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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AK 2018-NOV. DEC. /VOL.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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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Culture Review Journal

기획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특별세미나

2018 nov. dec. VOL.17

값 4800원

사:각 2018 nov. dec. VOL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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ણ घ ஹ ஷ઻Ԟ ഠҋ߸ीӚ ട ‫઻ٳ‬Ԟ ࣴથԞ‫࣏ל‬৹൦ ं߸֢५ 2018년 소헌문화예술아카데미 교양강좌 일정 ଔӄ१‫ ف‬ਕ֪ߚߘӘ ஷ࣏અ ਕല ഠҋ߸ीӚ

날

짜

강좌 주제

강연자

강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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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7 셋째 토요일

莊子의 도가사상

이완재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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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4 넷째 토요일

개성적인 詩, 재미있게 읽기

이태수 (시인, 전 매일신문 논설주간)

4. 7 첫째 토요일

현대사회와 인간소외

박승위 (영남대 명예교수, 전 부총장)

4. 21 셋째 토요일

大同思想의 현대적 의미

홍우흠 (모산학술 연구소장)

5. 12 둘째 토요일

펄벅과 한국문화 다시보기

최종고 (서울법대 명예교수, 한국인물전기학회장)

5. 19 셋째 토요일

孝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김시우 (성산효대학원 교수,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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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첫째 토요일

김위홍, 여왕을 세우다

이문기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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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6 셋째 토요일

대구의 문화예술

홍종흠 (전 매일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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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0 다섯째 토요일

시대와 여성

최미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9. 2 첫째 토요일

소헌 선생의 삶과 예술

김기탁 (서예가, 전 국립상주대 총장)

9. 15 셋째 토요일

한국서예의 현재와 미래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10. 6 셋째 토요일

대구근대미술의 선구자들

김영동 (미술평론가)

10.20 셋째 토요일

한국과 외국 주거 이야기

구본덕 (영남대 교수)

11. 3 첫째 토요일

한국전통건축 읽기

장석하 (경일대 교수)

11.17 셋째 토요일

한국의 사찰건축 이야기

이중우 (건축가, 계명대 명예교수)

12. 1 첫째 토요일

예술가곡 공연과 해설

손정희 (테너, 대구예술가곡회장)

12.15 셋째 토요일

베토벤 음악 해설과 연주

김영준 (바이올리니스트,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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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17:00

**사정에 의해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ߚઅ 대구 수성구 화랑로 134-5 (만촌동 1330-33) T053.751.8089 http://blog.naver.com/sohen106


Photo Preview 사진으로 보는 프리뷰

수창, 청춘을 리노베이션하다.

2018.11. 3 ~ 12.31

수창청춘맨숀은 대구시의 수탁운영 공모를 통하여 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2020년 8월까지 2년간 운영하게 된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수창, 청춘을 리노베이션하다’라는 타이틀로 청년예술실험공간, 복합문화공간, 국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레지던시 운영, 시민참여 공간 조성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야외공간에서는 설치 조형전시가 열리고, A 1층과 2, 3층, B동 2, 3층에서는 실내 전시가 열리게 된다. 또한 2, 3층의 작은 공간에서는‘수창청춘극장’이라는 실험성이 강한 초미니 공연이 열리게 된다. 본 전시 Main Exhibition / 야외 조형 展_다목적 마당 기획자 고수영 / 참여작가 : 고수영, 김성민, 노순천, 배유환, 서성훈, 임도훈, 임용진, 정석영 전시문의 : 수창청춘맨숀 053)252-2566~70


Arts & Culture Review Journal

서기 2018년 11, 12 월 호 (통권 17호)

NO.17 대구예술발전소 로비 _ 수창동, 아트-브릿지 차재영작 photo by Dot.K

2016년 11월 7일 재등록 대구중, 마00007 격월간지 발행일 2018년 11월 10일 발행인 강금주 관리총괄 조성희

‘사각’이라는 네이밍은 대구의 상징인 사과의 먹는 소리인 ‘사각사각’

편집부장 박현정

의성어로 문화예술을 즐긴다라는 행위에 ‘먹는다, 소화시킨다’라는 의

객원취재기자 박현정 양준혁 손현민

미를 더해서 문화를 건강히 소비하고 표현하는 리뷰잡지로서의 역할

발행처 사각디자인팩토리

을 하겠다라는 의미이며 또 무대와 캔버스등 문화를 표현해내는 장소와

인 쇄 부경인쇄 053.257.8830

‘모든 세상은 네모나다’라는 의미로 사각이라는 프레임 속에 움직이는 문화생산활동을 사각이라는 잡지에 담아내겠다는 의미입니다.

sagak@naver.com http://blog.naver.com/sagaknews https://www.facebook.com/sagaknews @sagak_story @sagaknews @sagak_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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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문화뉴스 http://sagaknews.com/

*본지에 실린 컬럼이나 리뷰는‘사각’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책자에 실린 사진은 본지의 허락을 받고 사용해야 합니다.


Contents 기획 4 기획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특별세미나

리뷰 REVIEW 46 공연 리뷰 대명공연문화거리 스케치 연극 변신

인터뷰 16 YAP청년미술프로젝트2018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 연극 오해 뮤지컬 푸르고 푸른

22 대명공연예술센터장 김재만 24 피아니스트 박소현

54 전시리뷰 2018 방천아트페스티벌

칼럼 COLUMN 30 특별기고 - 김결수 32 음악이야기 - 송힘 34 미술 담론 - 조준호 36 전시리뷰 - 김경란

공간의 변주 류승희전 2018 기억공작소3 서옥순전 브릭, 사랑에 빠지다. 2018 대구사진비엔날레

37 미술과 놀기 - 장민 38 대중 음악 - 황희진 40 파리에서 온 편지

소셜문화N 62 인터뷰 공연예술가 조창희 64 인터뷰 배우 손제학 66 영화 리뷰 영화 위플래쉬 / 영화 문라이트

포토 리뷰 & 프리뷰 1 수창, 청춘을 리노베이션하다. 21 석재 서병오 동아시아보묵전 展 25 신상욱 조각전 29 나 현 바벨 - 서로 다른 혀 展 47 제1회 대명올림픽

69 네트워크 - 전시 코코카피탄 70 추천도서 ·앨범


기획 : THIS ISSUE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특별세미나 우리 대구에 정작 필요한 미술관은 무엇일까?

본지가 지난 2018 년 9 월 28 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 사 ) 대구미술협회 주최로 <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특 별세미나 > 를 협회의 동의로 녹취하여 구성한 것입니다 . 이날 행사는 대구미협 이미애 사무차장 사회로 진행되었고 발표자는 대백프라자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 대구경북사회문화연 구원 실장 오동욱 박사, 학강미술관 김진혁관장, 전 건축가협회 최상대회장이 참여했다.


사회 이미애 대구미협 사무차장

대구화단은 1920 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신진 서양화가 왕성하게 활동해왔던 지역입니다 . 이후 여러 단체가 결성 되면서 서양화 가 본격적으로 태동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 이런 근대초기 선구적 활동상황 불구하고 격동의 반세기를 거치면서 근대미술사와 더불어서 동시대에 활동했던 그런 작가들이 재조명 하기위한 근대미술관이 지역에 전혀 마련하지 못한 데에서 참 안타까운 마음 이 앞섭니다 . 그런 100 년의 세월을 그냥 흘러왔습니다 . 오늘 이 자리는 근대미술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자행해 온 작가들의 작 품을 영구보전하고 그들의 아카이브 정리해서 후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대구의 근대미술관 건립사업의 필요성을 제안하기위 해서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 오늘 이 자리는 대구광역시문화예술정책과에서 정미정팀장 김석현 주무관이 자리했습니다 . 발표해주실 대백프라자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 , 대구경북사회문화연구원 실장 오동욱 박사 , 학강미술관 김진혁관장 , 전 건축 가협회 최상대회장이 발표와 토론을 해주실 분입니다 . 먼저 대구미술협회장의 인사말이 있겠습니다 . 인사말 이점찬 대구미협회장

근대미술관 건립의 당위성으로 굉장히 중요한 자리입니다 . 여러 회원들의 빨리 진행이 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주셨으면 합니 다 . 오늘 네 분이 발제하시고 토론하시고 합니다 . 김태곤 큐레이터는 지역에서 현장에서 근대미술관 연구를 하시고 오동욱박사 는 대구경북연구원실장으로서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모든 로드맵 만들어주시고 김진혁 학강미술관장은 예인으로 가장 영광인 미 술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관성 있게 연구하신분입니다 . 최상대 전 건축가 협회장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현장의 사항들을 잘 짚어 주셔서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근대 미술관 건립은 제 공약사항에 1 번입니다 . 우리가 8.15 해방 , 6.25 동란 겪어 오면서 한국 근 . 현대 미술에 우리 대구가 중심에 있습니다 . 국채보상운동이나 2.28 등 국난이 있을 때 현장의 중심이 대구였습 니다 . 근대미술을 담을 수 없는 근대미술관 건립이 늦었지만 이렇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 대구시 한만수국장님께서도 적극적으로 힘을 주셨고 , 장소까지 고민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하루빨리 미술인들의 숙원사업이 근대미술관 건립되어서 작고한신 분 , 이라고 생각하고 비껴 있지 말고 , 좋은 공간 유치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 대구미술관 그 옆에 간송이 오고 , 근대미술관이 오면 세 개가 모여서 트라이앵글이 되면서 미술관 투어도 되고 구체화 될 수 있도록 , 관광협회와 협의도 했습니다 . 아무쪼록 중차대한 일을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으로 출발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십시오 , 감사합니다 . 사회 이미애 대구미협 사무차장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늘 발표순서는 먼저 김태곤큐레이터, 김진혁관장의 발제와 이어 토론이 이어지는 순서로 하겠습니다.

발제1.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제언 김태곤 대백갤러리 큐레이터

반갑습니다. 앞서 소개받은 대백프라자 갤러리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김태곤 입니다. 오늘 발표는 보시는 거와 같이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제언으로 주제 를 잡았고 미술관이 어떤 공간이고 어떤 기능을 하느냐의 주제는 여기 앉아 계신 분 대다수가 대구 미술인들이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미 술관이 왜 필요한지 근대미술이 어떻게 되는지, 지금의 이야기 아니고 80년 또는 백 년 전 미술을 되돌아보고 이런 미술이 있는데, 이런 미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그런 그릇이 필요한 것인가 아닌 것인가를 풀어나 갈 것입니다. 앞서 회장님이 말씀 해주셨지만 대구근대미술관이 필요로 하다는 것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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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여러 선배 분들 모시고 전시할 수 있는 , 또 시간이 되면 오늘 자리한 회원님들도 그 자리에 가야 하지 않습니까 ? 중요한 일


해서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좀 더 구체화 되어 나간다면 시립미술관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국립미술관 대구 분관이 될 수도 있고 방법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리고 싶은 말씀은 2000초반에도 저희 미술인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제일 먼저 마인드 속에 생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대구미술관에서는 간송미술관 전시와 얼마 전에 마친 김환기 전시, 쿠사마 야요이 처럼 대표적 국제적 전시가 많이 열렸고, 지역의 미술인들의 자긍심을 올려던 행사가 많이 있었습니다. 불과 이십 여년 전에 저희가 오늘처럼 자발적인 제언이 없었다면 지 금의 미술관이 요원해 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는 것이 제가 발표를 하는 첫 번째 발표하는 목적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대구미술에 대한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고 대구미술관 필요성, 외국미술관의 사례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개념적인 부분은 간단히 정리 하면 현대미술관, 현대를 포스터 모더니즘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단어를 써서 현대라 는 개념을 이야기하지만, 근대라는 모던이라는 개념이 어떤 시대적인 개념으로 우리가 봐야 될 것인가 라는 혼동이 있을 거 같아 개념정의부터 하겠습니다. 근대라는 것이 일제강점기 즈음해서 서양문물이 개방되는 시기를 근대라는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근대라는 개념이 농업사회에서 산업구조로 바뀌는 그 시기를 근대라는 개념이고 자본주의로 시작되는 그런 부분을 다 근대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대적으로 강화도 조약이 된 1800년대 후반을 근대라는 개념을 보고 있고, 미술 쪽으로도 근대라는 개념을 여러 가지 시점이 있겠지만, 과거의 미술 관념화된 미술에서 현실적인 미술로 바뀐 미술을 근대화 미술이라고 이야기 할 수가 있겠습니 다.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겸재 정선, 김홍도 신윤복의 사실적 그림이 나오면서 중국화풍에서 만들어졌던 그런 미술이 아니 고 실생활, 겸재 정선의 작품을 지금으로 보면 꼭 드론을 띄어서 금강산을 본 것처럼 작품들을 화폭에 담겨져 있는 근대의 개념이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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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1900년도 중반부터 이런 작가 미상 이라든지 기존의 동양의 개념이 아니고 정말 서양기법이 준하는 나온 작품이 나와 있 었지만, 근대라고 말하기는 아직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개방화된 19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보고 있습니 다. 서양화가 유입되기 전에 외국인에 의해서 서양화가 제작되어지고 보급되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외국 종군기자 들이 직접스케 치해서 우리나라 풍물을 외국잡지나 신문에 수록했습니다. 기존 종이와 먹을 갖고 표현했던 양식에서 새로운 입체적 느낌들의 작품 들을 알게 모르게 접해왔던 과정입니다. 휴버트 보스가 고종을 서양화기법으로 처음 그리고, 민상호 초상을 그리고, 서울의 풍경을 서양화기법으로 그렸습니다. 이런 그림 들이 스마튼 폰이 사진기를 대신하지만, 1900대초에 사진기가 없는 상태에서 고종의 그림을 전신으로 그리다보니 당시 에피소드로 고종의 알현 하는 것처럼 숙인고개를 들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고희동이 일본 동경대학 유학을 가게 됩니다. 유학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서양화를 갖고 들어왔던 1915년을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화가가 서양미술품을 보급한 원년을 보고 1915년부터 서양미술 백년사 기점을 많이 잡고 있습니다. 평양에서는 김관호 작가가 동경대학을 역시 졸업하고, 평양에서 삭성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미술 연구소 겸 미술보급에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알 다시피 나해석도 동경에 유학을 간 우리나라 최초 여류화가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만, 개인적 파란만장한 삶을 불우한 생을 마감했던 우리나라 1호 여성화가입니다. 반면 대구에서 이런 서양화 활동이 꽤 빨리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보통 문헌상으로 대구근대미술 이야기할 때 서울과 평양에 버금 가는 서양미술이 보급되었다고 말을 합니다만 그게 누군가가 가져왔겠지 해버리고 시대적 흐름이나 내용들을 모르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앉아계시는 대구 미술인들은 대구 미술 어떤 연유에서 서양미술이 보급되었고, 현재 우리의 발판과 뿌리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번쯤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야 되는 관점에서 대구 미술관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보통 이상정 장군이라고 보통 말을 합니다만, 동생 이상화는 잘 알다시피 민족시인이고, 형 이상정장군은 활동이 많았음에 도 불구하고 자료가 없습니다. 이상정을 찾아내는 것이 대구 근대 역사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화랑 일을 하면서 미술사 연구를 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제가 알고 있는 부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912 년도 일본에 도일해서 성성중학교, 국학원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기록으로 보면 1920년도에 대구에 들어왔다고 되어있는데 계성 학교학보를 보게 되면 1917년에 도화 선생으로 활동했다고 적혀 있고 제가 직접 계성학교에서 확인했습니다. 17년이라는 연도는 고희동과 김관우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시기이며, 간접적으로 서양화를 배우고 들어온 시기가 아니가 생각합니다. 이상정장군은 대


구에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만주로 가서 독 립군활동을 하다가 1947년 돌아와서 뇌일혈로 사망 하시게 됩니다. 남겨놓은 유작이나 작품이 전혀 없 고 기록으로 남았는데, 그 당시 백기만 선생이 썼던 <중국유기>라는 유고집을 보게 되면 이상정장군에 대한 약력을 평정해뒀습니다. 54년 대구에서 개인 전 개최라고 표기되었는데 54년을 서기로 놓아보면 1927년도 개최로 되는데 아직 우리 대구에서 전혀 기록이 없다 이러한 연구들이 개인이 하기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에 대구에 근대미술관이 지어진다 면 이러한 연구가 좀도 강도 있고 깊이 있게 연구하 면 작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47년 에 돌아가시고 장례식 치러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상정장군은 여러 활동 1920년 초반 정구라든지 축구라든지 서 양 스포츠 보급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고 민족성 심어주는 문화예술 활동에 일조했습니다. 바보주막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여기가 이상정 장군이 사셨던 본가입니다. 그 옆 안빛 고을이 회산 박기돈 집입니다. 흔적들이 남 아있습니다만 지금 근대미술 보존, 이렇게 해서라도 문이 닫혀있는 흉가보다는 식당 운영으로 어떤 면에 다행이겠지만 식당을 이 용하는 고객 분들이 이 집이 어떤 분의 집이고, 여기는 우리민족의 자긍식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과연 아실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 구에 와서 근대미술을 살펴보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매일 신문에서도 대구 근대 미술이 대해서 기사가 실렸 습니다만 언론에 조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지역미술인이 여기에 대한 공감대 가지고 솔선수범해서 현대미술관도 중 요하지만 뿌리가 되는 근대미술관을 만드는데 적어도 석재 서병오, 이상정 선생님을 기점으로 해서 그 이후 우리나라 미술사를 위해 수집 보존 연구하는 역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1921년 개인전과 함께 1923년 대구미술전람회에 <지나서원>외 13점 작품을 출품했다는 팜플렛 목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정 작품을 보질 못했습니다. 이상정 장군이 거주했던 우현서루 사 설도서관 역시 우리가 보존해야 할 건물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북성로 입구에 있는 대구은행 터 자리가 우현서루 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지금 아마 북성로 건물이 지나갈 때 대구은행건물이 인테리어가 남달라서 여기가 우현서루였다는 그런 느낌 들도록 하였 으며, 그나마 밝혀줘서 지역의 근대의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석재 서병오 선생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 없이 근대 미술에서 필요한 부분이고 꼭 지속적 연구해서 석재 서병오 선생의 업적이 라든지 후대에게 주었던 영향에 대해서 계속 연구해야 되어져야 할 그런 부분들입니다. 1922도에 대구 교남시서화연구회를 뇌경 관에서 진행되었다던 그런 내용들이 신문에 난 그런 내용들입니다. 이런 간단한 당시의 신문기사 하나로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지 면 이게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고 뇌경관이 어디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약령시장 너머 대구 우체국 가는 경상감영자리 에 달성군청이 있었는데 그 안에 말하자면, 도청 안에 도서관이었다. 이 건물이 뇌경관이고 최초로 만들어진 도서관에서 당시에 전시를 했고 이왕가 이씨왕조들의 유물이 내려와서 전시를 했고, 그 당시 대구는 미술에도 관심이 높았고 이런 전시를 전시할 수 있었던 재력이 있었던 대구였습니다. 교남시서화연구회가 만들어지고 석재 선생의 기점으로 지역에 있던 작가들이 단순히 작품을 발표하는 기회가 아니고 대구서도 공모전을 통해서 후진 양성하는 목적으로 협회가 만들어 진 것이다. 대구미술전람회가 1923년 대구노동공제회관 은사관이라고 하죠. 고종황제가 왔다가 하사금으로 은사관으로 미술 전람회가 처음 만들어 집니다. 여기에 난 신문을 보면, 서양화부, 동양화 부, 그리고 서화부로 이인성 이상정 석재 서병오 이쾌대의 형이 이여성 등이 전시 목록에 나와 있습니다, 동아일보 미술전람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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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물론 이상화 고택이라든지 서상돈 고택 같은 경우는 시에서 리모델링해서 하나의 기념관을 만들어서 지금, 관광객들이 대


이여성, 정운해 서건호, 서병인 이분들이 교남시서화와 별도로 대구에 서양미술을 보급하기 위해서 1923년도에 대구미술전람회를 공제회관에서 마련하지 않았나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부분도 제 학설일 수 도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대구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지면 미술관 차원에서 연구되고 조사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1924년 일본인들이 만든 자토회가 결성되고 제1회 서양화전을 개최되어, 여기에는 대구의 미술가들도 꽤 많이 참여하기도 했다. 토민순조라는 경북고등학교 선생들 그나마 조사되었고 나머지는 행적을 모릅니다. 1927년 영과회 전시회 창립전인지 그다음인지 모르겠지만 이 사진 같은 경우도 우리고 알고 있는 일부 예술인들 나머지도 모르는 분도 연구되어야 할 목적입니다 그리고 향토회가 1930대부터 만들어집니다. 대구근대미술에도 중요하지만 한국근대미술에도 로컬리즘에 대한 하나의 큰 획을 그 은 향토회에 대한 부분도 우리나라미술인 뿐만 아니라 외국 일본 화가들도 함께 참여해서 6년간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연구가 그나마 1회 향토회부터 자료가 많이 모아진 경우입니다. 일부 여기에 보면 이분들 외에 우리가 모르는 분들 아 마 이분들 사이에 일본 화가 분들도 이렇게 같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고 이런 분들이 어떤 영향을 한국 대구 근대미술에 주었는지 그런 부분이 아직 연구가 안 된 실정입니다. 3회, 4회, 5회 이렇게 대구근대미술은 30년대를 치달아가고 1936년도에도 전시회가 열리죠. 1936년도에 제1회 남조선미술전람회가 열립니다. 이 전시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나던 대구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대규모 전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도에 중일전쟁이 생기면서 모든 게 전쟁으로 치 달았고 우리나라에서도 학도병이라든지 정신대라든지 전쟁으로 모든 것이 치닫다보니 문화예술 활동이 이 기점으로 많이 축소되어 집니다. 이러한 대구미술전람회는 이인성이 주도적으로 가져가지만 이때 일본인화가들도 대구에서 함께 참여해서 대구에서 서양화보급에 큰 일조했던 분들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대구 근대 미술이 기록들이 많고 연구할 과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부분적이 라도 상설 전시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유럽이나 외국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의 미술관을 찾게 되고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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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역 미술관에서는 기획전시 보다 그 지역을 알리는 전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 분들이 우리나라, 대구에 와서 대구의 미술을 좀 보자고 했을 때 지금 이루어지는 전시장에 데려가서 그분들에게 이게 대구의 미술입니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소 라든지 현재의 미술을 논하는 측면은 있겠지만 석재선생님이나 그 이후에 일어났던 죽농, 이여성, 이상정, 그리고 이인성, 이쾌대 로 이어지는 대구의 뿌리라 말할 수 있는 작품들을 이것이 대구의 미술이고 이것이 대구에 서양미술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되어졌다고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대구미술의 근대미술관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것입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지금도 원로 선생님들이 많이 걱정하는 것이 내가 남겨준 작품을 어떻게 해야 될지, 이것 을 후손들에게 주자니 짐이되는 것 같고,그렇다고 이것을 다 모아서 불지르기는 그동안 살았던 삶이 너무 아깝고 그렇게 해서 마지 못해 이고지고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술품을 후손들인 우리가 조금 정리를 해드리고 기록상으로 역사적으로 남겨야 할 작품들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여건을 대구 근대미술관이 할 일입니다. 분명 여기서 근대라는 모티브는 우리 대구에서 필요한 요소이고 그러한 성공사례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약령시를 중심으로 해서 근대골목, 하나의 관광허브를 통해서 충분히 검정했고 이러한 검정들을 좀 더 품위 있고 체계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대구 근대 미술관이 아닌가 생각을 가집니다. 대구라는 지역에 미술관이 4개 있습니다. 공공미술관 2개, 대학미술관2개입니다. 공공미술관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시지에 있는 대구시립미술관과 대구문화예술회관이 등록을 했습니다. 대학미술관은 계명대와 경북대가 있습니다. 비등록 미술관이 있지만 통계상 잡지 않고 4개로 봤을 때 지금 부산의 미술관 박물관 숫자, 인구가 적은 광주라는 지역, 이런 지역을 비교해 봐도 대구의 미술 인프라는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 다. 보통 우리가 미술관이 필요 하는 여러 가지 통계가 있지만, OECD에서 요구하는 이러한 선진국형 문화공간이 아니더라도 최소 한 우리가 가져가야 될 미술관 숫자는 20여개 이상 충분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만든 통계가 아니고 문 화관광부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미술관에 대한 공간크기는 보기 쉽게 평수로 적어보았습니다만, 연면적 천 평으 로 가면 충분히 전시장 공간이 되질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구미술관이 6000평에 전시공간이 1500평, 그리고 문화 예술회관이 천 평 정도의 전시공간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지금 간송 미술관도 대구 미술관 옆에 건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이 공간도 800여평의 전시공간에 연면적 2000여 평의 전시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공간을 봤을때대구 근대미술관은 연면적


대구시립미술관 - 대구대표미술관이다. 지금은 전시기능을 갖춘 현대미술관 느낌이 강하다. 전시기능을 할 갤러리는 대구도심에도 많다. 대구를 대표할 작품도 소장해야 하고 또 대구를 대표 할 작가도 길러내야 할 것이다. 전시기능 외에 역사성도 가지도 있어야한다.

2000평에 700~800평 정도의 공간으로 미술관을 만들어 진다면 대구의 근대미술을 담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외국에 사례, 그리고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비교해봤습니다만, 지금 대구시에서도 나와 있지만 지역의 미술인들이 무리 하게 평수라든지 공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외국사례를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근대기에 서양으로부터 많은 문물들이 들어왔습니다. 그중에서 도 미술은 아마 근대미술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양 문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미술관이 일본에 많이 만들어 졌습니다. 회원님들도 일본에 가서 이런 저런 미술관을 많이 관람했을 것입니다. 먼저 동경도에 있는 도쿄국립 근대 미술관은 꽤 큰 미술관입니다. 거기에는 13,000여 점 소장되어있습니다. 지금 대구미술관 2000점 소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대구미술관은 근대 현대 다포함 되어 수집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는 턱없이 부족 한 상황입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꼭 대구에서 시립이 안 된다면, 도립미술관도 하나의 대안으로 교토의 사례를 두고 말 씀을 드린 것 입니다. 카나가와현립근대미술관은 미술관의 역할이 수집보존의 기능도 있겠지만, 지역민들, 관광객들이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미술 관을 모토로 삼고 지금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타마현립근대미술관은 역시 당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추상 표현주의 유파 의 화가들 그리고 지역의 현대미술가의작품을 수집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북해도 홋가이도 근대미술관 같은 경우 근대 미술관이 일본에 많이 있습니다만,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여기서는 유리공예 작품을 많이 수집해서 그런 차별성을 기하고 있습니다. 도야마 현립근대미술관은 근대미술관의 기능은 상실되고 지금은 디자인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서 새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니가 타현립근대미술관은 지역출신 미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상설전시를 같이 겸하고 있어서 니가타현에 가게 되면 그 지역 출신의 작가의 행적 연혁을 살펴볼 수 있는 그런 미술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구 근대미술에 대한 자긍식, 필요성은 아마 충분히 짧은 시간, 여러분들이 공감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근대미술관을 우리가 어 떻게 가져갈 것이냐 하는 것은 물론 거기는 미술관을 운영해야 되는 여러 전문가가 있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 지역미술인들이 대구


근대미술관이 어떤 기능을 해야 되고, 임무가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 스스로 정립해나가는 것이 오늘 세미나에 또 하나의 의미가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대구미술관이 만들어질 때까지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가져보자는 개념에서 이렇게 적어봤습니다.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미술관이 되어져야겠다. 보통 미술관들은 미술품이 잠자는 공간이라고 이야기 하죠 감 옥 무덤, 산소 그런 수장고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면, 그러기에는 21세기 22세기 미술관 역할이 다변화되기 때문에 과거에는 머무는 것이 아니고 미래 지향적인 미술관이 이 되어져야겠다. 그리고 새로운 인문학적 축적으로서 미술관, 연구기능이 담겨져야겠다. 그 리고 문화관광 상품으로 연결 될 수 있는 미술관. 21세기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지금 대구에 있는 김광 석거리라든지, 근대골목을 통해서 많은 외국인들이나 타 지역 분들이 대구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대구미술관, 간송미술관 더불어 대구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진다면 다변화에 맞추어서 새로운 인문적 축적 연구기능과 문화관광 상품으로 연결되는 미술관 좀 더 문화관광산업이 활성화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미술관이 가지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미술관의 역할을 가져가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관은 저희 미술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미술을 사랑하고 미술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항상 찾아올 수 있는 그런 미술관으로서의 방향성을 잡아야 될 것입니 다. 그리고 문화서비스로서의 역할, 예술이 가지는 문턱 높은 미술관이 아니고 항상 문화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미술 관이 되어줘야 된다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오늘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한번 나열해보았습니다. 짧았습니다만, 이상으로 저의 근대 미술관 제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제2.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제언 2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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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그림 그리는 김진혁입니다. 최근 이틀 동안에 모 방송국 담당 피디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신문사 논설실장도 저녁때 술을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한테 물었습니다. 지금 대구미술관이 뜨거운 감자인데 1차에 관장선임이 무산되고 2차에도 많이 분들이 응시 했는 되도 무산되었다. 어떻게 생각 합 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래서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이럭저럭했습니다. 지역에도 훌륭한 분이 많은데 그 많은 분들이 공모에 응모 했는데 왜 뽑히지 않았을까? 좀 문제가 되더라구요. 대구미술의 역사는 1601년 경상감영공원이 생기면서 화가가 된 이래 수 백 년 이 흘러와서 정말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화가들이 많이 나타나고 이론가와 더불어 많은 분이 있는데도 우리 지역에 맞는 대구 미술관 리더가 지역출신이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 저도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궁금하기도 하고 의아했습니다. 우리 미협에 수 천 명의 자산이 있는데 관연 그런 자원이 없나.... 한번 되물어보면서 우리 근대미술관 건립과 맞물려서 심각하게 생각해서 대구 미협에서 언젠가는 다시 현재 대구미술과의 문제도 한번 거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서두에 자그마한 제집을 이용을 해서 학강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어저께 밤에 김태곤 오늘 발제자 오셔서 이인성과 이쾌대에 대해서 간단한 세미나를 했습니다. 열정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왜 하게 되었느냐 제 과정을 한 번 말씀드려야 겠습니다. 최근에 유홍준 선생에 <한국미술사> 책을 봤습니다. 거의 서울 중심입니다. 책에 보면 조선시대 마지막 부분 대구미술 한 쪽 나옵니다. 두세 페이지 아닙니다. 석재선생 두 줄 정도 나옵니다. 이것을 보고 중앙에 미술을 전공하는 분들에 지방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구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우리대구에 대구자산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 스스로가 일구어 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수집한지가 30년 정도 했습니다. 지금도 보물을 낚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드리겠 습니다. 한 7년 전에 대도 서점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대도서점 주인은 저도 잘 모르는 분입니다. 그런데 책을 찢고 있었습니다. 무슨 책인가 보니 신동집 시인이 정점식 화가에게 시집을 주면서 친필 싸인 한 것을 찢고 있어서 깜짝 놀라서 왜 찢는냐고 물으니 이거 있어서 잘 안 팔려서 글자 이름부분을 째고 있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제가 물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여기 나왔습니까? 대덕맨션에 사는 화가님 집에서 트럭을 네 대 갖고 가서 다 실고 나왔는데 네 군데 서점에서 나눠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한 달 동안 올 테니 그 집에서 나온 것을 다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책, 강의한 노트 등 이런 것을 제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시도 한 번 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중요한 책도 있었습니다. 다다이즘창시자 한스 리히트라는 이론가가 있습니다. 한스 리히터가 1960년대 초반 서울에 와서 <다다이즘>라는 책을 극재 선생에게 친필로 싸인한 책 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살펴보면 정말 세계적인 보물이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최근 사례하나 더 말씀드리겠 습니다. 3년 전에 고물상 주인이 그림을 여러 개 갖고 왔습니다. 그 중에 보니까 이인성 화가와 죽농 서동균 선생의 합작품이 있었습니다. 광화문을 그린 것입니다. 이인성화백이 일본에 유학을 가서도 조선미전에 계속 출품을 했는데 그때 두 분이 합작한 작품이 나온 것 입니다. 그런 경우도 생기고, 이렇게 있다 보니 여러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가 개별적으로 대구의 아카이브 및 작품을 수집하자 이 렇게 해서 30년 모우다 보니 지금 3000여점 정도 됩니다. 멀게는 고려시대 후반부터 근대까지 모으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점 찬 회장이 근대미술관 오늘의 발제라든지 함께 건립을 앞장서라 해서 추진위원장을 맡게 된 것을 이야기 드립니다. 앞에서 김태곤선생이 너무나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잘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소박하게 글을 적은 것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 습니다. 유인물을 잠시 봐주십시오. 보통 미술관가자고 하면 파리에 많이 갑니다. 저도 파리에 여러 번 가 봤습니다만, 루브르미술관가지만 여러 작품을 많이 보지만 모나리자 작품을 다 봅니다.그래서 파리시민들의 자부심입니다. 그 조그마한 작품에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수많은 돈을 쓰고 있 습니다. 사실 잘되고 못되고 떠나 유명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서두에 적어 봤습니다. 그리고 지금시대는 도시국가 경쟁사회이다. 이제는 대구가 에를 들면 중국 같은 경우 칭다오나 장사에 협업을 맺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같은 크기의 도시들이 경쟁 하는 시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양화는 일제강점기는 이상정장군이나 이인성을 시작으로 되었고 또 서화쪽에서는 석재 서병오, 긍석 김진만, 회산 박기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몇몇 서예하는 분들이나 미술하시는 분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십여 년 전에 대구미술관건 립을 하자는 그런 운동이 96년 처음 일어났습니다. 저도 그중에 한사람입니다만, 대구미술관 만들자 라는 건립기금 마련전을 첫 삽 으로 시작 했습니다. 여기에 계시는 원로 분들하고 다 같이 참여했습니다. 출향작가들 서울의 이강소선생도 작품을 기꺼이 내 주었 습니다. 그 당시에는 IMF오기전이라서 작품도 1억2천만원 정도 제 기억으로 판매했습니다. 청구, 우방, 보성, 대백, 금복주 이런 큰 기업에서 미협을 위해서 기금마련을 위해 흔쾌히 동참해서 첫 삽을 떴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5월에 현재 대구 삼덕동에 대구미술관이 건립 되었습니다. 발파 작업 할때도 문광부 장관도 오시고 대구시장이 하 모두 박수 치면서 발파작업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2011년도에 오픈해서 저도 가보았습니다. 오픈전시가 정 점식 김종복 선생 이었습니다. 1층 어미홀에는 이강소 선생이 있 었는데 전시 도록도 약하고 공간구성도 약하다라는 이런 생각최 근에는 석재 서병오전이 열렸습니다. 사실 늦은 감이 있지만 제가 가진 소장품도 빌려드리고 자문도 하고 했습니다. 좋은 전시가 되 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와서 권영진 시장이 이우환미술관 무산 시키고 간송미술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주 잘된 결정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YTN에서 찬반 취재도 하고 찬성도 하 는 분도 계시고 반대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매일신물에 반대 하는 이유를 적었고 영남일보에서도 김일환 전 미협회장님이 반대 글을 적었습니다. 왜 반대하느냐 이것은 근대미술관과 맞물리기 때문에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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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 박기돈 선생은 최근 문화인물로 선정되어 현창사업을 회산 박기돈 고택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이런 분들은 사실 시민들에게


이우환미술관 건립제고를 환영하며. 제가 이우환미술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70년대 건축미술, 공간, 일본미술잡지 미술수첩을 통해 작품을 보았습니다. 제가 78년도, 79년대 대구현대미술제에 작품을 직접 내었습니다. 그때 직접 왔습니다. 당시 모텔에 방을 잡게 되고 제가 몇 번 모셔드리기도 해 서 당시 분위기를 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보면 이우환선생이 아주 말을 잘 합니다.당시 나는 대예술가의 말씀으로 그렇게 들 렸습니다. 최근에는 김환기 선생이 작품이지만 그전에는 이우환선생의 작품이 미술시장에서 1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왜 미술관이 검토 되는 냐, 무산시켜야 되느냐 이런 내용을 적었습니다. 본인 자체도 대구에 하는 것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에서 해달 라고 매달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대구 미술관도 BTL사업으로 재정적으로 쪼들려서 40%는 활용되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우환미술관을 지으면 일본관광객이 많이 올 것이라고 선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많이 오질 않을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미술, 특히 개념예술은 매니아만 옵니다. 일반적이 아니기 때문에 뮤지컬과는 다릅니다. 핫한 것이 아니 고 쿨한 개념예술이기 때문에 한정된 관람객이 외국에서 온다고 적었습니다. 조금 전에 대구의 예술인들을 우리가 헌창해도 모자라는 판에 대구에 있는 분이 진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대구에 근대 미술관 이 꼭 있어야 되고 근대미술관 지으면 그 안에 석재 서병오관 이인성관 이쾌대관 등 이런 것을 같이 넣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내용 을 여기에 적었습니다. 이런 내용에 많은 분들이 연락이 왔습니다. 제 글에 동감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몇 년전 부터 이우환미술관 보다 근대미술 관이 우선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근대미술관을 어떻게 해야 되는냐 최근에 모니터를 해보니까 현대 대구시청이 있는 데 시청이 옮기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청 앞에 있는 의회건물하고 그 주변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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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그리고 대구상고 구 건물, 대구문화재단 건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구 중앙도서관 자리도 한번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대미술관이 삼덕동 대구미술관, 간송 미술관 옆에 가는 것에 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문화예술회관에 오시는 분들도 대부분 50대 이상이 오십니다. 도심에 있어야 되지 만약에 대구미술관 옆으로 가면 자가용 차 가 없는 사람은 가기 힘듭니다. 규모보다는 대구근대 미술관은 대구 중심가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예전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중 앙도서관, 대구상고 구건물, 대구시청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중앙도서관은 남구에 대용으로 크게 들어섭니다. 그리고 큰 도시에 가 보면 강을 끼고 공연장이나 뮤지움이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영국이나 파리도 큰 강 옆에 많이 있습니다. 큰 강 옆에 건물이 있으면 더 멋이 있고 그렇습니다. 최근에 옥류관도 대동강변 강을 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멋있지 않습니까? 대구도 신천도 있고 금호강이 있는데 만약 여건이 된다면 대구근대미술관은 신천을 끼고 야간조명을 멋있게 밝힐 수 있는 건물을 지으면 정말 아시아권에서 멋있는 건물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침글에서 사진이나 건축 근대 문학관 이런 것은 사실 잠자는 것 빼고 다 미술영역입니다. 전부 미술영역으로 들어와서 긍석 김 진만, 이인성, 이쾌대 ,극재 정점식, 장석수, 그리고 사진으로는 근대 최계보, 건축에 김인호선생 이런 분들 다 포함해서 관을 만들 어서 근대미술관을 지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두서없이 했습니다만 관심을 많이 가지시고, 저는 다시 한번 건립기금마련 전시회를 한번 하면, 그건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다는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구 시민들에게 알리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가졌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토론 1.

최상대 전건축가협회장

김진혁 관장 주제 발표에 이어서 최상대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개인적으로 대구근대미술관의 건립을 위한 출정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미협에서 이점찬회장님의 공약 임 기 안에 실천되는 중요한 자리를 생각합니다. 저는 건축가이기 때문에 미술에 있어서 번외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솔직 한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미술관을 우리가 찾아보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군산에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없습니다.


2005년 이경성 전 현대미술관 관장께서 덕수궁현대미술관 자리 를 근대미술관건립을 추진하다가 무산되었습니다. 관장이 나갔 습죠. 이상하게 근대미술관이 우리나라 근대역사에 대해서 소외 시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대 미술의 행보가 빨랐던 것이 바로 평양시와 대구시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평양은 북한에 있으니 갈수 없고 바로 대구가 근대미술역사의 예술가의술의 중 심이라는 것은 발표자에 의해서도 알 수 포함된다고 생각할 수 있 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대미술관 발의는 시기적으로 적절하고 합당한 명 분이 출발하는가. 이것은 부정적인 개념이 아니고 한번쯤 우리 미술인이 다잡아서 출정의 의미를 가지자는 출발하는 것이 의미 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김진혁 발제자 말씀처럼 최근에 자랑스럽게 대구미술관이 건립되고 부정적으로 예상을 못하리라 는 것을 예측 못하는 현재의 미협의 위치가 있습니다. 왜 대구의 미술인이 대구미술관장을 못하고 타지에서 와야 됩니까? 이 부분 부터 우리들이 아울러서 한 번 더 자성을 하는 의미에서 출발을 하자하는 생각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대구시에서 오셨지 만 대구시 이해관계자, 적어도 문화예술과 과장님, 문화체육관광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미술관건립은 대구 미술계의 새로운 인식의 변화의 혁신의 계기가 모멘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미술관이 건립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작년에 대구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지정을 받았지요. 이제는 순서가 미술창 작도시 대구로 시작하고 출발하자고 우리 출정식을 한 번 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근대미술을 주제로 합니다. 하지만 미협은 근대미술에 혹시 소외될 수 있는 현대미술도 로드맵을 같이 좀 마련해서 다음에는 현대 미술도 대구 강정 현대미술제 살려야 되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데 앞으로 향 후 좀 더 벗어나자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조금 더 실 천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해서 미술관이 건물, 없이 안 되지요? 당시 책정된 이우환미술관 측정 순수 공사비 300억 이었습니 다. 땅값 제외입니다 지금 현재 김진혁 발의자 말씀을 정리하겠지만 땅값과 미술관 건립비가 거의 같습니다. 300억의 땅값이 있어 야 되고 건립비 300억 있어야 되고, 빠진 것이 작품 구입비. 아마 근대 미술은 현대미술과 달라서 이미 제작이 끝났기 때문에 기하 급수적 비용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부터 실천적 접근법이 조금 더 구체화 시켜야 되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 입지성도 중요 하고 저는 이것이 영구성이어야 되고 대구의 대표성 아니면 한국의 근대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이런 정도의 마인드를 가져야 되겠 다고 생각합니다. 장소성은 저는 개인적으로 근대미술은 근대건축에 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새로 짓는 것은 경제성과 아울러서 그것 은 아마 동질성에 대한 문제, 서울의 전시에서 보면 1900년부터 60년을 대개 근대미술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김직혁 학강미술 관장은 석재선생, 그러니까 1800년 후반부터 우리는 더 빠른 시기에, 물론 그것은 대구의 자산이기도 하고, 오히려 범위를 넓게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구문화재단 건물, 개인적으로 대구시의회 건물 경상북도 후적지, 최근에 베트남 호치민 방문을 했는데 시 립미술관이 근대 미술관이었습니다. 일본근대문학관이 총칭해서 700개 정도 있습니다. 거의가 근대입니다. 거의 다 그 당시 시대 성 그대로 기록이 되고 있었습니다. 서두에 말씀을 드렸지만 근대라는 역사적인 중요도는 있는데, 다양한 역사 속에 하나도 없다는 것은 상당한 비통함입니다. 그래서 대구가 대구의 근대미술관이 아니고 한국의 근대미술관이 정신을 가지고 아마 제안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미술 관의 부지와 비용의 논의가 있을때 대구미협에서는 콘텐츠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술관에 담길 작품을 한번쯤을 선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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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이 오셔야 구색이 맞지 않나 이 부분도 우리미술인들이 생각


해보고 건축의 제한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줄탁동시라는 화두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줄이라는 밖에서 시끄럽게 떠 든다는 말이고 탁은 깨트린다는 말입니다. 대구미협은 떠들고, 병아리가 3일 동안 깨어나지 못하면 죽습니다. 3년 안에 미술관 토 대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토론 2.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예총 회원단체 세미나에서 발제토론으로, 또는 청중으로 많이 나가는데 제 경험으로는 긴 토론시간을 계속해서 앉아 계시는 것을 보니 미술인들의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겠습니다. 저는 예술인이 아닙니다. 일반시민보다 예술을 많이 접했고 정책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저변확대가 되겠다는 부분을 많이 연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일반시민과 예술인들 사이 중간의 매개자 역할을 가지고 방법적인부분을 말씀드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 됩니다. 지역의 근대미술, 어떤 분이 계신 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대부분 학창시절 많이 보고 미술책 보았던 것을 생각해서 그랬 던 거 같습니다. 대구 출신의 화가들이 어디가 생가이고,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고, 전시도 대관전시, 기획 전시 등을 보러 다니면서 실력이 늘어가는 것 보다 조금씩 팬이 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미술인들은 이래 좋은데 시민들이 왜 못하나 생각을 하지만, 저도 십 수 년이 걸렸습니다. 시민들에게 이중섭이나 박수근을 알지요. 김환기 압니다. 랭킹 10위안에만 압니다. 이인성, 이쾌대 아무리 말 해도 모릅니다. 이쾌대의 군상은 저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만큼 감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근대미술관 만큼은 지역의 선배들을 제대로 선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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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준비를 해서 우리가 먼저 행정을 이끌어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근대라는 대구가 차지하는 부분이 예술계에선 대 한민국 미술에서 축소판이다 생각합니다. 비단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음악, 공연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전. 후기 영향 이 있겠지만 상당히 특별한 곳입니다. 군산 인천 부산 여기 근대기의 유산을 제가 다녀 보았습니다. 인천의 개항장이라든가, 군산의 근대박물관에 가보면 민간이 흡수된 흔적이 굉장히 적습니다. 대구는 근대기 민간과 사회사적이 적절히 잘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근대라는 것을 대구가 잘 끌어안고 가 고 근대미술관은 상당히 필요하고 좋은 것이 아닌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 를 생각하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플랫폼이 아닐까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오 면서 선배들의 작품에 대한 아카이빙을 이것을 통해 제대로 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온라인상, 오프라인상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방법을 말씀드리면 대구경북연구원에 연구용역 시켜서 용역이 나오면 이 거보고 나가자 하지마시고 현장에서 콘텐츠가 어떤 것이 있는지 사전에 적 절성 부분을 먼저 제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미술관을 건립을 할 때 크게 공간적인 부분, 프로그램적인 부분, 운영적인 부분, 콘텐츠 적정성부분이 따라야 합니다. 근대미술관에서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콘텐츠 적정성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필요하다고 예전부터 들었는데 어디에 어 떤 작품이 기준이 되어야 되고, 하는데 비용이 얼마 들어야 되고, 이런 부분 을 궁금해 해도 답을 얻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면 그 부분을 누가 제 시하는 것이 가장 객관성 있습니까? 제가 볼 때에는 미술계 현장에서 주는 것이 가장 객관성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 정도 던져주면 포장 하는데 어렵 지 않습니다. 그러한 부분 시간적 다양성 기준을 만들면 현장의 알력도 좁 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짓는 것에 관심이 가 있어서 콘 텐츠에 대해서 상당히 멀리하는 것이 있어서 지역의 보석 같은 명작을 전시


하려면 선제적으로 실효성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상정 개인의 작품이 없다. 저 역시 연구하면서 이상정장군에 대해서 찾아보았습니 다. 대한민국최초의 근대미술가 고희동선생하고 유학하고 들어온 시기가 비슷한데, 그리고 계성학교에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을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대한민국 최초임에도 불구하고 영웅적 역할을 했지만 독립운동가 이기도 한 이상정장군을 우 리가 영웅대접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고 하나의 사례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장계향을 아시나요? 영남 안동에서 음식 디미방을 만든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안동 장씨라고 했다가 최근에 장계향을 연구하면서 장계향의 시까지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과 똑같습니다. 이상정 장군의 작품이 나와 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봅니다. 미술관의 위치부분입니다. 상당히 중요한데 여러개가 나왔습니다. 대구미술관 근대건축물 합당하다라는것에 저는 매개자이면서 시민입장에서는 도심에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근대 건축과 연계되면 제일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합리적으로 여러 문제를 좁혀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약간의 지식으로서 말씀드려보면 시청별관이 대구시로 넘어온 것이 공식화 되었습니다. 또,‘대구문화재단’부지는 안정성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앉아 세미나를 못합니다, 미술관이 하기에는 이런 문제가 있구나 식으로 좁혀나가야 될 것입니다. 중앙도서관은 교육청하고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청의 기능을 일부 를 살리면서,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연대하여 아카이빙의 기능 역할을 아셔야 또 좁혀갈 수가 있습니다. 대구미술관 근처를 생각해보면 현대 근대 전통을 아우르는 클러스트를 만들어서 대구의 부가가치를 높힐 수 있는 그런 오픈 된 생 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김진혁관장 의견을 반대하기 보다는 좁혀서 가보면, 행정과 사회적 합의가 안 되면 분명히 장벽이 오게 됩 니다. 제가 십 수 년을 경험을 바탕으로 방법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다음 건립을 위한 기금마련 전시. 이사업이 훌륭하다고 생 민들에게 알게 하는 그러한 부분으로 전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회산 박기돈선생은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과 파계사 현판을 쓰신 분이면서 초대 상공회의소 소장하신 분입니다. 메세나 운동을 할 때 미협과 경제계는 이런 부분을 활용해야 합니다. 활용하는 부분에서 당연히 기금을 받을 때도 경제계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의 상공회의소 초대소장이 대구에 유명한 예술가였고 지금 흔적이 남아있고, 그것을 좁혀나가고 그래서 세미나를 통해 대중이 이해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수동에서 능동으로 바뀝니다. 시민들은 수동적입니다. 그래서 미협과 상공회의소가 좋은 조건에서 만들어가고 나중에 요구도 할 수 있게 됩 니다. 근대미술관 지을 때 회산 박기돈관 상공회의소에서 제대로 만들어주세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박기 돈선생의 많은 자료나 작품을 찾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근대 미술관 준비의 미술계가 독창적이고 선제적인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대미술관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있어야 됩니다. 대구에서 나왔지만 대한민국이 대구근대미술관을 보고 토대로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나온 상태에서는 각자 생각을 좁혀 나가서 이런 토론을 자주해서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 미협에서 압축해서 정말로 손쉽 게 행정과 나머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열띤 청중 질의 과정도 있었으나 지면 상 담지못했습니다.‘사각’은 미술관 건립이 난립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술관 건립 전에 이런 공청회 및 세미나가 많이 있을수록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생각으로 이 세미나의 녹취를 싣습니다. 내용정리 및 사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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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합니다. 사례로 휘움이라는 곳을 아십니까? 시민들의 기부를 받아서 만들어 졌고 지금도 프로그램도 기부금으로 운영합니다. 시


SPECIAL : INTERVIEW

‘청년미술프로젝트2018’를 인터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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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가 주최하고 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에서 주관하는 대구 아트스퀘어 청년미술프로젝트 2018(Young Artists Project:YAP2018)가 오는 11월 21부터 25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진행된다. 2009년부터 해마다 개최된 청년미술프로젝트! 올해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2018년도 기획을 맡은 예술 총감독 김결수와 참여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 았다.


ART DIRECTOR예술총감독 김결수 2018 청년미술프로젝트 YAP을 소개해달라. 그리고 올해 예술 감독을 맡은 이유는?

기획 의도와 취지는‘청년미술가들을 발굴하고 프로모션하면서 그들의 창의적 작업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토대를 대구에서 만들자’라는 것이다. 감독은 해마다 새로 선임되는데 이번에 내가 맡은 이유는 이 프로젝트가 우리 청년들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기획이자 전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10번째를 맞이한 기획 전시로 나무가 싹을 피워 거목이 되듯이 해를 거듭하면서 진 행된 청년미술프로젝트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본질적 의미가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전시가 청년 작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형적 덩어리가 아닌 내 실 있는 행사로 청년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장점이 형성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훨씬 휼륭한 행사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미쟝센에 들어온 청년 미술’쉽게 설명해줄 수 있나?

미쟝센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에서 온 말인데 공간적인 요소, 즉 인물이나 사물에 따른 조명, 배열, 연출 같은 포괄적인 연출의 요 소를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작업은‘시각적, 환경적인 요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무대에 올려 놓는다’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쟝센에 들어온 청년 미술’이라는 것은 (예전에는 만들어져 있는 공간에 작품을 맞추었다면) 작품에 맞게끔 공간연출을 해보자 는 것이다. 물론 한정적 시간과 엑스코의 특수성 환경으로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청년들이 의욕적으로 만든 작품이 공간에 의한 연출로 형식적 공간을 탈피해 최대한의 효과를 내자는 의미이다. 이번 전시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한 전시인가?

시대적인 변화로 인하여 지금의 청년들이 사는 미술 환경은 예전과 조금 다르다고 본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지금의 청년들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면이 강하고 선배들의 그것은 협력적인 면이 강하다. 먼저는 홀로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려면 각종 미술 관계자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네트워크로 협력관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번에 선 정된 출품 작가들에게 기회의 장이되고 작품 발표의 연장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 말하자면 제일 우선적 인 것은 작가이다. ‘작가가 가진 미학에 의한 모든 구성 요소들이 예술 감독과 함께 작업함을 기초로 함’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제목을‘미쟝센에 들어온 청년미술’이라고 설정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미쟝센’이라는 것은 청년들이 가진 예술 세계와 작품 을 공간과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작 품은 작가 개인이 만드는 것이지만 출품 작과 공간 구현에 대 한 부분은 작가와 감독이 심도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만들어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으로 인해 작업 구성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 작가 선정 방식

대한민국 미술계에 논란이 됐었던 작년의 사전 검열 사건은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주최 측이나 작가 들이 사전 조율이나 소통 부족으로 솔직하지 못한 면들이 상 황을 키운 것이라 생각된다. 감독으로서 많은 청년 작가들을 만났다. 청년미술의 현실도 깨닫게 되었다. 일찍이 눈여겨본 작가도 있고 작가들의 자료를 가지고 현장의 작업실 방문을 한 명도 빠트리지 않았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미 술 환경에서 시류에 관계없이 꾸준히 자신만의 작업을 추구하 는 청년 작가, 그로 인해 개인이 가진 최대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 위주로 선정했다. 그러다 보니 페인팅, 설치, 미 디어, 조각으로 장르가 다양하다.


송연주 _ Memory of the sense of sea-I _ Silver foil,acrylic colors on canvas _162.1cm x 524.5cm _ 2017

공개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멀리서 작가 모두가 참석했다. 선정 출품 작가에게 청년프로젝트 내용을 지도 전달하는 것이다. 전시 진행에 작품, 공간 등 사전 조율작업에 의한 계획과 준비 내용이 굉장히 많다. 서울, 부산, 광주, 대구, 파주, 해외 작가 등 전시를 앞두고 작가와의 만남도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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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성공한 것이다. 프로젝트 사전 미팅은 필수적이다. 정보가 너무 없다. 홍보는?

이번이 10번째 진행인데 안타깝게도 인지도가 높지 않다. 해마다 기획 의도나 취지에 있어 홍보적 측면에서 미흡했던 것 같다. 이번은 신문, 방송, 미술 잡지, SNS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알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들이 본거지로 돌아갔 을 때 프로젝트 참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고 그것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 이 행사를 알리는데 큰 힘이라 생각된다. 참여하는 작가나 작품을 약간 설명을 해달라

꾸준히 작업해온 작가들이기 때문에 이번의 작업은 개인적으로는 괜찮다고 본다. 해마다 사진이나 영상 매체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이번에는 페인팅에 조금 더 비중을 뒀다. 중요한 건‘어떤 성과를 만들어 내는가’인데 긴 시간 출품 작가와의 미팅과 사전 행사 등으로 진행 하고 있다. 긴 시간 고뇌한 작품들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설치해야 하는 환경에서 생각대로 안 되는 부분도 있 을 수 있지만 작가와 감독의 협력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

1974년에 시작한 대구현대미술제를 기점으로 40년에 가까운 대구미술의 역사에서 굵직한 미술프로젝트가 없다고 본다. 무작정 다른 동네의 것을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청년미술프로젝트와 같이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 매김으로 대구 청년미술프로젝트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전파 되었으면 좋겠다.

ARTIST참여작가 송연주 청년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소감? 2016년 일본에서 유학할 때‘대구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전초기지였다.’라는 말을 들었다. 특히 당시의 대구 출신 젊은 작가들이 기성 미술계의 경직성에 도전하며 실험미술을 선보였다고 한다. 그 분들이 개최해 1974부터 1979년까지 개최한 대구현 대미술제에는 전국 각지의 작가들이 참여했다고 들었다.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나에게 대구는 전시를 해보고 싶은 선망의 장 소가 되었고 그것을 실현하게 되어서 행복하다. 일본을 중심으로 국외에서 활동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청년 작가들과 만나고 교류를 가졌


다.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조해 나가고 있는 청년 작가들의 열정과 한국의 미술 동향을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시 간이었다. 또한 상업갤러리 및 아트페어 등의 판매를 중시하는 자본의 틀을 벗어난 청년미술프로젝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티스 트로서의 생각과 이념, 문제들을 작품을 통해 표현해내며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작품 안에서 좀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 는 공간을 만든다. 이러한 진정성이 있는 전시가 관람자로 하여금 온몸으로 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작품 설명 바다 속을 테마로 하고 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수족관을 소개하는 방송을 보며 바다 속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스킨 스 쿠버가 취미인데 10년이나 되었다. 바다 속 끝없이 펼쳐진 세계와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생명체의 신비는 나에게 무한한 감동 을 주고 영감의 원천이 된다. 에메랄드 빛 바다 속을 조금 지나면 끝없이 펼쳐진 다른 세계가 있다. 이처럼 바다에 들어가면 조금 씩 수심의 깊이가 달라지면서 빛이 바뀌고 바다의 색도 변한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파란색이 모인 것 같은 경이 로운 푸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깊은 바다의 수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런 감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 같은 느낌과 양수에 둘러싸인 듯 따스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준다. 바다 속 신비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행착오 끝에 은박이라는 소재를 찾아냈다. 빛의 반응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 게 변하고 화학 반응에 의해 변색된다. 은박이 은백색에서 검게 산화되어 변색 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과 바다 속으로 깊이 잠수하며 느끼는 불안과 환희에 뒤섞인 감각은 매우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볼 때마다 변화하며 미묘하고 미세한 색상의 변화를 작품에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의 바다 속 체험을 가장 잘 재현할 수 있는 소재로 은박을 택했다. 은박을 사용한 표현은 단순한 시각 효과뿐 만 아니라 나라고 하는 카메라 필터를 통해서 표현한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바다 속 세 계를 간접 체험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 및 수족관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다 속 세계의 신비를 관람객에게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고 싶다. 나의 작품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비현실 세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또한 내가 바다 안에 이번‘대구청년미술프로젝트’을 통해서 일본 유학생활 동안 은박의 표현을 발견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창작활동의 가능성을 발견 하고 싶다. 앞으로는 그것을 위해서 새로운 소재와 스타일에 도전하고 지속적인 작품 연구를 통해 가능성을 넓혀 나가고자 한다.

심윤 作 _ performer in the forest _ 450.0x259.0_ oil on canvas _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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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느끼는 힐링을 작품을 관람하는 분들도 작품을 통해서 간접 체험 하고 힐링을 느꼈으면 좋겠다.


ARTIST참여작가 심 윤 청년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소감? 참여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 나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작품 활동을 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열심히 준 비한 활동이다. 젊은 청년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활성화 하는 전시가 되었으면 한다. 작품 설명 대구예술발전소에서‘LITTLE BOY’라는 개인전이 당해 11월 4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다. 청년미술프로젝트 전시도 이 기간에 같이 하게 되었다. 이번에 출품할 작업은‘LITTLE BOY’시리즈 중‘PERFORMER IN THE FOREST’라는 제목의 페인팅 작업 두 점이다.‘LITTLE BOY’는 폭탄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이 단어의 이중성에 흥미를 가지고 시작한 작업이다. 이를테면 군인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총을 들고 숲 속에 뛰어 드는 모습을 숲 속에서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연주자의 모습으로 바라보았던 나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 이다. 나의 작업에서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힘이 중요한데 그래서 비교적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작업을 한 다. 색이 이미지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 같아 제거한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 묵묵히 노력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어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러한 매체를 통해 지속적인 작업 활동을 보여 주고 싶다.

ARTIST참여작가 이재형 청년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소감? 대구청년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비슷한 연령대의 작가들과 대구에서 첫 전시를 가지는 것이 개인 적으로 의미 있다. 전시 기간 동안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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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고 대구 문화를 경험할 수 있 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작품 설명 ‘기계즉흥곡’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계 의 조화를 통해 나타나는 인공지능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다. 자연이 가지는 우연성을 통해 기존의 인공지능 예술의 한 계를 극복하고자 한다.‘오선’이 그려진 어 항과‘음표’로서의 물고기는 일정한 속도 로 스캐닝 되어 실시간 변화하는 악보를 만 이재형작가 _ 기계즉흥곡 _ 어항,금붕어, 모터, 피아노,PC, 스피커 _ 가변설치 _ 2017

들어 낸다. 물고기의 위치가 만들어 내는 음계는 피아 노를 통해 자동 연주되고 이에 어울리는 화

음이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연동되어 음악을 만들어 낸다. 인공 지능과 인간의 대결이었던 알파고와의 바둑과는 다르게 예술은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예술처럼 보이지만 결국 일정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컴퓨터에 자연의 우연성을 결 합해 예술가에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영감’이라는 개념을 인공지능에 부여한다. 미래의 인공 지능은 단지 컴퓨터의 발전만이 아닌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을 포함한 운영위원회 분들의 준비와 배려가 남다른 것을 느낀다. 청년미술프로젝트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에 일조할 수 있으면 한다.

인터뷰 진행 정리 손현민 취재기자 작품사진 작가제공


Photo Review 사진으로 보는 리뷰

석재 서병오 동아시아보묵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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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8. 10.30.(화) ~ 11.11.(일) 수성아트피아 전시관 10월 30일 오프닝행사에서 초람 박세호작가의 서예퍼포먼스로 전시의 시작을 알렸다.


INTERVIEW 인터뷰Ⅰ

대구 공연예술의 중심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계명대학이 성서로 본캠퍼스를 옮기고 난 뒤 다운된 집세등 의 이유로 가난한 연 극단체들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소극장을 만들기위해 대명동으로 몰려들었다. 자의적으로 발생된 일 이다. 그래서 대학로 못지않은 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밀집된 곳에 지자체나 대구시가 관심을 보인 것은 대명공연문화거리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서 서히 진행되고 또 최근 대명공연예술센터를 만들어 공연예술문화를 집결할 센터를 만들면서 부터이 다.

대명공연예술 센터장

김재만


연극인 김재만을 소개해달라

82년도에 연극이란 것을 처음 했다. 지역에서 20년 정도 배우생활을 하다가 연출을 하고 있다. 중간에 달성문화재단에서 행 정적으로 3년 간 일을 했는데 독자분들이 아실 만한 달성의 100대 피아노 콘서트를 기획해서 했었다. 대구문화재단에서도 10 년 정도 거리극을 하고 있는데 이상화 선생님의 고택 앞에서 일제 시대 때 대구시민의 저항정신을 보여주는‘빼앗긴 들에도 봄 은 오는가’이 시를 가지고 거리극을 만들어서 하고 있다. 현재는 대명공연연합회장, 대명공연예술센터장을 맡고 있다. 대명공연예술센터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가?

초창기에 대명공연거리가 만들어질 때는 연극인 몇 몇 사람들이 공연을 장기로 하다보니 극장을 대관할 곳이 별로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봉산문화회관이 만들어져서 거기서 했는데 대관료가 만만치 않아서 임대료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 때, 마침 대명동 계대 쪽이 빈 건물들이 나오고 슬럼화 현상이 일어나서 임대료가 싸서 소극장을 한 곳 씩 만들기 시작했다. 5, 6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연합회를 건설하고 이를 통해 활동들이 더욱 왕성해졌고 2년 전에는 대명공연거리를 서울 대학 로 거리처럼 만들어보자 하여 25개 단체가 출범해서 지금은 35개 단체가 여기에 모여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명실공히 대학 로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연장과 단체가 모여 있는 곳이 이곳이 됐다. 그 때 대명공연예술센터도 남구도심재생사업 의 일환으로 같이 오픈하여 새로운 문화생산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대명공연예술센터를 소개하자면?

사가 있는 전시관, 3층은 지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IT 체험관, 4층은 사무실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예산이 부족해서 설명을 해줄 수 있는 가이드가 없고 체험 컨텐츠도 매번 바꿔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연 극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의 많은 예술인들이 이곳에 모여서 활동하고 있기에 많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 센터장으로서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대명공연거리가 특화가 되려면 지역상가와 연계하여 시너지를 내야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프로 극단이면 자생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객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공연들도 극단들이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고 공연가동률도 올릴려고 한다. 올해는 특히 골목행사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차없는 거리도 조성하고자 하는데 음악도 준비되어 있고 조명을 이용해 거리를 꾸며서 거리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게다가 대명공연거리 자체도 더 확장해야 클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명덕지역, 영남이공대 정문 쪽을 연결하여 각 지역마 다 음악존, 연극존 등 특성화시켜 확장하면 새로운 컨텐츠가 만들어 지고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관광지 형식으로도 이용될 수 있을 것 이다. 그리고 극단의 어떤 사무실이든 개방하여 일반인들이 구경을 하고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여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 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물론,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 배우를 발굴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다들 영상 쪽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극단에서는 잠깐 배우고 간다는 생각으로 들어오는데 이해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순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연극으로도 성공할 수 있도록 스 타 배우를 키우려고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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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는 아카데미홀로 연극인 일반인 가리지 않고 예술 수업을 하거나 연습공간으로 쓰고 1층은 휴식공간, 2층은 대구 연극 역


대구공연, 뮤지컬, 음악, 연극등 모든 공연예술의 허브 역할을 할 대명공연예술센터 - 대명공연예술센터 2층은 대구공연장과 연극공연계의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관으로 이뤄졌다. 계단복도에 도 대구 출신 연극인들이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공연인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람 할 수 있도록 항상 열려있다. 단 지금은 예산 인력 부족으로 안내자가 항시 있지 않다.

연극인으로서의 소망과 앞으로의 계획은?

대명공연예술센터장은 올해 임기를 마치고 후배에게 이자리를 넘겨 줄 생각이다. 그래도 도울 수 있다면 서포터즈로서 지속적 인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센터가 예술인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분들에게도 문화센터로서 더 전문적인 기관으로 키워나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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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기초는 다 구성했다. 이제는 서울 대학로만큼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 11월에 홀로그램을 이용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에서 처음하는 시도인데 눈여겨 봐줬으면 한 다. 결국, 연극도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져서 결국엔 박물관 신세가 될 것이다. 대명공연예술센터가 변화의 중심지가 되어 화려한 부활을 알릴 것이다. 연극인 김재만이 대명공연예술센터장 김재만으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문화예술계에 대해 고민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예술가들은 배가 고 프다는 오랜 관습과 지역의 인재가 서울로만 몰리는 현 세태를 타파하고자 수 많은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 지금까지 대구 연극계는 지 원사업으로 연명해왔다 . 그러나 결국은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 돈을 지불하고 티켓팅을 하는 관객은 냉정하기 때문이 다 . 대구 연극계는 그 티켓팅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있을까 ? 그러기엔 지금의 대구 연극계는 실력이 없다 . 그러나 생길 수 있다고 단언 한다 .

인터뷰 진행 정리 양준혁 취재기자 사진 조성희


Photo Preview 사진으로 보는 프리뷰

신상욱 조각展

2018. 12. 4(화) ~ 12.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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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space 10 paper 12x34x16cm 2018

2018. 12. 4(화) ~ 12. 9(일) 수성아트피아 멀티아트홀

기하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익숙함의 낯선 결합을 통해 건축공간이나 도시공간과의 생소한 만남과 소통을 지향 하는 신상욱의 개인전이 수성아트리아 멀티아트홀에서 열린다.


INTERVIEW 인터뷰Ⅱ

Scene of piano 피아노, 그 음악 속 장면을 느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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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박

소현


대구문화재단 2018 청년예술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난 3일 대구콘서트 하우스에서 첫 독주회를 가진 피아니스트 박소현. “Scene of Piano”라는 부제로 명장면들이 숨어있는‘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곡들로 청중에게 감동을 선물한 그녀의 음악과 피아노 그리고 젊은 음악가로서 열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떤 피아니스트이고,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사람인가?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대구를 빛내고 싶은 지역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하고 싶다. 경북예고 장경심 선생님, 경북대 음악학과 정욱 희 교수님께 사사 받으며 대학까지 계속 대구에서 공부하다가 서울대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그곳에서 굉장히 좋아하고 존경하는 최희연 선생님께 사사 받으면서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했고,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쾰른 국립 음악대 학에서 Sheila Arnold 선생님 밑에서 피아노 솔로를, Robert Kulek 선생님 밑에서 실내악을 공부했다. 귀국한 지 딱 2년 되었고, 경북대 대학원 박사 과정 휴학 중이고 출강을 나가고 있다. 올해 경북예고, 경북대학교를 같이 졸업한 후배들과 실내악 연주 단체 ‘트리오 베아트리체’를 결성해 올해 6월 대덕문화전당에서‘수작 콘서트’에서 연주했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나?

래식을 즐기는 집안이었다.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접했고 동네 학원에서 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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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를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플루트를 전공하던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

Sa:Gak

어머니가 피아노를 좋아하셨다. 태어나기 전부터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클

다. 그 친구와 짝꿍으로 다니며 생활을 공유하고 연습실까지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피아노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교육과정을 거쳤는데 교육에 대한 열망이 큰 편인가?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열망이 클 뿐만 아니라 교육의 가치도 중요하게 여 긴다. 교육이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까 공부 하는 것도 좋아하게 되고, 박사까지 하게 되었다. 남을 가르치는 것도 공부에 영향을 끼친다. 외래교수가 된 것은 귀국 이후지만 대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나로 인해 학생들이 작은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를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교육자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지만 후대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으면 한다. 독일로 유학을 떠났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서울대 대학원에서 최희연 선생님을 만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희연 선생님은 독일 음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구사하려고 노력하는 분이다. 그 분의 밑에서 공부하면서 독일 음악의 정수를 알고 싶었고 공부하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되어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사각인터뷰 2

귀국 이래로 대구를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도시는 본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태어나고 자랐고 학창시절의 절반을 보냈기 때문에 편한 도시다. 하지만 좋은 음악가들이 많이 활동하기 때문에 안주할 수 없다. 대구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 지원이나 해외 활동 지원의 경우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기 때문에 늘 열심히 도전하고 노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 자극을 받고 있다. 대구문화재단의 지원은 어떠한가?

음악을 하는 청년예술가로서는 정말 최고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은 물론 연주회 홍보 나 필요한 준비를 최대한으로 해준다. 이번 여름에 해외 활동 지원도 받았는데 귀국해서 활동하다 보면 다시 해외로 나가기가 쉽 지 않다. 재정적인 부분이나 스케줄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다. 11월 3일에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독주회를 열었다.‘Scene of piano’라는 부제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 공연은 대구문화재단에 청년예술가 공모를 내면서‘아이디어를 담은 시리즈 연주’로 기획했었다.‘어떤 연주가 한 맥락 속 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연주도 한 주제를 관통한다면 전공자 뿐만 아니라 애호가나 비전공자도 접근하기 에 좀 더 쉬울 거라는 생각을 한다.‘Scene of piano’는‘영감(inspiration)’시리즈의 첫 번째 공연이다. 어떤 풍경이나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경우가 상당하다. 1부에서는 드뷔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프렐류드 5곡을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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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해 연주한다. 이 곡들은 명확한 제목이 있고 그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2부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 타케 미츠 토루의‘Rain Tree Sketch Ⅱ(1992)’와 슈만의‘빈 사육제의 어릿광대’를 연주한다. 어떤 주제를 부여해 클래식의 저편을 넓힐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Inspiration 시리즈’는 4~5번의 시리즈로 구상하고 있고, 내년에는 춤곡에서 온 연주 를 생각하고 있다. 클래식의 저편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중인데 클래식은 어떻게 접근하면 좋은가?

클래식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편안함이다. 모든 곡이 다 편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접하기 쉬운 곡들이 많다. 곡을 들 으면서 각자 원하는 감정으로 감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몹시 화가 난 사람이 길을 가다가 슬픈 음악을 들었는데 위안을 받을 수 도 있고 화난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감정에 좀 더 의존해서 클래식을 듣기 시작하면 좀 더 다른 것도 궁금해지지 않을까 생각 한다.

인터뷰 진행 정리 박현정 취재기자 사진제공 박소현


Photo Review 사진으로 보는 리뷰

나 현 바벨 - 서로 다른 혀 展

2018.10.23. ~ 2019.01.13.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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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 NAHYUN 바벨 - 서로다른 혀 The Babel-Different Tongues 2018 어미홀 프로젝트 작가는 서로 다른 언어라는 형벌로 귀결되는 바벨탑의 역사가 오늘날 다원화현상으로 반복된다고 주장하며, 난 지도와 악마의 산에서 서식하는 식물과 탑의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위에 인간이 만들어낸 경계를 초월한 귀 화 식물들을 드로잉하였다.


특별기고

누구도‘대구 미술’을 말하지 않는다. SPECIAL COULMN 김결수 | 전시기획자 화가

주택, 아파트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안전상의 문제와 환경개선 차원에서 재건축을 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의 지혜이 고 건강한 삶이다. 대구로 미술 대학을 진학한 이 후 줄곧 여기서 정확히 34년을 살고 있다. 미술계의 한사람으로서 분명 희로애락이 있다. 과거 대구미술이 지역성의 한계를 떠나 중앙 작가들과의 정보교환 및 작가교류를 꾀하며 지역 현대미술제의 흥행으로 인해 지역 미술의 고립을 풀고 대외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구미술은 역사적으로 과거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가치, 시대적 미술 변화에 충분히 기여한 풍부한 정신적 표현을 역사적 배경 에 남겨두고 지금 우리는 그 가치를 가꾸고 빛내며 작가 자신의 창작 활동에 큰 의미와 대구미술환경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 전으로 또 다른 창출이 필요한 때이다.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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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구 미술환경이 어떠한가? 참으로 참담하다. 한 가정으로 본다면 집에 불이 나서 보금자리가 완전히 소멸된 폐허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지경과 다를 바 가 없다. 지난 세월 대학교수는 대단한 권위로 최고의 존경을 받는 시절이 있었고 예술의 진정성과 값어치가 인품과 작품이 아닌 자리 의 권위로 인해 미술협회장을 하고 협회장을 하면 예총회장 도전과 미술관 관장자리를 탐내며 대구미술인들의 권익과 복지완 무관한 개인의 이익과 창달을 위해 요리 조리 찾아다닌 지난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가 얘기했다. 지금의 현실에 적폐청산이 정치계와 사익을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자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대구미술환경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보아 지금의 현실에 동조하고 있는 우리들이 적폐청산 대상이라고 개인적으로 100%공감하는 얘기다. 과거 대구의 현실은 나쁘고 옮음을 판단할 줄 알고 염치를 알기에 진정 대구미술을 생각하며 개개인의 작업으로 순수함을 잃 지 않았고 분명 현실미술의 칭찬과 호통을 같이한 인사들이 있었다. 예술단체장이 되면 미술인들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대구미술발전을 위해 이한 몸 바치겠다며 흥언할 감언이 설로 우리 미술인들을 속여 온 꼴이 한해 두해가 아니었다. 헌신하고 희생할 자리에 회장 완장차고 꽃 달고 폼 잡고 사진 찍기 시작하면 연임은 당연사고 3번, 4번 하물며 십년을 넘게 자리보존하며 내가 아님 누구도 할 수 없다, 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래도 대구미술인 누구하나 의견을 개진 하고 바로잡는 사람이 없다. 술자리 끼리끼리 모이면 취중에 호기삼아 떠들어 보지만 화장실서 방귀뀌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미술인들 각성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언제부터 우리 미술인들이 시비, 국비를 받아 살았는가?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지원프로그램에 정당하게 지원해서 투명한 결과에 따라 이루어지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돈 앞에 쩔쩔매고 행정에 굽신거리는 현실이다. 항상 미술행사는 일부 진행자들에 의해 작가들이 잔치 집 담 넘어 서성이는 꼴 이고 외부인들이 잔칫상을 받아 희희낙락 하는 모습이 과거보다 더 심각하기에 오죽하면 대구에서는 여러 행정 관료들이 미술 인들 다루기가 제일 쉽다는 소리에 혀가 찰 따름이다.


보라! 지금의 대구미술환경을, 얼마 전 진행된 강정현대 미술제에 대구지역 환경단체와 일부 미술계 인사 들이‘<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4대강 미화사업’이라며 개최 철회를 주장 퍼포먼스를 하며 여러 언론 매체를 활용하였고 여기에 언론 기관들은 정확한 사실도 모르며 이리 저리 퍼다 나르기에 바빴다. ‘오비이락’인가(?), 한해 두해 진행된 프로젝트가 아니다.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1970년대 젊은 작가들이 암울한 시대정신을 앉고 전위적이고 미술실험을 펼쳤던‘대구현대미술제’의 장소성이 지역명‘강정’이다. 이러한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로 대구에서 진행되는 여러 미술의 프로젝트에 <현대미술제>제목으 로 진행되었고 강정현대 미술제는 어찌되었던 이어져 오고 기획자의 의지로 조금씩 발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구작가와의 표절 소송이 진행 중인 작가가 작품을 출품한데 대한 정당성과 군가요제가 개막식과 동시 진행으로 조금의 논 란거리는 있었지만 그래도 설치미술이 진행되는 기간 내내 밤낮으로 발 디딜 팀 없이 대구시민이 관람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하였 다. 대구미술관으로 가보자. 대구미술관‘영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선정 출품한 모작가의 표절시비로 법적 분쟁이 진행되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 당시 미술관관장을 비롯해 큐레이터, 운영, 추전, 심사 등 관계위원들의 나는 모른다는 행태로 흘러 공모에 의해 작품을 출품한 한 청년 미술가는 예술의 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아직도 허공을 해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는 어떠했는가? 청년미술프로젝트 출품 일부 작가들이 출품작 사전작품 검열이라 울분을 토하며 행사장 입구에서 블 것 역시‘오비이락’인가(?) 올 해 대구미술관 관장 공모에 1, 2차에 걸쳐 전국적으로 23명이 면접에서‘적격자 없음‘으로 판결난 후 아직까지 관장 공석에다 이인성 미술상의 매끄럽지 못한 진행으로 이리 저리 어수선하다. 뒤이어‘대구예술발전소’를 시작으로 내부가 꿈틀 꿈틀 하더니만 터졌다, 운영부실과 입주작가 선정 문제, 공사발주에 따른 이권 개입 등으로 시작되어 자체 감사를 진행하며 개그를 하더니만 결국 대구 문화재단 식구들의 이전투구식 진흙탕 싸움과 내부고발자등으로 일부 내용이 언론에 타켓트로 보도되더니 급기야 청와대 청원에 까지 올리는 사태로 대구문화재단전체가 폭파 직전인 것 같다. 누가 문화 권력이라 했든가. 잘 한일 열 번도 잘못된 일 한번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일련의 일들에 대해 대구 예술인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달라 질것인가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현재, 어느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아니 개인이 의견을 제시하고 떠든다고 될 일인가? 아무나 나서서는 그들의 행태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도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문제가 생기면 마을 대표가 나서고 나라가 어지러울 땐 여러 분야의 지식층들 이 나서지 않았던가, 꽃 달고 가위질하며 폼 내며 축사, 인사말 하던 사람, 그토록 내가 아님 안 된다고 외치던 미술계 지식인들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래서 나이를 불문하고 개인 이익 창출을 위해 양지만을 찾는다는 볼 맨 소리로 우린 서로에게 험담을 하지 않았던가, 내 목에 방울을 달기가 누군들 쉽겠는가, 그래서 미술인 개개인이 권한을 위임해 힘을 싫어준 여러 관변단체, 순수단체들이 존재하는 것이 고, 미술인의 세계에는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들이 더 달라져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쉽다.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가장 힘든 분야가 농사짓는 사람이다. 당장 대구미술환경은 가물어서 땅이 갈라지고 예술의 새싹이 자라나기에 힘든 환경이다. 대구 미술인 모두가 하나 되어 장대비가 내려 대지를 적시도록 기도하며 새싹들에게 골고루 물을 적시는 행위만이 근, 현대를 아 울러 대구미술의 역사 앞에서 현재에도 미래에도 간직해야할 정신적 힘으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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랙리스트 퍼포먼스 시작으로 1인 시위를 돌아가며 진행하여 대한민국 미술계가 대구미술의 현실을 안타깝게 지켜보게 하였다. 이


Column | 음악이야기

티켓파워를 가진 다는 것. 전편

부제 공연팀의 홍보법

SERIAL COULMN 송 힘 | 힘즈뮤직대표

공연의 3가지 과정은 기획, 연출, 마케팅이다. 3가지 모두 다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그 중 가장 힘든 일을 고르자면 마케팅 일 것이다. 마케팅 업무를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티켓을 파는 것 이다. 전통적으로 티켓을 파는 형태는 두 가지이다. 지인에게 부 탁해서 파는 것과 홍보를 보고 구매자가 자연스럽게 티켓을 구매 하는 것이다. 첫 번째 티켓판매 형태는 공연팀을 막 시작하는 팀 이라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한다. 이럴 땐 지인들도 기꺼이 티켓 을 구매해 준다. 클래식공연팀 같은 경우에는 1년에 한 번씩 정 32

이기에 지인판매가 쉽게 이루 워 진다. 거기에 더해 클래식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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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표회, 정기연주회 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한다. 1년에 한 번 팀은 인원도 많고 멤버들 거의가 레슨을 하고 있어 제자들이나 학부형들에게 까지 티켓 판매를 할 수 있다. 문제는 공연을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자주하게 될 때 생긴다. 레퍼토리와 실력 있는 게스트 연주자와의 콜라보 등 이전 공연과 완전 새로운 공연을 만든다고 해도 지인판매는 공연의 횟수가 늘 어날수록 급속도로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럼 남은 건 우리의 공 연을 정말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티켓을 사게 하는 것이다. 이 제부터가 진짜 마케팅 시작이다. 마케팅의 시작은 우리가 공연을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부터이 다. 그 업무의 가장 기본은 포스터와 리플렛을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부착하거나 비치하는 것이다. 기본이지만 가장 중 요하다. 요즘 대구에서 가장 핫한 포스터 부착 장소는 김광석 다시그리

송힘뮤직에서 기획한 유재하 클래식콘서트 -비아트리오가 출연한다.

기 길이다. 포스터를‘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에 붙였다면, 그 다음은 SNS에 올리는 것이다. 공연팀이라면 SNS 활동을 필수적으로 해야만 한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늦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SNS를 시작하고 친구들을 늘려라라고 말하고싶다. 적은 관객을 위한 공연일 땐 SNS 홍보만으로도 인원을 채울 수 있다. 진짜다. 경험담이다. 공연 날이 2주 정도 남았을 때 공연홍보내용을 A4 용지 한 장 정도로 채우고 포스터사진과 함께 지역의 언론사에 메일로 보낸다. 메일주소는 각 언론사에 전화를 해서 문화담당 기자를 찾고 이렇게 말해라. 언제 공연을 한다. 메일주소를 알려주면 그 내용을 보


내드릴 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100% 메일주소를 가르쳐 준다. 꼭 대구, 경북언론사에 모두 보내라. 최소한 3군데 이상은 실어 준다. 공연 후 남는 건 사진과 신문에 실린 것이다. 이 신문에 실린 것이 다음 공연팀이 행사 섭외를 당할 때 어마 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행사섭외담당자는 섭외팀에 대한 것을 포탈검색을 통해 확인한다. 검색했을 때 뉴스에 연주팀의 내용이 나오면 연주팀의 신뢰 도가 급상승하게 된다. 한가지는 지역 라디오인터뷰와 티켓이벤트를 연계할 수 있다. 방법은 먼저 지역의 라디오 중 우리 공연을 소개 해줄만한 프로그램을 찾아야 한다. 인디는 MBC 정오의 희망곡, MBC FM음악 여행이 있고 클래식은 KBS 노래의 날개 위에 가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메일주소로 언론사에 보낸 것처럼 홍보자료를 보내면

‘TBC 청춘버스킹’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섭외 요청도 필수이다. ‘TBC 청춘버스킹’은 대구·경북지역 아티스트들의 보물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30분간 연주팀의 단독공연과 인터뷰를 찍어 대 구·경북 전역에 재방송 포함 두 번을 방송해 주고 방송한 영상과 미방송 영상까지 곡단위로 잘라 유투브에 올려주기 까지 한다. 그래서 인디연주자들이 지원사업등의 제출용 영상이 필요 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심지어는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면 개인 메 일로 HD 영상급으로 보내주기 까지 한다. 비교를 하자면 다른 방송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획공연 홍보를 열심히 하면 부수적으로 행사섭외가 늘어나게 된다. 안하던 홍보를 해서 그렇고 신문과 방송에 언급이 되면 연 주팀에 대한 지명도가 달라진다. 여기까지 돈을 들이지 않는 홍보 방법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말 이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일을 먼저 시작한 입장에서 보면 공연을 멋지게 했는데 이후에 증명되어지는 인터넷 검색 한 줄이 없을 때 안타까움을 느낀다. 꼭 기억하라 공연을 마치면 사진도 남기고 인터넷에 검색되어지 는 뉴스 한 줄도 남겨야 한다. 돈을 들인다면 좀 더 신중히 투자대비 효과에 신경 써야 한다. 예전에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TV 스팟광고 였다면 현재는 전 광판 광고와 가로등배너 광고이다. 둘 중에서 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가로등배너 광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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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꼭 회신 받을 전화번호를 남기는 것은 필수이다.

(후편은 다음 호에 계속 )


Column : 미술담론

Oh my clouded mind, and heavy heart SERIAL COULMN 조준호 | 갤러리 분도 협력큐레이터

‘사각’은 나에게 특별히 어떤 주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미술이라는 키워 드를 가지고 얼마든지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오히려‘이런저런 이야기를 다루어야만 할 것 같다’고 틀을 씌우는 것은 내 쪽이다. 아마 내가 읽어왔던 칼럼들을 떠올리며 그와 비슷하게 써야지만 남들에게 이 글도 칼럼처럼 보이리라 생각해서겠지만, 그렇게 흉내를 내본들 아무런 재미도 의식도 없는 그저 그런 글이 될 뿐인데 바보같이 왜 그랬을까. 어느새 미술을 대하는 것도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나보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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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에 참가했던 KIAF에서 마이클 스코긴스(Michael Scoggins)의 작업을 보곤‘아!’하고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냈다. 연습장에 낙서처 럼 끄적여 놓은 그의 작품은 매력적인 반항아를 만난 것 같았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의 작품은 Mind and Heart. 뜯겨진 커다란 연습 장에 적힌‘Oh my clouded mind, and heavy heart.’라는 글귀가 가슴 한구석에 꽂혀버렸다. 어째서 난 이 작품을 마주하고 지난한 나 의 연애사를 떠올렸을까. 잠깐 사적인 이야길 꺼내면, 나는 지난해 이별의 씁쓸함을 맛본 뒤 지금까지 새로운 연애를 안(못)하고 있다.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 는데,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이별에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

Michael Scoggins, mind and heart, graphite, colored pencil on paper, 170x129cm, 2014

각하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연애에 쉴 틈 따위 주는게 아 니라고 하지만, 글쎄 이별 역시 제대로 소화해서 보낸 후에야 다음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 줄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지금 그 시간 이 무척 길어지고 있다는게 함정이지만. 흐린 마음과 무거운 가슴이라니…,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 작품은 하여간 상당 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마이클 스코긴스의 작업은 그저 큰 연습장에 몇 글자 적어놓았을 뿐이다. 아니면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두었거나. 사각의 캔버 스는 보이지 않는다. 흥미가 생긴 난 녹색 검색창을 뒤졌고 함께 참가한 g.gallery에서 있었던 그의 전시를 찾을 수 있었다. 굉 장히 매력적인 전시를 놓쳤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에 대한 짤막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작가는 직접 만든 거대한 연습장에 자 신의 고민이나 메모, 낙서들을 담아았다. 일하다가 공부하다가 순간순간 끄적인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전형적인 팝아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스코긴스의 작업은 보이는 그대로가 다이기 때문에 구태여 어떤 의미나 해석을 찾을 필 요는 없다. 단순한 형태와 논리로 이런 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지점으로 관람객들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위에서 이야기한 이렇


Michael Scoggins, 전시모습 _ 출처 작가페이스북

게 저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 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왜 안돼? 라는 지점에서 시작했을 그의 작업이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의 공 감을 이끌어내는 반전매력을 뽐내고 있다. 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모두가 가지고 있는 평범함을 매개로 다가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연습장에 그린 그림을, 메모를 작업으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보통은 습작이나 의미 없는 낙서 정도로 여기고 묵혀뒀을 것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발전시키다니.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을거란 두려움은 없었을까. 과연 그가 우리나라에서 자 랐어도 가능했을까. 우린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접해온 것과 다르면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을까봐 걱 정부터 한다. 그런 식의 교육제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우리는 겁이 많다. 최 근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한 내 옆에서 작곡을 공부하는 수험생이 선생님께 혼 나는 일이 있었다. 모든 조성음악은 도에서 시작하면 도로, 솔로 시작하면 솔로 끝 나야 끝맺음의 느낌이 드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새삼 입시제도의 갑갑함이 몰려왔고 안타까웠다. 그림은 왜인지 사각의 캔버스에 그려야만 할 것 같고, 음악은 시작한 음과 같은 음 으로 끝나야만 한다는 틀을 가진 채로 우리는 대학생이 되고 사회로 나와 예술 활동 을 한다. 그리고 그 틀을 벗어나는 작업물을 만나면 배척하거나 경계하는 소위 꼰대 마인드를 발휘해버리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근래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 중 마 이클처럼 톡톡 튀는 작업을 한 작가를 만나보지 못했다. 내 시야각이 여전히 좁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무척 아쉬운 일이다. 오 나의 흐린 마음과 무거운 가슴이여.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인 난 오늘따라 귀 에 착착 감기는 로꼬의‘시간이 들겠지’를 들으며 이만 줄인다. Michael Scoggins, Red Hot Riding Hood, artist crayon colored pencil on paper, 170x129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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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전시리뷰

‘대구 뉴-바우하우스’전을 관람하고 2018. 10.10 ~ 12. 9 SERIAL COULMN 대구예술발전소 김경란 | 독립큐레이터

<대구 뉴-바우하우스>전이라는 제목이 너무 거창해서일까 필자가 기 대를 너무해서일까 이 거창한 제목이 다소 아쉬웠다. 그리고 바우하우 스란 말 자체가 실용미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실용미술이 어디에 도 보이지 않았다. 작품 하나, 하나는 다 괜찮은 작품들이었다. 좋은 작 품을 하나로 묶는 전시로서의 역량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대구 뉴-바우하우스>전의 시작 입구에는 최민규의 작업이 있었다. 볼트와 너트로 구조물을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이었다. 건축물처럼 보 36

도 들어있지 않다. 작가는 목적이 모호해진 이 공간을‘Blank/H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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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만 건축물이 가지고 있어야할 문, 창문, 면, 벽 등 어떠한 구성요소 라고 지칭한다. 어떤 것도 아닌 상태이지만 관람객의 상상력에 따라 무 엇으로도 탈바꿈할 수 있는 공간이 작가가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의 경우는 구성주의자인 타틀린의‘제 3 인터내셔널’과 유사한 면이 있어 재미있게 감상할 수가 있었다. 마치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이 추상회화 를 통해 정신성을 추구하는 대신에 실용적인 기능을 추상회화에 접목 시킨 것과 같이 작품이 실용성을 탐구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또 흥미로운 작업은 정기훈의‘광원연구’였는데 기계적 파장이 작품 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광원연구’는 녹화된 자연광 을 프로젝터로 투사하고 여기에는 식뭉의 생장에 필요한 빛의 삼원색 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생물의 성장이 기계적으로 가능한 것인

상) 최민규작가 _ Blank/Hide 하) 정기훈 _ 광원연구

지, 그렇다면 이러한 제시가 자연적인 것이라고 여겨도 되는지 등에 대 해서 의문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다. 실용미술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이 작품이 다였다. 주제에 가장 부합되는 작업이라 더 좋은 작품처럼 느껴졌다. 김민수의 작업은 인간의 안녕과 번영을 추구하는 실용적인 민화에서 따와서 작업을 한다. 동양사상에 기반을 둔 작품으로 치우 천왕, 염라대왕 같은 상징들은 원더우먼, 배트맨과 같은 서양 캐릭터가 함께 만나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이 작품도 실용성이 라는 측면에서 부합하는 작품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편인 것 같다. 2~3 작품을 빼고는 실용성이라는 측면을 부합하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작품 하 나, 하나는 다 좋은 작품들이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얼마 전, 예술발전소를 둘러싼 여 러 가지 논란들이 있어서인지 공석인 소장의 자리가 왠지 더 허전해 보인다. 하루 빨리 빈 자리가 채워져 더 좋은 전시를 많이 보 여줬으면 한다.


Column : 미술과 놀기

편의점에서 미술 SERIAL COULMN 장 민 | 디자이너

음식은 누가 뭐래도 맛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 요즘 같은 시대에는 비주얼을 포함한 분위기 등의 감성적인 측면들을 빼놓고서는 더 이상 요식업계를 논할 수가 없게 되었다 . 사진이 주를 이루는 소셜네트워크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요 즘 요식업계들은 맛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감성적인 측면에 더욱 초점이 맞춰 져있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이 든다 . 나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비자 중 한 사람인데 , 얼마 전 SNS 에서 우연히 본 광고에 오뚝이 진라면과 호안 미로의 컬래버레이션이라 는 다소 괴상한 조합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탓에 , 평소에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편의점에 들러 진라면을 구입해서 부엌 한 편에 놓아두게 되었다 . 물론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아예 뜯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 만. 이런 비슷한 시류가 요즘 들어 하나 더 있는 게 바로 롯데주류의 캔맥주 피츠 와 미국의 팝 아티스트 케니 샤프의 컬래버레이션이 그것이다 . 내 생각에 이 건 롯데 뮤지엄에서의 케니 샤프 전시에 관련된 계약의 연장 선상 중 하나라고

상) 진라면 과 호안미로의 콜라보로 바뀐 진라면 패키지 하) 피츠맥주도 케니샤프의 콜라보로 패키지가 예술작품이 됐다.

보는데 , 맥주는 내가 평소에도 매우 좋아하고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대표적인 소비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또한 흥미 반 필요 반으로 인해 출시 이후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피츠 맥주를 구매하게 됐다 . 사실 진라면도 그렇고 피츠 맥주도 그렇고 평소 내가 선호하고 소비하던 브랜드의 제품들은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재화들을 소비하게 만든 것들은 호안 미로와 케니 샤프라는 브랜드들 때문이다 . 나는 단돈 몇천 원으로 에스파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호안 미로와 현재 세계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팝 아티 스트 케니 샤프의 예술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 미술이라는 게 예로부터 귀족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의 문화이며 대중과는 다소 관계가 없지 않나라는 인식이 통상적이던 시절이 있었다 .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도 전시문화가 활발해짐에 따라 미술이라는 장르가 많이 보편화되었고 , 미술이라는 콘텐츠에 대 한 진입장벽이 많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 그리고 이제는 대중성을 대표하는 소비재들 중 하나인 캔맥주와 봉지 라면에서도 초현실 주의 거장의 감성과 잘 나가는 뉴욕 출신 팝 아티스트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 . 더 이상 미술이라는 게 소수의 누군가를 위한 문화가 아니게 된 것이다 . 나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흐름에 대해 기분 좋은 변화로 인지하고 있다 . 미술을 포함한 예술적인 가치들이 대중화가 되고 그에 따 라 우리 국민들의 사유가 늘어갈 테니까 .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 예술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을 감히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 누구나 가슴속엔 한 편의 시가 살고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 앞으로는 봉지 라면 , 캔맥주 . 그리고 생수 , 화장지에서까지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 길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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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대중음악

유년기, 더 클래식 SERIAL COULMN 황희진 | 매일신문 기자

유년기는 예술에서‘순수’를 표현하기 좋은 소재다.‘동심’은 예술을 대하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또 애잔하게 만들고, 그 자체로 애정 어린 눈길을 모은다. 또‘추억’으로 다가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작은 역 사 기록의 역할도 한다. 유년기는 예술 활동의 좋은 동력이 아닐까. 대중가요계에도 그런 동력을 지닌 뮤지션이 있다. 김광진과 박용준의 듀오‘더 클래식’이다. 사실 이들의 디스코그래피는 유년기의 흔적들로 채운 모자이크다. 우선 14년만의 신작이었고 이젠 4년 전 앨범인데다 여전히 그들의 최근작인 미 니앨범‘메모리 & 어 스텝’(2014)부터 살펴보자. 첫사랑을 다룬 타이틀곡‘우리 에겐’보다 더 귀를 끄는 곡이 있으니, 바로‘종이피아노’다. 노랫말은 이렇다. ‘골목길 돌아 높은 담 피아노 소리 따라/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어 오던 작은 소년/ 살며시 눈을 감으면 꿈을 꾼단 말야 무지개 빛 서툰 멜로디/ 갖고 싶던 것 보고 싶은 사람들 가득 담긴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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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피아노.’ 상투적으로 해석해보면,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께서 사주지 못한 피아노 대신, 소년은 종이에 피아노를 그려 멜로디를 쳤다. 형편이 어려워서나 아니면 다른 제 약들 때문에, 유년기의 우리는 종이피아노처럼 서글프고, 서럽고, 서툰 감정을 담은 무언가를 서랍에 넣었다 꺼냈다 만지작거리지 않았던가 말이다. 어른이 된 지금 보면 별 것 아닌데, 그땐 그게 그렇게 소년과 소녀의 삶을 요동치게 만들었 다. 더 클래식의 3집 해피아워(1997) 수록곡‘해피아워’(부제‘꺼벙이의 일기’)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유년기를 추억하는 곡이다. 가사 첫 부분은 이렇다. ‘나 어느새 어른이 되었지/ 내 마음대로 된 건 아니야/ 요즘 왠지 우울해/ 아쉬웠던 그 시간 들 되돌리고 싶어.’ 마치 영화‘빅’(1988)에서 하룻밤 사이 마법처럼 어른이 됐지만, 이후 어른의 현실에 찌들어 살던 조쉬(톰 행크스)가 다시 개구쟁이 꼬마로 돌아가길 바라는 대

상) 더 클래식-미니앨범‘메모리 & 어 스텝(2014) 하) 더 클래식-3집 해피아워(1997)

사 같다. 이후의 노랫말은‘어울리던 두 녀석 삼총사라 맹세하고 몰려 다녔었지’ ‘여드름이 솟아나던 그 때엔 농구공 하나면 하루가 갔어’ ‘자율학습 끝나 고 괜히 슬쩍 지나치던 여학교 정문 앞’등 유년기의 에피소드들을 조곤 조곤 스케치한다. 요즘 아이들은 몰려 다니는 시간이 더 많을까 교실에든 학원에든 몰려 갇혀 있는 시간이 더 많을까 궁금하다. 농구공 하나로 하루 를 소진하는지, 컴퓨터 키보드 및 마우스나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소진하 는지도. 자율학습은 요즘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하니 얼핏 보기엔 저 영화‘빅’(1988)의 명장면 주인공 조쉬(톰 행크스, 오른쪽)


더 클래식-2집 여우야(1995) 더 클래식-1집 마법의 성(1994) 김광진-지혜(2017)

노래가 나왔을 때보다 아이들의 세상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의 부모들은 그 시간에 아이들을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더 클래식이 해피아워를 부르던 시대의 참말 해피(행복)한 아워(시간)는 다신 오지 않을지도. 2집 여우야(1995)는 학원`과외`숙제에 지친 요즘 어린이들이 열렬히 지지할 만한 곡을 수록하고 있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노 는게 남는거야‘. 이 곡은 좀 더 커서 취업에 끙끙 앓는 젊은이들도 대변한다. 이 노랫말이다. ‘어려서는 뛰어 놀아라 튼튼해지도록/ 젊었을 땐 나가놀아라 신나게.’ 놀아야 하는 나름 설득적인 이유도 제시한다. ‘실력 발휘하려면 긴장해서는 되는 일이 없어’라며‘중요한 그날이 올 걸 기다리며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한다고. 백번 옳으신 말씀! 학부모님들 듣고 계십니까? 그리고 1집 마법의 성(1994)의 타이틀곡‘마법의 성’은 당시 14세로 유년기였던 백동우 군이 부른 버전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럴 만도 했다. 노래는 결국 만든 사람만큼 부르는 사람이 중요한 것인데,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더 클래식 멤버 김광진의 나이는 서 른, 그러니까 이제 막 아저씨였다. 그래서 객원 가수 기용은 꽤 탁월한 마케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마법의 성은 순백의 순 수를 표현해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입증한 희대의 명곡이다. 그런데, 마법의 성 노랫말 중 이런 게 있다.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거라고/ 두손을 모아 기도했죠/ 끝없는 용기와 지혤달라고.’ 20여년 전 공주를 구하기 위한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했는데, 여기서‘지혜’는 더 클래식 멤버 김광진이 최근 솔로로 발표한 신곡 ‘지혜’(2017)와 묘하게 연결된다. 앨범 소개글에서 발췌해보면 이렇다.‘지혜는 찾 아야 하는 여인의 이름일수도 있고, 세상을 살아 나가기 위해 구해야 할 지혜로 해석 될 수도 있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혜의 노랫말도 마법의 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1994년엔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에서 구출한 공주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그런데 2017년엔 좀 잘 안 풀리는 듯하다. 가사 한 구절은 이렇다.‘널 구해야 해 널 찾아야만 해/ 엉킨 실타래 풀어줄 널 소중한 널 이제/ 널 놓친다면 널 지나친다면/ 사라져 버려 남겨진 시간/ 아무 소용없어 내겐.’ 마법의 성의 어른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광진이 지혜와 함께 발표한 또 다른 곡‘배다리’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배다리 는 김광진이 태어나고 자란 인천의 한 동네 이름이다. 그런데 요즘은 주변에 신도시 가 개발되면서 활력을 잃고 황폐해져버렸다. 그래서 김광진은 이제 더는 자신의 유 년기를 마냥 밝게만 추억하지는 못하는듯하다. ‘세월 지나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를 찾아 떠나네/ 음…음…떠나네.’ 더 클래식 멤버 김광진(왼쪽), 박용준. PR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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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온 편지

Le bonheur d’un collectionneur d’art sur les rives du Bosphore 보스포러스 (Bosphorus) 유역의 미술 수집가의 행복 www.istanbulmodern.org www.peramuzesi.org.tr www.sakipsabancimuzesi.org www.elgiz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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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lle dʼİstanbul est devenue tentaculaire. Depuis le hublot de lʼavion, on nʼen voit pas la fin. La mégalopole compte 20 millions dʼhabitants. Ce qui ne change pas, cʼest la mer. On entre dans lʼhistoire dʼİstanbul par le Bosphore. Entre le patrimoine des palais ottomans, les mosquées, seulement quatre musées privés dʼart moderne et contemporain ont pris place dans le paysage historique de la mythique ville turque. La collection du Sabancı Museum est abrité dans la demeure cossue de son propriétaire, qui offre la vue la plus romantique sur le Bosphore. Ce sont les riches industriels du XXe siècle qui constituent les premières collections dʼart classique et orientaliste. İstanbul est une ville que lʼon traverse en bateau et le voyage se poursuit dès quʼon accoste. Cʼest aussi sur la rive du Bosphore que sort de terre lʼélégant bâtiment dessiné par lʼarchitecte Renzo Piano pour le nouveau musée İstanbul Modern. Dans lʼimmense salle du rez-de-chaussée, on peut voir les grandes peintures qui font partie de la collection du couple de donateurs Ünal et Ceyda Göğüş. Cʼest dans leur maison lumineuse, nichée dans un coin de nature, quʼils vivent entourés de leur œuvres. Leur intérêt pour lʼart naît avec celle de leur fils, quand il reçoit pour sa naissance sa première peinture, en 1974. À leur retour des États-Unis, ils reprennent contact avec leur pays en sʼintéressant à la création qui sʼy déroule. Cʼest ainsi quʼils partent à la rencontre des artistes turcs. Au fil des années, ce qui nʼétait au départ quʼune curiosité et une soif de connaissance sont devenues la passion dʼune vie. Les artistes sont alors heureux de rencontrer deux jeunes amateurs dʼart qui sʼintéressent à leur peinture. Le couple Göğüş en côtoient certains régulièrement, dʼautres deviennent des amis. La majorité des peintres quʼils apprécient ont vécu à Paris et ils appartiennent à lʼ École de Paris. Une tendance artistique qui compte alors toutes les nationnalités réunies dans la capitale française. Les artistes de lʼÉcole turque de Paris est alors très malconnue, mais à force de recherches et de ventes aux enchères à travers le monde, il nʼen manque aucun à leur collection. Leur persévérance a enrichi la connaissance de ce mouvement et participe à la reconnaissance des artistes de cette époque (Albert BİTRAN, Ferit İSCAN, Fahrelnissa ZEİD, Hakkı ANLI, Adnan VARINCA, etc). Pensant sa collection à travers la connivence des peintres turcs avec dʼautres, Ünal Göğüş sʼintéresse aussi aux peintres français de lʼÉcole de Paris comme Camille BRYEN ou Jean MESSAGIER. Puis dans les années 1980, ils soutiennent la jeune peintre Selma GÜRBÜZ, au graphisme pur et baroque à la

SPECIAL REVIEW 로렌스 디스 Laurence d’Ist AICA국제미술평론가협회회원 독립큐레이터, 미술사학자


R) Gogus Collection with Selma GURBUZ artworks

fois. Ensuite, ils découvrent dans une gallerie dʼİstanbul, le jeune sculpteur COSKUN qui vit à Paris et ses œuvres taillées dans le bronze puis dans le bois. Aujourdʼhui, Ünal Göğüş possède 1500 œuvres de 152 artistes. Et il est en mesure de montrer la rétrospective de 16 dʼentre eux. Le plus original dans la personnalité de Ünal Göğüş est quʼil conjugue les qualités dʼun collectionneur avec lʼexigence dʼun conservateur de musée. En effet, il se documente longuement sur le parcours des artistes, en établissant tel un historien de lʼart les périodes artistiques de ces derniers. Sa collection bénéficie de lʼ originalité et de lʼindépendance de son regard. Puisque cʼest sur son seul jugement quʼil acquière les œuvres les plus représentatives des différentes périodes de lʼartiste. İl aime dire quʼil nʼa que le meilleur de chacun. Et cʼest certainement pour cette raison quʼil ne vend aucune œuvre de sa collection. Alors que certaines signatures ont atteint des cotes vertigineuses, tandis quʼ il continue de soutenir indéfectiblement ceux qui ne connaissent pas encore la reconnaissance du marché et des musées turcs. İl conserve dans son ordinateur, et davantage dans sa mémoire, les mille renseignements quʼil a recueilli sur les œuvres et leur auteur au fil des ans. Ces notes et anecdoctes méritent un livre ! Cependant, dans un pays aux changements culturels et politiques importants : « Comment voyez-vous lʼavenir de votre collection, Monsieur Göğüş ? » « Malgré tout, je garde lʼespoir de pouvoir présenter un jour ma collection et de partager ma passion avec le public. »

T) Adnan VARINCA _ nterieur _ Oil on Canvas _ 1993 _ 100x81cm B) Albert BITRAN _ L’Atelier _ Mixed Tecqnic on Canvas _ 1957 _ 200x2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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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Gogus Collection with COSKUN artworks


파리에서 온 편지

시계방향으로/clockwise) Fahrelnissa ZEID, Kelt, Oil on canvas, 1956, 76x51 cm Ferit _SCAN, Les corps eperdus, oıil on canvas, 1966, 46x55cm Hakkı ANLI,Tour Eiffel, Oil on Canvas, 1969, 170x62cm

이스탄불의 도시는 넓어졌습니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 보지만 끝이 보이지 않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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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거대 도시에는 2,000 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스포러스 해협 (Bosphorus)에 의해 이스탄불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오스만 궁전과 이슬람 사원의 유적지 사이에 신화적인 터키 도시의 역사적 풍경 속에서 현대 미술의 4개 박물관이 생 겨났습니다. 사반시 박물관 (Sabancı Museum)의 컬렉션은 보스 포러스 (Bosphorus) 의 가장 낭만적인 전망을 제공하고 있으며, 컬렉션은 부유한 주인의 집에 잘 보관되어 있 습니다. 이스탄불은 20세기의 풍요로운 사업가들이 고전과 동양의 예술을 처음으로 수 집하였으며, 배가 지나가는 도시이며 여행객이 도킹하자마자 여행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보스포러스(Bosphorus)의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 (Renzo Piano)가 디자인 한 우아한 건물 형태로 이스탄불에 새로운 현대 미술관 (Istanbul Modern Museum)이 되었습니 다. 1층의 거대한 방에서 기증자 부부 Ünal과 Ceyda Göğüş의 컬렉션의 일부인 큰 그림 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빛나는 집에 머물고 있으며, 자연의 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 으며, 작품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술에 대한 관심은 1974년에 첫 번째 그 림을 그의 아들의 탄생을 위해 받았을 때입니다.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그들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창조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그들의 나 라와 연락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터키의 예술가들을 만나러가는 방법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처음에는 호기심이었고 지식에 대한 갈증은 이제는 평생의 열정이 되었습니 다. 그런 다음 예술가는 자신의 그림에 관심이 있는 두 명의 젊은 예술 애호가를 만났습니 다. 그리고 Göğüş부부는 정기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나는 대다수의 화가들은 파리에 살았으며 파리 학교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예술적 추 세는 프랑스 자본에 모인 이곳은 전 세계의 국적을 포함한 예술인들 입니다. 파리의 터키 학교 예술가들은 매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의 연구 및 경매로 인


시계방향으로/clockwise) COSKUN, Goya et Dame de Coeur, Colored Wood, 2012, 114x30x32cm 107x57x40cm Orhan PEKER, Portrate, Oil on Canvas, 1976, 91x63cm Selma GURBUZ, Lady with Foxes, Pastel on Paper, 2001,174x100cm.b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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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수집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런 활동은 예술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했으며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 했습니다. (Albert BİTRAN, Ferit İSCAN, Fahrelnissa ZEİD, Hakkı ANLI, Adnan VARINCA 등). Ünal Göğüş는 1980년대에는 순수하고 바로크한 젊은 화가 Selma GÜRBÜZ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탄불의 청동으로 조각 된 작품을 만든 파리에 거주하는 젊은 조각가 코스쿤

을 이스탄불 갤러리에서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Ünal Göğüş는 152 명의 작가가 1500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 중 16명의 회고전을 열기도 했습 니다. Ünal Göğüş의 개성과 가장 독창적인 것은 수집가의 자질과 박물관 큐레이터의 요구 사항을 결합한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것은 예술가의 과정을 데이터로 정리하고, 그러한 예술 역사가를 정립시킵니다. 그의 콜렉션은 독창성과 독립성으로 나타납니다. 그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예술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얻습니다. 그는 각자의 최고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그의 수집품에 어떤 작품도 판매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는 터키 시장 및 박물관에 대한 인식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에 더 많은 것을 저장하며, 수 년 동안 작품과 저자에 대해 수집 한 수많은 정보를 보관합니다.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내 컬렉션을 발표하고 대중과 열정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번역 후 재편집 과정에서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번역정리 강금주


REVIEW 연극리뷰

대명공연문화거리 스케치 연극 기차 , 연극 만리향 2018. 9. ~ 10. REVIEW 대구 곳곳의 극장들 리뷰어 임종현 | 대구공연정보 운영자

1.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동화 같은 넌버벌 힐링 연극 피지컬(몸짓)연극의 진수를 선보이는 <기차> 9.18 ~ 10.14 소극장길 / 극단하루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미래의 어느 도시, 작은 기차역 광장에 어린 앵벌이 남매와 포주가 있다. 다양한 군인들과 구두쇠 자본가가 이 역을 스쳐 지나간다.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폭음과 군복을 통해 우리는 이 작 품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할 뿐 작품의 어누 부분에서도 반전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성을 상실한 포주에게 심신을 박해당한 어린 앵 벌이 남매가 유쾌하고 순박한 떠돌이 마술사 부부와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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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너무도 통쾌한 해프닝을 겪으며 결국 인간이 누려야 할 따뜻함에 서서히 빠져들어 함께 웃고 울다가 어느새 가슴을 파고든 따뜻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린 남매로부터 따뜻함을 빼앗아 간 것은 바로 전쟁임을 공갈할 것이다. ‘기차’는 각박한 삶에 놓여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은유적인 시이며 동화같은 연극이며 말이 아닌 배우들의 춤과 움직임, 그 리고 표정만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움직임의 강약과 리듬, 그리고 각자의 테마음악을 통해 캐릭터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재 미있게 전해준다. 아주 작은 관심과 사랑을 통해 얼마든지 세상의 비정함을 헤쳐 나갈수 있다는 동화같은 이 이야기는 마술사 부 부의 눈 마술과 함께 관객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광대적인 몸짓, 춤, 마술 등 다양한 볼거리와 세련된 음악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동화같은 연극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어느 도시, 작고 낡은 기차역 광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공연은 대사를 줄여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대신 마임 과 무용, 그리고 등장인물 각자의 성격에 맞는 움직임으로 극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기차’는 기차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인적 드문 시골 역에 내린 엉터리 마술사 부부와 앵벌이 소년의 이야기를 마임, 무용 등 몸짓으로 표현한 무언극이다. 모두가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로 온가족이 함께 편하게 볼 수 있는 연극!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남녀노소 구분없이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굳이 머리 싸매고 주제가 무얼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쉬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다스럽지 않은 연극! 무언극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작품을 통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동화같은 따뜻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잠이 드 는, 굳이 말상대를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할머니의 느린 화술로 들려온다. 대사가 필요 없는 연극! 얼굴만 봐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는 것, 말없이 끄덕이는 고개 짓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눈 빛에서 쳐진 어깨짓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말이 갖는 빈약함과 협소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연극! 불쌍한 앵벌이 남매와 포악하지만 우스꽝스런 포주, 바보같은 마술사가 펼치는 착한 사람의 바보스런 이야기‘기차’는 이러한 이야기들로 만들어진다.


2.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극발전소301 창단 10주년 기념 연극<만리향> 10.21~22 서구문화예술회관 / 극발전소 301

극발전소301 창단 10주년을 맞아 연극 <만리향>이 두 번 째로 관객과 만났다. 2014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초연 당시 제35회 서울연 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희곡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작 품성을 인정받았던 처음의 그 무대로 4년 만에 돌아온 것이 다. 현재 대학로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정범철 대표가 이끌고 있는‘극발전소301’은 창단 이래 다양한 형태와 주제의 참신하고 젊은 창작극들을 만들어오며 주목 받고 있는 극단이다. 도시 외곽의 중국음식점 만리향. 한때, 방송국 맛집으로까지 선정돼 손님이 우글대던 맛집이었으나 중식 고수였던 아버지가 죽고 우여곡절 끝에 큰 아들이 바통 을 이어받은 후론 손님 대신 파리만 한가로이 자유비행 하는 곳으로 전락한다. 가족이 똘똘 뭉쳐 잘 좀 해보자고 결의를 맺고 싶으나 꼴통 취급 받던 둘째는 다 커서 의리 없이 가출하고 소식마저 끊긴다. 행복의 비명을 지르던 어느 날 지적장애가 있던 막내마저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다 짜장면이나 볶고 있을 때가 아님을 직감한 가 족, 총 출동하여 막내를 찾아 나선다. 오랜만에 가족이 막내만 빼고 다 모이면서 서로의 맘속에 있는 말들을 풀어내는 가족극이 다. 자칫 가족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연출될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둘째 아들의 과장된 몸짓이나 유머러스함, 무지함에 분위기가 너무 다운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가미해서 너무 무거울만한 소재를 극이 끝날 때 가지 잘 살린 부분이 좋았다, 또 어머니가 굿이라도 해서 막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자고 하면서 자식들이 어머니 소원이라도 들어주자면서 굿이라도 하자면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비용을 아기기 위해 가짜로 새재의 친구를 무당 역으로 캐스팅하고 굿판을 벌이는데 어머니는 무당 이 셋째의 친구인 줄 다 알았지만 그냥 모른 척 속아주는 마음과 극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어머니 자신은 막내가 죽었다고 생각되 지만 남은 자식들한테 죽었다고 포기하자고 말할 수가 없는 심정을 굿으로 대변하고 싶었나 보다. 극 중에 둘째 아들의 출생의 비밀도 밝혀지고 서로 서로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야기하면서 극이 마무리가 되는데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무당이 굿을 하면서 무당에게 막냇동생의 혼이 빙의 되어 그간 못했던 고마움을 표현하는 부분이라고 생각 되는데 무당이 굿하는 부분에서는 먼가 좀 어설픈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연출가의 의도일 수도 있지만 의도한 게 아니라면 좀 더 디테일하게 해서 시선을 확 끌어서 마지막 막내가 빙의된 장면이 훨씬 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된다.

3. 지난 9월에 대명동의 대명공연거리에서 제1회 대명공연예술올림픽이 28일 29일 양일간 열렸다. 대명동에 있는 10개의 극단들이 30-40분 정도의 낭독극 형식으로 공연을 했고 거리에는 다양한 이벤트 및 행사가 진행이 되 었다. 이번 11월에도 대명공연예술 동계올림픽이 11월 23일과 24일 양일간 대명공연거리에서 열린다. 이때는 세 개의 작품이 공연을 하는데, 이 공연들은 IT와 연극이 함께 어울려서 하는 공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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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가족은 아버지가 남긴 중식당의 부흥을 위해 뼈 빠지게 식당일에 매달리지만 엎칠 땐 덮친다고, 오랜만에 바빠 죽겠다고


REVIEW 연극리뷰

연극 ‘변신 ’자유를

쟁취하라! 2018. 9. 29. ~ 9. 30. REVIEW 골목실험극장 _ 연극저항집단 백치들 리뷰어 양준혁 | 사각객원기자

변신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로 주인공인 그레고르가 어 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로 변신하여 일어나는 갈 등을 그리고 있다. 그레고르는 집안의 가장으로 가족의 생 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를 두려워 하면서도 출근을 종용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존재의미를 되묻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사 람들,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항거할 수 없는 개인들은 부조 리함에 순응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이 소설이 더욱 기괴한 점은 가족이 그레고르를 대하는 태 도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가족의 일원이지만 돈을 버는 사진출처 연극저항집단 백치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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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을 느끼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오히려 그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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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이며 노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어떠한 의문이나

을 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은 불만하며 식충이 취급을 하고 있다. 그 또한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며 미안해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버는 기계의 존재는 그렇게 멀진 않지만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다. 지 금은 오히려 결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트렌드가 불길처럼 번진 지도 오래다. 더욱 개인주의가 극심해지고 있으며 책임 없는 자유가 사회를 좀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은 이 공연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에 저항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점에서 원작과는 다른 해석을 보이고 있다. 원작에서는 소위 말하는 꿈도 희망도 없 이 지독한 부조리가 소설 내내 사라지지 않고 이야기의 결말을 맺는다. 백치들의 변신은 희망적이다.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결 국 그레고르는 자유를 쟁취하고 사회로 한 발 내딛는다. 연극저항집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백치들은 이 공연에 자신들을 투영하 고 백치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 연극에서 일반 상황이라면 하지 않을 연출이 있었는데 이것이 연출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공연 도중 배우들이 선을 긋는다던가 상자를 계속 옮기는 등의 행위는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그 행동들 이 현실적인 배경과 일치시키기 위해 보여준 것이라기에는 너무 길었고 빈도수가 많았다.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장치도 아니었다. 마치 의미 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고자 넣은 것처럼 보였다. 많은 연출들이 행하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보기에는 의미 있어 보이지만 혼자 보거나 돈을 받을 게 아니라면 관객들에게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이 단순히‘사회의 시스템이 불합리하고 역시 사람은 기계처럼 회사의 부품이 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야 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다들 아니 과하게 자유롭게 살기 때문이다. 자유란 것엔 책임도 같이 붙어 있다.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세상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혼자 살 것처럼 행동하고 싶어 한다. 사회적 관계 속에는 각자가 맡아야 할 책임이란 것이 있다. 힘든 일은 누구나 다 하기 싫어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고 공동체를 살 아가는 우리는 그것을 분담해야 한다. 최근의 사회는 권리는 챙기고 싶어 하지만 책임은 지기 싫어하는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 자유로운 인간 으로서 꼭 살았으면 한다. 그것이 피해의식으로 점철되지만 않으면 훌륭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hoto Review 사진으로 보는 리뷰

제1회 대명공연예술올림픽

2018.10.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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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공연문화거리에 있는 10개의 극단들이 짧은 낭독극 형식으로 공연을하며, 거리에는 다양한 이벤트 및 행 사로 올림픽 못지않은 공연예술올림픽. 극단들의 적극 참여로 오랜만에 골목이 시끌벅쩍했다.


REVIEW : 공연 리뷰

제 16 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유쾌한

오페레타와 2018 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2018. 10. 4.~ 10. 6. REVIEW 대구오페라하우스 리뷰어 박현정 | 사각객원기자

대구는 음악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구국제뮤 지컬페스티벌(DIMF)이 대구의 대중 무대극을 책임지 고 있다면 올해로 16회를 맞이한 대구국제오페라축제 (DIOF)는 대구 클래식 음악극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2018년은 대한민국 오페라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예년보다 앞당겨 9월 14 일부터 10월 21일까지 38일간의 긴 호흡으로 진행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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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트라비아타’,‘돈 카를로’와 같이 그랜드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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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도 공연되었지만, 축제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은 오페레타(경가극)라고 볼 수 있다. 대구국제오페라축

지난 월 21일 오페라대상시상식을 끝으로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막을 내렸다.

제는 오스트리아 뫼르비슈 오페레타 축제와 연계하여 매 년 오페레타를 한 작품씩 올리고 있다. 작년 스트라우스 2세의‘박쥐(Die Fledermaus, 1874)ʼ에 이어 올해는 프란츠 레하르의‘유 쾌한 미망인(Die lustige witwe, 1905)’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오페라는 클래식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연극의 속성을 가지는 종합 무대 예술이다. 기존의 오페라는 극적인 서사와 영웅적 인물의 등장으로 휘몰아치는 전개였다면 19세기가 되면서 가볍고 대중적인 장르인 오페레타가 등장한다. 오페레타의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무대와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겁게 흘러가는 흐름은 오페라의 가치를 간직하면서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게 해주었다. 그야말로 이벤트성이 강한 축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유쾌한 미망인’은 속물적이고 통속적이다. 유산 상속 문제로 불 거진 상류층의 속물적인 해프닝과 불륜, 재회한 첫사랑의 진정한 사랑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의 인기와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제 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유쾌한 미망인’은 의외의 케미(주인공들이 잘 어울리는 것을 상징하는 신조어)를 느끼게 했다. 극 중 상속녀 한나는 불륜 발각 위기에 처한 발렌시엔느를 도와준다. 발렌시엔느와 카미유의 불륜은 극 초반부부터 상당히 비중 있게 그 려지는데, 초연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생각하면 이 오페레타의 막장 요소를 부각하여 개그로 사용되었을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 나 발랄하고 재치있는 발렌시엔느의 캐릭터성과 눈치 빠른 한나의 조합으로 인하여 두 여자가 극을 이끌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한나에게 주어질 전남편의 막대한 유산 상속과 사랑 이야기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라면 우연적인 사건을 두 여자가 주도적 으로 풀어간다. 결국, 한나와 발렌시엔느는 연대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각자의 사랑을 쟁취하게 이른다. 오페레타의 대중적 인기는 가벼운 서사와 밝은 분위기의 음악과도 연관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무대 예술은 자본과 비례한다. 이번 대구오페라축제의 오페레타‘유쾌한 미망인’의 무대 디자인은 그야말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 아르누보 양식의 벽지, 스테인드글라스가 수려하게 치장된 저택, 그리고 1900년대 초 파리의 불빛을 에펠타워로 형상 화하여 벨 에포크 시대(belle époque, 1871~1914년 프랑스가 산업 혁명에 의해 호경기를 누리던 시대의 흐름)를 표현하였다. 작곡


오페라‘유쾌한 미망인’한장면

가 프란츠 레하르는 이 오페레타에 왈츠와 폴카, 캉캉과 같은 다양한 음악을 삽입하여 당시 분위기를 풍성하게 표현하였다. 의상 역시 당시 사교계의 패션을 고증하여 표현하였는데 화려한 무대를 감상하는 것으로도 시각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와 같이 큰 규모로 이뤄지는 축제는 화제성을 몰고 온다. 작년 제15회의 경우‘일 트리티코 시리즈’를 통 해 인간에 대한 의미 있는 고찰을 할 수 있었다면 올해는 색다른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작품을 발견하지 못했다.‘라 트라비 아타’,‘돈 카를로’,‘살로메’,‘유쾌한 미망인’과 같은 유명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축제 분위기를 살리고 화제를 모았지만 큰 규모의 축제이기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줄어들어 아쉬웠다. 이와 더불어‘유쾌한 미망인’의 번역에 대하여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유쾌한 미망인’프로그램 북에 기재된 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한가지 양해를 구할 것이 있으니‘미망인’이라는 용어가 오늘날 시대에 걸맞지 않은 구시대의 언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과부라는 말로 대체하면 어감상 다소 격이 떨어지게 되고 다른 대체할만한 우리말이 딱히 없어 매우 곤혹스럽다.”는 표현이 있다. 프로그램 북에 기재된 이 구절 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측의 의견으로 대표되기도 한다.‘과부’라는 단어의 격이 떨어진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 다. 미망인은‘죽은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죄인’이란 뜻으로 과부가 스스로를 낮춰 불렀던 구시대의 단어이다. 남성에게 종속되 어 혼자 살아 있는 것조차 죄악으로 여겨졌던 과거 가부장적인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성차별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21세기에 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과부’보다‘미망인’이 가지는 단어의 격이 높다는 말 역시도 구시대적 표현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 다. 언어의 사용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 단어의 품격은 사용자가 부여하는 것이고 이는 번역으로 새로이 부여할 수 있다. 대구는 물론 국내 오페라계에서 커다란 존재로 자리 잡아가는 이 축제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 문에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유쾌한 미망인’은 2016년 대구오페라축제에서도 무대화가 되었던 작품이다. 매년 뫼르비슈 오페레타 축제와 함께 오페레타를 한 편씩 올리는 시도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도 눈여겨볼 만 하다. 내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작품성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더욱 확고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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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공연리뷰

연극 오해 오해가

빚어낸 비극 2018. 9.11 ~ 9.16 REVIEW 한울림 소극장 _ 극단나무의자 G.ART 리뷰어 | 김지영 ‘관객의 소리’ 운영자 *관객의소리는 전국연극·뮤지컬 팬들이 토론하는 모임

체코의 어느 깊은 마을에 엄마와 딸이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바다 건너 태양이 짙게 드리우는 곳으로 가기 위해 돈이 많아 보이는 숙박객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살해하여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빼앗아 버린다. 이런 삶을 살아가던 중, 20년 전 사라졌던 아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어머니와 동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 고 필요한 걸 도와주고 싶다는 명분으로 투숙을 한다. 허나, 아들이라는 것을 밝 히지 않고 가족들이 본인을 알아주기만을 원했던 대가가 죽음이었다는 사실... 반복된 오랜 살인으로 엄마와 동생이 터득한 노하우는 살인 대상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는 것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죽이는 게 조금 더 수월한 법이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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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말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아들이자 오빠를 죽이게 되었다. 마리아가 쟝을 설득할 때, 늙은 하인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설득에 성공했을까? 마르타가 숙박 부 작성하며 쟝의 여권을 받아들었을 때, 늙은 하인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쟝이 정체를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극 중 마리아와 마르타의 성격을 합치면 하나의 온전한 인간이 완성된다. 마 리아는 쟝에게 본인의 정체를 깨끗하게 밝히라고 말을 했고, 마르타가 쟝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감정적으로 마르타를 목 졸라 살해할 수 있었을텐데 굉장히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였다. 굉장히 주체적이며 직설적인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르 타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아 언뜻 주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한탄과 원망으로 망가져버린 그녀는 굉장히 수동 적인 인물이다. 단순하게 말해, 마리아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본인을 탓하며 더 발전시키는 인물이고 마르타는 남을 탓하며 현실 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드는 인물이다. 인간이란, 양면을 가진 존재이다. 그 양면을 마리아와 마르타라는 캐릭터를 이용하여 표현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족을 버렸지만 잘나가는 사업가로 부와 명예를 얻었고, 넓은 세상을 경험한 오빠는 엄마의 사랑까지 가 져가버렸다.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 감정은 현대인들 중 몇몇은 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잡을 수 없는 꿈,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쉽지 않은 현실, 무엇보다 내 꿈을 이뤄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통장 잔고. 나는 마르타를 어리석었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그녀만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궁금증이 발동한다. 1. 형식적인 듯 아닌 듯 마르타가 쟝의 개인정보를 숙박부에 기입하는 과정에서 쟝은 거짓 이름을 대며 마르타에게 여권을 건네주었는데, 그 여권 은 가짜였을까, 진짜였을까?

- 진짜 본인의 여권이었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두려워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 모르겠지 만 그렇다면 그 순간에 여권으로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 늙은 하인의 역할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 불쑥불쑥 뜬금없이 나타났다가 별 말 없이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인물인 늙은 하인은 아마도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아닐지 조 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대사를 합치면 두 줄은 될까? 정말 비중 없는 캐릭터지만 중요한 순간에 족족 등장하여 비극을 부추기는 인물이다. 모녀가 살인을 계 획해도 무관심한 듯 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쟝의 여권을 챙겨 사 라져놓고 일이 다 끝난 뒤에 여권을 공개한다. 모녀와 쟝이 서로를 오해하며 생긴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범죄의 계획을 방관하고 중요한 사실마저 숨겨버린 늙은 하인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미스터리한 인물을 그냥 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이 작품의 서문을 읽어보면‘오해는 현대작품의 줄거리 속에다 숙명이라는 고 대의 테마를 다시 다루려고 시도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51 Sa:Gak

숙명. 이 늙은 하인의 역할은‘숙명’이지 않을까?

3. 극 중“돌아온 탕아의 귀향 만찬을 즐겨볼까!”라는 쟝의 대사가 있다.‘돌아온 탕아’란 무엇인가?

- 탕아…, 탕아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고민하였다. 인터넷 사전에‘탕아’를 치니,‘탕자’가 나왔고,‘탕자’를 치니‘돌아온 탕 아(탕자)’가 나왔다. 의미를 찾아보니, <신약성서>의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이야기라고 한다. 한 남자에게 아들이 2명 있었 다. 재산을 받은 아우는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세월을 보내며 탕진을 하였고 회심하여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도 돌아와 용서를 구하게 된다. 이에 아버지는 그를 환대로 맞이하는데, 이를 본 형이 아버지의 관대한 태도에 항의하였으나, 아버지는 <너는 언제 나 옆에 있어서, 나의 것은 모두 너의 것이다. 그러나 아우는 일단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축하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 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죄가 있는 자라도 회개하면 하나님(하느님)의 끝없는 은총에 의해서 구원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빌려 온 것일까? 그렇다고 한들 연극 <오해>의 마무리는 다르다. 엄마 옆에 남아있던 딸도, 엄마도, 20년 만에 돌아온 아들도 모두 죽게 된다. 고민에 고민을 더한 끝에, 이러한 마무리는 지극히‘카뮈(알베르 카뮈)스럽다’는 말로 내 질문의 끝을 맺을까 한다. 즉,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 그 자체인 것이다. 서문의 말미를 보면‘이 비극이 끝났을 때, 이 연극이 숙명의 극복을 변호해 주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그릇된 판단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 반대로 반항의 희곡으로서 성실함의 윤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다. 만약에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인식해 주기를 원한다면, 그때는 단지 자기가 누구인가를 솔직히 말해야 할 것이다. 침묵을 지 킨다든가 거짓말을 한다든가 하면, 사람은 고독에 빠져 죽게 되고, 주위의 모든 것은 불행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또 그 반대로 사실을 말한다면 언젠가는 죽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죽기에 앞서 타인과 자기 자신이 사는 것을 돕게 되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오해를 할 수 밖에 없던 숙명에 굴복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굴복하지 않을 방법(=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을 제시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REVIEW : 공연리뷰

뮤지컬‘푸르고 푸른’ 2018. 11. 1 ~ 11. 4.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_ 극단 구리거울

REVIEW 리뷰어 | 김지영 ‘관객의 소리’ 운영자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이장희는 친일파 아버지에게 반항하다가 쫓겨나 가 난과 고독에 시달린다 . 이런 장희를 친구 상화와 기만이 돌봐주지만 , 장희는 독립운동가인 상화와 기만에게 열등감을 느껴 이들의 호의를 거북해한다 . 하 지만 이들은 시를 통해 자유를 꿈꾼다는 공통점으로 친해지게 되는데…, 대구를 대표하는 민족시인 이상화와 유미주의 시인 이장희 , 그리고 이들의 든든한 지지자 백기만 . 세 청년의 푸르고 푸른 청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일제강점기 3.1 만세운동 직후부터 1929 년 사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이 장희의 삶과 사랑 , 그리고 대구출신 시인 이장희 , 이상화 , 백기만의 우정과 문학적 활동과 역사를 담은 뮤지컬로 태어났다 . 또한 이상화 , 이장희 , 백기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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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 아름다운 시를 세련된 선율에 담은 포에틱 뮤지컬이다 . 클래식하고도 매력적인 넘버로 탄생한‘봄은 고양이로다’,‘청천의 유방’, ‘통곡’등… 이장희와 이상화의 대표 시를 라이브로 연주되는 피아노에 맞춰 펼쳐지는 클래식하고도 매혹적인 넘버와 풍성한 보컬의 매력인 뮤지컬이다 .

MINI INTERVIEW 뮤지컬 ‘푸르고 푸른’ 연출가 김미정 대구를 대표하는 두 시인 , 이상화와 이장희의 우정을 다룬 뮤지컬 < 푸르고 푸른 > 이 2018 대구문화재단 우수기획지원 사업 작품으로 선정되었다고 하여 김미정 연출가와 짧은 인터뷰를 통해 뮤지컬 ‘푸르고 푸른’ 에 대해 알아본다 .

과거로 돌아가 이장희 시인을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 - 만난다면…, 많은 말보다는 손을 잡아줬을 것 같아요 .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안아주고 싶 네요 . 왜냐면 이상화 시인은 몇 년도에 태어났고 몇 년도에 어디를 갔다는 것들이 기록이 다 남아있어요 . 그리고 이상화 시인의 생가 바로 옆이 이장희 시인의 생가에요 . 근데 그게 푯 말 하나 없어요 . 너무 안타깝죠 .


REVIEW : 전시리뷰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 - 이장희 시인이 주인공이지만 , 절친 이상화와 백기만 그리고 양주동까지 . 그들의 선택과 우정을 다루었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 이상화 시인은 당 시에 청년이었고 , 여자도 좋아하고 , 열정도 넘치고 , 술도 좋아했고 허당끼도 있던 사람이었는데 , 그런 사람이 조국을 위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는 거죠 . 다른 면들은 다 가리고 너무 민족 시인으로만 언급하는 것 같아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들어내고 싶었고 , 이상화의 시도 아름답고 뛰어나지만 한국 문단사에 유미주의적이고 감각적인 시를 쓰며 모던한 시의 세계를 열었던 사람이 바로 이장희 시인이에요 . 문학적으로 봤을 때 이장희 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죠 . 두 사람을 비교하며 누가 더 잘했냐는 게 아니고 일제강점기 때 , 머리도 뛰어나고 재주도 뛰어났던 천재들이 , 천재 예술가 청년들이 그 시대를 어떻게 견디고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했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

“이장희 시인은 이상화 시인과 동시대를 살면서 나라 , 민족이라는 글자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시만 썼어요 . 그래서 저는 궁금했죠 . ‘이 사람이라 면 , 도저히 그런 억압과 구속을 견디지 못해서 어떤 식으로든 표현했을 텐데 왜 가만히 있었을까 ?’ 저는 이 분의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 처음에 시만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거예요 . 그러니까 , 이 사람은 결벽증인 거죠 .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버지가 더러우니까 , 그 더러운 피를 받은 게 너무 부끄러워서 감히 자신이 조국의 독립 과 독립운동에 대해 입을 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 우리나라의 독립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 이장희 시인의 삶은 너무나도 드라마틱 해요 .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장희 시인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요 ?”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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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役 조명현 / 에이코 役 김은영

백기만 役 이호영 / 이장희 役 조명현

이 뮤지컬의 가사는 기존의 이장희와 이상화 시들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도 있고 뺀 부분도 있고 장면에 맞게 수정해서 넣은 부분도 있다고 한다 . 한 인물을 깊게 파고 있는 연출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한편으론 , 이장희 시인이 부러워졌다 . 누군가 나의 업적과 생애 대해 궁금해하고 사랑하고 연구해준다는 건 한 인간으로서 성공적이고도 의미 있는 삶이지 않을까 ?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

인터뷰 및 정리 리뷰어 | 김지영 ‘관객의 소리’ 운영자


REVIEW : 전시리뷰

찾아가는 마을‘2018 방천아트페스티벌’ 2018. 10.22.~ 10.28. REVIEW 방천시장골목일대 리뷰어 백명진 | 객원리뷰어 미술비평, 미술교육학

아무리 생각해보더라도 내가 마을이란 곳에 살아본 적이 있는지 모 르겠다. 어떻게 보자면 마을에 살았을 수도 있고, 안 살았을 수도 있 다. 태어나서 지금껏 나는 대구 달서구에서 태어나서 이제는 수성구 에 살고 있는데, 내가 사는 곳을 마을이라고 불러 본 적이 없기 때문 이다. 마을이란 단어는 동네와도 비슷한 듯 다르다. 마을은 뭔가 소 박하고 이웃끼리 정이 넘치는 느낌이 있다. 정작 시골 마을이 고향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어찌 되었 거나 내 머릿속 마을은 스머프 마을, 산타클로스 마을처럼 아기자기 하고 예쁜 이미지부터 먼저 떠오른다. 그곳들은 비현실적인 공간이 다.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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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예술은 항상 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만의 일들을 담아내는 건 아니 다. 예술을 일궈내는 것은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예술가들이 향하는 방향은 어떠한 이상 쪽으로 잡혀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마을의 예 술, 아니면 예술의 마을은 완전히 가꾸어지기 어렵더라도 그 이상을 향해 온 힘을 다하는 예술가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천 아트페스티벌은 대구 중구에 있는 방천시장 주변 상가와 주택 가에서 벌어지는 문화행사이다. 미술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여기 에는 문학과 공연예술까지 합세했다. 올해로 여덟 번째라고 한다. 이 곳은 제법 내 인식 속에 있는 이상향을 닮아서, 우뚝 솟은 빌딩도 그 리 없고, 낡은 집들이 새로 지어진 집과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주변 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꽤 유명한 미술 화랑들 몇 곳이 있고, 시내 도 심과도 많이 멀지는 않다. 큰 길을 건너면 대구문화재단이 있는 층 수 높은 아파트촌이 있고, 무엇보다 이제 자리잡은 김광석길이 방천 시장이라는 장소보다 더 알려져 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새로

상) 아르스갤러리 하) 바나나프로젝트

생긴 갤러리도 많고, 대안전시공간이나 스튜디오처럼 미술 제도 속에 묶일 수 있는 장소들이 여러 개 생겼다. 옷가게도 여러 개 있고, 실내, 야외, 그리고 버스킹이 가능한 곳을 포함한 공연 장소도 눈 에 띈다. 핫플레이스라는 말이 어울리는 카페들이 유명 브랜드 커피집들과 경쟁 아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래된 수퍼마켓도 새 로 생긴 편의점과 경쟁을 벌이는 걸까. 무엇보다 예부터 있어온 재래시장은 김광석길이 유명해지면서 새로 들어선 가게들과 힘겨 운 싸움을 여전히 벌이고 있다. 새 가게 주인들 또한 월세가 엄청나게 오른 현실과 사우는 건 매 한 가지일테지만. 여기에 예술가 들도 나름 힘든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방천아트페스티벌은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한 번 와서 즐기고 지나가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하루하루의 힘겨운 싸움 속에서 살벌함 대신 낭만을 되돌려 오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새 집과 헌 집, 토박이들과 외부인 들, 예술가들과 구경꾼들이 한 자리에 어울리게끔 준비된 영리한 기획이다.


상) 김결수갤러리 (갤러리 문 101) 2. [b] 스페이스 3.ㅊ책방 브라켓

게 잡으면 1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이 다른 신식 쇼핑지구에 밀려 망해가고 있는 현실을 걱정한 반응이 생겨나기 시작했 다. 그것은 곧 전통시장 살리기 운동과 더불어 예술가들이 입주한 시장 예술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별의별 예술시장> <문전성시> 같은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서 어떨 때는 혼자서, 또 여럿이 창작을과 소통 활동을 이어왔다. 어느 정도 예술 가 촌으로 자리 잡을 무렵에 들이닥친 어려움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땅값과 임대료 인상에 따른 예술가들의 지역 활동 포기였다. 그렇지만 그 10년의 시간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예술가가 있다. 바로 이 행사의 중심에 선 조각가 겸 기획자인 정세용 감독이 대표적인 사람이며, 그밖에도 새로 용기를 내어 이곳에 진입한 신진작가들과 예술경영인들, 그리고 그 시간을 추억하는 선배 작가들이 각각의 모임을 현 장소에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모임은 2009년 별의 별 예술시장 이후로 모인 약 스무 명의 미술인들이 모인 유월회이며, 이들은 김결수 갤러리에 서 단체전을 벌였다. 또 다른 그룹은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며 힘을 잃어가던 2012년에 모인 방천문화예술협회(BACA)이며 바 나나 프로젝트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한편 비슷한 시기부터 독립 매거진 브라켓이 발간되면서, 잡지에 소개된 주요 작가들과 스태프 들이 꾸민 특별전과 세미나, 그리고 아카이브와 바디 드로잉 이벤트가 b스페이스와 책방 브라켓에서 벌어졌다. 김광석 길 쪽에는 올 해 처음으로 열인 대구레코드페어를 포함해서, 재즈 콘서트와 아트마켓, 골목벽화, 그리고 젊은 작가 모임 아트파인애플 기획의 전 시 <낭만 여행자>전 같이 다양한 행사가 동시다발로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이들이 예술적 창의성과 활동 역사를 보여준 장소는 오래된 장터 인근에 걸맞게 그렇게 큰 곳들이 없다. 대구에만 하더라도 대형 상업 갤러리나 콘서트홀, 또는 미술관들은 성곽처럼 큰 위용을 내세우며 보통 사람들의 발길을 주저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점점 높 고 두껍게 경계를 쌓고 외부 사람들의 발걸음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아파트들의 현실과도 겹친다. 진정한 마을 예술축제는 그렇지 않았다. 누구나가 일주일간 틀을 벌인 예술의 시공간에서 마음껏 놀았다. 한 명의 참여 작가, 한 점의 작품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위에 두었던 가치는 바로 그 전체가 어우러진 마을 공동체의 복원일지도 모른다. 축제는 끝났지만, 또 하루하루는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행사 기간이나 평소나 다름없이 늘 예술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방천아트페스티벌은 이 시대, 이 지역에 남아있는 예술 가들의 축제이자, 오랫동안 생활 터전에서 함께 버틴 주민들의 축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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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예술축제를 꾸민 주역들은 그동안 이곳에 머물렀거나 관계한 예술가들이다. 그들의 시간은 꽤 길었다. 이 잔치의 기원은 길


REVIEW : 전시리뷰

공간의 변주 범어아트스트리트,

지하통로이자 전시관 2018. 8. 9. ~ 10. 28. REVIEW 범어아트스트리트 리뷰어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김찬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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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주 작가

범어 아트스트리트는 지하도에 마련된 예술 공간이다. 장점으로는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가볍게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기에 접근성 이 높다는 것이고 단점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과 직면해 있기 때문에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있다. 전시 공간은 5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의 공간에 1~2명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음악에서의 변주란 선율, 리듬, 화성 따위를 여러 가지로 변형하여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공간의 변주는 하나의 공간이 다양성을 확보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모 습을 보여준다. 그저 지나가는 통로이지만 그곳은 전시 공간이 되기도 하고 체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날짜만 잘 맞춰서 방문한다면 뮤지컬, 연극, 퍼포먼스 등의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공연을 제외하더라도 볼거리는 충 분했다. 총 9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매력의 전시를 만들어냈다. 작품으로는 찰리 한의 stand, 정전의 현대는 간극, 정유지의 두드 러짐_풍경 2&3, 이소려의 The pieces of time/The present for the past/The future for the present, 박창서의 Side/incline/ Encounter, 김대기의 More real than reality/Le jour du jugement de Pluto, 김찬우의 방구방, Yall의 CAVE, 나인주의 Wormhole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고 짧은 시간에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은 두 가지이다. 김찬우 작가의 방구방과 나인주 작가의 Wormhole이다. 김찬우 작가는 자신이 그동안 모아온 방구를 소재로 전시 공간을 꾸몄는 데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지만, 벽면에 적힌 글귀를 읽는 순간 작가의 발상이 이해되었고 공감도 된다. 방 구방으로 들어서면 밝고 알록달록한 이미지와 낮은 실내 온도가 산뜻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방귀라는 소재를 가져온 이유를 한 번에 이해하게 만든 글귀는“30세가 넘어가면서 유난히 방귀가 늘었다. 2017년에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한 해가 갔다. 작업실에서는 누 워만 있고, 술 마시자고 하면 술 먹고, 그렇게 지내다 작업실에 누워 방귀만 뀌는 나 자신을 보면서‘아, 그래도 방귀는 뀌네.’라는 생각이 들더라.~ 허무했던 내 2017년이었지만 남은 건 방귀 하나 남았다.”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적혀있는 것과는 다르게 방귀 소리를 들리지 않았고 우퍼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앉았는지 소리를 내지 않았다. Wormhole은 범어아트스트리트의 한 공간을 어떤 다른 장소처럼 느끼게 만든다. 선명한 빛깔과 화려한 색이 무지막지하게 펼쳐진 공간은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색하게 만들기보다는 순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기분이 들게 만든다. 사람들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예술을 사람들과 가깝게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좋았고 앞으로도 다 양한 예술 활동이 범어아트스트리트와 같이 시민들과 가까운 곳에서 행해질 것을 기대해본다.


REVIEW : 전시리뷰

류승희 ‘인물에 부쳐’展공간에

우러난 슬픔, 그리고 고요 2018. 10. 10.~ 10. 14. REVIEW 봉산문화회관 3 전시실 리뷰어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벗으면 덥고 입으면 추운 어느 가을날, 서양화가 류승희의 개인전을 감상하기 위해 봉산문화회관에 다녀왔다. 작가는“특별히 생 각하는 인물 없이 그림을 그렸는데 그리다 보니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작품 속의 인물들은 작가의 내면의 어떠한 감정들이 평면에 표현된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전시실 내부에 들어서면 헛기침이 울릴 정도로 고요하고 웅장한 공간의 울림이 느껴지는데 작가는 그 공간이‘매우 슬프다’라고 표현하며‘거인이 두 팔을 감싼 채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 난다.’라고도 표현했다. 눈을 감거나 손으로 입을 감추고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의 첫인상이 슬퍼 보였던 이유는 공간과의 어우러짐 때문이라고 본다. 목판 드로잉으로 표현한 흑백의 인물들은 내면을 바 라보고 그 속의 고요 속에 잠겨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추억의 조각을 들여다보는 인물과 감은 눈이 즐거워 보이지 않는 이유는 행복보다는 슬픔과 아픔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림의 전체적인 인상은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는 틀에 갇혀있는 느낌을 주고 인물은 그 틀 안에서 웅크리고 있지만, 작품 속의 인물 위를 떠다니는 작은 그림들은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조그마한 방에 갇혀 깊은 내면을 돌아보는 인물의 모습과 같이 보이며 작은 방과는 다르게 내면의 사색은 매우 자유롭고 내면과의 연결이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것도 같다.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김옥렬은 작가 류승희의 이번 작품들을 이렇게 표현했다.‘류승희의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감고 있는 눈이 다. 그 눈은 내적 시선과 외적 응시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 지점은 창작과 감상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가 주목하는 인물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통해 보는 타자 그리고 타자의 얼굴에 비친 자화상일 것이다.’ ‘인물에 부쳐’는 내면의 슬픔과 아픔을 돌보고 그것을 통해 타인 혹은 세계와의 만남이 고요하게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과정의 결과를 겸허하게 지켜보게 만들고 내면의 감정을 감추거나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정 리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식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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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전시리뷰

2018 기억공작소3

서옥순‘눈물’展

슬픈 자화상 2018. 7. 13.~ 9. 30. REVIEW 봉산 문화회관 제 4 전시실 리뷰어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봉산문화회관이 주관하는 기획 기억공 작소에서 2018년의 세 번째 작가 서옥순 의 눈물 전을 볼 수 있었다. ‘기억공작소 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생’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 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 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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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 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

권영성 작가

를 공작한다. (봉산문화회관 홈페이지 참 조) 전시실에 들어서면 하얀 공간의 벽면에 검은 실들로 수놓아진 커다란 얼굴의 형체가 제일 먼저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표현했다. 그 얼굴 의 흘리는 눈물을 따라가면‘고인 눈물’이 연상되는 검은 웅덩이를 이루고, 그 웅덩이 속에는 인형이 덩그러니 혼자 누워있다. ‘고인 눈물’에 빠진 인형은 마음 깊숙한 곳에 간직한 자신의 슬픈 모습을 표현한, 말하자면 작가의 내면이라고 추측된다. 작가의 내면 즉, 상상 속의 자아이기 때문에 새하얀 배경과 검은 실만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졌다. 자화상을 등지고 서면 9점의 평면 작업이 전시되어 있다. 그릇에서 무언가 흘러넘치고 동그라미에서 무언가 흘러내리고 손가락 틈새로도 무언가 흘러내리고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흐름’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발견했다.‘흐름’이라는 속 성을 나름대로 해석해보자면 그것은 자연의 본성이기도 하다. 시간은 흐르고 비는 내리고 해가 뜨는 것처럼 자연은 끊임없이 흘러 간다. 모든 작품에 흐름을 표현한 작가의 의도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흘려보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아무리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괴로워도 우리는 그 모든 감정을 추 억 속에, 기억 속에 흘려보내야 한다. 작고 큰 감정들이 한곳에 머물거나 갇혀버리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고 스스로 그렇게 되 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자화상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살 면서 부딪히는 인생의 고통과 아픔을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걷어내 바깥으로 흘러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으로 비 추어진다. 검은 실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평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검은 밤바다를 지켜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며 그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인 외로움과 쓸쓸함이라는 정서를 자극한다.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수히 많은 생의 사건들이 빚어낸 기억의 조각들이고 작고 하얀 공간에 단정하게 펼쳐진 기억의 조각들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REVIEW : 전시리뷰

브릭, 사랑에 빠지다 어린이를

위한 혹은 어른 아이들을 위한 2018. 7. 20. ~ 10. 21. 대구MBC 특별전시장 엠가

REVIEW 리뷰어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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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은 영어로‘(아이들 장난감용) 벽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브릭 하면 가장 먼저 레고사나 한국의 옥스퍼드사를 떠올릴 것이다. 브릭의 시초가 된 레고사는 1934년경 덴마크의 빌룬이라는 지역에서 목수 출신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다. 레고는 덴마크어로‘레그 고트(leg godt)’, 즉‘잘 논다(play well)’라는 뜻이다. 올레 키 르크 크리스티얀센은 40년대 초반 플라스틱이란 신소재에 새로운 영감을 얻어 단순하고 자유자재로 조립할 수 있는 장난감을 만 들어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이번 전시를 있게 한 브릭 라이브는 레고 정품을 사용한 세계 최초 브릭 상설 매장으로 영국 본사를 기점으로 전 세계 네트워크 를 가진 기업이다. 전시는 레고 브릭을 사용하여 피규어와 오브제를 만들고 사진 작품으로 만들어낸 50여 점의 작품들을 감상하 고 게다가 곳곳의 아기자기한 포토존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작품전뿐만이 아니라 브릭으로 만든 거대상(statue)과 디오 라마(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 또는 그러한 배치)도 재현되어 있다. 사람보다 커다란 브릭 입상의 섬세 한 표현들은 놀랍고 디오라마의 작은 세계는 의외로 장엄하다. 단순히 레고로 만든 모형 작품만 전시된 것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는 글과 여운이 남는 짧고 긴 글귀들도 전시되어 감상을 돕는다. 그리고‘브릭, 영화를 만나다’라는 제목을 걸고 다양한 영화의 포스터를 브릭으로 꾸며낸 사진 작품도 볼 수 있고 명화를 브릭으로 재현하는 등 볼거리가 줄을 잇는다. 1층의 전시장을 다 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브릭 관련 상품들을 직접 구매할 수도 있고 직접 브릭을 만지고 조립할 수도 있는 체 험존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음식, 건축물, 생물 등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이 존재하는데‘인간이 상상하는 것 중 브릭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벽돌처럼 네모난 브릭으로 세상 하나뿐인 창작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하나 의 창작 행위이자 요즘 말로 하면‘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브릭, 사랑에 빠지다’는 아이들 혹은 한때는 아이였던 어른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브릭의 매력에 빠지거나 추억에 젖게 해주는 전시이자 브릭과 사랑에 빠진 작가들의 작 품을 감상할 기회였다.


REVIEW : 전시리뷰

제6회 대구사진비엔날레 Frame 탈신화를 위한 사진의 역할

Freely: 프레임을 넘나들다 2018. 9. 7.~ 10. 16. REVIEW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예술발전소 외 리뷰어 박현정 | 사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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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성공적으로 마쳤다 . 9 월 7 일부터 10 월 16 일까지 열린 대구사진비엔날레는 10 만 관람객을 동원 하여 국내 중요 사진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렸다 . 이번 행사는‘Frame Freely: 프레임을 넘나들다’라는 비전을 통해 사회적 관념이자 규범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진의 역할을 되새겼다 . 전시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을 기반으로 대구예술발전소 , 대 구미술관 , 대구 시내 화랑 등 대구 주요 문화 · 예술 공간에서 개최되었다 . 전 세계 20 여 개국 , 40 여 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한 주제전이 가장 눈에 띄었다 . 프랑스의 예술평론가이자 독립 큐레이터로서 국제현대미술큐레이터협회장을 역임한 아미 바락이 예술감독으로 주최한 주제전은‘역할극 : 신화 다시 쓰기’라는 롤랑 바르트 의 신화론에 기반하여 사진의 역할을 되새기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 역할극은 상황을 재구성하고 복제한다 . 각자의 배역 , 즉 역할이 주어지지만 , 이는 현실을 주관적이며 단순하게 옮겨온 상황에 불과하다 . 관객은 이 역할극을 보고 관객의 사고와 인식 , 이제까지의 경험이 반영되어 다시 주관적으로 받아들인다 . 사진 역시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할 수 있는 중요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재창조한 결과물이다 . 우리는 사진을 통해 개인이 판단한 세상을 재판단하게 된다 . 신화는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 지 이전에 인간의 손에 기록된 이야기다 . 롤랑 바르트는‘신화론 (1957)’에서 신화를 사회적 통념이나 가치 , 신념 , 또는 이데 올로기와 같이 한 문화의 사회적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보았다 . 신화는 역사 , 즉 다른 사람의 숨은 동기를 자연화 (naturalization) 하고 , 신화 소비자 ( 신화를 듣고 이용하는 사람 ) 는 신화를 매우 자연스럽고 명백한 진실로 받아들인다 . 지구상 에 존재하는 모든 서사는 이러한 방식을 거친다 . 허구에 지나지 않는 개인의 , 혹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타당하고 적합한 방식을 통해 표현하면 소비자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사진 역시 시각적인 방식을 취했을 뿐 사진의 역할은 신화와 같다 .


오히려 뚜렷한 개념으로 인해 소비자는 탈신화 (demystify) 하고 , 이제 작품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주관적 판단이 더욱 활 발해지면서 현실과 가상의 틀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는 것이 다. 본 전시의 주제는 사진을 감상하는 것 이전에 사진이라는 장르를 이해하는 데에 성공적인 접근이었다 . 올해는 광주 비엔날레 ( 상상된 경계들 , 9.7.~11.11.), 서울 미디 어시티 비엔날레 ( 좋은 삶 , 9.6.~11.18.), 대구 사진 비엔날레 ( 프 레임을 넘나들다 , 9.7~10.16.), 부산 비엔날레 ( 비록 떨어져 있어 61 Sa:Gak

도 , 9.8~11.11.) 가 모두 개최되는 짝수 해다 . 한국 3 대 비엔날 레로 뽑히는 광주 , 서울 , 부산 비엔날레는 모두 우리 시대의 관심 사를 주제로 삼았다면 대구 사진 비엔날레는 장르에 대한 해석을 제 시하고 집약적으로 개최되었다 . 하나의 장르로 올인된 행사 특성도 한몫했지만 방향을 잘 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 . 대구 사진 비엔날레는 올해로 6 회를 맞이한다 . 2016 년 대구사진 비엔날레는 다소 실망스러운 운영과 성적을 보여준 바 있다 . 이를

상)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 하) 대구예술발전소 전시실 -사진제공 대구사진비엔날레조직위원회

발판으로 삼아 야심차게 준비한 티가 역력했다 . 하지만 주제전과 특별전 , 초대전이 개최되는 대구문화예술회관과 그 외 장소와 의 연계성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 국제젊은사진가전과 사진작가협회 사진전이 열린 대구예술발전소 , 대구 화랑 협회 기획사진전 이 열린 대구 시내화랑은 대구사진비엔날레의 부대행사보다는 개별된 전시로 다가왔다 . 대구시 전체의 분위기를 위해 시내 곳곳 에서 전시가 개최되었지만 큰 화제성이나 연계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 각 장소 간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분산되어 있어 각 장 소까지 발걸음하기가 쉽지 않았다 . 이를 해결하고자 스탬프 랠리를 시행했지만 , 스탬프 랠리는 이제 상투적인 방식이 되어버렸 고 , 그 상품으로 무료관람권을 2 장 제공하는 것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 부대행사의 열기가 미비했던 것은 대구예 술발전소와 대구 시내화랑에서의 전시는 상대적으로 노출이 적은 탓도 분명히 존재했다 . 더구나 평소 사진에 관심이 있던 대구시 민들은 자발적으로 이 국내에서 유일한 사진 비엔날레를 찾았지만 다른 지역의 관람객 유치까지는 성공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 앞서 언급한 광주 , 부산 , 서울 비엔날레 역시 현대 미술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진이나 미디어 작품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지 만 , 사진이라는 장르에 집중하는 비엔날레는 대구 사진 비엔날레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 그 말은 사진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비엔 날레가 대구 사진 비엔날레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2018 대구 사진 비엔날레의 주제 , 전시는 의미도 집약되고 예술을 감상하고 창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생각해보아야만 하 는 부분이라 상당히 의미 있었다 . 그러나 비엔날레가 전문가들만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대구 사진 비엔날레는 앞으로 대중 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


소셜문화N : 인터뷰

‘노니 뭐하노’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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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예술인

조창희


사각인터뷰 2 예술인 복지법이 시행되고 6 년이 지났지만 , 아직 예술가들은 배고프다 .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 . 그리고 외 부의 도움 없이 경력을 만들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엄청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 창작

욕구를 느껴 예술인의 삶을 살게 된

공연예술인 조창희를 만나 용기와 도전에 대한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조창희는 어떤 사람 ? 연주나 퍼포먼스를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는 사람이다 . 어떤 사람은 사물놀이 연주하는 사람 , 어떤 사람은 풍 물도 좀 하고 연기도 좀 하는 사람 , 어떤 사람은 배우 , 어떤 사람은 제작자라고 한다 . 애매하다 . 지금 35 살인 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 제일 정확한 표현은 공연예술 분야에서 잡다한 것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 연주가 됐든 연기가 됐든 퍼포먼스가 됐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한마디로 공연 예술인이다 . 공연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경북 영천이 고향인데 경북대학교 화학 공학과로 진학했다 . 대학 시절 풍물을 접하기 시작해서 전문 연주 자가 되고 싶어졌고 타악계 전문 연주자로 마당놀이나 퍼포먼스를 하다가 연기도 재미있고 연주만으로 표현 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겼다 . 그렇게 연기를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 다 . 그래서 공연도 제작하게 되었고 창작활동을 하는 과정이다 . 시작할 때는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 . 그래도 하고 싶었다 . 재미있으니까 . 단순히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고 싶어서 한다는 것보다는 무대에 올라가서 관객들에게 어떤 에너지를 줬을 때 역으로 관객들이 내게 주는 느낌이 있는데 그것이

스크린이 아니라 무대를 선택한 이유 ‘무대에서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 라고 얘기하면 교과서적인 대답이고 나는 둘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 어떻게 보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 낌을 더 섬세하고 완성도 있게 전달할 수 있다 . 그런데 ‘왜 연극을 선택했느냐 ?’ 라고 물으면 현실적으로 영화는 접점이 없었고 연극은 있었다 . 국악 연 주를 하다 보니 무대에 올라가서 마당놀이나 퍼포먼스에서 자연스레 연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 물론 연기를 근본 있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영 화에서 생각도 많이 얻고 공감도 많이 하고 배우기도 한다 . 배우로 살아남기 정말 힘들다 . 내가 아는 배우 중에는 투잡을 하는 사람이 많다 . 작품이라는 것이 고정적인 시간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정적인 직장을 갖기가 힘들 다 . 게다가 작품에 들어가면 일을 못 하고 그러면 수입이 없어진다 . 지원 사업에 선정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 외부의 도움 없이 경력을 만들려면 엄 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 일단 좋아하는 예술 활동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학교에 수업하러 간다 . 개인적으로 예 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 공연 계통이 지원 사업 위주로 흘러가는 방향성도 있고 시간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금전적인 문제 도 있다 . 최근에 하고 있는 것 배우이자 연주자로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 20 일 , 27 일에 성주랑 고령에서 하는 작품이 있고 12 월에 장기로 들어가는 연극을 연습하고 있다 . 일상적 으로는 국악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연습을 하고 있다 . 그리고 4 년 전에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장르의 공연을 만들었다 . 나름의 도전이고 용기였 다 . 아이들을 위한 극을 특색 있게 넌버벌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 아이들이 엄청 좋아했는데 , 홍보하는 법을 몰라서 제대로 팔지를 못했다 . 작품이 재밌으 면 무조건 잘 팔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 그렇지 않았다 . 그래서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올해 초에 창작 예술단 ‘노니머하노’ 를 만들었다 . ‘노니뭐하노’ 라 고 하니까 글자가 예쁘지 않고 경상도 느낌이 안 나는 것 같아서 ‘노니머하노’ 가 됐다 . 말 그대로 ‘노니 머 하노 작품이나 만들자 .’ 라는 의미이다 . 내년 쯤엔 ‘노니머하노’ 의 이름으로 우리가 만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목표다 . 개인적으로는 ‘조창희라는 사람이 만드는 작품은 좋던데요 .’ 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 그리고 이건 소박하지만 엄청나게 큰 욕심인데 , 몸이 노쇠해서가 아니고서는 공연예술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 . 인터뷰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사진 조창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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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깊이 있게 하고 싶다 . 현실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하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일도 참고한다 .


소셜문화N : 인터뷰

청년 배우의 25시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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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제학


서울 지역외에서 예술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아남을려고 애쓰는지 청년 배우 손제학의 24시를 통해 들여다본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재학 중이고 현재 4학년 2학기를 이수 중입니다. 한울림에서 하는 공연에 주로 참 여해서 연극을 하고 가끔 뮤지컬도 하는 배우입니다. 평소 생활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보통 작품 연습이 있을 때는 1주일에 하루만 쉬고 매일 연습을 합니다. 연습시간은 저녁에 2~3시간 정도 인데 공연이 임박할 때는 하루에 6~7시간 연습하기도 합니다. 공연이 겹쳐서 연습만 매일 할 때도 있고요. 그리고 연습이 주 일과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일본어 회화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일본 도쿄에서 연극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좋았거든요. 나중에 일본에 가서 연기를 꼭 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수입은 어떻게 되나요? 티켓으로 돈 벌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정확한 수입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저 포함해 많은 배우가 부업을 하 고 있으며 저는 아버지가 목수셔서 건설현장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배우를 시작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65 Sa:Gak

20살 때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었는데 학과동아리에서 하는 연극을 봤습니다. 마음이 들끓긴 했는데 학업에 도 뜻이 있어 선뜻 하지는 못했어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군 복무 중에 아는 형이 상상유니브라는 활동을 통해 연극을 하는 걸 보고 다시 마음이 들 끓었고 연극을 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일반인이어서 연극을 하려면 학원을 가거나 대외활동 형식으로만 참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상유니브에서 공고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연극을 하게 됐는데 마침 한울림과 연계해서 하는 활동이었 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고민을 많이 했고 더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극단의 대표님과 얘기하며 하고 싶다 받아 달라고 하니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로 바로 휴학을 하고 1년간은 한울림에 출퇴근했었습니다. 배우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한다면? 학원에 다닌다던가 관련된 학과를 가는 방법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안 해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조금만 찾아보면 생각보다 대구엔 극단이 많 거든요. 그 극단들의 SNS소식을 받아보면 신입 단원을 주기적으로 모집을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꼭 모집공고에 맞춰 지원하지 않더라도 바로 극단에 찾 아가서 얘기하면 싫어하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도 ‘그래, 한 번 해보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극단을 정하는 것입니다. 연극이 하고 싶다면 본인이 추구하는 연극관이 있을 것인데 극단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극단 한울림 같은 경우 행위와 나눔, 극단 백치들은 세상과의 투쟁, 저항 같은 것을 주제로 주로 다루고 극단 만신은 위로와 경고를 모토로 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가치 관과 맞는 곳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선택한다고 다 받아주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엔 학원이나 학교는 다닐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위 연극을 하는 분들도 다 관련 없는 과를 나오셨고 굳이 돈 낭비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끝으로 하고 싶은 말 배우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자면 일단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나이 때문에 고민을 하신다면 무엇을 하든 늦지 않 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각오를 하시고 1, 2년이라도 매진해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가 남아있을 것 이기 때문입니다. 연극은 마치 첫사랑과 같습니다. 인터뷰 양준혁 사각객원기자 사진 손제학제공


소셜문화N : 영화리뷰

위플래쉬 : 타인의 광기가 만든 천재 REVIEW 리뷰어 박수주 | 자유기고가

여타의 수식어 없이 한 분야의 “천재”로 불리게 된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일 것 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절대적인 재능 앞에 우리는 “천재” 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렇다면 불굴의 노력으로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천재”라는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음대 신입생으로 들어온 드러머 앤드류는 악명 높은 교수 플렛처를 만나게 되고 그의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플랫처의 가학적인 교육방식 앞에 앤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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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좌절하지만,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 폭언과 학대 속에서도 연습에 매진한 다. 몰아치는 스승의 다그침 앞에 앤드류는 자신의 삶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하고 오직 드러머로서의 과업에 열중한다. 여러 역경 속에서도 앤드류는 공연 무대에 오르고 환상적인 드럼 연주를 끝으로 영 화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관객이 느끼는 앤드류의 광기는 연주에 대한 감 격 이상의 자극으로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누구에게나 인정 욕구는 있다. 인간은 그것이 작든 크든 그에 부합 하 는 과업을 이루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다만 그 이후에 얻게 되는 성 취감이나 좌절감에는 분명 개인차가 있다. 앤드류는 플렛처에게 인정받 는 드러머가 되는 것이 그의 과업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음악을 하는 실질적 의미를 제거해가며 열정을 넘어 서는 광기를 보여준다. 마치 이것이 일생의 마지막 일인 듯 스스로를 몰아 붙여가면서 말이다. 앤드류는 천재가 아니다. 그래서 그에게 천재를 갈망하는 스승의 태도가 얼마나 폭압적으로 다가왔을지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복선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자신의 전 제자의 자살 소식에 마음 아파하는 플렛처의 모습에서부터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앤드류의 미래를 불안한 시선 바라보게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괴적으로 변해야 “천재“라고 불리 울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그것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모두 온당한 칭호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플렛처 또한 좋은 스승이 아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에게 압박을 주는 것이 꼭 인간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 성별, 연 령, 지위 등 이뤄내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 앞에서 순수한 의미로서의 성취는 퇴색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 나의 일만이 아니게 될 때 느끼 는 중압감은 우리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내몬다.


장르 드라마 _ 2015.03.12 개봉 _ 런닝타임 106분 제작 미국 15세 관람가 감독데이미언 셔젤 _ 배우 마일즈 텔러(앤드류), J.K. 시몬스(플렛처)

모두가 성공할 수 없고 피라미드의 머리는 항상 위태롭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에 떨며 자리를 다툰다. 이런 상황의 반복이 결국은 자기 스스로를 채찍

위는 포기한 체 과열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재”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노력으로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계가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행복과는 무관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 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이 먼저일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느끼는 관객의 시선이 같을 수는 없지만 나를 위하는 것이 진정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꼭 해봤으면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영화가 주는 메 시지가 아닐까 싶다. 보고나면 장쾌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울림의 깊이가 큰 영화이기에 한해가 가기 전에 보면 좋은 선물이 될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잃지 말고 전진해 나갔으면 하는 당부의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고 싶은 일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시 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 수많은 환경적 제약이 존재하고 모든 경로를 이탈해 가며 열정적으로 투신할 체력 또한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고 소중한 것을 다 잃어도 좋을 만큼 완벽한 과업이란 없다. 절대 희생의 몫이 스스로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행복의 무게 추를 잘 유지해가며 뜻을 이루길 마음 깊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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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하기에 이르고 성취가 가지는 양면적인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앤드류가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공연장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이제는 그가 자신의 육신 따


소셜문화N : 영화리뷰 영화 ‘문라이트’ 생은

선택이 아니지만 내가 되는 것은 선택이다 REVIEW 리뷰어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영화는 세 부분(리틀/샤이론/블랙)으로 나뉜다. 영화의 주인공인 샤이론이 리틀로 불렸던 어 린 시절부터 블랙으로 불리는 성인이 되기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아버지는 없고 마약 중독인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샤이론은 학교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샤이론은 후 안과 테레사를 만나고 그들에게 사랑을 받지만, 마음속 아픔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아픔을 유일하게 안아준 친구 케빈과 어떤 사건으로 인해 떨어지게 되는데, 10년이 지나 그들은 재회 하고 케빈은 또다시 샤이론의 아픔을 위로해준다.

후안이 어린 샤이론(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바다는 넘실대는 파도와 불안한 음향로 묘사된다. 수영할 줄 모르는 샤이론에게 바다는 두려운 공간이지만 후안은 그런 샤이론 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은유적으로 생각해보면 바다는 인생이고 후안은 샤이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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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후안이 바다에 떠 있는 샤이론에게 “너는 세상 한가 운데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인생의 중심에 있는 즉,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다.’로 해 석할 수 있다. 후안과 샤이론이 수영을 끝내고 바닷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제목 ‘문라이트(달빛)’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후안은 자신이 과거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이야 기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를 샤이론에게 해준다. 해가 뜨면 모든 것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게 되고 세상은 색깔로 그것 을 규정하기도 한다. 반면 해가 지면 달빛은 흑인 아이들이 파랗게 보일 정도로 세상을 파랗게 물들인다. 달빛 아래에서만 같은 빛을 가지는 흑인 아이들의 색깔은 파란색(Blue의 다른 뜻은 슬픔)이다. 인종 차별로 인한 흑인들의 슬픔을 달빛에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앞의 맥락을 이어나가서 “언젠가는 뭐가 될 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라는 말을 ‘세상이 너를 다르게 보더라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통해 너의 길을 가라’라는 의미 로 해석해본다. 그러므로 제목 ‘문라이트(달빛)’는 슬픔 속을 살아가는 샤이론을 비추어주는 위로의 의미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유를 생각해보자. 샤이론은 어린 시절에 자신이 리틀이라고 불리는 것이 싫으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리틀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청소년이 된 샤이론은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당하기 만 한다. 테렐이 만들어낸 게임에 휘말린 케빈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샤이론을 폭행한다. 이로 인해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터지고 리틀은 남이 자 신을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샤이론이 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자신의 아픔을 안아주었던 유일한 사람인 케빈이 지어준 별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여전히 자신의 안에는 위로 받아야 할 아픔이 있음을 보여준다.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샤이론의 얼굴이 합성된 영화 포스터에 핵심 메시지가 담겨있다. 나이가 들면서 샤이론의 모습은 분명 변화하지만, 그 속에 있는 과거의 모습과 슬픔을 부정할 수는 있어도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샤이론은 후안에게 물에서 떠 있는 법을 배우고 케빈에게 불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말하자면 후안의 물은 의지이자 파란색을 연상시키고 케빈의 불은 위 로이자 빨간색을 연상시킨다. 결론적으로 샤이론은 후안이 가르쳐준 대로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으 로 이어졌고 여전히 내면의 샤이론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케빈은 그것을 들여다보고 포용하고 위로해준다(안아준다).


소셜문화N : 네트워크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Common

sense is not that common 2018. 8. 2.~ 2019. 1. 27. REVIEW 대림 미술관 리뷰어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젊은 예술가 코코 카피탄이 한국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열심히 살아가는 삶에 주는 용 기와 격려의 메시지들로 구성되며 코코 카피탄의 사진, 페인팅, 핸드라이팅, 영상, 설치 등 총 150여 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특히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 적이었다. 코코카피탄은 1992년 스페인 출생으로 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사진작가이자 예술가이다. 런던 패션 대학(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학사를 취득 후,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새로운 사람과 사귈 기회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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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학 도서관에 있는 사진작가 책은 모두 열람할 정도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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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Art)에서 사진학 석사를 졸업했다. 코코는 학교에서 얻은 것

정적으로 학교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작가는 꾸밈없는 솔직함과 자유로움으로‘보그(Vogue)’,‘멀버 리(Mulberry)’,‘컨버스(Converse)’,‘구찌(Gucci)’등 세계 유 명 패션 브랜드 및 잡지사와의 화보 촬영을 진행하며, 아티스트로 서의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구찌의‘2017 가을/겨울 컬 렉션 콜라보’및 아트 월 프로젝트는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 해 국내외 대중들에게 뜨거운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브랜 드와 아티스트 간의 이상적인 협업을 이끌어 낸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코코 카피탄은“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이 한 가지로 굳어져 버리는데 지루함을 느낀다.”라고 하며 자신을“예 술가라고 정의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시대가 주목하는 예술가인 코코 카피탄의 작품들은 뛰어난 감각과 진심 어린 메시지들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코코 카피탄의 전시는 대림미술관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넘치는 사람들은 서로 부딪혀가며 작품을 관람해야 했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했기 때문에 진심이 담긴 격려의 메시지들은 전달되기도 전에 튕겨 나가 버린다. 사람들이 스페인 올림픽 싱크로나이즈드 선수단과 수영장을 보기 위해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을 때는 이미 지쳐서 수영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쉴 수 있는 곳은 작고 좁은 야외 공간이 전부였다. 기획 의도는 신선했지만 무언가 전달될 만한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소셜문화N :

추천도서 · 앨범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오은경, 시대의 창, 2014 ‘베일을 쓰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는 종교를 넘어서서 여성의 인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답답 한 여름날 온몸을 베일로 꽁꽁 싸맨 이슬람 여성을 보면 베일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런 사람들에게 약간의 해답을 제공해줄 수 있는 책이다. 작가는 한국 최초의 터 키, 유라시아 투르크 전문가로서 한민족의 근원과 투르크와의 관련성을 연구 중이다. 책의 내 용에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베일 문화가 시작된 경위, 베일의 종류, 나라별 차이점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베일 논쟁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권남희,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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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고단샤에서 출간한 전집 [무라카미 하루키 전 작품 1979~1989 ③ 단편집 I]을 저 본으로 삼으면서 국내 미발표 단편인 [비 오는 날의 여자 #241 #242]가 추가되어 총 여섯 편 이 수록되었다. 특히‘헛간을 태우다’는 사실주의 영화로 유명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버닝’ 의 원작 소설이다.‘반딧불이’는 하루키의 장편 소설‘노르웨이의 숲’의 모티브가 된 소설이 다. 각각의 이야기에 기묘하고 미스테리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내게 단편이 라는 포맷은 다양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점검하고 시도해보기 위한, 이른바 테스트 코스 같은 장이었다.’라고 작가가 말했듯이, 그의 작품들의 초석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엿보는 느낌이 든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민음사, 1929 그녀는 여류작가가 아닌 한 명의 작가이다. 이 글은‘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부 탁받았고, 그것의 의미에 대해 고찰을 하면서 시작한다. 글의 초반에 울프는‘여자가 작가로 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는 결론을 제시하며 글을 이어나간다. 부의 불공평한 분배, 교육의 차이, 시대가 빚어낸 올바른 여성상 등에 대해 다루었다. 이 글이 쓰인 지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성 영화제, 여류작가, 여성 대통령과 같은 단어들이 여전 히 존재하고 그것들은 너무도 쉽게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지어 버린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리뷰 및 선정 손현민 | 사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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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취재노트 기자들의 현장모습, 사각이 만난 사람들을 담았습니다. 관객 인증 샷도 차후에 기재 할 생각입니다. 관람 후기 (연극 , 클래식, 전시 관람 인증샷 보내주신 분께 잡지 사각 일년무료구독권을 드립니다.


이 달의 후원자 김경호 신일종합건조기 대표, 이범희 명지대학교 교수, 김성수 청주대학교 교수, 이성우 녹스코리아 대표, 김종기, 권용성 세림이앤씨대표 , 김양동 서예가, 노성식 도시와풍경대표, 손영인, 김영세 작가님 감사드립니다. 문화예술리뷰 잡지 사각은 여러분의 후원 광고로 만듭니다. 후원 문의는 sagaknews@naver.com / 010.2213.0696

2016 2017

Art & Culture Review Journal

Art & Culture Review Journal

사각

Art & Culture Review Journal

사각

2017 vol 07

2017 vol 08

기획 공공미술: 벽화의 현주소

벽화마을의 벽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기

기 획

미디어로 재탄생된 영국문학

인터뷰 극작가 손호석 리

획

대구축제, 그 모든것

인터뷰

현대무용가 김학용

리

제 34회 대구연극제 참가작

뷰

국립현대무용단 렉처퍼포먼스 춤이 말하다 유리상자- 아트스타 2017

뷰 극단 종이로 만든 배 <지상의 낙원> 최우람 : 스틸 라이프 [stil laif] 클림트 인사이드

사:각 2017 JUL/AUG NO. 09

2018 여기서 사각을 만나 보실수 있어요. ‘사각’이 각 구 도서관과 함께 합니다. 아래 도서관에 ‘사각’이 늘 비치 되어있습니다.

안심도서관 053-980-2600 대구광역시 동구 금호강변로 360 http://www.donggu-lib.kr/

신천도서관 053-980-2600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 6길 65

어린이청소년도서관 더불어숲 053-326-0937 대구광역시 북구 학남로17길 2 www.withwith.net

반야월 행복한 어린이도서관 아띠 053-961-3307 대구 동구 율하동로23길 8-1


편집자의 글

2018년도 갑니다. 저희도 어쨌거나 2018년 마지막 잡지를 내게 되었네요. 일 년간 도와주신 분들, 열심히 한 취재기자들, 필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표지처럼, 빈수레로 왔다가 빈수레로 가지만 그 흔적들은 표지의 리본처럼 화려했으면 아니 좋은 흔적을 남겼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요즘, 대구 문화계는 작은 소동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요.. 그렇지만 그 흔적들은 그 상처들은 좋은 흔적이 되어 흉터가 되지 말고 새로운 새살로 돋아나 한 발 나아가는 데 도움되는 상처였길 기대해 봅니다.

더 나은 2019년에 새로운 얼굴로 찾아 뵙기를….

by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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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뉴스 인터넷으로 편히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agaknews.com/ 문의 및 안내


2018 소헌문화예술아카데미 ࣴથԞ‫࣏ל‬৹൦ ਌ङ೩‫ܣ‬ ଒ਊ߸ी࣏ ഠी೩‫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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ણ घ ஹ ஷ઻Ԟ ഠҋ߸ीӚ ട ‫઻ٳ‬Ԟ ࣴથԞ‫࣏ל‬৹൦ ं߸֢५ 2018년 소헌문화예술아카데미 교양강좌 일정 ଔӄ१‫ ف‬ਕ֪ߚߘӘ ஷ࣏અ ਕല ഠҋ߸ी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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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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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7 셋째 토요일

莊子의 도가사상

이완재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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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4 넷째 토요일

개성적인 詩, 재미있게 읽기

이태수 (시인, 전 매일신문 논설주간)

4. 7 첫째 토요일

현대사회와 인간소외

박승위 (영남대 명예교수, 전 부총장)

4. 21 셋째 토요일

大同思想의 현대적 의미

홍우흠 (모산학술 연구소장)

5. 12 둘째 토요일

펄벅과 한국문화 다시보기

최종고 (서울법대 명예교수, 한국인물전기학회장)

5. 19 셋째 토요일

孝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김시우 (성산효대학원 교수,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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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첫째 토요일

김위홍, 여왕을 세우다

이문기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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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6 셋째 토요일

대구의 문화예술

홍종흠 (전 매일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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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0 다섯째 토요일

시대와 여성

최미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9. 2 첫째 토요일

소헌 선생의 삶과 예술

김기탁 (서예가, 전 국립상주대 총장)

9. 15 셋째 토요일

한국서예의 현재와 미래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10. 6 셋째 토요일

대구근대미술의 선구자들

김영동 (미술평론가)

10.20 셋째 토요일

한국과 외국 주거 이야기

구본덕 (영남대 교수)

11. 3 첫째 토요일

한국전통건축 읽기

장석하 (경일대 교수)

11.17 셋째 토요일

한국의 사찰건축 이야기

이중우 (건축가, 계명대 명예교수)

12. 1 첫째 토요일

예술가곡 공연과 해설

손정희 (테너, 대구예술가곡회장)

12.15 셋째 토요일

베토벤 음악 해설과 연주

김영준 (바이올리니스트,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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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17:00

**사정에 의해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ߚઅ 대구 수성구 화랑로 134-5 (만촌동 1330-33) T053.751.8089 http://blog.naver.com/sohen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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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에 따른 특별세미나

2018 nov. dec. VOL.17

값 4800원

사:각 2018 nov. dec. VOL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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