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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4 Vol.29
ARTS | ARTIST | ARTICLE
2021 March-April VOL.29
기획 이달의 테마 : 숫자 3의 알고리즘 INTERVIEW 송광익, 이우림
2021 웃는얼굴아트센터 기획전 시리즈Ⅲ
이한나展
2021.
3.18. ~ 3.31. 갤러리 라온
PHOTO ESSAY
봄은 꽃이 없어도 봄이 온다고 하지만, 형용색색의 꽃들이 들러리가 된다면 봄은 더없이 우리들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비쳐진다.
[봄의향연] 중에서 /이향숙 Photo by dot. K
1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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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COULUMN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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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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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 작가가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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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작가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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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3 최재혁의 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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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UMN : 대구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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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UMN : 대구근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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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UMN : 격동기미술사
44
Gallery in PAPER
14
2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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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52 기획 이달의 테마 : 숫자 3의 알고리즘 클래식 명작 속의 Number 3. 3월三月의 단상斷想
70
미술에서 숫자 3, 나의 그림과 3 사랑의 3중주(게르트루트) 화보 3월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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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IEW 클래식
68
미니인터뷰 영아티스트
70
예술, 그현장 : 예술교육의 현장
74
Check ARTS Schedule
52
28
SAGAK
3
HEAD COULUMN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예술, 폐허 위에서 집짓기
4 SAGAK
예술을 한다는 것, 철학을 한다는 것, 나아가 종교를 추구한다는 것은 모두 폐허 위에 집을 짓는 일
삶은 ‘무’(無)와의 싸움이다. ‘무’라는 무서운 괴물의 멱살을 잡고 그 놈에게 지지 않기 위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이다. 삶은 그놈의 손아귀=덫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친다. 인간의 역사도 철학도 예술도 그런 싸움의 다양한 기록이다. 싸움에는 성공한 싸움과 실패한 싸움이 있다. 성공한 싸움은 ‘무’와 동급의 경지에 들어서서 초연히 살아가고, 실패한 싸움은 ‘무’에 패배하여 무릎을 꿇고 그 상처(트라우마)로 불안에 떨며 살아간다. ‘무’란 제로(0)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 형체를 가진 것들은 소멸한다. 죽는다. 무는 소멸=죽 음을 뜻한다. 시간적으로는 유한한 것들의 종말=종언을 뜻하지만, 공간적으로는 차별된 것들의 평등=동등을 뜻한다. 영원=무한 속에서 유한한 존재들은 폐허로 돌아간다. 영원=무한은 ‘무’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것은 지 상을 다스리는 주인, 갑(甲)이다. 보편=보통=원만=평범=일상에 다름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의 물상들. 흐르는 시간과 시냇물. 모든 것이 생성했다가 다시 퇴락해 돌아가는 대지(흙). 공간을 통해서 시간은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이 위치를 알린다. 물질적 형체라는 공간적 형식 없이는 시간은 설 자리가 없다. 영원=무한 또한 구체적 사물 없이는 발 뻗을 곳이 없다.
예술은 무한이란 것을 감각으로 포착하여 물질적 재료를 활용하여 시각적, 청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살려낸다. 철학은 무한이란 것을 사유를 통하여 언어(개념)를 써서 논리적 체계 속에서 그 의미를 살려낸다. 종교는 무한 이란 것을 초월적 인격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신앙하며 의존한다. 모두 무한을 다루는 지적인 기법이다. 철학은 사유로써, 예술은 감각으로써, 종교는 신앙으로써 무한을 넘어서고자 한다. 폐허 위에서 각기 살아갈 집을 짓고 자 한다. 사유의 집이거나, 감각의 집이거나, 신앙의 집이거나 다 같은 집이다. 그 속에서 존재도, 감성의 불꽃 도, 신도 살아있다. 소멸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란 기억하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기억, 기록, 표현은 ‘의미’를 붙 드는 일이다. 무한에 끌려 들어가 소멸하기 전에 스스로의 위치를 밝혀두는 일이, 철학적으로는 개념을 구체화 하는 것이고, 예술적으로는 작품을 구체화하는 일이며, 종교적으로는 신심(信心)을 다지는 일이다. 해 지기 전 의 아름다운 노을처럼, 파도치는 바닷가 모래 위의 물 자국처럼, 수없이 피고 지는 들판의 이름 없는 꽃처럼, 그 것들의 의미는 사람이 있으므로 발견된다. 사람이 발견해내기 때문에 값진(=가치 있는)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 철학을 한다는 것, 나아가 종교를 추구한다는 것은 모두 폐허 위에 집을 짓는 일이다. 그 집 에 들어와 사는 존재의 이름도, 감성의 불꽃도, 신의 위대함도 나라는 한 인간의 소멸=죽음이 있기 때문에 값진 것이다. 무, 무한을 두려워하기보다 나를 그 불쏘시개로 태워 아름다운 불꽃의 집 한 채씩 지어가야 하리라. 글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시인 choijm@ynu.ac.kr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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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기획 | 전시공모 선정작가展 유리상자-아트스타 2021 Ver.1
서현규 - 봉산 십층철탑 2021. 1.15. - 3.28. FRI
SUN
EUL GALLERY KIM Hyun Suk 김현석 2021. 3. 2. – 3.31. TUS
WED
갤러리 CNK 유의정 색상가면 色相假面 : 감추어진 형상들 2021.1.21.
THU
- 4.23.
FRI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2021. 2. 9.
TUE
‘때와 땅’
- 5. 30.
SUN
대구미술관 1층 1전시실
INTERVIEW 1 작가가 작가를 만나다
송광익 서양화가
미술 작업을 하는 선후배가 만나서, 코로나 정국에 활 동이 시각적으로 힘든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그리 고 오랫동안 작업을 하면서, 작가로서 힘든 길을 어떻게 헤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올 4월 서울에서 전시를 앞두 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송광익 화가(이하 송)를 후배 김결수 화가(이하 김)가 만났다.
김결수 현대미술작가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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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
작가가 작가를 만나다
김: 지난해 홍콩에서 개인 전시도 잘 마치고, 연말에 대구미술관 전시에도 많은 작품을 보여주셨습니다. 행동적으로 보면, 덜 다니시고 가볍게 자리하더라도 말없이 앉아계시는 믿음직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선생님이 초 기 작업을 보면 캔버스에 철조망에 군상이 갇힌 것을 본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한지로 비 형상, 추상적 인 작품에 디테일하고 과학적인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긴 세월 동안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힘든 작업인데, 선생님 이 작업에 대한 작업관이라고 할까? 미술 부분만 가지고 대구의 환경적인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송: 미술에 대한 생각은 나는 그림은 혼자 그리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그릴 수 없다. 밖에 나가서 소통해도 내 그 림에 방해가 된다면 안 만나도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림을 그 리는 것 외에 부딪히는 것을 싫어한다. 내 할 것만 하고 내 작업만 열심히 하다 보니 언젠가는 그림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 람들 보다는 잘 안 보이는 것은 그런 생각을 갖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림은 작품으로 이야기 한다. 작품 이 외의 요소로 작품을 평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소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잘 안 보일 수 있 다. 초창기에는 사실적 그림을 그렸다. 철조망, 철로 만든 그물을 그리고 모든 자연을 덮는다든지, 인체를 덮는다든 지... 폐쇄적이고 구속적이고 억압적인 상황을 표출하기 위해서 나의 그림의 역량을 만들어 냈다. 나는 그림이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이 죽을 때 까지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상 주위 환경 조건에 따라 사고가 변하듯이, 그림을 그리는 욕구조차도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내 경우는 초창기 그물 작업의 구상작업에서 한지의 재질을 가지고 작업하는 비구상 작업으로 넘어왔 다. 지금까지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그림을 가지고 평생을 그리는 것 자체가 위대하고 굉장히 심도가 깊은 생각이 드는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위 환경도 영향을 안 받고, 여러 가지 재료가 다양한 것에 반응도 안하고 하는 것은 어떤 진실하지 못한 것에 결부되지 않는가하고 생각을 한다. 그림을 변해야 한다. 그래서 꾸준하게 한 가지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걸쳐 작업한 것이 나 같은 경우는 한마디로 그림의 교과서적인 것을 걸어온 것이 아닌가, 또 그렇게 가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김: 현대사회에서 후배 작가들한테 귀감이 되는 내용입니다. 제가 그 철조망에 일그러진 사람의 작품을 본 지 84 년 작품이다 보니 벌써 30년 전입니다. 미술의 환경에서 어울리고 부딪히고 한지, 나 같은 경우 인체로 보면 허리까 지 와 있는 경우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작업 관에도 사람이 단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평생을 하느냐? 그 부분에 귀가 솔깃합니다. 지금 저희 후배 작가들은 현실적인 세계에서 새로움을 찾고 뭔가 빨리 나서고 싶고, 빨 리 알려지고 싶어, 굉장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손가락 뒤집듯이 금방 변한 것을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30년씩 산골에서 작업만 하다 툭 나와서 작업을 내 보이면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워낙 16 S A G A K
좌) 당신의 공간은, oil on canvas, 182×227cm, 1982 우) 어떤 공간에서, oil on canvas, 182×227cm, 1983
발달한 시대에 작업만 가지고 꾸준히 꾸려나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 공감은 하지만 힘든 경우는 사실입니다. 향후 기회를 자주 해서 후배 작가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서로 간의 협력과 건전한 논쟁이 선후배 간에 만 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이라는 것이 대중성을 띠고 있는 현실문화와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방송 채널이나 모바일을 이용하는 것은 미술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미술이란 것이 왕성하게 보여주는 것이 전시라고 봅니다. 올 4월에 전시가 잡혀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후배 작가들 에게 돌파구를 찾을 방법은 무엇인가요?
송: 코로나 시기는 다 어렵다. 특히 예술가는 더더욱 어렵다. 그림이라는 것은 영화쪽 하고 다르다. 영상으로 자신 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림에서 가져오는 디테일, 그림에서 가져오는 각도에 빛에 의한 색감 도, 조명 색깔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특징적인 모티브가 있는데 영상에서 찾아내기가 어렵다. 전시 자체를 안 보면, 즉 실물을 보지 않으면 그러한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림에는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지금 의 코로나 정국에 영상을 통한 발표는 한계가 있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작업에 매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코로나가 언젠가는 독감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때 작업의 깊 이를 많이 쌓아놓기를 권하고 싶다. 역으로 생각하면 지금 화랑을 구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기 자신한테 달렸다. 외관적으로 대미지 를 주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은 늘 하던 것이기 때문에 그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매진하는 것이다. 작가정신을 이길 수 없다. 이 시국에 작가들은 코로나시기를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화랑을 선택할 기회가 더 많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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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
작가가 작가를 만나다
손광익작_대구미술관,2020
다고 본다. 우리가 그림을 시작할 때 한국이 쇄국적인 나라였다. 외국에 못 나가면 외국의 문물을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외국 에 먼저 갔다 온 사람은 복사해도 국내에 있는 사람은 모르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터넷이 발전되어 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우리 앞에 들어온다. 이러한 시기이다 보니 더욱더 자기 것을 찾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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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님께서 작품에 대한 변천을 짧게 이야기해 주시고, 코로나 현실성도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미술을 하는 전문가들이다 보니, ‘작가는 작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존재적 작품으로 보여줘야 한다’라는 말씀이 크게 들립니 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접하고 있는 후배작가들은 작업만 할 수 있는 경우가 힘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 한 문제에 후배작가들이 지녀야 할 자세와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주신다면?
송: 작업을 하면서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고정된 직업도 없고 시간제로 경제적 획득 해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더더욱 많다. 하지만 나는 첫째로 시간관념이 중요하다. 시간을 잘 잘라 쓰느냐는 시간관 념이 없으면 결국 작업하는 시간이 없어진다. 쓰는 방법만 생각하면 작업이 안 된다. 그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얼마 나 아는가이다. 자기가 어느 정도에 속해 있느냐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부분에 중요하다. 경제적 문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막아선다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스스로 자존심이 없으면 그림은 성공할 수 없다. 그리는 것 자체가 가치가 없어지 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을 낮 추는 행동을 안 하는 것이 좋다. 어려운 것은 자기변명이다. 그것은 다 어려운 것이니 말할 것도 없다.
김: 작업의 활동을 노동으로 보면, 예 술가들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 고 하여도, 시간개념을 잘 깨우쳐주신 것은 좋은 말씀입니다. 지금 전년도에 미술관 전시, 홍콩 전 시,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 전시 도 있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작가도 변천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손바 닥 뒤집듯이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거기 에 따른 실천과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김결수작_ 대덕문화전당,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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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
작가가 작가를 만나다
무궁무진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올 4월에 서울 통인에서 전시하시는데, 한지 물성을 가지고 디테 일 한 부분을 막연한 한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현실과 과학적인 부분도 있고 주도적으로 선생님께서 끌어나가 는 부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나야 할 작업이든지, 새로운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송: 최근에는 재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 유학을 갔다 와서 유화에서 종이로 바꾸었다. 종이 자체가 역사 적으로 오래되었고 가공방법에 다양하게 손쉽게 다룰 수 있다. 또, 철보다는 종이자체가 반투명의 물체이기 때문 에 소통을 표현하는데, 현대의 모든 물건은 단절을 나타내는 재료, 유리, 철판 등 단절된 재료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요사이에 현대 건축물이든지 현대의 모든 상황물 자체가 단절과 관계가 가깝다. 건축 같은 경우 소음이 안 넘 게 한다. 그림의 재료도 단절된 재료를 많이 찾는다. 그때 나는 역으로 소통이 있는, 서로가 통할 수 있는 것이 종 이가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그림 재료로 삼게 되었다. 거기에서 종이를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 평지로 세워보기도 하고, 눕혀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지금의 작업으로 오게 되었다. 어쨌든 종이는 가공도 좋고 소통도 좋고 여러 가지 방법론적으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게끔 사용되었다. 그리고 소통과 상반된 개념으로 재료를 찾아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고무이다. 요새 젊은 친구들도 무궁무진 재료가 널려 있는데 어떻게 선택해서 뭘 선택하느냐 어떻게 자기 것을 만드느냐는 깊이 있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재료 자체만 생각하니까 가볍게 가져와서 작업 하다 보니, 그림자체가 많이 변화가 생기고, 깊이가 없고 역사성도 없어지고 한다. 그래서 재료를 선택할 때 시간과 생각을 오래 하지 않으면 재료 자체 로 좋은 효과를 볼 수 없다.
김: 현대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것 재료는 무궁무진합니다. 미술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 이다 라는 말로 작품에 벽을 쌓기도 합니다. 숯이나 한지의 재료를 쓰는 것이 한국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라고 이해 하면 되는지요? 단지 선생님이 보여주는 많은 재료 중에 한국적인 것이 재료를 쓴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 대 문명에서 만들어진 가장 순수하고 역사성이 종이라는 재료로 이해됩니다만.
송: 종이 자체가 한국 것이다라는 것은 말할 수 없다.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지 종이 자체가 한국 것은 아니 다. 다양한 종이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한지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한지하고 상반되는 것 한지는 소통이 있는 것 과 그 역으로 밀폐되는 것, 두 개 상반되어서 찾아서 작업 해보려고 한다. 창조는 신만이 하고, 우리는 창의만 해야 한다. 새로운 것은 없다. 있는 것을 잘 이용하느냐, 어떻게 작 섞어서 만 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무엇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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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익 _ 홍콩전시, 2020
김: 유익했습니다. 송광익 작가님을 생각하면 우리 대한민국 음식 생각하면 찐득한 된장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한번 씩 뵈면 편하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그건 선생님 긴 세월 작업에 소홀 하지 않기 위한 작업방식 에 기인한 것으로 오늘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존경합니다. 송광익 선생님 가지고 있는 생 각 그런 것을 실천하는 것을 후배들이 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자주 뵐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후배 김결수 는 어떻게 미술에서 이야기해 주십니까?
송: 김 작가는 예전부터 잘 알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서 대처도 빠르고 재주도 매우 많다. 아직 재주를 펼치는 데만 계속 노력해왔는데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집합시켜서 꽁꽁 묶어서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 특히 코 로나시기에 기회가 되질 않나, 나는 김 작가가 좀 더 한곳이 집중해서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세계를 지금부터 만들어 낼 거로 생각한다. 여러 가지 작품을 봤지만 흔들리지 않는 것과 결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이런 잡지를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것이 굉장한 힘이다. 전반적으로 힘을 줄 수 있는 하나의 기본으로 생각 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힘든 와중에 실질적인 전달력은 일차적인 관계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작품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사각의 지면을 통해 전달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잡지가 전문가만 아니라 일반인들까 지 저변 확대가 되는 것이 사각 잡지의 발전이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사각편집부 사진·정리 강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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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작가의 작업실
경계의 긴장감 속에 노스탤지어를 만나다. 서양화가
LEE WOO RIM
코로나 19로 지친 우리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청량감을 주는 작품이 있다. 이우림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중 간에서 감상자가 오히려 꿈속을 노니는 감정을 가지게 한다. 유화로 환상과 현실 사이에 새로운 공간을 그리고 작업하는 서양화가 이우림을 만났다. 요즘처럼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 때 한 편의 작품을 통해 누구나 꿈꿀 수 있고,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 보자.
꽃 패턴, 뒷모습의 여인, 이질적인 공간에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들.. 상상, 모호, 무표정 경계로 표현된다. 미술 사조를 보다 보니 리얼리즘 즉 현실 세계, 먼 현실, 초현실은 있어도 중간은 없었다. 서양 미술사 중에 중간 의 공간은 왜 없을까? 인간도 중간지점에서 상상도 하고 꿈꾸고 하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데.... 중간 세계에 대 한 궁금증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볼까 하는 그런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먼 세계도 아니고 현실 세계도 아니고 애매모호하고 친근한 그런 부분을 회화나 도자기 부조 조각을 통해 상상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에 여자 뒷모습, 남자 앞모습, 짙은 숲속의 남자, 흔들리는 사물들, 물, 자작나무 들판시리즈, 사람을 뺀 사 물로 공간을 채웠다. 요즘은 달항아리를 벗어나서 청하 무늬나 문양을 가지고 독특한 세계를 만들고 있다. 중간의 개념을 잡고 그 공간에 그 개념에 맞게 계속 인물 사물 동물 다양한 사물들을 한곳에 모아서 공간을 재해 석하고 새롭게 만드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고 앞으로 사물을 빼고 좀 더 추상적 설치를 하려고 계획 중에 있다.
옛날 추억의 표상인 까까머리, 양 갈래머리 그리고 익숙한 동물 등, 친근한 소재를 작가의 상상적 공간에 두었다. 우리 한국의 표상인 까까머리, 여자는 머리 땋은 머리…. 과거에는 추억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구상 인물을 하다 보니 추억의 인물을 그렸다.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 했다. 그때 신구상주의가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이후, 금호 영 아티스트 되고, 서울의 화랑에 관심을 받았다. 까까머리 소년을 예전부터 그렸던 터라 내 작품이 인기가 그 다지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 싱가포르, 대만 뉴욕, 바젤 등 각종 유명한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나 의 작품들이 해외에서 큰 호응을 받았을 때 적잖게 놀랐다.
화랑은 작가가 없다고 하고, 작가는 화랑이 없다? 현재 화랑의 소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화랑과 작가와의 관계는 각자 자기 영역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 그 관계 를 잘 지키면서 작가는 열심히 작업 하고, 화랑은 매년 새로운 작품을 선 보일 수 있도록 서로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나마, 대구 같은 경우는 좋은 화랑이 다른 지역보다 나은 편이다. 그리고 타 지역보다 마인드가 높은 편이다. 보 통 작가들도 그 길을 몰라서 헤매는 경우는 허다하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다니면서 작품을 보이거나, 아니면 전시 에 화랑 관계자들이 눈에 띄는 작업을 하던가…. 그림은 그렇게 발전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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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작가의 작업실
그림을 너무 많이 팔리니까 그림에 소홀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작업한 것은 바로 경매로 나온다. 정 말 좋은 작품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매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그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미술관이나, 예술발전소, 대안공간의 전시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경계의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주위에서 전시가 끝나면 작품의 평가보다 얼마나 팔렸나가 관심을 가지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돈을 벌기 위한 그림으 로 인식되니까 허탈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림의 양을 줄였다. 한 점씩 최선을 다해 작업하려고 한 다.
힘든 작업이지만 계속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오는 것 같다. 하지만, 늘 실험적 작품을 시도한다. 작가는 작업량이 많아야 한다. 특히 전업 작가는 더욱더 그렇다, 비록 힘든 생활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을까 한다. 일 년에 두 점씩 신작 하면서 실험적인 방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사실 작가들은 어느 정도 생활만 유지되면 작업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중요하다 선진국은 모두 예술선진국이다. 정부가 작가들한테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표현양식을 보여주고 내 생각을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동물 모양의 도자기 독특한 느낌은 세상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구상작품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거나, 추상화로 표현하기 위해서 상상의 공간에 필요한 것은? 왜 구상은 새롭게 되지 못할까? 기법은 구상으로 하고 비현실 드로잉을 하면서 공상을 해 보았다. 그런데 이 런 풍성한 느낌을 구상으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추억.... 심지어 몽환적 상상이 나중에 는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오히 려 그 시기에 그림은 더 좋은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일상이 없어진 지 오래고, 작가에게 전시회도 줄어진 지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예술을 좋아 그 시기의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구상의 기법으로 그 감성을 살리기 위 해서 추상적이고 몽환적 구상을 가지고 성공의 작품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사 실이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남기기 는 어렵다고 본다. 작업실에서 이우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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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몽(夢) Oil on Canvas, 162×112cm, 2002
우) In the woods Oil on Canvas, 160.2×112cm, 2020
개인전은 작가의 마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지난 뉴욕 전시를 준비하면서 관계자가 뉴욕이 올해 파란색 옷이 유행한다고 하면서 푸른색 꽃을 제안했다. 푸른 색 옷을 그리다가 도자기 푸른색 도자기로 그리면 재미있지 않을까? 몸을 청하 도자기의 푸른 문양을 넣었다. 뉴욕 전시에서 우연히 시작된 청하도자기 문양은 마이애미에서도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다. 그 이후 서울전시, 대구, 부 산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런 부분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답을 구하기도 한다. 2008년부터 리안갤러리에서 개인전 하면서 인물을 배제하고 풍경만 가지고 작업한 것으로 전시했다. 인물을 빼 고 동물문양을 넣었다. 3~4년 전 일본 여행을 가서 부엉이에 대한 의미를 듣고, 동물을 넣으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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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resin, Oil on Canvas, 117×91cm, 2020.
spring, Oil on Canvas, 130.3×97cm, 2019
최근 전시에 선보인 것은 빨간 배경에 인물이 박혀 있는 것이다. 내 그림의 개념을 가지고 추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했다. 새롭게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 인기 좋은 작품을 계속 그려서는 안 된다. 물론 새 로운 것을 시도할 때 화랑에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트페어 경우 관람객이 좋아하는 작품을 선보이지 만, 나의 개인전만큼은 작가의 마음을 보여주는 곳으로, 판매보다는 새로운 작품을 전시해야 된다. 설치나 조각 등 다양한 전시를 선보여야 한다. 항상 먼 초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그런 상황 느낌을 주로 작업을 해왔 다. 나의 가까운 상상, 공상, 그러한 테마에서 어느 곳에 없는 사물들의 상황을 모아서 새로운 연출을 하는데 초점을 갖고 작업을 한다. 보는 사람 하여금 그 공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작품 앞에서 자기만의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 기존의 공간 속에서도 추상적으로 변화를 계속하려고 한다. 취재 사각편집부 사진·정리 강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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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3
삼인삼색
화가와 작곡가 연주가가 만들어낸 합주 이야기 이명원(화가), 이호원(작곡가), 최혜숙(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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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산문화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달콤한 피아노'에서 최재혁(작곡가, 남구 대덕문화전당), 이명원화가, 이호원 현 대음악작곡가, 그리고 ‘달콤한 피아노’를 운영하면서 어쿠스틱밴드에서 건반을 맡는 최혜숙 연주가와 함께 그들만의 삼 색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재혁 지역의 천을산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과 어울려 지역민과 만나는 예술공간 ‘달콤한 피아노’ 공간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최혜숙 저희 ‘달콤한 피아노’가 2014년 4월에 오픈했다. 개인 카페로 오픈할 때 제가 사는 지역에 문화공간을 만 들고 싶다는 생각에 만들게 되었고, ‘달콤한 피아노’가 개인 카페로 있으면서 전시, 공연, 그리고 예술인들이 이 공간에 와서 각자의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 후 ‘달콤한 피아노’ 중심으로 모인 문화인들과 함께 작년 봄에 천을 산문화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현재 문화협동조합에서는 그간 해왔던 행사를 ‘달콤한 피아노’공간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재혁 지역의 중견작가 로 왕성하고 활동하고 있으면 이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소개해주신다면?
이명원 나는 여기서 페인팅 작업하고 있으면서 성주작업실에서도 작업을 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성주작업실 에는 플라스틱을 녹여서 작업하는데, 마치 코로나 19가 창궐하면서 작업실을 문 닫게 되었다. 그 작업을 하려면 동료 두세 명이 같이 해야 한다. 모이지도 못하고 해서 현재 여기서 페인팅 작업만 하고 있다. 그 전에 다른 지역 의 작업실에서 작업 하다가 달콤한 피아노를 운영하는 최혜숙님을 만나 서로 의기투합해 이 공간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웃음) 본적은 신천동, 그리고 삼덕동을 거쳐, 범어동에서 오랜 시간 살고 있는 대구 토박이 이다.
이명원의 작업은 의도는 도시의 화려하지만 차가운 문명의 이야기를 담고 싶음에 있었다. 문명은 분명 사람들에게 풍요를 주지만 내면의 공허함은 채우지 못한다. 그 표현을 위하여 작업재료로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색과 형을 잡았으며 그것은 이제껏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움이다. 그 재료가 주는 강렬하고 화려하지만 차가운 느낌의 특성을 회화의 화면에 이용하였다. 좌) 페인팅작업 앞산전망대에서바라본 푸른 밤 162x130cm 우) 신몽유도원도 - 플라스틱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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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3
이호원 저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현대 작곡가 이면서 이명원 형을 따라 어려서 피아노 치다가 여기까지 왔다. 영남대학에서 대학원 졸업하고, 93년도에 독일로 유학 가서 드레스덴 국립음대 에서 공부했다. 2007년도에 귀국했다. 현대음 악 작품 경향은 난해한 분야가 많다. 하지만 남 들이 이해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싶다. 재즈나 아 방가르드, 가곡 등
최재혁 ‘달콤한 피아노’ 안에서 음악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
최혜숙 저희는 달콤한 피아노카페에서 하우스밴드 어쿠스틱 밴드가 있고 저는 건반을 맡고 있다. 네 명으로 구성 되어있고 어쿠스틱음악을 기존의 음악 커버하고 편곡해서, 여기서 한두 달에 한 번씩 공연한다. 최재혁 문화예술계 있는 분들이 심리적 공황 상태를 겪고 있는데, 특히 세분의 경우, 이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 법이나 계획이 있다면?
이명원 코로나가 작년 처음 겪었을 때 외부강의 안 되고 해서 처음 두 달 정도 행복했다. 그런데 주변의 힘든 모습 보고 마음이 아팠다. 성주 작업실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편했는데 정신적으로 괴로웠다. 근래 와서 페인팅 색감이 더 밝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밝아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았을 때 즐겁고 행복하기 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전시는 아직 미정이다. 만약 기회가 되면, 동생의 가곡에 내가 그림을 그리고, 최혜 숙 선생님이 연주하는 그런 방식의 전시회는 하고 싶다.
최혜숙 작년은 가까스로 어쿠스틱밴드 공연을 조금 했었다. 사람들이 이 장소에서 즐거운 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두 가지 못하고 있다. 공연 전시 카페 운영 모두 힘들었다. 코로나가 문화계 전반에 큰 타격이라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타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공연 등 방안이 있겠지만, 뭔가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고 하니 구조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본다. 올해는 마을기업 으로 선정되면서 그 사업계획들이 있다. 공연 전시를 그 계획에 맞추어서 이제는 정기적으로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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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산협동조합의 활동들 - 동네 사랑방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문화생활도 하고 음악회도 하는 플랫폼이고 싶다. (사진은 코비드19 이전 활동사진이다.)
최재혁 천을산 협동조합 소개를 더해주신다면?
최혜숙 공식은 천을산문화협동조합이고 브랜드는 달콤한 피아노이다, 문화의 플랫폼으로 이해하시면 된다. 글쓰 기 소모임을 한다거나, 그들의 각자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노력할 것 이다. 앞으로 이런 문화공간이 지역적으로 많이 확장되고 많아졌으면 한다. 하지만 운영은 힘들다.
최재혁 올해 계획이 있다면?
최혜숙 코비드로 여전히 똑같다. 속히 가까이서 많은 분을 만났으면 한다. 저희가 공간에서 이제까지는 어떻게 놀 았냐 하면 공연을 하면 공연 컨셉을 맞추어 그림을 그린다. 그림도 구경하고 설명 듣고, 어떤 때는 여기에 오시는 여러 예술인이 오셔서 화가. 사진작가 분들이 공연할 때 더 잘하라고 작품을 경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갑자기 코로 나 때문에 끊겨서 아쉽다. 하지만 이 공간이 여러 예술인들의 놀이터이고, 만나는 지점이었으면, 그리고 각자 하고 싶은 문화적 일상을 누렸으면 한다.
이명원 어차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바램은 코로나 종식을 간절히 원한다. 이호원 (웃음) 가곡을 열심히 쓰겠다.
최재혁 어려운 시대를 겪으면서 세분의 공통분모를 찾아 이 3월을 맞아 좋은 작품이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전해주었으면 한 다. 그리고 문화 플랫폼이 활성화 되어 누구나 이 공간에서 문화 향유 기회를 많이 챙겨 가길 바란다.
인터뷰 진행 최재혁 취재 사각편집부 사진·정리 강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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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피아노음악계의 대모
피아노 앞에서의 이경희(1916-2004) 선생
피아니스트 이경희(李慶姬, 1916-2004)는 서울 출생으로 아버지의 관심으로 유치원부터 신식교육을 받을 수 있었 다. 서대문 근처 이화유치원부터 이화여전까지 이화재단 학교에 다녔다. 아현초등학교 다닐 때는 채플시간에 독창 과 연극을 했으며, 또한 언니 이순희(이화여전 피아노 전공)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화여중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당시 미국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The New England Conservatory)를 졸업하고 1932년 이화여전에 부임한 선교사 우드(Grace H. Wood, 1902년생) 교수에게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이러
한 사제간의 계기로 나중에 미국 유학할 당시 서로 가족같이 지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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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화여전 졸업연주를 마치고(1937) -뒤줄 오른편 둘째가 이경희 선생 2. 이화여전 졸업식(1938)에서(우측이 이경희 선생) 3. 효성여대 제1회 졸업기념(대건고강당, 1956.3.24.) 4. 효성여대 제7회 졸업기념(1962) -앞줄 중앙이 이경희 선생. 그 뒤가 권숙희, 왼편이 강화자)
서울에서의 활동 이화여전에 입학한 이경희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매주 두 번씩 피아노 레슨을 우드 선생에게 받았다. 우드 교수 는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도록 지도함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특별순서로 피아노 연주를 많이 하면서 지 냈다. 당시 이화여전에는 모두 27명이 입학하여 1938년에 음악과 7명(피아노 4명, 성악 3명)이 졸업하였다. 졸업하는 그해 이경희는 제1회 조선일보사 주최 신인음악회에 출연했으며, 더욱이 음악콩쿨에 출연하여 1위 없는 2위를 한 바 있다. 이후 지금의 대학원격인 이화여전 음악연구과에 진학했으며, 대학원 재학 중 이화여고에 오르간 클라스 시간을 맡아 대학원 생활과 교사 생활을 함께 하였다.
이듬해인 1939년 5월에 있은 제1회 창작작곡발표대음악제에 우드, 김메리 선생과 함께 참가한 바 있다. 그는 1940년에 음악연구과를 졸업하면서 졸업연주회 겸 첫 독주회를 그해 5월 3일 이화여전 강당에서 가졌는데,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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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쇼팽·드뷔시 그리고 맥다웰이 창작한 곡을 연주하였 다. 당시 연주회에 김활란(金活蘭, 1899-1970) 총장을 비롯 하여 많은 교수들이 참여하여 무대가 끝날 때까지 앙콜을 하 였다.
이경희는 많은 무대에 섰다. 이화여전의 바이올린 계정식(桂 貞植, 1904-1977) 교수가 이경희에게 반주를 부탁한 계기를 시작으로 성악가 김천애(金天愛, 1919-1995), 오경심(吳敬 心), 이관옥(李觀玉, 1918-1976) 등 연주자들의 반주를 담당 하였던 것이다. 또한 만주를 비롯하여 신경, 봉천, 하얼빈 등 으로 연주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이즈음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으로 유학할 기회가 왔으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자 이경희는 당시 연희전문 영문과 윤태웅(尹泰雄) 교수와 결혼한다. 이경희는 1942년부터 이화여대에 재직하 면서 후학을 양성해온 한국 피아노음악계 1세대에 해당된다.
대구에서의 활동 이경희는 1950년 6·25전쟁 중이던 1951년 1·4후퇴 때 대 구로 왔다.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둘째 시누부가 삼덕초등 학교에서 교감으로 있어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다. 처음 대구 피난학교에 근무하다가 하대응 선생의 소개로 남산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55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 이기홍의 바이올린 독주에 이경희 선생의 피아노 반주(1960년대) 이경희트리오-전희봉, 정현애, 남궁요열 선생의 딸(효성여대, 1971년 6월 )
부임해 제1회 졸업생부터 1982년 2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근 무하였다. 대구에 정착하자 미군교회 목사님의 주선으로 피 아노를 구입하여 1954년 10월 대구문화장(전 금융결제원 자 리)에서 피아노독주회를 가졌다. 더욱이 초창기에는 효성여대 성악과 학생들의 졸업연주와 정 기연주시 반주를 도맡을 정도였다. 또한 첫 제자들의 발표회 를 바리톤 이점희(李點熙, 1915-1991), 바이올린 이기홍(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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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선생의 대구시향 30주년기념연주회 협연(1994년)
琦洪, 1926-2018) 등과 합동으로 열기도 하였다. 1950년대 부터 대구지역에서의 성악반주는 그가 도맡았었다. 그는 효 성여대에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 대구 피아노음악 계 대모로 존경받았다. 1955년부터 1982년까지 27년 동안 몸담은 효성여대에서 정 년퇴임한 후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80세 가까이 연주무대에 서는 등 음악에 열정을 쏟았다. 회갑기념연주회, 정년퇴임기 념독주회, 칠순피아노듀오연주회를 개최하였고, 1994년 대 구시향 30주년기념연주회에 협연을 하였으며, 1996년 팔순 기념독주회를 제자들의 주선으로 열었다. 더욱이 2000년 10 월에는 일산의 한 교회에서 초청연주회를 85세에 가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음악적 삶을 살은 이경희는 2004년 12월 29일 노환 으로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칠곡 다부동 현대제2공
上) 이경희 선생의 제자-왼편 강중수와 이청행(1995년) 下)이경희 선생의 팔순피아노독주회(어린이회관, 1995.6.12.)
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직계가족으로는 독일 거주 피아니스트 윤지희와 대구가톨릭대 음대에서 퇴직한 바이올린 윤진영이 있다. 손태룡 _음악사학자 husb@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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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근대미술사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
주경(朱慶)
좌) 청년 자화상, 1927, 패널에 유채, 27x20.8cm 우) 자화상, 1965, 캔버스에 유채, 65x50cm
서양화가 주경(朱慶, 1905-1979)은 서동진, 이인성, 이쾌대, 김용조 등 대구 1세대 서양화가들과 함께 대구 근·현대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서울에 서 출생해 1942년부터 대구에 정착해 교육자와 미술행정자로 활동했던 그는 해방 후 어수선했던 대구화단의 새로운 지도자로 활동한 셈이다. 화가이기 이전에 대구화단에 서 그의 위치는 경주공립여자중학교 초대교장(1946), 대구미공보원 원장(1950), 한 국미협 경북지부장(1962), 경북미술학원 설립(1963) 등 교육자이며 행정가로 확고한 자리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화가로서 행보와 평가는 1974년 서울문화예술진흥원에 서 마련된 회고전에서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에게는 ‘한국 최초의 추상 화가’라는 찬사와 함께 1920년대 제작된 추상화 작품에 관한 미술비평가들의 엇갈린 평가는 분명 그를 위대한 화가로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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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1976)
1. 누드 좌상, 1928, 종이에 목탄, 64x49cm 2. 누드 좌상, 1928, 종이에 목탄, 64x49cm 3. 누드 좌상, 1933, 종이에 목탄, 64x49cm 4.갈색 배경의 누드입상, 1935, 캔버스에 유채, 73x53cm
1976년 대구 맥향화랑 초대전 이후 30년이 지난 2006년 대구MBC Gallery에서 기획된 그의 대규모 회고전은 그동안 지역 화단에서 간과했던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기 손색이 없었던 전시회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 종로에서 ‘중앙서관’이라는 큰 서점을 운영하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 난 주경은 일찍이 춘곡 고희동과 이종우에게 미술을 배우고 일본에 유학한 서 양화 2세대 화가이다. 프랑스 유학을 준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 동 경의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와 제국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에서 서양 화를 익혔다. 그 후 그는 동경에서 유학 중이던 조선인 미술학도들의 긴밀한 상호유대와 새로운 조선미술 창조를 같이한다는 의지의 ‘조선미술학우회’ 조 직에 앞장섰다. 그리고 1933년에는 백의(白衣)의 조선민족을 암사하는 ‘백우 회(白牛會)’로 명칭을 새롭게 바꾸게 된다. 제국미술학교 재학생이던 심형구, 이쾌대, 박영선, 최재덕, 김만형이 주축이 되고 동경미술학교와 태평양미술학 교, 일본미술학교, 문화학원에 다니던 유학생들도 참여했다. 하지만 일본 경 찰의 민족색 배제 강요에 저항하지 못하고 ‘재동경미술협회’로 개칭한 후 서 울과 동경에서 회원전을 펼쳤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그의 작업세계를 세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제1기 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친 수용기로 잡고, 제2기를 1930년대부터 1945년에 걸친 자연회귀의 시기로, 그리고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를 위에서 부터) 1. 새, 1920, 종이에 연필, 14x16.8cm 2. 옷주름, 1925, 종이에 연필, 13.5x22.8cm 3. 폭포, 1959, 종이에 연필, 22.2x15.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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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사
왼쪽부터 1. 정물(화병), 1929, 종이에 파스텔, 31.3x23.8cm 2. 마도로스 파이프가 있는 정물, 1926, 패널에 유채, 26x21cm
3.격조, 1932 제작 1974 보수, 캔버스에 유채, 91x73cm
제3기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제1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하동보통초등학교 3학년 재학 시 야마모도유 우소 선생으로부터 연필화와 수채화 지도를 받기 시작했던 1919년을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1921년부터는 부 친과 친교가 있었던 고희동으로부터 본격적인 미술지도를 받기 시작했으며 1927년에는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 업하고 도일하기 전까지 국내 미술 수업기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제2기는 일본 유학기인 1928년부터 1942년 까지로 정리할 수 있으며 그에게 이 기간은 최고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시기였다. 1942년 귀국 후 대구의 계성중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며 시작된 제3기는 화가, 교육자, 행정가로 변 신을 거듭하며 안정된 삶을 영위했던 시기로 보아도 무관할 것 같다. 주경의 작품세계 중 가장 주목을 받는 작품은 〈파란〉(1923)과 〈생존〉(1930)을 꼽을 수 있다. 1972년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에 처음 출품된 두 작품을 두고 국내 미술계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과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이 작품들이 국내에 서양화가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점과 중앙고등보
왼쪽부터 1.광복기념-제1회 경북미술전시회(1945, 대구 공회당) 2.경북미술학원생들과 함께(1966) 3.개인전 개막식(1976, 맥향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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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교 재학생이었던 작가가 과연 이런 작품을 제작할 수 있 는 미의식을 가졌냐는 것이다. 1920년대 서양 미술계를 보 면 1910년부터 유럽 화단은 어떤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오 로지 순수 조형 요소로만 그린 추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던 격변기였다. 자연을 주제로 재현한 구상회화에서 마티스의 야수파와 피카소의 입체파가 탄생하며 만들어낸 새로운 미술 은 충격과 혼동의 연속이었다.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예술정신과 기법을 고등학생이었던 그가 어떻 게 수용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미술평론가 이구열 역시 〈파란〉에 대해 “1910년대의 파리 중심 전위미술에 속하는 미래파의 역동적 기계시대 표상을 본받으려고 한 듯한 소품이지만 화면의 표현의식과 기법의 파란, 1923, 캔버스에 유채, 52x44cm
능숙함이 참으로 놀랍다. 상당한 역량의 기성작가가 그린 추 상작업의 수준이다. 근대 한국미술사의 현존하는 추상화의 효
시인 이 작품이 분명 주경이 고등학교 학생이던 18-19세에 그렸다는 것이 맞는 애기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러한 추상회화의 선구적 미의식을 ‘새로운 양식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로 가볍게 평가하고 넘기기에 는 많은 아쉬움을 안겨준다. 1930년대부터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구의 회화 양식 중 야수파와 추상파적 경향 의 화가들과 달리 진취성과 적극적인 실험정신으로 시작된 추상 작업들이 일본 유학을 통해 지속성을 갖지 못한 점은 현실에서 부닥친 수많은 현안에서 비롯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이러한 미술이 일부 지식인과 전문화가 이외에는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국내 미술계의 여 건과 제한된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영동 역시 “주경에게 있어서 추상작업이 우연히 돌발 적인 충동으로 그친 사건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도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지속성이나 필연성의 결여라 는 비판도 역시 어려움이 있다. 주경의 정체성이 초창기 근대미술의 전개과정에서 단지 ‘최초의 추상화’를 제작 한 인물로서만 인식되거나 그의 추상미술이 마치 우연적인 사건처럼 받아들여져 비평에서 제외되면 곤란하다.” 는 우려는 우리 화단의 기득권과 지역미술에 대한 차별성에 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1940년대 이후 제작된 그의 다양한 구상회화(정물, 인물, 풍경)와 미술학원 운영을 통한 아카데미 미술교육은 표현양식의 새로운 전개를 떠 나 진실 된 예술가의 삶과 자유롭게 시대를 풍미하고자 했던 고독한 예술철학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큐레이터 art006@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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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미술사
백락종, 삶과 풍토, 그리고 여유
<무진류(無盡流)>, 1998년, 한지에 유채, 60.6×90.9cm, 개인 소장.
백락종(본명 백종호, 1920-2003)은 대구 출신으로, 해방 후 대구 지역의 2세대 미술동인인 향토회를 창립(1959)하였 고, 1951년부터 1965년까지 효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한 뒤 서울로 상경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한지 캔버스” 를 개발해 작업에 응용하며 평생 한국적 모티프와 정서에 대한 탐구를 이어 온 작가이다. 비록 대구를 오랫동안 떠나 있었고 말년에는 김천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지난 2018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된 “격 동기의 예술가” 전시를 통해 유작 일부가 오랜만에 선을 보임으로서 재평가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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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64 <박참봉의 딸>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백락종의 작품은 1940년대, 즉 해방 직후의 것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작 품 중 제작연도가 가장 이른 것으로, 작가가 일찍이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사물(혹은 인물)의 단순화와 재해석에 관심을 가져 음을 알려준다. 마치 토벽(土壁)을 보는 듯한 거친 마티에르 처리도 인상적이다. <나룻배>는 이 작품이 제작된 해는 작가가 서울 동아백화점과 대구 미국문화원에서 연달아 개인전을 열며 왕성한 활동을 전개할 무렵이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의 작품 은 몇 점 남아있지 않으나, 이 작품을 통해 <박참봉의 딸들>에서 보여준 향토적 주제가 대규모의 군상 작업으로도 이어졌음 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빨랫터에서>, <구멍가게> 등도 이와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또한, 화면에 서 두드러지는 노란색 배경 처리는 이 시기 작가가 선호한 연출이기도 하다. <무제(철조망)>은 향토적 소재, 즉 한국적 소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훗날 이렇게 사회상을 은유하는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1950-60년대 사이에 작가는 철조망을 주제로 작품 몇 점을 남기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 다. 화면 앞을 가로막은 철조망. 그 뒤편에서 말 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전쟁 후 분단이 고착화되는 사회상을 암시하는 것일까? <야유회>는 1960년대에 들어 작가의 화풍에는 한가지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사물을 면으로 채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동 양화의 백묘법(白描法)을 연상시키는 선묘 중심의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변모를 잘 보여주는 대작으로, 자유분방한 선묘의 활용을 통해 인물들의 다채로운 몸집을 흥겨우면서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65-85 <해경>이 제작된 해는 작가가 14년동안 재직했던 효성여자고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할 무렵이다. 당시 작가 는 생활고로 인하여 판화와 탁본화를 주로 제작해 외국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생활 자금을 마련했고, 이 과정에서 민화나 도자기 등 고미술품을 수집하며 새로운 화면을 창출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음을 회고한 바 있다.1 아마도 작가는 이 과정에서 한지가 갖는 특유의 물성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한지로 만든 캔버스로 그 린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게와 연꽃>,<황홍(黃虹)>은1970년대에 접어들며 작가는 한지 캔버스 위에 유화를 덧칠한 뒤 점선으로 사물을 그리는 기법 을 본격화했다. 아무래도 수채화 물감보다는 유화 물감이 덧칠로 우러나는 색채를 표현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작업에 대해 작가는 “점은 실존의 핵적(核的) 분자이며 선은 그 점의 집합체 또는 연결체이니 모든 실존은 선으로 집 약될 수 있다.” 2 라고 요약하였으며, 이를 반영하듯 이 시기의 작품은 구긴 뒤 배접한 한지의 결을 따라 조심스럽게 점선으 로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자화상>은 일생 동안 많은 수의 작품을 남겼지만 자화상은 거의 그리지 않았던 작가의 남아있는 유이한 자화상 중 하나로, 구긴 뒤 배접한 한지의 결을 자연스럽게 살리면서 섬세한 선묘로 자신의 모습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1. <박참봉의 딸>, 1946년, 합판에 유채, 33.3×24.2cm, 개인 소장. 2. <나룻배>, 1956년, 캔버스에 유채, 97×162cm, 개인 소장. 3. <무제(철조망)>, 1964년, 캔버스에 유채, 130×160cm, 대구미술관 소장. 4. <야유회>, 1964년, 캔버스에 유채, 130×162.1cm, 개인 소장. 5. <해경>, 1965년, 한지에 수채, 45.5×53cm, 개인 소장. 6. <게와 연꽃>, 1977년, 한지에 유채, 30.8×51.2cm, 개인 소장. 7. <자화상>, 1976년, 한지에 유채, 24.5×19.5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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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락종, 「판화를 팔아 고미술품 수집」, 『백락종 그림과 글(2002)』, p112. 2 백락종, 「나의 어록(語錄) 중에서」, 『백락종 그림과 글(2002)』,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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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삼계불이(三界不二)>, 1997년, 한지에 유채와 탁본, 116.7×72.7cm, 개인 소장. 우) <무염삼계(無染三界)>, 1996년, 한지에 유채와 탁본, 110.7×72.5cm, 개인 소장.
1986-2003 <삼계불이(三界不二)>,<무염삼계(無染三界)>가 제작된 1996-7년은 작가가 서울에서 제21회 개인전을 열며 ‘삼계주의’를 주장한 해이다. 이 시기 작가는 삼계주의의 개념에 대하여 “과 거세계, 현재세계, 미래세계”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라 정의하며 “과거세계는 탁본으로, 현재세계는 실존하는 모든 사물 중에서, 미래세계는 사후세계로 무한한 공간을 표현1”했다고 밝 힌 바 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탁본기법으로 표현된 건어 두 마리는 1974년작 <불이(不二)>에서 이미 등장한 바 있으며, 그렇기에 이 작품은 과거의 작품을 삼계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재해석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신음(神音)>은 100호 이상의 대작으로는 아마도 마지막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작에서 작가는 삼계주의에서 주장한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신라 시대 에밀레종의 비천상 탁본과 다소곳이 피어난 연꽃,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무지개는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순간인 것이다. 특히 말년의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는 무지개에 대해 작가는 “만약 나의 영혼이 남아있다면 저 아름다운 무지개-수억조(數億兆)의 분자가 집결 융화되어 피어 나는 무지개 속의 한 분자가 되어 이 세상 종말까 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뿐이다.2”라고 언급하며 이것이 사후세계의 상징임을 넌지시 언급한 바 있다 . 작가는 객지 생활에 이사하는 일이 많아 큰 그림은 틀에 분리시켜 말아 보관하다 그림뭉 치를 풀어보니 그림에 균열이 심하여 무용지물이 되어있었음을 회고한 바 있는데,3 이는 곧 “보존성이 더 좋은 캔버스를 제작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다만 이는 단순히 화판에 한지를 배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것이었 다고한다.
안태연 _객원기자 aty9705@naver.com
1,2 백락종, 「삼계주의(三界主義) 뜻」, 『백락종 그림과 글(2002)』, p119. 3 백락종, 「한지(韓紙) 캔버스의 탄생과 제법(製法)」, 『백락종 그림과 글』, p114. <신음(神音)>, 1999년, 한지에 유채와 탁본, 97×193.3cm, 개인 소장.
쉼표하나 _ 코로나단상
Poohsticks : Poohsticks는 'A. 밀른' A. Milne의 '위니 더 푸'Winnie-the-Pooh 책인 '푸 코너의 집' The Pooh Corner에서 처음 언급 된 게임이다. 그것은 흐르 는 물 위에 있는 어떤 다리에서도 행해질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다; 각각의 플레이어는 다리 상류 쪽에 막대기를 떨어뜨리고 하류 쪽에 막대기가 처음 나타나는 것이 승 자다. 너무 안달복달하지말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이 놀라운 단순한 게임은 매년 열리고 있으며 심지어 협회까지 있다고한다. 세계 푸스 틱스 챔피언십은 1984년부터 영국 템즈강 데이즈락에서 개최되고 있다. "Rivers know this: there is no hurry. We shall get there someday." (강들은 이것을 알고 있답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언젠가 우리는 그 곳에 도착할 테니까요.) -A.A. Milne, Winnie-the-Pooh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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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in Gallery
기획자의 의도를 담아 전시를 개최하듯 오프라인 전시 모양새를 옮겨 지면에 전시를 담아 개최합니다. 이번 호의 주제는 봄이라면 생각나는 꽃을 주제로 여러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장 기 영 CHANG, KI-YOUNG Present: 꽃에 대하여 꽃을 선물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관계 형성으로 이해되어 진다. 누군가에는 사랑의 표현이고, 다른 이에겐 존경의 표현이 되고 또 어떤 때는 축하와 감사의 마음으로 다양하게 표출된다. 내 작업에서 꽃은 단순한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주는 감정 네트워크의 모습이라 하겠다. 이러한 네트워크로서의 의미가 잘 전달되도록 플라워박스나 꽃다발 형태로 캔바스의 모양을 조각하고 페인팅하여 그 대상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보여줌으로써 일루져니즘 효과가 더 극대화시키고 있다.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개인초대전 17회 2000~2019 (서울, 대전, 대구, 광주) 2019 Present - ALLME ART SPACE 초대, 서울 2018 Happy Garden - Lotte MVG Lounge 초대, 대구 2017 Hello Happiness - 롯데갤러리 초대전, 대구 2015 감각의 향연 -수성아트피아 전관 초대전, 대구 2014 Regina Gallery 초대전, 머큐어앰버서드 강남, 서울 부스개인전 9회 (서울, 오사카) 국내외 기획초대 그룹 전시 등 200 여회 참가 2020 Illusion-원초적 상상 | 수성아트피아 기획, 대구 2019 현대미술조망전-리얼리즘을 보는 눈 |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 Recollection 한국 영화 100년전 | 롯데갤러리 대구 2018 꽃피는 봄이 오면 | 현대예술관 미술관 기획, 울산 WITH ART FAIR |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 2017 ART KAOHSIUNG | The PIER-2 ART CENTER, 카오슝, 대만 Great Art Fun | 아틀란타 시티 홀, 아틀란타, 미국 극사실주의-한계를 넘어서 | 포스코 본사, 포항
AHAF 아시아호텔아트페어 |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서울파르나스 ART BUSAN | 프리미엄페이지갤러리, 벡스코, 부산 2016 싱가포르 어포더블 아트페어 | F1 PIT BUILDING, 싱가포르 국내외 아트페어 53회 changart@hanmail.net
Flower Box _ 92.0x63.5cm _ Oil on canvas _ 2017
유 혜 정 YOO HYE JEONG 작업실에는 두 개의 캐비넷이 있다. 화이트 색상, 레드 색상을 가진 두개의 캐비넷. 그 안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으며, 물건의 종류만큼 다양한 추억과 시간과 이야기들이 있다. 캐비넷으로 들어가기 전 ‘의미 있는 무엇’은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무엇’으로 변했다. 결국 시간으로 빛이 바랜 이야기들이다. 캐비넷은 캔버스가 되고, 빛바랜 추억과 시간들과 이야기는 색채가 되며, 그것들을 마주하는 나의 감정은 생명력이 있는 식물이 되어 캔버스 위에서 되살아난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의 중반까지 나를 따라온 그림자들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들이다. 누군가에게는 한장의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책갈피가, 그리고 나에게는 캐비넷이 그러한 존재이다. 사소하고 소소하지만 하찮지 않은 내 삶의 이야기가 담긴 ...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영남대학교 조형학부 동양화과 졸업 2008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 2008-2020 다수 단체전 및 프로젝트 전시 참여 2018 아름다운 풍경 전(아르스에스 갤러리, 대구) 2019 Korean Painting New Generation 지역청년작가육성 프로젝트 전(e-갤러리, 대구) 2020 향촌, 한국화에 물들다 전(향촌문화관, 대구) 2020 365일 36.5도 전(토갤러리, 대구) 현재 영남한국화회 회원, 학남고등학교 미술교사 bung03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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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6 _ 60x60 _ 혼합재료 _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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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 은 LEE HA EUN 작가의 개인적 경험인 수목장으로 식물의 잎을 특별하게 해석하고 나뭇잎 이전의 시간을 상상하며 작업으로 풀어낸다. 인간을 포함한 움직이는 대 자연의 물질적 순환에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으 며, 생명의 소멸은 곧 시작과 재생, 부활, 윤회의 연속성이며 그 각각의 개체는 서로 동등하고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生과 滅의 순 환작용 속에서 잎은 인체가 되고 인체는 다시 잎이 되기도 하고 각 개체의 색과 모양은 희석과 중화로 의인화되며, 시공간 차원을 넘어 한 화면에 표현된다. 또 식물과 인간의 몸은 오버랩 되기도 하고 구름, 바람이미지로 환원되기도 하면서 새로운 독립적 형상이 만들어진다.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영원불멸을 꿈꾸며 작업으로 위로받을지도 모른다. 계절은 지고 피기를 반복하며 불멸처럼 보이기 도하고 모든 성장의 욕망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생장임을 자각하는 허무함은, 유한과 무한의 양면적이고 이중적 태도를 취하며, 생명의 시작과 끝 을 연결시키고 이러한 것들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영남대학교 조형미술대학 미술학부 한국회화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8회 2020 “美7년전” 빠리1997 , 대구 2020 “Cirdulation 웃는얼굴아트센터 기획전 시리즈Ⅵ ”, 대구 2020 “숨” 보나갤러리, 기획초대전시 , 대구 2019 “불멸 자연” 예스마로 갤러리, 기획초대전시 , 대구 2018 “내게 온 풍경Ⅱ” 서진아트스페이스, 기획초대전시 , 서울 주요 단체전 및 그룹전 2020 향촌 한국화에 물들다,향촌문화관 - 대구 2020 기억의 소환, 수성아트피아 - 대구 2019 김해 비엔날레 국제미술제, 김해문화의 전당 - 부산 2019 대구청년작가육성프로젝트1부, 학생문화센터 - 대구 외 다수 현재 수성구미술가협회, 영남한국화회, 한국화동질성회복,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청년작가 솔방울 회원, 만촌 평생교육원, 청도여성회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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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1 _ 27.3x35cm _ 캠퍼스, 아크릴 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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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진 선 CHOI JIN SUN 어느 날 나에게로 꽃빛 바람이 불어왔다. 그토록 아름답고 눈부신 네가 나의 마음에 들어 온 날 나는 눈물겹도록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너의 정원에서 함께 노래 부르던 나는 어느새 순수 정원의 어린 사슴이 되고 순수 정원 속 오랜 친구 ‘투명 달팽이’가 말을 건네 온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꽃빛을 받으면 꽃빛으로 하늘빛을 담으면 하늘빛으로... 언젠간 너만의 빛깔을 찾을 테니까...” 나의 마음 한쪽엔 어느새 아름다운 마음정원이 생겼다. 너에게로 다가가 오늘을 더 사랑할 아름다움을 닮고 싶다. 때때로 지치고 외로운 날 마음산책을 하자. 꽃이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는 순수정원에서 영원의 봄날을 그린다. 꿈꾼다. 날아오른다.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대구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조형창작과 석사 개인전 5회 (대덕문화전당,키다리갤러리,혼다자동차초대전,연지갤러리초대전,아트갤러리M초대전) 2021.대구아트파크 개관기념전(대구아트파크 갤러리 나무, 대구) 2020.공스며들다(오감회초대그룹전- 갤러리 오늘,대구) 2020.경주 그리고 황남이야기(갤러리란, 경주) 2019 영원한 영감 KLAF-KOREA LIVE ART FAIR(Halle Aux Toiles,프랑스 루앙) 2019 The 행복한 그림전(강정보디아크,대구) 2019 제3회 한국교직원미술대전(한가람미술관-예술의 전당,서울) 2019 제 38회 대구미술제(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 2019 LA Modern Art 한미국제교류전(갤러리Gaia,미국 LA) 2019 키다리갤러리 기획전(에필성형외과,대구) 한국미협, 대한민국현대한국화회, 홍익여성한국화회, 오감회, 대구수성미술가협회, 대구초미협 회원, 대한민국 솔거미술대전 초대작가 2018 대한민국 솔거미술대전 평면통합 대상 수상, 신조형 미술대전 특선 등 다수 bellflowerc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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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20호) _ 장지에 혼합재료
기획 | 이 달의 테마
숫자
3
의 알고리즘 --
- 미술, 음악, 책, 그리고 …
삼삼삼!!! 3번의 고수레로 코로나를 물리치자! 어느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숫자가 무어냐고 물어보았다. 대다수가 숫자 7을 말했다. 아마 럭키세븐에 대한 서양식의 반응이라고 했다. 여하튼 우리는 숫자 3은 우리 생활 곳곳에 있다. 내기해도 삼세번, 의사 방망이도 세 번....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은 완성을 뜻한다. 삼위일체, 그리고 삼각 구도의 작품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이 번호에서는 문학, 미술, 음악, 우리 문화에서의 숫자 3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시작은 늘 설렌다. 계절의 시작, 신학기, 첫 출근, 봄이 오는 길목에서 3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면서,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
이 달의 테마
클래식 명작 속의 Number 3.
가만히 주의있게 보면, 우리 주위에는 숫자와 연관되어 큰 의미를 부과하고 우리 일상과 문화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것들이 많다.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어느 프랑스 명품 브랜드 향수는 Number 5. 이라는 명칭으로 수십년간 여성 들의 맘을 사로잡으며,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명사를 가지고 있는 명품, 미술작품, 건축물 등이 숫자와 함께 그 품격과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숫자는 깊은 구조적 관계와 작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긴 겨울의 끝과 봄을 준비하는 3월을 맞이하여, 3이라는 숫자와 클래식 음악과의 밀접하고, 운명적인 관계를 클래식 명곡을 통 해서 찾아보기로 하자.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은 수백년전부터, 본인의 작품명과 작품번호를 매겨두고 있으며, 3번이라는 숫자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주옥같은 명곡들이 있다.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피아노콩쿨에서 우승하면서 우리에게 더욱더 잘 알려진 쇼팽피아노콩 쿨, 콩쿨 본선1차에서 종종 연주되는 연습곡 Op. 10, 3번은 ‘이별의 곡’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쇼팽 본인 자신도 ‘이토록 감미로운 멜로디는 처음이다’ 라고 자평하는 작품으로써, 연습곡 답지 않은 서정 적 멜로디와 감성, 화성, 레가토 기법을 두드러지게 사용한 명작이다. 쇼팽의 음악적 절친이자, 운명적 관계였던, 피아노의 가능성을 극한의 경지에 올려놓은 프란츠 리스트, 그 의 초절기연습곡, 3번, ‘ ’의 경우, 피아노 전공자라면, 한번쯤은 도전해 보고싶은 하지만, 테크닉적으로 너 무 어려워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곡, 가끔은 듣기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곡으로 알려진 초절기 연습곡 3번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교향곡 중에서도 3번의 의미는 클래식음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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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의 경우, 작곡가가 교향곡 2번을 작곡이후, 다시는 후작을 만들지 않겠다고 하고는 28 년 후에 작곡된 교향곡 3번, ‘러시아 교향곡’이라고 불릴 정도의 최고의 교향곡으로 알려져 있다.
클래식 음악의 성인, 베토벤은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를 모두 알꺼라고 본다. 작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전세계적으로 그의 명곡들이 연주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베토벤의 9개 의 교향곡은 명작중에 명작이라고 할수 있다. 9개의 교향곡중 교향곡 3번 ‘영웅’<Eroica>은 그중 최고의 교향곡 으로 손꼽히고 있다. 청력을 잃은 장애과 고난의 극복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작곡한 곡이기에 우리에게 더많 은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클래식 명곡들중에는 3이라는 숫자와 함께 클래식 음악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고, 아직까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연주되고 있다.
코로나19로 벌써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되찾기 힘든 시간을 보내온 것 같다. 하지만, 길었 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항상 찾아오듯, 봄을 알리는 3월, 3이라는 클래식 음악속에서 여유를 찾아보 시길 권해본다.
글 김진우 대구콘서트하우스공연팀장 jwkim0914@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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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三月의 단상斷想
一 ‘춘삼월 호시절에’라는 말이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며 만물이 소생하는 3월이 되어야 모든 생명이 움직이
며 비로소 우주의 삼라만상 기운으로 하늘, 땅, 생명체가 3위 일체가 되어 조화롭게 살아간다. 동양의 고전에도 세 가지 요소인 물, 불, 공기로 지구별이 탄생되었다. 하늘(天) 땅(地) 인간(人)은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의 기본철 학 이념이었다. 무한한 우주 속에 지구별 그리고 생명체인 인간과 동식물들이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옛날 선인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것으로 알았다. 허나 조선시대의 고지도에 나타난 땅의 구조체인 세계지도는 하나같이 둥글게 되어있다. 중국의 대륙과 조선, 일본이 중심축에 그려졌고, 서아시아 일부와 인도 및 오늘날의 아프리카 대륙이 여러가지 상상의 명칭으로 표 시되어있다. 중국 고전 산해경에 표시된 별칭의 이름으로 표기되기도 하였지만, 옛사람들의 상상력은 결코 현 대인에 견주어서 오히려 상상력의 기회를 구할 정도이다.
근래에 밝혀졌지만, 중앙아시아와 남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지역에서 시작된 우리 선조의 일부인 흉노족들 은 따뜻한 남쪽 대륙으로 이동하였다. 만주 지역과 한반도에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로 상징되는 청동기 문화를 이루면서 고조선이라는 국가를 세우며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고대 신라의 기반 역시 북만주의 흉노 일 부 세력이 경주 김씨 왕조의 뿌리였다. 일본의 왜 또한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영향으로 부족국가의 체계를 이루었다. 동북아 3국을 칭할 때 한국. 중국. 일본의 세 나라가 중심이 되었고 고지도에서도 수 백 년 동안 대륙과 한반 도 그리고 일본 섬이 나타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우리 조선의 백성들은 땅은 둥글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북경에 파견된 마테오리치 사제의 영향으로 대륙이라는 땅은 원구 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수백 년 전부터 알았고 우리식의 세계지도로 만든 인문과학의 발견이었을 것이 다. 그러나 정조임금 사후부터 몇몇 사대부 가문에 의하여 조정이 휘둘렸고 글로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 여 청나라, 러시아, 일본 등의 개입으로 인하여 결국엔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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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천하도 우) 대구와 경상도 지역 - 출처 장해이보 고지도첩. 학강미술관 소장
에도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가진 선각자들에 의해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한민족의 시련과 함께 놀라움도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로 세계는 놀라움을 가졌 다. 윤봉길 의사의 투척은 중국인들도 생각지 못한 역사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대륙의 국공내전과 항일전선에 조선 의용군들이 참여하였다. 국민당에 쫓긴 만리장정에도 홍군과 함께 조선의 투사들이 동참하였다. 동아시아의 수천 년 역사에 이만한 운명과 기운을 가진 민족이 있었던가? 오죽하면 세계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과 비교 하며 많은 시샘도 받고 있다.
생각해보라! 어느 나라가 자기 주도적으로 단기간에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국가가 있었는가. 세종 때 만든 정음은 천지인의 삼극(三極)으로 출발하였다. 그동안 한글은 한자와 병행하여 사용되었고 지금의 시대에 모든 것을 쉽게 전 달할 수 있는 문자와 텍스트로서의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二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예술가의 시작은 60세부터라는 시중에 회자하는 언변에 따라 다시금 변화와 혁신의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있다. 민족미술의 보존연구를 표방한 이천동 마태산 중턱의 학강미술관을 몇 년간 운영하다가, 뜻 하지 않게 재개발지구에 포함되어 최근에 이사하게 되었다. 땅과 소유물도 다 때와 운이 있는 것 같아서 눈물을 삼켰다. 서너 달 동안 미술품을 옮기면서 또 다른 배움과 실천 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석재 서병오 예술가를 위한 ‘수묵의 확장’이란 주제 전시를 진행하며 콘텐츠의 해석과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다. 2022년에 있을 교남시서화 100주년의 행사도 지금부터 준비할 것이다. 동아시아의 동시대 흐름을 볼 수 있는 대규 모 국제행사가 계획된다. 지역 산 대표 뮤지컬을 만들어서 전시와 연계한 콜라보행사가 될 것이다. 수묵의 거장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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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서병오를 위시하여 100년 전 교남시서화에 초대된 당시의 조선 수묵예술가들이 미소를 지을 것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 이 특별전에는 한국의 현대 미술가 백남준, 이우환, 김환기, 곽인식, 이응로 등 한국미술사에 큰 흐름을 남긴 거 인을 위시하여 지역의 원로.중진예술가 들이 초대된다. 지역을 너머 100년의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새로운 방점 을 찍는 증표의 기록을 남기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三. 벌써 개나리가 피고 매화꽃이 만발했다. 정월 대보름도 지나고 만물이 움직인다. 하늘과 땅이 열리고 생명이
울렁인다. 주역에서 말하듯 모든 것이 변화되고 또 변하여 우주 만물의 조화 속에 인간은 모래알처럼 살아간다. 어려울수록 일상에 순응하며 주변을 돌아보고 지역과 사회를 위해 최소한의 할 수 있는 임무가 무엇인지 알아 볼 시공간이다.
좋아하는 한자가 생각난다. 마.철.저(磨.鐵.杵)이다. ‘쇠로 만든 방망이를 갈아서 침을 만든다’는 뜻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면 힘든 목표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문구를 알게 되어 미술가라는 한길을 일관되 게 매진하게 되었다. 동양미술사와 한국미술사, 그리고 근 현대 서구예술론과 동양철학에 심취하여 연구하는 것 이 일상이 되었다. 여기에다 실제 예술품을 알고 보기 위해서 전문지식을 다지게 되어 현재는 여러 곳에서 작품 감정과 평가에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것도 옛말로 하면 삼절(三絶)이라는 시.서.화의 밑받침에 따른 것이라 생각된다. 붓을 휘둘러 글씨를 쓰고 그 림도 그려보고 예술관련 칼럼도 쓰고 하며 보낸 나날이었다. 올해도 개인전시와 더불어 언론에 비친 칼럼에 나온 글을 모아 한 권의 서적으 로 출간하고 싶다.
이러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인터라망의 세계이지만 추후 계획되는 대규모 전시회는 지역과 사회에 대한 예술가의 책임과 역할에 따른 행위가 분명하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계절의 봄을 넘고 싶다.
글 김진혁 화가, 학강미술관장 mts4542@naver.com 장해이보 고지도첩. 학강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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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테마
미술에서 숫자 3, 나의 그림과 3
‘3’이라는 숫자는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 글은 동서양에서 알려진 觀念들 중 숫자 3이 表現된 예와 숫자 3이 작가 본인에 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사람이 태어나는 출산의 과정에서도 ‘3’이라는 숫 자가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를 점지해주고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관장하는 三神의 존재가 그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삼신을 기리기 위해 밥(백 미), 국(해산미역), 정화수를 각각 3그릇씩 올려 제를 지내왔었다. 이것에 대한 그림1) Laocoon과 그의 아들들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으나, 혹자는 이것을 환인, 환웅, 단군 3대가 다르게 발 전한 것이 대표적인 설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출생에서부터 숫자 ‘3’과 관련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에서도 숫자 3을 찾아 볼 수
있다. 한글 창제에는 하늘(‘ • ’) 땅(‘⼀’) 사람(‘⼁’)의 원리가 기본이 된 것으로 알 려져 있다. 서양 문화를 이끌어가는 마차의 두 바퀴 같은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 이즘(Hebraism)에서도 ‘3’이라는 숫자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먼저 헬레니즘 에서 나타난 숫자 ‘3’은 헬레니즘의 시작인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나타나는데, 하늘의 神인 제우스(Zeus)는 아버지 크로노스(Cronos)를 제압한 후 포세이돈 (Poseidon), 하데스(Hades)와 제비뽑기를 통해 신들의 권능을 나눠가지기로 했는데, 이때 나눈 권능이 하늘, 바다, 저승 3가지였다. 그리고 또 다른 근간이 되는 헤브라이즘에서는 대표적으로 三位一體가 있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알려진 삼위일체는 헤브라이즘의 바탕이 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동서양의 근간에서부터 숫자 3의 존재감을 확인 할 수 있 는데 특히 마사초의 작품에서는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가 도드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그림을 그릴 때 3가지 요소들을 그림에 녹여 내려고 노력해왔다. 62 S A G A K
그림 2) Masaccio의 聖 삼위일체
융프라우 mixed on paper 30호 2019
염원 watercolor on paper 20호 2019
첫 번째로 융프라우 그림에서는 天, 地, 人을 표현해내
것이며 일반화 할 수 없기에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고 싶었다. 정물화 구도에서 가장 안정적이며 통일감주
자신이 가진 ‘正’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했
는 三角構圖로 설산을 표현하고 그 위쪽에 곧 닿을 듯한
다. 이후 자기 객관화를 통해 자신이 가진 가치관의 矛
하늘과 화면 아래쪽에 인간을 그려 넣었다. 이 그림에서
盾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하여 ‘反’을 만들어 내고,
는 광활한 자연 앞에 한낮 微物과도 같은 인간의 존재로
모순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는 ‘合’의 과정을
표현되어 있지만, 그러한 미약한 인간의 존재가 하늘과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특히 가운데 부처는 그러한
산등 대자연을 정의하고 명명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
과정을 통달한 존재를 의미하며,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
고 있다.
던 緣起說(原因, 條件, 結果)를 통해 관객과 인연을 맺고
두 번째로 念願이라는 작품에서는 색의 삼원색을 통해
자 하였다.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내고 싶었다. 빨강, 노랑, 파랑으
진정한 작가정신에 대한 모색은 지난(至難)하며 그 방
로 알려진 3원색은 색채의 근간이 되는 색이다. 특히 색
향성 또한 오랜 話頭였다. 그러나 필자는 時代精神과 利
채(生理色, 物理色, 化學色)를 발전시킨 괴테(Goethe)는
他的 社會還元이라는 命題에 닫기를 희망해 본다.
이를 통해 인간의 根幹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
꽤 오랜 시간 캔버스 앞에 서서 붓을 들었지만 여전히
는 시간에 從屬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3가지색
새로운 시작과 끝을 정하는 작업은 어렵다. 스스로 곱씹
의 시간적인 의미는 노랑색은 과거, 빨강색은 현재, 파
은 시대정신을 캔버스 위에 펼쳐 보일 때면 민낯이 드러
랑색은 미래이며, 그 속에 인간의 삶의 흔적 및 미래의
나는 것 같아 움츠러들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해나가는
모습까지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것은 이 캔버스가 유일한 통로이기에 어렵지만 매순간
세 번째로는 無常心이다. 이 그림에서 표현하고 싶었 던 3가지는 正, 反, 合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지는 가치관은 지극히 개인적인
최선을 다하려 한다. 내가 가진 이 유일한 통로에서 누 군가에게 차갑다고 느낄 수 있는 현실에 자그마한 온기 로 기억되고 싶어 여전히 붓을 들고 있다. 글 김상용 화가 artsykim@daum.net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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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테마
사랑의 3중주(게르트루트) 부제 :‘사랑과 죽음과 고독의 서’ 헤르만 헤세 저
삼각형은 가장 작은 가지의 수로 만든 완벽한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 헤세의 저서 중에 3번을 읽어보라고 적혀 있는 서문도 있었다. 향수(페터 카멘친트)이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게르트루트>이다. <사랑의 3중주>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발표되었던 작품으로 '사랑과 죽음과 고독의 서'라는 부제가 있다.
주인공 쿤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어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해 음악학교에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천 재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자신에 한계를 느낀다. 그러다가 그의 맘속에 담고 있는 여인 리디의 억지에 썰매를 타다가 불구가 된다. 이 장애로 그는 모든 꿈이 사라진다. 하지만 곧 괴로움과 기쁨은 같은 근원으로 깨닫고 새롭게 출발하기로 한다. 쿤에게는 무오트라는 성악 하는 친구가 있다. 무오트 덕분에 그의 가곡은 유명해지고,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 진다. 하지만 무오트는 자신을 학대하고 파멸로 이끄는 성향을 가졌다. 이런 무오트의 자학적인 모습에 모두가 떠 났다. 쿤은 오페라를 쓰기 시작한다. 오페라의 소프라노 부분을 쓰다가 게르트루트를 만난다. 무오트와 게르트루 트가 사랑한다는 것에 마음은 무너져 버렸다. 결국, 쿤은 자살을 결심하지만,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에 자살을 포기한다.
그 후, 쿤의 오페라는 크게 성공한다. 한편 게르트루트와 무오트는 결혼을 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긴 다. 그는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내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 감미로움과 괴로움은 나의 분에 어울리는 것이며, 그것 에 대해서는 혼자 책임질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쿤과 게르트루트를 위한 마지막 파티를 보낸 뒤에 그는 죽는다. 결국 미망인 된 게르트루트는 성악가로 쿤은 음악가로서 각자의 길을 떠난다. 또 그렇게 삼각의 구도는 없어졌다. 이 작품에선 장애를 딛고 일어선 음악가의 사랑과 절망 그리고 출발을 이야기한다. 작품 제목의 3중주는 두 남자 와 한 여인의 삼각의 3중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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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예술 방면에도 매우 관심도 많았다. 심지어 14살에는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찍이 종교와 철학 특히, 삶에 관해 물음에 해답을 스스로 내리기도 했다. 그 작품이 데미안에서 말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폭풍 같은 인생을 지나가면서 결국 품어야 할 것은 사랑이라고 한다. 세계가 독일에 총을 겨눌 때 헤세는 조용히 평화를 지지했다. 그래서 조국은 그에게 많은 가혹을 주었다. 그와 그 의 가족에게 배신자의 낙인찍는 것은 물론, 출판금지처분을 받기도 하면서 정신분열증까지 덮친다. 헤세는 칼 융에 게 정신치료까지 받는다. 그때 만난 것이 그림이었다. 그림 안에서 평화를 찾은 것이다. 헤세에게 있어서 그림은 치유이자 피난처였다.
예술가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일일까? 그 시간을 버텼기에 데미 안의 불완전한 강렬함과 유리알 유희에서의 균형과 조화로 완성된 명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글 강금주 사각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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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FLOWER 3월에 어울리는 꽃 풍경
아이두로즈, 리시안셔스, 설유화,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 하노이 라넌 큘러스, 샤베트튤립, 스위트피, 알스트로메리아, 아스틸베, 카네이션, 유칼립투스, 줄아이비를 사용해 여리여리한 핑크톤의 비대칭 쉐입의 플 라워바스켓으로 봄나들이의 설레임을 표현해 보았다. 화사한 설유화와 길게 뻗은 스위트피 라인이 매력적이다.
사진협찬 플로스로제 인스타그램@flos_rose 플로스로제는 프라이빗한 플라워 오더 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라워클래스와 플라워스타일링을 선보이는 플라워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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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ssic Review
세상 따뜻한 현악기를 만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송년음악회 ‘선물’
어릴 때 생각했던 2020년은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가고,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있고, 해저 밑바닥에 건설된 도시가 있는 시대였다. 영화에서 다루던 2020년과는 차이가 있지만 올 한 해 어쩌면 앞으로 우리의 일상이 될 모습들을 만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자가 격리가 일상이 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안부도 업무도 각자의 노트북 앞에서 이루어 지는 세상을 만났다. 2020년 한 해 모든 문화예술 분야가 다 힘들었겠지만, 공연계는 참담할 지경이었다. 해마다 1, 2월이면 그해에 공연될 프로그램들의 표가 오픈된다. 올해는 지역에도 유자왕, 손열음, 조성진 등의 스타들 공연 이 눈에 띄었었다. 그 티켓들을 손에 넣고 얼마나 설레며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이없게도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대 부분의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어렵게 문을 연 공연장도 때로는 30% 때로는 50%의 객석을 오픈하며 버텨 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쩌다 가게 되는 공연은 연주자들도 관객들도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다음 달은 괜찮겠지 다음 계절은 나아지겠지 하며 지내왔는데 막상 연말까지 공연장이 모두 문을 닫고 내년 프로그램도 기약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알 수 없는 공허감마저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연계는 올해 초부터 유행하던 무료 스트리밍을 통해 언택트 공연이라는 새로운 길을 창조해 냈다. 말 그대로 비대면 공연인데 일정 금액 이상의 후원금을 낸 사람에게만 스트리밍이 오픈되는 방식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국내에 팬층이 넓은 뮤지컬 공연이 주로 많은데 연말에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이 ‘선물’이라 는 제목으로 네이버 TV 언택트 공연을 열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말이 필요 없는 천재 비올리스트이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 반하게 되는 사람이다. 전쟁 고아로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를 둔 그는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 음악을 통해 느꼈던 것들, 그리고 막연하게 바라보던 들판 너머에 대한 그리움…. 그것들이 바로 지금 일어날 일에 대한 준비였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길을 열어 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길을 따라 달려왔 을 뿐. <중략> 음악가로 자란 나는 ‘공감’을 꿈꾼다. 음악이 내게 준 선물을 모두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꿈 말이다.”(2008년 에세이 중) 2007년 창단한 실내악 연주그룹 앙상블 디토의 음악 감독이기도 한 그는 페스티벌을 통해 재능있는 젊은 음악가 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드라마나 영화의 OST 연주, 클래식 뮤직비디오 촬영 등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하며 앙상블 디 토와 함께 클래식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오늘 들은 연주도 안방 1열의 관객들에겐 그야말로 선물이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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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1부 텔레만, 비올라협주곡 Telemann, Concerto in G major for Viola Strings and Basso continuo, TWV 51:G9 – 리처드 용재 오닐, 디토 오케스트라 비발디, 사계 중 겨울 Vivaldi, The Four Seasons, Concerto No. 4 in F minor, Op. 8, RV 297 – Winter – 양인모, 디토 오케스트라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 단조 Bach, Concerto for Two Violins D minor BWV – 양인모, 리처드 용재 오닐, 디토 오케스트라
intermison 2부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중 Tchaikovsky, The Nutercracker (Suite from the ballet), Op. 71a 영화 <핑크팬더> OST 중 Pink Panther Theme 영화 <찰리 브라운> OST 중 Peanuts Theme Song & Christmas time is Here 영화 <그린북> OST 중 Happy Talk 영화 <라라랜드> OST 중 Mia & Sebastian’s Theme & City of Stars 영화 <맘마미아> OST 중 I have a Dream 영화 <카우보이 비밥> OST 중 Thank! 앙코르 엔니오 모리코네, 시네마 천국 Ennio Morricone, Cinema Paradiso 캐럴, 윈터 원더랜드 Carol, Winter Wonderland
1700년대에 만들어진 텔레만의 곡은 합시코드 연주와 함께했는데 합시코드 특유의 소리로 바로크 분위기도 났지 만, 비올라가 많아서인지 훨씬 부드럽고 단단한 소리였다. 음향 상태가 굉장히 좋았는데 첫 음을 듣는 순간 어찌한 일인지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보통 바로크 음악은 금속 소리 같은 느낌이라 차갑게 느껴지는데 오늘은 달랐 다. 바이올린 5, 비올라 4, 첼로 2,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솔로 연주자도 비올라. 날카로운 고음 영역보다 저음부 악 기가 많아서인가 생각했다. 비올라를 켜면서 마치 춤을 추듯, 또는 지휘를 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용재 오닐의 모 습이 음악에 흠뻑 젖어 있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2015년 9년 만에 우승자를 배출한 프레미오 파가니니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은 만 20세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 트 양인모였다. 그 양인모를 오늘 비발디로 만났다. 믿기 힘들 정도의 강약 조절, 한음 한음을 또렷한 소리로 짚어 내는 연주, 풍부한 감성. 정말 좋은 연주자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 밤이었다.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용재 오닐도 바이올린을 들고나왔다. 힘 있는 제2 바이올 린이었다. 두 사람의 연주가 합이 어찌나 잘 맞던지, 오늘 프로그램 중에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비올라뿐 아니라 바 이올린 연주도 수준급. 인터미션 후 2부는 조윤성 트리오와 함께 연주했는데 재즈 피아니스트인 조윤성이 편곡한 영화음악들이 연주되었 다. 실시간 톡에서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는데 클래식 곡을 재즈로 편곡한 곡들이 편안하게 들렸나 보다. 우리 집도 아이들과 함께 듣고 있었는데 재즈로 편곡된 사탕 요정의 춤을 듣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주말. “슬플 때나 힘들 때도 늘 음악이 옆에 있다.” 용재 오닐의 말처럼 그의 음악을 선물로 받고 마음이 한껏 따뜻해진다. 다가오는 2021년은 부디 공연장에서 박수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글 박순선 사각객원기자, 블로거 pss21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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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ARTIST
플루티스트
추현민
추현민은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 후 미국 뉴욕대
끊임없는 열정을 이어 나갔다.
학교(New York University) 석사 및 전문연주자 과정
현재 아울로스 플루트 오케스트라, 아이레 앙상블 단원
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함으로 플루티스트로서의 기
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반을 다졌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The Baroque
있다.
Orchestra of New Jersey Competition 1위, Flute
작년 한해, 코로나로 인해 계획했던 많은 연주들이 취
Society of Kentucky Competition 3위, Atlanta
소 된 가운데 수성아트피아에서 예술인들을 위해 기획한
Flute Club Competition 3위, National Flute
‘예술인 氣살리기 프로젝트’ 에 선정되어 무관중 녹화 연
Association Master Class Competition 우승을 통해
주를 했다고한다. 오랜 기다림 가운데 한 연주라 더욱 뜻
국제적으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깊고 감사한 무대였다. 코비드로 함께 앙상블 활동을 하
루마니아 Iasi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시작으로 한국
는 연주자들과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을 모아 각자의 자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미국 New Jersey Baroque
리에서 언택트 연주로 녹음 하였다. 이어폰 하나에 의지
Orchestra 와의 협연을 통해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고,
해서 각자의 파트를 연주하는데, 익숙하지 않았지만 즐
미국 유학시절 다수의 독주회와 앙상블 연주 경험을 통
겁고도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해 연주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갔다. 귀국 후, 2013
앞으로도 어디서든, 어떠한 상황이든 연주자도 청중도
년 대구우봉아트홀에서의 귀국독주회를 통해 국내 음악
함께 소통하며 음악을 함께 나누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활동의 시작을 알린 후, 여러 앙상블 연주와 계속적인 독
자하고 화려한 무대를 보여 드리는 것 보다 언제 어디서
주회를 가지는 등 지속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가
나 연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행복한
고 있다.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더 불 어 독 일 S a a r b u rg I n te r n a t i o n a l M u s i c
지금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레 앙상블 연주가
Festival 에 참가 하였고, Jeanne Baxtresser, Keith
작년에는 아쉽게도 코로나로 취소 되었지만, 2021년 6
Underwood, Karl-Heinz Schutz, Peter-Lukas
월, 서울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연주회를 준비 중
Graf, Jasmine Choi, Marya Martin, Linda Chesis,
에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음악을 사랑하는 후배들과
Georgi Spassov, Tong Yu, Oleg Khudyakov 등 세
함께 제가 공부하고 경험하고 느꼈던 많은 것들을 나누
계적인 음악가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며 학구에 대한
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취재 사각편집부 사진 추현민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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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시대에 어디서든 희망을 연주하는 행복한 연주자가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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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미켈란젤로 다빈치'를 키운다 ;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을 찾아서
아이의 좌뇌우뇌의 균형적인 발달은 모든 학부모들의 바람이다. 모나리자의 작가 다빈치를 화가로만 알고있는가? 그렇지않다. 수학자로 철학자로 의학자로도 유명하다. 한예종의 영재교육원 이래 한강이남에서 최초로 생겨 대구의 예술엘리트 공교육의 산실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을 찾아서 예술영재 공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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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학생문화회관 부소기관으로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이 있는 것이다. 들어올 수 있는 1차 조건은
HOW 선발과정
중학교1년에서 3년에서 시험 치는 자격이 주어진다. 영재교육시스템 GED에서 진단받고 판정되면 다 니는 학교를 통해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에 지원하고 또 선발 시험을 치게 된다.
쉽지 않은 선발과정이 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영재는 그 영재 교육시스템(GED) 등록하게 되어 있다. GED라는 시스템 안에 본 인이 신청하면 그 데이터가 학교로 넘어가고 학교에서는 또 영재 담당하시는 분이 있어서 담당 선생님 이 아이를 보고 학교에서 영재교육원으로 보내도 된다, 아니다를 결정하게 된다. 즉 학교에서 추천 하 도록 되어 있다. 학교에서 추천한 학생 대상으로 테스트를 다시 한다. 음악 20명 미술 20명만 선정하 는데, 20명 정원 안에 창의 과정과 심화 과정이 포함된 인원이다. 학년에 상관없이 예술영재 교육원 처음 들어오면 창의 과정에 속하게된다. 창의 과정 1년을 수료 하면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는 시스템 인데 수료한다고 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올라간 수만큼 빼고 또 20명 정원을 채워 넣는 시스템이기에 입학하기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결론이다. 보통은 3월에 수업을 시작 12월 말까지 수업이 있다. 음악 같은 경우는 개인에 특화되어 일대일 수업 즉, 사교육에서 말하는 개인레슨에 가까운 수업(년간 42시간 이상) 도 같이 해서 영재성을 향상하기 위 한 수업도 다방면으로 한다.
WHAT 커리큘럼
나머지는 그룹 수업으로 음악사, 음악 이론, 화성학, 편 작곡법 등 영재로서 갖춰야 할 이론수업과 실 기수업을 병행해서 한다. 미술 같은 경우 평면, 입체, 디자인, 미디어 그리고 매체융합이라고 해서 미술 과 건축, 인문, 기술과학 등으로 다양한 접목을 배우는 매체융합 수업도 있다. 특수한 경우 외부 교수도 초빙해서 코티칭 수업 진행하고 있어서 다양한 지적호기심을 맛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게 도와 준다. 창의 과정 1년 동안은 많은 것을 경험해 스스로 작품을 찾아가는 방향이고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 서는 이제 자기만의 색을 찾아서 포트폴리오를 가지게끔 수업을 진행한다. 수료를 하게 되면 자기만의 포트폴리오는 남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예술 교과가 결과적으로 발표 하는 직군이니깐 일 년에 한 번씩 정기연주회, 전시회하고 학기 말에는 수료 전을 꼭 하게 커리큐럼이 짜져있다. 연 2회 이상은 발표 전을 하도록 유도한다. 코비드19 때문에 유보 중이긴 하지만 다른 기관과 조인트 해서 전시나 연주회를 늘여갈 계획에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매년 대구미래교육연구원(전 교육정보원)에 연구 과제를 의뢰해서 매해 전체 커리큘 럼을 다듬어 성장시키고 있고 강사진도 까다로운 선정 방식과 매년 두 번의 평가를 통해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왼쪽 영재이론수업 오른쪽 영재프로젝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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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현장 : 예술교육의 현장
음악영재선발 - 창의 과정 - 심화과정 : 음악은 이론과 실기 그리고 창의성을 함께 발전시켜야 성과를 볼 수 있다. 영재교육원에서는 마스터 클래스등 일대일 수업도 연간 42시간 이상을 함으로 영재성을 높인다 사진설명 1. 플루트 마스터클래스 2.음악인이라면 음악 뿐아니라 소위 무대공포증도 이겨야하는 법 발표회를 연2회 이상 한다. 3. 영재수료 연주회
DO 진로
진로도 미술과 음악은 결이 좀 다르다. 음악은 기초를 쌓아 피아노를 해서 작곡이나 지휘로 바뀔 수 있 으나 그 색이 달라지지 않지만 미술은 지금은 미술을 하더라도 차후 가령 건축가가 되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학 디자이너 중에도 미술 전공자가 많고, 게임 산업에도 미술 전공자가 많이 필요 로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수업도 기술을 익히기 위한 수업보다 두뇌발달을 위한 수업 즉 아이디어 내서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을 한다. 음악의 경우 하나의 악기로 전공을 하고 숙련되어 지면 확장해 가는 그런 방식이다. 피아노로 시작해 서 작곡이나 지휘로 바뀔 수 있으나 그렇게 분야가 달라지지 않는다. 가수 헨리도 어릴 적 캐나다에서 바이올린으로 영재로 인정 받았지만, 지금은 대중가수로 성장하고 또 클래식이 대중가요와 협업 되어 시너지가 나는 경우이다. 음악은 기능과 창의성이 함께 숙성되어 진다. 2005년 개원하여 2006년 정식출범했는데 초1부터 고3까지 받았었다. 2012년부터 중학생에 집중하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장(대구학생문화센터관장) 강형구
대구학생문화센터는에서 운영하는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은 예술·문화교육을 통한 학생 미래역량 신장을 운영 목표로 설정하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구교육이 추구하는 미래역량의 핵심인 창의·융합적 사고 역 량을 길러주기 위한 예술·문화교육과 한 학생도 놓치지 않는 다품예술·문화교육 을 통하여 예술·문화 소외 학생이 없는 대구교육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 다. 더불어 학생문화센터를 통해 전시 공연장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지역문화 발전에도 같이 교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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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영재선발 - 창의 과정 - 심화과정 아이들은 자신만의 포트폴리오 그리고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은 뿐 그것을 확장해서 미술작 가 뿐 아니라 다른분야 산업디자인 건축 게임등으로 나아간다 사진은 학생들의 결과물인 왼쪽부터 1.전시장면 2.인터랙티브공동작업을 통해 창의성을 증진시킨다. 3. 입체작품전시도 돋보인다. -기성작가 들보다 작업기술은정교치못하더라도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놀랄때가많다고한다
여 받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영재교육이 입시교육과 맞물리면 영재교육이 방해받거나 퇴색될 수 있어서이다. 음악 은 20명 정원 안에 국악 영재부터 성악, 피아노 등 악기까지 다 있다. 실기와 이론을 겸비하고 그룹 등 심화학습을 통 해 영재성을 함께 끌어올리는 수업을 한다. 미술과 달리 85~90% 전공이 바뀌는 경우는 있어도 대부분 그 틀을 벗어 나지 않는다. 제네바콩쿠르 타악기 부분에서 10년 만에 우리 교육원 출신이 상을 받고 2008년 집안이 넉넉지 않았 던 초3 학생이 공교육 혜택을 받고 지금은 어엿한 국제콩쿠르 우승자가 되어 있는 경우를 발견한다. 그래서 보람을 느 끼는 경우이다. 예술교육에 있어서 공교육이 쉽지는 않다. 그 어려운 길을 한강 이남에서 독보적으로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이 해내 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각잡지가 아이를 예술영재 또는 예술인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 둔 마음으로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예술 공교육 쉽지는 않다. 그 공교육 현장을 시리즈로 계속 이어나가서 예술교육정보를 담을 계획이다.
대구예술영재교육원 교육연구사 정지연(총괄,미술담당), 이세헌(음악담당)과 인터뷰를 진행했다.(오른쪽 정지연/왼쪽 이세헌) 3월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 친절히 응해 주신것에 감사드린다. 취재 사각편집부 사진 강금주 사진자료제공 대구예술영재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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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21.3. 9.-3.21. 수성아트피아 3월 초대전 : 박종태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2021.3.13.「화이트데이 서트 : 커피소년」 웃는얼굴아트센터 청룡홀 3.11. 공연 utube 4.11중계 대구시립무용단 × 미디어아티스트 권병준' ‘조 율’(TUNED MOVEMENT) 3.11 1.15.- 3.28. 서현규 - 봉산 십층철탑 봉산문화회관 3.2.-3.31. 김현석전 EUL GALLERY
4월
4.22.- 6.5. 대구문화예술회관 원로작가회고전
3.30 - 4.6 대구연극제 웃는얼굴아트센터 와룡홀, 어울아트센터 함지홀
3. 2 – 4. 21 갤러리021 정그림전 2. 2- 5. 23. 다디스트 정은주 차규선전 대구미술관 2. 9- 5. 30.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때와 땅’대구미술관 -6. 7.(일) 대구미술관개관 10주년 기념 아카이브전 ‘첫 번째 10년’ 대구미술관
1.21.- 4.23.유의정 색상가면전 갤러리 CNK 76 S A G A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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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집콕생활, 사각과 함께 하세요. 사각은 어디서나 보실 수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사각테레비 검색 동영상으로 비대면 전시관람, 각종문화, 브이로그 보실 수 있어요 종이잡지는 issue.com 접속하셔서 'sagak' 검색 사각아트웹진, 공식블로그도 운영 중이니 아래 주소를 참조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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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뉴스
021gallery 상동관
021갤러리가 대구 수성구(두산위브제네시스상가 201호) 에서 2016년 11월에 첫 전시 를 하며 문을 연이래로 상동관을 오픈했다.http://021gallery.com/ 주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로25길 5, 4층 021갤러리 상동관 화-토 : 오후 12시 – 오후 7시 매주 일, 월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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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은 문화를 먹는다는 의미로 의성어 ‘사각사각’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무대, 캔버스등 문화활동이 일어나는 곳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문화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가는 잡지입니다.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이 번호에서는 지난 호를 묵히고 다시 출발했다.
'JUST EAT IT! (여기서 it은 사각이 되기도하고 문화가 되기도 하다) 특히 이번 기획에서는 숫자 3으로 시작했다. 우리도 역시 삼세번을 벼르고 다시 사각을 펼쳐 든 것이다. 그리고 최재목 교수의 권두컬럼은 사각이 힘차게 열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만들어 주었다. 감사드린다. 필진 섭외가 너무 어렵다. 소규모 독립잡지 그것도 예술잡지에 누가 쉬이 글을 쓰겠는가? 늘 사각의 문은 열려있고 숨은 진주를 찾고 있다. 시작은 누구나 한다. 긴 시간과 동행하기가 힘들지만, 또 일어서서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길을 나선다.
서기 2021년 3/4월호 2016년 11월 7일 재등록 대구중, 마00007 격월간지
통권
발행일 2020년 11월 15일
29호
발행인 및 편집장 강금주 관리총괄 조성희 발행처 사각출판 디자인 사각출판 인 쇄 (주) 경북프린팅 -----------------------------------------------------------------------서울취재기자 박현정 표지 이우림, 산책, Oil on Canvas, 228×182cm, 2013
편집위원 안중걸, 정기태, 김국현, 김인현, 장명수, 김미화
2021 웃는얼굴아트센터 기획전 시리즈Ⅲ
이한나展
2021.
3.18. ~ 3.31. 갤러리 라온
8000원
2021. 3/4 Vol.29
ARTS | ARTIST | ARTICLE
2021 March-April VOL.29
기획 이달의 테마 : 숫자 3의 알고리즘 INTERVIEW 송광익, 이우림