. 되게 즐겁기는 했던 게 저 친구가 워낙 재미있기 때문에. 그리고 뭐 그런
저 개인적으로는 따로 작업실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한편 그러니까 자기 살면서 작업하는 공간이기도 하
부분들, 밤늦게까지 서로 얘기하면서 서로 작업에 대해서 뭐 작업 얘기하고. 그 다음에 되게 느낌이 남달라요. 1박2일을 같이 있었다라고 하는 거에서 이
지만, 그래도 어떤 일정한 작업 공간으로 가지고 있는 분들이고. 그래서 작업하는 건 되게 재미있게 했었어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저렇게 그 작업을 하게
렇게 결과물이 나왔다는 거에서 되게 개인적으로 되게 재미있게 생각을 하고.
된 부분은 저렇게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컴퓨터를 통해서 보면서 어떻게 연출을 할 것인가 하고 봤을 때, 제목을 퍼즐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러니까 저
다음에 저 중에 맘에 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두 번째 빨간색 욕조거든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이 색깔이 있어요. 그 색깔이라고 하는 게,
런 식의 어떤 디스플레이가 나오게 되었는데. 일단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한 사람의 작업 내지는 한 사람의 작업 공간, 혹은 그 사람의 삶이기도 하고. 그런
그러니까 여러 가지 개인적인 스타일이면서, 그 뭐라고 해야 되나, 컬러풀해요. 그러니까 작업실 자체가 작업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사실 저는 그거를
것들을 한 장의 사진으로 어떻게 잡아서 보여준다고 하는 게 참 한계가 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일단 그 사람들 작업실에 가서는 많이 찍어오자.
많이 고려를 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어떻게 칼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을 생각했었고. 그래서 저 욕조부터 빨간색, 그 뭐라고 하죠? 욕조커튼 저거
많이 찍어오자는 거를 일단 먼저 생각했고. 찍어오고 나서 그거를 그러니까 방명주라고 하는 작업으로 환원시켜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같은 경우는 저는 되게 재밌게 보고 있어요. 하하.(웃음)
그러면 제가 그 전에 했던 작업들을 조금 보면서 얘기를 해 볼까요.
그리고 왼편에 보시면 홍지연이라고 하는 작가인데. 이 사람은 페인팅 작업하고요. 그 다음에 설치작업도 많이 해요. 그러니까 설치. 그리고 두 사람이 되
그러니까 사실 제가 작업에서 저런 식의 포맷을 하게 된 것은요. 그러니까 작년에 제가 <분홍신>이라고요. 한국여성사진가협회인가에서 기획전이 있었
게 색깔이 비슷한 거 같은 데도 확연히 작품 세계는 다르고요. 그리고 왼쪽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작업실이고, 왼쪽에 두 번째 같은 경우는 작업실을 가다
어요. 기획전에 제가 참여를 하게 되면서, 그때 찍은 작품이 있는데. 그걸 아마 이후에도 보시게 될 텐데. 그때 제가 전반적인 작업에 한 장, 한 장 사이즈
가 중간에 찍었던 거거든요. 맨 위에 왼쪽 두 번째 있는 거 같은 경우에는. 왜냐하면 홍지연씨의 어떤 얼마 전에 보여줬던 설치작업, 꽃으로 작업했던 것
를 저렇게 하고, 전반적인 작업 포맷을 하게 된 게 저 전시에서부터였는데. 이번 전시하고도 잘 맞겠다고 생각을 해서 포맷을 그렇게 잡게 되었고. 그때는
들이 있거든요. 되게 뭐라고 해야 하나, 정크아트 같은 분위기면서 되게 키치적인 그런 느낌의 설치작업이었는데. 가다보니까는 중간에 그 옆에 묘역이
20장을 가득 채워가지고, 다른 하나의 어떤 한 장의 사진을 조금 더 확대 작업해 가지고, 새로운 포맷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걸 하면서 하나
에요. 되게 묘들이 많고, 거기에 이렇게 선물하는 화환처럼 그런 것들을 파는 조그마한 가게인데. 그 사람의 작업 느낌이 들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가
를 뺐어요. 그래서 일종의 보여주는 방식에서 그러니까 블록 쌓기 내지는 그런 식의 느낌. 그러니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거를 완결된 형태의 상이 아
면서 찍었던 거고요. 그리고 요새 최근에 꽃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약간 그런 식의 느낌으로 조합된 거 같고. 그리고 아마 정말 디지털
니라 보면서 뒤집으면서, 이렇게, 이렇게 볼 수 있는 그런 식의 맥락을 잡았고. 그래서 퍼즐이라고 하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고요.
미술관이라고 작업실을 보면 아마 저것보다 훨씬 영상작업이기 때문에, 어떤 작업실의 홍지연이라는 작가 작업실의 디테일한 면은 아마 더 잘 보실 수
결국은 사진이라고 하는 것이 담을 수 있는 현실, 혹은 사진이라고 하는 것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죠. 현실흡입력, 현실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고 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에 중간에 비어있는 공간 옆에 사진을 가만히 보면, 제가 사진 찍고 있는 제 모습이 비치거든요. 촛대에 보면 사진 찍
는 부분에서. 그런데 그것이 얼마만큼 현실하고 가까운가라고 다시 뒤집어서 생각했을 때는 또 다른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사진이 가지고 있는
고 있는 모습이 비치는데. 그런 것도 참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작업들이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봤을 때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측면이 있을 텐데.
힘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재현능력이라든가, 재현범위라든가, 그렇게 놓고 봤을 때 그것이 정말 진실인가 라고는 할 수 없는 부분, 그거를 조금 생각하게
제가 작업하는 부분에서는 그러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일상의 어떤 부분들을 많이 염두 해 두면서 작업을 하게 되는 거 같고요.
되었고. 그거에서 좀 다른 못 미치는 부분들, 제가 생각하는 사진이라고 하는 부분, 그 다음에 작가 작업실을 특히 작가라고 사람들을 보여줄 때 약간은
아무튼 그 사람들하고의 공동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결과물이 이렇게 나왔다는 거고. 아무튼 그런 측면에서는 아주 흡족하게 작업이 되었던 거 같
신비화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관객들이 가지게 되는 어떤 상상적인 어떤 부분들에 있어 그거를 저렇게 다른 사진들을 조합하는 힘으
아요. 그리고 그 작가 작업실을 가게 되면서 사실 작업으로 보면 이 사람들이 훨씬 저보다는 연배가 높다는 느낌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더 오랫동안 작업
로 인해서 조금은 다르게 상상하게 할 수 있는 부분, 그런 것들을 조금 생각했었어요.
을 했었고, 절실했었고, 그래서 한번 같이 이렇게 하면서 그 사람들의 면면을 좀 더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이 매일같이 자기 작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떻
오른쪽에 보시면 노석미라고 제가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하는 작가예요. 딱 보시면 알겠지만, 고양이를 네 마리를 키우고 있고. 동두천이에요. 작업실이.
게 일상적인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되게 많이 자극을 받아온 부분이 있고요. 해서 정말 그래요. 작업을 하는 사람들, 그러
사실 노석미씨가 포천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전에 '설악'이라는 곳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을 때 제가 방문을 했었는데, 지금 약간 개인적인 경제적
니까 이번에 이 작업실 리포트 전에 관해서 리뷰 썼던 다른 선생님들 글 봤을 때, 정말 작업 공간도 일종의 팩토리. 그러니까 공장, 노동장하고 다를 바가
인 이유로 해서 동두천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한 방을 작업실로 가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작가가 지금 작업실이 개인적으로 제가 봐서 사진 찍는 거에
없지만,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다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되게 공감을 가는 부분이 이번 이걸 통해서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좀 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대해서 약간 우려를 했었어요. 왜냐하면 마음에 좀 안 든다고. 작업실이 너무 좁기 때문에.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서 제가 1박2일을 가서 그러니까 작가
어떻게 열심히 매일 매일을 그러니까 작업하는 것으로써 내가 그 좀 더 영위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부분, 정말.
하고 이렇게 얘기하고 놀고 이러면서 아침에 작가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제가 깨어나서 찍고, 그 다음에 아파트 주변 돌아다니면서 보기도 하고. 그 다음
김준기: 두 분 다 전업 작가시죠?
에 작가하고 같이 동행을 했었어요. 작가 작업실을. 왜냐하면 제가 아직 운전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인해서. 하하.(웃음) 작가가 직접 우리 집 근처까지 픽
방명주: 네, 그렇죠. 그게 정말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저는 알잖아요. 그랬을 때 참 그래도 열심히 한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습니다.
업을 하러 와서. 그렇게 해서 가면서 찍은 사진이고요.
김준기: 뭘 전공하세요?
김준기: 아파트 몇 평이에요?
관객: 회화요.
방명주: 방이 두 개고, 평수가 그렇게 넓지가 않아요. 네. 지금 그래 가지고 되게 조금 과도기적인 단계의 작업실인데.
김준기: 회화 전공하세요? 네, 그러면 뭐 그림 그리는 사람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하게 하겠네요. 근데 지금 말씀 들어보니까. 여느 작가
김준기: 저 보따리 같은 건 이불장에 넣은 거예요? 아니면 저렇게 쌓아놓은 거예요?
들, 그러니까 다큐멘터리가 아닌 형태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 다른 화가의 작업실에 가서 다큐멘터리를 한 경우가 아닌 사람들인데 비해서. 이 전시의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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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부합하는 발언을 되게 많이 해서. 왜냐하면 관찰자적 시각에서 작업실이란 공간을 바라보고, 또 작가들의 삶을 돌아보는 이런 과정들이 하룻밤 사
으로도 쓰인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아까 보였던 트릭의 사진이라고 하는 것, 트릭이라고 하는 부분의 맥락에서 어떤 여성적
이에 죽 일어난 거죠. 그래서 봤을 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물론 다큐멘터리 작업뿐만 아니라 다른 작업도 하는 분이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인 부분을 어떻게 결합을 시켜서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아까 보였던 트릭 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어떤 현실적인 측면, 아까 현실이나 존재라는 그런 측
그 어떤 게 있는 거 같아요. 그 작업실 공간, 작가라고 하는 사람에 관한 탐구 같은 거, 탐구 정신. 그래서 구석구석 다 찍었잖아요. 그죠? 나더러 찍으라면
면들을 어떻게 좀 틀어서 보여줬다라고 한다면, 이 작업을 하면서 전시를 끝내고는 얼마나 약간 영향도 있기는 해요.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서 어떤 전도
저렇게 못 찍을 거 같은데. 저렇게 찍어서 컬러풀하게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그런. 아 역시 작업을 하겠다고 하고서 접근하는 것과 그냥 난 작업실
된 현실의 부분, 사실 내가 이 현실에서 바꾼다. 어떤 전환시킨다고 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세상에서 보이는 것들이 더 트릭처럼 보여 질 수 있는가라는
에 가면 어떤 작업이 있나 이러고, 어떤 작업을 고를까 큐레이터는 작업을 선별하고 작품 방향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러는데. 역시 삶에 대해서 공간의 구
부분으로 생각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좀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아마 지금은 그런 측면을 가지고, 조금 어떻게 보면 여성이라고 하는,
석구석의 맛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저랑은 사뭇 다른 거 같아요. 그러니까 또 작가고. 그렇습니다. 다른 작업도 좀 보여주시고, 마무리 해 주세요.
여성적이다, 여성화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너무나 넓고 그러니까 좀 더 얘기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얼마
방명주: 아 네. 그러니까 그 이전 작업들하고 지금 올해 제가 개인전이 잡혀 있어요. 그런 점을 중심으로 해서 한 번 보여드리게 될 텐데. 예, 저의 삶의 모
나 더 현실 속에서는 트릭처럼 보이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하려고요. 이거는 어떤 씨앗을 안에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꾼 거고요. 이거는 최근에
토이자 목표가 되는 게 행복하게 사진 찍기 고요. (웃음) 네. 그 작년에 제가 첫 개인전을 했던 게, 트릭이라고 하는 제목이었어요. 아까 얘기했던 부분에
그냥 재밌게 작업했던 것 중에 하나인데. 일부 작년 아니구나, 한 달 전 즈음에 효도관광 차원에서 일본에를 갔었는데. 일본 게임 방에서 찍은 거거든요.
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어떤 현실흡입력 내지는 현실핍진성이란 것이 사진의 얼마나 큰 힘인가를 익히 알고 있었고. 그거에 대해서 저는 조금 다른 시각
되게 재밌더라고요. 이렇게 보이는 것들. 자 작업 보여드리는 건 여기까지고요. 올해 아무튼 마리오네트 작업은 아직 진행 중에 있고, 지금 얘기했던 부분
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그렇게 생각해서 진행되었던 거, 전시되었던 거고요. 그냥 편하게 그냥 한 번 보세요.
들이 어떻게 조금 더 정리가 되어서 작업을 통해서 여러분들한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질문 있으면 뭐.
이건 제가 유일하게 제목을 붙인 작업인데. 7과 1/2이라고 하는 거고요. 왼쪽에 앞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거 같은 경우에는 사진이 되게 단단한 거죠. 두
관객: <분홍신>이란 의미가 뭔지.
번 찍은 거거든요. 한 필름에 두 번 찍어서, 한 번은 병을 빼내고 찍은 거였는데. 정말로 특히 유리병이라고 하는 게 투명하다고 하는 거. 그러니까 사진이
방명주: 아 그게. 아마 보통 신이라고 할 때, 여신이라고 하지 않으면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남성이라고 알고 있잖아요. 근데 분홍이라고 했을 때 색감, 색
투명하게 현실을 담아낸다고 하는 부분에서 되게 얘기가 많이 되었었는데. 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그리고 뒤에 배경이 사라짐으
이라고 했을 때 핑크라고 했을 때 훨씬 장식적이고, 어떻게 보면 여성의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 그 다음에 핑크가 새로운 요새 뉴 제너레이션의
로 해서 약간의 무중력 공간 같은 그런 느낌들이 좋았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고요. 그리고 7과 1/2이라고 하는 건, 제가 그 전에 사진
색깔이라고도 하더라고요. 핑크라고 하는 . 그래서 그걸 조합을 해서 그러니까 핑크 갓, '더 핑크 갓(the pink god)'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대지의 여신,
을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영화 쪽에 관심이 있어서 쭉 작업을 했었어요. 영화공부는 16mm작업 뭐 이렇게 했을 때, 훼드리코 휄리니라는 이탈리아 감독
대지의 신 이름 중에, 그 여신 이름이 있는데 그건 제가 깜빡깜빡하다 보니까 잊어버렸는데. 그 대지의 여신하고도 그런 맥락에서 <분홍신>이란 제목을
의 8과 1/2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는 아홉 번째 가기 전에 약간의 시험 작이라고 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는데. 거기에서 약간 어떤
짓게 되었던 거 같아요.
영화적인 것의 맛을 잃지 않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이게 되었고요. 흐흐. 이거는 뭘 찍었느냐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었어요. 대체 뭘 찍었느냐? 어
김준기: 그러고 보니까 우리들 둘 다 시커먼 옷만 입고. 회색. 검은색.
떤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뒤집은 거긴 해요. 이렇게 보면 더 편하게 아실 수 있으실 텐데. 원근감 때문에 올록, 볼록이 좀 다르게 보이는 건데. 국화빵
관객: 이 작품을 본래 작가 주인이 그런 생각을 할 거 아니에요? 작품에서 본인이 닮고 싶은 부분과 또 객관적인 입장에서 담고 싶은 부분에서 틀릴 텐데.
틀이거든요. 그러니까 약간 오묘한 지점들이요. 그런. 그러니까 그런 느낌이죠.
이제 좁고 넓고의 개념을 떠나서 이 지금 작업하신 걸 본 소감을 어떻게 말씀을 하셨는지. 작업실 주인이. 본인들은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김준기: 렌즈는 뭘 썼어요?
방명주: 아예. 그러니까 홍지연씨나 노석미씨가 어떻게 얘기를 하셨는지? 글쎄. 그건 저도 되게 궁금해요. 왜냐하면 노석미씨 같은 경우는 중간에 한 번
방명주: 렌즈는 그냥 50mm 렌즈 그대로 썼어요.
만났었어요. 그거 하고 나서. 그래 가지고 전시 보러온다고 그랬었거든요. 그랬었고. 홍지연씨는 작업을 실제로 보고 갔는지 안 봤는지는 몰라서 아마 이
김준기: 50mm렌즈로 그대로? 근데 왜 왜곡현상이 나타났죠?
전시를 끝나고 나서 한 번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모르겠어요. 그 부분은. 어떻게 흡족 하는지, 아닌지는 사실 조금 다른 차원의 얘기이기
방명주: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보시면 훨씬 오목하게 들어간 느낌이어서 그게 더 뭔지 아실 텐데. 어떤 사실 카메라의 시각하고, 사람의 눈의 시각하고는
때문에. 예.
사람의 시선을 따른 거라고는 하지만, 되게 틀리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 그리고 요것 같은 경우는 그냥 어떤 그런 맥락하고 비슷하게 카메라의 시
김준기: 저 무슨 상회 간판은 아직도 저렇게 붙어 있어요?
선이라든가, 어떤 시선의 교란이라든가 하는 부분들을 생각했었던 거 같고. 뭐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제가 일산에서 잠깐 선행 작업실이 있었던 적이 있었
방명주: 아 예. 잠깐 자리를 비운 동안에 잠깐 얘기를 했었는데. 그 홍지연씨 작업실 가는 도중에 미아리 공동묘지처럼 그런 곳이 있어요. 지나는 길에. 거
는데. 버려진 냉장고에 녹이 쓴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 다른 식의 사진이지만, 어떤 다른 식의 느낌들이 그 어떤 유희적인 느낌들, 사진 작업을 통해서 그
기에 그렇게 있는 구멍가게인데. 아까 얘기했다시피 홍지연씨가 요새 설치 작업하는 어떤 그런 맥락하고 비슷하게 생각해서.
런 걸 보여주고 싶다. 근데 이거 같은 경우는 이런 식으로 한 번 재미있게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계속 생각은 하고 있어요. 아까 얘기했던 <분홍신>전에
오철헌: 저기 가는데 무서워요. 장승같이. 진짜 공동묘지가 있고. 겨울에는 얼음이 얼잖아요. 도로가 얼어 가지고 가는 길이 이쪽 아니면 이쪽인데. 여기
서. 이게 했던 부분인데. 이걸 이렇게 전시가 됐었거든요. 그때 <분홍신>에 주제가 전반적인 주제가 에코페미니즘이라고 했었어요. 근데 에코페미니즘
가 얼어서 차가 못 다녀요. 그러니까 완전 절벽으로 되어 있고, 완전히 무슨 요새 같아요. 거기 밤이 되면 불하나 없고.
하면 막 이즘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어떤 자연과 여성의 어떤 관계를, 이런 것들 통해서 어떤 여성적인 시각을 보여주려고 했던 전반적인 카테고
방명주: 아, 그날 촬영하러 간 날. 되게 추웠어요. 12월. 그래 가지고 사실은 그렇게 춥지 않았으면 좀 더 작업 뭐 이렇게.(웃음) 근데 그 날 너무 추웠었던
리는 그랬었는데. 콘돔이에요. 콘돔을 불어서 찍었거든요. 작업을. 근데 아까 그런 트릭이란 맥락에서 비슷하게 가는 거지만, 근데 사실 다른 식으로 보이
기억이 있고요.
긴 하지만 되게 요상하다, 내지는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 야하다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을 좀 많이 받은 거긴 해요. 보고서는. 근데 소재가 콘돔이라고 하는
오철헌: 여기 여자 분들이 많으신데. 저희 두 사람 빼고. 근데 거기 홍지연씨란 분이 여성분이시잖아요. 근데 두 분이 작업을 하는데, 기거를 하면서 작업
것을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뭐 젖꼭지 아니냐,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느낌으로 했었어요. 어떤 남성의 성기지만, 조금
을 하는 공간인데. 글쎄 제가 보기엔 처음 갔을 때 느낌은 여자 둘이서 저기서 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조금 환경적으로는 참 삭막한 곳이에요. 그러면서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부분. 그 다음에 안과 밖이 한꺼번에 저렇게 보일 수 있다는 거. 불어서 찍었기 때문에 풍선느낌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그게 어떤 내
도 어떻게 보면 반대로 극과 극일 수도 있겠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우리가 보고 있는 그런 도시적인 생활에서 오히려 정반대의 생활, 그런 데에 또 있으면
부와 외부의 어떤 맞닿는 공간이라고 하는 느낌,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 디스플레이 했을 때는 이런 식의 포맷으로 봤을 때 효과가 되게 괜찮았던 거
또 다른 삶의 생활 방식이나 그런 것이 자기 삶의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
같고요. 그래서 이 포맷에 어떤 좀 다르게 보여 지는 것이 이번 작품에도 연결이 되는 지점에요.
김준기: 두 작가 작업실 다 가보셨어요?
올해 제가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데, 아직 정확하게 날짜나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고요. 아무튼 올해 안으로 하반기에 가을 이후에 전시를 하게 될 텐데. 그
오철헌: 저 분은 안 가봤어요. 고양이 저 분.(웃음) 먼저 있죠. 슬라이드를 이쪽 사진은 아까 김준기씨가 저기, 저보다 훨씬 설명을 잘 해주신 거 같아요. 하
때 또 여러분들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고. 흐흐. 아직 작업이 다 끝난 거는 아니고요. 이거 그냥 작업했던 것들 조금씩만 보여 드릴게요.
하. 왜냐하면 저는 저의 시각적인 거하고 느낌하고, 또 김준기 큐레이터가 보는 작가의 느낌이란 게 또 틀리다는 걸 또 아까 새삼 느꼈는데. 저는 이 사람
김준기: 마리오네트가 무슨 뜻인가요?
들, 지금 요 네 분 관계라는 것은 사실 일로서 제가 개인적인 일이나 부탁이나, 아니면 저의 일, 취재 때문에 가서 찾아뵙고, 사실 일로서 사진 촬영한 것
방명주: 마리오네트라는 게 서양인형, 특히 프랑스 쪽에서 보면 줄달아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마리오네트라고 하는데, 여자 이름
의 일환인데. 그런 거로 보니까 이 분의 작가들을 물론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어떤 성향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작가에 대한 것은 큐레이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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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 얘기하고, 그런 적은 사실 없었어요.
다음. 그래서 작업실의 구조가 어느 정도 사진이 예쁘게 나올만한 그런 좀 사람들에게 어필될 만한 사실 공간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는 과감하게
하지만 이제 저는 여러 이런 작가 분들을 만나보면서 대충 이제 한번의 만남으로서 교감이란 게 있잖아요. 저는 그걸 참 중요시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클로즈업을 하거나, 어떤 부분을 좀 더 확 포인트를 좀 많이 주거든요. 그래서 이럴 때는 그 사람의 포즈, 좀 젊은 친구라서 제가 좀 더 이 포즈, 이
저 사진에서 보면 모든지 우선 사실 작가 아틀리에가 모든 게 다 조화롭고 잘 이루어진 건 사실상 많지는 않아요. 그리고 또 사진 빨이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이 현재하고 있는 상황, 이런 것을 같이 어우르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런 스타일이 있고요.
사진 빨을 잘 좋게 만든 그런 아틀리에도 많진 않거든요. 그렇다면 그 중에 제가 방법 택하는 게 있어요. 이 사람을 만났을 때 처음 사진을 찍는데, 아틀리
다음, 이거는 박선미라는 분인데요. 사실 이 분은 저기 작업실이 우리나라에 지금 현재 없어요.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를 할 때, 제가 사진을 찍은 거고.
에 구성이 참 잘 되어 있는 데는 아틀리에를 맞춰서 제가 그거를 좀 예쁘게 포장을 하는 거고. 그 공간이 좀 그렇다 할 때는 사람을 좀 더 좀 더 교감하는
이 분이 흑연으로 석탄 같은 걸로 작품을 만들어서 주렁주렁 매달거든요, 근데 이제 제가 일부러 그림자를 연출한 겁니다. 라이트를 써서. 그저 이 석탄이
그런 걸 끌어내려는 그런 작업을 좀 하고요.
란 느낌이 몰라요. 저는 그걸 좀 더 강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대칭구조로 정 가운데 주저앉게 만든 다음에 강한 사진을 떠나서 이 사람이
그 다음에 이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있어요. 그건 뭐냐, 아틀리에에서 만나지 않거나, 아니면 정 그런 아틀리에 장소에서 저기 저희랑 연락을 못
가지고 있는 작품성이란 것은 독특하면서도 좀 형태미가 나름대로. 저도 그런 데에 부합해서 같이 좀 그런 형태를 보여주려고 이런 식으로 연출해 본 거
하고 초청을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작가들은 그럴 때는 자기가 만든 그런 작품들, 그런 앞에서 대부분 좀 그런 걸 끌어내는데. 그런데 그게 제일 어
고요.
려워요. 그런 제 3의 공간에서 그런 작가들을 소화해 내기가. 뭐 그런 세 가지 방법 정도를 쓰는데. 일단 한번 슬라이드를 좀 보시죠. 일단 요 느낌하고 비
다음. 이분은 동국대 오원배 교수님인데, 학교 안에 작업실이 있어요. 저는 공간감을 많이, 어떤 것은 시원하게 되어 있고 아주 공간이 잘 되어 있는 곳은
슷한 느낌도 있지만. 제 세 가지 부분에서 장소. 제가 제일 길게 얘기하고 싶은 게, 제가 사진을 찍는 주인공 입장이지만 그 사람은 제가 포장하는 빛으로
이런 식으로 공간 배치를 제가 많이 하는 스타일이예요. 위는 아주 천장이 아주. 이 분은 아주 좋은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학교에서 준 거지
서 그림을 그리는, 나타내는 사람은 제 느낌하고 교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요.
만은. 아주 공간이 시원시원하게 되어 있고. 좋은 아틀리에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그 다음에 넘겨보세요. 그런 공간을 참 제가 중요시하거든요. 그 아틀리에 공간을 저는 물론 사람을 찍지만 사람 자체가 꼭 제일 주가 되어야 한다는 건
다음. 이것도 마찬가지로 그런 스타일인데. 이제 조금 비슷하게 한 거고요. 이 분은 정현규라는 분이십니다. 근데 이제 제가 마침 이 분을 촬영하러 갔을
아니에요. 저는 그러니까 꼭 사람을 찍으면서 그 사람의 뭔가 윤곽이 뚜렷하게 나오고, 이런 게 아니고, 그 장소와 사람과의 그 주부가 없이 어느 정도의
때는 요 저 뒤에 걸려 있는 작품들이 있어요. 근데 이제 이게 침목인데요. 아시죠? 철길에 깔아놓는 옛날에 그 목, 침목, 그걸 오래된 건데. 그걸 우연치 않
서로 간에 좀 잘 어우러지는 그런 공간감을 저는 참 중요시 생각해요. 그거와 플러스 교감. 그렇게 생각하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게 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봐요. 그때. 그래서 그걸 작품을 표현하려고 왕창 들여놨대요. 그래서 막 도끼질도 하다가, 그런 상황을 오히려 저한테는 그
김준기: 라이트를 쓰시죠?
게 아주 현실감 있게, 그 작가의 그 공간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거 같아서. 저렇게 한 번 찍어봤죠.
오철헌: 라이트를 씁니다. 라이트를 쓸 때가 거의 대부분이죠. 이 분도 정원철씨란 분인데. 그림을 아주 섬세한 그림을 하시는 분이고, 판화를 전공하신
이게 또 공간을 한 번 보시면, 다음. 위에서 한 번 찍어본 건데. 꼭 굳이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아니지만, 꼭 굳이 사람이 작가의 프로필 얼굴이 부각되고,
분이예요. 그래서 앞에 연장들이 보면 기존의 그림 그리시는 분들하고 좀 틀릴 겁니다. 근데 아까 전에 하고, 전 잠깐만 틀어 보실래요? 이것도 작가하고
이렇게 드러나고 이런 것보다는 공간을 좀 더 많이 보여주고 공간감을 보여주는 것을 저는 좋아하거든요.
이 공간 배치를 공간을 좀 더 많이 크게 해서 한 상황이죠. 제가 특별히 좀 그 중에서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진들이에요. 공간 배열을 중요시하는. 요것
다음. 이 분은 고낙범 선생님인데. 이 작업실 안에가 이렇게 빨간 소파와 자기 겨자 색 작품을 배치를 해 놨었어요. 의도적으로 놨겠죠. 물론. 자기 작업실
도 마찬가지로 저는 이제 한 쪽에 어느 정도 대각선 구도나, 여러 가지 그 뭐 그림 그리시는 분들은 그런 구도적인 면은 다 아실 거예요. 그래서 기존 베이
이니까. 좀 어두워요. 이건 제가 촬영할 때 좀 어둡게 했어요. 근데 그 제가 만났을 때, 이 분은 제가 자주 못 했지만, 첫 만남에서의 이 작가는 기존의 작가
직은 좀 확실하게 깔고, 저렇게 사진을 찍는 걸 추구하거든요.
들의 얼굴, 그런 이미지가 아니고 지금 뭐 옷이나 뭐 여러 가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되게 스타일리스트예요. 그래서 일부러 제가 좀 그런 스타일로 연예
그리고 이거는 완전히 정 가운데 놓고, 이런 식으로 대칭적으로 배치를 해서 사진을 찍은 스타일이고요. 아, 디자이너인데, 좀 제가 느낀 이 사람은 좀 뭐
인 찍듯이 그런 스타일로 연출해 봤어요.
랄까, 아주 강한 스타일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여러 가지 그런 것들 자신감 있게 일도 하는 프로페셔널이면서. 그 나타내고
다음. 이 분은 이경호 선생님이신데. 아주 연세가 많은 분이시죠. 팔순이 넘으셨고. 다음. 두 가지를 일부러 갖고 왔어요. 그러니까 이 연세 많은 분들은
자 하는 그 뭔가도 뚜렷하게 강한 카리스마적인 그런 것도 있는 성격인데. 의외로 제가 이 사람을 만나서 사진을 찍는데, 자기 화장실, 사무실 있는데 화
제가 보는 그런 작가의 이미지는 아주 이경호 선생님의 그동안의 행로를 보면 좀 위대할 수도 있고. 그런 걸로 제가 스타일을 일부러 로우 앵글로 찍은 거
장실이 아주 멋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막상 가봤죠. 가봤더니 뭐 타일로 되고, 묘한 분위기더라고요. 화장실 안이에요. 남자화장실 안이요. 여자화장실
예요. 그래서 그리고 좀 더 디테일이라든가 이런 거친 거를 이 느낌을 오히려 사람을 좀 더 좀 더. 로우 앵글로 찍어보면, 사람이 좀 더 거대하게 거만하게
을 찍을 순 없고, 남자 화장실 안인데. 그래서 일단 한번 여기 사진 나온 건 한 장이지만, 여기서도 한 수 십장 찍었을 거예요. 조금씩 앉아 있기도 하고, 뭐
보이는 거거든요. 제3자가 보기에는 좀 위축되어서 보이는 스타일이예요. 그래서 이런 작가들은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좀 어느 정도 평가를 하는
히히거리고 웃고 있는 것도 있을 거고. 한데, 사실 그 중에서 하나는 더 보여주고 싶은 비슷한 사진이 있는데, 그러니까 제가 처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스타일이니까. 보세요. 이건 어떠세요? 그거랑 제가 말씀한 거 듣고 보시니까. 이렇게 찍은 거하고, 그렇게 찍은 거하고. 그런 부분이 생길 수가 있는 거
이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그거를 가장 저는 제 방식대로 그 느낌 그대로 표현해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스타일의 사진을 찍고자 하는 건데. 그 중의 하
예요. 그래서 저는 사실 구도적인 거나, 뭐 그런 거 봤을 때는 이런 거는 뭐 프로필 사진으로만 끝나는 거죠. 더 이상은 재미가 없는 사진이죠. 이런 거는
나 이 사람, 화장실이지만 뭔가가 튀는 그런 걸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음. 이게 같은 사람인데, 어떠세요? 일부러 두 장을 같이 놨어요. 그런 사진하고,
또 하나의 연출 사진이 아닌, 보통 제가 사진을 찍은 작가들은 거의 다, 저기 돌아가신 중광스님을 보면, 찍을 때 의자가 저기 있지 않았어요. 더 왼쪽에
이 두 가지 사진, 나중에 한 건. 이 사진하고 아까 그 화장실에 있던 사진, 그게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또 자기가 살고 있는 작업하고 있는 공간이지만, 찍
치우쳐서 있었는데, 그것을 제가 끌어당겨서 이 분을 거기에 앉히고, 위에 저기 나무 이상한 게 하나 붙어있을 거예요. 아마. 그거는 사실 공간으로 따지
기에 따라서 저렇게 분위기가 저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면 그게 없어지면, 없애서 손으로 해서 한 번 보세요. 그러면 상당히 또 심심할 겁니다. 그런데 일부러 제가 공간적인 연출, 배치를 생각하고 거기에 앉히
다음. 아, 이거는 얼마 전에 제가 가장 최근에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인데요. 최우람씨라고. 지금 일부분 저 위쪽으로 보이시죠? 이 사람이 저기 곤충이나
는 장치를 한 다음에, 그 다음에 이제 맘대로 하는 거예요. 맘대로 웃는 거예요. 제가 웃으라고 한 것도 아니에요. 저 분의 나름대로의, 그 때 다른 분들하
동물들 관련된 그런 거를 기계적으로 작은, 어떻게 보면 좀 정교한 거죠. 그런 조립품 같은 거를 자기 스스로 저기다 철제를 다 만들어서 저런 식으로 표
고 있으니까 얘기하다가도 웃고 했는데. 요 공간하고 배치 문제가 확실히 잡혀있고 그 이후의 얼굴 표정이나 그런 거는 그 분한테 맡기는 거예요. 근데 제
현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설치작가도 아니고, 저런 작가는 어떻게 뭐라고 해야 돼요?
가 좀 있다 보여 줄 건데 그건 제가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그리고 이거는 우연성으로 트릭이 없는 우연성으로 찍은 겁니다. 여기는 자기 작품이 걸려 있
김준기: 미디어 작가라고 하죠.
는 어떤 갤러리인데. 이 분이 다른 분과 얘기하는 장면을 포착했어요. 나는 이게 아주 이 사람이 프랑스에서 작업하시는 분인데.
오철헌: 미디어 작가요? 저기 사실 근데 아틀리에를 찾아갔는데. 그전에 이 사람을 찍은 적이 있었어요. 있었지만, 그때 작업실을 촬영을 안 하고, 이 사
김준기: 누구시죠?
람이 만들었던 작품 앞에서 이렇게 이 공간에서 오로지 사진을 찍다 보니까, 다시 한 번 작업실을 방문해서 얘기를 들었죠. 무슨 어떤 것을 만들겠다. 이
오철헌: 나도, 아 지금. 하하. 그 부분은 배제합시다. 하도 많아서 나도 까먹었어. 하하. 그래서 얘기를 안 하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그때가 이게 좀 꽤 됐
러면서. 제가 보기에는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 대충 움직이는 모양들을 같이 좀 작가도 어우러지게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근데 막상 갔더니 작업하고 있
어요. 이게 한 96년도 정도 즈음. 지금 아마 우리나라에 지금 없을 거예요. 파리에 있을 텐데. 느낌이 딱 파리에서 작업하는 사람의 느낌이 딱 어우러져 있
는 게 너무 작은 소규모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어 가지고. 그렇게 제가 생각했던 의도대로 작업실 가서 찍지를 못 하고. 그래서 생각한 게, 일단은 작업실
는 것 같았어요. 꽤 여러 장 찍은 것 중에 이 사진이 좀 이 사람, 제가 본 이 사람의.
공간은 배제하고. 이런 경우 그 사람의 모습하고 여러 가지 구도적인 거 이런 것들에 치중하고 촬영을 했어요.
다음. 이 분 아시는 분 계세요? 취화선 때 뒤에서 그림 그리신 분인데. 저는 이 분의 그림이 아주 차분하게 스타일이 아주 차분하게. 그리고 말씀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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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하시는 분인데. 그 사진을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어봤지만, 제가 제일 맘에 드는 이 분한테 걸 맞는 사진은 이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개
그림 그릴 때마다 그냥 밑에다 깔아놓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렇게 널브러져 있는 장면하고, 공간만 제가 일단 이렇게 상의를 해가지고, 작가분과
인적으로 잡지에도 내 본적이 있고. 또 뭐. 가장 뭐 차분하고 평온한 느낌에 대한 작가의 다가오는 느낌이 제일 맞는 거 같아서. 네.
찍은 평이한 작품이에요. 다 됐네요. 자 그리고 이게 준비한 게 없어서 일단 이걸 한 번 나머지를 제가 어떤 스타일로, 스타일이 전부 다 틀릴 거예요. 하
이 분은 권여현이란 분인데요. 저는 이 마스크, 가지고 있는 마스크가 상당히 좀 이렇게 성격적으로 투박하시고 그런 분이세요. 우러나오는 마스크도 참
나씩 공간 디자인적 구성을 한 게 있는가 하면, 사람의 얼굴 표정을 좀 더 살린 게 있고.
저는 재미있게 생각했는데. 사실 다른 것도 있어요. 막 찌그러지게 찍은 것도 있고, 뭐 몇 개 있는데. 절대로 안 웃어요. 이 분은. 하하. 웃지 않는 스타일이
방명주: 저도 그렇지만. 사람을 찍는다는 게 힘들어요. 일을 하시니까 더 아시겠지만, 저는 항상 정말 일, job으로서의 사진 찍는 부분, 항상 저는 어렵더
예요. 그 저 아틀리에 화실에서 짜다 남은 뭐 여러 가지 배치를 했는데, 그런 공간보다도 그때는 제가 사실 공간적인 요소는 사진 찍고 싶은 그런 여러 가
라고요.
지 요소보다는, 이 분의 지금 방금 말씀드린 그 분의 얼굴, 마스크, 얼굴 이미지에 좀 더 중점을 뒀어요.
오철헌: 그게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 사실 더 어려워지고.
다음. 이 분은 윤광조라는 도예가신데. 경주에서 근처 사시거든요. 아주 외딴 산골에 사시는데. 부부가 둘이서 살아요. 근데 이 분이 제가 뭐 이래도 저래
방명주: 왜냐하면 결과물로 나올 때, 어떻게 클라이언트가 있고, 중간 편집자가 있고, 거치는 과정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참 그거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
도 찍어 보고, 몇 번 찍어 봤지만, 그러니까 달랑 사진하나 놓고, 이 사람에 대해 얘기하기가 상당히 쉬운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 중에서 제가 왜 이런 사
키기란 얼마나 힘든지.(웃음)
진을 내놓게 되었는지, 이해시키는 차원에서 자꾸 얘기를 해드리는 건데. 이런 부분에 이렇게 현재 연출한 건 아니에요. 그냥 이제 제가 사진을 찍을 테니
오철헌: 사실 저기 제 또 사담인데. 이런 개인적인 제가 좋아서 내놓는 사진들에 대해서 이 찍힌 작가들은 사실 그 사진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또 아닌 경
까, 하고 계신 대로 그냥 계셔라. 이 분은 제가 그런 스타일로 제가 찍은 거예요. 앞에 담배도 널브러져 있고, 주전자 차 마신 그릇 있고, 담배는 손에 있고.
우가 많아요.
그냥 뭐 저 지금 어떤 작업할 때 그 화가가 뭐 기록을 하시려고 하는 장면이에요. 오히려 저는 이런 스타일로 보여주는 프로필이 더 이 사람한테는 더 제
방명주: 음, 당연히 그렇죠.
가 맞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그런 교감을 느꼈어요.
오철헌: 그래서 전에 한 번은 그렇게 감히 이렇게 그런 분, 저보다 중년 작가분인데, 부르기가 참 껄끄럽더라고요.
다음. 요거는 고영훈 선생인데요. 이 분이 아주 정밀화를 좀 그리시잖아요. 좀 아시는 분들 좀 계십니까? 고영훈 선생? 저 뒤에 분이 좀 아시는 거 같은데.
방명주: 그건 저희도 찍혀보면 항상 만족스럽지 않아요. 내가 찍힌 내 자신의 모습이. 그런 비슷한 거 같아요. 저도 사실 이거 작업하면서 홍지연씨나 노
이 그림을 보면 이 분은 어떤 뒤에 배경을 고서화나 뭐 그런 여러 가지 그림들을 바탕 베이스에 깔고, 그 위에다가 자기 정밀화를 매달려 있는 거 있죠. 자
석미씨 사람도 찍었었어요. 그래 가지고 계속적으로 저는 이런 작업을 한 편으로는 개인작업 일환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작
기 그림 그리는 게 있고, 거기 매달아 놓고. 저런 식으로 그거를 사실적으로 딱 그리는. 그것도 정밀하게 돋보기 이만한 거 갖다놓고. 이렇게 그림을 하는
업을 이 사람들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알고, 확인이 되고, 그 다음에 가지는 이 사람의 작업적인 스타일이니 개인적인 성품, 그런 것까지 포함해
데. 그거를 다 사용하고 폐기처분 안 하고 그렸던 오브제들이 다 벽에 저렇게 걸려져 있어요. 그러면 저는 이제 여러 사진도 있지만, 이 분은 그런 오브제
가지고, 그래 가지고 아마 지금 계획으로는 매년, 이런 식의 작업들을 한편으로 하고 싶다. 그럼 사진이 가지고 있는 힘 중의 하나가 시간성이라고 하는
를 매달아 놓고, 이렇게 그림 그리는. 저도 그래서 작가를 제가 사진을 찍는 하나의 오브제라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매달 순 없잖아요. 그래서 옆에 세워
게. 시간이 축적되면서 가지는 힘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
서 이렇게 꼼짝 마라, 이렇게 있어라. 일부러. 되게 어색한 표정이지만 일부러 그렇게 제가 한 번 찍은 겁니다. 그러니까 제, 이 사람의 그림 성향이나 또
김준기: 시간이 축적되면서 거기서 오는 다큐멘터리의 힘 같은 거는 대단한 파워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시기에 거기에서 그 사진의 그 이미지를 담
이 작가의 성격이라는 게 어느 정도 드러나도록, 더 맞지 않을까. 그 중에 제가 고른 사진이에요.
아놓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저는 이제.
다음. 아 요건 아까 제가 그 세 가지 중에 아틀리에도 못 가고, 그 분의 작업했던, 설치되었던 장소에서 사진을 찍은 건데. 이 분이 좀 한 때 한 번 얼굴이
오철헌: 기록성이죠. 그건.
나 그런 데서 영화도 한 번 찍는 바람에. 거짓말의 남자 주인공이시죠. 근데 아주 스타일이 아주 독특하시죠. 보기에도. 콧수염도.
김준기: 장욱진, 강운보 선생이 찍은 사진 중에서, 장욱진 화백 사진 잘못 썼다가 혼났던 작품 있잖아요. 한마디로 얘기해서 요러고 쪼그리고 앉아 갖고,
방명주: 근데 저분 사진 전공하셨잖아요.
담뱃불을 켰는데, 이 성냥에 빨간 불빛이 쫙 퍼져나가면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인물 사진이 있어요. 강운보 선생이 찍은. 그런 게 예를 들면 그 사
오철헌: 네, 사진을 했어요. 근데 이제 설치미술로 많이 그 쪽으로 갔죠. 이제 저기가 장항에 있는 지하철공사인가. 거기 앞에 자리 잡고 설치가 되어있어
진 중에서 명품으로 쓰이는.
요. 거기에 세웠는데, 조금 글쎄 노란 겨자색도 아니고, 색깔이 조금 그런 색깔인데. 이거를 그 앞에서 여러 사진을 찍게 했어요. 사진을 찍게 해서, 제가
오철헌: 제가 생각했던, 지금 보면 제일 오른쪽에 중광스님, 돌아가신 분. 제가 어떤 작업으로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이런 식으로 지금 라이브 생중계가
일부러 세워서 뭐 시선을 저만 안 보면 된다는 식으로 해서. 제가 구도는 일단 이렇게 잡고 찍었는데. 바람이 부니까 자기가 이렇게 있다가도 이렇게도 하
되는데. 이 중에서 제가 고르는 겁니다. 이게 제가 이렇게 현지 가서 이렇게 찍어오는 건데. 찍어오면 거기서 제가 마지막으로 골라서 거는 거죠. 그런데
고, 뭐 나름대로 시선을 안 보면서도 뭐 포즈를 다 취한 것 중에 하나가 저런 사진이 나온 거거든요. 글쎄 콧수염을 기르고, 여러 가지 가죽 재킷, 자세 이
거는 것 중에 어떻게 사진이 되는가 한번 직접 한번 제가 보여주고 싶었어요. 죽 한 번 보세요. 보시고. 보시고 나서 말씀을 드리죠.
런 것들의 느낌이 아주 저는 뭐 독일군의 옛날 그런 느낌처럼 딱딱한 이미지, 작품도 경직되어 좍좍 서 있잖아요. 지금 그런 공통점하고, 이 사람이 갖고
김준기: 그러니까 두 작가가 방식이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그죠? 오철헌 선생은 인물을 놓고 찍었고, 여기 방선생은 인물 없이 찍겠다는 것. 접
있는 우러나는 스타일이 매치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중에 고른 게 이 사진이고.
근이 상반되는 거죠.
다음. 이 분은 글쎄, 제 개인적으로 독특한 사람 중 한 사람인데. 이 사진도 그 중에 좀 독특한 거 있어서 하나. 그 동안은 뭐 이런 사진은 없거든요. 일부러
오철헌: 왜냐하면 이거의 사용 목적이 있기 때문에. 프로필 사진이라는 그런 목적성 때문에 이제 저는 인물 사진을. 그런데 인물 사진이라고 하는데, 인물
자기가 대학교 때 그린 자기 자화상인데, 자기를 나타내는 자화상을 들고 있는 작가를 제가 한 번. 그것도 자기가 자기 작품들로만 꽉 찬 내부로 쓴다는
이 안 들어가고, 물론 내용도 뭐 말로써 하긴 하겠지만. 사진의 일단계로 인물이 기본적으로 좀 들어가는 구도로 해서, 구성해야 하는 거니까.
창고 안에서 쑥 꺼내 가지고. 이렇게 쑥 꺼내는 장면이 사실 있어요. 있지만. 그런 거보다도 그런 건 비디오로 찍으면 되지만, 사진은 하나만 보여줘야 되
김준기: 그럼요. 네. 몇 년쯤 되었어요? 작가들 찍은 것이요? 95년부터?
기 때문에, 저렇게 초상화, 자기 그림을 꼭 무슨 영정 사진 들고 있듯이, 느낌이 되게, 저는 오치훈 선생님이 지금하고 또 느낌이 다를 거예요. 나중에 보
오철헌: 94년부터.
신 분계시겠지만, 헬스를 한 2년 동안 열심히 해서 완전히 막강 파워가 됐는데. 저 당시는 참 왜소해 보이고, 성깔만 막 있는 사람, 사실 그렇거든요. 하하.
김준기: 한 10년 간 찍었네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자기 초상화를 영정사진처럼 들고 있는 초창기 모습의 작가 스타일이 오히려 저 때의 제가 참 잘 매치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오철헌: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그 분에 대해서 뭐 여러 흔적들을 다시 제가 담아온 거잖아요. 담아온 것 중에 제가 보기에는 가장 그래도 저 분 그 때 당
다음. 그 때 당시에 찍은 사진 중에 하난데, 느낌이 다르죠. 저거는 그 앞에 작업실에 아파트에서 작업을 하는데. 이거는 저런 식으로 공간을 저렇게 해서
시에 느꼈던 그 경험은 저 사진이 가장 저한테는.
찍어본 건데요. 설명이나 말로서는 재미가 없지요. 사실 아까 제가 자화상 든 그런 식으로 두 가지 사진을 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찍었지만, 그 느
김준기: 다른 상황은 되게, 설명적이고. 요소도 많고.
낌이나 보는 제 3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단 한 장의 사진은 저런 게 좀 틀릴 거예요.
오철헌: 공간감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진도 이런 사진도 물론 이런 사진도 나올 수 있어요. 여기 전시에 관련되어서는 이런 사진들이 어울릴 수 있겠죠.
다음. 요거는 윤명로 선생님의 사진인데. 그렇게 썩 재미있는 사진은 아닌데, 이 분은 사실 작업실을 뭐 이렇게 연출하거나 뭐 이런 게 별로 없어요. 그냥
이런 사진들. 근데 저거는 왜 저 사진을 특히 했냐 하면, 저 분이 지금 돌아가셨지만, 그때 노환이 있었어요. 병이 있어서 어디서 치료를 받고 나서 요양을
시원한 공간만 자기 집에 툭 튀어나와서 있는데. 그리고 그린 작품들이 다 만들어 놓으면, 이제 말리기도 위한 거지만, 쌓아놓기도 하고. 재료들을 저렇게
퇴원을 하신 다음 집에서 마지막 요양을 하는데, 저 분이 기인이시지만 그 동안 그래도 작품을 많이 하셨어요. 도자기며, 그림을 그린 게 제법 많이 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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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전시를 하기 위해서 그런 여러 가지, 이제 그런 큐레이터 만나고 할 때, 제가 같이 가서 이제 찍은 건데. 그때 제가 들은 저 분의 그
김준기: 맞아요, 맞아요. 그런 거 좀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저런 거 있어요. 좀 전에 일부러 카메라를 갖다 들이대 봤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것이 뭐
런 거 보다는, 글쎄 사람이 거의 마감을 하려고,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오히려 나이가 드신 분이지만, 다시 갓난 애기 같은 그런 해맑은 웃음과 그
랄까 딱 갖다 들이대면 처음엔 제가 의식하지 못했는데, 요즘 점점 깨닫고 있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아트를 한답니다. 뭘 하느냐 하면, 이걸 꼭 가지고 다
다음 행동하고, 너무 애기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저렇게 해맑게 자연스럽게 웃고 계시는 표정이, 현재 이제 그런 걸 초월해서,
녀요. 그러다가 내가 만난 중요한 사람, 전시 혹은 기록해야 할 것들 많잖아요. 이제 전시를 보면 이걸 강의할 때 애들한테 보여줘야겠다. 또 이 사람은 참
모든 걸 담고 가는 그런 느낌이 팍 나타나더라고요.
담아두고 싶다. 이런 것들. 습관화되어 가지고, 처음에는 양해를 구했는데 요즘은 점점 시간이 지나고 그냥 찍게 됐어요. 그러다가 저항에 부딪혔어요. '
김준기: 아까 사람 찍는 부분에 대해 방작가 얘기를 했는데. 뭐냐 하면 특히 최광호 같은 사진가는 자기 부인, 어머니, 딸, 자기 죄다 벗겨요. 그리고 누드
아우 찍지 마세요.' 대부분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냥 있었는데. 그 중에 생기더라고요. 요즘. '맞아, 이건 초상권침해야.'라는 생각도 점점 발생하게 되
로 찍는 거지. 그리고 또 누구랑 얘기를 했더라. 이렇게 작가들이 예를 들어 누드를 찍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벗기기 위해서 설득해야 되는 과정들, 김아
는 거죠. 우리가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거에 대해서 우리가 옛날 사람 그랬다고 하잖아요. 영혼이 도망간다. 카메라에 사진이 찍히면. 그런 게.
타라든지, 바로 다음 전시하는 권여현 작가나, 주변에 주인공들을 이거는 이러저러한 개념이고,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되니까 벗어 달라, 이렇게 얘기를
에피소드 하나, 요 밑에 보면 골판지로 만든 공간 있잖아요. 그 공간에 보통 한 명씩 들어가요. 사람이. 근데 두 명이 들어간 거야. 말만한 처녀 둘이서. 들
하면 거기에 대해서 반응들이 올 거 아니에요. 김일영이란 조각가는 이렇게 직접 몸을 캐스팅해서 그거를 표현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은 어려운 과정
어가는 거를 보고, 아니 저런 엽기적인 일이 하고 딱 가서 봤더니, 둘이 들어가서 놀고 있는 거야. 그렇게. 카메라를 갑자기 들고 나왔지. 찍어도 돼요? 그
이죠. 그러니까 예술가의 일이란 것이 벗기는 게 일이예요. 그렇게 그 작가가 벗었더라도. 그랬을 때 피사체가 이렇게 사물이거나 풍경이거나 일 때와 달
랬더니 잠깐만요 그러더니, 시체놀이를 취하는 거야. 지 친구한테 어깨 댓가지고, 갑자기. 그래서 그걸 찍은 걸 제 홈페이지에 올려놨어요. 아주 능동적인
리, 사람일 때 그 대상과 작가와의 어떤 긴장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극심할 거 같아요. 특히 사람을 통해서 뭘 잡아낸다고 했을 때 그냥 군중들을 찍겠다고
참여의식이 높은 그런 미술 전공한 학생인데. 그런 걸로 봐서 카메라 앞에서 '찍지 마세요.'와 '시체놀이'처럼 적극적인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
하는 이런 게 아니라, 찍히는 사람이 의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뭘 찍겠다고 했을 때, 되게 그런 긴장도 있을 거 같은데. 뭐 에피소드나, 벗겨 보신 적 있으
아요. 그러니까 피사체로 등장하는 인물의 반응 같은 것들도 그런 차이들이 되게 큰 거 같아요. 어떤 반응들을 보이시는지, 어떠세요? 대체로 카메라를
세요? 그런 작업 안 하시죠? 하하.(웃음)
들이대면.
오철헌: 글쎄 재미를 느끼면 할 수 있겠죠. (웃음)
오철헌: 저렇게 웃으시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딱 경직되거나 아니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있어요. 근데 직업상 어디 매스컴이나 그런 데 나가는 경
김준기: 대상자, 찍히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주로 어떤 느낌 같은 것들, 그런 것 좀 얘기해 주세요.
우는 그런 어색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잖아요. 그 사람이 어떻게 주인공으로서 보여 지는가.
오철헌: 저도 뭐 그렇게, 저기 작가 분들이 유명한 분도 있고, 진짜 언론이나 여러 가지 매스컴을 많이 타는 유명한 작가 분들도 있고. 그 다음에 정말 젊
방명주: 비디오 매스컴들이 무지하게 비싼 겁니다.
은 작가들은 사실 그런 매스컴을 전혀 타보지 않은 작가들, 때 묻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찍으면요, 그 사람들마다의 다 성향이 있어요. 그러니까
오철헌: 근데 지금 한 거를 꺼낸 이유가 제가 직업의식으로 찍어야 하는, 강제로 얼굴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제가 보여 줄라고, 연출을
사실 저는 찍기에는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을 찍기가 더 쉬워요. 물론 뭐 연예인이나 모델 찍는 것도 알아서 어느 정도 배치해놓고, 구성 뭐 구도에서 무대
제가 보여 줄라는 거예요. 한 분, 한 분을 한 번 모델로 보세요.
에서 어떤 포즈만 얘기만 하면 딱 알아서 나오잖아요. 근데 유명한 작가들, 그런 작가들도 매스컴에 나온 작가들도 그렇게 됩니다. 하하.(웃음) 나오게 돼
김준기: 오우.
요. 그게 왜냐하면 사진을 제가 공간 맞추어서 어우러지게 어느 정도 거기 서세요. 아니면 앉으세요. 일단 해놓고 나서는 그 다음부터 셔터를 찰칵찰칵 하
오철헌: 그거는 바로 디지털이니까 그 얼굴 표정을 보여줄 수가 있잖아요.
면, 자기 스스로 포즈를 거기에 따라 변해줘요. 연예인들 찍듯이, 똑같이 그렇게 해주더라고요. 그거는 많이 찍었기 때문에 자기도 어느 정도 매스컴을
방명주: 우와, 아.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에 익은 거 같더라고요.
오철헌: 한번 해 보시겠어요? 표정관리를 제가 뭐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사실 저도 언제 한 번 이번 KBS 디지털미술관에서 작가라는 분들도 물론 요즘에는 개인적으로 자기가 어필할 수 있을 때는 확실하게 어필을 해야
김준기: 그렇지 않아도 안경, 선글라스를 이렇게 위에 올려놓은 걸로 봐서 뭔가 좀 자세가 나올 거 같네요.(웃음) 뭔가 좀 있어.
되고, 나타낼 때는 확실히 나타내야 되는 그게 프로페셔널 아닌가요? 그러니까 작가들도 어느 정도 그런 걸 할 때에는 프로는 아니더라고, 어느 정도 훌
오철헌: 아니 선글라스가 아니라. 기다려 보세요. 만약에 내가 빛 방향으로 찍을 때는 공간감이나 여러 가지를, 연출을 배제하고 얼굴 표정만. 일단은 해
륭하게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 어필되는 그런 부분은 갖추어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유명한 작가들은 벌써 그런 게 몸에 익어졌는데, 오히려
볼 테니까. 그 이거는 꼭 연출을 해야 되는 상황이니까 어려워지는 그런 문젠데. 보세요. 하하. 근데 이 분 잘 웃으시는데.
그런 정말 때 묻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라든지, 물론 나이가 드셔도 그런 매스컴하고 전혀 관계가 없이 작업을 하신 분들도 많겠는데. 그런 분하고 하면 카
김준기: 진행하세요. 하하.
메라만 들이대면 그냥 주눅이 들어 가지고, 정말 그런 분들은 제가 나타내고자 할 때 그런 게 못 나타내요. 얼굴 자체가 그럴 때는 포기를 합니다. 하
오철헌: 얼굴 빨개지셨는데, 나름대로 연출력이 좀 있으시네. 하하. 여기 뭐 하나 좀 묻으셨는데.
하.(웃음) 포기를 하고. 오히려 어색한 분위기 있죠. 오히려 그 어색한 그거에 오히려 캐치를 잡아내는 게 훨씬 나아요. 그런 식으로 바로 제가 그걸 와 닿
관객: 아 지금 점 빼고 있어요. 하하하.
아야 하거든요. 그런 게 글쎄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그 중에 한 분이 여러분들 중 한 분, 글쎄 그건 얘기하지 맙시다. 작가와 그런 부분은.
오철헌: 아 이거 뭐 지우면 되니까 그래서 제가. 너무 이렇게 잘 웃으신다.
김준기: 이름 밝히지 말고 해주세요.
관객: 근데 웃는 이유 중 하나가 결점을 커버하려고 하는 이유도 있는 게. 저 입이 약간 돌출되었다고 제 나름대로 생각해서. 웃지 않으면 약간 화난 듯한
오철헌: 이름도 당연히 안 하죠. 하하.(웃음)
이미지로. 자꾸 웃게 돼요. 사진 찍으면.
김준기: 그 저 취재 때문에 작가 작업실 같이 몇 작가들 가본 적이 있거든요. 이런 저런 얘기하고 편하게 앉아 보세요. 이제 그러고 하나, 둘, 셋 과정들이
오철헌: 뭐 자연스럽게 해도, 얼굴이 딱 사진 들이대니까 좀 많이 찍어 보신 거 같아요. 하하. 웃으시는 게.(웃음)
이렇게 보면 대상을 편하게 풀어주려고, 코멘트를 한다거나. 예를 들어 아기 사진 찍으면 왜 피에로 모자 쓰고 호로로 짝꿍 하고 찍잖아요. 그런 식으로
관객: 많이 찍었어요. 모델도 해요.
그런 액션들을 좀 본 적이 있어요. 강영호씨는 보니까 그 영화 포스터 많이 찍는 그 사람. 그 사람은 보니까 난리 난리를 치대요. 자기가 연예인 같이. 각
오철헌: 아 그래요? 아 내가 잘못했네. 하하. 잘못 잡았네. 아이 그러니까 제가 의도했던 그런 게 안 나오고. 너무 자연스럽게 그냥 딱 찍어도 나오잖아요.
자 다.
이런 분이야 사실 어떻게 찍어도 얼굴,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오잖아요. 이렇게 그냥. 아까 그냥 그 중에서도 찍은 게. 하지만 이제 다 이렇게 나오는
오철헌: 나는 글쎄, 나는 그 뭐. 각자마다 스타일이, 스타일이니까. 연예인들은 뭐 그렇게 안 해도 알아서 90%는 나오는 사람들인데. 나는 왜 그렇게 악을
법이란 게 없잖아. 소위 이런 걸 캐치를 잡아야 하는데. 하하. 그 다음부터 딴 분한테.
쓰는지, 그걸 이해 못하겠어. 하하.(웃음)
김준기: 저 같은 경우에 어땠어요? 저 몇 번 찍어 보셨잖아요.
방명주: 엔터네이너죠.
오철헌: 아, 이 사람 워낙 사진 찍히기를 좋아해서, 하하. 그래서 한 예로 보통 가면 경직된 얼굴 풀어주기 위해서 제가 일부러 그걸 시켜요. 뭐 다른 사진
김준기: 네 그렇죠. 좀 그런 기질이 있죠.
작가 다 그렇지만, 저는 몇 가지가 있는데. '막걸리~' 하는 게 있어요. '막걸리~'라고 하면 일부러 크게, 크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찍는 거예요. 어쩔
오철헌: 그것도 하나의 자기 과장된 어필이에요.
수 없이 경직되었을 때는 그게 제가 어쨌든 그 사람 그 시간 안에 빨리 그걸 찍고, 그 원고에 맞는 사진을 해서 내 줘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야 제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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쨌든 가서 그날은 웃는 얼굴이나, 제 의도대로 찍어야 되니까. 그거를 따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전혀 못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때는 어쩔 수
머무르는, 그런 식의 자격지심도 갖게 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제가 기회가 되면 제 작업 공간을 따로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어떤 제 일상
없죠. 자기 팔자인데. 뭐. 근데 그거를 강제적으로 하는 경향이 많죠. 그렇게.
적인 공간이며, 삶의 공간이며 작업을 하는 공간을 같이 영위를 할 수 있다면, 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사실 하거든요. 그
관객: 질문이요. 대개 이제 찍으시는 분은 찍히는 거를 싫어한다고 일반 통설처럼 얘기하잖아요. 나는 아 나는 찍는 사람이라 찍히는 걸 싫어한다고 하시
래서 좀 더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아무튼 앞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개인적으로는 조금 넓은 공간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는 데, 어떠신지. 어떻게 잘 찍히세요?
서.
오철헌: 아, 저요? 아 저는 사진 빨 안 받아요.(웃음)
김준기: 오히려 저는 옆에서 보는 사람 입장이지만, 사는 집은 그냥 작게 사시더라도 그 신랑 일하는 공간 넉넉하게 갖고, 별도로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이
김준기: 제가 찍어드린 사진 있죠.
분리되어 있는 게.
오철헌: 아예, 물론 있죠. 있어요. 갖고 있어. 그나마 그래도 좀 나은 편인데. 저는 그래서 어디를 가든 간에 일행 중에 같이 가면 물론 저는 사진하는 사람
방명주: 저는 훨씬 편해요. 그러니까 여자들의 작업 공간, 작업 성행들 내지는 그 사람들하고 전화를 하면서. 참 남자랑 여자랑 참 많이 다르구나. 저는 결
이라서 같이 사진 서로 찍어주고, 그러는 거 사실 귀찮아서 안 찍어줘요. 근데 다른 사람이 이제 사진 안 하는 사람이 가서 찍어주잖아요. 10장중에 제대
혼하기 전보다, 결혼하고 나서 더 많이 느끼게 돼요. 참 많이 다르다. 정말 육체적으로 많이 다르고, 성향, 생각, 이런 게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는 걸. 저는
로 이렇게 저한테 찍혀진 게 한 장도 없어요. 핀트가 가거나 다 그런 경우 없어요?
훨씬 일상적인 거에 더 많이 느끼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저 지금과 같은 작업들이 나오는 거 같고.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 아까 얘기했던 작업 공간
방명주: 저요? 저는 그래도 학교 다닐 때 수업 중에 실습하잖아요. 그러면 제가 모델을 많이 했었어요. 하하. 그래서 그 이후로 찍히는 걸 별로 안 싫어해
이면서 어떤 여자의 공간,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삶을 꾸리고, 살림을 하는 공간. 그런 것들이랑 제 작업이랑 합치되는 부분으로 갔으면 좋겠기 때문에. 아
요. 근데 그런 거 있잖아요. 정말 사진하는 사람들끼리 어디 간다고 하면 기념사진 서로 잘 안 찍거든요. 정말 그럴 때 카메라 잘 안 하게 되고, 아예 저 같
마 앞으로의 작업도 그런 맥락으로 가지 않을까 하고요.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을 좀 해 봐야겠다.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업을 이루어 가는 부분. 요새 그
은 경우엔 어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제 소역에 닿는 사진을 찍게 되지, 그럴 때는 서로 분담을 해요. 특히 신랑하고 같이 가게 되면, 신랑이 기념사진을
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찍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필요에 의한 사진을 찍고, 그렇게 해서 했을 때는 모델도 잘 하죠. 하하.(웃음)
김준기: 지금 마무리 발언하는 시간이에요, 오철헌 작가 마무리 해주시죠. 이 전시나 일상적인 작업실을 리포트 하는 거에 관한 거나, 이번 전시 얘기나
오철헌: 그래도 그건 서로 간의 맡은 바 역할을 확실히, 충실히 하시는데. 웬만한 사람들 주변에 같이 있는 사람들, 같이 가 가지고, 나도 꼭 남기고 싶을
마무리 발언해 주시면서 마감할게요.
때가 있잖아. 하하. 그래서 중요한 건 제대로라도 좀 찍어주지. 나도 뭐 이런 거 밖에 없지만. 그게 참 그게 어렵더라고요.
오철헌: 음 에. 고맙고. 질문 없으시죠? 없길 바랍니다. 허허.(웃음) 마무리할 것까진 아니고, 어쨌든 제가 이번 전시를 빌어서, 김준기 큐레이터님이 이런
김준기: 아 저 방선생님은 저 디지털카메라 작은 거 늘 가지고 다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사진가가 아닌 우리도 전 사진가가 아니에요. 늘 가지고 다닌다
기획을 했다는 게 참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뭐 저도 덕분에 그래서 저기 발표를 안 했던 그런 작품을 이번 기회에 한 번 내놓게 된 거고. 이런 사실 일반
는 말씀 아까 드렸는데. 그.
사람들이 느끼기에, 다가가기에, 접근하기가 한정이 되어 있는 데에서, 이런 기획을 통해서 그런 접근성을 조금이라도 해제시켜주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방명주: 근데 디지털카메라가 보급화 되면서, 특히 뭐 휴대폰에 내장되어 있는, 그런 이후로 젊은 친구들은 사진 찍는 거에 대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
게, 그런 게 좀 의도가 좋지 않았나. 나름대로 소화를 하신 분도 계실 테고. 그걸 좀 다르게 해석하시는 분도 있고 하실 테지만. 어쨌든 뭐 이런 걸 통해서
들이는 거 같아요.
전체적인 매스컴이나 이런 걸 보면 잘 그런 거를 잘 이해를 해 준 거 같아요. 이상입니다.
김준기: 그래서 그런 현상들이 되게 예전하고 달랐던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저의 가족들을 포함해서 예를 들어서 저의 누나나 형들한테 4남5녀 중에 막내 기 때문에 편차가 커요. 그 위에 분들한테 사진 찍어주세요. 그러면 그랬던 기억이나. 어떻게 하면 되냐, 누르면 되냐 이런 질문이 들어와요. 그런 기억 혹 시 없으세요? 사진 찍는 거 자체, 사진 찍히는 게 아니라 찍는 거 자체가 어색했던 시절이 있었단 말이에요. 카메라 이게. 방명주: 그때는 집안에 카메라 한 대 있으면 뭐 잘. 김준기: 자동카메라라도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 현실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이 핸드폰 찍는 거 포함해서. 오철헌: 핸드폰 자체에서 다 있고 하니까. 그리고 그게 핸드폰 전화에서부터 스티커 사진 찍는 거. 그런 게 보급화 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그 사진 찍히는 거, 거기에 자기를 나타내고 표현하는 거를 각자 좀 안다고. 그런 거를. 스스로가 개성적인 그런 거를. 그러다 보니까 이제, 이런 카메라도 뻔히 들고 다니 니까 서로 간에 이젠 연출력이나 그런 게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방명주: 저는 사실 여기 오면서도 누가 여기 올까 저는 정말 좀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주변에 전화해서 '오세요.', 이렇게 하기도 되게 민망스럽고 그 랬었는데. 여러분이 이렇게 자리를 지켜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하하하. 이렇게 여기 메일 주소를 적어주셨는데. 다음에 올해 저는 아마 올해 아무튼 전 시가 잡혀있기 때문에, 그 소식들을 전해 드리도록 할게요. 고맙습니다. 김준기: 질문,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그러면 마무리 발언을 좀 해주시죠. 방명주: 마무리 발언 아니었었어요? 금방? 하하.(웃음) 김준기: 아 좀 전에 그랬어요? 아예. 그러면 오철헌씨가 잠깐 통화 중이니까 여담처럼 그 작업실 리포트 전시 진행하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예술가들이 참 그동안 작업실이란 공간이 되게 신비의 대상 같은 거, 분위기 있는 거 작가답게 뭐 이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뭐 저도 이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었 죠. 또는 직업적으로 가서 작업 얘기나 하고 그랬는데. 한편으로 돌아서서 작가 혼자 있을 때의 작업실이란 곳이 어떤 곳일까를 한 번 생각해 보니까. 아 이게 공장인 거예요. 공장. 방명주: 저도 다른 작가의 작업실을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리포트를 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집에서 작업을 해요. 하하. 그러고 일단 얘기를 말씀 을 드리면, 결혼을 했고, 그러니까 집이라고 하는 곳이 가끔씩 제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특히 전업 작가이면서, 주부이면서, 그러면서 집에 서 작업을 하는 특히 예를 들어 누구, 저희 시어머님이 전화 왔을 때, 어, 너 집에 있니? 라고 했을 때는 그러니까 job, 일을 하지 않는 어떤 식의 그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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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13: 박불똥
2004.02.19 목요일 pm.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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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오늘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가와의 대화를 하는데요. 그동안 죽 진행해오면서 숫자가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다른 분위기의 그런 최
지 간에 '야, 이러고 끝나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어떻게 하다가 한 번 마지막 발악을 한번을 해보자 이런 자기 정리를 했어요. 하고
소 3명에서 스텝 포함해서 6명이 대화를 나눈 적도 있고. 거의 심층대화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숫자가 많으면 많은 대로 또 다른 재미있는 대화들이 오갔
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데서 그럼 가장 기초단계로서 작업공간에 대한 것 좀 확보를 해야겠다. 그래서 지금 사실 작업실 지을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아닌데,
습니다. <작업실 리포트>라는 전시를 열고나서 가장 중요하게 목표했던 바는 작가와의 대화에 작품에 대한 얘기는 많았지만, 작업실 얘기는 많이 없었
그걸 어떻게든 하고. 물론 그런 시도조차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더 많다 그렇다면 저는 굉장히 행복한 거고.
어요. 작업실이라고 하는 곳이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있어서 또는 관람객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어떻게 변동되어가고 있는가. 이런 것들
근데 어쨌든 그래서 지금 땅을 마련하고 있고, 짓고 있어요. 거의 다 지어 가는데. 그거 짓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다음에 작업에 시간을 투여할
을 좀 보면, 현대미술의 지평을 새롭게 좀 볼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의도가 딸려 있고요. 박불똥 선생님 작업 다 보셨겠지만, 지금 찍고 있는 작업실에 대한
수 있도록 또 여러 가지 조건들이 계속 강구가 되어야겠죠. 그러면서 사비나미술관에서 이런 전시를 기획하고, 김준기 선생님이 참여를 해 볼 수 있는 얘
다큐멘터리 형식의 설치물하고, 텍스트 되게 재미있어요. 이야기꺼리 되게 많을 거 같아요. 자 박불똥 선생님을 힘찬 박수로 모시면서 시작하겠습니다.
기를 해 오고 하는 것, 생각, 개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사비나미술관이 기획한 것과 관계없이도 제가 생각하게 된 게, 작업실, 작가가 작업을 하는데 필
일단 박불똥 선생님의 작품, 그것과 엮인 작업실에 관한 이야기들, 그 다음 단계는 작업실이란 곳을 객관화시켜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크게 두 덩어
수적인 게 작업공간이다. 그럼 작업공간에서 그럼 뭘 하느냐, 일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농부들이 일하는 건 논밭에서, 바로 현장에서 일하는 거고. 장사
리로 이야기를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꾼들이 일하는 건 시장에서, 화가가 작업을 한다, 작업실에서 일을 하고. 근데 그 일이 제가 여태까지 한 20년 활동을 해왔는데. 하면서 제가 가진 그 미술
박불똥: 한 10여 년 전에 지금 강남 갤러리아 백화점, 지금은 뭐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맞은편에 박영덕 화랑이라고 있거든요. 박영덕 화랑에서 어떤
에 대한 혹은 예술에 대한 관이라고 하는 게, 흔히 말하는 민중미술 뭐 현실주의. 저는 뭐 미술적인 어떤 기초사항들, 요소들, 이런 것에 몰두하면서 그것
기획전을 하면서 출품을 제가 했는데, 그 전시 중에 작가와의 대화, 이런 게 있었어요. 그래 가지고 그날 일요일인가에 저하고 이종구라고 하는 화가하고
들을 가지고 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거는 저는 굉장히 뭐 아주 저 내려오는 거나, 기질적으로 보나 굉장히 거부감을 많이 갖고,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그날 갔죠. 거기를 갔는데. 이종구씨하고 저하고 둘이 앉아있고. 그리고 작가와의 대화라고 한 그 시간에 잠깐 와서 어떻게 참여를 하겠다
지금 이 지점에 와서 작업공간을 무리를 해서 만들어 가지고 그 안에 틀어박혀서 뭘 해 보겠다, 그러면 뭘 해보겠다는 거냐, 뭘 할 수 있는 거냐는 고민이
고 한 분 있었어요. 그래서 셋이 모여 앉아 있다가 할 말도 없고 해서, 그래서 결국 한 두 마디 하다가 그 분 보내고, 제가 박영덕씨한테 좀 따졌어요. 굉장
사실 드는 거죠.
히. 뭐하는 짓이냐고. 근데 그걸 미안하다 이런 반응이 아니고, 왜 자기한테 따지느냐는 식이예요. 화랑 전시를 기획해서, 초대를 해줬고, 그리고 작가와
저는 한 20년 활동을 해오면서 제가 어찌 보면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화가가 그림을 그려서 물리적인 어떤 그 무언가로 남겨 두어야 했
의 대화 시간 있다고 광고 쳤는데, 사람이 안 모여졌고. 그걸 어떡하나. 근데 그게 어느 작가라서 사람이 안 온 게 아니고,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결국
는데. 그리고서 그 다음에 그거를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풀어 나갔어야 하는데. 제가 이때까지 활동해오면서 중요하게 손가락질했던 것 중 하나가
그랬더라고요. 앞으로 이런 짓 좀 하지 말라고. 하하.(웃음) 아무리 미술이 별 볼일 없어지고, 작가들이 호구로 보이지만, 그래도 이종구씨는 인천에서 평
화가의, 예술가의 정신세계는 자기 현실 속에서 파악하는 어떤 그 집, 무형의 어떤 것이 유형으로 결과물로, 근데 유형으로 결과된 것이 공동체적인 어떤
일에 교사하다가 일요일에 노는 날인데, 요지부동 마음먹고 여기까지 왔고. 근데 이게 이럴 수가 있냐. 그렇다고 해서 작가한테 최소한의 차비를 주거나,
이 사회에, 공동의 선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의 어느 일부, 어느 특정한 어떤 지조로 귀결되어 버리는 부분, 굉장히 아니라고 생각했거
그런 것도 아니고. 이래서 제가 그때 항의했던 요지는 그런 거예요. 우리가 늘 '미술판' 이러면 작가 중심이고, 그 자들의 결과물을 놓고서 글 쓰시는 분들
든요. 근데 지금 제가 작업실을 짓고, 그림을 그린다면, 그래서 애써 자꾸 그림도 안 그리는 쪽으로 자꾸 생각이 가는데. 그림을 그린다면 결국 그게 어떻
이 어떤 역할을 하고, 그걸 도 지켜보고, 뭐 거기에 또 관련해서 장사가 판이 벌어지고, 이렇게 이해를 하는데요. 제가 그때 느낀 거는 돈을 들여서 그런
게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되는데. 80년대 미술이 지금 벌써 한 10여년이 지났는데, 뭐 미술관에 작년에 신학철 선생님 전시회고전 같은 전시도 있었
장치를 해놓고 작가를 불러서 쇼를 하고, 그리고 그 결과물들로 그러니까 말은 작가, 평론가 이러지만, '웃기지마라. 너희들도 다 내 손아귀 안에 있다.'
고. 또 올해도 5월 달에 민정기 선생님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 보면서 저만 그런 생각을 할 게 아니고, 비슷하게 가야될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
이런 느낌을 강하게 받아 가지고 항의를 하고. 근데 항의가 아까 말씀하신대로 안 받아들여지고, 굉장히 감정이 얽혀버렸어요. 그래서 그 때 박영덕 화랑
림 속에 어떤 소재나 주제로 누구를 그렸다. 어떤 형식을 그렸다. 무슨 이야기를 담았다 하더라고. 그럼 그런 이야기로 전달되는 것 말고, 그 나머지 부분
이 생긴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그래 오늘 어디 갔다가 신문을 이렇게 보니까. 바로 세우는 뭐 거기에 박영덕 화랑에서 출품을 했더라고요. 출품 작가가
이 있잖아요. 화가의 삶의 부분이 있고, 그 작품의 여로부분 있는데, 그런 것들이 과연 거기에 담겨져, 그림 속에 담겨진 소재, 주제하고 일치될 수 있느
몇 분 있던데, 그 중에 신문기사에 타이틀에 찍힌 게 국내 작가 작품이 좋은 반응을 받고 팔렸다. 뭐 이러는데 그 작가 중에 함섭이란 작가의 한지작업 5
냐, 똑 떨어질 수 있느냐. 이를테면 이종구가 농촌현실을 그렸다 농민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게 농촌현실을 개선시키는데, 농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나가
점 나갔는데, 다 팔렸다고 그래 되어 있더라고요. 함섭이란 작가는 제 고등학교 때 은사님인데.
는데, 과연 어떤 작용을 하느냐 말이죠. 물론 그렇죠. 그걸 봄으로써 우리 도시 생활에 바쁘게 돌아가다가, 아 그렇지 내 뿌리가 뭐였다. 우리에게 정작 중
그래서 이런 사비나미술관도 어쨌든 사설 미술관이고, 이런 전시기획을, 작가와의 대화를 좀 오라고 해서 사실 시큰둥했거든요. 그리고 뭐 저기서 몇 분
요한 게 무언가를 자각할 수도 있겠죠. 근데 그렇게 해서 그게 실제적인 어떤 자기 삶의 개선을 할 수 있느냐, 그랬을 때는 저는 그게 좀 어렵지 않느냐 하
은 사실 어제 같이 다른 일로 해서 술을 먹고, 늦게까지 있고 집에 못 가고, 이랬던 분이 몇 분계시고. 사실 그야말로 순수하게 뭐 이래된 시간을 내보겠다
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미술가가 뭐 부가가치, 물건생산자로 둔갑하는. 이거를 적극 장려하는 이 지금 자본주의 방식에 대한, 시스템에 대한 굉장한
고 하신 분 몇 분 안 되는 거 같아요. 요거 보다는 더 험악한 꼴도 당했다 하는 거를 제가 미리 말씀드린 거예요. 하하.(웃음)
거부를 하면서. 그거에 나름대로 질타를 하면서 살아 왔는데, 작업실을 지어서 들어가서, 몰두해서 열심을 그림을 그린다. 그게 뭐가 될까 그 고민은 안
김준기: 오늘 되게 많이 오신 편이예요.(웃음)
가져져요? 그럼 그런데, 그럼 그렇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거냐. 50이 넘고 60이 넘고 죽을 때까지 그럼 계속 그러고 궁상떨고 살 거냐. 일단 하면서 부닥
박불똥: 저는 지금 작업실을 짓고 있는데요. 고 밑에 늘어놓은 거 유심히 보셨으면 감이 전달됐을 꺼라 보는데. 제가 올해 이제 우리 나이로 마흔 아홉입
치면서 한번 풀어가자 생각하는 것하고 다를 수도 있지 않겠냐는 그런 생각을 하고요.
니다. 어찌 보면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자기 상표를 개발해가지고, 그걸 갖고 닦아서 도통한 경지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고 지금 여기 다른 분들 작업에서 그게 여실히 드러나지만. 작업실이란 게 왜 꼭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아틀리에, 뭐 이런 것이 아니라. 이동
면 한 50되었으면 자기 세계랄지, 자기 보일 거라든지, 웬만큼 다 했어야 되는 거고. 뭐 죽으면 그만이다 그런 나이인데. 없어요. 글에도 써놨지만 다분히
의, 동시대적인 매체와 연관되어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틀리에의 어떤 느낌이 아니라, 비디오 같은 느낌도 있고, 현장으로 찾아가는 그런 부분이 될 수도
허명이고, '그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뭐 다른 걸로 이름이 나면 뭐하고, 뭐 말 잘하면 뭐하냐. 좋은 작업을 해서 그렇게 결과, 물증으로 남아있어야 되니
있고. 한데 작업실을 짓는다, 물리적인 어떤 규모가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이게 어찌 보면, 자승자박의 자기를 옭아매는, 자기의 틀 속에 자기
까.' 그런 점에서 저 스스로 굉장히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고.
를 집어넣는, 그래서 제가 죽 늘어놓은 것 중에 모눈종이 위에다 이렇게 그런 게 있는데요. 거기 땅을 사서 등기를 내는데, 등기부 제일 표지에 빨갛게 이
그런데 이때까지 작업실을 제가 지어보기도 하고, 또 빌려서 써보기도 했는데, 제가 원하는 상태나 수준의 것을 가져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근데 현실 조
렇게 해서 왁구로 찍어서 기입을 하는데, 그것을 딱 보니까 마치 작업실의 도면 같은 느낌이 확 오면서. 아 요게 이렇게 해서 갇히는구나. 그런 걸 느꼈습
건이 작업실을 임대해서, 작업실 세를 내면서 쓰는 것조차도 어렵고, 그건 뭐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다 그렇죠. 그래서 늘 그것 때문에 끙끙대면서
니다. 그럼 이걸 일단 현재까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할 때, 그 다음 그럼 거길 들어가서 어떤 고민하고, 뭘 읽고 쓰고, 그려서 이 부분을 극복해 나갈
하면서. 사실 아주 중요한 시기 그러니까 제가 지금 지난 10년, 10년도 더 되는데요. 30대 말에서 40대의 전부를 사실 그 문제 때문에, 먹고 사는 것도 해
수 있는가. 그거는 극복할 수 없는 거라는 것을 결국 확인하고 말 건가. 현재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허허허. 작업의 이해는 그렇고.
결이 안 된 상태에서 작업실 공간을 갖는다는 부분은 더더욱 힘들고. 그러나 미대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이랍시고 하면서, 어떻게든 버텨야 되겠고. 그랬
김준기: 박불똥 선생님의 약사를 약 3분 50초에 걸쳐서, 어떤 작업실 꾸려 오셨는지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을 때 오는 어려움 같은 게 있거든요. 그래서 그 지경을 벗어나 보자 해 가지고 이제 오래 잔대가리 뭐 부분대가리 다 써가지고 애를 썼는데. 결국은 계속
박불똥: 대학 졸업하고, 한참 동안은 그냥 신혼집에, 조그마한 방에 이렇게 앉아 가지고 했고요. 거기서 뭐 판화도 하고, 만화도 그리고, 삽화도 해보고 등
가다가 중단되고, 그래서 한 10년 넘게 어찌 보면 허송세월하고. 근데 뭐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비슷할 거라고 봐요. 나이 50이 코앞에 딱 닥치면
등 그렇게 살았고요. 그렇게 살다가 뭐 이렇게 그러니까 영문을 잘 모르는 거죠. 영문을 모르고 살다가,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저 왜 고등학교 과정에 '너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가능한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러고 제가 어떤 경향의 작업을 해 왔던
그림 잘 그리는구나, 혹은 뭐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더 그림에 관심을 갖고, 미대에 진학하게 되는 이런 것처럼, 그냥 미대를 졸업하고 뭔가 뭘 해가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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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거 아닌가. 그런 소박한 생각을 했던 겁니다.
뭐 있지 않느냐 하는데 없어요. 사실 없고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단칸 방 구해서 살림 살기도 벅찬데, 무슨 작업실 따로 생각하고. 그래서 그러면 없는 채로 지내다가, 최초의 작업실이라는 거를 가져
김준기: 옛날 작업들은 다 있으세요?
본 게, 제가 지금 일산 신도시가 생기기 이전에, 거기가 군 면이었어요. 그쪽으로 이사를 서울에서 살다가. 좀 생활공간을 서울의 비용을 가지고 더 좋게
박불똥: 다 없어요. 대개 이 종이들은 이렇게 놓으니까 밑에서 습기 전부 밑에서 좍 빨아들여서, 아니 그래서 저는 아까 밑에서 써놓은 글에서 앞부분에
쓸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간 거죠. 그래서 조그만 연립 주택을 하나 구했는데, 그 연립주택에 지하가 있었어요. 차를 세우고, 그냥 창고인데. 거기 지하에.
그런 얘기했지만, 그림, 미술 이거는 사실은 그래요 80년대 민중미술은 조금 이해되는 게 있어요. '아, 그래 미술이 그렇게 작용할 수 있고, 미술가가 그런
여기 반만 하겠네요. 거기 한 5만원 들여서 밑에 장판 깔고, 뭐 방목 세우고 뭐 이렇게 했어요. 근데 그게 살림방의 한쪽 방을 쓰는 것보다 별개의 지하의
생각도 할 수 있고, 대중이 미술에 그래 접근할 수도 있고. 이렇다면 그럼 나도 미술을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민중미술 이제 뭐 기가 꺾이고, 지
작업실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게 87년도, 88년도 그때입니다. 그때 25만원 들여서 모양을 만들고, 캔버스 꽂아놓고 하면서 이게 뿌듯했거든요. 5만원
금 아까도 얘기했지만, 미술은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예술 일반이 그렇긴 하겠지만, 굉장히 이게 감각도 있고, 생활의 여유도 있고, 뭐 이런 좀 여러
들이는 것도 상당히 마음을 먹고 들이고 했는데. 그 즈음 해 가지고, 어느 화랑의, 어느 화랑조합하고 이야기가 되어 가지고 뭐 약간 지원을 해 줄 테니까
가지를 누리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평상적인 이 생활 속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들, 좀 더 차원이 높다고 해야 되나, 뭐 그런 거에 서로 이런 거 말하고 보여
그림 그리는 걸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주고. '아, 그렇구나. 하고 봐주고. 그래 이걸 , 이걸 하는 건 그런 식의 성질이 아닌가 생각이 돼서, 그거는 아트지에 첫 번에 나갔던 거랑, 두 번째 나갔던
그때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 두고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리고 보니까 그 5만원 들여서 만들었던 그 조그마한 공간이 그
거에서는 한 10년을 죽었다고 하고 해보자. 해보면 저 스스로 생각할 때 대학 졸업하고 지금 한 20년, 뭐 민중미술 쪽 90년대 초까지 해서 한 10년, 그러
렇게 뿌듯했는데. 이게 그 이제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세를 얻었죠. 어디 조그만 건물에 세를 얻어 가지고, 한 달에 한 10만원씩 내고 생
고 나서 또 한 10년, 저는 크게 안 바뀌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활을 했고요. 그런 작업실 한 6년 쓰다가 그 다음에 시골로 가서, 작업실을 좀 이사를 아예 가서 살아볼까. 청주로 가기 전에 그래 가지고 사방으로 돌아
근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가 생각했던 거가 어찌 보면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는 꼴이 된 것도 같고. 그러면 이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다시 말씀드려서
다니다가 맨 허탕만 치고.
제가 저를 깨고 나가지 못하면 결국은 무덤이 영영 깊어진다. 그럼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게임을 해 볼 필요도 없는 건데 해보자. 설마하니 10년이면 강
여러분들도 살면서 어떤 일이든지 간에 해 보시면 다 아시겠지만, 무슨 일을 요럴 거 같아서 해 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잖아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예상
산도 변한다는데. 지금 이 지점까지 와서 어떤 자각을 하는 상태로 10년 동안 정말 한 번 전력을 다 해보면 깨지는 부분이 있지 않겠나, 그렇게 타협을 하
치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규모가 크게 감당이 안 되고, 그럼 손을 놓게 되는. 그렇게 해서 시간 많이 보내고, 그래서 그러다가 나중에 허허벌판에
는 거죠. 단순히 살 길을 위해서 나를 버리는 이런 식은 아니어야 할 거 같고, 그런 상태예요.
있는 농가창고를 하나 임대해 가지고, 거기를 빌려서 쓰다가 2년 만에 집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그때 1200만원 전세로 있었는데. 그걸 1배반을 올려 달
김준기: 아까 공장 얘기 했는데, 작업실도 보니까 이같이 공장들이 인접해서 공단을 형성하듯이 작업실들도 군락을 짓는 경우들이 많은 거 같아요. 요즘
라고 해서, 한 3000만원으로 무슨 벌판에 있는 농가창고를 어느 정도 올리는 건 이해되지만, 그게 말이 되냐. 그래서 사실 작업실 짓는 걸 생각하게 되었
은 도심에 건물 하나를 짓거나 빌려서 집단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그렇다면 작업실이 작가 혼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생산기지로 작
죠. 3000만원 올려줄 돈 있다면 땅이 여기 있다면, 2000만원이면 짓겠다고 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용하는 것도 있지만, 주변의 작가들 또는 사람들과의 환경 속에서 만들어내는 생산 기지로 작용하는 것도 있지요. 주변의 작가들 또는 사람들과의 환경
그래서 다시 또 몇 년 허탕치고, 그러다 주재현 선생님 말대로 망해 가지고, 시골로 가시오, 시골로 가서, 시골에 쳐 박혀서 한 3년 살고요. 그 가서 또 어
속에서 되게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은데. 누구와 교류를 하느냐 이런 문제. 양평에 예를 달면 안창홍 선생님을 비롯한 누구, 누구, 누가 일군을 구성하고
떻게 해 보려다가 잘 안 되고, 그래서 한 3년 살다가 지금 마석으로 이사를 왔는데. 2년, 3년째 또 사는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도저히 분해서 안 되겠다 싶
있다고 할 지, 홍대 앞 쌈지스튜디오에 어떤 유형의 작가들이 있다고 할 지 등등은. 근데 선생님 같은 경우에 일산 쪽에 있을 때 일군의 작가들이 아마 있
어 가지고, 마지막 발악을 해서 작업실을 짓고 있습니다.
었던 걸로 들었거든요. 그런저런 작업실과 작가가 생활하고 작업하는 장소와 주변의 커뮤니티 이런 것들에 관한 경험들, 다분히 뭔가 목적의식적인 논의
김준기: 그 동안 몇 번 하여튼 그 공장 찾아서 영업 개업을 했다가 폐업을 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을 하시고, 이제 새로 준비를 하시는.
들이 죽 있었다는데, 아닌가요?
박불똥: 아, 또 한번은 충주로 내려가기 전에 이제 몰리고, 몰리고, 몰려 가지고 해서 하나도 없어 가지고, 작업실 짐은 이만큼 늘어나 가지고, 짐은 사실
박불똥: 아, 일산에서 제가 11년을 살았는데요. 신도시 생기기 이전에 들어가 가지고, 99년도까지 11년을 살았는데. 일산 신도시 구역이 딱 있고요. 고
어떤 때 들어가 보면 다 내 분신이나 다름없고 애착이 가고,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인데. 또 한편으로 보면 이게 다 쓰레기예요. 쓰레기. 그러니까 작업
주변은 계속 개발이 되거나 아직 농지로 보존이 되거나 한 상태인데. 농지, 보존 농지 자체도 농가용 창고로 지었었어요. 60평 그 정도씩 지었었는데, 지
도구들 작품이든, 아, 이게 작품을 만드는 건지, 정신 나간 짓 같아요. 하여튼 짐은 갈수록 늘어나고, 이건 주체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데, 점점 아까
주들이 거기다 농가창고 짓는 거 돈 얼마 안 들어요. 조립식으로 지으면 평당 40만원, 심지어는 35만원, 30만원 정도면 지을 수 있으니까. 386. 18 한
말씀드린 대로,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순탄치가 못하다 보니까, 가지고 있는 돈은 전부 줄어들고, 그러니까 짐은 커지는데, 자꾸 공간은 줄어드는 그런 이
2000만원이면 짓죠. 짓는데. 그걸 지어 가지고 그 사람들이 농사짓는 게 수지가 안 맞아요.
상한. 막판에는 안 되어 가지고 지하실에다가 짐을 다 들여다 놓는 식으로 했죠. 지하실이라면 제가 서울 와가지고 지하실 생활을 좀 해봤어요. 결혼하기
다들 아시겠지만 저 충주에 가서 살면서 더더욱 완전히 실제로 책을 통해서 우리가 농촌의 어떤 문제를 공부를 했지만, 충주 가서 실제로 살면서 주민들
전에. 그러니까 지금은 그게 없어졌다고 하는데. 반 지하라는 게 있잖아요. 반 지하. 드라마고도 반지하. 그 반지하가요, 자동차 티코가 누가 가다가 껌 뱉
하고 이야기 나누고, 눈으로 목격하고 하면서 더 확인이 됐는데. 수지가 안 맞아요. 뭐 제가 볼 때 저 같은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비교해 볼 수 있겠
으면 가다가 안 간다고 하는 우스개로 하는데, 티코가 바라보면 내가 그랬잖아요. 김수환 추기경이 티코 타고 가는 거 뭐 포스터 찍어 가지고, 나중에 수
지만, 또 시골에 가보면, 물론 또 잘해서 하는 사람들도 소수는 있죠. 다 하죠. 근데 일산 주변도, 신도시 주변도 농사를 지어 가지로는 수지가 안 맞는 거
녀들이 그게 아니라고. 김수환 추기경이 티코 타고 간 게 아니고, 어떤 일이 있어 가지고 잠깐 올랐던 거라고. 그러니까 잠깐 올랐던 데 썼던 거지, 김수환
죠. 바로 선을 그어 가지고 여기는 평당 몇 백 만원씩 해 가지고, 여기는 농사짓는 게 내키겠어요? 그러니까 거기다 창고를 짓더라고요. 지어 가지고 일정
추기경이 티코로 생활 중의 일부를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것처럼 반 지하라고 하는 게 사실상 사람들 주거 공간으로 개발한
기간이 지나면 그게 활용 가치가 높은 집으로 변경이 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있고.
게 아니거든요. 아닌데, 주택난 문제도 있고 하니까, 그걸 건물주가 사람 사는 공간으로 개조를 하고, 또 돈이 없는 사람, 거기에 들어가 살 수 밖에 없고.
또 장차 결국 언젠가는 거기도 같이 주거지랄지 상업지로 개발이 넓혀질 때, 그럴 때에 농지로 있는 상태에서 보상을 받는 거 하고는 그게 크게 다른 거거
그게 서로 맞물려 가지고 반 지하 공간이 한동안 굉장히 중요한 가난뱅이들의 생활공간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 지하생활을 제법 해봤는데,
든요. 그런 저런 현상 같아요. 그래서 그게 마치 화가들, 조각가들에게는 굉장히 그런 현상이 유효한 것이 그걸 작업실로 빌려 쓸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너무 아니에요. 그거는 굉장히 비인간적이에요. 티코를 만들어서, 아니다. 외국에서 소형차를 야무지게 만들어 가지고, 그야말로 도로 조건도 좋고, 뭐 교
그런 기게 일산 신도시 주변하고 쫙 에워싸고 있는 게, 그런 큰 조립식 창고 형태들이에요. 그런데 그것의 절반 정도는 허용되는 공장 같은 것이고, 한 절
통법도, 준법정신도 좋은 풍토 속에서 소형차를 이용하라 장려하는 건 좋은데요. 아니 자기들은 다 큰 차를 타고 다니면서 서민들은 요만한 티코 갖다 들
반 정도는 그런 용도의 창고인데. 그거를 작가들이 작업실로 쓰는 데, 그건 불법이죠. 농가, 농업에 관련한 어떤 기계를 들여놓는다든지, 농산물을 저장한
이 박아보세요. 뭐가 되겠나. 그러니까 반 지하 공간이 제가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절대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데라고 생각하는데, 더구나 그림을 그리
다든지, 뭐 그런 용도로만 쓰라는 거지 뭘 다른 용도로 임대를 하는 것은 불법이거든요. 근데 그 불법으로 이를테면. 근데 그런 불법도 주변에서 민원이
고 환기나 수분이나 이런 게 문제가 되잖아요. 그림이, 작품이. 그래서 그거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으면서도 할 수 없이 쳐
들어가지 않으면 눈감아 주는 거고, 민원이 들어갈 경우만 조치가 들어가는데, 처벌을 받아도 돈 몇 푼 물고 나면 남는 장사고, 그대로 유지가 되고. 그러
박아 놓고 충주로 이사를 갔다가 그 다음에 짐을 가지러 왔더니, 그 건물 들어올 땐 괜찮았어요. 그 옆에 지하까지 파서 공사를 하면서 아마 이쪽 건물 벽
다 보니까 조금 현실적인 여력이 있는 친구들은 몇몇이 대여섯명이 의논을 하더라고요. 의논을 해서 논밭은 비싸니까 임야 같은 거를 사자고 해서 몇 천
에 무리가 갔나 봐요. 물이 새어 가지고, 짐을 가지러 왔더니 발목까지 잠기더라고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찌 보면 이게 참 보물단지고, 어찌 보
평 사가지고 개발을 해서, 거기다가 그런 창고를 몇 동 지어서, 지어 가지고 같이 작업들 하고. 그리고 요즘 신문에도 자주 나오잖아요. 뭐 오픈스튜디오
면 애물단지인데. 아이고, 잘 됐다 다 썩어서 내버렸어요. 사람들이 한 2년 했고, 허명으로라도 이렇게 좀 이름이 있으면 작품 어떻게 팔리는 거 아니냐,
라고. 정기적으로 봄, 가을로 혹은 1년에 한 번 이런 식으로 그래서 굳이 열 때는 나와서. 이거보다 더 생생하게 작업현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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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 아까 제가 일산에 사는 동안에 뭐 그런 거는 창작스튜디오가 이렇게 소위 엮여져 가는 건 없고요. 없고. 그런 예를 봤을 뿐이
작업에 뭐 작업실의 작가 뭐 이런 식으로 해서 지면에 소개되거나, 뭐 쇼 기회가 된 것이 있었거든요. 근데 있어 왔는데, 그런 것들이 대부분 뭔가 하면 작
고. 그냥 단순한 미학에 관한 게 아니라 창작에 관한 게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하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선후배 간의 모임을 갖
가의 아우라, 작가의 사생활 공간, 사생활 작업 공간, 거기서 나오는 작품에 대한 이런 미시적인 어떤 것들을 강화시켜주는 어떤 역할을 했었다고요. 그래
는, 그런. 근데 그건 넓은 의미에서 보면 뭐 창작자들의 작업실 교류로 이해할 수 있을 테고.
서 여기서도 일부러 그런 점이, 그런 점을 살짝 건들면서.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걸 깨는 노력이 있어서 좀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김준기: 임옥상 선생님이나 이중재작가나 다 그런 식으로 일산에 다 모여 있다고 얼핏 들어 거 같아서 아까 여쭈어 봤던 거고.
그래서 저는 작업실에 대한 걸 좀 더 용기가 있고, 좀 더 저에게 조건이, 어느 개체의 조건이 적나라하게 뭔가 하는 건 그 사람이 아무리 까발려도 사실은
박불똥: 그게 그 작가들 간의 다른 어떤 연관성 보다는, 뭐 요즘 어디 사나, 나 요즘 뭐 해야 하는데, 거기 뭐 어떻다 이런 정보 주고 받다보면, 와서 자리
어려워요. 제 생각엔. 그래서 제가 가진 조건을 설명 드리고, 남들을 납득시켜드릴 순 없는 건데. 저는 어쨌든 저 현재로서는 작업실을 지을 수밖에 없고,
잡고 그러는 거죠.
지어서 거기에 들어가서 뭔가를 자기가 내 보겠다는 상태에 있지만. 작가가 작업실을 필수로 해서 그런 걸 짓는다, 만다 하는 기본 틀이 깨져버렸으면 좋
관객: 저기 작업실에 대해서 여쭈어 보고 싶은데요.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품, 제목이 예를 들면 전부 다 work97-1식으로 제목을 썼거든요. 근데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품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work. 왜냐하면 이게 산업 사회에서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야 하고,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이게 일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러
그리고 작업이라고 하는 것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반 공산품처럼 정확하게 생산하게 정확한 방법으로 취급하는 것도 있겠고. 그렇지
니까 작업실이라는 명칭도 사실은 산업 사회의 형태에서 나온 거죠. 왜냐하면 저것도 하나의 공장, 말씀하셨지만, 생산 형태이고, 작품들도 생산 결과라
않다면 물건을 만들어서 작품의 형태로 고집하는. 거기서부터 벗어나는. 그러니까 미술이 음악하고 문학은 문학이야 뭐 언어로 백지에다 적어 나가면
는 말이죠. work라고 썼는데, 요즘 개념들이 일의 개념에서 룩킹(looking) 개념으로, 아까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요즘 작품들이 무슨 팔려고 하는 것이
되는 거고, 음악이야 어떤 공간을 차지하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미술은 굉장히 물리적인 어떤 토대 위에서 생산에서부터, 보여지고, 그 다음에 소비되고
아니라, 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이렇게 서로 그리고 나 심심하니까 장난 한 번 쳐 보자. 사실 이런 개념으로 지금 작업이 가
하는 전 과정이, 그리고 그 결과까지 물리적인 공간 속에서 토대 속에서 가능한 거기 때문에. 미술의 어떤 고유성, 특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거는
고 있는 게 아닌가.' 전체적으로 생각이 들어요.
그야말로 자본주의 방식에 맞춘, 다시 말해서 예술품도 공산품과 같이 왜 아트 샵을 해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인간들이 만든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그
그렇다면 아까 저 같은 입장에서는 작업실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공장이 있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이 없어요. 사실 방 안에서 작업했으니
미술가들의 정신성의 문제성 같은 거는 좀 다르게 생각해야 하지 않나. 그랬을 때는 그런 고형의 고형질의 어떤 물을 만들어내는 역할, 그것이 화가의 어
까, 만화방에서. 근데 우선 첫 번째로 작업실이라는 게, 과연 필요한 지, 첫 번째는 그 문제이고요. 두 번째는요. 그 민중미술을 하셨기 때문에, 선생님이
떤 본연이라고 하는 거를 좀 깨야하지 않나.
민중 미술이란 것은 우선 제일 첫 번째가 일상생활과 예술을 구별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상 속에서의 예술입니다. 그거를 하는데, 작업실이라고
관객: 이 작업실의 개념은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을 깨버리면 하나의 보통명사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한 7년 전 즈음인가 독일 퍼포머한테 물어봤어요. 너
아까 테두리 쳤던 공간이 일상생활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나오는 독립된 공간인데. 그게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과 컨셉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 같아요.
도 작업실이 있냐, 매일 하는 짓이 이 지랄이고 하니까. 퍼포머에게 너도 작업실, 아틀리에가 있느냐 그랬더니, 그 아틀리에의 개념이 우리가 뭐 신화화된
쉽게 얘기하면, 전시공간도 마찬가지로. 왜냐하면 민중미술이 만약 걸려진다면 길거리에 걸려져야 맞는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게 현실 속에의 예술
거, 또는 아우라를 가진 장소가 아니라, 자기로서도 하나의 도큐먼트를 재어 놓는 데가 필요한 거예요. 사실은 말하자면 창고라고 볼 수도 있어요. 자신의
이기 때문에. 만약에 액자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중미술이 걸개그림을 그려야 된다고. 왜냐하면 액자라는 저거는 현실 공간에서 떨어져
기기도 있고, 뭐 이런 개념으로.
나온 공간이거든요. 독립된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저기 지금 아까 작품과 작업실이란 개념에 대해서 선생님 다시 한번 정리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유공간이 필요하다. 뭐 글 쓰는 사람들 원고지 하나하고, 펜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뒤에서 애 뛰어다니고 그러
선생님 나름대로.
면 못 쓰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못 씁니다. 하하.(웃음) 그러니까 자기 나름대로 사유할 공간 같은 게 있는데, 그거를 우리가 보통명사화 해서 부를 때 작
박불똥: 한 인간이 60년, 50년, 60년 이상씩 살게 됐는데. 그럴 때 고 한 존재의, 개체의 존재성을 딱 어떻게 여기서 여기까지 선을 그어서 하겠어요. 겹쳐
업실이라는 거고, 또 작업이란 말이 마침 그 생산한다는 그 뜻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거 형태와 작업실이 좀 다
지며 계속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한 인간의 생애라고 하는 건, 그래서 저는 지금 현재 2000년대에 펼쳐져 있는 미술판 지형하고는 전혀 다른 상태로, 뭐 대
르겠죠. 신화화된 게 깨졌다든지, 예를 들면 최소한 작가가 퍼포먼스 하는 사람도 실제로 자기의 생각을 펼치려고 할 때 뭐 조그만 러프스케치라도 한다
상 공부서부터 미술대학을 다니고, 대학을 나오고 그래 왔던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저로서는 나라고 하는 사람이 가진, 나라고 하는 개체가 가진 그런 조
든지, 또는 어제 송유경 선생님 같은 체조같이. 그것도 연습해야 합니다. 별안간 물구나무서고, 그런 게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최소한의 어떤 준비공간이
건 속에서 작업실이 필요하기도 하고.
라고 할까. 아니면 창고 개념의 그런 게 필수적으로 필요악일지는 모르겠지만, 필수적으로 따라야 할 거 같아요. 자기 집이지만 자기 집에서 한다, 그건
또 그 속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해서 작업을 풀어나갈 건가 하는 걸,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고민이 되지만. 좀 권하게 되는, 저보다 늦게 시작하고 좀 젊은
집이 넓어서 그렇죠.
미술가들에게 권할 때에는 그 작업실을 짓는 방식, 그런 사고를 과감하게 버리는 게 더. 아닌 거 같아요. 작가가 자기가 그냥 그야말로 미술도 아까 얘기
저 같은 경우, 이거 개인적인 얘기를 해서 좀 그렇지만, 저는 집이 좁아서 낮에는 아무 일도 못해요. 애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뛰어다니니까. 결국은 야
했던 대로 공장에서도 공장으로 생각하거나, 물론 성질, 예술품이라는 것도 성질은 좀 다를지 모르지만 뭔가를 만들어서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받고 챙기
밤에 올빼미 족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공간 문제죠. 자기가 집이라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좀 자기 나름의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괜찮을 수도 있겠
고, 대가를 지불한 자한테 만들어 낸 것을 나눈다 하는 점에서는 뭔가를 만들어서, 작업을 해서 뭔가 작품을 낸다고 하는 것은 시장에 내는 것과 같다고
지만, 필요악으로 어쩔 수 없이 창고 개념으로라도 필요한 거 같아요.
봤을 때, 그런 거를 아예 작정을 하고, 그걸로 명확하게 간다면 모르지만. 그게 아니고 좀 근대적인 미술에 관한, 예술에 관한 이상한 거에서 못 벗어난 상
김준기: 요기 바로 밑에 층에 보면 골판지 쌓아 가지고, 공간 만들어 놓은 게, 공간건축의 이상림 대표예요. 워낙 건축가이기 때문에 작가로 참여를 해 주
태에서 작업실, 너무나 당연히 작업실, 작가의 작업실. 그거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게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지금 작업실을 짓고 있고, 지금 앞으로
십사 말씀을 드렸는데. 공간건축이면 나름대로 색다른 그런 게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아틀리에 공간, 정말 그 사치스럽거나 그렇지 않고 새로운 전형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는 게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에 눌려서, 그걸 명확하지는 않아요.
아틀리에 같은 것들 모형을 하나 좀 만들어서 제시를 해주시지 않을까. 그러면 건축전 했을 때 그런 것처럼 개념도, 평면도, 건축 모형 이런 거까지 상상
작업실이 그러니까 무슨 사람 죽어서 무덤 만들어 놓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교회당이 엄청 커지고, 그럼 진작 교회당 지어서 목사가 할 일은 그거 아니에
도 그렇게 평이하게 했었는데. 의외로 작가 연하는 그런 분위기가 딱 나오더라고. 그래서 풀어낸 건 이거예요. 자궁공간이라고 해서, 움 스페이스. 그 안
요. 이렇게 해서 신도들 많이 모아야. 신도가 많이 모이려면 교회당이 더 커져야 하고, 또 새로운 목사가 나오면 또 그 목사가 또 관리할 예배당이 또 필요
에 들어가서 명상할 수 있게. 지금은 좀 많이 망가졌는데. 이렇게 바람이 들어가 있는 비닐, 이 안에 이렇게 앉아서 생각 좀 해봐라. 그런 것이 좀 전에 말
한 거고. 결국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물론 계산상의 그런 거지만, 그럼 어느 때 되면 세상천지 교회만 들어설 거 아니에요. 사람 살 데는 다 줄어들어야 하
씀하신 명상을 통해서 정신적인 생산을 끌어내는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의 의미들, 해석을 그렇게 하신 거 같아요.
고. 그게 화가 작업실도 그렇죠. 화가들마다 저마다 다 생활 형편이 되어 가지고 작업실을 다 갖게 하자고요. 그럼 네 식구, 다섯 식구 오두막에 사는 서민
관객: 저기요. 그 작업실이 사실은 작업실의 문제는요. 물질이라는 것 때문에 왔잖아요. 과연 미술이 물질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들 삶은 어떠하고, 작가들 작업실은 최소한 몇 십 평씩 되지 않겠어요? 한 해 미술인이 얼마나 많이 배출돼요. 그러니까 그래서 작업에 대한 화가의 상에
물질, 모든 것을 물질로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산업혁명 이후라고 생각되는데요.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물질로 보는, 그래서 작업이라는 개념이 아까 작
대한, 미술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변화가 와야 하지만. 맞물려서 작가해보면, 그러면 작업실, 그래서 이 기회에 어떤 문제점도 있고, 또 그 문
품이라든지, 이게 하나의 상품인데. 상품은 어떤 때 상품가치가 있냐 하면 소유할 때 가치가 있거든요. 그래서 오리지널이 필요하고요. 아우라를 가지기
제점을 이해하는 노력도 있다고 저는 보는데. 아틀리에라고 했을 때 그 말에서 대중이 떠올리는 혹은 미술인들이 자신 떠올리는 어떤 것, 그것 아니라고
위해서.
생각해요. 그래서 작가들이 훨씬 개방적인 훨씬 더 가려진 걸 열고 전위적으로 자기 일에 접근해 보이는 모습 준 것은 중요하다. 그러니까 아틀리에 작가
근데 기계복제시대가 되니까 작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 자체가 안 생기잖아요. 아우라가 없어졌으니까. 사람들이. 그러니까 작품이란 게 팔리지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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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근데 우리가 작업이라는 개념이 산업혁명이라는 그 기간을 넘어서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생겼단 말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공
여서, 관광을 해서 감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소수의 어떤 것이고.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무수한 어떤
산주의도 똑같은 개념으로 경제의 개념이에요. 경제를, 물질을 어떻게 재화를 나눌 것이냐 이런 문제의 개념이라고요. 그래서 모든 관심이 이 사람들이
지원이 필요한 거 아닌가요? 그 지원이란 것이 내가 가게 가서 돈을 내고 밥을 한 그릇 먹고, 옷을 하나 사 입고 있다고 해서. 그래 그래서 끝나는 것은 아
물질에 더 관심이 있었던 거 아닙니까.
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옷 하나 만들어지기까지,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무수한 사람이 관련되어 있고, 그 관련되었던 사람들과 현실이나 이런
그래서 작업실에 대한 개념도 물질이라는 거, 작품이라는 개념도 물질에 대한 관념인데. 사실은 이런 물질의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정보의 이야기라는
것들이 우리 전체 현실 속에서 다 이렇게 얽혀 있는 건데. 그렇다면 화가들이 자기 작업을 해서 평론가한테 평을 받고, 어디 시장에 가서 팔리고, 말고 이
거죠. 물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가 되어 버리죠. 그러면 저는 작품이라고 보는 거를 사실은 어떤 장자 이야기처럼 초월적인 세계, 아까 유희, 소요
거는 거기서 계산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재능을 발휘하고, 내 발상을
유 같은 마음껏 드넓은 세상을 마음껏 노닐다와 같은 소요유 같은. 대붕 하늘을 나는 뭐 이런 것 같이. 저는 작품,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되면 작
하는 것에 그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무수하게 지원되고, 관련되고 무수한 것을 역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돌려놓기 위한 사고, 그런 노력, 이런
품 공간 자체가 없어지지 않느냐. 판매자체도 없어지지 않느냐. 물질성 자체도 없어져 버리니까요. 그래서 지금 현재 그런 추세로 가고 있다면 굳이 아까
거 하고 같이 이해가 될 때, 공공미술에 대한, 미술에 대한 그런 공공성으로 갈 수 있지 않나.
작업실이란 공간이 필요할까.
김준기: 좀 전에 얘기하신 대목이 굉장히 중요한 거 같거든요. 미술 혹은 작업실, 작가의 삶, 작가들의 활동을 놓고, 시스템이 어떻게 이런 것을 뒷받침할
두 번째는 우리가 작품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작품이라고 얘기했을 때는 항상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었거든요. 예술이란 게 현실참여적인 거냐, 현실과 동
거냐. 이런 것들도 모던한 사회에서 포스트 모던한 사회로 옮겨가면서, 시스템도 바뀔 거라고 생각하고요.
떨어진 거냐. 예술을 위한 예술이냐, 현실 참여적인 예술이냐. 이 두 가지인데, 두 가지 방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업실이란 공간은 어차피 현실 속에
미술관이라고 하는 보여주는 장소와 작업실이라고 하는 만드는 장소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데, 그것이 점차 통합되는 방식의 양상이 일부 지하에는 드
서 동떨어진 공간이거든요. 그건 현실 공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현실 공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현실 사회가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
라마고 같은 작가나 또는 박찬국 선생님의 밀머리 학교 이런 데서 나타나죠. 이제 그런 것들이 점차 교환되고, 교체 점거라는 예상들을 지금 하고 있고.
에. 생활하는 그렇기도 하고, 또한 예술을 위한 예술 공간이란 데는 그게 현실 사회와는 전혀 무관한, 아무 사이가 아닌 무인도라는 얘기예요. 예를 들면
그걸 좀 앞당기기 위해 어떻게 논의를 끌어나가고 또 시스템, 제도화 시킬 것인가 법안을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이 산적한 숙제가 있는 거
이런 공간일거예요. 현실적으로 그런 공간은 없다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작업을 하는 이런 공간은 어차피 현실 속에서 떠난 공간이라면 사이버스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25일 공간 사옥에서 한국의 작업실 현황 연구가 대안 뭐 이런 세미나를 해요. 심포지움에서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페이스라든지 뭐 인터넷이라든지 컴퓨터 안의 세계라든지 아니면 현실 속에서 막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세계 이 두 가지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
오갈 것으로 예상하고, 오늘은 시간이 다 되어서, 더욱 심도 있는 이야기는 이후 마련된 뒤풀이 자리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국에는 이 작업공간이.
예, 오늘로써 <작업실 리포트>전이 1월 7일 오픈을 하고 1월 8일부터 오늘 2월 19일까지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 13번의 만남이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이야기가 개념미술로 갈 수 밖에 없는데요. 지금 담론이란 게, 개념 미술로 밖에 없는 이야기가 아까 공간을, 공간 속에 우리가 현
전시에 참여해주신 19명의 작가 분들의 작품을 죽 훑어보고, 나름대로의 예술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이번 전시의 핵심 부분이었던 작업실에 관한 작가
실이, 예술이 현실이라고 생각할 때는 살아가는 거 전체가 예술이기 때문에 결국 이야기 밖에 안 남는 거죠. 결국엔 작업실이란 이 공간 개념을 전 세계,
들의 개념, 그와 관련된 솔직한 심정 등을 소담한 자리를 통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가와 관련하여 미술관련 학생들이 고민하는 작업에 관한 문
내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확대를 시키면 반대로, 내가 살아가는 일생을, 일상모습 전체가 작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사실은 제가 걱정하는 거는, 우
제, 작업실에 관한 문제도 인생의 선, 후배라는 개념 속에서 함께 얘기 나눠볼 수 있는 자리도 있었고, 미술평론가, 이론가 분들의 간헐적인 참여로 간간
리 사군자 치는 데로 돌아가자는 거죠. 아까 선생님 말씀 하셨듯이 직업 따로 있고. 다 관료도 있고, 사업해가면서, 심심하면 맞는 사람들끼리 사군자나
히 작가에 대한 짧지만 소중한 논평들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매회 마다 이 대화에 관심을 가져주신 관객여러분들께서도 작가와의 자유
딱 쳐가지고 서로 교환하고, 혼자 즐기고 뭐 그거 좋다고 또 하나 시키고,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로운 대화를 통해 그들이 고민하는 문제, 감상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문제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박불똥: 아주 드물잖아요. 현실적으로 어렵지. 대학교수, 교사 또 다른 여타의 일들을 하죠. 삽화를 그려서 삽화 비를 받아서 생활을 충당할 수도 있지만,
이 모든 만남을 통해 이뤄진 작업실에 대한 염원과 이야기들을 25일 심포지움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과의 자세한 발제, 질의를 통
그거는 자기 직업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동원되는 거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삽화를 그려서 먹고살고, 다시 그 먹고 난 힘으로 또 삽화
해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그때도 이제까지와 같은 변함없는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고, 예술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바람직한
를 그리고 계속 그걸 반복하는 사람들 또 분리해서 일러스트레이터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랬을 때 우리가 통상 이런 전시장에 와서 뭐가 갖다 걸어놓
작업실 정책과 문화가 자리 잡길 바라며 이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박수)
고 손님맞이를 하고, 이렇게 폼을 잡고 하는 이런 유의 작가는 자기가 생산한 작업한 결과물을 돈으로 바꾸어서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처자식도 먹여 살 리고, 다 해결할 거 아닙니까. 근데 그게 누가 가능하냔 말이죠. '몇 % 가능하냐.' 고 그랬을 때, 지금 제기된 이야기된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생활을 하고, 일종의 여기같이 뭔가를, 그러니까 사회를 위해서랄지, 자기 동인을 위해서랄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랄지, 헌신한 그러니까, 먹고 사는 것은 다른 방식으 로 동원을 하고, 그리고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이 딴 것을 하고, 그 딴 것 한 결과물을 서로 여우처럼 나누어 먹는, 그런 것이 사실 이루어지고 있지 않냐 는 거예요. 대부분 저거 봐도 그렇잖아요. 부모에게서 뜯던, 마누라 등을 치든, 다 해놓고 보여주고. 어제 했지만 오프닝 때 보면 먹여주고, 술까지 먹여주 고 그러잖아. 그래서 결국 그런 꼴도 있지 않는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최희석: 네네, 앞으로는 제가 생각할 때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예술 활동이. 어떻게 어차피 대중을 상대로 돈벌이하는 것이 아니고는 어차피 그렇게 갈 수밖에. 왜냐하면 구매자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럼 누가 해프닝, 어제 퍼포먼스 하는 거, 퍼포먼스 저거 사겠다는 사람 누구 있습니까, 절대 없겠죠. 앞으로 갈수록 그거는 판매하거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갈수록. 대책이라고 하는 거는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줘야죠. 정부지원금으 로 작업을 하고, 실생활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농부가 농사를 짓듯이, 또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년 내내 작업을 하고, 생활비는 그 대신 국 가가 지원을 해 주고, 지금 프랑스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프랑스도 그렇고, 미국 쪽도 상당히 많이 그런 쪽으로 나가고 있는 줄로 알고 있고. 지금 그게 만약 체계가 많이 안 잡혀서 그렇지 전체적인 체계가 잡히면, 전업 작가들이 완전히 작업하고, 작업 하나도 안 팔고도 생활 충 분히 하고, 전시 충분히 하면서 지낼 수 있는, 다른 데 나라는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구성이 안 되어서 그렇지. 우리나라에. 박불똥: 그러니까 미술에 대한 이해가 지금 공공미술도, 미술의 공공성, 공공적인 어떤 효용에 대한 것은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변화를 시켜 가면, 제대 로 마지막에 그런 것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화가가 그림을 그려서, 그게 뭐 이런 사설 공간에 와서 전시를 하는 것이든, 또는 기획된 국제적인 행사에 해서 각광을 받는 것이든 간데 그것들이 결국은 일반대중에게는 하나의 뉴스로, 하나의 정보로만 전해지는 것이고. 물론 현장에 가서 비용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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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대안모색'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대안모색' - 일시: 2004년 2월 25일(수) pm.3:00-6:00 - 장소: 공간건축 소극장 - 발제: 김기현, 김준기, 박신의 - 질의: 김윤환, 백기영, 이병한 - 주최: 사비나미술관, 공간그룹 - 후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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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발제 1. 대안 아틀리에, 무단 점거- 김기현 2. 작업실의 변동과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 김준기 3. 창작 스튜디오의 새로운 개념과 정책적 지향점- 박신의
2. 지정 질의응답 김윤환(작가) 백기영(작가,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이병한(심 스페이스 대표)
3. 자유토론
1. 대안 아틀리에, 무단 점거 (Alternative atelier, without permission occupation)
김 기 현(화가, 충북민족미술인협회) 1. 작업공간에 대한 시원(始原)(Origin from work space) 이문열의 소설 들소의 배경은 원시 혈족사회이다. 이 사회가 단순한 의식주의 생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문명과 권력을 조율하며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Allegory 기법의 이 소설은 일차적으로는 원시 세계의 이야기이지만, 이차적으로는 현대인간 세계 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그'는 사회에서 소외된 부적응자이지만 '그'를 대하는 독자는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함께 있지만 그 사람에게서 온기를 느낄 수 없고 함께 있지만 왠지 혼자인 듯한 느낌으로 즉 데이비드 리스먼이 이야기한 군중 속의 고독으로 보아진다. 주인공은 여러 사람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이고 자신은 자신일 뿐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무리에서 벗어 날수록 점점 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일 뿐이다. 어쩌면 사람을 대할 때 그의 성격이나 인품을 보기보다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이 요즘 의 시대와 일상적 모습이나 작가적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은 성인식을 통해 한 사람의 주체를 획득하려하고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하나 그것은 마 음뿐 몸(힘, 권력)은 거기에 없다. 그가 사냥에서 소외되어 어두운 동굴에서 들소를 그림으로서 자신을 방식을 회복하려는 것들은 그림에 마술의 힘이 있 고 일원론의 사고는 그림과 사실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절대적 희망을 가지고 살기에는 그림이 가져 다는 주는 작가적 소유가 적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의미가 그에게는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의 중심에서 비켜 서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저 잘 그린다는 말로 위로 를 받아야 하는 지금의 작가들의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들소만 그려도 그런 대로 고단한 몸을 비집고 살만한 곳이 있고, 기름지지는 않아도
1. 주제 발제
다시 그릴 수 있는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는 그렇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가는 단순히 생계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존재는 아니었 다. 화가란 먼지 가득한 가슴을 털어 주고, 배보다 가슴을 기름지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화가들의 행위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다. 그림을 그리고 자신을 이야기하고 미술을 공유해야 할 공간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삶의 공간이 아니라 치열한 예술 행위 로서의 작업 공간인 동굴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2. 점거(占居)의 이론적 근거(Theoretical basis of the occupation) 현재 우리의 예술인들은 작업공간의 부족으로 인하여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예술의 생산과 소비는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해석될 수 없으며, 권력 이나 기능만으로 재단(裁斷)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은 정말 궁핍한 이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영혼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처절한 상황 에 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거라는 형식을 통하여 우리의 의지를 표명하게 되었다. 개별 작업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집단 작업을 공동으로 할 경우와, 그 예술의 결과를 예술향유의 주체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현재의 방식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물음이 있다. 점거프로젝트는 바로 이 원론에 대한 진지한 물음의 결과이다. 점거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예 술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존재에 대한 간절한 물음이며 이 시대 자본의 횡포에 대한 예술적 저항(抵抗)이다. 그리고 여기에 참여한 충북의 젊은 작가는 민 족 민중의 정신을 가진 진정한 예술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창작공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재인식했다. 예술적 상상력을 공유하고 서로 비평하는 열린 예술 공간은 예술가들의 꿈이며 현실이다. 집단창작과 공동창작이 가능한 공간을 예술가 자신들이 만들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청주를 중심으로 하 는 젊은 작가들은 결코 자본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는다. 단지 마음껏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생산된 예술 작품을 대중(multitude)에게 돌려주고자 할 뿐이다. 점거의 형식은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모순을 척결하는 매우 적극적인 사랑의 형식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는 비난과 고통을 무릅쓰고 건물을 점거하고 그 건물에 예술의 영혼을 통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는 꼭 필요한 건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 때문에 건물을 점거하여 작가들이 집단 창작과 공동 창작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대상 건축물을 탐구하고 학습하면서, 점거가 가져올 의미와 파장 을 철저히 분석하고 조사하며, 비판의 반동이 예술의 영혼을 일깨우는 하나의 축제(festival)가 되도록 할 것이다. 3. 점거(占居)의 정당성(Propriety of the occupation) 작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필연적 창작의 공간인 동시에 삶의 공간으로의 동시적 역할을 한다. 작가는 공공의 예술 취미를 충족시켜 대중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써의 예술 활동은 당연히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점거(occupation)란 어휘가 지시하는 것처럼 강자나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강자가 패악자(悖惡者)들에게 하는 것은 점령이다. 우리는 점령을 하 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점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예술적 테러라고 비판할 사람들도 계시겠지만 그것은 결코 테러가 아니다. 사랑 이다. 그것은 약자의 자기인정 투쟁인 것이다. 점거는 역사적으로 약자이면서 간절한 희망이 있을 때 가능한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예술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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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규범을 뛰어 넘어야 하며 그 고정된 규범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 존재해야 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점거는 행위의 결과다. 어떤 행위일지라
예술가들의 공공공간에 대한 점거는 그 목적성에 있어서 단순히 극빈자의 생활공간 확보를 위한 점거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문제인데, 이는 곧 예술가의
도 행위의 결과는 반드시 목적을 내포해야 하고 그 목적은 대중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법적인 정당성이 미약하더라도 예술적 정당
사회적 존재성에 대한 예술적 질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계층구조 속에서 예술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고,
성과 인간적 타당성을 아울러 가지는 그런 점거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점거는 한국어에처럼 단순한 공간의 점령식 확보가 아니라 건축물 자체의 자기존
그들은 왜 공공적 존재인가에 대한 선언이며, 이러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통해‘예술 또는 예술가’를 넉넉한 삶,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으로
재를 확인시키고, 예술가에게는 직업적 존재 이유를 보장해주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필요한‘공공재’로서 인식하기를 요구하는 강력한 프로퍼갠더이다. 그러므로 그 사회의 행정 망 또는 운영시스템이 그들을 보호하고 육성지원하기를 강
이미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점거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식을 통하여 사회와 예술, 정부와 예술가 조직의 관계가 재정립된 바 있다. 문화의 선진국 프랑
력히 요구하는 예술적 데몬스트레이션이다.
스에서는 이미 이런 사례를 통하여 예술의 사회적 의미가 고양(高揚)되었고 예술의 가치를 국가가 공인하여 예술에 대한 직접 투자를 늘렸다. 이 점거를
최근 아이엠에프 환란과 신자유주의 세계무역질서에 의해 벼랑 끝으로 내몰려 노동할 권리, 인간다울 권리를 잃어버린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산업구조
통해서 자본의 무자비한 압제(壓制)에서 벗어나 해방되고, 권력의 눈먼 오류를 반복하는 정치가, 자본가, 행정가들의 저 깊은 마음을 울릴 것이다. 우리가
조정과정에서 사회 안전망의 그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노숙자들 등 최저생계선 밖에서 생존해 나가는 다수의 존재들이 양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
서구의 예를 모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사의 오랜 과정에서 중첩된 모순을 해결하려는 우리의 처절한 노력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가가 그들을 위해 구체적이고 전면적인 무엇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의 사정은 어떤가. 예술가들 역시 사회안전망 밖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게 현실일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우리사회의 어
4. 점거의 필연성(Inevitability of the Occupation)
떠한 안전망과도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 물론 문예 진흥 기금제도 등이 예술창작에 대한 소규모적인 지원제도도 있지만 이는 예술가들의 사회안전망에
점거는 작가에게 있어서 필연성이 필수적이다. 점거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면 점거는 폭력이며, 억지다. 필연성이 결여된 점거는 이벤트이며 해프닝이고
값하지 못한다.
일회적이며 과정중심이다. 과연 작가에게 있어서 필연은 무엇인가?
예술가들 그들은 처음부터 이윤을 추구하는 업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애초부터 벤처적이고 애초부터 가난과 곤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
국가나 행정부는 이 나라 척박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국민들을 책임 질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21세기의 국민국가(nation state)는 생계
의 예술가이기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같이 깨어난 암벌을 다 죽이고 나서야 수많은 일벌들의 복종과 사랑을 받는 여왕벌의 운명처럼 남
의 위협을 받고 있는 근로자의 생계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근로자라 함은 육체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만을 가리키
한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자발적 의지의 발로로 들어선 예술가의 길은 보장받기 어려운 사각지대의 노숙자였다. 그러므로 성공한 몇몇 예술가들
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도 근로자다. 그런데 국가나 사회가 언제 예술가들의 생존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는가? 국가는 또는 지방 정부는 예술창
을 제외한 대다수 예술가들은 장애인, 여성, 노동자, 농민들과는 달리 사회안전망으로 보장해야 될 존재가 아니라 있거나 말거나 한 존재로서 소외되어
조와 행위의 절대성만은 인정해야 한다. 즉, 예술가는 예술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예술창조자이고 또 한 체제의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예술가
왔다.
들은 갈 곳이 없다. 예술가들은 쉴 곳도 없다. 이 점거의 상황적 행동주의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반 예술적 태도에 대한 필살의 저항이다. 이 시대의 예술
그러나 예술가들은 미적 생산을 통해 분명히 이 사회의 문화를 가꾸는 자양분이 되어 왔고, 그것은 지구환경을 지탱하는 물, 공기 등과 마찬가지로 한 사
가는 저 시대의 거렁뱅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 같지만 예술가들이 이처럼 천대받고 이와 같이 냉대 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자본은 말할 것이다, "예
회를 구성하는 절대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생태보전과 관련한 각종 환경문제가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곧 개
술은 다 너희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물론 그렇지만 또한 그렇지 않다. 예술이 없으면 생산의 노동도 없다. 예술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인
발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자연환경을 이제는 인간 삶을 지탱 가능하게 하는 절대요소로서 사회화하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예술, 예술가를 그
간이라는 종이 생존하기 위한 절대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시대 분단 남한의 예술가들은 돈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단 하나의 죄명으로
러한 삶의 저변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몸에는 사슬을, 가슴에는 시퍼런 멍을 지고 살아야 하는가. 점거는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분연히 일어난 예술가들의 투혼이다. 예술가들은 갈 곳이 없
동시대 사회주의국가의 예술가들은 국가의 생계와 지위보장에 의해 최소한 예술을 했다는 이유로 굶어죽지는 않는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다. 문화산업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신음하는 예술가들을 살릴 직접적인 정책을 실현이 우리가 아닌 문화와 함께 예술이 살아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을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 그리고 거기에서 요구하는 바를 그 대가로 지불하는 관제성을 담보한 보장이었지만 말이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지금의 한국사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더 이상 천대의 찬 서린 옥수수밥을 먹더라도 떳떳하게 예술의 언덕에서 몸을 쉬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회의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예술창작의 지속성을 돕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는 다 시 예술이란 무엇인가? 한 사회의 예술의 역할과 예술가의 삶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5. 점거의 자구적(自救的) 해석(Self-help interpretation of the occupation)
점거 프로젝트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예술의 존재성에 대한 근원적 질의이며, 이를 통한 예술 또는 예술가의 사회적 존재성에 대한 성찰의 이벤트다. 그
창작공간으로서 공공공간을 점유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점거'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런 행위는 이미 구미에서는 예술가들의 자구 적인 창작환경 확
러므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점거한 공간을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실제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일 것이나, 이를 시도하는 것으로 이미 성공한
보를 위한 생존방식으로 행해진 지 오랜 것으로서, 예술의 사회적 존재성에 대한 공공적 가치 확보를 위한 예술적 실천의 하나이며, 또한 구미사회에서
예술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점거-프로젝트를 시도하기 전후에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가져가게 하는 것인가? 또
는 예술가들의 예술적 행위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는 그러한 논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제도적인 지위를 획득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점거-프로젝트는 청주를 시작으
국내 최초의 시도인 종묘점거프로젝트는 소위 여성운동 쪽에서 2000년 가을에 시도했던 것인데, 이는 종묘에 상징화되어 있는 봉건 구조를 해체한다는
로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다음 세대의 한국사회 예술가들에게 예술을 통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의미에서 기획된 공격적 예술행위였던 것이며, 봉건적 가부장제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한국사회, 여성의 남성에 대한 평등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
있는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기도 했다. 이러한 공간 점거와 그 점거 목적이 상징투쟁에 머무르는 원초적인 한계를 지닌 이벤트이긴 했지만 그것은 또한 첫 발걸음으로서의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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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도 했다.
6. 점거의 미학적(美學的) 해석(Aesthetical interpretation of the Occupation)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직까지 실험되어보지 못한 공공 공간 점거를 통해 창작공간을 쟁취하려는 점거프로젝트를 충북 청주의 예술가들이 기획하고 실
단지 사건을 위하여 주위를 환기시키고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한 단편적인 방식의 점거라면 굳이 어려운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점거는
행하려 했다는 것은 한국사회 지역예술의 탄탄한 논리와 실천에 이르는 자생성의 건실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도 언급한바와 같이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 예술적 사건은 하나의 과정이며 결과이고 역사로 기록된다. 행위는 당위성을 가져
최근 문화정책과 제도와 관련하여 문화 복지에 대한 문제가 정책논의의 중심에서 운위되고 있다. 물론 이는 문화 향수(享受)권을 중심에 둔 국민에 대한
야 하기에 내용을 이론적으로 보강할 미학적 요소가 필요하다. 화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주의에 반대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문화적 복지에 대한 문제일 것이나, 문화예술인 복지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든 마르크스의 동기를 계승하고 그것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미국 사회학의 방법을 결합시켜 현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판이론을 전개한 프랑크
우리나라 예술인들, 특히 미술인들의 대다수는 전업 작가로서의 생활을 꿈꾸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술인들의 월수입
푸르트학파의 한사람인 아도르노의 이론을 바탕으로 필요에 대하여 보충해 보기로 하였다. 부분적으로 접근이 둔감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미학적 해
으로는 작품창작에만 매달린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인 것이다.
석을 위해 모방에 근원을 두어 평가해 보기로 하겠다. 아도르노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미메시스론이나 근세에 부활한 모방이론보다는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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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업실의 변동과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
김 준 기(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랑스의 문화인류학자인 로저 카이유와와 종교사회학자 마르셀 모스, 그리고 프로이트와 그의 죽음본능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카이유와는 주변세계
이제 작업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작가나 작품에 대해 얘기들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정작 작업실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었
에 동화되려는 생물학적이고 사회 문화적 태도이자 동물학에서는 "의태(보호색)"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이 태도를 "미메티즘"이라고 했다. 의태는 자
다. <작업실 리포트>전은 작업실을 매개로 대안적인 미술담론을 찾아나서는 '움직이는 전시'이다. 나아가 그동안 사회학적, 미학적, 담론적
연이고 자연에의 접근은 사회에의 내면에 동화하려는 것이다. 화가가 사회와 환경에 의태함으로서 작업이라는 환경을 대중이라는 관객과 할 수 있는 소
차원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작업실'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전시이다.
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의 점유는 사실 동물적 본능의 상상력으로 보여 진다. 이 태도는 한편으로는 보호의 기능을 갖지만 다른 한
더불어 이 전시는 작업실에 관한 다각도의 담론 생산을 시도했다. 향후에 참여 작가들을 비롯해 작업실 전반의 문제에 대한 텍스트와 이미지
편으로는 자연에 내재한 힘들에 마법을 걸고 그 힘들을 이용하는 기능도 갖는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주장이자 자연으로부터의 분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들을 모아서 단행본을 출판할 예정이다. 전시 진행 기간에 참여 작가들과 함께 하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작가의 출품작과 예
이 때 의태는 자연으로 침몰할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이 점에서 프로이트의 죽음본능과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즉 카이유와의 미메티즘은 죽음본능과 마
술세계 전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및 토론의 결과물들을 담을 것이다.
찬가지로 이중적이다. 이유는 있다. 자연의 유려함은 작가를 나태한 에덴으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다. 긴장이 해소되면 이러한 함몰은 늘 기다
전시 마지막 날 열리는 이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대안모색>는 기획자, 평론가, 작가가 작업실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진행함으
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전 상태의 미메시스적 반복이자 보호적인 품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동경, 긴장의 지양상태와 안식에 대한 동경의 표
로써, 작업실 담론을 열어나가는 자리이다.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 기본권 같은 걸 생각해 볼 수도 있
현인 것이 다른 한편으로 생명 없는 것으로의 퇴행, 자기를 방기하는 해체와 용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스의 경우 미메시스는 마법적 사고에서 결정적
다. 이제 작업실을 이야기하자. 이제 작업실은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의 고독한 창작 혼을 불태우는 독립공간을 넘어
역할을 행하는데, 즉 그에게서 동종성이나 유사성의 원칙이 어떤 것에 대해 다른 것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가능성으로 간주된다. 모스의 마법적 근원을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을 생각한다. 이 발제는 이번 전시를 중심으로 작업실의 존재양식의 변동을 토대로 예술지평이
미술의 표현형식을 빌어 80년대 민중 미술의 선전과 선동은 다분히 이러한 성격을 지닌 미술의 역할로 해석을 할 수 있다. 미술이 게임이나 스포츠, 레저
어떻게 넓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처럼 행동한다면 아도르노나 모스의 계몽적 접근에 의해 관객을 매료시키는 일은 적을 것이다. 산업의 파생으로 생겨나는 다변화된 레저는 미술의 힘을 이용한 부분으로 문화를 형성하는 복잡한 자본 속에 생성된 논리의 놀이로 존속 할 뿐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과 작업실 공간 재해석
이러한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의 작가들에서 영향을 받은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함께『계몽의 변증법』,「반유태주의 요소들」에서 미메시스의 세 가
그렇다면 왜 작업실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작업실은 작업을 매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은 예술작품의 생산으로 직결되
지 단계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전개시킨다. 첫째 단계는 공포에 대한 반응으로서, 죽은 자연에 의태를 행하는 태곳적 단계이다. 그 다음에는 미메시스를
는데, 이 점을 두고 하는 일반적인 수사가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지위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 전시는 작업
의식적으로 이용하고 조직하는 마법적 단계가 있다. 마지막 단계는 역사적 단계로서 미메시스가 금기 시 된다. 첫째 단계인 태곳적 단계에서 미메시스는
실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간접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작업실을 둘러싼 여러 가지 모습을 통해 삶과 예술의 현장을 살펴봄으로
자아보존본능으로 작동한다. 미메시스는 생명 없는 자연으로의 변화를 가리키는데, 죽은 척(일종의 동물적 의태) 함으로써 죽음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써, 작품생산과 작가의 삶을 담보하는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 공장
이러한 의태는 아도르노가 보기에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최초로 거리를 두는 행위인데, 왜냐하면 인간이 의도적으로 자연에 동화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Factory)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돌아봄으로써,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의
이 의태는 죽음에 밀착하는 행위이다. 거리를 두고 죽은 것에 밀착하는 태도로서의 의태는 수단에 정향한 도구적 이성의 초기형태이다. 의태가 함축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되는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이러한 거리 두기는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향한 첫 걸음이다. 주체는 자신을 사물화-스스로의 생명력을 포기한 상태로 존재는 있지만 본질이 왜곡된 상
화가·조각가·건축가·사진가·영상설치작가 등 시각예술분야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한 회화 및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이
태의 자아-시키고 스스로 죽은 척 하며, 이러한 자신의 객체화 속에 자연에 대한 사물화된 관계의 전조가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곳적 미메시스"는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박홍순, 방명주, 사사, 오철헌 같은 이들이 사진과 3D동영상 작업 등으로 보여준 작
『계몽의 변증법』의 두 저자가 긍정적 의미에서 구상한, 도구적이 아닌 공감적인 의미를 띠는 미메시스가 아니다. 의태를 그러한 구상의 미메시스와 연결
가와 작업실의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작업실 작업'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건축적인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기까지 한
시켜주는 유일한 점은, 둘 다 자신들이 되고자 하는 것에 결코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사하게 되고자 하는 바로 그 노력 속에 "모범"에 대한
다. 배윤호, 백기영, 양주방 같은 이들은 전통적인 작업실의 개념을 벗어나고 있다. 비어있는 공간, 모퉁이, 사이버공간 등 작업실 공간 개념을
차이가 놓여있는 것이다. 화가가 이미 작업이라는 행위를 금기시한다면 죽음이라는 명제와 의미를 같이하게 되는데 이는 사회현상에서 소속되지 못하는
확장 변형시킨다.
현실을 직시하였을 때 나타나는 계통적 소외로 인하여 절필과 같은 미술적 사망을 의미한다. 작업실은 사망자의 무덤이 아니라 사고하고 있는 생명체(화 가)에게 자양분을 보충해주는 자연인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자양분을 제공해줄 의무가 분명히 있고 이를 통하여 미술은 문화라는 포장으로 국가를 재
작업실의 사회학
포장해 줄 것이다. 이는 공생이고 자생이다.
우리 사회의 시각예술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해 봄으로써 '작업실의 사회학'이 필요하다. 또한 예술가의 삶을 담보하는 작업실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휴대-이동식 작업실이나 점거 아틀리에와 같은 대안적인 작업실을 모색해보는 것도 작업실의 사회학을 시작하는 마당에서의 중요한 작업이다. 1) 현장성과 작업실 박찬국이나 드라마고 같은 작가는 작업실을 도시 전체로 넓힘으로써 내밀한 공간에서 열린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예술개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실이 여주 혹은 경기도, 인천과 같은 지역전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작업 개념이나 예술생산의 폭은 모더 니즘의 이분법적인 구도와는 다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된다.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이원화하는 작업실과 전시장의 구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들이 작업실 혹은 작업 개념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문화생산의 장을 열어나가는 활동을 하려한 다. 이러한 태도는 '현지답사, 역사학습, 문화자료, 사회적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인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지 역문화에 대한 대화'를 시도한다는 그의 프로그램 운용을 통해서 실체화한다. 이러한 예술개념은 문화의 생산과 향유의 장을 작업실 개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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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작 스튜디오의 새로운 개념과 정책적 지향점
박 신 의(미술평론가,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접목하거나 아예 작업실: 전시장 개념 자체를 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황
또한 이들의 작업실 개념은 특정지역의 참여자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문화에 있어서 지역주의의 유용성을 생
한국에서 스튜디오를 일종의 창작지원이라는 개념으로 공공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시행된 폐교활용에서다. 그러나 어떤 뚜렷한 정책적 기
각해보게 한다. 참여와 자치와 분권이라는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은 이렇듯 서울이라는 중심과 여타의 지역, 뉴욕이라는 중심과 서울
조를 먼저 마련하고 주어진 사업이기보다는 사업 자체로 시작한 것이어서, 스튜디오의 개념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낮은 수준에서 진
이라는 변방과 같은 중심과 주변부를 가르는 글로벌리즘의 창궐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담론이 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행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폐교를 작업실로 제공한다지만, 생활공간에서 떨어져있어 접근성의 불편함을 비롯한 모든 문제들을 작가가 알아서
문화예술 전문가로 성장한 예술가가 그 지역의 역사, 지리, 환경, 인물들에 능통한 지역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오히려 작가는 고립된 처지에 놓여지게 되고,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제공에만 지원
는 것이 예술가들의 생활양식을 보다 현실 속에 뿌리내린 사회의 일 구성원으로 인정하게 할 것이며, 예술을 사회의 정당한 일 구성
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국립현대미술관 산하의 창동 스튜디오가 2002년 6월 문을 열었고, 이어서 고양시 창작스튜디오가 국제 레지
기재로 확인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던시 프로그램으로 전환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한 새 예술정책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07년까지 광주 및 부산 창작스튜디오를 조성하는 것을 비롯하여,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미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내 공립창작스튜디오 조성, 개인 및 민간 창작스튜디오 지원 등을 중장기 계획으
2) 유동성과 작업실
로 설정하고 있다.
다음은 공간적 의미의 작업장에 관한 대목인데, 김윤환 같은 이의 PMA(휴대형 개인 작업실, personal mobile atelier)는 그런 점에서
그러나 여전히 왜 창작스튜디오인가, 작가에게 작업공간은 무엇인가, 오늘날 현대미술의 확장과 변화를 통한 작업 개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작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제작해서 공기를 주입하면 공간이 형성되는 작업공간을 구상한 것이다. 움
업실 지원이 어떤 메커니즘 속에서 의미를 갖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말하며, 개념적 정의와 철학을 마련하려는 작업은 아직 충분하지 않
직이는 작업실 또는 가지고 다니는 작업실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김윤환의 이 작업은 "예술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패러디 문구를 성
은 상태이다. 물론 정부차원에서 정책적 사업으로 창작스튜디오 설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현황에 대한 분석은 그 나마의 문제의식이라 할
립가능하게 하는 노매딕한 발상이 아니겠는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나아가 물리적 장소에 한정된 건축공간으로서의 작
것이다. 이에 따라 창작 공간 지원과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구분하자는 제안은, 다시 말하면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자국
업실이 아닌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되는 작업실 공간의 의미란 그 시사성이 매우 크지 않겠는가.
또는 외국의 사설/국공립 기관의 초청으로 생활비와 창작비를 보조받으며 숙식하는 장단기 체류 프로그램이며, 공간 지원 프로그램은 창작을 위해
한생곤의 작업실은 한군데 정주해있는 대다수의 작업실에 비해 늘 움직이며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독특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
작업 공간만을 적은 비용에 대여하거나 무료 대여하는 프로그램'을 구분한 것은 전체적인 스튜디오 지원사업의 큰 테두리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무
는 매번 움직이는 아틀리에에서 다른 상상을 하며 다른 환경과 사람과 도시와 자연을 만나는데, 이때 발생하는 예술적 유목이라는
엇이, 혹은 어떤 개념이 이런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의 효과는 어떤 가치규준에 따라 주어지는가에 대한 전제를 분명하게 한 것은 아닌
발상은 요즘의 관념적인 탈주, 일탈 같은 허약한 예술게임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듯싶다. 그래서 결국 사업의 확장을 말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발제는 적어도 왜 창작스튜디오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작업실의 의미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한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예술운동으로서의 불법점거 작업실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무단점거해서 작업실로 사용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작업실의 사회학으로 이어질 법하다. 특
작업실 개념의 변화
히 점거 아틀리에 관한 두 작가의 다큐멘터리는 척박한 환경의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새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참신한 것이었다. 김기
기본적으로 창작스튜디오 지원은 창작지원의 하나다. 실제로 창작환경의 문제가 창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어서, 그 개념적 다양성을 다
현은 지난해에 청주에서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지역의 여론을 불러일으켜 점거 직전까지
시 한번 고찰해 볼만하다. 무엇보다도 예술가에게 작업실은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공장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장처럼 단일한
갔다가 한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이다. 그의 작업은 이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보여주는 설치작업이다. 현재 파리에 유학하고 있
제품 생산의 의미는 아니다.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 말했을 때, 그것은 창작의 특별한 지위가 갖는 비생산성을 극복하고 생
는 김현숙은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점거 아틀리에(squats,스콰트)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인다. 한국에도 점거 아틀리에
산성을 높임으로써 작업의 의미를 현대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물론 '비즈니스'라는 자본주의적 맥락에서의 현대화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말
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척도를 한 단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2002년의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예술과 스콰트 페
이다. 또한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 사회주의적 삶을 구현하려 했던 러시아 구성주의자에게 작업실은 공장이고, 가게며, 사무실이었다. 예
스티벌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파리는 바람구멍이 스물여덟개가 있는 바람난 도시이다."
술의 창작행위가 삶 속에 녹아나고, 삶 속에서 발견되며, 한 사회를 변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전환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이렇게 작업실의 의미를 역동적인 개념으로 바꾸게 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작업실은 세계로 향한, 세계를 바꾸기 위한 관문과도 같은 공간인 셈이었다.
작업실과 작업실을 근거로 활동하는 작가의 삶과 예술의 문제, 그리고 현장성과 유동성, 그리고 목적의식적인 예술운동으로서의 점
그런 관점을 계속해서 보면, 예술가의 작업실은 작업을 위한 공간이라는 조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 공간은 사회로부터 단절된 순수예술의 공간
거작업실의 문제 등을 토대로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을 살펴보는 일의 첫걸음을 가늠하고자 한다.
만이 아니라, 창작의 산물이 사회적으로 결합되고 유통되며 다시 되돌아오는 순환구조를 갖는 하나의 '튜브'이기도 하다. 작업실은 창작의 장이기도 하지만, 전시장이기도 하고, 만남의 장이기도 하며, 개념적 사유를 위한 비물질적인 공간일 수도 있으며, 토론과 논쟁을 통해 비평적 담론을 생산하
※ 전시서문으로 발제문을 대신함.
는 공간이기도 하며, 프로젝트 기획의 산실이기도 하다. 지독하게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공공의 장이기도 하며,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기도 하면서 꿈 꾸는 자유가 허용된 공간이기도 하다. 게다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화가나 조각가의 작업의 형태만이 아니라, 종이 나부랭이나 잡동사니, 무심히 찍 은 듯한 사진, 쓰레기와 고물 더미, 일시적인 설치물을 제시하는 현대미술의 무수한 개념적 작업과 뉴미디어를 활용한 영상작업의 형태를 위해 작업 실의 형태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어떤 프로그램을 생산한다는 버추얼의 개념까지 포괄하면서 확대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작가의 작업실은 작가가 있는 모든 사회적 공간, 삶의 공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작업실은 일차적으로 삶의 방식으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주거공간과 아틀리에가 함께 설계되어 있는 형태의 스튜디오 지원이 가 능한 것이다. 또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서 일정하게 프로그램을 가지고 일정기간을 두고 예술가들이 모이는 경우의 지원도 가능하다. 이럴 경우 기 본적으로 관통하는 개념은 '교류'가 된다. 그것은 작업실을 매개로 비평적 교류, 미술시장의 교류,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획득하는 과정에서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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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기능과 역할을 담아내는 교류, 사회와의 교류, 그리고 국제적 교류 등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된다. 실제로 창작이란 물질적인 작품을 궁극의 목표로
작가의 문화적 체험과 창작의 계기 마련
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 사유의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스튜디오는 고정된 공간개념이기보다는 움직이는 공간으로 그 개념적 진전
: 프랑스 외무성 소속 라파(L'AFAA, 프랑스예술진흥협회)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이 가능하다.
라파가 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매우 큰 사업이다. 기본적으로 라파는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특히 레지던시의 핵심개념을 국제교류
또한 파리를 비롯한 유럽에서 마치 노숙자들이 철거될 아파트를 점거하여 임시로 주거공간을 확보하듯, 작업실 없는 작가들이 버려진 건물에 잠입하여 그
로 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에 따라 이들이 보는 문화교류라는 것도, 어떤 사업 단위의 개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다른 문화의 체험'을 중시하는 점도
들의 작업 공간을 점유하는 점거 아틀리에(스콰트, squats)의 형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주어져야 할 작업실 기본권 같은 것을 행
유념할 만한 부분이다. 창작에서 다양한 문화의 교차와 충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문화적 체험이 축적되면서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반성
동주의적 방식으로 보여준 작업실의 사회학인 셈이다. 이런 행동을 통해 작업실은 사회적 문제와 교통하는 행동의 장이 된다. 물론 이런 행동으로 인한 공
이 제고되는 가운데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에 따라 라파는 매년 작가들을 선정하여 10,000유로(약 1,500만원)를 지급하
간 점유가 하나의 지원의 형태로 되기는 어렵지만, 예술인들에 의해 작업실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게 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고
여 원하는 나라에 가서 문화적 체험을 쌓도록 한다. 이에 대한 결과로 그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작가의 휴식과 자기 성찰, 문화에 대한 이해
본다. 이럴 경우 어떤 제도적 심의를 거치지 않은, 자발적인 예술인 집단이 형성되는 것이어서 문화적 의미도 크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
와 체험만을 위해 지원할 뿐이며, 작가가 어떤 기관에 갈 것인지, 어떤 형태로 거주할 것인지는 작가가 자율적으로 정하게 된다.
사회적 이목과 여론의 흐름을 타 그대로 작업실로 변경되는 행운도 기대해 볼만하다. 이에 따라 다음은 작업실 지원의 다양한 형태를 제시한 것인데, 그 다양함에는 작업의 개념을 어떻게 보고, 작업실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자국의 현대미술을 국제화하기 위한 목표에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개념이 살아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실제 정책에 반영되어 있는 작업실 개념의 다양성과 새로운 예술창작을 추동하는 지원개념을 유추
: 스웨덴의 IASPIS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업실 정책의 목표가 단순한 공간 지원을 통한 배분의 의미에 있기보다는 작업실의 개념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IASPIS는 스웨덴 정부가 스웨덴의 현대미술을 국제화하기 위해 1996년 설립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90년대 다른 유럽국가 작가들의 국제무대
창작환경을 개선하면서 새로운 예술이 창출되는 효과를 갖는다는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진출에 비해 스웨덴 작가들이 국제적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현실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스톡홀름에 본부를 둔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웨덴 작가들의 창작활동 지원과 이들의 국제미술계 진출을 육성하는 것에 일차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 자국의 작
공간지원 형태의 스튜디오 개발과 지원
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작가들을 초대하여 스웨덴 작가와의 교류를 활성화한다. 동시에 큐레이터와 평론가와의 심포지움, 전시, 워
기본적으로 창작스튜디오는 거주 공간과 함께 장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삶이란 일상생활 공간이 필요한 만큼 작업실 공간
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시가 시립아파트를 건립할 경우, 설계단계에서부터 어느 층은 의무적으로 아틀리에가 딸린 형태로 지어 작가
프로그램 참여대상은 스웨덴 작가 경우 서류지원을 통해 심의를 거쳐 선정되고, 외국작가들은 초대로만 한정한다. 초청된 외국작가들은 2개월에서 6개월
들에게 낮은 임대료를 받고 분양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지역의 경우도 일정하게 예술가들의 창작 촌을 형성하여 분양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또 폐쇄
동안 거주하며, 이 기간 동안 개별적인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도 있으며, 그룹전에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만이 아니라 음악, 무용, 영화 등 다양한
하기로 한 공장건물이나 철거대상 건물들을 리노베이션하여 작가들에게 장기 임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 영구적으로 스튜디오 지원이 진행되기
영역의 작가들이 초대되기 때문에 장르 간 교류가 가능하다. 스튜디오는 스톡홀름에 11개를 두고 있고, 외국작가들이 스웨덴과 관련한 특별 프로젝트를
도 하지만, 때로는 완전 철거하기 전의 기간을 두고 임시로 임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국가가 작가의 작업실을 생활공간의 일부로 본다는 점에서 작업실
제안할 경우, 말뫼와 고텐버그, 우메아 등에 있는 별도의 스튜디오를 제공한다. IASPIS는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된 외국작가들에게 스튜디오와
에 대한 철학이 읽히는 경우이며, 실제로 예술가 복지문제와 한데 맞물려있는 지원개념이기도 하다.
체류비, 여행경비 일체를 지원하고 있으며, 스웨덴 작가들에게도 스튜디오와 프로젝트 지원비 등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젝트 수행을 목표로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 프랑스 파리 소재 팔레 드 도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르 파비용"(Le Pavillon)
: 일본의 Artists-in-Residence(AIR) 프로그램
'현대적 창작의 장소'(Site de Creation Contemporaine)라는 이름을 가진 팔레 드 도쿄는 경계가 유연하고, 현대미술의 실험적 확장의 가능성을 최대한 열
1997년 일본 문화부가 지역문화 활성화를 목표로 AIR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지방정부가 지역문화를 활성화를 위한 주체로 나서게 된 경우를 볼 수 있
어놓은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팔레 드 도쿄의 성격과 연속성을 가지며 운영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독립된 형태로 존재
다. 이에 따라 일본 전역에 걸쳐 약 열 곳 정도에 AIR 프로그램을 두고 3-5년간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지역과 협력체제로 시행하였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
한다. 다시 말하면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은 미술관의 부설기관이자 프로그램처럼 진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레지던시 프로그램 디렉터와 진행 큐레이
은 지역의 전통과 특산물 등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도자기, 종이예술, 인쇄술, 텍스타일, 유리공예 등을 특화하여 지원한다. 이에 따라 AIR 프로그램에
터가 따로 있는데, 이 디렉터를 중심으로 매년 프로젝트를 띄워 진행한다. 앙주 레시아(Ange Reccia)라는 설치미술작가가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
종종 '예술마을'(Art Village)라는 별명이 붙여지면서 예술가 주도로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하며, 나아가 문화산업과 연계하여 지역의 재생과 개발에 큰 역할
제안하여 팔레 드 도쿄가 합의를 하여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을 하게 된다. 또한 지역민과의 교류 활동 역시 새로운 문화교육의 역할로 제시된다. 그 가운데 가장 대규모 프로그램이라 할 1993년의 <TAMA Life 21>
레지던시 프로그램 장소는 팔레 드 도쿄의 다락방과 같은 공간에 있으며, 이 곳에는 독립된 스튜디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회의장과 컴퓨터가 있는
프로젝트는 석조와 판화 및 인쇄술, 텍스타일과 도자기를 위한 4개의 스튜디오를 히노데, 이츠카이치, 하치오지 지역에 건설하여 각각 4명씩 총 16명의
10여개의 개인 책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작가들은 여기서 거주하며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프로젝트를 위해 모여 생각하고 토론하며
예술가를 초대하여 스튜디오를 제공한 경우다. 이어서 미노의 종이예술마을, 세토의 도자기와 유리예술센터, 국제 예술문화교류를 위한 타케오 프로그램
결과를 위해 협동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곳의 레지던시 개념은 개인 작가의 물리적인 공간 개념이 아니라, 토론의 장으로서 제공된다. 이를
등이 그 사례가 된다.
위해 디렉터는 수행하게 될 프로젝트를 주제로 하여 레지던시 작가를 공모한다. 그러면 파리에 거주하거나 외국에서 작가들이 신청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거주공간과 스튜디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특기할 만한 사안은 평론가도 2명 정도를 함께 포함하는데, 결국 전시회로 이어질 경우 주어진 주제와의
도시계획(Urban Planning) 구도 내에서의 스튜디오
연관성에 비평적 쟁점을 부여하도록 돕게 된다. 지난해는 '일본문화'를 주제로 하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5명 정도의 작가와 평론가가 함께 일본 여행을
도시 내 사용하지 않는 건물을 국가나 지자체가 매입하여 이를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기반시설로 전환하는 경우에서 특히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운영
하고, 이를 토대로 토론하면서 프로젝트를 만들어 간다.
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도시 재개발이라는 점에서 활용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우범지역 등에 창작 촌을 조성하여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도시 재개발이라는 점은 창작스튜디오를 통해 도시문화에 새로운 가치와 힘을 불어 넣어준다는 개념인데, 물론 여기에는 미술만이 아니라 공연예술, 건축, 영화까지 모두 가능하다. 만일 가능하다면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폐기될 건물을 국제적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활용해 볼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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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교토 아트센터 1993년 폐교된 구 메이린 초등학교를 리노베이션하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1996년 추진된 교토예술문화진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공사를 거쳐 2000년에 개관하였다. 이 학교는 1869년 문을 열어 교육을 행한 역사적인 시설로서, 지역민들의 협조로 지어졌으며, 건 축적 구조에서도 고도의 문화적 가치를 갖는 것이다. 이를 살려내면서 스튜디오로 활용한 점이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이들이 수용하는 예술가들의 장르는 미술만이 아니라 음악, 무용 등에 이르며, 원칙적으로 3개월이라는 단기간의 체류를 제시하고 있다. 국제적인 작가들이 지원하게 되는 동기에는 일본문화 를 이해하고 이를 주제로 작품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는데, 이에 따라 교토아트센터는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비평가와 큐레이터와의 협업 및 전 시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체류비는 제공하지 않는다. 문화고도로서의 교토의 면모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교토 주민과의 교류를 통한 지역문화 인 식의 기회를 확대하며, 또 역사적 건물을 개조하여 역사성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시설로는 스튜디오와 강의실, 2개의 갤러리, 강 당, 자료실, 카페 등이 제공된다. 미술이론 및 비평, 전시기획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이 경우는 교육적 기능을 겸한 프로그램이다. 네덜란드의 데 아펠(De Appel)이나 프랑스 그르노블의 마가쟁(Magasin)은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내에 단기 큐레이터 교육프로그램을 두고 실시하는 것인데, 국제적인 교류를 목적으로 하며, 실제 교육은 전시기획안을 가지고 진행된다. 뉴미디어와 창작 개념 변화에 따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변화 : 독일 칼스루헤의 미디어아트센터 ZKM 세계 3대 미디어 랩인 미국의 MIT Media Lab과 일본의 ICC에 이어 독일의 자존심으로 내세우는 시설로서, 이들 랩 간의 네트워킹을 통해 기술 및 컨텐츠 교환이 용이하다. 건물은 기존 공장을 개조한 것으로,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미술개념에 따라 개조되고, 설계됨으로써 미술관 건축의 주목할 만한 유형으 로도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미디어아트 전문 전시장과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나, 오히려 미디어아트의 비물질성과 무한 복제성을 감안하여 저 작권을 보유함으로써 컬렉션 개념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미술관의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도 어떤 작업실의 물리적인 공간 을 제공한다기보다는, 작가가 프로젝트를 가지고 들어와 미디어기술의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기자재 및 기술협조를 통해 이루어내는 경우이다. : 프랑스 투르쿠엥의 르 프레느와(Le Frenoy),국립현대미술스튜디오 프랑스 문화부가 엄청난 투자로 이루어낸 뉴 미디어 시설을 갖춘 학교로서 2년제 박사학위 급의 미디어아트 교육기관이다. 박사학위 급이라 하지만, 실제 로 이 학교는 프로그램과 교육목표는 기존 미술대학의 것과 전혀 다르다. 어떤 이론적 성과로 학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가지고 2년간 다 양한 실험을 하여 결과물을 내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학교 이름이 국립현대미술스튜디오(Studio National des Arts Contemporains)로 지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일종의 창작스튜디오의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1년 차에서는 전반적인 시청각교육을 받고, 2년 차에서는 뉴 미디어 기술을 통한 교육을 받는다. 여기에 교수는 학생들의 각자의 프로젝트를 존중하면서 이에 창작 및 기술적 조언과 토론을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이후 졸업전은 전시라는 형태로 존재하지만, 네트워킹과 미디어 활용을 통한 다 양한 형태의 작품 발표와 쟁점을 제시하게 된다. 마치며 물론 사례연구는 훨씬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살펴본 사례는 작업실 개념을 다양하게 바라본다는 관점에서 주어진 것이지, 단순 사례로 제기한 것 은 아니다. 만일 한국에서의 작업실 정책이 주어진다면, 바로 이런 관점을 염두에 두고 실제로 지원이라는 것이 어떻게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갈 것 인지에 대한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던지고자 한다. 자칫 작업실 지원이 단순 공간 배분이나 시혜 개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작업실 개념의 다양성과 그것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발제가 충분히 완성된 연구라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를 토대로 더 발전된 논의가 제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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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김 윤 환 지정 질의Ⅰ
김윤환: 저는 점거 아틀리에라고 했을 때 일련의 실행, 결과를 통틀어서 하나의 예술 점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한국에서의 예술 점거라는 것은 비 주류이고 아직 있지 않았으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틈새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각도의 문화가 한 국 땅에 시도되었을 때, 과연 한국적인 정서, 사회 상황, 법과 제도, 관습과 어떤 식으로 만나고 부딪히거나 혹은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 궁금하고, 만약 한 국에서 점거가 실행된다면 그 이후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가들의 새로운 삶과 예술을 실험하 는 면에서 시장이라도 볼 수 있는데, 그러면 그 공간과 주변의 시민들, 공간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 고 싶습니다. 김기현: 물론 창작의 공간이라는 것이 숨쉴 수 있는 생활공간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시와 의논하는 과정 중에도 많은 프로 그램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결국은 시민대중과의 호흡을 통한 열린 스튜디오 프로그램으로, 이는 점거를 한 뒤 바로 실행된 것이 오픈 스 튜디오 형식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여론의 수렴을 얻어서 정당화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가에게만 활용되기 위한 공간으로서 전부가 아니라, 점거된 공간 안에서 시민대중과 함께 어떠한 방식으로 호흡할 수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더 두었습니다. 박신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포함된 내용이 겠지만, 지역정서와 맞는 현재까지 지역에서 이뤄내지 못한 대중과 예술과의 만남, 열린 스튜디오에서의 적절성을 심도 있게 고민하였고 이것들이 가능
2. 지정질의 및 토론 질의자 : 김윤환(작가), 백기영(작가,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이병한(심 스페이스 대표)
하다는 것은 우리 충북 민미협이 10년째 진행해온 거리미술제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들이 작업을 가지고 나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학습된 과정들을 일정한 공간에서 상시적이고 주기적으로, 그리고 시민과 함께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 시민이 참여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계획성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윤환: 점거는 불법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비주류 문화이며 그에 걸맞은 저항성, 자체의 자율적인 성격이 분명히 존재할거 라고 봅니다. 그에 대한 생각과 점거예술가들의 미학적 입장이 궁금합니다. 김기현: 저는 지역에서 비주류에 속하지 않습니다.(웃음) 나이가 이것을 이야기해주게 되었습니다. 비주류로써의 저항이 아닙니다. 이것을 준비한 개인적 인 생각에서 저는 비주류가 아니지만 계속 생산되어 나오는 비주류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제공될 곳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기존에 이미 자신의 터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보다는 생성되는 새로운 신진작가들에게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여 엮어놓음으로 인해 그들에게 많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것이 초기에는 불법과 관련된 문제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정리 되고 나면 이러한 비주류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주류의 문화로 영입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 작가들의 자율성, 불법이 합법화되어가는 옮아가는 과정 중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단단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사실 먼저 가는 사람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 사람 스스로에게 돌아 오는 혜택보다 다음에 있을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질 것들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김준기: 박신의 선생님 발제 중에 나온 이야기이지만, 레지던시 프로그램 혹은 오픈 된 형태의 작업실들이 지역 거점의 문화 활동 공간, 문화 생산 공간으 로 활용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는데, 관주도 하에 운영되지만 창동 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는 백기영 작가가 보기에 그런 가능성이 있겠는지, 짧게 그 단상에 대해 언급해 주기 바랍니다. 백기영: 김윤환 선생님께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제가 이야기한 진정성의 문제도 그와 연관이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주도 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창동 스튜디오가 건립이 되었는데, 공간이 작가의 삶과 작품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있어서 그 공간은 첫 느낌 처럼 '너무'좋은 공간입니다. 그 공간은 작업을 위해 망치질을 하거나, 춤을 즐기고 술도 마시면서 맘 편히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매일같이 청 소를 해야 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공간을 세팅한 사람들의 예술가에 대한 개념은 돈 많은 사람들이 좋은 차를 몰고 와서 고상하게 작업을 하다가 나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그 공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비주류나 히피나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습니다. 그 삶이 그 들의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저같이 호화 아틀리에에 들어가 고상한 붓질을 하면서 그러한 방랑하는 예술형태를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윤환씨의 질문은 충북 민미협의 프로젝트가 어떤 대안 예술이 되느냐, 그곳에서 어떤 예술 작품, 행위가 나올 것이냐, 어떤 점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예술가들과 그가 만들어낸 예술작품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괴리시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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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백 기 영 지정 질의Ⅱ
Ⅲ- 이 병 한 지정 질의Ⅲ
백기영: 항상 전시가 끝나고 나면,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전시가 다루고 있는 개념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적은데, 이렇게 작
이병한: 예술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형태에 대해 두 가지-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일반 창작환경 지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약간의 성격차
업실과 관련된 환경, 그리고 작업실과 관련된 작가들의 삶, 예술관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데에 대해서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생
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레지던시는 어찌 보면 선별된 형태의 지원형태라 할 수 있고, 창작 환경은 생존권과 같이 창작환경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의 지
각합니다.
원이라는 것입니다. 앞의 내용을 떠나 저는 전에 혹자와 '정부가 왜 예술가를 지원해야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정부는 개인 컬렉
(발제에서)전시를 기획하신 김준기 실장님이 작품들과 함께 전시를 소개해 주셨는데, 그것을 보면서 상당히 작업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어떻게 보면
터처럼 자기 취향에 따라 어떤 것을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국가 경쟁력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국민의 행위라던가 아니면 이러한 문화
작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과 관련된 것보다는 작가의 삶의 태도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는 측면에 있어서
활동 자체도 국가의 자산으로 보고 국가 경쟁력의 한 요소로 보는데, 전반적으로 별 경쟁력이 없는 개인의 창작행위에 대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해
작가들의 삶의 유형이나 태도에 관심을 갖게 하는데, 특별히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 있어서 '작업실'이라는, 어떻게 보면 좀더 행동주의적이고 좀더 정
야 하는 것이냐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그러한 질문은 약간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해
치적인 개념들이 들어있을 수 있는 내용들을 박제화 된 형태로 너무 작업을 전시장안에서만 보게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해주셨다고 발제자께서도 말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정부가 창작 스튜디오를 지원해야 합니까?
씀하셨는데, 사실 이번에 출품된 작가들을 보면 작업실을 들고 이동을 한다던지 이동하는 아틀리에라든지, 이런 노매디즘적인 개념들은 서구의 60년대
박신의: 저는 이번 새 예술정책만큼 창작 스튜디오에 대해서 이렇게 엄청난 의무를 갖고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진행하는 본인
히피적인 문화라던가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상당히 저항적인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분히 소재적으로 서양에서 유행하는
들도 스스로 개념을 찾기 위해 말을 계속 반복했는데, '창작 스튜디오 지원은 곧 창작지원의 한 형태이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새 예술
경향에 대한 하나의 차용하기 형태에서 고쳐버린 작업이라는 데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이것을 저 자신도 계속 고민했습니다.
정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가장 기본적인 공간 지원의 개념과 또 하나는 프로그램, 단기적으로 어떤 목적을 갖는 레지
예술이라는 것은 진실성의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이 아주 거지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죽은 후 그가 자신의 전 재산을 주에 환원했다는
던시의 개념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구분하자고 했지만 아직까지 정부에서는 두 가지 구분에 대한 내적 필요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첫 번
것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워홀이 가짜였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주에다 기부를 한 것은 얼마나 좋은 행위입니까.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작가의 진실
째 언급한 기본권으로서의 창작 스튜디오는 개념을 갖기가 어렵겠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실천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
성을 묻는 문제의 형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삶이라는 형태, 작업실과 관련된 삶의 형태를 다루는 데에 있어 진실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당히
다고 보았고, 그나마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실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국가가 왜 이것을 지원해야 하느냐'고 한다면 그들의 답은 '이것이 창작지
혼란이 생기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 고려를 하셨는지 혹은 이와 관련된 개인적인 코멘트를 해줄 수 있습니까?
원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일 것입니다.
김준기: 전시 준비 기간자체가 길지 못했습니다. 사비나 재직 이후 작업실에 대한 소재주의적인 작업들을 대상으로 물색을 하다가 점점 폭이 확대된 것
이병한: 우선은 당위가 이야기가 되어야 실행이 될 것입니다. 실행하는 방법은 다르게 나올 수 있는데,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왜 세금으로
입니다. 사실 제시한 도표 같은 경우도 전시를 만들어 가고 작가들과 대화를 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70년대부터 노매디즘적인 작업양상이
하느냐' 아니면 '경쟁력이 있는 것만 지원을 하고 별로 경쟁력이 없는 일반적 예술 활동들은 알아서 해라'라는 태도의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면 기본적으
나타났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경우에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실정들이 미약했고, 그런 정보들이 부족했습니다. 작업실 리
로 이것을 어떤 식으로 추진을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예산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예로 드신 프랑스의 경우 환상적인 예로, 당위라는 것이 형성이 되면
포트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게 한국미술계의 현상들과 역량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고 생각을 하고, 말씀해주신 부분들은 향후에 이런 논의들이 전
실제 우리나라도 실행 할 수 있는 듯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같이 향유하고, 이것이 미래의 국가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한 토대를 마련해줍니다.
시의 형태든, 담론의 형태든 더 진행이 되면 소개와 예술정책과 예술가의 진정성이 결합된 것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아파트를 지을 때 어느 정도의 층을 작가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용으로 짓는다면 세제혜택을 준다던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라도 제도의 혜 택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을 이야기 할 때, 당위성에 대한 설득이 부족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백기영: 저도 이병한 선생님이 지적한 부분이 점검되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유럽의 경우는 정말 자기의 아파트에 예술가가 들어와서 산다 는 것을 아파트 관리인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기숙사에 피아노를 치는 공간이 반드시 있고, 공작실이 따로 있는 기숙 사를 따로 짓는 서구 유럽식의 문화 마인드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만, 어떻게 보면 김기현 선생님의 불법 점거 움직임은 거대한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무 리수를 두는 형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콰트의 어느 정도 부분이 불법 점거로 이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의 경우 한 지역의 공장이 더 이상 쓸모 가 없을 때에 자연스럽게 그것이 어떻게 전용될 것인지를 문화적 전용에 관한 협상 테이블로 끌고 가서 예술가들이 그것의 활용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적 극적으로 시민사회와 같이 논의 테이블을 구성하고, 합리적인 합의에 의해서 정말로 그것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향될 수 있도록 합니다. 예 술가들만 점유를 하여 그것이 지역사회를 바꾼다는 개념은 상당히 웃기는 개념입니다. 시민사회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예술가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형태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에 제가 있었던 도시에서 모두 철수한 영국군 막사를 예술가들이 시 와 협의를 하여 어느 정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또 어느 정도의 유지와 관리를 위한 정부지원을 요청하여 합리적인 운영방안을 제시했을 때 프로젝트가 받아들여지고 운영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술가는 왕처럼 행동하는 식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시민의 권리로, 합리적인 세금의 사용 문제들이 이야기되는 요즘의 상황에서 '왜 유독 예술가들이 예산을 달라고 하느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제안이 될 수 있다고 생 각합니다. 김준기: 그렇습니다. 빈민촌의 철거반대 주장을 보면 거의 총알까지 날아다닐 정도로 신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빈민촌의 주거공간도 확보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술가들의 활동공간을 보장해달라는 주장이 얼마만큼 시민사회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느냐는 요지로 생각됩니다. 박신의: 이병한 선생님과 백기영 선생님의 이야기는 약간 큰 테두리의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청주시라는 구체적인 상황으로 가면 염려하시는 것과 달 리 실제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연 우리가 작업실 공간을 주장할 만큼 '미술인들이 한 것이 있느냐'라는 반성이 필요한 이야 기로 들립니다. 저는 이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미술인들이 한 것은 없습니다. 만약 주민들이 아파트에 이러한 것들이 있으면 '저 건물은 입시학원 이 되어 돈을 벌 것이다'라는 개념을 갖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과연 우리사회에서 작업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시민적 합의를 어떻게 받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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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던져져야 할 것이지만, 이것을 통해 미술인들이 스스로 그런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 다. 그리고 스콰트의 경우, 기본적으로 이것이 유럽사회에서 가능한 이유는 유럽의 아파트가 거의 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학하던 95.6,7년에 는 거리의 노숙자가 버려진 건물에 점거한 사건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사회적 이슈가 되어, 언론을 통해 여론 형성의 큰 힘을 받았는데, 나름 대로 노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노숙자문제의 제기가 얼마만큼 시민들의 문제의식 속에 파고들어 갔느냐의 측면이 더 큰 소득이라고 봅니다. 저는 진짜로 청주시가 안타깝습니다. 김기현 선생님의 점거운동은 일종의 의식을 깨우치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점거이후의 활동을 묻는다는 것은 점거의미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걸친 후에 진행되어야 할 논의이고, 청주라는 지역의 특성 속에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저는 그 자체가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것의 의미를 두 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작업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받 아낼 것인가라는 문제와 그러면서 청주의 경우, 오히려 그런 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행동으로서의 의미, 지역에서 이러한 움직임의 당당함과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차원에서 두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병한: 창작 공간지원의 문제지만,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것을 운영하는 시스템(Operating Syetem)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보기엔 레지던시를 설명하면서 얻은 단초는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을 외부에서 받는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혹은 현대미술관이 끙끙 앓으면서 전부 해결할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런 기획을 공모한다던지, 좋은 안을 맡던지, 컨설팅회사에 위탁을 하던지 등의 운영시스템의 민간화 부분에 대해서는 정책자문과 같은 일을 많이 맡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신의: 실제로 프랑스 같은 경우 문광부 직원 자체가 다 전문가입니다. 공무원은 회계와 행정담당 2~3명이 있으며, 전부 전문인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문광부 자체가 전부 기획의 중심이 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더군다나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도 어떤 경험이나 국제적 체험에 있어서 여전히 미숙한 사람들이 많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볼 때, 기획을 해야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기획을 받 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로 다시 되돌아 가보자면,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문화통치부에 전문 인력들이 있어서 기획이 끊 임없이 나오지만, 한편으로 프랑스라는 나라는 모든 문화 기반 시설이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기획에서 나옵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기획안을 내고 프로젝트를 내서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실현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면 너무나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약간 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다녀온 구청문화재단 회의에서 경기개발연구원은 무슨 기획안이든지 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문광부도 이제는 본인들이 행정고시를 보고 오는 공무원으로써는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들과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새 예술정책이 그러한 예가 된다고 봅니다. 유례가 없이 민간전문인들이 들어가서 같이 머리를 짜 내어 나온 것이 새 예술정책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도 그러한 과정으로 가 게 되고, 시스템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정책자체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정책의 사업 단위들이 생겨나면서 운영시스템 이 자연스럽게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프로젝트 개념 또는 기획의 개념이 안팎으로 유연하게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준기: 언급하신 대목이 새 예술정책안에서의 공공미술법안항목을 보니까 건축 미술 장식품법안을 공공미술법안으로 대체하겠다는 대체입법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신 프로그램으로서 공공미술, 기획으로서의 미술이 공공미술 법제도 틀 안으로 들어와서 지자체라든지 지역의 문 화예술 후원단체, 기관들과 유기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틀을 넓혀서 짜야할 것 같은데, 그냥 어떻게 보면 건물 앞에 세워둔 예술작품이 문제가 되니까 이 것을 '어떻게 좀 바꿔볼까'의 수준에서 논의가 된 것 같습니다. 공공미술센터를 세우겠다고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들이 없어서 조각이 외의 미술, 프로그램으로써의 미술-주민 참여형, 과정 참여형 미술 등-이 어떻게 공공미술로 들어오고 이것이 어떻게 공공미술센터, 지자체와 연관될 것 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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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실제로 창동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써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조주현: 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현대미술에 있어 중요하게 다뤄지는 시점에서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어깨가 무겁고 이런 자리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도 많이 있지만, 성격은 각각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의 창작 스튜디오는 공공적인 스튜디오로써 입주 작가들에게 엘리트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운영한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국내의 미술관계자 분들과 미술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서비스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기본프로그램을 준비, 추진하고 있습니 다. 프로그램 아웃소싱과 함께 전시의 경우, 외국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으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관한 국내외 정보를 총력을 기울여서 얻고 있습 니다. 수집된 자료는 자료실을 만들어 올해 안으로 오픈을 할 예정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 스튜디오는 '서비스'로써의 위치를 가져한다는 생각입 니다. 박신의: 창동 스튜디오는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사례이자 소중한 시작으로 보여 집니다. 이외 쌈지, 영은 미술관, 광주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창동 스튜디오는 소중한 시작이기 때문에 그에 걸려있는 쟁점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해결방안의 실마리를 풀어야만 지금 확장될 스 튜디오 사업들이 잘못된 절차를 밟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쌈지, 영은, 창동 스튜디오가 거의 같은 시스템이라고 보는데, 창동의 경우 국립이 기 때문에 공정성을 따져서 장르별로 사람들을 배분해서 뽑게 되지만 쌈지, 영은처럼 사람들을 1년 단위로 뽑게 됩니다. 그러면 1년을 잠시 머무르기 위 해, 즉 1년 간 스튜디오를 지원 받기 위해서 가는 것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1년은 단기에 속하기 때문에, 저는 어떤 프로그램 없이 그곳에 간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어떤 작가가 창동에 있다는 이유로, 굉장히 좋은 조건의 작업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 고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많은 작가들이 어떤 경우 운이 좋아서 쌈지에 1년, 영은에 1년, 창동에 1년을 거주하게 되었을 때, 작가들이 짐 만 싸다가 정신없이 보낸 3년 후에는 정말 아무런 기약도 없이 다시 또 공간을 찾아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과연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생각해 봐야 합 니다. 만약에 국립이라는 이유로 창동 같이 스튜디오를 운영을 할 경우, 작가에게 2년이나 3년을 주던지, 또한 이렇게 되면 프로그램 없이 2~3년 거주 작 가를 뽑을 경우 무슨 이유에서 선정을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심지어는 다른 작업실이 있는 경우에도 창동에 있었다는 것이 작가의 경력이 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굉장히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동을 비롯한 쌈지, 영은에서 진행하는 스튜디오의 가장 큰 쟁점은 기본적으로 프로젝 트를 가지고 작가를 공모하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튜디오는 작가의 프로모션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잠깐 빌려주는 것 외에 전시 기획이나 컨셉을 가지고 작가를 공모한 후 다음 해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로 엮어지는 등의 최소한의 프로젝트가 있지 않는 한, 정말 큰 문 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칫 이것이 모델이 되어 확대, 재생산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김준기: '작업실 리포트'전시의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얼마 전에 사사 작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사를 비롯한 정수진, 박미나 작가
3. 자유토론
들과 이야기하면서, 스튜디오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에 그들은 스튜디오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서 작가들과 공동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이를 아주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메뚜기 떼처럼 이렇게 저렇게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상 품가치를 높일 수 있는 그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되는데, 유동성을 가지고 작업실을 지켜나가겠다는 작가로써 한생곤 작가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한생곤: 무엇보다도 저는 작가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미술에 관한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미술이라는 것 이 저에게 주는 혜택은 미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술적 사고가 주는 자유입니다. 좀더 자유로운 상태만 주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빠삐용의 영화에 비유한다면, 감옥 안에서 사는 이야기 같습니다. 절벽 끝에서 빠삐용이 드가와 나눈 대화-드가: "나는 살만해", 빠삐용: "난 못 견디겠어."-에서처럼, 절벽 에서 뛰어내리느냐, 못 뛰어내리느냐의 문제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는 것에 대한 답을 주었고, 이상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저 의 실존 자체가 낭떠러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낭떠러지 자체가 저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눈은 늘 발끝이나 낭떠러지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고, 그 러한 움직임의 영속성이 결국 저의 동선을 만들 것이며, 한 아무개의 관심이 있건 없건 간에 '어떤 삶이다'라고 했을 때 저는 삶을 통해 그에 대한 느낌을 내가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화가이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갑자 기 소위 '땡길' 때 잠깐 화가로 태어날까 말까하다가 금방 죽는 식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이미 제가 화가라는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점에 서 저와는 많이 다릅니다. 김준기: 이를테면 드라마고라는 인천에 사는 작가가 지역주민, 아이들, 미술가 뿐 아니라 여러 장르에 속한 사람들과 만나서 어떤 기획을 하고 행사를 진 행해 나갈 때, 그의 지위에 대하여 '미술가인가 아니면 빈민 운동가인가?'라는 식의 질문이 쏟아지면 드라마고는 '나는 미술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활동하 고 싶지 않다. 나에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 직위에서의 삶이다'라고 답합니다. 한생곤 선생님은 이와 같은 식의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식 아틀리 에로 이번에 문예진흥기금 신청에서 떨어진 후, 쌈지 스페이스의 스튜디오 작가로 입주하게 될 기회를 갖게 된 김윤환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윤환: 저는 한생곤 선생님의 말씀처럼 소위 작가의식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활동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실내공간에서 페인팅과 같은 작업에서 출발하여 급기야는 그와 같은 작업을 버리고 영상이나 퍼포먼스같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동하는 아틀리에를 제안하게 된 것 은 제 자신이 몸을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현실적으로 풀어야할 또는 싸워야할 작업 과제가 복잡하고 굉장 히 유동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특히나 정보라는 측면과 인적 교류의 측면에서 사실상 세계화가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실제로 휴대형 작업실 을 만들어서 앞으로 살아갈 계획입니다. 휴대형 아틀리에는 저의 창작환경으로써의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고안된 것입니다. 쌈지는 박신의 선생님께서 도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프로그래머로 들어간 공간이 아니라 1년이라는 단기동안의 한시적 공간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김기현 작가가 추 구하고자 하는 예술점거를 같이 해보고 싶은 차원에서 이를 위해 쌈지라는 준비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에 있어서 예술은 하나의 문화를 실험하는 것 이기 때문에, 점거가 실현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진행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쌈지로 들어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이와 다른 것으로,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와 주변 대안 공간들을 활용한 국제 예술 퍼포먼스 콩그레를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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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한국적인 점거문화 정책에 관한 장경호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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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만, 뒷받침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함께 제시를 한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경호: 저는 김윤환 작가가 말한 두 가지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김기현씨 같은 경우 제가 보기엔 점거가 작가의 작업실을 마련한다는
장경호: 김윤환씨께 질문하겠습니다. 유럽에서 점거에 참가한 예술가들이 지금과 같이 '우리는 공공적 존재다, 왜 정부는 우리를 지원하지 않는가.'라고
것보다는 점거자체의 투쟁적 측면에 의미를 두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작가는 국내 삶의 질을 높이는 공사자로서의 공공적 존재라는 전제가 없으면
생각합니까? 스콰트는 어떠합니까?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작가만이 유독 왜 공공적 존재입니까? 노동으로 생산을 담보하는 것도 공공적 존재인 것입니다. 복지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윤환: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사회적 약자, 소수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주류철학과 미학에 반대하여 다른 철학과 미학
작가가 특정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복지 차원에서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에 대해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복지는 작가 뿐 만 아니라 노숙자에게도 당연
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행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적인 삶과 예술의 실험 형태로 점거 아틀리에가 현재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소통,
히 똑같이 지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박신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사례가 중요하며, 어반 프레이밍과 같은 프로그램이 더욱
수용의 측면에서 '과연 점거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를 생각할 것인데, 이러한 면에서 공공성이라고 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의 지점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기현씨가 이야기하는 점거라는 것은 작가가 작업실 공간에 대한 시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전제시
서는 반드시 짚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켜놓고 그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김윤환씨가 이야기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무실 기능
백기영: 이런 측면에서 제가 진정성의 문제를 물었던 것은 문화생산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기반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예가 라
을 하려면 다른 곳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생곤씨의 경우, 작가이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가인 것처럼, 우리가 '작가
이츠니히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통독이 되고 나서 주민들은 라이츠니히를 다 떠났습니다. 국가가 모든 집들을 관리해버리는데 이들이 떠나고 집들이 다
다, 미술가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의 미술적 영위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도사적 의미의 것이 아닙니다. 창동 스튜디오는 단순한 작업 공간지원입니다.
비어버리니까, 예술가들이 그곳에 점유를 하여 스콰트형태와 유사한 공동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라이츠니히 시에서 사회문제로 여겨졌던 공간에 예술가
이것이 레지던시로 가려면 예산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들은 또 다른 문화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한국적 대안 공간의 문제, 즉 대안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대안공간에 대
김준기: 지역거점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안양에서 '스톤 앤 워터'를 운영하시는 박찬응 관장님의 생각에, 안양 석수동을 거점으로 안양천 프로
해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류를 지향하는 비주류, 비주류인체 하는 주류인 것입니다. 이것이 가지는 문제는 상당히 큽니다. 대안공간에서 맥주냄새
젝트와 같은 활동을 하는 지역성이나 지역 주의적 입장, 관점에서 이러한 작업실 논의가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가 나지 않고, 히피적인 그들의 삶이 묻어나지 않는 형식적 대안공간인 것입니다.
박찬응: 저는 세미나를 통해 미술계에서 논의될 수 있는 다양한 개념-점거 등-들을 접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활동과 많이 혼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프랑스는 모르겠지만, 독일의 경우는 점거의 근거가 되는 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3개월 정도 건물이 비어있으면 들어가서 살아도
저는 단순하게 이야기해서 미대 졸업 후 생계를 위해 20년 간 미술을 포기하고 다른 활동을 하다가 45년을 살면서 제가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만한 일
되는 것입니다. 집주인은 강제로 그들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이용한 점거가 있고, 또한 통독 후에 많아진 빈집들에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
즉, 미술을 통해 무언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일의 개념을 미술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안양을 바꿔보겠다, 나라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면서 이것이 관광지가 되기도 하니까 이를 놔두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것과 지금 누군가가 쓰고 있는 공간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성격이 다른 것이라
여러 가지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마을 만들기에서 그 개념을 찾았는데, 제가 살아온 마을을 찾아 이곳을 거점으로 제가 걸어 다닐 수 있는 정
고 생각합니다.
도의 영역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3년 간 여러 미술관들을 초대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계속 홍보했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면
백기영: 무정부주의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유럽은 전 지역을 그래피티와 같은 예술 활동으로 초토화시킵니다. 로베르네집도 전면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
서 재개발 형태가 되지 않은 한 그 지역에서 10년, 20년 동안 이 일을 계속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100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될만
을 통해 '아!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점령했구나!'라는 점을 인식시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창작주체가가 할 수 있는 문화양산이라는 것과 관련
한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반경을 1KM로 잡고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면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있는 것입니다.
백기영: 박관장님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재래시장이 없어진 장소를 작가들의 레지던시 장소로 변경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
이병한: 이것에 대해 법적인 것을 따지면서 경찰에 대한 대체 등의 어떤 내적 필연성이 먼저 전제되지 않고 활동으로 들어가면 나중에는 틀림없이 다른
다.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찬응: 200개가 넘는 재래시장의 상점이 실제로는 30여 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재래시장은 개인 사유지라서 땅주인은 그곳에 빨리 아파트 단지를 조
박응주: 저는 요즘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논의 전체가 '서구의 경우가 어떠했으며, 선진적이고 발전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에 우리
성하고 싶어 합니다. 그 사람과 레지던시 장소를 조성하고 싶은 저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또한 정당성을 갖는다.'라는 순서보다는 이런 비유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승엽의 홈런 한 방값이 굉장하다고 합니다. 근데 문예진흥기금이 가지고 있는
이병한: 저도 점거에 대한 생각에는 찬성을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김기현씨가 말씀하신 것 중에 적법여부와 관련하여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많은
논란이 되었던 것이었지만, 문예진흥기금은 이승엽의 홈런 한 방값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평성에 대한 의식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국민 총생산
사람들이 빠져나갔다고 했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점거의 전례가 결국엔 영세민들이 대안이 없어 사유지든지, 국유지든지 들어가자는 모델을
이 있고, 1년의 국가 예산이 있고 그간에 배분됐던 몫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민간이든 관을 통한 지원이든 간에 미술을 비롯한 문화행위들이 과연 이승엽
따르자는 것이었고 그것이 불법이던 합법이던 간에 빈민의 행동양식을, 같은 비슷한 빈민인 예술가들이 비슷한 형태를 따라가는 필연성이 있는 것인데,
홈런 한 방값도 안될까.'라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만 느낀 것입니까? 그곳에서 우리는 엄청 싸웠습니다. 싸움의 방향이 거인과
이것이 잘못하면 미국의 힙합문화가 한국에서 트렌드가 되어버린 것처럼 순수한 기획이나 이벤트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의 싸움을 놔두고 우리끼리 싸운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오늘 논의의 맥락은 도덕적으로 농민의 농토를 경작행위처럼 우리가 왜 그러한 특권을 부
김기현: 지금 지적해주신 부분이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예술가도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글에서도 언급
여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맥락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난번에 어떤 잡지에서 조사한 바와 같이 문화생활에 관한 설문에서 사람들은 영화의
하였듯이 미술은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예술 활동에 대해 지방정부나 단체가 지원해 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는 논조를 피력한다면
경우 한번쯤 극장을 간다고 합니다. (중략-tape교환) 이 부분은 방송 저지른 잘못입니다. 이런 속에서 점거보다는 점유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해본다면 꽤
대안은 있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내용대로라면, 사실 지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청주라는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미술의 문화가 개
호소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9시 뉴스의 앵커가 점거했다고 보도를 하겠지만, 우리 자신은 점유 프로젝트라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런 점에서
념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미술문화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작가가 전시 공간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우리 자신이 용기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엽의 홈런을 앞에 두고 그런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고, 그런 의미라면 우리들끼리 지나치게 위축될 필
스스로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미술 문화의 편의성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며, 답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시는 헤밍웨이의 빙산의 일각 논리처럼 빙산, 즉 작업실 아래 깊은 뜻이 잠겨있는 전시였다고 봅니다.
박신의: 그렇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청주시가 생각하는 미술 개념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주시를 설득할 만
장경호: 제가 스콰트에 대해 질문한 것은 점거 점유와 같은 표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진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점거 프로젝트가 단순히 서구에서 '이러
한 장치가 있다면, 청주시의 특산물, 전통문화와 현대미술이 만나는 창작 촌을 만들면 그 사업이 관광 상품이라고 이야기하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이러하게 진행되었으니, 그대로 가자'라는 게 아니라, 어떤 정치성이 있는가를 토론해보자는 것이 아닙니까? 김윤환씨는 진행토론자로 참가해서 단순히
했습니다. 문제는 점거사태의 의미를 어떻게 얻어낼 것인 가입니다. 단순히 '너희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냐.'라는 식의 태도가 오늘의 수준이라면 그것에
이야기하시는 것 같고, 저는 실제로 점거 프로젝트에 참가한 김기현씨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김기현씨는 발제에서 점거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시대 자
대항해서 작업실뿐만 아니라 미술이 사회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득시켜야하는 사안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의 횡포에 대한 저항이라고 하는데, 여기서의 자본의 횡포에 대한 저항은 굳이 예술가들이 창작공간을 점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본업에서 내 놓아
김기현: 박신의 선생님과 같이 사회적 지위를 갖고 계신 분이 던지는 파급효과와 미술가가 운동의 차원에서 20년간 벌여온 것의 효과는 확실히 다릅니
야 할 실질적인 예술로서의 개념이 아닌 것입니다.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은 무엇이냔 말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당위성을 갖는지를 토론해
다. 제가 일하는 것은 운동 차원의 것으로, 지식인이 말하는 것은 대안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박관장님이 말씀하신 것
야 하는 것입니다.
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준기: 논의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이유는, 과연 '점거를 한다.'라고 했을 때 거기에서 나오는 상황이 어떤 정당성을 갖는지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지역
백기영: 사실 현실에 대해서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노숙자들에게 물어보면 노숙자의 80%가 일을 하고 싶어
주의적인 입장, 지역 속에서 현장 미술의 정당성을 확인해보기 위해서입니다.
하고, 유럽의 노숙자의 90%는 일을 하기 싫어합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노숙을 하는 것이기에 그들이 점거프로젝트
김기현: 총론을 다 드려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발제는 논의할 수 있는 부분만 추려서 원고에 실은 것입니다. 철학적 바탕은 만들어질 수 없고, 사회적
를 진행했다는 것은 그 철학적 경향이나 순수문화의 그룹핑으로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명석한 사회 분석을
배경으로 가능한 것만 모아 봤습니다. 지방주의(regionalism)가 가지고 있는 문제 중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시선을 모아보는 방법으로도 이런 것들이 필요
하고 있는 것이고, 자기들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에 따른 파장을 일고 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운동'차원으로써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
하다는 생각도 부분적으로 했습니다. 지역적이라는 곳에서 아무리 해보려고 하지만 그 안의 법률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다.
정치성입니다. 그리고 이 정치성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층과의 대립적 상황을 유지시키자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업실과 관련된 부분에서 논
김윤환: 덧붙여서 이야기하자면 유럽의 경우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도 도출하고 정부로부터 일정부분지원을 받는 점거 아틀리에도 생겼습니
의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본 논의에서 삭제했습니다.
다. 한국 같은 경우 점거를 한다고 하면 과거의 미 문화원 점거 정도의 의미거나 아니면 현대노조가 회사를 점거하고 농성하는 것이 연상된다는 것입니
박신의: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이번 논의의 가장 큰 쟁점은 과연 미술인이 작업실을 요구할만한 사회적 권리와 이를 사회로부터 이해받고 설득할 수
다. 그런데 그 두 가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거라고 이야기 했을 때에는 대중들 사이에서 한국식 점거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있는 작업실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가입니다. 실제로 이번 전시의 의의가 주최 측의 의도와 상관없이, 저 자신도 박응주 선생님처럼 작업실에 대한 논
때문에 김기현 선생님의 3, 4월에 프로젝트 실행에 참조를 하셨으면 합니다. 행위 면에서도 호소력을 발휘해서 어느 정도의 허용치를 받아내야 한다고
의가 과연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했는데 실제로 이 자리에 와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파리에서 늘 생각만 했던 '창작스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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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책연구'와 같은 작업실에 대한 논의를 직접 정책적으로 처음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근거를 찾아야 하며 또 한 시민들의 합의나 사회적 관행 속에서 어떤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저는 '어떤 식으로 풀까'를 생각했는데 그전에, 일단 이번 전시에 통해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것을 보면 김기현 선생님의 작품과 관련된 청주 시 공무원의 이야기처럼 미술인들 스스로도 미술개념을 너무 좁게 갖 고 있어서 작업실을 스스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점거가 일어나고 예술가는 '그렇다면 내 작업은 개인 작업인가? 공공작업인가?'라는 질문도 다시하게 되며, '내 작업이 개인이지만 이것이 어떻게 공공과 연결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면 서 오늘 이 자리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논의가 여기서 시작이 되어 개인의 창작이 어떻게 공공의 문화 속과 가장 직결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 속에서 우리가 대학미술교육에서 배워온 좁은 미술 개념을 넘어서지 않으면, 창작 스튜디오의 점거 사태도 정당화될 수 없을뿐더러, 그 본래 의미를 찾을 수 없 거니와 정책에 있어서도 공무원들조차 그 개념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술개념을 넘어가는 것, 즉 대학에서 배웠듯이 개인작가의 길만 가도록하는 미술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작가들의 행동, 사회적인 사고에 대해 한생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제가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문화 정책 전반에 관해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미술이 저에게 시각적 사고를 제공하기 때문이고, 그 시각적 사고가 세계를 보는데 많 은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미술이라는 것에 이러한 사고력, 세계를 보는 것, 해석하는 이 모든 것이 창작개념이 되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이 며, 정책적인 근거를 찾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정책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정책적 근거를 예술가의 노동이 무슨 개념인지에 관해 다룬 프랑스의 책에서 찾았습니다. 거기에서 예술가는 미술 뿐 아니라 건축, 공예, 공연과 함께하는 것으로, 작가의 창작개념이 굉장히 다릅니다. 책 은 예술가의 노동을 연구함에 따라서 기존의 노동 개념을 굉장히 확장시켜 놓았습니다. 우리가 노동이라고 하면 보통 입체 노동자라던가, 화이트칼라의 노동으로 보다가 예술가의 창작을 노동으로 보면서 그 개념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중에서도 공연의 연습시간은 창작이라기 보단 일종의 재생산과정으 로, 책은 이것을 일종의 '노동적'개념으로 환산된다고 보면서 예술가의 노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미술의 노동인 데, 이는 미술의 노동이 굉장히 개인적이고 전시회를 해야만 하며, 다시 경제적으로 환원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지원이 되는 이유는 모든 작가가 전업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등 알아서 먹고 살아야하는 구조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서 예술 행위를 'private'한 활동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는 미술대 학도 돈이 들지 않고, 졸업 후 협회에 들어 복지도 받으며 전업 작가에 대한 개념이 마련되어 있어서 지원도 아주 체계적으로 받습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미술관도 국립보다는 사립이 더 많고 화랑의 규모도 큰 것처럼 개별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노동의 개념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 으로 시민의 합의를 얻어내는 지점은 최소한 공연처럼 즉, 하루 종일 집단연습을 통해 공연을 하고, 티켓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어서 공연활 동 자체가 직업의 개념이 되는 것처럼, 미술활동이 노동의 개념이라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근거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민 들이 화가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안 그리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밥을 먹고 생활하는 것도 노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도리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그나마 '노동'이라는 개념을 풀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준기: 우리가 인사동이나, 갤러리, 미술관에서 자주 만나는 미술의 형식이 아니라 현장의 삶과 갤러리, 미술관이라고 하는 게임의 공간을 오가면서 살 아가고 있는 여러 훌륭한 삶들이 많습니다. 훌륭한 예술가이자,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예술가들을 많이 만나고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생 겼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심포지움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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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보도기사 및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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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의 작업실 보고서 2004.1.6, 연합뉴스, 김은주 부장(kej@yna.co.kr)
이상림 空間대표 예술가 데뷔?
작업실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산실이자 생활공간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
2004.1.9, 매일경제, 이지형 기자
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7일부터 2월25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작업실 보고서전에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영상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7일 시작한 '작업실 리포트'전에는 골판 지와 철골을 이용한 '움(wombㆍ자궁) 스페이스'란 작품이 등장한다. 작품이 탄생
치작가 등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한 회화 및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이 출품돼 작업공간과 연관된 예술가들의 정체성을 탐색한다.
하는 예술가의 작업실을 여성 자궁에 비유한 설치물이다. 작가는 이상림. 미술관 또는 화랑 전시에는 처음으로 작품을 내놓는 이 작가는 바로 건축설계
전시에는 김기현 김윤환 김현숙 드라마고 박불똥 유근택 이상림 등 2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김윤환은 PMA(개인 휴대용 아틀리에)를 보여준다. 가볍고
전문회사 공간그룹의 이상림 대표(49)다.
휴대하기 좋은 공기주입형 비닐로 돼있다. 설치 장소에 큰 구애를 받지 않으며 사용인원은 기본적으로 1인용이나 더 크게 만들어 그룹이 사용할 수도 있
김수근 ㆍ장세양 대표를 이은 공간그룹의 3세대 건축전문 CEO. 사비나미술관 구석에 설치된 '움 스페이스'는 아직 미완성. 이 대표는 전시 기간중 짬짬
다. 작가들이 미디어 작업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과거처럼 큰 작업실을 요구하지 않게됐고 프로젝트형 작업이나 수행형 작업등을 위해 이동하며 작업하
이 미술관을 드나들며 작품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 전시가 관람객과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어 감에 따라 작가의 작업실도 진정한 의미에서 '완성'된
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반영한 것.
다는 뜻일까. 이 대표는 "외국에서는 건축이 건축만이길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존 아틀리에에 대한 또다른 대안으로 김현숙은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스콰트'를 제시한다. '스콰트'는 불법 건물점유를 의미한다. 스콰트 예술가들은 공
다른 예술 장르와의 벽을 허물고 소통을 꾀하는 전시가 꽤 있다고 설명 했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해외 전시를 통해 문화간 장 벽
공건물중 방치돼 오랜시간 비어있는 건물들을 예술가들이 점거해 기존의 상업화랑이나 미술관에 반기를 들며 자율적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
을 허무는 시도를 많이 해볼 요량"이라고 했다. 이 대표 외에 김윤환, 노순석, 박불똥, 박찬국 등 화가ㆍ조각가ㆍ사진 가ㆍ영상설치작가 19명이 '작업실
현숙은 9개의 큐브형 모니터를 설치하고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스콰트예술가들의 다큐 비디오를 상영한다. 3대의 TV에서는 김현숙의 비디오 아트 '삶과
리포트'에 참여했다. 2월 25일까지 전시
예술의 실험실-스콰트'가 상영된다. 또한 폴라로이드로 찍은 아티스트들의 사진 100여장이 전시된다. 인천 지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 있는 드라마고는 디지털 포토 몽타주 작업을 실사출력해서 전시장에 걸었다. 그는 폐쇄된 아틀리에 보다는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현장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현수막에는 현장이 재구성돼있다. 허름한 옷차림의 꽃파는 아줌마, 부평삼거
그곳엔 찬란한 예혼이 있다..'작업실 보고서'展…사비나 미술관서
리 전철역에 배회하는 정신지체 소년, 버려진 인형, 복개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은 개천 위를 나는 갈매기, 빛바랜 달력의 숫자들이 현수막에 등장한다.
2004.1.10, 한국경제, 이성구 부장
유근택의 '어쩔수 없는 난제들'은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장난감이 정신없이 어질러져있는 아파트 거실을 보여준다. 작업공간이자 동시에 일상공간, 아이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작업실 보고서"전은 작가의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옮겨 예술행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이색 전시다.
의 놀이공간을 감당해야하는 자신의 아내인 여성화가를 화면에 담아냈다. 공간그룹 대표이사로 활동중인 이상림의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 공
김기현 김윤환 드라마고 박불똥 유근택 이상림 등 20명의 회화 사진 영상 조각작가들의 작업실이 마련됐다.
간)'는 골판지와 비닐튜브의 재질감을 살려 생명성의 소통 공간인 자궁에 빗대어 작업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전시 마지막 날인 2월25일 오후 3시부터는
김윤환의 "PMA"는 휴대용 아틀리에다. 공기 주입형 비닐로 돼 있어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다. 설치 장소에 큰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 자재로 이동할 수 있
공간그룹 소극장에서 '한국의 작업실현황연구와 대안모색'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개최된다.
는 전천후 아틀리에로 보면 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프로젝트형 작업이 많아지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파리에서 활동중인 김현숙의 "스콰트"는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불법 건물 점유"를 뜻한다. 오랜시간 비어있는 건물들을 예술가들이 점거해 기존의 상업 화랑이나 미술관에 반기를 들며 자율적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유럽형 작업실을 보여주는 작업실이다.
창작의 비밀공간 문이 열리다
유근택의 "어쩔수 없는 난제들"은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장난감이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아파트 거실을 보여준다. 작업공간이자 동시에 일상공간,아이
사비나미술관 '작업실 보고서' 展 2004.1.6, 문화일보, 신세미 부장(ssemi@munhwa.co.kr )
의 놀이공간을 감당해야 하는 작가의 아내인 여성화가를 화면에 담아냈다.
미술가의 작업실은 들여다 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내밀한 공간이다. 닫힌 공간이었던 예술의 산실인 작업실을 공개하며
어 작업실을 형상화했다.
관람객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색다른 기획전이 열린다.
박불똥은 20여년의 작가생활 기간중 작업실을 짓고 옮기고 다시 짓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작가가 경험한 작가와 작업 작업실의 관계를 건축도면 사진 메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7일부터 2월25일까지 열리는 겨울기획전 '작업실 보고서'전은 국내 미술인들의 작업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별난 전시
모지같은 오브제를 통해 보여준다.
다. 미술관의 3개층 전시장속으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영상설치작가등 다양한 장르 미술가들의 작업공간이 들어선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인 드라마고는 디지털 포토 몽타주 작업을 실사출력해서 전시장에 걸었다. 아틀리에보다는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현장을 존중해
사비나미술관 기획자 김준기씨는 "작가의 작업환경만 재현한 전시가 아니라 줄곧 닫힌 공간이었던 작업실의 이미지를 외부와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허름한 옷차림의 꽃파는 아줌마, 부평 삼거리전철역에 배회하는 정신지체 소년,버려진 인형,개천을 나는 갈매기 등이 등장한다.
공간그룹 대표이사로 활동중인 이상림의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 공간)"는 골판지와 비닐튜브의 재질감을 살려 생명성의 소통 공간인 자궁에 빗대
바꾸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작업실 현장에서 작가의 삶과 예술을 공개하는 한편, 대안적 형태의 작업실을 모색해보는 기획이다. 작가들은 작업실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거나 모형, 사진, 영상 등의 형태로 보여주면서 관람객과의 대화시간도 갖는다. 참여작가는 김기현 김윤환 드라마고 박불똥 박찬국 박홍순 배윤호 배준성 백기영 사사 윤정미 오철헌 유근택 이상림 정보영씨등 30~50대의 작가 20명.
예술가들 작업실 '세상 밖으로''예술가 작업실' 호기심 해결 전시회
본격 작업실부터 반지하, 유아 장난감이 널려있는 살림집과 공유하는 형태, 그리고 국내외 공공의 작가지원스튜디오나 작가 또는 건축가가 제안하는 대
2004.1.10, 스포츠서울, 이경옥 기자(oklee@seoul.co.kr)
안적 모형까지 다양한 작업실이 전시장 속으로 옮아온다.
재미난 기획전으로 이름 높은 사비나미술관이 새해 첫 전시로 관람객들에게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을 엿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다음달 25일까지 계속되
실제 작업실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도 다양하다. 사진작가 방명주씨는 홍지연 노석미씨등 여성작가들의 작업실 사진들을, 박홍순씨는 요절한 조각가
는 '작업실 보고서'전은 기존의 미술전시와는 차별되는 이색 기획전이다.
유인과 구본주씨의 텅빈 아틀리에 사진을 전시한다. 누드사진 위의 그림전을 대림미술관에서 열고있는 배준성씨는 누드실기시간을 특유의 두겹 그림으
타이틀 그대로 작업실 보고서전은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주면서 최근 젊은 작가군에서 새롭게 일고 있는 작업실에 관한 새로운 단
로 재연한다.
상들을 관람객들에게 이야기한다. 20명의 작가가 다양한 작업실 풍경을 보여주면서 이제 예술가의 아틀리에가 더 이상 고독한 창착혼을 불태우는 작가
반지하 아틀리에(드라마고)나 집에서 가사와 작업을 병행하는 여성화가의 작업공간(유근택)도 반듯한 별도의 작업공간을 따로 갖기 힘든 전업작가의 일
만의 독립공간이 아님을 역설한다. 한 예로 김기현의 설치작품 '대안 아뜰리에-무단점거'는 지난 20년간 파리에서 예술운동의 하나로 호응을 얻고 있는 '
상을 드러낸다. 부부작가 양석윤 주인숙씨는 3차원 동영상을 빔프로젝트로 영사해 사이버아틀리에를 차리며, 대학원생 애희씨는 작업실에서 야간작업
점거 아틀리에 운동'을 국내에서 시도하려 했던 과정을 담고 있다. 예술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회 공공의 영역이라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한 점거 아틀
이 금지돼있는 학교내 작업실에서 펼쳐지는 일화까지 공개한다.
리에 운동은 '도심에서 예술을 위한 공간, 시민들의 자유를 위한 공간은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되는가'라는 문제 제기를 한다. 그래서 스콰아티스트라 불
국내외 작가지원시설 입주작가의 작품을 통해 공공아틀리에의 속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서울 창동 국립현대미술관 공공아틀리에에 입주한 노순석씨는
리는 점거 예술가들은 비어 있는 공공건물을 불법으로 점거하다시피하며 그 속에서 삶의 예술을 엮어간다.
작업실 한벽면을 전시장에 옮겨, 아이디어메모와 스케치까지 전시한다. 사사는 홍익대앞 쌈지아틀리에를, 김현숙씨는 파리의 공공건물속 작업장을 보여
김윤환은 개인휴대용아틀리에(PMA)라는 새로운 대안형 작업실의 모습을 실제 모형을 축소한 설치형 작품으로 보여준다. 최근 들어 예술가들의 국제적
준다.
인 활동이 점자 늘어감에 따라 실제로 휴대용아틀리에는 시공간의 구애없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전천후 아틀리에로 떠오르고 있다. 이외에도 자신의
화가 박불똥씨는 수차례 작업실을 지으면서 직접 썼던 평면도 도면과 모형등을 전시한다. 건축가 이상림씨의 작품은 골판지로 꾸며본 대안적 아틀리에
편집증적인 수집 취미를 작업실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작업실 건축도면과 사진, 메모지 등의 오브제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박불똥의 작품
모형이며, 김현숙씨는 배낭속에 넣고다니면서 수시로 꺼내 활용하는 휴대용 미니작업장을 보여준다.
등은 작업실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미술관측은 전시기간 수搔畯금요일 오후4시 작가와의 대화시간을 마련하는 한편 전시 마지막날인 2월25일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대안모색'을 주 제로 한 심포지움을 열고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실관련 단행본도 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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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으로 나타난 작업실 풍경 '사비나 미술관 겨울기획전…' 작가정체성 탐색의 場으로
화가들 작업실 궁금하시죠
2004.1.12, 서울경제, 박연우 차장
2004.1.14,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johanal@joongang.co.kr)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해내는 창작의 산실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을
제조업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미술가에게는 작업실이 있다. 물건이든 작품이든 생산을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래저래 서울 언저리에 살아야 활동
돌아보고,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전시가 열린다.
이 편한 한국 작가들 가운데 작업실을 제대로 갖춘 이는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비싼 땅값 때문이다. 어느 정도 크기를 요구하는 작
사비나미술관에서 7일부터 열리는 '사비나미술관 겨울기획전:작업실 보고서(Atelier Report)'전이 그것. 참여작가는 김기현, 김윤현, 노순석, 박불똥, 오철
업실을 마련하는 일은 지금 한국 미술가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전시기획자 김준기씨가 "이제 작업실을 이야기하자"고 나선 까닭이다.
헌, 정보영, 한은주 등 20명이다.
7일 개막해 2월 25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작업실 리포트'전은 20명 작가들이 각기 작업실을 꾸려가기 위해 벌인 투쟁 일지
유근택 '어쩔 수 없는 난제들'(종이에 수묵채색) 이 전시에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영상설치작가 등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한 회화 및 사진, 영
이자 아이디어 모음이다. 1층부터 3층까지 작가들이 선보인 각양각색의 작업실은 작가의 삶을 체험하게 만들고 작업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
상, 설치 작품들이 출품됐다. 작업공간과 연관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품들을 통해 작품(생산)의 배경과 작가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작품들을
는다.
선보인다.
김윤환씨는 접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개인 휴대용 아틀리에(PMA)'를 전시장 바닥에 펼쳐놓았다. 국제적인 활동이 늘어나는 요즈음 작가들에게 지고 다
우선 입구에는 현재 공간그룹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림씨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공간)'이 있다. 질감이 둔탁한 누런 골판지로 벽을 이룬
니다가 어디서든 바로 풀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대환영이다. 드라마고가 발표한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는 인천 전체를 작업실로 삼은 작가의
1평정도의 공간 속에는 공기가 가득한 대형 비닐튜브가 안을 꽉차지한다. 입구쪽에는 '비닐을 비집고 들어가 앉아 보세요'안내문이 있다. 비닐 특유의 끈
현장미술성이 돋보인다.
적거리는 재질감에 폐쇄적인 공간에서 오는 묘한 느낌은 설명이 어렵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갑내기 부부 작가 양석윤.주인숙 부부는 '양주방'이란 이름으로 함께 작업한다. 이들이 내놓은 작품은 '사이버 작업실'로 컴퓨
그 옆으로는 지난해 여름 청주에서 점거 아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던 김기현의 설치작품 '대안 아틀리에"무단 점거"'가 있다. 지난해 경험
터 마우스를 클릭하면 두 사람의 작업실 공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명상을 위한 텅 빈 공간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배윤호씨, 자궁처럼
을 토대로 '화사했다- 접했다-동의했다-설득과 협박-나를 외부에서 보기'로 나눠 점거 프로젝트의 단계를 은유적으로 담았다.
내밀한 공간을 지은 이상림씨, 프랑스 파리에서 작가들이 점거해 작업실로 쓰고 있는 '스콰트'현장을 보여주는 김현숙씨 등 작가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
전시실 한 가운데는 야영장에서나 볼 수 있는 텐트가 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활동 후 최근 귀국한 김윤환씨의 작업실을 옮겨왔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이 실감나는 현장이다.
요즘 유행하는 휴대형 아틀리에(Personal Mobile Atelief 이하 PMA)를 상징한다. PMA는 휴대성, 유연성, 자율성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건축되었다. PMA
매주 수~금요일 오후 4시에 전시장에서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져 작업실에 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다. 2월 25일 서울 원서동 공간 소극장에서 '한국의
는 거리와 공원, 도심과 농춘뿐 아니라 카페, 전시장, 공공건물 등의 실내장소에도 머물면서 전시와 창작을 병행하며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다.
작업실 현황 연구와 대안모색'을 주제로 한 심포지움도 열린다.
이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하 전시실에 붙여져 있는 박불똥씨의 작품이다. 그는 그는 20여년의 작가생활 기간에 작업실을 짓고 옮기고, 다시 짓 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경험해온 작업실과 작가, 그리고 작업의 관계에 대한 소회를 각종 서류와 원고를 벽에 붙여 보여줌으로써 설명한다. 이밖에도 유근택씨의 '어쩔 수 없는 난제들', 드라마고의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 백기영의 '구석', 배윤호의 '흐르는 몸'등 젊은 작가들이 생각하는
예술가들은 작업실도 예술이네
작업실에 대한 다각도의 담론을 그려내고 있다.
2004.1.16, 한겨레,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이 전시를 즐겁게 느끼려면 갤러리 관계자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같다. 그냥 사전 지식없이 보게 되면 골판지가 있고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소도시의 풍광
미술가의 작업실은 작가만의 고독한 창작공간으로 받들어지는 게 보통이나 요즘 작가들 속셈은 다소 달라졌다. 미술유행을 종잡기 어렵고, 세상 흐름도
을 그대로 찍어낸 사진이 있는가하면 부동산매매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서류들이 붙여져있고 설치된 비디오로는 알 수 없는 사람의 인터뷰가 끊임없이
격변하는 마당에 작업실도 작품이자 소통공간으로 변해야 한다며 희한한 주문을 거는 경우가 많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작업실
돌아가는 것들이 낯설기만 하기 때문이다. 작가 의도와 문화적 배경을 조금이나마 알게되면 전시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 한편 때로는 오후4시 작가 한
보고서'전(2월25일까지)에 가면 작가들이 작업실에 선고하듯 새겨놓은 별의별 주문들의 요지경을 작업으로 보게 된다. 스포츠신문 이미지, 장난감 프라
두명씩과의 대화시간도 갖는다.
모델로 뒤발한 작업실(사사), 수시로 설치가 가능한 텐트형 이동작업실(김윤환), 빈집에 다짜고짜 들어가 만든 스 작업실(김현숙, 김기현), 시골 폐교에서 현지 아이들의 미술놀이공간으로 개방되는 작업실(박찬국) 등 우리 통념과는 다른 작업공간, 혹은 해석들이 있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등 시각 을 다루는 예술가들이 자신 혹은 남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삼은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이다. 한평도 안 되는 작은 나무바닥 방에서 8달 동안
아틀리에는 소통과 만남의 공간
뒹굴며 글씨를 적거나 자거나 먹거나 하는 백기영씨의 작업실 행위기록 사진, 자신의 독일 작업실 공간에 숨은 모든 이야기와 역사를 사이버공간에 고스
2004.1.13, 세계일보, 편완식 차장
란히 재현한 작가부부 양석윤 주인숙씨의 작업에 숨은 절실함은 곧 모두가 소망하는 열린 이야기의 욕망이다. 작가 21명이 참여했다. 2월19일까지 매주
'내 안에 살고 있는 천사가/ 하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하늘/ 푸른 하늘/ 문득 주어든 깃털 하나/ 벽에 걸고 행복해 하는/ 여기는 나의 아뜰리에.' 작
수~금요일 오후 4시 출품작가와의 대화가, 2월25일 서울 원서동 공간그룹 소극장에서 작업실 주제로 심포지움도 마련된다.
가 노순석의 작업실 메모다. 오는 2월 25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작업실 보고서'전은 작가들의 창작 공간을 들여다보는 자리다. 작업실 얘기를 통해 자연스럽 게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예술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예술가의 고독한 창작혼을 불태우는 독립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 나
예술의 탄생을 보았는가…'작업실 보고서'전
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기회다.
2004.1.19,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angelhuh@donga.com)
김윤환은 PMA(개인 휴대용 아틀리에)를 보여준다.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공기주입형 비닐듀브로 돼 있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활
사비나 미술관, 유근택 작 '어쩔 수 없는 난제들' 예술가의 창작 산실이자 생활공간인 작업실을 코드로 한 이색전시회가 열린다. 2월25일까지 서울 사비
동에 대응하여 현장작업 등 이동성을 반영한 것이다.
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작업실 보고서' 전.
기존 아틀리에에 대한 또 다른 대안으로 김현숙은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스콰트'를 제시한다. 스콰트는 건물 불법점유를 의미한다. 스콰트 아티스트들은
작업공간과 연관된 예술가들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전시회.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영상 설치작가들이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다룬 작품들을 보
오랜 시간 비어 있는 건물들을 점거해 기존의 상업화랑이나 미술관에 반기를 들며 자율적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준다. 김기현 김윤환 김현숙 드라마고 박불똥 유근택 이상림씨 등 2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창의성이 번득이는 다양한 아틀리에가 등장한다.
인천 지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 있는 드라마고는 사진이 붙여진 벽돌 모양의 상자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만들었다. 그
유근택씨는 장난감이 정신없이 어질러진 아파트 거실을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표현했다. 작업 공간이자 동시에 생활공간, 아이의 놀이공간까지 감당해야
는 폐쇄된 아틀리에보다는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현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에는 현장이 재구성돼 있다. 허름한 옷차림의 꽃파는 아줌마, 부평
하는 여성화가인 아내의 작업실을 화면에 담아냈다. 김윤환씨는 공기 주입형 비닐로 만들어 설치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 휴대용 아틀리에를, 김현숙
삼거리 전철역에 배회하는 정신지체 소년, 버려진 인형, 복개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은 개천 위를 나는 갈매기, 빛 바랜 달력의 숫자들이 등장한다.
씨는 오랜 시간 방치된 공공건물 안에 만든 유럽식 '스3' 작업실을 찍은 다큐 비디오를 상영한다.
유근택의 '어쩔 수 없는 난제들'은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장난감이 정신없이 어지러져 있는 아파트 거실을 보여준다. 작업공간이자 동시에 일상공간, 아 이의 놀이공간을 감당해야 하는 자신의 아내인 여성 화가를 화면에 담아냈다. 공간그룹 대표이사로 활동 중인 이상림의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 공간)'는 골판지와 비닐 튜브의 재질감을 살려 생명성의 소통 공간인 자궁에 빗
예술가의 작업실은 어떤 모습?
대어 작업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2004.1.26, 매일경제, 이지형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간혹 관공서 건물이 이사를 가거나 하는 이유로 빌 때가 있다. 예술가들은 틈을 두지 않고 그 건물을 접수한다. 그리 고 빈 공간을 자신들 작업실로 쓴다. 무단 점거. 파리 아티스트들은 공공 건물은 당연히 무단 점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2002년에는 아예 그렇게 점거한 공공 건물 28곳을 근거지로 대규모 전시회가 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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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김기현 작가는 지난해 여름 청주에서 빈 동 사무소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접수`를 시도했다. 물론 작업실로
Peik Ki-young's documentary series of 18 photographs, "Reading Books, Thinking, Eating and Playing while Making Work in a corner for Eight
쓰기 위해서다. 그러나 공권력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다 끝내 공공건물 무단 점거 를 포기해야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김 작가의 색다른 시도를 서
Month"(1998-1999), reveals that not all artists need a spacious loft to produce in teresting art. A corner that might ordinarily be served for a dunce
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작업실 보고서`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월25일까지 계속되는 전시. 김 작가의 공공건물 무단 점거 프로젝트 외에도 작업실을
or a misbehaving kindergartner's time-out session trasforms into Peik's private space for contemplation. He sits on a small wooden platform in the
소재 또는 주제로 한 작가들의 다양한 창작을 볼 수 있다.
corner of a room, doing exactly what the title says, occasionally taking enigmatic notes on the wall. The difficulty of discerning whether he's
전시에 참여한 작가 20명 중에는 화가도 있고 조각가도 있고 사진가 영상작가 설치미술가도 있다.
pretending to read the books or actually taking notes on the wall adds to the playfulness of his peice. We see his work in progress on his project,
한생곤 작가는 버스를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전국 `현장`을 돌 아다니며 작업을 한다. 전시장에는 그가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버스의 사
and if it even exists somewhere beyond the photographs is uncertain.
진 이 등장하고, 버스에 부과된 과태료 딱지도 나와 있다. 화가의 작업실에 붙은 `과태료 부과 대상차` 딱지?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에 속한 작가
The artists' studio is a protean creature, at times occupying abandoned buildings. Despite all its multiple manifestations, it's still hard to tell xactly
드라마고는 "인천 전역이 작업 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번듯한 작업실은 사치일 뿐이다. 그는 묻는다. "고독한 작업자로 자기 아틀리에에서
where, when and how the artwork gets made inside. Perhaps the artists at this show have left the best corners of their studios unexposed to the
고귀한 작품을 꿈꾸는 것이 가능 한가 또는 바람직한가?" 그는 지하철역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 모습을, 붉은 내 복을 입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
prying eyes of viewers. For the atelier still remains a place full of mistery, and certainly leaves more room for the imagination than the dull environs of
는 할머니를 영상에 담는다. 그에게 멋 드러진 작업실 같은 것은 없다.
a plastic cubicle.
전시장 구석에는 희한한 사진 연작이 등장한다. 백기영 작가의 `구석`이다. 그는 자기 작업실 구석에 나무판을 하나 깔아 놓고 8개월 동안 책 읽고, 생각하
"Atelier Report" runs until Feb. 25. Savina Museum is near Anguk Station, subway Line No, 3, Exit 1, next to the Anguk post office.
고, 먹고, 놀고, 작업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생활하는 구석의 벽은 낙서와 글씨로 덮인다. 예술과 삶에 관한 낙서이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고민거리를 적은 글들이다. 그는 그 좁은 공간에서 사유하고 예술을 창작했다. 작업실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됐다.
그들의 아지트를 엿보다
박불똥 작가는 작업실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전시장 벽면에 작업실 건축 도면을 등장시켰고, 건축과 관련된 각종 증빙서류들을 붙여 놓았다. 그 뿐이
2004년 2월호, 월간인테리어
다. 그의 단순한 작업은 예술을 창조한다는 고귀한 의미에서 작업실 신화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작업실은 그저 복잡한 행정절차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신비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예술가의 작업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건물일 뿐 이다.
1월 17일 개막하여 2월 25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작업실 보고서 Atelier Report'전은 예술가의 '작업실'을 테마로, 관람객이 작가
유근택 작가는 `어쩔 수 없는 난제들`이란 수묵 작품을 내놨다. 아파트 거실. 그 곳은 아이들 장난감과 학용품들로 난장판이다. 그리고 마루 한 쪽의 방은
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아울러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시이다.
역시 화가인 유작가 아내의 작업실이다. 유 작가는 집과 별도로 어엿한 작업 실을 갖고 있지만 아내는 난장판인 아파트의 한 쪽 방이 작업실이다.
그간 예술가의 독립공간으로만 인식되었던 작업실이 소통과 만남의 열린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이번 전시는 현 작업실 현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실장은 "작업실은 이제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고 했다. 예술가가 고독한 창작혼을 불태우는 독립 공간을 넘어 예
바탕으로 '휴대이동식 작업실'이나 '점거아뜰리에'와 같은 대안적 작업실의 형태를 제시하기도 한다.
술의 사회적 위치를 밝혀 줄 수 있는 `작업실의 사회학`을 생각해 보자는 게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의도다. 2월 25일까지.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기현 외 20인의 작가들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영상설치작가 등으로 구성된 시각예술분야의 예술가들로, 3층 규모의 전 시장을 작업실에 대한 회화 및 사진, 영상, 설치작품들로 채워나가고 있다. 김윤환이 제안한 '개인휴대용아뜰리에 PMA(Personal Mobile Atelier)'는 시공간의 제약없이 손쉽게 창작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아뜰리에로, 점차 늘어
Working man's misery is bohemian artist's joy
가는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활동에 대응한 유대성, 유연성, 자율성의 개념을 담고 있다. 이밖에 이상림의 설치작업 '자궁공간(Womb Space)'은 생명성의
2004.1.29, 코리아헤럴드, 문혜연 기자(imoon@heraldm.com)
소통공간인 자궁에 빗댄 작업실 공간을 골판지와 비닐튜브의 재질감을 이용하여 형상화하였으며, 양주방의 '사이버 작업실'에서는 3D작업으로 이루어
So a decor in varying shade of gray, the occasional potted plant and some Dilvert cartoons is about as wild as your office cubicle gets. Imagine if
진 인터랙티브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마우스 클릭을 통해 정교하고 기발하게 꾸며진 작어실 공간을 탐색할 수 있다.
you could labor away in the comfort of a freewheeling, plush vehicle or in an apartment with enough space for the Bolshoi Circus. While they may not have steady paychecks, artists definitely seem to have more fun working in their studios, as "Atelier Report," an exhibit on artists' workplaces at Savina Museum shows.
작업실 보고서 Atelier Report전
Long a mysterious workshop the picture of a finished product hanging in the gallery, the artist's studio has becomeincreasingly visible to viewers.
2004년 2월호, 월간소프트, 김승문 기자
Damien Hirst's 2001 installation of an artist's workplace, cigarette butts and all, infamously got swept out with the trash by an unsuspecting janitor.
사비나미술관에서는 2월 25일까지 겨울기획전으로 <작업실 보고서 Atelier Report>전을 준비한다. 이번 기획전은 20인의 참여작가가 다종다양한 작업
Luckily (at least for the Savina Museum's cleaning staff),none of the artists here have gone so far as to trasplant their studio into the museum.
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삶의 공간이자 예술행위의 장소인 작업실을 통해 예술 작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화가, 조
Instead, 20 artists and several collaborators have come up with ingenious vsions of redefining the notion of the artist's rea; and imaginary
각가, 건축가, 사진가, 영상설치작가 등 시각예술분야 작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한 회화 및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이 출품되기 때문에 예술가 혼
workspace.
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의 독립적인 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이다. 이번 전시회는 그 대안을 찾아 대화를 시도
Photographs, movies, installations and paintings fill the museum in a haphazard atmosphere. A transitory quality seems to define many artists'
하는 '움직이는 전시'라 할 만하다.
interpretations of the studio, such as Kim hyun-sook's "Squats-The Art and Life Laboratory," a documentary and installation piece of Paris's squats, or empty, dilapidated multi-storied buildings illegally occupued by artists, Three television monitors and photographs show the artists' ramshac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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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s throughout the districts of Paris, filles with graffiti, debris and artwork. There's a bohemian chic to these dreamers, where their studios
이제는 작업실을 말한다. 소통과 만남을 이어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
represent more a way of life than a simple workplace.
2004년 2월호, 시사포토뉴스, 조문주 기자
Mobility is another vision of redefining the studio. In Kim Youn-hoan's "PMA" or Personal Mobile Atelier, broke artists who can't afford the rent can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해내는 창작의 산실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move around in a little space-age tent on wheels to take in the sights and sounds of the city. Although the green and purple atelier would give
돌아봄으로써 ,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는 작업실 공간의 의미까지 재해석 할 수 있다. 삶과 예술
artists plenty of sensory experience to work with, the tiny carrier doesn't leave much room for producing actual art. It's prebably intended for a
의 현장을 살펴보는 관람객들에게 있어 작업실은 미지와 신비의 공간이 될 것이다.
conceptual artist.
작업실 보고서는 작업실에 관해 다각도의 담론 생산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작업실은 이제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의 고독한 창
In more stationary studios, viewers can glimpse artists' creative laboratories and see the works in their embryonic stages. Park Hong-soon's
작혼을 불태우는 독립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을 생각해내, 예술가의 삶을 담조하는 '작업실 기본권'을 위해 현황을
beautiful photographs of sculptor Ryu Ihn's studio shows a space infused with a warm, dreamy light. Ryu's work-in-progress is a green monster
점검하고 대안을 찾고 있다.
with strange tentacles, which looks even more enchanting under Park's lens.
김기현은 <대안 아뜰리에 "무단 점거">란 작품을 통해서 도시내의 작업장 절대부족 해소의 절실정을 드러냈다. 작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필연적 창
As an artist who works on collaborative projects, SaSa's work in this show features the photographer Yoon Jeong-mee. SaSa has places Yoon
작의 공간이 동시에 삶의 공간으로의 동시적 역할을 한다. 작가는 공공의 예술 취미를 충족시켜 대중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써의 예술활동은 당연
amidst piles of beloved posters, trinkets and books in the photograph of his studio, "Things that Make My Life Worth Living." It's a sharp and
히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의 건물은 무단 점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궁핍한 이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영혼
touching photograph suggesting that other artists are as much a part of the creative process as the finished work of art.
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물론 모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점거'라는 형식을 통하여 그들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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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표명한다. 그들은 필요한 건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달고 건물을 점거하여 작가들이 집단 창작과 공동 창작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25일까지 작가 작업실을 재현한 '작업실 보고서(Atelier Report)'라는 겨울기획전을 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이색적으로 표현한 이
다.
번 전시회에 디지털 프린팅도 그 표현 기법 중에 하나로 사용했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영상설치작가 등 시각 예술 분야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소재로
김윤환의 PMA(Personal Mobile Atelier)는 휴대성, 유연성, 자율성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건축되었다. 작업실을 들고 다닌다. 고정되고 무거운 작업실에
회화와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을 출품했다.
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가볍게 이동하면서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창작환경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기본속성인 자유로움, 결국 그 자유로움은
방명주 '퍼즐 puzzle 홍지연' '퍼즐 puzzle 노석미', 박홍순 '구본주 작업실' '류인 작업실', 배윤호 '흐르는 몸' 등 디지털 프린트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드라
예술의 내적 자율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많은 그림들과 조각들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 것인지. 혹시 자신의 작업실을 개인박물관처럼 꾸며 놓지는
마고는 현수막에 출력한 디지털 포토 몽타주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않았을지. 행여나 비싸다는 이유로 아뜰리에가 외곽도시로 나가야만 하는건 아닌지 이번전시를 통해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인천 지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 있는 드라마고의 현수막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꽃을 파는 아줌마, 부평삼거리, 전철역을
김현숙의 영상설치작업 <예술과 삶의 실험실, 스콰앗>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콰앗은 불법건물점유를 말한다. 비어있는 집, 거주지가 없는 사람들이 들
배회하는 정신지체 소년, 버려진 인형, 개천위를 나는 갈매기 등이 등장한다. 그는 "현수막은 가격이 저렴하고 실물 느낌, 실제 공간과 같은 표현을 하는
어가서 살기도 하는데, 불법으로 건물을 점유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김현숙은 9개의 큐브형 모니터를 설치, 그 중 며개의 모니터에서 프랑스에서 활동 중
데 크기가 적당해서 사용했다."고 말했다. 가로 3m, 세로 3m 정도 크기인 이번 자품은 각각 다른 사람이 촬영한 이미지들을 드라마고가 포토숍으로 편집
인 스콰앗 예술가들의 다큐 비디오를 상영한다. 그리고 폴로라이드 사진으로 찍은 100여장의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벽면에 부착. 설치되어 있다.
했다. 출력은 인천 신승광고에서 OJ-62를 이용해 작업했다. 출력소 관계자는 "현수막 작업은 발색도가 중요한데 OJ-62는 색감이 좋아서 사용했다."고
이 사진 작업은 김현숙이 만나는 작가들에게 "당신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후, 사진을 찍고 작가 자신이 그 사진 위에
밝혔다.
질문에 대한 의견을 적은 예술적 대화와 소통의 실험작업이다.
직접 프린터 구입해 작업하는 작가도 있어
단순한 사진 작업이 아닌 사진과 텍스트가 함께 하는 작업으로써, 김현숙과 작가들간에 "아뜰리에"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 기록이며 하나의 완결된 작
방명주 작가는 이번 작품을 데스크톱 프린터인 데스크젯(deskjet) 5652로 프린트했다. 사용한 소재는 엡손 장기 보존 매트지(Archival Matter Paper)이고
품으로써 '전시'가 아닌 '만들어질 어떤 것'을 향해 가고 있는 예술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포토숍을 사용했다. 평소 디지털 카메라 촬영을 많이 한다며 "프린터를 이용하는 것이 기존 방법과는 다른 재미가 있어 직접 프린
작업실은 생산의 장이고 최소화하는 과정이다.
터를 구입해서 작업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품 전반적인 컨셉트와 사이즈가 적절하게 어울려 새롭고 재밌게 표현 가능한 디지털 프린팅 작업에 만족
절제시키고 비어있는 느낌.
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작품활동을 하는데 '디지털 프린팅'은 필연적인 수단이 되지 않을까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 다향한 디지털 프린팅 적용과 확산
떠돌아다니는 공간.
을 기대해 본다.
단순히 건물접지가 아니다.
박홍순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디지털 프린팅 기법을 이용한 작업이 필연적이었다."고 말했다. 작고한 작가의 사진과 작업실 모습을 합성해 제작했기
도시에서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때문이다. 상충 개념으로 생각했던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교차점에 있는 이번 작품 제작은 작가에게 "디지털 프린팅 작업을 시작하는 출발선상에 있는 의
"작업실보다 중요한 건 작업의지야. 진정한 작가라면 도처가 작업실이지." 라고 말하는 박불똥 작가는 20여 년의 작가생활 기간에 작업실을 짓고, 옮기
미있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고, 다시 짓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경험해온 작업실과 작가, 작업의 관계에 대한 소화를 작업실 건축도면, 사진, 메모지 등의 오브제를 통해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에는 매우 다양한 관람객들이 다녀갔다고 미술관 관계자는 밝혔다. '작업실 보고서'展을 찾은 사람들은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작가들 작
작가와 예술만을 중요시 여기던 우리의 시각이 작가의 삶과 일상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이번 기획전은 1월 7일부터 2월 25일까지 사비나미술관 전관에서
업실 풍경을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만나 볼 수 있어 새롭고 좋다."며 "흔히 보기 어려운 내용인데다 작업 환경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결과물로만
열리며, 작가별 해당일 오후 4시에 가면 작가와의 대화에도 참여할 수 있다.
봤을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미지와 신비 속 공간인 작업실 현장을 간접체험 할 수 있고 공간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전시회였다.
<작업실 리포트>은밀한 공간의 노출 2004.2.11, 세븐데이즈, 박환희 화가
닫힘에서 열림으로 혹은 거꾸로
김현숙의 폴라로이드에는 작가의 작업공간에 관해 한마디씩 적어놓았다.
2004년 3월호, 월간포토넷
"교환하는 장소, 하라다이스, 영혼이 지나가는 공간, 스레기 재활용 공간, 비밀을 갖는 곳, 자유, 노는 시간, 즐거움, 감정, 텅 빈 공간, 부질서의 공간, 살아
1.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나도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앞마당이 넓고 앞마당 끝에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언덕 위에 나의 작업실은 있다(나
있는 공간..."
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게 작업실은 연구실이다.) 강의가 있거나 특별한 사람을 만날일이 아니면 서울로
당신은 작업실을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작업실은 작품을 생산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예술가의 생각과 삶을 보여주는 창작의 공간이다. 사비나미
의 행보가 없는 나는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와서 곧장 그 작업실로 올라간다. 아이들이 오후에 귀가하지 않고 아내를 따라서 서
술과의 겨울기획전 <작업실 리포트>에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영상설치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스무명의 작가들의 작업실 풍경을 통해 우리
울로 가는 날에는 하루종일 그 곳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물론 그곳에서 내가 졸 하는 일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러나 자주 나는 주변의 고적
는 작가의 삶이 배어 있는 작업현장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함을 문득 발겨하고 몽상에 빠진다. 그럴때 나의 상상력은 흔히 공간 상상력과 접속하고 기억 안에 잠재되어 있던 몇 개의 공간들이(나의 공간 상상력에
백기영의 '구석'. 작가는 작은 공간을 정해 8개월 동안 책 읽고, 생각하고, 먹고, 놀며 작업하는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 공간을 쓰는 사람이 공간에
대한 아키타입과 연결되는 특별한 공간. 장소들)줄줄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억의 회로를 따라서 제일 먼저 도착하는 건 나의 유년안에 존재하는 몇 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예술가에게 작업실이란 건축적인 의미 이상의 공간임을 느끼게 된다. 오철헌은 각각의 작업공간에 몸담고 있
의 공간이다.
는 4명의 작가를 사진에 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공간에 편히 자리잡고 있다. 인문이 아닌 공간 분위기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
2.1 나의 유년 안에는 ㄷ자형 한옥이 서 있고 그 오래 된 한옥 안에는 세 개의 공간이 있다. 기억할 때마다 늘 일련의 순서를 지키며 되돌아 오는 그 공간
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반대로 노순석의 작업은 실질적인 공간이 아닌,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창작과
들 중에 제일 앞장을 서는 건 작은 별채의 앞마당이다. 이 공간은 분명 별채에 속한 사유공간이었지만 문이 없고 길가로 터져 있어서 골목 안 아이들의 공
정이 스크랩된 기록을 통해 읽힌다. 이렇듯 작업실은 물리적 공간임과 동시에 정신적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의 생각들이 작업으로 표현되기 전까지의 과
유공간이기도 했다. 악쓰며 놀던 골목 안 아이들도 어스름이 앉을 즈음에는 지쳐서 이 공간으로 모여 앉았다. 그러면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모두
정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들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읽은 먼 전설, 삼촌을 따라가 구경했던 서부영화, 은밀히 훔쳐 보았던 어른들의 이상한 세상...저녁 어스름은 점점 짙어 가는
한생곤의 노란 버스는 움직이는 작업실이다. 작가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이동하는 작업실에서 작가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적응하며 작업한다 이런 의
데 아이들의 두 눈은 점점 빛나곤 했었다. 그리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하나씩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혼자 남았다. 아이들이 다 돌아
미로 보면 작가의 작업실은 더 이상 개인의 공간이 아니다. 따라서 작업실은 사회로도 이어진다. 김기현의 '점거 아틀리에에 관한 명상'이 그 예. 김기현
가고 난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빈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건 쓸쓸함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은 지난해 청주에서 빈 공공건물을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하는 문제로 지역여론을 들끓게 하여 점거 직전까지 갔다가 한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
나는 혼자 남은 그 공간 안에서 행복했다.
과거에 작가의 작업실은 예술가 자신의 신비스럽고 은밀한, 개인공간이었다. <작업실 리포트>는 이 사적인 공간에 대중을 초대해 그공간이 주체에 의해
2.2 두 번째 공간은 대문과 중문 사이에 있었던 작은 사랑방이다. 친척이나 모르는 손님이 찾아오면 하루밤 묵어가던 그 방은 거의 비어 있었다. 나중에
재해석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 전시는 작업실의 대안을 찾고 작업실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며, 작업실의 변화를 의도하는 전시다. 참여 작가의 작
가난한 대학생이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곳에 머물 때까지(그때는 중학교도 입시를 거쳐야 했었다.) 그곳은 아 혼자만의 놀이방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업실을 비롯해 작업실 전반의 문제를 토론하고 또 그 내용을 담은 단행본도 출판할 예정, 그래서 <작업실 리포트>는 '움직이는 전시'기도 하다.
오래 된 책들을 찢어서 종이딱지를 접거나 갖가지 구슬들을 정리하다가 심심해지면 동화책을 읽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가 그 방에서 더 열중했던 건 책 읽기가 아니라 엿듣기였다. 사랑방은 길가에 면해 있었고 작은 들창으로는 거리의 소음이 쉬지 않고 흘러들어 왔다. 모르는 목소리들이 서로 엇갈리 면서 이어지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그 거리의 소음은 늘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 방 안에서 동화책보다 더 행복했던 건 그 거리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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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작업실 '눈'으로 체험 예술가들 20명, '작업실 보고서'展 열어
기한 소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그 어지러운 소름의 거리로부터 내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격리되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2004년 3월호, 월간빅프린트, 유경미 기자( unnigo@big-print.co.kr)
2.3 마지막 공간은 내가 '뒷마루 공간'이라고 부르는 이름 없는 공간이다. ㄷ자의 한옥은 또 하나의 ㄷ자 담으로 포위되어 있었고 그 두 ㄷ자 사이에는 나
김기현, 노순석, 드라마고, 박불똥, 방명주, 박홍순, 배윤호, 백기영, 양주방, 유근택 등 예술가들 20명이 모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1월 7일부터 2월
무판을 깔아놓은 마루공간이 있었다. 오래 된 가구나 잡동사니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던 그 집과 담 사이의 공간은 어린 내가 누워서 겨우 옆으로 한번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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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수 있을 만큼 좁았다. 그곳은 늘 어둡고 서늘했다. 나는 자주, 특히 아무도 없어 집 안이 고요할 때면(지금도 주변이 적막해지면 나는 어디론가 이동하
권'을 지키려는 아티스트들의 대사회적 저항으로도 읽힌다. 그리고 기술문명 발달에 의해 새롭게 창출되는 비물질적 가상 공간에 아방가르드적으로 대
고 싶은 공간에의 유혹을 받는다.), 그 뒷마루 공간으로 잠입해서 천정을 보고 누워있었다.
응하면서 대안작업실을 구축하려는 공간실험정신도 발견된다. 그러나 읽히는 코드는 다양해도 이들 작업실들은 다같이 이 시대의 아티스트들에게 작업
나는 그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늘하고 어두운 공간의 알 수 없는 대기를 숨쉬면서 반듯이 누워있기만 했다. 그리고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실은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라는 사실, "예술가의 고독한 창작혼을 불태우는 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이라
나는 그 곳에서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졌고 밤이 깊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아서 온 동네를 헤매던 어머니는 경찰서에 실종
는 사실(‘작업실 리포트’팜플렛 안에서)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작업실은 이제 광장에서 밀실로의 공간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역으로 밀실에서
신고를 하고 집으로 와서야 나를 찾아냈다(어머니가 나를 찾아낸 것이 아니다. 깜빡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 온 나를 어머니가 발견했을 뿐이다.) 이 놈아,
광장으로 공간이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의 숨기에의 강박과 열정은 이 시대의 아티스트들의 작업실 안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적어도
그 관 속 같은 데는 뭐하려 기어 들어간 거야...어머니는 울면서 매질을 하다가(나는 울었다) 이번에는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분
내게는 그렇지 않다.
명히 그 안을 찾아보았는데 왜 널 보지 못했을까? 나는 더 크게 소리네어 울기 시작했다. 그건 매질이 아파서도 어머니에게 미안해섣 아니었다. 어쩐지
6.2 노순석에게 작업실은 사라진 '내 안의 천사'가 남겨놓은 깃털 하나가 존재하는 낭만적이지만 고립된 공간이다. 8개월 동안 책 읽고 생각하고 먹고 놀
나는 결국 들켜 버린 것만 같았고 그렇게 들켜버리고 만 것이 한없이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며 작업하는 백기영의 작업실은 광장이 아니가 '코너'이며 배윤호의 작업실은 이 미니멀코너의 실존적 공간인 자신의 '신체'다. 사사의 작업실은 그의 일
2.4 때로 유년의 공간들과 만날 때 내가 주목하는 건 그 공간들의 이동이다. 별채 앞마당(열린 공간)에서 사랑방(사이 공간)으로 그리고 뒷마루 공간(닫힌
상을 살아있게 만드는 영화배우와 만화 그리고 게임상자들로 빼곡하지만 그 한가운데 그의 정신과 의사로 상징되는 숨은 공간이 있다. 유근택은 아파트
공간)으로 - 나는 기억 속에서 점점 더 깊은 폐쇄공간으로 이동한다. 그 공간이동은 뿌리 깊은 나의 '숨기에의 강박'을 말해준다. 하지만 나의 숨기에의 강
거실 안의 작업실에서 불연 듯 '자연적 힘의 논리'가 살아있는 '낯선 공간'을 목격하고 오철헌의 작업실 사진 안에서 아티스트 이석주가 작업을 멈추고 무
박은 그 뒷마루의 폐쇄공간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서 실종되었고 그건 내가 또 하나의 닫힌 공간으로 이동해서 숨어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연히 떠나가 있는 곳도 이 낯선 공간을 연상시킨다. 학교라는 제도권의 작업실이 애희에게 위반의 숨은 욕망이 발견되는 공간인 것처럼 배준성에게는 누
까? 어머니도 나를 찾아 낼 수 없었던 그 공간은 어디였을까?
두모델에게 오히려 옷을 입히고자 하는 은폐의 욕망이 발견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상림이 구상하는 대안작업실은 어머니의 캄캄한 자궁이 모델이고
2.5 이후 내가 실종 되었던 뒷마루 공간은 나의 공간 판타지의 원형이 되었다.나이들어 난장의 세상에서 생과 대결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배우게 되고
박불똥은 심지어 아직 지어지지 않은 미래의 작업실을 '무덤'에 은유하기도 한다. 이들의 작업실은 열린 공간이 아니다. 이들의 작업실은 오히려 닫힌 공
그 작업의 공간을 갖고 싶어 했을 때 그 작업실의 모델은 언제나 그 뒷마루 공간이었다. 작업은 내게 '숨기'였고 작업실은 '숨을 수 있는 장소'였다면 허무
간을 지향한다. 그리고 닫힌 공간 안에는 숨기와 닫힘에의 오래된 욕망이 여전히 간직되어 있다.
일까? 그러나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는 작업이 숨기고 숨기가 열정이라는 걸 가르쳐 준 두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6.3 <작업실 리포트>전을 보는 나의 즐거움은 '열림'이라는 시대적 경향을 재차 확인하는데 있지 않다. 나의 즐거움은 오히려 그 열림 속에서 '닫힘'의 흔
3. M.프루스트의 작업실은 유명하다. 서른 다섯이 되던 해 그는 스노비즘(snobbism: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 또는 출신이나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
적을 채취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 시대 아티스트들의 열린 작업실 안에서 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숨기에의 강박과 열정을 발견한다. 그 발
는 일)의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침실 안으로 숨어들었다. 네 벽을 코르크로 도배하고 커튼을 세 겹으로 만들어 세상의 소음과 빛을 차단한 밀폐된 침실은
견은 그런데 즐거우면서도 우울하다.
이후 14년의 남은 생 동안 그의 작업실이 되었다. 그는 자주 자신을 노아로, 자신의 작업실을 노아의 방주로 비유했다. 하지만 프루스트의 노아는 성경
7. 세상은 개방되고 이 시대의 작업실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 열림 속에는 여전히 숨기와 닫힘에의 욕망이 숨어 있다. 이 욕망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속의 노아가 아니었다. 마침내 대홍수가 지나간 세상에서 비둘기가 풀잎을 물고 돌아왔을때 하나님의 신실한 종 노아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서
하는 것일까? 그것은 열림이라는 이 시대의 신드롬이 아직은 자유로운 작업을 허용하는 열림이 아니라는 사실인지 모른다. 열림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
기뻐한다.
들에 대해 태생적으로 민감한 이 시대 아티스트들의 작업실 리포느는 그래서 열림이 아직은 주장이 아니라 모색의 대상이어야 함을 주지시켜 주는지 모
그러나 프루스트의 노아는 오히려 이렇게 한탄한다: '비둘기가 풀잎을 물고 돌아 왔을때 노아는 한없이 슬펐다. 이제는 행복했던 방주를 떠나 세상으로
른다 . '열린 작업실'에 대한 담론은 아마도 이 열림과 닫힘의 불협화음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방주를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지만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방주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프루스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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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방주로 더 깊이 숨었다. 처음에는 살롱으로 외출도 하고 여름에는 휴가도 떠났지만 말년의 몇 년 동안 프루스트는 자신의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
작업실의 사회학 혹은 작업실 작업
다. 그리고 그 작업실에서 그는 무엇을 했던가. 누구나 알 듯이 그 방주 안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태어났다.
2004년 2월호, 월간미술, 박신의 교수
4. 까르띠에-브레송의 사진 한 장이 있다. 죽기 몇 달 전의 A.자코메티를 찍은 사진이다. 이슬비가 내리는데 그는 지금 정지선을 밟으면서 물젖은 차도를
예술가에게 작업실은 무엇일까. 작업실은 공장과도 같은 곳인가. 물론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라면 작업실과 공장이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건너가는 중이다. 사진 공간울 수직으로 이분하는 굵은 가로수, 오래 된 건물과 넓은 차도를 나누는 수평 분할, 그 수직과 수평의 접점에서 사선으로 그어
그러나 공장처럼 단일한 제품 생산의 의미는 아니다.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 말했을 때, 그것은 창작의 특별한 지위가 갖는 비
지는 차도 위의 정지선, 그리고 걸어가는 자코메티를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음영의 대치-빛과 선의 기하학적 순간을 포착하는 이 사진은 브레송의 대가
생산성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작업의 의미를 현대화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물론 '비지니스'라는 자본주의적 맥락의 현대화를 말하는
성(大 家 性)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결정적 순간'의 미학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건 두가지 사실이다. 하나는 비를 피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기 위해 머리 위에 외투를 뒤집어 쓴 자코메티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그가 찾아가고 있는 장소가 길 건너의 작업실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울 통해 사회주의적 삶을 구현하려 했던 러시아 구성주의자에게 작업실은 공장이고, 가게이며, 사무실이었다. 예술의 창
자코메티의 작업실도 유명하다. 그는 몽빠르나스의 작업실을 40년동안 떠나지 않았다. 한때 초현실주의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그는 곧 자신의 현실로 숨
작행위가 삶에 녹아나고, 삶에서 발견되며,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전환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이렇게 작업실의 의미를 역동적인 개념
어들었다. 그에게 현실은 그의 작업실이었다. 아라공, 브레통, 사르트르, 장 쥬네,,,그의 주변에 친구들은 많았어도 그의 작업실 안으로 초청된 사람들은
으로 바꾼 것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프루스트가 그랬듯 말년에 자코메티는 모든 주변 사람들과 단절하고 자신의 작업실에만 파묻혀 살았다. 그런데 그는 작업실에서 무
예술가의 작업도 노동이라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예술가의 노동은 어떻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또 그 가치는 어떻게 환산될 수 있을까. 예술
엇을 했던가. 그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뼈만 남은 사람들, 고독과 절망의 소실점으로 간ㄹ고 길게 최소한의 공간으로 축소된 사람들...그런데 그 사람들은
가에게도 실업수당이 가능할까. 카를 마르크스에 따르면 예술가의 창작행위는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완성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노동자의 소외된 노
모두가 서 있지 않고 걸어간다. 그의 거의 모든 조상들은 '걸어가는 사람들'l다. 그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허름한 코트를 머리부터 뒤집어 쓰고 길 건
동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노동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회적으로 환원되고, 문화로서 공유되느냐에 있다.
너 작업실을 향해서 비 내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브레송 사진 속의 자코메티 자신과 너무나 유사하다. 사진 속에서 자코메티는 작업실을 향해 가고
그런 점에서라면 예술가의 노동은 다 같지는 않다. 음악인이나 무용인에게 노동의 의미는 미술에 비하면 훨씬 합리적이다. 그들의 연습은 엄밀한 시간으
있다. 그런데 그 작업실 안에서도 자코메티의 사람들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로 계산되고 산정되며, 또 공연시 집단으로 예술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공연활동은 월급으로 지급 가능하다. 프랑스에서 지불한다는 예술인 실업수당
5. 프루스트와 자코메티에게서 내가 발견하는 건 숨기에의 강박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숨기에의 열정'이다. 숨기는 그들에게 작업에의 본능이 되고 작
의 경우 공연예술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술은 기본적으로 개인작업이고, 그 성과물의 사회화 과정 역시 개인적이다. 누가 미술인의 작업
업실은 그들이 도착하고자 하는 실존의 시공간으로(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으로/자코메티는 '공유할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베이스 캠프가 된
을 시간대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
다. 그러나 이 숨기에의 열정은 프루스트보다 자코메티에게서 더 강렬한 것 같다. 그 심도의 차이는 프루스트가 19세기적 인간이었던 반면에 자코메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화가나 조각가라면 그나마 노동가치산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정성스럽게 수공작업을 한 그 결과물이 타블로나 청동조각작품으로
20세기적 인간이라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이 열린 감옥이 될 수록 아티스트들의 숨기에의 열정은 더 가열해진다고 말한 건
주어진다면, 얼마간은 미술시장이 이를 해결해주리라. 그너라 종이 나부랭이나 잡동사니, 무심히 찍은 듯한 사진, 스레가와 고물더미, 일시적인 설치물
아도르노였다. 그렇다면 포스트 모던적 탈경계의 시대, 전 지구적 개방의 시대를 살고 잇는 21세기 아티스트들에게 이 숨기에의 열정은 어떤 식으로 나
을 제시하는 현대미술의 무수한 개념적 작업으로는 과연 노동의 대가를산출 할 수 있겠는가. 분명 현대미술의 모든 작업은 기존노동개념을 변화, 확장시
타나는 걸까?
킬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작업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일상과 작업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6.1 사비나미술관의<작업실 리포트>전에서 20여명의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구성하는 21세기형 작업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실 안에서 프루
그래서 김윤환이 PMA(휴대용 개인작업실)를 들고나온 것이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제작한 움직이는 작업실을 제안함으로써 어디에서나 작업
스트와 자코메티의 작업실에 대한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작업실은 아파트 공간과 겹쳐지고(유근택, 어쩔수 없는 난제들), 교내 작업실로 대치되고
이 이루어진다는 개념을 보여준다. 그래서라도 미술인에게 작업실은 더욱 중요하다. 그 산출하기 힘든 정신노동의 공간은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
(애희, 학교 작업실/ 배준성, 화가의 옷), 바퀴달린 휴대 이동형 작업실이 되고(김윤환, Personal Mobile Atelier), 공공영역을 무단점거하고(김현숙, 김기현,
주에 빈 공공건물을 작가들의 작업실로 사용하고자 일종의 점거사태를 벌인 김기현의 행동이 그래서 나왔다. 김기현에게 작업실은 노동의 공간이며, 그
점거 아뜰리에),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놀이공간이 되고(박찬국, 공공미술 프로젝트), 아예 물질적 공간을 떠나 사이버 공간으로(양주방, 사이버 작업실) 이
것은 근로자의 의미와 다르지 않음을 주장한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점거 아틀리에(squats)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보여준 김현숙 역시 작업실
주하기도 한다. 이들 작업실은 모두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다. 이 열림의 신드롬에는 물론 몇 가지 이유들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우선 일상과
공간의 사회적 의미를 제시하는 경우다. 작업실 기본권 같은 것을 행동주의적 방식으로 보여준 매우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술을 탈 이분화하고 작가와 관객 사이를 탈 경계화하면서 일사의 미학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아티스트들의 포스트 모더니스트적 의도를 확인시
작업실 공간을 넓혀가려는 시도는 많은 작가에게서 엿볼 수 있다. 사이버 공간으로(양주방), 빈 방 혹은 공부방으로(백기영), 밀머리 학교 프로그램을 통
켜 준다. 반면 그것은 역시 포스트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장자본주의적 재영토화의 세력에 의해 점점 협소해지고 위협 당하는 '작업실의 기본
해 공동체 의식을 실천하는 참여공간으로(박찬국), 인천이라는 지역과 도시 공간으로(드라마고), 작가의 삶과 공동체의 경험을 기록한 기억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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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 자신의 실제 작업실 공사로 인해 빚어진 사건을 개념적 사유로 만드는 과정으로(박불똥) 이들은 자신의 작업실 공간을 확대해가는 것이다. 이들
실존은 공간적이다.
이 보여주는 작업실의 공간전, 개념적 확대는 곧 미술인의 창작활동 자체의 사회적 의미를 넓히는 실천적 행동이기도 하다.
2004년 1월호, 공간지, 박성진 기자
한 전시회가 비평적 담론을 쏟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다. 한 전시회가 미술적 제도적 문제를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의미
주말이 되면 화랑가는 분주해진다. 일상에 쫓겨 억눌러 놓았던 문화적 허기가 발기되고, 사람들은 그 욕망의 배출구를 찾아 길섶의 옹색한 전시장이라도
있는 일이다. 한 전시회가 미술의 정책적 배려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한다면, 그것은 썩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 전시회를 볼 일이다.
찾아든다. 인사동이나 사간동, 평창동의 화랑가는 그래서 대중의 응축된 욕구 해소를 위한 집단적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 속에서 대부분의 관람객
작업실 보고서를 통해 미술인이 생각하는 작업의 의미와 작업실의 기능, 그 사회적 맥락과 미학적 가치, 나아가 노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말이다.
은 작품이라는 결과물에만 집착하고, 사로잡힌다. 주변의 내밀한 환경들은 작품이라는 주요 피사체를 위해 아웃포커스된다. 순백의 벽면이 전시장의 필 수 구성요소로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작업실의 현실, 그리고 대안
그렇다면 '전시공간'이란 무엇일까? 백색 벽면에, 적당한 조도로 색상을 살리는 조명들, 혼선없는 관람동선으로 구성된, 예각이나 둔각이 사라진 격자공 간일까? 하지만 모두들 이것만은 아니라고 고갯짓 한다. 오히려 이 모든 요소들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배제된 작가들의 작업실이 작품을 더욱 진실하게
2004년 2월호, 월간아트인컬처, 고충환 미술평론가
이해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라고 답한다. 앞서 말한 조건들은 단지 인간의 행위와 공간 간의 관계를 위한 물리적 기본요소일 따름이다. '만들기(making)'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가의 작품이 아닌 창작공간, 즉 작업실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주제전과는 구별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작가의 작업환
와 '보여주기(showing)'라는 행위를 담는 두 공간에 대한 해석은 그래서 물리적인 측면을 기본으로 삼고, 그 너머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경과 작가가 처해있는 현실을 이슈화 한다는 사회학적 의미와 함께 변화된 작업환경을 반영한 전시다. 그러니까 미학적 대상성을 갖는 오브제의 생산에 맞춰진 전통적인 작품 개념과는 다른, 특정 주체의 문제의식과 행위, 그리고 여기에 수반된 실천 논리
실존과 지각의 공간
를 중시하는 변화된 창작 개념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는 창작공간과 창작환경 그리고 창작개념에 대한 다양한 사색의 흔적이 드러나 있으며,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작업실을 꿈꾼다. 화가는 화실을, 음악가는 녹음실을, 공예가는 공방을... 물리적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사라지는 오늘날
이는 그대로 다양한 형태의 대안공간과 대안 아틀리에를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에도 작가들에게 이런 욕구는 여전하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에게 작업공간에 대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인간 이전에 동물로서 의 영역확보에
먼저 가상공간에 꾸민 사이버 작업실(양석윤, 주인숙)을 보면, 지금까지의 오프라인 상의 작업과 전시 관행에 대한 한 대안으로 힘을 얻고 있는 온라인 상
대한 본능? 현실의 애로사항에서 벗어나 편한 작업환경을 갖고 싶다는 욕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은, '나(我)'라는 실존에
의 작업과 전시 행태를 보여준다. 이는 건축적이고 물리적인 작업실 개념이 갖는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실시간으로 익명
대한 자각이다. 내면적 자아를 탐구하고 그것을 발현해가는 예술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자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작가들은 실존적 공간을 갈구
적 주체와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리고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간이 막사처럼 바람을 주입하여 부풀릴 수 있는 개인용 이동식 아틀리에
하는 것이다. 동물은 생존으로, 인간은 실존으로서 공간과 반응한다.
(김윤환)는 건축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이 아닌 행위자에 의해서 재규정되는 작업실 공간 개념을 반영한다. 장소를 마음대로 옮겨 다닐 수 있는 탈장소성이
설치작업과 구상적인 작업을 주로 하는 한 작가가 산속으로 작업실을 옮겼을 때, 주위 사람들이 "이제 풍경화 그리시겠네요"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노마디즘(유목주의)을 반영하고 있으며, 최근에 전시의 한 관행으로서 자리잡은 오픈 스튜디오(전)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를 말한 사람도, 듣는 작가도 이 말을 결코 농담으로 건넨 것이 아니다. 작가들은 작업실이라는 환경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나가는 것이다.
또한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작가들이 불법으로 점유하여 작업실로 전용한 점거 아틀리에(김현숙, 김기현)는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작업실 개념을 보여주
그리고 이것이 다시 공간에 반영되어 공간과 작업의 물리적인 스케일, 도구, 재료 등에 영향을 미친다. 작업실은 응축되었던 창작욕이 발아되는 제2의 자
며, 도시의 풍경 속에 개입해 들어가서 그 속에 일정한 변화의 계기를 심는 도시공학적인 실천논리가 느껴진다. 이때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개
궁이다.
인과 관(官)이 부닥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타자와의 소통에 맞춰진 예술관 관련한 한 중요한 실천 구실을 제공한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지금
하지만 예술이라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작업실만으로 작가적 정체성을 완전히 얻어내지 못한다. '만들기(making)'와 '보여주기(showing)'라는 것이 동일
까지의 지역을 중심으로 한 폐교를 스튜디오로 활용하는 방안과의 연대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전시에서는 임의적인 구석에 한 평 남짓
선상에 놓인 양극의 행위라고 할 때, 그 정립의 역할은 '보여주기'에 있다. 작가의식의 발현체인 작품을 낯선 공간 속에 들여놓는 행위는 '나(我)'를 바라볼
되는 임의적인 공간을 마련한 다음, 여기에서 책 읽고 생각하고 먹고 놀며 작업하는 사적 전유가 강한 작업실(백기영) 개념도 있다. 이때 작가에 의해서
수 있는 제3의 눈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적 공간 속에서 작품은 작가에게 타자화되고, 작가는 거리를 두고 자신을 지각할 수 있게 된다.
전유되는 공간이 불특정성과 무차별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사적공간과 공적공간, 사적행위와 공적행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런 사적 전유가 강한
전시장이란 대중과 작가와의 소통의 장소이기 이전에, 작가와 작품 사이의 소통을 위한 지각적 공간이다. 전시공간을 통해 작가는 작품 및 대중과 소통
작업실 개념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같은 실천행위를 강조하는 열린 작업실(박찬국) 개념도 있다.
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한다. 즉 거울이 보여주는 자신의 영상을 통해 객체로서 자아를 파악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유근택)이나 창고(사사), 지역사회(드라마고)와 심지어 일상의 삶을 사는 개인의 캐릭터(배윤호)마저 작업실의 한 예로서 제 시된다. 이 가운데 가정을 작업실로 전용한 경우는 상당수의 주부작가들의 당연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한 창고로서의 작업실 개념을 보면 엄밀하
창작과 그 실천의 문제
게는 작업을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는 공간에 가깝다. 이 공간 개념은 특히 자본주의에 연유한 물신주의와 이에 따른 넘쳐나는 상품
2002년 우리는 몇 가지 사회적 이슈로 인해 새로운 공간적 체험을 맛볼 수 있었다. 시청 앞 광장은 그 해 여름 월드컵 열기로 달궈진 사람들의 함성소리
들에 대한 반응, 소비와 소비심리, 그리고 디스플레이에 대한 감수성과 관련이 깊다. 또한 지역사회나 개인의 캐릭터를 작업실로 대상화한 경우는 그 자
로 가득 찼고, 12월에는 여중생사망을 추모하는 애달픈 촛불들이 수놓아졌다. 이곳이 점유하는 사람들의 개체성과 목적, 시대 상황 등과 같은 요소에 의
체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예술과 관련한 실천논리와 행위를 강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해 새롭게 표현되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 창작과 실천의 문제도 바로 그렇다. 예술은 한 작가의 창작과 그에 대한 실천 전반의 과정을 통틀은 말이지, 전시장에 놓여진 그림이나 조각
'개천에서 용 나고 창고에서 예술가 나다'
을 대상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다. 작업실에서 하는 망치질이나, 전시장에서 그림을 걸기 위한 망치질이나 같은 맥락의 과정이다. 단지 두 공간 사이에 놓 인, 개인성이나 사회성과 같은 간극을 어떤 방식으로 좁히는가는 작가의 몫이다. 작가는 작업실이라는 개인의 내밀한 공간에서 벗어나 전시장에 작품을
2004년 1월호, 미술세계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점유해야 하는 의무성과 당위성을 갖는다. 환경을 자기의 목적에 동화시킴으로써 '보여주기'라는 궁극적 행위를 완성시키는 것이
창고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나? 뭘 만들기는 만드는 곳이다. 물론,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도 한다. 엄연히 따져보면 창고는 아니다. 빈집이다. 그들은 빈
다. 비단 설치작가가 아니더라도 전시장 안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작가가 장소와의 의미작용을 통해 동화(同化)되어 작가의 개인적인 차원
집을 접수했다. 사람이 살아야 할 공간에 사람은 살지 않고 빈 집으로 두는 꼴을 그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이 세상엔 무주택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에서 공간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프랑스 파리의 Squat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불법으로 빈 건물을 점유하여 그들만의 아지트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빈민과 도시노동자들에 의
건축가는 그 실천의 물리적 조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이고, 그 기반에 주체와 행위의 다양성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전시공간에서의 건축가의 실패는
해서, 다음엔 부정부주의자, 망명가, 학생, 예술가들에 의해,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새로운 예술 창작 공간으로써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이 불꽃 튀
이런 실천과 재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이클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규정하려 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인사동 화랑가가 그간 나름대로 '보
는 곳이 되었다.
여주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왔다지만, 지금은 만연된 상업주의로 그곳의 소프트웨어는 바이러스에 걸린 듯하고, 하드웨어까지 힘을 잃어가는 모습
그 현장에서 그들과 '지지고 볶으며' 실험을 하고 있는 김현숙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12개의 뮤브형 모니터를 통해 Squat예술가들의 예술
이 그 예이다. 장소와의 의미작용에 빈곤을 느끼는 작가들과 그 부재를 경험하는 대중들이 멀어지고 있다. 이에 장소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한 사간동과
과 삶을 비디오 설치로 보여 줄 것이며,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은 100여장의 아티스트들의 사진을 조형물의 형태로 설치한다. '당신에게 작업실은 어떤
평창동 일대는 차별화된 전시장소로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상실 지하의 한 평 남짓한 공간을 이용한 소격갤러리는 계단도 없어 사다리를 타
의미 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변이 사진에 적혀 있다. 아뜰리에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 기록일고 할 수 있다.
고 내려가야 하는 공간이다. 이곳을 전시공간으로 봐도 될지는 의문이지만, 그것은 그곳을 점유하는 작가의 실천 문제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질 어떤 것'에 대한 재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현숙은 이를 통해 스콰트의 아티스트들 에게 아뜰리에란 어디 놓여있는 공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아뜰리에라는 예술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개념의 상실
Squat은 이제 낡고, 허름하고, 외진 곳의 빈집을 점유하는 '무법행위'기 아니라 새로운 예술실험과 아티스트들이 탄생하는 '아뜰리에'로 거듭나고 있다.
현실의 문법 속에서 작업실과 전시장의 공간적 의미와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관계맺기와 방향에 있어선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작
그들의 치열한 '삶과 예술'이 정체 속에 있는 우리의 '개천'을 소용돌이치게 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업실과 전시장의 관계는 점차 허물어지고, 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일부 개념의 상실이 불러온 또 다른 개념의 가능성에 대중들은 민감하게 반응 한다. 가나아뜰리에, 창동고양 창작스튜디오, 쌈지스튜디오 등과 같은 공동작업실이 새로운 전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부 또한 현재의 빈약한 '작업실'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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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창작스튜디오를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예술가의 개인적 성역으로 인식되던 공간이 열리면서 새로운 공동체가 형
러한 변모의 한 양상이려니와 도시와 작업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눈에 띄고 있다. 작업실의 변동 양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보면, "공간적 개
성되고 있다. 헤이리예술마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념을 벗어난 영역의 확장, 특정 장소에 고정되지 않는 유동성, 점거 작업실의 생산과 소통 기능의 공유" 등이 그것이다.
또한 현대의 유목민적 성향이 이 두 공간에서도 보여진다. 개인휴대형아뜰리에(PMA)가 제안되고 작품들은 순백의 전시공간에서 탈피해 지하철에서도,
우선 주목해 볼 만 한 것이 공간적 개념을 벗어나 작업실의 개념을 작업실 바깥으로 끌고 나가는 현장성(in situ) 개념의 도입니다. 근대적 예술 생산과 소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현대인들의 삶과 사이클을 같이하면서 변이된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공간적 '중심의 상실'이라는 실존에 의문이 제기되는 수준으
통의 모델은 생산의 장소와 소통의 장소를 작업실과 전시장으로 엄격하게 구분해 놓았다. 따라서 작업실은 작가의 내밀한 창작의 산실이라는 근대적 아
로까지 발전되어선 안 된다. 피아제(Piaget)가 말했듯이 구조화된 세계는 인간의 지성을 자유롭게 해주는 반면, 이동성의 세계는 인간을 장소와의 상호작
우라는 미적 감성을 자극하는 작업실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현장성 개념을 도입한 일군의 작가들은 도시 전체를 작업실로 삼아 현장미술의 지향을
용이 결핍된 자기중심적인 단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보임으로써 근대적인 작업실 개념을 뒤집어 놓고 있다. 내밀한 독립공간에서 벗어나 도시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과정으로서의
모던한 이분법적 구분은 차츰 통합이라는 탈모던의 공간으로 변이되어 예술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 '만들기(making)'와 '보여주기
미술을 중요시 하는 새로운 공공미술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찬국이나 드라마고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실을
(showing)'라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장소와 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개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why)? 하이데거의 말처럼 '실존은 공간적(Das
주변 작가들이나 시민들과 공유하는 쪽으로 공간개념을 바꿔놓았다. 이들의 작업은 '모더니즘의 이분법적인 구도와는 다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며, '
Dasein ist raumlich)'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이원화하는 작업실과 전시장의 구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작업실 혹은 작업 개념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
exhibition · atelier report
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인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지역문화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는 프로그램 운용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이러한 예술개념은 문화의
현대 예술의 다양성만큼이나 작가들이 그들의 작업공간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양하다. 지난 2월 25일까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렸던 '작업실 리포트 전'은
생산과 향유의 장을 작업실 개념에 접목하거나 아예 작업실과 전시장의 이분법적인 분화 개념 자체를 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업실이라는 물리적 환경/공간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사고를 조명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설치작가 등 21명의 작가들은
이러한 유형의 작업실 개념은 지역주의 이슈와도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지역주의 이슈는 예술 생산의 폭과 깊이, 쓰임새 등을 철저하게 지역 공
회의 여러 사람들과 문화생산의 장을 열어나가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현지답사, 역사학습, 문화자료, 사회적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
그들의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실의 사회학을 이야기하였다. 작가들은 작업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작업실에 대한 그들의 개념을 바
동체(local community)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고 일방주의적인 세계화 문화전략에 대응하는 주요 이슈로 부각하고 있는 예술 흐름이다. 이들
탕으로 회화, 사진, 영상, 설치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획자의 말대로 작가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의 공간을 재해석하여 작업실을 바
의 작업은 '특정지역의 참여자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문화예술 전문가로 성장한 예술가가 그 지역의 역
로 이야기하자는 것. 창작을 넘어선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려는 변화의 시점에서 우리는 작품이 아닌 작가들의 작업실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사, 지리, 환경, 인물들에 능통한 지역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생활양식을 보다 현실 속에 뿌리내린 사회의 건상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게 할 것이며, 예술을 사회의 정당한 일 구성기재로 확인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작업실 개념을 내밀한 것에서 열린 것 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예술생산의 완제품 생산 공장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의 공공성과 지역주의 이슈를 가지고 현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소통
작업실의 정치학과 점거 퍼포먼스
하고 공유하는 전초기지로서의 효용성을 갖는다.
2004년 9월호, 문화예술, 김준기(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둘째는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유동적인 작업실의 면모에 대한 주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붙박이 작업실이 안정적인 예술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대 신, 특정 시간과 공간, 사회적 맥락에 얽매어 예술적 창의력을 소진할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새로운 유형의 작업실은 정주개념을 포기한 경우가 있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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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술 생산의 전초기지이자 예술가적 삶을 담보하는 최소의 공간이다. 오늘날 예술 개념과 예술가의 존재양식
념 작업 단계이기는 했지만, 김윤환의 PMA(휴대형 개인 작업실, personal mobile atelier)는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이 탈근대적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작업실은 예술을 존재하게 하는 최소 단위 가운데 하나이다. 오히려 예술 개념의 확장에 따라서
제작해서 공기를 주입하면 공간이 형성되는 작업공간을 구상한 것이다. 움직이는 작업실 또는 가지고 다니는 작업실인 셈이다. 김윤환의 이 작업은 유목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의 역동성 아래 포섭되는 다층적인 공간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 요컨대 예술개념의 확장에 따른 작업실 개념의 변동은 예술의
적(nomadic) 자유로움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나아가 물리적 장소에 한정된 건축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이 아닌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되는 작
지평의 확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오아시스 그룹의 목동예술인회관 예술점거 프로젝트는 작업실 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이슈화에
업실 공간의 의미를 일깨웠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또한 한생곤의 버스 작업실이 가지고 있는 비정주개념도 주목해볼만하다. 그의 작업실은 한군
성공하고 있다. 그동안 예술가들의 집단적인 대 사회적인 발언이 정치와 사회의 이슈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탈근대시대 예술(가)의
데 정주해있는 대다수의 작업실에 비해 늘 움직이며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독특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매번 움직이는 작업실에서 다른 상상을 하
존재양식을 캐묻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라는 차원에서 그들의 뜻을 차분하게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예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나 예술가의 삶에 관한 이야
며 다른 환경과 사람과 도시와 자연을 만나는데, 이때 발생하는 예술적 유목이라는 발상은 요즘의 관념적인 탈주, 일탈 같은 허약한 예술게임과는 다른
기들은 최종의 결과물에 방점을 둔 논의들이었다. 이제 예술작품과 예술 생산자들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 작업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시점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된 것이다. 이 논의는 따라서 작업실 이야기를 통해서 대안적인 예술개념을 찾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예술에 관한 논의들은 대부분 꾸며진 곳에서
셋째는 점거 작업실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다.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무단점거해서 작업실로 사용한다는 기본적인 취지에 대해 아직 한국사회는 동의하고
만 존재해왔다. 대부분의 리뷰는 전시장과 무대 위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철저하게 가려져 조작된 문화정치의 장을 벗어나 날 것의 미학에 관심을 가져
있지 않지만, 김기현, 신상웅 등 청주 작가들 몇몇과 얼마 전 목동 예술인회관을 점거했던 오아시스 프로젝트 등 몇몇 사례들은 향후 작업실에 대한 보다
볼 필요가 있다. 작업실의 사회학, 작업실의 정치학을 통해서 작업실 담론을 열어보자는 얘기다. 다만 전제해 둘 것은 이러한 작업실 담론이 예술 생산의
열린 시각의 담론적, 실천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문화선진국 파리는 그런 점에서 한국에 비해 열린 사회임에 틀림없다. 2002년의 파리 팔레 드 도꾜
틀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전향적인 의미에서의 작업실 담론은 예술 생산의 장을 예술 소통의 장으로 확산 시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에서 열린 예술과 스콰트 페스티벌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파리는 바람구멍이 스물여덟개가 있는 바람난 도시이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스콰트(무단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점거, squat) 아뜰리에들은 관용과 포용에 입각한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열정적인 예술적 에너지를 끌어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작업실의 정치학
오아시스의 점거 퍼포먼스
다분히 선정적인 수사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말해보자.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작업실이 있다". 상품 생산의 장소와 예술 작품 생산의
작업실과 작업실을 근거로 활동하는 작가의 삶과 예술의 문제들, 나아가 현장성과 유동성과 목적의식적인 예술운동으로서의 점거작업실의 문제 등을 토
장소를 직접 비교대상으로 설정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예술가들이 공장에 고용된 임금 노동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로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을 모색하는 일들은 담론적 차원이 아닌 실천적 차원의 따끈따끈한 이슈들이다. 특히 점거작업실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문
예술가에게 있어 작업실은 절박한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예술 공장(art factory)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터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산업사회의 경쟁력
화적 업그레이드와 직결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회원들이 감행한 8월 15일의 예총회관 점거 프로젝트는 한국 예술의 역사에 새로
에서 밀려 활동을 접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예술가로서의 기본권을 생각해볼 문제다. 작업실은 예술가 개별의 독립공간일 뿐만 아니라 예술계를 뒷
운 방점 하나는 찍은 작지만 소중한 사건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이 건축주가 되어 공사를 진행하다가 5년째 방치되어 있는 서울 목
받침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나아가서 열린 공간으로서의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커뮤니티 단위의 예술소통 공간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열린 작업실의 상
동의 예술인회관 건물을 예술인과 시민들에게 되돌려달라는 이들의 요청은 실정법상 위법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송사와 신문 지상
은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모습인 것만은 아니다. 작업실의 변동이 예술지평을 확산할 수 있다는 전제는 유럽사회가 적응시켜온 점거 작업실과 집단 창
에서 이들의 점거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단계와 당일의 상황을 소상하게 보도하고 있으며, 이들의 취지를 자세하게 알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따라서
작촌의 성공 모델을 지켜보아온 것으로 충분하다.
여론상으로는 오아시스 프로젝트 그룹이 목동을 점거한 것으로 보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오아시스프로젝트의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예술 선언문'
작업실은 창작을 매개하는 최소의 공간이다. 이 창작의 산실은 예술가를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이 공간을 토대로
은 예총의 독점적 소유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 때 시작된 예술인회관 건립 공사가 거듭되는 파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총의 독
작가는 자연과 사회를 체험하며 채집된 정보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새로운 정보, 즉 예술적 코드로 재해석된 예술작품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
점적 소유권이 인정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해 예술가들의 행동주의적 퍼포먼스로 맞서고 있는 이들의 요청은 그러나 곧이곧대로 먹힐리 없다. 점거
술생산의 장소로서의 작업실 또는 공장 개념이 강하게 부각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공장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어떤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는가. 작
당일 새벽에 20여명이 먼저 들어가 공간을 점거하고 플랙카드를 내거는 등 일시적인 점거에는 성공했으나 경찰 병력의 투입 이후 이들은 건물 밖으로 내
업실은 건축적 공간 개념보다는 행위자의 문화적 생산의 의미가 더 중요한 요소로 해석되는데, 우리가 예술가의 작업실을 통해서 그의 작업 전반을 통괄
몰렸다.
하는 예술적 아우라를 읽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작업실 공간의 중요성은 한 예술가와 작품을 매개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이들의 성공여부는 앞으로 남은 여러 가지 문제들에 의해 더욱 분명하게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과정은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다. 이러한 작업실의 내밀한 미학적 감성은 이제 서서히 열린 공간의 사회학적 감성으로 전치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실의 사회학은 예술(가)의 지위와
프로젝트 그룹 오아시스(www.squartist.org)는 '도심의 죽은 공간을 예술로 리모델링 하는 공간재생 전문회사'라는 슬로건에서 보이듯, 도시공간재활이
역할을 점검하는 데 있어서 오늘날 변모의 양상을 파악하는 데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움직이는 아뜰리에나 점거 아뜰리에가 나타나는 것도 이
라는 행동주의적 강령에 입각한 적극적인 실천가 모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예술점거라는 방식은 프랑스 등 유럽에 널리 퍼져있는 스콰트(squ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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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그 범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만하다. 스콰트는 18세기 산업화 이후 급격하게 도시로 유입된 농촌 출신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살 곳을 마련 하기 위해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점거해서 주거공간으로 사용해온 데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사회적 관용에 의해 의례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 여졌고,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예술가들이 작업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빈 공간을 점유해서 집단적인 작업실을 형성하면서 전혀 다른 방식의 예술적 에 너지로 전환되고 있다. 점거 작업실은 예술생산의 근거지일 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와 공연과 축제가 열리는 종합예술공간으로 변모함으로써 연간 수십 만의 시민과 관람객들이 방문하는 명소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오아시스 그룹이 바라는 것도 유럽의 선례와 비슷한 종합예술공간이다. '문화실험공간으로써 작가의 작업실, 공연장, 연습실, 소수문화 실험공간, 전시 장, 회의실, 장비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숙소, 까페 등의 예술 활동에 필요한 모든 운영시스템'이 갖추어진 공간을 마련하려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죽 어있는 목동 예술인회관을 살려내서 예술 생산과 소통의 기지로 만드는 일에 뛰어든 김윤환, 김현숙, 노순택, 왕희정, 용해숙, 윤여관, 이병한, 조영아 등 많은 예술가들은 단지 작업실 공간이 필요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문화예술적 소통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꿈은 예술생산과 소통이 통합적 절차를 통해서 시민과 어울릴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과연 이들의 꿈이 꿈으로 끝날 것인지 아 니면 새로운 실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인지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할 것이다. 문화부와 예총으로서는 현재상태로 봐서는 예총의 독점적 소유권을 회수할 어떠한 적법한 명분도 찾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합법과 비합법의 문제 는 늘 시민의 상식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현재가지 진행된 공사는 상식의 잣대로 보아서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랏돈으로 공사를 시작했 다가 부도가 나고 더 이상 공사를 재개할 수 없게 되었다면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공공의 것으로 되돌려놓고 다시 검토해야 하는 것이 시민의 상식이다. 그러나 문화부는 이 상식에 의해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어있다. 합법적인 절차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원된 국고를 환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환수 이후의 대책도 감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합법이며 적법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힘을 쓴다면 이러한 비상식적인 적법이나 합법은 정 상적인 방식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총의 독점적인 사업권이라는 것도 새로운 사업계획에 따르면 신축 공간의 75%가 임대사업 공간으로 할 당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의 본말이 전도된 경우다. 이것은 예술인들의 복지를 위한 공사가 아니라 특정 예술인 단체의 개발사업에 국민의 세 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누가 봐도 이러한 사업계획을 정당한 예술인들의 복지를 위한 사업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반대론자들 의 주장이다. 오늘날 소통 지향의 예술은 행동주의라는 참여의 미학에 입각해 강력한 실천적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행동주의 미학은 사회문화적 맥락화, 자발성과 창의력, 예술가의 삶 자체의 진정성에서 우러나는 실천적 사회운동이자 예술운동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그룹의 행동주의는 예술운동을 사회운동의 지 평으로 확산시키는 야심찬 기획이다. 목동 프로젝트 뿐만이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벌어지는 '지속가능한 예술운동'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펼치고 있는 예술점거라는 퍼포먼스는 이제 한국에서도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에 관해 예술가 스스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집단적 인 움직임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나아가 예술활동의 목표를 자폐적인 예술 내적 문제로 귀속시키거 나 그 반대급부로 예술가의 삶과 예술적 표현의 대상을 이원화하여 자기헌신적인 참여주의에 매몰되는 엄숙주의에서 탈피하는 성숙한 자리매김이 시작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 자폐적인 예술 생산을 열린 소통의 장으로 끌어내는 일, 비상식을 상식으로 돌려놓는 일, 자학적인 엄숙주의 로부터 벗어나 예술가 본연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일, 오아시스 그룹 예술가들의 즐거운 퍼포먼스 속에 담겨있는 의미심장한 논점들이다. 작업실의 정치 학, 점거 퍼포먼스는 한국사회에서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만만찮은 싸움의 출발선상에 서 있는 이들의 발걸음을 기꺼이 반겨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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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리포트 2004. 1. 7(수) - 2004. 2. 25(수) 사비나미술관 관 장│이명옥 학예연구실장│김준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신정민, 황정인 촬영│박홍순 녹취│조성지, 황정인 도록 발행처│사비나미술관 발행인│이명옥 편집인│김준기 디자인│K·C Communications 등 록│1996. 1. 20 제 1-1971호 ⓒ 2004 본 책자에 실린 작품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사비나미술관에 있습니다. Printed by K·C Commun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